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고찰 II

 



김혜란
(
캐나다 세인트앤드류스 대학, 실천신학 교수)


 

지난해 11월 원고때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위기를 다시한번 고찰한다고 약속을 했다.
지난해 11월 원고를 쓸 땐 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한 직후였다. 한국에선 박근혜 최순실 파일사건으로 매일 매일 한국 국민들이 거리로 나오던 때였다.
지금 1월 이 글을 쓰는 이번주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주다.  특별히 선거기간동안 벌어진 성차별과 여성혐오의 문제에 저항하면서 취임식에 맞추어 1월 21일 여성들의 대대적 시위 (Women March)가 준비되고 있고, 내가 살고 있는 카나다에서도 여성 동시다발 연대시위가 계획 중이다. 지나 두 달간 한국은 6주에 걸친 엄청난 수백만명의 끈질긴 시위로 인해 12월 9일 국회는 박근혜의 대통령직을 탄핵하는 결의를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취임을 하지만, 트럼프가 제대로 대통령직을 수행해 낼지는 오리무중이다. 헌법재판소로 탄핵건이 넘어갔지만,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을지 역시 오리무중이다. 알 수 없는 이런 정치적 흐름은 비관적 또는 냉소적 판단이라기 보다는 그만큼 변수와 어려움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해준다. 우린 이러한 위기에 대해 자각하는 차원에서, “깨어있어라!”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새기면서, 11월 소개했던 제니퍼 웰쉬의 역사의 회귀로 돌아가보자.[각주:1]
웰쉬는 역사의 회귀라는 큰 테제를 야만주의; 대다수의 인구의 이주; 냉전체제 그리고 불평등의 회귀라는 소테제로 나누어 어떻게 부정적, 폭력적 역사가 회귀하고 있는지 통찰한다.
웰쉬는18세기 시작부터 20세기 초중반까지 정립된 서구자유민주주의는 3그룹의 차별을 기반으로 세워졌다고 주장하면서, 서구 자유 민주주의가 지닌 본질적 한계를 날카롭게 집어낸다. 여기서 이 그룹은, 재산이 없는 자, 여성 그리고 유색인종이다. 즉, 서구 자유민주주의는 귀족, 백인, 그리고 남성을 보호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데 기초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20세기 초까지 영국의 경우 투표권은 오직 재산 (부동산)을 가진 자에게만 주어졌다 (귀족계급). 1918년이 되어서야 서구 유럽사회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 그리고 미국의 경우 1965년이 되어서야 흑인의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이런 차별정책에 기반한 민주주의는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즘에 입각한 제국주의 세력 (나치, 일본군국주의)을 패배시킴으로써 본 힘을 갖기 시작했다. 1960년대 유럽식민주의하에 속했던 나라들이 독립을 성취하고 탈식민주의국가로 변화되면서 민주주의는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이제는 보편화되어버린 민주주의지만, 완전하지 않은 민주주의의 모습, 위기를 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인 야만주의의 회귀의 예는ISIS의 등장이다. 민주주의에 도전을 주는  ISIS의 등장은 아이러니칼하게도2011년 아랍 스프링, 민주주의투쟁의 여파로 등장했다. 중동지역과 아프리카지역 이슬람 대중들은 전제독재주의를 반대하고 독재자 (예. 시리아 바샤 알아사드)들을 권력에서 끌어내는데 성공을 했지만, 그 성공의 여파는 길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 권력의 공백을 틈타ISIS가 권력을 잡았다. ISIS가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는 전쟁에 대한 정당방위논리이다. 2001년 911 테러이후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쉬의 논리와 비슷하다. 테러를 대항한 전쟁 (War on Terror)를 선포하면서 그는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전쟁은 정당화되었다. 10년이 지났지만 그 전쟁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다. 아니 ISIS의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여기서 역사의 회귀와 재현을 논하면서 주목할 점이 있다. 이는 역사는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라는 점이다.  즉,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그 길로 돌아가고자 하는 대중들의 현재의 욕구를 역사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 새마을 운동 및 경제개발을 그리워하는 이들에 의해 이명박이 경제 대통령이 둔갑을 하고 그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 것이 그 한 예가 아닐까?
3장에서 웰쉬는 피난민의 문제는 전대미문의 대다수 이주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소위 “안보주의”라는 이름으로, 타자에 대한 두려움, 기득권자들의 기득권상실에 대한 공격적 표현이 실체화되어 피난민에 대한 배타적인 반응이 더 큰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미국 트럼프의 선거 당선을 볼 필요가 있다. 미국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자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 바로 백인기득권자들의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백인 정체성 상실에 대한 화풀이로 표현되었고(p. 154), 그렇게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장벽을 높이고 국수주의 안보를 강화하는 그 댓가 (cost)는 기본 인권에 대한 권리를 박탈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인종, 국적, 성, 계급을 넘어서서 누구나 누릴 권리), 자유 (자유롭게 움직이고 정착하고 살 권리)라는 기본 가치를 내던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p. 158). 비단 미국만이 아니라,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의 발원지에 속하는 유럽의 나라들도 제2 , 제 3의 트럼프를 정치지도자로 선출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국수주의와 인종/종족 말살주의 입장이 공공연하게 세계 곳곳에서 발현되고 있다.
