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들먹거리기 전에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문덕[각주:1]
(향린교회 부목사)

2008년 12월 30일 오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의 할머니는 1911년생이시다. 그러니까 자그만치 98년이나 사시다 하늘로 가셨다. 무학(無學)이기에 무지몽매하지만 악착같이 살았다. 그러나 인생 내내 가난은 면치 못했고, 토속신앙을 오래도록 간직하다가 암 걸린 셋째 딸의 눈물어린 전도로 여든 살이 훌쩍 넘은 말년에 교회에 다니셨던 할머니였다. 나는 귀한 맏손자였기에 할머니께 귀여움을 많이 받으며 자랐고, 또 할머니랑 친하게 얘기도 나누고 흰머리도 뽑아드리고 귀지도 파드리곤 했다.

할머니는 TV를 보시며 언제나 중얼거리셨다. “참 좋은 세상이다~ 방안에 앉아서 세상 팔도를 다 보니 말이다.” 내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런 것들이 움직이냐”며 마냥 신기해 하셨다. 언젠가 한번은 어머니가 나에게 와서 하소연을 하신다. 네 할머니는 너랑 친하니까 네가 잘 말씀드려보라고~. 밤새 콩을 고르시다가 12시가 넘어서야 주무시는 어머니가 한번은 일이 많아 늦게 자서 피곤하다고 할머니께 말씀하신 모양이다. 그러니까 할머니 왈 “겨울은 밤이 긴데 왜 피곤해~” 어머니 왈 “밤이 길어도 12시 넘어서 자면 잠을 잔 시간이 얼마 안 되니까 당연히 피곤하죠?” 할머니는 이해를 못하신다. “겨울은 밤이 긴데 왜 피곤하지? 겨울은 밤이 긴데 말이야.” 이런 할머니의 쇠뿔 같은 고집과 우격다짐으로 나의 어머니는 고된 시집살이를 하셨다. 또 한 번은 옆 동네에 마실 다녀오시고서는 한 마디 하신다. “한태네 집에 갔더니 시계에서 뻐꾸기가 나와서 울더라. 근데 뻐꾸긴 산에서 울어야지 집에서 우니까 영 이상하드라.”

화투 치는 것을 워낙 좋아하셔서, 삼태기를 찾으며 “사쿠라가 어디 갔냐?”라고 말씀 하시던 분! 네 장씩 짝을 맞추며 홍단 청단 비약 똥약 등등이 있는 ‘민화투’를 치시다가 ‘고스톱’이라는 것이 동네에 들어오자 혼자서 세 패를 만들어 놓고 고스톱을 연습하시던 분이셨다. 일제 시대에도 일본순사들과 둘러 앉아 화투를 치셨다고 얘기를 해 주시곤 했다. 한국 전쟁 난리통에 피난 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 왔는데 이불 속에 총알이 여러 개 박혀 있었다는 이야기며, 중공군이 내려와서 무서워 방안으로 숨었는데 중공군은 부엌을 둘러보고 흐트러진 신발을 나란히 정리해 주고 떠났다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어깨너머로 들은 풍월로 숙영낭자전을 외우셨고, 황국신민서사를 일본말로 하시던 기억도 난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일산 쪽으로 가다보면 마두(馬頭)역이 나온다. 할머니는 말머리 동네에서 태어나 거기서 사시다가 혼인하여 딸 둘을 얻고 남편과 사별한 후 나의 할아버지에게 재취를 하셨다. 우리 집은 교하니까 말머리에서 차를 타고 30분이면 오는 거리이다. 평생을 경기도 고양/파주의 한 지역에서 보내신 것이다. 9살에 3.1 독립만세 운동을 겪었을 것이고, 35살까지 일제치하에 살다가, 전쟁과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다 겪으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배움이 없었기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전혀 모르고 그저 살기 위해 살았을 뿐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문덕이가 초등학교나 들어가는 것을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우리 문덕이가 대학가는 것이나 보고 죽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니 내가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아 증손자까지 보시고, 하늘이 주신 수명을 다하고 돌아가셨다. 교회를 나가던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 제사에서 절을 안 하자 “저 망할 놈이 나 죽어도 제사 한 번 안 지내 주겠구먼!” 하시던 분이 내가 목사가 돼서 차를 타고 가면 “하느님,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죠! 차에도 계시죠. 그저 우리 문덕이 우로 가나 좌로 가나 앉으나 서나 늘 함께 해 주십사” 하시며 옛날 무당 불러서 굿하면서 손을 빌던 그 모양 그대로 기도하시던 분이셨다. 큰 글자 찬송가를 하나 사 드렸는데 그것을 달달 외우시며 특히 502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를 좋아하셨던 할머니셨다. 그렇게 교인이 된 어느 날 할머니의 딸들-나에겐 고모님들-이 찾아와서 이것 저것 물으셨다. “교회에 나가니까 어떠냐? 좋냐?” “뭐라고 기도하냐?” 등등 그런데 할머니의 대답이 가관(可觀)이다. “기도하지. 늘 너희들 위해서 기도해. 하느님 들먹거리면서 말이야”

