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움을 지향하며





 김정원*

   


    세상이 페미니즘 이야기로 와글와글하다. 소위 ‘기센 언니’들만의 이야기였던 것이 양상이야 다르거니와 그 보편화됨에 있어서는 과연 놀랄만하다.


    ‘와글와글하다’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첫 번째 뜻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로 그 뜻 ‘사람들이 모여 잇따라 떠들거나 움직이다’인데, 또 하나의 다른 뜻이 보다 흥미롭다. ‘쌓아 놓은 물건들이 잇따라 갑자기 무너지다’, 이는 ‘와글와글하다’의 다른 뜻으로서, 현재의 페미니즘 운동들을 잘 표현했다 볼 수 있다. 우리네의 언어에 그득한 ‘아버지의 법’, 그러니까 거의 무의식적으로 지켜내던 ‘아버지의 이름’이 만들어낸 관습과 질서가 갑자기 잇따라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보부아르의 명제를 알던 모르던 곳곳에서 차별에 대한 저항들이 일어나고 있다. 남성은 공공영역으로 여성은 사적 영역으로 경계 지워지던 것에 대한 저항에서부터 눈 한 번 질끈 감고 넘어갔던 권력 관계 안에서의 성폭력을 향한 저항까지, 여성들의 저항은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담론이 변한 것이다. 세상을 읽어 낼 때의 방법론이 변한 것이다. 그 변화 속에서 우리 여성목회자들의 삶 역시 진실로 변했을까? 세상이 다 변해도 교회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웃지 못할 농담이 있다. 안타깝게도 여성들은 여전히 안수를 놓고 사투를 벌여야 하고, 모성애와 친절함을 강요 받고 있으며, 감성과 공감의 영역에 갇혀 있어야 할 때가 많다. 즉, 보편적 인간은 사뭇 남성목사이며, 여성들은 행위 주체로서 특정 영역에서 줄곧 제한되고 있음을 말한다. 남성은 이성이고, 여성은 감성인가? 남성은 권위이고 여성은 헌신인가? 남성은 말하고 여성은 침묵하는가? ‘밖’에서는 이미 그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의 ‘안’은 그리 와글와글하지 못하다. 물론, 그 견고한 경계를 없애기 위한 여성 목회자들의 지난 50년간의 노고는 그야말로 은혜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선배들은 얼마나 울었을까, 또 얼마나 아팠을까…… 다만 ‘밖’의 역동성을 감안할 때, 우리는 보다 저항의 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그 소리를 높인다는 것이 여간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암만 페미니즘 노래를 부른다손 그것을 받아들일 때의 각자의 온도 차가 있기에, 그 다름 속에서 여성들 간의 연대를 이루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결국 변화는 각성된 자들의 몫이 아니겠는가! 위험을 감수하며 그 위험 너머의 새 장을 상상하며 나아가는 것은 우리네의 존재 투쟁이자 하나님나라 운동일 것이다.


    믿어보자, 존재에게 가장 위대한 풍요로움과 가장 큰 즐거움을 끌어내기 위한 비밀은 위험하게 살기다. 당신의 도시를 베수비오 화산 위에 건설하라! 당신의 배를 탐험되지 않은 바다로 출항시켜라! 당신의 닮은 꼴, 그리고 당신 자신과 투쟁하라.” – 니체, <즐거운 학문> 中


    그렇다면 우리가 목소리를 높일 때,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출현하고 유지되어온 종교가 과연 페미니스트 비판을 극복하고 종교적 전통과 정체성을 지켜낼 수 있을까? 아마도 진보를 (사)칭하는 기장 역시 이 질문에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역사적 예수를 말하는 기장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여성을 읽어내지 못했다. 예수는 역사 속에서 ‘떠돌이’로 ‘투쟁가’로 또는 ‘민중’으로 계속해서 ‘재맥락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그렇지 못했다. 숱한 신학적 실험들과 논쟁 속에서 탄생한 민중예수는 있어도, 억눌린 여성은 그 안에 없었다. 민중신학이 우리의 자존심이 되어가는 과정에서도 희생 당하는 여성, 차별 받는 여성의 이야기는 배제되었으며, 그 이야기가 우리의 정체성이 되지는 못했다. 실제로 ‘여성의 이야기’는 ‘민중 예수’보다 위험하다. 페미니즘은 ‘민중 예수’를 말하며 진보성을 획득한 남성이라 하여 봐주지 않는다. 노동해방과 통일을 외쳤던 이들이라고 한들 ‘억눌린 여성’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면, 페미니스트 비판은 그들을 그대로 겨냥한다. 진보고 아니고를 떠나 비대칭적인 권력구조와 굳건한 위계질서를 건드는 일이기에, 다시 말해 우리네의 탄탄한 ‘보편’을 비판함으로써 남성들의 기반 자체를 흔드는 일이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위험하다. 이렇게 불평등함과 부정의함에 대해 와글와글하는 것은 우리의 ‘안’, ‘기장성’ 그 자체에 균열과 틈을 내는, 다시 말해 다된 기장성에 재 뿌리는 격이기에 페미니스트 비판은 공동체의 전통과 정체성 자체를 위태롭게 만든다. 페미니즘은 실로 불온한 것이다.


    그 위태로움고 불온함을 향한 우리 운동의 내용이 ‘부권 질서’가 아니듯, 우리 운동의 종착점이 보편 남성 목사도 아니어야 한다. 이는 페미니즘의 한 갈래에서 논하고 있는 ‘어머니’ 혹은 ‘어머니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 역시 이성애적 가족구조만을 옹호하는 것으로서 여성만을 신비화한다. 이는 비대칭적인 기존의 담론을 유지하게 하며, 소수자들을 배제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운동은 친여성적 슬로건을 넘어, 보편으로 받아들였던 것에 대한 거부와 핵심이라 일컬어졌던 것들에 대한 문제제기 그리고 신화, 교리, 성서 등을 새로운 시대에 적합성을 갖도록 재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페미니즘적 렌즈를 이곳 저곳에 들이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혈루병 걸린 여성(막 5:25-34)의 이야기는 좋은 텍스트가 된다.   

 

    아래로 피가 멈추지 않는 그녀는 부정하다. 그녀를 만지는 이도 부정하고, 그녀가 앉은 자리에 다시 앉은 것 마저도 부정하다. 그녀는 정결법(레 15:25-26) ‘안’에서 꽁꽁 묶여 있으며, 그 ‘안’에서 버려져 있고, 그 ‘안’에서 가난하다. 그런 그녀가 예수를 둘러싼 무리 속으로 들어간다. 포대기를 둘러 썼을지언정, 무리들 사이로 들어가 예수의 옷을 만진다. 위험하고도 불온한 그녀의 도발로 인해 그녀의 ‘안’은 전복된다. 그녀를 철저하게 소외시키는 정결법 규정에 저항함으로써, 구원은 그녀의 것이 된다. 예수의 말처럼 그녀의 믿음이 그녀를 구원한 것이다. 구원과 해방의 이니셔티브(initiative)가 예수에 있지 않고, 위험하고도 불온한 그녀에게 있다. 법과 규범과 규율이 불온한 그녀로 인해 무너진다. 객관과 보편으로 스스로를 위장한 진리가 그녀의 구원받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균열과 틈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이 여성의 용기가 공동체에 균열과 틈을 만들어 냈음을 볼 때 위태로움을 지향하는 우리의 운동과 닮아 있다. 그 길 위에서 구원받은 그녀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 한 줌도 되지 않은 여성목회자들의 향후 50년의 역사는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다. 앞서 밝혔듯, 변화는 각성된 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보다 예민해져야 한다. 보다 도발적이어도 되겠다. 암탉이 울어 집안이 망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우리들의 지나온 50년과 앞으로의 50년 모두를 축하하며, 이 길 위에 끝내 서 있는 선배님들의 노정을 위로한다.


    - 이번 글은 한국 기독교장로회 여성목회자 50주년 총회를 맞이하여 발간되는 총회 문건에 실린 원고입니다.


* 필자소개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전공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을 공부했다. 현재 향린교회에 맘을 풀고 '다시 목사'가 되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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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목사가 아닐 때





 김정원*

   

    취미가 '지질히' 고상한 나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좋아하여, 특별한 절기에는 꼭 세인트 폴 대성당을 방문하곤 하였다. 그날도 오르간 연주자 근처에 앉을까 하였지만, 이미 만석이라 비껴 놓인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미간까지 찌푸려가며 '영국말 설교'를 알아듣고자 했지만 영 쉽지가 않다. 나의 빈곤한 리스닝 능력에 더해 어디선가 스멀스멀 거리는 퀴퀴한 냄새를 맡고 난 뒤부터는 '영국말 예배'를 향한 집중력은 이내 무너지고 말았다. 그 냄새의 발원지를 찾고자 큼큼거렸고, 곧 내 옆의 여성에게서 나는 냄새임을 알아차렸다.







세인트 폴 대성당의 미사 모습(사진 : Leon Neal/AFP/Getty)


    그녀가 노숙자라는 것을 눈치 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여느 노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서너 개의 큰 보따리를 가지고 있었고, 보따리는 거뭇거뭇한 살림살이로 가득했다. 이제 예배는 물 건너갔다. 내 코를 비롯한 대개의 감각은 그녀에게 꽂혀 있었다. 그녀는 베이지색의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고, 돌려 맨 푸른색 스카프가 가슴 언저리까지 내려와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내가 입은 그것들 보다 좋아 보였다. 순간 그녀가 노숙자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조금 과감해지기로 한다. 살짝 목을 돌려 그녀의 차림새를 더욱 찬찬히 살펴보니, 꼬질꼬질 때가 가득한 소매는 베이지색을 잃은 지 오래 돼 보였고, 영근 때가 머리카락에 드레드레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노숙자였다. 시간이 지나도 코를 자극하는 그녀는 노숙자가 분명했다.



    그녀는 부산스러웠다. 예식이 많은 성공회 예배 절차를 따라 여러 개의 책자를 찾아 보느라 더욱 그러했다. 그녀는 쪽수를 못 찾을 때가 많았는데, 나는 빤히 알면서도 그런 그녀를 돕지 않았다. 뒷자리의 미소 띤 백인 여성이 그녀를 도와주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다. 아니, 실은 그 노숙자에게 미안한 것이기 보다는 그 미소 띤 백인 여성에게 민망스러웠다. 문제는 성찬식이었다. 한국 개신교의 그것과는 다르게 영국의 성공회는 대개의 경우 배잔 없이, 하나의 큰 은잔에 담긴 와인을 차례로 나눠 마신다. 잔을 들고 있는 성직자는 총 네 명. 줄을 잘 서야 했다. 잘못하다가는 내 옆의 그녀가 마신 잔을 나도 사용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뿔싸. 나는 그녀 바로 뒤에 서 있었고, 난 그야말로 주의 '쓴 잔'을 마셨다. 쓴 잔이 지나자, 이번엔 서로에게 'peace be with you'라고 인사말을 건네며 악수를 나누는 시간. 본디 작위적이고도 어색한 그 시간을 즐기지 않지만, 그 날은 특히 그랬다. 거무튀튀한 그녀의 손을 잡는 게 영 석연치 않았다. 그렇게 온 감각이 그녀를 향해 쭈뼛 댈 때, 온통 예민해진 나를 향해 그녀가 손을 내민다. 나를 올려다 보는 그녀 얼굴에 함박 미소가 들었다. 못 돼 쳐먹은 나를 향한 그녀의 미소가 너무 환하여 금새 주눅이 들고야 말았다. 내 손을 꼬옥 잡으며 그녀가 말한다. "PEACE BE WITH YOU"


    영국 교회에 가면, 나는 더 이상 목사가 '아닐 수' 있다. 누구를 챙길 필요도 없고, 설교를 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에게 내 소개를 할 필요도 없다.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고, 먼저 다가갈 필요도 없고, 어색한 칭찬을 건넬 필요도 없다. 몇 명이 출석했는지 알 필요도 없고, 분주할 필요가 없고, 찬양을 크게 부를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도 친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더 정확하게는 친절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 영국 교회에서의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 '목사가 아닐 때'의 나, 즉 '참 나'를 마주한다. 오르간 연주는 핑계일 게다. 실은 소극적이고 폐쇄적이고 예민한, 그런 나를 만나러 교회에 갈는지도 모른다. 공간은 엄연히 교회당인데, 내 존재가 한국에서와는 참 다르게 머문다. 이곳에서의 나는, 노숙자의 냄새에 코를 찡긋거릴 수도 있고, 도움에 소극적 일 수도 있고, 예민함을 드러낼 수도 있다. 다만 가끔 '양심'의 소리가 내 속을 긁을 뿐, 그 낯설면서도 편안한 '참 나'의 시간은 모순적이지만 값있다.


