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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마당] '양의 문'으로 나아오시오 (정용택)

목회마당

by 제3시대 2010. 1. 11. 18:44

본문

‘양의 문’으로 나아오시오.[각주:1]
―요한복음 10:7~13, 5:1~14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요한복음 10장의 현장 찾기

10:11나는 선한 목자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립니다. 12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떼를 흩어 버립니다. 13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8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다 도둑이고 강도입니다. 그래서 양들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10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입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습니다. 7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당신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양의 문’입니다. 9내가 그 문이니,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드나들면서 꼴을 얻을 것입니다.

불트만은 그의 『요한복음 주석』에서 요한복음 10장 1~5절은 6절로 마무리되는 비유(παροιμα)로서, 그 핵심은 목자와 강도 사이의 상반성이라고 말합니다. 즉 목자가 문으로 당당하게 양우리에 들어오는 데 반해 도둑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스스로를 목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 목자인 예수를 따르는 양들이란 다름 아닌 요한공동체 자신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서 말하는 비유는 정확히 1~5절을 가리키고, 여기서 강조점은 ‘그들이 이해하지 못했다’라는 표현에 있습니다. 청중들은 비유를 듣지만 이해하지 못하며, 그들의 몰이해는 예수로 하여금 7절부터 위의 이 단순한 비유를 확대하게 합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설명은 처음 이야기에 비해 조금 복잡합니다. 11절에서 18절에서는 분명 앞서 소개된 선한 목자의 모티브가 반복되면서 아버지와 아들, 선한 목자와 양 사이의 여러 관계가 표현되며 이 관계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예수의 희생이 제시됩니다. 한데 자세히 보니 7~10절이 뭔가 이상합니다. 7절․9절과 8절․10절이 아무리 봐도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8절과 10절은 앞서 1~5절의 목자 모티브의 연장선상에 있는 얘기로 보이지만, 7절과 9절은 갑자기 예수를 목자가 아닌 양의 문이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7절과 9절을 빼버리면 1절부터 19절까지의 문맥이 한결 자연스러워집니다. 예수 본인이 선한 목자인데, 당신보다 먼저 온 사람, 즉 합법적으로 문을 통해 양우리에 들어가지 않는 자들은 다 도둑이고 강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양들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고요.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이지만, 예수 당신께서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7절과 9절에서 분명 예수는 본인을 ‘양의 문’이라 주장하고, 자신이 그 문이니, 누구든지 자신을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드나들면서 꼴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목자와 문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일단 7절과 9절을 1~6절, 8, 10~18절보다 뒤에 놓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7절과 9절만 빼면, 10장 1~18절의 긴 비유적 담화는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선한 목자와 그가 이끄는 양떼에 관한 이야기가 됩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이 결국 8절과 10절, 그리고 11~13절에 담겨 있는데, 좀 더 자연스럽게 의미를 전달하고자 순서를 약간 바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의 맨 앞 성서본문표는 그렇게 제 나름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예수는 양떼를 이끌고 문을 통해 양우리로 들어가는 선한 목자인 동시에 한편으로, 그 목자와 양떼들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것. 목자인 동시에 문이라…! 대체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물론 언뜻 보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양떼들(=신자들)의 선한 목자(=구주)로서, 우리를 푸른 초장(=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분. 그리고 한편으로 구원의 문 그 자체이신 분. 즉 구원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이신 분. 이 두 메타포는 교회 강단에서 정통적인 기독론과 구원론 교리를 뒷받침하는 성서적 근거로 많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10장 1-18절까지의 본문을 조금 다른 컨텍스트에서 해석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고리타분한 교리적 언설이 아닌 당대 이스라엘의 종교문화적 맥락에서, 혹은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제기된 비판담론으로 읽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런 접근을 취하게 된 까닭은 일차적으로 본문이 지니고 있는 논쟁적 어투 때문입니다. 이 본문이 논쟁적이라 함은 예수가 자신을 목자 내지는 양의 문으로 정체화하는 것만큼이나, 다른 누군가를 도둑이나 강도로 혹은 삯꾼으로 강하게 비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예수 자신이 구원의 인도자나 구원의 통로라는 기독론 혹은 구원론적 교리를 설파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동시대적 어떤 현실을 문제 삼는 비판적/논쟁적 담화를 제기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합니다.

