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취지_

예수에게 장애인은 어떻게 보였을까. 예수에게도 차별의식이 있었을까.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웅변하고 있다. 예수는 장애를 죄의 결과로 보거나 장애인을 부정하게 여겨 차별하는 그 시대의 장애인관을 거부하고 장애인을 다가올 하늘나라에 가장 먼저 초대받을 자로 삼아 예수운동에 적극 동참시켰다. 특히 치유자가 아닌 장애인의 입장에서 펼친 예수의 치유행위는 그 당시로 볼 때 가히 혁명적이었다. 예수는 장애인의 자기회복력을 이끌어내 스스로 자기 삶을 결정하고 일어서서 사회에 복귀하도록 하였다. 그를 위해 장애인의 요청이 있을 때 그 의사를 확인한 뒤 치유행위를 시작하고, 치유 뒤엔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며 당사자의 믿음이 치유를 낳은 것임을 주지시키고, 사제에게 치유되었음을 확인받게 해 사회적으로 재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치유행위에서 현대 장애인운동의 독립생활 패러다임을 고스란히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회는 가난한 자의 우선적 선택을 표방하며 장애인에게 각별한 사랑을 드러낸 예수의 모범을 따라 교회가 있는 곳에 장애인사업이 함께 한다는 표현대로 장애인사업에 투신하였다. 하지만 지난 2천년 교회사에서 자선사업이 제도화되고 장애인이 그 수혜자로 여겨지면서, 자선사업과 장애인복지가 깊이 결합되는 잘못된 조우가 이루어졌지만, 이는 예수의 장애인관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 예수 시대 이후 오랜 기간 사라졌다가 1960년대 장애인당사자들의 독립생활운동을 통해 비로소 되찾아진 장애인관, 사실로는 예수에 의해 실천되었던 그 장애인관을 교회의 장애인사업이 다시 지니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장애인의 사회통합과 참된 구원이 교회 안에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 포럼에서는 예수의 장애인관이 교회의 장애인사업에 제시하고 있는 의미와 향방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강연자_ 정중규(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 

정중규는 현재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산에서 장애인운동을 하다 늦은 나이에 대구대학교에서 장애인 직업재활학을 전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장애인관과 교회의 장애인사업에 관한 인식 연구라는 논문으로 2013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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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그들이 있다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고...
―「열왕기하」 21,3

 

‘산당(山堂)’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바마(bamah)는 제1성서에서 80회 이상 등장하는데, 거의 모든 경우에 극단의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산당이 무엇이길래 성서가 그토록 위험시하고 있을까요? 더욱이 그렇게 위험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거의 모든 왕들은 문제의 산당 예배를 철폐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우리는 기원전 7세기 유다국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특히 639~609년 재위에 있던 요시아 왕정의 사관실로 찾아가야 합니다. 여기서 아마도 유다국 역사상 처음으로 왕국의 역사가 편찬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선사(先史), 그리고 예언자들의 문서 등도 편찬되었습니다. 이 문서들이 훗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1성서의 토라(오경), 「사무엘기 상/하」 「사사기」 「열왕기 상/하」, 그리고 「이사야서」 등 예언자들의 책들의 최초 문헌본이 됩니다.

이들 요시아 왕실 사관들은 유다국과 이스라엘국의 선왕들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을 ‘산당’의 처리 문제에 두었습니다. 오직 두 명의 왕, 유다국의 히스기야와 요시아만이 산당 철폐를 추진한 이로서 칭송할만한 이로 추앙되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이사야, 미가, 호세아, 아모스 등의 예언집에서도 한결같이 산당은 문제의 온상처럼 언급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왕국 시조의 한 사람인 솔로몬조차 산당을 짓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린 것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왕들 가운데 이 일로 가장 극렬하게 비판을 받고 있는 이는 요시아 왕의 아비이자 선대왕인 므낫세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산당 문제가 요시아 왕실 정치의 가장 예민한 의제였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므낫세의 정치적 노선과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요시아 왕실의 문헌 편찬 작업이 왕성하게 펼쳐지고 있는 당시에도 이 문제를 놓고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 그렇다면 산당이라는 장소의 존치와 철폐를 놓고 벌인 정쟁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스라엘 부족동맹 시대의 가장 위대한 제사장이자 예언자였던 사무엘의 본거지가 실로의 산당이었다는 점입니다(「사무엘기상」 9,19). 그러니까 요시아 왕실 사관들의 주장과는 달리, 산당이라고 모두 우상숭배의 장소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아니 오히려 예루살렘 성전이 생기기 훨씬 전에 산당은 야훼의 전형적인 성소였습니다.
말했듯이 요시아 왕실이 문제시한 산당은 므낫세의 산당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당시 유다국을 식민화하고 있던 아시리아 제국 풍의 일월성신 의례가 벌어지고 있었지요. 그러니까 요시아가 므낫세의 산당을 철폐한 것은 유다국 내에서 친(親)아시리아 세력을 거세하려는 의도였음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를 좀더 앞으로 돌려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므낫세의 아비이자 선왕인 히스기야는 당시 강력한 세력으로 메소포타니아 전역과 이집트 지역을 크게 위협하던 아시리아에 반기를 들었다가 처절하게 패배하여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하여 이 전쟁 이후 히스기야는 무력한 왕이 되었고, 조정은 친(親)아시리아파에 의해 죄지우지되고 있었습니다. 하여 몇 년 후 그가 죽자 어린 므낫세가 등극하게 되는데, 그는 아마도 그의 모친은 친(親)아시리아파 가문에 속했을 것입니다. 

12세에 왕이 된 어린 므낫세는 점차 권력의 핵심으로 성장했고 무려 55년간 재위에 있으면서, 친(親)아시리아 동맹의 열렬한 일원으로서 유다국을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그 동안 그는 히스기야의 정치를 철저히 파괴했고, 많은 이들을 살상하면서 권력을 공고히 했습니다. 

한데 그가 죽은 뒤 아들 아몬이 즉위했다가 2년 만에 궁중정변으로 살해당하자, 농민세력(암하아레츠)이 들고 일어나 정변을 수습하고 다른 아들 요시아를 왕으로 추대했는데, 이 왕은 므낫세에 반대하고 히스기야를 계승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이것은 므낫세의 정치가 반(反)민적이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가 피를 많이 흘린 통치자라는 점은 필경 정적들을 가혹하게 처벌했을 뿐 아니라 반(反)민중적 정책으로 많은 농민들이 희생되었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므낫세-요시아로 이어지는 산당을 둘러싼 갈등의 배후에는 대(對)아시리아 정치만이 아니라 농민의 권익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도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히스기야-므낫세-요시아로 이어지는 산당을 둘러싼 격렬한 갈등의 역사가 시종 ‘몰렉 제사’ 문제와 얽혀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몰렉 제사는 절체절명의 긴박한 위기에 처한 이들이 수행한 제사 형식의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신제사는 대체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요. 그런데 시리아-에브라임 연합군에 의해 국가가 존폐의 위기에 놓였을 때 히스기야의 부친인 아하스 왕이 자기 장자를 제물로 바치는 의례를 지냈고, 마침 그때 거짓말처럼 적들이 물러간 데다, 이 두 나라가 아시리아에 의해 역사의 무대에서 영원히 퇴장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아시리아라는 제국이 유다를 구원하기 위해 야훼가 불러일으킨 제국이라는 신앙이 출현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아브라함처럼 아들을 죽이기까지 스스로를 희생한 왕 아하스의 신실함 때문이라는 여론을 낳았습니다. 게다가 그는 유다국 역사상 처음으로 나라를 강국의 반열에 오르게 한 장본인이었습니다. 

한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그가 유다국을 번성케 할 때, 이 나라의 기득권세력 역시 함께 출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물리적인 힘만을 갖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보유한 세력이 형성되었음을 뜻합니다. 대중의 수탈자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지지를 유지할 수 있는 장치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소’입니다.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를 수행하고 온갖 사적ㆍ공적 재앙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해주는 신의 장소가 성소인데, 그곳이 이들 기득권층의 이해를 위해 종사하는 사제들에 의해 장악되어 대중을 포섭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들이 아하스의 인신제사를 칭송하고, 대중의 수탈을 정당화하던 장소가 바로 산당인 성소였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이 성소, 곧 산당을 철폐하고자 했던 것은 아하스의 정치, 곧 귀족 중심의 정치를 종식하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한데 이것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아하스 대에 형성된 기득권 세력이 친(親)아시리아파였고, 아시리아의 개입에 의해 반(反)아시리아를 표방한 히스기야가 무력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므낫세의 부상은 친()아시리아파의 승리를 의미했고 민중의 절망을 뜻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요시아의 반(反)므낫세 정치는 곧 반()아시리아 노선의 개혁세력이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했다는 것을 뜻하고, 대중 중심적 정치의 부활을 의미했습니다.

최근 한국은 산업화 시대의 전통적인 극우정부가 재집권했습니다. 복지확대를 주장했고, 경제민주화를 부르짖었음에도, 이 정부가 기본적으로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하는 체제를 지향하고 있다는 데 의심의 여지는 없습니다. 