1911년부터 2008년까지 촌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으며 남편에게 대접 못 받는 대신 며느리를 구박하며 삶을 살아냈던 한 여인의 인생에서 교회는 어떤 의미일까? 한국 근현대사 100년의 역사 속에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나름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지만 굴절되고 일그러진 모습을 보여 세속사회로부터 칭찬이 아닌 비난을 함께 받아온 한국 교회는 이 땅의 민중의 삶에 무엇으로 기억되는 걸까? 방안에 앉아서 전 세계의 소식을 듣고, 숲 속의 뻐꾸기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과학시대에 종교는 무엇일까? 일제 식민지의 수치의 역사와 민족분단의 고통과 아픔 앞에서 그리스도교는 무엇이었나?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교회에서 교인들이 하느님 들먹거리며 기도하고 있다. 강단에서 목사들이 또 하느님 들먹거리며 열심히 외치고 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신이시여! 내가 당신을 사랑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느님을 들먹거릴 때 우리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어쩌면 하느님을 들먹거리기 전에 구구절절한 한 인간의 삶을 먼저 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구질구질 맞은 그 삶에서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아니 바로 거기서 그 자리에서만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하느님을 들먹거릴 때 과연 나의 신앙은 무엇일까? 한 인간의 삶과 죽음 앞에서, 그리고 나와 너 사이에서, 우리들의 신앙은 무엇일까?

마당에서 동네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시끄럽다며 물 한 바가지 퍼서 끼얹는 극성쟁이 할머니가 왠지 보고 싶다. 나지막하게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문덕아, 이리와 앉아라. 이 할미랑 얘기 좀 하자. 오늘이 며칠이냐? 초닷새라고? 으응~. 그래, 그래. 사람은 자기 얘기도 하고, 남 소리도 듣고 그러며 사는 게지. 이리 오렴~” ⓒ 웹진 <제3시대>

  1. 하느님 발길에 채여 산다는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있다. 하느님 발길에 채인 것이 자유라는 역설을 참으로 깨달을 날이 오기를 꿈꾼다. 하늘과 땅은 사랑하지 않는다(天地不仁)는 노자(老子)의 말과 한 걸음 물러나야 진정한 자기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退步就己)는 일본의 선승(禪僧)의 경구 그리고 전도서 5장 1절의 말씀 “하느님께 무엇인가 바치겠다고 너무 성급한 생각을 하지 말고 조급하게 입을 열지도 말라.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다.” 매일 중얼거리고 있다. [본문으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이상철
    2009.10.20 21:5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아멘

새내기 목사의 좌충우돌 실수투성 목회이야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문덕
(향린교회 부목사)

첫 번째 이야기 - 풋내기 목사의 꿈

“하느님께 무엇인가 바치겠다고 너무 성급한 생각을 하지 말고, 조급하게 입을 열지도 말라.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름지기 말이 적어야 한다.” (공동번역성서, 전도서 5장 1절)

저는 목사안수를 받은 지 1년도 되지 않은 풋내기 목사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목회에 관한 이러저러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에 덜컥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을 해 놓고는, ‘또 실수 했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이 약해서 글 쓰는 것을 취소한다고 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무슨 말이든 쓰기로 했습니다.

