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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노동』
- 고통과 노동의 창조적 존재론

지은이 : 안토니오 네그리
옮긴이 : 박영기
펴낸날 : 2011년 11월 25일
분  야 : 인문 비평
판   형 : 신국판
정  가 : 13,000원
펴낸곳 : 논밭출판사

책소개

1982년 네그리가 감옥에 수감되 있으면서 쓰기 시작한 <욥의 노동>은 고통의 존재론과 메시아 계보학을 통해서 낡은 척도를 부수고 탄생하는 새로운 주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은 고달픈 노동과 고통의 연속이다. 그 고통이 억울한 고통일 때가 너무도 많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욥’이 된다.

고달픈 노동과 육체적 고통으로 절규하는 민중들, 절규하는 메시아. 네그리는 이 책에서 고통당하는 이들이 기존의 척도나 권력에 맞설 때 그 힘potenza은 신적인 것[메시아적인 것]이 된다고 주장한다. 고통과 노동, 사랑과 연민을 통해 구성된 메시아적 주체는 역사를 생성으로 전화시키고, 세상을 재창조한다.

보통 자본주의의 본질은 노동(력)의 상품화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런 노동을 ‘타자를 위한 사용가치로서 육체적 활동의 대여’라고 개념 정의할 수 있는데, 자본주의 속에서 노동의 상품화는 노동에 있어서 자율(자유)과 창조성, 연대성을 억압하고, 고달픔과 고통만을 증폭시킨다. 이런 생산의 지옥 속에서 어떻게 우리는 해방의 길을 찾을 것인가?

네그리는 그 통로가 고통의 경험을 통한 주체화(메시아적 주체화)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 모델이 바로 욥이다. 네그리에게 욥은 고통의 경험을 통해 기존의 척도(변신론, 변증법)를 고발하고, 마침내는 척도에 대한 새로운 정초를 세우는 메시아의 상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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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분리 신학에는 복음이 없다
- 「로마서」 13장 1절, ‘권세에 복종하라’의 역사적 자리 찾기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도시 대중은 네로 황제(재위 54~68)에게 커다란 지지와 환호를 보냈다. 전임자들과는 달리 대중을 위한 여러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던 덕이다.[각주:1] 옥타비아누스 때보다도 많은 공공건설사업을 벌임으로써 부를 재분배하는 데 힘썼고, 연극, 검투, 기타 축제 등 각종 대중문화 장려책을 통해 대중의 정치적 능동성을 강화하는 데 힘썼다. 또한 상인들의 농간에도 불구하고 곡물가격을 안정되게 낮은 가격으로 유지하기 위해 식민지로부터 들여오는 식량의 안정된 물류체계를 구축하는 데도 큰 노력을 쏟았다.

뿐만 아니라 대중에 대한 귀족의 횡포를 통제하는 데도 적지 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에 의해 처형되거나 처벌된 귀족들의 수는 선대 통치자들 때보다 훨씬 많았다. 이것은 대중에게 귀족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언어를 부여해 주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로마서126~32절에 반영된 성적 방종, 탐욕, 폭력 등은 대중을 견딜 수 없게 하는 귀족들의 행동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선대 황제 클라우디우스(글라우디오, 재위 41~54) 때보다 거의 세 배나 되는 속주출신 인사를 로마의 원로원 의원에 위임했는데, 이는 귀족의 혈통적 연고로부터는 보다 자유롭고 통치자의 의도와 대중의 여론에 보다 의존적인 신흥귀족이 더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그는 선대 황제 때에 소요혐의로 추방되었던 그리스도파 유대인들이 다시 로마로 되돌아오는 것을 허용했다. 이런 의미에서 황제의 공권력은 대중의 입장에서는 정당한 권력이고 복종할 만한 권력이었다.

클라우디우스 때에 추방되었던 프리스카(브리스가)-아퀼라스(아굴라) 부부와 절친한 바울은 그이들이 네로 때에 로마로 귀향하게 되었음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로마시의 사정을 꽤나 소상히 듣고 있었겠다. 전임과 현 황제의 도시 정책이 어땠으며, 이 도시의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분위기와 그 속의 그리스도파의 성향이 어땠는지 등등.

로마시의 그리스도파는 제국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엘리트 출신이 많았다. 그들은 좀더 부유했고 좀더 학식도 높았으며, 도시 문화에도 좀더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좀더 반체제적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하여 선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 때에 소요를 일으킨 주역이 그들이었다. 황제는 주모자를 잡아 처형 등 실형에 처했다. 그리고 혐의가 깊지 않은 관련자들은 추방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각주:2]

하여 클라우디우스는 이스라엘 디아스포라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자 원망의 대상이었다. 한데 그가 죽었다. 사인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의 아내 아그리피나가 독살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그리고 이 혼란의 와중에서 추방당했던 이들의 일부가 귀향했다. 이스라엘 디아스포라에는 하느님이 황비를 통해 복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고, 이런 분위기를 등에 업고 그리스도파 사람들은 반체제 활동을 조심스럽게 재개하고 있었다.

학식이 높은 그리스도파 인사들은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회당 내에서 이스라엘 본토 중심의 기획은 실패했다고 설파했다. 바울이 자기가 공박하고 있는 상대편의 주장을 가지고 되묻고 있는 로마서1111절 이하의 구절은 저들 헬라주의적 그리스도파의 주장이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걸려 넘어져서 완전히 쓰러져 망하게끔 되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들의 허물 때문에 구원이 이방 사람에게 이르렀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질투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로마서11,11


곧 저들은 이스라엘
, 특히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에서 메시아가 일어나야 하느님의 변혁이 일어날 거라는 이스라엘 중심적 구원의 기획은 실패했다고, 아니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로마시의 이스라엘 디아스포라에서 예루살렘 혹은 사마리아 운운하는 주장을 펴는 이들은 세계의 중심이 된 이 도시, 이곳에서 벌어지는 억압과 착취의 역사를 꿰뚫어 보지 못한 채 여전히 저 머나먼 변두리 도시에서나 가질 수 있는 시골뜨기 괴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클라우디우스 때도 헬라주의적 그리스도계 급진파는 이런 주장으로 무장한 채 모종의 반체제적 소요를 일으켰던 듯하다. 그때도 구닥다리 랍비들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진정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예루살렘 혹은 사마리아에서 메시아 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이다. 반면 그리스도파는 주장했다. 이미 그리스도는 나타났고, 지금 자신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클라우디우스가 죽은 직후, 로마시의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내에서는 다시 이런 반체제적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던 것 같다.

