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양권석

(본 연구소 소장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중앙에 군사 분계선이 가로 질러 지나면서 남한과 북한을 가르고 있다. 그리고 남북의 끝에는 각각의 경비병 막사가 자리잡고 있고, 그 다음으로 남쪽에는 평화의 집과 자유의 집이 북쪽에는 통일각과 판문각이 반으로 접어면 그대로 하나가 될 듯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다. 경비병 초소들의 배치도 어김없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왼쪽으로 사천이라는 내가 남북을 가로 질러 흐르고 있는데, 군사분계선이 이 사천강을 만나면 남쪽을 향해 90도로 방향을 틀어 남쪽으로 내려간다. 그래서 지도상으로는 판문점의 남쪽 귀퉁이에 해당하는 곳에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사천강과 군사분계선을 가로지르고 있다.




판문점은 숨기거나 포장할 필요를 전혀 못 느끼는 듯, 뻔뻔하고도 유치한 그대로 민 낯을 드러낸 분단의 축소 도형이다. 송강호와 이병헌이 열연한 영화를 통해서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이곳의 정식 명칭은 “군사정전위원회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 JSA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땐 오히려 그 비현실적 구성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영화가 판문점의 숨겨진 진실을 잠시 보여주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군사분계선을 가로질러 몰래 만나기도 했을 것이고, 어느 순간 그런 만남의 자리가 작은 갈등의 자리가 되기도 했을 것이고, 그 갈등의 자리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사태로 발전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건이 나면 남과 북의 당국은 각기 제 주장만 목청껏 외치고, 몰래 만나 놀면서 쌓은 우정을 서로를 향한 총질로 끝내 짓밟아야 했던 그들은 할 수 있는 말도 없었고, 허락된 언어도 없었다. 자살은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귀가 있고 진실을 보려는 눈이 있다. 중립국 파견 수사관 소피(이영애), 그녀는 전후 판문점에서 이루어진 포로 교환 과정에서 남쪽도 북쪽도 아닌 제삼국을 택한 전쟁 포로의 딸이다. 판문점은 처음부터 그랬다. 경계선이면서 동시에 경계선 사이에 놓인 공간이다. 우정이 꿈틀거리는 곳이고, 그 우정이 무력으로 제압당하는 곳이고, 또 진실이 남쪽도 북쪽도 아닌 제 삼의 통로로 흘러 나가는 곳이다.


“널문리”가 판문점의 본래 지명이었다 한다. 그 이름의 유래도 안타깝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위협을 피해 한양을 버리고 파천하던 선조가 사천강을 건너야 했을 때, 이 곳 사람들이 자기들 집의 문짝을 뜯어 내다 다리를 만들어 왕을 무사히 건너가게 했다고 널문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다. 왕의 피난에 분노한 백성들이 궁궐을 불태우고 노비문서를 불살랐다는 이야기나, 나중에는 평양성마저 버리고 다시 떠나려 할 때, 분노한 백성들이 물리적으로 왕의 피난을 막으려 했다는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믿기 힘든 이야기다. 왕의 피난길에 방문의 문짝마저 뜯어 바치고 한데잠을 자야 했을 가난한 백성들의 모습이 오히려 더욱 또렷하다. 민중의 분노와 절망이 왕을 향한 충성심으로 포장되던 곳, 그곳에 널문리라는 이름이 있었고, 사천강에 놓인 널문 다리가 있었을 것이다.


이 널문 다리가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되었다. 휴전하면서 전쟁 포로 들은 이 다리 위에서 남쪽이나 북쪽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하였다. 그리고 선택한 쪽을 향해서 한번 다리를 건너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 해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다. 아니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다. 그래서 다리가 아니라 남과 북을 절대적으로 갈라놓는 경계선일 뿐이다. 그 다리 위에는 머물 곳도 없고, 또 다리 위가 확장되어 만들어 질 수 있는 제삼의 공간 같은 것도 없다. 최인훈의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경계를 넘었던 사람이다. 그리고 전쟁포로가 되어 남쪽도 북쪽도 아닌 제삼국을 택한다. 그리고 인도로 가는 배 타고르호 위에서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다시 돌아올 길도 제삼의 길도 허락하지 않는다. 넘지 말아야 할 절대적 경계선을 넘어 우정을 만든 공동경비구역의 사내들이 처한 운명 역시 다르지 않다. 그렇게 허락하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간 스스로를 부정하면서 서로를 죽여야 했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그 참혹한 경험을 안고 돌아 온 이수혁(이병헌)에게는 허락된 삶의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리를 건너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보았고, 또 스스로 그 진실을 짓뭉개고 살아서 다리를 다시 건너 온 그가 갈 수 있었던 제삼의 길 역시 자살이었다.


