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페미&퀴어] 확장된 불쾌함: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와 <킹스맨: 골든 서클> (조은채)

페미&퀴어

by 제3시대 2017.10.11 15:10

본문



확장된 불쾌함: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와 <킹스맨: 골든 서클>



조은채*

 

※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와 <킹스맨: 골든 서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이하 <시크릿 에이전트>)의 속편인 <킹스맨: 골든 서클>(이하 <골든 서클>)은 개봉을 앞두고 불거졌던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예상되었던 대로 흥행하고 있다. 전작인 <시크릿 에이전트>가 그랬듯이, <골든 서클> 역시 여러 모로 준수한 오락영화이다. 무엇보다도 141분의 상영시간이 큰 지루함 없이 흘러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시크릿 에이전트>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인 ‘신선함’은 <골든 서클>에서는 더는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그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는 베테랑 요원인 해리 하트(콜린 퍼스)의 신조 아래, 동네 ‘양아치’였던 주인공 에그시(태런 에저튼)는 세계를 구한 국제 비밀정보기구 요원이자 최고의 ‘젠틀맨’으로 거듭난다. 교육과 훈련을 바탕으로 습득한 에그시의 ‘매너’는 열두시가 지나면 사라져버리는 요정의 마법 따위가 아니기 때문에, 에그시는 유리구두보다 단단하고 안정적인 옥스포드화를 신고 새로운 세계에 성공적으로 입성한다. 관객의 예상을 조금씩 비틀어 전개되는 스토리, 기발하면서도 현란한 액션, 매력적이지만 구구절절하지 않은 다양한 캐릭터는 영화의 신선함을 더욱 부각시킨다.


  하지만 <시크릿 에이전트>의 마지막 몇 분은 산뜻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던 에그시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돌연 불쾌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썩 나쁘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던 <시크릿 에이전트>의 여성관에 대한 평가는 갑자기 곤두박질 친다. 틸디 공주는 에그시에게 “세상을 구하면 뒤(asshole)로” 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이후 정말로 세상을 구한 에그시는 약속을 이행 받기 위해 달려간다. 영화는 에그시가 틸디라는 전리품을 차지하는 과정의 바로 그 직전까지를 보여준다. 카메라가 누워있는 틸디 공주의 몸을 ‘전형적인’ 구도로 훑고, 종래에는 그녀의 벗은 엉덩이만이 스크린을 꽉 채우던 순간의 당혹과 불쾌함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처럼 <시크릿 에이전트>의 불쾌함은 마지막 몇 분에 응축되어 있었다. 영화관을 나선 뒤에야 불편했어야만 했을 장면과 설정이 머릿속에서 플래시백처럼 재생되었다. 하지만 영화가 지닌 신선함이라는 마법 때문인지 영화를 보는 중에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크게 거슬리지 않았었다는 사실에 조금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다.


  <골든 서클>은 <시크릿 에이전트>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한다. 이미 한번 시작한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지만, 여전히 새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시크릿 에이전트>에는 뒷골목 양아치에서 영국 최고의 젠틀맨이 되는 에그시의 신데렐라 서사가 있었다. 그 시작과 끝이 대단히 분명한 이 고전적인 이야기는 분명 전형적이지만 그래서 더 효과적이고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에그시가 젠틀맨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 서사를 재활용할 수 없게 된 <골든 서클>은 전작이 구축해둔 세계관을 철저하게 부수는 것부터 시작한다. 메인 빌런 포피(줄리언 무어)를 통해 킹스맨 본부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인원을 몰살시키면서까지 말이다. 하지만 전작의 신데렐라 서사만큼이나 효과적인 메인 스토리를 찾지 못한 탓인지, <골든 서클>은 <시크릿 에이전트>보다 자주, 그리고 더 많이 방향을 헤맨다.


  <시크릿 에이전트>에서는 그나마 마지막 장면에 응축되어 있었던 눈살 찌푸려지는 여성관은 <골든 서클>에서는 그 범위가 영화 전체로 확장되고, 때로는 지나치게 반복된다. 여성 캐릭터의 등장도 활약도 대폭 줄어든 <골든 서클>에서 가장 중책을 맡고 화면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것은 악당 포피이다. 거대 마약상인 포피는 마약을 합법화라는 조건으로 세계 정부와 거래를 한다. 포피가 쥐고 있는 것은 한 번이라도 마약을 했던 모든 사람의 목숨이다. 전 세계의 마약에는 이미 포피가 고의로 넣은 바이러스가 포함되어 있고, 해독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오로지 포피 뿐이기 때문이다. 포피는 환상 속의 놀이공원 같은 ‘포피랜드’에서 신입 부하에게 상냥한 표정과 다정한 말씨로 동료를 갈아 인육으로 만들 것을 부탁하기도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포피는 참 독특하고도 대단한 악당이다. 그러나 영화가 끝에 다다를수록, 진정한 흑막은 포피를 역이용하고자 했던 미국의 ‘남성’ 대통령이나 알고 보니 스파이였던 스테이츠맨의 ‘남성’ 요원 ‘위스키’에 가깝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포피는 100여분이 넘게 열심히 최고의 악당을 연기하지만, 결국 임팩트 없는 죽음과 함께 퇴장 당한다. 포피는 <골든 서클>의 메인 빌런이라고 소개되지만, <골든 서클>의 클라이맥스는 포피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스토리 상 절정에 해당하는 장면은 상당 부분 남성 캐릭터들에게만 할당되어 있기 때문이다. 포피에게는 메인 빌런이라는 타이틀과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적절히 활용되지 못하는 설정이라는 껍데기만이 주어진다. 아름다운 ‘포피랜드’가 포피 외에는 아무런 정서적 상호작용 없이, 포피와 로봇만으로 굴러가는 껍데기 같은 허상인 것처럼 말이다.


