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을 대하는 자세

김현준
(본 연구소 회원, 연세대학교 정치학 석사)

 

영화 <지슬>을 보았습니다. 한국 민족주의의 다양한 양태에 관심 있으면서도, 고향이 제주도인 저로서는 이런 영화에 객관적이고 적절한(?) 감정을 가지기 힘들다는 자격지심에 오히려 영화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면서 경험한 제주도의 삶과 4.3 사건 당시의 삶 역시 같다고 할 수는 없기에, 저 역시 관찰자(?)의 눈으로 영화를 보고자 했습니다.

일단 영화의 내용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스포일러 혐의를 피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제가 이 글에서 의도하는 것은 영화 소개라기보다 이런 영화를 대하는 자세 또는 방식에 대한 제 생각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만 전체적인 형식은 영화가 하나의 제의(祭儀)의 형식을 빌려 당시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참사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삶과 정치적 이념이 마주치는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정도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영화는 마지막에 당시의 사상자 현황과 사건을 주도한 국가폭력과 미군정의 문제를 자막으로 명시하고 현대화된 제주 민요를 들려주며 엔딩 크레딧을 보여줍니다. 사건의 원인을 지적한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영화로도 미처 담아내지 못한 당시의 말 못할 참상들을 고려하면 당시의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소재를 찾아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도 지적한 바와 같이, 당시의 피해자들을 아무것도 모른 채 순수하게 ‘당하는’ 사람들로만 비추었다는 사실, 제가 덧붙이자면 사건의 원인과 참상을 지나치게 미시화(가족 및 연인관계의 아픔)하고 그것의 대척점을 국가폭력이라는 추상적 대의, 또는 개인적인 욕정과 매너리즘에 가득 찬 군인들 개개인의 문제로 집약시켜놓았다는 점이 다소 안타까웠습니다. 이에 영화에도 잠간 언급된 바, (제가 사실관계는 잘 모르지만) 당시의 민병대 등 가족과 마을을 지키기 위한 거주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들을 포착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국가폭력의 역동적인 반응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 영화가 진짜 ‘빨갱이’와 국가 폭력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채, 자신들만의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일반 거주민들의 삶에 집중하였다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방법을 취했던 제주도민의 ‘억척같음(? 어쩌면 야비함)’의 모습 역시 보여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만일 그랬다면 당시의 역사적 기억을 지나치게 ‘로맨스화’했다는 비판, 그리고 그것을 구실삼아 변명거리를 찾으려는 일부의 몰지각한 반응에도 적절히 반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솔직히 제주도라는 지역은 현재는 “이어도 사나-”, “혼저옵서에” “한라봉” 정도로 표상되고, 4.3에 관련해서는 ‘대한민국 정체성’이 형성되던 시기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된 곳으로 표상되기 쉽습니다. 참고로 지금 제주도 마트에서 “지슬주세요.”라고 하면 알아들을 사람이 몇이나 될지도 궁금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끔은 ‘제주도의 삶’ 역시 ‘오리엔탈리즘’화 된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런 오리엔탈리즘을 없애기 위해 감독은 개인들의 삶에 집중했지만, 결국 개인과 (민족)국가라는 대당‘사이에 놓여있는 무언가’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과 호기심은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잔뜩 기대하고 샀다가 그 책에 나온 “제주 허씨”의 뜻을 알고 말 못할 거부감을 느꼈던 ‘문화유산답사기’ 베스트셀러가 떠오르기도 했고, 학부시절 “떠나요~제주도~” 노래를 부르며 “밤별 초롱초롱”을 되뇌던 친구를 불쾌하게 쳐다보았던 경험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4.3 당시 “초토화 작전”의 참사에 불구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자손으로서, 뻔뻔함을 극복하기 위해 당시의 희생자들을 어떤 식으로 추모해야 할지 고민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학부 때 수업 과제로 자신의 연대기를 국제정치사와 연관시켜 설명하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희 할아버지의 형제 중 종손이 4.3의 희생자였다는 사실, 저희 외할아버지가 (4.3이 일어난 당시인지는 명확하지 않은) 비슷한 시기에 제주 모 지역의 군인으로 근무했다는 사실(하지만 진압 투입 여부는 절대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이 양가적인 기억과 함께 느껴지는 감정은 그 곳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죄책감이 든다는, 어쩌면 타향의 분들은 이해하지 못할 감정이었습니다.

