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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눈] 우리 시대의 히포크라테스가 나타나길 바라며...(이주혁)

비평의 눈

by 제3시대 2018. 2. 2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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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히포크라테스가 나타나길 바라며...




이주혁

(성형외과 전문의, 키스유 성형외과 의원장)

 


많은 사람들이 히포크라테스를 의성 (醫聖) 이라고 알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리고 의료 윤리가 무너져 가고 있는 이 시대에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이 의사들에게 아쉽다. 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을 자꾸 듣곤 합니다.

그런데 과연 많은 사람들이,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를 잘 알고 저렇게 그를 인용하고 있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는 기원전 400년경의 사람이고 저술 분량은 굉장히 방대해요. 단지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한 꼭지만 따서 의료 윤리 차원에서 한번씩만 인용하고 지나가기엔 그는 너무나 중요한 인물이거든요.

오늘 일단 저는, 익히 알려져 있는 '선서', the Oath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고 많이 들어 왔던,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아래와 같아요.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에게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써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겠노라.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 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하겠노라. 

나는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는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이 선서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매스미디어 등에서는 '돈만 찾고 생명을 경시하는 의사들' 이라는 의미로 요즘의 의료 세태를 비판하곤 합니다. 의사가 되고 나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흔히 무시된다는 거죠.

그런데 막상 저 선서는,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쓴 게 아니에요.

1948년에 세계 의사협회가 제네바에서 만든 제네바 선언문이죠. 나치의 범죄에 의사들이 참여했던 비극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새로운 '선서'를 제정하기로 결의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저 '선언'에는 인종과 계급 등을 초월해서 진료하겠다는 약속이 들어간 것이구요. 인도주의적이고 사해동포주의적인 의사 윤리를 의사들끼리 모여서 결의했다기보다는, 길고 끔찍했던 전쟁이 마무리된 후 그 후유증을 되새기며 같은 일의 재발을 방지하고자 만든 거라 할 수 있어요.

정작 히포크라테스는 그리스의 적국이던 페르시아 왕이 자신의 군대를 엄습한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해 그를 초청하려고 높은 관직과 많은 금은보화를 제시했을 때 이렇게 잘라 말하고 거절합니다.

"저는 의식주와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충분합니다. 제가 페르시아의 풍요를 즐기거나 그들을 전염병으로부터 구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페르시아인들은 그리스인의 적들이기 때문입니다." (개정판 히포크라테스 선서, 반덕진 역, 서울, 계축문화사, 2006.)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인종, 종교, 국적 등을 초월해서 오직 의사로서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키겠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내용이랑 정작 본인의 행동은 너무 다르군요.

제네바 선언문이 아닌, 진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원문은 아래와 같아요. (물론 이것조차도 고문서 해독 및 연구가들 사이에서 히포크라테스 본인의 저작이 맞다 아니다를 놓고 수십년을 논쟁하고 있지만요)


The Oath

나는 의술을 주관하는 아폴론과 아스클레피오스와 휘기에이아와 파나케이아를 포함하여 모든 신 앞에서,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이 선서와 그에 따른 조항을 지키겠다고 맹세한다.

나에게 의술을 가르쳐 주신 분을 나의 부모와 다를 바 없이 소중하게 섬기고, 내가 소유한 모든 물질을 그분과 공유하면서 그분이 궁핍할 때는 그분을 도와주고, 그분의 자손을 나의 형제와 같이 여기고, 그들이 의술을 배우고 싶어 하면 보수나 조건 없이 그들에게 의술을 가르치고, 내 아들과 내 스승의 아들과 의술의 원칙을 따르겠다고 선서한 제자들에게만 교훈과 강의를 포함하여 모든 방식의 교수법으로 의술에 관한 지식을 전달할 따름이고,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전달하지 않겠다.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이롭게 하기 위해 섭생법을 쓰는 반면 환자가 해를 입거나 올바르지 못한 일을 겪게 하려 그것을 쓰는 것은 금할 것이다.

나는 어떤 요청을 받더라도 치명적인 의약품을 아무에게도 투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권고하지도 않겠다. 또한 마찬가지로 나는 어떤 여성에게도 낙태시킬 수 있는 페서리를 주지 않겠다.

나는 내 일생 동안 나의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펼쳐 나가겠다.

나는 절개를 하지 않을 것이고 결석환자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맡길 것이다.

내가 어떤 집을 방문하든지 오로지 환자를 돕는 일에만 힘쓸 따름이고, 고의로 어떤 형태의 비행을 일삼거나 피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로 저지르지 않겠으며, 특히 노예든 자유민이든 신분을 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자이든 여자이든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환자와의 성적 관계를 금할 것이다.

