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과 아이들에겐 국경이 없다

 



유경종

(본 연구소 회원)



    얼마 전 한 도서관 사서로부터 도서관에서 개최하는 행사 홍보 기사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동물과 관련한 글을 쓰는 재일한국인 3세 작가가 도서관을 찾아와 강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자료로 모아 건네준 책들은 무척 흥미로웠다. 몇권의 논픽션과 동화책을 하룻밤동안 다 읽은 다음 나름 정성을 들여 행사를 알리는 기사를 썼다. 그리고는 강의가 있는 날 도서관으로 가서 직접 작가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이야기는 교토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세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심강만의 이야기다. 동시에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동물과 관련된 주목할만한 논픽션과 동화를 쓰고 있는 작가 김황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둘은 55세로 나이도 같고 키도 같다. 다만 아저씨 심강만은 재일조선인 3세이고, 작가 김황은 재일한국인이다. 먼저 심강만의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좀 길지만 한번 읽어 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기를 바란다.





* 친척들과의 이별과 맞바꾼 출생


    심강만의 할아버지는 경남 진주가 고향이다. 십대 후반인 1930년대에 강제 노역 노동자로 끌려 가 일본 교토 인근의 망간 광산에서 노예처럼 일을 하게 된다.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전쟁이 끝난다. 당시 일본에는 200명의 조선인들이 있었는데 다수가 귀국하지만 65만명은 일본땅에 남게 된다. 그 대부분은 한국으로 돌아가도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이들이었다. 미국이 주축이 된 연합군 총사령부는 귀국하는 조선인들에게 일화 1000엔만 가지고 나가게 했단다. 심강만의 할아버지가 일본에 남은 까닭은 일본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가족들을 굶어 죽일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삶도 순탄하지 않았다. 값싼 미국의 광물이 수입되면서 망간 광산은 폐쇄되었다. 마침 그 즈음 조국에서 손짓이 왔다. 문제는 그 조국이 북한이라는 것. 재일조선인(아시겠지만 남한 사람도 북한 사람도 아닌, 해방 이전의 조선에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있는 이들이 곧 재일조선인이다)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과 무대책으로 일관한 남한과 달리 북한은 일본에 남아 있는 조선인들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보였다. 물론 체제 경쟁과 정치적 선전의 목적이었다고는 해도 말이다. 그런 까닭에 재일조선인 대부분이 남쪽에 고향을 두고 있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1959년부터 북송 사업이 시작된 이래 거의 십만명에 가까운 이들이 북녘땅에 있는 조국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1960년 심강만의 할아버지도 모든 가족을 데리고 북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이 또한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십대 때 끌려와 망간 캐는 일밖에 모르던 조선 청년이 어느새 식구들이 줄줄이 딸린 무직자 가장이 되었는데 달리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하필 그 때 첫째 며느리(심강만의 엄마)가 임신중이었다. 낯선 곳에서 아이를 낳는 게 두려웠던 심강만의 엄마는 북송선을 나중에 타겠다고 고집을 피웠단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뱃속의 심강만은 일본에 남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고모 삼촌 등 나머지 아홉 식구가 모두 북송선에 몸을 싣는다. 가족들과 헤어지며 심강만의 아버지는 동생에게 은밀한 부탁을 한다. 편지 속에 몰래 약속된 사인을 표시해서 그 곳이 정말 살만한 곳인지 아닌지를 알려달라고 말이다. 얼마 후 북으로 간 동생으로부터 편지가 온다. 그 안에는 형과 약속한 사인이 숨어있었다. 그 사인 뒤에서 동생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형, 이곳은 지상 낙원이 아니예요. 형은 오지 마세요... 북녘행을 포기하며 심강만의 아버지는 가족들과 영영 이별을 하게 된다. 그렇게, 모든 친척들과의 엇갈림을 담보로 태어난 아이가 심강만이었다. 


* 어린 시절의 유일한 친구


    일본에 남은 심강만의 가족들은 이웃들로부터 경멸의 대상이 된다. 아버지가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며 근근이 먹고 살았지만, 가족 모두가 북한으로 넘어간 간 집이라는 눈총은 늘 따라다녔다. 심강만이 학교에 입학하자 아이들은 김치냄새 나는 녀석이라며 심강만을 따돌렸다. 간첩일지도 모른다는 수근거림도 들렸다. “조선놈은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늘 들으며 학교에 다녀야 했다. 심강만의 유년 시절은 심한 콤플렉스와 자괴감만이 가득한 무채색의 세계였다.

    그런 심강만에게 구원이 찾아온다. 한국에서 친구 한 명이 전학을 온 것. 그 친구의 이름은 김황이었다. 그는 운동을 잘 했고, 싸움도 잘 했다. 무엇보다도 김황은 스스로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는 당당한 아이였다. 김황은 일본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심강만을 돕는다. 그리고는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다. 아무리 왕따를 당해도, 아무리 세상이 지옥같아도, 정말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단 한명의 친구만 있으면 견딜만한 게 또 세상이다. 심강만에게 김황은 세상을 살아갈 용기와 의미를 찾아 준 친구였다. 비로소 심강만은 사람으로서의 자존감을 처음으로 품게 된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자 심강만은 친구 김황처럼 한국말을 잘 하고 싶어서 민족학교에 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는 기쁜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김황에게 전한다. “김황아, 나 어제 아빠하고 얘기했는데 중학교는 민족학교로 가기로 했어.” 하지만 기대는 빗나갔다. 왠일인지 다음날부터 김황은 심강만을 멀리 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김황의 아버지는 민단계열의 한국 학교를 세우기 위해 한국에서 파견 온 교장이었다. 아들이 조총련계 민족학교를 가겠다는 친구랑 사귀는 것을 봐 줄 리 만무한 시절이었다. 결국 김황은 단 하나의 친구와 멀어지게 된다. 세상은 다시 깜깜한 지옥이 되었다. 그 사건은 심강만에게 너무나도 큰 상처로 남는다.

  심강만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까지도 교토의 조선학교, 다시 말해 조총련계 민족학교를 다닌다. 같은 처지의 친구들끼리 함께 생활한 민족학교 시절의 생활은 유년시절에 비해 훨씬 행복했다. 그러면서 심강만은 자연스럽게 북한을 자신의 뿌리로, 정치적 조국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한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어릴 적 가슴 아픈 이유로 멀어져야 했던 친구 김황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 사육사의 꿈을 포기하고 세탁사가 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차별과 좌절은 다시 시작된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에 관심이 많았던 심강만은 동물원 사육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조선국적 신분으로는, 그리고 민족학교 졸업장을 가지고는 사육사 시험에 응시조차 불가능했다. 공립 동물원에서 일해야 했기에 사육사는 공무원 신분이었다. 당시만 해도 민족학교는 학력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모든 권리에서 배제된 제도권 밖의 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심강만은 동물원 사육사의 꿈을 접고 조선민족학교의 교사가 된다. 민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그는 남다른 지도력을 발휘해 탁구부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지도한다. 그가 지도한 탁구부가 교토시 학생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하지만 민족학교에게 출전권을 주어지지 않아 전국대회 출전 자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전국의 민족학교끼리 모여 탁구 대회를 열어 우승컵을 차지한다. 그리고 우승자의 특권으로 탁구부 아이들을 데리고 북한땅을 밟는다. 이 때 북쪽의 탁구 국가대표 선수들과도 안면을 트게 된다.  

