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과 찜질방에 깃들은 인종차별과 편견





김나미

(미국 Spelman College 교수, 종교학)




    지난 8월 초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 (Rio de Janeiro)에서 열렸던 올림픽과 관련하여 미국의 주류 방송사에서 방영하지 않은 이야기들과 경기들이 있다. 리우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그리고 열리는 동안에도 계속 일어난 브라질 사람들의 올림픽 반대 시위와 그에 대한 경찰의 가혹한 진압은 방송에서 물론 보기 어려웠지만, 경기 자체가 미디아의 조명을 받지 못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미국의 수영선수인 시몬 마뉴엘 (Simone Manuel)이 금메달을 딴 수영 개인종목 경기였다. 미국의 대부분의 주류 방송사들은 시몬 마뉴엘이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따는 순간은 물론이고 금메달을 받는 시상식 장면 또한 방영하지 않았다. 아무도 흑인여자 수영선수가 수영 개인 종목에서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그냥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지나칠 수 있는 이 일을 그냥 지나칠 수 만은 없는 이유는 시몬 마뉴엘의 메달 획득이 수영과 미국의 인종차별주의 역사의 연관성에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1865년에 끝난 미국의 시민전쟁과 그 해에 비준된 미헌법 제 13조에 의해 약 400년간 이어져온 노예제도가 폐지 됬기는 했지만 그것이 곧 흑인들의 삶의 향상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노예제도 폐지후 얼마 되지 않아 남부지역에서 실행된 짐크로우 (Jim Crow) 법은 흑인과 백인의 ‘분리’ (segregation) 를 법으로 정한 반흑인 인종차별법으로써 1965년 까지 유효했다. 이 법에 따라 흑인들과 백인들의 생활의 모든 공간이 분리되어 졌고, 만약 이 법을 어길 경우는 법의 처벌을 받는 제도화된 인종차별법이었다. 군대[각주:1], 학교, 식당, 화장실, 엘리베이터, 버스, 열차, 극장내의 ‘분리’된 공간들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놀이기구, 수영장, 해변가에서도 ‘분리’는 분명했다. 백인들만의 공간에 흑인들이 들어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고, 그것을 위반 했을 때에는 백인들에 의해 잔혹하게 폭행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시몬 마누엘(출처 : https://au.tv.yahoo.com)


    1950년대에 도로시 덴드리지라는(Dorothy Dandridge) 흑인 여배우가 발가락을 잠깐 담궜다 꺼냈다는 이유로 라스베가스 한 호텔의 수영장물 전체를 다버린 사건, 1964년 플로리다주의 한 모텔주인이 흑인들이 들어가 있는 모텔의 수영장에 염산을 뿌린 사건등은 전혀 정치적이지 않을 것 같은 수영장, 해변가, 사우나시설들이 어떻게 인종차별을 첨예하게 드러내는 공간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각주:2] 수영장의 이런 인종차별적 역사 속에서 많은 흑인들은 수영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고, 수영이란 운동과 가까와 지기 어려웠다. 이렇게 수영과 관련된 인종차별 역사 때문인지 미국의 주류 방송사들도 미국을 대표하는 흑인여자 수영 선수의 개인 종목 결승전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수영장에 깃들은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과 동일시 될 수 는 없지만, 한인들의 흑인들에 대한 인종적 편견과 태도가 드러나는 장소들 중 하나가 바로 찜질방이다. 점점 늘어나는 미국내 한인들의 숫자를 보여주듯이 한인들이 밀집한 대도시에는 한인 사우나, 또는 찜질방이 있다. 애틀란타라는 남부의 큰 도시에도 한인들이 운영하는 사우나와 찜질방이 있다. 한국에 있는 찜질방에 비해서 훨씬 비싸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처음 찜질방이 문을 열었을 때는 한인들이 대다수 였지만, 지금은 흑인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흑인들이 많이 가기 때문에 더이상 찜질방에 가지 않는 다거나, 가지 말라고 조언을 하는 한인들을 주위에서 종종 만나 볼 수 있다. 이유는 흑인들이 많아서 ‘더럽다’는 것이다.


    ‘흰색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검은색은 오염됬고 더럽다’라며 색깔과 인종을 연결시켜 우열을 나누는 것은 인종차별주의를 지탱하는 여러가지 이데올로기들 중의 하나이다. 한국사회에서도 흑인이나 ‘혼혈아’로 불리는 사람들을 상대로 쓰여지는 여러가지 용어들이 있는데, 여기서 일일히 나열할 필요도 없이 부정적이고, 혐오적이다. 도대체 흑인에 대한 이런 편견과 부정적인 태도가 언제부터 어떤 경로를 통해서 한국인들 사이에 퍼지게 된 것일까? ;


    한국 사회와 미국의 한인 공동체의 초국가적 (transnational) 연관성을 연구해온 한국계 미국학자 김나디아 (Nadia Y. Kim)는 자신의 책 [제국의 시민들] (Imperial Citizens)에서 한국 사람들이 흑백인종질서를 받아 들이는 것을 가능하게 한 여섯가지의 연관된 요인들을 논의하고 있다. 간략하게 요약을 하면, (1) 한국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색깔사이의 위계, (2) 각 사회 구성 집단의 적합한 위치를 강조하는 유교관념, (3) 애국계몽운동이후에 (1895-1905) 형성된 ‘한핏줄’ 국가개념, (4) 엘리트 백인들과의 접촉, (5) 일본에 의해 소개된 미국-유럽의 인종 이데올로기들, (6) 한국에서 반인종차별운동의 역사와 담론의 결핍 등이다.[각주:3]


    김나디아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연관된 요인들이 다른 유색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가능하게 한 토양을 만들었고, 냉전시대 이후 부터 현재 한국사회에 만연한 유색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미국의 흑백인종질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각주:4]. 다시 말해서, 미국이 문화, 경제, 군사적으로 그 힘을 확장해 나갔던 냉전시대에 미국 사회의 흑백인종질서로 다른 나라들도 “인종적으로 ‘미국화’” 시켰다는 것이다. 흑백질서라는 미국의 인종 이데올로기, 좀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반흑인 인종차별주의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미국의 영향아래에 있는 한국과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인들도 이민을 가기 전부터 이미 흑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태도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 사람들과 미국내 한인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반흑인 편견과 태도는 미국의 인종차별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각주:5]


   미디아만 보더라도 미국의 인종차별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전세계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는지 알수 있다. 흑인들과 관련된 미디아 이미지는 ‘아프리카의 미개인’으로 부터, ‘무력한 노예’, 마약과 폭력을 일삼는 도심지의 ‘난폭한 갱’, 국가의 복지 혜택을 누리면서 세금을 축내는 ‘게으른 미혼모’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두가 부정적이다.[각주:6] 한국 미디어에서 간혹 미국의 유명한 흑인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이 긍정적인 모습으로 조명되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상당히 제한되어져 있고, 몇 몇의 ‘뛰어난’ 흑인들을 ‘예외’인 것으로 부각시키면서 오히려 흑인들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강화시키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물론 백인들의 유색인 차별과 한인들의 다른 유색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과 태도를 동일 선상에 놓고서 얘기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힘의 역학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한인들도 백인들과 똑같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이다’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종차별주의는 개개인들의 차별적 언어, 행위와 편견이라는 중요한 측면이 있지만, 무엇보다 구조적 차원의 문제이다.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포함하여 유색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억압은 백인우월주의 (white supremacy)라는 큰 틀과 연결 시켜서 봐야 한다. 여성신학자 앤디 스미스 (Andy Smith)는 백인우월주의를 지탱해온 세가지의 각각 다르면서도 서로 연결된 “기둥”들을 논하는데, 그 세가지의 기둥은 다음과 같다: (1) 미국 노예제도와 자본주의, (2) 미 ‘원주민’ 학살과 미국에 정착했던 유럽인들의 정착형 식민주의, (3) 미국이 관여한 아시아에서의 전쟁과 오리엔탈리즘이다.

   

   흑인들, 한인들을 포함한 아시아인들, 그리고 미국의 ‘원주민’들이 백인우월주의에 의해 억압을 받아온 경위와 역사가 동일 하지는 않지만, 각각의 그룹이 경험하는 억압은 백인우월주의와 연결되어져서 서로의 억압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렇게 다른 “기둥”들에 의해 억압받아온 사람들이 취해야 할 행동은 ‘우리는 저 사람들과 다르다’라는 인식론적 차원에서의 ‘분리’나, ‘우리는 저 사람들 보다 훨씬 낫다’라는 우월주의적 사고를 갖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서로가 “공유하는” 억압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누가 더 억압받았는지 경쟁하는 “억압 올림픽” (the oppression olympics)에 참가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각주:7] 각각의 억압 경험이 다르지만, 서로의 억압을 강화시키는데 알게 모르게 참여해 온 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백인우월주의와 그것을 지탱하는 “기둥”들을 무너뜨리는데 힘을 합할 수 밖에 없다.

