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평화의 길을 열어야 한다.

 



양권석

(본 연구소 소장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1월 6일 북한의 제4차 핵실험, 2월 7일의 북한의 광명성 4호 로켓발사, 2월 10일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중단 결정과 함께 거센 북풍이 불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한반도의 현재를 준전시 상황으로 기정사실화 하면서, 테러방지법과 사드배치 협상을 밀어붙이고, 교과서 국정화의 정당성과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가 최선이면서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리고 4월의 총선 역시 그 북풍의 소용돌이 속에 가두어 보겠다는 계산인듯하다.  

    결코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은 오히려 매우 익숙한 반복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명히 그 북풍의강도와 질이 달랐다. 2000년 6월 15일, 적대적 대결로부터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향해 큰 틀에 있어서의 변화가 있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역사적이며 민족적인 결단은 비록 소소한 부침은 있었을 지라도 끝내는 제 길을 가게 되리라는 희망을 완전히 놓아 본적이 없었다. 개성공단은 그러한 기대와 희망의 가느다란 끈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6.15 선언문에 나와 있는 분단을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켜주던 끈이었으며,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의 틈새에서 우리 자신을 지켜 낼 수 있는 근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 순간에 그 끈을 잘라버렸다. 한반도는 다시 강대국들 간의 긴장과 대결이 펼쳐지는 격전지로 변하고 있고, 남북 사이에는 서로를 향한 적대와 공포감을 비정상적으로 증폭시키고 그것에 기초해서 권력의 독점을 강화하려는 악순환적 분단체제가 강화되고 있다. 그리고 그 악순환적 분단체제 안에서 평화는 다시 금기의 언어가 될 위기에 처해 있다. 

    동서간의 냉전체제가 시작되면서, 평화운동을 불온시하고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어 배제하려고 했던 것은, 비록 이 한반도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반전 반핵 운동을 공산주의로 매도하는 세력은 언제나 있어왔다. 전쟁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는 당위를 내세우면서, 물리적 대결은 피할 수 없고, 이 물리적 대결에서 자신을 지켜 낼 수 있는 힘의 균형 혹은 우위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핵무장이나 전쟁과 같은 모든 방어 수단이 당연히 필요하다는 주장을 현실주의적이면서도 보편적 인식으로 만들어 가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운동은 비현실적 이상주의로 취급되거나 적에 동조하는 불온 세력으로 간주되어 왔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종북몰이 꾼들이 때를 만난 듯이 날뛰면서, 남북간의 모든 합의들을 폐기할 것을 주장하면서, 남한 핵무장의 필요성을 역설하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긴장과 갈등의 골이 깊어가는 이 한반도에서, 화해와 평화의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선교적 책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물론 우리 주변에는 공개적으로 핵무장을 옹호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전쟁과 분단의 역사를 회고해 본다면, 전쟁을 옹호하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의 관점에 선다면, 우리는 민족을 포함한 모든 집단적 이해 관계를 넘어서 인간과 생명의 신비와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옹호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정말로 의미 있는 가르침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인간화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뿐만 아니다. 거의 재앙에 가까운 파괴와 희생을 불러 올 핵무기를 사용할 만한 정당한 이유라는 것이 정말로 있는 것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방어를 위해서라도 전쟁과 폭력이 무조건 정당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우리가 속한 국가나 공동체가 가진 물리적 힘을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탐욕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과 생명을 섬기는 선한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가진 물리적 힘이 전쟁과 파괴의 폭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마지막까지 막아 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무조건적인 비폭력 평화주의를 말할 자신은 없다. 국가와 공동체를 위협하거나 공격해 오는 세력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국가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서는 모든 전쟁을 포함한 모든 폭력적 수단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다는 생각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더욱이 선택의 폭을 더 많이 가진 강자에게는 마지막까지 평화적 수단을 사용하라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 역시 자신의 속한 국가나 공동체를 지켜내야 하는 권리도 있고 책임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쟁과 무력의 사용에 무조건 동의해야 한다는 요구는 될 수 없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구체적으로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향해서, 물리적 대결의 길이 아니라 평화적 해결의 과정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요구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핵무기도 남한의 핵무장도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동시에 북한의 핵폐기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 평화적 해결의 노력도 결코 포기되어서는 안된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있고 로켓을 발사하고 있으니 물리적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생각은 결코 선택 가능한 유일한 대안이 아니다.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나 남북한의 맹목적 정치세력들의 역학관계가 아니라, 남북한 주민들의 삶이라는 중심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정치적 역학 관계에 대한 계산이 아닐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세력 다툼의 결과에 대한 예측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사실 이런 식의 역학관계에 대한 계산은 위험한 물리적 대결을 선택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 계산은 어떻게 해서든 이기는 쪽을 선택하겠다는 의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 한반도에서 평화를 향한 자신들의 입장을 더욱 분명히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반도에서 어떤 물리적 대결도 거부한다는 분명한 입장, 마지막까지 평화적 해결 방법의 추구해야 한다는 신념을 분명히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화를 향한 이처럼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오히려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세력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전쟁과 같은 무서운 비극이 일어나는 것은 광기 가득한 정치 집단들의 탓만은 아니다. 사실은 그 전쟁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 더 많은 사람들의 동의가 있기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전쟁과 분단의 한 세기를 살아 온 사람들이 물리적 대결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될 때 보다 남북간의 긴장이 고조되어 있는 현재 상황이 더욱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개성공단을 골칫거리로 생각하고, 공단 사업중단을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뿐만 아니다. 평화를 향한 우리의 노력이 수없이 많은 좌절을 겪어야 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지금 다시 그 좌절의 위기 가운데 서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평화적 화해의 과정을 향한 운동과 물리적 대결을 향한 운동을 조심스럽게 식별해 내야 하는 때이며, 평화의 길을 향해 큰 물줄기를 바꾸어 내야 하는 때이다. 때로는 비현실적 이상주의자로 취급 받거나 불온한 종북 집단으로 매도 당할 위험을 각오하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남북간의 정치권력들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할 책임도 없고, 한반도를 둘러싼 세력들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 책임도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한반도를 삶의 터전으로 하고 살아가는 남북한의 모든 인간과 생명들을 향한 책임 그것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서 북에 호전성과 폭력성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남의 호전성과 폭력성에 대해서도 냉정한 비판을 가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남북의 정치권력들을 평화의 길로 다시 불러 세우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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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묵시록 3 


- 청교도 종말론 그리고 사드(THAAD) 감상법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이번 글에선 청교도 종말론이란 주제를 계속해서 앞부분에 다루고 후반엔 약간 우회하여 최근 논란이 되어온 사드배치에 대한 논쟁을 약간 다른 방식에서 읽어보고자 한다) 


코튼 매더


    17세기 미국의 제일 중요한 사상가라 앞서 소개한 코튼 매더의 책엔 유달리 ‘아메리카’란 단어가 제목으로 많이 등장한다. [Magnalia Christi Americana, 1702]이라는 책이 대표적이지만 [Biblia Americana]와 [Psalterium Americanum]이란 저술도 있다. 미국이라는 땅을 학문의 대상으로, 또 미국을 신의 섭리 속에서 이해한 역사의 중심으로 등장시킨 건 매더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아메리카란 용어를 신대륙을 지칭하는 보편적인 용어로 만들어냈고 아메리카를 담론의 대상으로 창조해낸 사람도 매더였다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칸’는 당시만 해도 주로 미국의 원주민들을 지칭하는 용어였으나, 매더는 자신을 ‘아메리칸’이라 부르기 주저하지 않았다. 그에게 아메리카는 유럽의 종교개혁을 완성시킬 뉴잉글랜드가 아니었고, 그 자체로 의미와 사명이 있는 용어였다. 그러나 그 의미와 사명을 청교도들이 권력을 차지하게 된 영국의 역사에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매더에게 필요했던 것은 아메리카를 설명해줄 성경의 해석과 인류역사의 구원사적인 이해였고, 그는 오랜 시간 그 작업에 몰입해 자신의 ‘미국사상’을 만들어냈다. 그에게 미국은 성경의 예언이 실현될 예언의 땅이었고, 청교도들은 구원사적인 사명을 안고 미국에 온 선민들이었다. 미국의 종말론적인 이해와 선민사상은 매더가 17세기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 것이지만 현재까지도 세속화된 상태에서 미국의식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18세기 미국의 독립운동과 국가건립에서 19세기 서부개척론 그리고 미국의 부흥운동에서 최근의 미국 예외주의까지의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종말론적 선민사상과 같은 뿌리 깊은 개념을 배제하면 그 정신적 연결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매더는 예수의 재림과 종말의 사건들이 곧 일어날 것이란 확신이 있었고 이를 증거하는 걸 자신의 역할로 이해했다. 성경의 예언들이 자신의 시대에 이루어질 것으로 믿었고, 마지막 시대의 신학은 종말론일 수밖에 없었고, 모든 것이 죽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절박함을 안고 살았다. 그렇다고 매더가 세상을 등지고 말세만을 외치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17세기 미국의 청교도 사회의 시대적인 한계 속에서 과학과 진보적인 세상을 상상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청교도들이 미국의 집단무의식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면, 매더만큼 이를 잘 대변해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주술적 세계관에 근거한 종말의 상상력과 함께 자연의 과학적 이해를 동시에 추구했던 그의 모습에서 미국문화의 이중적인 모습의 한 원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더는 미국 청교도들의 종말론에 신학적 논리를 제공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말세의 날에 대한 예언도 잊지 않았다. 두 번이나 번복했지만 나름대로의 계산을 통해 말세의 해를 예언했다. 근대의 역사에서 미래와 종말의 예언을 한 사람은 흔히 알려진 노스트라다무스만이 아니었다. 17세기 이후 그런 말세에 대한 계산과 예언을 한 사람들의 이름만큼 과학과 주술과 역사와 예언의 구분이 근대초기에 명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건 없다. 뉴턴은 계산을 통해 종말의 해를 2060년이라고 내다봤으니 아직도 유효하다. 세상이 종말을 향해 달리고 있고, 예수의 재림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고, 마지막 날 최후의 심판이 있으리라는 믿음은 신학적 해석을 떠나 기독교 역사의 본질에 속한다. 종말의 사건이나 그 징조는 서구역사의 공통된 관심사였다. 그때가 언제인지를 파악하고자 성경을 찾았고 자연을 연구했다. 그에 대한 예언은 신과의 교감만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당대 학문이 제공하는 상상력에 기초한 계산과 판단의 산물인 경우가 많았다. 산술적인 계산이나 천문학의 관찰에 의거한 판단도 많았고, 최근에는 종교와는 상관없이 환경과학이나 우주생성이론을 근거로 세속적이고 습관적인 종말의 진단을 하는 예도 있다. 몇 년 전 통계에 의하면 미국 기독교인들 중 41%는 예수의 재림이 2050년 이전에 있을 거라 믿고 있다. 복음주의 계통의 기독교인들만을 보면 그 비율이 58%로 훨씬 늘어난다. 19세기엔 종말의 예언이 유럽에서는 뜸해졌지만 미국에서는 황금기를 맞는다. 예수의 재림, 종말사건들의 시작, 휴거 등의 예언은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제7안식일 예수재림교 그리고 전천년주의를 따르던 개신교회들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였다. 20세기 한국개신교의 역사도 길선주 목사로부터 시작되는 종말예언으로 점철되어 왔다. 앞으로 다룰 주제이지만, 20세기 세속화된 미국의 역사에선 그 종말의식이 종교만이 아닌 대중의 문화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네이팜과 사드


