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묵시록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들어가는 말


    지난여름 오랜만에 학교에 갔더니 우편엽서 한 장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필기체로 흘려 쓴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앞면의 그림을 먼저 확인했다. 수채화 같아 보이는 그림은 낡은 오두막집이었다. 더 이상 궁금해 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아는 그런 오두막집은 오직 하나, 바로 헨리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 짓고 2년을 살았던 그 오두막집을 그린 것이었다. 엽서를 보낸 사람은 두 학기 전 <에머슨> 수업을 들은 학생이었다. 감리교 목사의 아들로 자랐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 오랜 사회생활을 하다 뒤늦게 떨쳐낼 수 없었던 질문들을 가슴에 안고 신학공부에 뛰어든 중년의 백인 학생이었다. 에머슨과 소로우가 남긴 사유의 전통과 그들이 남긴 미국에 대한 상상과 기대에 감동이 있었던지 방학을 이용해 월든 호수가 있는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란 동네까지 여행을 떠난 것이다. 소로우를 생각하면서 호수를 구경하고 엽서 한 장을 구입해 내게 인사차 보낸다고 했다.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소로우의 오두막집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미국사람들이 적지 않다. 호수만큼이나 커 보이는 주차장만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지만, 순례를 하듯 그곳에서 미국의 정신적 본질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소로우의 월든에 투영된 정신이 미국의 어떤 가치를 대변해주고, 그의 사상에 문학이라는 분야의 역사를 넘어 재발견되고 이 시대에 실천될 수 있는 이상이 담겨 있다고 믿는 건 어렵지 않다. 경향에 흔들리지 않고 양심에 이끌리는 삶, 전체의 이름으로 용납되는 구속에 저항하는 독립적인 삶, 타인이 나보다 특별히 나을 게 없다는 자존적인 삶의 자세는 소로우가 19세기 중반 미국에 남긴 유산이다. 자유를 실천으로 완성하고, 자연을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새롭게 이해하자는 그의 주장은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실천한 삶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가 에머슨과 함께 미국의 정신적 독립을 선언했다는 말도 틀리지 않다. 20세기의 평화운동과 환경운동은 그의 이름을 앞세웠고, 그의 사상에서 미국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기억을 하자면 오래 전 뉴저지 주에서 대학을 다니던 첫해, 교과서를 제외하고 구입했던 책 세 권이 있었다. 헨리 소로우의 <월든>,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 그리고 로버트 피어시그의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었다. 특별한 독서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고, 당시 미국학생들이 많이 읽는 걸 보았고 대화의 화제로도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책들이 얘기하는 독립적인 사고, 자유로운 삶, 저항의 정신 같은 것들을 상상하고 추구하는 건 자본주의에 완전히 취하지 않았던 그 세대 젊은이들의 특권이자 의무였다. 책들이 비슷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었고, 그 주제가 미국이나 미국사람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도 파악하고 있었다. 케루악과 피어시그가 소로우의 <월든>을 시대에 맞게 응용하고 있다는 것도 별다른 해석 없이 알 수 있었다. 예컨대 피어시그 책의 주인공은 모터사이클 여행길에 소로우의 <월든>을 갖고 떠난다. 마치 그것이 정신적 나침판 또는 지도책이나 되는 것처럼. 케루악은 어린 시절을 소로우의 그늘에서 보냈다. 작가로서의 정신세계만이 아니라, 케루악이 성장했던 로엘이란 도시가 실제로 소로우의 콩코드에서 차로 20여분 밖에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다. 소로우의 첫 작품 <소로우의 강A Week on the Concord and Merrimack Rivers>에 나오는 매리멕 강은 로엘을 가로질러 흐른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 소로우는 산업화 되어가는 세상에 저항해 집을 나섰다. 걸어서 몇 십 분밖에 걸리지 않는 호숫가였지만, 그에게는 질적으로 다른 공간이었고 그가 추구했던 의도적이고 삶을 실천하기 충분한 공간이었다. 소로우의 뒤를 따른다는 생각을 했던 케루악은 그보다 100년 후 핵무기가 지배하는 냉전시대가 등장하던 때 길을 나섰고 저항을 선언했다. 소로우의 책은 지금도 가끔 찾게 되지만, 케루악의 책은 몇 년 전 그 책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드디어 개봉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여하간 미국에 대한 내 생각의 방향은 오래전 이들과 함께 설정되었고, <미국의 묵시록>이란 주제와 연관된 소로우와 케루악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음에 자세히 쓸 생각이다. 


    미국에서 오랜 시간 이방인으로 살아온 나에게 미국은 언제나 풀어야 할 숙제였다. 막연한 실존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내가 선택한 공부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제목에 미국이란 단어가 있는 책들에 언제나 눈길이 갔고, 분야에 구분 없이 나의 관심사였다. 영화와 문화이론에서 미국에 대한 설명을 찾았고, 에머슨과 소로우에게서 그들의 이해를 구했다. 존 듀이와 리처드 로티도 그들이 미국에서 미국의 철학을 했다는 차원에서 중요했다. 그러나 내가 공을 들여 공부한 분야는 (만약 그런 분야가 있다면) 미국 밖에서 본 미국이었다. 19세기 이후 유럽의 지식인들 가운데 미국이라는 나라의 실험을 특이하게 생각하고, 그 현상을 학문적인 관찰로 담아낸 사람이 많았다. 토크빌에서 디킨스, 헤겔에서 아도르노, 사르트르에서 보드리야르까지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들에게 미국은 상상과 환상 또 이론과 철학의 대상이었다. 이방인의 관찰이 특별히 더 나을 게 없고 미국을 그들 철학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는 과정에 무리가 따르기도 하지만 미국의 역사는 이미 이념의 역사로 존재하고 있었고 그들은 단지 거기에 참여했을 뿐이었다. 미국이 이해를 필요로 하는 나라가 된 것은 그만큼 쉽게 파악이 안 되는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서양철학의 역사로 이해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그리고 기독교 신학의 개념들을 배제하면 이해하기 힘든 나라도 미국이 유일하다. “미국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차원의 질문이 성립되고 그런 질문의 역사가 지성사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긍정적 또는 부정적일 수도 있고, 변증법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적인 정체성이 분명히 드러난 20세기 중반 이후에도 그 질문은 계속되었다.


    이 웹진에 기고를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만약 글을 쓴다면 내게 가까운 얘기들을 주제로 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그 후 미국이란 주제도 쉽게 떠올렸지만 미국에 관한 어떤 논의가 읽을거리가 될 수 있을까 약간의 고민이 없지 않았다. 비교적 덜 논의되는 부분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미국의 묵시록>이란 제목을 정했다. 결론적인 주장부터 얘기하자면 이렇다. 미국의 역사와 문화 저변에 깔려있는 사상은 묵시록 (Apocalypse)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묵시적 종말론이다. 종말론은 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만든 사상이다. 하지만 그 사상은 가치중립적인 시간에 대한 관찰이 아니었다. 언제나 환란과 파괴와 멸망의 예언을 동반한 묵시적 세계관이었다. 서양역사의 순간순간 동기와 의미를 제공했던 그 사상이 미국이라는 땅에서 꽃을 피웠다. 미국의 사상을 생각하면 계몽주의를 흔히 떠올리게 되고 그 중요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계몽과 묵시 사이를 오가며 때때로 묵시적 예언의 판단이 계몽의 이성을 이겨온 역사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청교도들로부터 조지 부시, 핵무기에서 일반인들의 총기문화, 선민사상에서 예외주의까지의 미국역사는 묵시적 상상과 환상 그리고 묵시적 믿음을 무시하면 온전한 설명을 할 수 없다. 미국의 군사문화나 심판과 종말 그리고 재림과 같은 개념들이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게 된 현상도 마찬가지다. 묵시적 종말론은 19세기 미국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사상이고, 선교운동이라는 종말론적인 현상으로 한국과 같은 나라에도 전파된 세계관이었다. 그 세계관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도가 아직도 높을 뿐 아니라 세속화 논리를 무색하게 만드는 미국인들의 종교적 성향의 중요한 요소로 남아있다. 그 세계관은 대중문화 속에 녹아져 있고 묵시적 종말은 가장 영화의 가장 흔한 소재가 되고 있다.  


    묵시록을 서구사상의 서자로 취급하던 역사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다. 환란과 고통과 종말의 예언, 최후의 전쟁, 지구의 멸망, 휴거, 재림과 같은 시간의 끝, 마지막 날을 상정하는 개념들을 체계적인 이해와 질서를 추구하는 서구사상의 중심에서 수용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와 시간이 끝날 것을 전제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그 끝을 상상하는 건 필연적인 결과다. 이는 서구 기독교 문명의 한계이자 조건에 속하는 것이다. 서구의 사상에서 그 부분이 배제된 사상은 드물다. 어거스틴, 단테, 콜럼버스, 루터, 홉스, 뉴톤, 밀튼, 블레이크, 헤겔 등의 종말론을 황혼의 외도쯤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20세기 미국의 가장 유명한 영성가였고 참선의 수도사였던 토마스 머튼이 묵시록의 언어로 미국에 대한 시를 쓸 정도로 그 언어는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 대한 상상은 예언의 영역이었다. 새 하늘과 새 땅, 예루살렘의 정복, 천년왕국에 대한 예언은 서구의 역사를 구원의 역사와 만나게 했고 서구중심주의의 근거가 되었다. 서구역사의 근대라는 시대를 연 콜럼버스는 돈을 벌어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예루살렘을 되찾고자 했다. 그것은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는 수순이었고, 여기서 자신을 묵시적 종말론의 주인공으로 여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서구역사의 절정인 근대라는 시대는 그런 종말의 시대정신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콜럼버스는 말년에 세상 끝을 예언하는 글까지 쓰면서 간접적으로나마 근대라는 시간의 묵시적인 뿌리를 증거 했다. 그러나 그 뿌리가 감추어질 수 없는 근대 서구역사의 동력이었다는 사실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미국의 역사다. 


