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의 신학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한’을 한국인의 심성적 기조로서 강조한 것은 해방 직후 남한 문학가들의 비평 작업에서 시작한다. 이후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문학과 민속학 연구자들의 활발한 논의를 통해 ‘한’에 대한 인식론적 관점이 정립된다. 여기서 ‘한’은 체념적 절망상황에 직면한 한국인 특유의 심성적 기조다. ‘체념적 절망상황’은 모든 인류가 겪어야 했던 좌절체험인데, 한국인은 ‘한’의 정서를 통해 그것에 대응하는 삶의 지혜를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고통의 응어리를 ‘삭임’, 바로 그것이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고 밉지만, 그것이 타인을 향한 적개심으로 폭력적이 되거나 자기를 향한 증오심으로 자기학대나 자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삭이는 삶의 미학이 한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부정에서 긍정으로의 감정 전이를 ‘한’이라는 한국 특유의 정서로 해석함으로써, 한국문화의 깊이와 우월성을 강변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한’은 다른 언어로는 번역할 수 없는 한국적 감정임을 주장하였다.

‘번역 불가능성’(translation impossibility)에 관한 주장은 타문화권 연구자의 비평을 불허한다. 그런데 과연 특정 문화 속에 침륜된 경험의 언어를 다른 문화권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가능한가. 번역 불가능성의 대상이 되는 어휘들은 ‘한’ 외에도 무수히 많다. 그럼에도 많은 어휘들은 번역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번역이라는 행위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런데 한국의 문학가들과 사상가들은 그 많은 경험의 어휘들 가운데 ‘한’만을 특정하여 번역 불가능성을 강변한다. 이것은 ‘한’이 자민족 중심주의(ethnocentrism)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국제적 토론의 장에서도 그것이 허용되는 분위기였다. 그런 점에서 ‘한’은 일종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적이고 동시에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적 요소가 되었다.

한의 자리는 민족이 아니라 민중이다
그런데 김지하의 ‘한’ 해석은 다른 문제의식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민청학련사건)으로 사형을 언도받아 수감되어 있던 기간 중인 1974년 11월경부터 1975년 2월 중순까지 쓴 원고지 500매 분량의 옥중메모는 「성지」 「명산」 「말뚝」 「장일담」의 작품구상을 담고 있는데, 여기에서 그의 ‘한’에 관한 문제의식이 집중적으로 담겨 있다. 이에 따르면 ‘한’은 우리 민족의 독특성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독특성을 반영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식은 민중신학자들에게 수용되어 이른바 ‘한의 신학’을, 즉 ‘한’이 신학함의 새로운 화두임을 선언한다. 그리고 이는 신학의 경계를 넘어 비판적 지식담론의 새로운 화두로 부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김지하에게서 ‘한’이라는 담론의 장소는 민족이 아니라, ‘감옥’ 혹은 ‘창녀의 썩은 자궁’이다. 곧 민중의 장소다. 배제와 차별의 한 복판이다. 거기에서 ‘한’은 그러한 배제와 차별을 안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순순히 동화되지 않는 역설의 감정 현상이다. 그러한 한이 자원이 되어 세상이 전복된다. 곧 ‘역설’은 ‘역전’의 토대다. 그것을 김지하는 천도교와 증산교의 후천개벽(後天開闢) 사상과 연관시킨다. 현실의 역전 불가능성이 전복되는 시공간이 바로 후천개벽이다. 바로 여기에서 그는 ‘단(斷)’을 끌어들인다. 그것은 응어리진 한을 통한 전복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한의 악순한을 종식시킨다. ‘한과 단의 변증법’이다.

그렇다면 김지하의 한의 문제의식을 가장 앞서서 가장 열렬히 가장 큰 비중으로 강조한 이는 신학자 서남동이다. 서남동의 글 「한의 사제」 「한의 형상화와 그 신학적 성찰」 「소리의 내력」 「민담에 관한 탈신학적 고찰」 「민담의 신학―반신학」 등은 김지하에게서 얻은 한의 문제의식으로 신학의 내용과 형식에서 전복에 가까운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한 신학은 신학 내용에서 커다란 전환을 기도하고 있다. 그에게서 민중의 공간은 ‘죄’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곧 죄는 민중이 저지른 잘못의 결과가 아니라 배제와 차별의 결과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지배자의 시선이다. 하여 죄는 권력을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언어를 지배하는 자다. 그러므로 죄는 권력을 갖지 못한 자의 언어를 박탈한다. 여기에 ‘한’의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즉 한은 배제와 차별의 설움을 겪는 이가 그것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민중의 언어는 박탈당한 것, 아니 지배체제에 의해 도난당한 것이다. 그래서 한의 정서는 응어리져 있다.

자기의 감정을 지배체제의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자기 언어가 도난당했기에 말이다. 한데 그 언어는 그들이 겪는 배제와 차별의 경험을 죄로 인한 자명한 결과처럼 해석한다. 그러나 몸이 저항한다. 언어를 도난당했으니 뭐라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몸은 그것에 순순히 순응하지 않는다. 실어증이 발생하고, 기억상실증이 오며, 온갖 병증이 나타난다. 해서 많은 민중은 질병에 걸려 있고, 정신줄이 나가 있으며, 말을 하지 못한다. 바로 한의 증후다.