   1991년 남북 통일팀이 지바에서 열린 국제탁구대회에 참가한다. 우리에게는 현정화와 리분희의 복식조로 기억되는, 영화 <코리아>의 소재가 된 바로 그 대회다. 이 때 심강만이 통역으로 활동한다. 그는 주최측 일본에서 선발한 통역이었지만, 남과 북의 선수단을 넘나들며 보이지 않게 그 둘 사이의 비공식적 만남과 접촉을 매개하는 역할을 재밌게 해 낸다.

   심강만은 30살 때 교사를 그만둔다. 연년생으로 쪼로록 태어난 세 명의 아이들을 기르기 위해서는 좀 더 안정된 직장을 찾아야 했다. 심강만은 스스로 결심한다. 나는 이 세 아이의 아빠로 행복한 삶을 사는 걸 내 남은 생의 목적과 의미로 삼으리라. 그때 아버지가 건강에 문제가 생겨 새탁소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심강만은 아버지의 세탁소를 이어받기로 결심하고는 세탁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관련기관을 찾아간다. 그런데 웬걸, 민족학교를 졸업한 재일조선인에게는 세탁사 자격증조차 주지 않는 것이었다. 심강만이 바란 건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저 동네에서 열심히 다림질하며 장사할 수 있는 세탁사가 되겠다는 거였다. 심강만은 차별적 행정의 부당성을 호소하는 편지를 써서 직접 내무성 장관에게 보냈다. 다행히 장관이 응시해도 좋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그렇게 심강만은 내무성 장관의 특별 편지를 통해 자격증을 취득한 첫 번째 세탁사가 되었다. 비로소 세 아이를 먹여 살릴 안정된 호구지책을 얻게 된 것이다.


* 심강만, 스스로 김황이 되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해소되지 않았다. 동물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국적을 이유로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에 대해 뭔가를 간절히 외치고 싶었다. 그는 결심한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자. 그래서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세상에 대해 말하면서, 아울러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차별과 불평등을 호소하자. 더 이상 재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꿈을 접어야 하는 아이들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은 목소리라도 내 지르자! 

    막상 작가가 되려고 결심했지만 앞길은 막막했다. 민족학교를 다닌 탓에 일본어도 세련되지 못했고, 그렇다고 조선말도 완벽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작가로서 빠른 시일에 성공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쿨하게 인정했다. 그리고 긴 안목으로 3단계 계획을 세운다. 세탁소일을 하면서 짬짬이 공부를 하고 글을 써서 35세에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고, 40살이 되기 전에 첫 책을 내고, 45살에는 남들이 알아줄만한 상을 하나 쯤 받고, 드디어 50살에는 세탁소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독립하기로 말이다. 

    제2의 인생을 출발하며 그는 또 하나의 선택을 한다. 작가로서의 제 2의 인생을 상징할만한 필명을 갖기로 한 것이다. 그가 선택한 필명은 바로 하나밖에 없었던 유년시절의 친구, 김황이었다. 어릴적 자신에게 우정과 선의를 처음으로 베풀어 준, 하지만 너무도 안타깝게 멀어질 수 밖에 없었던 친구. 심강만은 그 자신이 김황이 돼 버리기로 한다. 그 이름 안에는 자신을 사람답게 대해 준 한명의 친구에 대한 고마움, 친구의 이름 앞에 부끄럽지 않은 진실하고 작품을 쓰리라는 다짐, 그리고 언젠가는 그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까지도 담겨 있었다. 

    심강만, 아니, 작가 김황은 자신의 꿈을 이루었을까? 첫 번째 약속은 그리 성공적으로 이루지 못했다. 40세에 그는 알뜰히 모은 돈을 털어서 자비 출판을 하지만 책은 겨우 300여 부 팔린다. 하지만 두 번째 약속은 얼추 비슷한 시기에 제대로 지켰다. 마흔 여섯 되던 해에 그의 책 <코끼리 사쿠라>는 일본 논픽션대상 최우수 작품상을 받는다. <코끼리 사쿠라>는 일본의 한 동물원이 폐원하면서 한국의 서울대공원으로 이사를 가게 된 사쿠라라는 이름의 코끼리의 행적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장난꾸러기 코끼리 사쿠라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동물을 매개로 한 한국과 일본의 교류의 역사를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사려 깊게 되짚는 흥미로운 책이다. 책 전반에 흐르는 김황의 섬세하면서도 친절한 시선이 따뜻하게 전해지는 책이기도 하다. <코끼리 사쿠라>가 계기가 되어 김황은 한국과의 인연을 시작한다. 50살에 세탁소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독립하겠다는 세 번째 꿈 역시 55살인 현재 절반만 성취했다. 매일 가게에 매여야 하는 세탁소는 얼마전 그만두었다. 하지만 글만 써서 먹고 사는 일은 여전히 언감생심이라 아내와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먹고 산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자유롭게 글을 쓰기 위해 동물들을 만나러 다닐 수 있어서 만족스럽단다.


* 호적에서 나와 한국 국적을 택하다

 

   한국과의 교류가 깊어지면서 김황은 또 다른 선택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을 자유롭게 오가며 한국의 학자, 작가, 출판업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려면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게 장애가 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조선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로 결심한다. 김황이 자신의 결심을 말하자, 그의 부모는 대노한다. 어머니는 심지어 부엌에서 칼을 들고 와 국적을 바꾸려면 니 에미를 찌르고 가서 바꾸라는 말까지 했단다. 그 말 앞에서 김황은 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단다. 굳이 지역적 연고를 따지자면 남쪽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들이 왜 대한민국에 대해 그토록 격렬한 거부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일까? 김황은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북으로 간 형제들에 대한 미안함과 의리, 또 하나는 마이너리티로 살아온 이들의 뿌리 깊은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강렬한 자기 방어 본능, 그리고 남한 정부에 대한 뼈에 사무친 서운함 등이 그것이라는 것. 

   김황은 결국 부모의 호적에서 독립하고 나서(좋은 말로 독립이지 호적에서 파버린 것) 한국 국적을 취득한다. 부모를 제외한 모든 친척들과의 이별과 바꾸며 태어난 심강만은, 일본과 남에서 동시에 활동하는 작가 김황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이제 부모와도 이별하게 된 것이다. 


* 반편이의 목소리

 

   책을 통해 그가 다루는 소재는 인간과 가장 친근한 동물인 개로부터, 멸종 위기에 처한 황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그의 글이 일반적인 생태 동화들과 조금 다른 점은, 인간 사회의 차별과 소외를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이 늘 배어있다는 점이다. <황새>라는 논픽션에서는 부리를 다쳐 다른 황새들로부터 따돌림당하는 암컷 황새를 보며 왕따로 인해 고통받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생태통로>라는 동화에서는 동물들을 위한 생태통로가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이동하기 힘든 날다람쥐를 주인공으로 삼아 마이너리티 중에서도 더 마이너리티인 존재에까지 관심의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실제로 날다람쥐만을 위한 높은 기둥형 생태통로가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그는 스스로를 반편이라고 칭했다. 일본인도 아니고 조선 사람도 아닌, 남한사람도 아니고 북한 사람도 아닌 반편이. 하지만 그는 반편이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역할이 있다고 여긴다. 그 스스로가 증거가 되어 차별과 편가름의 어리석음을 호소하는 역할이 그것이다. 그는 말한다. 동물에게는 국경이 없다고. 또 하나, 아이들에게도 국경이 없다고. 