  

    수영장에 깃든 미국의 기나긴 인종차별의 역사를 비인간적인 억압의 구조로 본다면 찜질방에 깃들은 한인들의 인종적 편견과 태도 역시 간과 할 수 없겠다. 나/우리의 인종차별적 편견과 태도가 흑인들을 억압하는 인종차별적 구조를 견고하게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사실은 나/우리를 열등하게 여기고 차별하는 구조를 굳건히 하는데 내/우리가 오히려 앞장서는 이상한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유색인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억압구조에 동조하면서 한인들만은 차별받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을 실현 하면서 살 수 있는 사회란 있을 수도 없고 꿈을 꿀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 고달프게 하는 구조에 동참하면서 나/우리만 잘 살 수 있는 사회란 많은 이들에게는 깨어나고 싶은 악몽일 것이다. 미국의 인종차별주의에 맞서 싸웠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을 기억하면서 나/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서로 떼어 질 수 없이 연결 되어있는 지 보도록 하자. 그러면 별 일 아닌 것 같이 보일 수 있는 수영장과 찜질방에 깃든 인종차별과 편견이 사실은 모두의 삶을 황폐하게 하고 위협하는 부정의라는 것을 알 수 있을테니 말이다: “어딘가에 있는 부정의는 곳곳에 있는 정의에 대한 위협이다. 우리는 하나의 운명에 묶인 채 피할 수 없는 상호관계성의 네트워크안에 있다. 무엇이든 한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모두에게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각주:8]


ⓒ 웹진 <제3시대>



  1. 미군대내의 분리는 1948년에 폐지 되었다. [본문으로]
  2. http://www.sportingnews.com/athletics/news/simone-manuel-gold-medal-swimming-legacy-history-african-american-barred-pools-beaches/y6t5l0c7b55h166ovrc5ssxid; https://www.washingtonpost.com/sports/olympics/the-significance-of-simone-manuels-swim-is-clear-if-you-know-jim-crowe/2016/08/12/870e3bb6-60ad-11e6-af8e-54aa2e849447_story.html?tid=sm_fb [본문으로]
  3. Nadia Y. Kim, Imperial Citizens: Koreans and Race from Seoul to LA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8), 37. [본문으로]
  4. Ibid. [본문으로]
  5. 여기에 관해서는 본인의 책에서 조금 더 자세히 논의하고 있다. Nami Kim, The Gendered Politics of the Korean Protestant Right: Hegemonic Masculinity (Palgrave Macmillan, forthcoming). [본문으로]
  6. 한국 사람들의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에 관한 다음의 글을 참조하기 바람. Dave Hazzan, “Korea’s Black Racism Epidemic.” Groove (February 11, 2014). Available at http://groovekorea.com/article/koreas-black-racism-epidemic-0. [본문으로]
  7. Andy Smith, “Heteropatriarchy and the The Three Pillars of Oppression: Rethinking Women of Color Organizing.” In Color of Violence: The Incite! Anthology. Ed. Incite! Women of Color Against Violence (Cambridge, MA: South End Press, 2006). [본문으로]
  8. Martin Luther King Jr., "Letter from a Birmingham Jail” (16 April 196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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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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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작은 도시 공동체 이야기 3]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최규창[각주:1]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리는 집


       <건축학 개론>이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승민(엄태웅)이 유학을 가기 전, 달동네 집에서 홀로 사는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연민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짜증을 내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 아파트 같은 깨끗한 집으로 이사 좀 가! 이런 구질구질한 집이 지겹지도 않아?” 그러자 어머니는 냉장고에서 검은 비닐에 싸인 반찬통을 꺼내면서 무심히 대답한다. “얘는... 집이 지겨운게 어딨니. 집은 그냥 집이지...” 마지막 남은 가족인 아들마저 외국으로 떠나는 상황에 처한 어머니에게 가족이 생활하고 자랐던 집이라는 ‘장소성'은 마치 몸의 일부처럼 작동하고, 말을 걸어오고,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해주는 공기와도 같은 자연스러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현대적 건축물을 설계하는 건축가인 아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상처와 가난의 표상 같은 달동네 집의 의미가 아련한 추억 이상의 것이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어머니에게는 그 집이 곧 자기자신의 삶 자체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성년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을 그 마을과 시장 사람들은 모두 그 집을 중심으로 네크워킹 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익숙해진 공간으로부터의 탈주는 꽤 큰 용기와 분명한 목적의식을 필요로 한다.  

       13년간 마포구 서교동의 작은 골목에서 빌라를 짓고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온 우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동체 주택이라는 공간 자체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간과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점점 더 깊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인데, 먼저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공간이 협소해지고 불편해지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우리들 스스로가 협소함 외에도 공간 자체에 제약되어 자신의 내면의 개혁과 미래에 대한 상상, 계획, 그리고 그 실행이 매우 힘들어졌다는 점에서 였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는데는 많은 민감성이 필요했다. 사실 주거공간은 하나의 생존 조건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그것을 객관적으로 사유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거 공간을 거주보다는 자산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비싸고 넓은 집을 소유하는 것을 목표로 스스로를 공간에 맞춰가는 삶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넓은 집을 소유해도 정작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면 우리는 심한 부조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자신만의 공간이 없으면 시간도 의미가 없어진다. 시공간의 여유가 생겨도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마치 마비증상이 있는 것처럼 생산성 없이 그것을 소모해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삶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자신이 처한 공간을 비판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공간'을 찾아다니는 존재이기 때문에, 분명히 우리는 하루 중 어떤 자투리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나름의 생존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결국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가가 자신의 공간 좌표를 정확히 보여주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 공간의 한계


      근대의 공간은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그리 많은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근대적 삶은 지난 수 백 년간 과학이라는 신을 영접하기 위해 모든 시간과 공간을 측정 가능한 단위로 분절시키고 운동과 에너지의 공식을 만들어 냈다. 최근 백 여 년간은 효율성이라는 목표 하에 철저하게 ‘구획화’된 시공간 속에 인간을 투입했고, 우리의 삶을 그 속에 안착시켰다. 갈릴레오는 자연에 존재하는 중력, 가속도 등의 개념을 인지하고 말로 서술하였지만, 뉴튼은 구체적인 시간(t)의 단위를 상정하여 이를 공식화했다. 그의 공로는 모든 운동을 시간으로 환원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시간’이 우주 공간의 중심에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데, 이 확신 속에 이제 우주의 시간과 공간은 리듬이 제거된 채 동질화되어 버렸다. (이 동질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작업이 앙리 르페브르의 <리듬 분석>이다) 이와 같이 과학은 측정단위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출발조차 할 수 없다. 과학은 결국 '자연의 수학화’가 아니던가. 이런 점에서 신학자 월터 윙크의 표현대로 뉴튼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발명한’ 것이다. 누군가가 시간과 공간에 기준을 세우고 나머지를 재배열하는 식으로 과학을 시작했고, 그것으로 우리의 시공간을 분절시켜 삶을 통제하게 된 것이다. 공간을 대수적인 수로 환원시킨 기하학이 오래 전부터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 밀접하게 대입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와서다. 앙리 베르그손의 말대로, 우리가 지각하는 시간의 관념은 (이미 어떤 측정 단위로 양화(量化)되어 버렸기 때문에) 사실 시간이 아니라, (시계바늘의 거리처럼) 공간적 속성으로 치환된 시간에 불과하다(여기서 베르그손은 자신의 고유한 사유인 ‘지속’ 개념을 주장한다). 우리는 어김없이 아침에 일어나 오전 9시에 출근하고, 오후 6시가 지나야 퇴근할 수 있다. 동일한 점심시간에 쏟아져 나와 식사를 하고, 다시 시계에 의해 통제되는 오후 근무시간으로 투입된다. 집에서 아무리 달래도 밥을 먹지 않는 아이도 학교에 가면 얌전히 급식대에서 밥을 받아 시간 내에 식사를 잘 마친다. 우리는 공간과 시간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이 애초에 왜 정해졌는지를 아무도 묻지 않은채 말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공간 어딘가에 좌표로 존재하는 대상일 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근대적 주체를 발명한 데카르트가 바로 수학적 좌표를 생각해낸 사람이 아니던가) 그리고 시공간은 기계화된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의 한 명인 르 코르뷔제는 ‘집이란 그 속에 들어가 사는 기계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20세기 초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근대란 인간의 삶을 효율성이 지배하는 거대한 기계로 환원시키는 작업이었고, 건축물이란 그 연장선상에서 공간을 구획시키는 기계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들뢰즈와 가타리 역시 근대의 모든 산물은 ‘기계와 기계의 이항접속’의 결과물이라고 해석한다. 예컨데 밥을 먹는 일은 수저-기계와 입-기계의 접속이고, 자동차 역시 사람들의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기계인 셈이다. 인간은 가정, 회사, 거리, 술집, 교회을 전전하면서 자신의 공간을 ‘탈영토화’하고 ‘재영토화’ 한다. 이러한 배치가 안정화되면 그 사회는 다시 커다란 기계로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공간적 신체’(르페브르)이며, 공간의 생산물이 된다. 선생/학생, 의사/환자, 목사/성도는 학교, 병원, 교회라는 거대한 기계적 공간에 부합하는 신체로 가공되고 변형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계는 그 본질상 불가사리처럼 계속 커지고 비슷한 기능을 가진 주변의 사물들을 통합해 가게 되는 것이다. 한국 대형교회의 탄생은 결국 효율성과 시스템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어두움에 거하라"


