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의 소리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함석헌은 글보다 말을 선호했지만 그에게 말보다 더 근원적인 생명의 현상은 소리였다. 그는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소리가 있다고 보았고, 모든 소리에서 생명의 소리를 듣고자 했다. 말씀은 생각의 소리였고, 생명의 소리는 말씀이었다. 생명의 소리는 무엇보다 먼저 고통의 소리였고, 고통의 소리는 모든 소리의 시작이었다. 소리의 원형이자, 모든 소리의 첫소리는 ‘아’라고 했다. 이는 고통과 감탄의 소리였고 또 깊은 생각이 남기는 소리였다. 그에게 인간은 소리를 듣고 소리를 내는 존재였다. 함석헌의 사상을 소리의 발견과 연결 지을 수 있을까? 그가 소리를 통해 발견한 것은 자기 소리를 낼 수 없는 민중이었지만, 여기서 그의 철학적인 비판과 방법론의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함석헌의 글에서 ‘소리’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먼저 그 단어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문장의 문법적 의미를 구성하는데 불필요한 상황에서도 ‘소리’라는 단어가 쓰이곤 한다. 어느 순간 함석헌의 의도가 소리의 회복 내지는 소리의 사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난 받는 민중의 소리를 듣고 그들의 소리가 나올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은 그가 언급하는 의도였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자연의 생명을 소리로 이해해서 등한시 되었던 생명이해의 한 축을 보강시키고자 하는 의도도 쉽게 드러난다. 그의 글에서 ‘소리’의 또 다른 의도는 익명성 뒤에 숨어 있는 난해한 개념이나 논리를 누군가의 소리로 그 뜻을 이해하려 한 것이라 본다. 이를 철학적 비판의 예로 삼는다면, 철학이 삼인칭의 학문이 되었다는 비판과도 연결이 된다. 철학이 개념과 논리의 작업이 되면서 일인칭의 소리가 배제되어 왔기에 철학의 자전적 목소리를 되찾자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생각의 첫소리가 ‘나’라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철학의 소리가 모든 사람의 소리를 대신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기를 촉구하는 말이기도 했다.


    20세기 서양에서 철학을 소리의 차원으로 이해하려 했던 사람은 임마누엘 레비나스였다. 레비나스가 소리에 주목했던 이유는 타인과의 관계라는 그의 철학의 중심적이 주제가 시각중심적인 기존 철학의 개념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생각이나 사유 또는 이해와 같이 주체와 대상을 분리하고 나누는 개념으로 타인을 대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에게 타인과의 만남은 인식이나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듣는 차원의 문제였다. 듣는 행위에 대한 철학적 관찰은 찾기 어려웠다. 레비나스는 서구 사상의 관점에서 타인이 내 시선의 대상이 될 때, 그 사람은 나의 대상이나 나의 일부로밖에 판단되어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레비나스는 나의 이해나 의도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나의 비전에 가둬둘 수 없는 타인의 얼굴에서 소리를 들었다. 그 얼굴은 우리가 보고 이해해야 할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이었다. 그 첫 소리는 함석헌이 동의할 만한 “나를 죽이지 말라’는 생명의 외침이자 요구였다. 그에게 윤리는 그 소리를 듣는데서 시작했다. 만약 윤리가 소리를 듣는 것과 연관이 있고, 윤리가 첫 번째 철학이라면 철학 자체도 소리로 재구성될 수 있어야 했다. 그는 타인의 소리에 의해 일깨워지는 자아, 이성의 빛이 아니라 침묵을 강요받는 존재의 울림과 떨림을 들으면서 시작되는 사유를 펼치면서, 빛에 이끌린 생각을 거부하고 소리에 의지한 철학의 근거를 추구했다. 이런 레비나스의 철학에 대해 자크 데리다는 소리를 빛보다 위에 두고,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을 우선시 했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레비나스가 서구사상의 오랜 집착에서 벗어난다는 지적임과 동시에 레비나스의 그런 철학이 신학적인 근거 밖에서 성립될 수 있는가 묻는 비판적 질문이었다.


    레비나스가 소리로 생각하는 사유를 펼치면서 서양철학의 전통에 반기를 든 배경에는 시각과 보는 것을 우선시해온 오랜 역사가 있다. 이 역사에서 생각은 언제나 빛의 영역이었다. 빛의 도움으로 제대로 보아 나오는 것이 생각이었다. 생각의 순간을 빛이 발하는 순간으로 비교하기도 했고, 반면에 무지는 어둠이라 여겨졌다. 생각을 낳는 이성도 역시 빛의 현상이었다. 서양의 언어에서 생각과 사유를 뜻하는 단어들은 주로 빛이나 보는 행위와 연결된 것들이었다. 태초의 말씀까지도 소리가 아니라 빛으로 보아야만 했다. 특히 근대라는 시간은 시각과 인식이 함께 승리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대 지식의 기준을 마련한 증언이나 증거와 같은 개념은 모두 눈으로 보는 행위를 뜻했다. 하지만 진리가 보는데서 출발한다는 생각은 서구 사상의 시초가 된 플라톤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생각이 보는 행위와 연관이 있고, 보기 위해선 빛이 필요하고, 빛은 진리의 원천이기에 참이고 선이라는 논리는 이미 그 시대에 완성된 것이다. 이렇게 빛에 맞추어진 생각은 소리를 멀리하고 소외시켜야만 깊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내 밖의 소리를 듣고 움직이는 것은 주체적이거나 자율적이지 못한 행동이었다.


    레비나스와 함석헌는 이런 역사에 대한 재고를 요구했다. 함석헌은 이성을 빛이라 분명히 말한다. 그가 얘기하는 이성의 모순은 이성이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비춰질 수 없는 곳까지 비추겠다는 ‘당돌한 등불’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그는 이성의 빛이 할 수 없는 소리에 주목했다. 그것은 이성의 힘만으로는 낼 수 없는 생명의 소리였다. 함석헌은 빛과 바람을 함께 언급했다. 빛과 바람, 별다른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단어들이지만, 잠시 생각하면 연결점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바람은 빛과 함께 더불어 생명의 또 다른 조건인 공기가 움직이면서 만들어진다. 바람은 소리를 동반한다. 함석헌은 생명을 위해 빛과 공기가 함께 필요한 것처럼, 생각이 있기 위해서 빛과 소리가 함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성을 바로잡기 위해 소리가 필요하고, 그 소리는 생명의 본질에 속한다고 본 것이다. 레비나스는 소리에 대한 함석헌의 생각을 잘 이해했을 것이다. 두 사람은 빛과 시각을 우선시 하는 철학에 반대하고 소리의 사유를 각기 모색했다고 볼 수 있다. 레비나스는 이를 위해 눈으로 듣는 모습을 상상했고, 함석헌은 맛으로 듣는 소리를 얘기했다. 내 옆 타인의 존재는 그 자체로 나를 부르는 소리이고, 그 부름이 나의 책임을 일깨운다는 레비나스의 생각은 소리의 원형이 숨소리에 있고, 그 소리의 본질은 살고자 하는 절규라는 함석헌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 소리에서 의미나 형상으로 규정되지 않은 윤리의 출발점으로 파악했던 레비나스는 소리에서 이성이 담아내지 못하는 생명의 외침을 들었던 함석헌을 잘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차이도 지적할 수 있다. 레비나스에게 소리의 사유가 존재론의 철학을 넘는 자신의 윤리철학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면 함석헌의 소리는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보편적인 생명의 현상이었다. 그리고 ‘씨알의 소리’라는 함석헌 고유의 개념이 담고 있는 고난의 이해를 더하면 그 차이는 더욱 더 분명해진다.


