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번에 완성된 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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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들꽃향린교회 담임목사)

한사람의 죽음을 놓고 여러 가지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놓고도 정부는 “테러리스트다, 떼쓰는 폭도들이다.”고 한다. 그러나 그 가족들은 말도 안되는 모함이라는 것을 너무 잘안다. 고 이상림 씨는 매일 새벽기도를 하고 계속 성경 필사를 하던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가족 모두가 그렇다. 다른 희생자들도 장사를 하거나 평범한 생활을 하던 시민들이었다. 벌써 두 달 넘게 가족들이 빈소를 지키면서 버티고 있다. 얼마나 힘이든가? 그런데도 가족들은 이대로는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며 누구보다도 강경하다. 그들은 분명 죽음의 거룩한 의미를 발견한 것이다.

이렇게 하루아침에 허무하게 무너질 수가 없다. 자기 부모들의 참 죽음의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가족들이 장례를 미루며 투쟁하는 것은 고인들의 명예회복이기도 하지만 고인들의  죽음이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이번 희생으로 나머지 재개발지구 세입자들이 다시는 이러한 억울함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 고인들의 희생을 모든 세입자들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위한 죽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죽음의 거룩한 의미를 발견한 것이다. 지금의 지리한 싸움은 그 분들의 죽음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재개발이 진행되면 땅이나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세입자들이다. 그 지역은 상가라 대개 권리금이 따라 붙는다. 그리고 인테리어에도 적잖게 든 비용은 모두 무시된다. 단지 2천만원 정도의 이사비용만 지급된다. 그리고 가해지는 용역들의 무차별한 인간 모독과 폭력, 이런 것들이 세입자들이 처하게 되는 상황이다. 가족들은 정부가 발표하는 터무니없는 모함을 딛고 자신들의 부모와 남편의 죽음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투쟁하고 있다.

히브리서는 예수가 단 한 번에 결정적으로 모든 사람의 죄를 제거하신 제물이요 동시에 스스로의 몸을 제물로 드리신 대제사장이라고 한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의 죽음의 거룩한 의미를 찾았듯이 예수의 제자들, 가까이서 따르던 갈릴리 민중, 여인들은 예수에 대해서 덧 씌워진 죽음의 이유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민중을 선동하는 폭도, 정치적 정복을 꿈꾸는 유대인의 왕, 로마의 정치범, 신성모독자, 성전난동자. 그 어느 것도 예수님의 죽음의 이유일 수 없다. 그들은 사랑하는 스승의 죽음의 참 이유를 찾아내야 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가 찾아낸 의미는 “단번에 모든 인류의 죄를 지신 분” 이었다.

예수께서 단번에 사람들의 죄를 지고 가셨다는 말을 한국교회는 주술적으로 이해한다. 마치 주문처럼 이 사실을 시인하고, 고백하면 우리의 존재가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한다. 단번에 제물이 되신 예수의 신적 마술은 그 주문을 외우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치 컴퓨터에 걸려있는 비밀번호처럼 새 일을 불러들이는 주문으로 작용한다. 예수의 십자가를 드리대면 하늘에서 신비한 변화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이런 천박함, 이런 맹랑함은 예수를 한낮 도깨비나 부뚜막 귀신 정도로 추락시킨다.

어떻게 한사람의 죽음이 모든 사람의 죄를 도말할 수 있는가? 누가 반문할지 모른다. 왜 목사님은 모든 크리스천들이 자연스럽게 고백하고 믿는 바를 흔들어 놓으려고 하십니까? 바로 그 당연한 믿음 때문에 기독교는 역사하고는 상관없는 종교, 민중의 아픔과 무관한 종교, 한낮 종교로, 주술로, 자기 욕심을 합리화하고 극대화 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교회가 취해있는 그 주술의 요소를 거두어 내야지만 신앙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당시의 민중들은 예수가 가르치신 세상,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그들의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모두가 존중받는 나라, 걸인, 병자, 장애인, 이방인 차별로 한을 가졌던 모든 사람들이 당당한 주인으로 서는 나라, 다시는 눈물도 없고, 아픔도 없는 나라, 그 꿈에 벅찼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나라를 펼치기 전에 그분은 당국에 의해 체포되고 죽임을 당하셨다. 그리고 터무니없는 죄 몫으로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예수가 가르쳐주신 그 나라는 아직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 나라는 자신들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 나라와 자신들의 현실 사이에는 엄청난 갭이 있다. 그 갭이야 말로 바로 ‘죄’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그분의 죽음이 단번에 모든 죄를 도말했다고 외치는 그 고백은 어떤 의미인가? 어떻게 해야 예수의 십자가가 거룩한 죽음이 되겠는가?
 
죽음 자체는 말이 없다. 더구나 타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경우 어떤 메시지를 남길 여유가 없다. 그냥 억울함과 고통을 남기고 사라질 뿐이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천군천사가 하늘 문을 열고 내려와 개입하는 일은 없었다. 그냥 말없이 초라한 죽음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단번에 완전한 제물이었다고 하는 고백은 무엇인가?

그가 살아계실 때는 “그가 하려니.....”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돌아가셨고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스승의 죽음 앞에 서있다. 분명한 것은 그의 죽음으로 그가 꿈꾸었던 세상이 끝장나 버린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들 안에 새롭게 작용하고 있음을 본다. 죽음의 세력 앞에 타협하지 아니하고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 자체가 이미 승리이고 단번에 완성된 것이다. 그들은 단번에 모든 악의 세력을 묶고 승리하신 결과를 본다. 그들은 예수의 죽음에서 세상의 모든 눈물과 아픔이 단번에 완성된 제물로 드려지는 결정적인 제사를 본다.

그 제사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동일한 아픔이 있는 현장에서 예수의 몸을 찢고 그의 피를 드리는 제사는 행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가인의 제사처럼 하나님께서 받으실지 아닐지 그 결과를 모르는 긴장된 제사는 아니다. 이미 단번에 결정적인 제사를 받으셨던 하나님의 판결이 선행된 제사일 뿐이다.

예수의 죽음 자체는 거룩하지 않다. 그냥 평범한 죽음일 뿐이다. 그러나 그 죽음의 거룩한 죽음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 그 죽음 안에 숨어있는 거룩한 뜻을 찾아내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마치 아들, 딸의 구속을 통해 처음에는 망설이던 어머니들이 최고의 투사가 되는 것처럼 십자가는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 주님의 십자가는 단번에 모든 인류가 가진 죄를 도말시키는 거룩한 죽음이 되게 해야 한다. 그분의 십자가는 세상 어디이든지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는 곳에 모든 아픔을 단번에 도말 시키는 거룩한 제사로 기능하게 해야 한다. 십자가는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행렬이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이 능동과 수동은 도치된다. 우리가 그의 죽음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의 피로 백성들을 거룩하게 만드신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에 힘입을 뿐이다. 신앙의 능동이 빠지면 한낮 주술이 되지만, 수동이 빠지면 그것은 단지 제 자랑일 뿐, 신앙이 되지 못한다. 히브리서는 단번에 완성된 제사를 말하지만 마지막 장 결론 부분에서 주님께서 완성하신 제사에 기쁨으로 참여하는 우리들이 드리는 찬양의 제사로 마감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자기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진 밖으로 나가 그에게로 나아가서, 그가 겪으신 치욕을 짊어집시다. 실상 우리에게는 이 땅 위에 영원한 도시가 없고, 우리는 장차 올 도시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양의 제사를 드립시다. 곧, 그분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를 드립시다. 선행과 친교를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사를 기뻐하십니다.(히 13:12-16)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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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신학아카데미 탈/향 봄학기 개강


2009년 봄을 맞아 신학아카데미 탈/향을 개강합니다.

