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국가인가?[각주:1]

: 세월호 침몰 사건을 바라보는 지젝의 시선과 산자의 독백

이상철
(한신대 외래교수)

 

Intro

배가 가라앉았다. 300명이 넘는 사망자와 실종자를 내었고, 그 중의 대부분은 고등학교 2학년 눈이 부시게 푸르른 아이들이다. 2014년 고난주간 중간에 들려온 이 소식은, 그리고 현재 계속 진행 중인 그 사건은 우리를 모두 슬픔과 절망에 떨게 했고, 우리의 입에서 부활을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 구약성서 전도서 기자에 의하면 매사에는 때가 있다고 한다. 그래 지금은 하염없이 울고 슬퍼해야 할 때이다. 그런데 자다가 자다가 울화가 치밀어 잠에서 깨면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대체 이것이 국가인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저 바다에 누워 하늘을 바라볼 수 있을까? 우리가 그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1
‘세계가 어떻게 우리에게 드러나는지?’에 대해 슬라보예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가 우리에게 드러나는 방식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초월성을 이성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투사한 후에 얻어지는 확실성에 기인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지젝에게 있어 초월이란 저 멀리 있어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초월이 아니라, 초월성 자체가 이미 세계에 들어와 있어 세계에 틈을 내고, 그 틈으로 인해 혁명의 가능성을 감지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세계 속에 개입하지 않는 초월성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의 성육신은 세계안으로 개입한 신의 초월성을 아주 잘 드러낸 사건이었고, 그 초월성은 2천년 동안 유전되면서 지속적으로 변혁을 위한 유령을 불러내는 주문과도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그 초월의 가장 극점인 예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회상하는 2014년 고난주간에 그 초월을 비웃는 일이 발생해 버린 것이다. 

아! 이것이 정녕 초월의 방식인가!
아! 그래서 정녕 초월이란 “자기 속에서 자기를 능가하는 어떤 것!”이어야 했는가? 

사실 위의 문구는 정신분석학에서 많이 논의 되는 타자(the Other)에 대한 정의와도 겹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 안에 있지만, 나를 능가하는 어떤 것,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어떤 것, 내 안에 있는 틈과 얼룩과 빈 공간…… ‘그 X로 인해 혹 그 곳이, 혹 그 날이 탈구되어(out of the joint) 불현듯 도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예감을 가지게 하는 그 무엇을 우리는 타자라 부른다.

지젝의 시선으로 이번 사건을 바라본다면, 2014년 고난주간에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이 비극은 숨어 있었던,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대한민국의 실재가, 그리고 그들의 타자가 커튼을 찢고 불쑥 융기한 사건이고, 이 비극은 우리에게 앞으로 많은 Sign을 허락하면서 유령을 불러내는 주술이 될 것이다.

2.
그런데, 문제는 그 타자가 지젝에게는 결핍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기존 정신분석학은 주체의 결핍만을 이야기하였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적 치료란 대타자로 상징되는 세계와 사회는 완벽하다는 가정하에, 그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체를 치료하는 것이었다. 주체의 결핍이 주된 치료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젝은 주체의 결핍과 타자의 결핍 둘 다 이야기한다. 주체의 결핍과 타자의 결핍, 그 양자의 결핍이 발생하는 복수적 결핍의 공간에 지젝은 개입하며 체제를 선동한다. 이것이 지젝의 특이한 점이다.

아래 예화는 지젝식 타자의 결핍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흥미로운 예화이다.
: 닭이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한다고 믿는 환자가 있다. 그는 스스로를 닭의 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치료를 받고 완치가 되어 그는 자신이 닭의 모이가 아니라, 인간임을 깨달았다. 완치가 되고 돌아가던 그 환자가 의사에게 돌아와 이렇게 되물었다고 한다: “내가 이제 닭의 모이가 아니라 인간인 것은 알겠는데, 설마 닭도 그 사실을 알까요?” 

여기서 닭은 세계와 사회, 즉 타자를 상징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기존의 정신분석학적 치료란 정상적인 세계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에 대한 치료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젝은 그 타자 역시 결핍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대체 무엇을 의도하는 것일까? 실제로 예를 들어, 한국사회에 자살자가 많다는 것은 자살하는 사람 본인의 문제, 즉 주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자살사회를 만들어 국민들을 자살로 내모는 대타자인 국가의 결핍이기도 하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의 결핍도 체험했지만, 그보다 더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국가로 상징되는 대타자의 결핍, 아니 붕괴이다. 주체만 정신 차렸다면, 주체가 정상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보다, 믿었던(?) 대타자였던 국가가 텅 비어있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잠 못 들게 한다. 완벽하게 미장센 되어있을 것 같았던 공간은 뻥 뚫려 있었고, 티끌 하나 없을 것 같았던 캔버스에는 곳곳에 얼룩이 묻어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을 못 했던 것은 아니나, 설마 이 정도까지 바닥을 칠 줄은 우리 중 아무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 결핍은 그 동안 우리 안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숙성시켜 왔던 것일까? 그것을 알아야 할 것 같다.  

3.
전 시대를 ‘이데올로기의 시대’라고 하고, 현재를 ‘냉소의 시대’라고 할 때, 전자는 뭘 몰라서 생기는 문제이고, 후자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노동자, 농민은 한나라당을 찍는 것일까? 어떻게 자기 계급에 반하는 투표가 가능할까? 우리가 선거 때마다 수없이 물었던 질문들이다.

체제는 대중들이 원하는 환상을 너무나 잘 알고, 당대의 환상공식에 입각하여 새마을 운동으로, 뉴타운으로, 4대강으로 이름을 달리하면서 그 환상들을 주입하는 데 성공해 왔다. 이렇듯, 이데올로기란 기본적으로 인민들에게 허위의식, 즉 환상을 주입하는 공식이다. 그것을 이데올로기적 조작이라고 불렀고, 80년대 운동의 1차 목적은 이런 이데올로기가 주입하는 환상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저물고, 자본의 승리가 전 지구적으로 확인된 21세기를 우리는 냉소의 시대라 부른다. 냉소주의(Cynicism)의 기원은 그리스 견유학파의 대표격인 디오게네스로 올라가지만, 그것이 본격적으로 역사의 수면으로 올라온 것은 근대 자본주의의 발호와 운명을 같이한다. 자본주의는 모든 질적인 차이, 즉 사용가치를 화폐를 매개로 하는 교환가치로 바꿔버린 시스템이다. 환언하면, 전통, 개성, 성격, 역사, 명예 등등의 서사들을 비웃으며, “그런 것들 얼마면 돼?”라고 조롱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서사들은 몇 푼의 화폐로 교환되어 누군가에게 팔려가고, 동일한 이유로 우리는 통장에 돈이 입금되면 모든 것을 다 팔아 버릴 수 있는 cool한 인간이 되었다.

‘입금되면, 즉 환상이 주입되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말은 ‘마치~인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산타가 아빠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선물을 받기 위해 마치 진짜 산타가 있는 것을 믿는 것처럼 연기할 수 있어.” “나는 대한민국이 결핍되어 있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 하지만 7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갖고 있는 성공한 대통령이기에, 마치 이 나라에 아무일 없는 것처럼 행동할 거야.” 나는 산타가 아빠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이고,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결핍되어 있는 것을 잘 아는 통치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대통령은 산타의 존재와 국가의 결핍을 마치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것이 바로 이데올로기가 환상의 측면에서 발생한다는 말이다. 환상은 결국, 결핍이 있기에 생겨난 것이고, 환상은 결국, 얼룩을 감추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한국사회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체제에 의해 수많은 환상들이 제공되면서 우리 안의 결핍을 메워왔다. 증상이란 그 결핍을 숨기는 과정에서 완전히 가려지지 않아 생기는 얼룩과 같은 것이고…… 간헐적으로 그 증상들은 한국 현대사의 전개과정에서 극적으로 출현하였다. 그것이 90년대 이전에는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문익환 등등의 사건으로 우리에게 기억되었고, 근래에는 용산에서, 밀양에서, 쌍용에서, 구럼비에서 그것들은 어김없이 제삿날 망자들의 혼령이 귀환하듯 그렇게 우리사회 구천을 떠돈다. 증상에 대해 정신분석학은 억압을 주장하지만 억압은 완벽히 억압되지 않는다. 지난 한국 현대사에서 억압되어 왔으나 완전히 억압되지 않았던 것들의 집단적 발호와 집단적 귀환이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이라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4.

그럼, 이제부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슬퍼해야 한다. 충분히 우리는 울어야 하고, 충분히 우리는 가슴을 치며 애통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 조금 진정된 다음에, 눈이 부시게 푸르렀던 그 아이들을 다 보내고 난 다음에, 우리는 마음을 다 잡고 서서히 복기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의 주요 골자는 Act이다. Act는 실재(the Real)을 드러내는 행위다. 억압당했던 실재를, 이데올로기가 선사하는 환상에 의해 메워졌던 결핍을 드러내는 행위가 Act이다.

지젝은 이 대목에서 Act와 Action을 구분한다. Action은 그때 그때 상황에 일시적 땜질을 하는 반응이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그 action을 취하는 것마저도 힘겹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촛불기도회 밖에 또 무엇이 있을까? 몇몇 책임자 처벌하고, 일부 개각을 단행하고, 관련 법규 가다듬고, 유족들에 대한 보상 논의가 오고 갈 때쯤이면, 우리는 다시 일상에서 허덕이다 6월에 있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광장에 모여 목이 터져라 응원하면서 ‘오! 필승 코리아’를 한 목소리로 부르며 이 국가에 대한 감격을 다시 공유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또 오늘을 서서히 잊어갈 것이다.