극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천안함 3주기’를 추모하는 새누리당의 포스터에는 “잊지 않겠다.”는 말이 적혀있었습니다. “46용사(?)”의 죽음과 유가족들의 슬픔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현실 ‘천안함’을 잊지 않는 방식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심지어 이 영화가 나왔을 때, ‘애국자’를 자칭하는 일부 극단적인 온라인 동호회에서 별점 테러를 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슬픔에 전율이 흐르기도 합니다. 억울하게 죽은 그들의 죽음을 잊지 않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희생자’들을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희생자’ ‘용사’들로 사유해버리기 쉽습니다.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이 여전히 지난한 좌-우 논쟁 속에서도 끈적끈적하게 살아있는 국가주의적 관념이라면, 그들이 ‘우리’를 위해 희생된 수동적 주체라는 생각에 젖어버리면 그들은 영원히 우리의 관념 속에 “오리엔트”로 남아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남겨진 ‘추억’들. ‘향수’들이 각자의 마음대로, 제멋대로, 자발적으로, 지속적으로 전유될 때, 우리는 또 다른 ‘4.3’, 또 다른 ‘천안함’을 목도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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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데리다’ 특별기고[각주:1]
: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해체론적 독법 (II)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지난 호에 이어)

 

해체론, 비어있는 중심을 꿈꾸다

세상에는 우리가 뭐라고 꼭 집어서 말하거나 드러내보일 수는 없으나, 그 집단의 성원들이 모두 있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광의적으로 인간일반 전체에 형성되어 있는 것을 고르라면 종교라고 할 수 있겠죠. 일정 지역, 일정 거민들에게 통용되는 그것을 분석하려면 그 지역의 역사와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한국의 경우를 들어 설명하자면 한국 현대사에서 나타났던 일제식민지 시절, 광복, 분단, 한국전쟁, 군사독재, 민주화 운동, 반공, 빨갱이, 좌파……이런 격동 속에서 한 평생을 요동치며 살아온 한국보수층의 눈으로 볼 때, 북한이 천안함을 타격했다는 것은 그들이 확실히 물증을 제시할 수 없고 밝힐 수 없다손 치더라도 그것이(북한이) 거기에(천안함을 침몰시켰다는 것) 있었다는 것은 대부분의 한국 보수층들이 동의하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문명충돌론, 이슬람 강경테러분자, 헤즈볼라, 9.11, 오사마 빈라텐, 사담 후세인……이런 기표들은 부시로 상징되는 미국 보수층들에게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지만 진실은 그것이(대량살상무기) 그곳(이라크)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이 설정하고 있는 천안함과 이라크를 둘러싼 그들의 진실은 미지의 무언가로부터 유래합니다. 결과와 양상은 다르지만 미지의 어떤 것에 의지한다는 점에서는 해체론의 그것과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메시아적인 것이라 표현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메시아로 상징되어져서 무엇인가를 정초하고 토대 지어 깃발을 펄럭이며 그 아래로 사람들을 줄 세우는 것은 배격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존재론적 확신이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수많은 메시아주의를 낳아 사람들을 광기로 몰아넣었기 때문입니다.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논의과정, 이라크 침략을 둘러싼 미국의 그것은 해체론과 동일하게 알 수 없는 어떤 것’(저의 용어로는 메시아적인 것’)에 기인하나, 그것들은 해체론과는 반대로 너무나도 빠르고 확고하게 중심을 가득 채우는 기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점이 바로 해체론에서 가장 경계하는 대목입니다.

저에게 있어 메시아적인 것이란 멈추지 않고 의혹에 휩싸여있는 그 무엇입니다. 그곳은 누구나 들어 올 수 있으나, 그 누구도 정착할 수 없는 탈영토화된 공간입니다. 설사 그곳에 일정 기간 동안 시대를 대표하는듯한 지배적 정서가 있어 호령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 예외적 사건의 예로 기록되어진 후에 다시 괄호밖으로 미끄러지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백악관이나 청와대와는 다른 해체론의 수사학입니다. 어떤 미지의 것에 기대어 이라크의 살상무기, 북한의 천안함 타격을 당연시하는 그들의 논리는 언뜻 해체론과 방법적인 면에서 공통점이 있는 듯 하나, 해체론에서 담론 너머의 가능성의 형태로 남기고자 하는 부분을 그들은 가득 채우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해체론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광기 안으로 미지의 타자를 끌어들이고 그 미지의 타자를 다시 투사하여 자신들의 논리를 정당화합니다. 하지만 해체론은 오히려 그와 반대로, 내 안에 도사리고 있으면서 호시탐탐 출몰을 꿈꾸는 광기의 욕동을 부단히 경계하면서 그 요소들을 미지의 타자에 기대어 밖으로 쫓아냅니다. 그리하여 오늘의 우리를 부단히 반성하고 수정도록 합니다. 바로 이점이 해체론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My Autobiography, 나는 왜 해체론으로 세상을 읽는가?