  누구에게나 산다는 일은 어느 정도 가혹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은 특별히 더 그렇다. 심강만의 삶을 가만히 상상해보면 구멍이 숭숭 뚫린 한겨울의 창호문처럼, 도처에서 스산한 바람이 분다. 하지만 사람으로 인해 얻은 기쁨과 사람으로 인해 얻은 상처와 정면으로 부딪히며 자신의 방식으로 의미있는 길을 열어가는 모습을 김황이 된 심강만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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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에필로그 1 : 김황은 부모와 여전히 등 돌리고 살까? 아니다. 화해를 했다. 부모의 마음을 녹인 건 황새 복원 사업에 대한 논픽션을 쓰면서 찍은 단 한 장의 사진이었다. 복원된 황새의 자연방사행사장을 찍은 그 사진 안에는 아키히토 천황의 둘째 아들과 김황이 한 프레임에 잡혔다. 김황의 부모는 그 사진을 가문의 영광처럼 받들었다. 동네방네 다니며 우리 아들이 황세자와 사진을 찍었다고 자랑을 했단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동물 복원 사업에 관여하는 김황을 받아들였단다. 황민화 교육의 깊은 영향과 늘 약자로 살아온 이의 뿌리 깊은 인정 욕구가 복합적으로 빚어 낸 웃픈 장면이 아닐 수 없다.

    ■ 에필로그 2 : 가짜 김황은 진짜 김황을 만났을까? 만났다. 한국의 한 잡지에 작가 김황이 친구 김황을 찾는다는 글을 썼더니, 글을 읽은 진짜 김황의 친척이 연락을 해 줘서 몇해 전 한국에서 다시 만났단다. 김황은 어릴 적 함께 찍은 사진과 다시 만났을때의 사진을 나란히 비교하며 보여줬다. 잘생긴 꼬마였던 진짜 김황은 여전히 인상 좋은 호남형 아저씨였는데, 소심해 봬는 꼬마 가짜 김황은 그 사이 머리숱이 모두 사라진 대머리 중년이 되었다. 하지만 둘의 미소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주 천진하게 닮아 있었다.


* 필자소개

    몇 달 전부터 고양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신도제일교회에서 청년들과 생각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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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룩거리네 루저들의 주제가

 



유경종

(본 연구소 회원)



    한동안 '루저'란 말이 유행했었다. 비슷한 뜻을 품은 단어의 선배격인 '잉여'니 '낙오자'니 따위들에 비해 한결 가벼우면서도, 시니컬하고 자조적인 뉘앙스를 모자라지 않게 담은 단어. 누군가를 손가락질하고픈 이들은 물론, 스스로를 향한 자학이 필요한 젊은 친구들에게도 자주 이용되었던 것 같다. 루저란 말이 유행하던 시절, 문득 돌아보니 루저는 바로 나였다. 이런 덴장... 짧은 가방끈, 보잘것 없는 경제력, 미혼 등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긴 해도 크게 개의치 않고 나름 명랑하고 뻔뻔하게 세상을 살자고 다짐했었다. 읽고 싶은 책 읽고, 걷고 싶으면 훌쩍 나서고, 듣고 싶은 강의(예를 들면 탈향강좌 같은 명강의!)도 부지런히 들으러 다니면서 재밌게 지내면 그만이지 뭐, 하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급격히 명랑함과 뻔뻔함이 위축되는 걸 느낀다. 급기야 최근에는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나는 루저야, 나는 루저야 하는 자각과 묵상을 시도 때도 없이 하게 되는 심각한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이거야말로 덴장...

    그런 거지같은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요즘엔 이런 저런 항우울제를 스스로에게 억지로라도 처방한다. 한밤중에 달리기도 하고, 주말에 밤을 새워 명랑 드라마를 몰아보기도 하고, 몇 몇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통찰과 깊이를 담지하고 있는 설교문이나 신학칼럼을 천천히 읽기도 한다. 비록 억지 처방일지라도 건강함과 밝음과 진지함의 세계들은 마음의 무거운 그늘을 잠시나마 밀어내준다.

    하지만 노래를 들을때는 좀 다르다. 우울함을 극한까지 몰아붙인 노래, 슬픔과 무기력을 나지막히 읊조리는 노래, 그리고 루저의 찌질함을 정면으로 그린 노래들을 일부러 찾아듣게 된다. 신기하게도 이것도 적잖은 치유가 된다. 노래만큼은 그냥 자기의 정서 상태와 가장 결이 비슷한 걸 듣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참 고맙고 다채롭다. 별걸 다 노래로 만드는 이상한 인간들이 어느 구석엔가는 있어주니 말이다.


달빛요정이 찾아온 밤


    그의 노래를 처음 들은 건 수년전 편의점 카운터를 지키던 시절이었다. 적적하고 지루한 밤들을 FM 라디오를 벗 삼아 지새우곤 했는데, 어느 날엔가 심야방송의 디제이가 갑작스런 사망 소식으로 화제가 된 한 무명 가수의 짧았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죽 들려주었다. 그가 남긴 찌질하면서도 중독성있는 노래들과 함께. 그 이름도 명랑한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본명 이진원)이라나? 심야시간이 원래 노래의 맛깔이 풍성해지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날은 유독 노래 속으로 빠져들었다. 토해내듯 부르는 달빛요정의 음성과 가사가 내 귀청을 통과해서 마치 독한 술처럼 세포와 혈관에 녹아드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스끼다시 내 인생, 고기반찬, 도토리, 나의 노래, 슬픔은 나의 힘.... 오랫동안 나름 개성 넘치는 창의력으로 줄기차게 루저의 정서를 노래한 명곡들을 만들고 불러제꼈지만, 요정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외모 탓인지 대중적 인기는 한번도 그의 몫이 아니었던 가객.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타를 놓지 못하고 노랫가사와 자신의 일상이 정확히 싱크되는 일상을 살다가 반지하방에서 홀로 망연히 숨을 거둔 불행한 인간 달빛요정. 그가 나를 찾아와 준 그 밤 이후로 달빛요정의 노래는 내 정서의 밑바닥에 좀처럼 뽑히지 않는 녹슨 못처럼 자리를 잡아버렸다.

    그 날이 아마 밤공기 쌀쌀한 늦가을쯤이었던 것 같아서 달빛요정의 프로필을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2010년 11월 6일 사망이다. 벌써 5년 전이구나. 죽은 양반에겐 5년이든 500년이든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의미는 어차피 살아있는 인간들이 멋대로 갖다 붙이는 것. 나도 나름대로 명분을 만들어서 며칠 전에 나홀로 ‘달빛요정 서거 5주기 추도 세리머니’를 가졌다. 심야방송을 듣던 ‘그 날’과 지금의 나 사이의 5년이라는 시간을 복기해본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달아서 말이다. 세리머니라야 달빛요정의 노래들 중 듣고 싶은 곡목들을 초이스해서 스피커 볼륨을 높여 잠들때까지 반복해서 들은 것에 불과했지만...