이 대목에서 지젝의 현대 다문화주의 전략에 대한 지적이 나의 관심을 끈다. 세계화, 지구화, 탈영토화라는 모토아래에서 운영되는 21세기 자본의 운동은 차이의 정치학, 다문화주의에 대한 찬양과 옹호로 전환되어 전 지구를 하나로 엮어 버렸다. 이 말은 21세기 자본의 전체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 차이와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는 말이다. 이는 특수한 것들이 보편화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감당한다.

예를 들어, 여기 homophobia(동성애혐오증)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는 우리 사회에서 지난 시절 불온하게 불리어 왔던 빨갱이, 전라도, 종교다원론자, 좌파 등등의 말이 지니는 기표들의 연쇄의 최종 종착점이라 할 수 있다. 이 단어들은 사회의 결핍을 드러내는 위험요소들이다. 그런데 현대의 다문화주의는, 아니 자본의 위력과 아량은 이 모두를 다 포용한다. 그리하여 각자에게 우리 사회에서 기거할 자기만의 방을 허락해 주었다.

그러나, 그 방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동성애가 갖는, 빨갱이가 갖는, 좌파가 갖는 틈으로서의 잠재력은 사라진다. 그냥 단순한 This is one of them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때의 타자는 타자성이 거세된 타자이고, 나와 일치하고 내가 공감하는 타자이다. 그리고 그 타자에 대한 환대와 수용은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다. 이러한 수평적 다양성은 라끌라우가 말하는 수직적 적대, 지젝식 틈새와 결핍을 숨기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최후로 남겨진 수직적 적대라고 할 수 있는 절대 관용할 수 없는 타자는 역으로 공격해도 무방한, 이 사회에서 셈을 안 해도 되는 그런 존재로 정당화된다. 무슬림 세력이 대표적이고, 아감벤이 말하는 호모사케르는 이들을 대표하는 표제어가 되었다.

에필로그

세월호 침몰사건은 대한민국의 수직적 적대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머지않아 사건이 진정되면서 수평적 다양성의 관점에서 여러 가지 물타기 전략이 흘러 넘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보편적 차원으로 고양되어야 할 Act를 가리우고 상황에 안주하는 Action 차원에서의 논의와 대책들이 요란하게 흘러 넘쳐 우리의 혼을 빼앗아 또 다시 이 논의에서 우리를 소외시킬 것이 뻔하다. 이제부터 두 눈을 부릅떠야 할 것이다.
Act는 사회자체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행위다. 세월호 침몰은 대한민국 사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극명한 사실을 드러낸 사건이다. 이 긴장을 어떻게 유지하여야 하고, 어떻게 변혁을 위한 보편화의 가능성으로 이끌어 낼는지는 여기 이곳에 구차하게 살아 남은 우리 어른들의 몫이고, 어린 망자들을 향한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고 애도일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한겨레 21, 제1008호 (2014. 4.28) 표지문구를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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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7]

바울신학과 탈식민주의II

- 바울과 제국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왜 주류신학에서 탈식민주의를 말하지 않는가?
    
    이전의 웹진의 글에서 원래는 식민주의 시대 이후의 정치적 텍스트 읽기의 한 방법인 탈식민주의가 어떻게 성서 해석의 장으로 들어왔고, 성서가 쓰여졌을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는가를 논했다. 더 나아가 탈식민주의 이론의 발달로 인해 영미의 인문학과 신학이 자신의 오만을 반성하고 새로운 텍스트 읽기를 인정하는 중요한 단초가 되었음을 지적하였다. 이번 웹진은 그러한 탈식민주의적 성서읽기가 어떻게 신약성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짧게나마 다루어 보고자 한다. 하지만 먼저 그 전에 이른바 진보적 성서읽기가 왜 신학교의 상아탑이나 학문적 차원에서만, 그것도 소수의 학자들에게서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해보자.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탈식민주의만 논할 것이 아니라 이른바 탈근대의 시대에 태동되었던 성서해석의 흐름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근대와 탈근대의 장구한 성서해석의 흐름을 짧게 요약하는 것이기에 많은 한계가 있을 것이나 적어도 현대 성서해석학의 위치를 조감해볼 기회는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근대의 시대가 계몽주의와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에 현실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안다. 종교개혁을 통해서 카톨릭으로부터 개신교회가 독립하기도 하였지만 성서학에서 가장 큰 변화는 성서 이해에 대해 로마의 기독교화 이후부터 있었던 해석의 기준인 교황권이 약화되었다는 것이었다. 즉, 무엇인가 새로운 해석의 방법이나 관점을 발견하더라도 근대 이전에는 교황권의 인정을 받아야만 유통될 수 있는 담론이 바로 성서에 대한 해석이었다. 한마디로 신학과 성서학은 카톨릭의 권위 아래에서 검열되었고 유통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안에서도 개혁을 꿈꾸며 혁명적 신학을 개진했던 인물들이 있었지만(둔스 스코투스 또는 보나벤투라 등) 거시적 지평에서는 정통과 이단의 기준은 교황권에 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으로 인해 그 권위가 일거에 사라졌다.[각주:1] 게다가 이미 ‘이성주의’라는 거대한 물결이 세계를 덮고 있었다. 권위가 사라진 시대에서 라틴어로만 번역되어 존재하던 성서가 여러 언어들로(특히 독일어와 영어) 출판되고, 이성을 기반으로한 과학적 사고가 전통이라는 시대적 가치를 부수고 나오게 되자, 시대는 전통적인 것보다는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으로 뒤덮혔고 이제 학문은 전통을 인정하되 과학적 사고로 전통을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 것이다.
    쉽게 바꿔 말하면, 근대 이전의 시대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은 자신이 하고 있는 농작물을 키우는 일에 대해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그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농업에 대한 지혜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었다. 바로 전통이 그의 직업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의 시대가 되면서 자연과학이 최고의 가치로 등장하게 되자, 제일 먼저 농부가 해야 할 일은 (그가 성공하고 싶다면) 과학적 방법으로 발달된 새로운 방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야흐로 몇백년, 아니 몇천년동안 내려오던 전통적 방법에 물음표가 붙으면서 과학적, 이성적 방식을 받아들여 변화의 시대에 발맞추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농업을 예로 들었지만, 이러한 변화에 가장 민감했던 것이 바로 예술과 인문학이었을 것이다. 신적 권위를 드러내고 그 권위를 이해하는 것에 바쁘던 학문들이 자신들의 전통에 괄호를 치고 이성에 빗대어 질문을 던지면서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더할 것은 더하면서 좀 더 새롭고 이성적인 담론을 산출하기에 온 정력을 쏟게 되었다. 신학과 성서학도 예외는 될 수 없었다.
    계몽주의적 성서학의 태동이 신화의 시대에 갇혀있던 인간을 계몽시키고 역사 속에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데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질문없이 권위에 복종하며 참복음의 묵상에는 어쩌면 게을렀던, 그래서 너무도 쉽게 정치와 권위의 신하이기를 자처했던 성서학이 그 틀을 깨고 나와서 여러 다양한 비평의 시대를 연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 성서학의 태동을 뒤집어서 보면,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성서의 생존을 위해서, 성서가 미신과 신화로 뒤범벅되었음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성의 시대에 성서를 구원해 낼 것이냐를 고민했던 결과가 바로 근대성서학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기에 근대 성서학의 빛과 그림자가 있다. 신학교 신학생 시절 선배들과의 대화 속에서 중고등학교때까지 충실하게 믿었던 성서의 여러 기적이야기들이 한낱 신화적인 그리고 문학적인 문법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들임을 들었을 때 물론 성서를 새롭게 보는 지평 또한 열렸겠지만 이전의 신앙적 양태를 폄하하는 교만의 시각도 함께 열렸다고 한다면 심한 억측일까? 새로움을 추구하는 근대적 학문은 중세의 그늘을 여는 눈부신 햇살이 되어 잠들어 있는 인간됨이라는 아름다움을 깨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지만 오로지 진보와 새로움의 추구는 자칫 잘못하면 다양성에 대한 지적유희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 한 예로 근대의 성서학은 일세를 풍미했던 불트만이나 케제만과 같은 독일 성서학 시대와 사회학적 해석과 간문화적 연구를 필두로한 미국의 진보성서학의 시대를 넘게 되면, 구조주의적 비평과 신비평, 그리고 문학비평 등의 다양성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하나의 텍스트에 하나의 의미란 없으며 텍스트는 오로지 열린 것으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으로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의 시대가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다양성에 대한 추구가 현실의 콘텍스트를 잃어버리고 학문의 상아탑 안에 갇히게 되면 성서는 믿음의 텍스트로서의 힘을 잃어버리고 학자들의 지적유희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물론 이는 현대 대학의 인문학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이지만, 특히나 성서학과 교회의 괴리, 성서학과 현시대 상황과의 괴리는 참으로 진보성서학에게는 아픈 부분이다. 교회는 보수화되었기에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고들 하였다. 축자영감이나 주장하는 보수적 교회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성서학이, 바로 이스라엘의 해방, 예수 운동, 그리고 바울의 혁명적 교회론을 읽는 성서학이 현실에 귀기울이지 않고, 헬라어의 단어 하나, 몇개의 구절이 예수의 역사적 서술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 골로새서가 바울의 저작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수백 편의 논문이 나오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 아닐까?
    그렇다면 탈식민주의란 것은 이러한 서구의 엘리트주의나 지적유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전 웹진에서도 설명했듯이 탈식민주의의 중요한 이론가들의 기반이 된 것은 데리다의 해체주의, 맑스주의, 라깡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푸코의 담론이론 등이다. 이러한 이론들은 인문학 전체에 걸쳐 영향을 미쳤으나 몇몇의 전문가 집단을 제외하고 쉽게 이해되기 힘든 담론들이며 성서학에서도 부분적으로 다루어지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이론의 역사와 달리 탈식민주의는 서구의 식민주의 또는 제국주의 열강들에 대한 전세계적 저항의 역사를 담지하고 있는 민중들의 담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넓고도 복잡한 탈식민주의적 이론과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 어떤 성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오늘 웹진에서는 성서의 가장 문제적인 주제인 ‘제국’을 가지고 탈식민주의가 어떻게 상아탑에 갇힌 성서를 탈경계화하고 성서해석의 역사만이 아니라 성서텍스트 자체에 대한 반성을 생산할 수 있는지 간단하게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탈식민주의의 두 갈림길 – 제국과 성서, 그리고 탈식민주의 관점으로 본 제국