민중신학자는 ‘한의 사제’다

한데 서남동은 그것이 ‘민중의 언어’라고 말한다. 그가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민중의 말을 듣고자 함이다. 소리의 내력을 해독하고자 함이다. 곧 그 은폐된 말, 왜곡된 언어를 알아차리기 위함이다. 그것을 듣고 사람들에게 증언하는 자, 그이가 바로 서남동이 말하는 민중신학자다.

이 들음과 증언의 행위는 민중의 한, 그 응어리를 푸는 일이기도 하다. 민중에게 권력이 부과한 죄의 굴레로부터 해방을 선언하는 자다. 그런 점에서 민중신학자는 ‘한의 사제’이어야 한다. 하여 민중으로 하여금 역사의 주체가 되도록 돕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김지하를 따라, 민중의 한이 복수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단(斷)’을 선포하는 자다. 후천개벽의 시간, 하느님나라의 시간이 도래했을 때, 민중의 일어섬, 민중의 한풀이가 보복의 악순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단’을 설교하는 자이어야 한다. 한과 단이 변증법적으로 통일되어야 함을 선언하는 자, 그가 바로 민중신학자인 것이다.

둘째로, 서남동의 한에 관한 신학적 성찰은 신학의 형식에 중대한 전환을 가져왔다. 그것을 그는 ‘민담의 신학’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민담’이란 설화의 한 갈래로서의 민담(sage)이라기보다는 구술된 민중 이야기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설화’(narratives)에 가깝다. 성서 시대의 설화가 성서 텍스트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면, 한국의 신학은 한국의 설화를 아울러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겠다.

그는 몇몇 글에서 한국의 설화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신학적 담론의 형식을 전환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이를 반(反)신학 혹은 탈(脫)신학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신학이 이러한 형식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의 반신학/탈신학은 신학 내용뿐 아나라 형식의 전환을 기조로 한다. 신학은 우리 사회의 경험, 특히 민중의 경험을 구체화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러한 민중의 경험, 그것 속에 함축된 민중의 비언어적 언어인 한을, 한풀이의 사제의 자세로 담론화하는 것, 그것이 서남동이 말하는 반신학/탈신학의 요체다.

이와 같이 김지하의 ‘한 사상’과 서남동의 ‘한의 신학’은 한에 관한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그것은 자민족 중심주의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한의 개념화에 문제제기이다. 나아가 한의 사상, 한의 신학은 민중의 눈으로 세계의 고통을 해독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대안적인 실천적 사유의 체계이자 형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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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論 IV: 라깡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For Lacan: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


류시화의 詩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푸른숲, 2002) 를 소개하며 라깡의 ‘타자’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연애할 때 한번쯤 류시화의 시를 인용하며 나의 요동치는 속내를, 그 알 수 없는 마음을 전하려 했던 기억이 독자들에게 있을지 모르겠다. 이 시는 우리들의 연애시절 또 다른 작업용 멘트였던 김춘수의 詩 ‘꽃’에서 언급하는 사랑론, 즉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고백을 비웃으며, 그런 ‘네가 곁에 있어도 나는 여전히 그대가 그립다’라는 위험한 발언으로 끝을 맺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적 표현이 암시하는 나와 그 사이의 채워지지 않는 간극은 오히려 나와 그 사이의 그리움 혹은 사랑을 완료태가 아닌 현재진행의 사건으로 계속 남겨둔 채 우리 사랑의 형태를 굳지 않게, 우리 사랑의 열정을 녹지 않게 만든다.

위에서 소개한 류시화의 시와 김춘수의 시는 헤겔의 ‘타자론’과 라깡의 ‘타자론’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기에 좋은 예이다. 헤겔에게 있어 자기의식은 타자를 전유함으로 획득되는, 주인과 노예의 처절한 권력투쟁 후에 획득되는 노획물이다. 그러므로 철저한 자기의식이란 대상을 향한 영토화의 농도가 짙을수록 확실하고 뚜렷해진다. 김춘수는 그의 시에서 주체에 의해 명명되기 이전 존재, 즉 타자를 몸짓이라 표현하였다. 또한 나의 선포를 수용한 타자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선언한다. 다분히 헤겔적이다. 헤겔에 있어 타자는 나의 의식의 망에 의해 걸러진 존재이고, 내 의식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이 헤겔의 타자론이 최종적으로 다다른 지점이다. 하지만, 라깡의 타자론은 헤겔이 멈춰선 그 지점에서부터 출발한다.

라깡(Jacques Lacan, 1901-1981)




라깡이 어쨌다구?

프로이트에게 오이디푸스 단계의 아버지가 현실적 아버지였다면, 라깡의 경우에 있어서 아버지는 아버지의 이름이 상징하는 사회문화적 규범이나 법을 의미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프로이트는 남근의 유무에 따르는 생물학적 성차별로 환원하나, 라깡은 상징적 의미를 강조한다. 이때 남근(phallus)은 남자의 성기(pennies)가 아니라 사회질서를 구축하는 법과 규범을 의미하는 일종의 기표(significant)이며, ‘거세공포(castration complex)’ 또한 남근 제거의 공포라기보다 사회적 인정의 박탈을 뜻하는 상징적 기표로 파악된다. 이렇듯, 라깡에게 있어 상징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어떤 시스템 속에 편입되는 것이다. 상상계 속에서 엄마와의 2항 관계만을 경험했던 아이로서는 거대한 상징 시스템은 아주 큰 타자, 대타자(the Other)다. 쉽게 말해, 사회(화), 문명(화), 도덕, 윤리 같은 거다. 이렇게 라깡이 프로이트 이론의 지경을 확대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구조주의 언어학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각주:1]

