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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세이] 무제 (오종희)

사진에세이

by 제3시대 2013. 7. 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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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이미 나는 헛헛한 웃음을 뱉어 내고 있었다.
입안 가득 세멘 가루는 날카롭고 미지근한 대기는 성처럼 도시에 쌓인다.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였는지, 얼마나 누굴 기다렸으며 얼마나 안락한 관계를 좋아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찰나의 공포감이다.
그리하여 나는 도시의 모든 물체다.
터지고 메워진 눈으로 너를 조망한다.
너의 표면에 저장된 수많은 사건들을 알고 싶지 않다. 허공을 짓누르는 지리한 시간들도 가늠하고 싶지 않다. 누구의 욕망과 누구의 분노에 얽힌 불빛의 이면을 파헤치고 싶지 않다.  단지 그냥 너를 본다.
거친 너는 눈 없이 나를 보고 손 없는 나는 너의 거침을 인정한다.
의지 없이 던지는 시선 끝에 나를 보는 네가 있을 뿐이다.

내게 요구하지 마라.
계절과 공간의 명칭을 요구하지 마라.
색깔과 나라의 명칭도 요구하지 마라.
켜켜이 쌓인 표면에 너의 아름다움과 나의 웃음이 있을 뿐이다.
이름 없는 내가 너의 바닥에 부딪혀 튕겨지고 부서진다.
그게 우리의 언어다. 스며들지 않는 우리의 설레는 관계다.

 


 

 

오종희 作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 [사진에세이]는 한백교회 사진동아리 '눈숨' 회원들의 작품을 연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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