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묵시록 7 : 헤겔의 미국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18세기의 유럽과 미국


    미국역사에서 내가 아는 제일 재미 있는 사건 하나는 역사책에서 ‘제퍼슨과 무스’라는 제목으로 등장하는 18세기에 있었던 일이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썼고 3대 대통령을 지낸 뛰어난 지식인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당시 미국의 대사로 불란서에 거주하고 있었다. 제퍼슨은 큰 무스 한 마리를 사냥해 뿔까지 있는 상태에서 박제해 불란서로 보내라는 주문을 미국에 했다. 18세기의 운송수단으로 한겨울에 거대한 무스를 박제해 불란서로 보내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으나, 제퍼슨은 지속적인 요구를 했고 마침내 뜻을 이뤘다. 박제된 무스는 자연학과 지질학으로 18세기 유럽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부폰(Comte de Buffon)에게 보내졌다. 부폰은 지구의 역사를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연구했던 학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 결과 그 역사가 4,000년이 아니라 75,000년이란 새로운 주장까지 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찰스 다윈이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진화의 이론을 펼친 학자였다. 제퍼슨이 평소 알고 지내던 부폰에게 미국의 무스를 보낸 건 그의 우정을 표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우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부폰이 자신의 저술 <자연사>에 신대륙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을 기술했고, 그 내용은 부폰의 명성에 걸맞게 미국에 대한 유력한 이론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부폰은 미주 신대륙의 토양이 유럽에 비해 열등하다고 보았고, 그 증거를 동식물의 퇴행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즉 같은 동물이라도 미국에서 낳고 자란 동물은 연약하고,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간 동물도 그 땅에선 점차적으로 기운을 잃게 된다는 이론이었다. 그 후 미국의 퇴행성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이론으로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같은 입장에서 미국을 연구한 결과물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부폰의 영향을 받은 드포우(Cornelius De Pauw)란 학자는 동식물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만일 유럽인들이 미국에 가서 살게 되면 몸과 마음이 연약해지고 정신적 활기를 잃는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과 행복추구라는 이념을 기초로 한 역사의 새로운 국가를 만들고자 했었던 제퍼슨에게 당시 유럽의 이런 미국론은 어처구니없고 근거없는 분석에 불과했다. 이를 반박하고 바로잡는 건 미국을 사랑하는 건국의 지식인의 역할이었다. 말이나 글로 부폰과 같은 대학자의 오류를 바로잡는 건 어렵다는 판단을 했을까, 그는 단번에 미국 자연의 왕성함을 보여줄 물증을 찾았다. 그가 떠올린 게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명물인 거대한 사슴과의 동물 무스였다. 박제된 무스를 받았을 때 부폰의 표정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웃을 수밖에 없는 해프닝이었지만 당사자들은 진지한 학문의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불란서에서 귀국한 제퍼슨은 ‘버지니아 주에 대한 기록’(Notes on the State of Virginia)이라는 미국의 자연과 정치제도를 알리는 기념비적인 책을 썼고, 그 내용의 상당한 분량을 부폰의 논리에 대항할 실증적이고 경험적인 자료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는데 할애했다. 그는 오히려 미국의 자연환경이 자신이 경험한 유럽보다 훨씬 났다고 판단했지만, 그 판단은 결국 습관적인 것이란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제퍼슨은 그 책의 불어판까지 낼 정도로 미국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고, 미국 특히 버지니아의 뛰어난 자연과 건국의 정치적 실험의 정당성을 유럽에 알리고자 했다.   



    부폰은 왜 과학의 이름으로 미국에 대한 황당한 주장을 했을까? 그의 저술엔 상당한 분량의 지구에 대한 지질학적 고찰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의 생각을 요약하면 미국의 환경이 퇴행적인 이유는 기온이 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미국의 땅은 늪지대가 많았고, 그런 지형에서는 생명의 진화가 더디거나 퇴보한다고 생각했다. 그 땅에서 태어난 원주민들은 게으르고 지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생식기까지 작았다는 주장은 당대 최고의 자연학자의 주장이라 믿기 힘들지만 그 논리만은 일관성이 있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도 미국에 오래 살다보면 환경의 영향을 받아 퇴행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두포우의 주장도 추종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미국에서는 부폰이나 드포우 같은 학자들이 만들어낸 18세기 미국론을 주로 반미주의(Anti-Americanism)의 시작이라고 본다. 신대륙은 열등하고 미국은 결국 망할 나라라는 생각은 유럽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식민주의적인 세계관을 반영했지만, 부폰 자신은 과학만을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훗날 자신의 미국론이 틀렸다는 고백까지 했었다.  


    (반미주의의 역사와 사상적 배경은 여기서 다룰 것은 아니지만, 미국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 개념에 대한 문제만을 제기하자면, 시대나 사안에 따르는 ‘반미’는 언제나 있을 수 있지만 ‘반미주의’라 지칭할 만한 이념의 역사가 실제 미국 밖에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반미주의란 개념은 미국 내에서 만들어진, 미국의 선민의식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특별한 선택을 받았다는 입장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대립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선민의식을 고수하려면 이를 부정하는 세력이 있어야 한다. 미국을 적대시하는 세력들이 왕권주의, 공산주의, 테러리즘 등의 이념의 탈을 쓰고 도사리고 있다는 인식은 미국역사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것이지만, 이를 반미주의라는 용어로 묶는 행태는 20세기의 일이었다.) 


    대통령 후보시절 오바마는 시골의 가난한 백인들이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 소외되고 왜곡된 세상인식을 갖게 되었고, 국가의 정책으로 생활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고 총과 근본주의 신앙에 빠진다는 말을 해 엘리트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얼마 후 미국 남부에서 활동하는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라는 록밴드는 오바마를 은연중 비판하는 “God and Guns”라는 곡을 냈다. 가사가 재밌다. God and guns/Keep us strong/That’s what this country/Was founded on/Well we might as well give up and run/If we let them take our God and guns. 


    18세기 유럽의 미국론을 반대한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제퍼슨과 같은 미국의 학자들과 남미의 가톨릭 성직자들이었다. 제퍼슨이나 그와 함께 건국에 앞장섰던 매디슨 또는 먼로 같은 인물들이 건국의 이념과 백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고자 했다면, 남미에는 17세기부터 원주민들의 학살을 막으려는 노력을 해온 예수회 신부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클라비에로(Francisco Javier Clavijero) 신부가 있었다. 그는 멕시코 원주민들의 인간적 존엄성과 그들이 만든 문명의 명예를 지키고자 했다. 모두 계몽주의 사상에 익숙했었고, 그들의 논쟁은 이성적인 판단을 추구했고 또 상대에게 요구했다. 제퍼슨은 부폰의 논리를 정치적인 것으로 공격하지 않았고, 다만 자신의 경험과 관찰을 언급하며 부폰의 주장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클라비에로 역시 드포우와 같은 유럽의 학자들의 무지를 이성의 차원에서 나무랐다. 18세기 유럽의 학문을 유럽중심주의나 식민주의 또는 제국주의의 산물로 읽는 건 정당하고 옳을 수도 있지만, 의심과 해석과 이데올로기에 익숙한 20세기 학문의 산물이다. 


    유럽인들은 왜 신대륙에 대해 학문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그 관심은 영토 확장과 식민지 지배의 욕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극 관심은 유럽의 정체성과 역사의식과 실존적인 차원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그 기원은 1492년 신대륙 발견에서 출발한다. 당시 유럽은 성경에 기초한 지리와 역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대륙이 발견됐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땅엔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생명체들까지 살고 있었다. 그 땅이 어떻게 생겨났고, 사람들이 어떻게 그곳에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실존적 고민으로 발전했다. 신학에 의존한 유럽의 세계관 속에 새로운 세상이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럽의 신대륙 충격은 수많은 신학과 신화 그리고 철학과 과학의 상상과 해석을 낳았고, 신대륙은 근대유럽의 정체성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계몽과 이성의 시대라 불렸던 18세기까지도 그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데카르트와 코페르니쿠스가 대표하는 근대유럽의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은 그 충격이 만든 결과라 말할 수 있다. 


    그 충격의 신학적인 차원도 간략한 설명이 가능하다. 서구기독교에서 진리의 시간은 언제나 과거형이었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것을 성경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온전히 신의 영역, 계시의 영역, 즉 묵시록의 영역이었다. 신대륙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한 사람들은 당연히 신학자들이었다. 많은 유럽인들은 교회에서 설명해주지 못했던 신대륙에 대한 이해를 중세의 예언서들에서 찾았고, 마침내 묵시적 상상력을 동원해 ‘새로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묵시록은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 새로운 시대는 과거의 법칙들이 와해되는 시간이었고, 새로운 방법, 새로운 실험, 새로운 가치들이 등장하는 시간이었다. 교권이 억제할 수 없는 상상력과 새로운 지식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17세기 자연과학이 그 산물이었고, 유토피아라는 개념과 그에 대한 열망이 종말론적 묵시록과 함께 등장했다. 


    16세기 유럽의 지식인들과 성직자들 사이에서는 신대륙의 원주민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분류해야 할지에 대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원주민들을 직접 목격한 스페인의 선교사들 중심으로 중세의 전통적인 존재의 구분법 - 신과 천사와 인간 그리고 동물과 식물 – 가운데 원주민이 속한 곳이 어딘지 묻는 것이었다. 원주민들도 유럽인과 같은 인간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이후에도 그들이 미개하고 야만적이란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그 이유를 마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계몽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더 설득력이 있는 답이 필요했다. 18세기에 등장한 유력한 설은 그 차이가 기후와 토양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역이 다른 사람들이 기질과 성향에서 차이가 있고, 그 이유가 토양과 기후의 조건 속에서 결정된 것이라 믿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환경이 사람의 성향을 결정짓는다는 생각은 사실 오랜 역사가 있는 것이지만, 서양에서는 기독교 신학의 영향력이 쇠퇴하면서 등장한 세상의 자연적이고 과학적인 이해의 일부였다. 부폰을 중심으로 ‘자연사’(Natural History)란 당시로선 모순적인 개념이 등장한 것도 그때였다. 지구의 역사가 교회에서 가르쳐준 것과 다르다는 주장은 지질학이라는 과학의 이름으로 나왔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에게나마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부폰에게 신대륙의 사람들이 뒤떨어진 이유를 그 땅이 습한 기운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 결과 동식물의 성장발육도 더디고 동물들의 지능도 낮고 오히려 퇴행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제퍼슨이 미국은 습하지 않을뿐더러 습한 것과 열등하고 퇴행적인 것은 도데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물을 수밖에 없었다. 부폰은 왜 신대륙의 습도가 높다고 생각했을까? 신대륙에 큰 홍수가 있었기 때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이 아는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게 만든 홍수는 단 하나, ‘노아의 홍수’였다. 그러나 부폰이 언급한 홍수는 노아의 홍수가 아니었다. 왜냐면 노아의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고, 그 이후 인류의 역사는 이미 성경에서 기록되고 서양에서 물려받은 역사밖에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대륙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선 또 다른 홍수가 있어야 했고, 부폰은 제 2의 대홍수가 있었다고 믿었다. 오래전 바다와 육지의 경계는 지금과 달랐고, 육지의 지층에 바다의 흔적이 있다는 사실은 부폰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이론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건 ‘대홍수’라는 개념이다. 홍수로 세상이 새롭게 되었다는 건 서구역사에서 매우 익숙한 개념이었기 때문에, 그 신화적 개념으로 신대륙을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18세기 과학과 신학이 모호하게 연결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결국 그 홍수 때문에 신대륙의 기온이 습하고 되었고, 그 때문에 미주의 땅과 정신이 퇴행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었다.