나의 직무 수행과 관련된 일이든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든 관계없이, 내가 보거나 듣는 바로서 그 사실이 절대로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경우에, 나는 일체의 비밀을 결코 누설하지 않겠다.

내가 이 선서를 절대로 어기지 않고 계속해서 지켜 나간다면, 나는 내 일생 동안 나의 의술을 베풀면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항상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일 내가 이 선서를 어기고 약속을 저버린다면, 이와 반대되는 일이 있길 기원한다.


읽은 바와 같이 '선서'는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 의사들이 그러고 있는 것처럼, 환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의사로서의 책무를 행하겠다는 그런 내용이 아니었고,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하는 의사의 행동 요강, 윤리적 다짐을 계약하는 문서였어요.

자그마치 기원전 400년~500년경에 써진 걸로 생각되고 있는 고문서에요. 그리고 히포크라테스라는 한 사람의 저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토록 오래 전에 써진 문서가 지금까지 보호받고 전승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 문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란 걸 의미하기도 해요. 그래서 그 내용을 살펴 보는 것은 충분한 의미가 있어요.

의사로서 히포크라테스, 아니 의술 집단인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수많은 저술들을 남겼는데, 어렵지만 이들의 의학 내용을 최대한 단순하게 요약한다면 주술적 초자연적 치료를 비판하는 합리주의 의학, 연역적 일변도의 사고를 비판하는 경험주의 의학의 시초였습니다. 또한 치료법에 있어 섭생 (먹는 것, 마시는 것, 운동, 휴식, 수면 등)을 강조하며 인체의 체액간의 균형이 건강이라고 하는 자연주의 의학을 표방했습니다.

이는 매우 놀라운 것이었어요. 기원전 400년경이면 중국은 전국시대였고 한반도는 고조선… 진짜 까마득한 옛날이에요. 대부분의 나라에서 종교라고 해봤자 무슨 애니미즘 샤머니즘 그런 거나 있을 때일 텐데, 벌써 초자연적인 개입이 아닌 과학적이고 경험론적인 의학을 웅변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에요. 시대를 한참 앞서 나갔던 겁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집 중 '신성한 질병에 대하여' 일부를 인용합니다.


최초로 이 질병 (간질로 생각됨)을 신성화한 사람들은 오늘날의 주술가들이나 정화사들이나, 떠돌이 사제들이나 돌팔이들과 같은 이들이며, 자신들이 꽤나 경건하고 뭔가를 아주 많이 알고 있는 체한다. …… 그들은 정화와 주문을 이용하고, 목욕이나 병든 사람들이 먹기에 적합하지 않은 많은 음식을 금하도록 지시한다. 그들이 금하는 것들로는, 멜란우로스, 숭어, 뱀장어를 들고 육류 가운데는 염소, 사슴, 새끼돼지 및 개고기를 들고…. 하지만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리비아인들 가운데 건강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염소 가죽 위에 눕고, 염소 고기를 먹으며… 그들에게는 염소와 소 이외에 다른 가축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Hippocarate Tome II ; La Maladie Sacree, texte etabli et traduit par J. Jouanna, Paris; Les belles Lettres, 2003.)


간질이란 전세계의 곳곳에서, 신의 저주로 생각됐던 병이에요. 자그마치 중세시대를 넘어 근대 의학의 번성 직전까지도. 근데 히포크라테스는 '간질'이 신적인 기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자연적 본성 (Physis)과 계기적 원인(Prophasis)을 가진다는 반대 주장을 제시합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집. 여인석.이기백 역. 경기도 파주시; 나남 출판사, 2011)

즉 의학을 형이상학과 초자연적인 개입 속에만 놔두지 않고, 합리적인 학문으로 끌고 나간 것이 히포크라테스가 존경을 받는 가장 큰 이유라는 겁니다.

하지만 자그마치 2500년 전이었어요. 저 때에는 종교를 의학에서 배제한다는 것은 사실은 불가능했을 꺼에요. 그래서 선서 앞머리에는 의술의 신들 이름이 잔뜩 나오지요. 아무리 합리주의를 표방한다 해도, 절대로 신을 무시하고 종교적 영향을 없앤다는 그런 건 아니었죠.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온은 의술의 신인데 그에게는 딸들이 있었어요. 휘기에이아는 건강을 의미하고, 파나케이아는 만병통치의 약초를 의미합니다. 즉 한 명은 예방의학을 상징하고, 한 명은 치료 의학을 상징하지요.

히포크라테스 의학은 평소에 건강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할 것. 그러나 건강을 잃게 되면 개입해 치료할 것. 이렇게 요약할 수 있는데 선서의 앞머리에 이들 여신의 이름이 전부 빠지지 않고 나열되었다고 하는 것은, 이렇게 균형 잡힌 의료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겠습니다.