       사실 시간과 공간의 구획화가 불완전했던 전근대 시대에는 자기 나이가 얼마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국가와 민족의 개념도 선명하지 않았다. 근대는 ‘해가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가서 쉬던’ 시대에서, ‘분, 초 단위까지 관리되며 노동하는’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르 코르뷔제의 말대로 집이 거대한 기계라면, 인간의 의식 역시 기계화, 시스템화 되어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집의 개념은 이와 달라야 한다. 집은 인간이 안식하는 곳이고, 기계의 전원을 꺼야 하는 곳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기독교는 ‘빛에 거하라’는 말을, 어둠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 억압을 정당화하는 목적으로 사용해 왔다. 그리고 근대는 그 ‘빛'을 기계, 과학, 효율성으로 재해석했다. 그러나 인간은 불을 끈 어둠 속에서서만 쉴 수 있다. 효율성과 이유를 떠나, 우리는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주는 존재를 필요로 하고(그래서 신이 우리에게 부모를 주셨다), 불을 끄고 마음 속에 있는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인간 내면에 학문적인(위상학) 공간성을 최초로 부여한 프로이트가 전기충격요법이나 최면을 거부하고, ‘자유연상법’(조명을 줄이고 편하게 누워 이야기하게 하는 것)을 정신분석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도입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만약 가정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효율성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원형에 사로잡혀 자신의 의식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계산 가능성’을 신봉하는 근대의 기획은 인간의 상상력이나 직관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고, 형이상학이나 종교는 그것들과 함께 외부로 내몰려 버렸다. 그러나 인간은 이와 같은 기계의 시대를 얼마나 견딜 수 있었는가. 극단적 방식(자살)의 탈주가 급증하고 있고, 기계의 부속으로 자녀를 대하던 부모에 대한 반발이 인류 역사상 가장 거센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근대적 공간이 형성한 근대적 ‘의식’은 이제 그 이면의 무의식의 반발과 그로 인한 부조화로 자신의 좌표를 상실해 가고 있다. 근대적 주체가 실재가 아니라, 담론의 한 형식에 불과하다는 구조주의자들의 분석 이면에는, 그 주체를 존재하게 하는 의식의 불완전성과 편파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의식은 다분히 공간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직선이 아닌 공간(삐뚤어진 액자, 굽어진 방)을 견디지 못하는 근대 인간의 의식은 분명 기하학적 산물 그 이상으로 평가받기는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가정, 그리고 그 집합인 주거 공동체 공간의 의미는 이와 같은 반(反)기계적 성향을 지닐 수 밖에 없다. 미셸 세르토는 공간의 감시로부터 탈주하여 도시를 가로질러 사는 삶을 이야기한다. 공간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동선을 만들고 우리의 일상을 그 라인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훈육한다. 공간은 우리의 움직임을 이미 파악하고 있고, 매 단계마다 이항접속을 실행한다. 이 동선으로부터의 탈주는 용기를 필요로 하며, 전혀 예측되지 않은 방향으로의 전개가 요구된다. 공간의 질서와 법칙을 발견하고 체계화하는 사람을 우리는 천재라고 부르며(그래서 천재들은 어쨌거나 우리의 언어 체계 안에 존재한다), 공간에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고, 가로지르고, 사각지대를 찾고, 허를 찌르는 사람을 선지자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전혀 새로운 경로, 허를 찌르는 상상력, 어떤 무조건적이 것, 효율적이지 않은 것, 외부로부터의 은혜, 어두움에 속한 것이어야 한다. 흥미롭게도 시간의 구획화를 무시한 채 출퇴근 시간, 휴가 일정을 자유롭게 하고, 오후 일과 중 몇 시간을 사무실 불을 소등하고 자유시간을 가지도록 하는 외국의 일부 기업들의 생산성이 우리보다 훨씬 높고, 아이디어 개발과 특허 출원이 급증하는 것은 무의식으로부터 이런 직관의 힘을 꺼내는 방식을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이런 ‘어두움’의 관점에서 다시 조명되어야 한다. 어찌보면 우리의 구원은 이 영역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구현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바로 가정, 그리고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와 공동체를 허용하신 가장 큰 이유는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두움 속의 안식’을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우리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성품을 담는 참된 인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간 생산의 시급성


       이런 의미에서, 두 번째 건축을 시도하면서 우리 공동체가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것은 바로 설계였다. 13년 전에는 설계의 중요성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었다. 우리가 경험했던 공간은 아파트 형태(넓은 거실, 방3, 화장실2, 베란다)의 구조뿐이었고, 그 이상을 상상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인의 59%가 살고 있는(비슷한 구조의 빌라를 포함하면 80%) 아파트는 사실 가장 전체주의적이며 가부장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파트에서는 개인의 삶은 보장받기 어려우며, 불을 끌 수 있는 어둠의 자유 역시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안식할 수 없는 공간에서 우리의 무의식은 더 깊이 억압되고, 그로 인해 외부의 기계적 삶에 억압된 의식은 가정에서조차 안식을 얻을 수 없게 된다. 더구나 아파트는 동일한 형태의 가옥 구조 속에서 늘 집 값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익공동체가 아닌가. 그 허위적 소속감과 만족감, 자괴감이 안식을 줄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서로를 위로하는 대화, 자기를 성찰하는 기도,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통해 내면을 정돈하는 독서가 가정 내의 어떤 공간에서 가능한가. 가정이 어렵다면 공동체 내의 어떤 공간이 만들어져야 하는가. 우리의 ‘정신승리’로는 가능하지 않은 더 큰 원인이 존재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낼 수 있겠는가. 해가 거듭될 수록 우리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그래서 2015년 봄에 우리는 다시 서울을 벗어난 외곽에서 땅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소가 정해지자 6개월에 가까운 기간동안 우리는 모두 각자의 필요를 쏟아 놓고 설계에 집중하였다.   

       르페브르는 공간이 절대적인 것이라는 칸트, 뉴튼의 생각을 거부하고, 공간이 바로 '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생산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공간 생산의 방향을 몇 가지로 설정하였다. 우선 구성원 각자의 사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가족이라해도 서로 방해할 수 없는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우선 가정 내에서 전시용으로 불필요하게 확장된 큰 거실을 포기할 필요가 있었다. 큰 거실은 대형 TV를 멀리서 보는 즐거움과, 외부 손님들이 가정의 경제력과 화목함을 느끼게 할 미장센을 연출하는 용도 외에는 실제적인 목적이 없는 장소로, 주로 가부장적 존재가 TV리모콘을 들고 혼자 소파에 누워있기 일수인, 그리고 가족들이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을 한없이 지연시키는 죽은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나라 외에는 전체 집의 면적 대비 이렇게 거실이 큰 집은 찾아보기 어렵다. 두 번째는 이와 반대로 공유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것은 각 가정 바깥에 존재해야 하는데, 이것은 첫 번째 방향(사적 공간의 확보)과 상충되지 않기 위해서다. 공유공간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지만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곳이며, 외부에 개방하고 타인을 환대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적공간에서 일어나기 힘든 환대가 공적 공간에서는 가능해진다. 이것은 공적 영역이 사라져가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투쟁의 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건축물의 지하에 넓게 땅을 파고 다용도 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다. 이것이 근린생활시설로 신고가 되어 준공허가를 받는데 많은 고생을 하기는 했고, 생각보다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기도 했지만, 이 공간이 공동체와 마을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얻는 것이 훨씬 많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탈주 과정


       각 가정의 설계에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한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가정마다 모든 공간의 타일, 벽지, 가구, 부엌, 전기등, 블라인드, 바닥재, 소품을 직접 선택했고, 외부에서 조달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고, 우리는 그들의 의사를 가능하면 존중해 주기로 했다. 특히 사적 공간의 확보와 가정 간의 선호 공간점유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를 수 차례 변경하면서 결국 우리는 2층~5층까지 한 가정이 사용하는 ‘땅콩집’ 형태의 건축물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복층의 답답함을 없애기 위해 반(半)층씩 공간을 조성하는 스킵플로어(skip floor)방식을 도입해서 독특한 공간을 만들었다. 오르내리기 힘든 점도 있지만, 모두가 방해받지 않는 각자의 안정된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장점이 더욱 중요했다. 이웃과의 층간 소음 갈등을 걱정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특히 설계하는 과정에서 각자에게 필요한 공간의 필요성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공간설계 아이디어들이 쏟아졌고, 우리 집에서는 전혀 필요없다고 느꼈지만 다른 집에서는 반드시 만들기를 원하는 공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건물을 같이 세우는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점과 성향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알게 되는 소득도 있었다. 이것은 앞의 글에서 강조한 공동체의 ‘임의적 특이성’ 또는 ‘다중성’을 구현하는데 필수적인 정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는 획일화, 전체주의화 되어서는 안된다. 구성원들의 개성과 요구가 살아 있고, 그것을 서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정이란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핵심을 리더십, 규약, 목표의식, 비전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차이를 수용하는 성숙함이다. 우정은 자선이나 환대를 넘어서는 가장 성숙한 사랑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또한 차이에 대한 인식은 향후 공동체의 성격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공동체는 '원래 그래야만 하는’ 형식이나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구성원들의 개별적 차이가 융합되어 형성된다. 그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공동체의 생명력을 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각자의 삶의 방식을 수용하는 다중의 공동체였다.

       이제 다음 글에서는 새로 만들어진 공동체 공간에서의 삶과, 우리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큰 숙제인 교회의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묶어주고 지평융합을 이루는 힘은 바로 '공유된 가치’(shared values)에 있다. 이것은, 역사성에 매몰되어 어떤 지속적이고 일관된 의미도 생성해 내기 어려웠던 철학적 해석학에 반(反)하여 움베르토 에코가 주장했던 ‘의미론적 동위체(isotophy)’와도 같은 것이다. 시대마다 용어와 해석이 달라지더라도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는 있는 법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항상 의미를 찾고자 하며, 시대적 언어를 초월해서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공동체의 좌표는 동시대적 관계와 역사적 연계 속에 생성된다. 따라서 ‘공유된 가치’는 반드시 공동체 스스로의 노력으로 시대마다 다른 언어로 정의되어야 한다. 이것은 해석의 과제임과 동시에 실천적 책임이기도 하다.