로마시의 이러한 사정은 바울에게는 낯선 광경이었다. 이제까지 그가 경험했던 디아스포라 회당의 모습은, 갈라디아서326~28절처럼 소외된 이들이 그리스도파였다. 한데 로마시는 그 정반대다. 자기들이 지혜롭다고 허풍떨던 이들은 이스라엘계 랍비가 아니라 헬라주의적 그리스도파 지도자였던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의인론을 얘기하면서 소외된 그리스도파 대중을 옹호했다. 한데 이번엔 의인론으로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11,25) 그리스도파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당시 로마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웃의 미움을 사고 있었다.[각주:3] 도시 축제에 참여를 꺼리고 자기들의 종교행사에만 몰두하는 폐쇄적인 집단이라는 평판에도 불구하고, 카이사르와 옥타비아누스에서 칼리굴라(재위 37~41)에 이르기까지 갖은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게 눈에 거슬렸다.

그러던 차에 클라우디우스가 그리스도파를 처형하고 추방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것은 주민들에게 이스라엘 디아스포라를 공격해도 된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던 귀족들은 대중의 환심을 사고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못된 짓을 해댔던 듯하다.

그 무렵 네로가 즉위하고 그리스도파 인사들이 귀향하면서 회당 내에서 반체제적 발언을 하며 예루살렘의 기획이 아닌 로마의 기획을 주장하자 많은 이들이 그 말에 설득되었다. 한데 바울은 브라스가와 아굴라가 전해준 이런 소식에 접하자 로마로 가려던 자신의 계획을 전격 실행에 옮기고자 편지를 보낸다.

한데, 앞서 보았듯이, 그는 서신에서 그리스도파와 반대논지를 펴고 있다. 그는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기획을 폐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율법의 폐기가 아니라 완성을 주장한다(13,8~10). 이제까지의 그와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바로 그 비밀이 저 유명한, 그리고 오랫동안 오독되어 온 로마서131절의 수수께기에서 드러난다.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로마서13,1


여기서
그는 공권력을 지지하고 있다. 그것에 순종하라고 한다. 이 구절에 대해서 미국의 비판적 성서학 연구자 닐 엘리엇(Neil Elliott)은 다음과 같은 통찰력 있는 해석을 제안한다.


이 구절에서 바울 사도는 로마 정부 관료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한다. 이것은 바울 사도가 로마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의 안전을 옹호하기 위해 호소하는 의도였다. ... 로마에서 유대인이 곤경을 당하는 위험한 역사적 상황을 재고하여야 한다. 그리고 헬라 지역과 로마 지방 도시들에서 유대인들은 이런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었다고 본다. 만약 로마의 군대가 유대인들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유대인들은 지역 주민들의 적대행위로 말미암아 어려운 곤경에 빠질 수 있었다. 로마 도시에서 이방인들이 유대인을 반대하여 주도한 폭력 행위는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의 종교적인 차이에서가 아니라 로마의 사회적 압박 때문에 촉발되었고 이방인들은 로마인 대신 유대인을 공격했던 것이다. 특별히 헬라의 상류 사회층은 로마의 식민지 지배하의 착취와 압제, 압박의 부당함을 유대인들에게 대신 감정적으로 해소하였다. [각주:4]


여기서 로마제국 전역에서 유대인들이 이웃 족속들에게 린치를 당했다고 하는 것과 또 전역에서 로마군이 유대인을 보호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 또한 헬라의 상류 사회층이 그러한 폭력의 주역이었다는 점도 근거가 희박하다. 그보다는 로마제국 초기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69~130)황제전(De vita Caesarum)에서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로마에서 유대인을 추방한 것은 크레스투스(Chrestus)의 선동으로 야기된 소요 때문이라고 한 것에 기초해서, 클라우디우스 당시 로마시에서 이스라엘 디아스포라가 당국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었다는 점을 해석의 실마리로 하는 게 낫겠다.

이 사실 위에서 엘리엇의 해석을 재해석하여, 당시 로마시로 몰려든 많은 대중은 권력자들에 의해 착취와 폭력에 시달렸다. 그것은 많은 이들에게 좌절과 분노감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로마에 적대하는 행위는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 당국에 의해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힌 이스라엘 이민자들은 그들의 분노의 대상이 될 법하다. 게다가 군중의 이런 분노를 이용하면서 여론정치를 하던 로마의 귀족들이 이런 집단 분풀이에 가세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네로 황제의 군대가 도시의 무분별한 폭력행위를 제압하는 것은 도시 치안을 위해서 있을 법한 일이다. 게다가 귀족과 경쟁관계에 있던 네로가 귀족의 여론정치를 방관하기는 만무하다. 해서 그는 도시의 집단 따돌림과 린치를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을 이스라엘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는 하느님의 뜻을 받드는 제국의 황제의 모습으로 비추어졌을 것이고, 하여 그의 권세는 신이 부여한 것이니 복종하라는 주장이 나왔을 법하다. 그리고 바울은 이런 주장을 통해서, 급진파 헬라주의적 그리스도파의 무모한 과격성을 제어하려 하는 것이다.

