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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남북화해시대 그리스도교 평화운동의 과제(김진호)

시평

by 제3시대 2018. 4. 2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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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화해시대 그리스도교 평화운동의 과제[각주:1]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남북정상회담 일주일을 남겨두고 또 한 번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종전선언’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1953년 7·27 휴전협정은 양 진영의 ‘전투 행위 중단’을 뜻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하여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남북대화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을 과제로 삼아왔다. 물론 휴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닌 남한정부가 평화협정의 당사자로 참여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남한이 사실상의 당사자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여 남한정부가 북한과 함께 종전선언을 한다는 것은 국제법적 효력을 갖지는 못하겠지만 매우 중요한 변수일 수 있다. 이것은 곧 열릴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가 주요 의제로 부상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갈망하던 한반도 평화체제는 머지않았다.

2005년 9·19공동성명에서 6자회담 당사국들은 한반도 평화협정과 단계적 비핵화를 선언한 바 있다. 한데 새로 집권한 이명박 정권은 사실상 이 공동성명을 부정했고, 북한은 제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한반도는 다시 냉전체제로 회귀했고, 그것이 남한에선 강경군부의 재정치화와 냉전주의자들의 정국 주도권 강화로 이어져 결국 박근혜 정부의 탄생으로 귀결되었다. 정치적 메시아주의가 대중을 동원하여 박정희의 분신으로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냈다는 정치신학적 분석은, 일면 타당성이 있지만, 두 정권의 정치적 자원의 동원능력의 차이를 읽는 데는 실패했다. 사실 박근혜나 그 측근들도 스스로를 오인해서 카리스마적인 권위주의적 지도자(즉 메시아적 정치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체제처럼 정권을 운영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박정희와는 달리, 결코 절대일인으로서 충성경쟁을 벌이는 관료집단을 거느릴 수 없었다. 서로 다른 이해집단들이 냉전주의적 정치지형 위에서 극우주의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면서 일시적으로 결속한 것이 박근혜 정권의 내적 속성이기 때문이다. 하여 그들 간에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이 정권은 스스로 내파될 것이 예측되었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 이후 다시 기회가 왔다. 문재인 정권은 남북대화 기획을 재가동했고 ‘코리아패싱’이라고 조롱거리가 되었던 상황을 빠른 속도로 반전시켰으며, 한반도는 또다시 평화체제 출범 직전 단계에 도달했다. 아마도 현 정부의 지난 1년간의 정치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라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첫 번째 디딤돌을 성공적으로 놓은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렇게 정부가 앞서서 성공적인 평화의 디딤돌을 놓는 동안 시민사회, 특히 그리스도교계는 무엇을 했을까. 지난 1980년대, 남북한이 서로 강경하게 맞서고 있을 때 대화의 돌파구를 연 것은 개신교 소수파인 진보세력이었다. 특히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막강한 국제 네트워크와 공신력을 이용해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물론 가톨릭도 이와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젊고 유능한 청년들이 경험을 쌓고 있었다. 현 정부의 남북대화 전문가들 중 이때부터 이 일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이들이 적지 않다.  

2018년, 남북화해시대가 꿈처럼 다시 도래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1980년대 이후 개신교와 가톨릭의 평화통일운동은 그 밑거름이었다. 한데 지금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문의했던, 두 종단의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속에는 종단 내에 냉전주의자들의 위세가 훨씬 강해서 시대를 역진하고 있다는 우려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한국개신교는 극우주의자들의 아성이다. 여기서 한국개신교에 대해 좀 더 얘기할 필요가 있다. 해방 이후 한국개신교 다수파는 극우주의 성향이 너무나 강했다. 그러나 이후 개신교 다수파인 극우주의적 세력은 정치전선에서 한발 물러섰고, 소수파인 진보세력의 반적대 평화통일운동이 빛을 발했다. 그런데 1990년 어간 한기총의 등장은 극우주의적 개신교의 정치세력화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당시 전무후무한 거대 바이블벨트가 형성되었고, 개신교 극우세력이 그 축을 이루고 있었다.

한데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그 우파적 대연합이 붕괴하고 있다. 하여 극우 냉전주의적인 개신교 세력은, 여전히 그 위세가 강력하기는 하지만, 심한 위기의식에 빠져 있다. 주목할 것은, 바로 이 위기의식의 퇴행적 반응이 지금 개신교 극우파의 행보를 특징짓고 있다는 점이다. 매우 공세적으로 증오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북화해시대 개신교와 가톨릭 평화운동의 과제는 ‘증오연대의 해체’와 화해, 공존, 치유를 향한 실천을 구체화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4202053005&code=990100 이 글은 경향신문 칼럼 '사유와 성찰' 란에 동일한 제목으로 4. 20에 게재된 글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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