두 번째 항목인 스승과 의학 공동체에 대한 의무 사항 언급에 대해선 일반인들의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 듯해요. 근데 당시의 사회상을 상기해 보면 이해가 갈 수 있습니다. 당시 돌팔이 의사들이나 사이비 의사들이 그리스에 매우 많았던 거에요. 이들이 의료 현장에서 많은 문제들을 일으켰고 지금처럼 어떤 면허증, 자격증 제도가 공공적으로 확립되지 않은 시대다 보니 의술, 의학 전수에 있어 그 자격을 나름대로 인증하는 절차가 필요해 진 거에요. 그 절차가 바로 이 선서였구요.

그 밑에 안락사와 낙태 금지에 대한 조항들이 나오는데 이것이 좀 논란이 많아요. 고대 그리스 사회는 안락사와 낙태가 윤리적으로 허용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the oath에 저렇게 돼 있어서 나중에 중세 그리스도교 사회에 이 문헌이 전해지면서 각색된 건 아니냐, 혹은 히포크라테스 학파가 아닌 다른 학파에서 이 선서문을 쓴 건 아니냐. 별의별 설이 다 나왔죠.

외과적 수술의 금지 부분은 더더욱 많은 논란에 휘둘리는 부분입니다. 왜 외과 수술을 하지 말라는 서약을 시켰을까? 히포크라테스의 다른 저작에는 골절 정복과 더불어 외과적 수술에 대한 문헌도 전승되고 있거든요. 학자들도 아무리 해도 설명이 시원하게 안 되는 부분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현실 윤리적으로 안락사와 낙태는 전면적으로가 아닌, 부분적으로 허용되어야 해요. 수없이 많은 논쟁이 있었던 부분이지만, "나는 윤리를 지켰다. 그러나 저 미혼모의 삶은 아이가 탄생한 이후 정말로 심하게 망가졌다" 이런 건 곤란하죠. 우리 사회가 미성년자인 미혼모를 받아들일 자세가 전연 안 되어 있으니까요. 의사 혼자 손에 피를 안 묻히고 떳떳해진다고 해서 그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윤리는 아닐 겁니다. 윤리의 방향성은 항상 시대에 맞게 손질돼야 하는 것이구요.

당시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철학에서 분리된 한 학문적 분과와 같은 의미에서의 의학을 지향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히포크라테스 바로 직후의 인물인 플라톤이 그의 저작에서 이상 사회는 철인 정치를 통해 구현되는 것으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어쩌면 비슷한 맥락에서 히포크라테스도 그 저술의 많은 부분이 가장 이상적인 인체의 균형, 섭생의 균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먹고, 마시고, 어떻게 일상을 보내고 하는 이른바 '섭생법'이 선서의 가장 윗 단락에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적극적 치료와 개입에 대한 조바심이 보이지 않고 대단히 내과적, 학문적인 느낌이란 거죠. 따라서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내부 강령'을 정해, 칼을 대는 수술은 그걸 하기 좋아하는 다른 외부 그룹에 넘겼다고 볼 수 있어요. 히포크라테스는 이처럼 주요 강령들을 선서로 만들어서 의학을 배우러 온 학생들에게 맹세하도록 한 것입니다. 윤리적 내용들이 나오지만, 윤리적인 문서라고 전체적으로 평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좀 더 합의적이고, 그것은, 이것은 이러 이렇게 합시다. 라고 정해 놓는 '선 긋기'의 느낌이 강합니다.


그럼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결국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란 뭘까요?

그 핵심은 제가 생각하기에, 의료적 윤리적 상황에 대한 충분한 고찰과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것, 그리고 불완전한 제도를 보완할 것, 그리고 환자를 위하여 이 모든 것을 해 나가겠다는 소신을 가질 것. 이런 것들입니다.

고대에서 이제 현대로 넘어와서, 우리의 의료 환경에 대해 얘기할 차례군요.

현대의 의료는 집단화, 자본화를 그 특징으로 합니다. 철저히 자본을 중심으로 의료 노동력과 기술, 연구가 모두 집중되고 있어요. 병원의 거대화, 장비화, 그리고 의료 영역의 세분화, 분업화가 계속되고 있지요. 그리고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자본주의적 시장 경쟁의료로 인해 의료 기술의 상품화와 정보화가 급격히 팽대해졌죠.

극도로 대형화, 자본화된 병원에서 의사는 단지 그 분업화된 체인의 한 연결고리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가면 갈수록 더욱 그렇게 되어 가요. 신생아 중환자실을 예로 들까요?