    네이팜에 관한 신문기사를 접한 건 오래 전이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한국의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공포와 테러의 대상이었던 네이팜은 그 당시에도 잔혹한 살상의 무기라는 이유로 도덕적 논란을 일으켰다. 신문기사의 내용은 퇴출된 네이팜탄을 폐기처분하기 위해 기차를 통해 시카고를 거쳐 목적지인 인디애나까지 운송할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폭탄을 실은 기차가 인구밀집 지역을 통과하는 게 공공의 안녕에 위배되는 위험한 일이라며 이를 반대하고 나선 시카고 시의회 의원들과 지역 정치인들이었다.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기차에 실어 운반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네이팜은 미국 (하버드 대학의 화학교수가 연구하고) 만들어 일본과 한국 그리고 베트남에서 수십만 (아니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분노와 공포의 무기가 아니었나. 뉴스기사는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를 느끼게 했고, 네이팜의 잔혹한 역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1945년 일본에선 미국의 네이팜 폭격으로 하룻밤 사이 십만 명이 불에 타죽었다. 또 네이팜은 6.25 전쟁 당시 북한을 초토화시킨 ‘넘버 원’ 무기였다. 네이팜은 베트남 전쟁 때 가장 많이 사용됐고, 미군의 무자비한 폭격을 증언하는 반전운동의 상징이었다.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사람들이 가장 잘 기억하는 장면도 네이팜이 폭발해 치솟는 불덩어리의 모습이다. 


    네이팜과 사드의 연결점은 무기로서의 유사성이 아니라 슈퍼무기, 즉 적을 한 번에 제압할 수 있는 최후의 무기를 찾았던 미국의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둘 다 미국에서 개발된 무기다. 미국의 한 시대를 상징했던 네이팜을 문화사 측면에서 다룬 책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 [Napalm, An American Biography]. 사실 무기는 단순히 사람을 해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의 산물만은 아니다. 불행하게도 한 시대의 문화와 가치와 정신을 대변하기도 한다. 네이팜, 핵무기, 핵잠수함, ICBM, 그리고 사드까지의 역사는 슈퍼무기를 찾았던 미국의 정신사의 일부로 읽을 수 있다. 이 역사를 미국역사의 묵시록으로도 읽을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핵무기보다 먼저 만들어졌어도 곧 핵무기가 개발되면서 슈퍼무기의 명성은 갖지 못했지만, 미국의 B-29 폭격기에서 떨어지는 네이팜탄은 아마겟돈 전쟁의 악몽을 연상케 했다. 1945년 봄 독일 드레스덴에 가해진 미군의 무자비한 공중폭격을 주제로 한 책의 제목은 [Apocalypse 1945]이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었고, 코폴라 감독의 [Apocalypse now>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폭격은 독일과 일본과 베트남 등의 나라에선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민족적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북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20세기의 역사에서 최후의 무기 또는 종말의 무기는 당연히 핵무기였다. 냉전 이후 지구생명의 역사를 한 순간에 끝낼 핵전쟁이 어는 순간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살아 왔다. 아마겟돈이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종교적인 개념을 믿지 않는 사람들 인간이 억제할 수 없는 최후의 전쟁이 곧 일어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핵무기는 종말의 상징이었고, 20세기의 묵시록 그 자체였다. 핵무기의 묵시록을 언급하는 이유는 20세기 중반 이후 문화와 학문의 발전은 핵전쟁의 종말이라는 매우 가까운 현실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존주의에서 해체이론, 추상표현주의에서 비디오아트, 소비자주의에서 환경운동까지의 변화가 어떻게 종말의 담론을 수용하고 있는지 궁금해지지만 이는 따로 알아볼 일이다. 당연히 기독교 신학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21세기엔 마치 테러라는 현실이 20세기 핵무기의 진부함을 대체한 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테러리즘을 위험시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통제되지 않는 세력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가정이기 때문에 핵무기의 묵시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다만 최근의 문화적 상상력은 더 진보해, 이미 이루어진 묵시적 종말 이후의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예컨대 60년대의 영화가 핵폭발과 함께 모두 죽어가는 장면으로 끝났다면, 90년대 이후의 영화는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의 얘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코맥 맥카시의 <로드>라는 책이 대표적인 예다. 


   슈퍼무기, 최후의 무기를 끊임없이 추구해 온 미국의 역사를 다룬 브루스 프랭클린의 [War stars]라는 책이 있다. 출간된 지 벌써 30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그 논지는 명확하고도 유효한 미국문화사의 고전적인 책이다. 그는 18세기 증기선 개발로 유명한 로버트 풀턴이 추구했던 평화를 이루고 자유를 지킬 슈퍼무기 잠수함 건설에 대한 얘기로 그 역사서술을 시작한다. 이후 미국이 만든 모든 슈퍼무기는 전쟁을 끝내고 영구적인 평화에 기여할 것이란 명분하에 만들어졌다. 폭격기가 그랬고 핵무기, 핵잠수함, ICBM, MD의 역사가 그랬다. 그 사이 순간의 계산착오만으로도 지구의 생명체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체제가 구축되어 왔고, 적의 위협으로부터 평화를 지키고 적의 무기를 무력화 시킬 슈퍼무기 경쟁은 첨예화 되었다. 선택받은 예외주의의 나라 미국은 그 경쟁에서 질 수 없었다. 아마겟돈 전쟁을 무릅쓰고라도 지켜내야 할 군사적 우위였다. 미국의 문화는 무기산업과 군사주의에 우호적으로 발전했다. 네이팜의 불덩어리보다 더 큰 시대의 아이콘은 핵폭발의 버섯구름이었다. 상징은 생각을 낳는다고도 하지만 또 현실을 견디게도 해준다. 종말의 상징인 핵폭발의 버섯구름은 예술가의 손을 통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건이 되었다. 어느 순간 미국적이라는 것과 군사적이라는 것은 유사한 것이 되었다. 그게 정당화되는 이유는 미국의 의도는 선하다는 인식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그 의도는 자유를 지향하는 것이고 자유는 죽음과도 바꿀만한 가치다.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를 가르는 심판의 언어는 미국에 가장 가까운 언어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사회비평가 루이스 멈포드는 핵무기 경쟁을 합리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미국의 지도자들을 향해 ‘미쳤다’고 외쳤고, 이들의 행태가 용인되는 이유는 미국인 모두가 똑같기 때문이라 주장했다. 최근에는 그런 비판도 듣기 힘들다. 그 경쟁이 이미 일방적인 승부로 끝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모두가 자살머신에 갇혀 좌절과 절망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드(THAAD)로 돌아가 보자. 사드의 한국배치에 대한 두 관점은 이를 북한의 공격에 대한 대비책으로 보는 시각과 중국의 ICBM에 대한 미사일 방어체제의 일부라는 시각이다. 여기서 한 가지 추가할 관전 포인트는 역사적인 것이다. 위에서 얘기한 미국의 슈퍼무기 개발의 역사라는 측면이다. 종말의 무기인 핵무기를 효과적으로 소유하려면 두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선제 핵공격을 하고도 핵보복을 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하면 상대의 선제 핵공격을 미리 막을 수 있는가이다. ICBM은 상대가 선제적 핵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보복용 무기로 알려져 있다. 보복을 당하지 않는 핵공격은 없다는 걸 증명하는 무기이기 때문에 선제적 공격을 막을 수 있게 된다. 물론 양쪽 모두 핵무기가 있다는 전제 하에 성립되는 방정식이다. 만약 ICBM을 공중에서 무력화 시킬 수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한 쪽에선 보복 당하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이고, 다른 쪽에선 적의 공격에 대응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MD라는 미사일 디펜스 시스템의 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사드가 MD 체제의 한 축이기 때문에 사드의 한반도 배치문제 문제가 남북만의 문제가 될 수 없다. 여기서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 내가 잘 모르는 - ICBM이나 사드의 전략적 논리가 아니라 적의 첨단의 무기를 무력화 시키는 슈퍼무기를 찾아온 미국의 역사 속에서 사드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드가 ICBM을 공중에서 분해시키는 상황은 최후의 전쟁일 수밖에 없다. 최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려는 전략을 묵시적인 아마겟돈 전쟁을 상상하지 않고 구상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대로 미국 무기의 역사는 사회사 그리고 문화사의 일부다. 1940년대 핵무기 개발은 수없이 많은 각도에서 연구되어 왔다. 핵무기는 전쟁을 종식시킬 무기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세상을 끝낼 수 있는 무기로 아직도 남아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 핵무기가 묵시록의 환상을 일깨운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다. 냉전시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들은 핵무기를 통한 지구의 종말과 예수의 재림을 다룬 것들이다. 냉전시대의 묵시록은 핵무기를 통해서 쓰였다. 특히 예루살렘을 두고 벌어지는 전쟁이 핵전쟁으로 이어지고 이를 통한 파멸이 예수의 재림와 천년통치로 이어진다는 설정은 20세기 후반 가장 흔한 전천년주의 말세론의 기본적인 줄거리다.  