    양심은 모순적이지만 값진 그 시간을 방해한다. 양심의 소리 때문에 완전한 해방감을 얻기가 영 쉽지 않다. '평화의 인사'를 건네는 그 노숙자의 미소 앞에서 양심은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곧 죄책감을 몰고 온다. 친절과 환대를 머뭇거릴 때, 내 속에서 꿈틀거리는 죄책감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프로이트의 생각을 빌려오면 조금 가벼워질 수 있을까. 그는 양심을 사회적 압력이 만들어 낸 사회 규범이 우리 속에 내면화 된 것으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억압이 빚어낸 친절을 가장하지 않았으니, 그러니까 '초-규범적' 인간일 수 있었으니 그리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겠다. 니체야 오죽하겠나. 그는 양심의 가책이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서 채무자가 느끼는 부채감과 같은 것이라 말한다. 빚을 갚지 못하고 있는 채무자에게 채권자가 들이닥쳐 위해를 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의 본래라는 것이다. 그의 말에 귀가 솔깃하다. 신 안에서 늘 불편한 나에게 그의 말이 꿀 같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빚 받으러 몰아쳐 오는 채권자가 아닌 이상, 나는 억지로 '유죄판결 된 삶'을 살 필요가 없다. 물론 노숙자에게 친절과 봉사를 행하던 그 백인 여성이나 환하게 웃으며 휙휙 악수를 나누던 그 교회의 목사들 앞에서 기가 죽을 이유도 없다. 그들이 나를 '까칠한 아시아 여자'로 인식하더라손, 그 판단에 아쉬워 '목회적 마인드'로 갈아 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른바 노예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라면 너무 자위적일는지.


    "노예의식을 갖는 개인들 사이에서 타자에 대한 승인은 여론이나 평판 혹은 대중들의 판단에 의해 규정된다. 허영심 있는 인간은 자신에 대해 듣는 모든 좋은 평판에 기뻐하며, 모든 나쁜 평판에 대해서는 괴로워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 두 평판에 예속되어 있으며, 자기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오래된 복종이라고 하는 본능에 예속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니체 전집 VI 2, 281)."


    이왕 이렇게 된 거, 포이에르바하까지 가보자. 그는 신앙인들의 특권의식을 비판하며 신앙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에게 우월감과 특수한 명예감을 부여한다고 지적한다. 하인이 주인의 품격을 자신의 품격으로 여기듯, 스스로의 본질을 어떤 다른 본질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지금껏 교회 안팎에서의 나의 시혜적 행동은 신 혹은 목사라는 특권의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인격을 꾸역꾸역 다른 인격 안으로 밀어 넣으며 도덕, 선, 평화, 사랑과 같은 개념들을 성취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신학(anti- theology)을 벗삼아 되묻게 된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페미니스트인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고독했지만 강했고, 사랑했지만 배신당했고, 걷지 못했지만 자유로웠던 그녀의 자아가 둘로 쪼개져 있다. 그리고 여전히 맞닿아 있다.(두명의 프리다, 프리다 칼로, 1939)



    죄책감이나 특권의식이 만들어 낸 '친절한 나'를 까뒤집고 나면, 마침내 '폭로된 나'를 마주하게 된다. '폭로된 나'는 여리고 작고 보잘것없다. 호의를 가졌지만 그 호의를 베풀 용기가 부족한, 겨우 그런 여자일 뿐이다. 주목 받는 것이 두려워 큰소리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아량이 좁아 불쾌감을 이겨내지 못한다. 탈-죄책감과 탈-노예의식을 선취했을지는 몰라도, 마주한 '참 나'는 부끄럽다. 반신학 위에 올라 타, 의기양양 했다면 좋았으련만- 가식과 허위를 벗겨낸 나의 모습 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은폐된 나'의 폭로는 한줌의 자유로움과 곱절의 부끄러움을 몰고 온다. 목사를 벗고, 성도를 벗고, '신앙'을 벗고, 죄책감을 벗고, 양심을 벗고…… 그리고 난 후에 마주하게 되는 '참 나'는 부끄러움으로 물들어 있다. 비로소 유한함의 고백이 터져 나옴에 겸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신 없이 신 앞에' 엎드려지는 기도의 시간이 얻어진다. 죄책감도 없고 참회도 없는데, 신 앞에 엎드려진다. 죄의 고백 없이 눈물이 나고, 선포 하나 없는데 자유롭다. 작은 나를 발견하고는 이내 신을 끌어온다. 이 때 나를 만나러 오는 신의 손에는 회초리도 율법책도 없다. 도덕군자의 형상도 아니요, 신실한 모습도 아니다. '신앙심이 깊고 친절을 베푸는 여자'가 아닌 '소극적이고 아량이 없는 여자'를 만나러 오는 그 신은, 나를 탓하지도 않고 타이르지도 않는다. 특권의식과 우월감을 내려놓고 신을 부르니, 신 역시 권위를 벗었다. 부끄러운 나와 함께 부끄러워하고, 자유로운 나와 함께 자유롭다. 부족한 '참 나'의 모습 속에 되려 신의 기운과 신의 고백이 들어찼다. 사랑과 자비의 기운 속에서 나와 신은 거듭 만나고, 그로 인해 역시 부끄럽지만 이내 자유롭다. 다시 모순이지만, 다시 값지다. 어찌 된 일인지 반신학의 조화가 요사스러워 다시 신학적이다. 내 교육과 내 설교에 죄책감을 느낀 이들에게 죄를 고백하며 새해를 부끄러움으로 연다.


    <이번 원고는 필자가 2017년 2월 에큐메니안에 게재했던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다시 목사'로 돌아온 이 때, 내 근거를 '참 나'로 삼을 것을 다짐하며 묵혀진 글을 함께 나눕니다>


* 필자소개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전공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을 공부했다. 현재 향린교회에 맘을 풀고 '다시 목사'가 되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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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어치운 진보





 김정원*

   

    진리라고 굳게 믿었던 것들이 있다. 평화, 정의, 교육, 생명 등등 흔히 한신에서 신학을 했던 이들이라면 빈번하게 접했던 그리 그리한 내용의 것들 말이다. 그 중 ‘진보’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는 거의 언제나 옳았다. 그렇다면 내가 있는 판에서 끊임 없이 말해져 왔던 진보란 무엇이었을까? 대중없이 나열해 보자면, 양성 평등, 나아가 성 평등, 요즘 말로는 성정의. 다시 말해 여성과 성소수자 문제에 열려 있는 자세가 진보의 한 요소가 된다. 또 하나는 타 교단과의 일치, 일명 에큐메니칼, 이 역시 지평을 넓혀 보자면 종교간 대화, 다른 신앙에 대한 존중까지. 그리고 성서 해석에 관한 다양한 관점과 시도. 뿐만이랴, 역사적 예수, 민중 예수, 안병무, 문익환, 김재준, 문동환, 민중, 민주, 통일, 역사적, 사회적……. 여기에 학생 운동과 사회참여, 더 구체적으로는 세월호의 노란 리본, 박근혜 반대, 성명서, 촛불, 반미, 시청 앞 광장 등등을 더하면 얼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그 ‘진보’는 완성되는 듯 하다.


    만약 이것이 ‘진보’라면 나는 비교적 꽤 진보적인 여자임이 분명하다. 나는 최근까지도 퀴어 페스티벌에 참석하였고, 학창시절 반민주적 상황에 분노하여 광화문에 자주 나가있었고, 4.20도 가고, 4.30도 가며, 만나는 후배들에게 내가 아는 만큼의 진보를 떠들어댔었다. 예를 들면 노동문제, 통일문제, 생태계 문제 등등. 어느 날엔가는 총장에 반대하고, 여느 교수의 행보에 저항하며 성명서를 내기도 했으며 바로 얼마 전까지도 무슬림들과 기꺼이 만나며, 그들의 예배에 참여하기도 하고, 종교간 이해를 돕기 위한 책도 읽고, 글도 쓰며 관련 설교도 하며 그렇게 살았다. 가난을 ‘노래’하고 가난한 삶을 결심하기도 했었다. ‘민중 교육’을 지향했기에 따라서 민중지향적 삶 역시 지향했었다. 나는 적어도 진보적이기 위해, 진보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의미 물음에 있어서 만큼은 게으르지 않았음을 자부할 수 있겠다.


    자, 여기까지가 진보적인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면, 또 한 부분의 나는 어떠할까? 나는 용돈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에 그 흔한 아르바이트 한 번 한적이 없었고, 등록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학점 관리에 무참히 소홀했다. 다른 동기들이 그것들에 몰두할 때, 그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며 속으로 비웃었고, 그들은 정의와 평화에 관심이 없는 무지랭이들이라고까지 폄하했었다. 지금 이라크에 파병을 보낸다는데, FTA가 성사된다는데, 농민들이 죽겠다는데, 왜 저들은 저리 A+에 안달이 난 걸까. 저들은 왜 반대하지 않을까. 저들은 왜 저항하지 않는 걸까. 저들은 왜, 저들은 왜. 집회에 한 번 참석하고 우월감 한 번을 선취하고 나면, 명품 가방과 하이힐을 하고서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고 학생들에게는 버거울 가격의 밥을 먹었다. 남들보다 더한 열정으로 조직을 하고 교육을 하고 글을 쓰고 나면, 여지없이 (남들)보다 의미가 있는 삶을 살았다고 스스로를 상찬하였다. 신발장과 옷장은 터져나갈 상태였고, 칼로리를 계산하며 몸매 관리를 했다. 이미 목사가 되기로 작정한 상태라 취업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 채, 남들이 취업 걱정에 안달이 나는 것을 보며 속물이라고 얕보았다. 게다가 목사가 되지 않으려는 동기들을 보며 의식이 부족한, 혹은 기독교교육에 대한 열의가 부족한 이들로 치부했고, 보다 풍족한 삶에 관심이 있어서라고 오해해버렸다. 


나는 정말 모두를 위해 그렇게 뜨거웠을까? 

정말 그 열정은 공동체를 향한 열정이었을까?


    내 배움의 분열, 내 실천의 분열, 내 일상의 분열 곧 나의 분열. 분열 속에 여실히 놓여 있던 내 삶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느새 꽤나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여성이 되어 있었다. 내가 얻고자 하던 이미지, 그놈의 ‘진보’를 나는 성취했다. 비록 시간도 들이고 공도 들이고 열정도 들였지만, 때때로 욕도 먹고, 은따도 당하고, 오해와 미움도 샀지만, 결국 내가 손해 본 것은 없다. 나는 ‘진보적인 여성’이 되고 싶었고, (남들)보다 우월한 의미에서의 깨어있는 여성이 되고 싶었으니까.


많이 떠들면 많이 진보적인 인간이 되는 걸까? 

광화문에 많이 나가면 평화를 실천한 인간이 되는 걸까?


    니체는 질문한다. ‘한 영혼이 얼마나 많은 진리를 견딜 수 있으며, 얼마나 많은 진리를 무릅쓸 수 있는가?‘ (안티크라이스트 중). 우리가 무언가를 대의를 위해 감당하고 있다고, 혹은 타인들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할 때, 다시 말해 진리를 위해 그에 따른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다고 말할 때 니체의 질문은 속을 파고 들어온다. 그는 대답한다. ‘모든 단계의 지식의 진전은 용기, 즉 자신에 대한 엄격함으로부터 유래한다.’라고. 나에 대한 엄격함은 나의 분열을 고백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동시에 말해져 왔던 ‘진보’앞에서 물러나게 한다. 나는 그 ‘진보’로 소비되고 싶었다. 교회 현장에서, 교육의 현장에서, 사회적 관계 안에서 분열의 김정원이 아닌, 진보적이고 깨어있는 여성으로 소비되고 싶었다. 나는 나를 그렇게 팔아왔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해지기를 원했고, 또 그렇게, 꼭 그렇게 평가되고 싶었다.    

      

    스스로를 보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은, 즉 진보를 높은 단계의 진리로 생각하는 이들의 강한 신념은 과거 금욕주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금욕주의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자신을 더 높여서 금식, 철야, 수행, 묵언을 통해, 한마디로 하자면 적극적인 경건 (제사, 희생, 기도 등)의 행동보다는 궁핍 (privations)을 통해 특별한 신성성(sanctity)을 얻는 사람들이다 (뒤르켐). 즉, 금욕주의자들의 고행과 궁핍을 통해 신성성을 얻었듯이, 보다 적극적인 사회 참여, 보다 적극적인 진보 이념의 실천을 통해 그들은 진보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때의 신성성, 진보성을 권력이라 칭해도 큰 무리가 없다. 그 신성성과 특이성이 어떤 형태로 소비되는 지는 소위 진보 지식인들을 통해 실로 확인하고 있으니까. 니체는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그 시대의 가장 현명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억압 받고 가장 결핍된 사람들 가운데서 유래한다고 보았다. 이때의 억압은 사회경제정치적 상황에서 현재 억압받는 이들을 칭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엄격함이 결핍된 이들을 향한 비판으로 보아야 한다. 진보성을 획득한 자들은 되려 사회경제정치적 상황에서 억압받는 이들을 지배하기 쉽다. 왜냐하면 진보적인 이들은 고난 받는 자들과 함께 하니까, 억눌린 자들의 슬로건을 함께 외치니까. 이런 방식으로 고난 받는 자들을 지배하는 것, 아주 착하게 지배하는 것, 이는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지켜내고자 하는 그놈의 ‘진보’는 진보에 있어 가장 결핍되고 진보에 억눌린 이들에게로부터 온 것은 아닐까? 그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착한 위선’이 아닐까?