결코 사랑이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곳, 결코 우정이 엮어질 수 없는 곳, 남쪽이나 북쪽의 울타리를 흠집 낼 가능성은 아예 허락되지 않는 곳, 혹시나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가차 없이 진압당하는 곳, 그곳이 바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다. 교조적 장벽이 빈틈없이 서로 맞닿아 있어서 변방의 가능성을 전혀 허락하지 않는 곳이며, 어떤 전복적 상상력도 인정되지 않는 공간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다리가 있는 한 건너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 판문점과 분계선도 마찬가지다, 문이 있는 한 오가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 그 엄혹했던 시절에도 여러 사람들이 판문점 군사 분계선을 가로질러 북에서 남으로 그리고 남에서 북으로 건너오고 건너갔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언제든 건너 가고 올 수 있는 다리로 만들기 위해서 였다. 경계선을 교조적 장벽이 아니라, 변방으로 만들기 위해서 였다. 남과 북이 아닌 제삼의 길이 자살로 끝나는 죽음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서태지의 ‘발해를 꿈꾸며’가 울려퍼지는 남북 정상회담의 그림을 바라보며, 아마도 이 순간은 예수의 무덤이 빈 무덤임을 선언하는 순간 같은 것이 아닐까? 가두어야 할 무덤이, 문을 열고 새로운 희망을 속삭이는 무덤이 되는 순간이 아닐까? 이제 분단의 경계선이 장벽이 아니라, 남과 북을 향해 새로운 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무덤을 봉쇄하는 무덤 문 같은 것이 아니라, 빈무덤의 열린 문처럼 남과 북에 갇혀 있던 것들이 밖으로 나와 서로 만나는 소통의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판문점도 지금 보다 훨씬 넓게 펼쳐 열어서 남과 북이 다른 시선으로 자신을 성찰하며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남쪽도 북쪽도 버리고 끝내 바다에 몸을 던진 이명준의 속 마음도, 그리고 공동경비구역의 그 사내들의 아픔도 함께 나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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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화해시대 그리스도교 평화운동의 과제[각주:1]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남북정상회담 일주일을 남겨두고 또 한 번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종전선언’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1953년 7·27 휴전협정은 양 진영의 ‘전투 행위 중단’을 뜻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하여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남북대화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을 과제로 삼아왔다. 물론 휴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닌 남한정부가 평화협정의 당사자로 참여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남한이 사실상의 당사자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여 남한정부가 북한과 함께 종전선언을 한다는 것은 국제법적 효력을 갖지는 못하겠지만 매우 중요한 변수일 수 있다. 이것은 곧 열릴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가 주요 의제로 부상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갈망하던 한반도 평화체제는 머지않았다.

2005년 9·19공동성명에서 6자회담 당사국들은 한반도 평화협정과 단계적 비핵화를 선언한 바 있다. 한데 새로 집권한 이명박 정권은 사실상 이 공동성명을 부정했고, 북한은 제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한반도는 다시 냉전체제로 회귀했고, 그것이 남한에선 강경군부의 재정치화와 냉전주의자들의 정국 주도권 강화로 이어져 결국 박근혜 정부의 탄생으로 귀결되었다. 정치적 메시아주의가 대중을 동원하여 박정희의 분신으로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냈다는 정치신학적 분석은, 일면 타당성이 있지만, 두 정권의 정치적 자원의 동원능력의 차이를 읽는 데는 실패했다. 사실 박근혜나 그 측근들도 스스로를 오인해서 카리스마적인 권위주의적 지도자(즉 메시아적 정치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체제처럼 정권을 운영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박정희와는 달리, 결코 절대일인으로서 충성경쟁을 벌이는 관료집단을 거느릴 수 없었다. 서로 다른 이해집단들이 냉전주의적 정치지형 위에서 극우주의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면서 일시적으로 결속한 것이 박근혜 정권의 내적 속성이기 때문이다. 하여 그들 간에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이 정권은 스스로 내파될 것이 예측되었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 이후 다시 기회가 왔다. 문재인 정권은 남북대화 기획을 재가동했고 ‘코리아패싱’이라고 조롱거리가 되었던 상황을 빠른 속도로 반전시켰으며, 한반도는 또다시 평화체제 출범 직전 단계에 도달했다. 아마도 현 정부의 지난 1년간의 정치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라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첫 번째 디딤돌을 성공적으로 놓은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렇게 정부가 앞서서 성공적인 평화의 디딤돌을 놓는 동안 시민사회, 특히 그리스도교계는 무엇을 했을까. 지난 1980년대, 남북한이 서로 강경하게 맞서고 있을 때 대화의 돌파구를 연 것은 개신교 소수파인 진보세력이었다. 특히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막강한 국제 네트워크와 공신력을 이용해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물론 가톨릭도 이와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젊고 유능한 청년들이 경험을 쌓고 있었다. 현 정부의 남북대화 전문가들 중 이때부터 이 일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이들이 적지 않다.  

2018년, 남북화해시대가 꿈처럼 다시 도래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1980년대 이후 개신교와 가톨릭의 평화통일운동은 그 밑거름이었다. 한데 지금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문의했던, 두 종단의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속에는 종단 내에 냉전주의자들의 위세가 훨씬 강해서 시대를 역진하고 있다는 우려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한국개신교는 극우주의자들의 아성이다. 여기서 한국개신교에 대해 좀 더 얘기할 필요가 있다. 해방 이후 한국개신교 다수파는 극우주의 성향이 너무나 강했다. 그러나 이후 개신교 다수파인 극우주의적 세력은 정치전선에서 한발 물러섰고, 소수파인 진보세력의 반적대 평화통일운동이 빛을 발했다. 그런데 1990년 어간 한기총의 등장은 극우주의적 개신교의 정치세력화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당시 전무후무한 거대 바이블벨트가 형성되었고, 개신교 극우세력이 그 축을 이루고 있었다.