민주주의 또 다른 위기인 냉전체제의 회귀의 단적인 예는 푸틴이다.  2005년 블라디미르 푸틴이 러시아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까지 냉전의 역사는 종말을 맞이하는 듯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연방체제의 달콤한 과거는 끊임없이 회자되었고, 영화로운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이런 욕망을 웰쉬는 “근육강화” 정책으로 표현한다 (p. 193). 2011년부터 악화되고 있는 현 시리아 사태 역시 러시아의 근육강화정책의 일환이다. 러시아의 인권유린, 인권침해, 언론의 통제 등 내부 상황과 동시에 주변국가 사이버 공격을 통한 정보유출의 행태는 심각하다. 이런 행태는 주권민주주의 (Sovereign Democracy) 정책의 결과이다 (p. 234). 웰쉬는 이 주권민주주의는 철저하게 국수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새로운 교리라고 설명한다. 이 주권민주주의는 실제로는 반자유주의다. 그런 점에서 레닌-스탈린 시대의 공산주의독재의 모습과 유사해 보이지만 다르다. 국수주의 측면에서 반자유주의적이지만, 자유시장경제체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러시아는 자유를 지향하고 동시에 지양하는 이런 모순의 기로를 걷고 있다. 무엇보다 과거 소련연방체제와 현 러시아 체제가 같지 않은 이유중 하나는 종교의 자유이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종교는 아편이고, 그러므로 제거될 존재이다. 그러나, 현 러시아 주권민주주의하에서, 러시아 정교회는 영적 양식을 제공하는 곳으로 인정된다. 푸틴 대통령 권위 다음으로 권위를 행사하며 다양한 특혜 (조세, 법) 받고 있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p. 237).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는 경제불평등의 회귀이다. 지난주 발표된 옥스팜 보고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62명의 재산을 합하면 세계 인구의 절반 36억명이 가지고 있는 전재산을 합한 것과 같다고 한다. 이 편차는 매년 놀라운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각주:2] 이런 부의 편중은 1980년대 레이건 미정권과 대처 영국 수상의 시절에 등장했다.  11월 원고에서 인용했듯이, 1989년 후꾸야마학자는 역사의 종말을 선언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외쳤다. 같은 책에서 미국이라는 사회가 얼마나 평등한지, 누구든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계급없는 사회를 주장했다 (p. 256). 그러나 소위 우리는 99%라는 “Occupy Movement”가 미국 전역을 휩쓸 때, 2008년 뉴욕증시가 추락했을 때, 계급이 없기는 커녕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간격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승리, 역사는 진보한다는 낭만적이고 안일한 선형적 역사관이 팽배할 1980년대, 신자유자본주의를 견제할 공산주의가 몰락한 그 1980년 후반기부터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서구사회는 경제적인 정체와 퇴보를 겪고 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대부분 99% 수입은 상대적으로 줄고 있고 1% 수입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1% 그룹은 직접적인 생산노동에 동원되지 않은 그룹을 지칭하며 그 그룹이  자본주의체제하에서 누리는 특혜를 웰쉬는 지적한다 (p. 265). 무슨 직업을 가졌고 얼마나 성실하게 일을 하느냐보다 어떤 부모밑에서 어떤 자산을 상속받고 현재 소유하고 있는지가 부의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는것이다. 이런 점에서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한국의 속담은 거짓이다.
웰쉬는 경제불평등은 실제로 인권유린만큼이나 민주주의에 치명적이라고 설명한다. 이자놀이로 1997년 한국경제를 흔들었고 지금도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IMF 국제금융기구조차도 경제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불평등한 빈부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p. 269). 왜냐하면, 빈부격차에 기반한 불평등 경제는 경제활동기회라는 기본권을 박탈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된다는 뜻은 개인과 공동체의 존재적 위기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단지 돈이 없다고 또는 일자리가 없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의 상실, 기본 존엄성의 상실로 이어지기에 그 불평등은 사회적 불안정으로 직결된다. 이 점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불평등이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이유이다.  여기서 경제와 정치가 만날 수 밖에 없다. 공공성은 단지 부의 재분배만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정책의 입안이요, 그 정책의 수행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다수가 혜택을 볼 수 있는 공공성, 즉, 공적 관심과 공적 이익을 지향한다.
이 점에서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도 민주주의 위기 극복에 한 몫을 담당할 수 있다고 본다. 종교적 삶은 기본적으로 이기주의나 자신의 욕심만을 위해서 살기보다 나누고 섬기는 삶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약자와 소수라는 이웃에 대한 관심, 타자에 대한 개방성, 즉 근본적으로 부정의에 저항하는 예언자적 전통이 기독교를 포함해서 모든 종교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자유민주주의는 역사의 진보와 낙관을 보장하는 숭배의 대상도 완전한 제도도 아니다.  실제로 민주주의 선봉자 (나찌즘에 맞서) 윈스턴 처치힐은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부형태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외 정부형태는 더 최악이기에 이를 지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서구자유민주주의가 지닌 한계와 문제점을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전제주의, 공산주의, 군사독재주의보다는 낫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헌신한 그 지도력을, 그 과거를 기억해야하며 이 민주주의가 정체하고 부패하지 않도록 현재 깨어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자유민주주의가 이렇게 부족하기에 강하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이다.  즉,  우리 (공동체)의 바르고 꾸준한 노력으로 더 성숙하게 유지, 지속될 수 있는 역동적 존재가 바로 민주주의이다. 미국의 최근 선거를 보면서 얼마나 무지가 폭력적인지 배웠다. 사실이 거짓으로 진리가 기만으로 둔갑하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아니 안하는) 대중들의 무지, 비판적 의식의 부재가 얼마나 위험한지 실감했다. 그래서 난, 인권유린, 경제불평등과 함께 민주주의를 부패시키는 독소는 바로 무지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래서 해방신학에서 critical mass (비판적 대중), 민중신학에서 의식을 가진 주체로서의 민중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본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위기 극복은 공적 지식, 즉, 비판적 의식(critical consciousness), 상생의 삶을 가르치고 배우는 실천이다. 우리는 이것이 무엇인지 안다. 최근 한국의 남녀노소가 다 참여한 대대적 시위를 보면서, 정치를 한다는 권력층이 대중들을 기만할 때, 대중들이 그걸 알았을 때, 그 무지에서 깨어나 뿜어내는 힘은 엄청나다는 것을 보았다. 이 힘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 힘을 더 키울 때다.