  포피랜드가 포피에 대한 거대한 메타포라고 해석하고 끝낼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이다. 예고되었던 것보다 심심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포피만의 캐릭터성이라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골든 서클>에 나오는 모든 여성 캐릭터가 ‘포피랜드’ 같았다는 사실이다. 겉보기에는 매력적인 설정을 부여받았지만 실속 있는 역할이나 장면은 주어지지 않았고, 그저 껍데기뿐이었다. 더 나아가, 포피랜드에 구현되어 있던 ‘여성성’이 구시대적이고 보수적이었던 것처럼, <골든 서클>이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포피를 제외한 <골든 서클>의 주요 여성 캐릭터는 오로지 두 가지 유형으로만 등장한다. 여성이라는 점이 강조되는 캐릭터(틸디 공주, 클라라)는 남성 캐릭터의 ‘여자’친구라는 점만이 두드러졌고, 당연한 순서인 것처럼 성적 대상화의 대상으로만 소비된다. 반면, 여성성이 강조되지 않는 캐릭터(진저, 록시)는 아무런 활약도 존재감도 없이 스크린에서 사라져버렸다. 예를 들어, 비록 마지막에 성적 대상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교본이 될 만한 장면을 남기기는 했지만, 악당 발렌타인에게 당당하게 맞서다가 감옥에 갇혔던 <시크릿 에이전트>의 틸디 공주는, <골든 서클>에서는 에그시 때문에 마약에 손을 댔다가 구출 당하는 여자친구로만 남을 뿐이다.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에그시보다 뛰어난 기량을 보였던, 그리고 아마 최초의 여성 킹스맨 요원일 록시는 영화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무하게 죽으면서 영화의 서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폭력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은 찰리의 애인이었던 ‘클라라’이다. 찰리는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유력한 킹스맨 후보였지만 탈락한다. 평민 에그시에 밀려 떨어진 것이 참을 수 없었던 ‘귀족’ 찰리는, 포피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그의 부하가 된다. 클라라는 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심지어 포피의 정체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만, 놀랄 만큼 메인 스토리에서 비켜나 있다. 클라라에게는 그저 찰리’의’ 전 ’여자’친구라는 정체성만이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클라라는 문제의 ‘추적기 장면’에서 완전히 도구화된다. 찰리를 통해 포피의 소재를 알아내기 위해서, 에그시는 찰리와 연락을 주고받는 클라라에게 추적기를 달아야만 하는 상황에 부닥쳐있다. 하지만 이 추적기는 대단히 특이하게도 콧구멍이나 질과 같은 점막이 있는 곳에 삽입되어야만 작동할 수 있다. 에그시는 클라라의 콧구멍에 추적기를 넣을 길이 요원해 보였는지 그녀의 성기에 이 추적기를 넣기로 한다.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발렌타인이 와인 안에 추적 물질을 넣어 상대에게 건넸던 것과 비교하면 일종의 기술 퇴행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무척이나 미심쩍은 이 추적기가 겨냥하고 있는 대상의 성별 역시 무척 제한적이다. 남성에게는 어떻게 사용하겠다는 걸까? 그때는 무리해서라도 콧구멍이나 항문? 아니, 애초에 남성이 대상이었다면 이런 방식으로만 작동하는 추적기가 영화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추적기의 존재 자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기 위한 아주 질이 나쁜 농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클라라는 이 불쾌한 장면을 구현해내기 위해 만들어낸 캐릭터처럼 보인다. 불필요할 정도로 포르노와 유사한 방식으로 클라라의 몸을 훑는 카메라보다도 더 끔찍했던 것은, 추적기가 들어간 클라라의 질 안의 모습까지도 적나라하게 연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스크린이 틸디 공주의 엉덩이만으로 채워졌던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한 발 더 나가, <골든 서클>은 여성의 질 내벽으로 스크린을 꽉 채운다. 클라라의 몸뿐만 아니라 클라라라는 인물 자체는 완벽하게 ‘객체’가 된다. 그리고 이 불쾌한 장면을 위해 꽤 긴 시간이 할애되어 있다.


  <시크릿 에이전트>의 개봉 이후, 많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는 이 영화의 마지막 몇 분에 대해 비판했다. 하지만 감독인 매튜 본은 이들을 블러디 페미니스트로 일축하고 전혀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시크릿 에이전트>에서는 그래도 그나마 마지막 몇 분으로 응축되어 있었던 불쾌함이 <골든 서클>에서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늘어났으며, 오히려 강도가 높아지기도 했다. 이로써 <골든 서클>은 나쁘지 않다고 말할 때조차 가책을 느끼게 되는 꺼림칙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 필자소개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하면서, 조형예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현상을 감상하고 분석하는 법을 배웠다. 동일 전공으로 석사에 진학하여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관심 분야는 페미니즘, 그리고 미디어아트를 비롯한 현대미술이다.




ⓒ 웹진 <제3시대>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