벌써 20년 전 일이네요. 레닌의 동상이 붉은광장에서 철거되는 것을 지켜보며 저는 적잖은 충격으로 빠져들었습니다.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는데……저에게 두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현실 사회주의는 왜 좌절되었는가? 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 물음은 문제의 원인을 외부(자본주의의 발전과 승리)에서 찾기보다는 사회주의 내부의 문제, 즉 사회주의 혁명이 어떻게 전체주의적 폭압으로 전도되었는가? 에 대한 뼈아픈 자기반성과 관계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따로 시간을 내어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자본의, 자본에 의한 전 지구적 재편이 완료된 시점에서 어떻게 다시 혁명을 사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 에 대한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무렵 출판된 책이 Specters of Marx (1993)입니다. 이 책을 전환점으로 하여 저는 윤리적,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문제들에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Gift of Death (1995), Of Hospitality (2000), Acts of Religion (2001), For What Tomorrow…(2004) 등이 그런 작품들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저의 후기 사상에서 우선 말하고자 했던 것은 전과 같은 강렬한 유토피아적인 열망도 아니고 그것을 위한 가열찬 투쟁의지도 아닙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유토피아적인 것들의 실현에 저는 솔직히 관심이 없습니다. 역사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제공해 주기보다 오히려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늘 우리에게 판단력을 요구하고, 기존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흔들어 놓습니다. 따라서 항상 자신을 새로운 실험적 상황에 던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저의 요즘 관심사는 이와는 정반대로 진보에 대한 신화를 비신화화하는 것입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무대처럼 쓸쓸하고 공허한 탈 중심화된 상태, 즉 기표가 사라진 혼돈을 사랑하고, 큰 타자의 부재를 인정하는 하는 것입니다. 부연하자면, 텅 비어 있는 실재의 공간에서 어떻게 하면 모든 하나 하나의 개체들이- (불법)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3세계 민중이라는 이유로, 늙었다는(혹은 어리다는) 이유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은 채 참된 민주적 소통을 할 수 있을까? 다시말해, 텅 빈 실재의 공간에 어떻게 하면 공적 자유의 바람을 흐르게 할 수 있을까? 입니다. 다시는 그 무엇에 의해 점거당하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리를 갈구하던 니고데모를 향한 예수의 답변,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 3:8)’라는 경구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상상을 하게 합니다. 또한 이 성전을 허물라시던 예수 자신의 외침과 후대 사람들이 했던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다라고 하는 예수에 대한 평가 또한 해체론이 추구하는 그것과 전략적 제휴의 가능성을 띄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신학과 해체론과의 대화는 현재 제가 하고픈 가장 매력 있는 작업이자 저의 최후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에필로그: 오바마에 대한 추억……그리고 악몽 꾸다

합조단의 발표가 있은 지 며칠 후 (5 24),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과 관련하여 북한에 대한 경고를 내용으로 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였습니다. 이에 미국은 한국정부의 대응에 대해 절대적 신뢰를 보냈다고 합니다. 반 백 년 넘게 이어온 온 한미간의 공조로 미루어 볼 때 별 놀랄만한 일은 아니지만…..개인적으로는 오바마 역시 다른 미국의 대통령들이 했던 보편적인 나쁜 짓을 어느 정도는 다 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각주:2]

저는 꿈을 잘 꾸지 않지만, 그 날은(이명박의 대국민 담화가 있었던) 간만에 꿈자리가 사나왔습니다. 영화 의 마지막 장면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텔레비전 밖으로 악령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기어 나오는 장면과 유사한 꿈이었습니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 주방으로 나와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잠이 깼는데, 정신이 차려지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과거 군사독재 시절 대한민국을 감싸고 있었던 음습하고 공포스런 기억들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더군요. 정말 기분 엿 같았습니다. 대한민국 구천을 떠도는 잡다한 유령들이 다시 출몰하는 겁니까? 어디서 용한 무당 한 분 모셔다가 푸닥거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잡귀야 물러가라!’하면서 말입니다. <>

추신> 엊그제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말에 한국을 방문해 한기총(?)에서 주관하는 무슨 집회에 참석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대형운동장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미국을 찬양하고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는 집회였고 은혜롭게 행사가 마무리되었다는 기사였습니다. 이라크전을 일으켰던 유령과 천안함을 둘러싸고 있는 유령간의 극적인 회합이었겠군요. 재미 있었겠네요. 누가 후일담 좀 들려주십시오. 