    미국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친미와 반미 사이 중간의 공간은 별로 없다. 세상에 좋고 나쁜 나라가 따로 있을 수 없지만, 미국은 어떤 정당이 지배하든 미국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입장을 바꿔놓지 못한다. 한 이유로 미국이란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데 충실한 그저 또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선과 악, 옳고 그름의 판단에 익숙한 이념으로 형성된 사실을 들 수 있다. 미국을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이 흔히 지적하는 이유는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패권주의적인 정책이 스스로 내세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개념과는 상관없이 공격과 지배와 고통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은 반미적인 성향을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틀린 얘기가 아니지만 미국을 그렇게 만든 내적인 동기는 설명하지 못한다. 미국이 세상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높아져도 미국 내부에서는 미국의 선한 동기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 자유와 민주의 종주국인 미국이 결코 나쁜 의도를 갖고 있을 수 없다는 순박한 선민의식이 거기에 작용한다. 그런 의식이 미국은 다르다는 예외주의를 만들었고, 예외주의는 예외적인 심판자라는 자의식을 만들어냈다. 최후의 심판은 신의 영역일지라도, 예외주의와 선민사상은 심판과 판결과 종결에 익숙한 미국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거기서 서부영화 보안관의 선악관과 최근 미국 경찰의 총기사건들 사이의 공통적인 이념적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법의 심판을 받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의 비율이 가장 높고, 동일한 범죄에도 가장 긴 형벌을 내리는 가혹한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에도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국민의식은 종교적 이념으로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카고의 다른 곳에서는 총알 16발을 발사해 흑인 청년 한명을 살해한 시카고 경찰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먼 캘리포니아에서는 얼마 전 IS와의 연관성을 의심받는 충격적인 테러 총격사건이 있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IS는 묵시적 종말론을 신봉하는 테러 단체다. 미국의 유명한 목사 한 사람은 이런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모든 사람들이 총기를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이 순간 <지옥의 묵시록>을 떠올리는 건 무모한 상상일까. <지옥의 묵시록>은 1979년에 개봉된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다. 영어로는 Apocalypse Now, 번역이 쉽지는 않지만 묵시적 파괴와 환란으로 세상이 지금 망해가고 있음을 뜻한다. <지옥의 묵시록>이란 번역은 지금 이 순간 이루어질 묵시록이 결국 지옥밖에 되지 못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어서 나쁘지 않다. 코폴라는 세상이 망해갈수록 모두가 미쳐가는 지옥을 그리고 있다. 전통의 묵시록은 현재의 상황을 주로 대환란 또는 망하기 직전의 상태로 이해한다. 그 묵시의 드라마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 알 수는 없어도, 그 드라마에 우리 모두가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만은 하게 된다.  


    앞으로 이 웹진에서 여러 차례 글을 쓸 계획이다. 미국의 특정한 모습을 설명하는 글이기 때문에 묵시록이란 개념의 역사를 따로 서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시작은 미국 청교도들의 정체성과 종말론을 다루는 글로 할 예정이다. 그 후 미국 안팎의 여러 인물들이 제시한 미국론을 주제와 연결시켜 정리할 계획이며, 한국 개신교와도 연관이 많은 미국의 천년주의, 선교운동, 말세론과 재림 등의 개념들을 통해 미국문화 형성의 일부를 살펴볼 생각이다. 끝으로 미국의 묵시록이 형상화 되어있는 여러 장르의 영화를 다루면서 묵시의 세속화 내지는 재종교화 과정을 검토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남한의 사회적 분열과 "비시민"의 출현에 대한 고찰(1)


- 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의 결합을 통하여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박사과정,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서론



    왼쪽의 만화는 2012년 12월 10일, 그러니까 제 18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 경향신문에 실린 시사만평이다. 이 만평은 현재 남한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분열 과정과 그 분열로 인해 현실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고도 심도 깊게 보여준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논리는 남한의 사회적 분열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양쪽 진영, 즉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서로 상대방과의 분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기제이다. 말하자면, 이승만, 박정희로 대표되는 보수정권을 지지하고 경제성장에 우선적 가치를 두는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산업화”의 논리가, 김대중,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민주정부를 지지하고 민주주의에 우선적 가치를 두는 자유주의자들에게는 “민주화”의 논리가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키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이 두 가지 정당화 명분이 공유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성공의 기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자들이건 자유주의자들이건, 예를 들어 현재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불안정한 일자리와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계속되는 양쪽 진영 사이의 갈등이 젊은이들의 고통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진영 사람들은 오히려 젊은이들이 자신들 주장의 정당성을 이해하거나 지지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고 그들을 비난한다. 

   그렇다면, 남한의 보수주의 진영과 자유주의 진영 사이의 이러한 분열 과정을 촉진시킨 사회적 합의의 붕괴는 어떻게 일어난 것인가? 한국 전쟁 이후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와 군사독재가 남한의 정치를 지배했고, 반공주의의 물결과 군사독재적 통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군사정부는 경제발전이라는 명분을 이용했는데, 그 과정에서 경제발전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제공한 것은 바로 민족주의다. 그리하여 1960년대 이후 경제발전 과정은 민족주의와 결합한 반공주의를 지지하는 사회적 합의를 창출해냈다. 

   그러나 1987년 이후의 민주화 과정은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흔들기 시작했고 1997년 외환 위기는 그것을 완전히 두 조각으로 붕괴시켰다. 그 결과, 외환 위기 이후 남한에는 더 이상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은 각자 자신들이 붙들고 있는 반 조각의 합의에 매몰되어 있다. 이를테면, 보수주의자들은 과거의 사회적 합의 중에서 반공주의라는 조각을, 그리고 자유주의자들은 민족주의라는 조각을 붙들고 있는데, 이는 현재 남한의 사회적 분열 상황을 대표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열의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다른 이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만한 가치나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는 “자격 없는 사람들,” 혹은 정상적인 사회적 주체가 될만한 능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무능력자”로 간주되는 사회적 고통이다. 


    2. 한국 전쟁 이후 남한의 “반공 민족주의”라는 사회적 합의의 형성과 붕괴 


     (1) 남한의 반공 민족주의의 형성

    한국의 민족주의는 일본의 식민지 침략에 대한 반응의 일환으로 형성되었지만, 일본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직후 한국이 두 나라로 분열되면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분단 이후 민족의 분열과 민족주의라는 모순을 해결하고, 일제 식민지 기간에 형성된 민족주의를 유지하기 위하여, 남한과 북한 정권은 모두 서로를 “민족/국가의 적”으로 비난하면서 자신들의 정권이 민족/국가의 진정한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 정권이 반제국주의 투쟁을 선언하면서, 자신들이 민족/국가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기 위해 이 투쟁을 이용하고 있는 반면,[각주:1] 남한 정권은 북한 정권이 소련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므로 민족/국가의 적이라고 라고 비난하면서,[각주:2]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자신들이 “유엔에 의해 승인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국가”[각주:3]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자기 정당화의 수단일 뿐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한반도의 분단은 더 고착화되고 심화되었다. 남한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 정권은 “동족상잔의 비극”의 원흉이고,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이 한국전쟁의 원흉이고 남한 정권은 미국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 직후에 이승만은 일민주의(一民主義)가 남한과 장차 통일될 국가의 민족 이데올로기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각주:4] 일민주의의 요점은 반공 이데올로기, 갈등에 대한 증오, 분리될 수 없는 국가 정체성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각주:5] 신기욱에 따르면, 일민주의는 혈통민족주의에서 보여지는 파시스트적 경향이 반공주의와 결합된 형태이다.[각주:6] 토지개혁이 시행되고 정부가 행정권을 형성하기 시작했던 이 시기에, “한국 국민”이라는 정체성과 구분되는 “대한민국(남한) 국민”이라는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각주:7]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의 물질적 기초는 박정희 정권 동안 더욱 강화되었다. 박정희는 국가를, 개개인을 위한 중재자가 따로 필요 없는 한국 국민의 자연적인 모임으로 이해했고,[각주:8] 이는 이승만의 일민주의 개념과도 공통점을 갖는다. 게다가 박정희 정권은 “조국 근대화”[각주:9]와 “민족중흥”[각주:10]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 슬로건들이 보여주듯이, 박정희 정권은 이승만 정권보다 더 능동적으로 개발주의를 활용하였고,[각주:11] 한국 “국민”이 국가 생산성 향상이라는 목적을 위해 단결해야 하며 모든 국민(國民)은 생산적인 사고방식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각주:12]

     그러므로, 일민주의가 그러했듯이, 박정희의 독재를 정당화하는 기반이 되었던[각주:13]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한국 국민들 사이의 갈등이나 분열을 증오했다.[각주:14] 한편, 박정희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한국적 독자성”을 강조했는데, 남한에 자율적인 시민사회의 형성이나 자본의 축적 등과 같은 근대화의 조건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구식 근대화와는 다른 독자적인 방식의 근대화를 주창하였다.[각주:15] “한국적 근대화”라는 이 개념은 박정희가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한 또 다른 이념적 기반이었다. 박정희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중 개발주의는 남한 민족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주적으로 여기는 북한을 남한 정권이 다루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이승만 정권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점령을 통한 북진통일을 내세운 반면, 박정희 정권은 한국전쟁과 같은 또 다른 미래의 전쟁 없이도 북한을 흡수하여 통일을 이룩한다는 흡수통일 논리를 내세웠다.[각주:16] 여기서 남한이 북한을 흡수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는 경제발전인데, 이 경제발전은 박정희가 제안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남한 국민들이 단결해야만 성취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각주:17]

     박정희 독재 정권 시기 동안, 남한은 급속한 근대화와 경제 발전을 경험하였다. 이렇게 빠른 경제 발전 과정에서 북한을 향한 남한 국민들의 증오는 일정 부분 그들의 능동적인 사고방식으로 변환되기도 했는데, 독재정권은 이러한 변환을 경제발전이라는 목적을 위해 이용하였다.[각주:18] 그리고 이러한 경제발전 과정의 결과로서 남한 국민들은 국가적 성취감을 얻기 시작했는데, 이 성취감은 그들의 개인적 성취감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박정희가 만들어낸 이러한 변화들이 현재까지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한 국민들은 박정희를 남한 근대화와 경제 발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지금까지도 남한 보수 진영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주된 기반으로 남아있다.


