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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마음의 준비(김난영)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7.12.2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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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준비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얼마 전 큰 아이의 아랫니 두 개가 빠졌다.

       어릴 적, 하얀 무명실을 조심스레 감는 긴장한 엄마의 손끝과 온기가 기억났다. “엄마가 ‘하나, 둘, 셋!’하고 뺄게”하고는 “하나~아, 둘!!”하고는 사정없이 실을 당겨버렸던 엄마의 기민한 작전.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스럽고 살짝 억울한 기분도 잠시, 혀끝으로 느꼈던 이 빠진 곳의 비린 맛과 생경했던 잇몸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큰 아이의 생일이 늦어 그런지 또래 중 이가 제일 늦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같은 방 아이들이 빠진 이를 자랑하며 맹구 미소를 지을 때 마다 ‘아, 나도 엄마처럼 내 손으로 직접 율이 이를 뽑아줘야지’했지만 막상 흔들리는 아이의 이를 보니 겁부터 났다. 게다가 덜렁덜렁 뿌리만 겨우 붙어있는 듯한 이가 본디 위치를 틀어 아이가 불편을 호소하니 바로 치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며 부들부들 떨며 누운 아이의 두 손을 꼬옥 잡고 발치의 과정을 목격했다. 의사는 아이의 눈에 안 보이게 팔을 멀리 내저으며 묵직한 펜치를 턱 밑으로 가져가더니 쓰윽 이를 뽑아 올린다. 아이가 움찔하더니 신음소리를 내며 “그만! 그만!”이라고 목으로 외치는데, 의사는 아랑곳 않고 두 번째 이를 또 쓰윽 뽑아 올린다.

       “율아, 이제 다 끝났어.” 긴장으로 마디마디가 하얘진 아이의 주먹을 토닥여줬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는 억울한 얼굴이 울음을 쏟아내려고 하는 찰나, 의사는 이 빠진 자리에 지혈용 솜뭉치 재갈을 물린다. 그새를 못 참고 솜을 물고는 웅얼웅얼 이 뽑은 소회를 밝히는 얼굴이 어째 더 억울해졌다. 뿌듯한 엄마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빠진 이 두 개를 선물로 받고는 씨익 웃는 율이도 이제 영락없는 맹구다.

        솜재갈을 푼 아이는 재잘재잘, 빠진 이를 들고 당장 어린이집으로 향해 친구들과 선생님한테 자랑하고 싶다고 설레발인데, 내 마음은 뭔가 휑하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다 처음 발견한 이였다. 내 눈엔 보석같이 반짝반짝하던 아이의 첫니. 이제 막 빼꼼히 잇몸 위로 드러난 이였다. 잘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든 찍어서 자랑하고 싶었다. 지금 율이처럼 말이다.  

       그 보석 같은 이가 뚝 떨어져, 지금은 식탁 위 작은 봉투에 있다. 

        돌 즈음, 등을 보이며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이 모습에서 왈칵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난다. 마냥 내 품으로만 향하던 발걸음이 나를 돌아서는 순간, 내가 아이와 이별하는 모습이 떠오르며 부모가 어떤 존재인지 현실로 다가왔다. 발달의 단계마다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로 다독이듯, 삶의 단계마다 스스로 해쳐나가 바로 설 수 있게, 아이가 부모와 이별해 어른이 될 수 있도록 가장 가까이서 돕는 게 부모구나 싶었다. 아이는 부모의 둥지에서 떠나야 할 운명인 것, 부모는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엄마가 주었던 서든 어택의 짜릿한 추억을 율이에게 주지 못해 아쉬움이 남지만, 나는 다시 아름다운 이별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한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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