한편 권력에 순종하라는 말에 이어지는 바울의 말 또한 우리의 주목을 끈다.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로마서13,1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공박하는 헬라주의적 그리스도파의 주장의 일면을 읽어낼 수 있다
. 그들은 필경 반로마 주장을 펴면서 조세거부 선동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로마시의 납세자는 이스라엘 사람들 개개인이 아니라 디아스포라 회당이었다. 인구 100만이나 되고, 특히 그중 적어도 80만이 넘는 이민자들[각주:5]에게 인두세를 거둬들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해서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는데, 종족별 종교별 자치결사조직들 단위로 조세를 징수하는 방법도 그 중 하나였다.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회당은 전형적인 자치결사체로서, 이 결사체에 포함된 이스라엘인들과 개종자들은 로마 당국에 조세를 내는 것이 아니라 회당에 기부금을 내고, 회당이 로마 당국에 조세를 냈던 것이다.

한데 이스라엘인이든 개종자든 기부금을 낼 수 없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종의 면세자들이다. 빈곤해서 아무것도 낼 수 없는 자들이다. 그런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가 가난한 사람들(프토코스)이다. 이들은 기부금을 낼 형편이 못했지만 회당에 속해 있기 때문에 사실상 면세자가 될 수 있는 자들이다. 한데 그들이 면세자가 되는 대신에 그들은 멸시의 대상이었고 기부금을 내는, 사실상의 납세자들인 사람들의 통제와 관리를 받아야 했다. 한데 로마시 회당에서 사실상의 납세자의 다수는 그리스도파 인사들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세금거부 선동을 하면 사실상의 면세자들인 가난한 사람들은 납세자의 지도에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납세자들인 그리스도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데 바울은 저들 납세거부를 선동하는 그리스도파 인사들을 향해 말한다. 세금을 내라고. 그것은 조세거부운동의 중지를 말하며, 납세자가 아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선동의 중지를 말한다. 아마도 바울의 심중에는 이런 무모한 모험주의는 수많은 이들, 특히 저들의 선동의 대상이 되는 다수의 면세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갈 뿐이라는 문제의식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하여 권세에 복종하라느니, 제국 당국에 세금을 내라느니 하는, 바울의 평소 주장과는 엇갈린 듯이 보이는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그러나 일관된 그의 생각이 들어 있다. 그것은 복음이라는 것은 유대파 신앙이든 그리스도파 신앙이든 특정 계파를 위해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면세자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작동한다는 것이다.

한데 바울의 이 구절은 한국역사에서 정교분리를 논증하는 성서텍스트로 읽혀져 왔다. 문제는 정교분리는 힘의 논리를 반영해왔다는 데 있으며, 이 구절은 그런 힘의 논리의 관점에서 해석되었다는 데 있다. 식민지 시대나 군부귄위주의 정권 시대에 국가가 대중의 인권을 유린하던 때에는 그런 반인권적 체제를 비판하는 이들을 단죄하는 논리가 정교분리였다.

또 최근 기독교정당 옹호론자들은 교회의 정치참여를 정당화하는 맥락에서 정교분리를 폐기하거나 재해석하려 한다. 이들 역시 인권의 문제, 약자를 옹호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체제를 비판하기보다는 그 정반대의 맥락에서 정교분리의 재해석 혹은 폐지를 논한다. 요컨대 정교분리는 약자를 옹호하고 그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지지하기보다는 종교권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존속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로마서131절이 읽혀져 왔다.

하여 교회의 정교분리의 신학은 바울의 이 텍스트를 핵심 전거로 삼아왔지만 여기에는 바울이 실종되었고 바울이 옹호했던 민중이 망각되었다. 결국 교회의 정교분리 신학에는 복음이 유실되었다.



ⓒ 웹진 <제3시대>


  1. 네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역사 만들기와 친평민적 정책을 편 황제로서 그를 재평가하는 수정주의적 연구에 대하여는 안희돈, 『네로황제연구』 (다락방, 2004), 2~3장 참조. [본문으로]
  2. 여기서 나는 하나의 가정을 하고 있다. 「로마서」에서 바울이 비판하고 있는 대상이 로마시의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내의 그리스도파라고 말이다. 「로마서」에 묘사된 그들은 이스라엘계 헬라주의자들로, 공동체의 다른 이들보다 지위가 좀더 나은 이들이고, 이방 종교의 제사음식 등에 대해 거리낌이 없을 만큼 로마의 문화에 대해 자신이 있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우월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이들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정승우, 『로마서의 예수와 바울』(이레서원, 2008)의 제1장 「로마의 크리스천 공동체의 기원과 형성」을 보라. 하지만 정승우는 이들 헬라주의자들이 헬라파 유대인이고, 보다 유대주의적인 ‘약한 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나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갖고 있다. 내가 이들을 ‘그리스도파’라고 본 것은 프리스카와 아퀼라 부부가 본래 이들의 일원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도 로마시의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출신의 헬라주의자였는데, 클라우디우스 때에 추방당한 사람들이었다. 한데 앞에서 보았듯이 그들이 추방당한 이유는 디아스포라 내에 ‘크레투스’의 사람들의 소요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 ‘크레투스’가 30년경 팔레스티나에서 처형당했던 크리스투스(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를 가리킨다고 본다. 즉 로마시의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내에 반체제적인 헬라주의적 이스라엘인들이 그리스도를 추종하며 반체제적 활동을 벌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로마서」에서 바울이 비판하는 헬라주의자들은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공동체 내의 그리스도파 급진주의자들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본문으로]
  3. 이에 대하여는 제임스 던, 『로마서 9~16』 (솔로몬, 2005) 참조. [본문으로]
  4. 닐 엘리엇, 「십자가의 반제국주의 메시지」, 리처드 호슬리 엮음, 홍성철 옮김, 『바울과 로마제국』 (기독교문서선교회, 2007), 288쪽. [본문으로]
  5. 카이사르 이후 로마제국은 로마시의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곡물을 나누어 주었다. 그 수혜자를 일컫는 용어가 '곡물평민'(Plebs frumentaria)인데, 문제는 이들이 도시의 주민 전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옥타비아누스는 곡물평민의 자격을 세 가지 원칙, (1)로마시민권자, (2)로마시 태생, (3)생래 자유인 여부에 따라 제한했다. 하여 그 수혜자의 수가 15만 명 정도였다. 이에 대하여는 안희돈, 『네로 황제 연구』 제7장 참조. 로마시의 인구에 대하여는 김상엽, 「제정기 로마의 곡물수급문제에서 나타난 제국과 속주의 관계―제정기 곡물수급지로서 이집트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서양고대사연구』 5(1997.11), 39~42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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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문서는 2011년 한백교회 성탄절 예배에서 사용했던 선찬 예식서입니다.



