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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다시, 우리의 삶-정치를 묻다: ‘동작을’ 선거를 통해 바라본 우리시대 욕망의 정치학 (이상철)

시평

by 제3시대 2014. 8. 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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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우리의 삶-정치를 묻다

: ‘동작을’ 선거를 통해 바라본 우리시대 욕망의 정치학

이상철
(한신대 외래교수)

 

프롤로그: “동작을”과의 인연

내가 “동작을”과 인연을 맺은 것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여름, 나는 지금의 아내가 된 한 여인을 만났고, 그녀가 살던 동네가 “동작을”이었던지라 연애하던 기간 3년 내내 지하철 4호선 총신대입구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 “동작을” 끝자락에 위치했던 그녀의 집 앞에서 헤어지고, 다시 “동작을” 길을 따라 내려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갔었다. 그 후 우리는 결혼했고, 10년 전 미국 유학가기 한 두해 전부터 “동작을”에서 살다가 시카고로 먼 길을 떠났다. 그리고 10년 후, 2 주전에 귀국 한 우리는 다시 “동작을”에 삶의 둥지를 틀었다. 

귀국하자마자 온 동네를 난리로 몰아넣은 보궐선거 분위기 때문에 가뜩이나 시차적응 때문에 혼미한데 더 정신없이 보냈던 지난 2주였다. 마을버스 종점에서 연예인 같은 나경원을 만났고, 연애시절 해장국 먹으러 다녔던 남성시장 골목에서 역시 연예인 같은 노회찬과 악수했다. 그리고 오늘, 정몽준의 서울시장 출마로 공석이 된 “동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나경원은 권토중래 끝에 노회찬을 49:48로 누르고 다시 국회로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동작을”에 대한 前史

돌이켜보면 15년 넘게 “동작을”과 인연을 맺고 있는데, 한 번도 “동작을”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곳은 어떤 곳일까? 오늘 선거개표방송에서 잠시 스쳐가면서 본 내용인데, 이 지역의 정치적 성향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잠시 언급하는 것이 도움이 될 듯싶다. 비교적 근래에 끝난 지난 6.4 지방선거를 살펴보자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시 현직 “동작을” 국회의원인 정몽준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동작을” 지역은 박원순이 정몽준에 비해 20% 가까이 앞선 지역이었다. 구청장 선거에서도 비슷한 지지도로 새민연 소속 후보가 당선되었다. 2012년 대선에서 당시 야당 후보였던 문재인의 지지도가 대통령으로 당선 된 박근혜보다 10% (44:54) 앞선 지역이 바로 “동작을”이었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박원순 현 서울 시장이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에게 56:42로 승리를 거두었던 지역도 바로 이곳 “동작을”이다. 이 정도면 비교적 야당 성향이 짙은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지역적으로 동작대로를 사이에 두고 “동작을”은 “서초갑”과 마주한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남 8학군에서 소외된 지역이 “동작을”이고, 횡단보도 하나를 두고 “서초갑”에 비해 집 값이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지역이 바로 이 “동작을”이다. 그리고 참 이상한 현상인데, 시내에서 밤늦게 집에 귀가할 때 택시를 잡으려고 동작구를 외치면 꼭 택시 한 두 대는 그냥 지나가지만, 서초구를 외치면 바로 멈춘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동작을”은 강남에 있지만 강남 스타일이 아니고 그렇다고 위치상 강북도 아닌…강남과 강북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 지점이 “동작을”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이곳 사람들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면서도 속으로는 “서초갑”의 삶을 동경하고 흠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경원의 당선 공식: 다시 귀환한 ‘성공 신화’

언제부터인가 보수는 언어싸움에서 진보진영을 압도하고 있다. 노회찬과 기동민의 야권연대에 맞서 나경원은 “주민과의 연대”라는 구호로 맞섰고, 야권연대 후 박뱅의 승부가 예상되자 나경원은 “살려주세요!”라는 읍소를 날리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정권심판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던 야권에 비해 카멜레온처럼 보수는 자신들의 색깔을 바꾸며 상황에 맞게 자신들을 변신시켰다.  