수강을 원하시는 분은 02-363-9190으로 연락하시거나, yminjung@chol.com으로 수강자 성함/연락처/송금자 이름를 적어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수강료를 입금하실 통장은 신한은행 110-233-305565 (예금주 : 김진호)입니다.

* 장소가 협소하기 때문에 수강신청을 미리 하지 않고 오시는 경우 수강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강좌 하나
 바울과 현대 - 현대 철학과 현대 성서학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는 사도 바울 탄생 2000년을 기념해 우리신학연구소와 공동기획으로 바울을 인문사회학과 신학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강좌를 마련하였습니다.

• 장   소 : 한백교회 (5호선 서대문역 1번출구, 우체국 신한은행 사이 골목 50m)
• 수강료 : 6강 6만원 (수강신청 ☎ 02-363-9190,
yminjung@chol.com)
              마지막 7강은 열린 토론회로 따로 참가비를 받지 않습니다.
• 일   정 : 2009년 4월 3일 ~ 5월 15일(매주 금요일) 저녁 7:30~9:30


      - 1강   4.3   박진우 (사도 바울과 현대사상 I : 벤야민, 바디우, 아감벤의 바울 독해)
      - 2강   4.10  박진우 (사도 바울과 현대사상 II : 벤야민, 바디우, 아감벤의 바울 독해)
      - 3강   4.17  한보희 (무신론적 기독교와당파적 보편성- 지젝의 바울 독해)
      - 4강   4.24  김학철 (전장: 1세기 그레코-로만 세계 제국의 ‘복음’과 변두리의 갱신운동)
      - 5강   5.1   김학철 (사도: 바울의 삶과 그의 복음 배경, 내용, 구조)
      - 6강   5.8   김학철 (승전보: 바울의 복음과 ‘다른 복음들’)
      - 7강   5.15  왜 바울인가?(인문학과 신학의 만남) - 열린 토론회

• 강사 소개
   - 박진우 : 커뮤니케이션 사회학 / 파리5대학 사회학 박사
                 조르조 아감벤 저 <호모 사케르> 역자.
   - 한보희 : 연세대 비교문학 강사, 당대비평 편집위원.
                 슬라보예 지젝 저,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역자.
   - 김학철 : 신약학 / 연세대 신학 박사.
                 전국신학대학협의회 신약분야 최우수논문상 수상. (주제 : 사도행전의 바울)

• 미리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는 자료
   - 1강 : 알랭 바디우, <사도 바울 : '제국'에 맞서는 보편주의 윤리를 찾아서>, 새물결, 2008
   - 2강 : 조르조 아감벤, <남겨진 시간 :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관한 강의>, 코나투스, 2008
   - 3강 : 슬라보예 지젝, <죽은 신을 위하여: 기독교 비판 및 유물론과 신학의 문제>, 길, 2007
   - 4강 : 슈테게만,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 동연, 2009
   - 5강 : 게리 윌스, <바울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돋을새김, 2007
   - 6강 : 월터 윙크,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 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강좌 두울
 포스트 예수운동의 사회사 - 역사로 읽는 성서I

지난해 말 출판기념회로 소개해드린 바 있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를 토대로, 초기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를 사회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강좌입니다. 역사적 분석을 통해 그리스도교와 성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 교   재 : 에케하르트 슈테게만·볼프강 슈테게만 저,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동연, 2009)
• 장   소 : 한백교회 (5호선 서대문역 1번출구, 우체국 신한은행 사이 골목 50m)
• 수강료 : 8강 8만원 (수강신청 ☎ 02-363-9190,
yminjung@chol.com)
              (이 강좌는 회원강좌이므로 CMS 후원 신규 신청자와 기존 후원자는 무료입니다.)
• 일   정 : 2009년 3월 17일 ~ 5월 19일(매주 화요일) 저녁 7:30~9:30


       첫째 마당      3.17   1세기 지중해 연안의 경제와 사회
       둘째 마당      3.24   팔레스티나에서 유대교의 사회사, 그리고 예수 따름 (1)
         (휴강)        3.31          (휴강)
       셋째 마당      4.7     팔레스티나에서 유대교의 사회사, 그리고 예수 따름 (2)
       넷째 마당      4.14   팔레스티나에서 유대교의 사회사, 그리고 예수 따름 (3)
       다섯째 마당   4.21   로마제국 도시들 안에 있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 사회사 (1)
       여섯째 마당   4.28   로마제국 도시들 안에 있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 사회사 (2)
         (휴강)         5.5          (휴강)
       일곱째 마당   5.12   로마제국 도시들 안에 있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 사회사 (3)
       여덟째 마당   5.19   지중해 세계와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여성의 역할과 사회적 상황
 
• 강 사 : 김진호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당대비평』편지주간, 한백교회 담임목사 역임
                       『예수의 독설』,『반신학의 미소』,『예수역사학』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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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09.03.31 06:0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바울과 21세기 사상가들과의 대화’는 현재 미국내 진보신학 진영 내부에서도 뜨거

    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는 이슈입니다. 20세기 사상계를 지배했던 일군의 프랑스 철

    학자들 (라깡, 알튀세, 들뢰즈, 레비나스, 데리다 등)이 사라진 지금, 그들의 대를

    잇는 바디유, 아감벤, 네그리, 지젝 등, 21세기 사상가들은 공히 기독교, 특히 바울

    에 주목합니다.

    특별히 미국 사상계 내에서는 Standford 대학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바울에 대한 현

    대사상가들의 해석을 꾸준히 생산해 내며 그 열기와 관심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요

    즘 많이 읽히는 바울과 현대사상과 관련한 서적중에서 대표적 저작이라 할 수 있

    는 바디우의 <St. Paul>, 아감벤의 <Time that remains>, 제닝슨의 <Reading

    Derrida/Thinking Paul>등이 모두 Standford 대학 출판사에서 시리즈물로 나온 작

    품들입니다.

    미국내 신학교 중에서는 제가 재학중인 시카고 신학교가 드물게 현대사상과 신학

    의 대화를 정식 학과목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단일 신학교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니

    체, 데리다, 맑스, 푸코, 레비나스, 지젝 등의 사상가들과 신학과의 대화를 도모하

    는 과목들이 개설됩니다.