ⓒ 웹진 <제3시대>

  1.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 곳에 오래 매여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 수치가 세상변혁이라는 불가능성에 대한 부담과 지나친 민감함에서 나온 혼란이었음을 깨달은 후에 나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 톱니바퀴로부터 일탈하여 나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소박한 대안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십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시작된 법인사업과 생활대안운동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해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웹진을 통해 앞으로 4차례에 걸쳐 그 가치생성의 과정을 일부 나눌 예정이다. (주) 포리토리아 대표,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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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오경의 약자보호법





김진양

(Ph.D. The 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 (the Old Testament))




  기업총수의 가석방 소식을 접하거나 불법 대선자금으로 기소된 정치인들이 솜방망이 처분을 받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허탈해 하면서 종종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법은 만인이 아니라 오직 만명에게만 평등하다.” 법이 부자와 권력자의 방패막이로 전락해 버린 안타까운 사회를 풍자한 말이다. 법이 보호해야 할 대상은 사실 다름 아닌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같은 무시무시한 엄벌주의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부자나 권력자가 자신의 힘을 이용해 약자나 가난한자의 눈을 상하게 하면 자신의 눈으로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사실 만인에게 평등한 법이다. 또한 함무라비 법전은 최저임금을 제정하여 약자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등 인류 최초의 약자 인권 보호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약자를 위한 인권 보호법은 함무라비 법전 서문에 잘 나와 있다: “백성의 복지와 안녕을 촉진하고, 정의가 온 땅에 충만하여 악을 멸하고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일이 없고 고아와 과부를 보호하기 위해 법을 만든다.”[각주:1]


  모세오경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창조 이야기나 출애굽 사건이 아니라 함무라비가 정의의 신 세메쉬에게 법을 수여 받은 것처럼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 즉 법을 수여 받은 것이다. 모세가 받은 법은 출애굽 한 히브리인들이 더 이상 바로의 억압과 노예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을 배우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법은 인간실존인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모세오경은 함무라비 법전과 유사한 “계약 법전”(출애굽기 20-23)을 포함하고 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구체적인 방향을 보여준 “성결 법전” (레위기 17-26)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를 설정하는 “신명기 법전”(신명기 12-26)도 포함하고 있다. 모세오경을 하나의 법전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 세 법전이다. 세 법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떤 것일까? 바로 레위기 19장 18절 말씀이다: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레위기의 이 말씀은 약자와 가난한 자를 보호하는 성서적인 복지법을 한마디로 요약한다고 할 수 있다.


  너의 이웃은 누구인가? 이웃이라는 히브리어 단어 “레아”(רע)는 모세오경에서 “동료”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였고(출애굽기 2:13; 11:2; 21:14; 22:7; 레위기 20:10), 때로는 “약자”나 “가난한 자”를 이웃으로 규정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레위기 19:13, 16). “외국인” 혹은 “이방인”으로 번역될 수 있는 히브리어 “겔”(גר)은 창세기에 2번, 민수기와 출애굽기에 각각 9번, 레위기에 18번, 신명기에 21번 나온다. 모세오경의 다른 어떤 책보다 신명기는 가난한 외국인을 이웃으로 간주하여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법)임을 분명히 있다(신명기 24:10-18).


    신명기에는 추수기에 거두어들인 수확을 반드시 가난한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하는 법이 있다. 추수하는 곡식을 가난한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와 나누고 올리브 나무 열매와 포도를 가난한 외국인과 과부와 고아와 함께 나누는 법이다(신명기 24:19-22).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하늘의 선물인 땅의 소산물을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눈다는 신앙고백이며, 우리 신앙인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법인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신명기 법전은 특별하다.


 모세오경의 법전의 약자 보호법은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에서 온 것이다. 신명기 법전의 한 조문은 이를 잘 반영한다.


외국 사람과 고아의 소송을 맡아 억울하게 재판해서는 안된다. 과부의 옷을 저당 잡아서는 안된다. 너희가 애굽의 종살이하던 것과 주 하나님이 너희를 거기에서 속량하여 주신 것을 기억하라(신명기 24:17-18).


 계약법전도 약자 보호법을 같은 맥락에서 언급하고 있다.  


너희는 이방인을 학대하거나 억압해서는 안된다. 너희도 애굽 땅에서 몸붙여 살던 나그네였다. 너희는 과부와 고아를 괴롭히면 안 된다(출애굽기 22:21-22).   


 성경법전도 약자를 억압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출애굽 경험에서 소개하고 있다.


너희와 함께 사는 외국인 나그네를 너희의 본토인처럼 여기고 그를 너희의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너희도 애굽 땅에 살 때에는 외국인 나그네 신세였다(레위기 19:34).


 고대 이스라엘의 약자 보호법을 고난신학으로 해석하는 김이곤 교수는 신명기 법전의 약자 보호법을 “부르짖음-응답하심”이라는 신명기 사가의 역사관에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각주:2] 시편 미드라쉬의 주석에서, “가난한 자와 부자가 함께 재판을 받을 때 세상은 누구의 편을 들어주는가? 부자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가난한자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않으신다”고 하면서 가난한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을 찬송한다.[각주:3] 이 주석을 보완하기 위해 시편 미드라쉬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예증을 보여준다.


 어느 날 일천의 번제물을 가지고 온 아그리빠 왕이 대사제를 향하여 “오늘만은 나 외의 어느 누구의 번제물을 제단에 올리지 마시오!”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뒤이어 찾아 온 한 가난한 자가 두 마리의 비둘기를 내어 놓으며 번제로 드려 달라고 간청하게 되었는데 대사제는 왕명을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그때 그 가난한 자가 말하기를 자기는 매일 네 마리의 비둘기 밖에 잡는 것이 없는데 그 중 둘은 자기 식구가 먹고 나머지 둘은 번제로 드리는 것인데 만일 이것을 드려 주지 않으면 자기의 생계는 끝난다고 애원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 대사제는 가난한 자의 청을 들어 줄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이 일이 있은 후 왕은 꿈의 계시를 통하여 가난한 자의 번제와 자기의 번제와 같은 날에 드려졌고 그의 하찮은 번제물이 자신의 일천 번제물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한 번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대사제를 문책하게 된다. 그때 대사제는 사건의 전말을 왕에게 아뢰었다. 아그리빠 왕은 대사제를 치하하면서, “주께서는 가난한자의 비천함을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셨다”라고 했다.[각주:4]


 시편의 3분의 1이 약자나 가난한 자가 하늘의 도움을 요청하는 탄원시다. 탄원시의 기본적인 구조도 역시 신명기 사관의 역사관을 보여주고 있다: (1) 하나님을 찾음 ⇒ (2) 삶의 구체적인 고난 상황에 대한 탄식 ⇒ (3) 응답/구원. 이처럼 탄원시가 가지고 있는 삼부구조를 통해 인간실존은 하나님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없이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다.[각주:5]


 모세오경의 세 법전(계약법전, 성결법전, 신명기 법전)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이 관계정립에 있어서 모세오경의 법전은 강자나 권력자의 불의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약자와(과부와 고아) 가난한자의 손을 들어주는 정의를 실천하는 만인에게 평등한 법이다.


* 필자소개

    현재 미 연합감리교회 북 일리노이 연회에서 목회, 시카고 루터란 신학대학에서 구약학 전공(Ph.D.), 시카고 루터란 신학대학 외래교수,  Wartburg College에서 강의


ⓒ 웹진 <제3시대>

  1. James Prichard, ed. Ancient Near Eastern Text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5). p. 164. [본문으로]
  2. 김이곤, 『구약성서의 고난신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9). 101-03쪽. [본문으로]
  3. The Midrash on Psalms, Trans. by W. G. Braude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9/1976), vol. 1:323. [본문으로]
  4. Ibid., pp. 323-324. [본문으로]
  5. C. Westermann, Praise and Lament in the Psalms (Atlanta: John Knox Press, 1981), p. 18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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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세 번째[각주:1]


'주권교인'의 탄생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카리스마적 리더십


    여의도순복음교회 부설 교회성장연구소 소장이던 홍영기의 책 《한국 초대형 교회와 카리스마 리더십》은 한국의 대형교회에 대한 기념비적 연구서다. 이 책은 한국의 초대형교회(Giga-Church, 일요일 대예배에 출석한 성인교인이 1만 명 이상인 교회) 13개를 분석한 것인데, 이 책의 핵심 논지는 담임목사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교회 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데 있다. 저자는 초대형교회로 한정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난 연재글에서 보았듯이, 나는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대형교회(일요일 대예배에 출석한 성인교인이 2천명 이상인 교회), 나아가 초대형교회로 성장하게 되는 데 있어 이 요소는 매우 중요한 전제조건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다음 글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대형교회로 성장하는 데 있어 카리스마적 리더십만큼이나 중요한 다른 요소를 언급할 수 있다. 그것은 교회 건축과 관련된다.)

    한편, 저자의 호교론적 설명과는 다르지만,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내 식으로 이야기하면, 교회의 가용자원에 대한 독점적 지배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것을 성장에 집중 투여함으로써 성공한 교회들이 (초)대형교회들이었다는 얘기다. (물론 지난 글에서 얘기한 것처럼 카리스마적 리더로서 자원의 독점에 성공한 이들은 중・소형 교회에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장기간’ 유지되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대형교회들에선 담임목사는 20~40년간 교회의 절대적 권력자였고, 그 이후에도 은퇴목사로서 사실상의 지배력을 사망 때까지 유지했다.

    이와 같이 1인의 카리스마적 리더가 성장을 위해 가용자원을 장기간 집중 투여함으로써 성공을 실현해낸다는 것은 교회뿐 아니라 국가, 그리고 기업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특히 1960~1990년 사이에 성장지상주의와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결합은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주권교인'의 탄생


    한데 1990년 어간 이전까지 대형교회의 등장은 개신교 교세의 증가와 더불어 나타났다. 반면 그 어간 이후부터 교세의 증가 추세는 급격히 쇠락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마이너스 성장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시기에도 (초)대형교회로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들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1990년 어간 이후에는 교인들의 ‘수평이동’이 여러 (초)대형교회를 탄생시키는 주된 요소였다는 사실이다. 즉 다른 교회에서 이동한 이들이 대대적으로 유입됨으로써 (초)대형교회로 성장한 교회들이 많다는 것이다.

   1992년의 《기독교대연감》에는 1991년의 한국개신교 인구가 일천이백만 명이 조금 넘는 것으로 나온다. 또 2013년 한국목회자협의회가 전문기관에 의뢰하여 조사한 바에 따르면 22.5%가 개신교도다. 이는 대략 113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한데 2005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전수조사된 개신교 인구는 18.3%, 860여만 명에 불과하다. 거의 3~4백만 명이나 되는 통계상의 차이는 주로 중복교적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수평이동이 많다는 얘기다.

