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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인간과 진실에 대한 신념을 회복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양권석)

시평

by 제3시대 2017. 1. 1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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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진실에 대한 신념을 회복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양권석

(본 연구소 소장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뒤늦은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지난 한해 동안 웹진 제삼시대를 편집을 맡아 수고해 주신 이상철 목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항상 제삼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를 위해 기도하고 후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과, 이 웹진의 애독자들께도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향해, 새로운 사회와 교회를 위한 신학을 찾아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희망 가득한 새해가 되기를 빕니다.  


    새해 첫날 새벽 비행기를 타고 인도 체나이에 와서 대학관계자들 회의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낯선 곳에서 하루 종일 회의실에 앉아 빽빽한 일정을 부지런히 따라가다 보면 시간 감각도 무뎌지고 이때쯤이면 누구나 갖는 여유와 성찰의 시간을 상상하는 것도 어색할 지경이 됩니다. 그러다 문득 방으로 배달된 아침신문을 접어들 때 비로소 시간을 기억해 냅니다.


    체나이에서 발행되는 1월 2일자 데칸크로니컬(Deccan Chronicle)이라는 남인도 지역신문의 우리 식으로 말해서 오피니언란에 실린 아닐 다커(Anil Dharker)라는 언론인의 글입니다. 2016년을 채웠던 테러, 난민, 브렉시트, 그리고 미국 대선이 보여주었던 묵시가득한 세계와 민주주의의 불안을 그는 “트럼프”(trump)라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이미 동사가 되어 버린 단어로 표현합니다. “거짓과 편견이 합리성과 진실을 뒤덮어 승리를 외쳤고(trumped), . . . 선거운동 과정에서 편견을 부추기고 거짓을 퍼뜨리는 일에 전력을 다한 트럼프(Trump)가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현실, 이것이 바로 2016년 세계의 모습이었다 합니다. 테러와 난민 문제는 서구 사회를 분열시켰고, 문제 해결을 위해 설득하고 조정해야할 국가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고, 거짓과 유언비어로 조장된 공포가 결국은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말입니다.


    터키 해안에서 발견된 세 살배기 어린아이 이안 크루드의 죽음을 바라보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부끄러워하던 그 마음이 세계인들의 한결같은 마음인 줄 알았습니다. 이렇듯 인간이 비참해지고 낮아질 수 있을까 하는 탄식의 마음을 다들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수치와 분노로부터 인간과 생명의 존엄회복을 향한 사람들의 외침과 참여가 당연히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고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마음이 숨어 있었고 다른 세계가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살던 곳에 살 수 있었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보트에 오르지는 않았을 것이고, 생존의 문제가 아니었다면 국경을 넘어설 각오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난민들의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을 함께 아파하는 마음은 당연한 것이라 여겼는데,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감과 두려움이 자라나고 있었고, 오히려 그 상황을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자리 잡았던 것입니다. 난민들을 나의 소유와 나의 특권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여기에 영국 돈이 유럽으로가서 난민들을 위해서 낭비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통했고, 미국인들에게도 이민자들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고립주의적으로 또 내향적으로 자기 자신들만을 바라보는 이기적인 시각을 더욱 거세게 불러일으켜, 온갖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언어와 행동으로 채워진 선거운동이 가능한 상황이 되고, 끝내는 거짓과 편견이 많은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을 압도해 버리는 상황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연말 객담의 자리에서 지금은 “민란의 시대”라고 하시던 어떤 교수님의 말이 생각납니다. 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와 정치가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대중이 광장으로 나와,, 예측 불가능하게 자신들을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으로 생각했습니다. 어처구니 없게도 “샤이 박근혜”라는 말도 생각나고, 안심하지 말라 박근혜보다 더한 대통령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경고하시는 어떤 분도 함께 생각납니다. 분명 우리는 광장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에 도취하면 그 광장은 그야말로 대중의 밀실이되고 대중의 도피처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직은 어디를 향해갈지 모르는 민란의 한 복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숨어있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들이 다시 한번 고개를 들고 무서운 배신을 감행할 여지 마저 충분한 상황입니다. 바로 이곳입니다. 두 가지 가능성이 교차하는 이 곳에서, 인간과 생명에 대한 새로운 확신과 그것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를 향한 비전을 엮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회의 도중에 영국에서 온 한 신학자로부터 종교개혁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해석을 들었습니다. 그는 종교개혁 그 중에서도 영국 종교개혁은 교회론적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간 것이 아니고, 오히려 새로운 사회를 향한 비젼이 교회론적 변화의 결과물의 만들어 냈다고 해석했습니다. 교회의 개혁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통해서 온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정말 새로운 이야기 처럼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인간이 비천해지고 낮아진 상황을 거듭해서 탄식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확신과 긍정을 요구합니다. 지극히 시장화되고 상업화된 세계, 그래서 인간마저 상품과 소비재로 삼는 세계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신학적으로 다시 다듬어 내는 일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신학적인간학 자체를 다시 선언하고 일상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서 애써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실 보다는 설득력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세계, 아니 진실이나 진리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세계, 그래서 최대한 사람들의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욕심을 이끌어 내서라도 설득하고 이길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세계, 이런 세계 속에서 진실과 가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신학적으로 깊이 숙고하고 다듬어 내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곧 광장의 희망을 우리 일상의 변혁으로 그리고 신학과 교회의 변혁으로 이끌어 가는 우리의 광장신학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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