    시카고 신학교에서 바디우와 아감벤, 지젝등 바울관련 이슈들을 다루는 과목은

    Marx class입니다. 지난 학기 <Reding Derrida/Thingking Paul>의 저자

    Jennings 교수님의 Marx class에 참여했는데 맑스의 저작들과 레닌의 저작들을

    읽고 나서, Post Marx에 관련된 독해를 David Harvey의 <condition of

    postmodernity>, 로쟈 룩셈베르그 <자본축적론>, 알튀세 <맑스를 위하여>, 데리

    다의 <맑스의 유령>, 그리고 바디우, 아감벤, 지젝 순으로 진행했는데, 그때 읽었

    던 책이 바디우의 <St, Paul> 과 아감벤의 <Time that remains>, 그리고

    <theology and Zizek>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바울이 200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유령처럼 부활하여 담론의 중심에 서

    있는가? 작년 맑스세미나의 후반부 주제이기도합니다.

    지금의 상황을 20세기 말 포스트모더니즘의 광풍이 휘몰아친 이후 일체의 진리가

    상대화된 상황이고, 아울러 사회주의 붕괴 이후 자본에 의한 전 지구적 재편이 완

    료된, 오직 자본의 논리만이 보편적 질서로 자리 잡은 상황이라고 가정할 때, 이러

    한 극단적 상대주의와 극단적 보편주의 속에서 인류가 해방이라는 원칙과 그를 위

    한 혁명을 다시 사유할 수 있는가? 에 대한 바람에서 바울에 대한 독해는 다시 시

    작되고 있는 듯합니다. 다시 사건과 주체, 그리고 보편을 이야기 하면서 말입니

    다.


    저도 탈/향 강좌 <바울과 현대>에 참여해 배우고 싶어지는군요.

    나중에 자료 나오면 제게도 한부 보내주십시오.


    Peace


    시카고에서 이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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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소개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 폭력과 추방의 시대, 촛불의 민주주의를 다시 묻는다, 당비의 생각 02』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

산책자 펴냄

출간일 : 2009-03-06

정   가 : 13,000원


본 연구소 연구실장인 김진호 목사님이 기획에 참여하고 회원인 정용택 님이 필진으로 참여한 '촛불'에 대한 책이 새로 나왔습니다.



* 알라딘 책 소개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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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대칭, 이명박과 여호야킴 그리고 미네르바와 우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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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피투성이 남자는 쇠사슬이 묶인 맨발로 예루살렘 거리를 난폭하게 끌려 다닌다. 병사들이 살벌하게 도열하고 있는 광장에 도달하자 또 다시 고문이 시작된다. 형틀에 묶고, 곳곳이 상처투성이인 몸에 다시 칼로 난도질을 한다. 그리고 채찍질이 이어진다. 칼날에 뜯겨나간 피부는 채찍이 닿자 허공으로 핏물이 흩어져 나간다. 고통에 죽을 듯 고성을 지르던 남자의 소리가 사그라든다. 죽은 듯 축 늘어진 몸둥이로 찬물 한 바가지가 퍼부어진다. 가늘게 뜨인 눈을 확인하자 다시 채찍질이 시작된다. 핏방울이 튀어, 형리의 상체를 벗은 몸둥이, 팔뚝,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어 마치 지옥의 사자처럼 보인다. 형틀에 묶인 남자의 몸둥이는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헤어져 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더 이상 깨어나지 않는다.

‘그가 죽었다. 그가 죽었다. 그가 죽었다.’ 형리가 소리치고, 광장 곳곳에 도열한 병사들 앞의 전령이 백성을 향해 소리친다. 그리고 백성들이 수근대며 어떤 이는 크게 또 어떤 이는 나지막하게 소리친다. 군대의 나팔수가 째질 듯 죽음을 고시하는 음을 내고, 고수들의 난장 같은 북소리가 이어진다. 광장에 운집한 군중 모두에게 그의 죽음은 이렇게 고지된다. 그리고 순식간에 도시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그의 목을 잘라 광장에 걸어놓고 시신은 키드론 골짜기에 내던져버린다.

여호야킴 왕이 즉위한 지 몇 달이 안 된 시기에 벌어졌던 한 사건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야기로 재현한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연도로 표시하면 아마도 그가 즉위한 주전 609년 9월부터 이듬해 초 사이에 발생했던 사건이다. 왕은 집권한 직후부터 이렇게 자기를 반대한 자를 가혹하게 처벌함으로써 어떠한 반대도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만천하에 선포하였다.
처형당한 남자는 우리야라는 이름의 예언자인데, 그에게 붙여진 죄목은 야훼의 예언자를 참칭하여 왕을 비방하고 나라에 재앙이 내릴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백성을 호도하였다는 것이다. 「예레미야서」에 단 네 개의 절(26,20~23)로 압축되어 묘사된 내용에 따르면, 검거령이 내리자 우리야는 이집트로 도주하였고, 왕이 파견한 관리에 의해 압송되어 처형당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주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는데, 그가 바로 기럇여아림 사람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였다. 그도 예레미야와 같은 말씀으로, 이 도성과 이 나라에 재앙이 내릴 것을 예언하였다. 그런데 여호야김 왕이, 자기의 모든 용사와 모든 고관과 함께 그의 말을 들은 뒤에, 그를 직접 죽이려고 찾았다. 우리야가 이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여 이집트로 도망하였다. 그러자 여호야김 왕이 악볼의 아들 엘라단에게 몇 사람의 수행원을 딸려서 이집트로 보냈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우리야를 붙잡아 여호야김 왕에게 데려오자, 왕은 그를 칼로 죽이고, 그 시체를 평민의 공동 묘지에 던졌다.

이집트 운운하는 얘기를 표현 그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행보는 모세를 연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의 죽음을 애석해하던 대중이 그렇게 기억했을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곧 그에 관한 대중의 기억의 진실은 제2의 모세를 잔혹하게 처형한 왕이 모세, 곧 야훼의 백성들이 가장 존경해마지 않던 조상이자 영웅을 해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반체제적 이해가 함축되어 있다. 이것이 훗날 예레미야 예언자의 신탁집을 만들던 일부 지식인 집단에게 수집되어 간략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선포했다는 ‘재앙’에 관한 신탁에 주목해 본다. 말했듯이 이때는 여호야킴 왕이 즉위한 직후다. 당시는 유다 왕국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했던 시기다. 결과만 간략히 말하면, 왕국이 처음으로 번영을 구가하였다가 국제정치로 인한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게 되었고, 이때 즉위한 왕인 여호야킴의 정책은 결국 국가를 회복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 이후 20년 만에 왕국은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다. 그의 정책은 한 나라의 운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 있으며, 그 변란 중에 백성들이 겪었던 뼈를 깎는 아픔의 직접적인 원인일 수 있는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겠다. 그로부터 100년 남짓 거슬러 올라가면 유다 왕국의 역사에서 최초로 번영의 시대가 도래한다. 그때는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의 패권국가의 하나였던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여(주전 722년), 수많은 유민이 남하하는 일이 벌어졌다. 황량한 산악지대에 위치한 유다 왕국[각주:1]에는 갑자기 인구가 몇 배나 늘었고, 당시의 통치자인 히스키야 왕(주전 727~698년)은 이들을 수용하여 남아돌던 비경작지역을 개간하여 왕실 사유지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아마도 거기서 발생한 수입으로 도성에 왕궁 및 사회적 공공시설을 건립함으로써 부유하던 유휴노동력을 사회적으로 흡수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족화하던 귀족은 견제되었고, 대중은 왕실에 우호적인 세력으로 주체화되어 유다 왕국은 비로소 강력한 왕권제 사회로 정착하게 된다. 국가발전과 계층균형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오늘 한국의 MB 정부의 ‘대운하 정책’이나 ‘4대강 살리기 및 주변정리사업’으로 표상되는 이른바 ‘녹색뉴딜 정책’이 건설규제완화와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건설재벌과 실질구매력 있는 부유층에 치우친 정책이라는 사실과 비교하면, 위와 같은 히스키야의 정책은 보다 진정한 뉴딜의 고대적 버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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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조형 = 손문상 화백)