    나는 흔히 ‘촛불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지난 박근혜 탄핵 즈음부터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을 떼어버렸다. 이재명이 “언제부터 노란 리본 달고 다녔냐?”라고 호통치며 으스대는 꼬라지가 보기 싫어서이기도 했지만, 그 행위에 담긴 나의 신념이 보잘것없었기 때문이다. 선과 악, 진보와 보수, 의식 있음과 의식 없음은 구별하기가 쉽지가 않다. 누군가 묻더라. “학생 운동을 하는 학생과, 전혀 하지 않는 학생 중 누가 선하냐? 혹은 누가 더 의식 있는 학생이냐?”라고. 그러게나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위와 같은 반성을 통해 이러한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다시 또 진보적인 여성으로 소비되고 싶어하는 것인가? 거참, 그러게나 말이다. 다만 영어 과외 자리에 온 맘을 써가며 보내는 요즘, 가난, 그거 ‘노래’할 거 아니란 것 하나는 알게 되었다.


* 필자소개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공부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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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갈 것이냐





 김정원*

   

    오늘도 ‘우는 여자’는 어김이 없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반가워 울다가, 곧 자신의 처지에 아파하며 다시 울었다. 그녀를 마주한 이들, 그러니까 그녀의 친구들은 그 눈물에 무뎌질 때도 됐건마는, 오늘도 그 눈물과 함께 아파한다. ‘우는 여자’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불확실성으로 떨고 있었다. 그녀가 쏟아 낸 눈물처럼 자신도 쏟아져버릴까 봐, 그렇게 흘러내릴까 봐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디오니소스적인 삶을 작정한 것처럼 보였던 그녀였지만, 자명한 불확실성이 덮치자 마치 격정과 예술성을 포기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자신의 욕동에 충실할 것을 다짐한다. 그녀의 다짐은 마치 선언과 같았기에, 그녀 앞에 둘러 앉아 있는 근심 어린 얼굴들은 그녀의 다짐에 균열을 낼 수 없음을 직감한다. “죽음과 욕망의 과잉만이 진실에 가닿게 한다”고 말하던 바타유가 그녀 속에 들어 앉았나 보다. 그녀는 그 ‘진실’ 그러니까 그녀의 언어로는 ‘나’를 찾아 떠나야 한다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 죽일 놈의 ‘나’ 찾기. 그거 좋게 말하면 ‘자기 완성’이겠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팔자 사나운 년 되는 거 아니겠냐.”


    쓴 소리를 자주 하는 그녀의 한 친구는 이번에도 쓴 소리를 날린다.


    “너를 좀 붙들어 매. 꼭 그렇게 불안전함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겠어? 뭘 그리 고생을 사서해. 얼마나 또 쳐 울려고, 꼭 그 지랄을 해야 존재가 완성이 된다니…… 너 얼마나 대단한년 될 건데! 안정성이란 안정성은 죄 쌈 싸먹고 얼마나 잘 되려구!”


    ‘쓴 소리 여자’의 쓴 소리에 ‘우는 여자’는 역시나 죽죽 울며 대답한다.


    “나는 내가 팔자가 사나운 것이 좋아. 나는 자꾸 묻고, 고민하고 자빠지고 하는 내 삶이 좋아. 아프지만 후회가 적으니까. 무섭고 불안하지만, 나는 성숙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시간, 그 고통의 시간이 반가워. 이러다 죽겠구나- 하다 보면 그것은 이미 지나있어. 그리고 나는 ‘나’에 조금 다가와 있지.”


    그녀는 쾌락을 향유하는 만큼 고통스러워했었고, 자유를 누리는 만큼 망가졌었다. 그 시간을 지나온 그녀는 다시 그 시간이 오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분명 담담한 면이 있었고 그 시간 속에 다시 자신을 던질 준비 역시 돼 있었다. 이제 올 시간은 친구도 없고, 돈도 없고, 가족도 없고, 집도 없고, 친숙한 언어도 없기에 보다 더 아플 것이 명증했다. 없고, 또 없을 시간. 열 개가 없는 줄 알았는데, 스무 개가 없을 그 시간. 있는 것이라고는 희미한 꿈과 더 희미할 가능성, 그리고 쾌감과 정념과 눈물과 고통 즉, 끝없을 쥬이상스…… 담보 되지 않은 상황으로 나아가는 그녀는 환희와 불안, 그 어중간한 위치에서 떨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유독 행복에 집착했었다. 강산은 변했지만, 그녀는 변하지 않았다. 오늘 그녀가 눈물과 함께 떨구는 행복은 ‘나’, 혹은 ‘고통을 감각하고자 하는 나’인가 보다.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인의 힘이 필요하다. 시로서 구원받고자 했던 김수영의 언어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모든 진리는 평범하다 

요는 죽음을 가슴에 새기고라도 

아름다움을 보아야 한다 

항상 외국에 온 사람 모양으로 내 나라에 살고 

외국어를 하듯이 내 나라말을 하고 

여자들을 모두 외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움 사이에서도 자유를 잊지 말고 

슬픔 속에서도 환희를 잊지 말고

 … 

가슴 속에 깊은 자유가 파묻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밀의 용기가 필요하다. 

앵무새의 발언 같은 허위를 태워 버리고 

발코니 위에 나서면 밤이 슬프지 않으냐

 … 

수많은 수인이 해방된 아침같이 

밤하늘에 떠도는 보랏빛 안개 

거리여 기립이여 설운 기립이여 

나는 완전히 너를 결별한 사람


- 김수영, 미제, 유고시(1958)


    ‘우는 여자’는 자기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있었다. 가슴에 박혀있는 자유를 파내고 있었고, 반복되는 언어를 태우고자 했고, 밤을 온전히 갖고자 했다. 그녀는 실로 이방인의 삶을 선택했다. 외국에 온 모양새로 사는 것이 아닌, 실제로 외국에서 제 나라와, 제 말과, 제 벗을 잊어 먹은 여자처럼 살기로 작정한 것이다. 두려움 사이에서도 자유를 잊지 말고, 슬픔 속에서도 환희를 잊지 말고 살기를 김수영만큼이나 원한다니, 이제 더는 ‘쓴 소리’로 다그칠 수가 없다.


    ‘그래, 가라. 밥이나 잘 챙겨 먹고-’


    그렇지만 사실 ‘쓴 소리 여자’는 ‘우는 여자’가 흠모하는 그 강렬한 욕구가 미화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혹 그 욕구는 그 외의 다른 모든 것들을 파괴할 수 있는 악마적인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 의미만으로도 이미 몹시 아름다워 그저 고결할 것만 같은 그것, 자기 완성! 내뱉기만 해도 내뱉는 그 순간으로부터 곧장 심장을 파고드는 그 숭고한 이름, 자유! 오, 자기 완성이여! 오, 자유여!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과대평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다. 스피노자까지를 들먹이며, “과대평가란 어떤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정당한 것 이상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에티카).”라고 그녀의 귀에 때려 박고 싶었다. 스피노자가 다른 이를 사랑할 때 상대에게 과한 점수를 주는 행위를 문제 삼았다면, ‘쓴 소리 여자’는 ‘우는 여자’가 상대방도 아니고 바로 자기 자신에게 너무 과한 점수를 준 것이 아닌지를 묻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 자신을 향한 사랑, 즉 지극히 나르시시즘적이어서 결국엔 빈곤 터지는 ‘나’ 사랑에 불과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제기였다. 나아가, 그녀가 사랑하는 ‘자기 완성’과 ‘자유’ 역시 과대평가 된 것은 아닌지 또한 따져 묻고 싶었다. 그것들의 아름다움과 고결함에 취해 그것들을 향한 그녀의 과대평가를 정당한 것 이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점검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적어도 ‘쓴 소리 여자’보다는 ‘우는 여자’는 삶에의 권태로움에 늘 민감했다는 것을 감안했기 때문이었다.


    ‘쓴 소리 여자’는 권태로움에 후려쳐지는 것이 두려웠기에 끝내는 권태를 부정하며 살았었다. 백날 카뮈를 읽어도 의식이 죽어 있으니, 삶에의 부조리는 부정되기 일쑤였다. 가끔 고개를 쳐드는 의식은 잘 달래어 저-기 멀찍이에 두어야만 했다. 부조리를 향한 적극적 반항은, 구조의 부조리는 물론 자신의 비겁함 역시 폭로되는 것이기에, 그녀는 권태로운 자기 존재를 들춰보기를 주저해왔었다. 삶의 의미를 누구보다 열심히 찾는 척했지만, ‘쓴 소리 그녀’의 가슴은 내리 차가웠고, 사회적 질서와 관습 속에서 아늑함을 성취하고자 했다. 그에 비해 ‘우는 여자’는 날 것으로 깨어 있었다. 즉, 삶의 의미 없음에 반항하고자 하는 그녀의 ‘의식 있음’ 앞에서 ‘쓴 소리 여자’는 따져 묻기를 그칠 수 밖에 없었다. 약간 니체의 초인 같기도, 약간 시시포스 같기도, 혹은 김수영 같기도 한 그녀를 그 측면에서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 가라. 밤 길은 좀 조심하고-‘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 등장하는 세 여자들의 사연은 그야말로 골치가 아프다. 한 여자는 아이를 잃고 이혼을 하고, 한 여자는 남편의 외도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고, 나머지 한 여자는 의사인 남편의 잦은 외도로 분노한다. 그 여성들이 자신들이 의존하던 것들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불교경전, <숫타니파타>였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그 내용 중 일부이다. 그런데, 팔자 센 그녀들이 종국에 선택한 것은 정말 무소의 뿔 같은 치열함이었을까? 그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던 그녀들은 결국 온전한 자기를 불안정성 속에서 건져내 왔을까?


    여전히 ‘쓴 소리 여자’에게 자유, 즉 불안정성은 불가능으로만 주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이 주는 위로로 글은 마쳐져야만 할 것이다. 비록 그 위로가 가히 무겁더라도 떠나는 그녀와, 곧 떠날 ‘그대’와, 더불어 그 욕망과, 그 불안과, 그 불가능을 지지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었으므로.


“현실주의는 내게 오류의 느낌을 준다. 오직 폭력만이 그런 현실주의적 체험의 빈곤감을 떨쳐버린다. 숨통을 막고, 끊는 힘은 오로지 욕망과 죽음에만 있다. 죽음과 욕망의 과잉만이 진실에 가닿도록 해준다. … 인간 앞에 펼쳐진 두 가지 전망이 있다. 한쪽은 격렬한 쾌감, 공포, 죽음 – 정확히 시의 전망-, 그 정반대 쪽은 과학 혹은 유용성의 현실 세계, 유용한 것, 현실적인 것만이 신뢰할 만한 것으로 취급된다. 그것을 외면하고 유혹을 택할 권리가 우리에겐 없다. 진실이 우리에게 권한을 행사하고, 심지어 전권을 휘두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신은 아니되, 그 모든 권력을 합친 것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에 응답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 전권을 휘두르는 진실을 지움으로써, 소멸을 받아들임으로써만 가닿을 수 있는 저 불가능에 대하여.” – 조르주 바타유, 불가능




* 필자소개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공부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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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회피로서 책 읽기




 김정원*

   

    존재물음이 그칠 때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 혹은 ‘나는 왜 사는가?’ 와 같은 다소 궁극적인 물음을 그만두고 싶어 질 때 말이다. 그만두기를 작정한 적이 따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존재물음은 그쳐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거의 다 잃어버리는 때, 그러니까 삶의 의미를 상실한 때, 모두에게 그런 때가 있으리라.