알다시피 박정희 정부 때 한국은 산업화 시대의 기득권체제가 안착되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기본적으로는 한국전쟁을 전후로 하여 압도적인 권력집단으로 부상한 군부세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좀 더 넓게 보자면 1970년대 영동(강남권) 개발의 과정에서 관료, 법조계, 정치계, 학계, 언론계를 아우르는 기득권세력으로 부상한 신흥부유층이 군부와의 동맹체제를 구축하게 되면서 형성된 권력 집단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후 민주화를 거치면서 이러한 전통적인 기득권 동맹이 와해되었다가 다시 군부와 기타 엘리트 세력이 재동맹을 맺고 등장한 것이 바로 박근혜 정부인 것입니다. 

이 정부의 탄생은 다양한 요인들이 우연히 서로 얽히면서 나타난 것이지만, 최근의 국정원 사태는 가장 전형적인 산업화 시대 기득권체제의 행동양식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과거와는 달리 거대한 기획자가 없는 가운데 군부, 경찰, 언론 등이 서로 공명하면서 이 사건이 벌어졌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지금까지의 정황으로는 그렇게 추정됩니다. 

한데 박근혜 정부는 현재 가공할만큼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정책적 정치적 실패와 국정 운영의 서투름, 그리고 권력 고위층을 둘러싼 추문들이 끊이지 않음에도 지지율은 큰 변화 없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중을 흡수하는 장소들, 마치 7세기 유다국의 산당 같은 장소들을 이들 기득권 세력이 여전히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른바 ‘극우적 대중정치의 장소’가 어느 때보다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언론이 그 대표적인 장소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지점은, 또 다른 극우적 대중정치의 장소가 교회, 특히 대형교회라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과거 산업화 시대 고도성장기에도 대중 포섭의 주요한 공간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아직은 극우적 대중정치의 장소로 일반화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교회에는 대중이 없고 귀족주의적 대중정치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극우주의가 대형교회의 확장을 주도했습니다. 하여 교회에는 산업화 시대적인 기득권체제의 수호자들이 지금도 들끓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는 또 다른 우리 시대의 산당이 된 것입니다. 하여 오늘의 히스기야에 의해, 오늘의 요시아에 의해 교회는 철거될 운명이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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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3]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주의

E. P. 샌더스의 Paul and Palestinian Judaism 읽기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출 20:2). 왜 십계명이 오경의 처음부터 기록되지 않았을까? 이런 비유가 있다. 이렇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비유는 다음과 같다: 한 왕이 마을로 가서 주민들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의 왕이 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사람들은 그에게 “우리가 당신을 섬겨야 할만큼 우리에게 뭔가 주신 적이 있습니까?” 라고 말했다. 그럼 그 왕은 어떻게 해야 할까? 왕은 성벽을 만들고, 수로를 만들어 물을 공급하고, 전쟁에서 싸웠다.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물었다. “내가 너희의 왕이 될 수 있느냐?” 주민들이 말했다. “물론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로 부터 구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를 주시고, 우물을 만드시고, 매추라기를 주셨다. 이스라엘을 위해 아멜렉과 싸우셨다. 이제 그가 이스라엘에게 물으셨다. “내가 너희들의 왕이다.” 그러자 그들은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메킬타-출애굽기에 대한 랍비의 해설- 중)

 

 

    지난 웹진에서 1 세기의 랍비문학을 소개했다. 위의 인용은 메킬타, 출애굽기에 대한 미드라쉬중 하나이다. 오경의 내용들에 랍비들은 이처럼 설명을 곁들여 기록하였는데,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역사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또는 필요에 의해 여러 방법으로 설명한 기록들이 랍비들의 문헌이고 이러한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한마디로 하면 말씀과 말씀에 대한 해석에 목숨을 건 민족이 바로 유대민족들이다.  E. P. 샌더스는 이전 웹진에서도 소개했듯이, 1세기의 유대교를 순수하게 율법을 준수함으로 구원받는 종교라는 전통적인 이해에 도전하면서, 1~2세기의 유대인들이 남긴 문헌들을 연구해 유대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정립한 학자이다. 이번 글에서는 샌더스의 방법론과 그의 연구 결과들을 그의 책 [Paul and Palestinian Judaism]을 중심으로 살펴 볼 것이다.
    샌더스의 연구 결과가 전통적인 1세기 유대교의 이해를 바꾸어 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긴 했지만, 샌더스는 전통적인 이해에 대한 반론을 펴는 형식으로 연구를 진행하지 않는다. 즉, 이러 이러한 문헌학적 증거들이 있으니 전통적인 이해는 틀렸다는 방식이 아닌 것이다. 적어도 랍비 문헌에 대해서는 이러한 방법은 좋지 않다는 것을 샌더스도 알고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일단 랍비 문헌의 기록자들이 조직신학을 하듯 체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러한 담론을 추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전통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철저한 율법주의적인 가르침들을 찾으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는 가르침들도 많은 것이다. 복음서에도 율법에 대한 철저한 준수를 예수가 가르치기도 하지 않았던가.(마 5:17-20) 샌더스는 논쟁의 한복판에서 살짝 물러서서 두 개의 커다란 체계를 비교해보자고 한다. 바로 바울의 서신들과 당시의 유대문헌들이다. 결국 유대주의에 대한 오해의 논쟁이 일어난 계기가 바울서신의 이해로부터 파생된 것이므로 바울서신과 유대문헌과의 관계에 촛점을 맞추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두 개의 문헌들을 비교할 것인가?
    샌더스는 ‘종교적 패턴’ (Pattern of Religion)을 비교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말한다. 바울서신들이나 유대문헌들을 무작위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 다 하나의 주제나 체계에 대한 서술들이 아니고 특히나 유대문헌들은 그 저자와 저작 당시의 역사적 배경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샌더스는 거창한 조직신학적 신론, 우주론 등등의 체계를 먼저 세우고 그 둘을 비교하기보다 ‘종교적 패턴’ 다시 말하면, 종교의 참 역할에 준하는 ‘구원론’에 그 역점을 두고 둘을 비교할 것을 제안한다.[각주:1] 여기서 샌더스가 말하는 ‘종교’라는 의미가 유대교와 기독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감리교’와 ‘장로교’라고 하는 것이 어울린다. 두개의 교파가 가지고 있는 ‘구원론’이 같은가 또는 다른가? 라고 물을 때 그 둘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좀 더 명확하게 보인다고 샌더스는 생각했다. 결국, 어떻게 구원을 이해하고 있는가를 보자는 것인데, 이 방법으로 샌더스는 1~2세기의 유대교가 가지고 있던 구원에 대한 생각을 상당히 설득력있게 그려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유대교와 바울 서신을 바라보기 위한 렌즈의 촛점을 ‘구원론’에 제한함으로써 샌더스의 연구는 분명한 한계를 처음부터 가지게 된다. 그 한계는 그 후의 연구에도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논하기로 하겠다.
   
    탄나틱 문헌 (Tannaitic Literature)
    이른바 랍비들 (보통은 율법선생들이라 불리는)이 남긴 기록들을 읽음에 있어서 먼저 샌더스가 짚고 넘어가는 것은 이른바 랍비들과 신약성서의 바리새인들이 같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신약성서의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들과 경쟁하는 하나의 정치적 모임내지는 집단으로 표시되며, 예수의 비유속에서 정결법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하며 안식일 준수 등에 상당히 경직된 이해를 보여주지만, 랍비들이 하나의 공동체나 분파를 형성하여 자신들을 다른 이스라엘인들과 구별된 존재라고 생각했다는 증거를 찾기 힘들다.(바리새란 말은 ‘분리되었다’는 뜻이다.)
    바리새주의라는 표현에서 벗어나서 랍비들의 문헌들을 살펴보면, 랍비들의 오경의 이야기에 대한 주석인 학가다(Haggadah)는 많은 부분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심에 대한 질문과 설명에 그 촛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정하셨는지에 대한 이유는 중요한데 여기가 바로 이른바 ‘공로주의’에 대한 첫번째 논쟁점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자신의 백성으로 만들었는가? 세가지 대답이 존재하는데 첫번째는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계약에 응답했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아브라함 등의 선조들의 믿음 덕분이고, 세번째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이다.[각주:2] 언뜻 보면 처음 두가지에는 이스라엘이 스스로 뭔가 내세울 것이 있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랍비들의 말은 한결같다. 처음에 필자가 인용한 이야기를 기억해보자.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기 위해, 즉 이스라엘의 대답 또는 믿음을 얻기 위해 먼저 무엇인가를 하셨다는 것이다. 즉,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셨나는 질문에는 여러 다양한 대답이 존재하는데, 그 안에는 하나의 큰 동의가 랍비들 사이에 있다.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그의 자비로움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각주:3]
    하나님의 은혜 다음에 ‘그의 이름을 위해’(For his name’s sake) 율법이 주어졌다. 하나님의 왕되심이 먼저이고 왕과 백성의 관계안에서 주어진 율법을 준수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왕과 백성의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바로 율법에 대한 행함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자연스럽게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는 상급과 벌을 통하여 유지된다. 이를 샌더스는 ‘계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 보통 언약적 율법주의라고도 함.)라 불렀는데, “언약적 율법주의는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서 자신의 자리가 계약에 기초하여 세워지는 것을 뜻한다. 이 계약은 적절한 응답을 필요로하는데, 이는 율법에 대한 순종이다. 계약안에는 불순종을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도 들어있다.”[각주:4]
    순종과 불순종, 바꾸어 말하면 율법을 행함과 위반은 구원에 대한 조건이 되지 않는다. 이는 상급과 벌에 대한 조건일 뿐이며 그 목적은 구원과 심판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계약 안에 머물러있게 하기 위한 방편이다. 하나님의 상급은 언제나 하나님의 징계보다 크고,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정의를 뒤덮는다는 것이 랍비들의 하나님에 대한 기본 입장이다.[각주:5]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실 때 그 개인과 맺은 것이 아니라 그 백성 전체와 맺으셨으므로 장차 올 세상에서 모든 이스라엘은 함께 그 영광을 누릴 것이라 생각했다. 이에 필수적으로 전재되어야 하는 것이 ‘속죄론’ (Atonement)의 확립이었다. 이스라엘에게 ‘속죄’란 율법을 어겨 하나님과의 계약 밖으로 벗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행하는 생활속 규범이었는데, 예루살렘의 멸망이후에 ‘희생 제사’의 기능이 사라지고, ‘회개’(Repentance)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되었다.[각주:6] 이는 랍비적 유대주의가 성전을 잃어버린 후 ‘회개’ 등의 방법으로 하나님과의 계약에 머무를 수 있는 방편들을 제공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당시의 랍비적 유대교에서 중요한 것은 행함이 아니라 의도였음을 알 수 있다. 실수에는 그를 만회할 수 있는 ‘회개’의 길이 있었으며, 하나님의 약속은 전체 이스라엘에게 해당하는 것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하나님의 계약안에 머무르려 하는 의지와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려 하는 의지가 행함이라는 방편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 바로 당시의 유대교 신앙이었다는 것이다.