20111225일 성찬식

*성찬상 설치

[교회공간의 정 중앙에 테이블을 길게 놓는다. 흰 보를 덮고 그 위에 포도주 잔을 40 여개 놓는다. (증편)을 한 입에 들어갈 수 있게 썰어놓은 접시를 세 곳으로 나누어 놓는다.]


*
사회자의 멘트(김현숙)

오늘은 2000년 전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입니다. 이 기쁜 성탄절에 드리는 성만찬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한 청년이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만찬을 하였던 그 시간은 어떠하였을까? 그 시간에 더 살고 싶은 욕망은 없었을까? 더 좋은 세상을 꿈꾸지 않았을까? 아마도 제자들, 여인들, 후견인들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인생의 회한에 젖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만찬의 시간에 삶을 생각하려 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탄생과 죽음이 만나는 성만찬을 시작하겠습니다.


1_
여는 의식

단위의 촛불을 성찬상으로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여는음악, 위의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짧은 곡: 연주자(박경민,리코더)]
[단위의 촛불을 성찬상으로 가져온다.(양미강)]


2_하늘 뜻 나누기

이어서 양미강목사님의 하늘 뜻 나누기가 있겠습니다.

아가야, 우리 봄을 기다리자[누가복음 1:46-55]”(양미강)

[이어주는 음악1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연주자(박경민,바이올린)]


3_
성만찬을 기리는 시간: 탄생을 생각하며...

낭독
(도홍찬)

너는 기다림이었다.

척박한 팔레스틴에서, 고난의 한반도에서 너는 해방의 메시아였다.

너는 기쁨이었다.

불임의 부부에게, 노산의 어미에게 너는 산고 끝에 오는 환희였다.

너는 황망함이었다.

열정에 사로잡힌 연인에게, 어설픈 신혼부부에게 너는 삶의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

너는 슬픔이었다.

가난 속에서, 폭력 속에서 너는 고통의 씨앗이 되기도 하였다.

 

누군가는 사랑의 맨 얼굴을 너에게서 본다.

누군가는 무심하게 너의 옆에 그냥 서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힘들게 너의 존재를 끌어 안는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내 발견한다.

너의 얼굴은 영원의 순백이 아니라, 애욕과 세파 속에서 골이 깊이 패인다는 것을.

 

우리들은 깨닫는다.

사랑은 지독한 소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고통의 연단 속에서 삶은 지극히 깊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 우리는 방관하고 삶에서 퇴거할 자유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너의 탄생에 부친다.

너의 삶은 고지되거나 예정되어 있지 않다.

불안이 너의 영혼을 좀먹지 않게 하거라.

죄의식 속에서 신에게 기대지 말라.

너는 가능성이고 자유이다.

 

채워도 차지 않는 곳, 도달해도 남는 곳, 만나도 떠난 그 자리에서

하느님은 당신에게 조용히 말을 걸 것이다.

[이어주는 음악2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연주자(김선우,가야금)]

 

4_성만찬을 기리는 시간: 삶을 생각하며...

낭독(김현숙)

<이것은 김진숙의 기도입니다> @JINSUK_85 김진숙 의 트위터

-열여덟 살,옷 공장, 신발공장, 가방공장, 조선소용접공 대공분실 해고, 징역, 수배, 다시 징역, 장례 치르고 추모사 하다 보니 쉰. 20년 지기가 정리해고 반대하며 129일 매달려있다. 목을 맨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 다시 정리해고 반대하며 올라 와, 울다가 웃다가.

-땅멀미는 서서히 나아가고 있는데 허리가 아파서;; 2.퇴원날짜는 아직 기약이 없어요.

-재키, 자야할 시간일텐데, 여긴 비가 내려요. 크레인에선 아주 작은 빗소리도 크게 들렸는데 창을 열어보고야 비가 오는 줄 알았네요. 재키한테 김장김치를 보내주고 싶단 생각을 자꾸해요.^^

-크레인이 24시간 흔들렸거든요. 바람불면 멀미도 심했구요. 그런데서 살도록 몸이 이미 적응을 해서 이제 정지한 것들을 못견뎌 하는 거 같애요. 사람 몸이 참 희안하면서도 신비롭습니다.^^

-오전에 노사 잠정합의 했습니다.자세한 합의내용은 조합원 찬반투표 과정에서 공개가 될 거 같습니다. 300일 넘게 기다려 오셨는데 몇 시간만 더 두근두근 기다려 주세요.^^

낭독(이종원)

< 이것은 예수님의 기도 입니다> 누가복음 22.41~45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5_
성만찬

이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성찬상을 중심으로 둥글게 서시기 바랍니다.

성찬 테이블에 둘러선 채 배병과 배잔을 동시에 다함께 그리고 자유롭게 하려고 합니다.

우선 잔을 들으세요. 그리고 양미강목사님께서 건배사를 해주시면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시고 떡 을 집어서 원하시는 분에게 다가갑니다.

우선 눈빛을 나누세요. 그리고 그 분에게 다가가서 속삭이듯이, 위로와 축하의 말을 건네세요. 그런 후에 또 다른 분에게 다가갑니다. 적어도 두 분 내지 세 분을 만나십시요. 다가가면서 상대방에게 떡 과 위로 그리고 축하의 말을 건네세요. 테이블보를 거두어주십시오.

[성만찬이 차려진 테이블보를 걷는다.(김봉숙,최종봉]

[건배사
:포도주와 빵을 들고 성찬의 의미를 되세김(양미강)]

[배경음악: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중주:연주자 (박경민,김선우)]

떡과 포도주 못 드신 분 계신가요? 다 드셨으면 제자리로 돌아가시겠습니다.