한데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그 우파적 대연합이 붕괴하고 있다. 하여 극우 냉전주의적인 개신교 세력은, 여전히 그 위세가 강력하기는 하지만, 심한 위기의식에 빠져 있다. 주목할 것은, 바로 이 위기의식의 퇴행적 반응이 지금 개신교 극우파의 행보를 특징짓고 있다는 점이다. 매우 공세적으로 증오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북화해시대 개신교와 가톨릭 평화운동의 과제는 ‘증오연대의 해체’와 화해, 공존, 치유를 향한 실천을 구체화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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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4202053005&code=990100 이 글은 경향신문 칼럼 '사유와 성찰' 란에 동일한 제목으로 4. 20에 게재된 글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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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평화와 안보를 위한 기독교인의 발걸음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미국의 여성 윤리학자 샤론 웰치 (Sharon Welch)의 책 ‘진정한 평화, 진정한 안보Real Peace, Real Security: The Challenges of Global Citizenship (Fortress Press, 2008)’는 평화에 관한 다양한 이론과 실천을 간략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웰치는 특정 국가에 속한 시민이면서 동시에 세계 시민인 우리들에게, “어떻게 하면 종교적, 윤리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국제 사회가 인류에 대한 범죄를 막거나 벌할 수 있을까 (1)”라는 신학적, 윤리적 화두로, 이 작지만 힘있는 책의 서문을 연다. 쉬운 화두가 아니다. 특히 이 화두는 단순히 지적인 활동으로써의 평화에 대한, 신학적, 윤리적 사색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의 변화, 생각의 변화, 그리고 영성의 변화와 함께, 타성에 젖어 생각해 왔던 종교의 가르침과 하느님에 대한 생각까지도 비판적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인류에 대한 범죄란, 넓게 보면 인간에 대한 폭력이고, 구체적으로 보면, 전쟁과 인종 학살, 집단적 성폭행이나 군위안부 같은 전쟁 범죄를 가르킨다. 구체적인 전쟁 범죄들은 인간의 폭력성이 환경에 따라 집단화, 광폭화되어 나타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인간의 집단적 폭력성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평화를 위한 근본적인 문제들 또한 해결할 수 없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사이의 제3의 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또한 아니다. 웰치는 이 제3의 길이, “우리 인간이 잔혹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자비심과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공감력을 가지고 있는 피조물”이란 사실을 묵상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이야기한다 (2). 윤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 잔인함의 DNA를 지니고 있는 피조물이라 하더라도, 선과 악을 구별하거나, 선을 택할 수 있는 능력이 결핍된 존재는 아니란 것이다. 충분히 선을 선택하고, 선을 만들어갈 능력이 있는 존재이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약자와 타인에 대한 폭력과 잔인함은 “절대선”과 “절대악”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인간의 착각에서 시작된다. 제3의 길의 여정은, 아군을 절대선으로 포장하고, 적군을 절대악으로 규정하며,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조를 진리삼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는 폭력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다른 이들과 함께, 구조적인 폭력과 인류에 대한 폭력적 범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다 (100).


    웰치는 국제 사회에서 분쟁을 해결하고 평화를 만들어 가기 위한 세가지 노력을 소개한다: 평화 유지 (peacekeeping), 평화 만들기 (peacemaking), 평화 건설 (peacebuilding)이다 (8). 평화 유지는 인종청소나 대규모 전쟁에 국제 사회가 즉각적으로 개입하여, 인류에 대한 폭력 범죄를 막는 것이다. 평화만들기는 전쟁이나 분쟁에 개입된 두 국가나 집단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 평화조약이나 협상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8). 여기서 UN이나, 미국,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이 중재자가 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평화건설은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개선하고, 진행중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인 구조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다. 이 노력은 평화를 위협하는 근본적인 사회구조, 즉 무력분쟁, 경제적 착취, 그리고 정치적 소외계층 등의 문제들을 분석하고 해결해 나가려는 의지와 노력을 담고 있다.


   평화유지, 평화 만들기, 평화 건설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 주로 UN 평화 유지군이 개입하는 “평화 유지 (peacekeeping)”는 강대국의 이익이나, 분쟁 주변국들 사이의 복잡한 이해 관계 때문에, 분쟁 초기 개입이 늦어져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보스니아 전쟁이나, 르완다 학살, 수단 다푸르의 인종청소, 시리아 전쟁은 모두 초기 개입이 늦어서 일반 시민들의 희생이 많았고,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특히 현대전은 내전이나 시민전이 아니라, 다국의 이익이 개입된 국제전임에도 불구하고, 분쟁이 일어 나고 있는 지역의 국가 자주성을 이유로, 국제사회는 초기 개입을 꺼린다. 국제 사회의 군사적 개입을 위한 윤리적 가이드 라인은 R2P로 알려진 “Responsibility to Protect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의무)”이다. 대량 학살이나, 대규모의 전쟁이 임박했을 때, 즉각적인 군사 행동을 통해서, 인류에 대한 범죄를 최소화하거나 막는 것이다. 그러나 분쟁 지역의 정부가 개입을 반대하거나, 인종 청소나 대량 살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때, 국제 사회의 개입은 어렵다. 또한 국제 사회의 군사적 개입은 서구 국가들의 신식민주의와 윤리적 우월감의 남용이란 비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더불어 기아와 인종차별, 종교적 박해, 성차별 등등 서서히 진행되는 학살적 폭력을 막는 국제 사회의 물리적 개입은 거의 불가능하다. 평화 유지는 분쟁을 해결한다기 보다는, 물리적 분쟁을 일시적으로 막아서 분쟁 당사자들이 대화하고, 장기적인 평화를 위해 노력하기 위한 공간을 만든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40).

