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비


<욥기>를 통해 본 고통 마케팅에 대한 비판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눕기만 하면, 언제 깰까, 언제 날이 샐까 마음 졸이며, 새벽까지 내내 뒤척거렸구나. 내 몸은 온통 구더기와 먼지로 뒤덮였구나. 피부는 아물었다가도 터져 버리는구나. ―〈욥기〉 7,4~5 



    거실 창가에 배열해둔 딸의 사진들을 바라보며 그는 한참을 미동도 않는다. 생전 처음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에 눈길이 머문다. 촛대바위와 바다를 등지고 친구와 두 손을 입에 모아 힘껏 소리를 내지르는 포즈의 사진을 본다. 그 옆에는 가족과 함께 다녀온 미국 여행 사진이다. 콜로라도의 메이사 베르데 국립공원 입구에서 오른 손을 흔들고 있는 딸은 아직 초등학생의 모습이다. 그 옆에는 검은 사각모에 빨강, 파랑, 검정이 어우러진 가운을 입고 어설프게 카메라를 바라보는 어린 딸의 유치원 졸업사진이 있다. 벌써 14년이나 지난 일인데, 몇 달, 아니 며칠 전의 일 같기만 하다. 그리고 가운데, 커다란 눈이 예쁜 딸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다.

   수능시험을 치룬 다음날 딸은 오빠의 오피스텔에서 목을 매고 말았다. 지리학과에 들어가고 싶어 했고, 입학만 하면 페루 여행을 허락받았던 그녀는 두 번의 실패와 세 번째 예감된 실패를 비관하며 서둘러 삶을 마무리 지어버렸다. 삼년간 유예된 페루 여행을 육체를 벗어버리고서라도 떠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죽던 그 한 해 전에 대학생이던 아들이 군 입대를 앞두고 페루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딸의 인내력은 폭발하고 말았다. 함께 가겠다고 며칠을 밥도 안 먹고 시위를 하더니 학원에서 쓰러졌고, 몇 시간 링거주사를 맞고 퇴원한 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녀의 아비는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한두 주 빠지고 여행 좀 한다고 무슨 큰일이라도 날까봐 딸의 자존심을 그토록 헤집어 놓았을까. 링거주사를 꽂은 채 몇 시간을 침대에 구속되어 있던 딸의 속마음은 이미 그때부터 자기에게 한계시간을 부여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그는 타살자의 심정이 되어버린다.  

   딸을 잃고 자책하던 한 아비의 일이 기억에서 희미해졌을 무렵, 그러니까 그때로부터 만 2년이 조금 모자란 날, 아들의 돌연사로 망연자실해 있던 또 다른 아비가 있었다. 대학원을 다니며 유학을 준비하던 과학도인 아들이 갑자기 쓰러졌고, 가족이 달려왔을 땐 이미 소생 가능성이 없는 상태였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채 못 되어서 아들의 사망을 확인하는 서명을 했고, 슬픔도 눈물도 없이 3일간의 장례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고자 미뤄두었던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겨우 진정을 찾은 듯 앉아있는 아내가 다시 오열하며 실신할지 몰라 걱정하여 안경을 닦으며 조용히 책장을 넘기려 하는데, 자제할 수 없이 슬픔이 솟구친다. 그날 밤 그는 창자가 끊어질 듯 통곡했다.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 함께 다니기로 했다. 구원에 관한 교리가 여전히 납득되지는 않았지만, 혹여 아들이 천국에 가는 데 아비가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교인이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장례를 집전했던 목사는, 이 아이가 교회를 다니지 않았으니 ‘성도’(聖徒)란 문구를 쓸 수는 없지만, 부모가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이미 고인이 된 자녀도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다고 하며 성도임을 ‘보증’하는 의미에서 그 문구를 허락한다고 했다.

    그 논리들이 도무지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만의 하나 그게 정말이라면 어쩌나 싶어 열심히 기독교 신자가 되고자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바쁘다 해도 예배는 반드시 참여하고, 신자대학에도 등록했다. 날마다 성서를 읽었고, 관련 서적들을 탐독했다.

   신앙이라는 게, 그 교리라는 게 허술하기 그지없었지만, 하여 순간순간 회의적 물음들이 튀어나왔지만, 폐부를 찌르는 목사의 한 마디 말에 그는 모든 비판적 문제의식에서 스스로를 무장해제시켰다. “신앙이 없으면, 하느님은 나를 치거나 혹은 가족을 치십니다.”

    이 말은 수준 높은 지식의 소유자인 그가 신앙에 관한 한 자기의 지식을 유보시키고 교회의 가르침에 순순히 따르게 하는 효력을 발휘하였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그에게 이 말은 자기가 자식을 죽였다는 자책감을 낳은 것이다.

   그가 내게 물었던 첫 질문은 “어떻게 해야 신앙이 빨리 성장할 수 있나요?”였다. 대개 이런 물음은 교회의 제도 속에 순순히 편입되는 것에 자기 분열을 일으키는 이들에게서 나온다. 그런 이들은 교회의 신앙제도의 모범생이 되려는 강렬한 의지를 품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끊임없이 그의 내면에서 그 의지가 흔들리고 있다. 억제하고 있기에 그 동요가 의식으로 표출되지는 못하지만, 자기가 흔들리고 있다는 자각에 좀처럼 이르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무의식은 끊임없이 신앙제도의 모범생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동요하게 한다.

    어떤 말이든 위로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만난 이가 이런 물음을 던지면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신앙성장을 위한 비법 전수’, 이 순간 그가 위로받을 수 있는 최선의 답은 바로 이런 것이겠다. 한데 나는 그런 ‘묘수’를 알지도 못할뿐더러, 심지어 묘수라고 회자되는 것들에 야유를 퍼붓는 데 익숙한 자니 그를 위로할 길은, 내게는, 별로 없다.

    추측컨대 평소의 그라면 아마도 나와 좋은 대화를 할 수 있을 법하다. 하지만 자식의 돌연사에 직면한 이에게 신앙제도와 신앙 사이의 거리에 대해 얘기하고, 교회의 가르침이 대변하는 신앙제도, 그것의 위기를 넘어서는 것에 관한 냉철한 토론은 얼마나 무망한 것일까.

    그럼에도 서투른 카운슬러인 나는 그가 듣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닌 얘기로 대화를 이끌어갔고, 점잖고 사려 깊은 사람인 그는 나의 어법 속으로 순순히 들어와 주었다. 다행히도 그는 30년쯤 전, 대학생이던 시절에 기독교에 대한 남다른 지적 탐구의 기회를 가졌던 사람이었고, 이 대화는 오래 묵은 그 기억을 회상해내는 시간이 되었다.

    창조가 어떻고, 노아의 방주가 어떻고, 예수의 기적이 어떻고 등등, 얘기가 열띠게 오가던 중 그는 뜬금없이 자기의 숨겨진 갈등을 털어놓는다. 자식의 죽음 이후 다시 교회를 다니면서 꾸물거렸던, 하지만 잘도 숨겨져 있던 내적 흔들림의 실체가 언어를, 즉 형상을 얻게 된 것이다. 자기에게 닥친 이 고통에 대해 하느님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무슨 죄가 있기에 그의 목숨을 그렇게 앗아간다는 것일까요?” “도대체 교회에 안 다녔다고 자식을 빼앗아 가는 신이 어딨나요?”라고.

    하느님을 잘 믿으면 시련이 닥쳐와도 결국에는 몇 배로 보상해 주신다는 의미로 목사가 권한 〈욥기〉에서 그는 이미 전혀 다른 의문에 직면하게 되었다. 서론부(1~2장)와 결론부(42,7~17)에 나오는 이야기대로라면, 아들의 죽음은 결국 하느님이 사탄과 벌인 내기에 다름 아니라는 당황스런, 하지만 타당한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욥기〉에서 이런 의문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텍스트 속의 하느님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 한데, 이 글 앞에서 인용된 본문인 〈욥기〉 7,4~5 같은 내용이 절절하게 마음에 와 닿는 사람, 그 처참한 고통으로부터 잠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시간마저도 박탈당한 사람, 그렇게 매순간 지옥을 체감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은, 죽은 아들의 시선으로 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이 구절은, 그가 기도생활을 잘 못한 탓에 아들이 죽은 것이라는 목사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해석학적 문제의식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욥기〉에서 서두와 끝의 이야기를 빼면, 내내 욥의 원망과 항변으로 점철되고 있다는 것을 읽어냈다. 욥의 친구들, 나중에 그 대화에 끼어드는 젊은이, 그리고 심지어 하느님마저도 닥친 재앙과 신앙 사이에는 인과성이 있다는 통념의 수호자들이다. 하여 심문관처럼 욥을 추궁한다. ‘네 잘못으로 네가 재앙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한데, 실은 그것이 하느님의 장난이라니......

    요컨대 〈욥기〉는 당시 통념으로 작동하던 인과성의 신학에 대한 저항을 담은, 매우 지적인, 일종의 반신학적 통속적 풍자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이 대중 사이에서 회자되는 과정에서 본래의 서두와 결론이 개작되어 통속소설화된 것이 우리가 접하는 〈욥기〉인 듯하다. 그러므로 본 내용을 통속화시킨 서론부와 결론부를 빼고 본론부만 읽는다면, 네 잘못이 재앙의 원인이라는 식의 통속적 주장에 대한 욥의 반신학을 읽을 수 있다.

    딸의 자살에 직면해서 자기의 잘못을 상상했던 한 아비, 그리고 아들의 돌연사에서 자기 자신의 불신앙을 보아야 했던 다른 아비, 이 둘은 바로 그 생각으로 인해 딸이, 그리고 아들이 겪고 있던 세상의 고통에 직면할 수 없었고, 그럴수록 세상은 그 죽음들로부터 면죄부를 얻게 된다. 물론 때로 고통에 직면해서 자기를 돌아보는 것은 매우 훌륭한 성찰의 태도다. 한데 문제는, 자책이라는 고통의 표현 방식이 종교제도나 국가제도, 심지어는 자본에 의해 마케팅의 도구로 활용되곤 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욥기〉는, 통념에서 벗어나 읽는 이에게는, 바로 이러한 은폐의 신학에 대항하는 반신학적 신학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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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열네번째[각주:1]


결론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이 연재를 마감하기까지 두 번의 글이 남았다. 이제까지 내가 말하려 한 것은 웰빙우파의 문화공간으로 대형교회가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즉 ‘웰빙’이라는 문화적 현상과 ‘우파’라는 사회정치적 범주가 엮이면서 하나의 문화적 주체로 형성되어 가는 데 있어 중요한 장(場)으로 대형교회를 주목해보겠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웰빙우파의 문화공간으로서의 대형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총정리해보겠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는, 이 연재 첫 부분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하나의 상상적 논점을 제기할 것이다. 최근 대형교회를 주요 장소로 하여 형성된 문화적 주체로서의 웰빙우파가 정치적 주체로서 재구성되고 있는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어떤 것일지에 대한 것이다.  


'1990년대', 웰빙우파 형성의 시간적 범주


   ‘1990년대’라는 시간은 이 연재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에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던 한국사회의 경제성장률이 급강하했는데, 개신교도 성장률이 급락했고 심지어 1995년 이후에는 절대수가 감소하기까지 했다. 한편 이 시기는 또 다른 중요한 변화의 시기이기도 했다.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한 시기이며, 또 소비사회로의 변화도 이 때를 기점으로 하여 본격화된다.


    


   이런 민주화와 소비사회화가 본격화된 시대인 1990년대를 주로 30대의 나이로 겪었던 세대가, 두 번의 베이비부머 세대(제1차: 1955~1963년생/ 제2차: 1968~1974년생) 중 첫 번째 세대다. 이들은 한국 근대사에서 보릿고개를 겪지 않은 첫 세대이고, 최소한 초등과 중등 과정까지 근대적 학교교육의 수혜를 받은 세대다. 또 빠른 경제성장의 대가로 완전취업의 행운을 누렸다. 특히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이들의 경우는 중상위층으로 안착하기에 가장 용이했던 세대다. 이 세대의 많은 이들이 이 시기에 결혼과 함께 강남과 강동, 분당 등으로 이주하였거나 독립하여 살게 되었는데, 2천 년대에 이 지역의 지대가 급상승함에 따라 자산이 크게 늘은 것이다. 즉 직업의 안정성보다 훨씬 중요하게 지대의 상승 요인이 중상위계층으로의 안착에 유효했다.

   한편 이들, 1990년대에 강남・강동・분당 지역의 30대 고학력의 중상위계층 사람들은 그 무렵 민주화와 소비사회화라는 거대한 사회문화적 제도화의 현장 한 가운데에서 그 실행주체로서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이들이었다. 이들이 2천 년대에 40대가 되었고 2010년대에는 50대가 되었다. 나는 이 세대를 기점으로 해서 ‘웰빙’우파라는 문화적 주체가 등장하게 되었다고 추정한다.(물론 이 세대에는 여전히 극우주의적 이념주의자들도 많았고, 신자유주의적 성장주의자도 많았다.) ‘웰빙’은 성장지상주의 시대를 통과하고 나서 소비사회로의 변화, 그리고 신자유주의로의 이행기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장지상주의적 주체와는 다른, 중상위계층적 고품격 문화를 가리키는데, 이 세대 이후 웰빙문화는 빠르게 확산되었고 다양하게 발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웰빙’의 다양한 발전을 단순화하여 ‘우파’와 ‘좌파’로 분류하였는데, 그중 ‘웰빙+우파’의 문화가 발전한 주요 장소로서 대형교회를 제시하였다.  