이제 오종희 선생님의 낭독이 있겠습니다. 

 

5_성만찬을 마치는 기도: 죽음을 생각하며...

낭독(오종희)

태어나 이 땅을 꾹꾹 밟고 살아가야 비로소 전해지는 메시지가 있는 것처럼 죽어 이 땅 밑에 꾹꾹 밟혀 묻혀야 비로소 전해지는 메시지도 있습니다. 구원을 갈망하는 우리는 이천년 전 당신이 죽음을 거뜬히 초월한 구세주였음을 기억한다 하지만 당신 앞에 놓인 잔 하나 옮기지 못하는 걸 보면 당신도 비존재의 충격 앞에 그저 순응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오늘 당신의 생일에 죽음을 생각합니다. 보통, 아이들의 돌잔치에서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천년만년 영화가 보장된 어느 나라 왕족처럼 아이도 부모도 화려한 드레스를 걸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돌잔치는 점점 디즈니랜드 성처럼 반짝거리는 환타지를 닮아갑니다. 부모의 주머니를 털어 안간힘을 다해 몇 시간 동안의 구원을 구매하고 소비 하는 겁니다. 성탄절에 죽음을 말하는 건 그런 유사 구원을 거부하는 최소한의 각성 장치인지 모르겠습니다. 뻑뻑한 삶을 살다 보면 때론 유사 구원도 반짝거리는 환타지도 필요 하건만 당신에게서 만은 다른 것을 원합니다. 당신의 탄생에 죽음을 생각하고 당신의 죽음에 삶을 생각 하겠습니다. 옛날 옛날에 무력한 핏덩이로 태어나 외면 받은 삶을 살다가 권력의 폭력으로 살해당한 당신의 메시지가 왜 아직도 읽혀지고 전해지는지 생각하겠습니다.


너무 높이 고양되어 우리가 이름 부르기도 불경한 신이 아닌 죽임 당한 구세주로서
,

아파하는 자들과 힘없는 자들과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과 함께 기꺼이 상관는 그런 주로 임하소서, 예수여~.

[이어주는 음악 (박경민,리코더)]

이제 테이블보를 다시 덮어주시고 촛불을 다시 단으로 가져감으로서 성만찬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6_맺는 의식

[성만찬이 차려진 테이블보를 닫는다. (김봉숙,최종봉)]

[촛불을 다시 단으로 가져간다. (양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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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거울과 예수의 지팡이

송진순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박사과정)


 

영국인은 인도를 점령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인도를 넘겨준 것입니다. ... 어떤 영국인들은 칼로 인도를 점령하고 보유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틀렸습니다. 칼은 인도를 보유하는데 전혀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그들을 붙들어 두었습니다. ... 돈이 영국인의 신이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수많은 문제들을 풀 수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가 우리의 비천한 이익을 위해 영국인을 인도에 붙들고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우리가 그들과 교역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그들은 자신들의 교묘한 술책을 통해 우리를 유쾌하게 만드는 대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 간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입니다.

『힌두 스와라지』(1908년) 中.


   대영제국의 지배로부터 인도의 독립을 고취하기 위해 간디는 먼저 인도가 영국에 패배한 이유를 알아야한다고 했다. 그는 패배의 동인(動因)이 동인도 회사의 지배, 즉 영국인들의 물질과 세계 식민화의 야욕만큼이나 이에 부합했던 인도인의 물욕과 협력에 있다고 보았다. 그 원인에서 규명되는바 영국의 지배 권력이 인도인의 협력에 의한 것이라면, 역으로 인도인의 비협력이야말로 영국의 지배를 무력하게 한다는 생각에 근거하여 그는 비협력, 비폭력의 저항운동을 펼쳤다. 간디에 따르면 ‘진정한 힘은 물리적인 능력이 아닌, 불굴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비폭력의 저항은 약자들의 저항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윤리적인 측면까지 아우르는 강력한 형태의 저항인 것이다. 그의 저항 운동은 비단 인도의 정치·경제적인 독립뿐만 아니라 인도의 문화와 사상 나아가 정신적인 측면의 독립까지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항운동의 이면에는 영국으로 대변되는 강압적인 중앙정치권력과 대량생산의 산업문명체제가 얼마나 인간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파괴하는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서려있었기 때문이다. 간디가 역설했던 인도의 ‘자치’ 혹은 ‘자립’이라는 의미의 “힌두 ‘스와라지(Swaraj)’”는 이러한 맥락에서 인도인 개개인의 정신적인 각성과 성찰을 촉구했다. 따라서 무지, 비겁함, 이기심, 나태함, 부정직함을 버리고 인도인의 자발성과 정신적인 자립, 이를 토대로 한 그들의 상호관계 속에서 마을의 자립이라는 이상적인 현실을 실현하고자 했다. 물론 간디의 봉건적인 사상의 한계와 현실적인 대응방식의 괴리를 두고 시비를 거는 이들도 있지만, 간디가 세계흐름 속의 인도의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식민현실에 눌린 민중에게 인간의 고귀함과 내면의 힘을 북돋우며 인도의 혁명과 구원이 별개의 길이 아님을 보여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쯤 되니 1세기 로마 제국의 지배아래 팔레스타인 지역 유대민족의 식민지 현실과 갈릴리의 예수운동이 20세기 초 인도의 상황과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역사의 서재 어느 한 켠의 책을 꺼내더라도 반복되는 주제에서 벗어날 수 없듯. 당시 지중해 전 지역에 걸친 로마제국의 질서와 통치는 피정복민의 무질서와 파괴를 야기했다. 복음서에서 들려주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이야기는 팔레스타인의 식민지배 현실의 농민의 삶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로마의 대리 통치자들과 예루살렘 지배자들의 수탈은 농민들을 가난과 굶주림의 아수라장으로 내몰았다. 갈릴리의 마을 공동체가 로마제국의 정치·경제적인 제도 속에 유린되면서 이스라엘 고유의 전통문화와 사회 구조는 와해되었다.

