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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동정'과 '이익'의 관점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보는 용기 (도홍찬)

시평

by 제3시대 2010. 8. 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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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과 '이익'의 관점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보는 용기


도홍찬
(중학교 교사)

 
일본 소설가 아쿠타가와의 단편소설 <코>에 한 스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코가 너무 길어서 고민이었던 스님은 코를 작게 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서 어떤 각도로 보이면 코가 작게 보이는지 연구를 하기도 하고, 민간요법으로 만든 약을 먹어보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시도를 남몰래 하였지만 결국 코는 작아지지 않습니다. 스승의 말 못하는 고민을 눈치 챈 한 제자가 멀리서 코를 짧게 하는 비법을 배워오자 스님은 처음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가, 넌지시 자신한테 그 비법을 실험하게 합니다. 이 비법이 성공해서 스님의 코는 짧아졌습니다. 스님은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눈치가 이상해졌음을 직감합니다.

코가 길었을 때에도 수군거린다고 느꼈지만, 막상 코가 짧아지자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더 심해졌다고 스님은 생각합니다. 스님은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나름대로 자신만의 설명을 합니다. 곧 사람들은 타인이 불행에 빠지면 동정심을 가지지만, 그 불행을 극복하면 오히려 허전함을 느끼며, 더 나아가 다시 그러한 불행에 빠지기를 원하는 이중적인 심보를 가지고 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스님은 이것을 ‘방관자의 이기주의’라고 명명합니다.

물론 스님의 이러한 해석은 부분적으로만 정당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비웃은 것은 방관자의 이기주의라기보다는 스님의 위선적인 태도 때문일 것입니다. 도를 닦는 사람으로서 외모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면서, 결국 외모 때문에 온갖 해프닝을 일삼는 스님에 대한 야유가 더 큰 이유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님이 느낀 마음의 불편함 또한 이해가 됩니다. 타인의 불행에 동정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과연 그것이 얼마나 그 고통과 공감하는 것일까요. 타인의 고통이 나의 상대적 행복을 확인시켜주는 만큼만 나는 그것에 동정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고통의 해결이 나의 일상의 삶을 흔들지 않을 때라야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만, 내 삶의 어떤 부분이 영향을 받는다면, 더 나아가 내가 그것 때문에 불행해질 수 있다면 그래도 과연 나는 상대가 행복해지기를 원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경쟁적인 세상에 살면서 점점 타인의 행/불행을 나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나의 이익과 관련하여 평가하는 버릇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친한 친구가 석연치 않게 교수임용에 탈락하면서, 무엇보다 안타까웠습니다. 너무 힘들게 준비해왔고, 본인과 친구들이 적임자라고 생각했는데 임용이 유보되면서, 모두들 실망하였고 우리들은 진심으로 친구를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마음의 한 귀퉁이에는 그렇게 단 번에 임용되지는 못해, 저 친구가 안 되고 다른 사람이 된다면 혹 그 자리에 내가 갈 수도 있지 않을까 등 애초의 동정심은 사라지고 엄정한 객관주의와 이기심이 나타났습니다. 동정심으로 사회 윤리의 기초를 삼으려는 사람들이 동서양에 있었지만, 분명 동정심이 그렇게 순진한 도덕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 친구의 불행을 단지 친구라는 이유로 동정한다든지, 아니면 나의 이익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은 모두 사건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친구가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능력을 가졌지만 그것이 공정하게 인정받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친구를 제대로 동정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동정심과 공정성을 결합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남을 무조건 동정하다 보면 정의로운 제도를 생각할 수 없고, 기계적 공정성은 구체적 인간의 고통을 잊어버리기 쉬울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고통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 행여 그 고통을 나의 행/불행과 연관 지을 때에는 나의 이기심을 넘어서 정의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나의 동정심 속에 있는 불순함을 바라보고, 경쟁 사회 속에서 나도 모르게 병들어가는 마음을 돌아보게 되기를, 그리하여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고, 불행은 줄어든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체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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