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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검찰개혁'은 '같이 가야' 할까요- 검찰개혁 지지선언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황용연)

시평

by 제3시대 2020. 12. 3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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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검찰개혁'은 '같이 가야' 할까요 - 검찰개혁 지지선언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

 

황용연 (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 박사,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

 

1.

P 목사님께.

이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아내는 노트북으로 김진숙 지도위원 복직을 위한 드라이브스루 시위의 유튜브 생중계를 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김진숙 지도위원 복직에 대해서도 많이 신경쓰고 일하고 있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말부터 시작되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검찰개혁 지지선언에서도 목사님의 성함을 자주 보게 됩니다. 목사님 말고도 선언에 참여한 개신교 분들 중에 적지 않은 익숙한 성함들이 있기도 하구요.

종교인들이 왜 검찰개혁 같은 주제에 끼어드냐는 비난도 있고, 사회비판적 종교인들이 정부를 지지하는 어용 종교인으로 바뀐 것이냐고 비판하는 말들도 들리던데, 그런 비난과 비판에 동의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종교인이라면 당연히 그 생각과 언행이 종교적 양심에 따른 것어어야 할 테고, 그 양심에 따른 결과라면 그 결과가 정부 지지가 되든 아니든 그것 자체를 비판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 결과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성립한 것이고 영향이 어떠한가 하는 것은 물을 수 있겠지만요.

검찰개혁 지지선언에 담긴 말들은 강경했고 그 말들은 여러 지점에서 계속 이어졌습니다. 작년 말에 공수처법이 통과되었는데도 1년 가가운 기간 동안 제1야당의 사보타주에 가까운 비협조가 이어진 것과, 그 기간 내내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끊임없는 갈등이 지속된 것이 아마도 그 강경함의 이유였을 법 합니다. 

그런데 계속 이어지는 선언들 속에서 저는 그 선언에 동감하기보다는 계속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더군요. 공수처법 등을 비롯해서 검찰개혁의 제도적 정비 과정을 밟아 나가는 데 아마도 가장 적극적인 방해를 한 것은 제1야당인 것 같은데 검찰개혁에 관한 각종 이야기들의 촛점은 윤석열 총장을 몰아내는데 맞춰져 있고 검찰개혁 선언 퍼레이드 역시 윤 총장의 징계위원회의 시기에 맞춰져 벌어진다는 것에 갸우뚱했구요. 그 와중에서 검찰이 일사불란한 악의 무리이며 사회개혁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식의 언어가 끊임없이 늘어가는 것에도 갸우뚱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특히 올해 하반기 들어서 추미애 장관의 윤석열 총장에 대한 제반 언행들, 결국 징계 실행까지 다다르게 된 그 언행들이 상당히 무리수가 많아 보였고, 그럼에도 그 무리수에 대한 비판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갸우뚱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사유를 따져 보면 다 해임감인데 정작 징계는 2개월 정직이다라는 뭔가 이상한 결과는 제가 갸우뚱했던 것이 근거가 없지는 않다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종교인의 입장에서 당혹스러웠던 장면이 추미애 장관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종교인들의 지지 성명을 인용했던 장면이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종교적 양심에 따른 언행의 결과가 정부 지지인 것 자체가 비판받을 일은 아니고 지지 성명을 인용했다는 것 자체도 비판받을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당혹스러웠던 이유가 뭐냐면, 그 인용의 의도가 흔히 '종교인'에 대한 상투적 이미지인 '세상의 이해관계에 초연한 자들'의 이미지를 빌려와서 자신의 주장에 권위를 더하려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인용의 맥락은 추 장관이 내세웠던 가장 큰 징계사유인 판사 관련 정보 수집 문건에 대한 법관회의의 무대응 결정에 대해서 추 장관이 비판적 코멘트를 붙이는 맥락이었습니다. 추 장관이 처음 그걸 들고 나왔을 때부터 국가 기관이 그런 문건을 만드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를 한다기보다 오 하나 잘 걸렸다 이걸 중대한 잘못이라고 몰아붙이면 동의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붙어 주겠지 하는, 가짜 뉴스의 작동방식과도 비슷한 언행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언행에 대한 역반응이 나오자 그 역반응을 또 한 번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구실로 '종교인들의 지지선언'을 동원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거기에 앞에서 이야기한 '세상의 이해관계에 초연한 자들'이라는 이미지까지 겹치니, 이 지점에서 어쩌면 종교인들의 일련의 지지선언이 어느 정도는 '어용'으로 활용된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면, 아마도 제가 마음을 편치 않게 해드린 것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하겠지요?