    달빛요정의 노래 중 딱 한곡을 고르라면 아무래도 <절룩거리네>다. 이 노래야말로 세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루저들의 찌질한 정체성을 가장 잘 담아낸 노래다. <절룩거리네>의 가사 몇 군데를 들여다보려 한다. ‘달빛요정 서거 5주기 추도 세리머니’의 연계 프로그램이라 여겨주시라. 우선 가사 전문을 보자.


<절룩거리네>      

작사.작곡.노래 :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보석처럼 빛나던 아름다웠던 그대 

이제 난 그때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사람이 되었다네 절룩거리네 

하나도 안 힘들어 그저 가슴 아플 뿐인 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깨달은 지 오래야 이게 내 팔자라는 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허구헌 날 사랑타령 나이 값도 못하는 게 골방 속에 쳐 박혀 뚱땅땅빠바빠빠 

나도 내가 그 누구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놈이란 걸 잘 알아 절룩거리네 

하나도 안 힘들어 그저 가슴 아플 뿐인 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지루한 옛사랑도 구역질 나는 세상도 나의 노래도 나의 영혼도 나의 모든게 다 절룩거리네 


내 발모가지 분지르고 월드컵코리아 

내 손모가지 잘라내고 박찬호 이십승 

세상도 나를 원치 않아 세상이 왜 날 원하겠어 미친 게 아니라면 

절룩거리네 절룩거리네 절룩거리네...


   첫째 줄은 상투적인 도입이니 넘어가자. 둘째 줄에 눈이 간다. 자기 자신이 예전보다 더 무능한 사람이 되었다는 달빛요정의 고백은 한번 루저는 영원한 루저, 나아가 세월이 흐를수록 더 심각한 루저가 되어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젊었을 때는 알바나 비정규직을 하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루저의 인생관에 걸맞는 최소한의 일자리를 얻는 게 점점 버거워진다. 딱히 젊었을 때 보다 더 많은 욕심을 부려서가 아니다. 쉽게 얻을 수 있었던 싸구려 일자리들로의 진입이 나이가 걸림돌이 되어 점점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노랫가사처럼 루저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무능해진다.


비열함의 두 측면


   무능함은 그렇다 치고, 비열하다는건 또 뭔가? 비열함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타인에게 보여주는 비열함. 루저들은 흔히 타인으로부터 ‘비열한 놈’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일을 많이 저지른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루저들의 인간성이 위너들에 비해 태생부터 더 비열하거나 치사할리는 없다. 다만 그들은 비열하지 않고는 생존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더 많이 노출될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성공한 이들은 문제가 생기면 우아하게, 또는 폼나게 해결할 수 있다. 굳이 비열해 질 까닭이 없다는 말이다. 어느 사회에서건 마이너리티에 속하는 계급은 항상 주류로부터 ‘비열한 인간들’이라는 비난을 받곤 한다. 그러나 비열함의 원죄가 루저의 인간성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한 인간이 지닌 비열함의 밑바닥을 기어이 들춰내는 인정머리없는 세상에 있는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는 스스에게 보여주는 비열함이다. 사실 이 두 번째가 루저 정서의 핵심이다. 객관적으로 자기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이런 저런 핑계를 끝없이 만들어내는 내적인 비열함 말이다. 타인에게 보여줘야 하는 비열함이 상황에 따라 반응하는 조건적인 것이라면, 스스로를 향한 비열함은 매우 상시적이며 왜곡의 구조가 한 층 복잡하고 견고하다. 달빛요정의 노래에서 말하는 비열함도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를 향한 루저의 비열함은 마음의 안전장치일수도 있다. 자괴감과 자기분열이라는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나잇값과 뚱땅땅빠바빠빠


   특정한 나이에는 그 나이에 걸맞는 삶의 위치를 획득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나잇값’이다. 루저는 당연히 나잇값을 못한다. 그럼 대신 뭘 하냐구? 뭐긴 뭐겠는가, 뚱땅땅빠바빠빠 놀이를 하는 것이지. 뚱땅땅빠바빠빠야말로 루저들의 존재 이유다. 달빛요정은 자신이 몰입하고 있는 세계를 노래를 상징하는 의성어로 집약했지만, 꼭 노래가 아니더라도 이 세상의 모든 루저들에겐 나름대로의 뚱땅땅빠바빠빠가 있으리라. 그게 문학이니 음악이니 하는 폼나는 장르가 아니라도, 자기를 위로하고 세상의 가치를 대체하는 뭔가를 한가지씩은 품고 있다는 얘기다. 남들이 보면 아무 가치도 없지만 본인 스스로는 그 안에 있을 때 가장 재미나고 즐겁고 기분좋은 세계. 누군가에겐 그게 방랑일수도 있고, 현실성과는 거리가 먼 공부일수도 있고, 가장 흔하게는 음주나 도박일수도 있다. 그걸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그러므로 이 가사는 현실속에서 나잇값도 못 하는 게 맨날 술이나 쳐먹고, 나잇값도 못 하는 게 주둥이는 살아서, 나잇값도 못 하는 게 싸돌아다니기는... 따위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루저는 흔들림없이 뚱땅거리거나, 책장을 넘기거나, 트레킹을 하거나, 또는 밤마다 술잔을 기울이며 누군가에게 지루한 이야기를 해 댄다. 누가 뭐라든 그 순간이 가장 즐거우니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비열함과 뚱땅땅은 루저의 내면을 지키는 두 개의 안전장치다. 위너들이 볼 때 도대체 루저들은 양심도 없지,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사는가 하고 생각하겠지만, 스스로에게 비열해지고 남들이 가진 걸 부러워하지 않을 나만의 세계, 뚱땅땅이 있어서 루저도 나름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안전장치가 가끔 균열을 일으킬 때다. 꼭꼭 숨어있고만 싶었던 비열함의 거적데기가 확 까발겨지는 순간, 영원한 친구가 되어줄 것 같았던 뚱땅땅의 쓸모없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언젠가는 엄습할 수밖에 없다. 이 노래의 매력은 바로 그 비열함과 뚱땅땅의 세계가 균열을 일으키는 지점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절룩거린다네. 아주 가끔씩...


    비열함이 틈새를 보일 때 그 틈새를 비집고 자괴감이라는 괴물이 엄습한다. 뚱땅땅이 하찮아질 때 바닥이 없는 듯한 허망함에 사로잡힌다. 그걸 달빛요정은 절룩거린다고 표현했다. 나도 가끔씩은 절룩거린다고, 똑바로 걷지 못하고 스탭이 엉킨다고...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은... 하지만 그 가끔씩이 점점 잦아지다보면 균열의 통해 들어온 쓰라린 자각의 통증이 존재 전체를 삼켜버린다. 그래서 루저계의 천하무적 달빛요정도 어쩔 수 없이 실토한다. 나의 노래도, 나의 영혼도, 나의 모든 것이 절룩거린다고... 마침내 노래는 절창으로 치닫는다.