     (2) 남한 국가의 형성과 근대화에 미친 미국의 영향

     미국의 군사개입은 남한 정부가 수립되고 한국전쟁이라는 위기를 탈출하는 데에 결정적인 요인의 하나였다. 그리하여, 많은 (보수적인) 한국인들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혈맹’이라 부른다.

     박명림의 ‘미국의 범위’[각주:19]라는 개념은 1945년 이후 미국의 남한 개입을 설명하는 데에 유용한 개념이다. 박명림에 따르면, 남한에서의 ‘미국의 범위’는 공산주의 혁명의 방지와 파시즘의 방지 사이이며 구체적인 미국의 정책은 이 범위 내에서 시계추처럼 진동한다.[각주:20] 그리하여, 이 진자운동의 범위 내에서, 미국은 어떤 때는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독재자를 지원하기도 하였다.[각주:21] 물론, 이러한 ‘미국의 범위’는 남한이 미국의 영향권 내에 머물러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므로, 이 범위 안에서는 기본적으로 보수적 편향이 작동하게 마련이다.

     한편, 남한 정부의 수립과 한국전쟁에서의 생존은 물론이고, 남한 사회의 근대화 과정 자체도 미국의 막대한 영향 아래서 이루어졌다. 일본에서의 해방과 한국 전쟁을 겪은 직후, 남한 사회에서 미국이 주력한 일은 근대적 교육 제도와 관료제의 수립과 언론의 발전을 지원함으로써, 이 제도들을 통해 미국의 이상인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자본주의를 남한인들에게 이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각주:22] 또한, 미국은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군사영어학교를 세우고,[각주:23] 사관학교가 세워진 이후에도 여러 연수 과정을 통해 남한군의, 특히 장교단의 군사적 능력과 리더십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각주:24] 그 결과, 남한군 장교단은 군사적 능력뿐만 아니라 관료제 운영의 노하우와 지식도 갖추게 되면서, 자신들을 국가 안보뿐 아니라 경제 발전도 지도할 능력이 되는 집단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고,[각주:25] 박정희의 5.16 쿠데타는 이러한 경향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것이기도 하다. 또한, 경제적 근대화에 대한 박정희의 열망은 미국이 5.16 쿠데타를 지지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각주:26]

     1950년대의 미국의 개입이 위에서 본 것처럼 근대 국민국가의 기본 시스템 – 교육, 관료제, 군대 등 – 을 확립하는 데 주력한 것이었다면, 1960년대에는 미국은 남한의 민족주의 세계관을 확립하는 데 주력 지원을 했다. 미국이 남한의 민족주의 세계관으로 제안한 것은 ‘근대화 이론’이었는데,[각주:27] 이 이론은 남한과 같은 ‘저발전’ 국가의 근대화는 오직 전통적 요소를 배격하고 미국과 같은 ‘발전된’ 서구 국가와 연계될 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각주:28] 이 이론에서, 근대화는 저발전 국가가 기술적 지식을 모방하고 흉내내어 익힌 뒤 그 기술적 지식을 사용함으로써 걷게 되는 발전의 보편적인 길로 이해되었다.[각주:29] 그리하여, 미국이 제안한 근대화 이론은 탈식민 국가들에게 공산주의적 발전경로에 대한 대안의 구실을 했다.[각주:30]

     남한의 지식인들은, 비록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적 요소의 적극적 역할을 더 많이 찾으려 하긴 했어도,[각주:31] 위에 서술된 바와 같은 근대화 이론을 널리 수용했고, 그로 인해 민족주의와 반공주의의 결합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경향은 더 심화되었다.[각주:32] 그 결과, 박정희 정부를 근대화의 리더로 인정하는 지식인 그룹도 형성되었다.[각주:33] 그러나, 근대화 이론을 수용한 다른 지식인들 중에는, 근대화 개념이 독재정치를 시작한 박정희 정부에 대한 저항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은 사람들도 있었다.[각주:34] 짚어 볼 점은 근대화 이론에 대한 이 두 가지 반응이 앞에서 언급한 ‘미국의 범위’ 안에 이미 포함된다는 것인데, 그것은 미국이 근대화 이론을 제안한 의도 자체가 경제적 근대화 과정을 가속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에 대한 남한인들의 열망을 불러일으켜 박정희 정부를 견제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각주:35] 요약하면, 미국은 남한 사회의 거의 모든 방면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했으며, 특히 제도적, 지성적 측면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 웹진 <제3시대>


  1. Shin, Gi-Wook. Ethnic Nationalism in Korea: Genealogy, Politics, and Legacy.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6, 155 [본문으로]
  2. Ibid. [본문으로]
  3. 이기백, 한국사신론. 제2판 (서울: 일조각, 1976), 442 [본문으로]
  4. Shin, ibid., 101 [본문으로]
  5. Ibid. 102~103 [본문으로]
  6. Ibid. 78 [본문으로]
  7. 김보현, 박정희 정권기 경제개발 (서울: 갈무리, 2006), 83~88. [본문으로]
  8. Ibid., 122~123 [본문으로]
  9. Shin, ibid., 103~104 [본문으로]
  10. 김보현, ibid., 122 [본문으로]
  11. Shin, ibid., [본문으로]
  12. 김보현, ibid., 140~144 [본문으로]
  13. 김보현, ibid., 153 [본문으로]
  14. Shin, ibid., 107 [본문으로]
  15. Ibid [본문으로]
  16. Ibid. 160 [본문으로]
  17. Ibid. 162 [본문으로]
  18. 김진호, 시민 K, 교회를 나가다(서울: 현암사, 2012), 68 [본문으로]
  19.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제2권(서울: 나남, 1996), 523 [본문으로]
  20. Ibid. 523~524 [본문으로]
  21. Ibid. 524~526 [본문으로]
  22. Brazinsky, Gregg. Nation Building in South Korea: Koreans, Americans, and the Making of a Democracy. Chapel Hill: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07, 41 [본문으로]
  23. Ibid., 73 [본문으로]
  24. Ibid., 79 [본문으로]
  25. Ibid. 100 [본문으로]
  26. Ibid. 118 [본문으로]
  27. 정일준, "한국 사회과학 패러다임의 미국화" 원용진, 김덕호 엮음,아메리카나이제이션(서울: 푸른역사, 2008), 339~340. [본문으로]
  28. Ibid. 348~349 [본문으로]
  29. Ibid. 351~352 [본문으로]
  30. Ibid. 350 [본문으로]
  31. Brazinsky, ibid, 172 [본문으로]
  32. Ibid. 177 [본문으로]
  33. Ibid. 178 [본문으로]
  34. Ibid. 184 [본문으로]
  35. Ibid, 186~187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바울신학가이드13]



성서학에서 철학으로


- 바울 이해를 위해 다리놓기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베커를 마지막으로 성서학에서 논하는 바울에 대한 논의를 일단 마감하려 한다. 필자가 소개한 학자들 이외에도 바울에 관해 논할 가치가 있는 학자들은 많다. 여기에서 마감하는 이유는 앞으로 논의할 바울연구에 대한 글들에 대한 충분한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후로 논할 학자들은 성서학의 외부에서 바울에 대하여 논의하는 바디우, 지젝, 아감벤 등이 될 것이다. 보통의 성서학자들에게 이들의 바울읽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있는 현상은 당황스러울 것이다. 이전의 성서학의 결과물들을 완전히 무시한 결과물들이 인기리에 읽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만약에 필자가 “자 지젝의 바울 읽기는…” 이라고 글을 시작한다면 이는 성서학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러한 단절을 거부하고 필자는 이전까지의 웹진의 글들과 이후 철학적 바울읽기에 대한 다리를 놓는 작업을 이번 웹진에서 감행한다.  

   다리를 놓기 위해 필자가 데려올 학자는 스테판 무어 (Stephen Moore) 라는 학자이다. 미국 뉴저지의 드류(Drew)대학의 신약학자로서, 보통의 성서학자들과는 다르게 데리다, 포스트모던 철학, 탈식민주의등의 현대적 담론에 익숙하며 선구적으로 성서학과 비평이론들 사이에 간문학적 연구를 시도해온 학자이다. 그가 몇년전에 쓴 [The Invention of the Biblical Scholar] 라는 책은 부제인 ‘critical manifesto’(비판적 선언) 라는 말에도 볼 수 있듯이 작금의 성서학에 대한 혁명적인 비판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중심주제는 성서학이나 성서학자들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학문이자 학자들인데, 그 목적은 성서에 대한 불경스런 질문들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보통 보수적이라 불리는 성서학자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성서학이라 불릴 수 있는 거의 모든 학문을 통틀어 지칭한다. 참으로 논쟁적이고 발칙한 생각을 던진 이유는 자신이 몸담고도 있는 성서학에 대한 자살적 충동때문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주제는 “왜 성서학은 현대의 이론이나 철학적 담론과는 대화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을 고민하다가 생겨난 것이란다.