라깡의 실험은 프로이트를 다시 태어나게 했을 뿐 아니라, 현재 지젝으로 상징되는 슬로베니아학파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정신분석학과 맑시즘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지적 장르 형성에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부터 살펴볼 내용은 프로이트에게는 없지만 라깡에는 있는 특별한 그것, 즉 라깡의 언어관에 대한 부분이다. 라깡에게 있어 타자의 문제는 인간이 언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등장한다. 인간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알파벳을 알고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시스템속, 즉 기호(상징)들의 체계와 질서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각주:2] 그리고, 그 언어의 작용방식 내지 기능을 일컫는 말이 ‘기표들의 차이(difference)’, ‘기표들의 놀이(play)’라는 용어이다.


play of difference 차이들의 놀이

우리가 (후기)구조주의 책들을 읽다 보면 play of difference(차이들의 놀이)라는 용어를 종종 접한다. 이는 라깡에게 있어서는 상징계속 욕망이 기표들의 차이를 따라 계속 미끄러져 나가는 것을, 데리다에게 있어서는 텍스트의 의미가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설명하는 특수 용어다. 차이와 놀이는 기본적으로 ‘변화(베르그송)’, ‘과정(화이트헤드)’, ‘되기(들뢰즈)’등 현대철학에서 등장하는 생성존재론의 새로운 함의들에 영향을 받은 바 크다.[각주:3] 존재란 고정되어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차이가 있고 운동이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가 창궐하여 돌아다니는 장이다.

작년 남아공에서 열렸던 2010년 월드컵 우승팀 스페인 축구의 특색이 정확하고 빠른 패스였다. 선 굵은 스타일을 구사하는 힘의 유럽축구와 현란한 개인기에 의존하는 남미의 축구 스타일 사이에서 스페인은 나름의 독창적인 자기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는데 3-4m 안에서 정교한 패스를 구사하며 상대를 압박하는 것이다. 보통 한 골이 들어가려면 15-18회 패스를 거친다고 하는데, 스페인은 30회가 넘는 패스를 거쳤다고 한다.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30회가 넘는 패스를 하면서도 상대방에게 볼을 빼앗기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스페인 축구의 정교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상징계를 커다란 축구장, 기표들을 축구 선수들의 패스에 의해 옮겨 다니는 공이라고 가정할 때, 축구경기에서 골을 넣기 위해 수많은 패스가 필요했던 것처럼 상징계 안에서 기표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징계속 기표는 축구장에서 공이 패스에 의해 옮겨다니는 것처럼 돌아다녀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의미가 생성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말하는 play of difference(차이의 놀이) 이다.

예를 들어, 나는 수 많은 성씨 중에서 이氏이고, 이씨 중에서도 전주 이씨이며, 전주 이씨 중에서도 양녕 대군의 후손이다(그 족보에 별로 신빙성이 가지는 않지만). 필자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은 미국, 미국 중에서도 동부도 아니고 서부도 아닌 중부, 중부에 있는 도시 중 위스콘신이나 인디애나가 아닌 시카고에 살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신학교와 진보적인 교단 출신이고, 미국에서 유학하는 현재도 가장 진보적인 신학교라 평가받는 시카고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나는 순복음 출신이나 총신출신이 아니고, 사우스웨스턴이나 플러 같은 보수적인 신학교에서 유학하고 있지 않다. 대충 필자의 모습이 그려지는가? 필자 이상철이 지닌 오리지널한 무엇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수많은 차이들 한신, 총신, 감신, 장신, 연신 중 한신/ 기장, 예장, 감리, 성결, 순복음 목사중 기장목사/ 그 밖의 수많은 차이들 중 무엇, 그 무엇 무엇을 모으고 조합하는 과정이 라깡이 말하는 play of difference(차이의 놀이)이다.[각주:4]


욕망(desire) in 상징계

어떤 아이가 태어난다 함은 그 순간 이미 이런 언어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비록 상상계에서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상징계로 진입하면서 아이는 이런 기표들의 놀이와 차이속으로 빠져든다. 아이 자체는 사라지고 한국, 미국, 일본, 중국…중에서 한국/ 김씨, 이씨, 박씨…중에서 이씨/ 빈곤층, 중산층, 부유층…중 무엇이라는 기표만 남는다. 이런 이유로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넘어온 아이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상징과 무의식적 욕망에 예속된 소외된 존재를 뜻한다고 라깡은 지적한다.[각주:5]

인간이 주체가 된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어떤 기표를 부여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일등 신랑감이 되려면 명문대 출신에, 연봉은 1억은 되어야 되고, 최소한 40평정도 되는 아파트와 고급 외제 승용차를 몰아야 한다. 이런 기표가 나를 표상하는 선에서 나는 일등 신랑감이 된다. 교육열이 넘치는 한국에서 좋은 자식이란 부모의 기표를 잘 수행하는 아들과 딸들이다. 영어유치원-특목고-과학고-외고-명문대-해외유학-판검사-의사-교수 등등으로 미끄러지면서 부모는 자식에게 심벌릭한 세계를 투영하고 아이는 부모(사회)가 제시한 기표들을 따라 다닌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의 의지와 노력이 일부 개입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100% 나의 자발적인 선택과 고민의 과정이었는지 묻는다면 어딘가 꺼림칙하다. 누군가가 쳐놓은 망 안에서 뺑뺑이 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 지점에서 라깡은 욕망(desire)과 향유(jouissance)를 구분한다. 욕망은 상징계 안에서의 욕망, 즉 기표들을 따르는 것이다. 그 기표들의 놀이는 연봉 5천에서 1억으로, 30평 아파트에서 40평 아파트로, 소나타에서 그렌저로 이어지며 멈출 줄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만들고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기표들은 타자에 의해 만들어진 타자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하니까 남들이 원하니까 그래야 내가 인정받으니까 그것을 욕망하는 것이다. 이것이 라깡이 말하는 상징계 속의 욕망이다. 그 욕망은 새로운 기표를 찾아 상징계(the symbolic) 속을 계속 미끌어져 나간다. 그렇다면 주체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한에서 주체란 말인가? 라깡의 다음 질문은 이 지점에서 다시 시작된다.