ⓒ 웹진 <제3시대>


  1. Jennifer Welsh, The Return of History: Conflict, Migration, and Geopolitics in the Twenty-First Century (Toronto: Anansi Press, 2016). [본문으로]
  2. https://www.theguardian.com/business/2016/jan/18/richest-62-billionaires-wealthy-half-world-population-combine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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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문제를 주제로 신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민경석 교수님(미국 클레어몬트대학원 종교학과)을 모시고 강연회를 진행합니다. 이번 강연회는 최근 민경석 교수님의 연구 주제인 세계화로 인한 교회의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위기에 대해 함께 토론해 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 민경석(Anselm K. Min)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클레어몬트 대학원 대학교 종교학과 석좌교수(Dean and Maguire Distinguished Professor)이다.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 포담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2년부터 클레어몬트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헤겔과 아퀴나스, 해방 ․ 종교간 대화 ․ 다원주의 ․ 세계화의 문제, 현대 신학과 아시아 신학 등을 주제로 다양한 논문과 저서를 집필했다. 현재는 세계화와 관련한 신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자문위원이기도 한 민경석 교수는 평신도 신학자로서 교회쇄신을 위한 연구와 활동도 적극적으로 해왔다. 20대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접하고, 197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도 미국 가톨릭교회와 교포 공동체의 일에 관여했다. 1987년부터 4년 간은 미주 한인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으로서 매년 강습회를 열어 사회교리를 전파하는 데 힘썼고, 1992년에는 동료들과 함께 교포 평신도 전국조직인 ‘미주한인가톨릭평신도연합’을 창설하고, 연간지 <만민의 빛 Lumen Gentium>을 출간한 바도 있다. 국내 저서로는 ≪한국교회 2000: 권위주의와 교회중심주의를 넘어서≫(분도출판사, 2000)가 있다.