    한국의 주류 성서학은 아직도 전통적인 역사비평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역사비평학이란 근대부터 발달한 성서를 연구하는 방법론을 뜻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역사비평학은 성서 텍스트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그 역사적 근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역사비평에는 크게 본문 비평, 양식비평, 편집비평 등이 있는데, 텍스튜얼 비평은 텍스트의 원래 모습을 추적해 들어가는 비평을 말한다. 성서텍스트가 역사적 발전을 거친 것이라고 한다면, 실지로 그러한데, 가장 초기의 판본을 추적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한 추적을 거듭한 결과 성서 텍스트는 여러 조각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예를 들면 복음서는 예수의 기적이야기, 초대 교회의 신앙고백와 기도문, 예수의 구전 비유, 초대 교회 예배문 등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 그 조각들이 하나의 양식으로 그 양식들은 각기 신앙공동체의 삶의 자리를 보여준다. 이러한 양식들의 전승과 기능을 연구하는 것이 양식비평이며, 편집비평은 양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편집의 결과로 나타난 복음서 등의 최종본의 편집의도를 살피는 것이 되겠다. 이러한 방법들의 공통점이 존재하는데 바로 성서 이면에 존재하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연구의 기본 목표로 삼는다. 무어는 이러한 성서학의 역사에 대한 관심 속에 사실 다른 목적이 숨겨져 있었다고 말한다.

    이른바 근대의 시대에 이르러 계몽주의의 발달로 학자들은 성서에 대해 여러 이성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는데,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바로 성서의 권위에 관한 문제였다. 원래 성서의 권위는 성서를 토대로 하는 교황의 권위를 뜻하고 성서가 계시하는 하나님의 권위에 의존했다. 즉, 하나님의 책이니 복종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근대의 시대에서 종교의 권위가 지배력을 상실하자 기독교는 문화를 통해서 자신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문화적 주도권을 가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서학이라는 학문을 필두로 기독교는 근대라는 거대한 파도를 넘으려 한 것이다. 무어의 성서학에 대한 비판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무어가 진단하기에 근대의 초기에 성서가 당면한 최대의 위협은 성서의 비도덕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여기서 근대의 도덕성(Morality)란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여 보편의 단계까지 확장되는 보편적인 도덕성(윤리)를 뜻한다. 즉, 인간이 지구에서 살건 화성에서 살건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보편적 삶의 도덕을 뜻한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성서의 여러 이야기들, 딸을 강간했다고 한 마을을 몰살시킨다거나 (야곱의 딸 디나, 창 24:1-41), 자신의 며느리와 동침하여 아이를 낳는다거나 (유다와 다말, 창 38:1-30), 이방인 민족을 가축과 아이까지 모두 죽이라고 하나님이 명령한다거나 (사무엘상 15장), 또한 그 명령을 어겼다고 역정을 내는 하나님의 이야기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게다가 인간의 죄성이 최초의 나무열매 하나 먹은 것 부터라는 설명은 애매하기 그지 없다. 무어는 이러한 시대에 등장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오히려 기독교에게는 구원이었다고 말한다. 즉, 차라리 그 이야기들은 역사적인 증명할 수 없는 실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성서의 권위를 지키기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보통 성서학과 그 방법론을 이야기할때, 영어로는 biblical studies, biblical scholarship, 그리고 biblical criticism이라고 하는데, 무어는 ciriticism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무어가 보기에는 성서학은 역사비평에서 비평이란 의미의 수행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결국 주류성서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서에 비도덕성에 대한 질문과 비평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고 무어는 말한다.[각주:1] 

    신학교에서 처음 오경이 여러 문서들의 조합이라는 말을 들으면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무어에 따르면 차라리 문서설을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 몰두하는 것이 그 이야기들속에 나타난 성서의 비도덕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은혜스러웠다는 말이다.[각주:2] 성서가 통일되고 보편적인 도덕적 기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고민하는 것보다 차라리 성서가 문학적으로 통일된 문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덜 고통스러웠다는 말이다.[각주:3] 옛날에는 은혜스럽던 기적 이야기들도 보편적 도덕과 종교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누구는 살려주고 누구는 내버려두는 신의 모습은 애매모호한 도덕일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기적이야기는 '역사적이지 않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솔직한 비평이기 보다는 기적에 대한 보편적 도덕의 모순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각주:4] 차라리 “그런 일 따윈 없었어!”라고 하는 것이 성서는 '도덕적이지 않다'라고 하는 것보다 덜 아프기 때문이다.

    보통의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성서의 창세기의 천지창조의 기록들은 실제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이야기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시험에 들곤 한다. 홍해가 두 쪽으로 갈라진 이야기가 실제로는 갈대바다라는 비교적 건너기 쉬운 바다를 잘못 표현한 것이라든가,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은 그저 이야기로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충격을 받는다. 이것들은 이른바 성서학자들이 역사적 비평의 결과로 말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역사비평은 신실한 성도를 넘어뜨리는 자유주의적인 신학이라 욕을 먹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성서의 허구성을 밝혀주는 용감무쌍한 학문다운 학문이라는 평을 들어오기도 했다. 무어에게는 이러한 구도를 다시 뒤집어 그 용감무쌍한 학문의 숨겨진 의도를 파헤친다. 곧, 이렇게 이야기하는 진짜 의도는 하나님이 왜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구해주고 이집트인들은 죽였냐는 질문보다 대답하기 쉽기 때문라고 말한다. 오히려 성서의 역사성을 가지고 문제삼고 논하는 것이 성서가 가지는 비도덕성에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 성서를 보호하기 쉽기 때문에 역사비평학적 연구가 근대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근대에 이르러 성서는 철학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기 보다는 회피하였는데 그 결과로 생겨난 것이 성서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역사비평에서 성서에 대한 ‘역사’적 관심은 진리에 대한 추구에서 생겨난 것이기 보다는 근대의 역사적 상황속에 생겨난 필연적인 선택이 된다. 성서의 여러 문제성 있는 텍스트들은 비판과 비평의 대상이 아니라 연구의 대상이 된다. 그 연구의 무대에는 고대의 언어학, 철학, 고고학, 문헌학, 역사학, 문화학, 지리학등 수많은 전문분야들이 난무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 연구 결과들은 전문성 없이는 읽기 어려운 것들이 되고 자연스럽게 보통의 신앙인들의 영역에서 분리되게 된다. 성서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구약이냐 신약이냐, 복음서냐 바울 서신이냐, 역사 비평학의 어떤 분야냐, 교회론이냐 그리스도론이냐, 복음주의냐 진보주의냐 등등 수없이 쪼개어진 분과 학문과 연구 주제 사이에서 선택해야 학위라도 하나 받을 수 있다.[각주:5]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떤 논의의 끝자락에서 예수의 이런 말은 이런 의미가 있다거나, 바울의 이런 말은 이런 이런 신학적 의미가 있다는 식의 연구논문을 내어놓게 된다. 비판이나 공격보다는 어떠한 가르침이나 신앙적 양상에 대해 동의하는 것으로 끝마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성서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성서학은 사전에 차단하고 스스로의 생태계를 만들어 무슨 무슨 학회, 무슨 무슨 위원회등으로 그 생태계를 유지한다. 결국 이제는 아무도 성서학의 결과물들에는 큰 관심이 없다. 기독교 서점의 많은 부분들은 천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 복음에 대한 쉬운 설명집이나 설교문 모음집으로 채워진다. 

    신약을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매력적인 주제이자 일세를 풍미했던 예수연구에 대한 무어의 평가 또한 엄혹하기 그지 없지만 그의 책의 주제를 명확하게 해준다. 슈바이쪄가 이전까지의 예수연구를 단순히 근대 연구가들의 '자기 얼굴 그리기'라고 평가하고 예수를 종말론적 예언자라고 하였을때 의도는 하지 않았을지라도 결국 예수의 삶의 윤리적 가치를 무시한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슈바이쳐는 예수를 종말론적 예언자로 규정하고 그의 죽음을 새로운 시대로 향하는 역사를 수래바퀴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와 함께 예수의 가르침과 윤리를 종말론적 시대의 윤리라 평하였다. 즉, 예수가 말한 윤리와 도덕, 즉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으로 주고 헐벗은 자에게 겉옷을 벗어주는 윤리에 대해 엄숙하게 고민하기 보다는 현대에는 맞지 않는 종말의 시대의 윤리로 제한해 버린 것이다.[각주:6] 결국 슈바이쳐의 학문적 성과또한 근대 성서학의 숨겨진 목적을 벗어나지 않는다.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예수는 누구였는가?”로, 또는 예수처럼 살기는 현재에는 불가능하지만… 이라는 말로 환원된다.

    결국 처음에 잘못 꿰어진 단추구멍처럼 성서를 과거의 역사에 대한 연구로 제한해버린 것이 오히려 성서의 가르침을 제한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무어의 진단일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무어는 정치적 비평, 문학비평, 구조주의 비평, 해체주의 비평, 3세계 비평 등을 아우르며 모두 역사적 필요성에 의해서 생겨났지만 성서학 안으로 들어오면서는 성서의 도덕성에 대한 질문들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채 성서안에서 과거의 문제들과 씨름하게 되었고, 결국 성서는 과거의 거룩한 책으로 남게 되었다고 말한다. 예를 든다면 문학에 대한 해석에서 독자들을 강조하는 혁명적인 경향은 성서학으로 들어와서는 ‘현재의 독자’보다는 ‘내재적 독자’를 강조하는 경향으로 바뀐다. 아무리 현대적 방법론이 성서학으로 들어와도 결국은 과거의 사건의 재구성이라는 성서학의 기본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것은 성서를 현재적 사건으로 바꾸려는 충동을 무력화시킨다. 이 원인은, 다시 강조하자면, 성서에 대한 보편적 도덕성을 처음부터 묻지 않게 하기 위해 성서를 과거의 기록이자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서학 안에 윤리학, 정치학, 더 나아가 신학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무어는 말한다.