   해체되는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예수는 로마제국의 질서 앞에서 이스라엘의 계약정신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여 가족과 촌락공동체의 전통적인 삶을 부활시키고자 했다. 예수는 부자들의 착취에 날선 비판을 가했고 부패한 예루살렘에 가차없는 심판을 선언했지만, 주리고 병든 사람들에게 몸소 먹이심과 치유의 행위를 통해 새로운 희망의 온기를 불어 넣었다. 그는 갈릴리의 민중으로 하여금 제국의 질서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확신하며, 정의와 연대의 원리들과 계약전통의 가치를 실천하는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을 요청했다.
  
   뒤돌아보면 지난(至難)한 역사의 사건들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할 뿐 같은 거푸집에서 찍어낸 듯 그 행태가 닮았다. 연말까지도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접고 새해의 눈을 떴지만 우리 앞에 산적한 현실의 문제는 오히려 한 자나 자란 것 같다. 한반도의 좌와 우, 남과 북의 내적인 갈등과 이에 기묘하게 얽혀있는 주변 열강들의 꿈틀대는 힘겨루기에서 숨쉬기 벅차게 뛰어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신문 한 자락을 깔고 앉은 칼럼들이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새해의 정치·경제적인 구도를 침 튀기며 전망하여도, 우리는 기본적으로 올 한해의 삶도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을 먼저 안다. 성장 이데올로기는 산소마스크로 연명하게 생겼고, 대기업들의 승승장구에 비견되는 서민들의 신음 가득한 사회 경제적인 불만은 극에 달한 듯 보인다. 게다가 일자리 창출과 서민 경제 활성화를 모토로 밀어붙이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이러한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 명약관화하다.

   우리 대다수는 각자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한다. 생존이라는 근본적인 불안으로 시름하면서 우리사회의 마음의 병은 깊어간다. 그러나 더 이상 간디 혹은 예수와 같은 고결하고 맑은 소리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자본 권력의 광기에 편승해 무력한 협력과 안일한 기대를 품었던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고, 보통의 우리가 스스로 현실을 직시하고 연대하여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서로 독려해야한다. 갇힌 소리는 문을 열고, 때 묻은 소리는 몸을 닦고, 덜 자란 소리는 함께 성숙하여 ‘다르게, 다함께’ 하는 소리로 발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역사라는 여정에서 간디의 ‘힌두 스와라지’라는 거울을 들고, 예수의 ‘하나님 나라’라는 지팡이에 의지하여 우리 안의 깊은 병을 몰아낼 굳은 힘을 발견하고 보통의 우리가 연대하고 상생할 희망의 전거(典據)를 끌어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보통의 우리가 가진 역사의 힘은 종국에는 휩쓸리는 대로 끌려가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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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 당신, 당신, 당신들 뿐


(연구집단 CAIROS)



 태초에 말이 있었다.

 나는 항상 이 문장이 궁금했지만, 왜냐는 물음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어떤 말이었을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내게 일어났던 ‘어떤 일들’, 그리고 그 ‘일’들에 대한 내 ‘감정들’까지 나는 말할 수 없었으니까.
 “말하지 마. 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십 여 년 동안이나 계속되어 온 금기는, 내게 사랑하는 것보다도 먼저, 나를 사랑해주는 모두에게 버림받는 것에 대한 공포를 가르쳤다. 단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하여, 나는 숱한 사례로 교육받아왔다. 나의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곳은 오로지 나 자신, 그리고 아무도 없는 어둠 속ㅡ장롱 안 이었다.
 나는 오래도록 장롱 안에 있었다. 장롱 안에서 말을 던지면, 목소리는 뿌연 안개와 같은 메아리로 내게 돌아왔다. 나는 그 목소리가 좋았다. 그래서 자주 나에게 묻고, 나에게 대답하는 식으로 어둠에 대화를 걸었다.
 장롱 안은 어두웠지만, 문틈의 빛줄기가 칼날같이 날카롭게 반을 가르는 곳이기도 했다. 장롱 안에서 나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는데, 가끔 누군가에게 발칵 문이 열릴 때면, 하릴없이 튀어나와 입을 다물어야 했다. 하지만 혹시나 백마 탄 왕자님이 마음 넓게 귀를 쫑긋 세워줄지도 모르니까. 빛줄기가 문 앞에 선 누군가에게 가려져 완전한 어둠이 될 때, 나는 공포와 설렘으로 마음이 뛰곤 했다.

 죽음과 삶이 있다.
 언제나 단절된 것이었을까. 나는 이것도 궁금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어둠 속이었으므로, 나는 생이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는 죽음이 내게 가까웠고, 나는 장롱 속에 들어가듯 죽음으로 빠져들고 싶었다. 죽음을 동반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알지 못했지만, 확실히 삶은 죽음보다 훨씬 먼발치에서 그 자신을 방조하고 있었다.

 삶은 언제나 나를 짓눌렀지만, 죽음은 늘 따뜻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죽음에 귀 기울였다. 그러면 죽음은 슬그머니 다가와 내게 말을 들려주었는데, 그건 반쯤은 우렁찬, 검은 강의 물소리였다.

 
1.

 여자의 강이었다. 《The Hours》(스티븐 달드리, 2003)의 강이라거나, 《시》(이창동, 2010)의 강이라고만 부를 수는 없는. 두 여자가 내처 몸을 맡긴 것만큼 중요했던 건, 그들의 편지였다. 각각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하고 있었고, 그와 함께 세상과, 그녀들의 고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래는 《The Hours》에서 낭송되었던 것과는 다른, 버지니아 울프의 실제 유서 중 한 단락이다.

