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육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박태식
(대한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지도사제)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는 말을 주변에서 종종 듣는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경우는 과연 어떤가?
필자의 제자 한 사람이 모 고등학교의 선생님으로 있는데 학생 중 하나가 유난히 말을 안 듣고 수업시간에도 딴청을 부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나무라다 지친 선생님이 도대체 네 부모님은 너를 어떻게 키웠는지 모르겠으니 상의를 해보게 전화번호 좀 알려달라고 했단다. 사실 그 정도 되면 덜컥 겁이 나면서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테니 제발 용서해 주세요.....’ 그렇게 꼬리를 내려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사과는커녕 요 맹랑한 녀석이 ‘저도 선생님의 부모님이 선생님을 어떻게 키웠기에 이 모양인지 알아보게 부모님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맞받아치더란다. 아마 주변의 친구들 앞에서 우쭐한 기분에 그랬을 테고 여선생이라서 얕잡아 보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무튼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 선생님은 한 가지 이야기를 또 해 주었다. 체육시간에 시험을 보는데 어느 여학생이 선생님에게 와서 사정이 있으니 순서를 앞당겨 달라고 부탁했다. 형평의 원칙상 그럴 수 없다고 했더니 여학생이 돌아서면서 선생님 들으라는 듯 쌍 시옷이 들어가는 육두문자를 내뱉었고 화가 치민 체육선생님은 출석부로 여학생의 머리를 한 대 쳤는데, 여학생이 즉시 선생님의 뺨을 때렸다고 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많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에게 엄청난 모욕을 주었다는 뜻 아닌가?
과연 선생님은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제자들에게 교육적인 효과를 줄 수 있을까? 같이 맞받아쳐야 하는가, 교무실로 따로 불러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쪽 뺨까지 내밀어야 할까?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바라는 게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보면 아마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은 ‘공부 좀 잘했으면 좋겠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몸 튼튼 운동도, 머리 튼튼 독서도, 교양 튼튼 봉사도, 다 부질 없는 짓이고 오로지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받을 수 있다. 자식이 설혹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더라도 일단 공부부터 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손자 얼굴을 보기위해 방문했어도 마침 손자가 학원에 가는 길이라면 할아버지는 쓸쓸히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게 요즘 이치다. 아니면 며느리의 세모눈을 견디면서 손자가 돌아오는 새벽 1시까지 기다리고 있던지.......
사실 공부에 대해 이 정도 열의를 갖고 있으면 우리나라가 매년 노벨상을 도맡아놓고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무척 다르다.
‘구약성서의 이해’라는 과목을 강의 했던 적이 있다. 기말시험에서 어떻게 하면 창조적인 답안을 유도할까 싶어 다음과 같은 문제를 냈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에게 신앙의 조상이자 민족의 조상이다. 이 한 문장을 30문장으로 늘여보시오.” 그랬더니 대혼란이 발생했다. 혼란의 발생을 어떻게 알았는가 하면 답안지의 수준이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지루하게 반복한 경우도 있고, 불과 열 문장을 못 채운 경우도 있었다. 아마 “아브라함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갖는 다섯 가지 의미를 나열하시오.”라는 문제를 냈으면 비교적 양질의 답안지들이 제출되었을지 모른다. 사실은 같은 문제인데 말이다.
성적을 학교에 제출한 다음 날 어느 남학생이 손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이 C+를 맞은 이유가 몹시 궁금하니 교수님이 답안지를 찾아 자신의 잘못을 하나하나 짚어준 후 어떻게 하면 앞으로 좋은 점수를 맞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자세히 써서 이메일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 ‘도대체 누가 교수인가? 자네인가 나인가? 그런 일은 절대 할 수 없다네!’라고 답을 했더니 ‘다음 학기에 군대를 가니까 군대 갔다 와서 다시 보자’는 말을 남기고 그 학생은 전화를 끊었다. 그런 통화가 있은 지 2년이 지난 요즘은 슬슬 겁이 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정부의 학원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학생에겐 혼란을, 일선교사에겐 낙담을, 학부모에겐 분노를, 학원에겐 희소식으로 다가오는 정책들이다. 하지만 진짜 겁나는 일은 교육현장이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진 상황이다.
학생들의 윤리의식이 통째로 사라지고 있다. 최소한의 예의나 스승에 대한 존경이나 청소년으로서 가져 마땅한 겸양의 덕은 ‘대학부터 보내놓고 이야기하자.’는 입시논리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어차피 교실에서 잠이나 자는 게 공교육이라면 잠이라도 실컷 자게, 아예 공교육을 밤에 하고 사교육을 낮에 하면 어떻겠는가?”라는 제안마저 나오고 있단다. 거꾸로 가는 교육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청소년 시절에 심하게 망가지면 회복불능이라는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대학 이후로 모든 것을 미루어 넘긴 학부모거나, 학부모들을 부추겨 가능한 한 복잡한 교육구조를 부채질 한 사교육 학원이거나, 사교육 현장에 끼어들어 줏대 없이 흔들리는 정부거나, 자신도 할 말 있다며 일선행정에 나선 대통령이거나, 아무튼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언젠가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고 미국 교육계에 으름장을 놓은 적이 있다. 그 양반 한국의 교육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르기에 그런 소리를 한 것이다. 2009년 7월 현재 우리 교육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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