     사해사본 (Dead Sea Scrolls)
     한 이름없는 목동이 1946년에 사해에서 1마일 정도 떨어진 한 동굴에서 7개의 두루마리를 우연히 발견하였을 때, 이 발견이 성서학에 미칠 엄청난 영향을 상상이나 하였을까? 약 10여년간의 발굴끝에 학자들은 발굴된 사본들중 40%가 히브리 성서 (구약성서)에 가장 오래된 사본들, 30%는 제2성전기의 문서들(Book of Enoch, Jubilees, the Book of Tobit, the Wisdom of Sirach, Psalms 152-55 등), 그리고 나머지는 이른바 후대에 쿰란 공동체라고 불리우는 이들이 기록했던 문서들임을 밝혀내었다. 그 중 이 공동체의 문서들로는 공동체 규정집(Community Rule), 전쟁 문서(War Scroll), 하박국 주석(Pesher on Habakkuk), 그리고 축복에 대한 규정(The Rule of the Blessing) 등이 있다. 첫번째 동굴에서 나온 문서들이 쿰란공동체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보통 첫번째 동굴의 자료들을 부를 때 숫자 1을 붙이고, 쿰란을 뜻하는 Q를 붙이고, 공동체 규정집에는 S, 전쟁문서에는 M 등을 붙여서 1QS(Community Rule), 1QM(War Scroll) 등으로 표시한다. 샌더스가 주로 사용한 자료들은 위의 자료들인데, 쿰란공동체의 구원론을 탐구하기 위해서 그들이 어떻게 선민이 되었는지와, 구원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였다.
    과연 쿰란공동체가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것은 아직 논쟁중에 있다. 전통적으로 에세네(Essene)파였다는 이론이 힘을 얻었고, 이들이 바로 요세푸스가 말한 에세네파였고, 그 영향을 받은 것이 세례요한이며, 예수는 세례요한의 제자였다는 이론으로 발전되어 예수의 정체성과 복음에 대한 이해를 쿰란문서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재구성하려 하였다. 이후에 이에 대한 반론이 생겨나면서 쿰란공동체는 예루살렘의 제사장 무리에서 밀려난 사독계의 제사장 중심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였다는 이론이 힘을 얻기도 하였다. 쿰란 공동체의 자료들의 연대가 공동시대 이전 (주전) 408년부터 공동시대 이후 (주후) 318년까지 걸쳐 있는 것으로 보아 남유다가 바빌론에 의해 멸망한 이후 (BCE 587) 시작된 제2성전기의 유대주의에 대한 중요한 연구자료로서 인정되고 있다. 연속되는 제국의 압제의 시대를 살았던 한 유대교 종파가 가졌던 하나님과 구원에 대한 이해는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는 데 큰 단초를 제공할 뿐 아니라 1~2세기의 유대교가 가질 수 있는 종교적 이해에 대한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당시의 팔레스타인의 유대주의를 그려내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샌더스는 믿고 있다.
    전통적인 사해문서에 대한 연구에서, 이들이 하나의 분파(Sect)를 형성하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다른 문서들에 비해 엄격한 규율의 행함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쿰란공동체를 통하여 유대교가 은혜의 종교에서 율법주의적인 종교로 변화하게 되는 문헌적 증거를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샌더스는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계약’의 의미가 무엇이고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가는지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사해사본을 들여다고 보고 있다.
    쿰란공동체는 그들이 새로운 계약(A New Covenant) 아래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계약은 당시의 예루살렘이나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샌더스는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계약이란 이스라엘의 다른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계약과 다른 것이 아니라 원래의 계약에 숨겨져 있던 의미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완전히 새로운 계약을 그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원래 모세 등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계약에서 다시 찾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각주:7] 그러므로 계약 그자체는 연속적으로 이어져 왔으며, 중요한 것은 계약의 숨겨진, 또는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결국 새계약과 그에 따른 규율을 행함이 공동체가 이해했던 종교적 구원론의 핵심이 아니라, 여전히 계약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통해 계약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에 있다. 즉, 랍비들이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계약의 이해가 이들에게도 있었다는 것이다.[각주:8]
    이들이 자신들에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계약의 의미를 나타내셨다고 믿었고, 이와는 달리 이스라엘의 많은 수가 하나님과의 계약에서 등을 돌렸다고 생각했고, 게다가 계약속에서 엄격한 규율들을 통해서 자신들을 ‘의인’(the righteous), ‘빛의 아들들’(the sons of light), ‘진리의 아들들’(the sons of truth)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샌더스는 그들이 자신만이 옳고 다른 이스라엘은 틀렸으며 자신들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그들은 최후의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선택된 자들이며[각주:9] 이들은 옛 이스라엘의 죄를 위하여 기도했던, 제사를 지냈던 제사장들 집단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최후의 전쟁 이후에 쿰란 공동체는 자신들 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이스라엘이 살아남아 쿰란공동체를 통하여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는 것이다.[각주:10] 계약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새계약에 대한 이해를 얻는 개인의 회개의 결단을 중요시하게 된다. 이와 함께 쿰란 공동체는 이러한 개인의 결단마저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예정되어 있다는 예정론을 발전시킨다. 이 예정론의 정수는 칼빈의 예정론처럼 구원의 섭리가 바로 하나님에 은혜에 있다는 이해를 위한 하나의 방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쿰란공동체가 개인의 결단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랍비적 유대교처럼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중심을 두고 있고, 그를 통한 계약을 중심으로 율법이 뒤따르고 이러한 율법적 행함이 하나님의 택하심에 대한 응답으로 작용되고 이를 통하여 신자는 계약속에 온전히 머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였음을 샌더스는 사해사본의 포괄적 읽기를 통하여 증명하고 있다.[각주:11]

    외경과 위경
    샌더스는 여러 외경과 위경중에서 다음의 5권을 선정한다. 벤 시라(Ben Sirach), 에녹 일서(I Enoch), 희년서(Jubilee), 솔로몬의 지혜서(The Psalms of Solomon), 에스라 사서(IV Ezra). 그 이유는 이 문서들이 공동시대 이전 200 부터 이후 200 사이에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쓰여진 유대문헌이며 기독교 공동체의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각주:12]

벤시라 
벤시라서는 여전히 강력한 하나님의 택정하심에 대해 강조하며,[각주:13] 개인보다는 이스라엘 전체의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다.[각주:14] 여러 방면에서 라비직 유대주의와 비슷한 구원론을 보여준다.[각주:15]

에녹 1서
흥미로운 것은 에녹 1서의 의인은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각주:16] 그렇기 때문에 회개에 대한 명확한 말들은 나오지 않는다. 불의한 자들은 의인들과 대적하고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며 결국 마지막 날에 심판받게 된다. ‘의인’들은 ‘진정한 이스라엘’ 또는 ‘선택받은 자들,’ ‘거룩한 자들’로 칭해지는데 ‘의인들’이건 ‘불의한 자들’이건 개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인의 행위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이다. 선택받음에 대한 강한 강조와 그들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계약에 대한 생각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각주:17]