    내 발모가지 분지르고 월드컵코리아 

    내 손모가지 잘라내고 박찬호 이십승


    언제 들어도 이 노래의 가장 절절한 부분이다. 루저들의 도피처 중 하나가 바로 스포츠다. 자신을 대변해 누군가가 영웅 노릇을 해 주니 이보다 통쾌하랴. 몰입할 수 있고, 당당히 누군가를 욕할 수 있고, 죽여버려! 발라버려! 응원을 빙자해서 억눌렀던 분노를 표출할 수도 있다. 월드컵 코리아를 외치는 순간에는, 박찬호 이십승에 환호할 때만큼은 루저나 위너의 구분 따윈 없는 듯 했다. 하지만 그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목도해야한다. 누군가는 월드컵을 치르고 황금발이 되어 유럽으로 업혀가고, 누구는 20승을 달성하고 황금팔이 되어 팀을 옮기는 장면을. 저런 고부가가치의 육신과 비교하면 내 발모가지와 손모가지는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분질러버려도 상관없을 것처럼 하찮아 보이지 않겠는가. 그러니 이 가사는 사건의 순서상 앞뒤가 뒤바뀐 문장이다. 발모가지를 분질러야 월드컵 코리아가 이뤄진다는게 아니라, 월드컵 코리아를 외치다 보니 발모가지를 분질러버리고 싶을 만큼 자괴감이 들더라는 말이다. 박찬호 20승에 열광하다가 자신을 돌아보니 손모가지를 잘라버리고 싶을 만큼 기분이 더럽더라는 얘기다.


영원한 루저들의 주제가


    거기까지다. 그렇게 지지리 궁상을 떨고서 그저 절룩거리네... 절룩거리네... 하면서, 흔한 반성이나 각오 따위도 없이 노래는 끝난다. 대책없음의 끝장이다. 그런데도 마음을 두드린다. 모르긴 몰라도 이 노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어딘가에서 불리워지며 수많은 루저들의 쪼그라든 마음을 다독여 줄 것이다. 너 자신이 졸라 한심하고 외롭니? 너만 그런 거 아니니까 엄살 떨지 마. 너보다 더 질척거리며 찌질하게 살다가 갈 때도 완전 거지같이 간 인간도 있잖아. 너 정도면 살만한거야... 유치하지만 이런 게 진짜로 위로가 된다니까. 아, 인간이 참 간사하다. 당신은 루저인가? <절룩거리네>를 들으라. 우리들의 주제가가 여기에 있다. 당신은 루저가 아닌가? 그래도 한 번 들어보라. 저렴한 가격에 남의 인생 밑바닥의 진면목을 쫄깃하게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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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족 1 - 루저 정서를 담아서 대중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받았던 노래로는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가 있다. 제목에서부터 싸구려가 들어가는 이 노래 역시 루저들의 적나라한 일상을 재치 넘치는 가사와 유니크한 곡 전개로 표현해 수많은 이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 노래가 맘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장기하의 모든 게 너무 전략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촌스러운 용어인 ‘진정성’이라는 말을 굳이 끄집어내어 시비를 걸고 싶을 만큼 장기하의 루저 코스프레는 좀 재수 없었다. 최근에도 그때의 내 생각이 옳았음을 다시금 확인한다. 요즘 아이유를 사귄다잖나. 뭘 해도 밉상이다. (※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호오의 표현이니 장기하를 애호하시는 분들은 분노와 시비를 거두어주시라.)

    * 사족 2 - 루저에 대해 길게 수다를 떨었지만, 사실 요즘엔 루저라는 말을 쓰는 친구들이 별로 없다. 이 사회의 루저들이 그만큼 줄어서일까? 그럴 리 있겠는가. 현실은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누구를 특정하여 루저라 부르기가 민망할만큼 모든 젊은이들의 루저화가 명백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너 나 할것 없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긴장에 쩔어 있으니 루저란 용어가 발붙일 자리가 사라질 수밖에. 그래서 개인적 차원의 패배를 의미하는 루저를 용도폐기하고, 이 땅의 젊은이들 모두의 절망을 뭉뚱그려 담아낸 ‘헬조선’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어로 등재시킨 게 아닐까? 그렇다면 아마도 어디에선가는 집단적 침몰의 절망을 토해내는 헬조선 세대의 주제가가 만들어지고 있으려나? 생각하니 또 우울해지네...


* 필자소개

    몇 달 전부터 고양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신도제일교회에서 청년들과 생각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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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우묵함에 관하여

 



유경종

(본 연구소 회원)



    어릴적에 시골에 있는 친척집에 놀러 가면 또래가 비슷한 사촌형제들이 우리 형제를 반겨주었다. 우리들의 놀이터는 마을 뒤편의 돌산이었다.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돌을 캐 간 흔적들이 널려 있는 돌산은 조금은 위험했지만 재밋거리가 가득한 산 속 본부였다. 돌산 한 구석에는 작은 돌샘이 있었다. 바위가 깨진 틈새로 촉촉한 습기가 배어들고, 그 물기가 바위 아래의 우묵한 자리에 고여 들어 만들어진, 작은 돌절구만한 샘이었다. 물은 맑고 깨끗했다.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아이들 몇몇이 놀다가 마른 목을 축이기에는 그만이었다. 돌샘가 비밀장소에 숨겨놓은 작은 쪽박으로 서너 바가지 떠서 돌려 마시면 물은 금새 바닥을 드러냈다. 물이 다시 고이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어느 날인가는 조바심을 갖고 물이 차기를 지켜봤지만 한없이 지루했다. 돌샘의 물 따위는 잊어버리고 한바탕 놀다가 와 보니 어느 새 물은 아까처럼 고여 있었다. 시간과 함께 천천히 고이는 물이 어린 눈에도 신기했다.


1. 고임, 그리고 우묵함


    뭔가가 고인다는 말 속에는 어딘지 은근한 느낌이 배어있다. 갑작스레 몰려들어 가득 채우는 것은 고인다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 폭우로 홍수물이 들어 찬 광경을 보며, 물이 밀어닥쳤다고 말하지 고였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언제 채워졌는지 모르게 천천히, 눈에 보이지 않도록 시간을 잡아먹고 모여들어야 비로소 고여 들었다고 말할만하다. 망각의 뒤켠에서 은밀히 수위를 높여가는 것이 고임의 전략이다.

    속도와 함께 중요한 것은 고임의 자리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뭔가가 고이려면 고이는 자리가 우묵해야 한다. 평평하거나 기울어진 곳에서는 아무것도 고일 수 없다. 우리 몸도 군데군데 우묵한 자리가 있어서 사람 노릇을 하는 이런 저런 고유한 특징들이 고여 든다. 짠 눈물이 고이는 눈두덩도 우묵하고, 수줍은 미소가 고이는 보조개도 우묵하고, 섹시함이 흘러 고이는 배꼽도 우묵하고, 퇴근시간이면 하루의 피로가 고여 드는 발바닥 가운데도 우묵하다. 신체뿐인가. 생각해보면 우묵함은 모든 숨 쉬는 것들을 보듬고 기르는 기본적인 형태다. 산새의 둥지도 우묵하고 토끼의 굴도 우묵하다. 짭쪼름한 바다 향을 품은 꼬막껍질도 우묵하고 선홍빛 알덩이가 고여 있는 게껍질도 우묵하다. 생명을 보듬고 키우는 자리가 이렇듯 우묵해서일까, 온 인류의 생명에 관심을 두고 이 세상을 찾아온 아기 예수도 우묵한 구유를 골라 누울 자릴 잡았나보다.