* 일시 : 2012년 7월 9일(월) 오후 7시~9시
* 장소 : 우리신학연구소(아래 약도 참조)
* 주최 : 우리신학연구소,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 참가비 : 5,000원 (발제자료, 간단한 다과 제공)
* 문의 :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 (02-2672-8344)
* 연구소 찾아오시는 길
(150-042)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2가 32-2 3층 우리신학연구소
☎ 02-2672-8342~4 / FAX 02-2672-8346 / E-mail: woorith@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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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달리야의 꿈에서 위기를 보다
- 재앙을 넘어서는 길에 관한 신학적 역사적 상상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1. 재앙

재앙에 관한 설(說)들이 난무했다. 쌀을 제외한 곡물자급률이 5%를 넘지 못하는 우리 현실에서 국제곡물가격의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낳는다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Agriculture+Inflation) 재앙설은 더 이상 남의 얘기일 수 없다. 환경에 관한 각종 재앙 시나리오들에 낯설어하는 이는 이젠 없을 정도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2008년 여름)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상승하는 유가 소식을 접하면서 에너지 재앙설 또한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국제기축화폐라고 할 수 있는 달러화의 붕괴 가설에 관한 책 몇 권이 번역 출간되면서 그런 것도 치명적 재앙의 가능성으로 우리에게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에 난망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가능성들과는 다소 다른 시나리오로 구성된 재앙이 우리는 사납게 덮쳐버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에서 시작한 미국발 금융위기가 낳은 경제재앙. 이미 그 파괴력이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우리 삶의 현장들에서 현실화되고 있지만, 아직은 시작일 뿐이다. 그것이 어떤 경로로 어떻게 우리의 존재 조건들을 무참히 짓밟아 버릴지, 불길한 예측들이 난무한다.

많이 개선되긴 했어도 미국경제에 대한 의존성이 여전히 큰 상황에서 미국발 재앙은 우리에게 남다른 위기로서 다가온다. 특히 가계부채가 무려 660조가 넘는 부채과다현상은 매우 치명적이다. 경기침체로 인한 채무불이행사태가 속출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가계수지가 적자인 가정이 거의 30%에 달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온 바 있다.

이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의 상하향 분해 추세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특히 빈곤층의 크게 늘었으며, 상류층의 부가 크게 증가하는 현상이 현저한데, 최근의 경기침체는 이러한 사정을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요컨대 소득 양극화 문제는 최근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기의 요소다.

한국의 MB 정부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 종합부동산세의 사실상의 폐지 등, 그리고 수도권 규제완화, 출자총액 제한제 폐지, 금융ㆍ산업 분리의 폐지 등이 추진 중이다. 또한 공기업 민영화, 지상파방송의 민영화, 한ㆍ미 FTA 같은 고강도 세계화 정책 등에 대해서도 강력한 시행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박정희식 성장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시장근본주의를 결합한 위기대처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득양극화를 크게 심화시켰던 국민의정부나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들보다 훨씬 더 강자와 약자의 이분법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령,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가운데 조세부담율이 가장 낮은 한국사회에서 감세정책을 펴고, 역시 가장 낮은 사회안전망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 직면한 위기를 타개할 국가전략으로 제시되고 있다면, 이 위기요법이 초래할 계층분화의 방향이 어떨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설사 이러한 정책이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경기부양 효과가 있어 낮은 성장률의 문제가 해소된다고 해도 성장 혜택의 분배를 공정하게 할 의지가 정부에게 있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있다 하더라도 이미 불공정 게임룰이 제도화된 터에, 배분할 ‘파이’가 커지든 안든 양극화는 심화될 것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어느 경우든 양가적인 면이 있듯이 재앙 또한 위기인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평소라면 좀처럼 시행할 수 없는 근원적인 개혁을 드라이브할 수 있는 순간이 도래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감한 정책이 때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우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 경우 당면한 재앙은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징조가 되어버릴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MB 정부의 위기관리 전략은 심히 우려스럽다. 우리는 바로 이런 우울한 교훈을, 하여 우리를 비판적으로 점검할 안성마춤의 사례를 성서의 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2. 선택
   