    <나도 인생이야>라는 함석헌의 시가 있다. 땔감으로 잘려나가는 나뭇가지, 파리채에 맞은 파리, 총에 맞은 산새, 더 이상 수레를 끌지 못하고 쓰러지는 늙은 말, 도살장의 암소는 모두 ‘나도 인생이야’라는 마지막 절규를 남긴다. 함석헌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인생이 있다고 보았다. 그 점에서 사람과 동물과 식물이 다를 수 없었다. 그 인생들은 제각기 ‘나도 살자고 태어난 인생’이란 외침을 남긴다. 함석헌은 묻는다. “그대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는가? 문명이란 이 무거운 괴물의 무거운 사슬에 꿀려가다가 거꾸러지는 이 인류의 소리를 그대는 들었는가? 상아탑에 꿈을 꾸고 단 위에 이론을 펼 때 티끌 속에서, 하수도 밑에서 들리는 그 소리, 나도 인생이야!”


<벗이야 나를 보셔>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보오 벗, 내 눈 건너다보지 말고 

내 말을 들어주셔요 


말만 들어주셔요 

맘만 말이야요 


들어도 소리를 말고 

울림에 귀를 기울이셔요 


들어도 귀청으로 말고 

혀 아래 맛을 들으셔요 


울려 울려 

속에서 우러나오는 울림을


    함석헌은 벗에게 고한다. 나를 볼거리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내 말을 들어달라고. 그리고 내 말이 아니라 내 마음을 들어달라고 하고, 내 마음을 소리가 아니라 울림으로 들어달라고 부탁한다. 또 내 마음소리의 울림을 귀가 아니라 혀 아래 맛으로 들어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함석헌은 보기보다는 듣기, 입의 말보다는 마음의 소리, 소리보다는 소리의 울림이 우선이라 보고 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귀가 아니라 맛으로 소리를 들으라 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울림을 느끼고 맛을 보는 행위의 차이는 우선 거리에 있다. 예컨대 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더 멀리 볼 수 있다. 울림은 들을 수도 있지만 피부로 느낄 수도 있다. 함석헌에게 울림이 있는 소리는 말이었다. 그 말의 울림은 의미가 전달된 후에도 여운으로 남는다. 울림을 철학의 용어로 활용한 사람은 앞서 언급한 레비나스였다. 그가 다양한 의미로 활용하는 용어지만, 여기서 울림은 나의 말이 죽은 과거의 소리가 아니라 타인에게 전달되어 그의 말소리를 청하는 환영의 소리라 할 수 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소리의 울림이 남기는 여운은 ‘나도 인생이다’라는 외침일 것이다.


    이 시에서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맛으로 들으라’는 절이다. 거리로 말하자면 맛으로 느끼는 것만큼 대상과 가까울 수는 없다. 그런데 소리를 맛으로 들으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맛의 미각은 울림의 촉각과도 다르다. 내 입 안에 있지 않으면 맛을 느낄 수 없다. 울림의 여운이 반복된 움직임에서 나온다면, 맛의 미각은 반복해서 씹고 음미하는 것과 연결될 수 있다. 입안에서 맛으로 음미될 수 있는 소리만큼 나에게 가깝게 들릴 수 있는 건 없다. 소리의 울림이 우리를 자극하고 일깨울 수 있다면, 소리의 맛은 (소리가 맛있는 것이라면) 우리에게 기쁨이 되고 영양을 공급해 준다. 미학의 시작이 맛에 대한 고찰로 시작했다면, 소리의 맛에 대한 상상은 시각을 선호하던 전통에 대한 저항이자 새로운 미학의 시작일 수도 있다. 함석헌이 소리의 원형을 생명의 자기주장과 고난과 고통의 외침에서 찾았다는 사실에서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내가 맛으로 들어야 하는 소리가 고난 받는 씨알의 소리라면, 그 소리는 내가 소화해서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할 소리가 된다. 그렇다면 그 소리는 나를 윤리의 관계로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나와 다른 인생들이 다르지 않다는 생명의 연대의식으로 이끄는 소리였다고 말할 수 있다.





ⓒ 웹진 <제3시대>



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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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과 에머슨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함석헌을 철학의 이름으로 생각하게 된 동기를 내게 처음 제공한 것은 미국의 에머슨(1803-1882)이었다. 19세기 미국의 제일 중요한 사상가라 할 수 있는 에머슨은 그와 오랜 친분을 유지했던 후학 소로우와 더불어 미국적인 학문의 터를 닦았다. 한때 함석헌과 에머슨의 글을 동시에 읽기도 하면서 내린 결론은 두 사상가 사이에 유사함이 많다는 것이고, 그 유사함의 일부는 철학적이란 것이었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살았던 시대도 달랐던 두 사상가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결론만을 도출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부담을 감수하면서 두 사람을 연결해보는 이유는 함석헌이 서구사상과 맺은 인연이 주로 에머슨과 같은 낭만주의의 사상가들과의 교감 속에서 이뤄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함석헌이 자주 언급하는 서양의 인물들의 이름을 나열해보면 알 수 있고, 이는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겠다). 여기서 에머슨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미국의 사상에 끼친 영향,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이 유럽의 정신적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상적 독립의 발판을 마련했던 그의 역할이 바로 함석헌이 한국 사상의 독립을 위해 자처했던 역할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의 차이는 미국 내에서 에머슨의 그런 역할이 미국학문의 전통을 가능케 한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함석헌이 남긴 정신적 유산에 대한 평가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함석헌은 에머슨에 대해 많은 말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주로 동시대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이나 에머슨과 콩코드라는 마을에 함께 살았던 소로우와 함께 언급된다. 함석헌이 소로우의 유명한 <시민불복종>이란 글을 한국어로 번역까지 한 것에 비하면 에머슨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함석헌은 이 세 사람을 미국의 대표적인 사상가들로 이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함석헌의 글에는 미국의 정체성을 이들과 연관 지어 언급한 내용이 있다. 에머슨, 소로우, 휘트먼이 아니었다면 ‘미국은 없었다’는 말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미국의 어떤 면이 가능했고, 미국을 가능케 만든 사상적인 조건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또 에머슨은 빠졌지만 <월든>을 쓴 소로우와 <풀잎>의 저자 휘트먼이 없었으면 ’미국은 더 썩었을 것’이란 주장도 했다. 큰 맥락에서 에머슨의 이름을 포함하여 이해해도 무리는 없어 보이는 주장이다. (함석헌이 미국을 어떤 나라로 생각했기에 그들의 사상이 아니었다면 미국이 더 썩었을 것이라 했는지는 다른 각도의 분석이 필요하다). 함석헌은 이들을 ‘야인’이라 불렀다. 이들이 야인이라면 함석헌과 추구했던 인간성에 부합하는, 즉 함석헌적인 인물들이 된다.