“(전략) 저는 지난 30년 동안 남성 중심의 이 사회와 부단히 싸웠습니다. 오로지 글로써. 유럽이 세계 대전의 회오리바람 속으로 빨려들 때 모든 남성이 전쟁을 옹호했고, 당신[각주:1]마저도 참전론자가 되었죠. 저는 생명을 잉태해 본 적은 없지만 모성애를 느껴 이 전쟁에 반대했습니다. 작가로서의 역할은 여기서 중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간직한 채 저는 지금 저 강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녀가 죽음을 선택한 건, 정신병 때문이 아니라 순간순간마다 죽어갈 생명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마침내 강물에 발을 내디뎠을 때, 그녀와 함께 했던 건 단 한 장의 편지-그리고 편지를 읽는 하나의 목소리, 그러니까 내게 다가온 ‘말’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의 저작 『자기만의 방』에서,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을 상상했었다. 셰익스피어만큼의 열정과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녀의 ‘불우한 성별’은 그녀를 예술가로 만들어줄 수 없었고, 끝내 그녀는 이름 없는 채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의 상상은 단지 비극으로 그치지는 않았다. 오히려는 희망찼는데, 그건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에게 언젠가 이름을 불러줄, 그리고 이름을 넘어 그녀 자신만의 방, 누구에게도 점유되지 않는 그녀만의 온전한 몸을 돌려줄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었다.

만약 한 세기가 더 지난 후, 우리 모두에게 일 년에 500파운드의 돈과 자신만의 방이 주어지고, 우리가 자유를 습관으로서 가지고, 또한 생각하는 그대로 글로 써내는 용기를 지닌다면, 현실 속 서로의 관계에서 인간을 파악하고, 사실을 사실로서 바라보고, 우리를 이끌어줄 팔은 없으니 결국 홀로 걸어가야 하며, 현실과 우리의 관계를 다시 인식한다면, 그렇다면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이었던 죽은 시인은 그녀의 버림받았던 육신을 다시 입고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라 믿습니다.[각주:2]

 여기에 하나의 진실이 있다. 버지니아는 글로써 저항하다가 절필과 동시에 몸을 던졌고, 그것은 분명 삶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삶들을 사랑하는 의미였다. 그녀에게 ‘몸’은 매초마다 펌프질하는 심장이 아니었다. 오히려는 언제든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이었다. (물로) 걸어가는 것은 오로지 ‘홀로’였음에도, 걸어갈 ‘육신’은 다른 이들의 자가 인식을 통하여, 그러한 인식들이 뒷받침되는 세상을 통하여 다시금 획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생명을 위한 자살’이라는 건 결코 모순이 아니었다. 온몸을 던진 그녀의 투쟁을 통해, 그녀는 재차 반전과 평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혼들에 대한 인식의 울림, 거듭된 각성에의 요청이었다. 오로지, 생(生)들을 위한.
 이러한 맥락에서, 《시》의 <아네스의 노래>는 물에 뛰어든 소녀의 육신을 되살려냈던 진정 시/노래였다. 누구의 귀에도 와 닿지 않았던 소녀의 말은 무던히 허공을 떠돌다가 이윽고 미자(윤정희 역)와의 시/노래로 드러난다. 그제야 그녀는 그녀의 사랑했던 것들과 작별 인사를 건넬 목소리를, 그리고 몸을 얻게 되는 것이다.
 미자는《시》에서 항상 두 차원의 공간을 떠돌아다닌다. 남성성이 지배하는 일방적 권력의 현실과, 그녀와 사물이 편견 없이 공존하는 시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양 쪽 모두 언어의 장이었고, 실제로 그것은 분명히 드러나지 않도록 혼재되어 있었지만, 양쪽의 경계가《시》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던 건 미자의 망각 덕택이었다. 그녀는 현실을 끊임없이 망각했고, 그 망각의 순간동안 대신 그녀는, 그녀가 마주치는 모든 것들에 집중했다. 꽃, 새소리, 나무, 살구…미자는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살피며 글들을 메모했고, 그것은 바로 그녀가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그리는 방법이었다. 동백꽃을 단순한 조화가 아니라 짙은 고통으로 보고, 살구를 땅으로 뛰어들은 하나의 몸으로서 대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윽고 소녀가 뛰어들었던 강을 만났을 때 그녀의 메모지를 채운 건 어떤 글귀가 아니라, 단지 물방울이었다. 침묵이 아닌 깊은 애도, 말로서 꺼내질 수 없는 하나의 슬픔을 그녀는 마주쳤던 것이다.
 <아네스의 노래>는 그녀와 소녀의 고통으로 탄생한 노래다. 생전에는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 여성이, 서로의 고통이 겹쳐지는 순간, 현실과 시 양자의 관계를 뒤바꾸어 놓는 몸의 말을 발화하는 것이다. 시는 작중에서 언제나 무시당하기 일쑤였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에 그 어떤 논리로도 접근 불가능한 것, 즉 정복할 수 없는 잉여의 것으로 남는다. 시를 쓰기 위해서 ‘마음’을 가져야한다는 강사의 말은 “어렵다”에 내포된 논리와 해석의 위계들을 단숨에 무력화시킨다. 바로 이 안에서 ‘말’이 떠오른다. 어떤 이해관계에도 포섭되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관계를 마주할 수 있을 때, 우리들의 몸 저 쪽 끝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고통의 소리.
 성서의 누가복음 7장에는 한 청년이 등장한다. 과부의 아들로 지칭되는 이 청년은 죽어 관에 실려 나가는 중이었다. 예수가 관에 손을 대고 청년에게 일어나라고 했을 때, 청년은 일어나 앉아 ‘말’을 했다고 한다. 죽음에서 막 깨어난 그가 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각주:3] 
 과부의 아들로서 어떤 삶을 살아냈을 지, 그 이른 나이에 어떤 이유로 죽었을 지, 아무도 몰랐지만, 예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 고통들을 감싸 안고, 그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불렀을 때, 그는 이윽고 일어나 ‘말’하기 시작했다. 몸의 일어남과 동시에 터져 나왔던 그 말들은, 어떤 말이었을지 감히 추측할 수도 없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은 바로 고통 자체, 몸 자체인 말이었다는 사실이다.

