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의 시대유감

사용자 삽입 이미지박태식
(대한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지도신부)


달포 전에 안경환 교수의 『시대유감』(라이프 맵, 2012)을 선물 받았다. 진부한 표현이기는 하나, 정말 따끈따끈한 책이었다. 갓 출판된 까닭에 따뜻한 감촉이 표지에 남아있기도 해서였지만 글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시대의 소리가 귀에 살아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 그래서 이런 일이 있었던 거구나!’ 라며 무릎을 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책장을 넘겨가며 시대를 들춰보니 마지막 장에 도달했을 무렵엔 어느덧 나도 상당히 유식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지식을 모임자리에서 한두 가지 풀어 놓으면서 친지들의 경탄에 으쓱해지곤 했다. 『시대유감』은 가히 정보 창고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시대유감』의 가치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에는 시대를 바라보는 지식인의 날카로운 풍자와 부드러운 연민과 놀라운 통찰이 담겨있다. 안경환 교수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소제목까지 영화제목으로 달은 것은 매력적인 조치였다. 화양연화, 와호장룡, 초콜릿,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만일 영화를 이미 본 독자로서 소제목과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 글을 읽는다면 훨씬 풍부한 감성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한 때 인권의식이 형편없는 나라였다. 기성세대는 모두 공감하는 바지만 국가단결이라든가, 경제발전라든가, 반공방첩이라든가 하는 통치 이데올로기에 밀려 인권의식을 저당 잡힌 상태로 반세기를 살아왔다. 하지만 지난 일이십년간 인권은 양과 질에 있어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두었고 이제는 아무리 초라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세상이다. 『시대유감』에서는 우리나라의 인권이 어떤 경로를 거쳐 현재 상태에 도달했는지 그 궤적을 잘 추적할 수 있다.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가치라 하겠는데, 저자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쌓았던 풍부한 경험이 표출된 결과로 보인다.
    요즘 우리나라는 장차 어떤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출할지, 설왕설래 수많은 의견들이 오가고 있다. 매번 대통령 선거 때마다 있었던 현상이다. 우리는 흔히 권력을 가진 이는 그에 합당한 인격까지 갖추고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다. 아니면 최소한 자신의 권력을 소중하게 다루어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할 책임 정도는 인식하고 있기를 바란다. 지도자의 자질을 윤리적으로 평가한 탓이다. 그런 까닭에 만일 지도자가 권력을 남용하면 인격에 파탄이 났거나 욕심이 지나쳐 본분을 망각했다고 분노하기 십상이다.
    꿈에도 그리는 사심 없는 지도자! 영국 정치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홉스는 그런 지도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는다. 홉스는 힘을 과시하려는 욕구가 인간의 본능이며 이를 통해 일종의 안정감을 부여받고 그 안정감을 발판으로 새로운 도전에 맞서는 힘이 주어진다고 한다. 자기 개발에 있어 권력이 갖는 긍정적인 측면이리라. 그러나 만일 권력을 쥔 자가 그 힘을 한번쯤 사용해보고 싶은 게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면 지도자 개인에게 거는 윤리적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옳지 않을까?  
    본성으로서 무한 권력을 추구하는 지도자의 욕심을 제한하는 도구는 성숙한 시민의식뿐이다.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방법은 권력에 대한 끝없는 감시와 견제다. 남의 손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객체에서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로 탈바꿈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투표는 민주사회의 주인이 되는 교육과 훈련이다. 선거는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뽑는 의식이다. 자신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105쪽)는 저자의 지적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많이 알았고 많이 배웠고 많이 생각했다. 이 시대를 가늠할 수 있는 지침서로 『시대유감』을 추천한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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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서남동(1918~1984)은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과 연세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민중신학자로 독제체제에 대해 저항하여 1975년에 대학교수직에서 해임되고, 1976년에는 투옥되었다. 1977년 말, 22개월 만에 가석방되었고, 1978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 원장에 취임하여 많은 민중교회의 목회자들을 양성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그는 생전에 글 모음집 형식의 단행본 저작을 단 두 권 남겼다. 『전환시대의 신학』(1976년. 이하 『전환』)과 『민중신학의 탐구』(1983년. 이하 『탐구』)가 그것이다. 그리고 사후에, 이 두 권에 수록되지 않은 글들을 모아 펴낸 『서남동 신학의 이삭줍기』(1999년. 이하 『이삭』)가 있다.