아무튼 이때에 유다 왕실은 문서활동이 본격화되었고, 귀족계층으로 이루어진 구관료층 대신 ‘서기관’이라는 신흥관료층이 대두한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역사가 쓰이고 왕실신학이 발전하게 된다. 이것을 역사가들은 ‘히스키야의 개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아시리아에 의해 히스키야 왕은 사실상 무력화되고 그를 승계한 므낫세 왕(주전 697~642년) 시대에 귀족당파적 반개혁의 시대가 거의 반세기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므낫세를 계승한 아몬(주전 642~640년)이 궁중암투에 의해 살해된 뒤, 히스키야 당시 굳건히 왕당파로 편입된 민중세력인 암하아레츠(땅의 사람들)가 주축이 되고 서기관과 왕실사제 층이 가담한 쿠데타로 요시아 왕(주전 639~609년)을 등극케 함으로써, 다시 개혁의 불길이 타오르게 된다. 개혁이 본격화된 기간이 재위 십여 년이 지난 뒤이니 실제로 개혁이 진행된 시기는 채 20년도 못되지만 상당한 성과가 있었음이 고고학적으로나 문헌적으로, 특히 성서 문헌 속에 반영되어 있다.

요시아 개혁은 아시리아에서 바벨로니아로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구조가 변동하던 이행기에, 하여 팔레스티나에 우연히 찾아온 권력의 공백기에 전개된다. 한데 이집트가 아시리아와 공조하기 위해 북진하는 과정에서 그 노선에 포섭되지 않는 요시아의 유다 왕국을 공격하여 왕을 처형함으로써 이 개혁은 다시 위기에 빠져든다. 이때 민중당파에 의해 옹립된 여호아하스(주전 609년)는 폐위되어 이집트로 압송당했고, 친이집트적 귀족당파가 옹립한 여호야킴(주전 609~598년)이 왕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집트와 아시리아 연합군은 주전 604년 히타이트의 수도였던 갈그미스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대패하여 바야흐로 바벨론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우리야의 재앙 선포는 바로 이 시기 직전인 609/8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런 시기에 여호야킴은 친이집트 노선과 반개혁주의-귀족주의 노선으로 집권한 정부의 상징적 우두머리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책이야말로 위기에 놓인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중세력의 반대가 격렬했음은 당연한 일이겠다. 우리야의 신탁은 바로 그런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

여호야킴 왕은 요시아의 정치가 위기를 초래했다고 믿었고, 자기의 정치가 위기를 타개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그렇다고 확고하게 믿었던 듯하다. 또 귀족세력을 위시한 보수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를 지지했다.

한데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의 세력의 견해가 타당한지를 진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반대 견해를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왕은 즉위하자마자 반대주장을 펴는 이들의 상징적 존재 하나를 처벌함으로써 자기의 단호함을 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예레미야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개혁지지파인 서기관세력의 비호 덕이었다(“예레미야는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보호하여 주었으므로, 그를 죽이려는 백성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6,24). 아무튼 왕은 반대를 설득하기보다는 처벌함으로써 자기의 정치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나는 이명박 정부를 그런 점에서 주목한다. 민주적 개혁의 시대는 지났다. 한국의 민주적 개혁은 성공적인 것도 있었고 위기를 초래한 것도 있었다. 아무튼 대중의 다수는 더 이상 민주적 개혁에 우호적이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내외적으로 위기에 직면하였다. 내적으로는 그의 보수주의적이고 반민중적인 정책에 대한 강력한 반대와 관련이 있고, 외적으로는 지구적 제국 시스템의 균열로 인한 위기다. 최근 그것은 지구적 자본의 위기로 표출되고 있다. 생산능력을 압도하는 소비욕구로 충혈된 세계를 구축한 자본이 초래한 위기다. 그리고 그런 위기에 취약한 나라들부터 위기는 표출되고 있으며, 한국은 바로 그러한 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의 하나다.

당연히 정부의 위기 대응 정책은 중요하다. 시민운동권과 학계에서 다양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조직화되지 않은 시민사회의 집합행동과 넷공간에서의 다양한 견해들이 제기되는 것은 위기의 강도를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겠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의견들의 다수는 정부의 전략이 파국에 직면한 사회를 더욱 위기에 노출되게 한다는 문제제기들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이명박 정부는 처음부터 이러한 반대에 대해 위협하고 처벌하는 방식을 고수했고 점점 더 강화하고 있다. 또한 자기들 식의 전략을 적당한 대화나 설득의 공론 과정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위기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펴면서 말이다. 하지만 실은 이들이 밀어붙이는 전략은 위기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는 본래부터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것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여기서 ‘실용’이라는 정부의 자기 원칙은 실종되었다. 또한 반대를 양산하고 있다. 반대를 강압적으로 대했던 여호야킴의 전철을 정부는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이러한 태도야말로 재앙을 불러오는 진짜 이유임을 증언하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1. 여기서 나는 익숙한 표현인 ‘남왕국 유다’, ‘북왕국 이스라엘’이라고 하지 않고, ‘유다 왕국’, ‘이스라엘 왕국’이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전자는 유다가 남쪽에 위치하고 이스라엘이 북쪽에 위치한 나라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리적인 친절함이 있지만, 이러한 표현들은 마치 팔레스티나에 두 개의 나라만 존재한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는 점에서 유태 중심주의를 함축하는 표현인 셈이다. 이는 오늘날 팔레스티나 지역의 주인이 역사적으로도 유태인이라는 날조에 가까운 역사관에 무의식적으로 공조하는 문제를 내포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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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5(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설교
본문: 고린도후서 3:4~6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형묵
(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꽤 오래 전부터 떠도는 이야기이지만, 천국과 지옥 사이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흉악해지다보니 지옥이 만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옥으로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급기야는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담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천국측에서는 당연히 보수를 요구하였으나 지옥측은 태연히 버팅기고 있었습니다. 천국측은 도리없이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측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 몰라라 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뱃심으로 그렇게 버티는지 천국측이 다그쳐 묻자 지옥측은 세상의 유능한 변호사가 다 자기네 소속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응수했답니다.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특정한 법조인들을 폄훼할 할 의도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문제, 곧 법적 논리가 지니는 근본적 한계를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이 우스갯소리는 법적 정의와 실체적 진실 사이에 괴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꼬집고 있습니다.