'(캐릭터)대형교회', 웰빙우파 형성의 장소적 범주


   1990년대에, 내가 분류한,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가 대거 등장했다. 이 연재를 시작하는 글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대형교회를 두 범주로 나누었는데, 첫 번째 범주는 한국사회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 대형교회로 부상한 교회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두 번째 범주는 한국사회와 교회의 성장이 정체 및 퇴조하던 시대에 빠른 성장을 이룩하여 대형화된 교회를 말한다. 즉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는 개신교에 새 신자의 유입이 현저히 줄어든 혹은 감소한 시기에 대형교회로의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것은 이들 교회들이, 새신자보다도, 교회를 떠도는 수평이동 신자들의 새로운 정박지로 선택된 결과다. 한데 유념할 것은 수평이동 신자들은 1990년대 이전에도 많았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수평이동 신자들은 대개 목사나 은사자를 따라다니는, 일종의 수동화된 팬덤(fandom)에 다름 아니었다. 반면 ‘그 이후’, 즉 1990~2010년대의 수평이동 신자들은 30~50대 연령의 교회 직분(집사, 권사, 장로 등)을 맡은 이가 많았다. 이것은 교회에 대해 꽤 많이 알고 가장 활동적인 교인들 중에 교회를 떠도는 신자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이렇게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들은 1990년대 말 이후 강남・강동・분당 등에서 집중적으로 등장했다. 이 지역들은 대단지 아파트들이 속속 세워짐으로써 단위 면적에 비해 유입 인구가 특히 많은 신시가지 혹은 신도시인데, 지대가 다른 곳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게 상승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하여 이주자들의 자산이 빠르게 증가하여 중상위계층화한 이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이다. 또한 위치상 이 지역들이 서로 인접해 있음으로 해서 중상위계층의 수가 다른 곳들에 비해 훨씬 많이 밀집된 곳이다. 바로 이런 지역에서 떠돌던 수평이동 신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크게 성공한 교회들, 내가 말한,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들 다수가 이런 교회들이다. 

   이렇게 정박할 곳을 찾은 떠돌이 신자들은 ‘그 교회’에서 현재까지 적어도 20~30년, 혹은 그 이상을 주1회 이상의 공식모임을 같이 했다. 그밖에 교회를 매개로 하는 수많은 비공식 모임을 통해 삶이 엮이었다.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서로 장기간 동안 이런 공식・비공식 관계를 통해 경험과 기억이 얽히면서 서로간의 친밀성이 깊어진다. 또한 자녀의 ‘절친’의 부모로 얽히고, 부모의 장례로 얽힌다. 해서 삶의 위기에 높일 때 교인들은 도움을 나누는 사이가 되고, 사업을 하거나 취업을 할 때에 혹은 자녀를 유학 보낼 때에도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나아가 자녀들의 혼인 관계로도 얽힌다. 요컨대 대형교회는 빠른 도시화로 인해 가족과 이웃의 친밀성이 치명적으로 해체되고 있는 시기에 다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친밀성의 공간이며 인맥공장이다.

    특히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 계층적 다양성이 사라지고, 특정 계층이 집약되어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계층적 문화가 형성되기에 용이했다. 학력도 비교적 높고 계층적으로도 안정된 이들이 많았기에 문화적 교류를 나눌 만큼의 여력이 충분했던 덕이다. 하여 바로 이곳에서, 사회의 다른 어느 영역보다도, 웰빙우파 문화가 잘 터잡을 수 있었다.


'주권교인', 웰빙우파 형성의 주체


   대형교회들은, 두 범주 모두 예외 없이, 담임목사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중요하다.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란 교회에서 작용하는 거의 모든 가용자원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능력을 특정인이 장악하고 있는 현상과 관련된다. 한데 두 번째 범주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첫 번째 범주와는 다르다. 첫째 범주의 대형교회에선 교인들이 수동적이고 충성도가 높아 담임목사의 일방주의적 전횡이 가능했다. 반면 둘째 범주에선 교인들이 과거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은 탓에 담임목사가 자신의 자원동원능력을 통해 콧대 높아진 교인들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었는지가 중요했다.

    앞에서 말한 대로 떠돌이 신자들은 교회를 알 만큼 아는 이들이었고, 민주화를 경험하면서 주권의식이 꽤 성장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소비사회를 경험하면서 종교도 상품처럼 선택할 수 있는 자의식이 발전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정보능력도 뛰어나 교회들이 내걸은 상품가치를 판별할 능력도 겸비한 이들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1990년대에 부상한 ‘주권시민’에 상응하는, ‘주권교인’이라고 불렀다.

   하여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는 ‘주권교인’의 취향에 맞는 방식으로 교회를 개혁했던 ‘개혁군주’형 지도자였다. 즉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들은 주권교인들의 교회에 대한 불만을 교회 개혁에 반영하고 그이들의 취향에 맞는 요소를 발명해냄으로써 수많은 떠돌이 주권교인들을 정박하게 하는 데 성공한 교회다.

    나는 이러한 ‘개혁적 발명’을 통해 각 교회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특성화한 것을 ‘교회의 캐릭터화’라고 불렀다. 이때 캐릭터화를 특징짓는 요소를 여러 연구자들은 ‘개인주의’라고 불렀는데, 나는 ‘웰빙’이 더 적합하다고 보았다.

    가령 1990년대 이후 가열된 자녀교육 열풍은 명문대 지상주의를 낳았고, 이런 현상은 중상위계층에서 더 치열했다. 한데 몇몇 대형교회들은 2천 년대 즈음부터 명문대 지상주의를 넘어서 기독교 지도자를 통해 사회를 계도한다는 이상 아래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겸비한 전인적 소양을 갖춘 엘리트 양성을 추구하는 대안학교들을 만들어냈다.

    또 ‘부자 되세요’가 일상어가 될 만큼 신자유주의 시대 성공지상주의적 태도가 전 사회를 휘몰아칠 무렵 자신이 누리고 있는 풍요를 축복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신이 부여한 도덕적 책임의 맥락에서 보고자 하는 ‘청부론’이 일부 대형교회를 통해 확산되었다. 이것 또한 풍요를 천민화하기보다는 귀족적 덕성으로 재해석하는 웰빙신앙의 주요 항목에 속한다. 이렇게 대형교회의 캐릭터화의 기조는 웰빙신앙화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웰빙신앙적 캐릭터화가 얼마나 잘 수행되느냐를 시금석으로 하여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를 규정할 수 있다.


웰빙우파적 문화의 헤게모니화를 우려한다


    1990년대는 권위주의를 넘어서 한국근대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의 시대였다. 하지만 그 시간은 너무 갑자기 다가왔고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내기엔 너무 짧았다. 10년도 못 가서 신자유주의의 괴물적 파괴력에 휘둘리는 시대가 도래했고, 2천 년대는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반동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여 1990년대에는 도처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하위문화적 소리들이 등장했을 뿐 지배적인 대안적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시기에 거의 지배적 문화로 부상한 것이 없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웰빙우파’적 문화로 보았다. 오늘 우리 시대에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멋지고 규범적으로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것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용어로 ‘웰빙’이 적합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웰빙을 가장 잘 구체화한 것은 우파적 요소다. 그런데 이런 웰빙우파의 문화가 형성되고 자리잡는 데 가장 중요한 공간이 바로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다. 그런데 이런 대형교회를 매개로 하는 웰빙우파적 문화의 헤게모니화는 다른 계층에 대한 타자화를 정교하게 제도화할 우려가 있다. 마지막 글은 바로 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 1199호(2016 11 01)에 실린 '웰빙우파와 대형교회' 14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_id=20161004164036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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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열세번째[각주:1]


선교의 ‘웰빙-우파화’, 가능성과 한계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공격적 해외선교’에 대한 낭만주의, 그 끝자락


    1990년대 한국교회는 해외선교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초고속으로 성장하던 한국개신교의 교세가 급작하게 꺾이기 시작한 상황에서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로 인해 우연히 발견된 ‘해외’라는 상상력은 역성장의 위기에 대한 새로운 출구로서 선택되었다. 그간 해외선교는 선교전문기관들이 교회와 불화하며 외롭게 이어가고 있었고, 교회는 거의 무관심했었다. 교단 선교국이 국제 기독교네트워크와 연대하여 극소수의 선교사를 파송한 것이 한국교회가 수행했던 해외선교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한국선교연구원의 한국개신교의 세계선교 현황 자료(2003).  이 통계에는 개별 교회의 선교사는 빠졌다한데 2천 년대에 오면 개별 교회 파송 선교사의 수가 적지 아니 늘었다


   그런데 1990년대는 사정이 달라졌다. 수많은 개별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했고, 선교전문기관 파송 선교사에게도 교회들의 후원이 답지했다. 그리고 이런 급격한 증가추세는 2천 년대까지 이어져, 2006년 세계 선교사 파송 순위가 미국 다음인 2위를 기록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2007년 이후 증가율이 현저히 줄기 시작했고, 2012년 이후 감소 추세에 있다.

   그 이유는 국내에서의 성장 정체를 세계로 향한 팽창주의로 만회하려는 성장지상주의가 점점 교회에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겠다. 피선교국이던 한국이 세계적인 선교사 파송국이 되었다는 자긍심은, 한국 내에서 지탄을 받았던 공격적이고 배타주의적인 선교방식이 피선교지역 주민들을 포함해서 전 세계의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까지만 유지될 수 있었다. 2004년 김선일 사건이나 2007년 단기선교팀의 아프간 피랍사건을 계기로 해외선교라는 낭만적 자부심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후 언어능력과 독서능력이 뛰어난, 게다가 비판적이기까지 한 주권교인들은 이러한 공격적 해외선교에 얽힌 문제점들을 인지하게 되었다. 여전히 선교전문기구들과 여러 목사들은 세계 복음화의 사명을 열렬히 부르짖었고, ‘미전도종족 입양’이라는 좀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공격적 선교의 새로운 아젠다를 내걸었지만, 이제 해외선교라는 의제 자체만으로 교회 신자들을 동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구호/개발 선교


   해외여행 자유화 시대 배낭여행 붐을 일으켰던 한비야 씨가 기독교계의 세계 최대 구호・개발 NGO인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공격적 해외선교의 로망이 무너진 자리에 한비야 씨를 통해 전해진 새로운 해외선교의 가능성이 쑤욱 끼어들어왔다. 1950년 전쟁 이후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원조의 대상이었던 한국이 이제 원조의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더구나 정부의 해외원조업무의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여러 지역에서 구호・개발 NGO로 활동하는 한국 단체 가운데 기독교계 단체가 40% 이상이나 되고, 활동력이나 영향력 등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의 구호・개발 NGO들의 예산 총액은 국내 최대의 모금・배분기구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예산총액의 4.3배에 달하는데, 이는 기독교계 구호・개발 NGO들의 예산 총액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2~3배쯤 될 것임을 시사한다. 나아가 이 규모는 전 세계 기독교계 구호・개발 NGO 가운데서도 최대 수준이었다. 선교사 파송 순위야 개신교 신자들 사이에서나 장한 일로 통할 것이겠지만, 해외원조 분야에서 최고라는 건 한국사회 전체를 향해 우쭐해도 될 것이었다.

    이 구호・개발 차원의 선교는 공격적 선교를 대체하는 새로운 선교 항목으로 떠올랐다. 종교의 교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가르침에 기반을 둔 나눔을 실천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나눔의 대상에 대해서도 그들의 신념에 상처를 주지 않고 나아가 그들 자신의 자생력을 북돋고 그 인프라를 구축해주는 방식의 선교다. 확실히 구호・개발적 선교는 공격적 선교보다 진화한 것이었다. 적어도 주권교인들은 그렇게 보았다. 그들은 더 이상 교회의 자기 충족적 비용을 위해 자신들의 기부가 다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러 가치 있는 영역들로 나누어 기부를 실행했다. 

   하여 떠돌던 주권교인들을 정착시킴으로써 대형교회가 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구호・개발 차원의 선교를 교회 활동의 하나로 수용하는 데 있었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개별 교회가 모든 걸 주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 곳곳에서 원조가 필요한 사회를 찾아내고 그 사회에서 책임 있는 파트너를 찾아 그들에게 전달하며 그 과정과 결과를 수집・분석하여 지속적으로 새로운 구호・개발 전략을 기획할 수 있는 단체여야 한다. 또한 이런 활동은 개별 교회의 기부금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많은 기부자들로부터 굉장히 큰 원조금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여 개별 교회는 전문적인 구호・개발 NGO와 연합하여 다양한 프로그램과 캠페인을 통해서 주권교인들을 교회 활동에 동원하려 했다.

    동시에 이런 프로그램과 기획들을 통해 교회는 자교회 청년들에게 구호・개발 분야의 취업 기회(기독교계 구호・개발 NGO의 직원수가 1만 명이 넘는다)를, 그리고 해외유학을 원하는 청소년에게 대학입시를 위한 봉사활동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구호・개발 선교 프로젝트는 공공적 가치와 사적 이해가 ‘잘 결합된’, 가치 소비 시대에 걸맞는 종교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행의 전 지구적 시스템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도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과시적 성과주의보다는 그 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에 대한 소비가 주권교인들의 신앙태도로 형성되는 데 구호・개발형 선교는 한몫했다. 그것은 전형적인 ‘웰빙우파스러운’ 선교였다.


아동결연 선교


    이러한 구호・개발 선교 프로젝트 중 가장 많은 대중의 참여를 불러일으킨 것은 아동결연 사업이다. 가난한 제3세계 아동 1인에게 매월 3만 원 정도를 후원한다는 것인데, 차인표・신애라 부부의 활동으로 유명해진 한국컨패션(Compassion Korea)을 포함하여 240여 개 단체에 무려 600만 명에 달하는 기부자가 참여하여 전 세계에서 67만 명의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이중 개신교 단체와 기부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여기에는 무려 30명의 제3세계 아동과 결연을 맺었다는 차인표・신애라 부부뿐 아니라, 105명과 결연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정애리, 무려 2백여 명이나 된다는 션・정혜영 부부 등, 공격적 선교를 지양하고자 하는 많은 유명 개신교 신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대형교회들이 아동결연 캠패인을 벌이고 있는데, 분당우리교회는 3000명의 제3세계 아동과 1:1 결연을 맺기로 한국컴패션과 약정을 맺었다.

    이러한 아동결연을 매칭하는 NGO들은 주기적으로 후원아동의 성장을 체크하여 후원자에게 공지해주고, 때로는 서신교환 및 만남을 주선하며, 나아가 후원아동 주변의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 해당 지역사회의 개발에도 관여하고 이를 후원자에게 알려 준다.