참고서적에 대하여


    브루스 프랭클린Bruce Franklin의 책의 원제목은 War Stars: The Superweapon and the American Imagination으로 1988년 University of Massachusetts Press에서 출판되었다. 멈포드Mufford에 대한 언급은 원래 1946년 그의 에세이 "Gentlemen: You Are Mad"에 출처가 있지만 프랭클린이 그의 책에서 인용하고 있다. 네이팜을 다룬 책 Napalm - An American Biography의 저자는 로버트 니어Robert M. Neer이고 비교적 최근 2013년 하버드 대학 출판부에서 출판했다. 두 책 모두 미국 군사무기의 문화사를 다룬다 할 수 있다. 한국어 번역본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매더가 쓴 책들 가운데 구하기 힘든 것도 있지만 그중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Magnalia Christi Americana미국에서의 그리스도의 위대한 업적]은 하버드 대학에서 판이 있다. Post-Apocalyptic 장르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코맥 맥카시의 <로드>는 책과 영화 모두 좋은 평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같은 장르의 <설국열차>에 대해선 다음에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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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제왕이 던진 ‘거창한 농담’[각주:1]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이젠 놀랍지도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 세계를 향해 힘주어 발표한 드레스덴 선언도 그냥 거창한 농담이었다. 2014년 1월6일, 신년 기자회견 때 박 대통령은 불쑥 ‘통일대박론’을 꺼냈다. 그해 3월28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일명 ‘드레스덴 선언’이라고 하는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을 발표함으로써 통일대박론이 일회적 립서비스가 아닌,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준비된 것임이 명백한 듯했다. ‘통일대박’이라는 말에서 시사되듯 여기에는 한반도의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비전이 깔려 있는 듯이 보였다. 그것은 드레스덴 선언의 ‘남북한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이라는 제안과도 맞물린다.

    하지만 이 제안 이면에는 그 이상의 아이디어가 들어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전해인 2013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주장했다. 중국과 중앙아시아, 러시아, 유럽을 잇는 새로운 실크로드를 건설함으로써 미래 한국경제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신선했고 극적이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극적이라는 말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처음 명시된 때가 2013년 10월8일, 제주에서 열린 ‘유라시아 공간정보인프라 국제콘퍼런스’의 기조연설이었는데, 그로부터 불과 20여일 전인 9월16일에 개성공단이 재개되었기 때문이다. 그해 4월9일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무려 160여일 만에 재가동된 것이다. 개성공단 폐쇄는 그해 2월에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에 대한 제재조치의 일환이었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대북 강경책은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황당한 대북정책인 ‘비핵개방 3000’의 연장선상에 있다. 즉 두 정부를 잇는 대북정책은 ‘선핵폐기론’이었다. 다만 MB 정부가 북한이 먼저 핵을 폐기하면 국민소득 3000달러가 되도록 돕겠다는 ‘당근형 선핵폐기론’을 제시한 것이라면, 박근혜 정부는 핵을 폐기하지 않으면 모든 가능한 수단을 다해 제재를 가하겠다는 ‘채찍형 선핵폐기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근이든 채찍이든 효과는 없었다. 박근혜의 채찍은, 유시민씨의 비유처럼 채찍 길이보다 먼 곳의 상대를 향해 휘두른 격이었다. 더욱이 그 채찍이 개성공단 폐쇄였다면 그것에 맞아 깊은 상처를 입는 이는, 그녀가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살피겠다던 이들, 바로 그녀가 대통령인 나라의 국민이었다.

    하지만 이후 남북한 간의 교류는 거의 없었다. 박근혜 정부는 드레스덴 선언 이후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별로 취하지 않았다. 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보다는 당장의 보수 결집에 이니셔티브를 두는 방향으로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올해 1월6일 북한의 제4차 핵실험이 있었고, 2월10일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마도 2013년처럼 재개되지는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2005년 시작된 개성공단의 꿈은 11년 만에 수포가 된 셈이다. 이제 124개 개성공단 입주업체는 아마도 거의 모두 도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종업원 수가 1만명이 넘는다고 하니, 그들 모두가 실직자가 되는 셈이다. 게다가 협력업체가 5300개인데, 이 기업들도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이다. 이로 인한 국제신용도의 실추는 말할 것도 없다. 

    그뿐만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엉뚱하게도 이것을 미국 사드(THAAD)의 국내 배치와 연관시켰다. 북한 핵실험과 사드 배치라는 두 개의 무관한 사항이 박근혜 정부에 의해 하나로 엮였다. 알려져 있다시피 사드 배치는 한반도를 새로운 위험에 노출시킬 것이다. 동북아의 냉전질서를 격화시킬 것이고, 그 핵이 되어버린 한반도를 모두의 표적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런 현실로 인해 막대한 경제적 비용이 치러질 것이고, 그것을 둘러싼 국론분열도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필요로 할 것이다. 또 무기구매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사드가 배치되면 그 전자파로 인한 민간인과 자연생태계의 막대한 피해도 예상된다. 물론 대중국 무역도 커다란 타격을 받을 것이다. 

    “도대체 왜?” 의당 나와야 할 질문인데 이젠 놀랍지도 궁금하지도 않다. 다만 다시는 ‘선거의 제왕’이라는 타이틀의 통치자를 만나지 않았으면 할 뿐이다.  □ (올빼미)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경향신문의 2월 19일 칼럼 <선거의 제왕이 던진 ‘거창한 농담’>(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2192039035&code=990100)의 원고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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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의 출발점이자 종교간 대화로서의 반유대주의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해석의 사전적 의미를 뒤지면, 문장이나 사물 따위로 표현된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텍스트는 기호 가운데 특히 구어/문어 등의 언어로 이루어진 복합체를 뜻하는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텍스트와 해석을 합치면 언어로 표현된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인간의 활동쯤 될 것 같다. 그리고 텍스트와 관련한 해석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로 취급될 수 있다. 하지만 이때의 텍스트란 좁은 의미에서 정의된 것이다. 좀 더 넓은 맥락, 즉 문화연구의 개념을 통해 본 사전에서 텍스트 개념은 이데올로기 분석 연구, 수용 연구, 또는 담론 분석 연구 등과 관련해 정의되고 있다. 다시 말해, “문화연구에서 텍스트 분석을 통해 텍스트가 어떤 방식으로 이데올로기를 재현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텍스트에 대한 수용 연구, 즉 하나의 텍스트가 해독될 때 독자는 그 텍스트와 어떻게 상호작용하거나 교섭하는지에 대한 연구 등에서 텍스트라는 용어는 빈번히 사용”[각주:1]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텍스트와 관련한 해석은 그리 간단치 않다고 할 수 있다. 텍스트도 해석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하나의 사물로 덩그러니 놓여 있지 않은 셈이다. 마지막으로, 타자란 자기 이외의 사람 또는 다른 것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타자 역시 하나의 사물처럼 그저 그렇게 놓여 있지 않다. 현상학은 이 문제를 처음으로 중요한 주제로 부각시켰는데, 후설에게 타자란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지향적 대상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고유한 지각 영역에 속하는 나의 신체와 유사한 하나의 물체'로서 만약 내가 거기에 있게 된다면'이라는[각주:2]”식으로 파악되고 있기에, 그에게 타자란 자아와 유사한 존재 내지는 그 변양태에 지나지 않았다. 즉, 타자가 주체에 의해 언제든 처분될 수 있는 존재로 나타나 있는 셈이다. 이와 달리, 하이데거에게 타자란 단순히 눈앞에 있는 존재이거나 내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타자는 나처럼 살아 움직이는 존재인 것이다. “나처럼 현존재이며 세계-내-존재로서 도구적인 것을 둘러보는 가운데 고려하며 실존”[각주:3]하고 있다. 때문에 “현존재의 세계는 공동 세계이고, 이 공동세계 속의 우리는 서로 타자이지만 동시에 공동 현존재(Mitdasein)”[각주:4]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므로 텍스트, 타자, 해석을 묶어 하나의 주제로 고찰하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고 할 수 있다. 텍스트라는 문제 하나만 고찰해도 버거운 일인 것을 텍스트, 타자, 해석을 묶어 하나의 일관된 주제로 고찰하는 일은 어쩌면 무덤을 파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아드소처럼 “나는 나 자신에게 유물의 파편에서 떠오르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때 있었던 이 일련의 사건과 그 사건을 연결하는 시간 사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되풀이하면 할수록 나는 여기에서 멀어져 가는 것 같다. 죽음의 문턱에 이른 늙은 수도사에게 제가 쓴 글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많은지 적은지, 있는지 없는지 그것도 모른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각주:5]라고 고백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주제를 뽑은 것은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에 매우 흥미로운 화두거리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유대인/교 문제다. 알다시피, 기독교에서 유대교는 해결할 수 없는 타자였다. 그것도 신의 아들을 죽인 살해자이자 개종을 거부하는 타자였다. 그렇기에 중세에 유대인은 악마나 사탄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 이후 이러한 사태는 변해왔고 마침내 지난 10일 바티칸은 가톨릭은 유대교인을 개종시키려 들지 말라고까지 선언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 한때는 악마나 사탄으로까지 이해되던 인종/종교가 어떻게 개종대상이 아닌 인종/종교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일까? 정말 우리가 가진 종교 텍스트, 즉 경전인 신약성서는 유대인을 개종대상이 아니라고 혹은 사탄의 자식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을까? 그러니까 어제까지는 살인자 및 사탄이라고 외치던 것에서 오늘에는 개종대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 현상을 성서라는 기독교 텍스트에 근거해 볼 때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이 문제는 카톨릭에선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카톨릭은 ‘오직 성서만으로’라는 프로테스탄트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 카톨릭에선 성서 이외에 교회의 전통이 또 하나의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오직 성서만으로’라는 논제를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개신교에서는 심각한 도전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근대에 시작된 개신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우선적으로 책의 종교로 등장했고, 그것도 우선적으로 문자적으로 이해해보고자 노력한 종교이며, 그렇기에 텍스트적인 종교적 인간형을 산출해낸 특이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텍스트적 인간형은 홀로코스트를 산출하는데 결국 일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미쓰오의 말을 들어보자.[각주:6] 


