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과학을 잇는 다리?



 

민기욱
(GTU 박사과정)


 


       성탄절을 몇 주 남겨둔 12월 초에 나는 박사논문 Proposal을 앞둔 마지막 단계인 종합고사 구술시험을 간신히 치러냈다. 엘리뇨 현상 때문에 올 겨울은 덥고 비도 많이 온다고 하던데 역시 하늘은 꾸물꾸물 대며 시험을 앞둔 준비가 덜 된 수험생의 심정을 잘 안다는 듯이 심란했다. 종합고사 위원회 4명의 교수 가운데 한 분이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을 하루 전에 통고해서 그런지 분위기가 그리 밝지는 못했다. 더군다나 그 분은 나와 공저로 책을 출판까지 했던 절친이자 아버지같은 존재인지라 나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원망은커녕 내가 85세의 미안해하는 노신학자에게 줄 수 있는 건 위로와 기도뿐이었다. 

       지도 교수인 Robert Russell과 Ted Peters 교수, 그리고 Skype를 통해 Outside Reader인 미국 중부에 위치한 Concordia College의 Ernest Simmons 교수는 법정의 피고마냥 나를 2시간가량 고기 굽는 집게처럼 이리저리 뒤집었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종합고사를 위해 준비했던 130페이지 가량의 페이퍼들을 잘 발전시키면 훌륭한 박사논문이 될 거라 격려했다. “휴~”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네 인생에 더 이상 시험은 없을 거야.” 2시간 정도의 종합고사 구술시험 후 또 다시 1시간 정도 박사논문에 대한 조언을 들은 후 밖을 나서는데 비가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12월의 차가운 비였지만 눈송이처럼 달콤했다.  

      “신학과 과학”이라는 간학문적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이 곳 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 (Graduate Theological Union at Berkeley, CA)에 온 지 이제 10년을 넘어섰다. 석사과정 후 박사과정 6년차의 한국유학생이 쓸 수 있는 글은 무엇일까, 고민이 깊다.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시절 “이안 바버(Ian G. Barbour)에 의한 양자물리학과 신학의 대화”를 목회학 석사 학위논문으로 쓰고 이를 발판으로 하여 유학의 길을 떠나 이곳 GTU에서 다시 석사 학위 논문으로 “God, Nature, and Quantum Theory”를 썼었다. 감사하게도 이 논문에 관심을 가졌던 Kenan Osborne 교수 (전 교황인 라칭거와 한스 큉의 제자다!)의 제안으로 2014년 1월 “Science and Religion: Fifty years after Vatican II” 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게 되어 “신학과 과학”이라는 학문에 첫걸음을 디디게 됐다.  

       그러나, 이 분야를 공부하며 큰 보람과 의미를 곱씹었던 순간은 학위 논문과 책 출판으로 인해 생겼던 저작권료가 아닌 지역 신문에 15차례에 걸쳐 썼던 “신앙과 과학” 칼럼으로 인한 반응을 목격하던 때였다. 각주 하나, 과학 공식 하나 없이 캘리포니아 지역에 사는 한인 이민 교인들을 대상으로 목회자로서 매주 아주 짧을 글을 쓰며 겪었던 고민과 반응은 5년이 지난 지금도 내 머리에 생생하다. 한인 이민 교회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1회성의 세미나에 나섰다가 멱살을 잡힐 뻔한 경험은 오히려 “그래 내가 잘 하고 있구나!” 하는 보람을 안겨주었다. 책에 파묻혀 있던 내게 “전투력”을 안겨줬다고나 할까!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이 지면에 글을 쓰게 될지 모른다. 이 분야의 탁월한 학자도 아니고 글재주가 훌륭한 사람도 못된다. 그저 “서당개 3년”이라고나 할까! 몇 회에 걸쳐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니 큰 그림을 그릴 수도 없다. 또한 이 지면이 학문의 진득한 향연을 펼치는 공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신문에 칼럼류를 쓸 만한 이 분야의 대가도 아니다. 다만 개인의 일기처럼 “과학과 신학” 분야에서 공부하는 신학도가 공부하고 독서하고 토론하다가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들을 모아다가 조금 정리해서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이라 여겨주길 바란다. 당연히 학문적인 글을 위해 인용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또 하나. 조금 더 깊고 넓게 공부하고 싶은 이들은 혹은 재미있는 꿍꿍이가 있는 이들은 연락을 주길 바란다. 내공은 깊지 않으나 놀기는 정말 좋아하니까. (이어지는 글은 예전에 한국일보에 내가 썼던 “신앙과 과학” 칼럼의 일부에서 왔다.) 