한국컨패션이 후원하는 필리핀 아동들과 이 단체의 홍보대사 신애라


분당우리교회(이찬수 목사)는 제3세계 아동 3000명과 1:1 결연 계약을 한국컨패션과 맺었다.



    이러한 사업은 후원의 일회성과 익명성을 지양하고, 개인후원과 사회개발의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다른 것들보다 한층 진일보한 선교다. 또한 적은 기부금액으로도 기부효과가 작지 않다는 상각에 이르게 함으로써 대중성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이 프로젝트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은 강남과 분당 지역의 대형교회들이다. 주권교인들의 기호에 대한 맞춤형 선교의 압박이 더 컸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공적 가치를 소비하게 한다는 점에서 웰빙적 선교라고 할 수 있다.


'진공포장'된 선교


    그러나 이러한 구호・개발형 선교는 너무 ‘진공포장’되었다. 현지의 고통에서 철저히 차단된 사치스런 선교다. 그럼에도 구호・개발 선교기구들과 교회는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기부자에게 최고의 립서비스를 제공한다. 아동결연자에게 ‘입양자’라는 칭호를 주고, 후원자의 현지방문을 ‘단기선교’로 명명하곤 했다. 가벼운 참여를 ‘부모 되기’ 혹은 ‘선교사 되기’와 연결시키는 과장된 자의식과 결합된 주체는, 현지에서 벌어지는 난감하고 불편한 진실로부터 그들이 차단되었을 때만 그 ‘자뻑’형 착시를 유지할 수 있다.

    실제로 구호・개발 사업을 벌이는 NGO들은 현지에서 종교성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정부로부터 재정의 15% 가까운 지원을 받았다. 이 정부지원금이 이들 단체들의 운영기금으로 활용됨으로써 참여자들의 기부금 거의 전액이 현지에 전달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실에선 점점 기독교계 구호・개발 NGO들의 종교색이 노골화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한국교회들의 후원금이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권교인들의 바람을 수용하여 구호・개발 선교에 끼어든 교회들은 구호・개발 선교에 대한 신학적 고민을 치열하게 하지 않았다. 단지 교인들의 바람을 교회에서 흡수하기 위한 전략에만 몰두했다. 이것은 동시에 주권교인들의 ‘자뻑형 착시’가 일으키는 주체 효과와 상응관계에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권교인들은 ‘먼 곳’의 수혜자를 타자화함으로써 현장의 복잡한 고민에서 거리를 둔 ‘깨끗한 선교’의 일원이 될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진리의 수행자로서의 자의식이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은 현지의 복잡한 정보를 단절시킨 ‘진공포장된 선교’를 만드는 구조적 요인의 하나였다.

    아동결연 사업도 그 사회의 성장 인프라 구축이라는 사회구조적 요소를 포함한 선교기획이지만, 사회구조의 문제는 개별 구호・개발 NGO가 담당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축적된 연구와 활동의 기반을 갖고 있는 기독교계 국제네트워크들을 포함한 여러 국제기구들과 협의하고 연대하며, 현지 시민사회 및 정치 단체와도 공조하며 진행해야 할 것이었다. 이런 거시적인 협의와 연대 없이 진행되는 사회 인프라 구축 기획은 성공하기 쉽지 않으며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아동결연 사업 참여자는 그 아동이 겪을 혼란과 갈등에 얽히지 않은 채 자신의 안전한 기부가 성과로 돌아오길 바랐다. 그들이 원한 것은 시시콜콜한 현지 사정이 아니라 자신이 후원하는 아이들이 잘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하여 웰빙-우파적 주권교인들의 ‘깨끗한 선교’ 욕구는 선교 현지의 사회적 복잡함에 대한 외면과 은폐를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공격적 선교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타자화’에 다름 아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 1199호(2016 11 01)에 실린 '웰빙우파와 대형교회' 13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_id=20161004164036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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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열두번째[각주:1]


교회청년에게 세습되는 웰빙 보수주의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대형교회 대학부와 인맥공장


    거의 모든 교회는 잘 짜인 연령별 조직을 갖고 있다. 대략 유년, 소년, 청년, 장년, 노년 등으로 구성된다. 신자들은 3~4세부터 시작해서 거동 가능한 시기까지 이 연령별 조직들의 일원이 된다. 그러니까 비슷한 연령대의 교인들은 그 교회에 속해 있는 한, 평생 관계가 이어진다. 이렇게 연령별 네트워크가 평생 이어지는 곳은 교회 외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1981년 이후 대학생 수가 크게 늘면서 연령별 조직의 순차적인 흐름에 약간의 변수가 생겼다. 몇몇 교회에서나 가능했던 대학생부가 독자적인 조직으로 탄생하는 일이 현저히 늘었다. 그러나 고등부와 청년부 사이에 대학부가 마치 연령별 조직으로 상례화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그때 대학생 수는 급격히 늘었고, 고교졸업자는 감소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대형교회, 특히 강남, 강동, 분당 지역의 대형교회로 갈수록 심화되었다. 이 지역들에선 대학입학에 실패하면 교회를 떠나는 일이 흔했다. 심지어 서울 지역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도 대학부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더 극단적으로 명문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이들조차 대학부 참여를 꺼려하는 분위기의 교회들도 있다. 해서 몇몇 교회들은 고등부 졸업자들 중 재수생을 위한 별도의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영락교회의 베드로부, 지구촌교회의 꿈사모 등).

   이쯤 되면 강남, 강동, 분당 지역의 대형교회들에서 대학부는 중요한 인맥 만들기의 장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에 진입하지 못하거나 탈퇴하는 것은 삶의 중대한 기회를 상실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대학부에 진입하는 건 단지 시작일 뿐이다. 졸업과 함께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청년부에 순조롭게 진입하지 못한다. 물론 대형교회에서 대학부의 일원으로 있다는 것만으로도 취업은 훨씬 유리하다.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정보와 특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정보와 특혜를 대학부원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그곳 나름의 평가기준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이들에게 그런 기회가 훨씬 많이 주어진다. ‘교회오빠’니 ‘교회누나’하는 말들 속에 함축된 외모, 옷차림새, 행동거지로 규율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연애도 포함된다. 이를 테면, 명문대학에 다니는 한 여성은 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녀는 엄마의 반대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은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엄마는 그녀가 연애하고 있었던 사실조차 몰랐다. 진짜 이유는 엄마가 반대할 것이라고 ‘그녀가 생각’했던 데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엄마’는 집합명사였다는 점이다. 그녀가 상상한 ‘엄마’는 그 교회 대학부 남자들의 ‘엄마들’이다. 그이들은 이 여성의 상상속의 ‘잠재적 시어머니’였던 것이다. 요컨대 그녀는 이들 상상속의 시어머니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의 연애 행위를 규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나눠줄 자원이 넘치는 몇몇 대형교회들에서 많은 대학생들이 어떻게 어른 세대의 시선을 내면화하면서 전략적 행위를 수행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은 그 교회들의 어른 세대의 보수주의가 대학생들에게 전수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편 수가 아주 적었던 시절부터 대학생들은 교회에서 많은 활동을 도맡아야 했다. 다른 종교 기관들에 비해 개신교 교회는 매우 많은 발런티어를 필요로 한다. 그중 많은 부분은 대학생들의 몫이다. 대학생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어도 사정은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제 많은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이와 그렇지 못한 이가 나뉘고, 그것은 대학부원으로서의 훌륭한 신앙인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척도가 되었다.

    교회학교 교사, 교회 청소, 성가대, 각종 봉사부서, 각종 선교프로그램들에서 대학생은 없어서는 안 될 발런티어다. 여기에는 단기선교도 포함된다. 단기선교란 대개 방학기간에 3주 정도 진행되는 해외봉사활동을 의미하는데, 그 비용도 적지 않을 뿐 아니라(남아시아의 경우 70~80만원 정도, 중앙아시아・중동의 경우 100~150만원 정도), 그 기간 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더욱이 사전교육이 2개월 안팎으로 진행된다. 그러니 신앙심이 투철하더라도, 학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몇 탕씩 뛰며 좀더 나은 일자리를 위해 항시 스마트폰의 연락망 안에 있어야 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이 프로그램에 의해 걸러진다. 요컨대 단기선교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이타적 신앙심은 중상위계층 친화적 성격을 지닌다.

   한편 청년부는 엄청난 결혼시장이다. 특히 몇몇 대형교회들의 청년부에는 우리사회 어느 곳보다도 ‘물 좋은’ 결혼 적령기 여자와 남자들이 넘쳐난다. 명문대 출신들만 들어간다는 대형교회 대학부라는 관문을 통과해서 들어온 교회청년부에는 가문 좋고 유능하며 좋은 직장에 다니는 스팩 넘치는 이들로 가득하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사회의 30대 비혼률은 2010년 기준으로 20.4%나 된다. 이는 1980년대에 비해 무려 11배나 상승한 수치다. 여기에 40대까지 포함하면(이혼자나 사별자를 제외하더라도) 그 수치는 훨씬 높아진다. 삼포세대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30~40대 비혼자들의 상당수는 어려운 경제 여건을 감안하여 자발적으로 비혼을 선택한 이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정은 교회에선 좀 다르다. 특히, 앞서 말한 것처럼 강남, 강동, 분당의 많은 대형교회들의 경우 대학부를 거치면서 중하위계층의 20대 청년들이 교회를 속속 이탈했다. 즉 이들 대형교회의 청년부는 경제적 위기를 덜 겪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게다가 교회에서 결혼은 신앙의 성장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목처럼 이해되었다. 가톨릭처럼 독신이 장려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 간의 관계를 삶 속에서 체험하는 신이 준 기회로 해석되었다. 즉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유비적이다. 요컨대 여자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남자에게 복종하고 남자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처럼 여자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결혼관으로 남자와 여자 신자를 규율한다. 하여 이런 결혼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신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신의 계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교회 제도의 관행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으면 대개 장년부에 속할 수 없다. 장년부는,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면, 거의 기혼자들의 모임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장년부에 속해야 집사, 안수집사, 권사, 장로로 이어지는, 일종의 신앙제도상의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 그래야 신자는 교회라는 인맥 공장의 중심부에 다가갈 기회를 얻는다. 해서 교회는 비혼자 중 ‘미’혼자 수가 훨씬 더 많다. 즉 결혼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결혼을 아무리 강조해도 미혼률을 줄이기는 쉽지 않다. 30대가 되면 사랑의 열정만으로 결혼을 감수할 수 없을 만큼 현실적 조건들이 까다로워지기도 하거니와, 교회의 성비 불균형이 너무 심하다는 것도 문제였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6:4의 비율, 혹은 그 이상으로 많다. 이것은 미혼여자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여 여러 대형교회들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청년부와 장년부 사이에 또 하나의 예외적 연령조직(30~40대 미혼자들)인 싱글공동체를 만들곤 했다.

    이 모임을 중심으로 연애특강이 열리고 남녀 간의 스킨십을 늘리는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다. 나아가 성비 불균형으로 인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타교회 청년들과의 만남도 주선된다. 이것은 개신교 대상의 결혼 매칭 기업들과 결혼 매칭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회사들을 탄생시키게도 했다.


    기독교의 비합리성과 비과학성에 상처받고 목사들의 무식함과 나쁜 행실에 실망한 많은 청년들이 개신교 교회를 떠나가고 있고, 또 새로 개신교로 유입되는 이들도 현저히 줄었다. 한국 개신교 가운데 두 번째로 큰 교파이고 가장 부유한 교파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파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교인 대비 5.8%만이 청년층이다. 이것을 전체 개신교로 확장해서 보아도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2015년의 한 종교인구 조사에 의하면 연령별 개신교인의 구성에서 20대는 유・소년과 청소년을 빼고는 가장 적은 연령층이고 현재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을 차지하는 것이 30대다.


    그럼에도 일부 대형교회들에서 대학부와 청년부는 별로 줄지 않았고 심지어 늘기까지 한 교회들이 있다. 청년층을 유인할 여러 장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데 그중 중상위계층의 청년을 견고히 유지하는 교회들에는 대개 인맥 만들기에 효과적인 장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리고 이런 교회들의 대학부와 청년부원들은 그들의 부모세대와 비교적 관계가 원만하다. 그것은 부모세대의 많은 이들이 이른바 교양 있고 합리적인 성향을 보인 탓이기도 하다. 이른바 웰빙 신앙이 잘 정착된 교회에서 청년들은 더 잘 적응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교회들이 청년층에게 줄 수 있는 자원이 많아서 청년층 스스로가 교회 어른들인 부모세대의 시선에 스스로를 규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다른 글에서 이런 현상을 ‘사회적인 착함’과 후발대형교회의 연관성으로 이야기한 바 있다. 오늘날 교양 있고 합리적이고 배려 있는 성향과 물적 자원의 풍요 간에는 서로 상응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또 빠르게 신자유주의의 야만성에 깊게 노출된 한국사회에서 청년층이 독자적 능력만으로 생존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도 몇몇 대형교회 청년들의 자기규율 현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하여 이런 대형교회들에서 웰빙보수주의는 청년층에게 세습되고 있다. 유복한 중상위계층의 청년들이 교회에 남아 있는 한, 그들의 웰빙 성향은 좌파보다는 우파적 성향을 지닐 가능성이 큰 이유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다섯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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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열한번째[각주:1]


‘성(性)으로 성(聖)하라’

자기계발의 시대 웰빙적 신성가족 이데올로기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외설과 이단


    2009년 한국개신교계에는 이상한 논쟁이 벌어졌다. 《하나 되는 기쁨》이라는 책을 둘러싼 외설, 이단 논란이었다. 그리스도인 부부의 성(性)에 대한 ‘도발적’(?) 표현들이 많은 데다 그것을 통한 신앙의 성숙을 논하는 책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물론 그 당시의 사회적 상식에서 이 책이 외설 시비가 붙을 만한 내용은 전혀 아니었다. 시기상으로는 60여 년 전에 출간된 것이지만 내용에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도발적인 《킨제이보고서》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지도 10년이나 지났고, 영화 〈킨제이보고서〉의 한국 상영도 2005년에 있었다. 공교롭게도 《하나 되는 기쁨》이 출간된 그 해였다.

