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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최불암 시리즈(송기훈)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9. 5. 1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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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 시리즈

송기훈

 “최불암 시리즈”의 생성과 전래의 과정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불암 시리즈” 이외에도 “참새 시리즈”, “대발이 시리즈”, “만득이 시리즈” 등의 시리즈 유머의 아류들이 나타났지만 “최불암 시리즈”가 대중의 선택을 받게 되었다. 최불암 시리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입증된 최불암의 어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연속방송극 “수사반장”과 “전원일기” 에 나오는 대사와 인물간의 관계를 기초로 하고 있다. 그 어록들은 TV를 시청하는 모든 세대들에게 널리 전해지게 되고 그 중에서 하이텔, 나우누리 등 몇몇 유머 공동체들에 의해 “최불암 시리즈”로 편집되기에 이르렀다. “최불암 시리즈”의 ‘수사반장과 형사25시’, ‘횡단보도’ 두 편에서 그 어록들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1. 최불암 시리즈 -수사반장과 형사25시-

최불암이 수사반장이라는 형사드라마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을 켰는데 수사반장이 아닌 다른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이틀 후 수사반장이 방영된 같은 시각에 형사25시라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 텔레비전을 켰는데 역시 다른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최불암은 금동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최불암: 금동아, 수사반장 끝났니?

금동이: 지난주에 종영되었어요.

최불암: 그럼 형사25시는?

금동이: 그것도 끝났어요.

최불암 왈.

"그럼 범인은 누가 잡고 양촌리의 치안은 누가 지키지?"

2. 최불암 시리즈 -횡단보도-

최불암과 유인촌이 길을 걸어가다가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서 있었다. 빨간불이었는데 최불암이 갑자기 반대편으로 막 뛰어가더니 반대쪽에서 이쪽으로 다시 막 달려오는 것이었다.

유인촌: 빨간불인데 왜 건너요?

최불암: 너도 해봐, 진짜 재미있어.

이렇게 최불암이 출연한 두 편의 연속방송극을 소재로 최불암 시리즈는 대중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으며 문서화가 되어갔다. 하지만 최불암 시리즈의 전래 과정 중에서는 최불암이 출연했던 두 드라마에서 나오는 어록을 넘어서 최불암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재구성되기에 이르렀는데, 그렇게 재구성된 최불암은 이미 연속방송극의 캐릭터와 배경을 넘는 수준이 되었다.

예를 들어 ‘도로아미타불’ 편에서는 당시의 세계사적인 정황이 반영되어 있고, ‘약국’ 편에서는 이미 최불암의 캐릭터가 연속방송극의 캐릭터에서 벗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몇몇 편에서는 원래 있었던 개그 시리즈에 최불암이 편집되어 등장하는데, 가장 유명한 시리즈 중 하나인 ‘이 산이 아닌개벼’ 편은 이야기의 원래 주인공인 나폴레옹을 최불암이 대신하고 있다.

 

3. 최불암 시리즈 -도로아미타불-

최불암, 부시, 고르바초프가 뱃길 여행하던 도중 배가 풍랑을 만나 침몰하는 바람에 어느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었다. 최불암이 자는 사이에 부시, 고르바초프가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다가 우연히도 작은 램프를 발견했다. 혹시나 해서 손을 댔더니 램프 속에서 거인이 나왔다.

"당신들의 세 가지 소원을 들어 주겠소"

이 말을 듣기가 무섭게 부시는

"나를 백악관으로 보내줘!"

고르바초프는

"나를 크레믈린 궁으로 보내줘!"

그것이 소원대로 이루어졌다. 남은 소원은 저기서 자는 최불암의 몫. 거인이 최불암을 깨웠다.

"소원을 들어드리겠소. 말해 보시오"

최불암이 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한 가운데 이렇게 외쳤다.

"여기 있던 양반들 어디로 갔어? 다 찾아 와!"

 

4. 최불암시리즈 -약국-

약국을 경영하던 최불암이, 장사가 안 되자 밖에 나와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잠시후에, 최불암 앞으로 젊은 여성이 지나갔다.

"아가씨! 쥐약 사세요!"

"저희집에는 쥐가 없는데요?"

"쥐는 서비스입니다!"

 

5. 최불암 시리즈 -이 산이 아닌개벼-

최불암 장군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공략 지점인 높은 산을 향해 돌격했다.

근데 고지에 오르니까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이 산이 아낸개벼."

이 말에 부하들의 반이 기절했다.

할 수 없이 도로 내려가서는 옆의 산을 향해 돌격했다.

그런데 고지에 오른 최불암의 한마디에 이번엔 부하들이 다 기절했다.

"얘들아. 아까 그 산이 맞는개벼."

이렇게 “최불암 시리즈”는 전승과정과 재구성과정을 거쳐서 역사적인 최불암을 넘어서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최불암, 나아가서는 나날이 발전하는 도시생활에 뒤처진 최불암을 통해 허무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주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역사적 인물이 하나의 문화적 조류를 형성하는 힘이 되었다. 특별히 최불암의 전매특허인 웃음소리 “파-하”는 소위 ‘썰렁개그’의 상징적 기호가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사회에서 허무개그, 썰렁개그는 익숙한 장르가 아니었다. 그러기에 이 개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고, 최불암시리즈를 듣고 웃으면 신세대 아니면 쉰세대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당시 최불암씨가 이러한 문화현상을 의도했는지 안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불암시리즈”가 존재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최불암과 “최불암시리즈”는 같지만 다르다. 최불암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최불암시리즈”도 존재하지 않았겠지만, “최불암시리즈”가 최불암을 정확히 의미한다고도 볼 수만은 없다. 역사적인 최불암과 시리즈가 된 최불암 사이의 무한에 가까운 폭 사이에서 당시 사회와 그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 즐겁게 상상할 수 있는 놀이터가 열리게 된 것이다. 최불암씨 본인도, 그리고 그 분의 아버지마저도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최불암 현상은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하던 추억이 되었다.

6. 최불암시리즈 -최불암 시리즈를 들은 아버지-

최불암 시리즈가 한창 유행하고 있을 때 최불암 시리즈를 들은 아버지가 심각하게 말하셨다.

"최불암이 그럴 리 없는데...."

*필자소개

현재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일하고 있으며, 예수의 십자가를 우연히 졌던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자신도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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