여기서 예수의 담화가 지닌 현실성의 문제를 살피기 위해서, 저는 문학비평에서 종종 사용되는 소설의 현실성 테제를 끌어들여 보고자 합니다. “소설이란 특정한 ‘세계’에서 특정한 ‘문제’를 설정하고 특정한 ‘해결’을 도모하는 서사전략이다”(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이와 유사하게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논쟁적 담화 역시 예수 당대와 요한공동체의 후대적 정황이 경험의 유사성 차원에서 합류하는 특정한 ‘세계의 시공간’을 무대로 하여(세계의 현실성), 그 세계 안의 인간들이 믿고 있었던 구원의 신화를 문제 삼고(문제의 현실성), 그 구원의 신화가 완강하게 구조화하고 있는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좌표 및 경계를 흔들면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했다(해결의 현실성)라고 보자는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요한복음 10장의 본문이 어떤 특정한 ‘세계’에서, 그 어떤 특정한 ‘문제’를 선택하여, 그 문제를 또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제출된 담화였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이 담화가 다루고 있는 세계의 현실로 가장 잘 어울리는 본문은 바로 이 곳입니다.

5:1그 뒤에 유대 사람의 명절이 되어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2예루살렘에 있는 ‘양문'(the sheep gate//προβατικῃ) 곁에, 히브리어로 베데스다(베드자다)라는 못이 있는데, 거기에는 행각이 다섯 있었다. 3이 행각 안에는 많은 환자들, 곧 눈먼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과 중풍병자들이 누워 있었다. [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4주님의 천사가 때때로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저어 놓는데 물이 움직인 뒤에 맨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에 걸렸든지 나았기 때문이다] 5거기에는 서른여덟 해가 된 병자 한 사람이 있었다. 6예수께서 누워 있는 그 사람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랜 세월을 그렇게 보내고 있는 것을 아시고는 물으셨다. “낫고 싶습니까?” 7그 병자가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들어서 못에다가 넣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가는 동안에, 남들이 나보다 먼저 못에 들어갑니다.” 8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당신의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시오.” 9그 사람은 곧 나아서,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갔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10그래서 유대인들은 병이 나은 사람에게 말하였다. “오늘은 안식일이니,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옳지 않소.” 11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나를 낫게 해주신 분이 나더러, ‘당신의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시오’ 하셨소.” 12유대인들이 물었다. “당신에게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요?” 13그런데 병 나은 사람은, 자기를 고쳐 주신 분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많이 붐비었고, 예수께서는 그 곳을 빠져나가셨기 때문이다. 14그 뒤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서 말씀하셨다. “보시오! 당신이 말끔히 나았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시오. 그리하여 더 나쁜 일이 당신에게 생기지 않도록 하시오.”

‘양문’의 세계: 예루살렘 북쪽 성문

제가 요한복음 5장을 요한복음 10장 담화가 배태(胚胎)된 현장으로 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이 본문에서 ‘양의 문’ 곧 ‘양문’이 처음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10장 7절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일러 ‘양의 문’이라고 하셨는데, 그 ‘양의 문’이 그저 단순히 양들이 드나드는 양우리의 문을 가리키는 것이었을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엔 너무 심심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외려 7~18절에서 반복적으로 쓰인 ‘도둑’(8, 10절), ‘강도’(8절), ‘목자’(11절), ‘삯꾼’, ‘이리’(12절), ‘다른 양들’, ‘한 목자’, ‘한 무리 양떼’(16절) 등의 단어들이 상징적 알레고리로서 예수운동에 대한 기억으로 소급되는 요한공동체의 정황을 역사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단어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근거하여, ‘양의 문’ 역시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있으리라 추정됩니다. 

10장 7절에 쓰인 ‘양의 문’이라고 하는 단어는 원어로는 ‘η θυρα των προβατων’ 인데요, 이 단어는 느헤미야서 3장 1절,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동료 제사장들과 함께 나서서, ‘양문(羊門//πυλην την προβατικην)’을 만들어 하나님께 바치고, 문짝을 제자리에 달았으며, ‘함메아 망대'와 ‘하나넬 망대'까지 성벽을 쌓아서 봉헌하였다”라고 하는 본문과, 12장 39절의 “‘에브라임 문' 위를 지나, ‘옛문'과 ‘어문'과 ‘하나넬 망대'와 ‘함메아 망대'를 지나서, ‘양문(羊門//πυλην την προβατικη)’에까지 이르러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에서 멈추었다”라고 하는 본문에서 쓰인 그 ‘양의 문’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킵니다.