ⓒ 웹진 <제3시대>


  1. 데리다는 2004년 세상을 떴습니다. 물론, 졸고는 가상입니다. 필자가 이해한 데리다의 시선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북한의 천안함 침몰간의 상동성을 밝히는 것이 지난 호 웹진 내용이었다면, 이번 웹진에서는 실재에 대한, 아니 우리가 실재라고 믿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데리다의 해체론적 독법이 갖는 함의에 대해 다룹니다. [본문으로]
  2. 필자가 현재 재학중인 Chicago Theological Seminary(이하 CTS) 교수, 동문, 학생들이 느끼는 오바마에 대한 애정은 남다릅니다. 아시다시피 시카고는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이고 삶과 사상의 근거지입니다. 오바마의 집이 CTS와 5분 거리이고, 오바마가 20년 동안 다니며 결혼하고 자녀들도 세례받고 선거운동 직전까지 출석했던 시카고 트리니티 UCC교회가 CTS가 속한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UCC 교단이라는 점. 지난 대선기간 중 ‘갓 뎀 아메리카’논쟁으로 선거초반 최대 정치적 이슈를 이끌어냈던 시카고 트리니티 UCC교회 담임목사이자 오바마의 멘토인 제레마이 라이트 목사와 오바마 정치적 후견인이라 할 수 있는 현존하는 흑인 인권의 상징이자 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제시 잭슨 목사등이 모두 CTS 출신이라는 점, CTS교수님 중 몇 분은 오바마와 같은 교회에 출석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몇 가지 이슈들(예: 동성애, 낙태문제등에 있어 기독교적 대응)에 있어 오바마캠프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CTS는 마치 집안 사람이 대통령이 된 듯한 착각과 황홀경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번 여름학기에도 제레마이 라이트 목사가 일주일간 ‘미국정치와 인권, 기독교’ 뭐 그런 내용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새삼 그 모든 것들이 씁쓸하게 다가오는군요. 미국 진보세력의 희망이라 불리웠던 오바마 역시 미국의 국익에 충실한, 보통의 미국 대통령이었습니다. 물론 국내 정치에 있어서는 미국 진보진영의 숙원사업이었던 의보개혁안을 통과시키고, 동성애자의 군복무에 대한 평등권을 추진하는 등 전직 대통령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나, 외교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미국의 대통령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프간 전쟁이나 이번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입장 표명에서 보듯이) 미국의 정의와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고 유령의 등장을 묵인하고 그것을 이용할 줄 아는 그런 대통령 말입니다. 어쩌면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미리 유령들이 짜놓은 판대로(매트릭스) 말판을 놓는 역할만을 담당하는 허수아비라는 생각이 드네요. 너무 오바마에게 큰 기대를 했었나 봅니다. 또 속았군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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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0 15:0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다른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예수님은 결코 니고데모에게 '바람이 임의로 분다'는 말씀을 하신적이 없습니다. 이 말은 '그 영이 임의로 분다'에 대한 오역입니다. 이 책을 추전합니다. "하나님의 양으로 태어나라"

욕망의 습격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저마다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
―「창세기」 6장 2절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했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은 다섯 개 묵시록의 묶음집인 『에녹1서』의 첫 번째, 「파수꾼의 책」에서 매우 흥미롭게 해석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들’은 ‘타락한 천사’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타락했다는 생각이 역사 속에 등장한 것입니다. 신의 영역은 거룩하며 정의롭고 완전무결(完全無缺)하다는 일반적인 믿음이 붕괴되고, 그곳조차 부패하여 죄로 오염되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왜 그런 생각이 침투하게 된 것일까요. 이 물음은 그 시대에 대한 물음과 함께 해명할 때 보다 설득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여러 견해들 가운데, 제가 주목하는 시기는 헬레니즘 제국 시대,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제국이 팔레스티나를 지배하던 기원전 3세기입니다. 우선 사람의 아들들이 땅의 여자들과 결혼하여 네피림을 낳았는데 그들은 ‘용사들’이었다는 「창세기」 6장 4절은 하나의 단서입니다. 얼핏 보아도 그리스 신화들과의 유사성이 돋보입니다. 신과 영웅 사이의 긴밀한 연계는 지중해 세계에서, 그리스 신화의 두드러진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문화권의 제국인 마케도니아의 통치자가 세계의 지배자가 된 이후, 이러한 그리스적 영웅 숭배는 의례로서 발달하게 됩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제국은 그 전형적 예를 보여줍니다. 이 국가의 창건자는 자기를 ‘소테르’라고 불렀지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자신을 숭배하는 국가의례를 발전시켰음을 시사합니다.