에곤 실레, 죽음과 소녀, 1915


    누구는 신을 찾으라 하고, 누구는 연애를 하라 하고 또 다른 누구는 심리치료를 하라고 권한다. 그러나 ‘의미’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믿음도 사랑도 또 자기 자신마저도 잃어버린다는 이야기와 다름 없기에, 그러한 조언들은 힘이 없다. 오히려 친밀하고 내밀했던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은 가장 피하고 싶어지는 일이며, 바로 그 관계야 말로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압박한다. 왜냐하면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 아니라, 친밀했던 대상들을 향한 죄책감과 미안함이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의미를 잃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크게 실감한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그녀가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많이 노력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비움은 채움이 사라졌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그녀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삶의 가치를 성취하고자 했다. 정의를 공부하고 공동체를 꿈꾸며, 그에 따른 구체적 실천을 삶에서 실험해보기도 했다. 스스로를 향한 질문도 놓치지 않았다. 사회적 요구와 자신의 요구를 분리시켜 보기도 하고, 자신의 욕망을 조용히 들여다 보는 시간도 성실히 가졌다. 그랬던 그녀는 어느 틈엔가 그 모든 성취와 물음을 그만 두기로 한다. 아니, 그만두기를 의식적으로 바랐던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모든 물음에서 빠져 나와 있었다. 즉, 그 물음들의 ‘바깥에’, 다시 말해 그녀가 걷던 그 길의 ‘바깥에’, 그녀가 머물던 사회적 관계의 ‘바깥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다만 그녀는 원인을 묻지만 – 부모의 죽음, 미래에 대한 가능성의 상실, 사회적 열등감 등- 그저 희미하다.

    의미를 잃었다 말은 웃음을 잃었다는 말과 다른 말이 아니다. 어느 날, 웃음을 그친 그녀에게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가 다가와 장미를 건넨다. 그녀는 고맙게 장미를 받아들이지만, 장미의 아름다움이 퍽 당황스럽다. 또 다른 날에는 그녀를 사랑하는 여자가 다가와 그녀를 위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녀는 조용히 그 눈물을 닦아주지만, 그 눈물은 버겁다. 장미의 아름다움과 눈물의 따뜻함을 모르지 않지만 그들에게 마땅한 답례를 하지 못하는 그 사태 전반이 괴롭다. 고마운 그들과 함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같이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것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낙담하여 돌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자책감으로 살아온다. 그녀는 ‘삶은 여전히 의미가 있고, 우리는 함께 그 길을 갈 수 있다’라고 말하는 그들의 의도를 잘 알지만, 그들을 향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늘 먼저 덮쳐온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고마운 사람들 속에서 따뜻함을 선물로 받는 것이 아프다.

    그녀가 잃어버렸다는 그 의미는 죽음과 함께 엮어져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들은 의미를 잃어버렸기에 자살을 택한다는 것에 그 근거가 있고, 조금 복잡하게 말하면 그녀가 추구했던 정언적 욕구들을 포함한 그녀의 가치, 요구, 욕망 등 그녀의 지향점이 사라져버려 살아갈 의욕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단, 영원히 산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만약 우리가 시간이라는 한계를 지니지 않았다면, 우리는 고민할 이유가 거의 없다. 내일은 무한히 돌아오고, 욕구 특히 정언적 욕구는 실패가 아닌 유예로서 우리 안에 머물 수 있다. 역시 시간이라는 한계가 없다고 할 때, 우리에게 무한히 열려 있는 미래 속에서, 우리는 그 미성취된 욕구를 간혹 선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믿음을 가진 이들이 장차 올 하나님나라를 미리 맛 보았다고 고백하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그런데 만일 의미를 잃어버린 채로 그 무한한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면 어떠할까? 건조하여 우울하기 짝이 없는 그 삶을 지속하는 것은 옳은 것일까, 그른 것일까? ‘무의미’의 늪에 빠져 무한을 살아야 하는 것은 축복일 수 없다. 되려 그 생을 마감하는 것이 그 무의미한 삶을 끊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도, 즉 가장 의미 있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의미를 묻는 한, 이제는 죽음이 우리로부터 멀어진다. 욕구하고 욕망하는 것이 있는 한, 우리는 살기를 결단한다. 무기력할 틈이 없다. 의미를 향한 역동성은 우리를 생으로 내달리게 한다. 살아있어야 할 이유가 많을수록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때, 선과 악, 무소유와 소유, 이기심과 이타심, 좌와 우 등의 구별은 중요하지 않다. 각 자의 지향에만 적합하다면 죽을 이유는 없다. 지향하는 대상 혹은 지향하는 세계로의 초월을 꿈꾸며, 아니 이미 그곳으로 초월 돼 있기에 그들은 생으로 나아간다.

    다시 그 의미를 잃어버린 여자에게로 돌아가보자. 그녀가 겪는 ‘바깥’의 경험은 무얼 뜻할까? 바깥을 경험한다는 것은 세계로부터 추방되어 존재하는 경험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추방되었을까? 여기서 세계는 열려 있는 공간, 우리가 향해 나아가고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 세계는 가능성을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만 열려있다. 궁극적 가치, 가령 역사의 의미라던가, 실존의 의미 혹은 선善의 의미를 성취할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것이다. 또한, 세계와 나와의 관계는 내가 얼마나 대상들을 지배하거나 관리하거나 혹은 이해할 수 있는지에 따라 정립된다(박준상). 다시 말해 사물을 지배할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과 관리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 혹은 어떠한 이치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계는 닫혀있다. 그러기에 세계의 바깥에 머무는 사람들은 “기댈 곳이 없다는, 사물들에 대해 적극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인상을 갖는다”(블랑쇼). 이는 그들이 겪어 낸 불행과 고통을 바탕으로 한다. 사회로부터의 배제와 추방, 타인의 죽음 등 몸에 누적된 고통은 세계와의 관계를 결렬시킨다. 이는 다시 나와 나 사이의 결렬로 이어지고, 종국엔 자아의 파기를 야기한다(박준상).         

    이처럼 자아의 파기에 이른 바깥의 사람들에게 장자처럼 죽음에 초연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는 마치 아주 비싼 샴페인을 처음 마셔보는 사람의 기분과 같을 것이다. 그는 샴페인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어 달갑진 않지만 비싸고 좋은 것이라는 주변의 말에 엉겁결에 들이켜 본다. 그러나 그 맛이 좋은지 아니 좋은지를 분별할 능력이 그에게는 없다. 다들 비싼 샴페인을 품평하지만, 그는 맛없음과 맛있음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기에 그 가치(의미) 또한 알 길이 없다. 그는 이내 샴페인을 둘러 싼 사람들을 떠나 바깥에서 서성인다. 즉, 眞人이 되면 생사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장자의 주장 보다는, 차라리 인간의 현존 자체를 ‘죽음을 향한 존재’로, 혹은 죽음을 ‘실존의 본래성에 도달하는 기반’으로 보는 것이야말로 의미를 잃고 불안해 하는 자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으로부터 초연하다는 말처럼 비인간적(반자연적)인 말이 어디 있는가! 되려 ‘세계의 집에 존재하지 않음의 체험’(하이데거)이라는 묘사야 말로 위로이자 복음일 수 있다.

    저 복음은 책 속에서 발견되었다. 오늘의 죽음에 관한 단상들은 대부분 현상학자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이 몹시 난해하고도 지루하기가 이를 데 없는 철학자들의 책에 들어차 있다. 신도, 가족도, 친구도, 정의도, 평화도, 그리고 사랑도…… 이들이 지니고 있는 전반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권할 수 있는 것이 겨우 ‘책 읽기’라는 것에 부끄러움과 무력감을 느끼는 바다. 어쩌면 ‘책 읽기’는 바깥의 경험을 다시 겪게 할지도 모른다.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자책감, 책이 주는 교훈대로 살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절망감, 사회적 요구의 재청으로 인한 불안감, 깨달은 대로 살지 못한 데서 오는 우울감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실패로 인한 박탈감 까지를 몰고 와 우리를 세계의 바깥으로 한 번 더 밀어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잃은 이들에게 책 읽기를 권하는 이유는 그들의 특성에 기인한다. 거의 모든 대상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하는 그네들의 마음을 ‘내가’ 지금, 잘 안다는 것이 근거라면 근거이겠다. 은폐 속으로 첨벙, 하고 뛰어들고 싶은 그 마음 말이다. 그런데 책을 읽는 순간에는, 특히나 미간에 주름이 잡힐 정도의 심각한 책을 읽는 그 순간에는 은폐 속에 머무를 수 있게 된다. 정확하게는 은폐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책과 나만이 있다. 수동적인 상태의 책과 내가 함께 있음으로써, 나 역시 수동적일 수 있다. 능동적이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이다. 책은 영화와 드라마 보다 한결 수동적인 상태로 나에게 말 걸어오기에 나 역시 역동적이게 관계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책을 이해하는 과정, 즉 몰입의 순간에는 간혹 나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블랑쇼의 말처럼 몰입함으로써 나를 잃어버리는 무아의 시간을 갖게 될 수도 있고, 최소한 나를 괴롭히는 여러 현실을 잠깐 잊을 수도 있다. 책 읽기로의 몰입은 이로써 동요, 불안, 우울, 죽음의 공포를 잠깐 비워낼 시간을 준다. 그런데 이 때, 역설적이게도 그 몰입의 순간에, 결국 다시 찾게 되는 것은 의미이자 궁극적으로는 결렬되었던 ‘나’이다. 의미를 잃어버린 그 여자가 (무)의식적으로 찾게 될 내용은 다시 의미 지평에 관한 책일 것이다. 죽음에 관한 것이거나 존재에 관한 것들… 그러한 것을 미간을 찌푸리며 읽어나감으로써 자신의 의미 상실의 순간을 잃어버리게 되지만, 동시에 의미 물음을 다시금 하게 된다는 말이다. 죽음에 관한 내용으로 빨려 들어갈 때, 더 극단적으로는 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철학자들에게 묻는 그 순간에 삶의 의미는 갱신된다. 의미 상실로부터 도피하여 책 속으로 숨어들어갔지만, 결국 거기에서도 삶의 의미를 묻게 되는 것이다. 수동적이기만 했던 책은 이제 살아 움직이고 그녀의 부서져 버린 의미들의 파편을 무섭게 끌어온다. 그 파편들의 조합이 삶이 될지 죽음이 될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언급했듯 자살이 의미 없음과 결부되지 않을 뿐더러, 일단은 의미를 다시 묻게 된 데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녀는 운 좋게 사르트르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르트르는 그녀의 공허함과 결핍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지향하는 한, 결국 우리는 나 아닌 다른 것을 계속해서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무언가를 끊임 없이 의식하는 한, 우리는 온전히 우리 자신일 수 없다. 내가 내 전부를 나만으로 가득 채울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나와 언제나 불일치의 상태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결핍이고 불안이며 때로는 고통이며 피곤함이다. 그녀가 이를 숙명이듯 받아들이게 되면 좀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일종의 내려놓음 아니겠는가. 물론, 남는 문제는 언제나 있다.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 등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시 찾게 된 의미는 이전에 소유했던 것과는 전혀 다를 수 있기에, 이번엔 그 고마움마저도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녀 안에 새롭게 정립된 의미들이 고마운 사람과 어떻게 엮일지는 진정 모를 일이다. 또한 여전히 그녀는 세계 바깥에서 머물게 될 것이다.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과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닫혀진 세계가 책 읽기로 격파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의미 물음이 바깥에서 서성이는 그녀를 구원해 오지는 못한다. 아마도 그녀는 바깥에 머물며, 그 바깥과 그 바깥의 의미를 다시 물어야 할 것이다.


* 필자소개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공부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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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의미 없는 나




 김정원*


Andrew Wyeth, Christina's World, 1948 

   

    고개는 빳빳이, 보폭은 넓게, 표정은 당차게. 나는 지금 런던의 번화가를 걷고 있다. 부는 바람에 보라색 스카프가 흐느적댄다. 스카프가 날아갈까 신경 쓰이지만, 일단은 자연스럽게 걸어야 한다. 이미 몇 번이고 왔던 길이라 헤매지 않을 것이다. 왁자지껄한 사람들 틈바구니를 지나가더라도 주눅들 필요가 없다. 저 모퉁이만 돌면 익숙한 곳이고, 거기에 가면 나도 하하, 호호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좀 전의 그 거리보다 익숙한 곳, 학교의 건물이 보이자 나는 안도하며 3층 교실로 향한다. 계단마다 서 있는 조각상들은 그야말로 유럽풍이다. 현대적 조형물은 간데 없고, 중세풍의 것들만 진열 돼 있다. 게시판엔 공지들이 다닥다닥하다. 손글씨로 써 낸 대자보들은 며칠 째 제목도 읽어낼 수가 없어, 나만 공지를 못 알아먹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스친다. 교실 앞에 다다르자, 잠깐 숨을 고르고 문을 연다.