 

    신대륙에 사람들이 살게 된 연유에 대한 많은 가설이 지금까지도 존재하지만, 근대 초기에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는 설명이 하나 등장했다. 16세기 초 스페인 출신 성직자로 남미에서 선교사로 있으면서 원주민들의 인간성을 증언하고 스페인 군인들의 참혹한 학살을 고발했던 라스카사스(Bartolome de Las Casas, 1474-1566)가 제시한 설이었다. 원주민들이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12지파 중 역사에서 사라졌다는 10개 지파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을 인간적으로 다뤄 기독교로 개종 시킨다면 이는 예수가 재림하는 마지막 날을 예비하는 길이고, 서구세계가 구원받는 길이라 믿었다. 라스카사스는 원주민들의 언어와 관습 속에 구약시대 유대인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믿었고 이를 증명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후 남미의 스페인 선교사들은 라사카사스를 따라 이 이론을 유럽에 소개했고, 미국의 백인들 중에서도 이를 믿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의 이론을 지금 보면 유럽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황당한 식민주의 이론이지만, 이를 통해 원주민들을 이 학살이 아니라 개종의 대상임을 켜야 할 분명한 이유를 제공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신대륙과 원주민들의 발견은 그에게 예언의 완성, 곧 새로운 하늘과 땅에 대한 계시가 이루어지는 종말론적 사건이었다. 그 계시와 구원의 드라마는 원주민들이 있어야 완성될 수 있었다. 라스카사스의 이론이 맡았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신대륙에 살고 있던 새로운 인간들의 존재를 유럽의 세계관 속에서 설명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이후에도 이스라엘 민족의 사라진 지파라는 논리는 유럽의 지식체계 밖에 있던 (아프리카나 아시아) 사람들의 존재를 유럽의 입장에서 설명해주는 유용한 이론으로 쓰였다. 하다못해 일본인들의 정체가 이스라엘의 사라진 지파들이라는 설까지 비교적 최근 책으로 나올 정도로 쉽게 사라지지 않는 매력적인 이론이었다 (Joseph Eidelberg, The Japanese and the Ten Lost Tribes of Israel). 청교도들이 미국 땅에 내리기 이미 100년 전에 미국의 종말론적인 사명을 거론했다는 점에서 라스카사스의 논리는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헤겔의 미국


    미국에 대한 헤겔의 언급은 주로 그의 <역사철학강의>에서 나온다. 18세기 부푼과 드포우는 신대륙과 미국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갖고 있었지만, 그들의 이해는 근거 있는 것으로 19세기 유럽에 널리 퍼져 있었고 헤겔까지도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미국이 헤겔의 철학에서 중요하진 않더라도 그의 역사철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역사철학의 묵시적인 차원의 이해에도 도움이 된다. 헤겔의 <역사철학강의> 그의 글 중에서 비교적 이해하기가 쉽고, 그에게 가장 중요한 ‘역사’란 개념이 실제로 사람들이 사는 땅과 연결되어 설명되기 때문에 그의 편견과 숨은 의도를 파악하기에 용의한 면이 있어서 오랜 시간 헤겔철학의 입문서로 여겨졌던 책이다. 이 글에선 그 책 앞부분‘역사의 지리적인 바탕’이라는 장에서 나오는 미국에 대한 언급만 살펴보겠다. 하지만 대상이 헤겔이기에 그를 미국이라는 상황과 연결짓는 배경설명이 빠질 수 없다. 19세기 유럽의 제일 중요한 철학자이지만 그만큼 제국주의, 전체주의, 민족주의, 인종주의 등을 옹호하는 철학을 했다고 욕을 먹는 철학자도 없다. 그러나 헤겔 이후의 서양의 철학은 모두 헤겔과의 대화 속에서 나왔다. 사회적인 관계를 앞세우는 다양한 맑스주의 전통의 철학에서 인간의 개인적인 차원을 다루는 실존주의까지 헤겔을 싫어할 수는 있어도 헤겔의 영향에서 벗어나긴 힘들었다. 미국 실용주의 철학의 전통을 세운 듀이와 퍼어스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는 1989년 이후 동구권의 몰락으로 이념의 역사가 끝났다는 논쟁과 함께 헤겔이 다시 학자들만이 아니라 언론에서까지 회자되기도 했다. 자본주의 세계화의 등장과 함께 부쩍 늘어난 역사의 종말이나 묵시적인 역사의 이해에 대한 연구에서 헤겔의 철학은 빠지지 않고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다. 신학에서 보자면 헤겔이 없는 성서학을 생각할 수 없고, 기독교 신학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였던 성부와 성자의 관계 즉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이 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답을 제공해 준 사람도 내 생각엔 헤겔이었다. 여기서 헤겔을 다루는 이유는 헤겔 자신이 미국에 대한 언급을 했기 때문이고, 그 속에서 역사의 종말이라는 묵시록의 내용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헤겔의 철학에서 미국이 중요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헤겔의 철학이 역사의 철학이고, 그 철학에서 역사는 이미 완성된 종착점에 다다른 상태였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유럽의 의식 속에 등장한 신대륙이 그의 철학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헤겔의 역사철학의 중요한 부분을 먼저 살펴보자.  


    헤겔철학의 가장 큰 공헌은 그의 역사철학에 있었다. 하지만 역사철학이라는 말 자체는 모순적인 면이 있다. 철학은 합리적인 전체의 통합성을 추구하는 것인데, 역사는 비합리적인 우연과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사건들의 연속이 아닌가? 헤겔은 철학이 역사의 시간을 다루려면 그 내용은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믿었고 또 실제로도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 의미는 역사가 합리적인 이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고 이를 증명하는 건 신학이 아니라 철학의 역할이란 말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헤겔만의 강력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유명한 변증법은 역사의 합리성을 논증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역사는 합리적일뿐만 아니라 발전하고 완성과 종말을 향해 나아간다. 역사에 끝이 있다는 가정이 어떻게 (신학이 아니라) 철학의 가정이 될 수 있을까. 역기서 ‘절대’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철학이 다루는 합리적인 이성은 상대적인 우연에 시달리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어야 한다. 현대에서 용납되지 않는 용어이지만, 헤겔에게 ‘절대’(Absolute)라는 게 없으면 신학과 철학은 일상의 혼란 가운데 표류하게 된다. 역사가 합리적이란 말은 절대적인 것을 향해 나아간다는 말과 같다. 역사 속에서의 이성이 바로 그 유명한 헤겔의 정신이다. 역사는 ‘정신’이 스스로의 절대성을 찾아나가는 정신의 역사였다. 헤겔에게 역사의 출발으로 정신이었고, 또 역사의 끝은 정신이 절대적인 자기의식을 회복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헤겔은 자신의 시대가 바로 그 역사의 종말의 시대로 이해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헤겔이 역사의 끝과 자신의 철학이 어떤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해석들이 다양하다. (역사의 종말이라는 표현도 헤겔이 아니라 헤겔의 역사철학 해석으로 유명했던 코제브(Alexander Kojeve)와 니체 같은 이들의 해석이었지만 헤겔의 개념으로 흔히 쓰이고 있다). 


    헤겔에게 역사가 정신으로 시작한다는 말은 역사가 자연을 극복한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말과 같았다. 헤겔이 왜 자연과 역사를 구분하고 세계사를 자연을 극복한 정신의 역사로 이해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역사철학강의> 서론에 나온다. 그의 입장은 18세기 계몽주의 학자들이 “유행”처럼 추구했던 자연 속에서 이성을 찾고 신을 찾는 경향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작업은 보편적인 인간의 역사에서 신을 찾는 것이었다. 역사의 선악과 굴곡진 모습을 합리적인 이성으로 설명하여 악의 문제가 신의 섭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헤겔은 이 사실을 증명하는 길을 역사 속에서 활동하면서 화해와 통합으로 갈등의 역사를 치유하는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대신 자연은 새로운 것이 없는 시간의 반복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역사가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인간의 모든 시간이 헤겔의 역사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정신은 모든 민족의 삶 속에서 동일하게 존재하고 활동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헤겔의 역사는 정신으로 시작하지만, 그 정신의 활동은 국가라는 제도를 통해 드러났다. 또 국가는 뛰어난 인물 (헤겔의 표현에 의하면 ‘세계사적인 인물’)들에 의해 이끌어지기 때문에, 유럽처럼 정신이 올바른 괘도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곳이 있는가 하면, 정신이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상태에 있고 따라서 역사의 발전이 더디고 이성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민족도 있고, 집단으로 모여만 살뿐 역사 이전(Prehistory)의 자연과 같은 단계에 머물러 있는 집단도 있다. 예컨대 원시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역사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이식의 수준이 합리성에 이르지 못하는 야만의 시대가 지나야만 역사가 시작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 역사는 정신을 통해 발전하고, 현재는 과거보다 더 성숙한 정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과거는 현재를 통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헤겔에게 정신의 역사는 유럽과 그 이전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에서 제대로 발전을 했고, 자신이 살았던 19세기 유럽에서 자신의 역사를 통해 완성된다고 이해했다. 그 정신의 원리는 자유였고, 유독 서구의 역사 속에서만 자유의 개념이 발전했다는 헤겔의 입장은 19세기 유럽이라는 그의 시대적 한계를 말해주기도 한다. 이 역사는 이제 끝이 났기 때문에, 모든 역사는 과거형이다. 헤겔의 철학이 닫힌 구조를 갖고 있다거나 전체주의적이라 비판하는 이유는 그의 역사철학에 과거의 역사와 그 역사가 끝나는 현재만 있을 뿐, 내일이나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헤겔은 미국이라는 난제를 만난다. 신대륙이라는 미국을 그의 역사철학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거와 과거를 품은 현재밖에 없고, 철학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영원한 현재에 대한 관심뿐이다. 그래서 헤겔은 미래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을 ‘미래의 땅’이라 불렀다. 미국이 미래의 세상을 주도할 것이란 의미가 아니었다. 헤겔의 역사관에서 미국은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었기 때문에 미래라고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이유가 재밌다. 헤겔에게 신대륙이란 개념은 단지 새롭게 발견된 대륙이란 의미만 있는 게 아니었다. 신대륙 자체가 유럽보다 지질학적인 나이가 어리다 믿었고, 그 때문에 미국의 모든 것을 미성숙한 것으로 이해했다. 미국의 땅과 동식물만이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원주민들도 그렇다고 보았다. 모든 게 작았고 약했다. 동식물들은 맛도 없었고,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이 등장하자마자 그 모습에 기가 눌려 몰락하기 시작했다. 헤겔이 미국을 다룬 건 <역사철학강의>의 앞부분 “역사의 지리적 바탕”이라는 장에서였다. 미국은 지리적인 땅일 뿐 정신의 역사에 이르지 못했다. 당시 의견이 분분했던 미국이 경제나 민주적인 제도는 성숙하지 못한 유럽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미국은 역사 정신의 무대인 국가를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 왕정체제를 선호했던 헤겔에게 미국의 민주주의는 성숙하지 못한 시민들의 망상적 실험에 불과했던 것이다. 