물론 라이벌 국가인 셀류커스 제국도 그런 점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이 나라의 한 통치자는 자신의 이름을 ‘에피파네스’라고 불렀습니다. ‘화육(化育)한 신’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나는 에피파네스가 팔레스티나를 지배하고 자신에 대한 숭배를 제도화하던 시기인 기원전 2세기 초보다 프톨레마이오스 제국이 팔레스티나를 지배하던 기원전 3세기가 신의 영역에 대한 불신이 생겨난 시기로 봅니다. 그것은 에피파네스의 시대에 제국과 유대 족속 사이에는 군사적 분쟁이 일어났는데, 「파수꾼의 책」은 군사력에 의한 폭력보다는 경제적인 압박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제국 시대 팔레스티나는 평화로웠습니다. 또한 경제적 발전이 두드러졌습니다. 특히 국제무력이 전례 없이 활발해집니다. 이것은 계층분화를 급속화시켰고, 특히 노동에서 자유로운 소자산가층의 범위를 크게 확대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한데 제국 수도에서 시행되던 대대적인 도서관 건립 과정에서 제국 전역에 서기관의 수효가 크게 늘어나고, 소자산가층에서도 문자 전문가인 서기관이 굉장히 많이 배출됩니다.

팔레스티나에서도 이런 현상은 예외가 아니었고, 바로 그 무렵에 지혜문학들이 활발하게 저술됩니다. 그것은 특히 사회를 보다 광역으로 통합하는 지식체계가 체계화가 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지혜운동을 통해 유대적 야훼신앙 사회는 옳고 그름, 아름답고 추함, 현명하고 어리석음 등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한데 동시에 「욥기」나 「전도서」 같은 비판적 지혜들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는 것을 주시하기 바랍니다. 전에 말씀드린 대로, 그것은 일반적인 지혜의 가르침과는 달리,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경건한 이가 재앙을 겪고, 불의한 이가 풍요를 누리는 사회, 그런 일이 너무나 흔하다는 문제의식이 이들 비판적 지혜의 공감대였습니다.

바로 이런 비판적 지혜가 회자되던 시기에, 묵시적 문서들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묵시적 문서들이 그 부조리함을 제기하는 방식의 하나를 천사의 타락에 관한 「파수꾼의 책」의 해석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천사장 아사엘이 ‘신의 비밀’, 특히 야금술을 사람들에게 발설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으로 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벌였고, 또 장신구를 만들어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 둘은 서로 맞물리는 현상입니다. 전쟁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향락을 위한 욕망의 산물입니다. 많은 통치자들이 내걸었던 방어적 전쟁 이데올로기는 명분일 뿐입니다. 욕망은 전쟁을 낳고, 전쟁은 더 강한 욕망을 불러 일으킵니다. 전쟁과 욕망의 악순환이 역사를 비극으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신의 비밀을 가지게 된 인간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문명사적 원리가 되었습니다. 네피림, 신이기도 하고 인간이기도 한 중간적 존재인 영웅들이 중심에 있고, 모든 인간이 그 원리의 충실한 수행자입니다. 묵시가는 이 문명사적 원리 아래 모든 이들이 자기 파괴를 향해 치닫고 있음을 직시합니다. 그 욕망의 질주는 자멸의 질주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이는 그것을 종말적 심판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한데 그것에 제동을 걸 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천사 아사엘은 심판을 받지만, 그 종말을 되돌이킬 이는 부재합니다. 어느 인간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천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신조차도 불가능합니다. 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재앙 이후 역사를 다시 시작하는 것뿐입니다. 욕망의 침입은, 그 절정에 이르면 이렇게 환원 불가능한 파멸로 인간을 몰아간다는 것, 이것이 프톨레마이오스 제국 시대, 그 욕망의 질주 시대를 맞아 「파수꾼의 책」을 저술한 한 묵시가의 문명비평적 고언입니다.