    그런 와중에 불현듯 새로운 사조가 일어났는데 인종, 젠더, 또는 계급이 인문학을 이끌던 시대에서 갑자기 종교로 담론의 관심이 변한 것과 발맞추어, 알랑 바디우, 아감벤, 지젝, 야콥 타우버스등이 성서를 읽기 시작했다. 무어는 이를 The Second Wave 라고 표현한다. 성서학을 깨우기 위한 첫번째 이론의 물결은 20세기 후반에 시작되었지만 결국 페미니즘을 제외하고는 성서학 자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스러져갔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두번째 물결이 나타난 것이다. 이전에는 이론을 성서학이 받아들여 해석을 생산하였다면, 이 두번째 흐름의 특징은 해석까지도 성서학 외부에서 이루어졌다.
    이 두번째 흐름들은 성서학 밖에서 다시금 보편성과 역사의 개념을 중심으로 근대에서 생겨난 수많은 분열들, 개인과 공동체, 종교와 정치 사이의 장벽을 허문다. 그리고 역사적 비평이나 성서학의 연구물들과는 별개로 성서를 ‘철학적 또는 이론적’으로 접근하여 근대의 시대에 성서로 부터 퇴출되었던 유령들을 불러모아 성서와 다시 만나게 한다.[각주:7] 이러한 철학적 접근을 무어의 평가를 필자의 논리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만약에 근대의 시작에 생겨났던 보편적 도덕이라든가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든가 이성과 감성의 분리등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고 성서를 좀 더 열린 자세로 읽었더라면 성서는 그저 신화를 담은 이야기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을까? 오히려 지례 겁을 먹고 성서의 권위를 보호하기위해 감싸기만한 결과로 성서는 침묵하는 책이 되버린건 아닐까? 그렇다면 다시금 근대가 만들어낸 여러 장벽들을 벗어나 성서를 읽으려 하는 일군의 철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이 좋은 기회는 아닐까? 그들이 근대의 여러 장벽들을 비판하고 성서를 솔직하게 바라볼때 찾아낸 것들과 성서를 다시 읽으며 새롭게 열리는 종교적 담론에 귀기울여 보는 것이 우리 성서학자들을 다시 돌아보는데 필요하지 않을까?[각주:8] 이러한 권유로 무어는 결론을 맺는다. 그는 지젝이 옳다고도 바디우가 낫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왜 우리가 그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담담하게 논할 뿐이다. 물론 지나칠 정도로 성서학을 몰아붙이기는 하지만.
    원래 무어의 이러한 논지는 하나의 질문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왜 성서학은 인문학의 발전으로 인해 나타난 여러 비평의 관점들과 철학적 담론에 무관심한가?” 라는 질문이다. 보통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의 힘에 굴복한 수많은 이론적 성과들, 구조주의, 후기 구조주의, 해체주의, 맑스주의등이 현시대에 이르러 이렇다할 대안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는 것에 찾는다. 강력한 저항을 외쳤던 락과 힙합이 지금은 소수의 뮤지션들에게 부를 가져다주는 상품으로 전락하고, 강력한 비평의 도구로 서구의 철학적 이데올로기를 혁파했던 해체주의가 데리다의 죽음 이후로 텍스트 읽기의 유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맑스가 말하던 새로운 사회가 오기는 커녕 급속한 환경파괴로 인류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지금, 문화 현상과 텍스트 비평를 통해 새로운 사회와 인간을 꿈꾸고자 했던 이론의 영향력은 그 힘을 잃은 것 같다. 그래서 쉽게 성서학은 이론의 종언과 함께 성서학의 부흥을 외치곤한다. “다시 성서로 교회로 돌아가자!”란다. 무어는 질문한다. “언제 제대로 이론을 수행한 적이라도 있었나?” 스스로 기독교 가치의 보호자를 자처한 성서학은 스스로를 비판하거나 그러한 시선을 놓는 것 자체를 거부해왔다. 그런 성서학에게 이론을 통한 반성도, 대안이 없다는 반성을 위한 반성도 수행한 적이 없는 성서학의 모습이 지금의 성서학이라 말한다.
    긴 호흡으로 보면 어떤 역사이든 냉혹하다. 철학사의 수많은 천재들이 나타났고 세상을 종합화하는 멋진 담론들을 내어놓았지만 이내 역사의 장강속에 그 한계를 드러내며 사라져갔다. 하지만 그러한 이들이 있었기에 냉정한 반성역시 가능했고 새로운 담론의 생산이 가능했었다. 성서학은 과연 스스로를 냉혹하게 반성한 적이 있었던가? 그 반성이 성서학 내에서 가능하지 않다면 (필자의 입장은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물론 아주 어려울 것이다.) 외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대화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필자가 공부한 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바울수업을 Ted. Jennings교수에게 들었을때, 수업 첫 시간에 그가 강조하는 것이 있다. 너의 삶의 가장 힘든 순간에 우연히 발견한 어떤 이의 편지를 무심코 넘기면서 읽은 것처럼 바울의 편지를 읽으라… 그말을 들으면서 떠올랐던 것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한 장면이었다. (스포가 될수 도 있으니 평이하게 설명하면) 감옥에 갖힌 여주인공은 생사가 불분명한 가운데 조그만 감옥의 벽돌 사이에서 누더기와 같은 어떤 편지를 발견한다. 그 편지는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라고 시작하는 그 이전에 감옥에 갇혀 있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와 소망이 담긴 편지였다. 당신이 기독교가 무엇인지 예수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선교사나 목사들의 설명없이 “신의 뜻을 따라 예수 메시아의 사도로 부름받은 나 바울이…” 라고 시작되는 편지를 읽는다고 생각해보라. 과연 바울의 말중에 당신은 무엇을 깨닫게 될까?

   다음 웹진부터 지젝을 필두로 이른바 기독교의 눈이 아닌 눈으로 바울을 읽은 사람들을 소개할 것이다. 이들의 글들이 바울신학에 대한 필자의 글의 마지막 부분이 될 것이나 그것이 이들의 글이 다른 성서학자들의 글들에 비해 더 우월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입장에서 더욱 면밀하게 검토되고 숙고되어야 할 것이다. 대신 안전벨트를 꽉 조이자. 생각보다 어지러운 여행이 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Stephen D Moore and Sherwood, Yvonne, The Invention of the Biblical Scholar: A Critical Manifesto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1), 47. [본문으로]
  2. Ibid., 52. [본문으로]
  3. Ibid. [본문으로]
  4. Ibid., 58–59. [본문으로]
  5. Ibid., 85. [본문으로]
  6. Ibid., 67. [본문으로]
  7. Ibid., 127. [본문으로]
  8. Ibid., 129–130.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희망의 확실성



심범섭



    고등학교 때 배웠던 영어구문 가운데 ‘A no more B than C’라는 게 있었다. 


A whale is no more a fish than a horse is.  


    ‘말이 물고기가 아닌 것처럼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다’로 해석된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구문을 처음 배울 때 이 문장이 왜 주어진 방식으로 해석되는지 이해는 못했다. 그리고 내가 읽은 책에도 설명이 나와있지 않았고 학교 선생님도 그 원리를 풀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 가서 어느 날 문득 이 구문의 의미 구조를 이해하게 되었다. 위 예문을 직역하면 ‘고래는 말만큼만 물고기이다’가 된다. 그런데 ‘말만큼 물고기이다’라는 표현은 사람 사는 세상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전혀 물고기가 아니다’를 뜻한다. 그래서 ‘고래도 전혀 물고기가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중요한 것은 ‘A no more B than C’라는 구문에서 ‘than’ 다음에는 누가 봐도 말이 안되는 이야기, 전혀 논의의 여지가 없는 현상(‘말은 물고기가 아니다’)을 거꾸로 말하는 진술이 나오고, ‘than’ 앞에는 아직 사람들 사이에서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 현재 논란의 대상이 되는 문제에 대한 명쾌한 주장이 나온다. 예를 들어 말이 물고기가 아닌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고래가 물고기가 아닌 것은 고래가 물고기처럼 생겼기 때문에 자명한 사실이 못되기도 한다. 위의 예문을 말하는 사람은 고래에 대한 이러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혼동스럽거나 오해받는 고래의 정체를 더 이상 혼동스럽지 않은 것으로 확립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래 공식은 이미 확실한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명제에 기대어 아직은 불확실하다고 여겨지는 명제가 확실한 것으로, 보편적 상식으로 수용되게 하려는 용도로 쓰인다. 달리 말해 이 구문은 사회의 ‘상식(자명한 것)의 권위’에 의존하는 표현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구문은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자주 사용하는 언어자원의 하나로서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서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앎을 필요로 하고 또 이를 근거로 삼아 확실한 앎을 점점 더 확장해 나가고자 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고래공식에서 다루어지는 확실성은 어떤 명제가 현실을 정확하게 지시함으로써 얻어지는 확실성이다. 이러한 확실성은 현재의 현상뿐만 아니라 과거의 현상 (“우리는 ‘허균이 홍길동전을 썼다’고 확신한다”같은 표현에서처럼)과 미래의 현상(“분명히 ‘인류는 화성에서 살게 될 것이다’”같은 표현에서처럼)에도 적용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에서 문제시하는 확실성에는 이러한 명제의 정확성 이외에도 적어도 두 가지가 더 있는 듯 하다. 하나는 정도를 말할 수 있는 경험에서 그 정도가 높을 때 (“형언할 수 없는 감격,” “확실한 군정 종식” 같은 표현에서처럼) 얻어지는 확실성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어떤 존재가 시간이 경과해도 변하지 않을 때 (“언제나 동일하신 주님,”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같은 표현에서처럼) 얻어지는 확실성이다. 물론 정확성, 정도, 변화 여부라는 이 세 가지 범주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한 범주를 다른 범주로 치환해서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 때도 많다.    