    제국(Empire) 과 제국주의(Imperialism)만큼 본 웹진에서 자주 언급된 주제도 드물 것이다. 이 주제는 이 웹진만이 아니라 전체 인문학과 성서학에 흔히 다뤄지는 주제인데, 때로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미국의 패권주의 등등의 다른 말들로 치환되기도 한다. 그만큼 제국이라는 말이 현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좋은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제국주의는 하나의 통치이념이다. 여기에서 Imperialism은 Imperator(임페라토르)라는 라틴어에서 온 것인데 이는 독재관(또는 황제)이라는 로마의 직책에서 유래한다.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넘어가는 시대에 로마는 전쟁으로 인한 위기 상황을 타개해 나갈 방법으로 독재관이라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전까지의 원로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지휘관의 개념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군사적 전권을 가지는 계급으로 로마가 황제정으로 가는 시발점이 된 직책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율리우스 시이저를 들 수 있는데, 당시의 로마의 군인들은 원로원이나 로마의 공적 기관으로부터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지휘관으로부터 봉급을 받았으므로 독재관이라는 것은 명실공히 금권과 군사력을 동시에 가지는 독재가 가능한 직책이었다. 이후 이른바 종신독재관이라는 직책이 만들어지면서 황제정의 길이 열리게 된다. 이러한 황제정과 식민정책을 기본정책으로 삼는 것이 로마의 제국주의였고 이를 계승하려 한 것이 근대국가 이전의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이었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한 근대국가들이 결국에는 제국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자본의 팽창을 위해 끊임없이 식민지를 만들고 타국을 침략하여 군사인 힘과 경제적인 힘으로 정복하면서 다른 제국들과 경쟁하는 시대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후, 네그리는 그의 저서 ‘제국’에서 전지구적인 하나의 제국을 상정한다. 국가간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등장하는 자본과 그들을 움직이는 힘들이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자본의 힘으로 세계를 관리 감독하는 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모든 형태의 제국의 기본적인 체계가 바로 로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로마가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넘어가던 시대에 신약성서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국가경영에 대한 정치이념에는 몇가지가 있을까? 깊게 생각해 보더라도 시민의 참여를 통해 국가의 경영을 결정하는 민주정치이념과 소수의 엘리트집단이나 개인에 의한 일당독재나 일인독재, 또는 황제정치(제국정치) 이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는듯하다.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민주정치는 근대 이전에는 불가능했었는데, 민주정치에 대해 무지했다기보다는 이를 가능하게 할 인프라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2013년의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를 예로 들더라도 초고속 인터넷과 엄청난 정보고속도로가 있음에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인력과 자금이 들어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 개표에 대한 의문들이 생기기도 하였다. 하물며 근대 이전에서 모든 국민들의 생각을 모은다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민주정치를 꽃피운 (비록 소수 남성 자유시민들의 정치였지만) 아테네 또한 조그만 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어느 정도 크기 이상으로 팽창하게 되면 일인독재체제가 가장 효과적인 통치체제가 되는 것이다. 결국 제국주의가 기본 통치이념이 된 이후에 그리스 헬라 철학은 개인의 윤리와 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에피큐로스, 스토아학파) 정치에 대한 철학적 상상력은 그 종언을 고하게 된다.
    헬레니즘과는 다른 지역에서 발달하여, 헬레니즘의 거대한 물결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헤브라이즘이라 후대에 불리우는 이스라엘의 종교와 정치는 출애굽의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성막중심 공동체로부터 시작하여 솔로몬 왕에 이르러 성전 중심의 종교국가로 발전한다. 그러나 성막공동체가 야웨 하나님과 억눌린 자의 해방을 통한 정의의 공동체를 목표로 했음에 반하여 성전중심의 국가가 된 이후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시대를 정점으로 남과 북왕국으로의 분열과 성전종교의 타락 등으로 쇠락의 시대를 걷다가 결국 나라를 잃고 식민통치의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식민통치 시대에서 공동시대 70년쯤에 예루살렘성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까지 남유다 멸망후 약 600년간 유대인들은 끊임없는 저항의 시대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에 그들의 중심이 된 사상이 바로 유대주의(Judaism)이다. 정치적 독립이 요원한 상태에서는 종교적인 담론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하나로 모으고자 하였고, 로마의 감독을 받는 이집트와 시리아 제국이 잠깐 한눈을 팔기만 하면 정치적 독립을 위한 전쟁을 시작했던 것이 바로 유대의 역사였다. 자연스럽게 그리스 문화와 로마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생각도 생겨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열망도 있었다.(한 예로 쿰란 공동체를 들 수 있다.) 결국 제국과 성서에 대한 질문은 제국의 식민통치 아래에서 쓰여진 성서가 인간의 공동체와 국가를 경영하는 최종 모델인 제국이라는 이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내고 있느냐라는 것으로 모아지게 된다.
    성서가 인간의 제국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존 도미닉 크로산이 역사적 예수 연구의 결과물로 예수를 성전중심의 브로커 체제(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적 역할로서의 종교)를 혁파하는 종교혁명가로 소개하였을 때, 닐 엘리엇이 ‘Liberating Paul’에서 바울을 로마 황제 숭배에 반해 그리스도를 주(Lord, kupios)로 고백함에 대한 정치성을 말할때, 당시의 학자들의 마음속에는 제국의 패도정치에 반하는 사랑과 정의의 화신으로써의 그리스도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복음서의 예수는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권위주의를 해체시키고 아래로부터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후 전미성서학회(SBL: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에 ‘예수와 제국’(Jesus and Empire)라는 분과가 따로 생겨날 정도로 신약성서의 배경을 로마제국의 이데올로기로 보고, 성서를 제국에 대한 저항문학의 관점에서 다시 읽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식민공간과 그 안에서 움직이는 담론들을 좀 더 깊이 살펴보기 위해, 잠시 눈길을 돌려 한국의 식민의 역사를 살펴보자. 대한 제국이 당시 일본제국과 한일합방의 치욕을 겪고 난 이후, 당시의 지식인들로부터 이후 민초들에 이르기까지 저항의 물결이 해방을 얻기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대한제국은 조선시대 이후로 근대적 국가를 건설하려는 정치적 변화의 일환이었으나 본격적인 근대화에 첫 발을 딛기도 전에 식민의 시대의 질고를 지게 되었다. 일본제국의 식민하에서 조선독립운동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된 것이 바로 첫째는 민족주의이고 다음은 맑스주의 또는 사회주의였다. 평등과 자유를 기본으로 하였던 맑스주의는 불평등과 자본주의를 중심으로한 식민통치에 저항담론이 되었고, ‘민족’이라는 단어는 저항의 구심점으로 조선민중들이 하나의 가치로 모여들게 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이 ‘민족’이라는 단어는 위정자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하였다. 아직도 필자는 아침마다 왼 가슴에다 손을 얹고 외우곤 했던 문장들이 기억난다. “난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모든 국민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해야 할 민족이란 무엇일까? 바로 국민들이 아닌가? 자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 것을까? 오히려 충성을 요구하는 어떤 집단이 자신들을 위해 ‘민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뿐인 것 아닐까?
    다시 신약성서로 눈을 돌려보면 로마제국의 이데올로기에 맞서서 저항의 구심점이 되었던 것 또한 민족이라는 개념이었다. 물론 근대 민족국가에서의 민족과 유대주의로 대변되는 유대민족주의는 다른 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구약성서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식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전 멸망 이후에는 유대주의라는 이름으로 계속 이어져가는 이스라엘의 민족적 자의식은 제국의 지배와 함께 생성되어온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었다. 그러나 유대의 민족주의 또한 민족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애매함과 폐쇄성 때문에 여러 새로운 민족에 대한 해석을 낳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인가? 로마인들은 제국의 시민이라는 이유로 그러한 혜택을 얻을 수 없는가? 이미 요나서에서 제국의 수도 니느웨가 하나님께 참회하는 꿈같은 장면이 그려지고 소아시아의 여러 지방에 건설된 회당이 이방인들에게 이미 개방되어 있었다. 예수 운동이 일어난 것은 바로 그러한 시대였다.
    그것은 예수라는 인물을 따르는 자들로 인해 시작되었고 성전멸망 이후에 유대교 회당에서 배태된 집단이었고, 예수라는 인물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였다. 그들은 새로운 종류의 저항담론을 만들었다. 그것은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파괴력과 넓이를 보여주었고, 이방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새로운 이름의 제국(바실레이아)에 대한 열망이었고, 그 또한 여타의 제국이 가지고 있는 빛과 그림자를 지니고 있었다.
   