‘한나라당의 독주에 제동을 건 시민의 승리.’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많은 이들은 이렇게 평가합니다. 저 역시, 대반전의 스팩터클을 통해 드러난 선거 결과에 고무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난무했던 전화여론조사가 퍼뜨린 위장된 여론의 정치가 얼마나 심각한 맹점을 갖고 있는지를 공부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시대의 징후가 있습니다. 천안함의 정치, 과학주의의 형식을 빌려 전 세계를 향해 타전된 북한 테러리즘에 대한 폭로의 정치가 뜻밖에도 한국의 시민사회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이른바 ‘북풍’은 무력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의 해석에 의하면, 정부가 주도한 천안함의 과학주의적 네러티브가 신냉전주의로 귀결되는 것에 시민사회가 주저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데 나는 시민사회가 북풍에 휘둘리지 않은 것이 과연 신냉전주의에 대한 반대로 인간 것인가에 의문을 품습니다. 즉 이데올로기적 견해 차이가 주된 이유라는 해석에 공감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줄곧 민주화 이후 우리의 시민사회가 과하게 시장화되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해 왔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소비사회는 역사적으로 민주화와 겹쳐있고, 이는 민주화가 소비사회적 요소들과 분리할 수 없이 얽히면서 제도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소비사회는 우리를 욕망의 존재로 호출합니다. 그리고 욕망은 우리들 개개인의 사적 취향을 극도로 고양시킵니다. 정부는 국민의 이런 고양된 욕망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 애썼고, 오히려 욕망을 부추기면서 정권의 정당성을 획득하려 했습니다. 그 맥락에서 민주적 제도화의 과정에 자본의 개입은 너무 강했습니다. 자본은 민주화에 의해 거의 제동되지 않은 채 시민의 영혼 속에 들어와 욕망을 마구 부추겨댑니다.

소비는 급속도로 커졌고, 신용카드의 활성화는 욕망을 소비하는 능력을 크게 진작시켰습니다. 부동산의 거품은 신용카드 부채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였고, 동시에 더 엄청난 규모의 채무자의 대열로 우리를 불러 세웁니다.

이때 부채는 개인의 능력으로 해석되었습니다. 근데 이 개인의 능력이 동시에 재앙이기도 하다는 것을 직시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IMF 재앙은 부채의 공포를 직시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시민사회는 욕망 억제의 전략보다는 분출의 전략을 통해 위기 타개의 비전을 갖도록 국가와 시장으로부터 부추김 받습니다.

이렇게 부동산 거품을 통한 욕망 분출의 공식은 이제 거의 모든 ‘우리들’의 삶의 전략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이러한 욕망에 의해 달리는 무한궤도의 열차가 되었습니다. 한 사회학자는 어떤 계산법도 이 질주하는 욕망의 열차에 제동을 걸 수 없다는 비관적 진단을 내립니다. 이제 이 열차에 제동을 걸 사회적 주체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그럴 능력이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재앙 혹은 기적이 있을 뿐......

어쩌면 이번 선거도 그런 해석에서 그다지 벗어나 있지 않다는 해석을 내려야 할지 모릅니다. 시민사회가 선거를 통해 보여준 것은 MB 정부의 토건주의적 행보에 제동을 건 것이 아니라, 신냉전주의적 정치의 호전성이 담고 있는 정치적 불안에 대한 반대인지도 모릅니다. 혹은 정부의 일방적 토건주의 정치가 오히려 더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대인지도 모릅니다.

해서 나는 MB 정부의 토건주의에 대한 우려 못지 않게 우리 자신의 욕망 분출의 전략에 대해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욕망을 절제하는 삶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MB의 토건주의를 좌초시키는 데 성공할지라도 우리는 또 다른 ‘MB’를 불러오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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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 없는 바다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주님께서 그들을 벌하시어 멸망시키시고, 그들을 모두 기억에서 사라지게 하셨으니, 죽은 그들은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사망한 그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이사야서」 26장 14절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 제국 이후 지중해와 메소포타미아 사회를 엮는 가장 중요한 고리는 ‘폴리스’였습니다. 이 고대 제국 시대의 폴리스들은 대체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왕성한 국제교역을 매개로 서로 연동되어 있었습니다. 배는 육로를 통한 운송보다 수십 배나의 운임비를 절감할 수 있었고, 또 비교적 안전하며 또한 대량수송을 가능하게 했지요. 하지만 그만큼 배를 소유하고 운용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합니다. 해서 지중해를 오가는 국제무역의 시대는 부자들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를 활짝 연 것은 바로 프톨레마이오스 제국이었습니다.

