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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새해, 웹진 <제3시대>에 바란다 (이상철)

시평

by 제3시대 2016. 1. 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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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웹진 <제3시대>에 바란다


 

이상철
(본지 편집인, 한백교회 담임목사)


 

프롤로그 : 나와 <제3시대> 


          웹진 <제3시대>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2009년 6월이었다. 당시 나는 시카고 신학대학원박사과정 코스웍 학생이었다. 미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연구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내게 어느날 김진호 목사가 제3시대그리스도교에서 웹진을 발행하니 필자로 들어와 줄 것을 제안하였다. 나는 공부가 급하고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사양했고, 그 후 2009년 2월에 웹진 <제3시대>(이하 웹진) 첫 번째 호가 발행되었다. 첫 웹진이 발행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그해 5월에 운명을 달리했다. 비록 내가 노무현의 지지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의 자살정국은 나와 웹진을 연결하는 매개가 되었다. 시카고에서 공부하던 유학생들끼리 고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에 맞춰 추모예배를 드렸고, 그 예배에서 나는 노무현 대통령 영정 앞으로 나와 헌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사진에 담고 나중에 한장한장 다시 돌려보면서 그 날밤 김진호 목사에게 웹진에 글을 기고하겠노라고 말해버렸다. 지금 회상해보니 아마도 당시 내 마음에서 일말의 시대를 향한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격하게 일었던 것 같다. 그것은 여태 공부를 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무력함과 무책임함, 그리고 무능함이 뒤섞인 화학반응이었고, 그것은 또한 유학하는 나의 제한된 상황속에서 최소한의 실천의 방도를 마련하기 위한 궁색한 자기변명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2009년 6월부터 2015년 1월까지 만 5년이 넘게 한 달에 한 편씩 꼬박고박 웹진에 원고를 보냈다. 그 글들이 쌓여 책으로 출판되는 소득을 얻었고, 그것보다 더 소중한 여러 인연들과 연결되는 계기를 웹진은 내게 허락하였다. 2014년 5월, 나는 10년 동안의 시카고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변화된 한국 상황과 그 변화에 맞게 순응해버린 사람들에게 적잖은 실망을 느낄때가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묵묵히 그 자리에 버티고 서있는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를 바라보면서 위안을 느낀다. 이런 사연과 시간들이 쌓이면서 내게는 연구소를 향한 일종의 부채의식이 어느 순간부터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고, 하여 별다른 고민과 망설임 없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웹진 <제3시대> 편집장 역할을 하겠노라고 말해버렸다. 돌이켜보니 그때 내가 잠시 미쳤었나보다. 


<제3시대>에 대한 사후적 구성


          미국에서 세미나 시간에 제일 빈번하게 사용하는 말이 있다. So What? “그래서 뭘 하겠다는 건데?” 잠시 동안 웹진에 대한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가 문득 미국 학생들이 세미나 시간에 두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체 어깨를 들썩이며 So what? 하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냉혹한 현실로 다시 돌아왔다. 웹진 <제3시대> 뭘 하겠다는 거니? 갑자기 이 기본적인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겠다는 것일까?  

          김대중-노무현 민주정권이 막을 내리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던 그 무렵에 <제3시대>라는 다소 모호한 이름을 걸고 웹진은 시작되었다. 당시 우리들 사이에서 이심전심으로 공명했던 무엇인가가 웹진 출범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그 당시에 나는 한국 땅이 아닌 미국 땅 시카고에 있었던 관계로 그것을 매끄럽게 설명해내지 못하겠다. 과연 웹진을 가능하게 했던 중핵은 무엇이었을까? 이 글은 어쩌면 그 중핵을 찾아 떠나는, 마치 잃어버린 나의 반쪽을 찾아 길을 떠나는 패크맨 이야기가 될 런지도 모르겠다.  

         2009년 웹진이 발행되던 당시 한국 사회는 이명박 정권이 등장하여 신자유주의가 삶의 원리가 되어 혈관을 타고 막 흘러다니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물론,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던 민주정부가 신자유주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계기를 마련하긴 했으나, 그것이 이토록 잔인한 시스템으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한 사람은 이명박이다. 이명박은 앞선 지도자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캐릭터다. 그의 대의와 명분은 오로지 자본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 개발 독재시대 스티그마라 할 수 있는 인권과 자유와 정의에 대한 원죄의식을 말끔히 지웠다. 김대중-노무현이라는 통과의식을 거치면서 죄의식에서 해방된 한국 유권자들은 그로부터 10년 후에 자본을 케츠프레이즈로 내건 이명박에게 몰표를 던졌다. 군사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면서 가졌던 원죄의식을 김대중-노무현 시기를 거치면서 씻어버렸기에 이명박을 찍으면서도 그 누구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더 이상 대의와 명분, 의리와 도덕 같은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그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사건이었다. 그 후 우리는 다같이 우리의 체면과 양심, 대의와 수치심과 윤리를 바닥에 내려놨다. 나는 그것이 바로 2009년 웹진 <제3시대>가 시작되던 당시 한국사회를 감싸고 있었던 파국의 지형학이라 생각한다. 바로 그 지점이 우리로 하여금 웹진 <제3시대> 깃발을 들게 했던 시발점 아니었을까?