그 중에서도 이번 선거에서 나경원이 보여준 압권은 “동작을” 주민들이 차마 자기들의 입으로는 말 못하는 꿈과 환상을 다시 깨우고, 그간의 서러움에 공감하며 외친 “동작=강남 4구”라는 선거구호다. “이보다 더 명확한 복음이 ‘동작을’ 주민들에게 어디 있겠는가?” 20년 동안 마을버스 운전을 한 기사아저씨의 말이다. 그렇다, 성공신화만큼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먹히는 약발도 없을 것이다. 유독 ‘동작을’은 그간 정몽준, 그 이전에 이계안 등 현대그룹 출신의 전문(?) 경영인들이 지역 국회의원을 차례로 대물림했던 공간이다. 현대그룹처럼 투박한 성공스토리를 자랑하는 코드가 어디 있을까? 그것의 정점에 바로 MB의 성공신화가 있다.  

그것이 옳지 않지만, 그것이 물론 진리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MB의 성공신화는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공부해 명문대 진학. 현대그룹에 말단사원으로 입사 마침내 사장이 되고, 국회의원,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에 오른 입지전적인 성공스토리- MB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그 무렵 ‘동작을’ 구민이라면, 아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공리 같은 거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BBK 사건에 대한 전말이 대선 전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될 수 있었겠는가?  대표적 친이계 인사였던 나경원은 이런 MB류의 성공신화를 “동작을” 주민들에게 상기시키며 과거프레임으로 돌아가는 모험을 감행했고, 그것은 결론적으로 성공이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나경원이 왜 승리를 했고, 노회찬이 왜 패배했는지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주체가 되어 그것을 채워야 하는 사람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우리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말하려는 것이고, 그에 대한 단서를 이번 선거와도 무관치 않은 이명박식 성공신화와 대비되는 안철수식 성공신화의 등장과 몰락을 통해 전개하고자 한다.


따로 또 같이: 안철수식 성공신화 Vs. 이명박식 성공신화

지난 6.4 지방선거와 이번 7.30 보궐선거를 거치면서 현실 정치인이 된 안철수는 단 두 번의 선거로 정치적 역량과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안철수가 상한가를 치던 무렵, 안철수 현상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해석이 있었다. 당시 미국에 있었던 나는 강호동이 하는 ‘무릅팍도사’를 통해 안철수를 처음 접했었는데,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지? 왜, 사람들이 그에게 빠졌는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자기개발서 책 홍보하는 사람, 혹은 나이브한 행복전도사쯤 되는 사람인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왜 안철수에 열광했었나? 다시 한번 복기를 해보자. 안철수 현상의 배경에는 신자유주의의 기본정신이라 할 수 있는 2등은 기억되지 않는 무한경쟁, 승자독식 사회로 인한 누적된 국민적 피로감과 그런 정글로부터 탈출하여 함께하는 공동체적 가치로 국가를 개조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이 맞물려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안철수는 이명박과의 차별성을 부각한다지만, 둘은 공히 각자의 성공신화를 지녔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거울과 같은 존재다. 물론, 안철수의 그것이 이명박식의 블도저 같은 성공신화가 아니라, 상식과 원칙에 입각한 성공신화라고 한다지만, 그 공정한 룰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현실의 무자비한 정글의 법칙안에서 깨끗한 승부를 하자는 것인데 그것이 도대체 가능이나 한 일인가? 대중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명박식 성공신화가 아니라, 상식과 원칙을 갖추고 덕성과 인간미까지를 겸비한 따뜻한 성공신화를 찾았고, 그 순간 안철수는 마치 메시아의 재림처럼 순간적으로 한국땅에 강림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냉정하게 안철수 현상을 평가하면, 그에 대한 국민적 열광은 표면적으로는 현실정치와 현실원리에 대한 부정이었겠지만서도, 내면적으로는 여전히 성공한 자에 대한 동경과 성공에 대한 욕망이 우리의 본능임을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안철수 현상의 明과 暗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현상이 유지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안철수의 잠행 때문이었다. 그의 침묵은 안철수로 상징되는 한국 정치 속 구멍 내지 얼룩을, 안철수로부터 야기되는 미래를 향한 지연(연기)을 창출하였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에게 미련없이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한 이후 안철수는 유력한 대권주자로 떠올랐지만 일체의 (현실)정치세력화 없이 2012년 대선 전까지 징후적 행보만을 거듭했다. 안철수가 상종가를 쳤던 시기는 바로 그 무렵이었다. 