 사실 영향사적으로 봤을 때 예를 들면 마태복음 23장은 중세 말까지는 상대적으로 거의 미지의 텍스트로, 수사본에 기반을 둔 성서 기사의 영향력도 한정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활판 인쇄가 시작되었던 16세기 이후 성서가 광범한 독자를 얻게 되면서 기독교적 바리새파상이 각인되어 갑니다. 유럽 각국의 언어에서 바리새적=위선적이라는 관용어법이 일반화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바리새파의 모습이 현대 유대교의 조상으로서 이해되어 근대 이후의 시민적=기독교적 반유대주의와 결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데 이러한 상황은 단지 서구에만 해당되는 일일까? 다시 말해, 서구는 반유대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반면 서구 이외의 지역은 상관없는 그러한 일일까 하는 점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흥미롭게도 노만 콘은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뼈아픈 지적을 한 바 있다.[각주:7] 


     절멸적인 반유대주의가 맹렬히 불타오르는 현상은 대중이 유대인이라는 존재가 그들 이외의 인류를 섬멸하고 지배하고자 획책하는 집단적인 악의 화신이라고 상상하는 경우로만 한정된다. 이런 종류의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이 현실 생활에서 수행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실제로 이러한 반유대주의는 한 번도 유대인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 수백 년도 전에 유대인이 사라진 나라들에서도 출현한다. 


     그렇다. 실제로 이러한 일은 일어났다. 일본의 일유동조론은 그 한 예다. 타츠루는 “언제 유대인을 일본에 출현하게 됐는지, 우리는 그 날짜까지 알 수 있다. 그럼 소개하겠다. 일본에 유대인을 존재하게 만든 사람은 스코틀랜드인 선교사 노먼 매클러드라는 인물이다. 그는 일본에서 행한 현지 조사의 결과 일본인은 유대인의 잃어버린 10부족의 후예라는 기상천외한 설을 1875년에 발표했다. 이것이 그 후 현재까지 전해지는 일유동조론의 기원이 되었다.”[각주:8]라고 말한다. 이것은 유대인이 현실 생활에서 수행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과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출몰한다고 지적한 콘의 말을 정확히 대변해주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타츠루도 “낮과 밤, 남과 여, 평화와 전쟁, 이러한 대립은 그 밖에도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습니다. 이런 대립은 현실적인 세계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대립은 현실 세계에 골격과 축과 구조를 부여하고, 현실 세계를 조직화하고, 인간에게 현실이 존재하게 하고, 그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다시 발견하게 만드는 그러한 대립입니다.”[각주:9]라는 라캉의 말을 적용해서, “유대인과 비유대인이라는 대립은 현실적인 세계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대립이 아니다. 반대로 이 대립은 현실 세계에 골격과 축과 구조를 부여하고, 현실 세계를 조직화하고, 인간에게 현실이 존재하게 만드는 대립이다.”[각주:10]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타츠루의 책을 번역한 역자 박인순의 말은 더욱 흥미롭다. 왜냐하면 이렇게 적고 있기 때문이다.[각주:11] 


     북왕국이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게 멸망당하면서 10부족은 아시리아로 끌려가 나머지 2부족에 의해 잃어버린 10부족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기록이 남지 않아 이들의 행방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게 되었다. 10부족의 일부가 아프가니스탄, 인도, 미얀마, 중국, 일본, 한국, 영국, 미국, 스키타이, 아프리카 등으로 이동했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10부족의 일부가 이동했다는 지역으로 언급되고 있는 지역 가운데 우리나라가 들어 있다. 그리고 잃어버린 10부족 중 하나인 단지파가 바로 한국이라고 주장을 하는 이들이 실제로 있다.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2]  


     삼성기 하편에 의하면 환국의 12국 중 하나인 수밀이국은 단군 족, 곧 백두산족의 일파이다. 기독교의 12지파 중에 단지파가 있다. 체형, 언어, 생활습관이 수메르인과 이스라엘인과 한국인이 유사하다이스라엘이 말하는 선민(選民)은 그 뜻을 선택받은 민족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원어는 chosen people로써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조선 사람」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단군 민족이라는 의미다. 세계를 방황하던 이스라엘이 유엔에 청원할 때 만주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고향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인 아브라함은 수메르 인으로써 함께 천신제(天神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한민족과 이스라엘의 동질적 역사와 문화(文化)를 보면 너무나 유사점이 많이 있다. 


     이러한 말은 분명 누가 봐도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너무나 허무맹랑하여 정신병자가 지껄이는 말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심을 두고 봐야 하는 것은 이 말이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니까 “일본인이 이 가상의 유대인을 반복하여 호출하는 까닭은 자신들의 사정 때문이었다. 일유동조론부터 시오텐의 반유대주의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에 공통된 점은 국민국가의 정치적 위기와 국민적 정체성의 동요라는 두 가지 정치적 요인이다.”[각주:13]라는 타츠루의 말을 참조했을 때, 왜 이러한 일이 우리나라에도 일어나는지를 한번쯤은 검토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일단 지금까지 살펴본 주장, 즉 실제의 유대인이 거의 없는 지역에서 일어난 유대인에 관한 생각들이 반유대주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고 물을 수 있다. 이에 대해 타츠루는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다. “반유대주의란 꼭 유대인을 배척하라는 명시적인 박해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이 일종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매개로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설사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유대인에 대해 친화적인 태도나 경의를 표한다고 해도, 반유대주의자와 기본적인 세계인식의 도식을 공유한다는 말이다.”[각주:14]라고 말이다. 경제적 성공을 위해 유대인의 지혜를 배우자는 한국 개신교인들의 뜨거운 반응은 성서를 통해 예수를 살해한 사람이 유대인이라고 말해야만 하는 자신의 신앙적 고백과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러한 지적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어쩌면 한민족이 단지파라는 망상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진 유대인의 기원이 바로 한민족이라고 말함으로써 우리 민족이 가진 힘을 역설하고자 하는 욕망일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맞닿아 있는 야누스적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반유대주의는 유럽 및 비유럽을 가리지 않는다는 콘의 지적은 꽤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텍스트적 인간형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는 개신교인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타츠루가 지적한 것처럼 비유럽 지역의 나라들이 처한 위기와 관련해 유대인이 해석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현실 속 유대인이 아니라 텍스트, 특히 신약의 복음서에 박힌 고정된 전혀 변함이 없이 책을 뒤지면 언제나 특정한 타입으로 등장하는 유대인이 복음서를 읽는 독자가 처한 특정한 상황과 맞물려 어떻게 읽혀지고 있는지를 해석해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불행히도, 유럽의 역사에서 유대인은 언제나 약탈하는 경제적 인간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베니스 상인의 샤일록은 그 한 예이다. 사실, 고리대금업자로서의 샤일록은 우연히 탄생한 인물이 아니다. 오한진의 지적을 참작하면, 고리대금업자로 유대인이 등장하는 맥락은 반유대주의와 결부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3세기 이후부터는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다는 비난이 점증되었고, 페스트 전염으로 인한 대량사망이 유대인들의 인신제물죄로 유포되면서 유대인들에 대한 적개심은 날로 커져갔다. 그리고 이러한 비난들이 유대인과 적대시하고 있는 승령들이나 신분 낮은 로마카톨릭 성직자들에 의해 설파되고 있었기에 일반 국민들에게는 쉽게 전파되었다.”[각주:15] 약탈하는 경제적 인간으로서의 유대인은 유럽의 역사에서 언제나 하층민에게 불쾌한 반응을 일으켰고 하층민이 돈을 갚지 못할 상황에 이르면 유대인을 폭력으로 응수했다. 이러한 일이 중세 유럽에만 일어났었던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토브는 21세기에도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도 미국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말이다. “반유대주의자는 흑인과 백인 실업자, 노숙자, 빈민, 하층계급, 엘리트 코스에서 탈락한 중산 계급의 사회적 불만을 희생양인 유대인에게 향하게 만들어 피해 간다. 엘리트들은 반유대주의적 폭력을 저지하기는커녕 유대인, 흑인, 빈곤층 백인 등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괴리의 심화에 가담한다. 그들이 단결하여 엘리트들에게 반격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한 고전적인 분열 통치의 룰이다.”[각주:16] 한데, 이처럼 통치엘리트의 분열전략으로 반유대주의가 사용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의를 위해, 가난한 자를 위한 싸움을 위해 혹은 아나키즘을 위해서도 반유대주의는 동원될 수 있다. 다시, 타츠루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 


     내가 반유대주의자의 저작을 읽고 알게 된 사실은 그 사람들이 꼭 사악한 인간이거나 이기적인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신앙심이 깊고, 박식하고, 공정하며, 불의를 격렬히 증오하고, 탁상공론을 싫어하고, 싸움의 현장에서 도망치지 않으며, 자신의 주먹에 사상의 무게를 주저 없이 거는 수컷 농도가 짙은 인간이 자주 최악의 반유대주의자가 되었다. 단순한 반유대주의자=인간의 탈을 쓴 악귀라는 설에 기댄다면 분명 역사 기술은 간단해진다. 그러나 거기에 머문다면 지금도 존재하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존재할 인종차별이나 민족차별이나 제노사이드라는 재앙을 막을 수 없다. 