    예수와 제국, 그리고 바울

    기독교제국(Christendom)을 비판할 때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확정하면서 주변에 머물렀던 기독교가 제국의 힘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위정자의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을 기독교 타락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신학과 교리는 기득권층의 이권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변하여 제국의 시대가 계속되는 동안 그들의 우월성을 대변하고 식민치하의 민중들을 유혹하는 데 이용되기도 하였다. 탈식민주의적 관점이 이러한 기독교의 과거에 대해서 던지는 질문은 과연 기독교 제국의 타락과 악행이 기독교제국의 위정자들에게서 나온 독극물이고 원래의 기독교 공동체는 그와는 다른 순전한 사랑의 공동체였을까? 또는 신약성서는 그러한 권위주의와 기독교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종래의 리처드 호슬리나 존 도미닉 크로산 등의 예수와 제국간의 갈등과 저항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은 복음서의 공동체가 예수를 당시의 황제의 명칭이었던 주님(Kupios, the Lord)로 부른다거나 황제의 방문을 나타내는 용어인 파루시아가 예수의 재림을 의미한다는 것에 착안하여, 예수의 공동체는 제국에 대한 저항 공동체임을 천명하였다. 로마제국이 황제종교의 성격을 오리엔트 지방에서 강화하면서 예수를 부활한 메시아로 받아들이던 공동체는 극렬히 저항했을 것이고, 종교와 정치가 분리될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그것은 정치적 저항으로 읽혔을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예수가 복음서를 통해서 말했던, 바울을 통해서 알려졌던 세상의 평화가 아닌 평화의 의미는 바로 제국의 선전물에서 흔히들 나오던 평화의 메세지에 대한 선전포고이며 새로운 사회와 정치를 향한 염원이었다고 말한다. 이들에게는 바울의 서신들 또한 중요하다.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공동체를 예수를 믿는 공동체로 바꾸어버린 사람이었는가? 아니면 바울이야말로 제국에 대한 저항과 대안으로 예수를 붙잡은 사람이었는가?
    예수와 제국을 말하는 일군의 학자들과는 달리 탈식민주의 신약성서학자들은 유대의 민족주의 담론을 넘어서면서 초기의 기독교 공동체는 제국의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호미 바바의 미미크리(mimicry)이론에 착안하여 식민지하의 상황에서 식민인들은 제국의 담론을 증오하면서도 제국의 코드들을 창조적으로 전유한다. 로마황제의 제국 대신에 예수의 제국(바실레이아, basileia)를 말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로마의 제국 이후에 도래할 예수의 제국을 말함으로 로마제국의 지배구조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정신적 공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지배계급으로 올라섰을 때 그러한 제국의 담론은 기독교 제국이 로마제국의 이데올로기를 답습하고, 혁명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지배계급을 만들어가는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탈식민주의 성서학자들은 성서 내의 제국의 담론에 의문을 제시한다.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표현이 예수를 따르는 삶의 필요성을 말하기보다는 예수를 중심으로한 제국의 재편을 말하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예수에 대한 믿음이 모든 것을 넘어서서 군림하는 하나의 진리가 되어버리면 그안에는 어떤 삶의 가치보다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라는 차이만 존재하고 그 차이는 계급의 차이 또는 우열의 차이가 되어버린다. 특히나 기독교 중심의 세계에서는. 한손에는 코란, 한손에는 검을 든 이슬람 제국의 그림처럼(물론 이러한 담론은 후대의 기독교 역사가가 만들어낸 오리엔탈리즘이다.) 기독교 제국의 그림은 한손에는 성서, 그리고 다른 한손에는 자본주의라는 떡을 들고 타인종이나 타종교, 타국의 사람들을 유혹하는 전투적 선교주의가 된다. 그리고 그 그림이 이미 성서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탈식민주의 학자들의 논거라 하겠다. 제국에 대한 압제속의 저항의 몸짓이었던 성서가 지배계급의 도구가 되고만 가슴 아픈 현실을 비로서 직시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탈식민주의적 관점이 줄 수 있는 소중한 교훈일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교황권의 몰락은 단순히 인류의 정신사적 지평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치의 지형과 경제적 변화가 가장 큰 이유가 되겠으나 여기에서는 단순화시켜 학문의 변화라는 관점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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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상처를 치유하기

- 회복적 정의와 인간 안보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지난 2012년 미국 인디애나주의 노트르담 대학교에서 신학과 평화학을 가르치는 다니엘 필폿(Daniel Philpott) 교수는 “정의로운 평화와 부정의한 평화(Just and Unjust Peace: An Ethic of Political Reconciliat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12)”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전통에서 발견되는 평화와 상생의 윤리를 재발견한 이 책은, 물리적 전쟁이나 무력 충돌이 끝난 후, 어떻게 살아남은 자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방향성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쟁의 끝은 정전 선언이 아니라, 포스트 전쟁 국가(post-war country)가 ‘정의’에 기반하여 평화와 사회 통합을 이루어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의로운 평화, 용서와 화해에 기반한 사회 통합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무력 충돌로 야기된 ‘정치적 상처(political wounds)’를 이해하고 치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해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그들이 경험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 가족의 죽음, 인권 탄압과 가해자를 향한 증오감을 치유하지 않는 한 사회 통합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필폿이 말하는 정의는 징벌이나 보복적 개념으로써의 정의가 아니라, 회복적 개념의 정의(restorative justice)입니다. 회복은 사회 구성원 간의 관계, 국가와 국민과의 관계,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남성과 여성 구성원 간의 올바른 관계(right relationship)를 말합니다. 이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정의의 개념인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올바른 관계, 이웃간의 올바른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올바른 관계 회복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힘을 가진 집단이 사회 통합이란 미명하에 피해자 집단에게 용서를 강요하거나, 과거를 무조건 덮으려고 하는 행위만큼  올바른 관계를 위협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필폿이 이야기하는 부정의한 평화입니다. 부정의한 평화로 어정쩡하게 통합된 사회는 언제든 사회 집단 사이의 무력 충돌이나, 국가의 무자비한 인권 탄압이 발생할 수 있는 시한 폭탄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대다수의 국민이 정치적 상처를 안고 지금까지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종교 집단과 사회 집단, 정치 집단들이 이 상처를 조직적으로 무시하고, 사회 통합과 용서 또는 금전적 피해 보상만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 사회는 위기 관리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었고, 사회 구성원들 간의 불신은 커져만 간 것 같습니다. 
           21세기에 들어, 정의로운 평화를 강조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학자들은 국가 안보가 아니라, ‘인간 안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국제 정치학에서는 국가의 존립에 초점을 맞추어 평화와 안보를 이야기하면서, 국가를 구성하는 인간을 하위에 두었습니다. 국가가 존재하지 않으면 국민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에 반해 인간 안보 패러다임은 진정한 평화와 안보의 의미를 모든 인간들이 육체적, 정신적 자유와 보호가 보장되는 삶을 살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 구조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권 탄압을 일삼는 국가 권력이나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는, 그러므로 ‘안보’에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평화와 안보는 사회 집단 간에 대화를 바탕으로 한 서로에 대한 이해, 역사의 잘못에 대한 진실된 고백과 용서를 구하는 행위, 적절한 처벌과 피해자 보상, 잘못에 대한 용서 등을 기반으로 한 정의로운 사회 구조를 만들어 갈 때 가능합니다.
           인간 안보에 초점을 둔 정의로운 평화를 세월호 참사에 비추어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일주일 전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물리적 전쟁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마치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단지 그 시간에 그 배에 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장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참사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깊은 정치적 상처를 남겼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실패했고, 개개인의 삶과 죽음은 전적으로 ‘운(luck)’에 달렸다는 운명론적 생각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몇몇의 기독교 신학자들은 예수가 세월호에서 운명을 달리한 이들과 함께 수장되었다고도 이야기합니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죽음은 항상 부활 사건과 함께 기억되는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월호 사건에서 부활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안병무 선생과 타이완 출신의 신학자 C.S. Song은 예수가 하나의 개인 인격체가 아니라, 고통받는 민중의 집단적 정체성이라고 보았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고통 받는 민중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끊임없이 현재 우리의 삶으로 불러 들여서, 함께 살아나갈 방법을 찾는 것을 말합니다. 이 과정은 굉장한 용기와 영성을 필요로 합니다. 역사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것 자체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부유하는 유령들과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필폿이 제안하는 ‘회복적 정의’를 실천해 볼 수 있습니다. 유일신 전통에 근거하여 ‘화해’를 ‘정의, 자비, 평화, 용서’의 개념에서 설명한 필폿은, 화해를 위한 여섯 가지 단계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필폿, 174): (1)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조직 건설(building socially just institutions), (2) 과거의 잘못에 대한 인정(acknowledgement of past wrongdoings), (3) 희생자들에 대한 적절한 피해 보상(reparations for victims), (4) 공식적 사과(public apology) (5) 가해자에 대한 처벌(punishment for perpetrators or wrongdoers), (6) 용서(forgiveness). 이 여섯 가지 단계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몇 세대에 필요하다 하더라도, 진정한 화해를 바탕으로 한 회복적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할 사회적, 역사적 과제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방관자가 아니라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끊임없이 기억하는 역사의 주체가 되기를 제안합니다. 정의로운 국가 조직, 경찰 조직, 시민 조직을 건설하여 사회 위기 관리 능력을 길렀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매해 성금요일엔 세월호를 기억하는 묵념의 시간을 교회들이 가져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현충일과 6월 25일엔 국군 희생자들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없이 죽어간 민간인 희생자들을 기억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역사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한, ‘회복적 정의’를 향한 희망의 불꽃은 항상 살아 있습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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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안다, 침묵 하나에-

                            주검 하나[각주:1]

 

유승태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한백교회 전도사)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 「이사야」 53장 4~6절

 

1.