            우리는 지속적으로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에게 신학은 무엇인가?’ 신학을 시작한 이래로 수 천번도 더 물어왔던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은 여전히 우리가 처해있는 역사적 전환기마다 되돌아오는 가장 유의미하고도 애절한 질문이다. 웹진은 다양한 형태의 말걸기로 시대의 요청과 질문에 답을 하려고 노력했고, 혹 우리의 내공이 부족할 때면 다른 친구들을 월례포럼 혹은 각종 강연회 형태로 초대하여 질문을 던지고 대안을 찾으려 애썼다. 그 과정에서 웹진 <제3시대>, 아니 더 근본적으로는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지니는 방향성에 관한 몇 번의 지적과 우리는 직간접으로 마주하기도 했다. 그 기억은 비록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현재를 점검하고 과거를 뒤돌아보게끔 하는 기회가 되었다. 비판자들이 던지는 <제3시대>를 향한 지적의 적합성 내지 유의미함을 떠나서, 그것은 신학(함)에 대한 우리 자신의 근성과 점성을 더 끈적하고 치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시간들이 결론적으로 연구소가 추구하는 신학운동의 조타수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웹진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추구하는 신학 작업의 마당이고 실험장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시대와 신학에 대한 질문과 마주하고 공명하며 저항했다. 그리고 다시 또 우리는 묻는다. ‘2016년 한국 땅에서 신학은 무엇으로 사는가?’  


<제3시대>, 파국을 향한 오늘의 변증법


          2016년 한국사회를 서사하고 묘사할 때 가장 적절한 단어를 하나 고르라면 나는 ‘파국’이라는 말을 선택하겠다. ‘파국’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는 ‘재앙. 참사’의 뜻을 가진 catastrophe이다. 세계 곳곳에서 발발하는 기상이변, 각종 예상치 못하는 테러들, 연쇄적으로 물결치면서 전 세계를 유랑하는 경제침몰의 뉴스들, 이런 흐름 속에서 갈수록 파편화된 채로 파멸되어가는 개인들에 대한 뉴스가 파국의 현상학을 드러내는 단적인 표식이겠지만, 더 문제적이고 암울한 파국의 현상학은 이런 파국의 일상화로 인한 전망의 부재, 혹 어떤 전망이 있다손 치더라도 디스토피아적 미래만을 예측해야 한다는 무력감 내지 절망감 아닐까 싶다. 이것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사회만 잠시 둘러봐도 그 증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연속되는 재앙과 참사의 현장을 살아가는 한국민들에게 어쩌면 파국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삶의 조건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작년 한해만 보더라도 풀리지 않는 세월호 문제, 메르스사태, 성회장 리스트, 국정교과서 문제, 백남기 농민, 마지막으로 터진 정신대 졸속 타결과 소녀상 철거문제까지... 굳이 하나하나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영화보다 더 영화 같고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땅이 한국사회 아닌가?  

          하지만, 진정한 파국의 모습은 현재 펼쳐지고 있는 파국의 현상학보다는 ‘곧 그날이 올 것!’ 이라는 파국의 공포술로 유지되는 매커니즘 그리고 그로 인한 효과들이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세계 최고의 자살률, 노동시간, 삶에 대한 만족도, 여성의 사회참여도, 비정규직 비율, 노인들의 자존감, 다음세대인 청소년. 청년들의 미래전망도, 이민가고 싶은 사람들의 비율 등의 수치를 조사할 때 OECD 가맹국, 아니 전 세계적으로도 최하위 혹은 최상위권을 점유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러한 수치들과 전망들은 한국사회에 임박할 파국을 예감케 함으로써 우리를 얼어붙게 만든다. 그것을 이용한 공포와 기만의 정치술이 가장 큰 파국의 효과이고 현상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신학은 이러한 파국의 지형을 어떻게 거슬러서 올라가야 하는가? 차라리 신학을 때려 치고 교회를 불태워야 하는 것이 이 땅에서 능욕당하는 신과 인간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양심은 아닐까? 이렇듯 현상에서 일어나는 파국(catastrophe)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분명 절망적이다.  

          그러나, 성서가 증언하고 신학이 주장하는 파국(apocalypse; 아포카립스)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포카립스적으로 파국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종말인 동시에 창조이고, 절망인 동시에 희망이다. 아포카립스를 해체주의 철학자 데리다식으로 표현하면 치유와 독약의 뜻을 동시에 가졌던 ‘파르마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유토피아이면서 동시에 디스토피아적인 성격을 지닌다. 어쩌면 성서가 증언하고 신학이 풀이하는 파국(apocalyse)은 해체(deconstruction)에 가깝다. 해체론에 따르면 어떤 사물의 질서와 본질은 안과 밖의 경계가 명확한 지점에 위치하지 않는다. 안이 어느덧 밖이 되고 밖은 별안간 안으로 변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파국이라는 말속에는 의미에 대한 영토화를 반대하는 해체적 성격이 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면서 보이는 신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던 것처럼,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하면서 의미화되는 것에 대한 히스테리적 반응을 보였던 그것처럼 성서는 제도화된 신과 이름 붙여진 신에 대한 해체의 작업을 미리 우리보다 앞서 선행하고 있었다.  