    여기서 헤겔이 제시했던 성숙한 국가가 되기 위한 조건이 매우 특이하다. 농민들이 개척할 땅이 풍부하지 않아 도심으로 그들이 몰려들어야 했고, 계층 간의 구분이 첨예화 되어 긴장상태가 조성되어야 했다. 다시 말해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과 긴장 가운데서 정신이 살아나 (헤겔식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의미였다. 인간이 자연의 삶을 영위할 수 없고, 경작할 땅이 부족하고, 계층 간의 긴장이 고조 됐을 때 정신의 역사가 시작한다면, 헤겔의 철학이 19세기 유럽의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자유주의 체제의 태동과 연관이 있다는 의심은 정당한 것이다. 


    ‘미래의 땅’이란 표현을 생각해보자. 역사는 현재로 끝났기 때문에 더 발전된 기술과 이념과 문명의 미래는 없었다. 역사의 미래는 없고, 더 나아가 헤겔의 미래는 (연속적인) 역사가 없었다. 미래에 역사가 없기 때문에 ‘미래의 땅’이라고만 했을까. 땅은 역사 이전의 상태다. 여기서 헤겔이 말하지 않은 묵시록의 미국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미래를 주로 땅과 흙의 상태로 표현한 현대문화의 장르는 Post-Apocalyptic이다. 영화로도 유명한 코맥 매카시의 <로드>는 대표적인 Post-Apocalyptic장르의 소설이다. 묵시적 대재앙의 사건으로 세상의 역사가 끝난 인류의 미래는 잿빛 하늘과 땅으로 표현된다. 미래를 화려한 문명이 아니라, 죽은 땅이 다시 살아나 자연이 회복되고 다시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간주하는 건, 그 장르 작품들의 흔한 주제설정이다. 헤겔은 미국의 미래를 잘못 이해했지만, 그의 논리 즉 역사가 끝난 이후는 다만 역사 이전의 자연 곧 땅의 시대밖에 생각할 수 없다는 논리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국은 20세기 서구문명의 중심이 되었고, 세계사적인 국가가 됐지만 그 힘은 역사를 끝낼 각오와 힘, 곧 묵시적인 힘이라 할 수 있다. 헤겔은 자신이 그런 미래에 관심이 없다고 했지만, 인류에게 남은 미래가 그런 미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헤겔은 인류의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실수를 했지만, 그의 과오가 메시아주의나 그와 상응하는 다가올 무엇인가를 논하는 철학보다 심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미래를 다가올 내일이 아니라 모든 문명과 문명의 의미가 파괴된 땅과 자연으로의 회귀라면 19세기가 아니라 21세기의 상상력에 더 적합한 진단이었는지도 모른다. 19세기의 철학자로서 헤겔의 문제는 전체성, 통합성, 절대성을 표방하는 타협 없는 철학의 교리적인 확신에 빠져 이를 지켜내려 했던데 있었다. 모든 의미 있는 것들을 절대 교리의 철학으로 통합시켜 신학과 예술을 포괄하는 철학을 꿈꿨던 헤겔의 자만심도 한몫을 했다. 

    헤겔은 분명히 자신의 철학이 역사의 끝에 서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역사의 시간이 앞으로도 더 지속되는 걸 부정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 역사가 끝난 상태는 어떤 것일까. 철학이 미래에는 관심이 없고 현재적이고 영구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다면 절대와 보편을 성취한 헤겔의 철학과 유럽역사의 영광은 계속되는 것일까? 역사는 더 이상 진보하지 않고 이제 남은 건 유럽 밖의 깨달음이 늦고 진화가 더딘 국가들이 유럽을 서서히 따라오는 것뿐이라면, 그건 미래가 아니라 유럽역사의 현재가 진행 중인 상태를 말한다. 전쟁을 예를 들자면, 한쪽의 절대적인 우세로 대세가 이미 기울었고 승전까지 선언된 상태지만 작은 전투는 계속되는 상황이 비슷한 경우일 수도 있다.  


    헤겔은 마지막 전쟁이나 묵시적인 사건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헤겔이 불란서 혁명이 공포의 테러 체제로 변하는 과정을 묵시적으로 이해했을 수도 있고, 자신이 좋아했던 나폴레옹이 예나(Jena)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고 이를 역사를 바꾸는 마지막 전쟁이었다 생각했을 수도 있다). 미래의 예언은 철학이나 역사철학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헤겔을 묵시적으로 읽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역사가 완성되고 끝이 난다는 생각만큼 본질적으로 묵시적인 것은 없다. 헤겔이 철학을 역사의 끝에서 영원한 것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보았다면, 그 철학은 재림이나 천년왕국이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개념들을 쓰지 않더라도 묵시적인 학문이 될 수밖에 없다. 역사가 그 목적을 성취했기 때문에 만약 미래가 있다면 퇴보적인 의미밖에는 가질 수 없다고 그의 생각에서 묵시록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헤겔에게 신대륙은 귀찮은 존재였다. 이제 역사가 완성되는 마지막 시점에 그 발전과 전개를 설명하는 논리의 선명함을 퇴색시키는 성가신 땅이었다. 귀찮은 것은 생각하기 싫은 법, 헤겔은 신대륙을 생각과 사유의 영역 밖의 존재로 내몰았다. 그러나 헤겔에게 생각 밖의 영역이 있을 수 있을까? 정신이 절대적인 자기의식으로 모든 것을 통합하고 녹여내고 이해한 시대가 열렸는데, 생각 밖에 무엇이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정신으로 완성되는 헤겔의 역사는 현재에서 끝나고 이미 완성된 역사는 미래가 필요 없다. 헤겔은 신대륙과 미국을 미래의 땅이라 선언했다. 여기서 미래가 절대적인 사유를 추구하는 철학의 영역 밖에 있고, 역사는 이미 끝난 것이라면 미래는 헤겔이 말했던 Pre-history가 아니라 Post-history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묵시 이후 (Post-Apocalyptic)한 땅이 되고, 19세기 유럽에 관한 헤겔의 진단과 선언은 묵시록에 속하게 된다. 


    헤겔은 인류의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실수를 했지만, 그의 과오가 메시아주의나 그와 상응하는 다가올 무엇인가를 논하는 철학보다 심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미래를 다가올 내일이 아니라 모든 문명과 문명의 의미가 파괴된 땅과 자연으로의 회귀라면 19세기가 아니라 21세기의 상상력에 더 적합한 진단이었는지도 모른다. 19세기의 철학자로서 헤겔의 문제는 전체성, 통합성, 절대성을 표방하는 타협 없는 철학의 교리적인 확신에 빠져 이를 지켜내려 했던데 있었다. 모든 의미 있는 것들을 절대 교리의 철학으로 통합시켜 신학과 예술을 포괄하는 철학을 꿈꿨던 헤겔의 자만심도 한몫을 했다. 



ⓒ 웹진 <제3시대>



    (참고도서) 


    제퍼슨과 무스의 일화를 중심으로 18세기 유럽의 자연사 연구와 미국담론의 연구물로 Lee Alan Dugatkin의 [Mr. Jefferson and the Giant Moose: Natural History in Early Ameirca]란 책이 있다. 책의 표지그림이 흥미로워 글 앞부분에 삽입했다. 제퍼슨과 부폰에 관한 일화도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는 1900년도에 출간된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제퍼슨의 입장을 편집해 알파벳 순서대로 모아놓은 책인데, ‘기후’(Climate)와 연관된 글들을 참고했다. 18세기 이후 신대륙을 두고 벌어졌던 논쟁을 다룬 것으로 잘 알려진 책은 1955년 스페인어로 처음 출간된 Antonello Gerbi의 [The Dispute of the New World: The History of a Polemic, 1750-1900]이다. 라스카사스가 신대륙 원주민들의 고난을 기록한 책은 [A Short Account of the Destruction of the Indies]이다. 스페인의 남미정복 역사를 유럽과 타자의 만남이라는 개념으로 이론화 한 대표적인 저술은 Tzvetan Todorov의 [The Conquest of America]란 책이다. 헤겔의 <역사철학강의> 영어판은 온라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Sibree 번역의 [The Philosophy of History]. 헤겔과 미국의 관계를 내게 처음 소개해 준 글은 20세치 초 스페인의 철학자 Jose Ortega y Gasset이 쓴 “Hegel and America”란 글이었다. 그 후 비슷한 연구는 남미에서 해방철학을 추구해온 Enrique Dussel과 같은 이들이 제삼세계의 입장에서 진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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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17]



지젝과 바울(IV)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사랑이 뭐길래


    지젝을 다루면서 지금까지 우리는 지젝이 말하는 세계 그리고 그 세계가 안고있는 문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문제를 잘 꿰뚫어 본 종교인 유대교와 바울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지젝이 말하는 그 문제를 해결할 묘수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간단히 말한다면 그 묘수란 그야말로 닳고 닳은 단어인 ‘사랑’이다. 지젝이 바울의 입을 빌어서 말하는 그 사랑이라는 것이 뭐길래, 만병통치의 묘약이 되는 것일까? 

   수많은 소설, 영화, 드라마등에서 자주 쓰이는 말인 ‘진정한 사랑’이란 것을 상상해보자. 그리고 지금 아주 통속적인 장면 하나를 그려보자. 한 부유하고 젊고 아름다운 청년이 말을 타고 (또는 고급 차를 타고) 외딴 길을 지나가고 있다. 그때 한 젊은 처녀를 지나치게 된다. 그 순간 부자 청년을 둘러싼 시간이 천천히 흐르면서 그 청년의 눈길은 그 처녀에게 머무르게 된다. 그 순간에 관객은 또는 독자는 쉽게 알아차리게 된다. 아! 청년이 사랑에 빠졌구나. 너무 로맨스 소설같은 느낌이 들지만 이것이 바로 지젝이 바울을 통해 말하는 묘약, 사랑에 가까운 의미일 것이다. 물론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이 있다. 먼저 청년이 사랑에 빠진 조건은 아마도 처녀의 아름다움이었겠지만 이 아름다움을 빼야만 더욱 사랑에 가깝다.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 여타의 사회적 조건을 빼어버린 것. 그것이 사랑이다. 여기서 사회적 조건이란 아주 쉽게 표현하면 상징계를 뜻한다. 바로 여기서 사랑이란 인간의 언어와 사회적 질서로 만들어 놓은 모든 상징의 세계를 꿰뚫고 전혀 다른 경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은 절대 위와 같은 감성적인 로맨스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위의 예는 그야말로 쉽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는 이미 부자 청년의 계급과 젊은 처녀와의 관계에 우선된 가부장적, 여성차별적 구조가 선행되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진정한 사랑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이방인의 지혜, 그리고 기독교


   지젝이 말하는 이방인의 지혜(The very core of pagan Wisdom)[각주:1]는 플라톤이나 여타의 정치제도와 법률을 통해 인간 사회를 만들었던 사상들이나 종교를 뜻하며, 멀게는 인도의 힌두이즘 (카스트 제도를 바탕으로 한 우주론적 계급사회)나 가깝게는 그리이스 철학 (사회적 갈등들을 철학적 담론으로 순화시키는것)을 뜻할 것이다. 지젝은 기독교가 이러한 계급의 질서를 혁파하고 각 개인들이 “보편성 (universality)에 직접적으로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소개하였다고 말한다.[각주:2] 여기서 보편성이란 성령 또는 오늘로 말하면 인권이나 자유와 같은, 누구에게나 허락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개념을 뜻하는데, 바로 이 성령의 보편성을 확증함으로써 기독교는 종래의 사회조직들이 기반하고 있던 상징적 질서를 벗어날 수 있는 (unplugging)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이다.[각주:3]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질서의 바깥에서 누군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어떤 목사는 아마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은 가난한 자와 버림받은 자, 병든 자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도 세리와 창기들의 친구이셨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부자와 건강한 자들에게 더욱 많은 관심과 사랑을 베푸는 사회에 대한 전복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난하기 때문에, 병든 것 때문에, 또는 버림받은 것 때문에 사랑받게 되는 것일까?