  
   21세기에 들어 평화 만들기는 단순히 국가간의 평화 협정 뿐만 아니라, Track 2 Diplomacy (민간 외교)로 알려진, 다양한 시민, 종교 단체 간의 평화 운동과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 각 분야의 시민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교류는, 문화적 이해와 종교의 다양성에 관한 이해, 서로의 고통에 대한 진실성 있는 공감의 장을 형성하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평화 협정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의사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각 국의 정부 지도자들이 다양한 시민 단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고, 또한 민간 외교는 여러면에서 정치적 구속력을 갖기가 힘들다. 비근한 예로, 한-일 정부 사이에 비밀리에 추진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10억엔 배상은, 두 정부가 힘으로 밀어붙여 정치적 구속력을 갖게 된 비윤리적 행위이다. 한-일 민간 단체들과 종교단체들이 그동안 원폭피해와 군위안부 문제 등을 포함하여, 일본의 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묻고,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온 역사를 철저히 무시한 정치적 결정이다. 하지만 한-일 협정이 의식있는 많은 시민 단체를 결속시켜, 반대 운동을 전개시키게 만든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 민간 외교를 무시하고는 진정한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


    평화 건설은 장기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평화실천 운동이다. 사회 불평등과 불만 등,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를 미리 알아채고, 해결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비폭력적 방법으로 분쟁에 대항하는 사회적 힘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반목과 분열 관계에 있는 사회 구성원들과 국제 사회 구성원들의 관계를 변화 시키려는 제도적 장치와 실천이 요구되며, 과거의 실패를 분석하여 새로운 전략과 실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평화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차례의 실패를 경험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평화 운동을 시작하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서로를 믿어주고 격려하는 공동체 형성이 크게 도움이 된다. 평화란 전쟁이나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가 실현된 사회, 분쟁이 폭력이 아닌 대화와 비폭력으로 해결되는 사회를 의미하며, 그러한 과정으로 나아가는 것이 평화 운동이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세가지 실천들이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여러가지 사회/평화 운동들을 통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다양한 종교들이 축적하고 있는 평화에 대한 지혜, 인내와 함께 적극적으로 용감하게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희망, 그리고 구조적 폭력과 전쟁에 고통받고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과 같은 덕목이 평화를 위한 제3의 길을 비춰줄 수 있는 빛이 될 수 있다. 이 제3의 길은 또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자기의 (self-righteousness)”에서 해방되고, 적군이나 힘을 가진 억압자들을 “악”으로 규정하는 행위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사회적 갈등과 반목, 국제 사회의 폭력 행위와 전쟁 등을 보며, 웰치의 책이 갖는 무게감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사드 (THAAD)배치에 비폭력적으로 반대 운동을 전개하는 성주 군민들을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강정 마을 해군 기지 반대 운동 때에도,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반대 운동 때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 때에도,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 때에도 던졌던 질문이다. 우선 웰치의 입장에서 사드 배치만을 놓고 보았을 때, 한국 정부와 미국의 결정은 한반도의 평화와 동아시아, 세계 평화에 위해를 가할 비윤리적인 결정이다. 왜냐하면 북한을 절대악으로 규정하여, 한국 정부가 가지고 있는 오만함,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평등과 사회 불만을 어설프게 숨김과 동시에, 미국이 가지고 있는 세계 패권주의와 우월감을 평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는 국제 사회에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미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 러시아의 불만을 고조시켜, 대화와 공감을 통해 평화를 만들려는 세계 시민들의 노력을 억압하고 있다. 북한이 일으키는 공포감이 적극적인 비폭력 운동을 통해, 대화와 공감을 통해 평화를 이루려는 노력과 희망보다 더 큰 것일까? 더구나, 사드 배치를 통해 고통받을 사람들과 계속된 군비 경쟁으로 인해 고통 받는 세계 민중들의 목소리를 듣고, 공감하려는 평화의 정치보다, 군사 무기를 통해 이루려는 평화가 더 값진 것일까?