저는 목회가 무엇인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해서 목회란 것을 하겠지만 그렇게 몇 십 년 목회를 한다고 해도 ‘목회란 이런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목사가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 공간을 통해 그리스도교에 대한, 특히 개신교에 대한 비종교인과 사회의 엄청난 불신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목사가 되어버린 한 인간의 나약한 삶을 그저 쓰고 싶습니다.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자리에서 저는 목사가 쓰레기만도 못하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심지어 교인들조차도 목사 앞에서는 웃으며 ‘목사님, 목사님’ 하면서도 속으로는 “으이구, 저런 게 목사라니~” 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의 삶에 있어서 교회와 목사는 이렇게까지 욕만 먹어야 할 곳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여섯 살 때부터 자그만 시골교회를 다녔는데 그 교회는 저를 품어준 보금자리였고, 그 교회 목사님은 검소하고 소박하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작은 시골교회에서 동네 사람들과 동고동락하셨고, 제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나이 지긋하신 인자한 할아버지셨지요. 그 목사님은 원래 음악교사셨는데, 아버님이 한국전쟁 중에 순교를 당하자 맏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이어 목사가 되셨고, 평생을 그 작은 시골교회에서 어렵고 힘든 삶을 감당하신 분이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신나게 놀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인간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사람들과 함께 모여 얘기하고 웃음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의 유년과 청소년, 청년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그 교회에 가면 엄마의 품에서 쌔근쌔근 잠든 갓난아이처럼 포근하고 아늑함을 느낍니다. 제가 어쩌다가 목사가 되었는지 저도 사실은 잘 모르지만 20년 동안 저의 삶의 한 부분이었던 그 작은 교회의 아름다운 경험이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저의 부모는 지금도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어느 누구도 제가 신학을 하고 목사까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실 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땅에 뿌려진 씨가 저절로 자라듯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되었습니다(마가복음 4:26-29). 세상엔 온갖 신비하고 놀라운 일이 많지만 저는 한명의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의 신비를 믿습니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 인간은 땅에 있기에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문제 가득한 이 세상도 눈 크게 뜨고 보면, 잠잠히 입 닫고 고요히 있다 보면, 여기저기서 파릇파릇 돋아나는 하나님의 신비로 가슴 한켠에서 잔잔히 밀려오는 감동에 눈물 적시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고 싶어 합니다. 생존의 욕구와 더불어 자아실현의 욕망으로 가득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저도 욕망이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살고 싶지요. ‘돈’이 ‘하느님’이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돈 벼락이라도 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를 내밉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욕망이 있다면 제가 그 어린 시절 작은 교회에서 느꼈던 그 행복하고 뿌듯하고 신났던 그 경험을 누군가의 삶 속에 일어나도록 해 주고 싶은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누군가가 이런 저의 욕망에 대해 꾸짖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웃긴 놈아! 그러니까 목사 쓰레기라고 불리는 거야. 알았어!” 그래요. 그렇습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사람은 원래 사람들하고 함께 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사는 맛도 느끼는 것이니까, 교회라는 곳이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그 곳이 그런 곳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풋내기 목사로서 하느님께 뭔가 바치겠다는 성급한 생각을 할까봐 전도서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사실 제 주변에 가까운 분들은 제가 목회를 하는 것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부모님도 그렇고 제 아내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라는 거창고등학교에 써 있다는 직업선택의 십계명의 뜻을 생각하면서 아마도 전 계속 목사로 살게 될 것 같습니다. 세상엔 수많은 목사가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지만 그 사람 개인에게는 단 한번 지내는 일생이겠지요. 목사로서의 제 삶을 반추하고 성찰하기 위해 몇 분들의 생각을 소개하고 첫 번째 글을 마칠까 합니다.

첫 글은 권정생 선생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우리들의 하느님

한 20여년 전, 친구한테 얘기했던 게 생각난다. 내용은 내가 만약 교회를 세운다면, 뾰족탑에 십자가도 없애고 우리 정서에 맞는 오두막 같은 집을 짓겠다. 물론 집안 넓이는 사람이 쉰명에서 백명쯤 앉을 수 있는 크기는 되어야겠지. 정면에 보이는 강단 같은 거추장스런 것도 없이 그냥 맨마루바닥이면 되고, 여럿이 둘러앉아 세상살이 얘기를 나누는 예배면 된다. 00교회라는 간판도 안 붙이고 꼭 무슨 이름이 필요하다면 '까치네 집'이라든가 '심청이네 집'이라든가 '망이네 집' 같은 걸로 하면 되겠지. 함께 모여 세상살이 얘기도 하고, 성경책 얘기도 하고, 가끔씩은 가까운 절간의 스님을 모셔다가 부처님 말씀도 듣고, 점쟁이 할머니도 모셔와서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마을 서당 훈장님 같은 분께 공자님 맹자님 말씀도 듣고, 단오날이나 풋굿 같은 날엔 돼지도 잡고 막걸리도 담그고 해서 함께 춤추고 놀기도 하고, 그래서 어려운 일, 궂은 일도 서로 도와가며 사는 그런 교회를 갖고 싶다고 했다.

어때요? 좋지요. 저도 이런 교회를 갖고 싶답니다. 프랑스 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베 피에르 신부가 하는 공동체가 있는데 거기에 누군가 찾아 오면 세 가지를 물어본다고 합니다. 

“주무시겠습니까? 드시겠습니까? 씻으시겠습니까?”

이 공동체에서는 이렇게 누구나 환영하고 함께 사는 이들은 자신이 먹을 것보다 조금 더 많이 일을 한다고 합니다. 남을 살리기 위해 더 일하는 교회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아주 오래전에 사셨던 신앙의 아버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이시여! 내가 당신을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한국의 그리스도교 제도 내에서 목사를 하면서 정말 신을 사랑할 때 꼭 해야 할 것들을 할 수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신을 사랑할 때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을 사랑할 때 우리는 무슨 행동을 할까요? 신을 사랑할 때 우리는 어떤 목회를 해야 할까요?”