    현재의 좋은 확실함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것이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라는 사실의 관점에서 유겐 드러베어만(Eugen Drewermann)이란 독일 학자는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이유를 해석한다. 드러베어만은 최초의 인류가 신의 명령에 거역한 이유로 흔히 거론되는 이유, 곧 탐욕, 정욕, 교만, 불복종이 일관성 있는 논의를 낳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그 이유가 그들이 피조물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실존적 공포라고 가정한다. 다시 말해, 아담과 하와는 그들 자신이 그들 존재의 근원이 아니기 때문에, 창조주가 언제든지 자신들을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그들이 완전히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다고 해석한다. 물론 드러베어만은 창세기의 실낙원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지는 않으며, 인간이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이 이야기를 해석하는데 적용하는 것이다.[각주:1] 하지만 이 해석에서도 역시 인간은 영원히 얻을 수 없는 확실성을 욕망하면서 확실함의 영역을 더 늘이려고 애쓰는 존재로 나타난다. 이 해석이 설득력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현실적 삶에서 확실성이 중요하고 보편적인 문제임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드러베어만의 창세기 이야기 해석은 존재의 불확실성을 인간의 피조물성과 연관시키므로 세상에서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상대적으로 더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확실한 것”으로 상정하고 이를 안정적 토대로 삼아 삶을 영위한다. ‘말은 물고기가 아니다’라는 인식(사실, 현상)도 이런 의미에서 확실한 것의 한 예이다.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더 인간다운 삶을 설계하고 이를 하나하나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런 의미의 확실성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확실성이 위협받을 때 우리는 불안하게 되고 때로 절망하기도 한다.    

    그런데 바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확실해야만 하는 여러 근본적인 요소들이 불확실한 형편이다. 국가는 재난에서 국민을 지켜주는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었고, 중산층이 무너져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졌고, 내집 마련은 비현실적인 목표가 되었으며,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와 공동체도 허약해졌다. 경쟁은 극심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와 패자가 부활할 수 있는 제도도 없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신뢰가 없고 각자도생, 각개전투만이 살 길이며, 이 나라를 아예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취업의 문턱이 너무 높고 일자리를 구해도 고용이 불안하고 터무니없이 착취당하는 경우가 많다.  

   2015년 10월 19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내놓은 ‘2015 삶의 질(How’s Life?)’ 보고서에는 대한민국의 이러한 실정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어,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나 친척이 있는지를 묻는 ‘사회 관계 지원’ 항목에서 OECD 34개국 가운데 최하위를 차지했다. 주관적 건강 만족도에서도 꼴찌였으며, 밤에 혼자 있을 때 안전하다고 느끼는 정도에서는 28위였다. 어린이가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도 하루 48분으로 최하위였으며 (OECD 평균은 151분), 이 중 아빠가 같이 놀아주거나 공부를 가르쳐주거나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하루 3분, 돌봐주는 시간도 하루 3분에 지나지 않았다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의 OECD 평균은 47분). 그리고 개인이 평가한 삶의 만족도에서는 OECD 34개 회원국과 러시아, 브라질을 포함한 36개국 가운데 29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불안하고 불만스럽고 더하여 분노하게 하는 각박한 대한민국에서 자살률이 높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대한민국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미 아는 바이다 (2011년 기준 인구 10만 명 당 33.3명, OECD 평균 12.4명; 2013년 기준 28.5명).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주간은 “우리는 이렇게 살 이유가 없다”라는11월 24일자 칼럼에서 “지난해 미국인 총기사망자는 1만2563명, 한국인 자살자는 1만3836명이었다. 한국인에게는 총이 없지만, 한국 사회 자체가 대량살상무기다.”라고 개탄하기도 한다.    

    최근 등장한 수저론을 빌려 말하면 금수저나 은수저가 아니라 동수저나 흙수저나 똥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에게 대한민국은 전망이 없는 곳이다. 얼마 전부터 절망적인 대한민국을 “헬조선”, “망한민국”, “지옥불반도”로 일컫는 표현도 들린다. 대한민국은 지옥인가? 지옥은 나쁨이 극한 상태로 영원히 지속되는 곳이다. 위에서 말한 확실함의 특성을 적용하자면 나쁨의 정도가 극단적으로 높다는 확실성과 이런 나쁨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확실성이 구현되는 공간이다. 우리 사회에서 좋은 확실성과 안정성이 무너지면서 그에 상응하여 나쁜 확실성이 증가했고, 이런 부정적 확실성이 극점에 이르렀다는 인식이 “헬”과 “지옥”이라는 표현으로 전달된다.  

    몇 년 전 2-30대 젊은이를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로 부르는 “3포 세대”라는 말이 등장했는데, 이들이 곧 내집 마련과 인간관계도 포기한5포 세대가 되었고, 이제는 꿈과 희망마저도 포기한 7포 세대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마지막 항목으로 등장한 ‘희망’은 일곱 가지 포기 대상 가운데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희망은 인간 정신의 근원적인 성향 차원에 속하기 때문이다. 희망을 포기했다는 것은 결혼이나 출산 같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목표뿐만 아니라 삶과 생명에 대한 긍정 자체를 포기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지옥에 처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특성인 듯 하다.  

    실제로 우리는 몇몇 문호의 작품에서 지옥이 그러한 곳이라는 말을 듣는다. 15세기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는 대표작 <신곡>의 “지옥”편에서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 위에는 “들어오는 자들은 모든 희망을 버려라!”(3장 9행)라고 씌여있다고 말한다. 17세기 영국의 시인 밀턴은 대표작 <실낙원>에서 방금 지옥에 떨어진 사탄의 눈에 비친 그곳을 이렇게 묘사한다.    


즉시 그는 본다, 천사의 눈이 닿는 한의 

그 황량하고 거친, 처참한 광경을. 

주위 사방에는 무서운 암굴, 그것은 마치 

불길 이는 화덕, 그러나 이 화염에는 

빛이 없고, 오히려 보이는 어둠에 

드러나 보이는 것은 다만 비참한 광경뿐. 

슬픔의 지역, 우수의 그림자, 평화와 

안식은 없고, 사람이면 모두가 갖는 

희망마저 없고, 다만 끝없는 가책이 

휘몰아치고, 꺼지지 않고 불타는 

유황에 붙은 불의 홍수가 소멸하지 않는다. (제1편 59-69행)[각주:2]  


    “사람이면 모두가 갖는 희망”이라는 표현은 “희망은 인간의 가슴에서 영원히 솟아오른다 (Hope springs eternal in the human breast)”라는 영어 속담을 상기시킨다. 희망이 사람에게 본능과도 같은 것이며, 우리에게는 살고자 하는 욕구처럼 뿌리 깊게 희망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밀턴의 지옥은 이러한 희망도 소멸된 곳이다. 이 사실은 지옥의 어둠이 지니는 성격과 상응하는 면이 있다. 밀턴은 지옥에서 타오르는 불은 빛을 발하지 않고, 이곳에는 “오히려 보이는 어둠(rather darkness visible)”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다. 어둠은 원래 빛이 없는 상태이며 따라서 그 자체로서는 실체가 없는데, “보이는 어둠”은 스스로 실체가 있는 어둠, 물체로서 존재하는 어둠으로 이해된다. 빛의 부재로서 존재하는 어둠은 빛이 들어오면 곧바로 사라지지만 실체로서 존재하는 어둠은 빛을 아예 가로막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이는 어둠”은 궁극적인 어둠, 극한의 어둠이며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어둠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러한 지옥의 어둠은 이곳에는 인간에게 본능과도 같은 희망도 없다는 사실을 물리적 차원에서 상징하는 듯 하다.[각주:3]  

    지옥은 과연 절망의 어둠만이 지배하는 곳인가? 단테와 밀턴은 그렇다고 대답하지만 19세기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우리에게 조금 다른 답변을 제시한다. 그의 대표작 <레 미제라블>에서 위고는 당대 최하층민의 은어(argot)에 대해 길게 논하는 대목에서 프랑스 대혁명 전의 파리 샤틀레(Châtelet) 지하감옥을 언급한다. 이곳은 툴롱(Toulon)의 갤리선(노예나 범죄자가 노를 저었던 전투 선박)으로 가는 죄수들이 보통 한두 달, 때로는 6개월 정도 수용되었던 곳이다. 세느 강보다 2.5미터 정도 더 낮은 곳에 위치했던 이 감옥에는 창문이나 환풍시설도 없었고, 바닥은 25센티미터 정도 두께로 진흙이 덮여있었다. 어둠 속에서 죄수들은 목에 감은 쇠사슬이 짧아 누울 수도 없었고, 잠이 들어도 계속 깨어나야 했다. 무릎까지 진흙에 빠져있었고, 다리에는 자신의 배설물이 뭉개져 있었고, 진흙 위에 던져진 빵은 다리로 끌어와야 했다. 당연히 이곳에서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윽고 위고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이 지옥같은 무덤에서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무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그들은 죽었다—그리고 지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희망이 없는 곳에 여전히 노래는 있다. 몰타 근해에서 갤리선이 접근할 때 노 젓는 소리보다 먼저 들리는 것은 노래 부르는 소리였다. 샤틀레 지하감옥에서 살아남았던 밀렵꾼 쉬르방상은 이렇게 말했다. “나를 계속 살게한 건 그 운문(rhymes 노랫말)이었다.” [각주:4]  


    이 인용문에 보이는 “희망이 없는 곳에”라는 표현 때문에 우리는 위고 또한 지옥을 희망이 불가능한 곳으로 생각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지하감옥과 갤리선이라는 지옥에 떨어진 인간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위고는 이렇게 답한다. “어떠한 고통을 가해도 인간 마음에 영원히 남아있는 사랑을 파괴할 순 없다.”[각주:5] 위고는 사랑을 희망과는 다른 것으로 상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랫말에서 살 힘을 얻었던 쉬르방상의 예는 이 지옥의 노래가 그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러므로 나는 위고가 사랑이라고 규정하는 힘이 본질적으로 희망과 같은 것, 또는 희망을 가능하게 하는 더 근원적인 성향 또는 욕망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위에서 언급한 “희망은 인간의 가슴에서 영원히 솟아오른다”라는 속담도 이렇게 결론내리는데 도움을 준다. 한마디로 말해 나는 위고의 지옥에서 분명히 희망은 가능하다고 이해한다.  