    사드는 미국의 록히드 마틴 (Lockheed Martin)사가 개발한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다. USA Today에 의하면 록히드 마틴은 2011년에만 약46.5 억 달러 어치의 무기를 전세계에 팔아치운, 전쟁을 통해 가장 큰 이익을 얻고 있는 무기회사다.[각주:1] 모든 전쟁은 자본가들의 이익이 걸린 사업이다. 미국의 전쟁 영웅 스메들리 버틀러 (Smedley Butler)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미 1932년에 “전쟁은 사기다 (War Is a Racket)라는 책을 통해, 미국이 관여한 모든 전쟁이 소수의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가난한 이들의 생명을 지불하는 사기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이 사기는 소위 말하는 소수의 내부자들이 공모하고, 각본을 짜서, 대중에게는 평화와 안보라는 이름으로 상영하는 사기극이라, 외부자들은 그 전말을 알기가 힘들다. 사드는 누구를 위한 평화이며, 누구를 위한 안보일까? 기독교에서 “항상 깨어있으라”는 가르침은, 소수의 내부자들이 주장하는 평화와 안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외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화 운동은 끊임없는 자기 비판과 자기 성찰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노력은 자기의에서 벗어나고, 사드 배치와 같은 결정을 한 정치 지도자들까지도 악으로 규정하지 않고 보듬으려는 노력까지도 포함한다. 웰치의 책을 다시 읽으면서, 평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으로써, 한편으로는 억울한 마음이 생겼다. 강정에서, 밀양에서, 평택에서, 서울 시청 광장에서 만난 많은 일반 시민들과 평화 운동가들,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성주 군민들은, 정부의 결정을 규탄하지만, 그 결정을 한 정치가들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려는 성숙한 의식을 보여주고 있지만, 정치인들이나 경찰, 주요 언론사들은 이들 시민 운동가들을 ‘빨갱이들’, ‘전문 시위꾼들’, ‘북한 동조세력들’로 부르며,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집시법 위반으로 벌금을 물리는 것을 본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전쟁이나 분쟁을 일으키는 것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사이의 제3의 길을 찾는 것은, 어쩌면 광야에서 ‘회개하라는 (정책 결정자들에게 자기비판과 성찰을 하라는)’, 정의와 평화를 외치는 세례 요한의 목소리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례 요한이 죽임을 당해도, 예수를 죽여도, 광야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지난 2000년 동안 끊어지지 않은 것이, 평화와 정의를 향한 기독교의 지혜이고, 힘이고, 열망이란 생각이 문득 든다.



ⓒ 웹진 <제3시대>

  1. (http://www.usatoday.com/story/money/business/2013/03/10/10-companies-profiting-most-from-war/197099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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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생각하며...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부활절이 지나고,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이 “할렐루야”와 “평화”이다. 예배형식과 교회 절기, 그리고 거기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공회에서는, 사순절 기간 동안 예수의 부활을 의미하는 “할렐루야”를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40일 동안 침묵 속에 묻혀 있던 할렐루야는 부활절 새벽 (또는 부활절 직전 토요일 일몰 후)에, 말 그대로 부활한다. 부활절부터 오순절 성령 강림 주일전까지, 교회에서는 일곱번의 주일을 부활절로 기념한다. 이 기간 동안 읽혀지는 각기 다른 복음서 대부분은 부활한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예수의 죽음 후에, 일상이 파괴되고, 두려움과 절망감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현실의 상황과는 동떨어진 “평화가 너희들과 함께 하기를” 하고 기원하는 예수의 인사는 무언가 황당한 것 같으면서도, 시기적절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인간은 평화에 대한 경험을 통해 이를 알게 되고, 그 소중함을 갈망하기 보다는, 전쟁과 폭력 등 평화가 없는 상황과 반평화를 경험하면서, 평화를 상상하게 되고 지향하게 되기 때문이다. 평화에 대한 존재론적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진 베스케 엘쉬타인 (Jean Bethke Elshtain)은 전쟁과 평화에 대한 신학적 고전이 된 “여성과 전쟁 (Women and War)”이란 책에서, 평화는 전쟁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정의되고, 상상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평화 운동은 반전운동으로, 마치 전쟁이 존재하지 않으면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Elshtain, 1995).  