향유(jouissance) in 실재(계)

우리는 지금 상상계(the imaginary)와 상징계(the symbolic)를 지나 실재(계)(the real)에 이르렀다. 앞서 필자는 상상계속의 아이가 언어를 습득함으로 상징계속 질서로 편입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사회와 규범에 동화되어가는 과정이라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상상계속에 있었던 모든것이 상징계안으로 완전히 녹아들어가지는 않는다.

다시 서두에서 언급했던 류시화의 시로 돌아가 보자. 시인은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말한다. 라깡에 따르면 앞에 나와있는 ‘그대’는 상징계의 기표이고, 상징계속 욕망의 대상이다. 뒤에 나오는 실재계속 ‘그대’를 찾기 위해 상징계의 기표 ‘그대’를 끊임없이 갈아치우며 play(놀이)를 하지만, 주체는 여전히 실재계속 그대와는 불통한다. 상상계속에 있었으나 상징계속에 편입되지 않고 여전히 저 아래에 남아있는 부유물을 향한 욕망을 라깡은 향유(jousissance, 쥬이상스)라 부르고, 상징계속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욕망(desire)과 분리시킨다.[각주:6]

즉,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들어설 때 제외되는 부분, 엄마와의 2항 관계에서 아버지의 질서로 들어설 때 억압되는 부분, 휴가를 나가기전 역 주변의 쾌락에 대해 동경하나 막상 아무일 없이 서울행 기차를 타고 올라올 때 느끼는 내 마음 깊숙한 곳의 아쉬움, 그대가 곁에 있는데도 여전히 그리운 그대! 이 모두가 향유를 설명할 수 있는 예라 할 수 있겠는데 영 마땅치가 않다. 왜 깔끔하게 설명을 해내지 못하는 걸까? 복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상상계속에 있었던 그 이미지는 다시 복제가 안된다. 다시 복제가 안되고 복원이 불가능한 것을 욕망하는 것이 향유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가 곁에 있어도 여전히 나는 그대가 그리운 것이다. 얼마나 슬프고 비극적인가!

라깡은 복구가 안되는 그것을 대상 소타자 혹은 대상 a(objet a 오브제 아)라 부른다. 그것은 실재계에 존재하다가 어느 순간 상징계를 찢고 뚫고 나오는 어떤 것이다. 라깡은 그것의 예로 항문, 페니스, 질, 젖가슴, 목소리(조용하고 엄숙한 연주회장에서의 괴성,비명 같은), 오물, 구멍 같은 것을 든다.[각주:7] 그것은 상징계의 작동을 잠시 멈추게 하는, 그래서 상징계를 지배하는 현실적 원리들에 타격을 가하는 게릴라같은, 혹은 데리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유령’같은 것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우리는 실재를 모른다. 복구가 안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나 이상철을 모른다. 나 역시 궁금한 나를 그대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정치적으로는 민노당을 지지하나 막상 대선에서는 노무현을 찍는 나, 문화적으로는 거대자본의 논리로 운영되는 주류 대중문화를 비판하고 이에 반하는 B급 문화를 선호한다고는 하지만 소녀시대나 카라같은 걸그룹의 뮤직비디오도 간간히 침을 흘리며 훔쳐보는 나, 경동교회에서 자라 한신에서 신학수업을 받고 한국에서 가장 개혁적인 교단인 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인 나, 미국내에서도 신자유주의 문제, 동성애 문제, 낙태문제, 이민정책, 흑백문제, 미국의 패권적 태도 등에 대해 가장 진보적 신학담론을 생산하는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나, 하지만 현재 본토보다도 더 강한 레드 콤플렉스와 좌파히스테리에 빠져있는 이민교회에서 적절히 이곳의 보수적 교민들의 상식에 크게 반하지 않는 설교를 하고 있는 나! 돌이켜보니 나 역시 온통 상징계의 기표들속에서 놀고(play)있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그 이상철이다. 그렇다면 상징계속 질서에서 허우적 거리는 나는 언제 나의 실재와 대면하는가? 라깡에 의하면, 실재계에 존재하고 있었던 '대상 소타자(대상 a)'가 현실세계인 상징계에 구멍을 낼 때다. 오물, 쓰레기, 성기, 괴성, 뾰족한 무엇으로 질서정연한 상징계에 흠집을 내는 순간 실재가 우리에게 잠시 열린다. 이 순간이 바로 라깡이 주목하는 윤리의 새로운 영역이다.[각주:8] <다음호에 계속>