    지젝은 만약 사회적 타자라는 것이 사랑받는 조건이 되는 것을 지젝은 ‘휴머니즘’적 생각이라고 말한다.[각주:4] 아마도 누군가는 버림받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아무 ‘조건’ 없이 인간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젝에게 이러한 사랑은 현재의 사회구조를 개혁하는데 큰 의미는 없다. 결국 사회의 밑바닥을 위로 역전시키는 구조는 진정한 사회구조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버림받은 자들이 필요한, 또는 버림받은 자들을 그 자리에 머물게 하는 결과만을 낳기 때문이다.[각주:5] 만약에 버림받은 자들이 선택 받아 힘을 가진 자들이 되면 다음에는 이전의 힘을 잃어버렸던 자들을 사랑할 것인가? 지젝은 이러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unplugging’ (상징계로 부터 벗어남)을 ‘uncoupling’(상징계로 부터의 단절)이란 말로 재정의한다. 그리고 이 ‘언커플링’은 바울이 말하는 ‘새로운 피조물’ (고린도 후서 5장 17절)이란 개념에서 명확해진다. 성령의 신자들은 율법에 대해여 죽고, 더이상 인간의 관점으로 서로를 보지 않는다. 바로 새로운 피조물로써 서로를 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현실 사회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 현실 사회와 단절된다면 사회적 개혁할 수도 없고 또한 현대 정치에서 그러한 단절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바울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지젝이 바울의 탁월성을 발견하는 곳은 바로 여기이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기쁜 사람은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무엇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도록 하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집니다. (고린도전서 7장 29-31절, 새번역)


    새로운 사회정치구조를 만들라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사회속에서 대안적 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은 외형적 법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법에 내장되어 있는 외설적 보안재 (obscene supplement), 즉 위반을 통해서 사회와 법체계를 유지하는 방식을 정지(suspend)시키는 것이다.[각주:6] 정리하면, 바울의 방식은 사회와의 단절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도착적 가능성을 정지시키는 것이라 할 것이다. 만약에 내가 누군가를 대할때 그의 사회적 지휘와 가치를 마치 없는 것처럼 대할 수 있다면, 나 자신의 모든 소유와 가치를 마치 없는 것처럼 대할 수 있다면,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 가족이나 친구등이 마치 나의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것처럼 대할 수 있다면, 사회라는 상징계의 도착적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바로 이것이 바울이 발견한 대안이란다.


잠깐,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위와 같은 바울에 대한 설명이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대안의 부분에서 지젝은 마치 대충 유명하고 대충 진보적인 부흥사처럼 보인다. 또한 이러한 지젝의 생각을 설교중에 한다고 해도 보통의 청중들은 그리 어렵다거나 이상하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지젝을 마치고 지젝이 이해한 바울의 유용성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지젝의 아주 발칙한 일면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려면 아주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더 물어야 한다. “정말 그런 완벽한 ‘아닌 척’하는 행동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젝에게 바울이 대안이 되려면 바울은 아주 완벽하게 신의 전능성을 부정하고 그의 죽음을 확신한 사람이어야 한다. 신의 죽음과 불능성이 선행되지 않으면 지젝에게 바울이 말하는 언커플링은 불가능하다. 이전 장에서 말했듯이 신의 불능성을 깨달은 것은 욥이었지만 그 비밀은 유대교 안에서 숨겨졌다. 이후에 그 비밀은 유대교가 ‘율법’이라는 독특한 체계를 계속적으로 발전시켜서 다른 정치나 사회구조 속으로 편입되는 것을 막았다. 그들은 ‘디아스포라’로써 또는 이방인으로써 다른 국가에 편입되지 않고 생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비밀이 완전히 드러나게 되는데, 바로 그리스도를 통한 ‘신의 죽음’을 통해서이다. 지젝에게 화육 (신의 인간됨, incarnation)은 욥이 발견한 신의 불능이 급진화된 형상이다.[각주:7] 보통의 기독론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humanity)과 신성(divinity)의 분리될 수 없는 융합이며 그리스도는 둘째 아담으로 인간의 죄를 해결해주는 존재이지만, 지젝에게 그리스도의 인성은 바로 욥이 발견한 신의 불능의 부산물 (fallout)이다. 바울이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다고 선언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죽음은 신의 불능이 죽음으로 클라이맥스에 이르게 되었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은 바로 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이다.[각주:8] 신 (big Other)에게서 벗어난 인간이 되어야 비로소 상징계를 벗어나서 리얼(Real)에 기반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각주:9]  

    지젝에게 현대의 교회는 바울의 혁명성이 사라지고 다시금 ‘도착화’된 곳이다.[각주:10]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에 대한 해결이자 자유를 의미했지만, 이제는 기독교는 정확하게 자신이 해체시키고자 한 이방인의 지혜, 도착적 상징계가 되어 죽었던 신과 그리스도를 살려내고 인간을 신과 그리스도에게 값을 수 없는 빚을 진 존재로 만들었다. 다시금 율법 (신에 대한 의무)과 향유를 기반으로 한 종교가 탄생한 것이다. 바로 ‘도착적 핵심’이 지배하는 종교가 탄생한 것이다. 지젝에게 성령은 오로지 신의 죽음 이후에 탄생하는 것이다. 진정한 성령의 공동체가 되지 못하는 기독교는 그가 분투했던 종교적 구조에 다시금 갇혀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오로지 기독교의 전복적 핵심은 유물론적 접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지젝이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Slavoj Žižek, The Fragile Absolute, Or, Why Is the Christian Legacy Worth Fighting For? (London; New York: Verso, 2000), 120. [본문으로]
  2. Ibid. [본문으로]
  3. Ibid., 121. [본문으로]
  4. Ibid., 126. [본문으로]
  5. Ibid., 125 [본문으로]
  6. Ibid., 130. [본문으로]
  7. Adam Kotsko, Zizek and Theology, 1 edition (London ; New York: Bloomsbury T&T Clark, 2008), 97. [본문으로]
  8. Ibid. [본문으로]
  9. Ibid., 98. [본문으로]
  10. Ibi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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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문제에 대한 신학과 과학의 대화



류헌조

(GTU Ph.D. Candidate)


 

   벌써 30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초등학교(그 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렀었지요.)시절 국내의 모 출판사에서 출판한 학습그림과학이라는 책을 읽고 충격과 흥분에 휩싸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책은 당시 앞으로 21세기가 되면 인류의 삶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재미있는 만화를 곁들여 아주 사실감 있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미래에는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화상으로 전화를 할 것이고, 서울과 부산을 단 2시간 만에 주파하는 고속열차가 나타날 것이며,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여 음식을 만들고 집안 청소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꿈만 같던 상상 속의 이야기들이 이제 현실이 되었고, 사람들은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편안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기술은 끝없이 발전하니 앞으로의 미래는 또 어떻게 바뀌어갈 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 인간은 더 편안하며 더 안락한 삶을 추구합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류의 삶이 계속해서 발전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발전합니다. 삶은 다채로워지고 풍요로워지며 더욱 편리해집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발전이라는 밝은 면의 또 다른 편에서는 직시하기 싫은 어두운 역사가 계속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름하여 “악(evil)의 흑역사”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정말로 나쁜 사람들입니다. (때때로 이렇게 나쁜 사람들 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습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고 배웠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오히려 법을 준수하고 양심을 따라 선하게 사는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법을 무시하고 거짓과 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이 자자손손 부를 축적하며 건강하게 사는 예가 많습니다. 살다 보면 겪지 않고 싶은 일들을 겪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재수가 없구나”하면서 그래도 눈 딱 감고 넘겨버릴 비교적 가벼운 문제들도 있지만, 그 아픔이 너무나도 커서 평생의 한이 되고 예전의 삶으로는 도무지 회복되지 못할 치명적인 고통의 경험들이 있습니다. 질병과 이별의 아픔, 각종 사고와 자연재해, 그리고 전쟁의 폭력으로 인한 부상과 죽음의 충격들처럼 세상에는 감당하기 힘든 처참한 악의 현실이 존재합니다. 

   사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칼로 무를 자르듯이 선명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또 사람의 생각과 경험에 따라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릅니다. 예전에는 악인 줄로 알았던 사건들이 세월이 지난 후 그것이 선이었던 것임을 깨닫는 경우도 있고, 고통의 시간을 지혜롭게 잘 통과하니 그것이 도리어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는 통로가 되었다는 이야기들을 종종 듣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악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선으로 경험되는 일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분명히 선으로 인식되는 동일한 사건이 다른 사람의 삶을 망치는 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악”이라고 할 때, 그것은 누구에게나 다 “싫은 것,”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악은 정말이지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 “나쁜 것”입니다.  