     이러한 지적들, 13세기부터 시작된 약탈하는 경제적 인간으로서의 유대인이라는 것에서부터 불의를 격렬히 저항하며 기꺼이 해방을 도모하는 인간이 반유대주의자일 수도 있음을 말하는 이런 지적을 복음서를 통해 해방을 역설하고자 하는 여러 착한 학자들의 담론과 포개어 놓는다면 어떤 밑그림이 그려질지 궁금해진다. 물론, 이들이 반유대주의자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자신이 실제적으로 유럽이 반유대주의자들 소굴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텍스트에 나타난 유대인의 이미지를 국가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해방의 담론에 적용코자할 때 자기도 모르게 걸려드는 반유대주의의 여러 유형들,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무의식적으로 접속하게 되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무슨 일이 있든지 간에 유대인은 용서받아야 마땅하다는 식의 논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니까 유대인이 홀로코스트를 겪었기에 팔레스타인들에 대한 현대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탄압은 눈감아줘야 한다는 식의 발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한 예로, 사이드는 이와 관련해 이미 옳게 지적한 바 있다. “레온 폴리아코프는 아리안 신화를 쓴 사람입니다. 가설에 불과한 인도-유럽어족의 특징으로 상정된 석과 이른바 아리안족이라는 관념과 인종주의 사이의 공생관계를 연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폴리아코프는 유럽에서 셈족을 유대인뿐만 아니라 무슬림까지도 가리키는 말로 쓴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당면 목표와 어울리지 않는 현실에는 눈을 슬쩍 감아버리는 것이 요즘 지식인들의 유행인 모양입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폴리아코프의 책이 인종 이론을 공격하면서도 중동 사람과 셈족을 한 데 묶어 말하는 것이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보여줄 역사는 생략한다는 점입니다.”[각주:17] 오히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이드가 이슬람과 관련해 말한 바가, 다시 말해 서구인들이 이슬람에 대해 가진 스테레오타입적인 이미지가 유대인에 대해서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8] 


     다른 문제는 이런 것입니다. 대부분의 동양학 연구에서는 아랍 문학을 아주 조금씩만 다룹니다. 아니면 아랍인의 생활을 보여주는 예로만 살짝 다룹니다. 이것은 오리엔탈리즘에서 가장 주목해 볼 만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제가 오리엔탈리즘을 연구하게 된 것도 이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참 재미있는 건, 동양학자들이 아랍을 꾸란의 예시라고 보거나 자신들의 주장이 꾸란에 써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는 겁니다. 방법론적으로 보면 이 태도는 미국의 역사를 신약 성서의 예시라고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무도 셰익스피어, 생 시몽 19세기 미국 역사연구를 대신해서 기독교를 연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동양학에서는 일반화된 일입니다. 


     사이드의 이 같은 지적은 유대교와 관련해 기독교 신학이 저지르는 신학적 논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수 세기 동안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적인 전통으로 굳어져서 그런지 몰라도 이것이 괴기한 일인지를 모르고 지낸다. 따라서 신학자의 글들에는 부지불식간에 반유대주의적 서사가 기어들어온다. 언제나 유대교는 하나의 화석으로, 그러니까 2천 년 전의 복음서에 나온 상태로 발전 하나 없이 굳어져버린 하나의 원시적 정신을 가진 존재로 취급되고 만다. 유대교를 정의할 때 현재의 살아있는 유대인들이 무엇을 믿는지가 아니라 고대의 유대교 경전을 통해 현대의 유대인들과 그 종교를 규정해내며, 그렇기에 늘 이들의 종교는 예수를 죽인 자들의 종교로 정의된다. 유대인, 그들의 종교는 복음서가 규정하는 바와 같이 무자비한 종교이고, 노력의 종교이며, 결국 은혜는 거부하는 그러한 종교다. 따라서 기독교적 서사에서는 헤롯과 가야바를 비롯해 심지어 바리새인들까지도 1세기의 민중들의 피를 흡혈귀처럼 빨아먹는 인간들로, 반면에 예수는 이들과는 달리 비록 천출이지만 고귀한 정신의 혈통을 지닌 자유의 아들로 그려진다. 그렇다면 이것은 반유대주의의 새로운 버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종의 사회학적 틀을 빌린 반유대주의 말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이해를 무엇으로 봐야 할까? 솔직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이러한 신학적 해석의 궤도 위에서 예수를 자리매김하고자 한다면, 유대교와의 대화가 과연 가능할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네이버 지식백과] 텍스트 (문화연구의핵심개념, 2014. 4. 15., 커뮤니케이션북스) [본문으로]
  2. [네이버 지식백과] 타자 [他者, der Andere, l'autre] (현상학사전, 2011. 12. 24., 도서출판 b) [본문으로]
  3. [네이버 지식백과] 타자 [das Andere, others, 他者]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본문으로]
  4. [네이버 지식백과] 타자 [das Andere, others, 他者]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본문으로]
  5.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하)』,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1994, p.774 [본문으로]
  6. 미야타 미쓰오, 『홀로코스트 이후를 살다』, 박은영․ 양현혜 옮김, 한울아카데미, 2013, p.56 [본문으로]
  7. Norman Cohn, Warrant for Genocide, London: Eyre & Spottiswoode, 1967, p.252 [본문으로]
  8. 우치다 타츠루, 『유대문화론』, 박인순 옮김, 아모르문디, 2011, p.65 [본문으로]
  9.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59 [본문으로]
  10.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59 [본문으로]
  11.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65 [본문으로]
  12. http://www.dailywrn.com/sub_read.html?uid=5775 [본문으로]
  13. 우치다 타츠루, 앞의 책, p.96 [본문으로]
  14.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75 [본문으로]
  15. 오한진, 『유럽문화 속의 독일인과 유대인, 그 비극적 이중주』, 한울림, 2006, p.30 [본문으로]
  16. Lawrence Taub, The Spiritual Imperative: Sex, Age, and the Last Caste, Clear Glass Press, 1995, p.199 [본문으로]
  17. 에드워드 사이드, 『권력, 정치, 문화』, 최영석 옮김, 마티, 2012, p.58 [본문으로]
  18. 에드워드 사이드, 같은 책, p.6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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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과 주체



 

허석헌

(미국 샌프란시스코 GTU 박사과정, 조직신학)



들어가며

 

          포스트모더니즘을 특징짓는 현상은 주체의 문제가 문학, 철학, 예술, 신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시 전 분야에 걸쳐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였다는 점이리라. 이런 현상은 계몽주의로부터 니체에 의해 기획된 신의 죽음이 몰고온 예고된 변화이기도 하지만 굳이 니체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라는 전체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숨 막히는 질서 안에서 새로운 변화를 기대했던 지성사의 필연적인 흐름 이었는지도 모른다.  

          계몽주의시대 이후 ‘신의 죽음’의 선언이 불러일으킨 변화는 근대적 주체의 죽음뿐 아니라, 주체를 둘러싼 욕망, 권력, 담론, 지식과 같은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 내었다는 것이다. 라캉이 주체를 대타자라는 환상적인 실재를 욕망하는 존재로 파악한다든지, 푸코가 지식의 계보학을 통해 권력이 작동하는 구조를 밝혀낸 것이라든지,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의 개념을 통해 서구역사가 억압해온 사유의 욕망으부터 자본주의의 문제를 파헤친다든지 하는 것들은 상이한 관점에도 불구하고, 결국 주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주게 되는지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리고 주체에 대한 관심이 최종적으로 겨냥하는 지점은 억압적인 체제질서의 그 가려진 내막을 들춰냄으로서 인간을 억압한 그 모든 것들의 허구적인 실체로부터 인간의 주체적인 삶, 즉 주인된 삶을 회복시키는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통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주체에 대한 각각의 진술들을 통해 제시되는 자본주의 질서 내에서 주체의 행동의 방식은 이론가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다소 부정적인 경향으로 흐르고 있음이 감지된다. 다시 말해, 해체론이든, 포스트구조주의든,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명명하든 주체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그러한 인식의 변화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문제 중의 하나가 전통적 절대 주체에 대한 비판 내지 해체이며, 이는 근대적이고 부즈조아적인 사회구조를 넘어서 새로운 변화를 추동하는 힘을 내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절대 주체에 대한 비판 혹은 해체가 인간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자율적인 주체역량마저 해체할 수 있다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문제임을 말하는 것이다. 목욕물을 버리다가 아이마저 버리는 참사는 목욕시키는 엄마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주체가 중요한 문제인가


         데카르트의 근대 합리주의 이후 서양 근대 철학은 주관적인 관념철학의 입장에서 전개되어 왔다. 말하자면, 인간의 사유와 인식능력은 실재를 분명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지배하였던 시대였고, 윤리 실천적인 측면에서는 이성에 기반한 자율적인 개별자들 간의 합리적인 계약에 의거하여 정치적 권력은 정당성을 획득하게 된다는 낙관적이 기대가 팽배하였던 시대였다. 이것은 중세시대를 지배하였던 전근대적이고 객관적인 실체로서의 신을 밀어내고 근대의 관념론적인 형이상학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주체가 그 자리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절대 주체는 형이상학적인 신의 자리를 탈환하는 데에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주체의 자리로부터 배제된 객체를 대립적으로 구분하여 객체에 대한 차별을 기정사실화하고 정당화하고 만다. 신의 자리를 인간이 차지하는 승리의 환호 뒤에는 자연이 인간의 정복의 대상물로 전락되고, 여성은 남성에 대한 복종의 대상이 되며, 유색인은 백인에게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비워주어야 했던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 개별자 스스로에게 이데아나 신에게만 부여되었던 초월적이고 자기동일적인 존재라는 지위를 부여함으로서 일어난 이러한 인식론적인 변화는 인간을 둘러싼 삶의 전반을 선과 악, 주인과 노예, 문명과 야만이라는 확연한 이분법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세계로 구조화시켰다.