두 손 모아 잠깐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성공회 주교였던 존 엘브리스 하인스가 설교를 시작할 때마다 했던 기도입니다.

“은혜로우신 하느님, 우리가 당신께 아무런 뜻도 없는 일들을 습관처럼 행할 때, 우리를 용서하소서.”

ⓒ 웹진 <제3시대>

* 향린교회 http://www.hyanglin.org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어느날 하느님을 만난다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야기 하나.

_ 강최예진

나는 꿈속에서 하늘나라에 갔다.
거기서 하느님을 만났다.
그런데 하느님은 아기새가 돼 있었다.
하기새 하느님은 하늘나라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아기새를 잡았다.
“고마워, 예진아.”
아기새는 말했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아기새가 말을 하다니, 나는 놀랐다.
하느님 아기새가 말했다.
“안녕, 나는 착한 어린이들을 도와주는 새야.”
나는 하느님 아기새에게 말했다.
“그럼 착한 사람들을 경제위기에서 구해주세요.”
갑자기 아기새가 사라지더니, 나는 꿈에서 깼다.


이야기 둘.
사용자 삽입 이미지


_ 김선우

오늘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새가 되어 있었다.
새가 되어서 하늘을 높이 높이 날아 비행기에 부딪힐 뻔하고 쉬다가 떨어질 뻔도 하였다.
하늘 나라에 도착했다.
그랬더니 내 모습으로 ‘펑’ 하고 돌아와 버렸다.
하느님은 공중에서 쉬고 있었다.
눈속임수도 아니고, 새도 아니었다.
정말 신기하였다.
아기처럼 작지도 않고 어른처럼 크지도 않았다.
나는 하느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늘에 떠있으세요?”
하느님이 말했다.
“너도 떠있잖아.”
맞았다. 나도 떠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야기 셋.


_ 신윤하

점심 먹고 나른한 어느 오후 갑자기 온갖 새소리가 집 뒤에서 들려 왔다. 약간 무서웠지만 평소에 새들에게 관심있던 나는 어떤 새가 있을지 궁금해서 집 뒤로 나가 산 위로 올라갔다.

그 다음 본 광경은 죽어서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빨간색 웨이브 머리에 하늘하늘한 하얀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새들에게 모이를 주며 대화를 하고 있던 것이다!!

엄청 놀랐고 119를 반쯤 누르고 있었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여자는 대답했다. “안녕, 꼬마야. 나는 하느님이란다.” 나는 무척이나 놀랐고 저 여자가 미쳤나보다라고 생각했다. “후훗, 믿든지 말든지는 너에게 달렸어. 그리고 내가 누군지 말을 안 했다면 넌 내가 누구였을지 궁금해서 잠도 못 잤을걸?” 정곡을 찌르셨으므로 나는 그분이 하느님이라고 믿어 주기로 했다.

나는 질문을 했다. “여기에 왜 오셨나요?” “나는 온 게 아니야 항상 여기에 존재하지...” “그렇군요 근데 정말 물어보고 싶언 건 따로 있었어요. 저도 새들에게 모이를 주면 안 될까요?” “그러렴. 여기 모이 받아.” 즐거운 하루였고 해는 머리 위에서 눈부시게 빛났다.


이야기 넷.
사용자 삽입 이미지


_ 김신우

나는 길을 걷다가 하느님을 만났다.
3살 정도 된 꼬마였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또 다른 질문을 했다.
“내가 당신을 만났다는 증표를 줄 수 있나요?”
“증표가 꼭 필요할까?”
그가 말했다.
아이의 목소리였다.
아니, 할아버지 같은 목소리이기도 했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밝은 목소리였다.
나는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게 물었던 질문의 해답을 찾은 것 같다.
하지만 머리 밖으로 꺼낼 수가 없다.


* 이 글들은 한백교회(hanbaik.or.kr) 어린이들이 만든 신문 <한백이네 놀이터>에서 가져왔습니다. 어린이들의 창의성이 반짝반짝 빛나는 듯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느날 하느님을 만난다면 무엇을 함께 해보고 싶고,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은가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by 제3시대

공지사항

카테고리

웹진 <제3시대> (835)
특집 (8)
시평 (96)
목회 마당 (61)
신학 정보 (139)
사진에세이 (41)
비평의 눈 (59)
페미&퀴어 (25)
시선의 힘 (139)
소식 (154)
영화 읽기 (34)
신앙과 과학 (14)
팟캐스트 제삼시대 (12)
연구소의 책 (15)
새책 소개 (38)
Total : 381,252
Today : 254 Yesterday : 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