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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마당] 풋내기 목사가 준비하는 하늘뜻펴기 - 살아계신 예수를 따라 (한문덕)

목회마당

by 제3시대 2010. 2. 1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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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목사의 좌충우돌 실수투성 목회이야기 - 두번째

풋내기 목사가 준비하는 하늘뜻펴기
- 살아계신 예수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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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덕
(향린교회 부목사)

제가 시무하는 교회에서는 설교를 “하늘뜻펴기”라고 합니다. “설교”라는 한자어를 순우리말로 풀어서 써 본 것이지요. 세간에서는 “잔소리하지 말라”는 의미로 “설교하지 마라”라고들 합니다. 설교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들어있지요. 그러나 목사인 저는 하늘뜻펴기를 할 때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땅에 두 발 딛고 사는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인 제가 어떻게 감히 하늘뜻을 펼칠 수 있을까요? 제 입을 통해서 나오는 문장을 어떻게 무한의 깊이를 지닌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목사가 설교를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다만 제가 떠드는 말이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도록 성령님께서 역사해 주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굳이 해석학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청중은 설교자의 말씀을 자신의 상황에 따라 새롭게 그리고 자유롭게 듣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석의 자율성! 저는 이것이 하느님이 설교자들에게 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으면서 저는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하늘뜻펴기 준비를 합니다. 기도를 하고, 하늘말씀(성서)을 곱씹어 읽고, 주석도 찾아보고, 성서가 담고 있는 세계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도 생각해 보고 더불어 그런 맥락에서 성서가 하는 이야기가 오늘 우리가 처한, 특별히 저의 경우는 제가 시무하는 교회의 교인들이 처한 상황에서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모든 일상의 사건이 하늘뜻펴기의 소재와 의미가 되고, 제 머리 속에서 그 의미들이 이렇게 저렇게 얽혀지면서 얼개를 잡아갑니다. 칠흙 같은 어둠을 만난 듯, 복잡한 세계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는 이에게 저의 하늘뜻펴기가 한걸음 내딛게 하는 용기를 줄 수 있을지, 희미하나마 빛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노심초사 하며 한 문장 한 문장 써내려 갑니다. 궁극적으로 제가 하는 말이 감히 하늘의 뜻이라고 할 만한 것인지 고민고민하며 찾아 들어갑니다. 가까스로 설교 한편이 완성되면 읽고 또 읽으면서 고치고 잘라내고 꿰매기를 또 수십 번 합니다. 마지막 교정이 끝나면 미리 시연을 해 봅니다. 하늘뜻은 입에서 나오는 소리로 상대의 귀에 들려야 하니까요. 문어체이거나 어려운 단어는 다시 바꿉니다. 

하늘뜻이 제대로만 펼쳐진다면 아마도 청중의 삶 즉 교인의 삶에 변화가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귀에 들려진 말씀이 가슴을 때리고 그것이 손과 발까지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지요. 한 숟가락에 배부르지 않겠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것을 모르듯이 어느새 하느님의 뜻을 새기는 사람들이 되어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설교라면 저 또한 그 말씀으로 삶을 다잡으며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믿음으로 저는 지난 2월부터 3월까지 5편의 하늘뜻펴기를 하였습니다. 제가 시무하는 교회는 담임목사나 부목사나 6년의 시무를 하면 1년의 안식년을 갖는데 담임목사의 안식년이 되어 부목사 둘이 나눠 설교를 하게 된 것입니다. 지난 번 이야기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당시 목사가 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풋내기 목사였고, 이런 상황에서 연속으로 5편의 설교를 해야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지만 “하느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무식한 용감함으로 하늘뜻펴기를 준비하였습니다. 이 중 4편의 하늘뜻펴기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4편을 연재하는 이유는 제가 4복음서와 저희교회의 4가지 창립정신을 연결시켜서 설교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늘뜻펴기에서 제가 시무하는 교회의 이름이 그대로 나오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하늘뜻펴기는 분명히 구체적인 현장에서 전해지는 것이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현재의 담임목사는 3대째 목사이고 그의 첫 임기 6년을 마친 상태였기에 저는 부목사로서 다시 한 번 교회의 창립정신을 되돌아봄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4복음서를 택한 이유는 거기에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의 삶과 그의 가르침이 녹아 있으며, 그와 함께 하느님 나라 운동의 주역이었던 처음 제자들, 곧 우리들에게 복음을 전해 준 증인들의 생생한 증언이 녹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서의 성립과정을 공부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복음서는 예수를 주로 믿은 공동체들의 삶의 현장에서 고백된 고백의 언어들이기에 오늘 한국 사회를 사는 우리들의 신앙고백과 함께 비교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앞 이야기가 너무 길었네요. 그럼 첫 번째 하늘뜻펴기를 적습니다. 4편의 하늘뜻펴기 연재가 끝마칠 무렵, 다양한 해석과 비판과 논의가 오고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한번 제가 시무하는 교회의 이야기가 날 것 그대로 들어가 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향린의 창립정신과 복음서(1)
살아계신 예수를 따라
미가 6, 6- 8 ; 마태복음 25, 31- 46