이제 바다를 지배하는 나라는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였고, 바다를 이용할 줄 아는 이는 성공을 얻는 신의 축복을 받은 자였으며, 바다는 온갖 생기의 원천이었습니다. 오늘의 언어로 말하면 그 시대의 세계화는 ‘바다화’였고, 그것은 도시들의 폴리스화를 통해 구체화되는 것, 바로 그런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제국과 더불어.
 
제국 내의 여러 식민국가들도 이런 바다화, 폴리스화의 대열에 앞 다투어 나서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유대의 경우, 내륙 한 가운데 있고 고지대에 입지한 도시 예루살렘까지도 폴리스화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세계화라는 게 대개 그렇듯이, 폴리스화란 폴리스간 국제무역을 위해 사회적 제도들이 재구성되는 과정을 수반합니다. 하지만 그것 이상입니다. 폴리스간의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정향된 각종 교육, 스포츠, 패션 등이 활성화되며, 국제어인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어법들이 유행처럼 번져나갔고, 그리스풍의 외래어들이 범람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시대의 대세처럼 보였습니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일부 귀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배층들은 이런 바다화-폴리스화의 대열에 열렬한 추종자였습니다.

알 수 없는 사고로 침몰한 천안함 병사들 46인의 장례식이 지난 4월 29일에 치러졌습니다. 전국에 분향소가 39개나 설치되었고, 군부대 내에도 220개소가 설치되었습니다. 이 날은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되었으며, 전국 관공서에는 조기가 계양되었습니다. 그리고 오전 10시에 1분간 사이렌 소리에 맞춰 추모묵념시간이 있었고, 공중파 방송은 장례식을 생중계했으며, 공영방송은 추모모금방송을 편성하기까지 했습니다. 원인 불명의 사고로 죽은 군인들에게, 그것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와 같은 대단한 국가적 애도가 시행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사망한 병사들은 ‘전사자’가 되었고 모두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북한은 사실상 무력도발의 가해자로 규정된 것입니다. 하여 통일부장관은 타국외교관에게 대북관계를 재고하라는 내정간섭까지 서슴치 않습니다. 당분간 대북 지원 및 교류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 되었고, 응징의 방법을 둘러싼 논의가 공론의 장을 주도합니다. 그리고 외국 언론들은 한국만의 이 뜬금없는 신냉전주의적 행보에 의아해 합니다.

그 수몰된 병사들이 아직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군이 공식으로 발표하고 대통령은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실상 정부는 구조에 그다지 힘을 쓰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은 사망이 확인되지 않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죽음으로 방치되었는데, 죽음이 확인된 이후 느닷없이 ‘열렬한 기억’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국가는 그네들의 생명을 기억하고자 하지 않았지만, 죽음은 열렬히 기억하고자 합니다. 국가는 살해 방조자였지만, 그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전 국민의 가슴 속에 부활하게 하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국민이자 군인인 이들의 생명은 국가가 지켜야 할 공적인 생명이 아니었는데, 그 죽음은 ‘공적인 죽음’이 된 것입니다.

그런 이상한 결정의 주역인 청와대 지하벙커 모임은 부랴부랴 안보관련 위기관리센터로 급조되었습니다. 이는 지난 정권 때 존속했던 기관을 폐쇄했다가 다시 재건한 셈이지요. 하지만 이 급조된 기관이 하는 일이 바로 ‘죽음의 국가화’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정부가 진정 관심을 기울인 것은 대북정책이라기보다는 경제관련 위기관리 정책에 있었습니다. 큰 틀에서 얘기하면 이 정부가 치중한 것은 세계화 경제정책이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구체적인 전략은 ‘전 국토에 대한 토건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대북문제는 이러다 할 기조 없이, 지난 참여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데 몰두하는 듯이 보였을 뿐입니다.

이런 생각의 편향에 사로잡힌 이들이 사건 직후 청와대 지하벙커에 모여 긴급한 대책을 숙의했습니다. 부랴부랴 대북위기관리 모임을 급조했지만, 그것은 장기적인 안보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안보정치를 중심 기조에 의해 도구화할 우려가 농후합니다.

