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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눈] '낯선 것'이 이끄는 삶(김윤동)

비평의 눈

by 제3시대 2017.12.2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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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이 이끄는 삶



김윤동
(본 연구소 행정연구원)

 


    내가 몸 담고 있는 교회에서는 각 교회학교 부서별로 제자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간략히 설명하여 ‘제자학교’라 함은 일종의 교회 내 성인교육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제자 훈련의 교회학교 버전인 셈이다. 이 글에서는 이번에 ‘읽기와 쓰기’라는 주제 아래 초등학교 1, 2, 3학년 아이들과 활동을 진행하였는데, 흥미로운 결과가 있어 이 지면을 통해 공유하려 한다.


시를 쓰기가지 있었던 일


   우리는 ‘읽기와 쓰기’라는 주제 아래, 2주에 걸쳐 시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초등학교 저학년 친구들에게 막연히 주제를 던져 시를 쓰게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나는 한 가지 특별한 방법을 써서 아주 ‘낯선 하루’를 경험해보기로 했다. 그 특별한 방법이란 하루의 활동을 미리 계획하지 않고, 일종의 룰렛 게임처럼 임의대로 1) 누가(주체), 2) 어디서(장소), 3) 어떻게(교통수단), 4) 무엇을(활동) 할 지 각 항목별로 여러 후보를 정해놓은 후 아이들이 다트를 던져 다트가 꽂히는대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우리가 준비한 다트판은 다음과 같았다.



1회차(171028) “모두 다 버스를 타고 월드컵 공원에서 자유시간을 가진다.”


   위 그림판을 이용해 다트를 던져 첫 날에 해야할 우리의 행동은 “1) 모두다 2) 월드컵 공원에서 3) 버스를 타고 4) 자유시간을 가진다.”로 정해졌다. 이 결과는 아이들이 원하는 결과와는 매우 달랐다. 아이들은 최근 개장한 ‘국내 최대 및 최신식’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만큼 대단히 화려한 종합쇼핑몰, 스타필드 고양을 가는 것이었고, 거기에 가장 편안한 방법인 자가용을 타고 맘껏 돈도 쓰고 시간도 쓰는 자유시간을 가지길 원했다. 하지만, 다트를 익숙하게 던지지 못하는 아이들은 실망스러운 결과를 손에 안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마지못해 월드컵 공원으로 향했다. 교사들과 나는 그 곳에도 아주 재미나게 놀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말해보았지만, 아이들은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는 그 곳으로 가는 첫 걸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한 번에 그 곳으로 가는 버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하철도 불광역에서 월드컵공원역을 가는 데에 한 번에 6호선으로 약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버스는 그렇지 못했다. 저학년이라 버스에 익숙하지 못한 친구들은 처음부터 힘들어했다. 어쩔 수 없이 연신내역 정거장까지 가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연신내역부터 월드컵 공원까지 가는 버스는 이미 우리가 타기 전부터 손님들로 꽉 찬 ‘만원버스’였다. 덩치가 작은 아이들이 어른들의 틈바구니에 밀려 뒷좌석 쪽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앞에서 있는 대로 힘들어했다. 마침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해준 몇몇 친구들은 그나마 자리를 앉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여기저기 꽉 끼여서 ‘숨막힌’ 여정을 가야했다. 승객이 중간에 조금이라도 빠질 줄 알았지만, 우리가 도착하기 전까지 많이 줄지 않았고, 겨우겨우 인파의 틈을 뚫고 버스에서 내렸을 때 아이들과 교사들은 모두 녹초가 되어 버렸다. 이제 우리는 힘든 길을 달려 가기로 한 곳에 도착했으니 그나마 다행히 어떤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시간을 가지’기만 하면 되는데 그런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배도 고프고 지쳐버린 상태가 되었다.