    비단 생명체 뿐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욕망이 중력의 힘이 지배하고 있는 물리적 공간에 맞서 뭔가를 시도하려면 우묵함의 유용성에 기대어야 할 때가 많다. 형태가 굳어지지 않은 것들은 늘 움직이고 흐르고 흩어진다. 그 유동적인 것들을 어르고 달래서 잠시나마 한 장소에 함께 머물도록 다독이는 형태가 바로 우묵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가 고여 든 우묵함에는 흩어지려는 본능과 붙들어두려는 힘 사이의 긴장이 항상 존재한다. 공기가 고여 들어 배를 띄우는 나룻배 바닥의 우묵함에서도, 찌개가 끓으며 맛을 고이게 하는 뚝배기의 우묵함에서도, 진동이 고여 들어 소리를 품어내는 만돌린 울림통의 우묵함에서도 아슬아슬한 물리적 긴장이 함께 머문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리 없이 고이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우리 마음의 풍경이다. 누군가가 보고 싶어지는 간질간질한 마음도, 누군가가 꼴 보기 싫어지는 냉랭한 마음도 하루아침에 황톳물처럼 밀어닥치기지 않고 대개는 돌샘물처럼 소리 없이 고여 든다. 내 마음에 고이는 것이지만 나도 잘 감지를 못한다. 이상하다 싶어 들여다보면 이미 찰랑찰랑, 여차하면 넘쳐날까 겁날 정도로 가득 고여 어쩔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마음의 풍경도 우묵함 없이는 고여 들지 못한다. 동일한 시간 속에서 동일한 경험을 해도 누군가에게는 강렬한 의미가 남고,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인상조차도 남지 않는 차이가 바로 마음의 우묵함을 지녔는지의 여부가 아닐까.


2. 내 마음이 평평해졌다.


    몇 달 전 직장에 취직을 했다. 사십대 중반이 되도록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해 본 적이 없이 비정규 단순직이나 소규모 자영업을 하면서 적당히 먹고 살아왔는데, 어찌하다 보니 시절의 인연에 이끌려 작은 지역신문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뒤늦게 시작한 직장생활은 하나부터 열까지가 낯설고 부담스러웠다. 내 이름이 박힌 명함이 어색했고, 서로를 직함으로 부르는 이들이 생경했다. 더군다나 지역신문사의 형편이 뻔해서 전문적인 업무 분담은 언감생심이고, 일당백의 정신으로 서너 가지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해야 겨우 하루가 마감되었다. 영업도 뛰고, 인맥도 챙기고, 수금도 하고, 가끔씩 기사도 쓰고, 행사도 기획하고, 배달도 하고, 노가다도 뛰고... 하는 일의 멀티스러움에 비해 보수는 무척 섭섭하지만, 이게 다 내 삶의 행동반경을 넓혀줄 수 있는 경험이 되어 주려니 스스로를 독려하며 버티고 있다. “솔직히 니 나이와 니 주제에 그 정도 직장이면 감지덕지”라는 주변 친구의 애정어린(?) 말에 반박을 하기도 힘들고, 내 스스로도 더 이상 불안정한 삶의 형태를 지켜내기가 겁도 나고 해서다.

   하지만 그렇게 바쁘게 몇 달 살다보니 최근 들어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언제부턴가 내 안에 뭔가가 고이지를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징후는 여기저기서 감지되었다. 오래간만에 휴일의 느긋함을 즐기려고 도서관에 갔는데 읽고 싶은 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서 빨리 자기를 찾아내 읽어달라고 아우성치던 책들은 다들 어디로 간걸까. 신문 신간면이나 이런 저런 책 정보를 슬슬 훑어보기만 해도 읽고 싶은 책과 사귀고 싶은 작가들이 우묵한 마음에 고여들곤 했었는데, 거의 두어달만에 찾은 도서관에서 우물 뚜껑을 열어보니 흥미를 사로잡은 책과 작가의 리스트가 고이지 않은 것이다. 억지로 책 몇 권을 골라서 대출절차를 밟았지만 메마른 돌샘 바닥을 스텐 컵으로 긁는 소리가 나는 듯 했다. 내 안에서 책에게 내어 주었던 우묵했던 고임자리가 평평해진게 분명했다.

   얼마전엔 아무도 없는 예배실에 들어갔는데 기도가 나오질 않았다. 예전에는 뭘 기도했었는지, 누굴 위해 기도해야 할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찬송가 가사처럼 나 예수께 조용히 나가 내 모든 짐 내려놓으려 해도 마음이 안 열리고, 유치부 친구들의 노래처럼 샛별 같은 두 눈을 사르르 감아보아도 꽃잎 같은 입술이 가만히 열리지 않았다. 보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혼자서 뻘쭘했다. 대중기도나 합심기도, 통성기도는 적성이 안 맞는 관계로 일찌감치 끊은 탓에 그나마 유일하게 유지해 온 기도의 끈이 홀로 넋두리하는 기도였는데, 그 길마저도 막혀버린 것이다. 기도꺼리의 고임자리도 평평해졌다.

   두세달에 한 번 정도 스마트폰 갤러리에 저장된 사진들을 정리한다. 버릴 건 버리고, 모아두고 싶은 사진들은 성격이나 장소별로 구분해서 포토앨범에 저장하곤 한다. 그런데 최근엔 몇 달만에 갤러리를 정리하면서도 앨범 하나를 만들지 못했다. 일 때문에 찍거나 주고 받은 너저분한 사진들을 싸그리 모아서 삭제했더니, 갤러리에 소장하고픈 사진이 몇 장 남지 않았다. 스마트폰에 사진도 고이지 않았구나. 기억하고 싶은 순간도, 붙들어두고 싶은 인상도 없이 시간이 휘발해 버렸다. 사람은 엄청나게 많이 만나는데 거꾸로 일상 속의 의미의 고임자리는 평평해졌다.

   늦은 저녁 사무실 책상에 앉아 오래간만에 뭔가를 끄적거려보려고 다이어리 폴더를 열었는데 좀처럼 손가락이 안 움직인다. 생각이 고이지 않았다. 예전에 편의점에서 일할 땐 뭔가를 쓰고 싶은 욕망이 수시로 고이곤 했었다. 카운터에서 책을 읽거나 잡념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고여있던 생각이 넘치면 급한대로 포스기의 얇고 긴 영수증을 잘라서 그 위에 단상들을 끄적이기도 했었다. 그렇게 끄적인 단상들을 모았다가 일주일에 한두 번 다이어리 폴더를 열어 넘침의 흔적들을 옮겨놓곤 했다. 지금도 책상 서랍 어딘가에는 편의점 카운터 시절의 영수증 낙서를 모아놓은 종이봉투가 처박혀 있을 거다. 그런데 명색이 글을 다루는 직장에 다니면서 오히려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메말라버린 것이다. 생각의 고임자리가 평평해졌다.

   전문적인 내공을 가진 분들은 예외일 수 있겠지만, 나처럼 보통 사람의 경우 일과 스케줄에 쫓기는 삶을 살다 보면 책도, 기도도, 사진도, 생각도 고여 들지를 않는다. 마음의 자리가 평평해지는 것은 아주 합리적인 우리 몸의 선택능력의 결과다.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 자꾸만 고여 들면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잡스러운 것들이 고여 들지 못하도록 우묵했던 마음의 자리를 평평하게 펴 버리는 것이다. 삶의 형태가 우리 마음의 형태를 수시로 교정하는 것이다.