    헬조선은 단테와 밀턴의 희망이 불가능한 지옥인가, 위고의 희망이 가능한 지옥인가? 순진한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절망과 좌절의 어둠이 짙은 이 대한민국이 그래도 위고의 지옥에 가깝다고 믿는다. 어떤 이에게는 궁색한 근거로 들릴 수 있겠으나 단테와 밀턴이 그리는 지옥은 결국 상상의 산물이고 위고가 이야기하는 지옥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다는 점이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본다. 나는 희망의 확실성을 믿고자 한다. 상상의 지옥에서 희망의 부재를 강조하는 것은 아직 살아있는 자들에게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물론 위고의 지옥에서 죄수들이 불렀던 노래가 처음부터 희망에서 비롯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위고도 샤틀레 감옥의 노래 대부분은 슬픈 노래였다고 말한다.[각주:6] 그러나 절망을 토로하는 노래라도 이 노래를 되풀이해서 부르는 행위 자체가 절망의 무게를 덜어주었고 새로운 희망을 일깨우기도 했으리라고 짐작한다.  

    헬조선이라는 암울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에 대해 이런저런 제안이 나와있다. 어떤 이는 지속적인 연대와 작은 변화라도 촉발하는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고, 어떤 이는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여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제일 과제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정부와 국회에게 가장 큰 책임과 역할이 있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진정한 토론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사회전체의 구조를 바꾸기는 힘들기 때문에 그저 개인적으로나마 획일적 기준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가치관으로 살아가자고 말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헬조선이란 표현은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해서 나온 것인데 개발도상국에 가서 한 달만 지내보면 자긍심이 생길 것이라는 괴상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나에게는 이렇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향이나 방안을 제시할 능력은 없다. 대신 희망의 확실성 자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고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인간은 절망하면서도 또 다시 희망한다는 이 경이롭고 신비로운 사실에 대해 사색하는 행위 자체가 새로운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사색에서도 우리의 노래가 태어나고, 그리고 우리가 “서로 함께” 노래한다면, 지금 우리를 덮은 어둠이 설사 실체로서 존재하여 빛을 가로막는 어둠이라 할지라도 어느 순간 이를 분쇄할 수 있지 않을까?  

    위고의 말처럼 사랑이 인간의 마음에서 불멸하는 것이라면 희망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사랑과 희망이 확실한 것이라면 이상도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위고가 이상의 빛이 잠시 가리워질 수는 있어도 결코 사라질 수 없음을 말하는 문장이 내가 읽은 영역본에서 마침 고래 공식으로 씌여있어 이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The ideal is . . . no more in danger than a star in the jaws of the clouds. 

(이상은 . . . 구름의 주둥이 안에 든 별처럼 위태롭지 않다.) [각주:7] 


    * 필자소개  

영어강사. Rice Univ 언어학 박사(Ph.D) 후에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과 시카고 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 웹진 <제3시대>


  1. 드러베어만의 이 견해는 다음 저서에 나타난다. Strukturen des Boesen: Sonderausgabe. Die jahwistische Urgeschichte in exegetischer/psychoanalytischer/phhilosophischer Sicht (3 vols.; Paderborn: Schoeningh, 1985-86). 나는 이 저서를 읽은 것이 아니라 드러베어만의 해석을 소개하는 내용을 다음 글에서 읽었다. “The Lamb of God and the Forgiveness of Sin(s) in the Fourth Gospel”, Sandra M. Schneiders, The Catholic Biblical Quarterly 73, 2011, p.6. [본문으로]
  2. 이 인용문은 이창배 교수의 번역문(<실낙원 (Paradise Lost)>, 범우사, 1996, p.16)을 내가 원문을 이해한 것에 따라 일부 수정한 것이다. [본문으로]
  3. 이창배 교수는 “darkness visible”을 “간신히 보일 정도의 짙은 어둠”으로 옮겼다. 나는 “visible”의 대상을 어둠으로 보는데 반해 이창배 교수는 어둠 속에 있는 대상(사물과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이창배 교수의 번역은 내 해석보다 덜 문학적이지만 대신 이 어둠 속에서도 사물과 사람이 보인다는 내용과 상식적으로 충돌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보이는 어둠”이라는 내 해석은 새로운 성격의 어둠을 소개하고 희망의 부재라는 인간 내면 상태와 상응하는 문학적 효과를 거두지만 이런 극단적인 어둠 속에서도 사물과 사람이 보인다는 모순을 내포한다. [본문으로]
  4. 이 인용문은 펭귄 출판사에서 나온 영역본(<레 미제라블 (Les Misérables)>, 노먼 데니 (Norman Denny) 번역, 펭귄 (Penguin), 2013, p.1224)에서 해당 구절을 내가 번역한 것이다. [본문으로]
  5. 같은 책, p.1225. [본문으로]
  6. 같은 책, p.1224. [본문으로]
  7. 같은 책, p.1332.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어느 유지보수자의 편지_소설 <표백> 리뷰

 





(평범한 워킹맘, 페미니스트, 간간이 글쟁이로 변신)



1. 

    이 글을 쓰는 나는 시스템 유지보수 인원이다. 영어로 SM(System Maintenance) 인력이라고 한다. 돈이 오가는 인터넷 뱅킹, 수강 신청을 위해 접속하는 대학교 인트라넷, 혹은 자잘한 인터넷 쇼핑몰이나 소규모 출납 관리 시스템들에도 나와 같은 SM 인력이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개 비슷하다. 처리가 잘 안된다는 사용자의 단순 문의부터 시작해 시스템의 기능을 이러저러하게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기능 개선 의견 등을 접수하고, 때에 따라서는 변동된 세금 정책에 맞추어 시스템의 계산 로직을 변경한다.


    현실 세계의 가능성을 기준으로 하면 시스템은 늘 그보다 두 발짝, 혹은 세 발짝 뒤에 있다. 이미 현실 세계에서 확정된 것들만 시스템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때로 기술이 현실을 리딩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필요성이나 상상력은 이미 사람들 대다수가 암암리에 공유하고 있는 불편함 속에 이미 존재해왔다. 기획자는 그러한 불편함을 조금 더 날카롭게 캐치하는 사람이고, 나와 같은 시스템 유지보수 인력은 선두 그룹이 재빠르게 만들어 둔 시스템들이 이미 한참 전에 철이 지났음에도, 뒤처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도록 땜빵하고 도색하는 역할을 한다.


    《표백》에서 자살 선언을 이끄는 세연이 본다면 기가 찰 노릇이다. 획기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일도 아니고, 심지어 ‘그려진 밑그림에 따라 개선하는 일(77쪽)’도 아니며, 그저 이 구식 퇴물을 퇴물로 보이지 않도록 질질 끌고 가는 일이다. 시스템이 누렸던 가장 큰 영광은 다른 이들이 이미 맛 본 후라 단물이 쪽 빠져 버린 이 늙은 시스템을 하루하루 연명시키는 것이 나의 주된 노동인 것이다. 물론 세연이 바라보는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도 그다지 어울리는 시스템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이 세계를 이루는 본연이라면 어떨까.


2. 

    장강명의 장편소설 《표백》은 이 시대 청년들의 좌절과 절망이 세상의 완벽함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이야기하는 한 청년, 세연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녀의 논리는 이렇다. 이 세계는 이미 완벽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어떤 노동도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1970년대 정서를 지배했던 새마을 운동과 같이 나라의 경제를 살리는 노동도 아니고, 90년대 벤처붐 때와 같이 신기술을 주도하는 노동도 아니며 지금의 노동은 그저 있는 시스템을 ‘유지보수'할 뿐이라는 것이다. 즉 이 시대의 개인들은 어떠한 이념이나 당위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개인의 생존만을 위해 노동한다. 여기에서 청년들의 삶은 아무리 노력해도 생존을 위한 삶 그 이상을 넘어갈 수 없고, 그조차도 선택된 소수에게만 가능하다.


    그리고 세연은 이 티 없이 완벽한 세계에 균열을 내고 싶다. 모두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예수와 같은 선구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자살이다. 그것도 이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의 조건을 갖추어, 일반적 기준에 비추었을 때 자살할 이유가 하등 없는 상태에서 수행하는 자살이어야 한다. 그녀는 그녀와 그녀를 뒤따른 연쇄 자살이 완벽한 이 세계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해석 불가능의 영역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성공이 예정된 청년들의 자살로 하여금 이 세계의 작동 원리로 포섭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고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살하기 위해 사회적 성공의 토대를 마련한다. 삼성전자 합격, 대학원 수석 졸업, CPA 합격 등이 그것이다. 아무리 봐도 자살할 이유가 없는 상태에서 자살을 ‘연출’하는 것이 세연과 세연 무리의 목적이다. 그리고 자살 직전 이 세상에 반대한다는 메세지를 남긴다. 그들은 이것을 ‘자살 선언'이라고 불렀다. 이 자살 선언은 완벽하게 새하얀 이 세계에 어떠한 색도 더하지 못하는 다른 청년들, 이른바 ‘표백 세대'를 대신해 세상에 핏빛 얼룩을 새겨낸다. 그리고 그 얼룩은 작중의 사회 구성원들 뿐 아니라 <표백>을 읽는 독자의 마음에까지 붉게 스며든다.