    먼저 온 이들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자리로 향한다. 교실 안 모든 풍경이 오감을 건드린다. 문을 열면 느껴지는 낯선 그 냄새.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향인데, 섬유 유연제 향과 초콜릿 냄새가 섞인, 달달 하면서도 느끼한 그런 냄새다. 다음으로는 나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그들의 말소리. 언뜻 들어서는 알아챌 수 없기에, 언어이기 보다는 마치 그네들만이 섭렵한 기호 같다. 교수가 들어오기 전, 모인 이들의 대화가 시작된다. 서로의 에세이 주제를 묻는다. 내 옆의 금발의 파란 눈 학생은 바디우에 관해 연구 중이다. 내 주제와 동일하여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파란 눈을 바라본다. 맞은 편의 금발의 파란 눈 학생은 칸트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고 한다. 나도 얼마 전 칸트를 다시 읽었기에 몸을 돌려 그의 파란 눈을 바라본다. 이제 나도 입을 떼보려 하는 찰나, ‘바흐’를 진실로 사랑하는 금발의 파란 눈 학생이 칸트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빠르게 진행되는 그들의 말소리에, 하려던 이야기를 접고 그냥 경청하기로 한다. 중간중간 고개도 끄덕이고, 눈도 맞추며 ‘굿 리스너’가 따로 없다. 강제된 경청인지 자발적 경청인지 당최 알 수가 없는 경청이 다시 시작됐다. 

    교수가 들어오고, 현상학에 관한 내용이 이어진다. 후설을 지나 하이데거 이야기가 한창이다. 나는 하이데거가 너무 좋아 교수의 말소리에 애를 써가며 귀를 기울이지만, 들리는 건 그가 쓰는 귀족적인 영어 강세(posh English accent)뿐이다. 속으로 그의 악센트를 따라 하다 보니 어느 틈에 쉬는 시간이다. 커피를 사러 줄줄이 나가는 그들을 따라가본다. 아까 길에서 보았던 무리들처럼 왁자지껄하지는 않지만, 고상한 듯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는 다시 철학이거나 신학이다. 나는 그네들이 거론하는 모든 유럽 철/신학자들의 이름을 들어보았고, 심지어 그 중 많은 책을 이미 다 ‘읽어제낀’ 상태였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누구도 내게 그에 관한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 들릴까 하다, 오늘은 집에 가기로 한다. 나풀대는 스카프를 목에 칭칭 감자 한결 편하다. 어깨에 들어간 힘도 빼고, 보폭도 줄이고, 표정도 풀고 나니 한 번 더 편해진다. 삼십여 분을 걸으며 그들을 고발한다. 고발자도 나고 듣는 이도 나다. 깊이깊이 속으로- 죄 없는 그들의 죄를 뇌까려댄다. 나 말고는 유색인종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그 학교의 폐쇄적 수용성을 까고, 신학함의 근본이 백인들에게 있다고 믿는 그네들의 결핍된 식견을 까고, 세계랭킹을 들먹이면서 유럽의 전시물만 죄 갖다 놓은 그들의 오만함을 깐다. 헤겔을 헤젤로, 아이스토텔레스를 아리스토틀이라 주저 없이 발음하는 영어 중심의 사고를 까고, 워킹 클라스와 구분 짓기 위한 포쉬 영어를 끝내 구사하는 그들의 교만함을 깠다. 아는 것이라고는 고작 유럽철학뿐인 그들의 무식함을 까고, 마지막으로 유로센트리즘, 그러니까 서구를 본질로 생각하는 대학가의 망상가들을 힘주어 깐다.

    한참을 까고 나니 속이 후련해진다. 후련해짐과 동시에 아주 또렷하게 나를 덮쳐오는 것 하나, 다름 아닌 ‘나’였다. 다 까고 나니 남는 것은 오롯이 아주 그냥 나 하나였다. 하루 종일 밖을 향해 있던 내 의식의 전반이 이제 나를 향한다. 나를 비추는 의식의 거울 앞에 벌거벗은 자아 하나가 불현듯 모습을 드러냈다. 관계의 경계 밖을 서성대며 낯설어 했던 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 주눅들던 나. 하하, 호호 웃을 수 없어 외로워 하던 나. 길을 잃을까 두려워하던 나. 소외에 맞서느라 잔뜩 긴장하던 나. 누구도 나의 의미를 물어주지 않아 절망하던 나, 내 지식을 드러내지 못해 억울해하던 나…... . 태생적으로 예민한 탓에 보다 야무지게 생채기가 난 내 가엾은 자아가 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집에 도착도 못했는데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마트에 들려 찬거리도 사고, 택배도 찾아가야 하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나의 거짓 이성이 퇴각하자 진실한 몸이 사건의 진정을 드러낸다. 몸이 놓여 있는 ‘여기’-‘지금’의 진실은 눈물이고 절망이고 불안이었던 것이다. 내 몸에 새겨진 내 언어, 내 분위기, 내 역사를 꾹 누르고서,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려 애쓰던 몇 주의 시간이 눈물과 함께 무너져 내린다. 무너졌으니 이제 세울 때가 왔다. 텅 비워냈으니 이는 이제 가능성일 수 밖에 없다. 존재(existence)의 어원이 ‘밖에 나가 서다’라는 것으로부터 온 것이 맞는다면, 숱하게 경계 밖에 있었으니 실로 나는 ‘존재’했다. 나를 밖에 두기도 하고, 안에 들이기도 하며 남루한 나 자신 앞에서 엉엉 울어 봤으니, 나는 제법 실존적이었다. 이제 시불시불을 멈추고, 쫓던 것의 무상함과 그 안에 머물던 나 또한 얼마나 무의미 했는지를 응시하면 된다. 나를 일으킬 명제는 간단하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 와 ‘나는 무의미하다’면 충분하겠다. 나는 델포이 신전 앞에나 선 듯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채로 지금 여기에 있음’을 계속해서 읊조렸다. ‘해야만 한다’를 넘어, ‘하고 싶다’를 넘어 ‘나는 존재한다’로 나아가길 꿈꾸며 기도하듯 입술을 움직였다. 그간 내가 신봉했던 가치와 의미들이 찢겨 나간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깊이와 충만함이 내 안에 있음을 굳건히 믿어본다. 결핍된 존재인 것을 자각했으니 이제 가능성일 수 밖에 없다. 그 무의미성을 뚫고 들어가 가능성을 건져내 오면 된다. 암만 이 낯선 세계에 내팽개쳐져 있다고 하나, 내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나의 외부로 존재를 몰아내고, 순간순간을 쥐어짜며 나를 정화시키고 나를 견고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는(구토)” 때가 왔다. 정해진 것은 없다. 본질도 없고, 필연도 없고 목적도 없다. 있는 것은 ‘저주 받은 자유’로 들어 찬 몸뚱이 하나. 이 몸뚱이로 낯설고 불안한 생활세계를 단독자로서 기어이 살아내면 된다. 내 몸이 느끼는 낯섦과, 불안, 고독에 그대로 고통스러워 하며, 내 몸의 한계와 유한성을 솔직하게 토해내면 된다. 낯선 세계 속에 단독자로 서게 됐으니 외롭고 불안했던 그 기분에 차라리 감사하다. 이런 나의 마음이 로캉탱의 마음과 같은 것일까.         


“그것은 일종의 기쁨이었다. …… 나는 눈 속을 걸어와 완전히 얼어붙었다가 갑자기 따뜻한 방으로 들어온 사람과 같았다.”(구토)


    이토록 비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오늘 가까스로 세워 놓은 나의 결단이 한방에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와 파란 눈의 격차가 나를 다시 주눅들게 할 것이고, 나와 낯선 냄새의 격차가 나를 다시 불안하게 할 것이다. 빨간 2층 버스가, 기호 같은 말소리가, 고상한 악센트가 다시 나를 자극하면, 나는 다시 세계 밖으로 밀려 나가지 않으려 머리를 빳빳이 들고 억지로 밝은 웃음을 지을 것이다.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 가게 된다 한들, 부지불식간에 나를 덮치는 격차감으로 나는 다시 발버둥 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발버둥은 빤히 예고 되어 있다. 세계 속에서 미래로 나를 던져가며 살아가는 한, 내 안의 나를 발견하고- 아프고- 초월하고-의 과정은 계속 될 것이고 그로써 나는 다시 비장해질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위의 고백은 이미 2년 전의 것인데, 그간 나는 무수히 무너지고 다시 비장했었다. 나를 만나고, 나의 외부를 만나고, 다시 밀려나고,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이 과정은 지독한 ‘의미 물음’의 과정일 것이다. 무의미성과 의미성 사이에서의 발버둥. 시인 조은의 성찰이 나의 것이 되기를 간구해본다.


  나는 늘 순도 높은 어둠을 그리워했다 

  어둠을 이기며 스스로 빛나는 것들을 동경했다 

  겹겹의 흙더미를 뚫는 

  새싹 같은 언어를 갈망했다 


  처음이다, 이런 마음은 

  슬픔도 외로움도 아픔도 불빛으로 

  매만지고 얼싸안는 

  저 무리에서 혼자 떨어져 

  몸이 

  옹관처럼 굳어가는 것 같은 몸이 생의 빛살에 관통당한 것 같은 - 조은, 생의 빛살



* 필자소개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공부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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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에 48키로 여자 일기




 김정원*


    내 일상에 가장 깊숙하게 스민 욕망 중 하나가 ‘마른 몸’이다. 이 욕망의 출발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른 몸을 아름답다고 생각한지는 꽤 오래되었다.



    중학교 시절의 나는 아주 바짝 마른 여자아이였다. 키는 날로 크는데, 살은 당최 붙질 않았다. 키에 맞춰 교복을 입고 있었던 지라, 자루를 뒤집어 쓴 허수아비가 따로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 키는 170이 다 돼 가는데, 몸무게는 겨우 40키로에 그쳤다. 아빠는 ‘용든약’을 지어왔다. 약발이 좋았는지 겨우내 살이 올랐고, 고등학교에 갈 적엔 48키로까지 몸이 커져 있었다. 그거나 거기까지였다. 키는 172까지 계속 컸지만 몸에 살은 붙지 않았다. 다이어트커녕 한 끼도 놓치지 않고 꼬박 밥을 먹어도 ‘축복받은 유전자’ 덕으로 나는 계속해서 ‘마른 여자’였다. 그로부터 쭉 48키로는 어김이 없이 나와 붙어있는 숫자였다.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원에 들어가도록 몸무게는 변하지 않았다. 이제 48은 나의 정체성이 되었고, 나는 그대로 48키로의 여자로 살아가고자 했다. 종이 인형이란 말을 듣고, 방아깨비 다리 같다는 얘길 들어도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48키로였다. 주위에서 “살 좀 쪄~ 조금만 더 찌면 훨씬 건강해 보일 거야.” 라는 말을 백 번을 듣는다 한들, 나는 48키로의 여자로 살고 싶었다. 평생을 마른 여자로 살아왔기에 마르지 않은 몸을 갖는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더욱 솔직하게는 나는 계속해서 여성들의 욕망의 대상이고 싶었다.

    그런데 서른이 넘자 몸의 판도가 약간 달라지기 시작했다. 별다른 노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아도 온전히 48키로였던 내게 변화가 찾아왔다. ‘축복받은 유전자’를 가진 여자라도, 자연의 파편일 뿐인 몸뚱이가 노화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기초 대사량은 떨어지고 먹는 양은 그대로이다 보니, 1키로가 늘고 다시 1키로가 늘어 몸무게는 50키로가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또 하나의 망언이겠지만, 50키로에 식겁한 뒤로 나의 일상은 변했다.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나는 이미 나 스스로를 퍽 통제하며 살아가지만, 그에 하나를 더한 것이다. 이제는 아주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을, 그러니까 내 정신과 영혼이 통으로 깃든 내 몸뚱이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도를 지켜야 한다. 다이어트 때문에 수선스러워 보이면 곤란하다. 나는 생태주의자이면서 페미니스트이고, 자본주의를 반대함은 물론, 목사라는 직업을 가졌기에 싸질러 놓은 게 많기 때문이다. 복인지 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자리 저 자리에 불려 다니며 온갖 그럴싸한 말을 많이 한 탓에, 겨우 ‘다이어트나 하는 여자’로 보여져서는 안될 일이었다. 적어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당당한 여자’라는 주변의 기대를 져버릴 수는 없었다. 표준 몸무게를 훨씬 밑도는 몸뚱이를 가졌음에도, 하루 1500칼로리 이하로 식사량을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로 많은 여성들이 불편할까 조바심이 났다. 전달했던 메시지들이 ‘구라’로 취급 당할까 염려됐고, 진정성 없는 여자로 전락될까 두려웠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이런 염려들은 다 몹쓸 것들이다. 사태의 핵은 다른 이들의 기대감이나 시선에 있는 것이 아닌, 앎과 삶의 분리가 낳은 죄책감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은폐되어야 할 것(되었으면 하는 것)들의 폭로, 즉 스스로를 ‘짜가’라고 인식되는 그 순간을 마주하는, 바로 그 좌절감을 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내 방구석에서 행해지는 다이어트지만, 그러니까 누구도 가타부타 말하지 않는 나만의 은신처에서 일어나는 다이어트지만 불편한 마음은 떨쳐지지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대신, 앎과 삶의 분리가 낳은 죄책감이 나와 함께 있었다.