ⓒ 웹진 <제3시대>


  1. 구조주의 언어관: 우리(주체)가 무엇인가(대상)를 보고, 듣고, 만져서 지각(perception)한 후 우리의 이성은 그 모든 정보들을 종합하여 그 사물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 관념(Idea)을 만들어낸다. 내게 관념이 생겼다고 함은 내가 지각했던 그 무엇이 비록 이 순간 내 앞에 없다손 치더라도 내가 다시 그것을 표상(representation)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현대철학 전까지 언어란 우리 마음에 있는 관념을 외화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구조주의 출현 이후 이러한 전통적 인식론에 대한 반론이 생겨났다. 확고 부동할 것이라고 믿었던 관념이 장(場)의 논리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드는 예로, 의자와 책상이 있다고 할 때, 이것을 의자로, 저것을 책상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의자를 가방이라 부르든, 책상을 나무라 부르든 중요한 것은 둘 간의 차이만 확보되면 된다. 언어의 본질은 그 언어가 가리키는 대상의 관념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호들의 체계가 중요한 것이다. 책상을 의자로, 의자를 꽃병으로, 나무를 바위로 부르면 어떤가? 그것이 어떤 공동체 속에서 통한다면 그 시스템이 의미를 발생시켰다 함이 옳다. 결론적으로 구조주의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인식한다 함은 기호들, 기호의 시스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의 인식은 그렇게 확고한 것이 아니다. 단지, 기호(기표)들의 차이와 놀이를 매개로 만나는 것이다. [본문으로]
  2. “상상계(the imaginary)와 상징계(the symbolic)는 연속적인 단계가 아니라 얽혀 있는 것이다…. 상징계는 상상계를 잠식해 들어가고, 조직하며 방향을 제공한다. …라깡은 말을 습득한 인간 주체는 그(녀)를 기존의 상징계에 편입시키고, 그리하여 자기의 욕망을 이 계의 체계적 압력들에 복종시킨다고 지적한다: 언어를 받아들임으로써 주체는 자기의 ‘자유로운’ 본능 에너지가 작용되고 조직되도록 허용한다는 것이다”- Mardan Sarup, Jaques Lacan, (Toronto and Buffalo: University of Toronto Press, 1992), 105-106 [본문으로]
  3. 시카고 신학교의 창의적인 여성신학자 슈나이더(Laurel Schneider) 교수가 2008년에 출간한 Beyond Monotheism: A theology of Multiplicity. (New York: Routeldge, 2008)과 Drew에 있는 설명이 필요없는 신학자 캐서린 켈러(Catherine Keller)가 쓴 Face of the Deep: A Theology of Becoming. (New York: Routeldge, 2003)은 생성존재론에 입각한 신 개념을 제안하는 도발적인 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본문으로]
  4. “라깡에게 있어 의미는 객관화될 수 없다. 오히려 의미는 근본적으로 그 유연함과 예상불가능에 의해 특징지워 진다. 어떤 기표도 자동적으로 그것에 앞선 기표를 따라가지 않기 때문에, 주체의 어떤 부분이 기표들 사이의 틈새(차이)에서 드러나게 된다.” – Ibid., 49. [본문으로]
  5. 자끄 라깡, 『욕망이론』, 권택영 외 역 (서울: 문예출판사, 1994), 265-267. [본문으로]
  6. 칸트윤리학에 대한 라깡적 비판을 하고 있는 슬로베니아 학파의 차세대 주자 쥬판치치는 그의 대표작 Ethics of the Real: Kant, Lacan 에서 상징계속으로 용해되지 않는 실재를 ‘자기를 알지 못하는’(this knowledge that does not know itself)/’알려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것’ (this knowledge that remains unknown) 으로 적고있다- ,Alenka Zupancic, Ethics of the Real: Kant, Lacan (New Yourk: Verso, 2000), 201 [본문으로]
  7. “대상 소타자(=대상 a)는 (동굴, 管 따위의)구멍 일수도 있고 젖가슴일 수도 있다. 이것은 (날카로운) 끄트머리나 절단과 관계가 있다: 입술, 이빨을 형성하는 울타리, 항문 테두리, 페니스의 끝, 질, 눈까풀에 의해 형성된 가늘고 길게 째진 곳…이 같은 목록에 라깡은 음소(音素), 응시, 목소리를 첨가한다” - Mardan Sarup, Jaques Lacan,, 98. [본문으로]
  8. “the question of ethics is to be articulated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location of man in relation to the real”-Jacques Lacan, Seminar VII: The Ethics of Psychoanalysis, trans. Dennis Porter, (New York: W.W. Norton & Company, 1992), 1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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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고통과 예수의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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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락
(본 연구소 소장)


낮 열두 시가 되었을 때에,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세 시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부르짖으셨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 그것은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는 뜻이다.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몇이, 이 말을 듣고서 말하였다. "보시오, 그가 엘리야를 부르고 있소." [마가복음 15:33-35]

 
1.

