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방문 답사기
: 거리의 몰락, 기억의 종말, 그리고 MB
이상철
지난 7월 한달 간 한국을 방문했다. 2년 만에 찾은 조국은 정권이 바뀌어 있었다. 용산에서는 사람들이 불타 죽어갔으며, 전 정권의 대통령은 현 정권의 표적수사에 심한 모멸감과 자괴감에 빠져 자살했다고 누군가 내게 귀띔해 주었다. 내가 한국에 체류하고 있던 기간에도 방송법이 국회에서 한 바탕의 볼거리를 제공하며 통과되었고, 쌍용자동차 사태는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자살한 전직 대통령의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도 가보고,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그 서글픈 건물에도 가봤는데 사람들은 모여있지 않았다. 옛날 같았으면 이 정도의 메머드급 사건들이 줄줄이 터졌더라면 뭔 일이 일어나도 벌써 일어났을텐데. 너무나도 고요하고 아무일 없다. 그래, 우리는 이제 그렇게 아무일 벌이지 않아도 꾸역꾸역 살 수 있게 되었다. 잘된 일이다. 하지만 한번 물어나 보자, 그 동안 무엇이 달라진걸까? 내가 서울에 와서 던졌던 첫 번째 질문이었다.
로보트 태권 V, 광화문 사거리에서 길을 잃다
과연, 서울은 달라져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현 대통령의 서울시장시절 업적이라는 청계천을 잠시 둘러보고 찾은 인사동은 현대와 고전이 조화된 어울림으로 많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아니, 고전과 현대 그 어느 것 하나 살아남지 않은 동떨어짐으로 사람들을 토해내고 있다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세계화된 거리 인사동, 그곳 스타벅스 매장 간판은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쓰여져 있었다. [스 타 벅 스 커 피] 라고 말이다. 전통을 고수하려는 그 피맺힌 절규와 숭고함에 하마터면 눈물이 날뻔했다.
인사동을 끼고 있었던 피막골은 도심정비 사업때문인지 정리중이었고, 창경궁부터 시작해서 인사동 윗길을 지나 광화문으로 이르는 고즈넉한 그 길도 공사중이었다. 광화문 사거리는 무슨 광장을 조성한다는 팻말이 크게 붙어있었는데 머지 않아 완공된다고 한다. 지금쯤이면 완성이 되었으려나. 광화문광장 조성공사를 보며 광장 콤플렉스에 걸려있는 현 정권의 마스터베이션 같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가는 것은 왜일까? 이렇듯 내가 살짝 돌아본 서울은 온통 파헤쳐져 있었다. 도시전체는 뉴타운 열풍으로, 대학은 경쟁력 있는 대학을 모토로, 거리 거리는 세계화된 도시에 걸맞게 요소요소에 스타벅스와 멀티플렉스 극장을 배치시키며 발빠르게 공사중이거나 그 변신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서울을 돌아보고 난 제주도로 내려갔다. 부모님이 그 섬에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제주에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3학년이 되던 해에 서울로 올라왔다. 30년 만에 찾은 제주도 역시 변해 있었다. 관광코스를 개발하고, 해안을 따라 도로를 조성하며, 한라산 산간에 골프장을 건설하여 관광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야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도심은 30년 전과 비교 할 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지 2학년이었는지 확실히 기억은 안 나는데, 김청기 감독의 ‘로버트 태권 V’를 보러 갔던 극장이 여전히 남루한 채 보존되어 있었다. 그날 ‘로보트 태권 V’를 보고 하늘을 날아서 집으로 왔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표준전과와 동아전과를 사러 갔던 동네 어귀 ‘남문서점’도 그대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는 자식들에게 표준전과나 동아전과 한 권 사주는 것으로 부모님들의 1년 사교육비 지출이 끝이 났던 말도 안 되는 세상이었다.
동네 아이들과 저녁 먹고 나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했었는데, 술래가 손등에 이마를 대고 주문을 외우던 건물 대문 위엔 ‘제주소방공사’라는 간판이 붙어있었다. 그 곳은 아직도 영업중이었다. 아버지에게 ‘제주소방공사’ 끝에 붙어있는 ‘공사’가 ‘한국방송공사’ 끝에 붙어 있는 ‘공사’와 같은 것이냐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뭐라고 설명해 주셨는데… 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다.
아버지가 나를 가끔 데리고 갔었던 다방이 도심 한가운데 있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친구분과 계란이 떠 있는 쌍화차나 다방커피를 드셨고, 내게는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시켜주셨다. 난 그곳에 있었던 커다란 어항 속 금붕어 보는 것을 좋아했었다. 여행 기간 중 밤길 제주를 걷다가 발견한 불이 켜져 있는 30년 전 그 다방의 간판이 왜 그리도 나의 마음을 환하게 하던지. 다음날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거리의 몰락, 기억의 종말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조국의 무엇이 달라진걸까? 2년 만에, 아니 미국으로 유학간 지 5년 만에 찾은 서울의 무엇이 달라진걸까? 거리가 달라졌다. 동네가 변해 있었다. 정권이 바뀐 것 보다 내가 놀던 동네와 내가 활보했던 거리가 달라졌다는 것이 내게는 더 어색했다. 무작정 ‘그때 그 거리를 기억하십니까? 그때가 좋았죠’라고 말할 수는 없다. 더 큰 거리로 나가야 하고, 더 큰 세상으로 진출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워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리 씁쓸한걸까?