    코르셋과 뽕브라 따위는 벗어 던져야 한다고 외치면서, 고구마와 닭가슴살을 주워먹고 있는 내 꼬라지가 싫었다. ‘마른 몸’을 향한 욕망은 결국 시장의 논리에서 오는 것을 일찍이 알던 탓이다. 천박한 자본주의적 미의 기준을 표본삼고 있는 것을 인식하기에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웰빙과 몸짱 아줌마는 다른 말이 아니다. 둘은 상품으로서 존재한다. 이와 관련한 구미정의 표현이 비상하다.


주름살과 흰머리, 기미와 검버섯, 터진 배와 늘어진 뱃살은 그 자체가 자연이고, 역사이며, 실존이다. 인간의 삶의 궤적이 가감 없이 기록되고,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정직한 몸은 그 자체가 예술이고, 시이며, 영성이다. 그런데도 ‘젊고 탱탱한 몸’을 우상시하는 시장의 논리 앞에서 정직한 몸은 당장에 추한 몸으로 전락하니, 이 무슨 횡포인가 싶다(구미정, ‘몸의 신학’, 2006).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라는 외침은 페미니즘의 기조와 같은 것이며 나아가 그 자체로 생태적이다. 노화에 마냥 달가울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노화야 말로 자연의 섭리를 온 몸으로 감각하는 일이다. 세월의 흔적을 담은 몸을 포용하는 일이야 말로 사람과 사랑을 배우는 일이며, 정직함을 성취하는 길인 것이다.


    하! 알면 뭐하나. ‘지금, 여기의 나’는 그저 마른 몸 따위를 지향하고 자빠져 있는데…… 속을 파 보면 남성은 물론 여성에게도 ‘예쁜 여자’로서 보여지길 원하는 하질의 에코페미니스트인 것을. 누가 아는 것을 힘이라 했나. 앎은 그저 고뇌이고 고통이며, 죄책감이자 우울감이다.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일이 늘수록, 살도 함께 늘어난다. 영국에 머물며 살은 조금 더 붙었고, 덕분에 조금 당당해질 수 있었다. 키로 수가 조금 늘 때마다 나의 진정성도 늘어간다. 아무도 모르게 살이 찌고, 아무도 모르게 죄책감에서 벗어난다. 살이 찐 만큼 페미니스트로서의 진정성이 회복되고, 허벅지가 통통해진 만큼 생태주의자에 보다 가까워진다. 단, 죄책감이 덜어지고, 진정성을 얻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울감을 느낀다는 것에 아이러니가 있다. 살이 찌면 못생겨진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른 몸’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왜곡된 기준에서 온다. 그렇다면 이제, 왜곡된 미의 기준을 갈아 마시면 될 일이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바꿔 보려 노력해도 이게 쉽지가 않다. 나는 다시 우울감에 젖는다. 이 때, 내 맘 속의 제일 가치는 에코페미니스트가 아닌 것이 탄로 난다. 그게 아니고서 살이 조금 붙었다고 이리 우울해질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이 순간 위로가 되는 것은 “나의 육체는 나의 전부이다. 나는 육체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니체의 말이다. 물론, 니체의 이러한 주장은 육체를 덧없는 것으로 간주하며 정신을 강조했던 철학자들을 비판한 것이지만, 나의 고뇌와 실존적 물음들이 ‘몸뚱이’를 통한 것이라고 할 때, 그의 말은 충분한 위로가 된다. 나의 우울감은 “우리의 가장 근원적인 소유물, 우리의 가장 확실한 존재, 요컨대 우리들의 자아로서의 육체”를 곱씹으며 발생한 것이기에 나는 그나마 철학적이었다. 그냥 그렇다 치자.


    오늘 아침 몸무게를 달아보니 51키로를 조금 넘어간다. 3키로어치의 에코페미니즘과 진정성을 얻었다. 물론 3키로어치의 우울감도 함께 얻어왔다. 그러므로 나는 저녁으로 닭가슴살과 토마토를 먹을 것이고, 당분간 라면은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나를 마주하며 나는 다시 죄책감을 느낄 것이며,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다시 라면을 먹을 것이다. 먹고 빼고, 먹고 빼고, 해방되고 억눌리고, 해방되고 억눌리고, 진짜였다가 가짜였다가, 진짜였다가 가짜였다가. 아주 미친년이 널을 뛴다. 앎과 삶의 분리가 주는 형벌이다. 아는 만큼 살지 못하는 한, 적어도 ‘다이어트 하는 여자’로 사는 한, 나는 제 명에 못 살 것이 분명하다. 이런 나를 누가 구원하겠나. 결국 더한 각성과 반성과 결단 밖에는 없다. 그게 안 된다면 스스로를 좀 놓아주면 되는 일이다. 나약한 나에게 그러한 용기가 작동된다면 말이다. 다만 이 상태가 어느 방향으로든 한동안은 변하지 않을 것을 직감하고 있기에 나는 내가 몹시 안타깝다. 오호 통재라!


* 필자소개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공부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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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소연
    2016.12.29 09:2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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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어트는 마른여자든 뚱뚱한여자든 여자들의 평생숙제라하잖아요

    저는 최근 7개월간 다이어트를 해서 10킬로는 감량했는데
    일하는 곳에 원장님의 질투도 엄청 났고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담니다.

    저는 목사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꺼같아요
    죄책감을가진다는건 주의보는눈인데
    솔직히 여지로 태어나 예쁜몸매가지는게 소망이잖아요 그리고 이것도 자기관리중하나입니다.
    건강한생각을 가지고 스트레스는 받지마세요
    화이팅



아주 아카데믹하지 않아서 더욱 아카데믹한 단상

여섯. <불안하면 불안하기>




 김정원*


    찰떡 같은 위로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 개떡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자아의 밑바닥을 훑어내는 그들의 신묘함은 울음마저 그치게 한다. 그들을 찾아가면 슬픔도 눈물도 하물며 우울도 그칠 수 있었다. ‘불안’한 마음도 어찌 할 수 있을까 하여 찾아가 물어보았지만, 그들의 신묘함도 ‘불안’을 처분하지는 못하였다.


'나는 불안하다'


    불안을 인식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보통 긴장이나 공포로 불안을 혼동할 때가 많으며, 그 원인을 제거하기만 하면 이내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안은 어떤 긴박하거나 무서운 사건에 앞서 닥쳐오는 긴장감이나 공포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한 여자가 대중 앞에서의 연설을 앞두고 극도의 불안감을 느꼈다고 해보자. 그녀는 다시는 대중 연설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침밥을 먹다 말고는 불안을 마주한다. 여자는 이제 아침밥은 건너 뛰기로 한다. 이 때, 큰 소음을 내며 지나가는 쓰레기차의 소리가 창문 밖에서 들려오자 더욱 거세진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이에 여자는 불안의 원인을 규명할 수 없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된다. 이제 여자는 불안을 ‘죽이기’ 위한 다른 방도를 찾는다. 많은 선인들과 상담가들이 일러주었듯, 심호흡과 명상을 시도한다. ‘괜찮다, 괜찮아’라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감독하며 상황을 안정으로 이끌어 내본다. 잠시 괜찮아지는 듯하여 마음을 놓아보지만, 휴대폰의 채팅창을 확인하고 나니 어인 탓인지 다시 불안해지어 하던 명상을 포기하고 만다.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서 요동하는데, 명상이 될 리 없다. 그대로 불안이다.

    즉, 공포와 긴장은 그것들의 원인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반면 불안은 그 원인을 찾지 못한다. 공포와 긴장의 원인을 찾았던 그 방식으로는 더욱이 찾을 수가 없다. 따라서, 공포와 긴장감은 이 시간(순간)이 지나가 버리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곧 잘 해결 되지만, 불안은 쉬 지나가는 일이 거의 없기에 명상이나 기도로는 약발이 들지 않는다. 특히 ‘괜찮다,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채근한다고 불안한 마음이 달래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헛다리다. 그러니 평안과 안식의 방향으로 불안한 마음을 질질 끌고 갈 필요가 없다. 또한 불안은 엄마나 아빠에게로부터 받은 상처에서 비롯된 내면적 심리 상태(혹은 결정론적인 상태)가 더 이상 아니다. 그러니 이제 필요한 것은 불안을 향한 ‘판단 중지’이다. ‘어디서’, ‘왜’라는 물음을 중지하는 것부터가 ‘불안 죽이기’의 역설적 시작이다.

    다음으로는 불안증에 지친 스스로를 바라보는 일을 하면 된다. 이는 심장이 널뛰는 채로, 아랫배가 뒤틀리는 채로, 입이 바짝 마른 채로, 다시 말해 몸뚱이가 전하는 불안을 그대로 드러내며 자신의 존재를 가만히 마주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불안은 은폐 돼 있던 내가 다시 나에게 폭로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곧, 불안하다는 것은 실존으로 나아가는 바로 ‘거기’에 내가 ‘나가 서’ 있는 것이다. 불안을 타고 오는 ‘존재의 요구’ 즉, 하이데거의 말처럼 존재의 “말 건넴”에 응답하는 것, 이 때의 응답은 ‘나는 불안하다’, 혹은 ‘지금 여기에서 불안해 하는 것은 나다’ 라고 할 수 있겠다.


'불안할 수 있어 다행이다'


    ‘지금 여기에서 불안해 하는 것은 나다’라는 응답은 나 개인의 고백에서 비롯되었다. ‘말 건넴’과 그에 따른 응답. 이 지루하기도,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찾아 낸 오직 하나의 기쁨이라면 ‘내가 불안하기 때문에 사유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아니, 불안하기 때문에 사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왜냐하면 불안은 필연적으로 존재론적 질문을 몰고 오기 때문이다. 즉, 나를 사유하게끔 만들었던 것이 바로 불안이었다.

    신, 죽음, 삶, 사랑, 몸, 아름다움, 권태, 실존 등을 사유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고독 속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고독한 것이 불안한 것보다 나았기에, 나는 차라리 고독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밖에 나가지 않기’를 작정한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최소로 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요, 반대로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불안증이 잦아들거나 환기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 또 다른 하나였다. 도피이면서 도피가 아닌 상태. 불안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으면서도 도망가지 않으려 하는, 그러니까 사르트르의 말처럼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면 피할 수도 가릴 수도 없다는 그 불안을 적나라하게 목도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음식을 사러 나가는 일 말고는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근 반 년의 세월을 그리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철학자들의 위로 덕분이었다. 내가 대단한 철학적 사유를 해서도 아니고, 할 수도 없었지만 그들의 위로는 채 표현할 수 없는 위로 곧, ‘고독한 위로’였다. 찰떡 같이 위로하던 이들도 해내지 못했던 ‘불안’에 대한 물음을 그들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불안 속을 헤매어 잠도 이루지 못하고, 심장이 배 밖으로 튀어 나온 줄로 착각하던 때에 하이데거는 내 귀에 속삭였다.

    ‘네가 지금 불안 한 것은 허무감이나 무상감 때문이 아니야. 네가 남들(세인)과 똑같이 살아가려는 것을 멈추기 위한 것이야. 세계 속에 내던져져 있는 네 존재가, 온전하게 지속되기 위한 일종의 면역 반응인 거지. 바로 독자성과 자립성을 기르기 위한 시간인 거야. 그간 은폐되어 있던 본래적 너를 발견 할 바로 그 때가 지금 온 거란 말이야. 너의 실존가능성을 개시 할 때 말이야. 그러니 너는 이제 가능성이란다! 비본래적인 너를 벗어 던질 준비가 되었니? 불안한 지금, 바로 환희와 기쁨의 시간 속에 네가 ‘나가 서’ 있단다.’         

    이보다 큰 위로는 없었다. 그의 속삭임처럼, 나는 ‘비본래적인 나’에서 ‘본래적인 나’로 돌아서는 길목에 서 있었다. 불안할 수 있어 비로소 다행이었다.


'기분에 충실하기'


    화염같이 일어나기도, 가랑비처럼 내리기도 하는 불안을 막지 않기로 작정하는 것. 철학자들이 건넨 ‘고독한 위로’의 힘이다. 그런데, 이처럼 ‘불안을 작정’하는 것, 다시 말해 불안한 그 기분을 충실하게 느끼는 것은 진짜 나에 가까워 지는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기분이야말로, ‘저절로’ 일어나는 본래적이고 근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웃고는 있지만 기분이 딱히 좋은 것은 아니야’라고 할 때,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 더 진짜라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기분은 늘 우리 안의 본향을 향해 있다. 오늘의 기분이 어제의 기분과 같은 수 없고, 지금의 애인과 있을 때의 기분과 과거의 애인과 있을 때의 기분이 같을 수 없다. 우리가 어떠한 기분에 늘 ‘사로 잡혀’있(을 수 밖에)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기분은 이성보다 앞서 벌어지는 현상이며, 그러기에 나의 존재를 이성보다 앞서 규정하는 아주 근원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느끼고 있는 기분에 충실한 것이 나의 근원을 캐묻는 일이 된다.