적어도 유대인이라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양문’이란 표현을 듣자마자 즉각 떠올리는 것이 목장의 양우리에 달린 출입문이 아니라, 고유명사로서 예루살렘 성전 북쪽에 위치한, 즉 예루살렘성 안으로 들어오는 진입로 역할을 하던 세 가지 동물 이름을 한 문들, 즉 어문(느3:3, 느12:39, 습1:10), 말문(렘31:40) 이외에 또다른 문이었던 ‘양문’이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이 B.C.E 586년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파괴되었다가, 이후 근 150년 만인 B.C.E 444년 제3차 귀환한 느헤미야의 주도로 52일 걸려 재건됩니다. 그런데 그 성벽 재건시 가장 먼저 건축된 것이 바로 양문이었습니다(느3:1). 느헤미야서를 잘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이스라엘의 각 지파별로 나누어 성문들을 수축하고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게 또 이 양문입니다. 양문에서 시작해서 양문에서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한 국가의 수도의 성벽이란 정치․군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갖습니다. 재건된 성벽은 다윗 시대의 예루살렘 성벽 보다 확장된 것으로서 특히 12문을 만들어 이스라엘 12지파의 재단결을 상징한 점이 특징적입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그 형제들, 제사장들이 함께 이 양문을 달았다고 하는 사실은, 이제 왕도 예언자도 부재하는 시대가 도래함과 더불어 이미 부정해 질대로 부정해진 유대사회의 회복을 위해 제사장들이 헤게모니를 쥐게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예루살렘은 종말론적으로 택한 자들의 도성(계 21:10)을 상징하기도 하는 바, 이 성벽은 종교적으로 정결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즉 포로로 끌려갔다 귀환한 자들과 그렇지 않고 본토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의 경계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바로 그 경계선의 역할을 하는 성벽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있어 먼저 지어졌고 또 성전으로 출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 이 양문이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이 양문이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본문이 딱 한 군데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 5장 2절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양의 문' 곁에, 히브리어로 베데스다(베드자다)라는 못이 있는데, 거기에는 행각이 다섯 있었다.” 특이하게도 이 본문에서는 ‘양의 문’이 느헤미야서나 요한복음 10장에서와 달리 προβατικῃ(원형은 προβατικο)라고 하는 고유명사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 단어는 πρό βά των(양)의 파생어로서 10장 7절의 θύρα των πρό βά των(양의 문)이나 느헤미야서의 πυλην την προβατικην(양의 문)을 한 단어로 축약한 형태입니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양문은 다른 문들과 달리 자물쇠가 없었다고 합니다. 24시간 열려있었던 것입니다. 양이나 소와 같은 희생제의용 가축들이 들어가는 문으로서,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는 성문 가운데는 평민이나 병자와 가난한 자들은 들어갈 수 없고, 다만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 같은 특권층들만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문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이 문으로 성 안에 들어가려면 성전세금을 내고 들어가야만 했기 때문에, 결국 출입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여 가난하고 병든 이들은 자연스럽게 가축이 드나들던 양문으로 드나들게 된 것입니다.

어차피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이방인의 뜰이라 불리었던 성전 광장에서 희생제물용 가축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돈이 있는 자들은 굳이 고향에서부터 희생제물을 준비하여 예루살렘까지 상경할 필요가 없었고, 또한 양문으로 그 가축들과 함께 들어올 일이 없었던 것이지요. 예수 당시에 장사꾼들이 그 양문으로 가축들을 들여왔고, 성전 제의에 참여할 순례객들은 성전의 다른 문을 통해 들어와서 그것을 나중에 구입하기만 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의용 가축판매를 독점하고 있던 이들이 대제사장 가문이었고, 특히 예수 시대에는 대제사장 안나스 가문이 이를 관장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제물 거래, 환전, 기부금, 십일조, 토지 수입, 성전세 수입 등에서 유입되는 자금으로 오늘날의 은행 역할을 했습니다. 말 그대로 돈을 내고 구원(속죄)을 구입하는 종교시장이었던 셈입니다. 물론 이 종교시장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성전세라든가 가축을 살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만 했기에, 이곳에서 거래되는 구원은 결코 무상(無償) 구원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처형을 결정지은 사건이 소위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던” 사건이라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한 것입니다(막11:15).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셨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막13:2).