3. 슬픔도 분노도 고이지 않는 세상


    시선을 조금만 넓게 열어보면, 나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언제부터인가 점점 우묵함을 잃어버린 듯하다. 사회적 고임의 자리가 잘 감지되지를 않는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수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이런 평평하고 밋밋한 사회적 감성의 조짐이 내 기억속에 처음으로 감지된 사건이 용산 참사였던 것 같다.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망루에 올라간 이들이 불에 타 죽었는데도 사회적 슬픔과 분노가 제대로 고여들지를 않았다. 이상했다. 하지만 그 이상한 느낌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우리사회가 만들어내는 공포영화 시리즈는 장르와 버전을 변주하며 끊이질 않고 이어졌다. 공포와 충격의 종류도 일일이 열거하기가 참담할 정도로 다양했다. 선거 부정을 저지른 이가 버젓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가 하면, 수많은 이들이 죽음의 벼랑으로 내 몰리는데도, 아니, 실제로 어이없는 죽음이 이어지고 있어도 슬픔도 제대로 고이지 않고, 분노도 제대로 고이지 않는다. 피가 끓다가도 잠시 뿐, 눈물 흘리다가도 잠시 뿐, 분노도 애통도 시간과 함께 고이기는커녕 평평하게 흘러내려 메말라버린다. 정당한 분노, 정당한 슬픔에 대한 고임의 자리를 지켜내기에는 우리 삶의 기초가 너무도 불안정하기 때문일까.

    지금과 비교하면 예전에는 세상 이 구석 저 구석이 지금보다는 좀 더 우묵했었던 것 같다. 노인들이 하릴없이 돌아다녀도 흉이 되지 않는 동네도 우묵했고, 학생들이 적당히 공부하던 교실도 우묵했고, 주말부터 청년들이 히죽거리며 모여들던 교회도 지금보다는 우묵했다. 도처가 우묵한 세상 속에서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정보나 감각들이 고이고, 필요할 때는 함께 모아 낸 감각들을 서로가 제 그릇만큼 떠다가 썼던 것도 같다.
    하지만 수많은 정보가 보이지 않는 전파를 타고 촘촘하게 공간속을 날아다니면서 엄청난 저장고를 만들어내는 시대를 맞아서 고전적인 사회의 우묵함은 거추장스러워졌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간의 우묵함 대신, 보이지 않는 가상 공간의 우묵함을 우리 손으로 선택하고 구축했다. 포털도 우묵하고, 클라우드도 우묵하고, 이런 저런 SNS도 얼마나 우묵한가. 우묵하다못해 움푹하고 아득할 정도로 깊다. 그런데 정작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없다고, 그 깊고 아득한 공간에 마실 물이 가득하니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슬픔과 비웃음과 분노와 조롱이 한 웅덩이에 섞여 마실 물 한 모금을 찾을 수 없다. 오늘의 웃음과 눈물은 오늘에 털어내야지 내일의 웃음과 슬픔이 또 들어 찰 공간이 비워진다. 그렇게 매일의 웃음과 슬픔과 분노를 숨가쁘게 처리하는 사이에 이 사회의 고임 자리는 평평해졌고, 우리들 역시 눈두덩도 평평하고 발바닥도 평평한 환자들처럼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를 싫어하게 되어버린게 아닐까.


4. 심심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이야기가 너무 거창해졌다. 사실 사회적 우묵함에 대한 고민은 내가 들먹일 깜냥을 넘는 주제다. 나는 다만 내 안에서 말라버린 고임의 자리가 슬프고 섭섭할 뿐이다. 그래서 다시금 내 안의 우묵함에 집중하고 싶고, 거기에 책이나 기도나 생각이나 영화나 노래처럼 뭔가 잡다하고 실용적이지 않은 것들이 고여 들기를 차분히 기다리고 싶을 뿐이다. 내가 내 자신의 우묵함을 회복해야 타인의 우묵함에 대해서도, 그리고 이 사회의 우묵함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언급을 할 자격이 비로소 생긴다는 게 나의 궁색한 변명이다. 그러기 위해서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다시 좀 더 게을러지고, 좀 더 심심해질 수 있는 현실적인 가능성들을 찾아내야 하리라. 그리고 그 게으름과 심심함의 시선으로 내 주변 사람들의 우묵함도 들여다보고 싶다. 마음의 우묵함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서로에게 격려의 눈빛을 보내며 이런 덕담도 건네보고 싶다. 게으른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가 우묵한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심심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가 가진 우묵한 마음에 잡다하고 빛나는 것들이 고여 들 것입니다.


* 필자소개

    몇 달 전부터 고양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신도제일교회에서 청년들과 생각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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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을 읽으며 떠올려본 몇 가지 기억들
 
 
유경종
(본 연구소 회원)

* 장면 1. 1985년 겨울
교회 청년 중에 대학 연극반에서 활동하던 누나가 한 분 있었다. 교육 환경이 열악하기 그지없던 경기도 변두리 교회 안에서 거의 유일하게 패기있고 세련된 대학생의 기풍을 보여주며 동생들의 동경을 받던 선배였는데, 그 누님께서 어느날인가 방학을 맞아 심심해하는 내 또래의 중등부 친구들을 모으더니 연극을 한 편 만들자고 꼬드기는게 아닌가. 당시만 해도 교회를 들락거리며 뭔가를 꾸미는 일이 제일 재밌었던 시절인지라 우리들은 두 말 없이 누나의 제안에 따르기로 했다. 누나가 들고 온 작품은 <욥>이었다. 제목은 심플했지만 내용은 심각해서 욥의 고통과 좌절, 그리고 친구들과의 치열한 논쟁을 진지하게 그려낸 연극이었다. 누나가 대체 무슨 의도로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인생의 쓴 맛 단 맛 다 본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작품을 들이댔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잘 이해가 안가지만, 어쨌든 우리들은 내용도 잘 이해가 안 되는 연극을 완성하기 위해 한달여동안 꽤나 열심히 매달렸다. 하지만 곧 문제가 터졌다. 교회 어르신 몇 분이 우연히 연습하는 모습을 보시더니 매우 언짢아 하셨고, 공연 자체를 막지는 않으셨지만 교회로부터 아무런 관심이나 협조를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공연일이 되었지만 객석은 텅 비어있었다. 뭔가 막연히 폼나는 성취감을 꿈꿨던 우리들의 기대는 고스란히 상처가 되었다. 뜻하지 않게 연기인생의 데뷔 무대를(^^*) 언더그라운드로 시작하게 된 나는 그 일을 통해 어렴풋한 교훈 한 자락을 얻을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교회라는 동네에서 탈 없이 지내려면 욥이라는 양반이랑은 웬만하면 친하지 말아야겠구나, 라는 다짐 말이다.