    저자가 자발적으로 책을 절판시켰으나 이 논란은 이듬해까지 계속되었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이단대책위원회가 끼어들어 ‘반기독교적 음란서적’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더욱 흥미로운 건, 이 책의 추천자로 한기총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이는 이 책을 비판하는 자들의 배후에 세간에 구원파로 알려진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유병언 씨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외설 논쟁이 이단논쟁으로 비화된 것이다.

   ‘그들만의 전쟁’을 밖에서 보면 논리도 뜬금없고 그 과장된 반응이 터무니없어 보인다. 하지만 많은 개신교 지도자들에게서 성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당혹스러운 문제인지를 이 사태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정 사역 현장과 '주권신자'


   한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한기총과 그 주변의 개신교도들과는 달리, 개신교의 다른 한 편에서는 《하나 되는 기쁨》 류의 책과 프로그램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성(性)을 적극적으로 드러내 이야기하고 그것을 성찰하는 것이 신앙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일단의 기독교 전문가들은 이러한 활동을 ‘가정 사적’의 주요 항목으로 간주하였다. 한국 최초의 가정 사역 전문가는 1976년 활동을 시작한 양은순 씨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정 사역 전문가와 단체들이 대거 등장한 시기는 대략 2천 년대 초부터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이들의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대중이 폭넓게 등장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나는 이 대중의 정체를 ‘주권교인’과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 추정한다. 《하나 되는 기쁨》 논란에서 시사되듯 많은 교회와 목사들은 여전히 성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대다수 개신교 신자들이 교회로부터 성(性)에 대한 실제적인 신앙적, 신학적 안내를 받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한데 신자들의 수평이동 현상이 만연하게 되면서, 이들 떠돌이 신자들은 교회가 알려주지 않은 수많은 정보들과 해석들에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대선후보를 그이들의 정책과 이미지를 검토하면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주권적 시민들처럼, 그런 이해와 정보에 부합하는 교회를 선별 방문했다. 이런 과정에서 그들은 점점 ‘주권신자’가 되어갔고, 일부 진취적인 대형교회들은 주권신자화된 이들의 관심에 부합하는 프로그램들을 통해 수평신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성에 대해 철옹성 같던 교회의 경계 언저리를 떠돌던 ‘주권신자’들은, 과감한 성적 표현들을 이야기하면서 철학과 예술을 논하고 대중문화를 체험하는 사회문화적 분위기에 더 많이 노출되었다. 하여 그들은 신앙을 성과 적극적으로 연관시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의식에 직면했다. 바야흐로 기독교 가정 사역 전문가들이 주관하는 프로그램들이 크게 환영받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바로 2000년대 무렵이었다.


왜 그 때인가


    그때는 한국사회에서 가정의 위기가 심각하게 체감되기 시작한 때였다. 바로 외환위기 직후다. 당시 무수한 가장들이 일터에서 퇴출되었다. 다행히 살아남은 이들은 생존을 위해 더 불리한 노동 상황을 받아들였다. 집은 더 이상 쉼터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은 직장에서 못다 한 일과 터질 듯이 쌓인 스트레스를 품은 채 귀가했다. 전업주부인 많은 아내들은 결혼으로 단절된 경력 탓에 매우 열악한 조건의 노동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렇게 가열된 생존경쟁 상황은 학교까지 이어졌고, 자녀들은 거의 학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교육체계 속으로 휘말려 들었다. 

   중상위계층은 그나마 형편이 나았다. 아니 실은 이 시기에 사회양극화가 급박하게 심화되었고, 유리한 계층은 훨씬 더 유리해졌다. 그러나 그렇게만 이야기하는 건 너무 외면적 평가일 뿐이다. 그 상황을 더 유리한 기회로 맞은 이들도 마치 아슬아슬한 얼음판 위를 걷듯 불안했다. 자신이 잘못할 경우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무자비한 보복을 가했다. 또 개인의 잘못과 무관하게 재앙이 닥치는 일도 허다했다. 사회안전망은 애초부터 없었으니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자신과 가족의 안전망을 가설하기 위해 더 안달하며 일했다.

    이런 사회적 재앙의 시기에 가족이 한층 심각해진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겠다. 더욱이 그 시기는 민주화의 시대였다. 가족 구성원 모두 평등한 주권을 가진 존재라는 자의식이 한층 발전하고 있었다. 게다가 소비사회로의 변화가 초고속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까지 약자이기만 했던 아내와 자녀들은 가족 내의 권력투쟁에서 유리한 자원을 보유하게 되었다. 소비자로서의 트랜디한 감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 아내와 자녀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회적 주권의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가족 내에서 민주주의적 타협과 대화의 전통이 성숙하기 전에 가족 구성원들 각자는 주권의지가 급상승했다. 

   하여 2천 년대 가정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쟁투의 현장이었다. 아내의 반란은 드셌고, 심한 스트레스에 피로도가 치솟던 남편과 아내의 대화 능력은 퇴화했다. 부부싸움이 많아졌고 이혼율이 급증했다. 자녀들은 집에서 잦아진 엄마와 아빠의 전투를 본다. 집밖, 학교와 학원에서는 치열한 학업경쟁의 시스템이 태풍처럼 몰아닥쳐 몸이 광풍에 휘말려버렸다. 그 언저리에선 또래집단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문화가 그들을 휘감고 있다. 이것은 자녀들의 가출과 자살의 비율이 급증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가족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양분되었다. 사회적으로 보다 불리한 계층은 무너지는 가족을 관리할 여력조차 없었다. 거의 무방비로 가족 해체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보다 유리한 계층은 새로운 생존비용 항목을 추가해야 했다. 그것은 가정회복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경제적이고 심리적인 비용이다. 그리고 그런 중상위계층의 가정회복 프로그램이 가장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곳의 하나는 몇몇 대형교회였다. 가정사역 프로그램은 대형교회의 캐릭터화의 하나의 주요 항목이었다.  


대형교회적 성 관리 체계와 웰빙우파


    부부의 성을 다루는 가정 사역은 떠돌던 주권교인들이 정박지를 찾는 하나의 조건이 되었다. 몇몇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부부의 성에 관한 거의 상시적인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주로 성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그것을 신앙화하는 집단 프로그램이었다. 그 신앙화 담론의 골자는 성(性)을 잘 관리함으로써 성(聖)의 체험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性)의 관리를 신앙과 연계시키는 건 꽤 유효했다. 특히 많은 남편들은 성(性)의 관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것은 동시에 ‘새로운 가족주의’를 낳는 요인이 되었다. 청빈론에 의지해서 과시적 소비를 지양하고 검약한 소비를 실행에 옮기려는 삶의 태도와 함께, 성(性)을 부부 간의 것으로 환원시키려는 신앙운동이 교회에서의 보수적인 웰빙적 가족주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러한 성(性) 관리 프로그램은 부부만이 아니라 예비부부에게도 유효했다. 많은 교회들은 ‘결혼예비자학교’ 등과 같은 이름의 프로그램들을 무수히 만들었다. 성(性)이 부부간의 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이들인 만큼 여기서 성(性)과 성(聖)의 해석은 매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러한 가정 사역의 목표는 보수적 가족주의의 재구축에 있었다. 실제로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에 관한 교회주의적 서사는 이러한 보수적 가족주의를 모델로 하고 있었기에 위기에 빠진 가족의 재건은 교회에게 너무나 중요한 과제였다. 이때 보수주의적이란, 성(性)을 부부간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것과 전통적인 이성애적이고 남성 우월적인 성 역할체계를 고수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한편 교회 청년들에게도 성(性)을 관리하는 문제는 중요했다. 특히 대형교회의 대학부와 청년부는 거대한 결혼시장의 기능을 하고 있었으니, 청년들은 성에 관한 교회적 규율체계를 민감하게 수용하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여성의 성적 규율장치 항목은 의복과 관련이 있다. 한때 기독교 의류 쇼핑몰에서 ‘사랑의교회 스타일’이라는 패션 항목이 있었다. 단정하고 수수하며 여성스러운 원/투피스 패션이 교회 여성들의 복장의 모범형으로 소비되었던 것이다. 반대로 짧은 치마나 깊게 파인 브라우스, 화려한 액세서리와 화장, 성별 이분체계에 반하는 보이시한 복장 등은 환영받지 못했다. 이때 여성의 복장이 의식하는 시선적 주체는 그녀 자신이 아니라 부모세대 교인들이다. 그들은 ‘잠재적 시부모’이기 때문이다. 이 복장이 그들 잠재적 시부모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남편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여자’라는 것이다. 한편 남자청년의 성을 규율하는 상징어는 ‘교회오빠’다.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유능한 남자라는 메시지가 그 어휘와 얽혀 있다.

    여기서도 성(性)을 통한 교회주의적 신앙 담론의 지향점은 가족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이성애주의적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녀, 전통적 가족이 위기에 처한 시대에도 이들의 보수주의적 조화를 통해 구현된 ‘신성가족’의 출현, 그것을 통한 위기 사회의 극복과 재구축, 그것이 교회 사역자들과 많은 ‘주권교인’들을 공조하게 하는 대형교회적 동맹의 가족 이데올로기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다섯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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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열번째[각주:1]


'아버지학교'의 '귀족 아빠' 되기

자기계발의 시대 아버지의 귀환 프로젝트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지난 글에서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의 시대에 개신교 대형교회의 대안교육 운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성공의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는 기독교적 공부법을 찾아 여러 묘수들이 등장했다. 다니엘학습법은 그런 묘수의 하나로 매우 성공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런 교사 주도적인 공부법이 아닌 대안적 방식은 없는가, 그런 노골적인 성공지상주의 아닌 품위 있는 방식은 없는가, ......, 이런 고민들을 담아 등장한 것이 일부 대형교회들에서 대두한 ‘귀족교육형 대안학교운동’이다.

    이곳에선 학습자의 자기 주도적 공부가 강조되고, 대학입학에 모든 것이 집중된 입시형 공부만이 아닌 인간화 교육, 아니 성도화(聖徒化) 교육이 수행된다. 그 정신은 몽매한 대중을 복음화하고, 국가를 하느님의 뜻에 걸맞는 나라로 만들기 위한 엘리트로서의 ‘성도’를 키우는 데 있다.

   이번 주제는 또 하나의 기독교적 자기계발 프로젝트로서 가족회복운동이다. 특히 아버지 변신 프로그램으로서 ‘아버지학교’를 이야기하려 한다.


아버지의 부재


   허문영은 1990년대 한국영화의 두드러진 특징을 ‘소년성’이라 불렀다. 위기의 사회를 구원하는 영웅적 존재에 열광하는 대신, 부조리한 사회에 홀로 던져진 소년의 이야기에 관객들이 깊게 공감을 표했다는 것이다. 그 소년들을 지켜줄 아버지는 없었다.

   이런 풍경은 2천 년대에 와도 다르지 않다. 아니, 민주주의 시대 그리고 소비자본주의 시대라는 세기적 변화의 길목에서 기성세대의 가치와 불화하면서 절망했던 1990년대의 퇴행적 소년성보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와 더불어 전개된 2천 년대는 훨씬 더 절박했다. 한 번 겪기에도 벅찬 무시무시한 신자유주의적 재앙이 두 번이나 거세게 휩쓸고 지나갔다. 사람들은 만신창이가 되어 사회 속에 내던져진 자신을 지켜줄 아버지를 절실히 필요로 했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서 ‘아버지의 부재’를 하소연하는 소리가 분출했다. 위기에 처한 아들을 위해 목숨 걸고 악당과 용감하게 맞서 싸워 이기는 상상속의 아버지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윤동욱 기자는 2006년의 기획에서 현실의 아버지에 관한 다섯 가지 기억을 이렇게 요약했다. “말없는 아버지, 힘없는 아버지, 때리는 아버지, 이혼한 아버지, 죽은 아버지.” 그러나 여기에는 아직 최악의 이야기는 숨겨져 있다. “어쩌면 그 소년들이 맞서고 있는 사회, 그 나쁜 체제 자체가 아버지였는지도 모른다.”는 것 말이다.

    ‘소년’이라고 했다. 소녀가 아니다. 여기서 소년들은 ‘퇴행적 남자들’을 말한다. ‘어른이 되지 못한 남자’들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질서와 불화하면서도 아버지의 권력을 동경한다. 저항하기보다는 숨어버리고, 조절되지 못한 힘을, 폭력을 더 약한 이에게 남용한다. 남자들은 그런 소년으로 남겨졌고,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을 동경한다. 한국사회의 이런 왜곡된 섹슈얼리티 양상을 해석하기 위해 여성신학자 김나미는 과잉남성성(hypermasculinity)이라는 사회학적 개념을 차용했다. 미성숙한 소년성이 신자유주의와 만나면서 퇴행적 소년들의 사회는 마초적 폭력에 휩쓸렸다. 


'아버지학교'


   몸은 어른인데 퇴행적 소년성의 증상을 보이는 ‘올드보이’들이 남편이 되었고 아버지가 되었다. 가족의 위기 혹은 해체에 직면한 ‘올드보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이 ‘아버지학교’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바로 선다.” 한국기독교 아버지학교의 효시이고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아버지 프로젝트인 ‘두란노아버지학교’의 슬로건이다. 가족의 위기에 대한 대안은 ‘아버지의 변신’에 있다는 얘기다. 그 변신을 위한 프로젝트가 ‘아버지학교’다. 

   두란노아버지학교는 1995년에 온누리교회의 출판기업인 두란노서원의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었고, 2001년에는 독립조직으로 확대 개편한 ‘두란노 아버지학교 운동본부’로 발족했으며, 2007년에는 사단법인이 됨으로써, 아버지 프로그램은 명실공히 아버지 프로젝트로 발돋음했다. 현재 국내 지부가 80개이고, 해외 61개국으로 확산되었으며, 지금까지 아버지학교 수료자가 30여만 명이나 된다.  