‘양문’의 문제: 성전과 베데스다를 만드는 경계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바로 이 성전체제로부터 배제되어 성전 밖에서, 그것도 가축들이 드나들던 양문으로 가셔서, 그 앞에 형성된 또 다른 구원체제, 곧 가난한 자들의 구원체제와 마주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것은 베데스다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미신적인 구원체제였습니다. 그나마 이 미신적인 구원체제는 성전에서 거래되던 구원처럼 돈이 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는 보도처럼, 구원의 시행 횟수가 너무 적고 또한 예측불가능할 정도로 불안정한 것이 문제였지요. 오죽했으면 그곳에는 38년째 오매불망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성전 안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날마다 (유료) 공적 희생제사가 바쳐졌고, 특히 이 본문에서처럼 유월절 같은 명절 축제기간 동안에는 매일 수소 2마리와 숫양 1마리와 새끼양 7마리가 번제물로 바쳐졌으며, 숫염소 1마리가 속제제물로 드려지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당시 이 양문 바로 옆에는 베데스다라고 하는 연못이 있었는데, 히브리어의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House of Mercy)이라는 뜻이었고, 이 못을 가리켜 양의 못이라고도 불렀답니다. 이 연못은 본래 기원전 2세기 시몬이 대제사장으로 있던 때에 세워진 길이 100~110m, 너비 62~80m, 그리고 깊이 7~8m의 두 개의 쌍둥이 연못으로서 성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점차 유대인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올 때에 희생양으로 가지고 온 양을 씻는 목적으로 활용되면서, 양의 못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먼 길을 오는 동안 더럽혀진 양과 자기의 몸을 깨끗하게 씻고, 제사장에게 흠이 없음을 검사받은 연후에야 성전으로 가지고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거룩한 풍경도 예수님 시대로 넘어오면 거의 사라졌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성전 안에 성전세를 내고 들어가면 이미 장사꾼들이 잘 기른 제의용 가축들을 팔고 있었으니까요.

희생양을 씻기던 기능이 없어진 대신에 이곳에서 씻으면 치료의 효과가 있다는 믿음이 퍼지면서, 불치병에 걸린 환자들이 늘 집합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 물의 성분 중에 뭔가가 있긴 했나 봅니다. 몇 번의 치유 사례가 회자되더니 급기야 그곳을 둘러싼 신화적 전설이 조금씩 만들어졌던 것이겠지요. 천사가 내려오는 곳이라는 식의 말이죠. 성전에서 작동하고 있는 정상적인 구원의 시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자들, 가난하여 병든 자들, 혹은 병들어 가난한 자들은 그 구원체제 밖에서 자신들만의 하위리그를 만들어 그곳에서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38년 된 이 병자는 하위리그에서도 가장 경쟁력이 없었던 사람일 것입니다. 배제된 자들 가운데서 또 배제된 것이지요.

결국 이렇게 양문을 경계로 하여 베데스다와 성전이 나뉘어져 있고, 그 각각의 장소에서 서로 다른 구원의 신화가 작동합니다. 양문 이쪽 편 성전에서는 돈을 주고 산 희생제물로 정결함과 죄사함을 획득하는 가진 자들의 구원이 거래되고 있고, 양문의 저쪽 편 베데스다에서는 천사가 내려와 물을 휘저어 주길 바라는, 더 정확히 말하면 물이 움직인 후에 자신들을 그곳까지 옮겨줄 자비로운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들의 구원신화가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이 둘은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평화롭게 잘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죄책감과 죄사함이 일반화된 등가 원리에 따라 실물로 교환거래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삶 전체가 걸려 있는 고통과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기적/자비가 역시 등가 원리로 교환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여 성전에서 생산되는 구원이 구매자와 판매자(대제사장), 브로커(장사꾼) 모두를 만족시키며 연일 판매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면, 베데스다에서 생산되기로 한 구원은 실제 거래가 성사되는 일이 거의 없어 재고만 누적되고 있었습니다. 본문에서처럼 그곳의 다섯 행각엔 수많은 병자들이 대기하며, 물이 움직인 뒤에 못에 들어가는 최초의 1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눈치경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희망마저 없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었기에, 그나마 그것이 그들을 버티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사실 돈이 없고 병이 들어 성전에 들어올 수 없는 이들이 그들만의 구원의 체제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을 성전 안에 있는 사람들도 내심 반겼을지 모릅니다. 그들이 성전 체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처지에 적응하여 그에 맞는 적절한 구원의 체제를 이루어 양문 안으로 침범해 들어오지 않고 자기들끼리 잘 살아가는 것이 성전 안 사람들에게는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혹여나 베데스다 사람들의 그 순진무구한 믿음대로 정말 천사가 내려와 물을 휘저어 놓는 일이 일어나면, 그때 한번 가서 아무나 한 사람만 물 안에 넣어주면 자신들의 자비로움이 입증되는 것이니 그보다 좋은 일은 없는 것이죠. 사실 이 점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 베데스다의 세계는 자신들의 자비로움을 보증해줄 수 있는 수혜와 봉사의 체제였으니까요.