          반면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폭력을 사용한 가해자가 무슬림이거나 이슬람과 연관이 있는 경우에는, 논리가 달라진다. 즉 이들의 정신 상태나 통제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분노가 문제가 아니라, 이슬람이란 제도화된 종교가 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문제이다. 이슬람이 폭력을 조장하는 비윤리적인 종교이기 때문에, 이 종교에 심취한 무슬림들은 테러리스트들이거나, 잠재적 테러리스트들이다. 더 나아가 무슬림들은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다른 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 보다 높다고 본다. 이러한 논리는 반이슬람 정서를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슬람이 테러리스트의 종교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약 이슬람이 테러리스트의 종교라면, 기독교, 불교, 유교, 힌두교, 등등 세상의 모든 종교들이 테러리스트들의 종교가 될 수 있다. 같은 논리로, 비종교인들도 충분히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테러리스트는 종교 논리 보다는, 정치, 사회, 문화 환경 때문에 생겨나는 경우가 더 많고, 인간들의 본질적인 폭력성이 해결되지 않는한, 테러는 항상 일어날 수 있다. 더구나 극단주의적 이슬람 교도들이 (또는 극단적인 기독교, 유대교, 불교 등등의 신봉자들) 테러리스트가 될 확률이 높다고 주장하기 전에, 이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 또는 정신 상태, 가족과 친구들의 관계 등등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테러리스트들을 행동화시키는 여러 가지 요인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전쟁의 역사는 항상 거대 담론으로 기록되어 왔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은 알지만, 왜 일어났는지, 누가 전쟁을 결정했는지, 병사들은 어떻게 조달되었는지, 병사들의 가족들은 어떻게 전쟁을 견디었는지, 일반 사람들은 전쟁을 어떻게 버텼는지, 전쟁이 끝난 후에 병사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와 기억들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평화 담론도 전쟁 담론과 마찬가지로 거대 담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평화 담론이 전쟁이나 전쟁 가능성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란 암묵적 전재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군사전략, 군대 재배치, 전쟁 무기와 국경 안보 등등이 평화와 안전을 위한다는 정치 담론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일 것이다. 시민 평화 운동권에서 들리는 언어들도 대부분, “전쟁없는 세상을 만들자,” “군비 감축하자,” “군대 축소하자,” “군사시설을 줄여라,” “주한미군 감축” 등등 군사화되어 있다. 평화에 대한 논의, 언어가 군사화가 되어 버리면, 평화를 위한 정치적 결정들이 일반 시민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여기서 발생하는 윤리적 딜레마는 평화를 위한다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고, 희생양이 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즉 전쟁의 피해자들도, 평화의 피해자들도 같은 그룹의 사람들이 되는 아이러니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결정할 때, 누구를 위한 전쟁이며, 누가 이익을 얻게되고, (또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전쟁이 사회 구성원들 (또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화 정책과 평화 담론 또한 비슷한 방식의 분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평화 유지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군사정책에는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은 ‘전쟁 담론에서 자유로운 평화는 어떠한 평화일까’이다. 어떻게 전쟁과 군사화에서 자유로운 평화 담론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음을 스스로 깨달으면서, 부활한 예수께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너희에게 주겠다”라고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란 단순히 개인의 믿음과 영성 차원에 머무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관상 기도와 묵상, 통성 기도 등등의 영성 훈련을 통해 얻게 되는 깨달음과 기쁨, 평안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종교체험은 중요하다. 그러나 도로테 죌레 (Dorothee Soelle)가 기독교 신비주의의 연구를 통해 주장하는 것처럼, 기독교 영성가들은 깨달음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고,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를 제대로 보고 맞서고,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화를 화로 다스리고 악을 악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다스려 평화로운 인간 관계, 사회 관계를 체화하려고 하였다 (Silent Cry, 2003). 즉 인간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라, 셀 수 없는 수많은 관계 속에 사는 존재이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관계의 회복이야 말로 우리의 영성이 향하는 방향인 것이다. 소중히 여기는 관계가 깨어질 때 겪는 상실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큼 감정적 고통이 크다. ‘나’의 고통에서 벗어나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 보이지 않는 세상의 관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영성 훈련을 통해 연마된다. 그런데, 이 관계성과 영적 훈련으로써의 자기 성찰은 ‘일상’을 배제하고는 생각할 수 없다.