    게다가 온누리교회 교인으로 아버지학교를 수료한 이들이 종교를 불문하고 도처에서 두란노아버지학교 프로그램을 차용한 ‘아버지학교’를 개설하고 있고, 여러 공기업과 사기업에서도 두란노아버지학교를 모범으로 하는 아버지학교들이 만들어졌다. 또 수많은 교회들에서도 아버지학교 붐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더 나아가, 아버지학교 프로젝트만이 아니라, 선교 프로젝트로서 부각되기도 했다. 올해 7월에 열린 세계선교전략회에서 아버지학교는 한국형 선교모델의 하나로 지목되었다. 이제 아버지학교는 아버지 변신 프로그램을 뜻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아버지학교 프로젝트


    그렇다면 두란노아버지학교가 꿈꾸는 아버지 변신 프로젝트는 무엇일까? 위의 슬로건에서 보았듯이 가족의 복원이다. 가족이 위기에 처한 것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것이니 아버지를 소환하여 가족을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그냥 전통적 아버지가 귀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실은 아버지가 된 이들 자신이 전통적 아버지로 인해 삶이 굴절되었다. 위에서 말한 용어로 하면 ‘굴절된 존재’는 어른이 되지 못한, 소년성이라는 악령에 들린 퇴행적 남자다. 

    하여 두란노아버지학교의 첫 번째 미션은 아버지가 되어야 했던 소년들이 자신의 아버지와 화해하게 하는 것이다. 권력을 홀로 장악하여 가족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던 아버지, 그이로 인해 꺾였던 그때의 열정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뒤틀린 흔적으로 몸에 잔류하여 성숙한 어른으로의 성장을 방해한다. 미성숙한 소년성의 어른, 이 ‘올드보이’들은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권력이 없으면서도 종종 아버지의 권력을 모방한다. 조절되지 않은 미숙한 권력은 아내와 자녀로 하여금 마음을 닫게 하고 관계를 닫도록 만든다. 가족의 위기는 이렇게 왔다고 아버지학교는 이해한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바로 선다.”는 슬로건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다. 하여 아버지와의 기억을 소환하여 그이를 폭군이 아닌 아버지로 회상함으로써 화해를 도모하는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와의 화해로 시작되는 아버지의 변신은 텔레비젼의 가족회복 프로그램처럼 신파적이다. 수많은 마음의 상처들로 너덜너덜해진 관계를, 그것의 문제를 깨닫고 함께 데이트하고 눈물로 화해하게 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아버지학교는 초점이 아버지에 있다. 아버지가 변신하는 것, 그 선행적 행위가 가족회복의 실마리라는 것이다. 왜 아버지가 초점인가?

    단순히 ‘아버지’학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른바 기독교적 가족개념이 그 속에 내재되어 있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같은 바울 위서들 속에 나오는 이른바 ‘가훈교리’들이 그 근거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인 것처럼 남편/아비가 아내와 자식의 머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골로새서〉 3,21 “자녀들을 들볶지 마시오”나 〈에베소서〉의 병행구절인 6,4 “자녀를 성나게 하지 말고” 같은 구절들은 가정의 머리로서 자신의 뜻에 따라 힘과 완력으로 자녀를 대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자녀를 돌봐주고 차분하게 이끄는 대화적 부성을 강조한다. 아마도 2세기 초, 바울의 위서들(친서가 아니라 바울의 이름을 차용한 저작들)은 폭력적인 아비의 훈육 풍조를 비판하며 자녀에게 이성적으로 이끄는 아버지상을 강조한다. 이것을 저명한 제2성서(신약성서) 학자이자 교육학자인 게르트 타이쎈(Gerd Theißen)은 ‘사랑의 가부장주의’(liebe-Patriarchalismus)라고 불렀다. 권력의 가부장주의가 아니라 사랑의 가부장주의에 기반을 둔 아버지의 변신 프로젝트가 아버지학교라는 것이다.


'귀족 아빠' 되기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많은 아버지들은 깊은 공감을 표했고 변신을 모색했다. 무수한 간증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무수한 성공 스토리는, 어쩌면 위기의 가족이 아닌, 이미 변신한 아버지, 이미 잘 형성된 가족관계를 신학적이고 사회학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간증들은 자신과 가족의 신앙적 올바름에 대한 무의식적인 홍보행위에 다름 아닌지도 모른다. 이 프로그램의 수료자 중 하나인 고문전문가 이근안의 간증이라고 소개된 동영상은 목사가 된 그가 자신의 과거를 뼈아프게 청산하고 변신하고자 한다기보다는 도구화된 변신의 알리바이로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이런 극단적 사례만으로 평가절하 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그럼에도 5주 5회의 교육만으로, 그것도 감정을 과잉동원하는 신파적 프로그램만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새 삶의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기는 뭔가 과장된 듯하다.

    아무튼 두란노아버지학교는 참가자들에게 이 기획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는 자긍심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적지 않은 이들이 자신의 일터(관공서, 교도소, 회사 등)에서 아버지학교를 개설했다. 물론 그들은 일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책임자들이다. 그들은 사회적 엘리트로서, 자신의 가족의 범주를 넘어서, 아버지학교를 통한 ‘사회적 계도’의 소명을 수행하고자 했다.

    물론 최고위층의 엘리트만 아버지학교의 수강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5주 동안 토요일 3시부터 9시까지 이 프로그램을 위한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또 아내와 데이트하기, 자녀와 데이트하기 등의 숙제를 할 시간을 필요로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벤트 비용이 추가된다. 또 생계노동에서 한발 물러서서 가족을 위해 살겠다고 가족에게 공표하도록 요구받는데, 기독교적 가훈교리에 기초한 가장은 여전히 가족의 생계를 돌봐주는 존재다. 그런 이가 가족에게 공표하는 가족을 위한 삶의 리스트에는 안락한 소비생활을 위한 지출 가능이라는 숨은 항목이 담겨 있다. 그러니, 수강료(10만 원)는 비교적 저렴함에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한 실비용은 그리 저렴하지 않다. 모두가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도 대체로 중상위층의 사회적 위상이 요구된다.

    그런 이들이 가족을 위해서 헌신하는 아버지의 자격을 얻는다. 아버지학교는 그런 정당성을 그이들에게 부여한다. 가족은 수료식을 통해서 아버지에게 부여된 신앙적 인준을 공유하게 된다. 즉 아버지학교는 그 스스로에게, 그리고 가족과 사회에게 그를 ‘웰빙 귀족 아빠’로 공인하는 사회적 장치다. 그는 웰빙 귀족으로서, 그런 아빠의 가치를 사회에 널리 전파하는 자로서 소명을 갖게 되는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다섯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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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7.03.05 23:2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전 아버지 학교는 안 들었는데, 해당 교회에 몇몇 프로그램을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알 것같습니다. 제가 귀족은 아니지만 귀족적으로 살고 싶네요... 우리나라는 나보다 나은 사람 인정하는데 인색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아홉번째[각주:1]


자기계발의 시대 신자유주의적 귀족교육

성공과 신앙, '착한 동거'의 논리를 찾아서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자기계발서 열풍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사람들은 당황했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것이 그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물음이었다. 대답은 하나다. 적어도 그 시대에는 여러 가치관에 따른 다양한 답을 이야기할 여유가 없었다. 단지 하나만이 절박하게 요청되었다. 돈, 돈을 벌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무렵 출판계에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러한 추세는 이후 거의 10년 동안 서점가를 휩쓸었다. 이른바 ‘자기계발서’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 이전까지 가장 높은 판매부수는 단연 소설 분야의 것이었고, 몇몇 소설가들은 밀리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그런데 2천 년대에는 자기계발서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였다. 놀랍게도 2천 년대 베스트셀러 20권 중 무려 10권이 자기계발서들이다. 

   기독교 출판계도 예외가 아니다. 1999년 번역되어 출간된 《최고 경영자 예수》가 그 신호탄이었다. 이 책은 2년 만에 무려 27쇄, 20만 부 이상 팔렸다. 이후 수많은 기독교 자기계발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2006년 번역 출간된, 미국 최대의 메가처치 레이크우드교회의 담임목사인 조엘 오스틴의 책 《긍정의 힘》은 기독교출판물 중 최대의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또 미국에서 가장 특징적인 메가처치인 새들백교회 담임목사인 릭 워렌의 책 《목적이 이끄는 삶》 시리즈도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한국인 저자 김동환의 책 《다니엘 학습법》의 판매고도 수십만 권에 달했다.  


   이 책들은 거의 모두 ‘성공’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돈을 벌 수 있게 하는 다양한 방법들에 관한 것이다. 이 시기 자기계발서들에 대한 주목할 만한 비평서인 《거대한 사기극》에서 저자 이원석은 이 공통점에 대하여 “바깥의 사회구조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자기 자신을 주목하도록" 만드는 신화들이라고 좀더 분석적으로 이야기한다. 즉 자기계발서들이 주장하는 성공 비법들은 개개인의 자기계발에 딸려 있다는 것이다. 하여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개개인은 능동적으로 자기를 쇄신해야 한다. 그런 쇄신은 무한히 가능하고, 그 쇄신에 따라 성공이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이가 남자건 여자건, 부자건 빈자건,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사회적 범주가 어떠하건 상관없다. 쇄신은 사회적 규정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그이 자신의 노력에 좌우된다. 즉 자기계발은 철저히 개개인의 문제다.  

   한데 흥미로운 것은, 자기계발은 개인적으로 수행되지만, 그 내용은 사회가 이미 규정한 것이라는 점에 있다. 즉 자기계발은 사회가 정한 원리에 따라 개개인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규율하는 수행과정을 의미한다. 이때 사회가 정한 원리란 크게 보면 신자유주의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자기계발은 신자유주의적 삶의 수행법이며, 신자유주의적 인간의 자기 관리법이다.   

   지난 글에서 우리는 교회들의 배금주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것은 이 시기 자기계발서들 속의 신자유주의적 원리가 여과되지 않고 적나라하게 표출된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날것 상태의 신자유주의적 양상으로서의 배금주의는 동시대 기독교 출판물들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니엘학습 신드롬 - 삶 전체가 투여된 자기계발적 수행


    “서울대 출신 최강의 국・영・수 선생님들이 ( )에서 뭉쳤다.” 여기서 괄호 안에 들어갈 문구는 무엇일까? 참고로 이 전단지에 들어간 다른 문구들은 이렇다. 


 

   “강북 강남 통틀어 이렇게 막강한 선생님들이 한꺼번에 모인 학원은 찾기 어렵습니다.” “수준별, 실력별, 맞춤식 학습을 통해 확실한 실력향상을 목표로 학습이 이루어집니다.”  


    정답은 “장안평 다니엘비전학원”이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학원광고다. 그런데 핫한 학원가로 유명한 대치동도 아니고 분당 정자동도 아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잘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다. ‘다니엘’이니 ‘비전’이니 하는 표현으로 봐서는 기독교 냄새가 풀풀 난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이 섞여 있다. 

   이 학원은, 장안평이라는 지명에서 드러나듯이, 고소득층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학원이 아니라 서민층을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기숙학원이다. 흥미로운 것은 새벽 5시 10분에 예배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 세 번의 기도와 예배를 통해 철저한 신앙훈련을 하는 곳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신학대학 입시학원이 아니라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입학을 목적으로 하는 입시학원이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무료학원이라는 점에 있다.  

    원장은 《다니엘학습법》의 저자 김동환이다. 서울대 종교학과 출신이고 전교수석 졸업자로 알려졌다. 그가 이 학원에서 문제아인 청소년들을 SKY대학들에 입학시켰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것은 그가 창안했다는 공부법인 ‘다니엘학습법’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을 야기시켰다. 입학 문의가 속출했다. 이에 중상위층 학생 대상의 유료학원을 만들려 했다가 재정투명성 문제로 실패했다.  

    그렇지만 책은 전국 도처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그는 전국의 무수한 대형교회들을 돌면서 강연을 했다. 또 다니엘학습법을 주제로 하는 무수한 수련회를 이끌었다. 즉 장안평의 기숙학원은 소문의 진원지뿐이다. 다니엘학습법 신드롬은 전국적 현상이었고, 특히 대학입학을 꿈꾸어도 좋을 중상위계층에서 더 열기를 띠었다.  

    이는, 자기계발서 현상이 단지 독서 행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삶 전체가 투입된 실천적 수행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사례에 속한다는 것을 뜻한다. 다니엘비전학원 전단지에 의하면 “21세기 다니엘 같은 하나님의 준비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다니엘학습법’의 목표다. 즉 ‘21세기 크리스천 인재 양성’, 그것이 바로 ‘다니엘학습법’으로 표상되는 신자유주의적 기독교 입시교육 신드롬의 지향점인 것이다. 

    김동환은 기숙학원을 통해서 다른 교육, 즉 공교육의 교육과정 전체를 대체하고자 했다. 국・영・수 세 과목의 ‘입시교육’과 예배와 기도라는 ‘종교교육’으로 구성되는, 입시 맞춤형으로 축소된 교육과정으로 크리스천 인재를 양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대형교회적 대안학교운동 - 귀족교육으로서의 자기계발적 수행법


    《다니엘학습법》이 대놓고 신자유주의적 성공주의를 드러내고 있다면, 이러한 날것 상태의 자기계발주의와는 달리, 많이 ‘조리된’, 하여 그 욕구를 보다 승화된 양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교육운동이 대형교회 대안학교운동이다.


    1990년대 말 이전까지 개신교계 대안학교들은 크게 세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다. 첫째는 장애인학교 같은 특수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대안학교이고, 둘째는 일종의 진보적 가치의 대안교육운동으로, 입시중심 교육에 반대하는 생태주의나 사회공동체주의적 대안학교다. 그리고 셋째는 근본주의적 신앙에 기반을 홈스쿨링운동이다. 이 세 가지 대안학교들은 모두 주류사회의 질서에서,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벗어난 교육운동의 성격을 띤다. 그런데 2천 년대 이후 개신교계에는 특히 대형교회가 주도하는 새로운 대안교육운동들이 활기를 띤다.