 

2.

P 목사님.

서두에 김진숙 지도위원 복직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했습니다만, 그 분의 복직투쟁에 응원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거의 전부가 아마도 이 겨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열망하고 있을 것입니다. P 목사님과 저도 마찬가지겠구요. 

일련의 검찰개혁 지지 선언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입에서 검찰개혁에 저렇게 지지선언이 이어지는데 왜 그런 사람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는 관심이 없나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는 걸 들었습니다. 사실 이 말이 틀린 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저도 듭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편지를 띄워야겠다는 생각이 든 한 가지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최소한 종교인 지지 선언, 그 중에서도 P 목사님을 비롯해서 저에게 익숙한 성함이신 분들 대부분이, 검찰개혁과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도 신경 쓰시는 분들이라는 건 확실할 텐데 왜 저런 말들이 나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P 목사님 같은 분들이 검찰개혁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이 같이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안 하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예를 들어 기장 교사위원회에서 [검찰개혁은 반드시 필요한 일, 그러나 국민의 기본권 확대를 동반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성명서가 나온다든지 하는 걸 보면서입니다. 검찰개혁에 관한 여러 성명서 중에서 그래도 가장 동의할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게 했던 성명서였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성명서에 검찰개혁이란 말이 굳이 들어가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실제로 검찰개혁 이야기는 초반에 잠깐 나오고 끝이라서 말이지요. 오히려 그렇게 굳이 초반에 잠깐이라도 검찰개혁 이야기를 해야 기본권 확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어쩌면 일종의 교리화 아니야 이런 생각까지 들기도 하더군요.

기장 교사위의 성명서가 그래도 좋은 예에 가깝다면, 해외체류 목사님들의 성명서 중에 이런 내용이 나오는 데는 정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윤석열 총장의 행태가 개혁의 역량을 적폐검찰 개혁에 과도하게 쏟아붓게 해서 다른 분야의 개혁을 발목 잡는 가장 큰 장애물이니까 윤 총장이 물러나야 한다나요. 이 성명서에 동의한 분들 역시 검찰개혁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이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만, 같이 가야 한답시고 저런 식으로 정부의 그 동안의 개혁 부진(?)에 대한 핑계를 알아서 넣어 주는 이런 성명서는 '어용'이라 부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달까요.

그러면서 해 보게 되는 생각이 이런 거에요. 검찰개혁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이 같이 가야 한다 혹은 왜 이건 하고 저건 안 하냐 이런 식의 생각들에 어딘가 보완해야 할 지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뭐냐면.

검찰개혁을 제도적 차원에서 접근할 때는 특히 시민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고 실제로도 끼쳐 온 권력기관의 행태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그래서 시민과 검찰의 바람직한 관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질 터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검찰개혁에 관한 이야기가 그런 방향에서 이루어졌던가를 돌이켜 보면, 그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죠. 검찰개혁의 가장 중요한 제도적 방안으로 꼽혀 온 공수처가 지금 공공연히 수사 대상 1호 윤석열 총장 이런 식의 이야기에 거명되는 것도 그렇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검찰개혁 지지 선언이 줄줄이 이어지는 시점이 윤 총장 징계위 시점인 것도 그렇고. 소위 촛불 정부라고 자신을 지칭하는 정부가, 자신의 적으로 인식하는 세력과 어떻게 힘싸움과 도덕싸움을 해서 그들을 굴복시킬 것인가라는 이야기가 검찰개혁 이야기의 본질 아니냐 싶은 거죠. 검찰개혁 지지 선언이라는 건 그 힘싸움과 도덕싸움에서 어느 쪽에 설 것인가의 문제이고 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검찰의 악행과 악한 역량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 인플레되기만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게 되겠죠. 힘싸움의 적에 대해 취할 수 있는 흔한 태도 중 하나니까요.