심오한 법철학 이론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법적 논리가 지니는 결함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쉽게 생각해 법적 논리는 그 나름의 일관된 논리와 그 논리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덧붙여짐으로써 완결됩니다. 그 논리는 그것을 주장하는 편에 유리한 조건에 따라 구성되며, 어떤 사건에 관련된 내용들을 완벽하게 재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명문화된 법조문에 의거해 그 시비가 비교적 분명히 가려질 수 있는 단서들을 중심으로 재구성됩니다. 여기에서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많은 단서들이 명문화된 법조문으로 시비를 가릴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부차화되거나 아예 사상되는 경우들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법적 소송은 진정한 의미의 실체적 진실보다는 완벽한 논리의 재구성 성패 여하에 그 판결이 좌우되는 경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더욱이 법적 판결이 이루어질 때 사회적 강자에게는 충분히 배려되는 것도 사회적 약자에게는 배려되지 않는 경우들도 허다합니다. 사회적 유력인사나 재벌 등이 범죄나 비리를 범했을 때 직접적으로 범죄 사건을 구성하는 요인 말고도 사회적 기여도 등이 폭넓게 감안되어 당사자가 형을 선고 받고도 그 집행을 유예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사회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범죄를 범했을 경우 그 동기나 정황 등이 충분히 헤아려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도 아무런 제약 없이 활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소한 좀도둑질만으로 완전히 인생의 행로가 뒤바뀌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통용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법의 집행이 재력이나 권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현실을 말합니다.

법적인 논리 자체가 지니는 근본적인 한계에 덧붙여 그 집행이 재력이나 권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면 법이 곧 정의라는 통념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법이 정의를 보증해주는 것도 아니요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주는 것도 아니라면 그 법은 제도적 폭력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즘 법을 만들고 그것을 집행하는 일에 관한 논란이 뜨거운 관심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수시로 법질서의 준수를 강조하고 있고, 대법관은 ‘촛불재판’에 지침을 내려 개별 판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국민의 정당한 권리 주장을 보장하기보다는 권력의 안위만을 보장하려는 의도와 직결되어 있는 사태들입니다.

국회에서는 ‘입법전쟁’이라는 이상한 말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어쩌다 법을 만들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 하는 사태에 이르렀을까요? 재벌의 언론사 소유를 가능케 하는 언론관계 법안들은 이미 통과되어 버렸고, 이 밖에 국민의 정당한 권리 주장 및 사생활 보호와 직결되어 있는 집회와 통신 관련법안, 재벌에게 더욱 큰 힘을 실어주는 금산분리 법안, 출자총액 제한 완화 법안, 민생과 직결된 교육세와 농어촌특별세폐지 법안, 수돗물 민영화 법안, 비정규직 법안 등등이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힘있는 이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고 힘없는 서민들을 더욱 옥죌 소지를 안고 있는 법안들입니다. 

법의 집행도, 법을 만드는 일도 온통 힘있는 사람들의 편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법이 곧 정의라는 통념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해 주는 사태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질서의 준수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겠습니까? 그것은 끽 소리 말고 하라는 대로 살라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사도 바울의 편지의 한 대목을 함께 읽었습니다. 한편으로 율법의 속박을 강조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그와 대비되는 믿음의 자유를 역설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고린도후서 3:6).

오늘 본문 말씀은 일차적인 맥락이 있습니다. 사도로서 고린도교회 교우들과의 관계를 밝히는 대목에서 이 말씀이 등장합니다. 오늘날에도 추천장 제도가 있지만, 그리스-로마 세계 안에서도 추천장이 널리 통용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와 고린도교회 교우들 사이에 문자로 된 그 어떤 추천장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역설합니다. 추천장을 내보여야 하는 관계도, 또는 추천장을 받아 그 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사이도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 만큼 서로 신뢰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아주 아름다운 언어로 고린도교회 교우들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표합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작성하는 데 봉사하였습니다. 이것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쓴 것입니다.”(고린도후서 3:3).

여기서 사도 바울은 문자로 기록된 그 어떤 추천장이나 편지가 필요하지 않은 까닭을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문자로 기록된 문서를 말하면서 한 걸음 나아가 율법의 조문을 유념하고 있습니다.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쓴 것’이라는 말은 율법과 믿음을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 바울의 일관된 논지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따라서 오늘 이 말씀에서 말하는 문자는 율법 조문, 곧 법률 조문을 뜻합니다. 저는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오늘의 현실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는 제도적 폭력 내지는 제도적 테러의 결과입니다. 법 조문에 의거한 폭력이요 테러입니다.
  
사도 바울은 때로 법의 운용과 집행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예컨대 사도 바울이 율법의 완성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율법의 긍정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남용을 문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보다 근본적으로 율법의 폐기를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법의 형식 그 자체, 법의 한계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제한적인 의미에서 법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법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하느님의 영을 말하고 있습니다. 법 질서에 순종하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을 따르는 삶을 구원의 희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삶이 우리의 구체적 현실에서 어떻게 가능할까요?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현실적으로 수많은 법의 제약 가운데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느님의 영을 따르는 삶을 추구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어떤 모양을 띠는지는 끊임없이 물어야 할 과제입니다.

하지만 우선 지금 당장 하나님의 영을 따르는 삶을 결단하고자 할 때 우리의 선택은 분명합니다. 적어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문자로서 법 조문에 우리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제약하고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법 질서를 준수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따르는 삶은 제도나 법조문 또는 문자의 격식에 매여 사람을 소홀히 하거나 죽이는 과오를 범하지 않는 삶입니다. 그 격식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삶이 아니라 그 모든 격식에 앞서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삶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에 이어지는 내용의 말미를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고린도후서 3:17~18).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후손이 모세의 율법을 대할 때 여전히 그들의 마음에서 너울 벗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그 너울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비로소 제거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영으로서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함을 얻는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역설합니다.

지금 읽은 이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놀라운 이야기 아닙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런 힘에나 내맡겨져 굴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누가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놀라운 영광에 이르게 되리라는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 영광에 이르는 삶을 소망하며 진정한 삶의 용기를 얻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웹진 <제3시대>

* 천안살림교회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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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준호
    2009.03.29 22:4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목사님 글 잘봤습니다. 은혜가 깔끔하네요^^

    - 부산에서 이준호 드림

내 생애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주례를 마치고

임보라
(향린교회 부목사)

1994년 함박눈이 내리던 3월24일 결혼을 했다.
내가 태어난 날도 하염없이 함박눈이 내리더니, 결혼하는 날에도 함박눈이 내린다고 '복이 많아서 그래' 하면서, 집안 어르신들이 덕담을 해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월이 지날수록 결혼을 결정한 이후의 과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누가 떠밀어서 한 결혼이 아니었건만,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겠다고 집안에 공표를 한 이후, 결혼은 당사자들의 몫이기보다는, 양가 부모님의 몫이 되었다. 
결혼예식을 할 장소 선정부터, 예단, 예물, 신접살림 마련 등, 학생이었던 두 사람은 이것저것 스스로 준비하고 마련할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내 경우 맏딸인지라, 집안의 첫 경사인 만큼, 내 중심이 아닌 부모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노래운동을 한다고 이곳저곳 지방 공연을 다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결혼을 누가 하는 거냐? 네 살림인데 관심 좀 가져라’라는 말씀을 부모님으로부터 들어야 했다.
거기에 덧붙여 그때 내가 얼마나 주체적이었으며, 또한 결혼이라는 주제에 대해 두 사람이 고민하며 토론했던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쉬울 수밖에....