    그래도 아이들이라 그런지 일단 넓은 곳에 도착하니 뛰어 놀고 싶은 눈빛이 살아나는 것 보였다. 게다가 공원에 와서 무슨 계획된 활동을 가지는 게 아니라 ‘자유시간’을 갖는 것이었으니 지친 마음은 조금 편안해졌다. 조금 걸어가서 편안해 보이는 장소를 찾고 편의점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정식 식당도 아니고 편의점이다보니 아이들은 그저 컵라면만 먹고 싶어했다. 힘들게 바깥 활동을 나와서 귀한 집 자식들에게 컵라면을 먹이려니 어른으로서 조금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그마저도 배고팠던 아이들에게는 맛있게 느껴졌는지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고마웠다. 그렇게 한참을 컵라면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50대 남자 한 분이 낮부터 거나하게 취하셔서 아이들이 먹고 있는 곳 주변으로 어슬렁거리셨다. 아이들은 힐끔힐끔 바라보았고 생각보다 무서움을 느끼던 그 때, 아저씨는 아이들을 향해서 소리를 쳤다. 아이들은 뭐라고 말하는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단히 공격적으로 소리를 질렀고, 어떤 한 아이의 말로는 ‘죽어버리라’는 말도 내뱉었다고 한다. 뜬금없는 아저씨의 소리지르는 모습에 먹던 컵라면도 더 이상 못 먹겠다며 아이들은 소스라치듯 놀랐고, 다행히 물리적 접촉은 없었지만 교사 중 한 명이 경찰에 신고를 하여 아저씨는 아이들 근처에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몇몇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아 했지만, 어떤 아이들은 이 광경이 너무나 낯선 경험이라 많이 놀란 듯 보였다.


    식사 이후에 아이들은 마침 옆에 있는 놀이터를 발견하고 놀이터에서 놀게 되었다. 야외 놀이터 치고 월드컵 공원 내에 있는 ‘아기새 모험 놀이터’는 꽤 규모가 크고 평소에 일반 동네에 있는 놀이터보다 더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놀잇감들이 있었다. 요즘은 잘 볼 수 없는 ‘흙바닥’ 놀이터에다가 아주 어린 유아들이 놀 수 있는 기구로부터 큰 아이들도 시시해 하지 않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크고 높은 놀이기구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아이들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놀았고, 시를 쓸 때에도 거침없이 하루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떠올리면서 써나갔다. 아이들이 쓴 시의 소재는 매우 다양했다. 어떤 아이들은 화창한 바깥 날씨에 대해서 썼고, 어떤 아이는 유난히 맛있었던 라면에 대해서, 어떤 아이는 놀이터에서 자신에게 버겁고 힘겨웠던 놀이기구에 대해서 썼다. 반짝 거리는 돌을 설명한 아이도 있었고, 지저귀는 새 소리에 대해서 쓴 아이들, 그리고 밥먹는데 다가와 죽어버리라고 소리친 대낮의 취객 아저씨에 대해서 쓴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즐겁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루를 즐겁게 놀고 시를 쓰는 아이>


2회차(171104) “모두 다 지하철을 타고 스타필드 고양에서 자유시간을 가진다.”


    아이들은 그렇게 즐겁게 놀이터에서 놀았지만, 몸 안의 습속이란 그렇게까지 쉽게 변하지는 않는 법이다. 1주일이 지나 다시 다트판 앞에 선 아이들에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았더니 서슴없이 스타필드에서 자유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당연히 그 지난 주의 버스를 타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부모를 통해 들은 한 이야기로는 아이가 1주일 후에 다시 다트를 던진다는 생각에 1주일 내내 다트를 연습했다는 풍문도 있었다. 결국 아이들은 지난 주보다 훨씬 집중하여 다트를 던졌고, 본인들이 원하는 결과로 가장 가고 싶은 스타필드 고양을 편안하고 안락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여 자유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결정지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스타필드 고양을 들어선 순간 나는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눈이 휘둥그레해질만큼 화려한 불빛들과 간판들을 비롯한 다양한 볼거리들이 아이들의 눈을 쉴새없이 잡아 끌었지만 과연 그렇게 눈과 마음을 빼앗긴 채 시간이 흘러서 아이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이나 할 수 있을지, 그걸 가지고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가 참으로 의심스러웠다. 역시나 아이들은 실내로 들어서자 자기보다 몇 배나 크고 거대한 규모의 매장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도열하고 있는 곳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손에 잡히지 않는듯 신기해하기만 할 뿐, 정작 재미있게 자기들이 가진 ‘자유시간’을 어떻게 써야할지 알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나 또한 스타필드에 왔고 시간을 보내야 하니 어떻게든 발걸음을 옮기고는 있었지만, 무한정의 돈이 주어져 있지도 않은 우리로서는 무엇을 해야 여기서 ‘자유롭게’ 재미있게 놀 수 있을지 전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스타필드 고양의 중앙광장, 거대한 광고'기둥'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솟아 있다.>


    겨우 그 정처 없는 우리들의 발걸음의 방향을 이끌어 준 것은 그 곳에 와본 적이 있는 교사 한 명이었다. 그 교사는 아이들에게 장난감이 많이 있는 공간으로 가자고 했고, 아이들은 장난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그 곳에 가서 슬슬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산더미와 같은 장난감은 애초에 구매를 목표로 한 곳이었기 때문에 다 가지고 놀 수는 없었다. 그나마 몇 가지의 장난감 ‘상품’을 잠시 ‘체험’하는 의미로 갖고 놀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두었는데 아이들은 많고 체험하는 상품으로서의 장난감은 아주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 양보의 압박을 받으며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정도의 시간만 가지고 놀 수 있었다. 