   누구나 악을 경험하게 되면 많이 힘듭니다. 괴롭습니다. 그런데, 이 악의 현실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특별히 유일신을 믿는 종교인들(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에게 더욱 심각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악을 경험하는 그 자체가 힘들기도 하지만, 내가 믿는 절대자 하나님이 도대체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도록 내버려 두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과연 전능하고 선하며 사랑이 많은 분이라면, 어째서 나의 인생에서 또한 이 세상에서 이처럼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악의 세력이 힘을 떨칠 수가 있을까요? 악과 하나님에 대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적으로나(intellectually) 감정적으로(emotionally) 계속해서 신앙인들을 괴롭힙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질문들이 켜켜이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결국 질문은 “왜(Why?”)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도달합니다. 다시 말해서, 태초에 하나님은 이 세상을 “왜” 악이 발생할 수 있는 곳으로 창조하셨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주일학교 시절 한 번 씩 이런 질문을 던져 봤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죄인이 되었고 세상은 왜 이렇게 살기 힘든 곳이 되었나요?” 주일학교 선생님이 대답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함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면 또 묻습니다. “인간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게 되었나요?” 선생님이 다시 답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는데, 인간이 이 자유를 잘못 사용했기 때문이란다.” 질문이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이 자유를 잘못 사용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나요?” “음… 그것은…” 사실, 저를 포함한 많은 신학자들은 자유(freedom)야 말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에게 아무런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복종하는 꼭두각시나 로봇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으로부터 자유롭게 선택하고 선을 행하는 살아있는 인격으로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자유 가운데서 인간은 자신을 만든 창조주 하나님과 인격적인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이웃을 사랑하며 나아가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선을 행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자유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 최고의 섬김, 최고의 대접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 자유 때문에 인간은 자신을 만든 창조주에게 반대하고 저항하며 반역할 수도 있습니다.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인간은 실제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결국,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자유,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서 인간은 죄 지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고 이러한 가능성 안에서 참으로 안타깝게도 인간은 죄를 짓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설명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계된 주제 뿐만 아니라, 세상과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일들에도 비슷하게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사람들이 사고가 나서 다치고 죽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셨나요? 하나님은 왜 수많은 식물과 동물들이 싸움과 경쟁, 질병과 노화로 인해 계속해서 고통을 겪고 도태되고 죽음을 맞이하도록 허락하셨나요? 하나님은 왜 이 세상에 홍수와 지진, 태풍과 쓰나미가 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가족을 잃는 아픔을 당하도록 하셨나요? 이에 대해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이 자연세계에 얼마 간의 자유를 부여하셨기 때문이라고 답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자유를 어떤 학자들은 우연(chance)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세계가 하나님과 피조물들간의 인식론적 거리(epistemological distance)를 확보하기 위한 장(field)으로서 필수적으로 가져야 할 조건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자연세계를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짜맞춰져서 기계처럼 돌아가는 고정불변의 완벽한 세계가 아니라, 역동적인 에너지로 충만하여 변화무쌍하지만 새로움이 발생하는 생명의 세계로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세계는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 어두운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명과 새로움으로 가득한 아름답고 선한 곳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신학과 과학의 대화에 관심을 갖는 일련의 신학자(또한 과학자)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로 발생하는 악의 문제와 자연세계에서 발생하는 악의 문제를 아주 조십스럽게 서로 연결하여 생각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둘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점이 있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로 환원(reduction)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하지만, 이 둘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어떤 본질적인 구조가 있다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피조세게가 갖는 어떤 본질적인 구조, 이것을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이치 또는 법칙이라고 말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즉, 선한 것과 악한 것이 동시에 발생한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구조, 생명이 탄생하고 번식하여 살아가지만 동시에 병들고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구조,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랑할 수 있지만 동시에 창조주를 거역하고 멀리할 수 있는 구조, 이웃을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동시에 이 자유로 인해 이웃을 미워하고 생명을 파괴할 수도 있는 구조, 인류의 삶이 더 행복하고 편안하게 발전할 수 있는 만큼 그 이면에는 거짓과 폭력의 흑역사가 계속될 수 있는 구조, 이렇게 세상은 이중성의 성질을 가질 수 있는 곳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신학자들은 세상이 이런 식으로 밖에 창조될 수 없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여러가지로 답변을 시도해 왔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현재로서는 “unnecessary but inevitable(꼭 그래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이라는 개념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답변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미국 유니온 신학교의 교수로 재직했던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가The Nature and Destiny of Man: A Christian Interpretation(한국 책 제목은 “인간의 본성과 운명”)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죄의 보편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죄를 비롯하여 세상에서 경험되는 악은 꼭 반드시 발생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난 번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과학자-신학자(physicist and theologian)인 로버트 존 러셀(Robert John Russell) 박사는 이러한 자연세계의 이중적인 구조, 또는 “unnecessary but inevitable”의 본질적 특성을 물리세계의 법칙, 특별히 열역학 법칙에서 발견합니다. 물론, 그가 분명하게 지적하듯이 신학적인 진술과 과학적인 이론을 아무런 여과 없이 일대일로 직접 연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과 과학의 두 영역 모두에서 발견되는 유사한 세상의 본질적 구조를 서로 연결지어 살펴봄으로써 진리에 한걸음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학창시절 과학시간의 기억을 더듬어 봅시다. 열역학 제 2법칙 또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르면, 가용한 에너지 분실의 척도인 엔트로피(쉽게 말해서, 무질서의 양)는 닫힌 세계에서 언제나 계속해서 증가하는 방향으로 일어납니다. 자연세계에서 발생하는 생명체들의 계속되는 질병, 쇠퇴, 멸종, 죽음의 현상을 통해 엔트로피의 증가를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엔트로피는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합니다.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벨기에의 화학자 Ilya Prigogine(일리야 프리고진)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러셀 박사는, 세상에는 “무질서로부터 질서(Order out of Chaos)”가 출현하며,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비가역성(irreversibility)의 구조로부터 생명이 탄생하여 살아가고 점점 더 복잡하고 다양한 생명체들이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엔트로피는 이 세게에서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필요불가결한(inevitable) 요소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리가 있겠지만, 여기서 우리는 엔트로피를 통해 세상에 악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비유적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엔트로피가 악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둘은 엄연히 바꾸어 쓸 수 없는 서로 다른 개념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악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악을 선을 위한 도구라고 정당화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를 시도해 봄으로써 하나님이 선한 의도로 세상을 창조하였으나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세상에 악이 발생하였고, 어떤 면에서 볼 때 악은 피조물로서 창조세계가 감수해야만 하는 존재론적이고 본질적인 구조 또는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만 하는 대가(cost)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가해질 수 있고, 저 스스로도 심각한 반론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present) 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하고 생명과 죽음이 함께 하며 행복과 고통이 뒤섞여 있는 곳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분명한 현실에 대해 신학과 과학은 나름대로 질문하고 답을 찾습니다. 세상에 악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정말이지 악은 있어서는 안 되고 또 없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악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고 말았고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악을 통해 (또한 악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선을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신약성서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이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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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생명의 말



심범섭



   올해 5월에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The 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받은 소설 <채식주의자>는 채식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우리 일상에 만연한 폭력과 평범한 사람의 마음에 숨어있는 폭력성, 더불어 소통, 이해, 소외, 책임, 시간, 죽음 등 삶에서 중요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이다. 서로 연결된 이야기 세 편(“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상당히 복잡하고 매우 어렵다. 작가 한강도 상을 받은 다음 한 매체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금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내치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나눠갖는 마음으로 읽어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이 소설을 처음 읽으면서 재미있게, 또는 몰입해서 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은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상징성와 암시성이 높은 대목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을 자기 나름대로 유기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되풀이해서 읽는 것과 더불어 ‘한달만에 토익 점수를 200점 올리겠다!’라고 하는 학생 같은 열의도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나 자신도 이렇게 성실한 자세로 읽은 것은 아니지만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특히 흥미로웠던 한 대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와 관련한 몇 가지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자고 감히 제안하고자 한다.   


1. 불편하지만 낯설지 않은 진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은 영혜라는 젊은 여자로서 어느날 무서운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채식을 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정신병원에 간 다음 급기야 나무가 되겠다며 음식 먹는 것 자체를 거부하면서 죽어가는 인물이다. 이 소설에서는 특히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경험하는 여러가지 폭력과 폭력 충동이 묘사 되는데, 그 가운데 폭력성이 가장 암시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가장 복잡하면서도 또 충격적인 예는 영혜의 언니인 인혜가 자살을 시도하는 대목이라고 여겨진다. 인혜는 동생과는 달리 일상성의 경계 안에 머무르며 좀 지나칠 정도로 남을 배려하고 또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투철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사실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면서 자기 삶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그리고 남편과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때로 그로부터 성관계를 강요당한다. 이런저런 계기로 그는 자신의 이런 소외를 깨닫게 되고 어느날 새벽 (사실 남편으로부터 또 한번 ‘배우자 강간’을 당한 다음) 급기야 삶의 의욕을 모두 잃고 자살을 결심한다.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p.200)  


    인혜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뒷산에 올라가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기로 한다. 집을 나서기 전 그가 이를 위해 준비하는 행동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마치 추운 듯 떨려오는 몸을 일으켜 그녀는 장난감을 놓아 두는 방의 문으로 다가갔다. 지난 일주일 동안 저녁마다 지우와 함께 장식해 걸어놓은 모빌을 떼어낸 뒤 끈을 풀기 시작했다. 단단히 묶어두었기 때문에 손가락 끝이 아팠지만, 참을성 있게 마지막 매듭을 풀어냈다. 장식했던 별 모양의 색종이와 셀로판지를 차곡차곡 모아 바구니에 정리한 뒤, 끈을 말아 바지주머니에 넣었다. (p.201)  


    인혜는 목을 매는 도구로서 왜 굳이 아들 지우와 같이 만들었던 모빌 끈을 선택할까? “단단히 묶어두었기 때문에” 풀어 챙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에도 하필 이 끈을 가져가는 것을 보면 뭔가 분명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혜가 이 끈으로 나무에 목을 매어 죽은 광경을 상상하면 우리는 그의 숨은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끈은 원래 모빌을 달았던 끈이므로 이제 그의 시신이 모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빌이란 원래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사물이므로 인혜도 자기 시신으로 만든 모빌이 누군가에게 보이길 원한다. 그가 원하는 시선이 다름아닌 네 살 난 아들 지우의 시선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아들이 엄마와 함께 만들었던 모빌 대신 엄마의 죽은 몸이 모빌이 된 것을 보기 원하는 것이다.  

    이 상상 속의 장면은 이때 인혜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더욱 섬뜩해진다. 이날 새벽 아직 자살을 생각하기 전에 인혜는 “이상한 흉통”, 곧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점점 자신의 몸을 죄어들어오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p.200).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취하는 행동은 다음과 같다.  


    그녀는 옷장문을 열었다. 아이가 젖먹이 때부터 좋아했던, 그래서 그녀가 집에서 자주 입었기 때문에 색이 바랠 대로 바랜 보라색 면티셔츠를 꺼냈다. 몸이 좋지 않을 때 그녀는 그 옷을 입곤 했는데, 수없이 빨았는데도 젖내와 배냇내가 맡아지는 것 같은 안도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효력이 없었다. 흉통은 차츰 심해졌다. 숨이 가빠왔으므로 그녀는 계속 심호흡을 해야했다. (p. 200)  


    그러므로 인혜가 바라는 것은 아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은 엄마의 시체로 만들어진 모빌을 보는 것이다. (이 옷을 입을 당시에는 아직 자살을 생각하지 않았지만 자살을 결심한 다음에도 이 옷을 계속 입고 있었다는 사실은 적어도 무의식에서 이런 바람이 있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아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큰 상처(트라우마)를 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의 이러한 의도를 특별하고 기괴한 유형의 폭력 충동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가 애초에 집밖에서 죽으려 했음을 고려할 때 인혜의 이러한 가학 의도는 의식적인 생각으로 형성되지 않고 무의식에만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다. 이때 그의 무의식은 “무의식이 하나의 충동, 모호한 충동의 자리가 아니라 꾀바른 전략적 자리”라는 통찰을 실감나게 하기도 한다.  

    자살하러 산을 오르기 전의 인혜의 행동이 충격적인 이유는 그가 평소에 선량하고 타인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폭력적 충동이 아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 장면은 좋은 엄마에게도 자식에 대한 잔인한 가학 충동이 숨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인혜의 의도가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아들 지우는 인혜의 절망에 책임이 없다는 사실이다. 인혜의 삶이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 자신과 그의 남편 때문이었고 더 깊이 따져본다면 친정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혜의 가학 의도는 가장 약하고 무고한 존재에게 향해 있다. 이때 인혜는 비겁한 사람이며, 자신의 죽음이 고통을 초래한 자에 대한 보복이 된다는 정의의 명분도 성립시키지 못한다. (사실 인혜의 마음 깊은 곳에서 성관계를 강요하는 남편과 그와 성을 나눔으로써 존재하게 된 아들이 동일시된다는 해석도 가능한 것 같다. 작품에서 그가 자살을 생각하기 전 “어둠속에 희미하게 드러난 부자의 옆 얼굴이 가련하게 닮아 있는 것을 보았다”(p.199)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이는 그가 두 사람을 동일시한다는 근거가 될 만하다. 달리 말해 인혜는 남편에게 할 복수를 아들에게 대신하려고 한다고 할 수 있다.)  