    실제 에머슨과 소로우가 없는 미국의 사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함석헌이 19세기 중반에 완성된 이들의 사상이 미국의 본질적인 모습을 담아낸, 미국을 대표하는 학문으로 이해했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함석헌이 살았던 20세기에 미국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평가받던 인물은 존 듀이(1859-1952)였다. 듀이를 에머슨과 소로우나 휘트먼 같은 인물의 반열에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잠시나마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을 완성시켰고, 진보적인 사회개혁에도 큰 관심이 있었고, 실험적인 학교까지 세워 교육이론을 펼쳤던 듀이는 함석헌의 사상적이고 실천적인 행적과도 괘를 같이 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듀이는 함석헌이 미국을 처음 방문하기 10년 전에 이미 사망했지만, 그의 명성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세계적인 것이었다. 듀이는 동아시아에서도 유명했다. 그는 1919년 봄 두 달간 일본을 방문해 동경제국대학에서 강연을 했고, 그 내용은 <철학의 재건>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어 지금까지도 그의 중요한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듀이는 일본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대신 그의 콜롬비아 대학 제자였던 호적의 초청을 받아들여 중국으로 갔다. 그곳에서 2년이란 긴 시간으로 보내면서 많은 강연을 했고, 특히 5.4운동으로 고조된 중국의 사회개혁과 교육개혁을 향한 젊은이들의 열망 가운데 그의 존재는 큰 화제가 되었다. 1919년 북경에 머물던 듀이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로부터 한국방문을 요청받고 그 가능성을 타진해보기도 했었다. 미국을 여러 번 방문했고, 미국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관심이 컸던 함석헌이 듀이를 몰랐다고 보긴 힘들다. 함석헌은 1962년 첫 미국 방문 때 하버드 대학의 은퇴 교수였던 철학자 Ernest William Hocking을 만났다. 그는 윌리엄 제임스의 제자였고 훗날 듀이와 철학적인 논쟁을 벌이기도 했었고, 한때 듀이 다음으로 영향력이 있는 철학자란 평가도 받았던 사람이다. 큰 틀에서 듀이와 마찬가지로 실용주의의 시각으로 유럽의 철학과 대화를 이어갔던 미국의 철학자였다. 함석헌은 Hocking 교수와의 만남과 소감을 비교적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만약 듀이가 그때 살아 있었다면 미국 국무성에서 함석헌과 듀이가 만나 미국의 정신사에 대한 대화를 나누도록 주선하지 않았을까 상상도 할 수 있다. 듀이에 대한 함석헌의 침묵이 의도적인 것이었다면 미국의 정신을 대변하는 사상가로 듀이가 아니라 에머슨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사실은 미국의 실용주의에 대한 함석헌의 판단일 수도 있다. 특히 실용주의가 기술주의로 흐르는 경향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가능성이 생긴다. 20세기 중반 미국이 썩었다는 함석헌의 판단도 에머슨과 소로우가 꿈꿨던 이상적인 미국은 사라지고 자본주의와 결탁한 기술과 폭력의 문화가 팽배한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다.


    에머슨과 듀이를 좀 더 연결시켜 보자. 미국 내에서도 최근까지 에머슨의 학문적 유산을 철학적인 것이라 보는 시각은 소수의견에 불과했다. 낭만주의 학풍의 에세이 형식의 글을 썼고, 자립적인 인간이해를 통해 미국의 독립정신을 표현해냈고, 시를 쓰기도 했고, 미국 실용주의의 동기를 제공했고, 당시 많은 문인들과 교류했다는 등의 이력이 그를 이해하는 주된 관점이었다. 문학적인 사상가로도 미국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부각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에머슨을 니체와 하이데거와도 연결시키며 독창적인 철학적인 작가로 부각시킨 사람은 스탠리 카벨(Stanley Cavell)이라는 미국의 철학자다. (지식사의 사적인 연결점들에 대해 비교적 관심이 많은 나에게도 니체가 에머슨의 책을 항상 들고 다녔고, 반복해 읽으며 밑줄을 긋고 여백에는 극찬의 감탄사까지 남겼을 뿐 아니라 글의 스타일까지 모방하려 했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동을 넘어 충격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 에머슨을 철학적인 사상가로 부각시킨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존 듀이였다. 1903년 시카고 시절 그는 “Emerson: the Philosopher of Democracy”(에머슨: 민주주의의 철학자)란 글을 썼다. 듀이는 에머슨의 글을 어떤 철학으로 이해했을까? 에머슨에 대한 듀이의 평가는 함석헌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다. 듀이의 글을 들여다보자(이 글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듀이는 에머슨의 글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를 잘 알고 있었다. 듀이는 에머슨에 대해 철학적이라고 하기엔 논리가 약하다는 평가를 논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비판했다. 듀이에게 논리는 논증의 도구만이 아니라 직관의 반응을 구하는 논리가 있을 수 있었고, 침묵마저도 논리의 양식이 될 수 있었다. 에머슨은 ‘말’이 의미를 축소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침묵이 말을 부끄럽게 만드는 순간들에서 사유의 동기를 찾았다. 에머슨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방법론을 묻거나 그가 발전시킨 논리의 형식을 묻기 전에 그의 글에 담겨 있는 그만의 논리와 방법을 깨달아야 했다. 또 에머슨을 철학자라 부르기를 거부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에머슨이 철학 이상의 학문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에머슨은 형이상학자가 아니라 시인으로 철학을 했고, 반성적인 사유가 아니라 창조적인 사유를 했다. 이성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사유를 했던 에머슨에게 철학은 ‘아직도 거칠고도 기초적인’ 상태에 있었다. 에머슨은 미래의 철학을 시인들이 가르칠 것이라 예고했다. 그에게 철학자는 믿을 이유를 찾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지만 시인은 믿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철학자와 시인 사이의 분쟁은 고대 희랍의 철학과 함께 시작했다. 형이상학과 예술의 감각을 동시에 담아내는 글을 써온 에머슨은 그 분쟁을 19세기에 재현해냈다. 에머슨에게 철학과 문학의 방법론적인 구분은 인위적이고 유치한 것이었다. 에머슨이 문제 삼은 것은 정신이었다. 그 정신의 본질은 새로움에 있었다. 이전 시대의 지치고 낡은 원칙의 한계를 파헤칠 지식인을 찾았고 타성에 젖지 않은 새로운 사유를 찾았다. 에머슨이 추구했던 철학은 시스템이나 방법론에 얽매이지 않고, 삶에 정직하고 일상의 경험에 충실한 철학이었다. 그는 모든 위대한 사상이 결국 보통 사람들에게 익숙한 경험을 설명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요구했고, 모든 사상의 대한 판단의 기준이 일상의 삶 속에 있음을 설파했다. 그에게 모든 진리는 일상에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대로’에서 찾을 수 있었다. 논리의 싸움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철학이나 자신의 생각을 체계화 시키려는 철학에는 관심이 없었다. 에머슨은 교리나 제도, 관습이나 체계적인 것을 싫어했고, 철학과 종교, 예술과 도덕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것들을 되돌려놓고자 했다. 신학과 형이상학의 기술과 속임수로 인해 감춰진 진리의 단순함을 찾고자 했다.