‘양문’의 해결: ‘양문’을 지나, 무한한 교류의 공간으로

바로 그렇게 양문을 경계로 하여 나뉘어 있던 두 구원체제의 현장을 예수님은 일부러 찾아가셔서, 38년 동안 구원을 갈망해온 한 병자를 오래 동안 유심히 관찰하시다가 그에게 비로소 말을 건넨 것입니다. 예수님과 대화 후에 그는 분명히 치유되었습니다. 어떻게 치유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치유된 후에, ‘성전에서’ 예수와 다시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치유되자마자 성전에 들어갔던 것 같고, 거기서 유대인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그가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일을 갖고 시비를 걸자, 예수가 자신에게 한 말을 전한 것입니다. 그가 성전으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한 문은 당연히 지난 38년 동안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그 양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도 이제 병자가 아니기에 성전에 들어가는 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꿈에도 그리던 성전을 보러 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전 안에 있던 유대인들은 그가 치유를 받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안식일을 어겼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었지요. 어쩌면 그들은 양문을 경계로 하여 공고하게 나누어져 있던 두 세계가 교란된 사실에 분노했던 것일지 모릅니다. 안식일 규정은 핑계일 뿐 그들은 양문을 통과하여 성전 밖의 세계에서 성전 안의 세계로 넘어온 그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안식일의 규정을 노골적으로 거부할 뿐 아니라, 그 거부의 근거를 자신과 아버지의 동등함에서 찾았습니다. 자기와 함께 일하시는 아버지께서 이 두 세계의 분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요한복음 10장의 담화를 이 상황으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양문으로서, 양문 밖에 있던 38년 된 병자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어주셨습니다. 물론 그가 가야할 새로운 세계는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성전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는 또 다른 범죄의 혐의였으니까요. 결국 그가 가야할 세계는 성전이 아닌 다른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를 다시 만났을 때 했던 말씀, “보시오! 당신이 말끔히 나았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시오. 그리하여 더 나쁜 일이 당신에게 생기지 않도록 하시오”는 그로 하여금 다시금 죄를 짓고 그 죄를 사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가는 생활을 반복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구원을 얻고, 드나들면서 꼴을 얻을” 새로운 세계는 베데스다도 성전도 아닌, 전혀 다른 제3의 세계입니다.

한편, 성전 안에 있던 자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이 양문이라는 말씀은 그들도 양문을 통과해서 즉 희생제물을 직접 준비하고 베데스다에서 스스로를 정결하게 한 후에 성전으로 다시 들어가라는 말씀이자, 양문 밖으로 나와서 자신들이 외면하고 있는 그 세계를 대면하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베데스다의 고통과 눈물을 제물삼아 유지되고 있는 성전의 체제로부터 나와서 자기들이 의도적으로 망각하고 있는 그 참담한 구원현장을 보라는 것이지요.

결국 양문은 두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사이의 공간인 것입니다. 이 사이의 공간에서는 더 이상 양문의 안도 밖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양문을 경계로 하여 이쪽과 저쪽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각각의 교환체계가 모두 무너지는 그런 장소인 것입니다. 조금 어렵게 말하자면 성전의 제의종교/국가종교/시민종교/시장종교와 베데스다의 주술적 민간종교, 이 양자의 영역을 분할하던 경계선 역할을 했던 양문이 이제 두 세계 각각에 대한 외부성으로 도입되어 그 경계를 허무는 교류의 공간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베데스다와 성전의 세계가 따로 존재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예수운동이 당대 사회에서 수행한 것은 바로 이 양문의 운동이었습니다. 두 세계 각각에 외부성 혹은 근본적 반성의 기제로 작용하여 닫혀 있던 각 세계의 벽을 허물고 경계 자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말 그대로 무한한 광장의 공간을 (탈)구축해나간 새로운 종교적․사회적 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로 그 양문으로 자신들의 양떼와 함께 걸어간 선한 목자이셨습니다. 오늘 그 선한 목자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따라 양문으로 나아오라고 명령하십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지난 2009년 8월에 한숨결교회에서 설교한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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