  
          몇 해전 경기도 평택의 햇살사회복지원을 방문해서, 우순덕 원장님께 평화에 대해 정의해 달라고 부탁드린 적이 있다. 햇살사회복지원은 평택 기지촌에서 양공주라 손가락질 받으며 일생을 보내신 할머니들이 세상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쉼터도 제공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식사도 제공하고, 힐링 프로그램도 제공하는 작은 공동체이다. 원장님이 말씀하신 평화에는 미사일도, 군대도, 한미 관계도, 국경 봉쇄도 없었다. “할머니 한분 한분이 진정한 인간으로써 존중받는 것, 따뜻한 밥 한끼를 매일 드실 수 있는 것, 죽을 때 혼자 죽지 않는 것이 평화입니다.” 십년도 더 지난 예전에 뉴욕 무지개 집을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무지개 집은 국제결혼 여성들의 쉼터로 출발한 공동체인데, 이 여성들의 대부분이 미군과 결혼하여 한국을 떠난 기지촌 출신 여성들이다. 문화적 차이, 경제적 어려움, 언어 장벽, 가정 폭력, 미군 남편의 외상 후 스테레스성 장애 등으로 인하여, 많은 여성들이 미군 출신 남편과 이혼하거나 버림을 받고, 다시 성매매를 하거나 걔 중에는 홈리스로 전락하기도 한다. 무지개 집에서 만난 한 여성은, 마약에 중독되어 살다가,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무지개 집을 찾아왔다고 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사람답게 사는 법은 “남들처럼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일하고, 저녁에 집에 와서 쉬고, 친구와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평화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지극히 일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회복하는 것인데, 폭력과 전쟁으로 파괴된 일상을 되돌리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같다. 폭력은 그것을 행한 사람과 겪은 사람들, 폭력으로 가족을 잃어 버린 사람들,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 모두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 번 무너져버린 일상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처럼 멀리 존재하는 것 같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4월 16일은 세월호가 침몰하여 304명이 수장된지 2년된 날이다. 작년 세월호 1주기때,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지인이 한국에서 보내주었다. 책에 실린 세월호 유족들의 글은 소중한 가족 구성원들을, 자본주의 탐욕과 버무려진 재앙으로 잃고 난 후에, 무너진 일상, 바뀌어진 일상 속에서 겪는 고통의 기록이였다. 이 고통 속에서 유족들은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해 질문을 하고, 교회의 역할을 묻고, 사회 지도층의 책임감에 의구심을 던지며, 무엇보다 명백한 희생자들이 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회 부조리를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고 있었다. 세월호는 유족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일상에 영향을 끼쳤다. 이제 우리의 일상은 세월호 전과는 달라졌고,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월호 이전의 세월이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이전에 일어났던 여러가지 사건들을 생각해 보면, 세월호 사건은 이미 예견된 인재였는지도 모른다. 재작년 마지막으로 방문한 강정 평화 운동지에서, 평화 운동가들이 이런 의견을 나누어 주었다. 미군 기지 건설을 위해 평택 대추리를 밀어버리고 원주민들을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기지 건설과 원주민 이주 반대시위를 강압적으로 진압한 대추리 사태 (2006), 용산 재개발 과정 중 무리한 강경 진압으로 철거 반대를 주장하는 주민들을 화재로 죽게 만든 용산 화재 사태 (2009), 강압적인 강정마을 해군 기지 건설은 모두 하나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와 결탁한 군사주의, 생명보다 개발 우위의 논리, 위로 부터의 의사결정 방식, 이념으로 분리된 사회 구성원들, 그리고 이 비극적인 세가지 사건을 깊이 분석해 보면 “주한 미군”이란 연결 고리도 찾을 수 있다. 이 사건들의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일상이 무너진 시민들, 일상이 바뀐 시민들의 얼굴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사건과 이들 사건들과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방산 비리로 인하여 싸구려 무기를 지급받고, 군생활 중 사고로 죽은 젊은 군인들과, 세월호 사건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상관관계가 반드시 있다고 본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비리 뿐만 아니라, 군사문화에 기반한 사회 전반에 퍼진 위계구조, 계층과 성별 사이의 갈등 등등. 모든 억압적인 사회 문제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강정마을 평화 운동이 세월호 기억과 진실 운동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세월호 운동이 다른 종류의 평화 운동과 다르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들은 오리무중인 한국 사회에서 평화란 무엇이며, 예수의 평화는 어떻게 상상되어질 수 있을까? 우선 나는 평화란 “일상”을 지키는 행위라고 본다. 나와 내 가족만의 일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폭력과 억압에서 벗어난 “일상”을 살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또한 폭력과 전쟁, 억압으로 인하여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이 다시 일상을 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힘들어도 폭력의 역사, 거대 담론이 아닌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3월 시카고에서 Pacific Asian North Asian American Women in Theology and Ministry모임이 있었다. 이번 모임은 특별히 시카고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시안 사회 운동가들을 초청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들 중 한 명이 시카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온 통계학자 김지인님 이였다. “만약 세월호 사건이 없었다면, 저는 사회 운동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월호 모임에 동참한 후부터는 시카고 지역의 다른 사회 운동에도 연대 차원에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김지인 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월호를 직접 겪지 않았지만, 더이상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로 살기 위해서, 나의 일상을 회복하고, 세월호 유족들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유족들이 원하는 것을 지지하고, 세월호 사건과 피해자들의 이야기들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세월호 유족들과 함께 이들의 일상도 변하였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함께 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일상 중에 존재하는 평화의 씨앗을 볼 때, 우리는 예수가 이야기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의 가능성을 보게 되고, 서로의 일상을 지켜주고, 이 일상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함께 기울이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에 참여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이 평화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기억해 주는 노력일 것이다. 마포구 정신대 대책 협의회 아래층에 위치한 전쟁과 여성 박물관, 강정마을의 평화 도서관, 세월호 기억의 숲, 제주 4.3. 평화 박물관 등등. 한국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의 노력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의식적으로 찾고, 기억하고, 일상화 시키자. 우리도 다른 일상을 살 수 있다. 노란색의 일상,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의 노란색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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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평화의 길을 열어야 한다.

 



양권석

(본 연구소 소장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1월 6일 북한의 제4차 핵실험, 2월 7일의 북한의 광명성 4호 로켓발사, 2월 10일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중단 결정과 함께 거센 북풍이 불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한반도의 현재를 준전시 상황으로 기정사실화 하면서, 테러방지법과 사드배치 협상을 밀어붙이고, 교과서 국정화의 정당성과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가 최선이면서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리고 4월의 총선 역시 그 북풍의 소용돌이 속에 가두어 보겠다는 계산인듯하다.  

    결코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은 오히려 매우 익숙한 반복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명히 그 북풍의강도와 질이 달랐다. 2000년 6월 15일, 적대적 대결로부터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향해 큰 틀에 있어서의 변화가 있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역사적이며 민족적인 결단은 비록 소소한 부침은 있었을 지라도 끝내는 제 길을 가게 되리라는 희망을 완전히 놓아 본적이 없었다. 개성공단은 그러한 기대와 희망의 가느다란 끈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6.15 선언문에 나와 있는 분단을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켜주던 끈이었으며,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의 틈새에서 우리 자신을 지켜 낼 수 있는 근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 순간에 그 끈을 잘라버렸다. 한반도는 다시 강대국들 간의 긴장과 대결이 펼쳐지는 격전지로 변하고 있고, 남북 사이에는 서로를 향한 적대와 공포감을 비정상적으로 증폭시키고 그것에 기초해서 권력의 독점을 강화하려는 악순환적 분단체제가 강화되고 있다. 그리고 그 악순환적 분단체제 안에서 평화는 다시 금기의 언어가 될 위기에 처해 있다. 