Jubilees 희년서
희년서라고 불리는 쥬블리는 보통 공동시대 100 이전에 쓰여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계약에 관한 명확한 언급이 눈에 띈다. 계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은 계약을 간직하는 역할을 하고(희년서 15: 11) 공동체 사이의 율법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36:8-11)이다.[각주:18] 게다가 희년서는 반복해서 구원은 계약에 대한 소속과 충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한다.[각주:19] 율법을 어기게 되면 회개를 통해 계약의 백성을 지위를 허락받을 수 있지만, 특이하게도 희년서에는 용서받지 못할 죄의 목록이 나오는데, 이는 바울에게 반대했던 예루살렘 공동체가 지키고자 했던 할례와 안식일, 그리고 피와 함께 고기를 먹는것과 성적 타락 등이 기록되어 있다.[각주:20] 이러한 변화는 이방세계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던 시도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본적인 패턴은 라비닉 유대주의와 그리 다르지 않다. 때로는 엄격한 율법주의의 일면을 보여주지만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문서 전체를 통해 강조하고 있고, 하나님의 구원이 개인의 행위에 달린 것이라기보다는 그의 선택에 달린 것임을 강조한다.[각주:21]

솔로몬의 잠언 (The Psalms of Solomon)
다수의 저자들에 의해 공동시대 (주전) 1세기에 히브리어로 쓰여진 솔로몬의 잠언서는 라비닉 유대주의와 가장 유사한 구원론을 보여주는데,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그의 선택한 백성에 대한 구원을 강조하고 있다.[각주:22] 계약은 구원의 기초이며 오직 회개없는 죄악만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근거가 된다.[각주:23]

4 에스라 (IV Ezra)
에스라 사서는 외경과 위경 중에서 당시의 유대교와는 다른 성격을 가진다. 에스라 사서는 개인의 구원을 말하며 그 속에서 계약적 율법주의는 내파되고 오로지 율법주의적 완전주의만이 남는다.[각주:24]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율법의 행함을 통한 의를 강조한다. 쿰란 문서에서 선택받은 자들도 연약함으로 인해 죄를 짓지만 그 연약함은 심판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에스라 사서에서는 그러한 연약함으로 짓는 죄로 인한 멸망을 말하고 있다.[각주:25] 이러한 완전주의적 율법주의는 많은 학자들에게 유대주의가 율법주의적 종교로 변하는 증거라고 받아들여져 왔으나, 샌더스는 에스라 사서의 독특성이 전체 유대주의의 성격을 대변한다는 증거는 오로지 에스라 사서 자체밖에는 없으며, 이를 하나의 유대주의로 볼 수는 있지만 1-2세기 유대주의의 보편적인 특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샌더스는 에스라서가 율법주의를 말하기는 하지만 율법을 행함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행함은 계약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며, 이는 율법을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또는 은혜를 입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각주:26]

    결론적으로 400페이지에 달하는 긴 연구끝에 샌더스는 1-2세기 유대주의는 율법주의라기보다는 계약주의라고 보는 것이 옮으며, 율법은 이 계약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기에 이를 종합하여 계약적 율법주의(또는 언약적 율법주의)라고 이름하였다. 당시의 여러 유대교 문헌의 요점은 어떻게 계약적인 의무를 이행할 것인가의 문제였던 것이다.

    “자비와 정의에 관한 두가지의 다른 이해가 형성되었는데, 하나는 라비닉 유대주의에서 하나님의 자비는 그의 정의보다 크다는 것이고, 다른 문헌들에서는 악한 자는 그의 행위에 준하는 벌을, 선한 자에게는 자비로 응답함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각주:27] 그러므로 벌과 자비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배풀기 위한 방편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계약적 율법주의란 “1)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2)율법을 주셨고, 율법은 3)하나님의 택정하심에 대한 약속과 4)율법에 대한 준수를 의미한다. 5)율법은 속죄의 도구로 베풀어 졌고, 6)속죄는 계약적인 관계를 유지 또는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7)복종에 대한 계약 안에 머무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모두 구원받을 것이다.”[각주:28]

    바울의 종교적 패턴 (바울의 구원론)
    앞으로의 원고는 바울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룰 것이고, 자연스럽게 바울서신의 여러 내용들이 쟁점화될 것이므로 샌더스의 바울 이해를 세심하게 살피지는 않을 것이다. 몇가지 요점을 중심으로 샌더가 생각한 바울의 구원론을 알아보자.
    바울을 말하기 전에 샌더스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바울 시대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주의가 가지고 있었던 구원 이해를 계약적 율법주의라는 단어로 정리하였다. 그러므로 바울 신학의 원류를 율법주의적 신앙으로 잡는 것은 그의 선택지에 이미 없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말한다면 율법주의적 신앙이 가지는 문제점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얻는 의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럼 핵심은 바로 믿음으로 얻는 칭의일 것이다.[각주:29] 샌더스는 이를 뒤집고, 예수 그리스도를 제일 먼저 제시한다. 즉, 예수가, 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바울신학의 출발점이다. 문제로부터 해결책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만났고 그 안에서 문제들을 재발견한 것이다.[각주:30] 갈라디아서 2장 21절은 이런 바울의 심정을 잘 나타내준다. ‘만약에 의가 율법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된 것.’ 바울은 예수와 부활을 토대로 역으로 칭의와 구원의 의미를 밝혀나간 것이다. 그러기에 바울의 구원관, 교회관, 신앙생활에 대한 원칙들은 예수를 떠나서는 설명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인 바울에게는 보편적 구원론의 확립을 위해서 예수를 선택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나 거꾸로 예수를 통해서 새로운 구원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연스럽게 예수 이후의 바울에게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그리 다르지 않은 상황으로 비쳐졌던 것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구원에 대하여 평등한 입장을 가진다는 것은 선택받은 민족의 일원으로서 계약적 율법주의 안에 있었던 바울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이 또한 예수를 출발점으로 볼 때 이해될 수 있다.[각주:31] 그러므로 바울의 구원론을 정리하자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주 그리고 세계의 구세주로 정하셨고, 그를 믿는 자는 미래의 완전한 구원의 증표로 성령을 얻고, 현재의 주님의 몸된 교회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성령과 하나되어 생활하며, 그들이 속한 성령 또한 그리스도를 주로 섬긴다.”[각주:32]
    이러한 바울의 구원론에 중심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예수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확립된 구원론에 행함보다 ‘믿음’이 강조되는 이유또한 바울의 구원론의 출발점이 예수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믿음’이 바로 믿는자/불신자를 나누는 중심점이 된다. 바울의 구원론의 출발점이 예수로부터 시작하여, 유대인과 헬라인을 거쳐,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결과로 샌더스는 바울에게서 율법폐기론이 나온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의 스승 W. D. 데이비스의 바울 이해에 대립각을 세운다. 데이비스는 바울의 예수 이해는 전통적인 유대주의의 메시아를 좀 더 급진화시킨 것이라고 생각한 것에 반해 샌더스는 그 어떤 유대교의 이해에도 메시아가 율법을 폐기한다고 하는 기록은 없다고 하면서 바울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당시의 팔레스타인 유대주의와는 다른 종교적 패턴, 또는 구원론을 구현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각주:33] 또한 샌더스는 데이비스가 이야기했던 바울의 구원론이 새로운 언약에 기반한 계약적 율법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 반하여, 결정적으로 바울이 계약적 율법주의와 다를 수 밖에 없는 두개의 이유를 제시한다.
    비록 여전히 바울의 구원론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그 기반을 두고 있으나, 첫째, 바울의 ‘새로운 피조물’ (고후 5:17; 갈 6:15)은 모세의 계약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아담에 대한 것이다. 즉, 최초의 인간와 예수의 대조는 바울의 계약에 대한 인식이 전통적인 유대교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바울의 구원론은 계약적 율법주의의 핵심인 계약안에 머무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로운 삶을 구현하며 새로운 피조물로써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이다. 머무름 (Remaining) 이 아니라 옮기워짐 (Transferring)이 바울의 핵심이다.[각주:34]
 