    어째 그렇게 ‘그림의 떡’들에 눈을 빼앗기고 있을 때쯤에 배가 고픈 시간이 되었고, 드디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커다란 피자와 탄산음료, 핫도그 등 아이들의 입맛에 최적화된 음식을 아주 싼 가격에 먹을 수 있었다. 지난 주에 죽일듯이 노려보는 취객 아저씨와 어슬렁거리는 비둘기 무리 속에서 겨우 컵라면을 먹었던 것에 비하면 위험한 일도 없고, 비둘기도 없이 입맛에 딱딱 맞는 피자와 탄산음료를 먹는 일은 매우 행복한 일이었다.


    즐거운 식사가 끝난 뒤, 아이들은 포만감으로 가득한 채로, 다시 장난감 가게로 들어가 찔끔찔끔 노는 것이 싫었던 듯, 바깥으로 나가서 놀기를 제안했더니 좋다고 했다. 바깥은 11월 초여서 조금 춥고 바람이 많이 불긴 했지만, 아이들에게 그런 정도의 제약은 노는 데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넓은 공터에서 아이들은 술래잡기, 얼음 땡, 멀리뛰기 등을 하며 놀았고 특히 어른들과 함께 한 림보 게임을 하며 신나게 시간을 보냈다. 그제서야 아이들은 경직된 웃음에서 자기도 모르게 환한 웃음을 지었다.


아이들이 지은 시 비교


    하루는 월드컵 공원에서 하루는 스타필드에서 보내고 난 뒤에 아이들이 쓴 시를 비교해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고, 과연 그 시들은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먼저 첫 날 월드컵 공원에서 하루를 보내고 지은 아이들의 시를 보자.


낯선 하루 – 남00(2학년) 


파라솔 밑에서 라면을 먹었다, 

라면을 먹으면서 가을 풍경을 감상한다. 


짹짹짹 울부짖는 새소리. 

푸득푸득 비둘기 소리. 


가을이 온 것 같다. 


 한강시민공원 – 민00(3학년) 


 한강시민공원에 도착 

도착하자마자 후루룩쩝쩝 라면 먹는데 

어떤 아저씨가 욕을 많이 하네. 


 라면 다 먹고 나서 

아기새 모험 놀이터에 와서 재밌게 논다. 


 시끌벅적 웃음소리가 들린다.


    여기 아이들의 시에서는 풍경들이 등장한다. 주변이 한가하니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라면을 먹어도 가을 풍경을 볼 수 있고, 재미있게 놀고 있다 해도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주변이 시끄럽지 않으니 라면을 먹어도 그 소리가 들리고, 새가 울어도, 그저 지나가기만 해도 짹짹짹거리는 새소리와 푸드득 거리는 새의 발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하루를 보내면서 주변과 만나고 있고,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다음 시들을 보자.


기쁜 하루 – 선00(2학년) 


아기새 모험 놀이터에서 놀았다. 

어려운 것도 있었고 쉬운 것도 있었다.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초록봉 오르기였다. 

쉬운 것 중 하나는 정글짐이다. 

아주 재미있는 것은 바퀴타기이다. 


 이 시를 쓰려고 논 것이 아니었다. 

심심해서 논 것이었다. 


 낯선 하루 – 지00(1학년) 


 한강시민공원에 갔다. 

이 시를 쓰려고 여기에 왔다. 


다트도 했는데 롯데월드와 스타필드를 가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한 아저씨도 봤다. 


오늘은 참 낯선 하루다.


    두 시는 참 재미있게도 상반된 진술을 보이고 있다. 한 아이는 ‘이 시를 쓰기 위해서 여기에 왔다’고 했고, 한 아이는 ‘이 시를 쓰려고 논 것이 아니’라고 했다. 같은 하루를 보내고 같은 공간에서 놀았지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같은 시간과 공간을 보낸 사람들 간에도 상반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자신이 놀이터에서 잘 다루지 못하는 놀이기구가 있다는 것을 알기도 했으며, 이상한 아저씨가 자기에게 접근한 기록까지 남기고 있다. 공히 자기에게 어렵고 힘들고 어색한 경험이 머릿 속에 맴돌고 있고, 그 감정은 그닥 불쾌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확장해 나가고 있었고, 그것은 가치 판단의 이전 문제인 것이며, 자연스럽게 세상이 자기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수용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반면에, 1주일이 지나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스타필드 고양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낸 아이들의 시를 살펴 보자.