『이삭』은 제목처럼 흩어진 글들을 이삭줍기 하듯 모은 것이니 내용상의 특징을 담고 있지 못하다. 반면 생전에 편찬된 두 권은 분명하게 갈리는 특징을 갖는데, 1975년을 전후로 두 유형의 신학적 경향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 이전의 경향을 대표하는 『전환』은 전후 서구의 새로운 신학적 실험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재해석하는 데 열정을 다한 결과다. 특히 세속화신학, 샤르뎅과 과학신학, 화이트헤드와 과정신학 등, 당시로선 생소한 첨단신학 경향을 선구적으로 다루고 있다. 반면 『탐구』는 서구신학에 대한 탐구를 마감하고 한국에서 신학함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담고 있다. 바로 ‘민중신학’으로의 탐구이다.

『탐구』는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마지막 제4부에 실린 5편은 1960년 전후에 쓴 실존주의적 성향의 저작들인데, 머리글에서 밝히고 있듯 편집자가 권유하여 덧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1~3부에 실린 20편의 글이 저자가 민중신학 묶음집으로 기획한 본래의 원고들인 셈이다.

독서 현상으로 본 『탐구』, 민중신학의 상징적 코드였다

이 책의 독서 현상에 관해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의 하나는 출판 시기가 1983년 말이라는 점이다. ‘신군부에 의한 독재정권’이 집권 이후 공포정치에서 유화정치로 이행하던 바로 그 직후에 출간되었다. 그 전 해인 1982년에는 민중신학자들의 주요 저작을 모은, 저 유명한 『민중과 한국신학』이 출간되었다. ‘민중신학’이라는 표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렵던 시절이어서 다소 변형시킨 제호다. 1975년 서남동 목사가 「민중의 신학」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1979년 아시아기독교협의회에서 한국 신학계에서의 이러한 경향을 ‘민중신학’이라고 명명한 바 있지만, 『민중과 한국신학』이 출간된 1982년까지도 ‘민중신학’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잡지에 수록된 글이나 강연 원고 혹은 비공식 유인물에서나 사용할 수 있었다. 1983년에 와서 유화정치로 전환되면서 비로소 ‘민중신학’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사용될 수 있었고, 서남동의 『탐구』는 ‘민중신학’을 제호로 하여 출간된 첫 번째 책이 되었다. 

하지만 『탐구』의 출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출간 전에도 이 책에 수록된 많은 글들이 여러 버전의 복사본 책자로 제작되어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각 버전마다 각기 다르게 편찬되었지만, 서남동 외에, 안병무, 현영학, 문동환, 김용복, 서광선, 문희석 등의 글을 모운 것이다. 이중 가장 많이 수록된 글은 단연 서남동의 것이었다. 또한 독서대중의 가장 열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도 그의 글이었다. 해서 서남동은 민중신학을 알고자 열망했던 사람들에게 가장 대표적인 민중신학자였고, 이들 복사본들은 바로 서남동의 『탐구』, 바로 이 책의 전작(前作)이자 원작(原作)인 셈이다.