    플라톤이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이해할지 고민했다. 그를 실패한 개혁자, 지혜의 철학자, 또는 덕의 삶을 가르친 선생으로 보는 등 다양한 시각이 있었다. 오늘날 플라톤의 글에서 체계와 논리의 철학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없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해석의 역사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듀이는 에머슨 철학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해석의 역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듀이는 20세기가 에머슨에게 그런 역사를 제공할 것이고, 역사는 결국 에머슨을 민주주의의 철학자로 기억할 것이라 예언했다. 20세기에 민주주의가 사상적인 자기표현이 필요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에머슨에게서 찾을 것이란 예언이었다. 듀이가 말한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와 맛서는 이념적인 제도가 이니라, 일반 대중의 경험이 사유와 판단의 기준이 되는 정신적인 평등이라는 에머슨적인 이상을 말한다.


    19세기 미국에서 제일 중요한 사상가였던 에머슨과 20세기에 그 역할을 맡았던 듀이의 관계는 미국의 사상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듀이의 사상에 에머슨이 얼마나 어떻게 반영됐는지, 에머슨의 사상에서 듀이의 실용주의 철학의 뿌리를 얼마나 찾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논의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듀이가 에머슨의 사상을 철학으로 이해하고 옹호하려 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듀이는 에머슨을 위해 필요하다고 했던 해석의 역사를 직접 참여했다. 듀이에게 미국의 철학은 미국이 추구해온 가치나 이념과 분리될 수 없었고, 에머슨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미국의 철학이 논리의 놀이터가 아니라 역사와 사회와 함께 발전한 정신사의 산물임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에머슨에 대한 듀이의 평가를 함석헌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듀이의 글 곳곳엔 에머슨 대신 함석헌의 이름을 넣어도 이해가 될만한 문장들이 있다. 듀이가 제시한 논리와 방법의 한계, 시와 철학의 경계에 대한 성찰, 일상의 경험이 기준 되는 철학은 분명히 함석헌의 철학을 위한 논변으로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듀이는 에머슨의 철학을 말했지만, 그 내용을 철학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그 작업은 앞서 언급한 스탠리 카벨이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해왔고, 카벨의 이름은 앞으로 더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함석헌과 에머슨 사이에 비교가 가능한 부분을 몇 가지 언급해보자.


    약 100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지구 반대편에서 각각 태어난 두 사람의 사상은 기독교 신앙에서 출발했다. 에머슨은 교회의 낡은 교리를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는 양심의 이유로 3년간의 목회를 그만두었다. 특히 교리나 관습에 따라 성만찬을 집전할 수 없다는 게 사임의 직접적인 이유였다. 함석헌은 예수의 대속이란 교리를 자유로운 인격이 받아드릴 수 없다는 이유로 이단의 길을 걷기로 작정했다. 그 후 두 사람이 각자의 언어로 발전시킨 사상은 ‘스스로’, ‘자기 신뢰’, ‘자유로운 인격’과 같은 인간이해를 기초로 한 것이었다. 인간은 그들에게 제도와 관습이 묶어놓을 수 없는 생각하는 영적인 존재였다. 에머슨은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은 자아를 찾았고, 함석헌은 문명에 가려진 야성의 영성을 찾았다. 에머슨이 추구하는 인간상은 ‘생각의 사람’(Man Thinking)이었고, 함석헌은 좀 더 집단적인 ’생각하는 백성‘이었다. 철학의 사유를 “창백한 생각”(Pale cast of thought - 에머슨이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햄릿 대사)에서 벗어나 생각의 조건인 일상에 대한 반성으로 되돌리려는 노력도 하나의 공통점이다. 자연과 일상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는 회의주의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함석헌은 한국의 정신을 가로막는 숙명적인 세계관이 있음을 경고했고 이를 극복할 삶의 자세를 믿음이라 했다. 에머슨이 미국을 약속과 미래와 새로움의 언어로 이해한 이유는 미국이 유럽의 낡은 제도와 교회의 교리가 낳는 억압적인 자아의식을 극복할 사명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모두 퀘이커의 영향을 받았고, 한때 힌두교에 심취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퀘이커주의의 영향 때문인지, 두 사람 모두 공중기도를 싫어했다). 함석헌과 에머슨을 함께 생각할 근거를 말하면서도 기억해야 할 차이점이 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에머슨과 개인과 전체가 긴장관계 속에서도 분리될 수 없음을 주장했던 함석헌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또 에머슨이 당시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해 진보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사회운동에 직접 참여했다고는 할 수 없는 반면에 저항과 참여정신을 배제한 함석헌의 사상은 생각할 수 없다. (함석헌과 에머슨을 함께 읽는 글은 1회 더 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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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의 철학’과 ‘철학의 형상화’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1962년 미국을 방문 중이던 함석헌은 필라델피아 근교 펜들힐이라는 퀘이커 수련원에 머물면서 “누에의 철학”이라는 짧은 글을 썼다. (그곳은 이후 “펜들힐의 명상”이라는 글의 배경이 될 정도로 함석헌에겐 의미 있는 곳이었다). 함석헌이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인 이름의 철학을 사용해 표현한 것은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는 한국과 미국의 거리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멀게 느껴지던 시절, 귀양살이를 하는 심정으로 미국을 돌아보고 있었다. 이 글은 그가 미국 퀘이커들의 정신적 안식처였던 펜들힐에 묵으면서, 한국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철학적 고민과 또 자신의 상황에 대한 성찰을 기록한 것이다. 빈곤한 시대에 글을 쓸 수 없는 심정을 토로하면서 시작하지만, 곧 자신의 사상을 누에와 비교하고 누에의 철학을 말했다. 함석헌은 <누에의 철학>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형상화 하고 한국의 철학을 모색한 것이라 읽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누에를 통한 철학의 자기반성까지 요구한 것으로도 볼 여지가 있다.




    <누에의 철학>은 함석헌의 글에서 가끔 보게 되는 글쓰기에 대한 망설임을 토로하면서 시작한다. 글보다는 말을 선호했고, 말의 근원을 (생명의) 소리로 이해했던 함석헌은 쓰자마자 과거형이 돼 버리는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언제나 반성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연설문이 아니어도 말로 들리는 경우가 많았고, 소리의 울림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도적인 노력을 자주 엿볼 수 있다. 망설임이나 주저함을 함석헌 글의 성향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의 글에서 철학적 이상과 정치적 현실 사이의 고민을 읽을 수 있고, 그 때문에 스스로 절제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 글에선 철학적 함의가 큰 ‘말씀의 집’과 같은 개념을 더 발전시키지 않은 것을 그 한 예라 하겠다. 함석헌이 <누에의 철학>에서 글쓰기에 대한 관찰을 하게 된 동기먼저 살펴보자.


    함석헌에게 당시 한국의 상황은 말이 말라버려 글이 나올 수 없는 상태였다. 생각이 막힌 빈곤한 시대에 살림의 글이 나올 수 없었다. 그에게 생각은 살림 혹은 생활에서 나왔고, 말은 생각이 영근 상태였고, 글이란 말이 닦이어 되는 것이었다. 그에게 글이 있을 수 없는 나라의 상태에서 글을 쓴다는 건 거짓말을 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 자체로 심판과 형벌이었다. 심판과 형벌은 생각이 막히고 말이 말라버린 시대가 지은 죄의 대가였다. 따라서 말이 말라버린 시대에 글을 쓰는 것은 저주받은 행위였고, 저주받은 글쓰기는 죄의 대가를 치르는 행위였다. 하지만 죄는 한 개인이 따로 짓는 게 아니었고, 그 대가의 짐도 전체가 지어야 했다. 20세기 중반 미국 정신사의 한 뿌리를 이어가는 곳에서 외로운 고민을 하면서 쓴 그의 글을 한국의 상황만을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개인과 전체가 분리될 수 없다고 믿었던 함석헌의 글에서 자기반성과 시대의 반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누에의 철학>은 자신의 철학을 드러내거나, 한국이란 상황에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반성을 넘어 철학 그 자체에 대한 반성으로 볼 수 있다. 살림을 추구하지 못하고 말과 영혼이 빈곤해진 시대의 사유에 대한 그의 성찰로 볼 수 있다.