지난 16일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 이후, 공적인 자리에서 누구 하나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한 지인은 이번 세월호 참사를 두고 “숨 쉬는 것조차도 죄스러운 나날”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했습니다. 충격과 분노, 안타까움 등이 뒤섞인 비통한 정서 속에 지금 대한민국은 깊이 가라앉아 있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 끔찍한 현실 앞에서, 어쩌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슬퍼하고 더 분노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누군가를 위로하려 하거나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한 말이 섣부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기독교는 이 현실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궁금증이 제 안에 치밀어 오르는 것 또한 막을 수 없었습니다. 팽목항에서 바다를 향해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저희 아이를 살려주세요”라며 간절하게 절하고 또 절하는 한 어머니를 TV 화면에서 보며 마음이 견딜 수 없이 아팠습니다. 대체 그 수많은 생명은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렇게 어이없는 비참한 죽음을 맞아야 했던 것인가요? 아이의 어머니는 왜 있지도 않은 죄과를 자신이 뒤집어쓰겠다며 울부짖어야 했던 것일까요?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죽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를 전하는 기독교는 이처럼 무고한 자들의 불의한 죽음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언론과 여론은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추적하고 추궁하고 있습니다. 선장과 선원들로부터 시작해, 해경과 정부 관계자들, 선주 등이 표적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때의 물음은 원인제공자가 누구인가라는 것이며, 동시에 죄과를 누가 져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어떤 정치인은 ‘전문 시위꾼이 유가족 행세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그 정치인이 속한 정당의 한 최고위원은 한술 더 떠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지령을 받은 좌파가 정부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책임자’의 자리에 이처럼 자신들의 분노와 증오의 대상을 단세포적으로 투영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런 분노에 찬 ‘책임자 찾기’가 끝나고 책임자에게 처벌이 내려진다고 해서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의 죽음이 정당한 죽음으로 바뀔 수는 없습니다. 또한, 안전을 지킬 법적 의무가 ‘누구’에게 있었는가 묻는 편협한 책임담론은 그 질문이 첨예해질수록 이 사건을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만듭니다. 이때의 책임이란 범법자를 색출하기 위한 돋보기이지 자신을 비춰보기 위한 거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가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다만, 그런 책임담론을 넘어 그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를 ‘책임’에 대한 사유를 통해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2.

저는 항구에서 자신이 죄과를 뒤집어쓰겠다며 울부짖는 한 어머니를 보며 오늘의 성서본문이 떠올랐습니다. 자식이 아프면 대신 아프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라는데, 자식의 죽음 앞에서 그 어머니의 마음은 오죽했겠습니까.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는 4절은 “제가 잘못했어요”라는 어머니의 절규와 같은 감정적 힘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한 어머니는 아이가 담임선생님의 깜짝 생일파티를 끝내고 자랑하기 위해 전화한 것에 ‘자꾸 전화하지 말라’고 핀잔하고 짧게 통화했던 것이 후회가 된다고 말했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3절 본문은 그 어머니의 후회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입장에 있는 분들은 모두 이 사고에 매우 깊이 감정이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 5절과 같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인용한 본문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나를 위해 무고한 당신이 벌을 받았구나’ 정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은 보통 기독교의 ‘대속’ 또는 ‘속죄’ 교리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렸기 때문에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대속 교리의 핵심입니다(롬5:8, 고전15:3, 살전5:10).
그런데 오늘의 본문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대속과 관련한 놀라운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가 대속 교리와 관련해 가장 대표적인 본문이라고 알고 있는 이사야서 본문에서 대속에 대한 서술의 강조점은 우리가 흔히 아는 것과 다른 데에 있습니다. 원래 오늘의 본문은 ‘고난 받는 종의 노래’라고 불리는 이야기 단락(52:13~53:12)의 일부분입니다. 아래의 표와 같이, 이 이야기 단락의 전반부(52:13~15)에는 당신의 종이 앞으로 이룰 성공에 대한 하느님의 연설이 배치돼 있고, 그 뒤로 후속부에는 "그"의 고난을 목도하며 하느님의 연설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서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표1> 고난받는 종의 노래(사52:12~53:12)의 화자-대상 구조

 

말하는 이

말해지는 이/대상 

 전반부(52:13~15)

하느님 

"그(주의 종)" 

 후속부(53:1~12)

 "우리"

 고난받는 종의 노래 전체

 이사야 예언자

 "그"에 대한 "우리"의 증언

이야기 속에서 말하는 이와 말해지는 대상의 관계를 보면, 전반부는 하느님이 말하는 이이고 하느님의 종인 "그"가 말해지는 대상입니다. 그리고 후속부에서는 주어가 "우리"로 바뀌면서 말하는 이는 "우리", 말해지는 이는 "그"가 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대속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후속부의 본문은 하느님의 연설, 즉 하느님의 진리 선포가 아니라, 무고한 "그"가 고난을 받는 현장에 대한 "우리"의 증언이자 그가 우리 대신 고난을 당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때문에 이 본문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대속의 강조점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에게 고난과 승리를 ‘예정’했다거나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속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난을 보며 고난을 피할 수 있었던 ‘우리’가 느끼는 죄책감과 연민, 그리고 그것을 성찰하고 증언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때 대속은 내가 그리스도를 대면하게 되는 순간이자 그리스도 ‘앞에’ 선 장소의 발견을 의미합니다.[각주:2]
세월호 참사에 대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진실은, 매너리즘에 빠져 기업과 짬짜미나 짜는 관료들, 돈을 위해서라면 사람의 안전 따위는 상관없다는 선박회사, 열악한 노동환경을 핑계로 승무원들이 내팽개쳐버린 책임의식 등 일반 승객은 알 수 없는 여러 요소들이 죽음의 카르텔을 형성해 필연적인 참사를 예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우연히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했다는 것, 그것은 그들이 그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죽음의 자리를 피할 수 있었을 뿐이며, 그들의 죽음이 언제든 나의 죽음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5절) 그리고 가라앉고 있는 배에서 ‘움직이면 위험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는 거짓 명령에 학생들이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7절)는 사실은 원칙을 따르는 사람을 배신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사야서의 "우리"와 같이 부조리한 현실을 목도하며 우리의 자리가 됐을 수도 있는 고난의 자리에 무고한 그들이 있었고, 그들이 희생됐음을 깨닫습니다. 그걸 깨닫는 순간은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겹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 속에서 나 대신 희생당한 사람이 바로 내 자녀라는 사실은 생을 포기하고 싶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희생된 아이들의 부모가 아닐지라도 그들을 보며 내 자녀가 언제 죽임의 체제에서 나 대신 희생당할지 모른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을 희생자의 부모와 같은 심리상태로 몰고 갑니다. 제가 이사야서에서 본 대속의 맥락은 이런 비참하고 잔인한 현실을 배경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비참한 현실에서 우리 앞에 있는 성서는 우리를 어떤 자리로 안내하고 있는 것일까요?

 

 3.

너는 안다, 말 하나에-
주검 하나                       
(파울 첼란의 시 <밤으로 삐죽거리는> 중)

나치의 한 유대인 수용소에서 사람들이 두 줄로 서있습니다. 파울 첼란은 불길한 느낌에 슬쩍 줄을 바꿔섭니다. 그리고 인원을 체크하던 나치 장교는 첼란이 옮겨간 줄에서 한 사람을 지목하고 첼란이 서있던 줄로 가라고 명령합니다. 그렇게 해서 파울 첼란은 노무자 대열에 포함돼 살아남았고, 첼란 대신 줄을 옮긴 남자는 가스실로 가야 했습니다. 첼란의 시는 줄을 옮기라는 말 한 마디가 한 사람을 주검으로 뒤바꾸는 잔인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너는 안다”라는 말은 무슨 의미였을까 묻게 됩니다. 그는 자기대신 희생된 한 남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스스로에게 그 경험을 잊지 말라고 되뇌었고 그 기억을 나중에 시로 적었던 것일까요? 자신의 시를, 자신의 증언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이런 잔인한 현실이 당신들의 생을 뒷받침하고 있는 토대라는 것을 경고하려 했던 것일까요? 어찌 됐든 그는 짧지만 심장을 찌르는 말을 통해 그가 목격하고 살아냈던 잔인한 과거를 현재화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의 말은 죽임의 체제에 대한 고발이면서 동시에 자기 대신에 희생된 이에 대한 죄책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검이 된 남자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그의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한 생명을 그렇게 하찮은 것으로 만드는 죽임의 체제를 대면하기 위해서는 첼란의 증언이 꼭 있어야 했습니다.
“제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절규는 세월호 안에서 죽어갔던 이들의 목소리와 처참한 심정, 그리고 공포를 대언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절규는 비통함에 매몰돼 있고, 그래서 갈라지고 떨리는, 질서가 없는 (말이 아니라) ‘소리’입니다. 그 소리
들이 우리의 실존의 민낯을 보게 했고 그래서 대한민국은 우울과 불안과 분노에 휩싸여 있습니다. 희생자들 앞에 선 우리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삶의 비참을 대면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희생자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안전했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았고 우리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생명을 빚졌습니다.[각주:3] 파울 첼란과 이사야서 속 "우리"의 증언은 이미 '과거'가 된 것을 현재화하는, 살아남은 자의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의 자유와 생명이 타인의 희생에 기대고 있다는 깨달음은 항상 뒤늦게 찾아오는 역사의 고통스러운 선물이 아닐까요.