    인혜의 자살 기도에는 아들에게 의도하는 정신적 폭력이라는 차원과 더불어 그가 아들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고 싶어한다는 차원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그가 계획하는 자살에는 자신이 힘들게 살았음을 이해받고 싶어하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 많은 경우 폭력에는 이해받고 수용받고 싶은 욕구가 동반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해석은 다시금 인혜가 보이는 것을 전제하는 모빌이 되고 싶어했다는 점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다. (사실 이 소설 전체에 걸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소통과 이해와 수용을 원하는 것은 중요한 한 주제로 암시되어 있다.)  

    그런데 주어진 대목에서 인혜의 왜곡된 가학 의도를 읽을 때 우리는 이것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가족의 사랑 아래 감춰진 적의와 폭력, 그로 인한 고통과 인식 왜곡 등은 사실 특별하기보다는 흔한 경험이다. 한강의 소설은 매우 독특하고 인상적인 방식으로 우리로 하여금 이 불편하지만 낯익은 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고민하게 하는 것 뿐이다. 


2. 새로운 "생명의 말"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인혜는 (다행히도) 그의 자기 파괴와 아들에 대한 가학의 의도를 실행하지 못한다. 그는 자살을 허락하는 나무를 찾을 수 없었다. 당시의 경험은 이후의 회상에서 이렇게 이야기 된다.  


    그녀는 알 수 없다. . . . . 그 새벽 좁다란 산길의 끝에서 그녀가 보았던, 박명 속에서 일제히 푸른 불길처럼 일어서던 나무들은 또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그것은 결코 따뜻한 말이 아니었다. 위안을 주며 그녀를 일으키는 말도 아니었다. 오히려 무자비한, 무서울 만큼 서늘한 생명의 말이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받아줄 나무를 찾아낼 수 없었다. 어떤 나무도 그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마치 살아 있는 거대한 짐승들처럼, 완강하고 삼엄하게 온몸을 버티고 서 있을 뿐이었다. (p.205-06)  


    인혜의 자살 기도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인 것 같다. 목매달을 나무를 찾는 사람에게 죽기를 단념하게 하는 “무자비”하고 “서늘한 생명의 말”이란 도대체 어떤 말 또는 기운인가? (햇빛을 받아 초록색 잎이 불꽃처럼 느껴지는 나무들은 이 소설에서 강한 식물적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관련된 심상이 되풀이해서 등장하며, 세번째 이야기의 제목 “나무 불꽃”에도 이런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인혜가 나무들에게서 들었던 말에 해당하는 말이 사람 사이에서도 가능하다면 그것은 어떤 말 또는 기운 또는 행동일까? 삶에 지쳐 죽고 싶은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어 다시 살아갈 힘을 준다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생각이다. 예를 들어 목회자들은 이런 일을 더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가? 선지자 이사야도 “주 하나님께서 나를 학자처럼 말할 수 있게 하셔서, 지친 사람을 말로 격려할 수 있게 하신다” (50:4)라고 말하지 않는가? 하지만 “무자비한, 무서울 만큼 서늘한 생명의 말”에 대해서 우리는 들어본 바가 있었던가?  

    어쩌면 인혜가 새벽 햇빛 속에 선 나무들에게서 느낀 어떤 특별한 느낌을 인간 사이에서도 가능한 소통의 비유로서 이해하려는 이런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사에서 그 상응물을 찾아보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끼는 것은 절망한 사람에게 힘을 주는 새로운 방식을 찾고 싶은 바람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때 적어도 세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위로를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전해지는 언어적 표현과 단지 자기 존재에 충실하게 사는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행사하는 건강한 영향력의 구분이다. 이때 의도되지 않은 긍정적 영향력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게 하는 것은 위로하는 언어에도 곧잘 숨어있는 조종(통제)의 욕구 때문이다. “도움은 통제의 밝은 측면이다(Help is the sunny side of control).”이라는 말에는 쉽게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 부드러운 말에도 때로 딱딱한 억압(폭력)의 충동이 숨어 있다. 더하여 언어는 그 의도가 순수할 때에도 늘 부정확함과 오해의 부작용을 동반할 위험이 있다. 그저 자기에 충실한 사람의 영향력에는 이러한 그늘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인혜가 만났던 나무들은 단지 같이 있는 여러 나무가 아니라 서로 유대하고 연대하는 나무들이었을 수 있다. 이런 해석의 근거는 나무가 되고 싶어하는 영혜가 어느날 언니에게 하는 말, “언니. . . .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p.175)에서 찾을 수 있다. 달리 말해 나무들이 의도하지도 않으면서 발산하는 강한 생명력은 그들이 한 가족으로서 서로 손을 잡은 존재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를 인간 세상에 적용한다면 서로 밀접하게 연대하는 공동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셋째, <채식주의자>의 세계에서 나무들은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생명체이다. 영혜가 나무가 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인혜가 마주친 나무들도 이런 존재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비폭력성이 폭력에 익숙한 사람에겐 사실 생경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이어서 나무들의 기운이 인혜에게 오히려 “무자비”하고 “서늘”하게 느껴진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러한 폭력성의 부재가 우리가 사는 인간 현실에서 가능한 것일까? 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하지만 우리는 폭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지 않을까?  

    이런 노력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한 가르침이 있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옛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살인하지 말아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갈 것이요, 또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5:21-22) 


    우선 일상적인 무례함을 살인과 동일시하는 이런 관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더 상식적인 차원에서 적어도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나는 불끈 화를 내거나 욕 한 마디 한 것이 때로 이런저런 불운한 인과의 연쇄로 살인과 같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화내고 욕하게 하는 마음이, 비록 그 표현에서는 살인보다 훨씬 사소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살인하는 마음과 같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 두 해석에서는 욕하거나 화내는 행동은 작은 잘못으로 살인은 큰 잘못으로 구분하는 인식이 담겨 있는데, 이런 인식을 거부하는 제3의 해석도 가능하다. 곧 존재의 가장 심원한 차원에서는 처음부터 폭력의 경중을 따질 수 없다라는 해석이다. 바꾸어 말해 모든 폭력은 본질적으로 그 위상이 같으며, 작고 큰 폭력을 구별하는 것은 단지 지엽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할 때 예수의 말은 ‘이제 지엽에 속지 말고 본질을 파악하라’는 명령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나무들의 비폭력성을 가능한한 닮으려고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세번째 해석이 일으키는 경각심이 아닐까? 흥미로운 사실은 예수도 나무를 비유로 하늘나라(이상적인 질서, 그러므로 당연히 폭력도 없는 질서)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심었다. 겨자씨는 어떤 씨보다 더 작은 것이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 더 커져서 나무가 된다. 그리하여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마태복음 13:31-32) 어쩌면 폭력에는 크고 작음의 구분이 없다는 인식이 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한 겨자씨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글에서는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한 선량한 엄마가 자살을 시도하다 포기하는 대목을 살펴보면서, 그의 절망에 내포된 듯한 미묘하고 잔인한 폭력성을 생각해 보고, 또 그가 자기 파괴라는 폭력을 저지르지 못하게 막은 나무들의 “서늘한 생명의 말”을 인간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소박하게 생각해 보았다. 기본적으로 문학 작품을 독해하는 이 글은 매우 서툴고 주관적이다. 하지만 이런 글도 약자 및 소수자에 대한 폭력이 첨예한 담론으로 대두되는 오늘 우리 안에 숨어 있는 폭력과 이에 대처하는 방식에 대해 더 철저히 생각하도록 추동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기대해 본다. 


    * 필자소개  

영어강사. Rice Univ 언어학 박사(Ph.D) 후에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과 시카고 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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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든어택2> 서비스 종료에 부치는 글



(평범한 워킹맘, 페미니스트, 간간이 글쟁이로 변신)


1.


    먼 옛날의 이야기부터 꺼낸다. 어린 시절 나는 게임 마니아였다. 누군가 게임이란 뭐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지금의 나를 만든, 어두운 십대 시절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유일한 친구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중학교 때 심한 왕따를 겪었다. 하루하루가 우울하고 고통스러웠던 내게 게임은 단지 가상의 것이 아니라, 내 존재를 긍정해주는 유일무이한 세계이자, 나의 접속을 받아주는 단 하나의 네트워크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모든 게임이 좋았다. 후에는 온라인에 빠졌지만 초창기에는 오프라인 게임에 매료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소년 만화 잡지 <챔프>를 사면 게임 시디를 무료로 증정했는데, 나와 친오빠는 그 시디들을 소중하게 모으곤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플레이했던 건 <메타녀2> 였다. <메타녀2>는 메타토폴리지 대학 부속 여자 고등학교가 배경인 여고생들의 전투 RPG 게임이다. 주된 스토리 라인은 고등학교 내 동아리 전쟁이다. 동아리 간의 균형을 깨고 생물부가 반란을 일으키고, 생물부의 사주로 천문부 역시 네오 천문부와 오리지널 천문부로 쪼개진다. 주인공들은 오리지널 천문부의 일원들로 학생회 등과 힘을 합쳐 메타여고의 정의를 다시 세우려고 한다.  


   <메타녀2>의 캐릭터들은 모두 여자이다. 등장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일본 특유의 짧은 교복 치마를 입고 있지만 모두 제각기의 설정에 맞게 갑옷이나 무기를 장착하고 있다. 바이오 테크놀로지를 다루는 생물부 일원은 대개 실험 가운을 입고 있고, 수영부는 수영복(비키니가 아니라 학생들의 원피스 수영복) 차림 위에 길다란 가디건을 걸쳤다. 비행부는 전형적인 파일럿 차림이다. 그외 마술부, 학생회, 천문부 모두 각자 부서의 특성에 맞게 제복을 차려입고 있다.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등장인물들의 코스튬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는다.


    게임에는 ‘메타여고'라는 제목을 상기시키지 않으면 헷갈릴 정도로 중성적인 캐릭터가 다수 등장한다. 짧은 숏컷에 강력한 공격력, 화끈한 성격을 갖춘 사토 노리코(노유리)는 대사마저 걸걸한 말투로 번역되었다. 듬직한 궁수로 등장하는 야마다 타쿠미(하유미)는 긴 생머리를 갖고 있지만, 특유의 근엄한 표정과 정제된 말투로 그녀가 여고생 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한다. 꼬마 유치원생 같은 캐릭터도 있지만 군인 그 자체 같은 캐릭터도 있다. 게임은 캐릭터 한 명 한 명의 매력을 깊게 살려 그에 맞는 스킬과 대사, 에피소드들을 균형 있게 할당한다. 


   그러나 <메타녀2>의 인기는 사실 대단하지 않았다. 그때 정말 유행했던 건 <프린세스 메이커2>였다. 사람들 모두 너나할 것 없이 딸을 교육시키고, 아르바이트에 보내고, 무사수행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나도 <프린세스 메이커2>를 재미있게 했었는데 몇 번 C급 엔딩을 보고나선 그만 지쳐버리곤 했다. 그때가 되어 찾는 건 치트 프로그램이었다. 돈 액수를 늘리거나 매력, 기품 지수를 조정하여 왕자를 만나고 결국 ‘프린세스' 엔딩을 맞이하고 난 이후로는 딸의 미래에 별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치트 프로그램을 만지다가 우연히 딸이 완전히 속옷 바람으로 벗겨지는 치트가 발동되었다. 깜짝 놀랐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딸을 벗겨 놓은 채, 혹은 노출도가 굉장히 심한 레어 코스튬을 입혀 놓은 채로 플레이하고 있었다. 반복되는 패턴과 단일한 스토리 라인을 ‘보완’하는 의미로 게임은 코스튬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프린세스 메이커2>가 전체 이용가였던 반면 <메타녀2>가 19세 이상 이용가였다는 사실이다. <메타녀2>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전쟁하는 내용이긴 하지만, 혼세하디 혼세한 난을 진압하고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데서 더 없이 ‘교훈적'인데다가, 캐릭터들이 겪는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이 첨예하게 표현되어 시나리오가 굉장히 문학적인데도 불구하고 슬립 수준의 코스튬이 난무한 <프린세스 메이커2>보다 더 유해하다는 판정을 받았던 것이다. 십 년도 더 된 이야기다. 