    생각이 막히고 말이 말라버린 시대와 누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함석헌에게 누에는 죽은 듯이 느리고 약한 비웃음의 존재였다. 누에는 비단의 영광을 위해 죽임을 당해야 하는, 권력과 도덕과 종교에 의해 희생된 씨알들의 상징이었다. 긴 잠을 자듯 ‘내일과 모래’를 먹으며 꿈지럭대는 누에는 결국 ‘죄의 몸’이란 허물을 벗고 끝내 나비로 솟아오른다. 함석헌은 자신의 모습을 변신을 위해 침묵하는 연약한 누에에 비유했고, 자신의 철학을 이런 누에에서 찾았다. 누에가 자신의 살을 뱉어내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죽고 또다시 살아나는 과정을 함석헌은 말이 살아나는 모습으로 비유한다. 누에가 지은 집은 ‘말씀의 집’이었고, 그 집을 깨치는 것은 또다시 ‘내 입의 말씀’이었다. 죽어서 나비가 된 누에는 새 시대를 여는 말씀으로 다시 태어난다. 존재가 언어로 구성되었다는 뜻의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말이 있다. 함석헌의 누에가 지은 말씀의 집은 존재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곳이 아니라, 존재를 변화시키기 위한, 죽음에까지 이르는 언어적 성찰의 공간이었고 새로운 존재와 새로운 언어를 탄생시키는 집이었다.


    함석헌의 누에 철학은 죽음을 준비하는 철학이 아니라, 죽음으로 이루는 철학이었다. 나의 죽음이 아니라 약자의 죽음, 억압의 구조를 정당화하는 철학이 아니라, 신음하는 생명을 위한 고난과 생명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함석헌의 누에는 스스로 죽어야 살 수 있다. 누에가 몸을 뱉어내 집을 짓는 과정을 말을 뱉어내 말씀의 집을 짓는 것이라 했다. 말이 말라버린 시대에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죽음을 거치지 않으면 새로움을 맞을 수 없었다. 함석헌은 누에가 죽음을 통해 나비로 변신한 것을 새로운 말씀을 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말과 새로운 언어를 요구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저주받은 시대의 글쓰기가 아닐까. 여기서 마음에 칼질을 해 시를 썼다는 그의 표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철학의 형상화란 관점에서 ‘누에’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누에의 철학’이라는 말은 우선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누에라는 동물이 드러내는 철학적 습성이 있다는 의미와 철학 그 자체를 누에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누에를 통한 철학의 형상화는 후자를 말한다. 철학을 형상을 통해 이해하려는 노력은 철학의 역사에서 꾸준히 볼 수 있다. 빛과 비전이나 지혜를 터득한 현인 또는 숫자나 기하학의 형상을 통해 철학의 본질을 드러내려 했던 철학의 역사는 길다. 비교적 최근에 프랑스의 뒬러즈는 ‘친구’와 ‘노인’으로 철학의 단면을 형상화시키기도 했다. 동물을 철학의 형상으로 제안한 예로는 헤겔의 글을 통해 널리 알려진 희랍신화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부엉이가 있다. 함석헌의 누에를 철학의 형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함석헌은 누에를 한국의 지형과 닮았다는 말을 했다. 누에는 한국 철학의 형상일 수 있을까?


    함석헌의 누에를 헤겔의 부엉이와 비교해보자. 헤겔의 부엉이는 황혼이 찾아와야 비로소 날개를 펼치고 날지만, 누에는 새벽에 고치를 뚫고 날아오른다. 부엉이가 밤에 활동하는 이유는 하루의 역사가 끝났지만 그에 적응하지 못한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서다. 헤겔이 부엉이라는 철학의 형상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역사가 종결된 상태가 되어서야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철학은 과거에 대한 사유가 된다. 그 사유는 밤에 나는 부엉이처럼 공격적이고 심판적인 것이었다. (함석헌과 헤겔의 비교가 가능하다면, 니체는 어떨까? 니체는 다가올 미래의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생명의 순환성과 역동성을 담아내는 미래의 철학을 ‘망치’로 형상화시켰다). 반면에 새벽에 날아오르는 누에는 미래지향적이고 예언적인 철학의 형상이었다. 나비는 누에라는 자아의 죽음을 뒤로 하고 날아오른다. 누에의 죽음은 부정이라는 변증법의 상징도 아니고, 동일한 것의 반복도 아닌, 죽음으로 생명을 이루는 순환적인 가치관을 반영한다. ‘내일’을 먹고 긴 잠을 자는 누에에게 시간이 빨리 끝나야 한다는 조바심은 없다. 누에의 철학은 사후의 사건이 아니라, 내일이 현재에 진행 중인 삶 그 자체였다. 한국을 누에와 같이 생겼다고 한 함석헌은 자신의 모습, 자신의 가능성을 누에를 통해 발견했다. 그리고 누에의 철학, 나비의 철학을 자신이 품었노라 선언했다. 함석헌에게 누에는 자신의 형상이었고, 한국의 형상이었고, 철학의 형상이었다 말할 수 있다.


    그 형상의 의미는 미래적인 것이었지만, 그 미래는 현재의 고난을 전제로 한다. 함석헌에게 누에는 민중의 고난을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누에는 인간이 원하는 비단을 생산하기 위해 키워지는 생물이다. 누에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만든 ‘말씀의 집’은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고 파괴되고 만다. 그런 누에의 죽음은 누구도 슬퍼하지 않는 생산을 위한 희생이다. 바로 여기서 함석헌의 철학이 시작하지는 않을까. 바로 고난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말씀을 잉태하는 미래의 철학이다. 누에가 민중의 상징이라면 그의 철학은 고난 받는 민중의 미래와 가능성을 묻는 철학이었다. 함석헌에게 철학은 미래를 위해 필요했다. 그리고 철학의 미래는 이런 미래를 생각하고 질문을 전제하는 것이었다. 함석헌은 철학과 미래는 분리될 수 없다고 믿었기에 한국에 미래가 있으려면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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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묵시록』

지은이 : 서보명

펴낸날 : 2017년 10월 27일

페이지 : 264쪽
정  가 : 12,800원
펴낸곳 : 아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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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미국인의 정서에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묵시록을 통해 오늘의 미국 사회를 들여다본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신학을 공부하고 연구해온 지은이가 실존적이며 학문적인 관심 대상인 미국이라는 나라를 자신의 관찰과 체험을 바탕으로 서술한 책이다. 서보명 교수가 미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묵시록이다. 묵시록은 감추어진 신의 뜻을 드러낸다는 의미[默示]이며 파국적 종말을 예정한 사유다. 

서구 기독교 역사에서 비롯한 이러한 세상 이해가 종교적 사명을 띠고 새로운 에덴을 건설하려던 청교도에 의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꽃피고 그 세계관의 근본으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묵시록은 미국인의 정서에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었으며 이 관점을 배제하고 미국(인)을 읽어낸다면 중요한 정신적 근거를 놓치게 된다고 강조한다. 