    동서간의 냉전체제가 시작되면서, 평화운동을 불온시하고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어 배제하려고 했던 것은, 비록 이 한반도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반전 반핵 운동을 공산주의로 매도하는 세력은 언제나 있어왔다. 전쟁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는 당위를 내세우면서, 물리적 대결은 피할 수 없고, 이 물리적 대결에서 자신을 지켜 낼 수 있는 힘의 균형 혹은 우위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핵무장이나 전쟁과 같은 모든 방어 수단이 당연히 필요하다는 주장을 현실주의적이면서도 보편적 인식으로 만들어 가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운동은 비현실적 이상주의로 취급되거나 적에 동조하는 불온 세력으로 간주되어 왔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종북몰이 꾼들이 때를 만난 듯이 날뛰면서, 남북간의 모든 합의들을 폐기할 것을 주장하면서, 남한 핵무장의 필요성을 역설하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긴장과 갈등의 골이 깊어가는 이 한반도에서, 화해와 평화의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선교적 책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물론 우리 주변에는 공개적으로 핵무장을 옹호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전쟁과 분단의 역사를 회고해 본다면, 전쟁을 옹호하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의 관점에 선다면, 우리는 민족을 포함한 모든 집단적 이해 관계를 넘어서 인간과 생명의 신비와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옹호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정말로 의미 있는 가르침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인간화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뿐만 아니다. 거의 재앙에 가까운 파괴와 희생을 불러 올 핵무기를 사용할 만한 정당한 이유라는 것이 정말로 있는 것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방어를 위해서라도 전쟁과 폭력이 무조건 정당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우리가 속한 국가나 공동체가 가진 물리적 힘을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탐욕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과 생명을 섬기는 선한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가진 물리적 힘이 전쟁과 파괴의 폭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마지막까지 막아 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무조건적인 비폭력 평화주의를 말할 자신은 없다. 국가와 공동체를 위협하거나 공격해 오는 세력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국가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서는 모든 전쟁을 포함한 모든 폭력적 수단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다는 생각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더욱이 선택의 폭을 더 많이 가진 강자에게는 마지막까지 평화적 수단을 사용하라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 역시 자신의 속한 국가나 공동체를 지켜내야 하는 권리도 있고 책임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쟁과 무력의 사용에 무조건 동의해야 한다는 요구는 될 수 없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구체적으로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향해서, 물리적 대결의 길이 아니라 평화적 해결의 과정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요구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핵무기도 남한의 핵무장도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동시에 북한의 핵폐기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 평화적 해결의 노력도 결코 포기되어서는 안된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있고 로켓을 발사하고 있으니 물리적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생각은 결코 선택 가능한 유일한 대안이 아니다.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나 남북한의 맹목적 정치세력들의 역학관계가 아니라, 남북한 주민들의 삶이라는 중심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정치적 역학 관계에 대한 계산이 아닐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세력 다툼의 결과에 대한 예측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사실 이런 식의 역학관계에 대한 계산은 위험한 물리적 대결을 선택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 계산은 어떻게 해서든 이기는 쪽을 선택하겠다는 의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 한반도에서 평화를 향한 자신들의 입장을 더욱 분명히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반도에서 어떤 물리적 대결도 거부한다는 분명한 입장, 마지막까지 평화적 해결 방법의 추구해야 한다는 신념을 분명히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화를 향한 이처럼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오히려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세력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전쟁과 같은 무서운 비극이 일어나는 것은 광기 가득한 정치 집단들의 탓만은 아니다. 사실은 그 전쟁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 더 많은 사람들의 동의가 있기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전쟁과 분단의 한 세기를 살아 온 사람들이 물리적 대결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될 때 보다 남북간의 긴장이 고조되어 있는 현재 상황이 더욱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개성공단을 골칫거리로 생각하고, 공단 사업중단을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뿐만 아니다. 평화를 향한 우리의 노력이 수없이 많은 좌절을 겪어야 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지금 다시 그 좌절의 위기 가운데 서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평화적 화해의 과정을 향한 운동과 물리적 대결을 향한 운동을 조심스럽게 식별해 내야 하는 때이며, 평화의 길을 향해 큰 물줄기를 바꾸어 내야 하는 때이다. 때로는 비현실적 이상주의자로 취급 받거나 불온한 종북 집단으로 매도 당할 위험을 각오하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남북간의 정치권력들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할 책임도 없고, 한반도를 둘러싼 세력들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 책임도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한반도를 삶의 터전으로 하고 살아가는 남북한의 모든 인간과 생명들을 향한 책임 그것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서 북에 호전성과 폭력성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남의 호전성과 폭력성에 대해서도 냉정한 비판을 가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남북의 정치권력들을 평화의 길로 다시 불러 세우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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