검찰개혁 지지 선언에 참여한 많은 분들이 2017년 이후 한동안 "대통령만 바뀌었다" 이런 말씀을 꽤 하셨을 겁니다. 올해 4월 이후로는 이제 "국회도 바뀌었다"라고는 하시겠죠. 여기에서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거죠. 대통령만 바뀌었다 혹은 국회도 바뀌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사람은 정작 대통령 말고 국회 말고 다른 것도 안 바뀌면 살기 어려운 사람이진 않을 것 같다고요. 아직도 대통령 말고 국회 말고 다른 것들을 잡고 있다는 세력보다 힘이 더 센지 덜 센지까지는 모른다 쳐 주더라도, 최소한 그 세력과 타이틀매치를 벌일 수 있을 만한 세력이라는 말이 될 거라고요. 대통령을 잡고 국회를 잡고 이렇게 되어서 비로소 타이틀매치를 벌일 수 있게 되었다가 아니라, 이미 그 전부터 타이틀매치를 벌일 만한 기득권을 갖고 있었을 거고 그랬기 때문에 대통령도 국회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왔지 않았을까 한다구요. 그러면 이 때,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검찰개혁이란 결국 또 하나의 타이틀매치 아닌가 하는 거죠.

그렇다면 다들 검찰개혁에는 동의할 것이다 혹은 검찰개혁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이 같이 가야 한다 이런 식으로 어쩌면 당연하게 들릴 수 있는 말들이 사실은 이런 의미가 되는 거 아닌가 싶은 거죠.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검찰개혁'이라는 타이틀매치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이 오픈카드로 끼어야 하고, 그렇게 끼면 타이틀매치의 승리가 오픈카드의 승리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이 있을 거다 이런 의미 말이지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입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고 하면, 그건 애시당초 타이틀매치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의 문제 아닌가 싶거든요. 그러면 이런 문제를 타이틀매치의 오픈카드라는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 적절하긴, 아니 더 나가서, 가능하긴 한 걸까요. 그런데도 적절하다고 혹은 가능하다고 어떻게 보면 믿어지게 된 것이 지금껏 이런 문제가 꼬여 온 큰 이유 중의 하나 아닌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을 바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 싶은 생각이 드는 거죠. 

여기에서 이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네요. 그러면 이제 저런 질문을 묻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검찰개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 수도 있겠다고요.

3.

P 목사님과 저 같은 사람들에게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가끔씩 에베소서 6장 12절을 이야기하고 싶을 겁니다. "우리의 싸움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와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표준새번역) 하늘에 있는 악한 영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데 왜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과 싸우면서 사회참여니 개혁이니 하고 있냐 뭐 이런 이야기 말이지요.

그런데 저는 언제부터인가 이 구절이 절대 그런 뜻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과 싸우지 말란 말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과 싸우는 것은 사실은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 싸우는 것이기도 하니 정신 단단히 차리고 본질을 꿰뚫어 보면서 싸워라 이런 구절이라는 생각이 들더란 말입니다.

검찰은 분명히 싸움의 대상이 되어야 할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제도적 개혁의 측면에서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그 싸움이 타이틀매치가 되어 버린다면, 글쎄요. 최소한 지금까지의 저의 생각은, 그렇게 되면 그건 '하늘에 있는 악한 영'과 제대로 싸우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같은, 정말로 '하늘', 땅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의 경험이 응축된 세계에 있는 '악한 영'들과 제대로 싸워야만 하는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라도, 검찰과의 싸움도 제대로 된 싸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코로나19의 대유행이 다시 시작되니 이웃들의 삶을 돌보기 위해서 P 목사님이 또다시 수고를 하실 시간이겠습니다. 주님 주시는 평안으로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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