    샌더스, 이전의 바울 연구에 마침표를 찍다.
    1-2세기 유대교에 대한 샌더스의 연구의 결론인 계약적 율법주의가 바울신학연구에 미친 여파는 점점 울리고 퍼져 이제는 복음주의 계열에서도 비판적 수용이든 전적인 비판이든 어떠한 형식으로든 반응하게 만들고 있을 정도이다. 샌더스 이전에는 헤겔을 품은 신약신학이든, 하이데거를 전유한 불트만의 신학이든, 복음주의나 근본주의 신학이든 하나의 거대한 동의(Consensus) 하에서 바울신학을 발전시켰는데, 그것은 기독교는 유대교의 모순에서 출발한 종교라는 것이었다. 이를 기독교 우월주의 (Supersessionism)이라 부른다. 기독교가 확장함에 따라 이 거대한 우월주의는 타종교들을 불교 또는 이슬람교, 율법주의적 유대교라는 틀 안에 묶고, 기독교가 이들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입장을 개진하는 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샌더스의 연구로 이러한 흐름에 빨간불이 켜지게 된 것이다. 샌더스의 대답은 단순명료하다. 그 둘은 ‘다르다’이다. 그 둘은 다를 뿐 변증적 관계, 즉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 둘 사이에는 연속된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그 이전까지 바울신학의 거대한 주제를 이루었던 유대교에서 발전한 기독교, 또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의 변증법적 변화 도식은 어떤 의미에서 그 영향력을 마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샌더스의 연구는 유대교와 기독교가 같다는 의미가 아니었으므로, 그 이후의 학자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바울 복음의 기원은 대체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유대교가 기도교의 동인이 아니라면 무엇이 바울을 유대교와는 다른 구원론을 말하게 한 것인가? 이 질문을 시작으로 바울신학의 새관점이라는 연구 흐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이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바울신학의 새관점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비록 유대교가 바울이 묘사하는 그림에 합당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바울이 말하고 있는 유대교에는 그것이 오해든 무엇이든 율법주의적인 성향이 분명히 존재하며, 결국 바울의 복음은 이러한 율법주의적 구원론에 대한 반론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바울신학은 전통적으로 말해온 바울 복음의 보편성을 다시금 획득하려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를 새관점주의에 반하는 흐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샌더스의 연구를 받아들이고, 바울신학의 기원에 대한 재탐구를 시도하는 신학적 흐름이 있다. 이 흐름은 일반적으로 바울의 새관점주의의 대표적 인물로 불리는 제임스 던(James Dunn)이나 좀 더 복음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는 톰 라이트(N. T. Wright)의 연구로 발전하게 된다. 필자가 보기에 이들은 샌더스의 연구를 받아들이지만 정작 계약적 율법주의 자체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주제는 바울 신학의 기원에 대한 탐구에 있다. 다음 웹진에 차례로 소개될 제임스 던과 톰 라이트에 대한 글은 그들의 연구가 어떻게 기독교의 정체성을 바울에게서 다시 찾아가는지에 촛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세번째로 좀 더 급진적인 바울신학의 연구 흐름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연속성에 촛점을 맞추고 샌더스의 유대교에 대한 연구를 받아들이되 샌더스의 바울해석에는 반기를 드는 그래서 유대주의와 기독교의 벽을 허물고 화해를 시도하는 흐름이 있다. 이는 샌더스 이전의 그의 스승 데이비스에게서 이미 시작된 것으로 로이드 가스턴(Lloyd Gaston), 마크 나노스(Mark Nanos), 케티 에렌스퍼거(Kathy Ehrensperger) 등이 이러한 흐름에 속한다.
    네번째로 기독교 우월주의의 족쇄에서 벗어난 것을 계기로, 전통적으로 강조되어 오던 바울 신학의 주제들(속죄론, 교회론, 구원론) 등에서 벗어나 바울을 종교적 테두리 밖으로 데리고 나와 좀 더 넓은 지평에서 바라보는 흐름이 있다. 이 연구들의 공통점은 바울 신학의 기원을 당시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제국의 정치적 콘텍스트에서 바라본다는 점이다. 1-2세기의 사회와 문화를 지배했던 로마제국의 이데올로기와 종교의 틈바구니에서 종교와 정치를 분리해서 이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것에 착안해서 바울의 메시아적 종말론이 왜 발현되게 되었고, 그 종교, 사회,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이 이 흐름의 전반적인 목적이다. 탈식민주의, 맑스주의, 여성주의 등 정치신학적 관점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나 2000년대에 들어와서 바울의 정치적 관점(Fresh Perspective),[각주:35] 바울과 제국(Paul and Empire), 바울과 탈식민주의(Paul and Postcolonialism) 등이 현재 바울학계에서 통용되는 주제들이다.
    다섯번째 흐름은 바울과 철학(Paul and Philosophy)라는 이름으로 학계에 유통되고 있는데, 현재의 지구화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바울에게서 찾는 것으로 슬라보예 지젝 (Slavoj Žižek),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등이 이에 속하며, 데리다를 통해 네번째와 다섯번째의 흐름을 종합한 테오도르 제닝스(Theodore Jennings)가 이에 속할 것이다. 이상 다섯까지의 흐름은 필자의 생각이며 두번째부터 마지막까지 순차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앞으로의 [바울신학가이드]의 얼개가 될 것이다. 앞으로의 긴 여정에 독자들의 관심을 기대해 본다.

ⓒ 웹진 <제3시대>

 

 

  1. E. P Sanders, Paul and Palestinian Judaism: a Comparison of Patterns of Religion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7), 16–18. [본문으로]
  2. Ibid., 87. [본문으로]
  3. Ibid., 99. [본문으로]
  4. Ibid., 73. [본문으로]
  5. Ibid., 123-124. [본문으로]
  6. Ibid., 177. [본문으로]
  7. Ibid., 240. [본문으로]
  8. Ibid., 241–243. [본문으로]
  9. Ibid., 245. [본문으로]
  10. Ibid., 247. [본문으로]
  11. Ibid., 320. [본문으로]
  12. 바룩 2서는 4 에스라서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므로 제외되었다. [본문으로]
  13. Sanders, Paul and Palestinian Judaism, 329. [본문으로]
  14. Ibid., 333. [본문으로]
  15. Ibid., 341. [본문으로]
  16. Ibid., 361. [본문으로]
  17. Ibid. [본문으로]
  18. Ibid., 364–365. [본문으로]
  19. Ibid., 367. [본문으로]
  20. Ibid., 370. [본문으로]
  21. Ibid., 375. [본문으로]
  22. Ibid., 389. [본문으로]
  23. Ibid., 408. [본문으로]
  24. Ibid., 409. [본문으로]
  25. Ibid., 418. [본문으로]
  26. Ibid., 420. [본문으로]
  27. Ibid., 421. [본문으로]
  28. Ibid., 422. [본문으로]
  29. Ibid., 437. [본문으로]
  30. Ibid., 443. [본문으로]
  31. Ibid., 443–444. [본문으로]
  32. Ibid., 463. [본문으로]
  33. Ibid., 496–497. [본문으로]
  34. Ibid., 514. [본문으로]
  35. 비록 이 이름은 톰 라이트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필자는 라이트를 네번째 카테고리에 넣지 않는다. 그 이유는 톰 라이트를 다룰 때 설명할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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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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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hee
    2015.04.20 18:5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전 네번째 바울신학연구가 맘에드네요.
    • 한수현
      2015.05.09 01:5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거대자본이 만든 사회전복적(?) 블록버스터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제작비 450억 원이 들었다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 열차>는 볼품없는 영화였다.
지구 빙하기에 유일한 인류 생존 집단을 실은 자족적 열차와 그 열차의 머리 칸부터 꼬리 칸까지의 계층화된 군상, 그리고 꼬리 칸 사람들의 봉기를 그린 이야기는 자본체제에 눌려 사는 현실의 꼬리 칸 사람들에게 동일화의 감정을 불러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겐 상영 시간 내내 허점투성이 요소들과 어색한 흐름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영화였다.
살기 위해 하염없이 설원을 달리는 열차가 우리들 사회를 축조했다는 강한 상징성을 인정한다 치고, 모든 억지스런 장면을 눈 질끈 감고 참아 준다면 남는 건 그야 말로 '메시지'라는 영상 외적 요소뿐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불평등과 착취가 구조화된 곳이라 폐쇄된 구조 안에서의 혁명이란 기껏해야 머리 칸 우두머리만 바뀌는 것에 지나지 않을 터, 이 악순환을 깨뜨리는 유일한 방법은 갈등의 좌표 자체를 옮기는 것 뿐이라는 게, 내가 느끼기에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인 듯하다.
바로 이 메시지가 주는 해석의 여지들이 약간의 진보적 성향의 개인들에게 이런 저런 첨삭의 매력을 부여해 주는 것 같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갈등의 좌표를 옮긴다는 것을 부서진 열차 안에서 두 아이만 살아남아 살인적인 설원 속으로 걸어가는 장면으로 연출했다. 이때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유일한 희망의 소품은 저 멀리 북극곰도 살아 있다는 정도이다.
나름 전복적이라면 전복적이고 신화적이라면 신화적인 결말이기도 하지만, 난 왠지 영화 내용과 함께 스크린 외적인 것을 둘러싼 모든 것이 더 큰 시스템에 의해 기획된 무엇으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거대 자본을 투자하고 공룡 배급사가 배급한 사회 전복적 내용의 영화라니!
바로 이 자본과 영화 내러티브의 언발란스가 대중의 지갑을 자발적으로 춤추게 하는 힘인 것이다.
불평등과 권력의 구조를 대중에게 말하는 영화가 되기 위해 아이러니 하게도 그 영화는 블록버스터가 되어야 하는 시스템.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그 권력 구조가 살찌우고 공고해 지는 시스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영화에서 권력구조를 고발하는 내용은 권력 자신이 보여 주는 자신감에 다름이 아니며, 기차 밖 설원 속으로 내몰리는 라스트 신은 기차가 달리는 한 기차 안의 혁명은 없다는 권력의 엄포인지도 모르겠다.