그 때에 주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록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나와 빈다고 해도, 내가 이 백성에게 마음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이 백성을 내 앞에서 쫓아내라! 그들이 너에게 ‘어디로 가야 하느냐’ 하고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어디를 가든지, 염병에 걸려 죽을 자는 염병에 걸려 죽고, 칼에 맞아 죽을 자는 칼에 맞아 죽고, 굶어 죽을 자는 굶어 죽고, 포로로 끌려갈 자는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 나는 이렇게 네 가지로 그들을 벌할 것이다. 그들을 칼에 맞아 죽게 하며, 개가 그들을 뜯어먹게 하며, 공중의 새가 그들의 시체를 쪼아먹게 하며, 들짐승이 그들을 먹어 치우게 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예레미야서」 15장 1~3절

예레미야 예언자가 예고한 재앙 시나리오는 그대로 실현되었다. 바빌로니아에 의해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된 것이다. 두 번의 침공(주전 597년 여호야긴 왕 때; 주전 586년 시드기야 왕 때)으로 거의 대부분의 도시들이 불타 사라졌고, 수많은 농촌마을 또한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에 무려 85%의 거주지가 역사에서 사라졌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 급부상한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은 한때 인구가 일만오천 명에 이르는, 요시아 왕 당시 팔레스티나에서 가장 커다란 도시가 되었으나, 전란 후 오랫동안 그 십분의 일인 일천오백 명을 넘지 않는 소읍 정도로 전락해버렸다. 농촌의 경작지들은 거의 쑥대밭이 되었고, 대다수의 주민들은 유민이 되어 타지역으로 이주하여 마을은 거의 비어버렸다. 유대 지역은 이후 오랫동안 회복되지 못한 채 버려진 땅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심각한 재앙이 기회이기도 했다. 예루살렘이 정복되고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눈알이 뽑힌 채 바빌로니아 중원으로 압송되어 구금됨으로써(「열하」 25,7) 유다 왕국은 완전히 몰락하였다. 물론 바빌로니아는 이 지역을 직할통치지역으로 삼지 않았다. 그보다는 대중의 지지를 쉽게 받을 수 있는 토착인사를 통치자로 위임하는 것이 비용도 적게 들고 보다 안정된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국은 정복지역에 대한 이런 방식의 체제재편을 선호하였다.

유대 지역의 통치자로 위임된 이는 ‘그달리야’라는 사람이다. 그는 사반의 손자이며 아히감의 아들이라고 한다(「열하」 25,22). 사반은 요시아 개혁 당시 사관 등 요직을 역임한 인물이고(「열하」 22,8),1) 그의 아들 그마리야와 손자 미가야는 반개혁의 시대인 여호야김 왕 때에 반왕당파인 개혁파의 주요 인사로, 종종 왕에 반하는 필화사건을 일으킨 급진적 인사인 예레미야를 음으로 양으로 비호하곤 했다(「예레」 36,11~20). 그리고 사반의 또 다른 아들이자 그달리야의 부친인 아히감 또한 개혁당파의 핵심인물이었다(「예레」 26,24). 요컨대 이 가문은 요시아 개혁을 지지하는 유력한 세력을 대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시아 개혁은 왕당파와 민중세력(‘암하아레츠’)이 연대하여 귀족세력을 위축시키는, 이른바 ‘위로부터의 개혁’이다. 그 이전까지 유다 왕국은 고대 팔레스티나에서 약소국으로 국가발전이 매우 더뎠던 나라다. 인구도 적었고 토양도 척박했으니 말이다. 당연히 왕권제로의 제도화도 뒤쳐진 후진국이었다. 오므리-아합 왕 치하의 이스라엘 왕국의 봉신국이 된 기원전 9세기 초 이후 왕권은 조금 더 발달하게 되지만 여전히 주변정세와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이후 왕당파와 귀족간의 본격적인 정쟁이 계속되었고, 약소국이 대개 그렇듯이 이 정쟁은 주변의 나라들이나 제국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힘의 균형이 깨지곤 했다. 이 과정에서 유다 왕국의 여러 왕들이 궁중 암투로 살해되거나 감금되어 명목상의 왕위만을 유지하는 등,2) 왕권은 여전히 잘 확립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열왕기」에는 이러한 정쟁 과정에 ‘암하아레츠’라는 존재가 등장하고 있다.