이제 애도의 시간이 지나가면, 상대에게 의지해 자유를 얻고 있음을 보고 그것을 시인함으로써, 자신이 타인에게 생명을 빚지고 있음을 깨달음으로써 부여받게 되는 증언의 책임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생명을 빚진 자이고, 의미 있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더 이상 무고한 삶이 희생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내 앞에 서있는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압니다, 증언해야 할 자의 침묵은 또 다른 죽음을 묵인하게 될 거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증언의 책임을 말하기보다는 좀 더 슬퍼해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2014.4.27. 한백교회 하늘뜻 나누기(1587차 예배) 본문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본문으로]
  2. 이사야서의 '대속' 개념이 '고통받는 이와의 동행'을 의미한다는 생각은 베른트 야노프스키 지음/김충호 옮김, 『대속』(한국신학연구소, 2005)에서 얻었음을 밝힌다. 대속의 개념사 연구와 충실한 구약성서 본문분석을 담고 있는 이 책은 번역이 새로 되기만 한다면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그러나 새로운 번역이 나올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본문으로]
  3. 물론 체제가 가하는 죽음의 위협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할돼 있지 않다. 때문에 이 글에서 말하는 공감과 증언의 영성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는 없다. 논란이 됐던 정몽준 의원 아들의 트위터 발언을 떠올려보라. 그는 세월호 참사와는 무척 거리가 먼 삶의 조건을 갖고 있다. 때문에 그이와 같은 이들은 이 글이 말하는 체제가 만드는 죽음의 공포를 공감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렇게 우리를 둘러싼 집단적 감성의 분할선을 추적해보면 우리 사회의 근본적 적대가 무엇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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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루시다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이 세상에 존재를 알린 지 이백년도 안 된 사진은 그것의 선배 격이자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에게 ‘예술’이란 이미지를 선명하게 남겨준 숱한 천재들을 배출한 ‘회화’에게 향하는 음울한 콤플렉스에서 이미 벗어났는가.
사진의 역사적 흐름을 보자면, 대상의 절대적 재현이라는 사진만의 기능으로 말미암은 사실적 증거자료로, 또는 회화주의 사진과 같은 사진의 자기 탐색이 결여된 시기를 거쳐, 세계대전 등의 보도 사진이 보여주는 실재와 조작, 계몽과 선동, 타인의 고통과 자신의 안락, 정치와 미학 등의 혼재된 경험을 치르며 지금의 디지털 증강 사진에 이르기까지 소비자본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그 당사자로서의 독특한 지위를 사진은 향유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수전 손택의 말대로 모더니스트들이 ‘모든 예술이 음악이 되기를 갈망’ 했듯 이제 ‘모든 예술은 사진이 되기를 갈망’ 하는 시대에 사진의 위치가 있다.
우리 모두의 손 안에 폰카를 들고 다니며 모든 개인의 생활이 낱낱이 찍히며 원하는 모습대로 뽀샵되어 물리적 감각 없이 무제한 타인에게 전송되는 전대미문이 시대에 어찌 보면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란 책은 너무 고루하고 정적인, 그리하여 이 시대 사진 미학을 설명할 수 없는 구시대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1980년대에 출판된 이 책에서 바르트 역시 그러한 것을 예감하고 있다.

“사진의 시대는 혁명의 시대이며 거부의 침해의 시대, 파열의 시대, 간단히 말해서 초조함의 시대, 모든 성숙을 거부하는 시대이다. 그리고 의심의 여지없이 ‘그것이 존재했다’는 놀라움도 역시 사라 질 것이다. 그 것은 이미 사라졌다.... 나는 그 것을 목격한 최후의 증인( 반 시대성의 증인) 중의 한 사람이며 이 책은 그 것에 관한 고풍스런 흔적이다”  (P94)

바르트는 자신을 반시대성의 증인이라 말한다. 이미 도래한 새로운 감각을 거스르는 자로써 자신을 정의한다. 또한 그가 늘 사진에서 얻는 놀라움의 원인이었던 ‘그것이 존재했다’라는 존재론적인 감각도 사라질 것이라고 고백했으며 그것은 실재성 없이 컴퓨터 기술로도 대상 자체를 만들 수 있는 디지털 사진으로 말미암아 이미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왜 이 ‘고풍스런’ 책은 여전히 사진 미학을 논할 때 빠짐 없이 인용되고 거론되는 걸까?
그것은 바르트의 글이 사회성과 역사성을 배제한, 오로지 사진과 사진의 ‘대상’ 안으로 침잠하는 작은 구멍과 같이 그 범위는 협소하나 그 구멍을 통과하고 나면 샘처럼 순수하고 근원적인 ‘인식론’의 새 국면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부분의 이론서는 사진이 갖는 사회, 역사적 의미와 이미지가 인간에게 주는 실재적 영향에 대한 글들이라면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는 ‘대상물’과 ‘갈망하는 사물’, ‘사랑하는 사람의 육체’에 대한 파토스 넘치는 극히 개인적인 에세이인 것이다.

“가장 강한 또 다른 목소리가 나로 하여금 사회적인 주석을 부정하라고 부추겼다. 어떤 사진들을 볼 때면 나는 스스로가 야만적이고 무지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P15)

즉, 프리미티브 화가처럼 전통적 예술 문법을 따르지 않는 개인 특유의 경험과 강렬함으로 바르트 자신을 매개자로 하여 ‘보편적이 아닌 대상의 성격 그 자체에 의한 새로운 이론’을 밝히고자 한 것이 이 책의 의도이다.
자신에게 어떤 식의 공명을 일으키는 사진 앞에서 그 전까지의 사진이론으론 그 공명의 특질들을 설명할 수 없었음이 <카메라 루시다>가 탄생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현학적이고 구조적인 해석에 대립하여 무규정적인 사진의 특질들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한 그의 용어는 ‘푼크툼’이다.

문화적이고 체계적인 사진 이해 용어인 ‘스투디움’에 맞서 비문화적이고 비체계적인 이해를 지시하는 푼크툼은 벤야민의 ‘아우라’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벤야민의 아우라가 어떤 때는 대상만의 유일하고도 마적인 현상으로 설명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예술의 제의적 요소로, 그 것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부정적 요소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 푼크툼은 대상에 밀착되어 무게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훨씬 더 날카롭고 가볍고 가변적이며 전혀 전통적이지 않고 제의적이지 않다.
푼크툼은 대상으로부터 마치 화살처럼 주체를 꿰뚫기 위해 날아오지만 그것은 대상이 소유했다기 보다는 주체와 대상사이의 지극히 은밀하고 사적인 소통가운데 있다.
바르트의 푼크툼은 철저하게 수용자 미학이다. ‘촬영자-대상-구경꾼’이라는 사진 내 역학관계에서 촬영자의 의도를 뺀, 대상의 사진적 특질과 그 것을 감상하는 구경꾼의 비의도적 재구성이 이 책을 이끄는 요소인데 이는 그의 또 다른 글 <저자의 죽음>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왜냐하면 푼크툼은 촬영자의 의도와는 무관한, 맥락을 통한 결과물이 아닌, 독립적이고 장외적인 존재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르트가 라틴어 ‘점’, ‘찌름’ 등을 뜻하는 푼크툼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카메라 루시다>를 쓰기 전부터 보여 왔던 사진에 관한 그의 관심을 종합하기 위해서였을까? 그 정도의 이론적 유희에서였다면 이 책은 아름답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의 이론만을 위한 거였다면 푼크툼은 기억되었을지 모르지만 진혼곡의 회색 빛 울림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사진의 증거, 사진을 바라보는 어떤 사람도 볼 수 있는, 그리고 그가 보기에 그 것은 모든 다른 영상과 구별 시켜 주는 이 사물을 찾아 내기 위해서 내 자신 속으로 더 깊이 내려가야 만 했다. 나는 나의 개영시 (먼저 썼던 시를 취소하는 시)를 써야만 했다.” (P63)

즉 그는 자신 속 더 깊은 곳의 ‘어머니’란 상처를 이끌어내어 그 이전 기호적 체계로 이루어진 자신의 학문적 논리를 취소해야만 했던 것이다.

바르트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 그것도 어머니의 다섯 살 무렵에 찍힌 아주 오래된 ‘온실사진’에서 존재의 푼크툼, 시간의 푼크툼에 찔린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어머니다’라는 외마디 비명과 같은, 불현듯 찾아오는 ‘깨달음’을 설명하기 위한 부수적 장치에 지나지 않다.
“어머니다!”, “참으로 어머니다!”라는 이 지칭적 외침은 그 어떤 시각 예술과도 구분되는 사진만의 황홀한 특질이며 바르트 내면의 사랑과 죽음이라는 환원되지 않는 외상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우선 그에게 사진은 ‘그것이-존재-했음’ 혹은 존재의 ‘완강함’이며 그것이 사진의 기반을 이루는 노에마이다.
‘그것이-존재-했음’에는 찍힌 대상물의 존재론적 자국과 과거에로의 시간적 역류가 동시에 포함된다. 사진에 의한 대상의 재현은 단순한 모사의 정도를 떠나 실재 존재와 ‘탯줄로 연결되듯’한 완강함이 있는데, 예를 들어 우리는 같은 이차원의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회화를 볼 때와는 달리 사진의 대상은 실재의 그것으로 확신하며 바라본다.
이것이 바로 사진의 대상을 향한 관람자의 ‘상상적 의식 작용’에 의한 ‘아날로공’, 즉 ‘절대 유사’의 경험인데 이 아날로공은 바르트가 싸르트르의 <상상적인 것>에서 차용해와 이 책의 기반을 이루게 하고 있다.