2008년 가을, 내 평생 처음으로 “주례”라는 것을 부탁받았다.
목사가 된 이후, 장례를 비롯해서, 경조사를 집례할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결혼주례’ 만큼은 난생 처음인 나로서는 그 부탁이 생소하기도 하고, 버겁게 다가왔다.
게다가 난 부목사가 아닌가. 담임목사님이 자리를 비우신 것도 아닌데, 내가 교회 청년들의 주례를 선다는 것 역시 한켠 부담스러웠다.
이 부담스러움을 담임목사님과 나누니 ‘주례라는 것은 결혼하는 당사자들이 의미를 갖고 부탁을 한 것인 만큼, 내 목회의 일부로 여기세요.’라는 격려 담긴 답변이 돌아왔다.

언젠가는 주례를 해야겠지만, 나이도 아직 어린 것 같고, 또 여전히 여성 주례자가 희귀한 한국사회이기에 두 커플에게도 ‘부모님과도 상의했냐고?’ 몇 번씩이나 확인했다.
사실 부모님들은 결혼식 당일에서야 만나게 되는데, 예복가운을 입기 전, 인사를 드리면 아버님들의 경우, 매우 어색해 하고 당황스러워 하시는 모습을 대하게 된다. 하객들 역시도 준비를 위해 앞에서 왔다갔다하는 나를 향해, 다양한 느낌이 담긴 시선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수없이 보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여성, 그리고 여성목회자, 혹은 여성 주례자에게 갖는 좋게 말해 신선함, 사실은 생경함과 편견이 아직은 이 사회 가운데 여전히 남아 있음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결혼주례도 그렇지만 장례집례는 때로는 더 깊은 편견이 드러나기도 한다. 내 스스로는 일정 정도 극복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인생주기 중, 결혼, 장례 등을 여성이 집례하는 것에 대해 터부시하는 관행이 사라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할 것인지....          
    
이혼율이 높다고 호들갑을 떨면서도, 정작 그 이유는 무엇인지 제대로 묻지 않는 사회가 한국사회이다. 그저 겉으로만 보이는 현상에 대한 의례적인 진단을 내릴 뿐.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여성인권운동을 하고, 운동이 아니더라도 한국사회 내에 뿌리박혀있는 가부장제와 유교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그 뿌리 깊음을 확인해야만 하고, 거기에 박제화된 기독교의 교리까지 동원되어 고정된 여남의 역할을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장소가 다름 아닌, 결혼식 때였다는 고백을 자주 듣곤 한다.
인구가 줄어가고 있으니 자식 많이 낳아라 신신당부하고-심지어 적어도 4명은 낳아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도 들은 적이 있다. 그게 여성의 마땅한 의무라고-, 결혼하는 당사자들의 성장과 만남의 과정은 쏙 빠진 채, 학력과 경력만을 나열하는 것에는, 나부터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이 식상할 뿐 아니라, 때로는 분노를 느낄 때도 있었을 것이다. 의례적인 주례는 차라리 없는 것이 좋겠다하여, 주례가 없는 결혼식도 많아지고 있다는데(한겨레 21, 727호) 여성의 눈으로 모든 것을 다시 보자고 부르짖고 있는 나는 과연 어떻게 이 숙제를 풀 수 있을 것인지, 정말 많은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결혼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니, 제일 많이 등장하는 것이 ‘결혼 후 재테크’관련이어서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결혼의 의미가 두 사람의 재테크에 있다니, 아무리 물질 중심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라지만, 해도 너무한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풀어내는 책자들도 대부분 “남자가 여자를 위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사실 앞뒤를 읽어보면 그 부분만 떼어낼 것이 아닌데 말이다-이라는 것이 주된 줄거리인 경우가 많았다.   

결혼 주례 어떻게 준비하나? 라는 책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결혼 전후를 되돌아보면서, 내가 아쉽게 생각했던 것들을 메모하는 것에서부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왜 하려는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결혼제도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 두사람이 어떻게 다른지, 혹은 어떤 면이 같은지에 대한 테스트, 연애 시작의 과정, 연애 과정 중의 위기와 극복, 어린 시절의 이야기, 가족, 친구들에 대한 기억들, 신앙관, 결혼 후 닥칠 일상에 대한 점검 등등 두 사람이 미리 나누면 나눌수록 좋을 이야기 거리들과 함께, 두 사람의 특별한 날인 결혼예식을 그저 그런 순서로 진행할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은 물론 함께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축제로 만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당사자들과 의논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갖기로 했다.

내 생애 첫 주례는 지영이와 상연이의 결혼식이었다.
독일 유학 중인 상연이가 한국에 있는 동안 결혼식을 올려야 했기에, 너무도 짧은 시간 모든 것이 결정되고 준비되었다.
오랜 기간, 연애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된 이 두 사람과는 네 차례의 만남 시간 밖에 갖지 못했지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진지하게 함께 얘기를 나누었다.
그 가운데 한번은 결혼을 앞두고 있는 또 다른 커플, 영은이와 훈호와 함께 네 사람이 모여, 연애 이야기와 결혼 후, 일상에서 부딪힐 수 있는 여러 주제들을 놓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있었는데, 유쾌하면서도, 솔직담백했던 이야기들이 오고간 시간이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다.

지영이와 상연이의 결혼식은, 첫 경험이었기도 했거니와, 검찰청에 있는 강당에서 진행되다 보니, 그 주변 분위기로 인해 더 긴장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시간가량 진행된 긴 예식 내내 대부분의 하객들이 자리를 지켜주어 참 감사했다.
시종 여유있는 웃음을 잃지 않았던 지영이의 모습, 반면 긴장하여 지영 손도 잡지 않고 혼자 휙~하니 가버렸던 상연이의 모습이 생각난다. 뒤에서 얼마나 터지려는 웃음을 참았는지... 

영은이와 훈호는 결혼 준비기간이 여유가 있던 편이라, 만남의 횟수가 7번에 이르게 되었다. 여성인권 활동과 공부모임을 통해서도 평소 자주 속 얘기들과 생각들을 나눌 기회가 있어 왔지만, ‘결혼’이라는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여러 차례 나누다보니, 어린 시절 상처가 되었던 기억을 나누는 더 깊은 단계로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영은이를 봤을 때부터 결혼 생각이 들었다는 훈호는 결혼식 시작 때부터 울고 싶었다더니, 결국 축복기도 할 때 쯤 눈물을 터트려 그 모습 지켜보던 나까지 울컥하게 했다.


두 커플과의 나눔 속에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삶에서 서로를 보듬어 가야하는지, 두 사람을 둘러싼 세상과 이웃 그리고 하느님과 어떻게 소통해 나가야 할런지의 문제는 비단 결혼을 준비하는 두 사람 뿐 만 아니라, 주례를 맡은 내 자신도 끊임없이 되짚어보아야 할 과제이니 말이다.