    이 시기에 대형교회들이 대안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이렇다. 2천 년대에 들어서면서 종교계, 특히 개신교계 사립학교의 종교교육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거세졌다. 나아가 종교계 사학법인들의 비민주적 재단운영에 대한 사회적 검열의 요구도 빗발쳤다. 여기에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교회학교도 문제였다. 이때 대형교회의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은 두 가지 문제제기가 결합된 양상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민주주의적 사회론의 기조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였고, 다른 하나는 교회의 사학운영의 전근대성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이 두 문제제기가 수렴되는 지점에 ‘21세기 글로벌 시대 크리스천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가 있다. 즉 민주주의적 사회론의 평등주의나 사학운영의 전근대성의 공통된 문제점은 현행의 교육제도가 사회를 이끌어갈 엘리트의 양성을 방해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하여 기독교가 주도해서 엘리트 교육을 위한 대안적 교육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2천 년대 대형교회들이 주목했던 대안학교운동이다.

    그런데 다니엘학습법이 개발자 개인의 교수법에 의존하고 있다면, 대형교회의 대안학교운동은 좀더 제도적이고 시스템적 체계를 중요시했다. 즉 신자유주의 시대의 엘리트로 성장하게끔 하는 제도적이고 체계적인 교육 장치들이 활용되는 교육기관으로 기독교계 대안학교가 부각된 것이다. 그러므로 개발자 개인의 창의적 교수법 외에는 별다른 자원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전자와는 달리, 후자는 인적, 물적 자원이 기존의 공교육보다 훨씬 더 풍부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이는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그 자원을 활용하는 데 있어 지지부진한 논의과정을 거의 거치지 않고 신속하게 활용할 수 있는 대형교회에게 가장 용이한 것이었다. 더구나 자녀교육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강남, 강동, 분당의 중상위계층이 대대적으로 결집된 이 지역의 대형교회들에겐 교인들의 필요에 대한 맞춤형 기획인 측면도 강했다.

    하여 대형교회들의 대안학교운동은 일종의 귀족화교육의 측면을 지닌다. 그것은 명문대학 입학뿐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글로벌 시대에 맞는 국제적인 인재의 자격을 갖추게 하는 총체적 교육을 추구하는 학교라는 것이다. 유초년 교육기관에서부터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까지 다양한 대안교육기관들이 속속 설립되었고, 그 학비는 일반교육기관보다 훨씬 높았다. 단, 교인들에게 입학의 특전이나 학비의 특전을 주는 경우가 많아, 이런 교육운동은 일종의 선교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지역 사회에 대중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일이고 그들을 교인화하기에도 용이하며, 교인들의 결속도를 높이는 방법이기도 했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귀족학교들은 배금주의나 성공지상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사실 다니엘학습법처럼 가난한 학생들에게 성공욕구를 부추기는 교육과는 달리, 처음부터 풍요로운 학생들에게 성공이란 삶의 최종 목적이 아니다. 성공도 격조 있게 이룩되어야 한다. 풍요를 위임받은 자가 격조 있게 재산을 관리하는 청부론처럼, 귀족적 대안교육은 성공도 품격을 필요로 하는 삶의 요소임을 강조했다. 신앙은 바로 그러한 품격 있는 성공의 준거다. 하여 귀족적 대안학교의 신앙은 웰빙적 자기계발의 수행법인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다섯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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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사회적 분열과 "비시민"의 출현에 대한 고찰(4)


- 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의 결합을 통하여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박사과정,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서론


    2. 한국 전쟁 이후 남한의 "반공 민족주의"라는 사회적 합의의 형성과 붕괴

     (1) 남한의 반공 민족주의의 형성

     (2) 남한 국가의 형성과 근대화에 미친 미국의 영향 

     (3) 남한 사회의 사회적 균열의 시작 – ‘민중’의 출현

     (4) 남한 사회의 내부합의의 동요와 붕괴

     (5) 남한 민족주의의 분화와 분열


    3. 남한 사회에서의 ‘무능력자’와 ‘무자격자’ 형성의 구조

     (1) 민주화 시대 ‘시민’의 출현

     (2) 남한 경제구조의 신자유주의적 변화

     (3) ‘시민’ 내부의 사회적 배제와, ‘무능력자’와 ‘무자격자’의 낙인이 찍힌 ‘비시민’의 출현


   이승만/박정희 정부 때의 야당은 반공주의와 결합한 자유민주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었고, 박정희 정부 때부터 등장한 민중운동은 반자본주의를 부분적으로 포용했던 반면에,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와 거래하는 것이 가능한 존재인 자유주의적 ‘시민’은, 위에서 언급한 기존의 야당과 민중운동 양자 모두에 대해 거리감을 두었다. 이러한 ‘시민’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사회의 규칙으로 수용하고,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과도한 반공주의를 거부했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기존의 사회운동, 특히 민중운동에도, 자신들에게 과도한 도덕적 부담을 강요한다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각주:1] 그리하여, 이 자유주의적 ‘시민’들은 자신들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에 걸맞는 ‘상식’을 아는 존재로 간주함으로써, 사회적 표준의 담지자임을 자처했다.[각주:2] 이 ‘시민’들은, 정부가 자신들과 소통하기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저항을 불순한 것으로 비난했을 때, 즉 자신들의 ‘상식’이 정부에게 거부당했을 때, 촛불 시위나 인터넷 청원 등의 사회적 의례를 개발하고 실행함으로써 자신들의 분노를 표현해 냈는데, 김진호는 이런 의례들을 ‘한국적 시민 종교’[각주:3]라고 칭했다. ‘시민’들의 인터넷 활용 능력은 이러한 ‘한국적 시민 종교’를 개발해 내는 중요한 기제로 작용했다. 자유주의적 입장의 ‘시민’들에 의해 이러한 ‘시민 종교’가 개발된 이후, 보수주의적 입장의 시민들도 저런 ‘시민 종교’를 모방하여, 친미 시위를 개최하거나 카톡을 통해 루머를 퍼뜨리는 등의 의례를 개발해 내기도 했다.  


   1) '무자격자' 창출 현상


   그런데 이러한 ‘시민 종교’ 의례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을 ‘무자격자’로 치부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광범위한 대중을 포괄하는 인터넷에서의 의례가 반복되는 중에, 이명박이나 박근혜 등의 보수주의적 대통령들을 일본식 이름으로 칭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이 자유주의적 시민들이 그 보수주의적 대통령들을 “외부인”, 즉 남한 사회 바깥의 인간으로서 남한 사회에 정당한 발언권을 가지지 못하는 인간으로 간주하려 했음을 의미한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자유주의적 ‘시민’들은 보수주의적 정당과 언론에 대한 자신들의 과거 조사를 통해 그들의 과거 식민권력에 대한 협력 사실을 찾아 내고 이에 근거해 그 정당과 언론들을 “친일파”로 칭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보수주의적 ‘시민’과 정당들은 상대편을 “친북주의자”로 칭하는 경향이 강해졌으며, 심지어는 성소수자 운동에 대해서까지 이러한 호칭을 쓰는 경우도 생겼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을 ‘적’으로 간주해 증오하는 보수주의자들이 ‘종북주의자’라고 욕하는 자유주의적 ‘시민’들 역시, 북한을 ‘이상한 타자’(식민주의적 뉘앙스까지 담긴)로 간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결국, 자유주의적/보수주의적 ‘시민’들 양쪽 모두 상대편을 ‘친일’/’친북’으로 딱지붙임으로써, 상대편을 ‘외부인’, 즉 한국에 살 자격이 없는 존재로 간주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한윤형은 남한의 사회구조가 “북한인과 일본인의 민주주의”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각주:4] 이는 남한의 ‘시민’들이 자유주의자/보수주의자 모두,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상대편을 ‘북한인’과 ‘일본인’으로 규정하고 그렇게 규정된 상대방과 자신을 비교하여 자신을 민주주의의 대변자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이런 ‘외부인’ 창출 현상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적대감에서도 나타난다. 보수주의적 시민들이 이전부터 그런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면,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자유주의적 시민들에게도 그러한 적대감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이런 적대감의 주된 명분은 그들이 ‘불법체류’를 한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국민’들만 받아야 하는 복지혜택을 일정하게 받는다(혹은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대감은 경우에 따라서 결혼 이주자들에게까지 확대되는데, 이자스민의 경우가 한 예이다.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자로 새누리당의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이자스민은 그의 당적과 전 국적으로 인해 비난받았다. 그가 이주노동자들의 ‘불법’체류 여부에 상관없이 그 자녀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거주권과 복지를 보장하고자 하는 법안을 발의했을 때, 자유주의적 ‘시민’들은 이 법안이 ‘불법’ 이주노동자들이 합법 신분을 얻는 데 악용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물론 보수주의적 시민들도, 그의 당적에 대한 비난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비난을 그에게 퍼부은 것은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자유주의적/보수주의적 ‘시민’들은, 그들의 상대편이나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 등을 남한 사회의 ‘합법적’ 주체로서의 ‘국민’과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 혹은 가져서는 안 되는 ‘무자격자’로 간주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배제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이런 사실의 연장선상에서, 남한 사회의 내셔널리즘은 ‘무자격자’를 창출해 내는 기제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무자격자’ 창출 현상은 젠더편향적이기도 한데, 이를 드러내는 현상으로는, 여성들이 특히 병역 문제로 인해 남성들(자유주의적/보수주의적 양쪽 모두)에게 동등한 시민으로 간주되지 못하는 현상이 있다. 


   2) '무능력자' 창출 현상


   남한 사회의 직업 안정성이 약화되고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노동시장의 경쟁이 극심해졌다. 그에 따라 남한 사람들은 자신이 좋은 직업을 가질 만한 자격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심대한 노력을 해야만 하게 되었고, 특히 생계 전선에 막 뛰어든 청년들에게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중해졌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청년들은 안정된 직업을 얻기가 상당히 힘들지만, 그들은 안정된 직업을 얻기가 힘든 것은 자신들의 능력부족 때문이며 그러므로 자신들과 자신들의 능력을 푸대접하는 사회에 저항하기보다는 더 많은 능력을 갖추는 데 집착하도록 길들여져 왔다. 그리하여 남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구직난을 자신들의 능력부족으로 돌리게 되면서, 다른 이들에 대해서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특히 자신들이 불의를 당했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즉, 어떤 이들이 공정하고 평등한 고용이나 노동 조건 등을 요구할 때, 많은 남한 사람들은 그런 요구를 할 능력이나 자격도 안 되는 주제에 부당한 요구를 한다고 생각해 버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 조건 개선이나 정규직화 등을 요구할 때, 많은 청년들은 그들은 정규직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며, 만약 그들의 요구를 들어 준다면, 정규직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공정한 처사가 될 것이라고 반응한다.[각주:5] 

   이런 분위기 아래에서, 장애인, 노숙자, 실업자, 노동빈곤자 등의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은, 그들의 ‘능력 부족’을 명분삼아 정당화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능력 부족자’로 간주되는 이들과 소수자들의 사회적 상태는 점점 더 많이 중첩된다. 필자는 이러한 중첩을 “무능력자”의 창출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안정된 고용의 감소 현상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변화에 기인한 경제적 양극화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더 많은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안정된 직업을 얻기는 상당히 어려우므로, 그들이 “무능력자”라는 딱지를 피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무능력자”들은 신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효율성을 성취할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로 간주되므로, 자본주의 사회에 쓸모없는 “잉여인간” 취급을 받게 된다.[각주:6] 그러므로, 이러한 “무능력자”와 “잉여인간”의 딱지는, 흔한 생각대로 장애인이나 실업자 같은 소수자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인 지구화 경제에 깊게 연루된 한국 사회의 누구에게라도 붙을 수 있는 딱지임을 알 수 있다. 


   3) "비시민"들의 공통점


   “무자격자”와 “무능력자”의 공통점은 둘 다 “시민”들에 의해 배제당하는 존재라는 점이며, 이 때 그 배제가 “외부인”이나 “능력 부족” 등의 그럴듯해 보이는 명분으로 정당화된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두 범주를 “시민”에 의해 배제되는 “비시민”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합치고자 한다. 이 때, 앞에서 “무능력자”를 다루면서 언급했듯, “비시민” 현상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한정되지 않는 사회 전반적인 현상임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무자격자”의 경우를 보더라도, 앞에서 언급한 “북한인과 일본인의 민주주의”라는 레토릭은, 누가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누구든지 어떤 경우에는 “무자격자”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하겠다. 어떤 이가 “비시민”으로 간주될 때, 그가 어떤 일을 겪는지를 살펴 보는 데에는 소수자들의 고통이 어떻게 취급되는지를 살펴 보는 것이 참조가 될 수 있는데, 필자의 견해로는 대체로 아래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마련이다.[각주:7] 


  • 소수자의 고통은 사회적 문제로 인정된다. 

  • 그러나 그런 인정이 존재한다고 해서, 소수자들에 대한 불법적이고, 위험하며, 무능하다는 등의 이유로 인한 배제의 정당성이 의문에 붙여지는 것은 아니다. 

  • 심지어 민주화를 지지하는 사람들까지도 포함하여, 일부 시민들에게 그러한 배제의 정당화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그러므로 국가권력뿐만 아니라 “시민” 역시 소수자들을 배제하는 것을 확고하게 정당하고 있다. 