사진에서의 대상의 재현은 대상을 해석하거나 번역하는 인공적 규명 이전에 생성된 탈코드적인 것이며 발자국이 하얀 눈 위에 찍히듯 존재의 직접적인 ‘자국’이 된다.
즉, 빛에 의해 ‘그때’ ‘거기’ ‘그 대상’으로부터 발산하는 지표인 것이다.
이러한 존재의 자국으로서의 사진 현상은 후에 필립 뒤바 등에 의해 ‘사진-인덱스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진이 침묵 속에 보여주는 존재의 자국 혹은 물리적 지표들은 수용자에게 전해지며 마치 묵독이 내면화된 세계를 형성하듯 각자의 경험과 함께 또 다른 환유적 세계의 재구성을 사진을 통해 형성하게 된다.

바르트가 보았던 어머니의 ‘온실사진’은 그때 거기 어머니로부터 사출된 빛이 그에게 이른 것이며 단순히 어머니임을 알아 본 것이 아닌, 분위기라는 작은 영혼을 알아보며 “참으로 어머니!” “마침내 어머니!”를 깨닫게 된다.
그 때 “사진은 자신을 넘어선 하나의 영매가 되어 자신을 무화시키고 기호가 아닌 사물 그 자체”가 된다. 바르트가 사진을 통해 찾은 것은 ‘어머니’다. 일반적인 어머니라는 존재로 환원시키고 싶지 않은 ‘나의 어머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그가 잃어버린 것은 “어머니라는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 하나의 특질, 하나의 영혼으로 다른 것으로 대치될 수 없는 무엇”인 것이다.
그는 사진에서 죽음을 본다. 셔터를 눌러 삶이 정지하는 그 찰라의 순간에 삶의 장외를, 자신이 타자화되는 불편한 경험을 느끼며 어머니의 온실사진에서 출구 없이 꼼짝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변형시킬 수 없는 슬픔, 해독되지 못하는 고통, 그리고 학문의 이론적 지성이 해결할 수 없는 충일한 이미지 앞에서 비환원적인 죽음의 무력감을 느낀다.
내가 느끼기에 바르트가 이 책에서 절규하는 것은 사진이론 자체가 아닌 “모든 환원적인 체계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다.
어머니의 죽음은 사회적 의미의 죽음이나 인간 개체를 넘어선 종의 죽음이라는 진화론적인 냉혹한 설명으론 해결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의 상실이었을 것이고 대체할 수 없는 존재의 상실은 비환원적 세계로의 깨달음을 불러오게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참으로 아름다운 모성 숭배의 밀교적 제의로서 바르트는 ‘아픈 어머니를 통해 스스로가 어머니를 자식으로 낳고 어머니가 죽자 자신은 비변증법적인 죽음을 기다리며 진화론으로 환원되는 생명체의 행진에 자신을 일치시키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것은 그가 교통사고 이후에 치료를 거부하고 거의 자살하다시피 한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과 스스로의 죽음의 예감과 또한 자신만의 참 어머니를 되찾게 해준 사진적 특질들은 그로하여금 언어적인 학문의 세계에 대해 그리고 체계적이고 환원적 설명을 요구하는 사회적 질서에 대해 전복적 사고로 저항하게 하는 푼크툼의 깊은 상처가 되게 하지 않았을까?
푼크툼의 그 전복적 저항은 바로 사랑이고 연민이며, 죽음이고 비언어이며, 무규정자이며, 역류하는 시간이며, 예술에 속하지 않으며, 사회와 문화에 순치되지 않는 무엇이다.
다시 말해 푼크툼은 광기다.
그것은 바르트의 광기이기도 하고 사진의 광기이기도 하다.

* 참고로  이 글은 절판된 ‘열화당’의 <카메라 루시다>에 관련한 것입니다.
   바르트의 책은 지금은 ‘동문선’의 <밝은 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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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에 대한 짧은 단편(1) : 페티쉬(Fetish)

이상철
(한신대 외래교수)

 

프롤로그

한국으로 돌아온 지 3주가 지나간다.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시차적응에 꽤 시간이 걸리더군. 예전에는 열흘 정도면 가뿐했는데, 이번에는 2주가 지나가는데도 적응하는데 만만치 않다. 시차에 적응되지 않은 몽롱한 정신으로 나는,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을 만났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만났다. 역시 몽롱한 정신으로 나는, 내가 다녔던 교회를 방문했고, 많이 파헤쳐 놓긴 했지만 그나마 남아 있는 예전 놀이터들 주변을 배회하며, 지난 10년에 대한 송사를 하나씩 하나씩 바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어리버리 다시 한국사회에 적응해 가는 내게 누군가 물었다. 다시 찾은 서울의 느낌이 어떠냐고? 섬광같이 Fetish 라는 단어가 떠올라, “모두가 fetish에 취해 있는 것 같다”고 말해버렸다. 조금은 과장되긴 했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지난 3주간 내가 둘러본 서울은 그랬다. 교회는 더욱 치열해진 성장이데올로기에, 대학은 공포와 같은 대학평가제에, 개인은 예외 없이 지금 여기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모두 사활을 걸고 치열하게 지금을 버티고 있는 모습이 페티쉬에 취해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있는 지루하고 재미없고 건조한 어느 포르노 영화의 주인공들 닮았다.

사전적 정의로 페티쉬는 초자연적 혼령이 머무는 장소 혹은 대상으로, 이것을 소유하거나 점유하는 집단이나 인물은 그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우상 혹은 부적 같은 것이다. 한편, 정신분석학에서 페티쉬란 성적흥분을 얻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나 대상, 혹은 신체의 일부를 가리키는 용어이고, 이런 이유로 각종 성인물 사이트에 페티쉬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나는 21세기 우상이 페티쉬 형태를 띄고 있으며, 그것이 지금의 신자유주의 시스템과 모종의 연관이 있음을 이 글을 통해 보이려 한다.

자본의 진화, 소외의 심화

맑스가 지적했던 고전적 자본주의에서는 일한 만큼 못 받는 것, 즉 착취의 문제가 주된 이슈였다. 하지만 착취의 문제는 날이 갈수록 만성화되어 그 체감도가 전보다 못하거나, 혹은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간 감이 없지 않아 이전보다는 그 문제점이 강하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지금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착취의 문제보다는 일밖에 모른다는 점이 더 심각한 문제다. 재작년인가 어느 정치인이 말했던 “저녁이 있는 삶”은 그런 의미에서 현 자본주의의 문제점을(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아주 훌륭히 풍자한 표현이었다고 본다.

이 대목에서 소외에 대한 새로운 의견이 등장한다.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소외를 설명하면서 노동자가 (노동)생산물로부터 소외되고 있으며, 이는 생산활동으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하고, 더 확대하여 이는 필연적으로 인간소외로 갈 수밖에 없음을 주장하면서, 자본주의속에 구조적으로 자리잡은 인간소외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해부하였다. 신자유주의는 이런 자본주의가 최대로 진화한 형태다. 자본주의의 유일한 경쟁자였던 현실사회주의 몰락 이후, 자본주의의 제도화와 조직화는 일사천리로 선택의 여지 없이 전 지구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사회주의 몰락은 단순히 자본주의의 견제세력이 없어졌다는 위기감만이 아니라, 인간 본능의 한 축이 사라졌다는 상실감을 의미한다. 현실사회주의는 실패했지만, 그들이 내걸었던 정의와 평등, 그리고 해방이라는 구호는 비록 현실에서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우리들이지만, 그런 가련한 우리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반추하고 각성케 하며, 그래서 내일을 향한 꿈과 희망을 여전히 신뢰하게 끔 해주었던 사회적 장치, 아니 본능이었다. 왜냐하면, 자본을 향한 맹목적 추구가 Id가 제공하는 쾌락의 원리라면, 그것에 대한 억제로서의 사회주의는 superego가 제공하는 또 다른 쾌락원리이기 때문이다. Id와 superego 모두 우리의 본능이기에, 사회주의의 몰락은 그 두 가지 본능 중 하나의 몰락을 의미한다. 이 본능의 억제가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소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맑스가 주장했던 소외가 현실적, 물리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소외라면, 신자유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벌어지는 소외는 심리적 차원이 더해진 소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프로이트-라깡-지젝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에 바탕한 담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쾌락, 억압, 실재

“무한경쟁”, “2등은 기억되지 않습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이상은 신자유주의가 이 땅에서 번져갈 무렵 유행했던 광고 카피들이다. 한마디로 죽도록 일하라는 말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쭉~ 우리는 일터에서 어떻게 하면 성과와 결과를 내고 목적을 달성할 것인지만을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가 시간만큼이라도 자기를 찾아야 되는데, 그 시간마저도 체제는 우리에게 그럴 여유를 허락치 않는다. 자기를 못 찾도록, 일터와 비슷한 긴장과 스피드를 유지하게끔 하기 위해 체제는 첨단 테크놀로지와 감각적인 문화로 무장된 온갖 컨텐츠를 이용 우리의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쉬지 못하게 한다. 그 단적인 예가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에 얼굴을 박아버린 사람들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큰 비약일까?

한국 와서 가장 낯설었던 풍경은 지하철 승객들의 모습이었다. 거의 예외 없이 모두가 고개를 45도로 숙이고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그 진풍경은 가히 해외토픽 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톡을 하는 사람들, 뉴스를 보는 사람들, 게임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무의미하게 스크린을 터치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프로이트가 말했던, 인간의 ‘방어기제’ 중 하나인 ‘억압’이 한국사회에서 이런 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인간은 누구나 안정과 쾌락을 추구한다. 아기 때 엄마품에 안겨 젖을 빨면서 느끼는 쾌락에서부터, 성인이 되어 사회적 인정을 받을 때 느끼는 쾌락까지, 이 쾌락을 향한 추구가 인간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이라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쾌락이란 기본적으로 안정을 희구하는 에너지이다. 그 안정이 위협당할 때 인간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에 대처한다. 그것을 정신분석학에서는 ‘방어기제’라 말하고, 그 방어기제는 몇 가지 종류로 분류할 수 있는데, 억압, 퇴행, 고착, 투사 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 ‘억압’은 현실에 존재하는 불쾌의 기재들을 의식에서 지워, 그 불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 대상을 부정하거나 혹은 왜곡함으로써 마치 그 위험과 불쾌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행위하는 것이 ‘억압’이다.