동시대 문헌들의 용례에 따르면 이 용어는 비하적으로 표현되건 아니건 ‘농민 일반’을 개략적으로 지칭하고 있다.3) 한데 제1성서(=구약성서)에서 사용된 17회 중 식민지 시대를 다루는 2회4)를 제외한 15회가 유다 왕국의 정쟁과 관련된 텍스트에서 사용되고 있다.5) 다시 말하면 유다 왕국 역사와 관련하여 성서에 등장하는 암하아레츠는, 무정형적인 농민 일반이 아니라, 정치세력화한 농민세력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요아스, 아마샤, 아사랴, 요시아 왕을 즉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만큼 무시할 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존재하는 농민세력을 가리킨다.  

요시아 왕은 이들을 지지세력으로 삼아 과감한 개혁정책을 편다. 농민의 몰락을 억제하고, 이미 몰락한 이들을 보호하는 조치들이 과감하게 시행된 것이다. 땅의 소유권을 옮기는 것에 대한 금령(「신명」19,14), 고리대금과 악랄한 부채 회수에 대한 금령(24,6‧10~13‧17), 정의로운 재판 강조(16,18~20), 뇌물수수 금령(16,18~20), 정량화된 도량형(25,13~16) 등이 이 개혁의 주요 내용들인 것이다. 이는 정치세력화한 농민세력을 가정할 때, 이들이 요시아 정부에 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는 가정을 할 때 가장 타당하게 설명되는 조치들이다.

다시 그달리야로 돌아가자. 그는 이러한 민중적 개혁의 관점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인물이다. 통치자로 위임되자 그는 얼마 남지 않은 빈민화된 주민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식량을 배급해준다(「예레」 39,10; 40,10). 또한 그가 도읍으로 삼은 미스바는, 전란 중 파괴되지 않은 성읍으로, 바로 이러한 민중주의적 정책에 안성마춤인 도시다. 과거 지파동맹 시대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 성읍으로(「사사」 20,1), 그의 민중주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해줄 만한 전통이 살아있는 고도(古都)이다. 그리고 유다 왕국에서 그러한 민중적 전통을 대변하는 또 다른 읍락인 아나돗 출신의 명망가 예레미야(「예레」 1,1) 또한 그달리야를 지지하고 나섰다(「예레」 40,6). 뿐만 아니라 세겜, 실로, 사마리아 같은 오래된 지파동맹의 전통을 간직한 또 다른 지역 출신 인사들도 그의 체제 속으로 속속 귀의하고 있었다(「예레」 41,5).

재앙을 맞아 모든 생산기반이 붕괴된 상황에 놓인 사회에서, 지도자 그달리야는 이렇게 대중의 자생력을 강화하는 이데올로기와 정책을 펴고자 했다. 엘리트집단을 강화함으로써 붕괴된 체제를 재건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중사회의 활력을 통해서 체제를 굳건히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의 꿈은, 그의 비전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구왕족 출신의 군부인사였던 이스마엘이라는 사람이 그를 암살한 것이다(「열하」 25,25). 이스마엘이 보기에 그달리야의 꿈은 그토록 불온해보였던 모양이다.6)

지도자를 잃어버린 체제는 동시에 그 꿈도 잃어버렸다. 그달리야에게로 귀하한 구왕국의 귀족들은 그가 죽자 어찌할지 몰라 허둥댄다. 그들은 예언자들에게 자문을 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레미야에게도 그렇게 한 듯하다.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소. 주 우리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우리가 이집트로 가서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전하게 하셨을 리가 없소. 이것은 틀림없이,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우리를 바빌로니아 사람의 손에 넘겨주어서 그들이 우리를 죽이거나 바빌로니아로 잡아가도록 하려고, 당신을 꾄 것이오.
―「예레미야서」 43장 2절 하반부~3절

 이 텍스트는, 그달리야의 정책을 계승하라는 예레미야의 충고에 대한 귀족들의 반응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갈등하고 있다. 하나는 ‘이집트로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미스바로의 길’이다. 미스바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그달리야의 비전이고 대중의 꿈이다. 대중과의 공존을 강조하는 것이고, 함께 식탁을 나누는(「예레」 41,3) 평등주의 사회의 지향을 담고 있다. 반면, ‘이집트로의 길’은, 오래된 모세 설화가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출애굽한 대중이 미래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꿈으로 회귀하고픈 퇴행적 갈망을 상징한다. 바로 ‘풍요에 대한 노예의 꿈’이다. 주인들의 풍요로운 식탁을 꿈꾸며 자기들도 그 자리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갈망이 바로 ‘이집트로의 길’인 것이다. 또한 전자가 대중의 삶에서 시작하는 정치를 시사한다면, 후자는 누가 누리든 어떻게 나누어지든 풍요 그 자체에 주목하는 정치를 암시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미스바와 이집트를 지향하는 두 길, 혹은 그달리야와 이스마엘로 나뉘는 두 길은 역사인 동시에 정치에 대한 상징이다. 어떤 정치가 진정 야훼의 길이며, 어떤 정치가 진정 야훼의 백성이 꿈꾸어야 할 길인가. 바로 이 선택 앞에 우리는 지금 서 있다.