미숙아의 건강과 소생을 위해 최선의 환경을 제공하려면 양심적인 의사 한 명이 거기 들어가서 열심히 한다고 되는 건 단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단 좋은 Incubator set가 필요합니다. 거기에는 온도와 습도가 자동적으로 맞춰져야 하고, 알람이 울릴 수 있는 모니터 장비가 갖춰져 있어야 하고 모니터는 오작동이 최소화되도록 quality control이 잘 돼 있는 우수한 성능의 제품이어야 합니다. 그게 가장 기본 중의 기본 장비인데, 딱 거기까지만 몇 천만원이 들어요. 인큐베이터 단 한 대에. 근데 당연히 그게 다가 아니죠.

신생아의 정맥주사 세트, 채혈 세트, 그리고 그 아기들에게 들어가는 각종 특수한 약물들, 검사 장비, 진단 장비 등이 전부 거대 자본이 아닌 이상 도저히 갖출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한 명 키우는 데 5년은 족히 걸릴 숙련된 간호사들이 24시간 조를 이뤄 릴레이 근무를 하고 있어야 하고요, 여차하면 수술실로 옮길 수 있도록 우수한 소아 외과 전문의가 대기하고 지원하고 있어야 해요.

소아과 전문의라는 한 명의 의사는, 단 한 명의 미숙아를 살리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이런 방대한 조직 속의 한 고리일 뿐입니다. 그 소아과 전문의가, 어떤 의료적 소신을 갖고 어떤 철학적 신념을 갖고, 그게 과연 이 거대한 시스템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까요. 절대적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는 훨씬 낫겠지요. 하지만, 이런 것이 세분화 분업화된 의료의 현장이라는 걸 사람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명의의 개념은 히포크라테스나 편작의 시절과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신생아가 죽었을 때, 한 명의 의사의 윤리적 문제 혹은 무책임, 부주의로 화살을 돌리고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은 어디로 갔느냐고 한탄하는 건 그림은 좋고 말하기도 참 편하지만 단지 그때뿐입니다. 그 이면에는 굉장히 구조적인 본질의 문제가 내재돼 있는데 다들 관심이 없죠. 골치 아픈 문제이고, 누구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 그보다는 한 명을 끌어내다가 목에 올가미를 씌우고 마구 욕을 하는 게 훨씬 편해요.

그래서 다들 그렇게 하고 있는 거고요.

누군가 히포크라테스적인 정신을 구현하려 한다면, 오로지 환자를 위해 자신의 의술을 발휘하고자 한다면, 의료 제도를 고쳐야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시장 자유 경제적 자본주의 의료는 필연적으로 과잉 처방, 과잉 진료, 의료비 상승, 대형 병원에의 쏠림 및 쓸데 없는 신기술 광고 홍보 및 저수익 분야에의 투자 실종 및 소멸로 가게 돼 있습니다. 또 민간에 거의가 의존하는 의료 상황에서 민간 병의원을 전혀 지원하지 않고 진료비 삭감만 하는 관행은 의료비를 떨어뜨리긴 커녕 병의원의 폐업 및 적자에 대한 위기감만 자극하여 더 많은 수익형 의료 모델을 시장에 쏟아낼 뿐입니다.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중앙 정부 및 지방 정부가 훨씬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서 그 시설을 짓고 관리해야 하고요, 가벼운 1차 의료 질환에 대해서는 수가 상향, 중증 질병이나 상해에 대해서는 수가의 현실화 및 건보 지원의 확충 등도 시급합니다. 수만 가지가 넘는 의료 항목에 대한 복잡한 의료 수가 평가 시스템을 계속 업데이트하고 오류 없이 처리할 최신의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고요, 지역사회 주치의 등록제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이렇게 다양한 제도들을 손대지 않고는 명의는 커녕 아주 기본적인 의사 환자간의 신뢰도 회복될 수 없고 결국은 신생아 중환자실이나 중증 외상센터의 부실화가 그 결과가 된 것입니다. 근데 아직 시작일 뿐, 앞으로 그렇게 부실화될 것으로 보이는 부분은 무수히 많아요. 분만실이 대표적입니다.

써놓고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돈 문제이긴 해요. 그런데, 참 듣기 거북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의료가 그렇습니다. 신생아들이 어이가 없이 죽은 사건은 사우나 화재 사건에서 30명 가까이 죽은 일이나 근본을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 경제와 제도, 구조적 문제들입니다. 소방관의 비윤리와 무능의 문제도 아니었고, 담당 의사의 비윤리 및 무능의 문제 역시도 아니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히포크라테스가 꼭 나타나길 고대합니다. 그러나, 그건 한 개인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촛불 혁명이 세상을 바꾸듯 수많은 깨어 있는 사람들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필요한 일입니다. 이곳에 그가 현생한다면, 그 모습은 아마도 분석학적인 수사와 변증을 하는 학자가 아니라 횃불을 든 혁명가의 모습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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