또한 『탐구』가 출간된 이후에도 복사본의 종수나 분량은 결코 줄지 않았다. 수차례, 아니 수십 차례 재복사되어, 해독이 어려울 만큼 흐릿하고 거무죽죽하게 인쇄된 책들이 1980년대 내내 수백만 명의 청년독자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그런 점에서 민중신학 복사본들은 『탐구』의 후작(後作)이자 위작(僞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탐구』가 민중신학을 대표하는 공식출판물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이와 같은 원작과 위작들에 대한 열정적인 독서운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서남동은 『탐구』 자체가 아니라 원작과 위작들을 통해 민중신학 자체를 상징하는 담론적 코드로서 존재했다. 『탐구』는 단지 그 효과이고, 그 숨겨진 담론 현상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출판물에 다름 아니다. 곧 1980년대적 담론 현상의 관점에서 보면 서남동이 곧 『탐구』이고 『탐구』가 곧 서남동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민중신학은 서남동이고 서남동이 민중신학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그는 민중신학의 상징적 코드였다.

내용으로 본 『탐구』, 지역학적 신학의 진수를 담다

책의 내용을 보면 이런 열광적 담론 현상의 이유가 드러난다. 우선 한국신학의 해석학적 범례를 보여주는 가장 독창적인 모형으로 『탐구』에서 시도된 서남동의 ‘합류의 해석학’이 꼽힌다. ‘한국의 민중전통과 성서의 민중전통의 합류’라는 논점은, 그에 의하면, 공시적(synchronic) 문제틀이다. 곧 시간적 대화가 아니라 공간적 대화다. 그것을 그는 ‘성령적’이라는 레토릭으로 재기술한다. 곧 그것은 그리스도교 중심적인 형상의 해체다. 하여 그것은 정체성에 대한 집착 없이 서로 만나고 얽히고 함께 꿈꾸는 것을 해석학적 이미지로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그 중심에 민중이 있다. 민중은 마치 신과 인간 사이의 매개로 육화된 신, 곧 그리스도가 있는 것처럼, 민중은 두 민중전통 사이를 매개하는 그리스도적 함의를 갖는다. 이때 그리스도의 역할은, 서남동과 민중신학자들에 의하면, 신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전형적인 수직적 그리스도론이 아니라 인간과 신을 동시에 구원한다는, 아니 인간과 신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떼어놓을 수 없는 구원의 상호성으로 얽히게 되었다는, 그런 점에서 인간의 구원이 신의 구원이고 신의 구원이 인간의 구원이라는, 마치 힌두교의 ‘범아일여’와 같은 상호적 그리스도론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서남동의 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서구에서 발전한 신학전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서 있는 삶의 지평이다. 이것을 구체화하는 방법론적 틀을 모색하면서 그는 ‘계시의 하부구조’라는 건축학적 이미지를 사용한다. 계시가 존재의 토대가 아니라 존재가 계시의 토대라는 신학적 반전의 어법이다. 그리고 ‘사회사적 해석’이나 ‘물질주의적 해석’ 혹은 ‘사회경제사적이고 문학사회학적 해석’이라는 사회이론적 용어를 통해 계시의 하부구조에 대한 탐구 방식을 구체화한다.

한편으로 이것은 학제간(interdisciplinary) 논의를 제안하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론 혹은 학문의 현장화(localization)를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현장이란 민중의 일상이 일어나는 공간(locale)을 말한다. ‘이야기신학’ 혹은 ‘민담의 신학’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한 문제틀이다. 서남동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고통’을 묘사하는 데 있어 핵심용어인 ‘한(恨)’이 담론화되는 공간 또한 바로 여기다. 한은 (지배적) 언어에서 소외되어 언표화되는 데 끊임없이 실패하지만, 고통을 체현하는 민중의 일상적 이야기 속에 내재되어 있고, 심지어는 한숨, 화병 같은 몸의 언어를 통해서 표출되는 ‘비언어적 언어’다.