         근대적인 주체의 발견이라는 인식론적 변화가 객체를 타자화 시키고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근대적 주체의 형성을 통해 왕권신수설에 의거한 봉건적인 절대주의는 무너지게 되었으며, 시민이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근대적 주체의 등장이 무조건적인 비판의 문제로만 취급되고 말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중요한 것은, 전근대적인 절대주체가 봉건주의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고, 뒤이어 등장한 근대적인 이성적인 인식의 주체가 봉건주의를 몰아내고 부르주아 시민 사회를 지탱하는 새로운 사조로 전면화 되었다는 사실은, 부르주아 지배질서를 타파하는 또 다른 새 정치사회는 탈근대적인 주체의 등장을 통해서 열려지게 되리라는 합법칙성을 말해준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는 철학을 한다는 것, 혹은 억압으로부터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는 정치사회를 지향하는 지적 작업은, 결국 주체를 인식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고 이를 통해서 해명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안에서 논의되는 주체에 대한 이론들이 오늘의 자본주의 지배질서로부터 어떠한 변혁적인 의미를 함축하는지를 이 글은 묻고자 한다.


지젝이 말하는 주체


         이 글이 지젝을 특별히 글쓰기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러한 목적과 연관되어 있다. 지젝의 책은 읽는 속도보다 출판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유머가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물량공세로 대중과의 접촉면을 다방면에서 확보해온 잘 알려진 맑스주의 철학자이다. 그의 유명세도 그렇지만, 그러나 이보다 지젝의 주체이론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 인간의 변혁적 요구를 반영하는 이론으로 가장 의미 있는 학자 중에 한 사람이라는 나름의 평가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미 지젝은 본 웹진에서 다뤄진 경험이 있고, 지금도 연재되는 관계로 지젝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보다는, 지젝의 논의와 연류된 주변의 시선들을 참고하여 지젝의 주체이론이 가지는 차별성과 실천적 의미를 구분해 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동원될 수 있는 이론가로서, 푸코, 들뢰즈, 라캉을 염두하고 있다.

          푸코의 경우, 그는 고고학과 계보학이라는 방법론을 통해서 지식을 통해 담론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권력이라는 효과를 생성해내는데, 이 때 작동하는 권력은 주체에 의해 통제되는 권력이 아니라 주체를 형성하고 주체의 자리를 결정짓는 권력임을 분석해 낸다. 정신병원, 감옥, 고아원, 학교와 같이 신체를 통해 가해지는 감시와 통제 시스템이 발전해나가는 과정은 곧 권력의 메커니즘이 폭력과 억압의 방식이 아닌 자발적이고 순종적인 참여를 통해서 창출되고 과정임을 밝혀낸다. 그리고 감시, 규율, 훈육의 통제사회에서 밀려나고 주변화된 타자들이 주체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근거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지식에 대한 고고학적 계보학적인 분석을 통해서 권력의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는 그만의 독창적인 해석은 권력의 주체의 허구성을 까발리고 사회의 통제시스템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그냥 그렇다는 것일 뿐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지에 대해서는 ‘자기에의 배려’라는 모호한 답으로 얼버무린다. 푸코는 결국 인간의 개별적인 의식 안에서의 변화만으로 충분하다고 만족한 것일까? 푸코는 이후에 다뤄지는 주체의 철학이론에도 빠짐없이 거론되기에 짚고 넘어갈 이유가 분명해 보인다. 

         라캉을 통해서 의도하는 것은 정신분석학적인 접근법을 통해 정치적 주체성이 발견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라캉의 주체는 욕망하는 존재로서의 주체를 말한다. 그러나 그 욕망은 결코 채워질 수 없고 만족될 수 없고 언제나 항상 결핍된 채로 기표에 의해 끊임없이 대체되는 것이다. 따라서, 주체는 언제나 결핍된 존재로만 남아 있게 된다. 라캉에게 주체는 타자의 욕망이 거쳐나가는 장소이고 타자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주체 이해만으로 정치적 주체성을 발견할 직접적인 단서를 찾는 것은 매우 난해한 일이다. 물론 지젝이 읽어낸 라캉이라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들뢰즈가 기획한 주체는 라캉과 다른 것이다. 그가 서구의 사유를 지배하고 있던 플라톤주의를 전복을 통해서 밝혀내려 했던 것은, 수직적이고 이분법적인 위계질서를 부여한 이데아로서의 원형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개별자들에게는 동등한 지위에서의 수평적 차이와 그것의 반복만이 있을 뿐 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이처럼 이데아를 제거한 칼로 다시 겨냥한 대상은 욕망을 억압하는 체제의 문제이다. 여기에서 라캉과의 입장차이가 분명해 지는데, 욕망은 오이디푸스적인 권위에 복종하는 과정을 통해 주체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욕망의 본성을 억압하는 것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곧 자본주의의 본성에 숙명적으로 길들여지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따라서 욕망하는 주체는 자본주의의 억압구조를 위협하는 가능성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라캉과 들뢰즈의 욕망을 중심으로한 주체에 대한 이해는 차이로 끝날 것인가?

         마지막에 다뤄질 지젝의 주체는 욕망에 대한 해석이 푸코에 대한 비판과 라캉에 대한 변증법적인 해석을 통해 변혁적이고 실천적인 주체를 구성하는 이론으로 어떻게 가공되어지는지를 보려고 한다. 방향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지젝은 맑스가 설정해 놓은 계급적 혁명의 전선구도에서 물러나지 않으면서도 맑스가 보지 못한 혁명에서 인간의 주체의 문제를 다룸으로서 진보적인 해방역량을 담보하는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이론가라는 호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비중 있게 다뤄보고 싶은 생각이다.

         쓰고보니 장황한 글이 될 것같다. 연재를 약속받아 놓은 것도 아니고 그저 공부하는셈 치고 글좀 써보라는 권유에 시작한 글이기에 혼자 장편 시리즈를 기획하는 것은 월권이다. 때문에, 지젝 이외의 이론들에 대해서는 매우 단촐한 소개와 더불어 실천적 의미에 대한 비판적 시각만을 제시하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주체의 문제를 바라보는 상이한 접근방법들이 제공하는 각각의 이론들이 진보를 위한 정치변혁의 과정에서 ‘어떤 주체’가 요구되는지를 비판적인 입자에서 비교해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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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이 있는 교회[각주:1]

 


김혜령[각주:2]
(이화여대)


 

          “내가 꿈꾸는 교회”라는 타이틀로 글의 요청을 받았을 때, 정형화된 교회의 모습에서 벗어나 우리 각자가 원하는 교회를 꿈꿀 수 있다는 권리는 인정받은 것 같아 매우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꿈꾼다’는 것은 곧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일 겁니다. 현실적인 눈으로 볼 때, 가능하지도 않을 일을 꿈꾸는 일이야 말로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저는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행위만큼 현실세계에 대한 비판과 진보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는 것이 없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내가 꿈꾸는 교회”라는 제목아래 쓰인 모든 글들이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필자들 각자가 진단한 현대 교회, 한국 교회의 문제를 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목사 딸로 태어나 평생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래도 참 무난하고 행복하게 목사 딸이라는 삶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교회와 목회자의 집은 붙어있으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늘 걸어서 30분 이상 되는 거리에 집을 두셨습니다. 공간의 분리로 인해 어머니와 자녀들의 사생활이 보장되다보니, 아무래도 저와 남동생은 여러 부족한 모습에도 교회 내에서 구설수로 오르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마도 이것이 한 교회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자라면서도 성도님들에게 많은 사랑을 감사하게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비교적 편하게 목회자 자녀의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축복에도 불구하고 이십대 중반이 되어 유학가기 전까지 저를 가장 힘겹게 했던 것은 쏟아지는 교회 봉사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피아노에 소질이 없어서 교회반주를 못했는데, 목사딸로서 그러한 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저의 쓰임은 다채로웠습니다. 토요일 오후부터 시작되는 청년모임 준비와 예배, 저녁 친교모임 등... 임원이라도 맡은 시기에는 토요일 전체가 그렇게 교회 내에서 보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20대 초반 제가 연애를 못했던 이유라고 하면 너무 구차한 변명일까요?  