* 장면 2. 몇 해 전 봄.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다짐의 흔적은 무뎌지고, 몇 년 전 또다시 나는 욥 아저씨 주변을 어정거리다가 두 번째 상처를 자초하고 만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선교회 모임에서 성경공부를 지도하게 되었는데, 세상과 교회의 돌아가는 꼴에 지긋지긋한 염증을 앓던 나는 뜬금없이 욥기를 다뤄보자고 제안을 했다. 그 즈음 나는 정병선 목사님이 쓰신 욥기 묵상집 <신앙의 마스터클래스>(대장간)를 꼼꼼히 읽으며 욥이 보여주는 새로운 차원의 신앙에 새롭게 눈 떠 가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 하필 욥?’ 이라는 뜨악한 반응을 보였지만 맘에 안 들면 댁이 리더를 하시던지, 하는 심뽀로 무작정 밀어붙였다. 결과는 뻔했다. 구성원들의 열화와 같은 외면 속에 욥기 공부는 몇 주 만에 흐지부지 중단되었고 나는 교회 내에서 그나마도 근근하던 공신력에 적잖은 데미지를 보태야 했다. 역시나, 어릴 적 깨달은 교훈을 망각하는 인간 치고 잘 되는 인간 없다더니... 물론, 스터디 실패의 가장 큰 책임은 성급히 구성원들을 계도하고자 했던 나의 어쭙잖은 조급함에 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하여튼 욥 이 분은 세월이 흘렀어도 한국 교회의 주류 정서에서 여전히 왕따 신세를 못 면하는구나 생각하니 적잖이 씁쓸했다. 차라리 경륜있는 엘리바스나 근엄한 빌닷이나 열정적인 소발의 주옥같은 말씀(?)들을 적절히 발췌해서 신앙 강화 교재를 만든다면 한국 교회 성도들의 입맛에 딱 맞는 프로그램이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자조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소위 잘 나가는 목사님들께서 성서속의 별별 요상한 인간상을 그럴듯한 학습 모델로 잘도 포장해내면서 이건 왜 안하는지 모를 일이다.

* 장면 3. 몇 해 전 가을.
송 권사님은 우리 교회의 할머니 권사님들 중에서도 가장 몸집이 작은 분이다. 그 작은 몸으로 한평생을 종종종, 교회와 집과 일터를 오가며 살아오신 분. 몸집만큼이나 성품도 온화하여 기도도 조용조용, 봉사도 사근사근, 한번도 누구랑 말싸움이라도 댓거리를 하는 걸 보질 못했다.
어느 저녁, 차량 운행을 하는데 마침 차에 타신 권사님들의 화제가 하나님에게 복받은 이야기로 이어졌다. 다들 은혜로운 분위기 속에서 나름대로의 주신 복을 카운트하고들 계신데, 아무 말씀 없이 듣기만 하시던 송권사님이 한숨을 한번 길게 내쉬더니 혼잣말처럼 이렇게 내뱉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정말 하나님이 나에겐 뭔 복을 주셨는지 모르겠어... 정말 나에게도 뭘 주시긴 주셨나...?"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어느 분이 아따, 송권사는 무슨 말을 그리 복없이 한댜? 라고 눙을 치자 그냥 그렇다는 얘기지 뭐, 하며 허허 웃으셨다.
그저 흘러가듯이 하신 말씀이지만 그 고백이 내 마음에 한참동안이나 무겁게 남았다. 아마도 그건 권사님께서 평생을 두고 곱씹어 온 물음이었을 것이다. 전처의 자식이 있는 집에 시집을 와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시며, 그나마 바깥양반을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나 보내시며, 혼자 몸으로 남겨진 삼남매를 키워내시며, 진득이 집에 붙어있지도 못하고 이리 저리 떠도는 막내 아들 때문에 속을 태우시며, 얼마 전에야 병석의 시어머니 수발을 놓으시며, 고단에 겨워 눈거풀이 무겁고 마음이 시려 무릎이 꺾일 때마다 아마도 권사님은 같은 물음을 묻고 또 묻지나 않았을까.
하나님이 나에겐 뭔 복을 주셨을까나...? 교회서는 늘 믿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배웠는데, 그럼 내 평생의 믿음은 대체 뭘까...? 

* 다시 욥을 읽으며...
작년 말부터 편의점 야간 근무를 하는 터라 짬짬이 책을 읽기에 좋은 시간이 주어졌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주로 슬렁슬렁 읽히는 잡지며 소설류를 읽곤 하는데, 요즘에는 가장 여유로운 시간을 챙겨 최형묵 목사님께서 쓰신 <반전의 희망, 욥>을 하루에 몇 페이지씩 천천히 알뜰하게 읽고 있다. 고즈넉한 새벽녘에 최 목사님의 웅숭깊은 글을 읽는 맛이야 새삼 말해 무엇하랴. 
어릴적 선배 누나를 통해, 몇 년전 정병선 목사님의 책을 통해, 그리고 또 다시 최형묵 목사님의 목소리를 빌어 욥은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논쟁할 때 알아봤지만 참 끈질긴 양반이다. 이쯤되면 나도 욥이 걸어오는 말에 진지하게 대답을 준비할 때가 된 듯도 하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대답을 나는 송권사님 같은 분과 나누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오랜 고민을 거쳐 건져 올린 대답이 송권사님 같은 분과 소통할 수 있을만큼 낮아진 목소리였으면 좋겠다는 바램 때문이다.
누군가는 역사의 격랑을 끌어안고, 어떤 이는 시대의 아픔을 짊어진다. 각자의 십자가를 감내하며 나가는 이들에게 욥은 역설적 희망의 지표가 되어준다. 그런가하면 송권사님처럼 그저 소박하게 가족과, 이웃과, 교회와 성도와 목회자를 섬기는 일을 자신의 십자가려니 여기고 살아가는 분들도 많다. 그게 그 분들이 알고 있는, 또한 살아낼 수 있는 신앙적 삶의 유일한, 그리고 최선의 방식이었기 때문일게다. 욥이 던져주는 반전의 희망은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을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장삼이사의 필부들에게도, 심지어는 나처럼 한 인생 대충 방기하며 살아가는 무책임한 게으름뱅이에게도 평등하게 유효하리라. 대체 어떤 언어로 그 희망을 함께 나눌지는, 책을 마저 읽고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다.

ⓒ 웹진 <제3시대>




연구소가 기획하고 도서출판 동연이 펴내는 <성서_현대를 읽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 출간됐습니다. 성서와 더불어서 현대를 살고 있는 나를 살피고, 오늘의 인간 문제를 들여다보려는 이 시리즈는 욥기를 새롭게 읽는 첫 번째 책에 이어 앞으로 다음과 같은 책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깊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2권 『무덤에서 모태로 - 생명을 살리는 성서의 지혜』(저자 : 구미정)
            3권 『다니엘과 함께』(저자 : 김응교)
            4권 『구약에서 영성 읽기』(저자 : 김은규)
            5권 『'나는 누구인가' - 성서에서 이웃에 관한 질문들』(저자 : 정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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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소개 : 성서_현대를 읽다 1

『반전의 희망, 욥 -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

지은이_ 최형묵
펴낸곳_ 도서출판 동연
펴낸날_ 2009년 9월 6일
쪽수_ 272쪽
크기_ 148×210mm
장르_ 종교 / 기독교신학 / 구약학
값_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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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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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0 23:5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안녕하세요. 유경종님. 다비아 인문학적 성서읽기모임에서 뵈었었는데 이렇게 글로도 뵙는군요. 좋은 글을 제 블로그에 발췌하겠습니다. 물론 코멘트도 달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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