    타종교인 또는 비종교인에서 개신교 신자가 되는 이는 대개 교회를 잘 모르는 자이기 때문에 교회의 훈육 대상이 된다. 하여 이런 신자들이 많던 1990년 어간 이전에는 새신자 양육 프로그램이 많은 교회들로부터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1990년 어간 이후에는 가정회복 프로그램이나 자기계발 프로그램 같은 가족과 사회생활을 위한 신앙적 주체형성 프로그램이 더 활발하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 게재될 글들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할 것이다.) 이것은 새신자보다 수평이동한 교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교회들이 더 많이 활용한 결과다.

   이러한 수평이동 현상이 더 중요해졌다는 사실은 선교 상황의 변화를 의미한다. 도시의 인구집중이 많지 않고 사람들이 넓은 곳에 산개하여 살고 있으며 교통수단이 덜 발전하여 신속한 이동이 여의치 않은 사회는 교구 개념이 발전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회에서 수평이동 현상은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서울처럼 인구가 과잉 집중된 사회, 그리고 교통수단이 대단히 발달한 사회에서 교회는 일종의 종교시장의 상품처럼 선택되고 소비된다. 이때 디지털화된 콘텐츠가 무한 유통되는 정보사회의 매스미디어가 충분히 발달하면 선택될 상품의 가치는 더 다양화되고 더 세밀화되어 전시된다. 그러므로 수평이동 교인들은 교회들에 대해 더 많고 깊은 정보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판단하여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주목할 것은 이러한 정보능력은 사회적 지식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비례한다. 즉 사회적 엘리트일수록 수평교인일 가능성이 많다. 

    이런 교인들을 더 많이 끌어들임으로써 여러 (초)대형교회들이 탄생했다. 물론 이 교회들에서도 1인의 카리스마적 리더가 모든 가용자원을 독점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이의 성장전략이 성공하려면 수동적인 새신자를 훈육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더 주체적인 신자들을 위한 선택지를 확대하여야 한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이 시기에 (초)대형교회로 성장한 교회들만의 현상은 아니다. 교인들의 유출을 막아야 하는 교회들, 그리고 다른 수평이동 교인들을 유치하려는 교회들도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성장전략을 강구해야 했다. 하여 이러한 상황은 교인들의 주권이 한결 강화되는 상황과 겹쳐서 전개된다. 나는 이를 ‘주권교인의 탄생’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을 너무 과장해서는 안 된다. 아직 교회제도는 1인의 카리스마적 리더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고, 신학도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더욱이 대형교회들의 경우는 그 1인의 위상이 여전히 훨씬 더 중요하다. 요컨대 ‘주권교인’은 제도에 있어서는 그 맹아적 형태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런 표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주권교인들의 교회에서의 활동 영역은 제도가 보증하고 있지 않음에도 점점 확장되고 있고, 때로는 매우 중요한 위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재에서 계속 이야기할 ‘웰빙-우파’의 등장은 바로 이 주권교인의 등장과 상당부분 겹친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글들에서 주권교인에 등장의 현상과 의미에 관한 이야기들이 다루어질 것이다.


'주의 종'들의 천민화


    선교 초기부터 개신교는 많은 학교들을 만들었다. 여기선 신분과 성별의 차이가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가운데 근대적 교육이 수행되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이후 미국계 장로교의 성공과 더불어 미국 유학생들 가운데 신학교육을 받은 이들의 비중이 대단히 높게 되었다. 1945년 이후 교회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은 자원을 가진 사회세력이 되었고, 교회의 엘리트가 된다는 것은 그 자원들에 대한 통제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1950~1980년대, 그러니까 대학생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던 시절에 목사들은 교회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유력한 엘리트의 하나였다.  

    하지만 1980년대 어간에 개신교 교세가 초고속으로 성장하던 때에 많은 교단들은 편법을 쓰기 시작했다. 국가로부터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신학교와 신학생들을 양산했다. 이들은 교단 내에서 심학 차별대우를 받았기에, 성공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 성장을 추구하곤 했다. 그런 이들 중 일부가 중・대형교회를 만들어냈다.

    물론 높은 학력을 인정받는 신학대학 졸업자들의 경우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성장만을 위해 올인하던 많은 목회자들은 그만큼의 지성을 갖출 여유가 없었다. 한데 교회가 커갈수록 교인들 가운데 높은 학력을 보유한 이들이 많아졌고, 이는 ‘학력위조’에 대한 필요를 증가시켰다. 요컨대 1980년대를 전후로 하는 시기에 많은 목회자들의 성장지상주의적 전략들은 목회자들에 대한 사회적 위상을 격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여 1990년대에 이르면 신학교의 위상은 급락한다. 성장이 둔화되면서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교권세력이 신학교에 대한 지원을 과거만큼 크게 확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교육에 대한 통제를 본격화했다. 이것은 신학자들로 하여금 근대적 학문의 공론장에서 스스로를 유폐시키게 했다. 신학생들도, 교회 성장세의 급격한 둔화로 인해 취업시장이 얼어붙게 되자, 성장지상주의적 기능성 신학에 몰두했다. 그것은 인문학으로서의 신학이 외면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기에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역할이 크게 둔화되면서 기독교의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와해되자 신학대학은 근본주의 일색의 교회에 완벽히 포위되어 버렸다.

    교회 사역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중・소형교회의 많은 엘리트 교인들이 수평이동하여 몇몇 대형교회로 속속 옮겨가고 있었고, 새로운 신자의 유입은 거의 멈춰버렸다. 또 적잖은 이들이 다른 종교로 옮겨가거나 비종교인이 되었다. 교회성장의 새로운 비법으로 유행하는 각종 프로그램들은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최소한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들이어서 중・소형교회들에선 효용성이 매우 낮았다. 하여 매년 1천 개 이상의 교회들이 사라져갔고, 생존하고 있는 교회들도 점점 상황은 악화되거나 현상유지에 급급할 뿐이었다. 더구나 파행화된 신학교육으로 인해 신학적 소양이 매우 낮은 이들이 교회로 유입되었다. 악화된 선교환경을 해석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이들에 의해 운영되는 교회들이 난무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도시교회에서, 특히 서울의 교회들에서 목회자나 신학생은 가장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에 속한다. 교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고, 이것은 목사들의 주요사역의 하나인 설교를 경청하지 않게 했다. 이것은 목사에 대한 존경심의 붕괴를 의미했다. 하여 ‘주의 종’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던 목사들은 실제로 천민적 존재로 추락했다.


'증오의 정치'와 주권교인의 이반


    최근 대외적으로 선교의 위기가 심화되고 대내적으로 존경심의 붕괴로 인한 지도력의 위기에 놓인 많은 목회자들을 결속시키는 교계의 기획들이 등장했다. 그중 하나가 ‘증오의 정치’의 활성화다. 자신들이 겪고 있는 위기를 직시하기보다는 다른 것에 투사하여 그것을 증오하고 공격적 행위를 조직해내고 수행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자, 이단, 성소수자 등이 오늘날 교회에 의해 적으로 지목된 주요 표적들이다.

    목사 등, 교회사역자들이 적을 향한 증오를 위해 극우주의 정당을 만들었다. 또 교회의 설교의 자리에서 무수한 증오의 말들을 쏟아내었다. 그런데 그들은 정당을 만들 만한, 그리고 엘리트교인들을 설득할 만한 논리를 갖추지 못했다. 더욱이 약한 논리를 포장할, 존경의 위상도 거의 무너졌다. 하여 엘리트 교인들은 교회를 이탈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가거나 남아 있더라도 목사들의 정치에 동조하기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차차 독자적인 행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진보적 행동주의 단체에 동조하는 활동을 개시한 이들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은 ‘다른 보수적 행동’을 시작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첫번째 글로, [주간경향]에는 <대형교회는 강력한 웰빙 문화공간이다>(1183호. 2016. 07. 05)로 게재되었습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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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과학"(Scientia)의 개념



유승현

(GTU Ph.D Candidate)


   과학은 신학의 적인가, 동지인가? 신학과 과학의 올바른 관계성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과학”이라는 용어에 대한 현대 신학적 이해의 장단점 뿐만 아니라, 고대와 중세의 신학자들이 과학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들의 신학에 적용했는가를 추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과학은 현대의 자연과학에 국한된 특정한 연구 영역이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에서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지식의 총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그들의 폭넓고 깊이 있는 과학이라는 용어 이해에 대한 관점이 오늘날 과학과 신학의 논의에 적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2회에 걸쳐서 고대와 중세의 대표적인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와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과학”의 개념에 관해 논의하려고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후의 논의는 다음 세가지 물음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다. 1) 그들의 과학 개념을 형성한 철학적인 배경은 무엇인가? 2) 그들은 과학과 신학의 관계성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3) 그들은 당시의 자연 과학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가?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과학' 개념의 철학적 배경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론적 지성 (speculative intellect)의 성격을 지혜 (wisdom), 과학 (science), 이해 (understanding)으로 세분화한다.[각주:1] “이해”는 그것 자신에 의해서 인식될 수 있는 진리인데 반해서 “지혜”와 “과학”은 다른 것들에 의해서 인식된다. 더 나아가 “지혜”는 본성에 의해 우선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들을 나타내는데 반해서, “과학”은 다양한 인식 가능한 질료 (matters)에 의해 인식된다. 그렇다면 지혜, 과학, 이해의 세 가지는 어떤 층위를 가지고 있는가? 토마스에 따르면, “과학은 보다 상위의 가치인 이해에 의존한다. 또한 이 둘은 최상위에 이르기 위해 지혜에 의존한다. 과학의 결론과 과학과 이해가 기반하고 있는 원리들 모두를 판단함으로써, 지혜는 그 하위에 이해와 과학을 포함한다.”[각주:2]

   토마스는 과학이 지혜 뿐만 아니라 제일원인인 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믿었다. 이런 토마스의 기본적인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유산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 대한 몇 가지 주석서들을 열정적으로 집필했다.[각주:3] 토마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광범위한 영향력은 단적으로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철학자” (the Philosopher)라고 지칭한 것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그의 영향력은 형식 논리학 (formal logic), 현실태와 가능태 (actuality and potentiality), 4원인설, 지식에 대한 이해, 형이상학 등 다양한 영역을 포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 체계를 따라 아퀴나스는 명증적 삼단논법 (demonstrative syllogism)을 과학의 적절한 대상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논리학과 수학에 국한된 명증적 삼단논법의 결과로서의 토마스의 scientia에 대한 설명이 과학의 적절한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토마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적 과학이 가능한가?