결국 그달리야가 죽은 이후, 예레미야 같은 이의 간곡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들 남은 지도자들은 예레미야 등을 볼모로 하여 이집트로 간다. 본문이 말하는 것처럼 이 길이 바빌로니아의 보복을 벗어나는 길이라고 그들은 믿었던 것이다. 바빌로니아가 재앙을 상징한다면, 바로 재앙을 벗어나는 길은 과거 회귀적인 퇴행적 꿈, 풍요주의/발전주의를 향하는 것이라고 보았다는 얘기다. 그 길로 예레미야를, 대중을 강제로 끌고 간 것이다.

3. 위기를 보는 시선


재앙에 대한 MB 정부의 대응책은 어느 길을 택하고 있는가. 어느 길로 시민을 인도하려 하는가. 지난 20년간의 민주주의적 기조를 뒤흔들면서까지 강권을 휘두르며 대중을 이끌려는 그 길은 어디인가. 그토록 절박하게 그들을 부르는 그들 식의 유토피아는 어디인가. ‘이집트’인가 ‘미스바’인가.

내가 만난 한 경제학자와 또 한 명의 목사는 내게, 나의 이야기 라인을 따라 선택의 문제를 고려한다 해도 ‘미스바로의 길’은 단지 ‘도덕적’인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충고를 하였다. ‘미스바로의 길’이란 결코 현실 속에서 재앙 타개책으로 검증되지 않은 방식에 불과하다고. 반면 IMF 식의 구조조정이 추구했던 신자유주의나 박정희 식의 성장주의는 위기를 해소한 방식임이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MB식 성장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표준은 재앙을 대처하는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한데 과연 그런가. 1990년의 ‘워싱턴 컨센서스’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의 정치학, 그 시장근본주의적인 정치경제학은 국제무역을 자유화하고, 이를 제약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며, 금융의 국제적 이동의 자유를 절대화하고, 공공적인 것을 민영화하는 등의 기조에 따라 세계은행(WB)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는 국가들의 개발정책을 강제하였다. 그런데 이런 개발정책은 과연 재앙에 대처하는 국제표준이라고 해도 무관한가.

1990년대 말 지구를 휩쓴, 특히 남아시아와 동아시아 지역을 휩쓴 외환위기는 이러한 워싱턴 컨센서스의 국제적 실험의 장이었다. 그리고 세계은행은 1999년 새로운 발전모델을 제시한다.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할 만한 이 모델의 기조는 시장근본주의적 개발정책은 세계의 빈곤화를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또 다른 지구적 위기를, 재앙 위의 재앙을 초래하였다는 반성에서 출발한다. 하여 시민사회의 빈곤화를 억제하고 빈곤화된 대중의 회생 프로그램을 통해 저들을 다시 시장으로 진입하게 하는 방식의 새로운 개발모델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세계은행그룹 내부에서 제시된 것이다. 2006년 노벨상을 수상한 그라민 은행이 거둔 마이크로크래디트 운동의 성과는 전체 운용기금의 97%를 제공한 국제 금융기구 등의 개발정책과 깊은 관련이 있다. 또한 세계 각 곳의 시장주의자들과 거대자본들이 운용하는 연구기관들은 막대한 기금을 투자하여 빈곤화된 대중의 시장진입을 위한 프로그램의 가능성에 대해 조사 연구를 시행하였다. 요컨대 IMF식의 신자유주의적 표준은 더 이상 국제표준으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지 못하며, 오히려 작은자들의 회생프로그램이 오늘의 시장이 선호하는 표준적 지위를 획득해 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미스바와 이집트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의 정부를 돌아보고, 그것에 대한 우리 자신의 입장을 묻는 자리로 돌아가자. 나의 관심은 시장이 선호하는 선택의 적실성이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문제의식을 낭만적 도덕성으로 폄하하는 신자유주의적 독선에 대해 반론을 펴고 싶었을 뿐이다. 나의 관심은 오늘의 재앙을 보면서, 재앙 위의 재앙을 막는 선택에 관한 신학적 판단 혹은 해석에 있다. 나는 그 해석의 준거를 말하기 위해 요시아 개혁을 경유해서 미완으로 끝난 그달이야의 비전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쳤다. 미스바의 길은 요시아 개혁과 예레미야 예언자의 신탁이 만나는 지점에서 그달리야를 통해 정책적 실험에 돌입한 방식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빈민의 회생에서 몰락한 국가의 회생을 꿈꾸는 한 지도자의 비전을 통해 역사화된 것이다.