 참으로 어려운 시절 흔들리지 않고 의연한 자태를 보여준 자가 있다면, 자기를 베고 찍고 상처를 내는 자들을 향해서도 향기를 발하는 향나무에서 무언의 교훈을 배울 수 있었던 자가 있다면, 한평생 그 사람을 따르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일 것입니다. 복음서들은 바로 그러한 한 사람을 잊을 수 없어서 쓰인 문서입니다. 저는 오늘부터 4주 동안 복음서를 본문으로 연속 하늘뜻펴기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에 관한 글을 썼지만(루가 1:1) 우리가 가진 성서에는 4개의 복음서가 있고, 각각의 복음서는 그 복음서를 쓴 저자가 속한 공동체의 상황에 따라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다른 네 복음서를 텍스트로 하면서 동시에 향린신앙공동체가 처음 세워졌을 때의 4개의 창립정신도 더불어 살피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첫 교회들의 모습과 56년 전 향린의 초기 모습을 회상함으로써 우리의 오늘을 새롭게 하고 나아가 내일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마태오 복음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마태오 복음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1세기 후반 유대의 역사를 조금 알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복음서들을 기록한 이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것은 66년부터 72년까지 진행된 유대-로마 전쟁입니다. 유대-로마전쟁은 전쟁의 참혹성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70년에는 로마군에 의해 거룩한 하느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역사가 타키투스에 의하면 예루살렘 공방전에서 60만이 죽었다고 하고, 요세푸스에 의하면 110만이 죽었다고 합니다. 로마군은 예루살렘 성전을 공략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 주위에 반-영구적인 진지를 구축하여 성 높이만큼의 벽을 쌓아 성전을 나와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잡아 십자가에 매달았고, 전쟁이 마무리 될 때쯤 예루살렘 주위는 만 개의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서는 과격파 유대인들이 결사항전의 의지를 높이기 위해 모든 식량을 쌓아놓고 불을 질러버려서 예루살렘 거주민들과 군인들이 굶어 죽었으며, 성전을 약탈한 로마군은 도망가는 유대인들을 진압하기 위해 정규군만 6만 명에 이르는 대군을 투입했습니다. 이 로마 군대는 진압작전을 펴면서 수만 명의 식민지 청년들을 징발했으며 이들은 로마군을 따라 무자비한 학살자 대열에 끼어야 했습니다. 같은 동족을 죽여야 했던 유대인들은 유대-로마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정신은 파괴되었고, 온갖 병과 전쟁의 충격에 의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대로마 항전에 실패하고 잿더미가 된 유대사회를 복구하기 위해 바리새파 계열의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얌니야에 율법학교를 세우고 유대인의 단결을 외쳤습니다. 그는 온건파로 전쟁에 반대했던 인물이었으나 2대 수장이 되었던 가말리엘 2세는 전쟁에 가담했던 행동파 바리사이 랍비 출신으로, 전임자보다 훨씬 공격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엄격한 율법규정을 적용하여 모든 유대공동체의 신앙의 표준을 세우고, 이 가르침과 실천에 순응하지 않는 모든 집단을 구별해 내어 추방하고 잡아다 매질하였습니다. 이 때 18개조의 기도문이 만들어 지는데, 이 기도문의 제12조에는 예수를 따르던 회당 내의 사람들인 ‘나자렛 도당에 대한 저주’가 실려 있었고, 랍비적 바리새파의 숙청작업의 표적이 된 대상은 바로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었습니다. 