   이 문제에 관해서, 1912년에 출판된 The Catholic Encyclopedia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의 과학 개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정의를 제시해 준다: “과학은 자연과학이라는 제한적 의미로 이해되지 않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용어의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해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을 증명에 의해 얻을 수 있는 확실하고 분명한 지식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그들의 원인들로부터 파생되는 사물들 (things)에 대한 지식으로서 토마스의 과학에 대한 정의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각주:4]

   이 인용에서 나오는 토마스의 과학에 대한 정의는 그의 “이교도 대전” (Summa contra Gentiles)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토마스는 그의 과학에 대한 정의에 근거한 신에 대한 하나의 명제를 제시한다: “만약 과학이 그 원인에 의해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한 지식이라면, 또한 신이 모든 원인들과 결과들의 순서를 안다면, 또한 그에 따라 개별자들의 적절한 원인을 안다면, 적절한 의미에서 그것은 신 안에 과학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각주:5] 이러한 추론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삼단논법의 하나의 전형을 보여준다. 만약 토마스가 신을 설명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을 적용한다면, 신에 대한 과학은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로 추론과 증명을 사용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닌가?


이성인가 믿음인가?


   앞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토마스의 체계에 내재되어 있는 이성과 믿음, 과학과 신학에 대한 관계성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토마스의 입장이 어거스틴과 다른 점은 어거스틴의 경우 과학과 이성의 모호성을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측면 모두에서 논의하는 반면에, 토마스의 철학은 믿음과 모순되지 않으며 더 나아가 그의 체계에 있어서 보다 필수적인 위치를 점유한다는데 있다. 토마스는 때때로 이성에 관한 어기스틴의 생각을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그는 어거스틴의 “기독교 교리에 관하여” (On Christian Doctrine)에 나타난 철학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사용에 관해 인용한다.[각주:6] 그러나, 토마스는 어기스틴이 의도하는 것과 같은 철학의 신학적 전용을 의도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토마스에게 있어서 믿음과 이성은 각각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신성한 교리 (sacred doctrine)가 믿음의 빛에 기반하는 것처럼, 철학은 이성의 자연적 빛에 의존한다.”[각주:7] 이 점에서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신학과 신에 관한 지식은 오직 믿음의 빛에만 의존하는가? 토마스에게 있어서, 비록 이성이 철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오로지 철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신학에서 뿌리 깊은 역할” [각주:8](ineradicable role in theology)을 수행한다.

   과학에 있어서 이러한 철학의 확장된 기능은 토마스가 “신성한 지식” (scientia divina)과 “신에 관한 지식” (scientia dei)을 구분한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신성한 지식”은 신적인 문제들에 관련된 모든 영역들, 예를 들면 제일철학, 형이상학, 철학적 신학, 자연신학을 포괄한다. 반면에 “신에 관한 지식”은 계시의 영역에 제한된다.[각주:9] 중요한 점은 토마스가 계시에 의해서 드러난 지식까지도 과학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토마스에게 있어서 과학의 영역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인식의 차이점들에 기인한다. 만약 자연과학과 자연철학이 인식의 차이점들에 의해서 다르게 인식된다면, 신적인 계시에 기반한 또다른 과학이 인간의 이성의 빛에서 이해되는 것이 가능하다.[각주:10]

   이성에 대한 토마스의 강조는 믿음의 기능에 대한 약화로 잘못 이해되어질 수 있다. 그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토마스는 이성의 궁극적인 과제는 단지 “믿음의 머리말”[각주:11] (the preambles of the faith)이라고 말함으로써 믿음이 이성에 의해서 완전하게 입증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신성한 교리가 인간의 이성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이성은 믿음을 입증하기 위해서 위해서 사용될 수는 없다. 그것은 믿음의 가치를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성은 이 교리 안에 놓여진 다른 것들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사용된다.”[각주:12] 따라서, 토마스의 체계 안에서 신학적 추론이 가진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모든 것으로 확장될 수 있다. 


과학의 영역들에 대한 토마스의 입장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과학에 대한 토마스의 개념은 논리학, 수학, 기하학과 같은 자연 세계로부터 분리된 선험적 진리들에 치우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토마스에게 있어서 그러한 전형적 과학 (paradigmatic science)의 영역들은 사실적 증명들이 필요한 비전형적이고 (non-paradigmatic) 종속적인 과학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왜 대상들에 대한 비전형적인 인식들은 절대적으로 필수불가결한 “과학”에 미치지 못하는가? 비전형적인 인식들이 우발성에 의해 지배되는 자연 세계에 있는 물질적인 대상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그것들의 보편적인 특성 때문에 과학의 범주로 이해된다. 이런 의미에서 토마스는 특수성과 보편성, 감각적 인식과 신학적 추론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한다. 자연 과학에 대한 토마스의 이해에 있어서 그는 과학의 영역을 단지 인식론으로 제한하지 않고, 세계의 물질적인 모든 대상들로 확대한다.

   이 짧은 글에서 필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적 체계 속에서 그가 제시한 과학의 개념과 함께 이성과 믿음의 관계성에 관해 간략하게 고찰했다. 그가 철학적 추론의 신학적 전용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마스는 철학과 이성을 단지 신학과 믿음을 위한 시녀로 이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성의 철학적 사용, 믿음의 신학적 사용을 구분해서 언급함으로써 과학과 신학이 평행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서 이해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과학은 신학의 적인가, 아니면 동지인가? 이 둘의 관계성을 정립하기 위해서 수 세기 전의 신학자들의 글을 읽는 것은 때로는 무의미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에 국한된 현대적 이해로는 모든 인식의 영역을 “과학”이라 지칭하는 그들의 입장은 너무나 포괄적이고 막연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스의 scientia에 대한 관점은 과학과 신학 사이의 대결 구도를 극복할 수 있는 개념적 기초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1. Aquinas, Summa Theologica Ia-IIae, q.57, a.2. 앞으로 제시된 신학대전의 모든 인용은 영문판 http://www.ccel.org/ccel/aquinas/summa.toc.html 의 개인적인 번역임을 밝힌다. [본문으로]
  2. Ibid., Ia-IIae, q.57, a.2, r.2. [본문으로]
  3.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에 대한 토마스의 주석서들의 목록은 to Ian. A. Aertsen, “Aquinas’s Philosophy in Its Historical Setting,” in The Cambridge Companion to Aquinas, ed. Norman Kretzmann and Eleonore Stump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21. 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4. Charles G. Herbermann and others, ed., The Catholic Encyclopedia: An International Work of Reference on the Constitution, Doctrine, Discipline, and History of the Catholic Church, vol. XIII (New York: Robert Appleton Company, 1912), 598. [본문으로]
  5. Aquinas, Summa contra Gentiles, 1, 94. [본문으로]
  6. Augustine, On Christian Doctrine, II, 40, 60, quoted in Thomas Aquinas, Faith, Reason, and Theology: Questions I-IV of His Commentary on the De Trinitate of Boethius, trans. Armand Maurer (Toronto: Pontifical Institute of Mediaeval Studies, 1987), 48; cf. Summa Theologica, I,1,8 and II-II,1,a.5, ad 2 and 3; Summa contra Gentiles 1,2 and 9. [본문으로]
  7. Ibid; cf. Summa Contra Gentiles, II, 4. “신자와 철학자는 피조물들을 다른 방식으로 고찰한다. 철학자는 피조물들의 적절한 본성에 속한 것들을 고찰하는데 반해서, 신자는 오직 피조물들이 신에 관계되는 한에서, 예를 들면 피조물들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에게 종속된다는 것과 같은 진리에 대해서 고찰한다.” [본문으로]
  8. Denis J. M. Bradley, Aquinas on the Twofold Human Good: Reason and Human Happiness in Aquinas’s Moral Sciences (Washington, D.C.: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97), 78. [본문으로]
  9. Aquinas, Summa Theologica, II-II, 1, a.5. [본문으로]
  10. Ibid., Ia, 1, 1, ad 2; cf. scientia의 세가지 범주에 대한 토마스의 구분에 관해서는 Ia. 85. 1, ad 2. 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11. Aquinas, Summa contra Gentiles, I, 9, 3. [본문으로]
  12. Aquinas, Summa Theologica, I, 1, a.8, ad 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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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짓다



김윤동
(본 연구소 행정연구원)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어렸을 적 할아버지 방에는 고서(古書)들이 많이 꽂혀 있었다. 할아버지가 소장하신 책은 죄다 한자여서 알아볼 수가 없었는데, 그나마 몇 개 알아볼 수 있는 몇 개의 한글제목 책이 있었다. 그 소수의 책들 의 제목 또한 거의 한글로는 되어 있으나, 대체 무슨 책인지 알아먹을 수 없는 한자 음역의 책 제목들이 다수였고, 내 관심이나 깜냥으로는 알 수 없는 책들이 많았다. 그 중에 제목이 너무나 강렬하여 내 눈 속으로 돌격해 오는 제목이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누가 함부로 이름을 짓는가?’라는 책이었다. 책 표지마저 새빨간 색이었던 그 책은 제목은 너무나 강렬했지만, 제목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이름을 잘 지으라’는 이야기겠거니 하며 꺼내서 읽어 보지는 못했던 그런 책이었다. 그 책을 탐독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돌아가버리신 할아버지는 이름이란 자고로 ‘부르기도’ 좋아야 하고, ‘뜻’도 좋아야 한다는 성명에 관한 확고한 이론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6년이 지난 지금 할아버지의 책 중에서 그 책이 가장 생각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그 책의 제목이 어린 시절 내 마음 속에 강렬했던 모양이다. 이름을 짓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매우 신중한 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줄곧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고, 무의식 속의 그 명령 때문인지 얼마 전 태어난 나의 딸 아이의 이름은 고등학교 1학년인 17살 무렵에 이미 생각해 놓았던 ‘김수현’이란 이름으로 지어졌다.