『탐구』가 보여주는 서남동의 민중신학은 이처럼 실험적이고 도발적이다. 그의 책은 추상적인 신학적 이론으로서의 보편학이 아니라 삶이 체화된 학문으로서 지역학적 신학을 꿈꾸는 이들에게 대안적 이론틀로서 한국신학과 그밖의 여러 지역학적 신학의 고전 중의 고전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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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는 박근혜의 미래다!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2008년 미 대선에 대한 기억: 오바마에 대한 깔대기

 

지난 달에 이어 ‘철 지난 미국 대선을 통해 본 2012년 한국대선 읽기’ 두 번째 글이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캐리와 공화당의 부시가 맞붙었을 때, 본 게임 전에 결선에 나갈 민주당 후보를 뽑는 최종 전당대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모임에서 캐리에 대한 지지 연설을 했던 몇몇의 연사가 있었다. 그 중의 한 명이 유독 눈에 띠었다. 당시 필자는 미국 온지 2~3달 밖에 안되었던 터라 어리버리하던 시기였고, 귀도 뚫리지 않았던 때라 무척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였다. 그런데 유독 그 사람의 영어는 귀에 쏙쏙 들어왔고 비록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의 에너지와 열정만은 너무나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정치가이고, 차기는 모르겠지만, 차차기 민주당 대권후보군으로 부상할 인물 중 하나라고 시카고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던 한 친구가 말했줬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가 바로 현 미국 대통령 바락 오바마이다. 오바마는 차차기 민주당 대권 후보군 중 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차기 2008년 선거에서 미 합중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뒤늦게 나는 그가 내가 살고 있는 시카고가 속한 일리노이주의 주지사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가 다니는 교회가 현재 필자가 재학하고 있는 시카고 신학교가 속해 있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단인 UCC(United Church of Christ)라는 점, 그의 멘토가 지난 2008년 대선에서 선거초반 ‘갓 뎀 아메리카’논쟁으로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던 시카고 트리니티 UCC교회의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라는 점, 그리고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오바마가 당선된 그날 밤 시카고 밀레니엄 Park였는지, 아니면 오바마 취임식 날이었는지 가물가물한데, 유독 CNN에서 그 실황을 중계하면서 클로즈업 했던 인물이 있었다. 그가 바로 시카고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대부이자, 몇 십 년 전에(지미카터가 대통령으로 당선될때)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도 참여한 경력이 있는 제시 잭슨 목사이다. 그는 미국 흑인인권 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 멤피스에 있는 한 모텔 2층 베란다에서 저격당 할 당시 바로 그 옆에서 선생을 부축하고 후송하고 죽음까지 목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잭슨목사는 후에 오바마의 정치적 후견인이 되었다. 그날,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제시 잭슨 목사가 아무 말도 없이 아무 표정도 없이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 계속 방송을 타고 전파되었는데, 많은 미국민들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감격만큼이나 제시 잭슨 목사의 눈물이 지닌 의미에 더 울컥해 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눈물을 흘리는 제시 잭슨 목사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날을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 밤 나는 ‘발터 벤야민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었고, 발터 벤야민의 유명한 <역사철학 테제>에 대한 발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업에 참여한 교수, 학생들의 관심사는 온통 최대의 선거인단을 보유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선거결과에 집중되어 있었다. 캘리포니아만 접수하면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수업의 전반부가 끝나고 후반부가 시작될 무렵 캘리포니아가 민주당으로 넘어왔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그것이 어느 정도 가시화되자 모두 수업을 접고 신학자 폴 틸리히가 시카고에서 강의할 때 자주 갔다던 맥주집으로 향해 축배를 들었다.
특별히 우리학교 식구들이 느끼는 오바마 당선에 대한 기쁨과 흥분은 유별났다. 앞서 말한 오바마의 정치적 후견인인 제시 잭슨 목사, 오바마의 맨토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가 모두 시카고 신학교 출신이라는 점 (둘 다 공교롭게도 시카고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학교 졸업식이나 무슨 행사가 있을 때 어김없이 참석하여 걸출한 입담으로 사람들을 한 바탕 웃기고 간다), 오바마의 집이 차로 우리학교와 2분 거리이고, 오바마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우리학교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이며, 오바마가 쓴 책의 Book 사인회가 우리학교 지하 Co-op Book Store에서 열렸고, 대선 때 마다 민감한 이슈로 떠오르는 낙태, 동성애 등의 윤리적 이슈들에 대한 신학적 자문에 (물론, 그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편에서) 우리학교 교수들이 오바마 캠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는 소문 등등…..여러가지 시카고 신학교와 오바마 간의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우리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두 세달 무척 행복했던 시기를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그런 종류의 신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우리가 노무현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물론, 오바마는 국내정치에 있어서 부시보다 상대적으로 탁월한 진보적인 색깔을 드러내 보였다. 미 진보진영의 숙영 사업인 의료보험 개혁안을 추진하고, 동성애자 군복무 제한에 대한 철폐, 이민정책과 불법체류자 문제에 있어 공화당보다 상대적으로 유연한 정책을 펼친다는 점, 무엇보다도 수 백년 동안 백인들의 폭력에 신음하고 위축되었던 흑인들의 자존감에 긍지를 주었다는 점이 가장 큰 오바마의 치적(?)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역시 미 합중국의 대통령이었다. 외교적 문제나 국제 분쟁을 바라보는 관전포인트나 FTA에 임하는 자세 등은 어느 미국 대통령 못지 않게 국익에 종속된 모습을 보이며 그것에 충실하다. 특별히 한국과의 FTA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FTA 사상 유례없는 유리한 조건으로 타결함으로 미국의 국익을 챙겨 불안했던 재선 가도에 한숨을 돌렸다는 평가를 현재 받고 있다. 그래서 오바마는 MB를 좋아한단다.