마태공동체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도 예수를 따르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만난 예수에게서 전혀 다른 지도자의 이미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줄파산이 나든 줄도산이 나든 말든 오히려 백성에게 김석기 시대의 물대포를 쏘아 대면서 자신은 한가로이 유인촌이라는 동네에 놀러가 어청수를 끼고 BBK 치킨과 ‘소망교’회를 안주로 배불리면서 ‘주가폭’락이라는 락음악이나 즐기는 명박도의 왕과 귀족들[각주:1]이 아니라, 애굽 왕이 히브리 어린이들을 죽이듯이 로마의 주구가 되어 자기 백성을 학살하는 헤롯 정권이 아니라 오히려 연약함을 짊어지는 새로운 왕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백성들의 멍에를 함께 메어주어 백성들의 짐을 가볍게 해주고 백성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왕이었습니다(11:30). 그는 다투지도 않고 큰 소리를 내지도 않습니다. 그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며,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습니다(12:17-21). 그는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이방인의 갈릴래아로부터 하느님 나라의 운동을 시작합니다(4:12-17). 그래서 어둠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게 되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며(4:16), 이방인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겁니다(12:21). 당시의 모든 왕은 군마를 타고 입성하지만 예수 메시아는 나귀와 나귀새끼를 타고 겸손하게 들어옵니다(21:5).[각주:2] 그래서 그는 하느님이 택한, 하느님 마음에 꼭 드는 왕이었습니다. 하느님이 보내신 왕은 전쟁으로 땅을 빼앗는 이가 아닙니다.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5:5)라고 말하며, 전쟁을 일으키는 로마의 군주들이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하느님의 아들딸이라고(5:9) 말하는 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를 따랐기 때문에 로마의 핍박을 받은 것은 물론 같은 유대인 동족에게 끌려가 어떤 이는 매를 맞아 죽었고, 어떤 이는 집안 재산을 빼앗겼습니다. 한 마을에 같이 살던 유대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해야 했고, 어떤 이는 고문을 견디다 못해 동료를 밀고해야 했습니다. 때론 밀고하고도 함께 추방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서로 배신감에 분노하였고, 또 배신한 자신을 저주해야 했습니다. 온 동족을 학살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로마의 거대한 폭력, 또한 같은 동족에게도 수용되지 못하고 오히려 핍박을 받은 마태공동체는 무엇보다도 안팎으로 가득한 전쟁의 흔적과 폭력의 잔재들을 없애야 했습니다. 원수를 향한 분노를 삭일 수 없었던 공동체, 그러나 복수할 대상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복수는 꿈조차 꿀 수 없었던 공동체가 마태공동체였습니다. 마음속에 가득한 분노가 표출되지 못하면 그것은 곧 자기 안에 생채기를 내거나 자기보다 더 약한 이에게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직장이나 사회에서 상처받은 가부장은 아내에게 폭력을 행하고, 남편의 가정폭력의 희생자인 아내는 다시 자녀를 때리고, 그 자녀는 학교에 가서 이른 바 ‘왕따’를 괴롭히는 폭력의 먹이사슬이 이어지게 됩니다.

마태오 공동체는 로마가 제공한 폭력의 먹이사슬에서 마지막희생양이 되었던 예수의 죽음을 기억했기에, 자신들이 그 폭력의 사슬을 끊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폭력을 넘어서는 엄청난 윤리적 힘을 자신들의 자아 정체성으로 삼고 견고한 자아구축을 시도합니다.

“겸손한 사람[각주:3]은 행복합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5:3).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법정에 넘겨질 것입니다. 또 자기 형제더러 미친 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예배하러 갈 때[각주:4] 당신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교회에 가기 전에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예배를 드리십시오”(5:22-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고 하신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앙갚음 하지 마십시오.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십시오.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가 주십시오.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마십시오. 원수마저도 사랑하고 당신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5:38-42, 44).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5:10).

이들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정도의 놀라운 도덕적 가치를 지켜 낼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이 늘 자신들의 곁에 계시다는 임마누엘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서의 처음을 장식하는 예수 탄생이 임마누엘의 약속의 성취로 시작되고(1:23), 예수의 마지막 명령이 임마누엘의 약속으로 끝이 납니다.(28:20)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공동체는 미가야 예언자가 외친대로 날마다 정의를 실천하고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겠다고 매 순간 다짐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태오 본문에 의하면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 끝 날의 마지막 심판의 자리에 왕으로 오시는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25:40)
“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25:45) 