목차


프롤로그 : 나의 미국


1장 묵시록의 현재 : 오늘의 미국을 비추는 거울

네이팜의 추억 그리고 사드

묵시록의 영웅 트럼프

국기와 국가

총의 묵시록

맥도날드 블루스


2장 묵시록의 신학 : 미국인이 세상을 이해하는 기준

청교도에 관하여

미국의 세대주의 신학

미국 정치의 메시아주의


3장 묵시록의 시선 : 미국에서 묵시록이 꽃피다

토크빌이 돌아본 미국

미국과 자연사 : 제퍼슨과 뷔퐁 그리고 화석

헤겔의 미국


4장 묵시록의 문화 : 시간 너머를 사유하다

핵폭탄 시대의 미술 : 잭슨 폴락

길 위의 문학 : 잭 케루악

미국과 영화


에필로그 : 묵시록은 종말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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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7.11.21 05: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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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진 <제3시대>를 통해 연재되었던 미국 시카고 신학교(Chicago Theological Seminary) 서보명 교수의‘미국묵시록’이 아카넷에서 엮어져 <미국의 묵시록>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미국의 욕망과 무의식을 묵시록적인 관점에서 엮어낸 서교수의 글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국에 대한 낯선 풍경을 선사하면서 우리에게 미국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을 하나 제공합니다. 특별히 웹진 <제3시대>의 성과물이라 더욱 기쁘네요.



함석헌 생각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함석헌 생각”이란 제목은 함석헌의 생각과 그에 대한 나의 생각만이 아니라 ‘생각’을 함석헌 사상의 독특한 면을 담아내는 개념 또는 고유명사로 보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함석헌에게 생각은 지적인 작용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가 아니라, 자신의 사상의 지향성과 방법론까지 드러내는 개념적인 용어로 볼 수 있다. ‘생각’만이 아니라 함석헌의 글에서 등장하는 몇 개의 단어들을 부각시켜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폭넓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여기서 다룰 단어들은 함석헌의 글을 읽으면서 마음에 담아두었던 ‘철학,’ ‘소리’, ‘자리’, ‘생각’ 등이다. 이와 관련해 내가 이해하는 함석헌은 20세기 한국의 굴곡진 고난의 역사에 참여했던 대표적인 지식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특히 4.19 혁명 이후 한국을 위한 사상과 철학의 전통을 유산으로 남기려 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함석헌에 대한 많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의 유산이 제대로 다음 세대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는 느낌도 이 글의 또 다른 출발점이다. 따라서 나의 관심은 함석헌 사상의 현대성을 모색하고 그의 사상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생각하는데 있다.




함석헌과 철학 (1)


    2008년 세계철학대회가 한국에서 열렸다. 1900년에 처음 개최되어 4년마다 열리는 국제적인 철학대회였지만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렸다. 개최 국가의 철학적 전통을 소개하는 특별한 분과모임에선 함석헌과 유영모의 철학을 주제로 한 논문들이 발표됐다. ‘현대철학의 재고’라는 그 대회의 주제가 철학을 서양이라는 개념의 영토를 벗어나 이해하자는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었다면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 함석헌과 유영모를 다룬 논문들은 대게 두 사상가의 학문에 담긴 철학성을 전제한 상태에서 논지를 전개하고 있었다. 그 이전에도 이 두 사람의 학문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저술은 많았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결국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로 귀결되는 면이 있었다. 철학이 무엇이고 또 무엇에 관한 것이어야 하는 질문은 지금도 묻게 되는 철학사의 기본적인 질문이다. 철학에 대한 다양한 새로운 정의와 이해가 현재까지 생산되고 있지만, 다양성이 철학적인 작업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리고 국제적인 철학대회가 철학성을 증명하거나 대신할 수도 없다. 이 부분을 면밀히 다루지 않으면 철학적인 가능성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여기서 철학이란 일반적으로 그 용어로 지칭되는 서구 사상의 전통을 말한다. 그 전제 하에 함석헌이 철학에 대해 갖고 있었던 생각과 자신의 사상을 어떻게 철학적으로 이해했는지, 그리고 함석헌 사상의 철학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고 또 그의 글을 어떻게 철학적 행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개괄적인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20세기 한국에서 제일 중요한 지식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함석헌의 사상은 학문적인 근거지가 없었다. 철학이라 하기엔 엄밀함이 떨어졌고, 신학이라 하기엔 다원주의적인 종교학 측면이 강했고, 역사학이라 하기엔 추상적이었다는 게 흔히 듣는 이유였다. 나름 근거가 있는 이유들이지만, 그 근거는 전공 중심적인 학문의 이해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함석헌이 추구했던 학문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함석헌이 이루어놓은 학문적 업적은 오히려 근대적인 대학에서 전공을 중심으로 공부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 전공 분야의 방법론에 고립시키는 학위를 취득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아야 한다. 함석헌은 근대 학문의 인위적인 경계에 갇혀있지 않았고 거기서 출발한 방법론으로 세상을 이해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함석헌은 종교적으로는 다원론을 견지하면서도 형이상학적인 일원론을 지향하고, 사실의 증거에 충실하면서도 영적인 증언의 진리를 믿었고, 현실정치의 변혁을 위한 운동가의 역할과 예언적인 지식인의 역할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었다.


    함석헌과 철학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어디서부터 할까. 이 질문이 쉽지 않은 이유는 함석헌이 자신이 철학을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유명한 철학자들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말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석헌의 이런 입장은 그 자체로 철학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부정한 것은 철학적 자아만이 아니라, 그 어떤 학문의 지식인이나 전문가로서 규정되길 거부했다. 이런 소크라테스적인 자기부정은 함석헌과 철학의 문제를 철학적 자아의 관점에서 접근할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주목해야할 것은 함석헌의 글 속에 ‘철학’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그가 1960년대에 쓴 글 가운데 철학이라는 단어가 제목에도 등장한다는 사실은 함석헌 자신이 때때로 철학을 한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최소한 철학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다는 것은 분명하다. 1960년대 초반은 그의 사상이 학문적으로 (철학적으로) 가장 무르익었던 시기였다. <생활철학>과 <누에의 철학>이 그 시기의 글이었고, <저항철학>은 몇 년 뒤 1968년에 쓴 에세이였다. 60년대 초반에 쓴 또 다른 의미 있는 글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개정판에 쓴 서문이다. 1965년에 출판된 4차 개정판을 내기로 결정하고 본문을 수정하기 시작한 것은 1961년이었다. 당시 그의 완숙해진 사상적 직관의 능력이 그 개정판의 구성에 잘 투영되어 있다. 철학이란 단어가 제목에 없지만 철학적인 의미와 비중이 있는 글로 “한국의 발견”과 “우리민족의 이상” 등을 꼽을 수 있다. 모두 함석헌을 철학적인 사상가로 재발견할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글들이다. 앞으로 더 자세히 다룰 계획이지만 그가 1960년대 초반에 그런 글들을 쓰게 된 것은 4.19 혁명을 한국 역사의 분기점으로 이해하고 새로운 한국을 위한 철학을 만들고 실천하는 행위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 시기 함석헌이 이루고자 했던 학문적 성과는 미국의 에머슨이 19세기 미국의 정신적 독립을 주장하고 미국의 학문을 제창했던 것과 비교될 수 있는 것으로 앞으로 다룰 예정이다.