힐러리에서 박근혜를 보다!

바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2008년 미국 대선은 민주당의 막강했던 두 명의 대선 주자 오바마와 힐러리간의 민주당내 경선이 오히려 본게임보다 더 많은 흥행과 토론의 이슈, 그리고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냈던 경우다. 11월이 대선이었는데 민주당은 치열했던 양 진영간의 난타전으로 인해 여름에서야 비로소 대선 후보가 정해지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여성대통령이 먼저 나와야 하느냐?’ 아니면, ‘흑인 대통령이 먼저 나와야 하느냐?’ 이 문제는 ‘여성의 해방이 먼저일까?’ 아니면, ‘흑인 해방이 먼저일까?’ 라는 전통적 주제와 결부 되면서 많은 이야기 거리들을 만들어냈다. 둘 다 워낙 묵직한 존재론적인 차원의 문제인데다, 그 존재론적인 차이로 인한 억압과 폭력의 기억을 둘이 공히 경험하고 있는 까닭에 사람들은 좀처럼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힐러리는 1800만 표를 득표하고도 패배했다. 그리고 패배 시인 연설에서 힐러리는 “비록 나는 가장 높고 견고한 유리 천장을 깨지는 못했지만 1,800만개의 금을 가게 한 균열을 냈다”고 말했다. 참고로 미국은 건국 후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여성 대통령도 배출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것도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 동안의 눈물겨운 투쟁의 시간을 거쳐 현재 미국 내에서 여성의 지위가 놀랄 만큼 높아졌다고는 하나, 미국 사회가 기본적으로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환상으로 통합을 꾀하려는 사회이고,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의 대부분이 보수적 신앙노선 위에서 여성의 역할을 성경에 나와있는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유럽과 비교할 때 미국 여성의 역할과 한계가 기본적으로 제한적이고 뚜렷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힐러리가 말한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 사회내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과 승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장벽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힐러리의 마지막 연설은 나름 멋있고 감동적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비록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서 오바마에게 고배를 마셨지만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하게 색깔을 바꾸어 가며 권력에 대한 야심찬 면모를 선거운동 기간 내내 보여줬다. 오히려 오바마보다 의제설정에 있어서 한 발 앞섰던 것 같고, 오바마보다 모든 공약에서 반보 진보적인 내용을 선보였다. 오바마는 본인이 흑인이라는 상징성이 득이 될 수도 있지만, 득표에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도 있음을 너무나도 잘 감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온화하고 무난한 모습으로 백인들이 지닌 본인에 대한 거부감을 다독이는데 상당한 노력을 경주했었다. 하지만, 힐러리는 달랐다. 오바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정적으로 비치는 본인의 이미지를 극복하고자 아주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자세로 자신이 오바마보다 더 진보적임을 천명하였다.
특별히, 힐러리에게 인상 깊었던 것은 남편이 대통령이었다는 프리미엄을 거부하였다는 사실이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힐러리는 남편을 대동하지도 않았고, 본인에게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의 후광이 미치는 것에 대해 의식적 거리두기로 일관했다. 가부장제 시스템 속에서 여성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혹은 남편의 이름으로 포장된 채 소개되거나 전달되기를 바라는데, 힐러리는 단호히 남편이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백악관을 재탈환하려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비록, 퍼스트레이디 라는 껍질을 벗어 던지고 민주당 대선 후보자로 변신하였던 그녀의 과감한 도전은 좌절되었지만, 힐러리의 자세와 시도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문득, 이 대목에서 박근혜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왜일까?