2.

 그리고 말은 흐른다. 편지가 끝난 후에도 강은 여전히 흐른다.
 여기에서 물음은 남는다. 이 물소리는 왜 미자에게만 들렸을까. 소녀의 어머니조차 다가서지 않았던 곳에, 소녀와는 일면식도 없었던 미자가 그 자리로 다가갔을까. 혹은, 왜 버지니아 울프가 죽었어야 했을까. 전쟁터와는 다소 먼 시골에서 살았던 그녀가, 그녀 자신과는 상관이 없었던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 왜 그녀를 던져야 했을까. 혹은…그 청년으로 하여금 말하게 한 것이 왜 예수였던 것일까. 잉여의 물음에 잉여의 언어로 대답한 것은, 이 ‘강’에 대해 오래 생각했던 유하였다.

사라지는 것만이 사라지는 것들을 생각한다
서둘러 노을의 하늘을 갈아치우는 잠자리의 눈동자
흔들릴 때마다 나뭇잎 속에 깃드는 푸른 신성같은 것,

세상은 늘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지만,
끝내 그 어디에도 다다를 순 없었다
가는 곳까지만 길이었을 뿐,
덧없는 물살에 덧없는 마음의 지느러미만
하릴없이 놓아 주다가

다만 물고기는 간데없고 남아 있는
비늘의 번득임만 안타까이 건져 올리듯
기어코 그리운 사람 하나 떠올릴 때,
사라짐보다 더 아픈 정지의 순간이 오고
치자꽃 향기 밟으며
온 강에 멎을 듯 내려앉는 별빛의 나비떼

스쳐가는 바람이 거기 없었다면
송두리때 제 넋을 흔들어 구원받는 갈대를
누가 알기나 했으리[각주:4]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의 목소리가 도저히 사회의 그 어디에도 닿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시》에서 미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숨 막힐 듯 사방을 가로 막은 남성들의 목소리들 사이에서 미자의 말은 어디에도 가 닿을 수 없었다. 실은 버지니아 울프와 미자도, 전쟁터에서 죽어갈 사람들, 그리고 강으로 뛰어든 소녀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도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조차 어디에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도처에 흐르고 있지만 여전히 들리지 않았던 말들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단지 스쳐지나갈 뿐, 어느 순간 있었는지도 모르게 잦아들을 뿐인 바람이 있었기에 갈대가 보였던 것처럼.


3.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다시 읽는다. 여기에서 그녀의 말을 들었다. 나는 내 몸의 상처를 자극적인 서사로 재구성해 던지곤 했는데, 그건 타인을 향한 발화의 두려움에서 발로했던 자기방어였다. 어이없게 웃으면서 술안주 삼아 던지는 이야기들에는 내 감정이 없었고, 따라서 내 말도 없었다. 모든 고통을 배제시키고 사건들만 부각시키는 서사적 말하기는, 여전히 나의 고통을 진짜 ‘고통’으로 수용하기를 보류하고 있었다.
 고통을 말하기. 고통으로서 말하기. 그리고 고통을 위해 말하기.
 장롱에서 말하고 장롱에서 돌아오는 내 자폐적 서사를 깨뜨렸던 건 오로지 그녀의 말이었다. 한 세기를 건너 나와 공감할 수 있었던 그녀의 말은 나로서 내 고통마저 사랑하게 만들었다. 이 상처들로 인해서 말할 수 없었지만, 말할 수 없었기에 그녀의 말을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녀의 말은 한 세기를 건너, 그보다도 더 멀리 계속해서 살아 숨 쉬고 있던 것이다. 더 넓은 진폭으로, 보다 많은 생을 만나기 위해. 그렇다면 FTA를 반대하는 말들, 쌍용차의 해고를 규탄하는 말들을 포함하여, 전-지구적으로 외쳐지는 반(反)생명에 대한 우리의 울림들도 결코 공중에서 흩어지는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 모든 말들은 강물처럼 도처에 흐르고 있다가, 또 다시 말 못하는 이의 귀에 희망으로 닿으리라.


4.


 태초에 말이 있었다.
 몸이 태어날 말이었다. 머리가 아니라, 고통이, 사무치는 아픔들이.

 그러므로 내가 만났었던 것처럼, 그 어떤 죽음에도 침묵은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생보다도 훨씬 가까운 곳에서, 생만큼이나 우렁차게 외쳤던 볼륨이었다. 오로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기 위하여, 더 큰 삶을 사랑하기 위하여 말이다. 그리고 그 말 안에서 바로 내가, 우리가, 태어났던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이 편지는 버지니아 울프가 자살 직전, 그녀 인생의 동반자였던 레너드에게 부친 것이었다. [본문으로]
  2.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본문으로]
  3. 2010년 9월, 충정로 맑은샘교회의 렉시오디비나 성서 나눔에서 공유된 이야기임을 밝힌다. [본문으로]
  4. 유하, 「7월의 강」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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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2.01.03 04:5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우리학교 제닝스 선생님과 겐스톤 선생님, 그리고 슈나이더 선생님이 이 소식들으면 좋아라 하겠네요.


회원 여러분께,

 

신년 회원의 밤초대합니다.

 

벌써 2011년 한해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한 해 동안 저희 연구소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기부금을 통해 활동을
지원해주시며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해주신 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저희 연구소 운영위원들과 상임연구원들은 지난 한 해를 평가하고
2012년 새해에는 더욱 의미 있는 해를 맞이하고자 평가와 계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 그리고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연구소의 계속된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충고와 조언을 부탁
드립니다
.

저희는 지난 한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하는 첫 마당을 밟으면서
회원 여러분과 함께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조촐한 모임을 열고자
합니다
. 불가피한 사정이 있지 않다면, 회원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이 자리를 더욱 빛나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


일시
_201219, 월요일 저녁 7:00

장소_안병무홀(한백교회당)

                                                                            20111229

                                                                            소     장 김창락

                                                                            연구실장 김진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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