       “기독교 신앙과 자연과학”, “기독교 신학과 과학기술”의 연구는 미국, 영국을 중심으로 1960년대부터 시작되어 오늘날에는 기독교 신학에서 중요한 분야를 차지하고 있다. “과학과 종교”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이안 바버(Ian G. Barbour)를 중심으로 수많은 신학자들은 급변하는 서양의 과학과 기술로 인해 “과학시대의 기독교인”으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라는 자못 심각한 고민을 오늘까지 해 오고 있으며, 이러한 고민과 연구는 앞으로도 상당히 발전할 것이 분명하다. (한신대학교 종교와 과학센터의 최근 출범은 매우 고무적이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미래가 과학기술의 시대가 될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 신학, 종교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개신교계는 이런 변화에 대해 무심하거나, 귀찮아하거나, 어쩔 수 없어 그냥 막연히 쳐다보거나, 또는 아예 반대하는 경향을 보이는 듯하다.  

       예를 들면, 10여 년 전, 한국의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대해 국가 이익의 측면에서 무한한 부가가치를 예상해 국가가 전폭적 지지를 보내고 있을 무렵, 그리고 그 연구의 지나친 과장, 확대로 인해 재판까지 갈 때까지 한국 기독교 교계는 각 교단의 헌장에 “줄기세포(stem cell) 연구”에 대한 변변한 문구조차 갖추지 못했음을 보고 실망한 적이 있다. (지금은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그 이후 미국의 경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식을 하기도 전에 당선인 신분으로 “줄기세포” 연구에 막대한 연구비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그 저변에 있을 정치, 경제적 계산을 미루더라도 이미 미국 신학계의 경우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신학적, 윤리적 문제를 이미 상당 부분 확보했음을 볼 때 한없이 부러웠다.  

       이런 거대 담론을 제쳐두고서라도 우리와 같은 소시민이 일상 생활에서 부딪히게 되는 “과학과 신앙”의 고민, 즉 “과학시대의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때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해 더 이상 간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더 많은 고민거리들이 우리를 괴롭히게 될 것이다. 이에 나는 “신학과 과학”이라는 간학문 분야에서 공부하는 신학도이자 도반으로서 “과학시대의 기독교인”을 준비하고자 하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그 고민과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혹은 그 고민과 갈등이 혼자만의 것이 아닌 오늘을 사는 “우리”의 것임을 깨달아 서로 연대하고 공감하는 일에 내가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과학기술자로 한평생을 사셨던 내 아버지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아들에게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있다. 실험이 끝난 어느 오후 무렵, 40대 중 후반의 후배가 책상에 엎드려 그야말로 “엉엉” 울고 있더란다. 집안에 불상사가 생겼나 걱정돼서 물었더니, 과학자와 기독교 신앙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 때문에 하도 답답해서 이렇게 울고 있다고 말하더란다. 이 말씀을 전하시면서 아버지는 자못 심각하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당부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다. 이 갈등이 모든 신앙인들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두고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라면 내가 하는 공부가 의미가 있으리라 본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GTU는 여러 개의 신학교가 유기적으로 연대하고 있는 연합신학대학원이다.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 침례교뿐만 아니라 몇 개의 가톨릭 신학교가 서로 긴밀하게 협업을 하는 유기적 공동체를 꿈꾼다. 덕분에 GTU에서 공부하는 신학도는 자연스레 여러 교단을 넘나드는 에큐메니칼 스승을 두게 된다. 내 경우 United Church of Christ 목사인 Robert Russell이 지도교수이고, 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America 목사인 Ted Peters와 Franciscan 신부인 Kenan Osborne 이 스승이다. GTU 소속 Pacific School of Religion 캠퍼스의 마당에서 보면 멀리 금문교가 보인다. 내 지도교수인 Robert Russell이 설립하고 내년이면 35주년을 맞이하는 CTNS (The Center for Theology and the Natural Sciences)의 로고 그림은 금문교다. 두 곳을 잇는 것이 다리인 것처럼 “신학”과 “과학” 혹은 “종교”와 “과학”을 잇는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안 바버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교량적 역할을 통해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러나 자꾸 의문이 드는 건 왜일까? 다리는 이쪽과 저쪽을 잇고, 서로 오고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자, 그러면 “신학”은 이쪽에 “과학”은 저쪽에 있다 하자. 신학 하는 이들은 과학 혹은 기술 쪽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무엇인지 살피고 묘사하고 때론 적극적으로 경고한다. 이에 과학 하는 이들은 신학 혹은 종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무엇인지 살피고 묘사하고 간섭할 것이라 예상된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물론 내 스승인 Robert Russell 교수는 Creative Mutual Interaction 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신학”과 “과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주장한다. 그러나 내 인상은 “신학” 혹은 “종교”에서 종사하는 이들의 바램일 뿐 “과학”은 그야말로 “무심”하다. 물론, “신학과 과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러 학자들이 둘의 관계에 대해 여러 가지 유형을 묘사해 오고 있다. 나중에 이 유형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여전히 뭔가 자꾸 만족스럽지 않은 게 남는 까닭은 뭘까?  

