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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매트릭스 (오종희)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3. 2. 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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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생면부지의 사람들끼리 어깨를 맞대고 줄맞추듯 앉은 지하철에서 한 남자가
음악 CD를 판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추억의 팝송이란다.
능숙하게 CD기를 돌려 맛보기 음악을 틀며 아줌마 아저씨들의 구매욕을 흔들어본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미 텐더... 페티 페이지의 아이 웬트 유어 웨딩.... 이글스의 호텔 켈리포니아” ...
제법 어색하지 않은 발음이다. 발음뿐만 아니라 정돈된 얼굴, 날선 옷매무새며 마치 화이트 칼라 같다.  그러고 보니 지하철에서 파는 물건 중 음악 CD 품목을 파는 사람들이 - 조금 낯간지러운 표현이지만 - 가장 세련됐다. 아니, 가장 낫다. 아니 가장 덜 가난해 보인다.   다용도 채칼을 파는 사람보다 찍찍이 복대를 파는 사람들보다 좀 낫다. 단가도 좀 세고...
그렇다 해도 저 남자는 나가도 너무 나갔다.
그런데 단속 대상인 저 멀쩡한 장사꾼이, 유난히 화이트칼라 같은 저 장사꾼이 사람 마음을 우울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차라리 그가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정도의, 딱 그 정도의 외모였다면, 그 계층에 걸 맞는 가난한 얼굴이었다면 마치 그 상황이 순리인양 넘어갔을 텐데 기대치보다 멀쩡한 모습에서 그 사람과 나의 경제적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을 자꾸만 상기 시켜준다.

중간이 사라져가는 한국 사회에서 계층 추락의 불안은 계층 상승의 욕구 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또한 지하철 판매상과 가난한 얼굴을 등치시키는 내 미학적 관점은 분명 사회가 학습시킨 관리자의 언어리라!
그 언어에서 조금만 벗어나는 상황이 생기자 견고하였던 상황 속의 인물도 그걸 바라보는 나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내가 기대하던 지하철 판매상의 가난한 얼굴은 자연이 아니다.
내가 상상하던 계층 추락의 불안한 현실도 자연이 아니다.
필경 누군가의 매트릭스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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