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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복직 단상(김난영)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7. 4. 1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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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 단상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1. 

       한달 전, 뉴딜 청년 일자리사업에 지원하였다. 서울시가 공공서비스 일자리를 일정기간 제공하고 이를 통해 민간 일자리 취업 연계를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으로, 특별히 만18세부터 39세까지의 청년을 대상으로 하기에 취업준비생부터 나 같은 경력단절여성 지원자들이 많다.

        운 좋게 합격을 하고, 같은 기관에 배속된 각기 다른 부서의 동료들과 1박2일 워크숍을 가게 되었다. 동료라고는 하지만, 많게는 열여섯 차이가 나는 친구부터, 대부분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넷에서 일곱 사이의 친구들, 아니 한참 아래의 동생들이다. 물론 기혼자에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고, 게다가 최고령자로 기관에서 함께 따라온 직원들과 비슷한 또래였다.


2. 

      어디가서 웬만해서는 잘 쫄지 않는 성격이지만, 동료들의 자기소개를 다 듣고 나니 뭔가 계속 움츠러드는 느낌이다. 입을 열면 꼰대 소리 들을까 겁나서 가능한 조용히 동료들 이야기 듣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생소한 신조어, 줄임말을 들을 때면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들고 검색창을 열었다. 마치 낯선 시간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동료들의 이야기는 다양했다. "난 대안교육을 받았다. 스스로 대학을 선택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후회는 없다"는 패기 넘친 목소리를 내는 친구도 있고, "갑작스레 찾아온 엄마의 투병생활로 2년제 대학을 선택했고 조금 빨리 사회에 나오게 되었다"는 스물두 살 친구도 있었다. "알 수 없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시도했었다"는 누군가의 고백에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난감하기도 했다. 남 이야기하듯 "그땐 세상이 너무 싫었다"는 생기 가득한 그의 얼굴은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또 한 친구는 축구장 한 켠에 수많은 후보선수를 그려놓고는 "나는 일터에서 이 많은 후보선수 중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 뛰어난 후보들이 가득하고 감독은 짧은 경기시간 동안 선수교체를 수없이 반복한다. 난 언제 벤치로 돌아갈지 모르는 신세다"라고 이야기한다. 곳곳에서 박수가 나오길래, 나도 덩달아 박수를 쳤다.


3. 

        전시를 위해 작가와 미팅을 했다. 기획안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하고 나니, 그가 "그러면 제가 얻는 것은 뭐죠?"라고 묻는다. 전시를 통해 작가가 얻을 수 있는 게 뭘까.. 잠시 고민하다 아티스트 피(fee)를 이야기했다. 내가 일하는 곳의 사정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고, 빠듯한 예산에 몇 번의 협의를 거쳐 최대한 작가를 배려한 거라 생각했던 금액을 이야기했다. "저는 받은 만큼만 일해요. 제시하신 금액은 제겐 딱 열정페이 수준이네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다시 한번 협의 후 연락 드리겠다"하고 성급히 그를 보냈다. 내가 그의 질문을 잘못 이해한 건가? 오후 내내 체기가 가시질 않았다. 


4. 

        십여 년 전, 공공미술관에서 일급 8천원을 받고 일했던 적이 있다. 보통은 대학원 석사과정 이상이 지원하고 그것도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야만 할 수 있는 인턴쉽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미술관 인력이 너무 부족해서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뽑혀 일을 하게 되었다. 나보고 일을 해보라 권했던 담당 직원은, 하루 8천원을 주면서도 나에게 세상에 다신 없을 기회를 준 것 마냥 당당했다. 그리고 나도 그 직원에게 "정말 감사하다. 열심히 일 해 보겠다"고 꾸벅 인사를 했었다. 나는 정말 감사한 일로 알았다.


5. 

        24시간을 끌고는 작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는 "미안하다.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의미 없이 반복하는 내게 "그럴 줄로 알고 있었다. 괜찮다"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어제 그의 대답이 더 고마웠다. 나는 아티스트 피(血)를 먹고 살고 싶지 않다. 


6. 

        꼬박 6년만의 출근이다. 솔직히 며칠은 살림과 육아 걱정 없이 매일 외출하는 기분이었다. 내 생활 패턴이 바뀌었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내 일터는 십여 년 전이나 별로 다를 게 없다. 

        웃는 모습이 마냥 내 아이들 같은 동료들에게 "젊음은 그런 거야. 무조건 부딪히고 견뎌보는 거야"라고 말 할 수 없다. 한번 잘못 부딪혔다간, 한 사람의 인생을 산산조각 낼 수 있는 시스템이 가득하고, 견디는 게 능사가 아닌 세상이기 때문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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