    나를 ‘괜찮다’라고 타이르는 행동이 약발이 들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절로 “피어 오르는 기분”이 이성으로 꺼질 리 없다. ‘괜찮다’라고 나를 타이르는 행동이 고안된 것이라면, 기분은 말 그대로 “나를 덮치는 것”으로서, “우리가 말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닌, “저절로 지어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음의 조언은 틀렸다. 늘 방구석에만 쳐 박혀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니, 나 같은 여자도 밖에 나가야 하지 않겠나. 어느 날 ‘밖’에 나가는 것 자체로 불안하여 외출을 지체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밖을 안이라 생각하라”라고 조언 하였다. 당시에는 발상의 전환이라며 무릎을 쳤지만, 그런 이성의 간계가 불안한 기분과 그에 따른 몸의 변화를 막아내진 못했다. 몸이 이성보다 앞선다는 것을 알던 이였지만, 그의 조언은 허위다.

    다시 강조하자면, 기분은 “강제 되는 것이 아닌 우리가 그리로 빠져들어버리게” 되는 것이기에, 기분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는 것이야 말로 아주 근본적인 존재 물음이 된다. 이성보다 한 발 빠르게 우리를 사로 잡고 있는 기분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오늘의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결국 나를 사로잡고 있는 아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불안을 잘 붙들어 매 놓아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래 봤자 불안하다면, ‘불안하면 불안하기’로 하면 되는 것이다. 본래적 자기에로 나아간다는 말에 고독한 위로를 삼으며 불안함을 애써 움켜본다.


* 필자소개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공부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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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회초리기도대회
    2016.11.08 20: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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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맴매맞을준비



아주 아카데믹하지 않아서 더욱 아카데믹한 단상

다섯. <고흐의 방에 아빠를 뉘였으면 좋겠다>




 김정원*


    아빠는 6인실을 선호했다. 싼 이유가 반이고, 사람들과 보다 많은 접촉을 할 수 있음이 그 반이다. 말씀이라고는 없는 양반인데도, 북적거리는 그 곳을 좋아했다. 환자와 그 보호자들, 수시로 드나드는 간호사와 의사들은 물론 방문자들이 한꺼번에 몰리기라도 하면 도떼기 시장이 따로 없었다. 폐쇄적인 울 아버지 성정에는 맞지 않은 곳이었지만, 그의 몸에 주렁지게 달린 주사병과 소변줄 너머 시선을 둘 곳이 필요했기에, 그는 차라리 6인실에 있고자 했다.


    새로 들어 온 옆 침대의 아저씨는 서른 번째 항암 치료를 받는 중이라며 말을 건넨다. ‘신입’들은 다른 환자들에게 통성명, 아니 통병명(通病名)을 하기 마련이다. 아저씨의 ‘말 걸어옴’이 시작되자, 아빠는 내게 침대의 머리맡을 올려 달라한다. 그는 별 대꾸는 하지 않지만, 아저씨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이 침대 저 침대의 환자들의 ‘들음’이 시작되고, 각자의 ‘history’가 붙여지며 대화는 금새 익어간다. 누구는 간암, 누구는 위암, 누구는 임파선암…… 개중에는 병세가 완연한 사람도,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 들어온 고등학생 남자아이는 너무도 말짱하여 침대를 팔짝팔짝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각자가 겪고 있는 ‘암 이야기’가 한창이지만, 그 남학생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뿐 별 대답이 없다. 대신에 그 남학생의 유일한 보호자인 그의 누나가 대화에 낀다. 괴롭기도 지루하기도 한 보호자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면, 병실에는 훈기가 돈다. 생경한 훈기가 아닐 수 없다. 이이도 저이도 겪고 있는, 말하자면 이 병실에 있는 모든 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암이라는 상황이 만들어 낸 훈기이다. 담아 온 음식을 나누기도 하고 함께 화장실을 가주기도 한다. ‘오늘 내일’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훈기는 그야말로 아프도록 따뜻하다.


    그런데 이것도 낮의 풍경이다. 해 지고 달 뜨면, 낮 동안 숨어있던 죽음의 유령이 암 병동을 배회한다. 어떤 이는 진통제를 달라고 애원하고, 어떤 이는 몸부림하며 고통을 참아낸다. 그리고 어떤 이는 죽는다. 이 때, 환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 죽음이 제발 ‘우리 방’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함께 말과 밥을 나누던 이의 죽음이 안타까운 탓도 있겠지만, 바로 앞에서 죽음을 목격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 큰 이유이다. 죽음을 눈으로 보는 것에 대한 공포. 그렇게 그들은 매일 밤 죽음을 본다.


    그 밤에 죽게 된 환자의 보호자들은 작게 작게 운다. 이미 예상했던 죽음이라서가 아니라, 남은 다섯 명의 환자들과 그 병동에 뉘여 있는 다른 환자들을 위함이다. 오열을 하다가도, 터지는 울음을 이내 타이른다. 죽음의 직전에 살고 있는 다른 환자들을 위한 그네들의 ‘마음 씀’이다. 혹여 애통의 소리가 복도를 타고 흘러, 병동 전체를 죽음으로 흔들어 깨우고 싶지 않은 ‘마음 씀’인 것이다. 그 방에 남겨진 환자들은 더는 그 밤을 그 곳에서 보내지 못한다. 바로 옆, 앞 침대에서 죽음이 시작되면, 나머지 환자의 보호자들은 환자를 뉘인 침대를 채로 끌고 방을 떠난다. 그리고 생각한다. ‘오늘 본 죽음이 내일 이 침대로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결코 서로 나누지 않는다. 동틀 무렵 방으로 다시 모인 살아남은 환자들은 울지도 않고, 별 말을 나누지도 않고, 죽음이 비워 낸 그 침대에 더는 시선을 두지도 않은(못한) 채, 늦은 잠을 청한다.


    해가 뜨면, 새로운 환자가 그 침대에 짐을 푼다. 신입의 클리셰 같은 통병명이 또 지나가고,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 이야기를 역시나 경청한다. 밥도 나누고 말도 나누지만, 누구도 어젯밤의 이야기를 털지 않는다. 누구도 어제 보았던 그 침대에서의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다시 밤이 찾아 왔을 때, 내가 그리고 저이가 죽음에 덩핑되지 않기만을 바라며, 새로 온 이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렇게 몇 날이 가고, 다시 밤이다. 팔짝팔짝하던 그 아이가 낮부터 심상치 않더니, 밤이 되자 앓아대기 시작했다. 죽음이 덮치기 바로 전, 보통의 환자들은 밤 사이 장을 다 비워낸다. 뼈만 남아 있는 그네들의 몸뚱이에서 그 많은 것들이 배설된다는 것이 기이할 정도로 비워내는데, 그 밤에 그 아이가 꼭 그랬다. 그의 누나는 열 두 번도 넘게 기저귀를 가느라 혼이 나갔다.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찾아 오기까지 한 것을 보니 영 기운이 좋지 않다. 자정이 넘도록 비워내던 아이는 소리 소리를 지르며 누나와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한 두 시간이 흘렀나. 사경에 다다랐는지 아이는 입을 다물고 몸부림을 그쳤다. 이제 막 열 여덟이 된 그 아이는 그렇게 가버렸다. 그 날은 병동 환자들 모두가 들썩였고, 죽음에 냉정하던 의사들 마저도 입을 닫았다. 그 어느 밤보다 힘든 밤을 울 아빠도, 옆 자리 아저씨도 보내고 있었다. 


    암만 죽음이 ‘능가할 수 없는 가능성’으로 드러나는 것이라지만, 암 병동의 그것은 이처럼 지나치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그 가능성을 드러낸다. 죽음이 ‘존재 상실’이라고 정의한 어느 철학자의 말이 살아오는 공간, 바로 암 환자들의 방이다. 그곳은 환자들과 함께 먹고 자며 고통스러워 하는 보호자들의 방이기도 하다. 이제 더는 자신의 세계 안에 머무는 존재가 아닌, 즉 자신과 절대 관계할 수 없는 아내를, 아빠를, 동생을 예감하며(곧잘 그 예감을 회피하며) 머무는 보호자들의 방이다. 그런 의미로 암 병동은 “임박해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죽음” 그 자체의 공간이 된다. 즉, 존재 상실을 기다리는 공간, 존재 완료를 인수하게 되는 공간, 인간 본연의 필연을 마주하는 공간으로서 절실하게, 아주 절실하게 존재한다.


    그 절실한 공간에서의 삼 개월, 울 아빠와 나는 섬처럼 남아있었다. 그는 ‘존재 완료’ 너머의 삶을 꿈꾸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입 밖에 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만 암 병동의 여느 신자들처럼 일요일이면 침대에 누운 채로 예배를 보러 갔고, 양희은의 찬송가 테이프를 듣곤 하였다. 가끔은 자신이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나보고 대신 먹고 오라 일렀고, 그 음식을 먹고 돌아오면 꼭 그 맛을 물어 보곤 했다. 맛이 좋아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말하면 반색하며 좋아하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싶어 과장된 표현을 더러 하기도 했다. 복수가 가득 찬 배를 해가지고도, 의연하기도 초연하기도 한 그의 태도를 보며, 죽음의 완전한 존재론적 본질을 파악한 사람인가 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도 ‘능가할 수 없는 가능성’, 곧 죽음이 찾아오고 있었다. 물론 나 역시도 내 세계 속에서 그와 더는 관계 맺을 수 없는 ‘그 때’가 곧 올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아빠는 참 아빠 제 성정대로,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조용하게도 갔다. 다만 내가 그와 달랐다. 판옵티콘과도 같았던 그의 관심 아래 자랐던 스물 넷의 여자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다는 죽음’을 이해하는 것을 순간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그 사건을 막아내지도 못하면서 야윈 팔에 끝끝내 주사하고 피를 뽑아가던 의사들을 저주했다. 눈덩이처럼 늘어난 치료비를 지우는 병원에 분노했고, 복도에 쳐 앉아 고래고래 우는 날 곁눈질하는 간호사들을 쏘아 보았다. 많은 보호자들이 잦게 잦게 흐느끼던 모습들이 머리에 스쳤지만, 나는 그대로 큰소리로 울어댔다. 암만, 암만 이미 주어져 있는, 그래서 결국 필연적인 사건이라지만, 죽음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지는 나의 몫이니, 나는 울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편히 눈을 감았다고 소곤대는 이들의 귀 속에 내 울음 소리가 박히길 바라며 울었고, 하늘나라로 갔을 것이니 편히 그를 보내주라 말하는 이들의 얼굴에 침을 뱉는 심정으로 울었다. 누구도 죽음을 대신할 수 없듯, 누구도 그의 죽음을 대신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며 종말과 인간의 전체성을 분석하는 이들을 참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내 세계 – 안의 – 존재’로서 있지 않는 그.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도 나는 충분히 아팠다.


    몇 주가 흐른 뒤 삼십 차 항암치료를 받던 그 아저씨도 떠나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팔짝팔짝하던 아이의 누나는 병원 빚을 갚기 위해 투잡을 뛴다 하고, 다른 병실로 옮겨 갔던 간암 아저씨는 더는 손 쓸 방도가 없다 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한다. 나 역시 학교로 돌아갔고, 매 주 설교를 했으며, 친구들과 웃으며 밥을 먹었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며 어느새 열 해가 지났다. 십 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하고 좋았던 기억도 흐릿해지기 마련이건만, 암 병동에서의 삼 개월은 어제 본 듯 훤하다. 환자들의 신음 소리, 죽음의 낯빛, 의사들의 무성의함, 복도의 형광등 불빛, 알알한 알코올 냄새까지 내 오감에 온전하게 머물러 있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6인실 한 켠에 누워있던 아빠의 모습. 창가 옆의 침대, 그곳이 아빠의 ‘마지막 방’이었다.


    그 방에 종일을 붙어있던 아빠를 구원해내어 아름다운 남프랑스의 프로방스로 보내드릴 수만 있다면 참말로 좋겠다. 고흐도 반한 그곳에, 밤을 이기는 강렬한 햇빛이 있는 바로 거기에 아빠를 데리고 가, 고흐의 ‘처음 방’인 아를의 방에 뉘여 드렸으면 좋겠다. 고흐의 고백처럼 절대적 휴식이 있는 그곳에 말이다. 끝도 없이 고독했던 고흐 같은 이가 편히 쉴 수있었다면, 암 환자도 잠들 수 있는 곳이 분명할 테니.


    고흐는 동생에게 적었다.


    "문이 닫힌 이 방에서는 다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아. 

가구를 그린 선이 완강한 것은 침해 받지 않는 절대적 휴식을 표현하기 위해서야."


    이제, 암 병동에 대한 기억의 재생을 그만 멈추고 기억의 공간을 고흐의 방으로 이전해 본다. 