 


   4) 남한 사회와 민중신학에 대한 탈식민적 고찰의 실마리인 "비시민"


   한국 민중신학의 독특한 언명 중 하나는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의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다. 서남동에 따르면,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는 이유는,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 사람 등의 진면목이 그 강도 만난 사람의 고통 앞에서 폭로되며, 그럼으로써 그들이 구원받을 지 못 받을 지가 바로 그 고통 앞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각주:8] 서남동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구원이란 오직 고난받는 이들이 다른 이들의 걸림돌이 되어, 그 걸림돌에 걸린 사람들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순간에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민중신학에서 구원의 길을 탐색하는 핵심 통로는 고난받는 이들, ‘민중’의 현실을 증언하는 것이어야만 한다.[각주:9] 

   앞에서 논의했던 ‘비시민’은 민중신학이 증언하고자 하는 ‘강도 만난 사람’, 곧 ‘민중’의 한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시민’으로 자기를 규정하는 이들이 ‘비시민’의 배제를 정당화하는 명분을 광범위하게 공유한다는 점과, 누구든지 어떤 경우에는 ‘비시민’으로 규정당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비시민’의 현실을 증언하는 것은 배제를 폭로하고 그 배제의 명분이 틀렸다고 선언하는 일이 되고, 거기에서부터 배제의 시스템이 깨지기 시작한다. 즉, 증언은 ‘비시민’을 배제하는 바탕 위에 서 있는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거부의 시작인 것이다. 엄기호의 표현을 빌리면, ‘시민’의 입장에서의 슬로건이 “사회를 보호하고 사람을 폭로하라”라면, ‘비시민’의 입장에서의 슬로건은 “사람을 보호하고 사회를 폭로하라”이다.[각주:10] 

   ‘비시민’의 배제에 동참하는 ‘시민’들은, 그 배제를 정당화하는 근거, 특히 내셔널리즘이나 자본주의 등등의 이데올로기를 광범위하게 공유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시민’들이 내면화하고 있는, 미국/일본이나 북한을 타자로 설정하고 있는 내셔널리즘은, ‘무자격자’를 창출하고 그들을 배제하는 주된 근거의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하위파트너로 세계화된 경제에 참여하려는 ‘제국의 눈’을 갖고 있는 ‘자유주의적’ 시민들이 내면화한 자본주의는 ‘무능력자’의 창출과 배제에 주된 근거가 된다. 따라서, 남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배제의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배제 안에 뿌리박혀 있는 남한 사람들의 내셔널리즘과 제국주의적 욕망 양쪽을 모두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탈식민 사상과 운동은 탈식민, 탈냉전, 탈제국을 모두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각주:11] 천 꽝싱의 주장은 남한 사회의 현실을 분석, 비판하는 데 좋은 참조점이 된다. 특히, 천 꽝싱이 제안하는 ‘비판적 혼합’과 ‘타자 되기’의 방법론, 즉 식민화를 겪은 주체들끼리의 상호 동일시를 통해 연대를 구축하는 방법론은 민중신학에도 좋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각주:12] 

   민중신학의 관점에서, ‘비시민’은 남한 사회 내의 ‘강도 만난 사람’들, 즉 민중이며, 따라서 구원의 시금석이 된다. 따라서 남한 상황에서의 민중신학의 주 임무는 ‘비시민’의 현실을 증언하는 것이다. 남한 사회의 타자인 ‘비시민’의 배제의 현실을 증언함으로써 그 배제를 거부하고 그 타자와 연대를 시작하게 된다. 이는 ‘비판적 혼합’의 방법론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게 될 것이다.  


   4. 결론


   노암 촘스키의 한 강연에서 어느 MIT 학생이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고 한다. “교수님께서는 바람직한 발전의 모델을 이룬 나라가 현실 세계 중 어디라고 보십니까?” 촘스키의 대답은 이러했다고 한다.  

   “한국(South Korea)입니다. 한국 국민들은 제국주의 식민 지배를 딛고 일어나서, 다른 나라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동시에 독재 정권에 항거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해 냈습니다. 세계 최고의 휴대전화와 인터넷 보급률을 자랑할 정도로 첨단 기술이 온 국민들에게 골고루 퍼졌고, 2002년에는 네티즌의 힘으로 개혁적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할 정도로 풀뿌리민주주의가 발전했습니다.”[각주:13] 

   이 에피소드에 촘스키의 반응이라고 소개된 내용에서는, 남한 사회의 자유주의적 ‘시민’의 관점인, 탈식민국가로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으려 소망하는 나라로 남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잘 드러난다. 이러한 소망은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적 비전 중 하나로 공식화되어 있기도 하다. 민주화 역사 속의 많은 사건들이 현재 공식적으로 기념되고 있으며, 동시에 “국민소득 4만 달러로의 성장을 위한 경제적 기반 구축”이 공식적인 경제적 비전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두 마리 토끼 쫓기는 필연적으로 그 과정에서 ‘비시민’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비시민’의 출현은, ‘비시민’을 만들어내지 않고서도 ‘두 마리 토끼 쫓기’가 가능한 것인가라는 비판적 의문의 실마리가 된다. ‘비시민’의 존재가, 그들의 배제에 근거하여 남한 사회의 식민 이후의 경제적/사회적 구조가 유지되는 주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 한, ‘비시민’은 남한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실존의 가장 심층을 건드리는 사회적 이슈가 될 것이다. 따라서 ‘비시민’에 대한 배제를 거부하는 것은 사회적 실존의 급진적 변화가 동반되어야 가능하며, 이런 의미에서 ‘비시민’은 신학적 주제가 된다. 민중신학이 타자로서의 ‘비시민’의 이슈에 신학적으로 응답한다면, 남한의 타자로서의 북한이라는 이슈와, ‘시민’에게 내면화된 제국주의적 욕망이라는 이슈와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따라서 민중신학의 ‘비시민’ 증언 작업은 필연적으로 탈식민, 탈냉전, 탈제국의 동시 추구라는 탈식민의 관점과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한윤형. 안티조선운동사(서울: 텍스트, 2010), 249~250 [본문으로]
  2. 위의 책, 247 [본문으로]
  3. 김진호. 시민 K, 교회를 나가다(서울: 현암사, 2012), 68 [본문으로]
  4. 한윤형 “종북과 극단적 민족주의의 차이는?”, 프레시안 2015년 3월 12일 게재,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4610 [본문으로]
  5. 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고양: 개마고원, 2013). 19 [본문으로]
  6. 최태섭. 잉여사회 (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3), 82~84 [본문으로]
  7. 졸고,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이다”-민중신학적 관점의 주체성 탐구”, 김진호/김영석 편저, 21세기 민중신학-세계 신학자들, 안병무를 말하다(서울: 삼인, 2013). 387 [본문으로]
  8.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서울: 한길사, 1983), 107 [본문으로]
  9. Kim, Jin-Ho. "The Hermeneutics of Ahn Byung-Mu." In Reading Minjung Theology in the Twenty-First Century: Selected Writings by Ahn Byung-Mu and Modern Critical Responses, ed. Yung Suk Kim and Jin-Ho Kim. Eugene: Pickwick Publications, 2013, 22 [본문으로]
  10. 엄기호,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1). 192~193 [본문으로]
  11. 천꽝싱, "세계화와 탈제국,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이정훈, 박상수 편, 동아시아, 인식지평과 실천공간(서울: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 2010), 89 [본문으로]
  12. ______, 제국의 눈(창비: 2003), 153 [본문으로]
  13. 이원재, 주식회사 대한민국 희망보고서(서울: 원앤원북스, 2005), 177~17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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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여덟번째[각주:1]


돈과 신앙, '착한 동거'의 논리를 찾아서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시대착오


    국가의 발전과 대형교회로의 성장, 그리고 보수주의, 이 세 가지 범주가 서로를 규정하며 연관되어 있었다는 점은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1990년 어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국가는 저성장 상황에 놓였고, 교회는 정체 혹은 역성장의 수렁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국가는 보수와 진보의 각축장이 되었고, 교회의 보수주의는 분화된 양상을 띠었다.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웰빙-우파’는 바로 이 분화된 보수주의, 그중 가장 뚜렷한 양상의 하나로 등장했다. ‘주권교인의 등장’이 이러한 분화를 읽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떠돌아다니던 주권교인들을 정착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대형교회가 된 두 개의 교회, 사랑의교회와 온누리교회는 1990년대에 가장 주목받던 성장모델이었다. 그것을 우리는 ‘교회의 캐릭터화’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2천 년대, 보수대연합의 시대에 교회는 단일대오로 뭉친 보수주의 동맹의 탄탄한 일원이 되었다. 시대는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를 담아내기 위해 보수든 진보든 내부 개혁이 필요한 상황인데, 진영 갈등이 모든 것을 먹어버리는 정국이 대두했다. 그나마 진보는 내적으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며 성찰의 시간을 맞고 있었지만, 단일대오처럼 보이는 견고한 정치연합으로 엮인 보수주의는 권력연합으로서는 성공했지만 변화하는 시대를 읽는 능력이 퇴화했다. 해서 이러한 권력연합이 집권하는 시대는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지 않고는 정권이 유지될 수 없는, 시대착오적 시대가 되어야 했다.  

 

경품전도

 

   2010년 한 종교계 일간지는 최근 교회에서 ‘경품’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국민일보〉 2010.10.13.) 그 이후 몇 년 동안 개신교계의 여러 매체들도 같은 논조의 기사들을 쏟아냈고, 개신교계 원로들의 신년메시지나 기념강연 등에서도 배금주의라는 우상숭배를 경계하는 말들이 잇따랐다.  

   교회의 경품의 사례들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준다. 한 대형교회는 새 신자에게 스테인레스로 된 고급 냄비 세트를 선물할 것이고 교회를 계속 출석하면 성경책과 여행가방을 제공한다는 전단지를 널리 뿌렸다. 또 다른 대형교회는 교회 출석 알바 모집 공고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세 시간 근무, 2만원, 주차비 별도지급’이라는 제법 괜찮은 조건으로 말이다. 심지어 어느 교회는 교회를 나오면 소개팅을 시켜줄 것이라는 전도지를 만들었다. 더 놀라운 것은 남성용과 여성용 전도지를 따로 만들어 남성용에는 여성교인의 사진과 신상이, 여성용에는 남성들의 사진과 신상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 전도왕에게 자동차를 경품으로 내놓은교회, 성경 다독왕에게 해외여행 상품권을 내놓은 교회 등도 있었다. 

 

 

 

   2010년이라는 시간, 그 무렵은 이러한 배금주의가 교회에 만연한 현상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시기다. 알다시피 2002년에 광고 카피로 처음 등장한 이후 거의 일상어가 되다시피 한 ‘부자 되세요’라는 문구는 이 시대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IMF관리체제로부터 졸업했다고, 정부 당국과 언론들이 앞다투어 대대적으로 떠벌리던 그 무렵이다. 이후 대부분의 TV 드라마, 오락프로, 서적 등, 무수한 매체들은 부자를 훔쳐보고 그들과의 상상적 동일시의 망상에 빠져들고픈 대중의 욕구를 한껏 증폭시켰다. 2007년 대선은 그러한 대중의 욕구에 부합하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입증해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대중은 그가 부패한 자본가이자 정치가임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성공한 기업가이고 정치인이라는 걸 주목했다. 무수한 대중은 자기들도, 바로 그이처럼, 과정이야 어떻든 부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감을 그를 통해 충족시키고 싶어 했다. 그는 그것을 국민들에게 선물할 메시아처럼 보였다.

    교회는 전례 없는 열광적 지지를 그에게 쏟아 부었다. ‘장로대통령을 만들자’라는 슬로건 속에는 기독교국가에 대한 열망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 그들이 추구한 기독교국가라는 상상력은, 더 이상 IMF 재앙 같은 고난의 시대가 없는, 더욱 더 ‘풍요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와 겹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바람은 그가 이끄는 정권의 탄생으로 실현된 듯했다. 무수한 기독교 대중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들이 당시 위축되고 있던 교세에 대한 반전의 기대와 겹쳐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제 한국개신교는, 이제까지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팽창주의에 몰두했다. 교단마다 ‘몇만(천)교회 달성’ 같은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고, 목사후보자들이 목사가 되려면 (기성교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개척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그 결과 그 어간에 교회 설립 수가 크게 늘었다. 동시에 3년 이내에 폐업하는 교회 또한 그만큼 늘었다. 그것은 교회를 설립하고자 하는 이에게 폐업하는 교회와 시설, 그리고 교인을 끼워 파는 이상한 관행이 만연하게 되었고, 그것을 ‘공간비용+알파(일종의 권리금)’의 가격으로 중계하는 블랙마켓이 형성되었다. 교회는 교회대로 강도 높은 전도 캠페인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이른바 경품전도 현상이 만연하게 되었다. 2010년, 그 어간은 그런 시기였다.  

 

청부론

 

    2천 년대 초, 한국개신교계를 강타한 용어가 있다. ‘청부론’이라는 개념어다. 2001년 교회를 설립한 김동호 목사가 그 무렵 설교와 저작들을 통해 ‘청부론’을 제기하였고, 그 직후 ‘청부론이냐 청빈론이냐’를 둘러싸고 흥미로운 논쟁이 벌어졌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개념에 대해 교단의 통제를 받고 있던 신학대학들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조용한 반면, 교회 사역사들, 특히 젊은 목회자들과 평신도들 사이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청부론이란, 말 그대로, 신으로부터 풍요를 위탁받은 것에 관한 주장이다. 과거 조용기 목사의 ‘삼박자 구원론’도 형식에선 유사한 틀이 있다. 하느님이 영적 구원을 베푼다는 것은 동시에 건강과 물질의 구원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즉 구원은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이 ‘1+1’ 패키지로 모둠 선사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요컨대 세속적 풍요와 극적인 거리를 두면서 신앙적 다이내미즘을 추구했던 미국의 근본주의 신앙운동과는 달리, 조용기 류의 은사주의 운동은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 놓인 심대한 거리감을 해체함으로써 새로운 신앙적 다이내미즘을 이끌어냈다. 초기 조용기(1950~60년대)의 경우는 서울 은평구 지역의 달동네에 살고 있던, 지질이 가난하고 심각한 건강의 위기에 놓여 있던 이들에게 영적인 동시에 세속적인 축복을 베푸는 복음이 중심이었던 반면, 미국의 번영신학과 결합한 중후기 조용기(1970년대 이후)는 모든 대중에게 주는 영적이자 세속적인 축복의 메시지로 그 함의를 변형시켰다.  

    그런데 김동호의 청부론은,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의 거리를 해체하였다는 점에서는 조용기와 일견 유사성이 있지만, 그 맥락은 전혀 다르다. 초기 조용기의 대중은 모든 것을 상실한 이들이었고, 그런 점에서 그의 은사주의의 핵심은 말 그대로 신이 준 물적 선물에 초점이 있다. 그리고 중후기 조용기에게 있어 은사는, 그 대상이 ‘결핍된 대중’이 아니라 ‘욕구과잉의 대중’이라는 점에서, 세속적 선물에 대한 탐욕을 주체 못하는 배금주의에 가깝다. 하지만 김동호에게 있어 청부론은, 선물에 대한 욕망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물의 관리에 초점이 있다는 점에서, 조용기의 은사론과는 달리, 그것은 일종의 ‘윤리학’이다.  