필패, 박근혜 ?

둘 다 퍼스트레이디였다는 점, 둘 다 아버지의 이름 혹은, 남편의 이름이라는 가부장제 시스템의 수혜자라는 점, 둘 다 대권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등 여러가지 물리적, 외형적 공통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자는 같지만 다르다. 힐러리는 그동안 자신을 감싸고 왔던 외피가 그녀의 대선가도에서 마이너스가 될 요소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뼈를 깎는 고통으로 환골탈퇴하여 자신을 대선경쟁 레이스에 나온 주자들 중 가장 왼쪽에 위치시켰다. 하지만, 박근혜는 여전한 박정희의 후광과 여전한 지역정서와 여전히 변하지 않는 보수-수구적 마인드에 휩싸여 있다. 물론 박근혜의 대세론은 실재로 존재하며 실제로 그것은 지난 4.11 총선에서 분명히 입증되었다. 그녀는 아무때나 선거를 치러도 minimum 35%이상의 확고한 지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박근혜 필패론의 근거라면? 뭔가 알 수 없는 유령이 지금 자기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까? <다음 호에 계속>

P.S: 다음 호에서는 데리다의 후기 철학을 대변하는 유령론(hauntology)에 기대어 박근혜 필패론의 근거를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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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2.05.22 11:4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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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 2> 제가 이 글을 쓸때 약간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박근혜가 승리한 4.11 총선 결과때문에 열받아 있었고, 총선 후 얼마후에 있었던 Ph.D Qual Exam 과목중 하나가 Derrida였는데, 시험 예상 문제중 Derrida의 유령론를 둘러싼 문제들이 많았죠. 시험공부를 하면서 잘 하면 박근혜 현상과 데리다의 유령론을 하나로 엮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시험도 끝나고, 총선결과에 대한 흥분도 사라진 지금, 더구나 통진당이 개판을 치고 있는 요즘의 형국을 보면서... 내가 괜한 말 했다는 후회가 밀려듭니다. 한달간 무척 괴로울 것 같네요. 일단 써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접겠습니다.
  2. 김형태
    2012.06.14 00:5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국민을 궁민으로 만드는 지도자라고 국민이 선택에 뽑았다면 ....그 결정을 존중해주어야
    하지 않을지요...

    권력앞이 비열하고 더러운 것은 진보. 수구세력 다 똑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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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

▷ 지은이 : 구미정, 김진호, 이찬수 외
▷ 펴낸곳 : 도서출판 자리
▷ 2012년 4월 12일 발행 | 값 13,000원 | 272쪽
▷ 분 류 : 기독교 일반, 기독교 이해

책 소개 보러 가기

  

제목 그대로 오늘의 한국 기독교가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왜곡하고 있는 기독교 본연의 정신을 성서와 역사를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 모두 16가지 주제로 구성된 이 책은 매 주제마다 민감하고, 논쟁이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16가지 주제들은 기독교 신자이든 안티 기독교의 입장에 선 사람이든 기독교의 실체적 진실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키워드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 그 자체를 넘어서는 무엇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행태는 기독교 본연의 정신과 관련 없이 반공의 뿌리 위에 성장 일변도의 자본주의 방식에 철저히 입각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권력화된 기독교는 어느새 자본과 정치를 넘나들며 자신들만의 성새(城塞)를 단단히 구축하고 있다.