이스마엘의 암살로 이 실험은 미완으로 끝났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예레미야와 대중을 강제로 이끌고 이집트로 갔다. 그것이 결국 재앙 위의 재앙이 되었는지, 역사학은 그것을 판단하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신학은 그것에 판단을 내린다. 그것은 야훼의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를 통한 그달리야 에피소드에서 ‘야훼의 길’은 명백하게 미스바를 향하라고 권고한다. 적어도 이 상황에서 빈민의 희망은 곧 야훼의 희망인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주]

1) 최근 이 시기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 충실한 학자들은 유다 왕국에서 처음으로 왕실의 역사가 기록되던 시기를 히스기야 왕 시절이거나 요시아 왕 시절로 본다. 바로 그 시기에 사관, 즉 왕실 이데올로기를 펴는 역사서술 책임자의 위상은 대단히 중차대하였을 것이다.

2) 아하시야 왕(「열하」 9,27)은 이스라엘 왕국에서 벌어진 예후 쿠데타 때에 살해되었고, 그의 부인이자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었던 오므리의 딸인 아달랴가 남편 아하시야 사후 권력을 장악했으나 궁중에서 일어난 정변으로 살해된다(11,16). 이 쿠데타로 즉위한 요아스도 피살되었으며(12,20), 그의 아들 아마샤도 정변으로 희생되었다(14,19). 이렇게 유다 왕국이 이스라엘 왕국의 봉신국이 되면서 발달된 왕권제에 관한 관념이 도입되고, 시리아-팔레스티나의 국제관계 망 속에 흡수되면서 연속된 네 명의 통치자가 정변으로 죽임을 당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또 그를 승계한 아사랴(웃시야)는 「역대기하」 26장 19절에 의하면, 사제들과의 갈등 이후 문둥병자가 되어 평생을 밀실에 갇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어쩌면 궁중암투의 상황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후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까지 네 명의 통치자는 명껏 왕으로 재임하였지만, 그 이후인 아몬부터 마지막 시드기야까지 6명의 왕중, 여호야김을 제외한 모든 왕이 정변으로 죽거나 전사하거나 제국통치자에 의해 볼모로 끌려가야 했다. 요컨대 선진적 왕권제가 도입된 아하시야부터 마지막 시드기야까지 15명의 왕 중, 네 명을 제외한 모든 통치자가 불의(不意)의 최후를 맞았다. 

3) 무지랑이 농촌 대중을 가리키거나, 지주 혹은 씨족장 등을 중심으로 하는 농민을 가리킨다.

4) 「느헤」 7,6; 「에스겔」 12,19.

5) 「열하」 11,14・18・19・20; 21,20・24; 23,30; 24,14; 「역하」 23,13・20・21; 33,25; 36,1; 「예레」 11,9; 52,25.

6) 여기서 오해의 여지가 있을까 하여 부연하면, 그달리야는 바벨로니아에 의해 위임된 통치자이지만 그렇다고 그는 식민주의자이고, 이스마엘은 자주파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유다 왕국이 선진화되면서, 왕실은 끊임없이 국제관계 속에서 체제를 해석하면서 발전하였다. 왕국 말기만 하더라도, 정부 내에는 친 아시리아-친 이집트 노선의 세력과 친 바벨로니아 노선의 세력으로 나뉘어 서로 정쟁을 벌였다. 말했듯이 그달리야는 친 바빌로니아 세력이었는데, 아마도 이스마엘은 친 에집트 세력인 듯하다. 한편 고대의 제국들은 점령지역에 봉신국 지도자를 위임했지만, 이들 봉신국 지도자들은 제국에 무조건 충성하는 이들은 아니었다. 그마큼 제국의 영향력은 촘촘하지 못했다. 사실상 봉신국 왕들은 제국에 반기를 들지 않는 한 영토에 대한 거의 자율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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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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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달훈
    2013.09.04 17:0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신학과 역사의 끝없는 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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