2.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갈 즈음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고, 뒤이어 내 인생 게임인 <바람의 나라>가 나왔다. <바람의 나라>가 단일 서버였을 때부터 열성 유저였던 나는 <바람의 나라>를 시작으로 <어둠의 전설>, <라그나로크>, <퀴즈퀴즈> 등 온라인 게임 세계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대개 2D의 귀여운 캐릭터들이 아장아장 걷는 그래픽이었다. 노출도가 심할래야 심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긴 했지만 그때도 레어템은 대개 여캐의 코스튬인 경우가 많았다. 레어가 아닐 지라도 게임 내 코스튬 비중은 여캐의 것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고렙 템이거나 레어템일 수록 전투에 불편할 기다란 드레스나 원피스 종류가 많았다. 지금 <서든어택2>에서 문제되었던 것처럼 속옷 수준의 코스튬은 아닐지라도 직업적 특수성을 살린 남캐의 장비에 비해 여캐의 것은 언제나 게임 밖, 게이머가 살고 있는 세계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졌다.


    사실 게임을 신나게 플레이하고 있던 그때는 그 내용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다만 내가 즐겨 플레이했던 <메타녀2>와 무언가 다르다는 위화감 정도만 받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메타녀2>의 캐릭터는 확실히 <서든어택2>와 달랐다. 특정한 맥락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메타녀2>의 캐릭터들은 구태여 여성스럽지 않아도 저마다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건 <메타녀2>가 유달리 여자 캐릭터들의 매력을 다중적으로 잘 살려냈다기보다는, 게임 자체의 퀄리티가 탄탄할 때 풍부한 컨텍스트 속에서 캐릭터가 저마다의 매력을 갖추게 되는 편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웹툰 <게임회사 여직원들>에 보면 이러한 대사가 나온다. “한국 게임 업계에는 이런 말이 있죠. 재밌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은 돈이 없고, 돈이 있는 사람은 돈 버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재밌는 게임을 만드는 건 판타지다.”[각주:1] ‘돈 버는 게임’은 어떤 걸까. 모르긴 몰라도 <서든어택2>는 ‘돈 버는 방식’을 전적으로 잘못 이해한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서든어택2>에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들은 ‘서든어택’의 세계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짧디 짧은 바지, 출렁거리는 가슴, 한없이 음란스러운 여캐 시체들은 오히려 포르노의 세계에 가까운 것이다. 게임의 세계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있는 이 캐릭터들은 오로지 선정성만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초창기 플레이하던 유저들도 대부분 ‘총을 쏘아 맞추는’ 희열이 아니라 ‘야릇한 시체를 구경하는’ 재미로 게임을 한다는 이야기가 돌 지경이었다. 


   <서든어택2>의 실패는 말초 신경의 패배다. <서든어택2> 개발팀은 게이머를 이끄는 것이 자극과 선정성이라고 여겼던 모양이지만, 그건 게임 업계가 여태 제도적으로 부당하게 제한되어 온 그 시각들과 바로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서든어택2> 개발팀은 게임을 폄하하고 무시하는 입장을 <서든어택2> 안에 완전히 내재화한 것이다. 반면 충실히 FPS의 세계를 구현하고, 그 세계관 속에서 저마다의 매력을 갖춘 캐릭터들을 적절하게 배치한 <오버워치>는 대 성공을 거뒀다. 게이머들은 여기에 정확하게 응답하고 있었다. 


3. 


   ‘프린세스 메이커’의 시대는 끝났다. 더 이상 누구도 - 디즈니조차도 ‘공주’를 만들기 위해 매달리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서든어택2>에서 본 바와 같이, 여성혐오는 (정당하지 않지만) 효과적이지도 않다. 여성의 코스튬으로 승부하고 여자 캐릭터를 언제나 반쯤 포르노의 세계 속에 위치시켰던 모든 게임들은 기획을 다시 짜야 할 것이다. 게임이 게이머를 위해 있을 지언정 캐릭터는 게이머를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캐릭터는 게임의 세계관 속에 그대로 녹아 들어 있어야 비로소 생명력을 얻게 된다. 


   <서든어택2>는 이 사실을 완전히 잊었거나, 무시하고 있었다. 게임의 세계관과 무관하게 창조된 캐릭터들은 방황하다가 끝내 그들의 탄생지를 ‘강남역 10번 출구’로 택하고야 말았다.[각주:2] 지금 우리 사회의 전 이슈가 몰려 있는 곳, 그리고 그 장소 자체로 ‘여성혐오’를 뜻하게 된 ‘강남역’ 말이다. 이윽고 <서든어택2>는 ‘여성혐오 게임’으로 회자되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단순히 우연으로 엮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본업이 개발자인 나는 얼마 전 모 게임 회사에서 이직 면접을 본 적이 있었다. 임원 면접에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말이 있냐길래, “게임으로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라고 물었더니 한 면접관이 이렇게 답했다. “게임으로 사람들이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하고 싶다.”라고. 아마 그건 그 사람 개인만의 답변이 아니라, (비록 형식적인 것일 지언정) 게임 업계에 종사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꿈일 것이다.


   이제 다시 그 말을 게임업계에 되돌려주고 싶다. 포르노와 여성혐오, 여성 멸시와 차별은 이미 현실 세계에서 염증이 나도록 널려 있다. <서든어택2>은 단지 이러한 여성 혐오의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았을 뿐이어서, 게이머는 게임을 통해 ‘다른 세계’를 엿볼 수조차 없었다. 게임이 스스로 웜홀의 기능을 포기한다면, 게이머가 굳이 그 세계에 접속할 필요가 있을까. 다시 게임이 ‘다른 세계'를 회복할 수 있기를, 그리고 2016년 7월 29일[각주:3]을 기점으로 ‘돈 되는 게임'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웹진 <제3시대>

  1. 다음 <만화속 세상> 연재 작 <게임회사 여직원들> 85화 중 [본문으로]
  2. <서든어택2>의 홍보 티저 영상 배경이다 [본문으로]
  3. <서든어택2> 개발사인 넥슨 지티가 <서든어택2> 서비스 종료를 고시한 날짜다. (서비스 종료 예정일은 2016년 9월 29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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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차준석
    2016.08.08 09: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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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궁금했는데 쓰시는 필명은 무슨 뜻인가요?
    • 2016.08.11 06:1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아.. 사실 별 뜻은 없습니다.ㅎ 필명을 굳이 쓰는 이류는 본명에 컴플렉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 본명에 "경"이 들어가 있어서 보통 "갱" 으로 많이 불렸어요.^^ (경민 >> 갱민 식으로요 ㅎㅎ )
  2. 2016.08.11 10:1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당신은 당신의 장점이 뭔지 아시나요/
    남자들은 물이 많은 여성을 좋아합니다
    당신이 전형적인 수,,여성입니다
    다만, 지금 그것을 발견못한것 같은데
    한번 도전해볼래요


우리는 포항제철을 부인할 수 있을까 

–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단상



황용연

(본 연구소 객원연구원, GTU Interdisciplinary Studies 박사과정(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박사후보생)


 

1. 

   지난 해 말 한국-일본 외교장관 간에는 이른바 ’12.28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얼마 전 그 합의에 따른 재단이 출범했고, 조만간 그 합의에 따른 10억엔을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 합의에 대한 서경식 교수와 와다 하루키 교수 사이의 지상논쟁이 지난 3월에 한겨레신문을 무대로 벌어졌다. ’12.28 합의’에 대한 서경식의 부정적 입장과 와다 하루키의 긍정 후 개선의 입장이 시종일관 엇갈리는 이 논쟁에서 특히 필자의 주의를 끌었던 엇갈림의 지점은 이 곳이었다.  


   “아시아 여성기금 사업은 네덜란드와 필리핀에서는 성공했다고 와다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경우에 ‘성공’이란 무엇일까요? “피해자 중에서 가장 용감하게 이름을 밝히고 나서서, 끊임없이 일본 국가가 저지른 일을 비판한 얀 루프 오헤른Jan Ruff O‘Herne은 기금 쪽에 신청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이 한 사람의 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금이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으며, 적어도 ‘성공’을 자찬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녀야말로 일본 국가가 가장 진지하게 용서를 구해야 할 대상이고, 그녀가 용서를 해야만 용서를 받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서경식) 

   “네덜란드에선 피해자임을 밝히고 일본 정부를 비판해온 얀 루프 오헤른이 기금을 거절했다.”고 한 서씨는 “이 한 사람의 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금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정당한 평가라 할 수 없다. 필리핀에선 마리아 헨슨을 언급하며 “철두철미하게 일본국가에 유린됐던”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속죄금’을 받은 것을 두고 “마음의 평안”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까”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헨슨은 기금을 받을 때 “지금까지 불가능하고 생각했던 꿈이 실현됐습니다. 매우 행복하다”고 말했다. “(와다 하루키)  


   아시아 여성기금이 ‘반관반민의 모금 형식을 취한 위로금/사죄금’ 지급을 통해 국가범죄로서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국가배상을 대체하려는 시도였음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이 기금에 대해 ‘얀 루프 오헤른’을 예로 들어 비판하는 서경식에게 와다 하루키는 ‘마리아 헨슨’ 같은 경우도 있는데 ‘얀 루프 오헤른’만 부각시키는 것은 부당한 비판이라고 대답하는 셈이다. 확실히 ‘마리아 헨슨’ 같은 케이스는 한국에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긴 하고, 와다 하루키의 글에서는 이런 케이스가 적어도 네덜란드와 필리핀에서는 적지 않았다는 뉘앙스도 받을 수 있다(사실은 한국에서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 오늘날에는 이미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와다 하루키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그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얀 루프 오헤른에게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여성기금이 그것을 수용한 피해자들에게 ‘불가능한 꿈의 실현’일 수 있었음을 인정하더라도, 수용하지 않은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이상 적어도 그들에게 필요한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는 아무런 효용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이 지점에서, “적어도 일부의 피해자들에게는 정의의 실현이 되었으니 그만큼은 성공하고 진전한 것이 아니냐”라고 말한다면, 이 때 ‘성공’과 ‘진전’은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이 되는 것일까.


2. 