   이것은 상처다. 오래도록 아물지 않을 것만 같은 상처. 세연의 자살 선언은 살아남은 자에게도, 혹은 이들과는 다른 이유로 자살을 선택한 이에게도 이 사회에서 패배했다는 수치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이들이 견디어 온 삶은 살아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이미 구차해진다. 세연이 잡기에 빼곡히 적어 둔 논리의 망을 피해 ‘살아야 할 이유’[각주:1]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사람들의 잘못인가. 우리 사회는 누구에게도 살아야 할 이유를 주지 않았다. 숨이 붙어있기 바쁜 세상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다시 되돌아 우리를 상처 입힌다.


   세연은 우리의 노동이 단지 세상을 유지보수할 뿐이며, 따라서 우리의 삶은 이 완벽한 세상의 부품 이상이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가 제시하는 자살 선언에도 삶이 들어 설 자리는 없다. 이 자리를 대신 채운 건 그들의 죽음을 완벽하게 연출하기 위한 내러티브 뿐이다. 세연이 하고 싶었던 것, 가고 싶었던 곳을 포함한 그녀 본인의 열망들은 혹시라도 자신의 자살이 오독될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가차없이 희생된다. 세연의 친구들 역시 그들에게 남은 생의 나머지 시간을 성공의 조건을 채우기 위해 소진한다.


   그녀가 제시한 자살 선언자들의 죽음은 그녀가 닮고 싶어한 예수의 죽음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수는 그가 살아 온 삶의 연장선 상에서 그간 그가 지켜내 온 삶의 가치들을 고양시키는 마지막 정점으로서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세연이 선택하는 죽음은 오히려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가 자신의 시스템을 지켜내기 위해 인간들의 삶을 부품으로 격하시키는 방식과 유사하다. 그들은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가 제공하는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인간의 무쓸모 등을 자살이라는 행위로 맞받아 쳤지만, 그 자살 안에도 결국 삶의 의미는 없었다. 세연과 그녀의 친구들 역시 그들의 삶을 자살 선언을 감행할 수 있는 조건 정도로만 축소시켰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오랫동안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보던 세연의 안으로 괴물의 심연이 들어와 버린 것이다.[각주:2]


   세연도 이를 알았을 것이다. 그녀의 삶이 온전히 자살 선언만을 위해 맞추어져 있고, 그러한 삶의 주인공은 세연 자신이라기보다 단지 영웅을 꿈꾸는 한 명의 청년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세계에 자신이라는 존재의 발자국을 찍기 위해서 아이러니하게 자신을 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상처 입히고 있었다.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세연은 자기 존재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서 그 상처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이윽고 자살 선언을 이행하는 날, 세연은 이렇게 노래한다. ‘당신들도 나처럼 상처받길 바라요, 당신들도 나처럼 상처받길 바라요.’  


3. 

   그러나 분명 이 세계에 절망만이 남겨진 건 아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 시대를 유동하는 근대라고 정의했다. 세연이 묘사하는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는 더 이상 변형 불가능한 고체에 가깝지만, 사실 이 세계는 끊임없이 일렁이는 거대한 움직임으로도 볼 수 있다. 지구가 회전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이 세계의 일렁임도 결코 멈출 수 없다. 한 예로 얼마 전 한국 사회를 두려움에 몰아 넣었던 메르스 사태를 떠올려보자. 메르스 사태로 사람들은 그토록 거대했던 사회가, 꿈쩍도 하지 않을 것만 같던 세계가 경제활동의 둔화에 따라 서서히 중단되는 것을 목격하고 공포에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염병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던 사람들의 경제활동 감소는 은유로서가 아니라 하루 끼니가 달린 누군가의 생계였기 때문이다. 메르스 국면이 완화됨에 따라 경제활동도 도로 페이스를 회복했지만, 이는 현대 사회의 성격을 비약적으로 보여준 하나의 사건이었다. 즉 지금의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는 정체된 것이 아니라 끊임 없이 일렁이는 어떤 움직임이다. 만약 어느 순간 이 움직임이 중단된다면, 그건 그 자체로 이미 다른 세계를 뜻할 것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일렁이는 사회의 특징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세연이 ‘자살 선언'을 이행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주었던 명불허전 대기업인 삼성 그룹의 내일조차도 말이다. 성공은 극소수에게만 허락되는 보상이지만 이조차 지속 가능하지는 않다.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실패가 될 수 있고, 오늘의 패배자가 내일의 승리자가 될 수도 있다. 명백한 성공이란 그 스스로도 흥행에서 참패한 자기계발서에 박제되어 있을 뿐이다. 오히려 확실한 건, 이 세계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고, 이 안에서 보장되는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건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게도 동일하고, 노년에게나 청년에게도 똑같다. 성공의 가능성 뿐 아니라 윤리 규범이나 가치 또한 불확실하며, 지속적으로 변동된다. 


    따라서 이 세계는 지속 불가능한 어떤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가시적으로 보고 있는 이 세계는 어제의 연장이 아니라 어제와는 미묘하게 또 다른 시공간일 지 모른다. 어제까지 건실하던 회사가 오늘은 망해버렸고, 어제 범죄자로 취급되던 아이돌은 오늘 다시 명성을 회복했다.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는 이 거대 시스템은 그 자신조차 통제가 불가능한 하나의 흐름이다. 여기에 어제도 오늘도 존재하는 것은 이 시스템이 지속 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유지보수자들의 노동 뿐이다.


    따라서 이 세계를 시스템으로 환원시키자면 이 시스템의 본질 역시 전면에 있지 않고 그 후면에, 즉 어두컴컴한 전산실 속에 있다. 세연은 유지보수의 노동이 새로운 것의 설계나 건설과는 다른 것이라고 선을 긋지만, 사실상 이 노동은 이 세계를 유지시키는 근원적인 힘이자 언제든 이 세계를 중단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다. 결국 이 세계가 우리의 노동으로부터 시작한다면 이 세계의 끝도 노동으로써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4. 

    시스템을 유지보수하는 자의 변명일까. 나는 나의 노동이 그리 부끄럽지 않다. 내가 어떤 시스템을 유지보수하건, 유지보수자는 시스템의 황금기를 누릴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이미 이 시스템이 최초 도입되었을 때 받았을 영광과 찬란함은 다른 이의 것이고, 그 이후의 필요성을 위해 퇴물이 되기 시작한 시스템을 끈질기게 붙잡고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우리는 시스템과 동고동락한다. 안쓰럽기도 하고, 증오스럽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자식 같기도 한 시스템을 수명이 다할 때까지 질질 끌고 나간다.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는 총체는 실상이 없는 추상과도 같다.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의 그림자에는 나와 같은 수많은 유지보수자들이, 아무도 찾지 않는 어두컴컴한 전산실에 숨어 있다. 결국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란 모두가 애증으로 다루고 있는 시스템들이 만들어 낸 거대한 환상과도 같다.


    그것은 첨단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미래의 기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모두 맨손의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며 출시된 순간부터 노쇠되어 간다.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는 세계가 끊임없이 일렁이듯이, 시스템조차 변화되지 않고서는 제 자리를 유지할 수조차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 완성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시스템은 완성된 즉시 미완성의 길로 들어선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자들의 시스템 유지보수 자체는 시스템에 이끌려가는 부품이 아니라 오히려 시스템을 앞서 이끌고 가는 노동이다.


    이것을 가능성이라 부를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 할 수 있다면 나는 현실에 존재할 세연들에게 감히 죽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의 시도가 헛된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당신이라는 생명을 이 세계의 얼룩 정도로 꺼뜨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유지보수하는 일개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이 세계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신과 같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 있다면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실낱같은 가능성을 붙잡고 당신에게 사라지지 말라고 말을 건네고 싶다. 이 편지가 부디 닿기를 바란다.


ⓒ 웹진 <제3시대>

  1. <표백> 작중 화자인 적그리스도는 세연에게 반대해 ‘디스이스리즌닷컴'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하고자 마음 먹는다. 세연의 자살선언을 싣는 ‘와이두유리브닷컴'에 대항하고자 함이다. [본문으로]
  2.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이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네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네 안으로 들어가 너를 들여다본다.” , 프리드리히 니체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학력 향상을 위해서 최선을 다함. 수업 시간 철저한 예복습과 효과적인 질문을 통해 수업 분위기를 주도하여 교과 교사가 원활하게 수업을 진행하고 의도한 학습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함. 아침에 가장 먼저 등교하여 학교 자습실이 종료될 때까지 철저한 시간 관리를 통해 자기주도적 학습에 매진하는 등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는 모범적인 학교 생활을 지속함...”

 

 


 

 

 


 

 

 

도홍찬 作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 [사진에세이]는 한백교회 사진동아리 '눈숨' 회원들의 작품을 연재하는 코너입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by 제3시대

공지사항

카테고리

웹진 <제3시대> (831)
특집 (8)
시평 (94)
목회 마당 (60)
신학 정보 (136)
사진에세이 (39)
비평의 눈 (72)
페미&퀴어 (25)
시선의 힘 (135)
소식 (153)
영화 읽기 (32)
신앙과 과학 (14)
팟캐스트 제삼시대 (12)
연구소의 책 (13)
새책 소개 (38)
Total : 352,531
Today : 15 Yesterday : 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