자발적 관객이 되어 동굴 같은 극장 안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며 각자가 상상하는 데로 영화 속의 상징물들을 현실에서 대비하여 보지만, 그리고 그 유추의 놀이에 잠시 잠깐 현실을 제단 하는 전능자가 된 것 같은 재미를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로 선 동굴 속 그림자만 보고 사는 수인의 비유처럼 결국은 사회 시스템이 제공 하는 기호와 이미지 세계에 갇혀 있다는 패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여기 시스템을 비판할 수 있다고 믿고 싶은 나는 그 것이 제공하는 기호와 이미지로부터 얼마나 벗어나 있는 걸까? 아니 벗어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팔천 원을 지불하는 대가로 영화를 보고 비판적 제스처를 하고 있는 것 자체로 이미 시스템이 잘 굴러가고 있으며 나 역시 거기에 일조 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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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식객
    2014.02.11 01:2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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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뷰 잘 읽었습니다.
  2. 오종숙
    2015.03.02 17:5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떠들썩한 영화였지만 보지 않아서 ㅠ ㅠ 영화평중 기차가 달리는 한 기차 안의 혁명은 없다는 말이 머리에 남네 ㅎ





지젝과 신학 (I)
: “신은 죽었다” Vs. “신은 무의식이다”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과정)

 

프롤로그:  4시간 후에 당신이 죽는다면…

몇 해전 30대 이상 미국 남녀에게 ‘4시간 후에 당신이 죽는다면…그대는 무엇을 하겠는가?’ 물었더니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언뜻 생각하면 사랑하는 부모, 아내, 남편, 자식들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해, 정말 사랑해~ 너와 함께 한 이생에서의 삶은 다시 생각해도 최고였어!’라는 숭고하고 가슴 벅찬 말을 할 것 같은데, 성인 남자들의 답변은 남아있는 최후의 4시간 동안 ‘본인의 개인용 PC 하드 안에 저장된 포르노를 다 지우겠다!’라는 말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여자들은 화장대 서랍 속 깊숙이 숨겨져 있는 자위기구들을 제일 먼저 처분하겠다는 답변이 많았다. 남녀 공히 높은 순위에 있었던 항목은 이메일에 남겨져 있는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나눈 은밀한 대화, 혹은 사랑의 연서를 지우는 것이었다. 종합하면, 최후로 남겨진 이생에서의 4시간 동안 우리는 불륜의 흔적을 지우고, 내 욕정과 쾌락의 흔적을 찾아 말살한 후, ‘나는 비교적 정결하고 하자없는 사람이었어!’라는 말로 스스로를 다독이다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는 뜻인데... 
뭐 그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는 서구인들이라 ‘새삼 정결하고 정숙하게 보이려 애쓰지 않으리라!’예상했으나 (신앙 생활 열심이라는 한국 크리스챤들은 어떨까? 갑자기 궁금해지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닥까지는 드러내지 말자!’라는 의식이 그들 뇌리에 여전히 잠재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나를 살짝 놀라게 했다. 이 글을 읽는 한국에 있는 독자들은 4시간 후에 당신이 죽는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먼저 하겠는가?

신의 죽음

서구정신사에서 니체만큼 매혹적인 인물이 있었을까? 마치 브레이크가 파열된 폭주기관차처럼 종말을 향해 겁없이 달려가 막다른 벽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 바로 니체다. 이런 이유로 일찍이 푸코는 그 부서진 니체의 파편이 천 개쯤 될 것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니체는 그의 처녀작인 <비극의 탄생>에서부터 서구 근대를 향한 본인 특유의 돌직구를 날리기 시작했고, 갈수록 구위가 날카로워지더니 급기야는 본인 사상의 후반기로 가서는 기독교에 대한 거침없는 독설을 수없이 마구 퍼부었는데, 그것의 최종 판본이 “신은 죽었다”[각주:1]라는 선언이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그 신을 ‘우리가 죽였다(we have killed him)’라는 니체의 고해성사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겁없이 니체가 위와 같은 위험한 발언을 할 수 있었지?’ 물론, 이런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는데, 이는 서구 근대화의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니체의 발언이 독하긴 했지만)

왕의 죽음

근대적 주체는 신을 죽이기 이전에 이미 왕의 목을 벤 전력이 있다. 프랑스 인민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루이 16세에 대한 처형이 그것이었다. 왕의 폭정에 맞서 파리의 시민들은 국민의회를 조직하였다(1789). 민중들의 행보에 불안을 느낀 루이 16세는 국민의회를 무력으로 탄압하였고, 이에 불만을 품은 인민들은 프랑스 인권탄압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였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구제도(앙시앵 레짐)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프랑스 혁명은 절정을 향해 치닫게 된다.
시위가 탄력을 받자 국민의회는 봉건적 특권의 폐지와 인권 선언을 채택하였다. 이 인권 선언문에서 제시된 천부적인 인간의 자유와 평등, 국민 주권, 언론.출판의 자유 등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민주적 시민사회 운영 원칙의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루이 16세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혁명을 진압하려 하였다. 더욱이 루이 16세는 본인을 향한 국민적 저항에 공포를 느낀 나머지 왕후인 마리 앙투아네트와 은밀하게 국외망명을 시도하려다 발각되고 만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나마 국왕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일부 세력들마저 완전히 등을 돌리면서 정국은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데…
임기 2년의 국민의회가 끝나고, 제한선거와 입헌군주제에 입각한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다. 이 헌법에 근거하여 입법 의회가 소집되었고, 지리상의 발견과 식민지 개발로 부를 축적한 상공업자 중심의 신흥 부르지와 계층과 봉건제의 폭정과 불합리에서 벗어나고픈 부농들이 결합한 지롱드 파가 대두하여 공화정 수립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반역의 기운에 대한 수구세력의 대응 역시 만만치 않았다. 기존 구질서에 종속되었던 세력들과 주변국 군주들은 프랑스혁명이 본인들에게 미칠 파장에 대해 경계하였고, 혁명의 진전을 방해하려는 공작을 도모하였다. 정국 상황이 이렇게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려운 상황속에서 프랑스 인민들은 왕궁을 습격하여 왕권을 정지시키고 공민공회를 조직한 후에,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공화국을 선포하였다.(제 1공화정, 1792). 그리고, 그 다음 해 루이 16세를 처형하였다 (1793, 1).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프랑스 혁명이다.[각주:2]

"느낌 아니까~"(개콘버전으로)

자고로 동양이나 서양이나 왕의 지위는 하늘로부터 내려온다는 ‘왕권신수설’에 입각해 있었던 사회였던지라, ‘인민의 손으로 왕을 처단했다’ 함은 그 동안 우리사회를 지탱해주었던 왕의 법과 하늘의 도에 대한 폐기처분, 내지 사망선고와도 같은 사건이라 볼 수 있고, 이는 더 나아가 신의 죽음까지도 감히 도발케 하는 담력과 욕망을 근대인들에게 제공하는 빌미가 되었다. 실제로, 물리적 왕이 제거된 지 채 100년이 지나지 않아 니체는 ‘신은 죽었다’(1882)라고 선언하였다. (개콘버젼으로, ‘느낌 아니까~’)
이렇듯 그 동안 우리를 지켜주었던 신적인 원리와 선험적 중심의 균열을 지켜보며 19세기는 세기말적 불안과 공포속에서 사라져갔고, 그 균열과 텅빈 중심을 예감하며 20세기는 우울하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라지는 중심은 비어있지만 여전히 그곳에 있다. ‘내용 없는 중심’이라는 근대성의 새로운 공리는 그 비어있는 중핵을 채우려는 분투들을 야기시켰는데, 지금 회상해보니 근대의 정신이란 당시 봇물 터지듯 분출되기 시작했던 탈중심화된 개별적 사상 혹은 그것들이 지닌 특수성을 아우를 수 있는 있는 보편적 원리에 입각한 담론형성의 원칙 뭐 그런 것 아니었나 싶다.
에덴을 떠나간 하와와 아담 이후 후손들이 다시 무리를 이루고 자식을 낳아 기르며 탈향을 극복하면서 삶을 지속해갔던 것처럼, 바벨 이후의 자손들이 세상으로 흩어져 사라지지 않고, 내동댕이쳐진 서늘한 그곳에서 다시 뿌리를 내리면서 자신들에게 가해진 천형이라 할 수 있는 방언을 세워나갔던 것처럼, 사라진 왕의 자리와 神의 이름은 다른 무엇으로 대체되어야 했고, 이에 대한 답으로 근대는 최종적으로 ‘주체로의 전환 Turn to the Subject’이라 말을 고안해냈다.
막스 베버는 이를 ‘근대의 숙명’으로, 맑스주의는 이를 ‘이데올로기의 폭력’으로, 프랑크푸트트 학파는 ‘계몽의 변증법’으로, 하버마스는 ‘대화적 합리성’으로 각각 달리 표현했지만, 이 독일의 사상가들의 뇌리에는 공히 그 텅 빈 중심을 향한 집착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 점이 현대의 프랑스 사상가들과 대결하는 대목이기도 하고) ‘20세기는 이런 주체성의 한계가 어느 선까지 가능한지 실험되었던 장이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한 지적일까?