   와다 하루키의 입장에서 보면, 서경식이 아예 ‘반동의 물결’에 몸을 담갔다고까지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부당하다고 느낄 만도 할 것이다. 한일협정 때문에 법적 배상의 길이 막혀서라고 하든, 현재의 일본국이 전전의 일본 제국과 연속성을 갖는 국가이고, 과거 전쟁 범죄를 자기 손으로 심판해 본 적이 없는 국가라, 지금 와서 법적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는 실제로 여성기금 출범 당시, 와다 하루키를 비롯한 찬성 측의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 나왔던 이야기다)이라고 하든, ‘국가의 법적 책임’이라는 형태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어렵다면 다른 해결책이라도 나와야 할 것 아닌가란 생각과 행동을 했을 테니. 그리고 앞에서 보듯이 그 여성기금을 ‘해결’로 받아들인 당사자들도 상당수 있으니, 그 당사자들의 선택을 “법적 배상을 피하려는 일본 국가의 의도에 놀아났다”고 폄하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일부분, 위안부 당사자들이 바라는 정의를 실현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느냐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역시 ‘얀 루프 오헤른’ 앞에서는, 그리고 그녀와 같은 거부의 입장인 한국의 피해자들 앞에서는, 와다 하루키는 할 말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여성기금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일 수 있다고 한다면, 혹시 그 해결은 피해자들에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서경식의 표현을 약간 수정해서 빌리면 “일본인 자신들의 ‘양심’을 위로하기 위해서 한 것은 아니었던가.”

   여기서 앞에서 언급한 일본국과 일본 제국의 연속성에 관해서 간단히 짚어보자. 잘 알려졌듯이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는 미국이 일본을 태평양 지역의 하위파트너로 활용하는 동맹 체제 위에서 가능했고, 그 동맹체제를 성립시키기 위한 조처 중 하나가 일본 제국의 핵심구조인 ‘천황제’를 ‘상징’으로서 존속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동맹체제의 핵심요소인 군사력을 ‘오키나와’에 집중시켜 본토는 ‘평화헌법에 기반한 군사력 청정지대’로 유지하고, 사회적으로는 ‘재일조선인’과 같은 타자를 만들어냄으로써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등장함으로써, 이 문제가 일본 전후 민주주의의 토대 중 하나인 ‘제국의 핵심구조를 비무장이라는 조건으로 존속시키는 대신 전쟁 책임을 면제한다’는 점에 대한 직접적인 폭로가 됨을 의식하고, 전후 책임 문제를 통해 일본 전후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시도하는 지식인 그룹이 생겨났다.

   최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큰 논쟁을 촉발한 [제국의 위안부]에서는, 이 상황을 탈냉전 이후 할 이야기가 궁색해진 일본의 좌파가 ‘위안부 문제’를 통해 이야기거리를 찾았다고 해석한다. 그러면서 위안부 문제를 일본 사회 전체의 개혁과 연관시키기보다 ‘그 문제 자체에 집중했더라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런데 [제국의 위안부]가 아시아여성기금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앞에서 와다 하루키에게 던진, 거부하는 당사자들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여기서도 유효하게 될 것이다.



3.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과거사 청산’ 작업이 꾸준히 이어질 당시, 그 작업에 대한 이런 비평이 나온 적이 있다. “도대체 역사나 과거라는 것은 ‘청산’될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는 마치 결산서를 작성하여 집행하면 사라질 수도 있는 그런 것인가?”(문부식,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광기의 시대를 생각함] 중에서)

   이미 벌어진 일을, 있었던 피해를, 되돌릴 수 없으니, 역사나 과거라는 것이 ‘청산’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겠다. 그리고 자신이 당한 피해에 대해 바로 그 가해자에게 계속 항의하고 있으니, 그 항의가 이어지는 한은 당연히 청산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겠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면, 설령 그 항의에 대답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에서라도 이 피해의 문제를 자기 마음대로 ‘결산’해 버린다고, 그런 과거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방금 이야기한 ‘자기 마음대로의 결산’이 벌어지는 경우, 대체로 그 밑에는 위안부 문제를 ‘한국과 일본의 국가간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지금 문제가 되는 ‘12.28 합의’가 대표적일 것이다. 아예 대놓고,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면서 ‘결산’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조금 더 짚어 본다면, 이 문제를 ‘한일화해’로 풀길 바라는 의견들도, 이미 ‘한일’이라는 ‘국가간’의 구도를 전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국의 위안부]처럼 ‘한국과 일본’이라고 하든, 와다 하루키처럼 ‘조선 민중과 일본 민중’이라고 하든.

   그런데, 사실 위안부 문제를 ‘한국과 일본의 국가적 문제’로 보는 것은 위안부 당사자들을 ‘지지’한다는 사람들에게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위안부 당사자들을 “민족이 당한 피해”로 인식하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이해 방식 중의 하나가 아니던가. 최근 위안부 피해 관련 운동의 상징이 된 ‘소녀상’도, 대다수 피해자들이 나이 어린 여성들이었고, 식민지 조선에서 어린 여성들을 동원하는 것이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 관련 전략인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민족이 당한 피해”라는 이미지를 집약한 측면이 강함을 부정할 수도 없고 말이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 ‘민족이 당한 피해’라는 말은, 위안부 당사자들이 커밍아웃하기 전까지 그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이데올로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여기에 해방 후 한국전쟁 당시의 ‘한국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한 학자에게, 그 문제제기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꽤 제기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민족이 당한 피해’라는 말이 그 ‘민족’ 내부에서 똑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도 된다. 상황이 이렇다면, ‘민족이 당한 피해’라는 패러다임이, 위안부 당사자들에 대한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어떤 긍정적 의미를 가질 것인가.

   그렇다면 ‘국가간’ 문제라는 시각 말고, 위안부 당사자들과 ‘(제국의 후신으로서의) 일본국’ 사이의 관계라는 식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 피해자들을 굳이 ‘한국인’으로 제한할 필요도 없이, 제국의 후신으로서의 일본국이 져야 할 책임을 요구하는 주체들로서의 위안부 당사자들이라는 시각으로 말이다. 물론 이렇게 볼 때, 당사자들 각각이 일본국의 책임 완수를 어느 선까지로 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얀 루프 오헤른’과 ‘마리아 헨슨’이 갈라졌고, 한국에서도 여성기금 거부자들과 수령자들이 갈라졌듯이 말이다), 위안부 관련 운동의 입장에서라면, ‘수용’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그것대로 존중하되, ‘거부’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끝까지 그 거부의 입장을 관철할 수 있게끔 도우는 것이 운동의 본질이지 않을까.


4. 

   위안부 당사자들과 제국의 후신으로서의 일본국 간의 관계라는 방식으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게 되면, 그 일본국의 전후 책임 문제와 깊이 관련된 미일동맹구조에 현재의 한국도 발 담그고 있다는 것을 외면할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한 것이, 한국의 ‘현재까지의 번영’에 한 기반이 되었다는 점도 외면할 수가 없게 된다. 국가간 법적 문제는 다 끝났다는 법적 핑계나, 미일동맹구조를 깨는 건 불가능하다는 구조적 핑계 양쪽으로 활용이 될 만한 ‘한일협정’으로 받은 ‘독립축하금’이, 다름아닌 포항제철의 건설 기반 자금이 되었다는 것은 미일동맹구조와 현재의 한국 간의 관계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한 예라 할 것이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장 아메리는 이런 몽상을 했다고 한다. 독일인 스스로가 나서서, “굴욕의 날들에 자신들이 행한 모든, 심지어 동시대의 소산인 아우토반마저도 예외 없이, 가능한 모든 것을 부인하는 집단”이 되는 몽상이다. 이 몽상이 실현된다면, “피해자의 원한이 주관적으로는 풀릴 것이고, 객관적으로는 무용한 것이 될 것이다.”

   장 아메리의 몽상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일본인은 일본인대로 모든 것을 부인한다면, 한국인은 어떠할까. 방금 이야기한 대로 한일협정의 산물이 포항제철이라면, 한국인은 포항제철을 부인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불가능한 일이라고?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애당초 시작점인 장 아메리부터가 ‘몽상’이었고, 결국 그 몽상의 실현을 보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니.

   하지만 여기서 나는, 체 게바라가 말했다는 그 유명한 문구를 이렇게 바꾸고 싶다. 

   “불가능한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리얼리스트도 될 수 없다.” 

   역사와 과거가 ‘청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포항제철을 부인할 수 있다는, 포항제철을 가능하게 했던 미일한 동맹체제를 부인할 수 있다는 불가능한 꿈을 꾸어야 , 그 역사와 과거에 최대한 귀를 기울일 수 있단 말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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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남편이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매번 눈치보느라 외식메뉴도 결정 못하는 사람인지라, 설마 하는 맘으로 "그래 해봐"하고 던진 말이 "8월 1일부터 1년 동안 휴직이야. 내가 우리 회사 육아휴직 남성 1호야"하는 답변으로 돌아왔다.  

     부부가 막연히 생각해오던 1년의 휴식이 예상보다 빨라져 당황스럽기도 하다. 출산과 육아로 5년을 집안에만 있던 나는 부랴부랴 구직사이트를 기웃거리고 묵은 이력들을 끌어모은다. 남편의 휴직동안 가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될까 싶었지만 경단녀는 내게도 현실이었다. 며칠을 혼자 끙끙 앓고 있으니, 남편이 함께 놀잔다. 고마웠다. 그래, 기왕 노는 거 네 식구 똘똘 뭉쳐 놀아야지. 은행에 당당히 빚내고 일년을 지내보기로 했다. 

     밥줄인 일터에 매여 저녁조차 없는 남편의 삶에 아침, 점심, 저녁이 생겼다. 현관문 열림과 동시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질주하는 아이들의 등원길 내게 든든한 지원자가 생겼다. 한낮의 한적한 도서관을 이용할 수도 있고, 하루 한끼 정도는 아이들 눈치 안보고 부부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고민할 수도 있다. 무작정 짐 싸서 여행길에 오를 수도 있겠다. 

     서른 넘은 우리 삶에 '쉼'이란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1년에 한번 큰돈을 들여 휴양지에 몸을 늘어뜨려 놓는 것이 휴식과 충전이라고 말한다. 짧은 시간 알차게 놀아야 한다고 계획을 이리저리 세우다 머리가 빠질 것 같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반면, 눈 뜨자마자 놀 궁리를 시작하는 아이들은 신문지 한 장만 있어도 한 시간 넘도록 신나게 노는 신비로운 능력을 가졌다. 그건 우리 어른들도 갖고 있던 능력일텐데, 기껏 그 능력을 계발한다는게 어째 세상이 더 재미없어진 것 같다. 게다가 아이들은 하루 낮잠 한 시간이면 휴식 끝! 충분한 수면이면 종일 방방 뛰고 놀아도 아침이면 에너지로 가득 차 이불 위로 튕기듯 일어나 또 놀 궁리를 시작한다. 아이들보다 더 강한 면역체계를 갖춘 어른이라면 저녁이 있는 삶만 보장해줘도 몰아쳐서 쉬기 위해 애쓸 일도, 삶의 피로로 어깨가 무거울 일도 없지 않을까. 

     남편은 며칠 전부터 항공권 사이트를 들락거린다. 그가 자꾸 '마지막'이라는 수식을 붙여 1년을 너무 계획성 있게 쓰려고 하는데 말려봐야겠다. 이제 막 발맞춰 걷기 시작한 아이들, 세상 신기한 것들로 가득찬 아이들의 손잡고 실컷 걸어나 볼까 싶다. 아이에게 삶의 놀이는 무엇이고 행복은 무엇인지 좀 배워봐야겠다. 그리고 내 욕심 한번 부려서 라면물만 겨우 맞춰 끓이는 남편에게 감히 살림을 가르쳐볼까 한다. 마지막이 아닌 우리 인생 첫번째 쉼이 되도록 한껏 궁리하고 놀아보는 일년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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