위에서 보았듯이 현 정부의 정책적 중심 기조는 ‘전국토의 토건화’에 치우쳐 있습니다. 그렇다면 많은 이들이 의심하는 것처럼, 이 죽음의 국가화는 북한을 적대적 대상으로 재구축하는 데 초점이 있는 게 아니라, 최근 위기에 처한 4대강 사업 등, 전국토의 토건화 정책에 대한 반대의 여론을 다른 곳으로 환기시키리는 데 있는 것이라는 얘깁니다. 늘 그렇듯이 냉전주의적 안보논의를 이용해서 정권안보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국가는 종종 국민의 죽음을 도구화합니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위기에 처하도록 방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제 천안함의 병사들은 바로 그런 전형적인 예가 되었습니다.

시민도 그럴 수 있지만 군인은 더 말할 것도 없는, ‘쓸모없는 생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장이 소모품으로 이용할 뿐인 그런 대상에 불과합니다. 즉 자본주의적 생명력을 인정받지 못한 이들을 국가의 생명관리체계는 결코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른바 ‘천안함의 용사들’은, 국가가 그 죽음을 독점해 버리자, 이른바 ‘영웅’으로서 대단한 칭찬의 대상이 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생명으로보다는 죽음으로서만 이용가치가 있는 존재들로 전락해 버립니다. 우리의 생명권력은 그렇게 사람들을 대하고 삶과 죽음을 도구화하고 있습니다. 하여 권력의 시선에서 저들의 삶뿐 아니라 특별한 우대를 받는 죽음도 사실상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존재에게 부활은 없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적 질서에 영혼이 포박되어 있는 한 말입니다.

다시 성서로 돌아와 봅시다. 바다화-폴리스화의 주인공들은 도시들을 짓습니다. 그리고 그 풍요로운 도시 문화의 적극적 주역입니다. 그들은 부유하고 학식 있으며 지체가 높은 이들입니다. 훌륭하고 멋들어진 옷차림으로 거리를 배회하고, 세련된 말투로 사람을 대합니다. 그들이 가족은 교양 있고, 자녀들은 아름답고 건강합니다. 그들의 삶은 그 세상에서 의미가 넘칩니다.

그뿐 아닙니다.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그들에게 죽음 또한 예사스럽지 않습니다. 아무렇게나 시신을 유기함으로써 내버려지는 몸이 아닌 존재, 무덤에 안장되고, 숱한 장신구 등이 썩어 사라져버린 몸을 상징적으로 대리하는 존재, 그런 이들의 죽음은 끊임없이 산 자들의 기억 속에 잔류합니다. 무덤을 보며 사람들은 그이를 기억하고, 제사의례를 통해 그이를 기억하며, 그렇게 기억한 이야기 속에서 회자됩니다. 하여 그 죽음은 죽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이들이 묻힌 바로 그곳에서 마지막 때에 그의 몸이 부활할 것입니다. 바다의 제국, 그 세계 질서 속에서.

그런데 한 익명의 예언자는 도리어 종말의 때에는 그런 이들, 기억에서 오래도록 남겨진 이들이 모두 기억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아울러 그네들의 도시, 바다화의 권력에 사로잡힌 도시는 모두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반면 다른 죽음, 버림당하고 이용당하는 죽음들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며, 그들의 시체가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무덤 속에서 잠자던 사람들이 깨어나서, 즐겁게 소리 칠 것입니다. 주님의 이슬은 생기를 불어넣는 이슬이므로, 이슬을 머금은 땅이 오래 전에 죽은 사람들을 다시 내놓을 것입니다. 땅이 죽은 자들을 다시 내놓을 것입니다.”(「이사야서」 26장 18~19절)

버려진 생명이 다시 되살아나는 꿈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제국 아래, 바다화-폴리스화의 대열에서 체제에 의해 존재를 빼앗긴 이들의 부활, 이것이 그 시대 묵시적 예언자들이 외친 새 세계의 꿈입니다.

천안함의 생명들이 국가에 의해 버림받은 곳, 그 주검이 도구화된 곳, 리워야단의 권력, 저 물의 권력이 존속하는 바다는 생기가 없습니다. 한데 예언자는 꿈꿉니다. ‘그 날, 리워야단이 생명을 다하는 그 날’(27장 1절), 생명을 파괴하는 도시들이 잿더미가 되는 날(25장 2절), 주님은 죽음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고.(25장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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