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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 BlacKkKlansman]우리의 얼굴은 무슨 색인가? < 블랙클랜스맨 (스파이크 리, 2018)>(이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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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3시대 2018. 10. 1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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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얼굴은 무슨 색인가? 

 < 블랙클랜스맨 (스파이크 리, 2018)> 





이희승*



국가의 탄생부터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출발한 미국에서 인종차별만큼 예민한 이슈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 중에서도 미국 역사와 궤를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는 흑인에 대한 백인 주류사회의 차별과 이에 맞서 싸우는 흑인 저항운동은 국가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헐리우드 안팍에서도, 흑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 그리고 차별은 - 때로 격렬하게, 때로 나직하게, 하지만 지속적으로 - 지난 한 세기동안 영화적 표현과 비판적 논쟁의 중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죠. 내러티브 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리피스가 만든 [국가의 탄생 (1915)]은, 정교하게 계산된 교차편집을 통해 다층적 내러티브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비주얼 스토리 텔링의 혁신을 가져온 작품이라고 꼽을 수 있지만, 인종차별적 시선을 필터링없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목부터 상당히 거창한 이 영화는 노예해방전쟁이라 할 수 있는 남북전쟁을 백인우월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야만적으로 묘사된 흑인 캐릭터들을 통해 인종차별적 편견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무엇보다도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남부 연합 출신의 군인들이 조직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비밀결사단 ‘쿠 클럭스 클랜’ (Ku Klux Klan, 백의단 白衣團)의 흑인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을 미화합니다. 물론, 100년도 더 된 옛날 영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스파이크 리 감독의 2018년 신작의 제목인 [BlacKkKlansman]은 바로 Black man과 Ku Klux Klan (이하 KKK)의 합성어입니다. 문제는 정반대의 시선으로 미국을 바라보는 이 두 영화를 만들어낸 불관용과 증오가 가득한 시대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스파이크 리 감독은 1980년대 뉴욕대 영화과 졸업작품으로 이미 KKK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다가 퇴학당할 뻔한 전력이 있는 흑인 감독입니다.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흑인사회에 대한 부당한 시선에 맞서, ‘정치적으로 전혀 올바르지 않은’ 목소리를 내온 스파이크 리 감독은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제목만 들으면 알만한 영화들을 발표합니다. 대도시 흑인 거주지에서 어린시절부터 자란 리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백인 우월주의가 마치 공기처럼 당연시되는 차별적 리얼리티에 포커스를 맞추면서도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지닌 이민자들이 등을 맞붙인채 살아가는 뉴욕의 현재를 소재로 삼아, 실험적 형식, 확고한 주제의식, 그리고 랩을 하듯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대사를 통해 자신의 인장이 새겨진 영화세계를 구축하죠. [그녀는 그것을 가져야만 해 (She’s Gotta Have It, 1986)], [똑바로 살아라 (Do the Right Thing, 1989)], [모베터 블루스 (Mo’Better Blues, 1991)], [정글 피버 (Jungle Fever, 1991)], [말콤 엑스 (Malcome X, 1992)]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리 감독의 영화들은 주류사회의 편리에 따라 재단된 스테레오 타입에 갇힌 흑인 캐릭터들을 ‘해방’시키고, 내러티브의 중심을 차지한 백인과 늘상 주변부로 밀려나는 유색인종의 전치(轉置)를 시도합니다.


1970년대 콜로라도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의 이번 신작은 올해 칸 국제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평단과 관객의 관심과 기대 속에, 미국을 시작으로 전세계에 개봉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개봉예정입니다. 늘 영화만들기가 현실참여의 도구여야 한다고 믿는 스파이크 리 감독은, 그리피스가 영화를 만들던 백년전으로 돌아간 듯 백인우월주의자들이 곳곳에서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미국의 현실을 가감없이 직설적으로 표현합니다. 영화는 현직 대통령 트럼프로 분장한 나레이터(알렉 볼드윈)가 스크린 위에 상영되는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을 배경으로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없이 뱉어내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하죠. 충격적인 기시감으로 관객을 놀라게 한 오프닝은, 콜로라도 스프링스 최초의 흑인 경찰이 된 론 스톨워스의 첫 출근날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영화의 메인스토리는 우여 곡절 끝에 형사 론 스톨워스가 굴욕적인 자료실 근무을 거쳐, 흑인 대학생 연합의 집회현장에 잠입수사하는 임무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론은 잠입수사 중에 만나 호감을 느낀 대학생 연합 회장 파트리사가 동료 백인경찰에게 이유없이 성희롱을 당한 것을 계기로 전방위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짓누르는 인종차별에 대한 자각을 경험하고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저항을 시도합니다. 참고로, 주인공인 론 스톨워스 형사를 연기한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26년전 스파이크 리 감독이 만든 [말콤 엑스]에서 과격한 흑인 인권운동가 말콤 엑스로 분한 덴젤 워싱턴의 아들이기도 하죠. 대를 이어서 부조리한 미국 사회에 대항하는 흑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워싱턴 부자의 모습을 보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론은 지역신문에 버젓이 광고를 내고 회원을 모집하는 KKK의 뻔뻔스런 작태에 분노해, 백인우월주의자인 척하면서 KKK의 콜로라도 지부에 전화를 걸죠. 론의 ‘자기파괴적’ 과격한 인종차별 발언에 호감을 느낀 협회 지부장으로부터 협회 가입을 제안받은 론은 자신을 대신해서 초대에 응할 백인형사와 함께 잠입수사를 계획합니다. 유대인 플립 짐머만 형사(아담 드라이버)는 론의 계획이 탐탁치는 않지만 흑인과 함께 유대인, 아시안 등의 타인종을 한 묶음으로 묶어 버러지 취급하는 KKK의 내부조직을 조사하는 일에 동참하기로 하죠. 아직은 서로가 어색한 두 파트너는 이인삼각 경기를 하듯 흑인인 론이 전화 연락을 담당하고 백인인 짐머만 형사가 실제 미팅에 참가하여 ‘순수한 백인남성’이자 극렬 백인 우월주의자인 가상인물 론 스톨워스를 만들어 냅니다.