         주일은 더 바빴습니다. 아침 7시 예배 성가대에 서기 위해서 6시면 교회에 도착하여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소프라노였는데 아침부터 돼지 멱은 수 십 마리 딴 것 같습니다. 7시 예배가 끝나면 8시 반쯤 고등부실로 올라가 교사기도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9시 예배를 시작하지요. 10시가 되면 분반별로 흩어져 성경공부를 가르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장로교 공과공부 책이 매우 훌륭했는데, 그 책도 제대로 예습하고 가르치지 못한 것 같아 아이들에게 매우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점심 먹기 전까지 교사회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11시 본당예배의 끝과 맞추어 식당에서 어울려 밥을 먹지요. 눅눅한 교회 지하 식당에서 먹는 밥, 그래도 아침부터 달려온 하루에 잠시 짬을 내니 그 시간에 제일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밥을 먹고 잠시 청년들과 수다를 떨다보면 1시가 됩니다. 오후 예배 찬양인도를 위해 찬양팀 연습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그래도 믿음 좋은 후배들 덕에 찬양단 연습이 무사히 끝나게 되고, 어른들이 본당에 다시 모이실 때쯤 복음성가로 20-30분 찬양을 인도하지요. 부끄럽게도 오후예배는 꾸벅꾸벅 조는 시간입니다. 아무리 말씀을 잘하시는 부목사님, 외부 초청 목사님이 오셔도 웬만하면 이 졸음을 막아 내시지 못합니다. 깔끔한 성격으로 사모역할을 충실히 해내시는 우리 어머니 눈에 띄지 않게 잘 조려고 해도 당해낼 수 가 없어 여러 번 혼이 나났지만, 졸음에 설교말씀이 당하지 못하는 죄인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3시 반쯤 오후예배가 끝나면 해방입니다. 아침부터 달려온 주일봉사가 그렇게 끝이 나니까요. 그래도 일 년에 십 여 차례 주일이 쉽게 그렇게 끝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수련회 준비, 임원회 회식, 노인대학 봉사, 친목회 등등 저녁까지 교회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은혜로운 일들은 늘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스케줄은 수요예배와 철야예배, 새벽기도회를 열심히 독려하는 다른 교회 성도들에 비해 무척 가벼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얼마나 신앙을 단련시키는 훈련이었나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말 내내 멈추지 않고 성도의 봉사와 헌신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교회의 선교방식은 유학이후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말할 때 기독교는 다 죽었다고 말하는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을 만큼 프랑스의 교회는, 개신교뿐만 아니라 가톨릭교회까지 그 화려한 석조 건축물이 너무나도 아깝게 예배당을 텅텅 비워둔 채로 주일예배를 맞이합니다. 성도들이 무엇을 열심히 할 만큼 사람들이 모이지도 않고, 또 솔직히 많이 모이겠다는 의지도 없어 보입니다. 주일 오전 예배당에 입구에 들어서며 간단히 안내하시는 원로들과 목례를 나누고 교회당에 앉아 예배에 참여하게 되면, 목사님의 조용한 설교가 예배당을 채워나갑니다. 저는 칼뱅이 목회했다던 전통 있는 교회를 다녔는데 거기서도 주일 예배인원이 30-40명 내외였던 것 같습니다. 아동부 예배는 따로 드리지 않고 어른 예배 중에 아이들을 위한 설교를 잠시 짬을 내어 하기 때문에, 교사가 따로 헌신해야 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게 조용하게 예배가 끝나면 그래도 한 가지 중요한 일이 있기는 합니다. 예배당 입구를 빠져나갈 때 그 앞에 서 계시는 목사님과 악수를 하고 간단하게 안부를 묻는 일이 이루어지지요. 그 때 심방이나 중요한 소식을 목사님께 전달합니다. 그렇게 조용히 오전 예배가 끝나면, 모두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가족끼리 오붓한 점심을 먹습니다. 그것이 제가 경험한 프랑스 주일의 풍경이지요. 물론 한 달에 한번 교회 식당에서 성도들이 준비한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친교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아동부, 청소년부도 방학 때면 2주씩 스키 캠프를 겸한 신앙 수련회를 다녀오기도 하지요. 그러나 전체적으로 주일은 그렇게 차분하게 보내집니다.  


          토요일부터 주일 저녁까지 빡빡한 봉사와 헌신으로 채워져 있는 한국교회 성도들의 눈으로 볼 때 프랑스 교회의 성도들은 한량처럼 보입니다. 껄렁 껄렁 교회 예배에만 참석하고 돌아가는 이들이니깐요. 도대체 이들은 왜 교회에 다닐까? 무슨 재미로 다닐까? 열심도 없는데 왜 교회에 나갈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주일 풍경이 자칫 생명력이 없고 차가운 신앙에 제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몇 년의 교회 생활을 하며 제가 느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주일이, 그들의 예배가 창조 후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선포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이 만드시는 육일 간의 역동적인 창조사역을 끝내시고, 하나님은 일곱째 날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날을 따로 구분하여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지요.  


          저는 주일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주일 간 어쩔 수 없이 세상 속에서 힘들게 일하며, 살아남기 위해 품어야 했던 욕망과 탐욕, 시기심, 경쟁심, 분노, 좌절 등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모두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질서, 맘몬의 권력이 우리의 삶을 쥐고 흔들 때, 주일은 질서의 거짓됨과 권력의 포악함을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대면하게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창조주가 누구인지 다시금 고백하게 하며 자신을 성찰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저는 그것이 주일의 쉼의 회복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새벽부터 소란하게, 정신없이 교회 온 곳을 누비며 뛰어다니는 봉사와 헌신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 헌신의 결과물이야 물론 아름답겠지만, 저는 영혼이, 생명이 주일마다 오히려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주일 교회헌신의 의무가 축복으로 주어진 주일날 쉼의 권리를 압도하게 될 때, 저의 신앙은 습관이 되었고 주일 설교시간은 낮잠에 포획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원하는 교회는 이렇습니다. 주일 쉼의 권리를 보장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교회 공동체입니다. 노동 시장이 점점 더 포악스러워지면서, 좋은 직장을 갖지 못한 성도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직장을 잡지 못한 청년들은 학원이나 고시원을 전전하며 일주일을 피곤에 절어있고, 직장을 다니는 이들도 정상 근무 이외의 야근에 시달립니다. 비정규직 일자리의 증가는 많은 성도들의 주일에 예배드릴 권리마저 박탈하였습니다. 세상이 돈 버는 일에 미쳐 돌아가면서 우리 모두의 주중의 생활이 맘몬의 세력에 붙들려 있습니다. 그런데 주일은 마치 그러한 우리 자신을 극도의 육체적 헌신으로 극기(克己)하기라도 하라는 것처럼,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성도들에게 일거리를 몰아칩니다.  


          이러한 저의 확신은 최근 친구 이야기를 듣고 더 커졌습니다. 친구는 잘나가는 외국계 회사에 부장이어서 새벽6시에 출근하여 이미 7시에는 업무를 시작합니다. 일주일 내내 과한 노동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친구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다니는 교회 재정 봉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제법 큰 교회여서 재정 일은 오후 늦게까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곧 재정의 쓰임에서 의심의 꺼리를 발견한 친구는 그러한 의심이 자신을 시험에 빠뜨리고 신앙을 잃게 할까봐 그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봉사를 맡게 되었답니다. 오전에는 유치부 교사를 하고 오후에는 교회에서 새롭게 오픈한 커피숍에서 바리스타를 맡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무척 화가 많이 났습니다. 일주일 내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진이 다 빠진 성도를 교회봉사라는 성스러운 명목아래 교회까페의 바리스타로 일하게 하는 “한국교회의 과도한 헌신 구조”를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교회의 탐욕과 배려 없음에 쉽게 화를 삭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 친구는 그 일을 믿음으로 즐겁게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눈에는 그렇게 일하는 친구가 한없이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성도의 봉사와 헌신은 매우 중요합니다. 공동체의 약한 지체를 돌보고, 새 세대를 교육시키며, 복음을 전하는 일이 성도들의 참여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안식일의 쉼의 권리가 박탈된 봉사와 헌신은 – 감히 과장되게 말하건대 – 성도들에 대한 노동력 착취일 수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저의 아버지께 반항하던 말을 하자면, 목회자야 월요일에 쉬지만 성도들은 월요일이면 다시 생계 현장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쉼을 박탈당한 신앙. 그것은 곧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그에 대한 감사함을 성찰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신앙인으로서의 매우 소중한 시간을 빼앗겨 버린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쉼 없이 봉사로 채워지는 주일 하루는 목회자의 설교를 흘려듣게 하고, 매주 반복되는 “행사”로 축소해 버립니다. 설교를 들으며 생각하는 능력은 사라지고, 헌신하는 몸만 남게 됩니다. 어찌 보면 쉼이 없이 달리기만하는 한국교회의 주일 풍경이, 신학자들이 그렇게도 비판해 왔던 이성적 성찰이 부족한 한국교회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쉼이 있는 교회 공동체는 어떻게 만들어 질 수 있을까요? 쓸데없이 일할 거리를 줄여야 합니다. 바리스타까지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한 사람이 너무 많은 직분을 맡아서도 곤란합니다. 말씀을 듣는 귀를 열 수 없을 지경까지 고단해 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모든 일이 가능하려면, 결국 교회 공동체 사이즈 자체가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장도 커지면 커질수록 분업화가 되고, 그 안에 노동은 단순해지고 양은 증가합니다. 노동자들끼리의 관계도 단절되기 십상입니다. 교회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커지면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봉사 받아야 할 일도 늘게 됩니다. 성도의 수, 교회의 공간 크기, 재정의 크기 모두 줄어야 합니다. 교회는 생산성의 논리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래야 초대교회가 가르치는 디아코니아와 코이노니아에 해당하지 않는 일들이 한국교회에서 사라질 수 있습니다.  

          물론 쉼이 넘치는 교회에도 단점은 있습니다. 성도들의 열정이 쉽게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지요. 몸을 부딪치며 자신의 일거리를 찾아야 교회 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는 성도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행위를 천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행위보다는 믿음을 강조하는 데에서 나옵니다. 그 믿음은 몸을 움직이는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고백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쉼을 주는 교회, 쉼이 있는 예배는 우리에게 신앙 고백 시간을 복원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리더라도, 그 방식이 진정으로 성도를 신앙 안에 성장시키고 교육시키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봉사의 열정은 그 이후에 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예배가 끝나고 목회자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악수를 하며 안부를 물을 때 뒤에 줄을 선 성도들이 기다리다 지쳐서 짜증나지 않을 만큼의 성도가 모이는 교회에는 서로의 삶에 대한 관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과 이름을 모를 수도 없고, 각자의 어려움들을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교회에는 재정이 크지 않기 때문에 크게 부패할 돈이 없고, 그러다 보니 엉뚱한 사역도 벌이지 않습니다. 모여서 예배하고, 성경공부하고, 간단히 식사하며 교제하고 각자의 삶의 자리로 흩어지는 일. 그 일이 전부이게 됩니다. 주일의 쉼의 권리를 회복하는 교회, 저는 의외로 이 일부터 한국교회의 많은 문제들이 함께 풀려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자면 저는 단독목회를 시작한 남편을 도와 감히 “쉼과 성찰이 있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2년째 고군분투 중입니다. 예상대로 성도가 많이 모이지 않는 초미니 교회입니다. 여기서 제가 맡은 봉사는 점심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지난 2년간 ‘사람이 먹을 만한’ 음식을 꾸준히 마련해 가는 제 자신이 기특해 집니다. 그래도 힘이 들지 않는 것은 초미니 교회이니 한 끼를 준비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그리 힘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일날 넉넉히 준비한 반찬이 저희 집 식사의 일주일의 반을 먹여 살리기 때문에 맞벌이를 하고 있는 저의 입장에서는 1석 2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늘어 그 일이 힘들게 될 때쯤에는 무한 헌신과 동격으로 취급되는 ‘사모’라는 이름에 순응하지 않고 차선의 방법을 성도들과 함께 찾자고 건의할 생각입니다. 저는 주일에 말씀을 들으며 참으로 쉼다운 쉼을 얻고 싶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이 노래한 쉴 만한 물가가 제가 다니는 교회가 되기 원하고, 거기서 저는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만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가능해야만 하는 교회의 참된 모습이라고 믿습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한국여신학자협의회에서 발간하는 <한국여성신학> 82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본문으로]
  2. 이화여대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신학박사(윤리)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서울 향연감리교회에서 점심봉사를 하며 가끔 설교를 맡기도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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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앞에 선 사랑, 미하엘 하네케의 아무르(Amour, 2012)