나의 이름을 지어가기      


   누구나 — 별명이 아닌 자기 고유의 — 이름은 누군가로부터 지음을 받는다. 이미 태어났는데 이름은 지어져있다. 어느 순간 의식을 차려보면 나는 이름이 있다. 그것이 아버지가 되었든 어머니가 되었든, 할아버지/할머니, 심지어 이름 짓는 작명소가 되었든 나 아닌 다른 이가 나의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너는 누구이고 무엇인가?’에 관해 애초에 나에게는 권한이 없다는 의미다. 이름이란 모름지기 정체성, 곧 그 존재의 의미를 뜻하는데 나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이 애초에 나에게 결정권이 주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면 그만큼 나란 존재가 이미 타자에 의존된 존재란 것을 알 수 있다. 너는 애초에 ‘무엇이어야 한다’는 그 일면 축복과 강요가 뒤엉킨 그것이 바로 ‘나의 이름’인 것이다.

    즉, 인간은 처음부터 무엇’이었던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어야 하는’ 존재로 태어났다. 존재의 가능성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마치 내가 태어난 것이 미리 예정되었고 결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앞서 말했듯 축복과 강요의 정치학이 살아있는 한국의 이름짓기 방식은 ‘돌림자’라는 특유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물론 요즘은 그 돌림자라는 것이 구태의연하단 생각이 많아서 돌림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고 부르기 좋거나 유행하는 이름을 넣는 방식으로 짓곤 하는데, 만약 그렇게 한다면 왠지 모르게 마음 한 켠에 가문에 소속되지 못할 것만 같은 부담감을 이겨내야만 하는 숙제가 있다. 그것이 화석화되어 지금은 그저 허울뿐인 가부장제의 잔재로만 남아 있어 그런 부담감마저도 들지 않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만큼 이름에는 나의 계보와 근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내가 어디로부터 왔고 우주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떠안고 태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그 계보와 근원 말이다.

    고로 내가 떠안고 있는 나의 이름이란 지금 내가 이뤄내야 할 하나의 사명이다. 내가 ‘OOO’이란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이름의 성취를 위해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하기로 ‘하나님 나라’라는 거대한 하나님의 사명에 대해 아주 작지만 매우 소중한 일부분의 일을 맡아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나는 동녘 동(東)에 윤택할(또는 빛날, 젖은) 윤(潤)이라는 이름을 쓰는 나는 곧 빛나고 윤택한 삶을 살도록 요구받은 것이다. 윤택하다는 것은 내 존재가 빛나라는 온 가족의 염원을 담아 지어진 것이겠지만, 그 이름은 ‘빛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윤택한 삶’이란 게 무엇인지 날 고민하게 하였다. 나의 이름을 지은 할아버지는 ‘개인’으로서의 내가 그런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에 그런 이름을 지으신 것일테지만, 이미 그 의미는 할아버지나 나의 손을 떠나 이제 그 이름을 지닌 나란 존재가 어떻게 윤택하게 살 것이며, 나 뿐만이 아니라 가족과 주변을 이루는 사회 전체가, 더 나아가서는 지구 상의 생명체 모두가 ‘윤택하게 산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로써 ‘김윤동’으로서의 나는 내가 다른 이와 비교했을 때의 ‘상대적’ 윤택함, 즉 다른 사람의 어둠을 먹이 삼아 얻을 수 있는 윤택한 삶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생명이 윤택한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나 혼자가 아닌 더불어 윤택하게 사는 것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신 것이다. 


    즉, 이름 있는 모든 존재는 그 이름을 ‘짊어진’ 존재가 되는 것이며, 그 이름을 설계도 삼아 삶을 짓는 건축가가 되어 살아가야 한다. 집을 짓듯 나의 삶을 그 이름에 걸맞게 짓고 만들어가야 한다. 내 이름은 ‘선취(先取)’된 것이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지만, 이미 지어졌다. 내 이름의 뜻으로 나는 비록 완성되진 않았더라도, 살아서 완성해내야 하는 존재로 탄생되었다. 내 존재의 의미란 하나님에 의해 태초에 계획되었고, 아버지/어머니에 의해 매개되었으며, 나라는 존재에 의해 성취되는 구조다. 설령 나의 이름이 아버지가 딸 낳고 술 잡수신 채로 제발 내 아래로는 아들을 꼭 낳으라는 뜻으로 ‘O자(O子)’라고 이름 붙여졌을지라도 그것이 단순히 아들을 낳기 위한 염원을 넘어 왜 우리 사회에서 아들을 꼭 낳아야 하는 것인지, 아들을 낳는 것은 어떻게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에 어떻게 유익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 그 존재로 하여금 고민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지어진 것으로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이게 바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가 가진 ‘이름의 운명’이다. 나라는 존재는 결코 이 우주의 장구한 역사로부터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결국 내 이름을 지어가기 위한 사람이다. 내 이름에 걸맞는 내 삶을 튼튼한 벽돌로 기초를 세우고 비어 있는 틈을 메우고 아름다운 장식물로 꾸며 완성해 내야할 사명을 지닌 사람이다. 대체 이렇게 저렇게 끼워 맞춰도 의미가 찾아지지 않는 내 이름의 의미라 할지라도 그 이름은 온 인류의 과제를 짊어진 이름임을 기억해야 한다.


타자를 부름으로써 지어지는 내 이름


    앞에서 말했듯이 어떤 존재가 이름을 부여 받았다는 것은 삶의 설계도를 부여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내 이름이라는 설계도를 지으려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밥을 지으려면 쌀이 있어야 하듯 설계대로 내 삶을 지을 재료가 있어야 한다. 나 홀로 내 이름을 지을 수 없다. 즉, 나는 설계도만 가졌을 뿐 아무 것도 아니다. 혼자인 나는 ‘가능성’일 뿐 실제로는 존재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이름만 가진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모든 이름이란 그래서 존재의 모든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게 역설적인 특징이다.

    결국 내가 이 세상에 있기 위해서, 나의 이름을 짓기 위해서는 타자를 불러야 한다. 모든 일은 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김춘수의 ‘꽃’이 왜 이름에 관한 가장 유명한 시가 되었고, 우리의 존재를 뒤흔드는 시가 되었을까. 바로 ‘타자를 부르는 일’로부터 우리의 이름이 시작됨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의 1연과 2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몸짓’과 ‘꽃’은 하늘과 땅이 먼 것처럼 멀다. 그가 몸짓이라고 흔들어 대도 내가 불러주지 않으면 그것은 몸짓이지 꽃이 아니다. 여기서 ‘그’와 ‘나’를 바꾸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시의 화자는 3, 4연에서는 결국 1, 2연에서 벌어진 몸짓과 꽃의 관계를 근거 삼아 나의 존재를 성찰한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즉, 부름은 모든 일과 사건의 시작이다. 내가 부름으로 타자는 불려지고, 사건은 발생한다. 또한 타자를 내가 부름으로 나는 비로소 그에 대응하는 ‘내’가 된다. 부름이 사건을 만들어 서로의 이름이 되고, 그 이름은 존재가 ‘된다’. 기묘하게도 창세기 2장의 창조기사에서 최초의 사람 아담에게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진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창 2:19, 개역개정)


       이 구절 전까지 아담은 그 최초의 개체로서의 인간, 바로 그 사람으로서의 ‘아담(Adam)’이라고 불려지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다고 했을 때는 그 개체가 속한 종(種)의 집합적인 이름으로 일컫는 것이고, 또한 그를 일컫는 말 ‘남자’, 또는 ‘생령’이라는 그의 다른 이름은 종의 집합(무리)이 가진 특질(Character)을 말하는 것이었지, 그 개체의 고유 이름 ‘아담(Adam)’은 등장하지 않았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하와가 창조되기 전이므로 복수(複數)의 인간이 없었기에 이름에 개체적 특징과 집합적 특징이 구분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성경에서 그가 단독적인 몸을 가진 바로 그 한 사람 ‘아담’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각종 들짐승과 새들을 이끌어 가셔서 관계를 맺게 하실 때에 마침내 그는 ‘아담(Adam)’이 된다. 전까지 아담이 아니었던 그가 하나님이 들짐승과 새들과 관계를 맺도록 하시면서 비로소 ‘아담(Adam)’이라는 고유성을 획득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담(Adam)은 ‘흙’이라는 자기 이름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되고자 했다가 그만 타락했다. 아담 안에서 죄를 짓게 된 인류는 이후 ‘이름이 없는’ 죽음과 무(無)의 심연 속에서 고통받으며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성경에서는 죽음이 ‘죄의 결과’라고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결코 해명되지 않는다. 언제 어떤 형태로 죽을지 어떤 이유로 죽게 될지 아는 사람이 없다. 우린 ‘죄의 결과’라고 매끈하게 단정짓기 전에 죄란 게 당최 무엇인지 해명해내야 하며, 그 전까지는 ‘매우 지당한 죽음’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설사 그것이 매우 그럴싸해 보이는 알고리즘이 있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나 존재의 죽음 앞에서 – 보통의 사람이라면 – 우리는 ‘말’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에 두 번째 아담이자, 새로운 인류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는 탄생부터 공생애,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 승천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죽음과 그에 따른 고통에 이름을 짓는 자리에 늘 계셨다. 그 분이야말로 태어날 때부터 고통의 현장에서 고통 그 자체를 몸소 겪으신 분이다. 아비 없는 자식으로 알려져 세상에 빛도 보기 전에 돌에 맞아 죽을 뻔한 바로 그 분이 바로 ‘임마누엘’ 아니던가? 헤롯왕이 휘두른 영아 살해의 칼날 앞에서 홀로 살아남아 겨우 도망친 ‘유대의 임금’아니신가? 이 세상의 무자비한 전쟁과 폭력 속에서 늘 ‘살아남은 자의 슬픔’ 그 자체가 아니신가?