    <생활철학>은 1961년 4.19혁명 이후 제2공화국의 국토건설단에 선발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다. 함석헌은 그 글에서 당시 서구 철학에 대한 그의 인상이 담겨 있고, 철학사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단순하게나마 정리하고 있다. 현대의 철학이 분열적이고 논쟁적인 것으로 변한 것에 대한 비판도 했다. 철학의 과학주의가 철학의 문제만이 아니라 서구 문명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도 파악했다. 함석헌은 철학이 분석과 대립을 넘어서 지혜와 생활과 삶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입장을 펼쳤다. 그에게 과학주의는 인간의 정신을 약화시키는 기술적인 사고의 지배와 과학에 대한 믿음이었지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철학으로 등장했을 때 그것은 힘의 철학과 폭력의 정치로 변모하게 된다고 했다. 자연의 법칙만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뜻과 정신과 절대를 이야기 했지만, 철학적으로 그 입장은 반-자연주의(Anti-Naturalism)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이 다루지 못하는 철학과 종교의 영역을 ‘맛봄’이라는 미학의 경지로 이해했고, 함석헌에게 그것은 통합의 경지였다. (“나도 인생이야”라는 시에서 등장하는 “혀 아래 맛으로 듣는다”라는 생각을 멈추게 하는 예리한 관찰력은 - 이 후에 다루겠지만 - 그의 사상이 추구했던 통합을 미적인 감각으로 이해한 예라 할 수 있다). 종교는 철학이 상실한 삶과 통합의 지향성을 지적해주고 일깨워주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함석헌은 철학과 종교가 이성과 믿음으로 나뉘고 절대적으로 다른 방법론의 학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철학을 논하는 자리에서도 끝없이 믿음을 얘기했던 이유는 그런 학문적 경향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기술적인 사유가 만든 정신적 혼란과 냉전의 위기로부터 세상을 건져낼 희망은 믿음밖에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철학이 회의와 불신을 설명하는 이론이 되어가는 경향에 맛서 그가 제시한 믿음은 맹목적으로 선언된 믿음이 아니라 그의 사상의 과제이자 방법론이기까지 했다. 


철학과 한국


    함석헌이 요구한 한국 역사에 대한 반성은 철학적 반성까지 포함했다. 그에게 한국은 철학이 없는 민족, 아니 철학적 자기표현을 하지 못했고 그 의지를 상실한 민족이었다. 중국의 고전과 언어로는 한국의 정신을 드러내는 그런 자기표현을 할 수 없었다. 영어로도 한문으로도 다가갈 수 없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만든 민족의 혼이 있었다. 서구의 학문도 불교와 유교도 한국의 지적인 전통이 되기에 충분치 못했던 이유는 한국의 언어로 생각해서 만들어진 사유와 전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함석헌은 1963년 영국의 한 퀘이커 대학에서 했던 <우리 민족의 이상>이라는 강연에서 60년대 한국 사회의 문제를 철학의 문제라고까지 했다. 그리고 중국과 서양의 개념으로 한국 역사의 경험을 설명하려는 지적인 종속과 나태함을 질타했다. 사상의 빈곤은 수입된 개념과 모방을 통해 지식을 권력으로 행사하고 이득을 취하려는 지식인들 때문이었다. 한문의 사유를 아직도 하고 있고, 영어가 등장해 지배적인 언어가 된 역사는 한국 민중들의 고난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았다. 억압은 정치적인 무력행위만이 아니라 지식과 개념으로도 가능했다. 그 결과 민중들은 높은 뜻을 추구할 의지가 꺾인 채 숙명적인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함석헌에게 한국에 철학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미래도 없었다. 어제, 그제, 오늘, 모레는 있지만 ‘내일(來日)’은 한자이고 고유한 한국말이 없다는 사실에서 착안한 표현이었다. 철학 없는 숙명적인 세계관으로 사는 것과 ‘내일’이 없다는 것을 동일한 현상으로 본 것이다. 철학이 없는 게 아니라 철학을 잃어버린 것처럼, 내일이란 말을 상실한 것이었다. 함석헌에게 <한국의 발견>은 철학적 자기발견을 의미했고, 한국의 미래는 한국에서의 철학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에게 철학이 없는 민족은 내일이 없는 민족이었다. 그가 찾았고 구현하고자 했던 새로운 한국은 내일이 있고 철학이 있는 한국이었다. 이 과정은 그에게 한국의 사상을 표현할 언어를 재발견하고 한국인의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함석헌에게 민중의 언어와 민중의 방식으로 할 수 없는 철학은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철학의 가치는 인간의 자기이해와 자기표현에 있었고, 이는 민중의 현실과 경험의 한 축이었던 그들의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찾을 수 없었다. 함석헌에게 60년대 초반 한국에서 필요했던 것은 경제적 발전만이 아니었다. 한국의 혼이 담긴 언어로 구성된 새로운 철학이 필요했다. 함석헌은 된 자신의 강연과 글을 통해 그런 문제를 진단만 한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새로운 철학을 예시하고 있었다 할 수 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철학을 하기 위해 동양과 서양의 고전 연구도 필요했다. 특히 한국인에게 적합한 자기 이해를 위해서는 이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서양의 가르침이 아니라 동양의 고전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동양의 고전이 한국의 고전이 될 수는 없었다. 여기서 함석헌은 고전에 대한 색다른 이해를 내놓는다. 한국의 고전은 한국인 자신이었고 한국인의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19세기 이후 서구 사상사에서 많은 고전에 대한 정의가 등장했지만, 함석헌의 내면의 고전이란 개념은 고전을 새롭게 이해하게 만든다. 마음속 혼에 있는 고전을 조명하여 발견하는 것이 자아의 발견이었고 영혼을 돌보는 행위였다. 자아나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것은 철학의 고전적인 의미에 속한다. 영혼의 돌봄은 다른 민족의 말과 개념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에, 민족 고유의 언어를 찾고 다듬는 것은 그 자체로 영혼을 돌보는 철학의 행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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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몰락』

지은이 : 서보명
펴낸날 : 2011년 1월 31일
분  야 : 인문 / 교육
판  형 : 신국판 변형
페이지 : 264쪽
정  가 : 12,000원
펴낸곳 : 도서출판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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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대학,
어디에 존재하는가?

‘경계에 선 지식인’인 재미교포(1.5세대) 교수가 쓴 대학의 ‘철학사’이며, 자본에 함몰된 대학에 대한 성찰을 담은 책이다. 최근 지식의 위기와 대학의 몰락을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이 위기의 요체는 ‘대학의 자본화’에 있다. 대학이 자본과 지식의 중개자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신학자이자 철학자이고 한국인이자 미국인으로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경계에 선 지식인인 저자는 한국의 대학에서 방문교수 체험을 한 뒤에 이 시대 대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 반향 없는 물음들이 솟아나왔고, 그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 대학의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하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 현대의 대학들이 ‘경계선 위의 지식’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본에 함몰되어 몰락을 향해 질주하는 미친 마차와 같다고 느낀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교육공학의 전문적인 지식을 풀어내는 것도 아니고 교육학의 이론을 펼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원론으로 돌아가 자본에 함몰된 대학을 목도하고 우리 시대에 대학은 어디에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대학의 본질과 사명에 대해 묻는다. 저자는 대학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런 물음은 우리 사회가 경쟁과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경쟁 사회에서 사용될 수 있는 물건 같은 ‘생산성 높은 학생’들을 만들어내면서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질문이라고 치부한 것들이다. 고갱이가 빠져나간 대학의 존재 이유를 다시 들추는 물음이기에, 이 시대가 외면하는 질문이기에, 저자 자신 또한 현실성 없는 물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본에, 체제에 종속된 대학의 자화상을 다시 원점에서 그리지 않으면, 대학의 역사가 현실과 대학의 미래가 없다는 저자의 진단은 ‘미래의 대학’을 꿈꿀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한 철학자의 아픈 반성이며, 시대가 함께 성찰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대학의 현실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비판하고, 협곡의 단층을 보여주듯 대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기술하며,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에 매몰되어 잃어버린 대학의 위상을 다시 찾는다.