피자 – 우00(3학년) 


 나는 처음으로 먹물 피자를 먹었다. 

맛있었다. 다음에도 또 먹고 싶다. 

그리고 아이스크림도 맛있었다. 

또다시 오면 이걸 또 먹고 싶다. 


 아이스크림 – 전00(3학년) 


아이스크림이 입 안에서 사르르 아주 진하다. 

이런 아이스크림은 역시 스타필드 트레이더스 아이스크림이지!!!!!!


    일단 첫날 월드컵 공원에 가서 시를 쓴 것보다 훨씬 짧아진 것을 볼 수 있다. 아이들 머릿 속에는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시 속에 나타나 있지 않다. 더욱 놀라운 것은 첫날에 보여주었던 서정적이고 세계를 감상하며 자기의 언어로 사실을 기술하려고 애썼던 아이들의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전혀 아무런 감흥 없이 자기의 욕망을 드러내거나 즉자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렬하게 자극했던 피자와 아이스크림에 대한 혀의 반응을 기술할 뿐 과연 아이들이 자신들이 만났던 세계와 소통하고 있다고 보여지지 않을만큼 단순하게 기술하고 심지어 이 시 안에 있는 자아만큼은 홀로 있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틀 모두 참석한 아이 중 한 아이의 시를 비교해보면서 하루를 어떻게 다르게 느꼈는지를 살펴보자.


낯선 하루 – 황00(2학년) 


 파라솔 밑에 무서운 아저씨 

욕 쓰고 죽으라고 하며 

무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무서운 아저씨 

너무 무서운 점심 


모험 놀이터에서 재미있는 자유시간 

남자 화장실에 들어온 아줌마 

 아주 낯선 하루 


 스타필드의 날 – 황00(2학년) 


 스타필드에서 놀았다.


    이 두 시에 대해서는 이 시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의 시를 통해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다.


    여전히 아이들에 대한 교육방식과 방침에 대해서는 의견과 이론들이 분분하다. 한 쪽에서는 아이들의 의사와 아이들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여 충실히 그것을 성취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 하는 의견이 있고, 그 반대 쪽에는 여전히 아이들에 대해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무조건 자기의 의견대로 아이들을 이끌고자 하는 부모들의 행태도 더욱 극단적으로 변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아이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간과하는 것은 아이들을 학대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어느 정도 진전된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두 번을 겪어본 결과, 아이들은, 더 나아가서 나를 포함한 모든 어른들조차도 스스로 자기 속에 있는 진짜 욕망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나아가 수 년 전에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릭 워렌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부터 오늘날까지 그 유사제품으로 유통되고 있는 ‘YOLO (You Only Live Once)’ 에 이르기까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기획하여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모든 패러다임에 대해서 적어도 이제는 기각을 선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은 결코 자기가 기획한 대로 선형적으로 진행되어 마지막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며, 순간순간 이루어지는 사소하지만 불현듯 도래하는 ‘만남’,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수용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적어도 이번 활동 안에서 아이들은 거대한 자본의 성전인 스타필드에서 ‘자유시간’을 가졌지만, 어떤 어색한 순간도, 어떤 낯선 순간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런 자유를 누리지 못했으며, 기껏해야 자기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피자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정신과 몸을 압도하는 자본의 에워쌈 속에서 ‘논 것’이 아닌, ‘놀아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반면에 월드컵 공원에서 벌어지는 아주 사소하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낯설고 어색한’ 순간들을 통해서 아이들은 세상과 만났고 소중한 자기를 확장했으며, 생의 통찰을 얻어냈다.


    물론, 모든 삶에 대한 기획을 부정하는 입장은 아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끊임없이 그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지금도 몸부림을 치고 있으며,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해도 내일의, 1년 후의, 10년 후의 자기의 욕망을 점검하고, 방향을 짓는 일에 몰두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하룻밤의 벌이를 위해 메시아가 문 앞에서 두드리고 있는데도 매몰차게 방이 없다고 거절했던 여관의 주인들처럼 우리 또한 도래하고 있는 구원의 표지들을 놓치고 상습적인 욕망의 수레바퀴 안에서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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