곧 우리 곁에 있던 보잘 것 없던 그 사람이 우리와 늘 함께 계셨던 하느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은 보잘 것 있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굶주리게 됩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은 강한 자만이, 원래 가진 것이 많았던 자들만이 살아남는 세상에서 헐벗고 병들기 쉽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은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가 되어 길바닥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정당한 항의라도 하려고 하면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들은 민주시민이 아니라면서 감옥에다 집어 넣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누가 보잘 것 없습니까? 어린아이들의 창의적인 생각은 어린 녀석이 뭘 아냐면서 보잘 것 없다고 여겨집니다. 생명 살리는 가사노동은 돈이 되는 직장의 노동보다 보잘 것 없다고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머리 쓰는 일보다 몸으로 하는 일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몸으로 일하는 사람도 역시 보잘 것 없는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존재처럼 대우를 받습니다.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활개 치는 변화무쌍한 세상에서는 역사의 모진 풍상을 겪은 어르신들의 경험이 무시되기도 합니다. 또 가끔은 자기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 보잘 것 없음에서 오히려 하느님을 발견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에게 한 것이 바로 하느님께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태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가장 화려한 문명의 제국인 로마의 폭력과 그 폭력에 희생된 한 유대 청년의 작은 삶을 통해 바로 모든 폭력과 모든 억압이 바로 더 뛰어난 것, 더 강한 것, 더 효율적인 것,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것에서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온 물을 흐려놓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아흔아홉마리의 양을 위해서 한 마리의 양을 포기하는 것 또한 공동체가 해서는 안 될 일임을 알고 있었습니다(18:10-14). 그래서 두 세 사람만 모여도 예수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고(18:19-20), 공동체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용서를 빌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21-22). 제국의 폭력이 자신에게 전염되었을 것을 염려하여, 가장 무력한 존재인 어린아이를 받아들여 늘 자신을 낮추는 연습을 하였고(18:1-5), 보고(눈) 만지고(손) 걸어가는(발) 모든 행동이 누군가에게 악으로 작용할까봐 노심초사 하였습니다(18:6-9). 일상의 삶에서 녹아나는 진실과 정의를 실행하기 위해 겉으로는 옳은 척하고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찬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들보다 더 철저한 자기수행을 하였습니다(5:20, 48-6:4). 

참으로 어려운 시절 흔들리지 않고 의연한 자태를 보여준 자가 있다면, 자기를 베고 찍고 상처를 내는 자들을 향해서도 향기를 발하는 향나무에서 무언의 교훈을 배울 수 있었던 자가 있다면, 한평생 그 사람을 따르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일 것입니다. 마태공동체는 자신의 주변에 언제나 함께 있었던 가장 보잘 것 없는 자들 속에서 하느님을 봄으로써, 그들을 품어 안는 공동체를 만듦으로써, 참으로 어려운 시절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큰물에 요동하지 않는 자태를 보여주었습니다.

 향린이 처음 세워 질 때, 이 땅 곳곳에는 식민지의 기억이 아로새겨져 있었고, 온 산하는 참혹한 전쟁 소리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를 세운 이들은 하느님의 나라의 방주인 교회를 통해 자신들과 이웃이 구원받으리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안병무 선생님의 말씀을 잠시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도 만일 그대로 있다가는 남을 구하기는 고사하고 자신들이 그 사태에 휘몰려 갈 것 같았습니다. 우선 우리가 탈 방주, 그리고 우리와 인연이 된 이들을 건질 방주를 만들자! 그리고 남은 무리들에게도 이것을 권해서.... 절망한 저 무리들에게 살 수 있는 산 모델로서 보여야겠다. 우리 교회는 남을 위하기 전에 스스로 살고 싶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산다는 일은 이웃을 사랑하여 구한다는 일과 유리될 수는 없었습니다.”[각주:5]

남을 살리기 전에 스스로 살고 싶어 세운 향린공동체는 폐허가 된 삼천리 반도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산 모델이 되기 위해 공동체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하루를 새벽기도회로 열고 저녁에도 성서공부 시간을 갖은 것은 삶 전체와 연결되는 신앙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내내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까맣게 잊고 살다가, 기도와 명상 등 영성생활에는 등한하다가 주일날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마는 것은 무력한 신앙으로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공동체 생활이라는 창립정신을 세운 것은 삶 전체가 하느님의 뜻 가운데서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입니다.