지젝이 던지는 화두

지젝은 20세기 내내 실험되었던 사회주의 몰락 이후, 근대성 전체를 관통하는 주체성이라는 코드의 상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허무를 지적하면서, ‘이러한 시대에서 우리가 어떻게 다시 살아 남아야 하는지? 어떻게 다시 사회를 조직해야 하는지? 그러기 위한 법과 정치의 형태는 무엇인지? 냉소가 판치는 이 시대에서 새로운 윤리적 전략은 무엇이고, 신의 무능과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 이 시대에서 우리는 신학에 어떤 말을 다시 건넬 수 있을지?’에 대한 화두를 우리에게 던진다.
니체 이후 현대인들은, 아니 엄격히 말하면 갈릴레오가 법정을 나오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던 그 무렵부터, 칸트가 지상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던 빛의 단절을 선언하며, 인간 경험 너머를 알 수 없는 영역, 즉 물자체로 선포하던 그 무렵부터, 신은 사실상 죽었던 것은 아닐까? 이미 그때부터 대타자의 붕괴는 감지되었고, 빈틈이 없었던 城의 어느 구석에서부터 균열은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간극은 매울 수 없는 현실의 질서가 되어버렸고...
그래 맞다. 돌이켜보면, 이미 신은 오래 전부터 쭉 그렇게 죽어있었다. 신의 죽음’을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우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마치 똥 싸놓고 뭉개는 어린아이처럼 우리는 태연히 현실의 놀이에 몰두한다.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지젝의 신 담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지젝과 신학>을 시작하며

하지만, 대타자의 균열을 충분히 분명히 감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일말의 불안이 우리에게는 있다: “신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을까?” 우리는 신의 부재를 알고, ‘그 신이 과연 본인의 자리가 비어있음을 알랑가몰라~’ 하면서 신을 조롱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일말의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 불안이 숙주처럼 잠재해 있다. 그렇게 그 불안은 숨어있다가 ‘4시간 후 지구가 멸망한다면?’이라는 극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치고 올라와,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로 하여금 포르노 파일을 지우고, 자위도구를 없애고, 애인과의 불륜의 흔적을 제거하는 무의식적 행위를 하게끔 하는 동인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지젝은 라깡의 말은 빌어와 “신은 무의식이다”[각주:3]라는 말로 표현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해설에서부터 다음 원고는 시작될 것이다)

이번 웹진부터 <지젝과 신학>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한다. 흔히 지젝의 신학을 유물론적 신학, 유물론과 신학의 조화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솔직히 무슨 말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렇듯 조야한 나의 지젝 이해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젝과 신학>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려는 이유는 비교적 분명하다. ‘기독교가 개독교가 되어버린 씁쓸한 한국교회의 현실 속에서, 이제는 신학에 대해, 한국교회에 대해 아무런 기대를 할 수 없는 이 서글픈 현실 속에서, 전통적인 신 담론에 입각했던 교회의 타락을 ‘대타자의 붕괴’, 혹은 ‘실재의 균열’로 이해하고, 그 균열과 붕괴, 그 연약함과 불완전한 지점에서부터 다시 신을 바라보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젝을 통해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소박한 믿음 때문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구원의 패러다임을 다시 꿈꿀 수 있다면………정말 좋겠다. <계속>

ⓒ 웹진 <제3시대>

 

 

  1. “God is dead. God remains dead. And we have killed him. How shall we, the murderers of all murderers, comfort ourselves?”- Nietzsche, Friedrich., “The Gay Science 125” in The Portable Nietzsche, Edited by Walter Kaufmann (New York: The Viking Press, 1968), 95. [본문으로]
  2.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제1공화국 이후 등장했던 나폴레옹 시대가 몰락한 후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나폴레옹 이후 유럽은 빈 회의(1814-15)를 개최하여 정통주의와 복고주의 원칙하에 유럽의 질서를 프랑스혁명 이전으로 회귀시키려 하였다. 그 일환으로 프랑스에서 부르봉 왕조가 부활하여 다시 ‘앙시앵 레짐’으로 복귀하려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에 프랑스 시민들이 다시 봉기하여 민주주의를 사수하면서 제2공화정 수립을 향해 다시 피 눈물나는 혁명을 감행하는데… 그 과정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 바로 뮤지컬 레미제라블이다. [본문으로]
  3. Lacan, Jacques., Four Fundamental Concepts of Psycho-analysis, ed. Jacques-Alain Miller, tr. Alan Sheridan (New York: Norton, 1978), 5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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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덮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진실』

지은이 : 민주노총 김**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

펴낸날 : 2013년 6월 1일
페이지 : 576쪽
정  가 : 18,000원
펴낸곳 : 메이데이

             * 책 소개 보러가기

관련 기사 :

한겨레 2013.06.22.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뉴스셀, 민중언론 참세상

 책 소개

사건 발생(2008.12.6) 5년째인 지금,
왜 다시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인가?

윤창중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더니 온갖 군대 내 성폭력, 조직 내 성폭력 문제도 뒤이어 불거지고 있다. 한국사회에 이런 사건이 없는 때가 언제인가 싶을 정도다. 사건은 끊이지 않는데 이에 대한 구조적 성찰과 반성은 없고 일상의 성폭력 ‘문화’는 공기처럼 인식도 못하게 퍼져 있다. 역시나 가해자 ‘한 사람’만이 비정상적이고 ‘변태’라는 식의 선정적 보도 행태 또한 그대로이며, 피해생존자들의 입장을 온전히 반영한 성폭력 관련 서술은 찾아보기 어렵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일어나는 성폭력 문제는 ‘공동체’ 전체가 조직적으로 나서서 해결을 위해 고민하고 집중해 노력해야 한다. ‘진보’의 가치를 표방하는 운동사회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실제로 각 조직은 정반대로  사건 해결에 소극적이고 퇴행적인 모습을 보여, 결국 이 사건은 지금껏 ‘미해결 상태로 문제를 쌓은’ 민주노총 김** 성폭력 사건 및 2차 가해 사건과 전교조 2차 가해 사건으로 번지며 심각성을 더해갔다. 민주노총은 사건 평가 보고서 등 형식적 처리 절차를 했지만 성평등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일련의 후속 조치를 제출하지 않고 있으며, 전교조는 민주노총과 마찬가지로 조직적 은폐 조장 행위로 첫 단추―사건 초기 대응―부터 잘못 끼웠던 악수를 반복했다. 내부의 뼈 아픈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는 소수 의견으로 묻혔다. 피해생존자는 말할 것도 없다. 이미 겪은 기억을 없앨 수는 없고 이 끝없는 악몽과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견디며 살아낼 힘을 얻어가는 지속적인 과정이 치유일 텐데, 치유와 활동 복귀는커녕 조직적 2차, 3차 피해를 입으며 방어하기만도 역부족이었다.

그 속에서 피해생존자와 피해자 지지모임(지지모임)은 사안마다 알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기는커녕 일일이 묻고 구걸하듯 요청하고 확인하고 수습해야 했다. 크레인에 올라간 것도, 농성장 천막을 마련한 것도 아니지만, 피해생존자는 어느 순간부터 하루하루 ‘생존’하는 자체가 지상과제이자 목숨을 건 투쟁이 되었다. 사회적으로는 오히려 자신이 처벌을 받은 듯 ‘유령’처럼 존재가 삭제되고 있었다. 이에 지지모임은 그동안 조직 내 공론화와 올바른 해결 촉구를 위해 싸워오면서, 묻혀온 피해생존자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피해생존자의 입장에서 서술된 사실을 있는 그대로 풀어놓으며 그간의 싸움의 과정을 기록하는 백서를 기획하였다. 원고를 준비하던 중 전교조에서 사건 처리를 무마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던 정진후 당시 위원장의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공천이 확정되었고, 지지모임은 이에 항의해 비례대표 철회 투쟁을 하는 데 또 집중해야 했다. 결국 사람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주요 ‘진보’ 세력인 전교조-민주노총-(당시)통합진보당은 꿋꿋이 정진후 국회의원을 탄생시켰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이 사건을 한층 더 무거운 과제로 만들었다.

2000년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100인위) 활동 이후 운동사회 반성폭력 운동은 계속해서 (적어도 절차적으로) 발전해왔다고 하지만, 이 사건의 지난한 ‘처리’ 과정은 우리의 반성폭력 감수성과 공동체의 변화 의지를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성폭력 사건 처리 내부 규정 매뉴얼은 있지만 그것이 실질적으로 피해자중심주의와 피해생존자의 권리를 실현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못했음을 절감하게 되는, 반성폭력 운동 역사에서 충격적인 단면이 다. 규정으로만 존재하며 막상 현실의 실천, 공유, 인지로 연결되지 못하는 반성폭력 운동 성과를 이제는 제대로 직면해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는 이 사건의 피해생존자에게뿐 아니라 ‘여는 글’에서 말하듯 “조직 문화가 여전히 그런 한 앞으로도 나올 수밖에 없을 또 다른 성폭력 피해생존자”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절박하고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세상의 시간 1639일과 칼끝 같은 일 분 일 초,
피해생존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하다Speak Out’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 수많은 말이 어느 시점 묶인 책이라는 물건이 낱낱이 밝히는 진실의 무게는 오죽하랴. 그렇기에 역사적으로 노래나 책을 금지하고 불태우며 진실을 말하는 입을 막았던 것일 터다. 5년의 시간을 거쳐 말을 걸어온 그 사건도 그랬다. 서러움을 다 담아내기엔 무거운 한 자 한 자, 눈물과 아마 한 바가지의 욕이라도 거들지 않고는 책장이 넘어가기 어렵다. 그 욕은 ‘그들’을 향한 것만이 아니다. 읽는 내가, 이 사회가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최소한의 양심의 크기를 마주친다. 아프고 흔들리는 만큼일 것이다. 마음에 돌덩어리와 그을음 같은 것을 안겨주는 말들의 무게, 그것을 풀어내기 위해 견뎌내야 했을 시커먼 연기, 숯, 아니 재가 된 마음, 그 상처 자국의 시간이란.