1962년 미국의 John F. Kennedy 대통령이 암살범의 흉탄에 목숨을 잃었을 때에 전 미주의 TV 방송은 한 시간 동안 흑색 화면에 “SHAME” (수치)이라는 자막만 띄워서 전국에 방영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 사건이 일어난 마지막 일주일을 고난주간이라 합니다. 좁은 의미로는 예수의 체포 - 재판 - 처형의 과정을 그의 고난/수난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예수의 고난주간 중에는, 즉 그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활동하신 마지막 일주일 기간 동안에는 이상하게도 단 한 건의 기적을 행하지도, 단 한 건의 자연계의 기이한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가 예수의 저주 한 마디에 말라버렸다 (마가복음에는 그 이튿날에, 마태복음에는 당장에 그렇게 되었다고 보도함)는 예수의 기적 능력의 과시라기보다는 더 이상 생명을 산출하지 못하는 유대교의 종언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고 낮 열두 시가 되었을 때에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시까지 계속되었다고 보도합니다. 영화 벤허에서처럼 예수의 운명 시각에 천지가 어두워졌을 뿐만 아니라 천둥번개와 더불어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무시무시한 자연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에게 내려오는 기이한 현상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 바록 그것이 마가복음의 보도대로 예수의 주관적 체험에 불과했다 하더라도 - 울리지 않았습니다. 낮중에 가장 밝은 시점인 정오에서 오후 3시까지 어둠이 온 땅을 덮었다는 현상은 처형 현장의 사람들에게 경외심이나 두려운 감정을 일으킬 자이한 자연현상으로 제시되었기보다는 예수에게 희망을 걸었던 사람들이 예수의 비참한 끝장에 접하여 눈앞이 캄캄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당혹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예수의 이 십자가 처형 장면을 목도한 사람들 가운데 두 사람이 실의에 잠겨 예루살렘에서 한 삼십 리 떨어져 있는 엠마오라는 마을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길손이 그들에게 다가가서 “당신들이 무슨 일을 두고 그렇게 침통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소?”하고 물었습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으면서, 이 며칠 동안에 거기서 일어난 일을 당신 혼자만 모른단 말입니까?” 하고 길손에게 핀찬을 주었습니다. 그 길손은 그들에게 “무슨 일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그를 넘겨주어서, 사형선고를 받게 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알고서, 그분에게 소망을 걸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나사렛 예수의 활동을 보고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희망을 품고 가슴이 벅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예수는 기대와는 달리 바참하게 십자가에 처형당하여 역사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벅찬 꿈은 산산조각이 나서 허공에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올 때에는 벅찬 가슴으로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이제 그들은 허탈한 심경에 빠져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에게 희망을 걸었다가 그의 허망한 죽음 때문에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은 유독 이 두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따르던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 - 더 정확히 표현해서 죽임 당하신 사건 - 은 예수를 따르던 처음 제자들이 극복해야 했던 가장 어려운 최대의 걸림돌이었습니다. 복음서에 보도된 대로 사흘 만에 일어난 부활 사건으로 십자가 사건의 거리낌이 하루아침에 녹듯이 깨끗이 사라졌다고 볼 수 없습니다. 바울은 고전 1장 23절에서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감추어서 없애야 할 거리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선포의 내용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맨 처음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 처형에도 불구하고’ (inspite of the cruxifiction) 예수를 메시야로 선포해야 했는데 나중에는 ‘십자가 처형 때문에’ (because of the cruxifiction) 예수를 메시야로 선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변하는 과정에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수많은 신학적 해석 작업이 덧붙여졌습니다. 이렇게 덧붙여진 여러 가지 신학적 해석들은 십자가 사건을 구원 사건의 핵심으로 구축한 긍적적 기여를 한 측면도 있지마는 지나친 신학적 해석 일변도가 역사적-사회적 사건으로서의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은폐시키는 폐단도 있었습니다.


3.

예수에 대한 처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고백은 예수를 종말적 구원자로 믿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성서에 예언된 종말적 구원자 상(像)의 대표적인 칭호는 ‘메시야’였습니다. 이 밖에도 ‘사람의 아들’, ‘다윗의 자손’ 등이 있었습니다. 어느 칭호로 지칭되든지 상관 없이 구약성서의 종말적 구원자는 신적 능력을 발휘하여 이스라엘에 또는 세계에 정의와 평화를 실현할 존재였습니다. 종말적 구원자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패배한다는 것은 구약성서의 종말적 구원자 상과 절대로 부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처형으로 죽임을 당한 나사렛 예수를 구약성서에 예언된 바로 그 종말적 구원자로 믿고 선포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그 종말적 구원자가 ‘반드시 고난을 당해야만 했다’는 논리를 펼쳐야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낯선 얼굴로 나타나서 “그리스도가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한다” (The Christ should suffer these things and enter into his glory.) 는 것을 증언하고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하여 써 놓은 일을 그들에게 설명하여 주셨다고 했으나 구체적으로 구약성경의 어느 곳을 지시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어떤 문제가 발생합니까? 만일 하나님이 종말적 구원자가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데는 구원자가 반드시 고난을 당하고 죽어야만 하는 그 일 자체를 필요불가결한 요건으로 설정하셨면 그러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디즘(sadism)에 사로잡힌 분이라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의 죽임당하심이 인간 구원 사업의 필수요건이라면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가룟 유다와 예수에게 사형언도를 내린 빌라도는 구원 사업의 필요불가결한 일등 공신으로 찬양받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유다복음서> 같은 위경(僞經)은 예수를 배반한 유다를 예수의 깊은 의도를 이해하고 수행한 참된 제자로 내세웠습니다. 만일 제자들이 이러한 시각(視角)으로 십자가 처형을 그 현장에서 바라보고 있었다면 “감사합니다. 멈추지 말고 좀 더 피를 계속 흘리시고 죽으셔서 구원 사업을 이루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이것은 과히 사디즘의 극치가 아니겠습니까?

 

4.