작금의 신자유주의 상황속에서 개인에게 가해지는 불쾌의 강도는 상상을 불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무일 없는 것처럼, 아니 그것을 의식에서 지우려고 모두 스마트폰 뒤로 스스로를 감추는 것이 아닐까?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는 마약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은 분명 ‘억압’을 위한 도구이다. 하지만, 모든 억압의 대상은 완전히 진압되지 않은 채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반드시 현실의 어느 지점에서 우리 앞으로 귀환한다. 그것이 ‘실재’(the Real)이고, 이 실재란 기존의 실재처럼 외부 어딘가에 존재하는 흠이 없고 완벽한 사물의 궁극적 질서, 원칙, 모형으로서의 실재가 아니라, 내 안에 어딘가 이름 모를 장소에 짱박혀 있는 티끌, 혹은 얼룩과 같은 것이다. 그 얼룩으로 인해 실재가 구성되고, 그 얼룩이 어느 임계점에서 에너지가 되어 폭발하거나, 제다이가 되어 귀환하여 우리 앞에 등장할 때 드디어 사건은 발생한다.       

페티쉬의 출현…그리고, 그것의 기저에는

그렇다면, 우상의 출현은 위에서 언급한 정신분석학 용어인 ‘억압’의 등장과 연관이 있을 법도 하다. 출애굽 과정에서 등장한 아론의 금송아지와 남북분단이라는 안정이 파괴되는 시점에 등장한 북왕국의 금송아지는 출애굽과 분단이라는 불쾌와 불안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부속물 같은 것들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 연장선상에서 페티쉬의 출몰과 범람이 21세기형 우상의 진화(혹은 퇴화)라 본다. 페티쉬에서 파생된 페티시즘은 여자스타킹, 속옷에 집착하는 변태적인 사람을 가리킬 때 많이 쓰이는 용어인데, 이는 사실 물신숭배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신자유주의가 선사하는 억압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페티시즘을 택하지 않았나 싶다. 일터에 가서 무조건 남보다 더 성과를 올려야만 마치 내가 인생에 성공한 것처럼, 그것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이 여자속옷에 집착하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지 않나? 여가시간마저도 현실의 자본에 대한 압박을 느끼지 않으려고 스마트폰을 끌어 안고 하루 종일 지내는 우리의 모습이, 여자 스타킹을 뒤집어 쓰고 있는 그것과 무엇이 다를까?

프로이트는 인간정신을 추동하는 커다란 에네르기 두 개를 에로스와 타나토스, 즉 삶에 대한 충동과 죽음에 대한 충동으로 규정한 바 있다. 인간은 앞서 말했듯이 안정과 평안을 희구하고, 불필요한 긴장과 불안은 지양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삶의 영위를 위해 작동하는 힘이 에로스이다. 그리고 그 힘은 어느 한 지점을 겨냥한다. 최초에 무의식적 차원에서 완벽하게 이루어졌던 쾌락의 지점,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넘어오는 오이디푸스 전 단계, 즉 아기와 엄마 사이 완벽한 2항 관계가 성립했던 그 지점이다. 그곳은 무중력의 진공상태일 것이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어딘가이며, 최초의 창조가 이루어지기 직전 절대 평형이 이루어졌던 공간일 것이다. 그곳으로 우리는 가고 싶어하고, 그 에너지가 에로스일 텐데, 바로 이 부분에서부터 말이 꼬이기 시작한다. ‘그곳으로 가고 싶다’고 했을 때, 결국 우리가 가야 할 그곳은 어디인가? 죽음 아닌가? 물리학에서 긴장과 흥분이 없는 상태란 운동이 없는 상태이다. 이것이 우주의 원리라면, 죽음은 쾌락의 극치이다. 긴장과 흥분이 제로인 상태가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마치 원자로 안에 있는 열이 다 식을 때까지 활활 타는 핵발전소처럼, 쾌락을 위해 내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다 소진할 때까지 그곳을 향해 달려간다. 그 과정에서 현실적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에 대한 억압의 기재로서 우상을 만들어 쾌락의 안전성을 확보하려 하였고… 하지만 그것이 어느 지점을 지나고 나서는 죽음으로 가는 길로 바뀐다. 아마도 그 지점이 에로스에서 타나토스로 변이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마치 어릴 적 보았던 만화영화 마징거Z에 나오는 괴수 아수라백작의 얼굴이 남/녀로 분할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순간 인간은 삶으로 이어지리라 믿어 떠났던 그 길이 죽음으로 가는 길인 줄 깨닫지만, 그 관성을 돌이키기에 인간은 너무 피로하고 역부족이다. 21세기 자본의 지배가 온 땅을 장악한 지금, 돈과 번영을 추구하는 삶의 열망만큼이나, 그것의 실패로 인한 좌절과 죽음과 공포의 지수가 급등하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자살관련 소식들, 세계 제1의 자살국이라는 오명 등등의 뉴스들이 그것이다. ‘그 죽음으로 가는 쾌락의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인간은 페티쉬를 고안하였다’ 라고 말한다면 너무 큰 억측이 될까?
<계속>


추신> 귀국 후 나는 스마트폰 대신 2G 폴더폰을 구입하였다. 그 선택이 그나마 이 사태와 이 문명에 대한 저항의 처음 시작일 듯 싶어 나름 숙고해서 결정한 것인데…그 얘기를 몇몇 지인들에게 했더니 ‘푸하’하고 비웃네. 첫 발자국부터 삐그덕이다. 이것들을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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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학당 강좌

 

전환. 21세기 민중신학을 위하여

민중신학의 현재성 구축(혹은 해체)을 위한 몇 가지 발칙한 상상들!

 

강좌설명

이 강좌는 민중신학과 현대철학을 접맥시키려는 데 초점이 있다. 그것은 21세기 민중 문제에 다가가기 위해 현대 철학자들의 성찰들을 통해 민중신학이 미처 사유하지 못했던 것을 보충하려는 시도이다. 특히 주체와 타자, 그리고 차이에 대한 현대철학의 성찰적 인식에 도움을 받아 민중신학의 전환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강좌는 민중신학의 논지들과 일군의 포스트모던 학자들 간의 대화를 모색하려 한다.

 

강사

이상철은 시카고 신학대학원(CTS)에서 타자의 윤리를 주제로 Ph.D 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한신대에서 외래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레비나스의 타자론과 데리다의 해체론을 방법론의 토대로 삼고 슬라보예 지젝을 참조하면서 우리사회의 대중문화와 사회현상 속에 패권적 질서로서 자리잡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해독하고, 이에 맞서는 신학적 윤리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논문으로 “The Turn To The Other: A Conversation with Levinasian Ethics and Minjung theology”(2014), 박근혜정부의 탄생과 신학적 성찰등이 있고, 저서로 탈경계의 신학(2012), 성서와 윤리(2003, 공저)가 있다.

 

강의 구성

1

2014. 05. 08

Intro. : 이 냉소의 시대에 신학은 무엇으로 사는가?

2

2014. 05. 15

Text : 안병무의 성서읽기” Vs Derrida 텍스트 해체

3

2014. 05. 22

Hermeneutic : 서남동의 두 이야기의 합류” Vs Gadamer지평융합

4

2014. 05. 29

Ethic : 현대윤리학의 지형 속에서 바라본 민중신학

5

2014. 06. 05

God : 강원돈의 의 신학” Vs Zizek유물론적 신학

6

2014. 06. 12

The Other : 김진호의 오클로스 민중” Vs Levinas“the third party”

 

참고 도서

김진호, 김영석 엮음, 『21세기 민중신학』 (삼인, 2013).

강원돈, 『물의 신학』 (한울, 1992).

서남동, 『민중신학 탐구』 (한길사, 1983).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한국신학연구소, 1990).

이상철, 『탈경계의 신학』 (동연, 2012).

리차드 팔머 지음, 이한우 옮김,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문예출판사, 1988).

임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문성원 외 옮김, 『신, 죽음 그리고 시간』 (그린비, 2013).

임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김연숙 외 옮김, 『존재와 다르게 본질 저편에』 (인간사랑, 2010).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수련 옮김, 『이데올로기 숭고한 대상』 (인간사랑, 2002).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재영 옮김,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 (인간사랑, 2004).

자크 데리다 지음, 남수인 옮김, 『글쓰기와 차이』 (동문선, 2001).

자크 데리다 지음, 진태원 옮김, 『맑스의 유령』 (이제이북스, 2007).

조지아 원키 지음, 이한우 옮김, 『가다머: 해석학, 전통 그리고 이성』 (민음사, 1999).

Caputo, John D., Against Ethics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93).

Levinas, Emmanuel, tr. by Alphonso, Totality and Infinity: An Essay on Exteriority (Lingis, Pittsburgh, PA: Duquesne University Press, 1969).

Lyotard, J.F., tr. Geoffrey Bennington and Brian Massumi, The Postmodern Condition: A Report on Knowledge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84).

Taylor, Mark C., Alterity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7).

 

기 간_ 2014. 05. 08 ~ 06. 12 (매주 목요일), 저녁 7:30~9:30

장 소_ 향린교회 향우실

수강료_ 회당 5천원

문 의_ 010 3078 8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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