현실정치의 일원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히려 안철수라는 한국정치 현실 속 구멍과 얼룩과 침묵을 통해 새로운 시민정치와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기대했던 것이다. 이명박식 불도저가 아니라 안철수식 첨단 테크놀로지에 입각한 네트워크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당정치에 대한 기대가 젊은 세대를 다시 정치로 소환하게 만들었고, 광장으로 모여들게 했다. 

하지만 정작 안철수는 자신을 호명한 대중들의 환호에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Che vuoi) 오히려 반문한다. 위의 인용은 라깡이 환상공식에 등장하는 유명한 말이다. 환타지란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답이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주체와 큰 타자 사이에 발생한다. 그 사이에서 환타지는 주체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고안된 것인데, 주체는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환타지를 만듦으로 그 결여를 메운다. 

초기 안철수에게는 국민이 대타자였다. 그는 국민들에게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되려캐묻는다. 이 물음이 바로 현실정치에는 없었던 안철수의 신선함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안철수가 정치를 하면 잘 할 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었다. 안철수가 제공하는 환타지는 그가 정치를 하면 기존 정치에서 실험되지 않았던, 기존정치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발생할 것이라는 기대다. 하지만, 그것은 구체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텅 빈 공간이다. 안철수도 모르는 그 결여를 통해, 안철수도 오히려 반문하는 그 빈틈을 통해, 사람들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다. 

안철수가 그것을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이 방식은 “동작을=강남4구”로 대변되는 나경원식 (보수주의)욕망의 정치학과는 대조되는 새로운 욕망의 정치학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안철수가 새정치를 내세우며 현실정치로 뛰어들어 김한길과 야합한 후,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본인의 빈틈과 구멍을 메우고 얼룩을 지우면서 환상은 사라졌다. 환타지가 사라지자, 그 환타지가 자아내는 기대와 율동도 사라졌고, 안철수도 사라졌다.


실패한 안철수에게서 배우다

7.30 보궐선거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완승으로 끝이 났고, 야당은 완패로 인한 충격으로 빠져들었다. 여당은 그 동안 구사했던 그들 나름의 욕망의 정치학에 충실했고, 오랜 학습을 거쳐 더 세련되고 진정성있는 보수주의 욕망의 정치학을 완성해가고 있다. 반면, 야당은 새로운 프레임을 짜지 못하고 정권심판이라는 해묵은 구호만을 갖고 야당임내 우기다가 국민의 외면을 받았다. 아무런 환타지를 제공하지 못한 탓이다. 

야권은 초기 안철수 현상을 학습했어야 했다. 안철수 현상의 요체는 태풍의 눈과 같은 현실 정치 속 구멍과 결핍을 유지하는 것이다. 안철수도 모르고 국민도 모르는 그것 말이다. 그 결핍을 채우고 그 구멍을 메우려 하지만 결코 채워지지도 메워지지도 않는 그 텅 빈 공간을 통해 소통은 시작되었다. 그 구멍이 계속 찢어지면서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인문학적 상상의 장이 마련되고, 그 파열이 지속되고 이어지다 보면 어느덧 정치도 복원되고 다시 혁명을 꿈꿀 수 있는 동력이 생겨날 수 있었을 텐데… 그것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는 안철수와 김한길로 대표되는 무능한 야당으로 인해 그 구멍은 닫혀버렸고 그 결과가 7.30 보궐 선거로 나타났다고 나는 판단한다.      

어떻게 우리는 다시 진보진영의 새로운 욕망의 정치학을 구성할 수 있을까? 나는 초기 안철수 현상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안철수 현상은 한국정치의 구멍과 틈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안철수 현상은 그 틈을 과거 같은 섣부른 공약, 구호, 당파성들로 채우지 않고, 계속 그 공백을 유지하면서 되려 우리들에게 그 틈과 구멍에 들어갈 것들에 대해 묻고 대답하게 한다. 안철수가 남긴 유산이라면 바로 이것이다. 정치적 주체가 결국 우리라는 점, 우리가 만드는 삶과 우리의 정치로 한국 정치의, 한국 사회의 틈과 균열을 매워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고, 이제 그것을 학습해 주었던 안철수가 사라진 그 텅 빈 공간에서 우리가, 국민이 그 틈과 균열 속 주체로 홀로 남겨졌다. Are you ready?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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