이희승*



  영화 보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다음부터 종종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물어보는 사람들의 시선 너머로 제 영화 취향을 통해 저라는 사람, 즉 제 소양과 인성, 그리고 세계관을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을 봅니다. 새로 만난 연인들 사이에 ‘무슨 영화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이 빠지지 않는 것 또한 서로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상대방의 문화적 취향을 통해 알아보려는 의도가 다분하지요. 하물며 영화를 보는 취향으로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측량하는데, 영화를 만드는 취향이야말로 영화 만드는 이의 혼을 송두리째 보여주는 거울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애정과 존경, 그리고 경외심을 가지고 신작을 가급적 챙겨 보는 감독들 중 하나가 오스트리아 태생의 미하엘 하네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감독”이라는 별칭이 있는 하네케 감독은, 처음 본 지가 거의 이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제목을 떠올리면 등줄기가 오싹해 오는 ‘퍼니게임’(Funny Game, 1997)으로 기억되는, 잔혹할만치 냉철하게 사회와 인간의 본성을 카메라 앞에서 낱낱이 노출시켜 온 영화작가입니다. 그래서인지 2012년 유수의 국제영화제를 떠들썩하게 만든 하네케 감독의 신작 제목이 ‘아무르’ (Amour, 사랑)라는 소식을 접하고는 살짝 제 귀를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칠순을 넘겨도 사람이 쉽게 변하는 법은 없건만, 갑자기 왠 ‘사랑’ 영화를 만드셨을까?


  물론, 사랑만큼 예술가의 마음을 사로잡는 난해한 주제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일을 업으로 하는 정신분석가들 또한 이 ‘사랑’을 놓고 각자의 이론이 분분합니다. 프로이트는 ‘애도와 멜랑콜리아’에서 자아의 죽음을 경험하는 가장 흔한 예로써 사랑에 빠진 상태를 설명합니다. 사랑 앞에서는 서슬이 퍼런 자존심과 자의식도 무장해제를 당하고 만다는 낭만적인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마취를 당한 듯이 자아가 무방비 상태에 노출되는 심각한 위험을 두고 한 말이기도 하겠지요.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사랑이란 자기가 갖고 있지도 않은 무언가를 그것을 원하지도 않는 상대에게 주는 것’이라고 기술합니다. 다시 말해,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자기 자신의 존재의 핵인 근원적인 결핍을 발견하고 그 공백을 서투르게 공유하는 관계가 사랑인 셈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사랑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완벽한 불완전함’을 상징하는 메타포라는 라캉의 정의를 읽을 때마다, 내 것도 아닌 것을 손에 쥐고는 ‘자, 이게 바로 네가 원하는 거야’라며 원하지도 않는 선물을 상대에게 들이미는 천진난만한 연인들이 가면으로 얼굴을 감추는 것도 모자라서 두 눈을 가리는 안대까지 쓰고서 사랑을 찾겠다고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 세익스피어 풍의 코메디가 떠오릅니다. 연인 사이의 사랑 뿐만 아니라, 사랑이라는 메타포로 맺어진 모든 관계에서 우리는 라캉이 암시한 막막한 무지와 몰이해, 안타까운 오해와 그로 인한 불행한 폭력, 이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절박함과 그 절박함이 빚어낸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환상 혹은 허상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조르주와 안느는 누구나 그렇듯, 다소 달뜨고 어설픈 연인으로 만나, 이제는 서로의 불완전함을 평화롭게 협주하는 지경에 이른 노부부입니다. 파리 한복판에 있는 고풍스런 아파트에서 우아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이 음악가 부부에게 죽음은 무자비하게 현관문 자물쇠를 비틀고 침입한 도둑처럼, 어느날 불쑥 모습을 드러냅니다. 매무새가 단정하고 고상한 취향과 애교있는 위트를 갖춘 아내 안느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뇌경색으로 노부부가 공유하던 고즈넉한 세계는 빠르게 관 속처럼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으로 조르주가 넋이 나간 아내를 발견하고 ‘왜 그래?’라고 물으며 황급히 안느의 촛점 잃은 시선속에서 평생을 함께한 명민한 아내를 되찾으려 애쓰는 장면에서 하네케 감독은 마치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어둠의 세밀한 깊이를 표현합니다. 빛의 화가라는 렘브란트의 그림들이 그 애칭이 무색하게 하나같이 어둠을 담은 것처럼, ‘사랑’이라는 촌스러우리만치 정직한 제목을 단 이 영화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사랑에 관한 센티멘탈리즘 따위는 깨끗하게 걷어내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애초부터 놓여 있던 플라톤의 동굴처럼 어두운 ‘공백’을 카메라 앞에 꺼내 놓습니다. 뺨이 붉고 머리채가 빛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찬란한 사랑의 대단원에서 안타까운 젊은 죽음이 비극의 화룡정점을 찍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사랑과 죽음의 교향곡이라면, 칠순을 넘긴 완벽주의자 하네케 감독이 제시하는 사랑의 해부도인 이 영화는 무표정한 안느의 텅빈 동공을 통해 사랑은 애초부터 누구나 생의 가운데 숙명처럼 품고 살아가는 불가지 혹은 죽음의 부분집합에 지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굼뜨고 노쇠한 몸을 이끌고 조르주는 산 채로 죽음을 맞이하는 아내를 묵묵히 돌보기 시작합니다. 손 끝에서 섬세한 음악을 빚어 내던 피아니스트 안느가 가장 기본적인 신체 활동도 하지 못하고, ‘엄마’와 ‘아파’이외에는 자신을 표현할 언어조차 모두 잃어 버리게 되자, 조르주는 사랑하는 아내 안느의 이미지가 죽음으로 잔인하게 치환되는 과정을 손놓고 지켜 보는 고통을 마주합니다. 이제 말을 잃은 안느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이 삶인지 죽음인지, 조르주는 가늠할 수가 없게 됩니다. 아내의 남은 생을 사려깊게 마감해 주고 싶지만, 이제 안느의 죽음이 더이상 선택이 아닌 것처럼 자신의 죽음 역시 정해진 운명임을 깨닫기 시작하지요. 그 어떤 절망보다도 조르주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 불가지한 죽음에 관한 해석이 온전히 자신의 책임으로 남겨 졌다는 사실입니다. 영화는 죽음에 갇힌 안느의 절망과 두 죽음을 혼자 처리해야 하는 조르주의 막막함을 공간의 제한과 관계의 단절로 표현합니다. 즉, 부부가 음악회에 참석하는 첫 장면을 제외하고는 빛과 소리 그리고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부부의 적막한 아파트에서 하네케 감독은 단 한발짝도 내딛지 않습니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이 둘다 유사 죽음에서 깨어나지만, 입구가 영원히 봉인된 무덤에 갇혀 늙어 죽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 주고야 말겠다는 괴상한 결의를 품은 듯이 말이죠. 역시 사람은 잘 변하지 않나 봅니다. 하네케 감독의 ‘사랑’의 비둘기는 ‘퍼니게임’의 달걀과 골프채처럼 트라우마를 남기고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다가갑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투명하게 존재하던 공백이 죽음이라는 실체가 되어 다가왔음을 깨닫는 그 순간, 조르주는 죽어가는 안느가 아니라 안느의 죽음을 끌어 안는 쪽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 안에는 자신의 죽음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 들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떠난 후, 중년의 딸 에바가 텅빈 아파트를 돌아 보다가 아버지 조르주의 의자, 그 고뇌의 자리에 털썩 주저 앉습니다. 삶과 죽음의 연쇄고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요. 영화를 보고 온 밤, 음악회에서 돌아와 얼핏 죽음을 예감한 안느가 그랬듯이, 쉬 잠이 들지 못하고 침대에 앉아 잠든 남편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습니다. 죽음을 전제로 유한한 생을 함께 하기로 한 나의 동지가 안쓰러워 이불을 살며시 덮어 주었더니 5초도 되지 않아 무심히 젖혀 버리더군요. 십오년을 함께 살고도 이순간 그가 이불을 덮고 싶은지, 젖히고 싶은지 알 수가 없는 게 사랑의 명확한 한계라고 지적하는 하네케의 냉정한 ‘아무르’는 만인에게 공평한 죽음 앞에서 함께 허둥거릴 누군가를 찾는 일이, 그리고 그 누군가가 될지도 모르는 타인을 측은히 여기는 것이 한없이 중하다는 사실 또한 역설하고 있는 듯 합니다. 



* 필자소개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강사 및 정신분석가. 동 대학의 미디어 영화학과에서 각색영화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고찰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아시안학과에서 한국 영화와 텔레비젼 드라마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호주 정신분석학회의 정신분석가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 라캉 포럼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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