결혼식은 끝났지만, 우리에게 펼쳐질 시간이 더 많기에, 함께 나누고, 서약한 것들을 얼마나 진지하게 삶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몇시간이고 마주 앉아 함께 나눌,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대가 더 많다.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우리가 꿈꾸며 일구어 가고자 하는 하느님 나라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나눔으로 또 나눈 바대로 살아내려는 우리의 삶 속에, 그리고 그것을 나누는 우리의 나눔 속에 이미 와 있다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 웹진 <제3시대>

* 향린교회 http://www.hyangli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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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에 대하여

강창헌
(신앙인아카데미 사무국장)


성직자나 수도자가 그 신분을 버리고 세칭 ‘환속’했을 때, 우리는 보통 “옷을 벗었다.”는 표현을 쓴다. 어디 성직자나 수도자만 ‘옷’을 입고 벗겠는가마는, 어떻든 이 표현에는 성직이나 수도직이 하나의 ‘옷’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사실 우리도 옷을 단순히 입을 거리로만 인식하기보다는 지위를 나타내거나 멋을 표현한다고 여기기에 기왕이면 ‘좋은 옷’을 입으려고 한다. 좋은 옷이 어떤 옷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고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그것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아마도 자기에게 맞는 옷인가 하는 것일 게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알몸의 상태로 와서 자기에게 맞는 ‘옷’을 찾는 과정이며, 종국에는 그 옷의 주인인 육신이라는 옷을 벗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좋은 옷에 열광하는, 이른바 문명사회일수록 동시에 알몸에도 환장하는데, 아마도 이것은 ‘좋은 옷’이라는 포장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인간 욕망의 반영일 것이다. 옷은 아무리 좋아봐야 옷일 뿐이며,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그것은 언젠가 벗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옷을 위해 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을 위해 옷이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옷의 기원과 종착지는 알몸이다.

오늘날에는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이 입는 옷 속에서 청빈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지만, 알다시피 그들의 옷이 가리키는 바는 겸허함과 가난이었다. 천주교 사제들이 입는 검은 수단은 자신의 봉헌과 죽음을 의미하며, 수도자들의 수도복에는 청빈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러한 사정은 불교의 경우에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스님들이 입는 가사는 본래가 똥걸레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옷을 입다가 떨어지면 기워 입고, 그 다음에 걸레로 사용하다가 더 이상 걸레로도 사용할 수 없게 되면 똥을 닦아서 버렸는데, 초기 수행자들이 그런 것을 주워서 기워 입었던 게 가사이다. 역설적이지만, 몇 십 만원을 호가한다는 가사는 본래 무소유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보면, 아무래도 오늘날 종교인들이 입는 옷은 종교의 본래 의미를 왜곡하고 포장해버리는 기득권자들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것만 같다. 종교인들의 옷에서 묻어나는 어떤 특권이나 차별성은 종교의 타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는데, 종교인들의 옷만큼 “존재를 배반한 삶”을 잘 보여주는 예도 별로 없을 것이다. 하기는 그렇게 비싼 옷을 걸치고 있으니 옷을 벗어 알몸으로 세상과 만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다. 거룩한 장소에서만이 아니라, 예토(穢土)에서도 ‘신발’을 벗는 겸허한 종교인을 만나기란 이제 영영 틀려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김수환 추기경이 육신의 옷을 벗은 지 한 달이 지났다. 명동성당과 추기경이 묻힌 성직자 묘지에는 그를 추모하는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추기경을 따라서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서약한 사람이 급격히 늘었고, 천주교회의 예비자들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국장을 방불케 했던 추기경의 장례식에 이어 엄청난 추모예식과 그에 따른 천주교회의 ‘성공’ 소식을 접하고 있자니, 천주교 신자로서 불편한 마음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추기경에 대한 평가는 역사와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지만, 그를 추도하는 방식이 꼭 앞에서 이야기한 종교인의 ‘옷’과 빼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죽은 자와 산 자에 대한 예의는 과연 지켜질 수 있는 것인가?

정황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추기경의 죽음에 대한 기념은 용산 철거민들이 당한 죽임을 덮는 데 크게 작용했다. 기념은 죽임을 상당부분 은폐시켜 주었다. 천주교회가 추기경의 죽음을 통해서 좋은 이미지를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장례를 성공적으로 조성해가면서, 그리고 그의 죽음을 이용해 사람들의 기억에서 용산참사를 제거하려는 시도들 앞에서, 용산에서 희생된 철거민들은 점점 빠르게 잊혀져갔다. 초호화판 거대 신전을 짓기에 앞서 정부와 토건재벌과 용역깡패가 철거민을 상대로 벌인 우발적(?) 희생제의는 너무도 쉽게 망각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이러한 기념과 망각을 통해서 이득을 보는 이들은 누구일 것인가? 그들은 장례식에서 예를 갖춘 다음 뒤돌아 나와서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다.

추기경은 박정희의 장례식장에서 “이제 대통령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주님 앞에 선 박정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를 남겼다고 한다. 이 기도문은 추기경 자신을 포함해 ‘옷’을 걸치고 살다가 간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기도이다. 우리도 그를 따라서, “이제 추기경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알몸’으로 주님 앞에 선 김수환을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기도드릴 수 있을 것이다. 추기경과 용산에서 죽임을 당한 철거민들은 이제 옷을 벗고 알몸으로 그분 앞에 서 있을 것이다. 알몸으로 그분 앞에 서 있는 그들의 마음, 우리의 가련한 마음은 아마도 시인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듯
우리들은 인생을 떠난다.
이미 끝난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지금,
이 시간의 물결 위
잠 못들어
뒤채이고 있는
병 앓고 있는 사람들의

그 아픔만이
절대한 거.” (신동엽의 금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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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의 지옥과 천국 :  영화 <똥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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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영화 프로듀서, 감독)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인가?

최근 독립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300만 관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가운데, 1억원에 못미치는 적은 예산으로 고군분투 제작된 <똥파리>라는 독립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연달아 최고상을 받으며 국내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런 유례 없는 성과는 현재 독립영화를 둘러싼 환경에 비추어 볼 때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여전히 극장을 확보하지 못해 개봉조차 할 수 없는 독립영화들도 많은데, MB정권하의 영화진흥위원회는 2009년 들어 '다양성영화 개봉지원사업' 마저 폐지하였다. 80년대 말 영화운동의 차원에서 처음 만들어진 ‘독립영화’라는 명칭은 이제 ‘다양성 영화’라는 신자유주의적 명칭 하에 비상업, 비주류, 저예산, 예술영화 등과 함께 두루뭉술하게 묶여져 불리고 있다. 독립영화제작지원 예산은 몇 년째 6억원으로 고정된 반면, 정부의 지원정책은 '영화산업'으로만 집중되고 있는 현실이다. 멀티플렉스에서의 무한경쟁이라는 배급구조 속에 독립영화가 놓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물론 독립영화 역시 상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와는 달리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국가 이데올로기로부터의 독립, 산업으로부터의 독립 등을 기반으로 하기에 그 기획과 제작, 유통의 과정이 차별적이고 보호되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불편한 영화, 똥파리