제2 이사야 (사 40-55장)에는 여호와의 종을 노래한 시가가 네 개 들어있습니다. 특히 넷째 번에 나오는 시가 (사 53장; 정확하게는 사 52:13-53:12)는 고난을 당하는 여호와의 종을 노래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의 종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집단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지칭한다고 보기도 하고 또는 어느 특정한 미지의 역사적 인물을 지칭한다고도 보며 미래의 어떤 이상적인 인물을 상징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어쨌든 유대교의 주석에서는 이 여호와의 종과 종말적 구원자인 메시야와 결부시키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초대 그리스도 교회는 아주 일찍부터 이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을 예수의 고난과 결부시켜서 종말적 구원자인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했습니다. 사도행전 8장 26절 이하에 전도자 빌립이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고위 관리인 한 내시가 귀국하는 마차 안에서 이사야 53장을 읽고 있는 장면과 마주칩니다. 그가 마침 읽고 있던 구절은 이것이었습니다.

“양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과 같이,
새끼 양이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것과 같이,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굴욕을 당하면서,
공평한 재판을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겼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이야기하랴?”

내시는 빌립에게 “예언자가 여기서 말한 것은 누구를 두고 한 말입입니까?” 하고 물었고 빌립은 이 이 성경 말씀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빌립은 이샤야 53장의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을 예수의 십자가 고난에 결부시켜 해석했음에 틀립없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4절a)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5절a)
“어느 누가, 그가 사람 사는 땅에서 격리된 것을 보고서,
그것이 바로 형벌을 받아야 할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느냐?” (8절)
“그는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자기가 짊어질 것이다.” (11절c)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졌다.” (12절e)
“그는 그의 영혼을 속죄 제물로 내놓았다.” (10절b)

그는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과 형벌을 우리를 대신하여 겪었으며 그의 목숨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속죄하는 희생 제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 죄의 응보로서의 형벌과 죽음의 문제의 적절한 해결책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무엇이 문제가 됩니까?

예수께서 그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치러야 할 죄값을 다 지불하셨다면, 우리는 이제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 셈입니다. 과연 그러합니까? 인간의 삶의 문제가 하나님과 나 사이의 수직적 관계만으로 다 해결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원만히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내 주변에서 불의와 폭력의 희생자들의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셈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웃과의 수평적 관계를 떠나서는 참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신학적, 종교적 뜻매김이 내 이웃의 문제 해결에 적절하지 않다면 이에 대한 다른 해석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5.

예수는 왜 그의 삶의 마지막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까? 성서의 어느 곳도 그의 예루살렘 행의 목적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슨 근거에서, 무슨 죄목으로 처형당했습니까? ‘우리 죄 때문에’ 또는 ‘우리 죄를 위해서’라는 신학적, 종교적 목적 이외는 다른 어떤 근거도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20세기의 신약신학의 거장 R. Bultmann의 주장처럼 예수의 처형은 순전히 사법적인 오판(誤判) 때문이었다고 해야 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집권자들이 예수를 제거해야 할 근거가 무엇인지는 그의 생애 초두에 이미 제시되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막 3:6) 예수의 적대자들의 이러한 모의는 마가복음 1:14-3:5에 전개된 예수의 갈릴리 선교 활동에 대한 거부반응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의 활동과 가르침이 자기네의 지배질서와 조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 사정은 예루살렘의 지배층에도 적용되는 것이었습니다(막 12:12; 14:1). 집권자들은 예수의 요구에 순응할 수도, 묵인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수를 제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시면서 병든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귀신들린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현 사회의 무권자들에게 삶의 권리를 되찾아주는 선교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예수는 이 사람들을 도래하는 하나님나라의 시민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사회의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밑바닥 무지레기들이 하나님나라 잔치의 주빈으로 영접되는 것은 현 사회의 지배층르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일의 주동자인 예수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6.

그리스도교 신학은 고통, 고난, 재난, 불행 등의 문제를 인간 개인의 죄와 관련지어서 너무나 근원적인 차원에만 국한하여 다루기 때문에 이 문제의 사회적 측면을 간과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고통을 예로 들어 봅시다. 고통은 하나님이 죄에 대한 마땅한 응보로서 내리신 징벌이기 때문에 고통의 당사자는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고통은 죄인에게 그의 죄를 각성하게 하여 그를 회개시키고 순화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봅니다. 고통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고통의 매저키즘(masochism)의 포로가 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뿐만 아니라 고통이나 고난은 인격을 단련시키는 교육적 기능도 하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서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이러한 견해를 가진 그리스도인은 이 사회에 만연한 수 많은 이웃의 고통과 불행을 당연한 것일 뿐만 아니라 유용한 것으로 용인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이것이야 말로 성서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성서는 사회적 약자인 과부와 고아와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것을 우리의 우리의 인간됨의 주요한 임무로 명했습니다. 성서는 그들이 과부가 되고 고아가 되고 가난한 사람이 된 원인이 무엇인지를 - 그것이 그들 자신에게 있든지, 다른 누구에게 있든지 상관 없이 - 따져 본 후에 도우라 하지 않고 그저 도우라고만 명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의 노역으로 신음하기 때문에 그들을 해방시켰습니다. 노예생활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의 고통과 고난을 용인한다는 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태도입니다. 그러한 태도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가 아니라 현 세상의 지배자인 파라오를 섬기는 행위입니다.


7.

알베르 까뮈가 1947년 발표한 소설 <페스트>가 생각납니다.

알제리아의 오랑 시에 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병은 급속히 번져갔으며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도시는 불가항력의 이 재난 앞에서 큰 혼란과 공포에 빠져들어갔습니다. 성문은 폐쇄되고 외부와의 왕래가 차단되었습니다.