향린이 태어난 1950년대부터 매 십년 단위로 각 년대를 대표하는 단어를 떠올리라고 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를까요? 1950년대는 물론 한국전쟁일 것입니다. 1960년대는 4․19와 5․16, 1970년대는 유신헌법, 1980년 광주민중항쟁, 1990년대는 IMF, 2000년대는 촛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전쟁으로 시작해서 잠깐 민주화의 바람이 불 것 같다가 군인들의 폭압정치에 이어, 군인에 의한 국민학살, 급기야 경제혼란과 촛불 정국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도 폭력의 흔적과 죽음과 억울한 원성의 소리가 이어지는 역사를 지내왔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삶의 신앙은 향린교회로 하여금 그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현장의 목소리로 울려 왔습니다. 향린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나서 60-70년대 독재에 맞서 싸웠고, 80-90년에는 민주화와 민족분단의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였으며, 2000년에 들어서는 사회의 약자들과 억울한 죽음, 가진 자들의 횡포에 맞서서 촛불을 드는데 앞장 서 왔습니다. 이만 하면 잘 해왔다라고 나름 자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늘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뛰어오르려 하고, 건널 수 없는 강에 몸을 던지려 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을 꿈꿉니다. 한순간 자만하고 안주하면 이런 꿈이 탐욕과 욕망으로 물들 수 있지만, 얼을 올곧게 하고 정신을 차리면 이런 꿈이 탐욕과 욕망을 넘어 하느님 나라의 이상을 이 땅에 이루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더욱 더 우리를 단련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가 주일만 잠깐 교회에 왔다가 돌아가는 교인(Church goer)은 아닌지, 우리 안에 세상에서 물들어온 경쟁과 폭력의 잔재는 없는지, 혹시 형제자매에 대해 껄끄러운 마음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서 하느님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닌 지, 어린이/청소년 교우에게 향린의 신앙을 잘 전수하고 있는지, 일상의 삶에서 신앙의 향기가 계속 피어나는지, 불의를 보고 과감하게 나갈 힘이 남아 있는지,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신속하게 옮기고 있는지, 매일 기도와 성서읽기를 통해 내공을 쌓고 있는지,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단련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연기로 온 국민에게 사랑을 받는 김연아 선수의 감각만큼이나 살아 계신 예수를 따라 가는 우리의 감수성이 발달해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퇴계 이황은 지인(知人)들에게 보낸 편지글 22편을 뽑아 “자기를 살핀다”라는 제목의 책 <자성록>을 쓰는데 그 서문의 첫 구절에 논어를 인용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옛 사람이 말을 적게 한 것은 몸이 따라가지 못함을 부끄러워해서이다. 지금 친구들과 학문을 강구하느라 서신을 서로 나누면서 어쩔 수 없이 말을 하였지만 그래도 그 부끄러움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겠다. 더구나 이미 말한 뒤에 저 사람은 잊지 않았는데, 내가 잊은 것이 있는가 하면 저편과 내가 다 잊은 것이 있으니, 이것은 부끄러울 뿐 아니라 거의 기탄(忌憚) 없음이 되는 것으로서 두렵기 그지없다.”

저 또한 오늘 설교가 끝나고 여러분은 제 설교를 잊지 않았는데 제가 설교내용을 잊을까 두렵고, 여러분도 잊어버리고, 저도 잊어버리고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될까 더욱 걱정입니다. 설교가 저를 비롯하여 여러분의 믿음을 성숙시키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실 많은 고민이 됩니다. 이제 서 말이나 있는 구슬을 꿰는 일은 여러분에게 맡겨졌고, 진정한 예배는 예배실 밖으로 나가면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언젠가 신영복 선생은 이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는 것, 그리고 가슴에서 발로 가는 여행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한국교회는 머리의 깨달음조차 없지요. 머리로 깨달으려 하면 신앙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윽박을 질러대는 목회자로 가득하니까요. 하지만 최소한 향린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 묻고 싶습니다. 이미 많은 깨달음이 있는 향린의 식구들은 조심스레 하느님과 살아가기 위해 가장 먼 여행의 어디 쯤 가시고 계시는지요?

마지막으로 마태 공동체의 조언을 들으며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며 무슨 상을 받겠느냐? 이명박 정권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수구꼴통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파송사

평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살아계신 예수를 따라 가십시오.
 한 사람의 종교인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한 사람의 참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십시오.
성서의 밑줄을 그은 다음 이제 생활에 밑줄을 그으시오.
세상에 물들지 말고 세상을 변혁하십시오.


ⓒ 웹진 <제3시대>


  1. 이명박 정부를 빗댄 어느 블로거의 글에서. [본문으로]
  2. 21세기에 예수님이 오셔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면 아마 ‘에쿠스’ 대신 지금은 없지만 ‘포니’를 타고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에쿠스’는 ‘개선장군의 말’이라는 뜻의 라틴어이고, ‘포니’는 ‘작은 조랑말’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으로]
  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겸손하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4. 원문은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이지만 현재의 맥락에 맡도록 고쳤다. [본문으로]
  5. 향린 40년사 74. 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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