이를 넘어서는 과정은 결국 그 성새를 밑둥에서부터 부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업은 어떻게, 무엇을 통해 가능할까. 저자들은 기독교 본연의 정신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왜곡된 뿌리를 걷어내고, 그 위에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인바, 이 책은 그 작업을 위한 성서적 기반과 담론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추천사 교회의 정명正名, 사회의 정명正名
머리글 교회가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의 여러 이야기들, 그것으로 이웃과 대화하기

1장 유일신 _‘신상神像 없는 신앙’ 혹은 ‘반권력의 파토스’
2장 정통과 이단 _이단, 역사적 싸움에서 패배한 정통
3장 내세 _영혼의 구원에 대한 강렬한 열망
4장 구원 _죽음의 대속론을 넘어 부활의 속죄론으로
5장 창조 _비과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성찰의 출발
6장 종말 _신체적 종말과 영원한 생명의 묵시적 이중나선
7장 성직 _목회는 본디 섬김이다
8장 성찬 _가장 낮은 이들에게 베푸는 평등의 밥상
9장 안식일 _굶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해방’의 날
10장 교회 _교회는 속죄의 목욕탕이 아니다
11장 사도신경 _배타성의 상징이 된 금관의 예수
12장 영과 육 웰빙 _시대의 ‘구원불평등’을 읽는 키워드
13장 결혼과 가정 _평등한 창조를 부정하는 순종론을 깨라
14장 교회와 여성 _원죄라는 편견이 만든 부정不淨의 여성관
15장 타종교와 이웃 _교회의 길이 아닌 그리스도의 길에 서라
16장 성전聖戰 _거룩한 전쟁, 성서는 이를 옹호하는가?

 

오강남 (캐나다 라이지나대 교수) : 성전화·권력화된 한국 기독교에 던지는 근원적 물음 점점 성전화·권력화·화석화되어 가는 한국 교회가 교회 본연의 정체성과 역할을 재인식하므로 이 시대를 사는 한국 기독교인 모두에게 기독교 신앙이 줄 수 있는 활력과 역동성을 되찾도록 하는 일은 현 한국 교회에 주어진 최대의 과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김진호 목사님을 비롯하여 이런 과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몇몇 의식 있는 분들이 엮어내는 이 책은 두 손 들어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나 일반 지성인들이 모두 읽고 한국 기독교 활성화를 위한 대화의 장이 더욱 활발해지기 바란다.”

김규항 (작가,《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 신자유주의 성전이 된 교회를 향한 단호한 질문 “극우독재의 ‘하면 된다’ 구호에 ‘믿으면 받는다’로 호응하면서 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례없는 부흥을 한 한국 개신교 교회는 신자유주의, 즉 자본독재의 가장 강력한 정신적·물적 기반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더 이상은 ‘교회개혁’이라는 주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교회개혁은 교회임을 전제로 한 노력과 싸움이지만 그 교회들은 어떤 의미에서도 교회가 아닌 것이다. 그 교회들은 소박하게 말하면 교회를 가장한 상점들이며 제대로 말하면 신자유주의의 성전이자 회당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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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2.05.01 11:5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필자에 대한 신뢰만으로 책을 사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사실 그닥 좋은 독서법은 아니지만), 이 책이 그런 책이 아닐까 싶다. 글쓴이들이 면면과 다루는 이슈들의 선정성과 불온함이 분명 우리를 불쾌하게 혹은 불편하게 할 것이다. 아직 읽지는 못했는데 착한 교인들이 이 책을 읽고 좀 삐닥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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