       그러나 그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이름을 부르셨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 수군수군거릴 때, 그 천한 신분으로 가장 신성하고 높으신 야훼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불렀다.’(눅 2:49) 이후에도 예수는 거침이 없었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던 촌뜨기들을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사역자로 불렀다. 이러한 부름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등 권력자들이 보기에는 가히 혁명적인 일이었고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될 눈엣가시와도 같은 부름이었다. 또한 안식일에 배고파 하는 자들을 위해 직접 일을 지휘하심으로써 안식일을 ‘사람을 위한 날’이라 개명(改名)하셨다. 하지만, 이름 없어 고통당하는 자들에게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셨다. 베드로에게는 게바라는 이름을 더하셔서 그를 튼튼한 반석 위에 존재를 세우셨다. 또한 매일 밤낮 소리 지르고 자기 몸을 못살게 구는 이에게 모두가 한결같이 ‘귀신들린 자’라고 낮춰 부를 때, 찾아가 대체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신 것이 바로 예수였다. 앞뒤 모르고 경계없이 날뛰는 자에게 한계를 일러줌으로써 귀신들림에서 빠져 나와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셨다. 또한 죄인이라 낙인 찍혀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그 이름들에 다정하게 ‘순결하고 의로운 자야!(삭개오의 이름 뜻이다.)’라고 부르시며 그가 단지 세리나 죄인이 아닌 ‘삭개오’라 호명(呼名)하셨다. 예수의 사역은 곧 권력자들이 독점하고 악용하는 이름들에 대한 개명(改名) 사역이요, 이름 없이 사회 속에서 존재 없는 자들에게는 명명(命名)사역이었으며, 잊혀진 이름을 다시 불러 이 세상으로 소환하는 호명(呼名)사역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게 타자를 부르고 이름을 짓는 일들을 통해 예수는 ‘자기 민족을 구원할 자’라는 선취된 자기 이름을 지어갔던 것이다.


남겨진 과제 : 지어가야 할 이름들


       우리는 이제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함부로 짓지 말아야 함을. 누군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그 존재에 대한 왜곡 자체란 것을. 사실 우리는 이미 십계명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함부로) 짓지 말아야 함을 알고 있다. 내 멋대로 하나님이 ‘이런’ 분이다. ‘저런’ 분이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짓지 말아야 할 것을 알고 있는 우리는 나와 타자의 이름 또한 함부로 지어서는 안 된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이름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에서 비롯된다. 5. 16을 ‘군사혁명’이라 부를지, ‘쿠데타’라 부를지, 5. 18을 ‘민주화운동 또는 민주화혁명’이라 부를지 ‘사태’라 부를지, 4. 16을 ‘사고’라 부를지 ‘학살’이라 부를지 모든 것이 이름의 문제다. 어디에 설 것인가는 어떻게 부르고, 어디까지 다다를 것(이르다->이름)인지에 대한 문제다. 이름 안에 실체가 있고, 이름이 실체다.

       하지만, 우리는 명백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을 ‘모퉁잇돌’이라 기억하는 그 이름 예수의 비밀을 믿는 자들 아니던가. 예수께서 보여주신 그 ‘이름, 짓는’ 모습들을 말이다. 가서 이와 같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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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카
    2016.09.20 13:4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윤동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윤택한 하루가 되었습니다.
  2. 윤동
    2016.09.21 09:2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저도 감사합니다 :)

다름없음


   올해는 군산에 작업실을 얻었다. (군산은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작은 도시다.) 군산은 전에는 가본 적이 없는 낯선 곳이지만, 좋은 조건에 작업실을 얻을 수 있어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지도를 보면서 서울과 군산 사이에 굵직한 도시 이름이 하도 많아 걱정스러웠는데, 실제로 버스 한번만 타면 갈 수 있어서 별 부담이 없이 다닐 수 있었다. 실제 거리가 얼마든, 내 감으로 군산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내 작업실은 구 도시 3층 건물의 3층이다. 주변은 일본식 옛 건물과 현대 건물이 뒤섞여 있고 자동차 소음이 잔잔하게 들린다. 주말에는 일본식 건물과 맛집을 찾는 관광객들로 제법 요란하다. 나는 군산의 특별한 볼거리와 분위기를 즐기며 타지 생활을 즐겼다.  

   지금은 군산에서 지낸지 어림잡아 반년 지났다. 내가 유난히 무심한 탓인지 몰라도 이제는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지형과 역사 따위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건물에 쌓인 흔적은 어느 도시나 비슷하다. 삶의 흔적을 두껍게 뒤집어쓴 건물에서 는 오히려 사람의 보편성이 느껴진다.

   이번에 보여주는 드로잉 작업은 오래된 도시에 쌓인 흔적, 어느 도시나 다름없는 도시의 흔적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백정기, 핑크6, 40*17cm, 종이위에 연필, 2016



백정기, 핑크8, 40*17cm, 종이위에 연필, 2016



백정기, 핑크2, 40*17cm, 종이위에 연필, 2016 



백정기, 핑크9, 40*17cm, 종이위에 연필, 2016



백정기, 핑크1, 40*17cm, 종이위에 연필, 2016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 작가소개

홍대 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개인전 를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 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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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넘은 '악동' 마이클 무어의 진솔한 호소[각주:1]


 

권오윤[각주:2]



       사회의 어떤 부분이 문제라고 인식하게 되면, 우리는 대안을 모색하게 됩니다. 그때 찾게 되는 것이 다른 나라의 사례죠. 이 문제를 더 합리적이고도 올바른 방식으로 처리하는 나라가 있는지, 또 그들의 방식을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궁리해야 하니까요.

       재치 있고 신랄한 다큐멘터리로 미국의 사회 문제를 정면 비판해 온 마이클 무어가 신작 <다음 침공은 어디?>에서 취한 방식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미국에 없는 다른 나라의 좋은 사회 제도들을 훔쳐오기 위해 혼자서 '침공한다'는 설정을 만들고,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아홉 나라의 제도들을 취재하지요. 그 과정에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문제들이 낱낱이 파헤쳐집니다.

       처음에는 우리 피부에 와 닿는 문제들부터 시작합니다. 1년에 6주 유급 휴가가 기본이고 결혼하면 2주 추가에 다 못 쓰면 다음 해에 붙여서 쓸 수 있는 이탈리아, 지방의 작은 학교 급식에서도 셰프가 서빙하는 코스 요리가 나오는 프랑스, 숙제를 없애고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도록 밀어주는 것만으로 세계 최고의 교육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핀란드, 대학 교육이 완전 무료라서 학자금 대출의 압박에 시달리는 미국 학생들도 많이 유학 가는 슬로베니아.

       이런 나라들의 이야기는 사회 통념이나 복지 제도의 측면에서 미국, 일본과 유사한 부분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것들입니다. 특히 개봉 전에 유튜브 영상으로도 많이 공유되었던 핀란드의 교육 이야기는 학교가 제시하는 커리큘럼과 과제에 찌든 학창 시절을 보내야만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가슴 아프게 여길 만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마이클 무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갑니다.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상적인 근무 여건을 가지고 있는 독일에서 결국 마이클 무어가 훔치기로 선택한 것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바로 과거의 역사를 반성하고 기억하는 자세였죠. 그들은 유대인 학살 책임을 사회 전체가 나뉘고 사과와 반성을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해 왔으니까요. 감독은 미국 역시 인종 차별과 학살로 얼룩진 과거의 역사를 끊임없이 되새기며 반성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저작권자: 판시네마(주))


       이때를 기점으로 영화는 본격적으로 미국 사회의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마약 사용을 범죄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마약 사용이 줄어든 포르투갈, 수감과 처벌이 아닌 진정한 교화를 목표로 하는 개방형 교도소를 운영하는 노르웨이. 이 두 나라의 모습을 통해 미국의 사법 제도와 교도 정책이 얼마나 많은 증오와 인종 차별을 부추겨 왔는지를 고발합니다.

       또한, 국가가 임신과 출산, 피임과 낙태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고 있는 튀니지가 재스민 혁명에 성공하고 헌법에 여성의 권리를 명시하게 된 것, 1980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을 정도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한 아이슬란드가 2008년의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투자 은행의 책임자들을 제대로 사법 처리할 수 있었던 이유 등을 두루 살펴보며 미국의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행동을 촉구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숱한 문제가 있습니다. 마이클 무어의 조국 미국보다 여러모로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지금처럼 머리로만 문제를 생각하고 입으로만 되뇌기만 해서는 절대 변화가 불가능합니다. 문제 집단을 손가락질하고 욕하면 속은 후련할지 몰라도 그들이 바뀌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과 제도가 필요합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모든 걸 바꿀 수는 없겠지요. 무엇보다 기존 질서의 저항이 극심할 테니까요. 최근 시행된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 방지에 관한 법률만 봐도 그렇습니다. 많은 기득권자가 이것을 굳이 '김영란법'이라는 별명을 붙여 잘못된 프레임을 짜고, 제대로 된 시행을 막으려고 온갖 훼방을 놓았지요. 농어민의 수입 감소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까지 붙여 가면서요.

       이런 식의 방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확고한 신념과 중단 없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당장 눈에 띄는 큰 변화를 만들기는 어렵고, 변화의 효과를 우리 세대가 곧바로 누릴 수는 없을지라도 말입니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환갑을 넘은 감독이 전에 없이 진솔한 목소리로 작은 노력에서부터 시작하자고 호소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9월 18일자 기사 <환갑 넘은 '악동' 마이클 무어, 그가 진솔하게 호소한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244393) 로 게재된 원고입니다. [본문으로]
  2. <발레교습소> <삼거리극장> <화차> 등의 영화에서 조감독으로 일했으며, 현재 연출 데뷔작을 준비 중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물 [권오윤의 더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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