독립영화는 관객에게 불편하다. 거친 화면, 지루한 전개는 독립영화 하면 늘상 떠오르는 이미지다. 한마디로 완성도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나처럼 영화를 제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영화 그 자체보다도 영화를 만들어가는 현장의 총체적 모습까지 함께 읽혀 묘한 감흥을 일으키기도 한다. 상업영화를 볼 때는 제작사, 투자사의 입김이 감독의 초심을 어떻게 변질시켜 나갔는지, 감독이 어디쯤에서 타협했는지 읽힌다면, 저예산 독립영화를 볼 때는 서투른 아마추어리즘 속에서도 빛나는 주제의식을 발견하며 때로는 제작비의 곤궁함 속에서도 꿋꿋하게 완성해낸 감독의 뚝심을 읽을 때 박수를 쳐주고 싶은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 <똥파리>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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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 제작지원과 CJ-CGV 인디펜던트 프로모션 제작지원을 받아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스탭 전원의 노개런티에도 불구하고 막바지에서는 감독이 전세방을 빼 제작비로 써야 할 만큼 힘든 상황에서 완성되었다. 30여편의 독립 장,단편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이름을 먼저 알린 양익준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쓰고 연출함으로써 장편영화 감독이 되었다.

물론 여러 가지 픽션이 가미되었지만 자신의 문제, 자신의 가족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독하다. <똥파리>의 주인공 상훈을 꼭 양익준 감독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웬만한 용기가 없이는 힘든 일이다.

글쓰기든, 영화 만들기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정신분석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분석가는 작가가 될 것이고, 분석주체(환자)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그 분석가는 제대로 기능을 못할 수도 있다. 작가이자 배우로 이중의 역할을 한 양익준은 어떠했는가?

주인공 상훈은 똥파리다. 더러운 똥을 먹고 사는 똥파리로서 그는 용역업체에서 일한다. 용역업체에서 하는 일이란 사채 빌려쓴 사람 찾아가 온갖 협박과 폭력으로 수금해오는 일, 노점상 철거 용역깡패, 대학에서 농성하는 학생들 구타하여 해산시키는 일 등 다양하다. 자본사회에서 누구나 그렇지만 그에게도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노동과 생산의 댓가로 주어지는 돈이 아닌, 내몰린 자들을 폭행하고 갈취하는 돈이기에 그 돈은 더러운 똥이 된다.

똥파리는 웽웽거리며 듣기 싫은 소리를 내듯이, 그의 언어의 대부분은 욕이다. 그는 좀체로 웃는 법이 없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으로 남자건 여자건 가리지 않고 욕과 함께 주먹이 나간다. 그에게는 법이 없다. 일정한 궤도 없이 요란스레 비행하는 똥파리다. 그의 욕설과 폭력 앞에서 수많은 약자들이 무릎을 꿇지만 그래봤자 똥파리의 운명이다. 파리 목숨이란 말이 있듯이 파리채 한 방이면 쭉 뻗어버리고 마는 신세. 그 똥파리는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죽기 위해서 그렇게 온 몸으로 절규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그것이 온통 자신을 옥죄고 있다. 술만 마시면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 그가 중학생 때 목격한 여동생과 어머니의 죽음. 그들은 가족 내 약자로서 폭력의 희생자이다. 그의 아버지가 살인죄로 15년 감옥살이를 한 기간은 그 소년이 성인이 되는 시간으로서, 영화 속에서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피해자, 희생자임에도 이 사회에서 아무런 보살핌 없이 성장하여 어떤 사유도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당한 폭력의 수행자로 자리바꿈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살았으나 죽은 거나 다름없는 존재인 늙고 힘없는 아버지를 ‘생각날 때마다’ 찾아가 짓밟는 게 일상이 되었다.

루이 알튀세는 근대 이전과 이후 공히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로서 ‘가족’을 들고 있다. 가족이란 인간들 사이의 가장 원시적인 위계질서가 성립되는 곳이다. 가족적 질서란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독특한 질서로 동물적 야만성을 ‘인륜’으로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훈의 가족은 그 위계질서마저 무너져 있다. 그의 상징계는 일찍이 붕괴된 셈이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괴로워하는 건 여전히 눈 앞에서 현존하는 아버지의 존재다.

용역업체 사장이기도 한 친구 만식은 “이런 말하면 뭐하지만 어쨌건 하나 남은 피붙이 아니냐? 나 같은 고아새끼는 그런 아버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잘해드려 임마!” 라고 말하며 아버지에게 갖다드리라고 돈을 쥐어주곤 한다. 그럴 때마다 상훈은 냉소하며 아버지에게 찾아가 보란 듯이 짓밟아버린다. 그리고 절규한다. “왜 그랬어! 왜 그랬냐구! 왜 그랬어?” 상훈은 결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똥파리로 살아가는 지금의 상훈에게 그런 아버지는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자살하려고 손목을 긋고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병원으로 업고 가며 “죽지 마...지금 죽으면 안 돼..지금 죽으면...난...뭔데? 난 왜 이렇게 산 건데?” 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리고 만식의 말대로 하나 뿐인 피붙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피를 나누어 살리고 나서, 비로소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똥파리로 살아가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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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에게 지옥이었던 가족이지만 그는 자기도 모르게 천국으로서의 가족을 꿈꾸어 왔다. 그 구성원은 상훈과 마찬가지로 가정폭력의 상처를 안고 있는 자들이다. 혼자 예닐곱살 된 아들을 키우며 힘겹게 살고 있는 이복 누나와 어린 조카, 그리고 알 수 없는 동질감 속에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여고생 연희. 상훈은 꼬마 조카에게 찾아가 자기 나름대로의 아빠 역할을 해주곤 한다. 연희와 꼬마 조카와 함께 맘껏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그는 천국 같은 가족을 경험한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이런 환상 속에서 미소 짓는다. 거기엔 누나와 조카, 연희, 그리고 상훈을 따라 용역업체를 접고 식당을 차린 친구 만식이 새로운 가족이 되어 함께 모여 있는 모습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어머니와 제자를 새로운 가족으로 맺어주고 떠나듯이 말이다.

영화 <똥파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해자나 피해자나 할 것 없이 모두 이 사회의 희생자들이다. 인간적인 삶을 담보해주지 못하는 세상,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서로 물고 뜯기는 소외된 자들, 무력한 자들, 살려고 발버둥치지만 끝내 파리 목숨이 되어 죽고 마는 자들...모두 똥파리 같은 존재들이다. 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똥파리는 계속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된 상처를 적극적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억압적인 장치들에 대항하면서 진정으로 능동적인 주체로서 살아남아야 한다.

후일담이지만, 영화가 만들어진 후 불편했던 양익준 감독의 가족 관계가 좋아졌다고 한다. 자신의 실재와 맞닥뜨리는 고통스런 과정을 통과해낸 듯하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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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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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ineluna
    2009.03.24 11:5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된 상처를 적극적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억압적인 장치들에 대항하면서 진정으로 능동적인 주체로서 살아남아야 한다...

    마지막 문단에서 힘을 얻고 갑니다.결국 자신의 문제는 자신의 몫으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겠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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