여기서는 등장인물들 가운데서 특히 주인공인 의사 리외와 예수회 신부 파늘루 신부가 이 재난에 대하여 나타내 보인 극명하게 대조되는 처신을 주목하고자 합니다.

리외는 페스트라는 재난을 막기에 인간은 역부족이라는 절망적인 사실을 환히 알면서도,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행을 있는 힘을 다해서 저항하는 데 투신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가 창궐하는 것은 하나님이 불신자에게 내리는 천벌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으로 돌아서게 하는 계기라고 설교하면서 페스트와의 투쟁에 방관적 태도를 취한다.

다음과 같은 대화에서 그들의 입장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의사 리외: “세계의 질서는 죽음에 의해서 규정되어 있소. 그런고로 하나님 편에서도, 인간 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죽음과 싸워주는 편이 좋지 않겠는 소? 하늘로 눈을 돌리지 않고 말이오. 보시오, 하나님은 침묵하고 있을 뿐이지 않소.”
신부 파늘루: “그래요, 나도 안다고요. 그러나 당신의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인 것일 뿐이지 않소.”
의사 리외: “그렇다고 해서 전투를 중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지요.” 

리외의 투쟁은 죄 없는 아기의 죽음을 보고 더욱 고양됩니다. 그리고 신부도 죄 없는 아기의 죽음을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되어 입장의 변화를 일으켜서 리외를 도와보건소에 봉사하게 됩니다. 리외는 점점 더 많은 동지를 얻게 되고 결국에 페스트도 일단 정복됩니다. 그렇지만 리외의 아내도, 늘루 신부도 페스트의 희생자 되는 아픔을 남겼습니다.

마침내 페스트는 정복되었습니다. 성문은 다시 열리고 오랑 시는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뤼는 이 질병에서 배운 것, 즉 인간에게는 경멸할만한 것 보다는 감탄할 만한 것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글로 써서 들어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재난과 불행은 승산이 있든지 없든지 그것을 극복하려고 맞서 싸우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원인을 밝히는 것은 문제 해결과 관계 없는 한 한가한 관념의 유희일 따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신론자인 의사 리외의 자세가 신부 파늘루의 자세보다 훨씬 친인간적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수행한다는 아이로니를 배우게 됩니다.


8.

이웃의 고난에 무관심한 것은 이웃 사랑의 의무를 저버리는 죄악입니다. 이웃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당하는 고난은 고귀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순전히 종교적인 의미만 부여하는 것은 중대한 왜곡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사회적 차원에서 이웃의 권리를 쟁취하고 수호하려는 데서 불가피하게 생긴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어떤 짐승을 희생 제물로 바칠 경우에 우리는 그 희생되는 짐승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의 심정에 사로잡히지 그 짐승을 나쁜 놈으로 학대하거나 미워할 리는 전혀 없습니다. 이수현씨는 남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본 사회는 그를 의인이라 칭송합니다. 이사야 53장 12c,d에 “그는 자기 목숨을 죽음에 내맡겼다. 그래서 그는 죄인으로 셈해졌다/여겨졌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그는 죄인들을 중재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남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면 의인으로 칭송받아야 바땅하지 왜 죄인으로 셈해져야 합니까? 그것은 그가 목숨을 바친 것은 인간 일반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회에서 죄인으로 따돌림 받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 사회의 지배자층은 그 사람을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의 하나로 지목하여 배척해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의 고난도 이와 꼭 마찬가지 이치였습니다. 그는 그 사회에서 죄인으로 지목 받는 사람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 몸을 바치셨습니다. 그 결과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3장 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다’는 것은 남의 고난을 퇴치하기 위하여 당하신 그리스도의 고난을 재현한다는 것을 뜻하지 인격도야를 위한 육체적 학대나 나 신비주의적 고행을 수행하겠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신도들을 선동하는 그의 적대자들을 겨냥해서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 (갈 6:17) 라고 용감하게 외칠 수 있었습니다. ‘예수의 상처 자국’은 예수가 당하신 고난의 길을 뒤따르는 데서 얻은 육체적 상처를 말합니다. 그것은 수치스러운 패배의 흔적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승리의 상처입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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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차 월례포럼은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가 주최하고 우리신학연구소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공동 주관하는 <한국사회 우파의 형성과 그리스도교> 포럼으로 대체합니다.


<
한국사회 우파의 형성과 그리스도교> 포럼, 첫 번째


제목_웰빙우파와 대형교회

문화적 선진화 현상으로서의 후발대형교회

 

 

 











Doris Salcedo <Shibboleth>
(Tate Modern Gallery 2007)

성서에서 학살의 상징인 십볼렛
.
도리스 살체도는 현대판 십볼렛을 고통을 은폐하는 도시적 야만성에서 보았다
.



취지_MB 정부 집권 진전, 직후에 대두했던 선진화 담론, 적어도 그 담론의 내용이 지향하고 있는 정치의 영역에서, MB 정부 내내 실종되어 있었다. 그런데 문화적 체험의 영역에서 선진화는 웰빙담론의 형식으로 체현되고 있었다. 이 글은 이러한 웰빙담론과 우파의 결합양식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양식이 문화적으로 체현되고 있는 장으로 일부 대형교회를 주목한다. 이 글이 가설적으로 입론화하는 이념형으로서의 후발대형교회가 바로 웰빙우파의 문화적 체험이 교류하는 장이다.

날짜_2011425, 늦은 7

장소_안병무홀
참가비_3천 원

주최_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주관_우리신학연구소, 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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