    “나는 고흐의 방에 조심스레 울 아버지를 눕히고- 그가 잠들길 가만 기다렸다. 그가 새근새근 잠이 들자– 그가 깰 까 하여 까치발을 들고 문까지 걸어가,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는 방문 앞 복도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제발 그에게 절대적 휴식이 깃들길 기도하며 기쁘게 밤을 기다렸다.”


    다시, 기쁘게 밤을 기다린다.


* 필자소개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공부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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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카데믹하지 않아서 더욱 아카데믹한 단상

넷. <외로움과 머리카락>




 김정원*



    다시 또 사랑 이야기이다. 아득함이거나 외로움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머리카락에 관한 이야기임은 분명하겠다.


    나는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는 것을 즐겨 하는데,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그 중 하나다. 이만교의 소설이 원작인데, 보통의 경우와 다르게 내겐 소설보다 영화가 더 나았다. ‘연희’역의 엄정화가 예뻤던 탓이다. 영화에서의 연희는 ‘도리에서 벗어나는 삶’을 사는데 망설임이 없는 여자다. 소설의 연희와는 달랐다. 그러니 예쁠 수밖에. 연희는 결혼한 여자지만, 준영의 ‘집’을 드나든다. 준영의 직업은 시간강사다. 연희는 넉넉잖은 준영의 사정을 알고는 그가 ‘집’을 구할 때 자신의 퇴직금을 꿔준다. 그 돈으로 연희와 준영만을 위한 공간이 마련된다. 연희가 불륜의 주체가 된 셈이다. 준영은 학생운동을 했던, 그러니까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면서도 비판적인, 말하자면 ‘의식 있는’ 남자다(지난 글에도 밝혔듯, 진보적이라 일컬어지는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준영 역시 리버럴한 엘리트-독신주의자이자 제도적 관계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즉 내게 그리 새로울 것 없는 인물이다).


    그런 준영이 이제 연희를 기다린다. 그녀의 결혼 생활의 틈새 속에 준영이 놓여 있다. ‘그 집’에서 둘은 먹기도 하고 자기도 하지만, 연희의 ‘틈’이 다하면 준영은 혼자 남는다. ‘리버럴 엘리트-독신주의자’스러운 강의를 한 뒤에도 그는 연희를 기다린다. 이내 연희가 오면 함께 먹기도 하고, 자기도 하지만 밤이 되면 혼자가 된다. 이러한 반복된 생활에 준영은 차차 화가 나기 시작한다. 사실 그가 화가 난 연유는 연희를 기다리는 자기 자신에게로부터 온 것일 게다. ‘관계에서 자유로운’ 강사로서의 시간을 막 마친 뒤, 이제 ‘그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길에서 연희와의 관계를 묻고 또 묻는 그 마음이 텁지근했을 것이다. ‘결혼한 여자의 삶’으로 내처 돌아가 버리는 연희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닌, 그런 연희를 욕하는 자신에게, 말하자면- 연희와의 결혼을 상상하고 있는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잔뜩 화가 났을 것이다. 결국 수틀린 준영, ‘그 집’에 다시 들어선 연희에게 열을 내다 속을 들키고 만다.


    “넌 그냥 가면 그만이지만, 난 아주 기분 엿같애. 니 쓰레빠 굴러다니지, 베개에 니 머리카락 붙어있지……”


    바로 저 머리카락. 나는 저 머리카락이 참 슬펐다. 연희를 욕망하는 그의 실상이 벌컥하고 쏟아져버려 슬펐고, 소루하게 드러나버린 준영의 진심이 슬펐다. 그러나 베게에 붙어있던 머리카락만치는 아녔다.


    머리카락은 별안간에, 그리고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보통의 순간에 말이다. 지금처럼 글을 쓰다가 커피 한 모금 들이킬라 할 때, 머그잔을 타고 주욱-하고 딸려오는 그 사람의 머리카락은 쓰던 행위를 멈추게 하기에 충분하다. 욕실 거울에서 발견한 그 사람의 머리카락은 이를 닦는 것을 멈추게 하고 그 앞에 가만 서게 만든다. 방바닥을 훔치다가도 드러나는 ‘그 사람’의 머리카락은 하던 걸레질을 멈추게 하고,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있게 한다. 그런데 그런 머리카락을 베개에서 발견하다니, 잠은 다 잤다. 손에 잡히고, 만져지던, 그러니까 아주 내 옆에 있던 ‘그 사람’과의 지난 시간이, 곧 ‘그 사람’의 부재가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인 것이다. 왔다가 돌아갈 것이면 흔적일랑은 남기지도 말 것이지, 영역 표시하듯 많이도 자기 존재를 알리고 가셨다. 분명 외롭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베갯잇에 붙은 그것 때문에 다 틀려버린 것이다. 나는 혼자서도 잠만 잘 자는 여자였는데, 그놈의 머리카락이 굴러다니는 통에 한참을 뒤척이게 된다.


    길다란 내 것과는 생김이 달라, 더욱 눈에 띄는 그것들을 탈탈 털어내려다, 한 가닥을 슬며시 (붙)잡아본다. 몽땅 다 털어내 버리는 게 아쉬워진 것이다. 그런 내가 구차스럽게 느껴져 얼마 못 가 스카치테이프로 말끔히 정리해버린다. 집 밖에 잘 나가지 않는 나에게 커피, 이닦기, 방바닥, 침대… 이런 것들이야말로 내 일상의 본질과도 같은 것들인데, 그 속에 초연하게 자리잡고 있는 그것들을 해치울 필요가 있었다. 역시나 스카치테이프는 제격이었다. 어떤 것들은 고운 결의 생머리였고, 어떤 것은 반곱슬의 얇은 것이었다. 생각을 더듬어 보니 또 다른 ‘그 사람’의 것은 새치였다. 


    이처럼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머리카락은 강력하다. 애절한 가락의 사랑노래는 비견될 바가 아니다. 왜냐하면 머리카락은 실로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잡담도 사라지고 나니, ‘그 사람’ 머리카락에 대한- 나아가서는 ‘그 사람’에 대한, 결국에는 ‘나’에 관한 - 올바른 이해만이 남게 된다. 다시 말해, 내 일상에 머물렀던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나, 혼자인 나, 사랑을 나눴던 나, 남겨진 나, 그래도 밥만 잘 먹는 나 등등 결국에는 ‘나’에 대한 ‘이해가 밝아지는 시간’ 속으로 침잠하게 되는 것이다. ‘침묵하는 머리카락’과 – 그 머리카락의 ‘침묵을 듣는 내가’ 일상에서 실존론적으로 개방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하찮기 그지 없는 ‘그 사람’의 머리카락에서 나왔다. ‘그 사람’의 머리카락은 진실로 침묵하고 있지만, 실은 아주 다른 양태로 나에게 말을 걸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 가로되, “침묵은 말의 한 존재양식으로서 어떤 것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자기를 밖으로 말함이다” 라고 하였는데, 그 역시 아렌트의 머리카락을 보고 정리한 구절이려니 한다.


    귀신같이 글 잘 쓰는 남자, 김훈 역시 머리카락에 조예가 깊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의 속옷에 가끔씩 여자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다. 여름 속옷에도 붙어 있었고 겨울 속옷에도 붙어 있었다. 여름의 머리카락과 겨울의 머리카락이 같은 모질이었다. 어깨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다. 염색기가 없는 통통하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었다. … 겨울 속옷의 섬유 올 틈에 파묻힌 머리카락을 손톱으로 떼어내자 더운 방바닥 위에서 머리카락은 탄력을 받고 꿈틀거렸다. 젊고 건강한 여자의 나신이 환영으로 떠올랐다. 환영 속의 여자는 이름을 가진 어떤 여자라기보다는 여자라는 종족의 먼 조상이거나, 내가 알지 못하는 모든 익명의 여자들이 다 합쳐진, 여자의 군집체처럼 느껴졌다. 화석 속의 여자가 세상으로 뛰쳐나와 내 앞에서 한 올의 머리카락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환영은 이내 지워졌다. 환영이 사그라진 자리에는 분노도 슬픔도 없었고 휑하니 빠져나간 세월의 빈 자리가 허허로웠다. – ‘언니의 폐경’ 중 

         

    ‘남편’이 만난 ‘그 사람’이 탄력 있게 꿈틀거리는 젊은 육체를 가졌을 수도 있고, 통통하고 윤기가 흐르는 여자일 수도 있겠다. 그런 여자들의 전부가 ‘남편’의 여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기에 폐경기의 자신에게는 없는 촉촉하고도 축축한 젊음에 대고 지청구를 읊조렸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러한 여자의 머리카락에 관한 주시가 추상적이든 구체적이든, 상상이든 현실이든, 몸이든 마음이든 간에 이는 남편의 외입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머리카락을 통한 여자의 헛헛함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차라리 맞을 것이다. 남편 속옷서 발견 된 머리카락은 남편 외도의 단서가 되고, 나아가 남편의 전날의 밤을 말해주고 있지만, 결국에는 분조차 일지 않는 그녀의 깡마른 정신을 들여다 본 일상의 통찰 또는 여자의 존재론적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머리카락의 강력한 영향력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내가 ‘그 사람’의 집에 드나들 적에는 말끔하게 머리카락을 치워놓고 나오곤 했다. 말 없는 나의 그것이 행여나 그 사람에게 다른 양태로 말을 걸어올 것을 염려해서였다. 더 없는 배려다. 그런데 무념한 ‘그 사람’이 ‘머리카락의 말 걸어옴’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작자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퍽이나 그랬을까 싶다. ‘그 사람’들이 나만큼 예민하지도, 나만큼 경청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는 뒤처리를 달리했던 것 같다. 흩뿌리는 것까지는 아녔어도, 방바닥이건 침대건 간에 그 긴 것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나온 적이 꽤나 있었던 것 같다. 내 몸의 일부인 나의 머리칼을 ‘그 사람’의 일상에서 발견하고서는 곰곰이 되새김질 해보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즉, 나의 존재부터 나의 부재까지를 자못 느꼈으면 했던 것이다. 준영과 같이 관계에 대해 자유롭기를 원했던 사람일수록 더욱 그리했던 것 같다. 나의 머리칼이 ‘그 사람’의 신념을 파고들어 좀먹어 주길 바라는 마음에 말이다. 나의 자극이 없는 곳에서도 나를 경험하기를 소망하며 약간의 너저분함을 자처했던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그 사람’ 역시도 나를 향한 자신의 마음의 꼴을 살펴보기를, 그리하여 그리움일수도 헛헛함일 수도, 아님 또 다른 것일 수도 있는 자기 자신의 ‘뫔’을 이해할 수 있는 형편이 되길 갈망했던 것이다. 출발은 나의 욕망이었지만, 끝은 ‘그 사람’이 존재물음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일타 쌍피 전략였던 것이다.


    “은폐” 되어 있는 ‘나’를 고요하고 은밀하게 만나는 시간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된 사랑도 연애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인데, ‘머리카락’은 이에 따른 가장 영향력 있는 증거이자 그것의 질료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것이 됐든 좋으니, 나의 머리칼을 통해 특정 “기분”- “권태”, “불안”, 과장, 허위, 고독, 등등- 을 ‘그 사람’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쓰고 보니 죄다 부정적인 기분들만 늘어놨다. 분명 누군가는 충만, 행복, 기쁨 같은 기분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아직까지 저 단어들과 친밀하지 못 하다). 뭐가 됐든지 간에 갑자기 들이닥친 그 “기분”을 묻고, 음미하며 ‘본래적 자기’를 발견 할 수 있는 남자, 나는 그런 남자를 찾고 있었나 보다. 그러니까, 내가 나의 머리칼을 ‘그 집’에 그대로 두었던 더 깊은 이유는, 그가 헛헛함이나 공허함 속으로 가라 앉을 수 있는, 바로 ‘고독한(또는 고독 할 수 있는)남자’가 되길 바라는 주술적 행위였던 것이다. 나의 길다란 ‘머리카락의 말 걸어옴’을 들을 수 있고, 불현듯 만나게 되는 머리카락의 “순간” 혹은 “시간” 안에서 충실하게 외로울 수 있는 그런 남자를 향한 욕망이 그것의 바탕이었다.


    떨궈진 ‘머리카락’에게 가만히 귀 기울이고, 고유한 자기, 즉 존재의 깊은 곳으로 자작자작 걸어 들어가는 ‘그 사람’을 소망하는 이야기 즉, 내 이상형에 대한 비망록 하나를 정리한 듯 하다. 사랑은 듣는 것이라더니, 미상불 그 말이 참말로 맞다. 지금 ‘그 집’에서 ‘그 사람’의 머리칼 하나 눈에 들어 왔다면, 이제 그것의 이야기를 들어 주기를, 그리고 한 번쯤은 그것으로 인해 많이 외로워하다가 고독해지기를 간소하게나마 요청하는 바이다.


* 필자소개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공부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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