       한국에 계신 아버지의 소원을 기억한다. 그것은 전 세계에 있는 “다리” 사진을 찍는 거였다. 무슨 “대교” 이런 것도 있겠지만 크게 꾸미지 않은 “다리 같지 않은 다리”를 찍고 싶은 거였다. 부전자전이랄까? 나는 “다리 같지 않은 다리”를 놓고 싶은 건가, 아니면 “다리 같지 않은 다리”를 그저 유랑하면서 찍고 싶은 건가.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우리에게 북한이란 무엇인가


황용연
(미국 GTU 박사과정)


 
요즘 필자의 살림 걱정 중에 하나는 한 달 전쯤 확 올라가 버린 달러 환율이 좀처럼 그 때 수준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서 환전을 해야 하는데 계속 떨어지던 환율이 한 달 전쯤 확 올라가 버린 후 다시 떨어지긴 했어도 예전 수준으로까지는 돌아오지 않으니, 지금 환전하면 그 때 환전했던 금액보다 적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한 달 전 환율이 확 올라갔을 때 터졌던 사건이 무엇이었을지 짐작하신 독자분들도 있으실 테다. 그 때가 바로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졌던 때였다.

연평도 포격 사건과 이후 최근까지 이어진 일련의 사건은 어찌 보면 오랜만에 북한을 남한 사회의 중심 논란거리 중의 하나로 만들었다. 사건 이후부터 계속 이어진 군사훈련을 둘러싼 '본때를 보여 주어야 다시는 안 그런다' vs '안 그래도 긴장 분위기인데 계속 불 지르면 평화란 어디서 찾으란 말이냐'라는 논쟁부터, 이미 소위 햇별정책을 쓰던 정권이 물러난 지 3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햇볕정책이 맞니 틀렸니라는 식으로 벌어진 논쟁까지.
각자 자기 입장은 뚜렷할 수 있어도, 아니 오히려 뚜렷하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쉽게 승복할 수 없이 벌어졌던 논쟁들 속에서, 문득 제목의 질문을 한 번 던져 본다. 과연 지금 우리에게, 북한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쉬웠던 때가 있었다. 그 때 북한은 적이었다. 그것도 실제로 총을 맞대고 싸우기까지 했던, 그래서 현실적인 위협이었던 적 말이다. 그리고 그 적은 동시에 남한 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에서 거울 구실도 했다. '야만스러운 공산주의 독재사회'라는 북한의 이미지를 구축해 놓고, 남한은 이 이미지와는 반대이므로 살 만한 사회이다라고 말하기 위한 거울로서의 구실.
그런데 정작 그 거울을 많이 써 먹었던 남한의 정부도 '공산주의'는 아닐지 몰라도 '야만'과 '독재'이긴 마찬가지였음이 폭로되면서 북한에 대한 다른 견해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주로 이런 견해들은 '동족'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사회주의의 이상적 측면에 관한 호감이 거기에 덧붙기도 했고, 또 다르게는 남한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많이 훼손되었다는 '민족의 원형'이라는 이미지가 덧붙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런 견해들이 수다히 제기되었어도, 다른 한 편에서는 여전히 북한은 적이었다.