어떤 사건, 겪은 당시에는 어떤 일인지 미처 파악도 안 될 정도의 당황스럽고 충격적인 어떤 일을, 단지 ‘모두 사실임’을 증명하고 인정받기 위해, 아니 조금이라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관심을 환기라도 하기 위해서, 심지어는 같은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 수많은 경우에 가르쳐가며 ‘구걸’하느라, 셀 수 없는 밤을 고민과 망설임, 싸움, 울음으로 새워야 한다.

어떤 경우는 그 일이 성폭력(2차 가해)이 맞는가 아닌가로, 성폭력(2차 가해)이라고 명백하게 규정된 이후에도 그것이 어떤 정도의 폭력인가, 어느 만큼의 사람들이 책임을 함께 져야 할 일인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일의 사실관계에서 피해생존자의 말이 어디까지 사실인가, 믿을 만한가를 가지고 수없이 싸워야 한다. 치유와 보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사실인가 아닌가’ 시비에 걸려, 피해생존자는 자신을 추스를 새도 없이 끊임없이 이 무심하고 무례한 거친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감정과 에너지와 몸을, 수많은 날의 삶을 소진해야만 한다. 그것이 현재 이 사회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척박한 현실에서 더 귀중한 피해생존자의 진실된 날것 그대로의 말하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거울 보듯 되물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폭력을 폭력이라 말하고 아픔을 아프다고 말하는 자에게 물리는 재갈, ‘왕따’라는 처벌, 웃을 수도 울 수만도 없는 이 잔혹한 한 편의 현실 극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나는 이 사건의 피해생존자가 아닌가? 또한 가해자가 아닌가? 과연 이로부터 진정 자유롭고 해방된 자는 누구인가? 우리 안의 어떤 것이 그 ‘유령’을, 말하지 못하는 족쇄를 만드나? 한국 운동사회는 속속들이 스며든 스스로의 가부장성을 보지 못하고 정작 살아 있는 목소리, 살려야 할 가치를 한쪽으로 치워놓고 빈 껍데기로 ‘운동’이니 ‘사회 진보’를 운운하지는 않는가?

아파서 몸부림치기, 함께 울고 감싸 안기… 싸움의 장, 운동이 시작되는 점은 바로 여기여야 하지 않을까? 사회의 가장 아픈 부분에서부터 운동은 움트고 시작되어야 한다. 온갖 구호와 변명이 넘치는 세상, 겪은 일을 담담히 적은 피해생존자의 글은 고통을 말하는 글이지만, 피울음으로 얼룩진 그 글이 오히려, 가치를 버리고 ‘세’를 택하는 데 익숙해진 운동사회를 포함한 혼탁한 세상에서 깨끗하고 맑은 물 같은 존재다.

사건 ‘처리’ 과정의 입체적이고 전방위적인 기록
―피해생존자의 글, 사건 처리 과정 평가, 지지모임 활동, 지지하는 목소리, 인터뷰, 사진 자료

각 조직에서 사건은 어떻게 일사천리로 ‘해결’(이라 쓰고 ‘처리’라고 읽는다)되었나? 성정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피해생존자를 포함한 지지모임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열정을 쏟아 조직 내에서 저항하느라 고군분투했는가?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각기 어떻게 이 사건을 보고 접근하고 ‘처리’했으며, 그 둘은 어떻게 닮았나? 이 부조리는 어떤 식으로 반복되며 확대 재생되는가? 소수자의 목소리는 어떻게 묻히고, 힘을 가진 자는 어떻게 조직에서 밀어주는가? 어떤 쪽이 결국 ‘정의’의 칼자루를 쥐고 휘두를 수 있는가?

 

 

이에 답하는 지지모임 사람들이 함께 쓴 평가들이, 피해생존자의 글 뒤로 이어진다. 그간의 활동을 기록한 집회나 공식 회의(대의원대회 등), 토론회, 문서 등 사진 자료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민과 이야기로 다양하게 적어 보낸 ‘지지하는 목소리’, 현장에서의 생생한 인터뷰, 피해생존자가 직접 나서서 조합원들에게 호소한 글, <한겨레> 허재현 기자가 취재한 팟캐스트 방송 내용 등 사건의 진실을 모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자료들을 골고루 담았다. 그 밖에도 이 책에 지면상 다 싣지 못한 기사 스크랩, 성명서 등 추가 자료는 지지모임 카페http://cafe.daum.net/anti-sv의 ‘자료 신청 게시판’에 신청하면 받아 볼 수 있다.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공식 백서가 아니라
지지모임이 발로 뛰고 교육노동자를 비롯한 지지자들의 후원으로 함께 만든 자발적인 책

이 책은 지지모임에서 지지와 후원을 모아 함께 쓰고 만들었다. 조직 내 공론화와 사건 해결의 일환으로 백서 작업을 결정하고 발간 지원을 요청했으나 조직이 지원을 거부한 탓이다(2013년 바뀐 전교조 집행부는 일부 지원을 약속했다). ‘여는 글’은 “집회에서 백서 발간 후원금을 모금할 때 앞자리를 차지한 정치인이나 핵심 간부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데 선뜻 일어나 호주머니를 털어 꾸깃꾸깃, 한 푼 두 푼 쥐여주신 나이 드신 청소노동자 분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살뜰한 후원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있어 피해생존자 동지가 그동안 받은 상처로 뼈를 깎는, 죽을 듯한 고통에서 일어나 이 자리까지 뚜벅뚜벅 걸어 나와서 자신의 목소리를 이 책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밝힌다. 피해생존자를 포함한 지지모임 사람들의 피해자 중심주의적 철학과 목소리를 오롯이 담은 책이 될 수 있었으나, 앞으로 남은 공론화와 사건 해결, 조직 내 성평등과 반성폭력 문화 확산이 중요하게 남은 공동의 과제가 되었다.

 

 

차 례

추천의 글  성폭력, 여성들의 투쟁, 그리고 ‘남성 중심적 진보’의 갈 길 | 허성우 
               이 책은 백서가 아니다 | 권김현영

여는 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나요?

1부 피해생존자, 나를 말한다

1장 잔설에 핀 노오란 복수꽃 ― 차갑고 따뜻했던 내 삶의 이야기 | 심촌

지지하는 목소리 ― 첫 번째 _ 조성웅 | 오창익 | 정상용 | 문임순 | 김인숙 | 김성보 | 전인애 | 재현

2부 ‘공동체’가 택한 것과 버린 것, 싸움으로 바꿔내기

1장 ‘민주노총 김** 성폭력 사건’경과

2장 피해자 권리보다 우선한 조직 논리
― 민주노총의 사건 처리 과정 평가

3장 2차 가해 인정이 피해생존자 치유의 시작이다
― 전교조의 사건 처리 과정 평가, 첫 번째
* [참고 자료 1] <교육희망>에 실린 피해생존자의 글
* [참고 자료 2] 전교조‘ 성폭력 예방 및 처벌 규정’

4장 전교조는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 전교조의 사건 처리 과정 평가, 두 번째

5장 피해생존자의 목소리와 함께한 지지와 연대
― 민주노총 김**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 활동 평가
* [참고 자료 1] 지지모임 전교조 관련 활동
* [참고 자료 2] 지지모임 민주노총 관련 활동
* [참고 자료 3] 지지모임 전체 활동 일지

지지하는 목소리 ― 두 번째 _ 신은희 | 박덕준 | 조남규 | 김상정

3부 되풀이되는 부조리, 줄기찬 저항

1장 진보운동과 성평등, 함께 갈 수 있을까?
― 2012년 4·11 총선, 통합진보당 정진후 비례대표 후보 철회 투쟁 이야기
* [인터뷰] 칠월 | ○○○ | 조영원 | 이계삼 | 강민주
* [참고 자료] 통합진보당 정진후 비례대표 후보 철회 투쟁 경과

2장 반성 없는 운동사회가 다시 반성 없는 진보정치로 | 나영
― 정진후 사건을 반드시 되짚어야 하는 이유

지지하는 목소리 ― 세 번째 _ 오정희 | 봉화지회 운영위 | 백선영 | 곽이경

맺는 말  일방통행은 언제나 위험했다 ― 성찰 없는 사건 ‘처리’를 넘어서

지지하는 목소리 — 네 번째 _ 황미선 | 유현경 | 지원 | 조진희 | 이황현아 | 보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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