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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눈]초보아빠의 육아일기(조영관)

비평의 눈

by 제3시대 2018. 7. 2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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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아빠의 육아일기[각주:1]


조영관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한 달이 조금 더 지났다. 생후 30일이 막 지난 2번 꼬마와 요즘 부쩍 동생을 향한 질투로 마음고생이 심한 세 살 1번 꼬마의 앙육자로 살아가는 일상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 1번 꼬마를 키우며 육아를 어느 정도 경험했다고 생각했는데 둘이 되니 차원이 달라졌다.

우선 하루의 시작이 언제인지가 불분명하다. 잠자는 시간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시간마다 울어대는 신생아 수유노동은 새벽이 되면 그 절정에 달한다. 새벽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아준 뒤 2번 꼬마가 금방 잠이 들면 나도 모르게 실실 웃으며 자리에 눕는다. 반쯤 좀비가 된 상태로 아침을 마주해 1번 꼬마를 깨워 밥을 먹이고, 어린이집 등원을 시킨다. 어린이집 선생님과 소통하고 아이의 소식을 전해주는 키즈노트에 댓글을 남기는 것도 아직은 어색하다.

꼬마의 먹을거리를 다양하게 챙겨먹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끼니를 챙기는 건 늘 뒷전으로 밀린다. 1번 꼬마를 독박육아로 키우던 아내가 내가 퇴근할 무렵까지 제대로 밥을 챙겨먹지 못했다고 할 때면 의아했는데 일주일 만에 바로 체험했다. 1번 꼬마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함께 놀아주고, 저녁을 먹이고, 씻긴 다음 재우는데 이때 꼬마와 함께 잠이 들면 큰일 난다. 그날 해야 할 설거지, 빨래, 집안일 등이 그대로 밀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순간이 많다. 1번 꼬마와 함께 목욕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뽀뽀와 하트 세례를 받거나, 2번 꼬마가 시원하게 트림을 한 뒤 슬며시 배냇짓을 할 때면 머리가 찌릿할 정도로 행복하다. 아내와 아이들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도 예전과 다른 느낌이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것은 힘들기는 하지만 아빠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육아가 어느 일방의 뼈와 살을 갈아 넣는 초(超)인간적인 개미지옥이 아니라, 인간 영역의 일이 되었다는 점이다. 육아는 양육자의 몸과 마음 모두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이성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생명체를 분노가 아닌 웃음으로 마주하는 일은 엄청난 감정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결정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후회는 없다.

돌이켜보면 육아휴직에 대한 나의 고민은 가벼운 질문에서 시작했다. 

오래전 결혼식을 앞두고 험난한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친구들과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결혼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육아로 이어졌다. 일찍 결혼해 벌써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는 육아에 필요한 건 그 무엇보다 체력이라 강조했고, 맞벌이를 하는 친구는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며 아내가 직장을 잠시 쉬는 걸 진지하게 고민하는 중이라 했다. 상대적으로 복직이 쉬운 직업을 가진 친구에게 물었다. “야, 그러지 말고 네(아빠)가 키워보는 건 어때?”

성별 임금 격차가 큰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육아하는 아빠는 모두에게 ‘낯선 존재’였다. 지금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30~40대 부부 가운데 ‘아빠 육아’를 경험한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들은 일터에서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일했지만, 집에서는 아이 기저귀 한 장 갈아준 적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통적인 가부장제 속 독박육아는 언제나 엄마들의 비극적인 생존기로만 전해졌다.

최근 아빠들의 육아휴직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더 이상 육아가 고립된 한 사람에게 초인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과정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많은 아빠 육아 동지들이 늘어나길 희망한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2018. 7. 22 경향신문에 동일한 제목으로 실린 칼럼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7222032025&code=990100#csidx81d5435fef07344b896443650fc20df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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