취직도 어려운 마당에
구태의연한 고민을 해야 하나?

“대학이 현실, 그것도 체제를 섬기는 하부조직으로 전락했을 때, 대학이란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까? 대학이 체제와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주장하는 자율을 밥그릇 싸움 그 이상이라 할 수 있을까? 정신과 이상의 가치를 이념으로 생각하지 않는 대학을 대학이라 할 수 있을까? 정신과 이상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대학이 현재 가능하기는 할 것인가? 그런 가능성이 없을 때, 대학은 어디에 존재해야 하는가?”
저자가 이 책에서 던지는 이런 물음들은 시대에 이미 뒤떨어진 물음들이 됐다. 대학이 취업을 위해 이력서 한 줄 메울 수 있게 하는 곳으로 변질하고, 공부는 토플, 토익 점수를 높이거나 공무원 시험 예상문제 풀이하는 것으로 전락한 실정이기에. 그렇게 우리 시대는 대학의 존재 가치에 대한 물음을 예전에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드디어 대학 붕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터졌다. ‘김예슬 선언’이라 불리는 한 대학생의 <대학자퇴서>가 언론을 뜨겁게 달궜다. 한편 그 붕괴는 이미 예정된 것이었고 대학은 내부에서 자본화가 완결된 상태였다. 그것이 곪아 터진 것일 뿐,  과거에 시대와, 체제와 거리를 유지하며 찾았던 대학의 정체성이 완전히 소멸한 상황. 저자는 대학과 공부의 고갱이가 다 빠져나가는 위기 상황을 진단한다. 그가 주장하는 내용은 이렇다.
“대학은 신학과 철학이 부여하는 이상에 의해 유지되어왔으며, 대학의 이상향으로 삼은 것은 한 시대, 그 문화권의 선을 추구하는 세계관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의 체제는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생산과 소비와 경쟁이라는 이념을 따라 대학이 움직이기를 요구한다. 학문의 이상은 인간에게 초월적인 숭고함이나 이타적인 삶을 추구하도록 하지만, 자본주의 이념은 철저하게 물신주의의 이윤과 소비의 행위만 앞세우게 한다. 이와 같은 시대성에 함몰된 대학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대학의 학문과 제도를 기업자본주의의 생산과 판매의 모델로 이해하는 것은, 오래된 대학의 자의식과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본질을 잃어버렸을 때는 그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필수이다. 철학 교수인 저자는 대학을 개혁할 프로그램이나 이념을 앞세우기 이전에, 과거의 대학이란 어떤 곳이었고, 현재의 대학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질문을 과거에는 대학의 본질과 사명이라는 차원에서 논의했다면, 과연 이 시대에 적합하고 수용 가능한 본질과 사명은 무엇인지 물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물음을 던지는 것 자체가 바로 이 시대가 잃어버린 대학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낡은 질문으로 보이지만 황량한 몰락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비상구이기에 절체절명의 물음인 것이다.

쓸데없는 공부, 큰 배움으로서의 대학은
꿈일 수밖에 없는가?

현재의 실상을 떠난 대학의 미래는 없다. 현재의 모습이 대학이 몰락하는 과정이라면, 대학의 미래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아도 암울하다. 소위 경쟁력이 있다고 하는 대학들은 앞으로도 기업자본주의의 한 축으로 지식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백화점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대학이 성찰과 비판의 공간으로, 지식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그 진리의 덕목으로 인간을 형성하는 사명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명을 더 이상 수행할 의지가 없는 대학을 ‘대학’이라 부를 수 있을까? 큰 배움으로서의 대학, 시대와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이상을 잃지 않은 대학, 비현실적인 대학이다. 이 시대에 그런 대학을 생각한다는 것조차 “꿈꾸고 있네!”로 치부된다. 그 ‘꿈꾸고 있네’의 대학은 이렇다. 기업 정신을 멀리하는 대학, 건물 건축을 성장이라고 여기지 않는 대학, 투자를 통한 자산 증식을 대학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대학, 학생들의 지적인 성장과 인격 형성을 제일 중요하게 치는 대학, 수치와 소문을 통계 내어 대학 줄 세우기(서열화) 행태를 거부하는 대학, 사실과 가치만을 말하지 않고 진리도 생각하려는 의지가 있는 대학. 즉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 시대의 이단이 될 의지가 있는 대학이다. 아마 그런 대학은 없다. 하지만 없기에 더욱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큰 배움으로서의 대학의 이상에 대해 시장이 된 대학 밖의 대학을 꿈꾸며 다음과 같은 말로 글을 맺는다.
“〈인간이나 이상이나 진리와 같은 한가한 주제들〉이 중요하다고 인식되려면, 자본과 시장과 경쟁이라는 이 시대 대학의 우상으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한다 … 따라서 이 시대에 대학의 이상이 지켜나갈 대학이 있다면 그것은 대학 밖의 대학일지도 모른다(260쪽).” “배움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시대를 직시하고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곳은 시장이 아닌 소크라테스의 ‘아고라’일 것이며, ‘큰 배움’으로서의 대학이 존재하는 곳이리라(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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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1.02.26 07:1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연구소에서 기획한 책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 같아 기쁩니다. 얼마전 시카고로 배달된 책을 교수님으로부터 한 권 받아 읽었습니다. 오래간만에 한국말 책을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읽으니 좋네요. 서보명 교수의 신간 <대학의 몰락>은 신자유주의 체제속에서 대학이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직업연수원(혹은 직업소개소)로 전락해가는 대학의 현주소에 대한 냉철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서구사회에서 발전되어 왔던 대학의 역사를 마치 나무의 나이테를 들여다보듯 생생히 전해줌과 동시에 신자유주의 원칙에 따라 전개되는 미국대학의 변천과 한국대학의 타락을 맞물려 보여주면서 신자유주의가 지닌 파괴적 본성을 폭로합니다. 서교수는 이 책에서 단순히 대학이 몰락했다고 선언하지도 또 그것에 대해 탄식하지도 않습니다. 그 보다는 마치 협곡을 지나듯 서구 대학의 역사를 굽이쳐 가면서 오늘의 대학을 진단하고, 시대의 변화에 맞춰(혹은 대항하며) 올바른 대학을 구현하려 했던 사람들의 음성을 통해 앞으로의 대학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독자들과 함께 고민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현재의 대학이 지닌 문제들을 다시 새롬게 발견할 수 있고, 아울러 '대학의 몰락'을, 아니 신자유주의 체제속에서 전개되는 삶의 몰락을 처방할 해법을 조심스레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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