잠입수사 중에 만난 KKK 회원들은 그야말로 가관입니다. 술보다 더 독한 백인남성우월주의에 취해, 자신들이 미국 주류사회 기득권 세력의 일부인양 착각하고 사는 루저들의 집단인 것이죠.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기술한 바처럼, 인종차별이나 백인 우월주의와 같은 비이성적 전체주의 사회 질서와 가치관은 ‘-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아닌, 현실과 가상,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더이상 필요치도 존재하지도 않는 영역에서만 사고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어 왔습니다. 오리지날 금수저 트럼프를 자신들의 편이라 굳게 믿고 백악관을 보낸 미국시민들. 기득권의 철저히 계산된 이익을 위해 케케묵은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를 생각없이 재소환하고야만 ‘평범한’ 이들. 이 평범한 사람들은 선동적 정치풍토와 오로지 무한소비와 이익창출을 위해 존재하는 언론과 미디어가 제시하는 대로 상상하고 반응하는 동안,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따져 묻는 인간 고유의 지적능력을 스스로 포기한 듯 합니다. 사제폭탄을 행사장에 설치할 중대임무를 맡은 어느 회원의 중년부인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침대에 함께 누운 남편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검둥이 몇을 죽여 버리는 꿈을 꿨어요? 이제 진짜 죽이는 거에요!” 비밀스레 계획한 ‘거사’를 앞두고, 순수한 백인 혈통을 자랑하는 KKK회원들은 자신들의 하얀 얼굴에 쨍하게 눈부신 흰 고깔까지 뒤집어 쓰고, 보기에도 민망한 그들만의 유사 종교의식을 부끄러움없이 진행합니다. 마치 폭력적 인종차별이 자신들의 ‘우월한’ 피부색과 함께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권리인양 말이죠. 영화는 콜로라도의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가다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여느 중산층 가정집의 거실에 모여 캔맥주를 마시면서 태연히 흑인 인권운동 집회현장을 폭파시키는 테러를 작당하는KKK 회원들의 얼굴에서 미국의 현재를 읽어 내는 듯 합니다.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을 지나, 1970년대 콜로라도를 거쳐 [블랙클랜즈맨]은 2017년 버지니아 샬롯빌에서 끝을 맺습니다. 지난해 이곳에서 실제로 백인우월주의 폭력집회와 이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행진이 충돌하는 사건이 있었죠. 그와중에 집회 참석 중이던 남성이 반대 행진을 하던 시민들을 향해 차를 몰고 돌진하는 바람에, 여러명이 다치고 한 여성이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합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영화 촬영을 모두 마친 후에 이 뉴스를 접하고 실제 현장을 기록한 동영상을 영화 말미에 편집해 넣습니다. 영화의 전미 개봉일을 샬롯빌 사건의 1주년 기념일에 맞추고 스파이크 리 감독이 미국의 관객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얼굴은 과연 무슨 색인가? 이 얼굴색의 문제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제 마음이 편치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한쪽에서는 분단의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빨강과 파랑, 두 가지 ‘얼굴색’으로 나라를 나누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한몸에 두른 채 선동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떠오른 때문이겠죠. 영화가 다시 묻습니다. 우리의 얼굴은 무슨 색인가?


* 필자소개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강사 및 정신분석가. 동 대학의 미디어 영화학과에서 각색영화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고찰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아시안학과에서 한국 영화와 텔레비젼 드라마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호주 정신분석학회의 정신분석가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 라캉 포럼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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