다시 '사람'을 이야기해야 한다.

 



양권석

(본 연구소 소장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아직도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대세다.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기에 사고는 빨리 처리하고 정상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 시대의 당위다. 진도 앞바다 동거차도의 산 언덕에서 맹골수도의 선체인양작업을 내려다 보며 부릅뜬 눈을 잠시도 닫지 못하는 유가족들. 바다 속에 잠긴 진실의 온전한 인양을 바라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는 딱딱하게 굳을 대로 굳어버린 시대의 가슴을 아직 열지 못하고 있다.  


    장사하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업과 시장에 보다 많은 자율과 자유를 주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일정한 생명의 파괴, 인격의 훼손은 모든 과정에서 언제나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가 보편적 동의하고 있는 인식이다. 그래서 국가와 정부도, 법과 학문도, 자신들이 사람과 생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과 기업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음을 전혀 숨기지 않는다. 이처럼 본말이 전도된 세상에서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죽어가는 가족들을 지켜 보아야 했던 옥시사태의 유가족들, 부모와 배우자와 자식을 잃고 거리에 나선 그들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생명과 인간의 훼손과 죽음을 방조하는 이 사회를 향하여 그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사람을 자원으로 상품으로 표현하는 것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여기는 시대다. 사람의 사람에 대한 생각이 그만큼 무섭게 변했다. 인격이나 생명이기 이전에 물건이나 상품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훨씬 지배적이다. 상품들이 시장에서 경쟁하듯, 사람들도 그렇게 경쟁한다. 상품에게 인격이나 생명과 같은 의미를 담지 않듯이, 경쟁하는 사람들도 인격이나 생명과 같은 의미들은 의도적으로 잊어야 한다. 상품이되고 물건이 된 사람들 사이의 경쟁, 여기가 바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빈부격차가 들어서는 곳이고, 조현병이라는 분열과, 묻지마 폭력과 오도된 혐오가 등장하는 자리다. 지난 5월 17일 서초동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이유도 모른 채 무참하게 살해당한 그 젊은 여성은 사람 사이의 관계가 혐오와 증오가 되고 강간이되고 폭력이되고 살인이 되어 버린 우리 시대의 희생자다. 경쟁관계가 폭력적 관계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라면, 지금 우리는 우연히 살아 있을 뿐인 것이다. 


    지난 5월 28일 구의역, 위험한 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혼자서 일을 하다가, 달려오는 전차와 스크린 도어 사이에 끼어 숨진 19살 청년 김군. 49개의 지하철 역의 모든 스크린 도어를 단 여섯 명이 그것도 신고가 들어오면 1시간 내에 달려가야 한다는 계약이었다. 그래서 2인1조 작업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물리적으로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이었다. 이는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비용으로 계산할 때만 가능한 계약이고 약속이다. 그 청년이 들고 다니던 갈색 가방과, 그 안에 필요한 작업도구들 사이에 보여지던 컵라면과 나무젓가락과 스텐수저는 우리들의 삶의 실상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듯했다. 공기업 민영화의 참혹한 실상이 거기에 있었고, 이미 가질 것 다 가진 퇴직공무원들의 전관예우를 위해, 상위 포식자들의 밥상을 위해 그 젊은 몸과 마음에 착취와 상처를 안기는 세상이 보였고, 끝내 열 아홉 젊음을 죽음으로 내 몰고 있는 폭력이 되어 버린 우리들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시편의 한 구절이 아리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날이면 날마다 나를 보고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비웃으니, 밤낮으로 흘리는 눈물이 나의 음식이 되었구나.”(시 42:3) 우리 시대가 던지는 조롱은 이보다 더하다.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는 정도가 아니다. 인간이라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인격이라는 것이 어디 있느냐며 비웃고 있지 않는가? 모든 것을 팔고 소비하는 시대에, 상품과 소비자만 있을 뿐 사람은 없다고 빈정대고 있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상품처럼 생각하고, 상품처럼 행동하고, 상품처럼 관계 맺도록 교육하고 있는 사회다. 가장 인간적인 것마저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고 시장에서 성취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회다. 시장에서 소비자로서의 삶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떤 윤리적 한계나 도덕적 절제의 요구에 의해서도 구속 받지 말아야 하며, 인격이나 생명의 신비 같은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고 가르친다. 인간 죽음의 허무가 지배하는 시대다. 소유와 소비를 통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치는 물질 신의 지배 하에 살아가고 있다. 무한 소유와 무한 소비라는 궁극의 목표를 향해, 상품선택과 경쟁의 무한 자유를 수단으로 허락하고, 그 무절제하고 무자비한 자유가 만들어내는 폭력이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더욱더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세계다. 


    이처럼 시장과 소유와 소비가 인간과 생명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 인간과 생명을 폭력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이곳에서 다시 인간을 말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구입가능하고 대체 가능한 상품으로서 인간에 대항해서 인간의 참모습을, 상품선택의 자유에 대항해서 인간 자유의 참 모습을, 상품적 가치판단과 경쟁관계에 대항해서 진정한 인간관계에 대한 비젼을 새롭게 다듬어 내야 한다. 신학과 철학의 오랜 전통은 인간의 불완전함과 부족함과 유한함이 인간의 자기파괴나 자학 그리고 경쟁적이고 폭력적인 인간관계의 이유가 아니라, 서로간에 보다 깊이 나누며 참여할 수 있는 참된 인간 관계의 이유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오랜 신념 위에 다시 서서 인간과 생명의 그 대체불가능한 신비를 다시 숙고해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하게 느껴진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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