    그의 윤리학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죄악이 아니라는 주장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돈 자체를 악마화했던 근본주의적 신앙(그 한 예로, 미국 솔트레이트시티의 몰몬계 근본주의자들은 돈을 〈요한계시록〉의 666의 현대판 실체로서 해석하곤 했다. 그밖에도 이런 해석은 근본주의자들의 흔한 논리다.)과는 달리, 돈 자체를 중립적인 것, 쓰임에 따라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도구라는 주장과 연결된다. 하여 그의 윤리학은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버는 방식과 쓰는 방식’을 강조한다. 이는 깨끗한 자본가를 롤모델로 하는 신앙윤리에 대한 주장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이것은 유산을 자손에게 상속하지 않는, 기부의 메시지로 이어진다.(이러한 그의 논리는 자본주의를 미화하는 담론에 지니자 않다는 반론을 낳는다. ‘청빈론’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부정축재나 세습 등의 교회와 사회에 만연한 부유층의 폐습들에 대한 비판을 동반하게 되며, 그러한 개신교 사회운동 단체들을 후원하는 것으로 교회 선교의 방향을 전환시켰다.  

 

교회적 웰빙운동으로서의 청부론

    한국전쟁 이후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야 했던,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의 논리였던 세대가 있었다. 그들에겐 부자가 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최고의 축복이고 행복이었다. 하지만 그이들의 자녀들의 시대는 달랐다. 그들 중에는 처음부터 중상위계층으로 태어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장기에 소비자본주의를 체험했고, 그렇게 변화된 시대의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한 이들이다. 그들은 1990년대 말, IMF 관리시대를 거치면서,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세례를 받으면서 그야말로 가장 탐욕스런 자본주의 질서의 화신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 중 일부는 그러한 욕구의 문화를 불편해하면서 성찰을 도모하고자 했다. 이때 후자, 특히 개신교도들이 바로 청부론의 주요 소비자들이었다.  

    당시 사회에선 웰빙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깨끗하고 건강한 소비를 지향하는 문화현상인데, 중요한 것은 이 웰빙의 삶은 어느 정도의 초과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웰빙 현상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 계층은 중상위계층이다. 금숟가락 태생이면서 소비자본주의 문화를 체험하였으나, 그 게걸스런 탐욕의 메커니즘을 성찰하려 했던 이들이 바로 웰빙의 주요 소비자들이다. 그리고 이 계층이 집중된 곳에 웰빙 시장 형성이 용이했다.  

    웰빙은 먹거리 운동에서 시작해서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었는데, 청부론은 일종의 교회적 웰빙운동의 한 의제였다고 할 수 있다. 탐욕스런 자본주의에 세뇌되어 버린 교회들에 마뜩치 않아 했던 주권교인들이, 그들의 일부가 교회를 떠나 김동호 목사가 시무하는 높은뜻숭의교회로 몰려들었다. 이 교회는 2천 년대에, 자본주의적 욕구의 문화에 한껏 젖어 있던 교회들 사이에서 그것을 지양하고자 하는 새로운 캐릭터로서 청부론을 제시했고, 많은 주권교인들이 이곳으로 모였다. 그리고 교회의 배금주의 풍조가 최고조에 이르던 2010년 어간 새로운 캐릭터 대형교회로 탄생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다섯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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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일곱번째[각주:1]


2천년대, 보수대연합의 시대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1990년대’적 캐릭터교회의 몰락


    1990년대 한국개신교 신자들에게 가장 주목 받았던 두 교회인 사랑의교회와 온누리교회는 2천 년대 이후 신망도가 크게 실추했다. 캐릭터화를 선도했던 두 교회의 이미지정치의 효과는 급락했고, 대중에게는 또 다른 권력화와 비리, 그리고 부조리함의 표상으로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온누리교회는 1999년 저 유명한 ‘옷로비 사건’과 연루되었다는 언론 보도와 함께 이미지 추락이 시작되었다. 신동아 그룹의 재정이 이 교회로 지속적으로 유용되었다는 사실, 나아가 최순영 신동아 전 회장의 비밀장부와 교회 재산이 얽혀 있다는 풍문 등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미담이 넘쳐났던 교회에 관한 이야기들이 추문으로 재해석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2004년 이라크에서 피랍되어 살해당한 김선일씨 사건이 그 대표적 사례다. 오랜 동안 성장지상주의를 제1 원리로 삼아온 한국교회에 있어 교세의 정체가 뚜렷해진 1990년대는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되는 출발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 즈음에 본격화된 해외선교라는 비전은 국내선교의 위기로 인한 위축감을 자긍심으로 보상받게 하려는 가장 적극적인 돌파구인 셈이었다. 한데 이 무렵 해외선교를 선도했던 교회가 바로 온누리교회다. 1996년부터 시작된 해외선교 프로젝트는 2천 년대 초 ‘Acts 29 비전’(28장으로 끝나는 〈사도행전〉(Acts)의 새 장을 해외선교로 구체화하겠다는 선교 아젠다)으로 체계화되는데, 김선일 씨는 바로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현지에서 섭외된 활동가였다. 그는 이라크의 미군 군납업체이면서 일종의 선교 브로커 역할을 하고 있던 가나무역의 팀장이었고, 온누리교회는 이 회사를 거점 삼아 이라크 선교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온누리교회의 Acts 29는 포교를 위해서라면 전쟁마저도 기회로 활용하는 맹목적인 전도 중심주의, 그것에 다름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이슬람 지역에서 악명 높은 국제선교기구 인터콥의 주요 후원자가 바로 온누리교회였다. 몇 년 후 아프간에서 피랍된 분당샘물교회 단기선교팀의 현지 인솔을 맡은 이들도 바로 이 단체 소속 선교사들이었다. 결국 온누리교회의 적극적인 해외선교 프로젝트는 한국개신교의 위신을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실추시키고 말았다.  

   사랑의교회는 설립자인 옥한음 목사를 이어 2003년 제2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오정현 아래에서 치명적인 이미지 추락을 경험한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장지상주의로 회귀하였다는 비판이 도처에서 제기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교회 교인인 권력 엘리트들이 교회의 불법과 탈법에 동원되고 있다는 사회적 평판이 폭넓게 회자되었다. 앞의 김선일 사태 때에 온누리교회와 관련된 외교관들이 교회와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사태를 먼저 대처하려 했던 탓에 국가가 빠른 대처를 할 수 없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사랑의교회에 속한 권력 엘리트들도 공공적 직무보다는 사적 단체의 일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때의 소망교회 인맥이 특권적 지위를 누렸던 것을 빗댄 ‘고소영’이라는 표현처럼 박근혜 정부 시절의 ‘사미자’라는 표현은 사랑의교회가 이 정권의 핵심인맥으로 깊이 관여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 최근 전무후무한 대형 법조비리의 중심인물인 홍만표 씨도 이 교회의 교인이라는 사실은 사랑의교회가 우리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시사한다. 

   이렇게 2천 년대에 이 두 교회는 천민적 성장지상주의의 화신이라는 굴욕적 평판의 대상이 되었다. 지난 1990년대에 참신해보였던 그 캐릭터들로 기억하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하여 이 교회들로 모여들었던 많은 주권교인들의 일부는 또 다른 교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많은 이들은 신앙적 문제의식을 유보하고, 이미 거대하게 형성된 인맥과 그것이 일으키는 사회적 자본에 취해가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비단 이 두 교회만의 현상이 아니다. 과거에 성장지상주의적 신앙은 풍요를 신앙의 열매로 갈망하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풍요는 낯선 것이었기에, 자본주의와 신앙 간에는 미묘한 긴장이 있었다. 그러나 2천 년대에 오면 종교, 특히 개신교는 자본주의에 깊게 매수되어 버렸고, 강남, 강동, 분당 지역에 집중된 대형교회의 신자들인 중상위계층에서 그 현상은 훨씬 더 두드러졌다. 


진보대연합 대 보수대연합으로 모든 것이 빨려들다


   ‘2천 년대’는, 거칠게 요약하면, 사회가 두 개의 범주로 이분화된 시대였다. 반면 그 이전 시대까지 한국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개념은 ‘총화’였다. 

    총화가 권위주의 시대의 가치였다면, 2천년 어간 이후는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1998년 이후 두 번에 걸친 민주정권이 포스트권위주의 시대의 첫 번째 국면을 추동했다. 이때 민주주의는 ‘공화주의적 요소가 결여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사회를 결속시키기보다는 시민 각자의 고조된 권리의식이 사회관계를 규정하는 주요 작동원리가 된 사회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대 민주주의는 ‘탈권위주의적’ 혹은 ‘권위주의 해체적’ 성격이 강했다.



   한편 이 시대에 결속의 논리를 부여한 것은 공화주의적 가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였다. 이 시기에 사회는 심하게 양극화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사회적 결속이란 평등과 기회균등을 통한 결속이 아니라 자본을 통한 권위주의적 결속이다. 이 새로운 권력의 원리는 누가 이윤을 창출하는 능력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따른 것이다. 아무튼 2천년 어간 이후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라는 사회형성의 기조는 ‘자본에 의한 재권위주의적’ 성격이 강했다.  

    이러한 탈권위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상과 재권위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상, 이 두 개의 이상이 2천 년대 한국사회를 두 개의 범주로 양분시키는 주된 요소였다. 하여 이 시기 한국사회에서 진보는 탈권위주의 혹은 권위주의 해체적 지향성이 강했고, 보수는 자본친화적인 재권위주의적 성격이 강했다. 

    여기서 2천 년대 초 격화된 진보-보수의 갈등을 주목해 보자. 당시 진보의 가장 중요한 의제는 권위주의와 친미주의의 청산에 있었다. 진보 진영이 이러한 조합을 권위주의 청산의 요소라고 본 것은, 남한사회의 권위주의 세력이 줄곧 미국을 등에 업고 형성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진보 진영의 권력 해체적 청산주의에 위협을 느낀 보수도 대대적으로 결속하였는데, 이때 보수의 중심 기조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친미주의였다. 2002년 이후 시청 앞 광장에서 대규모로 벌어진 진보의 반미 촛불집회와 2004년 이후 벌어진 보수의 친미집회는 그러한 첨예화된 진보-보수 갈등의 단면을 보여준다.  

    민주주의적 사회통합에 실패하고 신자유주의적 양극화를 심화시킨 두 번에 걸친 민주정부는 2008년 대선에서 재집권에 실패한다. 이로서 포스트권위주의적 대안가치로서 부상했던 민주주의라는 이상은 좌절하고 말았다. 그리고 새로 집권한 정부의 상징적 인물은, 민주화운동 투사가 아니라, 기업인이었다. 그것도 전형적인 한국적 자본주의의 표상인 토건주의적 전설을 등에 업은 존재였다. 

    그렇게 이명박 정권이 탄생했다. 그 이면에는 민주정부들이 초래한 양극화를, 기업가 정부가 해소시켜줄 것이라는 시민사회적 기대가 깔려 있었다. 하여 새 정권은 토건주의적 기업국가답게 전국토를 공사판으로 만듦으로써 경제적 성공을 이룩하려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고, 그것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반미=종북’이라는 이념 프레임으로 환원시켜 물타기 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뜻밖에도 기업가 정부는, 경제지상주의적 합리성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이념지상주의적 보수대연합을 낳았다. 그렇게 대두한 것이 바로 박근혜 정권이라는 극우주의 정부였다.  


기독교 보수대연합


    지난 글에서 우리는 1990년대 이후에 등장한 대형교회들은 대규모의 교회당을 지을 수 있는 여건과 능력이 갖추어진 강남, 강동, 분당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하여 대형교회는 중상위계층이 대대적으로 결집한 사회적 장소가 되었다. 여기서 이 연재의 두 번째 글에서 대형교회가 보수주의적 장소라고 주장한 것을 주목하자. 즉 대형교회는 강남, 강동, 분당 지역의 중상위계층을 보수주의적으로 결속시킨 장소라는 것이다. 


    그런데 2천년 어간 이후 사회가 진보 대 보수라는 이분화된 가치로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고, 진보와 보수가 각기 대연합을 구축하게 되었을 때, 대형교회의 보수주의는 보수의 깃발 아래 결속한 가장 적극적인 사회적 단위가 되었다. 지난 1990년대에 보수주의 내의 분화된 측면을 지녔던, 그러나 아직은 캐릭터로서만 ‘그 다름’이 표현될 뿐인 몇몇 새로운 대형교회적 신앙은 2천 년대의 이분법적 이념의 시대에 다시 보수대연합의 기치 아래 포획되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 탄생 무렵 교회는 전무후무한 바이블벨트를 구축하여 장로대통령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그것은 형식적으로 보면 일종의 기독교국가의 이상이었다. 하지만 내막은 민주정부들이 추구했던 권위주의 세력의 해체라는 청산주의에 대한 대항전선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었다. 가령 기독교계 사립학교의 편협한 종교교육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잣대에 의해 청산의 대상으로 지목되는 것에 대해, 포교의 권리를 보장받음으로써 종국에는 기독교국가를 이룩하겠다는 주장으로 교회를 결속시켰다. 이러한 한국판 바이블벨트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이른바 ‘성시화 캠페인’이다. 1972년 김준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총재가 춘천시를 하느님의 거점도시로 봉헌하는 캠페인을 벌였던 것을 2005년에 그가 다시 리바이벌해서, 한국 전역에서, 나아가 한인교회가 만들어진 전 세계 각 지역에서 그곳을 하느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한 복음운동의 장소로 봉헌하자는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이것은 각 지역의 기독교 신자인 권력 엘리트들이 그 운동에 앞장서도록 압박을 가했다. 이것은 기독교국가 건설이라는 이상으로 이명박 장로를 지지하는 선거연합을 구축하는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집권하게 될 때는, 훨씬 미약했지만,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을 축으로 하는 극우주의 기독교 동맹이 구축되었다. 

    이렇게 2천 년대 이념대립의 정세 속에서 한국개신교는 보수대연합의 기치 아래 결속되었고 다른 목소리는 가려졌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전선에서만 그랬다.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인 차원에서 대형교회 내부에서는 새로운 보수주의적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다섯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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