이런 두 방향의 견해는 여전히 남한 사회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유력한 견해로 자리잡고 있지만, 80년대 말 이후 남한과 북한의 행보가 상당히 엇갈리면서 새로운 경향이 생기기 시작했다. 현실 사회주의 사회가 붕괴된 영향과 홍수/가뭄 등의 심각한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북한 사회가 식량 걱정까지 해야 되는 지경이 된 반면, 남한 사회는 올림픽과 월드컵 등을 개최하면서 그 동안 지속되어 온 경제성장이 마침내 국제적인 성공의 증표가 되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물론 중간에 IMF라는 좌절을 겪기는 했어도).
그리고 이 시기에 초등학생들이 "통일되면 거지떼가 몰려 올 까봐 싫어요!"라고 이야기하게 된다. 북한을 '적'으로 여기던 '동족'으로 여기던 간에, 양편 모두에게 북한이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갖는 존재였다면, '거지떼' 운운하는 초등학생에게는 북한은 별 비중이 없는, 무시할 수 있는 대상인 것이다. 어쩌면 월드컵 때 시청광장에서 울려퍼졌던 "대~한민국"은 바로 그 무시의 완성형이었을지도. 이제 '남한'만으로도, 그 '남한'이 한반도 '남쪽'에 있다는 걸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국가가 되었다는 외침이었을 테니 말이다.
이러한 무시는 사실 연평도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드러난다고 해야겠다. 연평도 사건을 일으킨 북한의 이미지는 무서운 적이라기보다는 '양아치'에 가깝다고 보이니까 말이다. 그런 양아치를 혼내 줄려면 얼마든지 혼내 줄 수 있었을 텐데(물론 미국이라는 '큰 형님' 허락이 필요할 수도 있긴 하지만) '안 혼내 주고' '퍼주기'만 했던 게 문제지, 혼내 줄 수 없을 정도로 강해서 '못 혼내 준 건' 아니었다고들 하니 말이다. 물론 연평도 사건 직전에 있었던 '3대 세습' 등의 얼빠진 행위가 이런 '양아치' 이미지에 일조하기도 했을 것이고.
이런 '무시'라는 시각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의 그 동안의 대북정책을 두고도 북한을 적대시했다기보다는 북한을 무시했다고 보는 해석도 가능하게 된다. 협상이든 적대든 북한에 대해 어떤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기보다 북한이 먼저 굽히고 들어오면 도와줄 것이라는 입장만 계속 취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평도 사건은 적어도 국가 운영의 차원에서는 이런 '무시'만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무시'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햇볕정책'은 과연 자유로울까.
물론 '햇볕정책'은 북한을 무시해서는 성립할 수 없는 정책이다. 기본적으로 남한과 북한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보자는 정책이니 말이다. 어쩌면 본격적으로 그 일치의 지점을 찾기도 전에 일단 급한대로 '퍼주기'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이 햇볕정책의 현실적 난관이기도 했을 것이고.
하지만 '햇볕'이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결국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이야기 아니던가. 이 '햇볕정책'의 정식 명칭은 '대북포용정책'. 즉 남한이 북한을 포용한다는 이야기지 그 반대는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자신을 남북평화 쪽으로 어필하려 했던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에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남한도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트위터에서 이야기했단다. 그렇다면, 햇볕정책과 그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북한은 적어도 '동등한' 위상의 주체는 아니란 이야기이니, 이것 역시 '무시'의 흔적이지 않을까.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연평도 사건은 이제 이런 '무시'만을 가지고는 더 이상 북한 관련 문제를 다룰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제 제목의 질문을 다시 물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에게 북한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북한이란 무엇인가"에 앞서서 "도대체 어떻게 우리는 북한을 무시할 수 있었는가"부터 먼저 물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북한을 새삼스럽게 '겁내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북한을 무시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된 남한 사회의 자신감,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올림픽과 월드컵 등의 계기로 표출될 수 있었던 그 자신감, 도대체 이것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물음 말이다. 아마도 그런 질문을 묻게 된다면, 북한 말고도 다른 '무시'의 대상들이 그 물음의 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하지 않을까.
그럴 때 아마 이 글의 제목도 바뀌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우리'라고 할 때는 누구를 이야기하는 거냐, 그 자신감을 주도한 사람들 이야기냐 그 자신감 때문에 어쩌면 무시당했던 사람들 이야기냐라는 질문이 따라오게 될 테니까 말이다.

ⓒ 웹진 <제3시대>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by 제3시대

공지사항

카테고리

웹진 <제3시대> (831)
특집 (8)
시평 (94)
목회 마당 (60)
신학 정보 (136)
사진에세이 (39)
비평의 눈 (72)
페미&퀴어 (25)
시선의 힘 (135)
소식 (153)
영화 읽기 (32)
신앙과 과학 (14)
팟캐스트 제삼시대 (12)
연구소의 책 (13)
새책 소개 (38)
Total : 353,571
Today : 12 Yesterday : 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