거리와 동네가 사라지고 달라진다는 것은 이름이 없어지고 기억이 상실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이제 예전 거리의 이름과 옛날 동네어귀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회상하는 것에 대해 낯설어하고 불편해한다. 그곳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바탕 싸움을 치르고 미끄러져 들어가 앉은 피막골에서 가뿐 숨을 몰아 그날의 전과를 과장하며 마시던 막걸리와 석쇠 위에서 구워지던 고갈비를 이제는 그 거리에서 먹을 수 없다.
인사동의 혹은 신촌의 어느 선술집에서 김광석이나 해바라기가 불렀던 노래들을 낮게 읊조리는데, 한 친구가 ‘지금이 그런 사랑타령이나 하는 노래를 부를때냐? 너 같은 뿌띠 부르조아는 아무런 필요가 없다’며 나를 몰아친다. 나도 열 받아 ‘변혁에 참여하는 사람은 사랑을 하면 안 돼냐구. 혁명이 식어버린 심장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면 난 기꺼이 빠지겠다’며 고래고래 티격태격 각자의 진정성을 알아달라고 우겨대던 철없고 유치했던 그 시절! 그때의 거리와 그 당시 동네가 사라져 버렸다. 그곳에서 함께 놀던 사람들까지도. 그래서 불안하다.
혹시, MB가 민중들이 지니는 기억의 매커니즘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마다 4월과 5월 그리고 6월이 되면, 거리와 광장에서 출렁이며 메아리 쳐졌던 민중들의 율동과 함성 안에 감추어져 있는 봉기의 기억과 그 기억의 반복이라는 매커니즘을 말이다. 그것이 지니는 파괴력을 성실히 학습한 후 그것에 대처하는 자세를 MB가 이미 터득한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그가 우선적으로 민중들이 지닌 기억의 연쇄고리를 하나씩 절단하기로 작정을 했고, 그 잘려나간 지면을 잘 다지고 정리하여 새로운 기억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라면? 새롭게 조성된 광장과 거리에서 제한적으로 뛰어 놀게 하고, 폼 나게 단장된 동네에서 세계시민이 되어 촌티내지 말고 세련되게 그 문화를 향유하라고 다독이고 있다면 말이다.
다시 보자, MB!
점점 발전하는 터미네이터나 에어리언처럼 MB정권은 많은 실험과 시행착오와 학습을 거쳐 이제는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트랜스포머와 같이 진화한 정권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한국 방문 기간 내내 스멀스멀 올라와 기분이 엿 같았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MB 정권을 향해 실소와 비웃음, 격멸에 찬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는데, 한 달 가까이 그가 다스리는 땅을 밟으면서 그의 진정성을 느끼며 그가 결코 호락 호락한 상대가 아님을 깨닫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칙과 소신을 강조했는데, MB는 노무현보다 훨씬 더 자신의 원칙과 소신에 철저하다. 노무현이 걸어갔던 정치·문화적 행보와 경제적 측면간의 행보가 갈지자였다면, MB는 정치, 경제, 문화적 정책 어느 것 하나 흔들림 없이 수미일관 하다. 그 누가 뭐라고 하든 전혀 동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MB는 노무현 보다 훨씬 더 자신의 원칙과 소신에 철저하다. 무엇보다 이 정권이 악한 이유는, 그들이 우리의 숨겨진 욕망을 깨우고 부추긴다는 점이다. 마치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는 뱀과 같다. 우리의 ‘이드’와 우리 ‘에고’의 가치를 존중해주는 MB에게, 당신의 리비도에 충실해도 괜찮다고 국가가 그것을 보장하겠다고, 그러니 당신의 욕구를 구태여 ‘슈퍼 에고’를 작동하여 다스리려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해주는 MB의 속삭임 앞에 우리가 모두 못 이기는 척하면서 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우리를 멈춰 서게 했고 모이게 했던 ‘민주’와 ‘통일’, 우리를 춤추게 하고 고함지르게 했던 ‘평등’과 ‘인권’, 우리를 울게 하고 웃게 했던 ‘정의’와 ‘자유’라는 강력한 ‘슈퍼 에고’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그 하나하나의 기억이 서려있는 우리의 거리와 광장과 동네를 MB가 집요하게 파헤치고 뒤엎어 고쳐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사들은 지금도 진행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어야 한다. 사람들의 욕망의 눈덩이를 끊임없이 증폭시켜야 한다는 압박이 MB정권을 유령처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뉴타운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어 사람들의 ‘이드’을 한껏 부풀리고, ‘영어공교육’이다 ‘특목고’다 하면서 자식들을 볼모로 부모로서의 ‘에고’에 어떻게 하면 충실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차라리 표준전과와 동아전과 하나로 자녀교육이 모두 해결되던 우리 부모 세대가 더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세계화된 경제시스템 아래에서 전통적인 고용정책과 경제운영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다. 기업마다 구조조정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면서 노동시장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경제가 살아난다. 그러니 언제 잘릴지 모른다. 미리미리 자기 앞길, 자기 밥벌이 잘 챙기고 미래를 위해 긴 안목으로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잠시 한눈 팔면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그러니 열심히 뺑이쳐라. 그래야 살아남는다. 명심하란다. 그것이 이 시대의 정언명법임을.
에필로그
다시 시카고로 돌아왔다. 악몽에서 깨어난 느낌이다. 이명박이 다스리는 땅에 내가 없다는 안도감과 이명박이 다스리는 땅을 내가 떠나있다는 면목없음이 널을 뛰는 요즘이다. 몇 년후 내가 돌아갈 때쯤이면 서울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로보트 태권 V’는 지구를 잘 지키고 있을까? 제주에 있는 ‘남문서점’과 ‘제주소방공사’는 무사할까? 우리가 정말 대단한 놈을 만난 것일까? 별것 아닌데 내가 너무 오바하나? 어쨌든…
두 눈 똑바로 뜨자.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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