          웹진 <제3시대>는 이러한 파국의 상상력, 해체론의 수사학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 부연하자면 그것은 다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진리에 대한 확신과 선(善)에 대한 믿음이 굳게 자리하는 경이적이고 매혹적인 순간이 도래할 지라도, 그 사유속에는 언제나 독(毒)이 자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파국이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을 예감하는 것이 해체론적 사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태와 현상을 흠없이 바라보는 완벽한 조감도가 아니다. 오히려 익숙한 대상들을 향한 낯설게 하기와 박제화되고 굳어버린 대상들을 향한 치기어린 시선, 그리고 엄숙하고 근엄한 목소리를 향한 딴지와 그것들에 대한 비틀기이다.  

          이런 원칙에 입각해 웹진을 구성한다면, <제3시대>는 매끈하게 일필휘지로 완성되는 그림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어 균열과 얼룩이 남아있는 그림이 되는 것! 하지만 그 균열과 얼룩이 파국(catastrophe)의 지형을 드러내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그 균열과 파국으로 인해 진정한 파국(apocalyse)의 도래를 예감할 수 있는 웹진이 되는 것! 그리하여 오늘 이 땅에서 여전히 변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판본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 이것을 2016년이 시작되는 이 순간 웹진 <제3시대>에게 요구한다면 너무 큰 바람일까?  


에필로그 : 편집자의 變


          웹진을 꾸준히 보아왔던 독자들은 이미 감지하셨겠지만, 지난 67호(2015.8.17)부터 웹진은 운영 시스템을 달리하고 있다. 종전 월 1회 발행하던 웹진을 격주(1,3주 월)로 발행하고 있고, 필진들도 크게 4개조로 나누었다. 각 조마다 6-7명의 필자들을 확보한다는 미션 아래 신학뿐 아니라 인문학 전반에 걸쳐 필자들을 수소문 중이다. 여성 필자의 비율도 차차 늘여 가급적 남녀 필자가 동수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고, 국내필진과 해외필진간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긴장도 도모하고 싶다. 아울러 영상, 사진, 미술 등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숨은 필자들에 대한 발굴에도 주력하여 자칫 웹진이 퍽퍽한 이론 취향으로 흐를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고자 한다. 아직 시행은 하고 있지 않으나 학문후속 세대 양성을 목표로 대학원 석.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들에게 따로 글을 쓰고 발표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도 있다. 이러한 컨텐츠 변화에 맞게 웹디자인도 새롭게 단장을 해야할 것이다. 조만간 시행할 <제3시대> 팟캐스트와도 연동이 될 수 있도록 조치를 할 것이다. 시의적절한 대담 프로나 기획기사를 분기별로 제작하고 싶으나 아직 거기까지는 여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좀 더 시스템이 안정되면 도모해볼 생각이다. 예산이 허락되면 연구소 회원들이나 열독자들에게 웹진기사를 타블로이드판으로 재편집해 선물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그것은 빠듯한 연구소 사정상 현재로는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그날이 도적처럼 올지 말이다.  

          2016년이 끝날 때 쯤이면 웹진은 100호를 눈앞에 두게 된다. 이번 웹진이 76호니까 한 달에 2회씩 업데잇되면 올 12월 마지막 웹진은 99호다. 한낱 웹진이 100호를 채울 것이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 이겠냐마는, 미리 그날을 예상하면서 지난 과거를 회상할 때 우리 스스로를 향한 정체 모를 묵직함과 자부심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단적으로 현재 웹진 필진들의 면면이나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종. 다성. 다국의 성격을 지닌 다양한 이력의 필자들이 진보적 신학의 전문화, 현장화, 대중화를 견지하는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에 말과 글로 힘을 보태고 있다. 독자들 역시 교회와 신학의 테두리를 넘어선지 오래다. 간학문적, 혼융합적 글들이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신학 이외의 영역에서 웹진 기사에 접속하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주례사적인 자기비평을 하면서 우리 스스로에게 격려와 위안의 메시지를 던지고 나니, 아마도 지금이- 그것은 웹진이 더 이상 우리만의 것이 아닌 것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지금을 말하는데 - 웹진 <제3시대>의 진정한 출발점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새해인사


          병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해 전개될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행보와 웹진 <제3시대>가 그려나갈 포물선에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신학을 사랑하고 올바른 신학이 있어야 교회와 사회가 건강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하나하나가 소중합니다. 어떤 권위와 전통 앞에서도 쫄지 않는 저희가 될 것이고, 어떤 편견과 그 어떤 대타자의 목소리와도 맞짱 뜨는 저희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의가 우리만의 도그마가 되지 않도록, 자칫 이러한 호기가 우리만의 최면과 객기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에 대한 감시 역시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여러분들의 변함없는 성원과 지지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Remember You are the reason I am!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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