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권력세습과 한국 사회의 적폐[각주:1]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명성교회의 담임목사 부자세습 사태를 주류 언론들이 앞다투어 보도함으로써 개신교계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는 교회세습의 문제는 이제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었다. 이로써 개신교회에 대한 시민사회의 따가운 시선은 더욱 냉담해졌다. 게다가 이것이 최근 부각된 특채비리 문제와 연결되어 이해됨으로써 ‘청산되어야 할 적폐세력’이라는 개신교회의 이미지는 더욱 확고해졌다.

   이 문제를 가장 열렬히 제기해온 개신교계 시민단체인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는 교회나 교회와 재산권이 연결된 연관단체를 아들이나 사위에게 세습하는 것을 ‘교회세습’이라는 용어로 규정하였다. 이런 관점은 명성교회 사태를 보는 개신교계 안팎의 시각이기도 하다.

   한데 명성교회 사태를 둘러싼 교회세습에 대한 논의들에는 서로 섞이기도 하지만 결코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두 가지 시선이 뒤얽혀 있는 것 같다. 낡은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으로 보는 시각과 최근 신자유주의의 한국적 현상으로 나타난 특권의 혈통주의적 대물림으로 보는 시각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낡은 권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3대 영역인 국가, 기업 그리고 개신교회에는 박정희, 정주영, 조용기로 대표되는 카리스마적 영웅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장을 위한 총동원 체계를 주도한 이들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카리스마적 리더들은 자신들의 독점적 자원을 자녀에게 세습하려 하였는데, 민주화의 물결은 이러한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권력세습에 대한 강력한 저항을 수반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작동하는 영역에선 끊임없이 낡은 권위주의적 세습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한편 한국의 신자유주의 시대는 민주화와 거의 동시에 전개되었는데, 이 시대는 카리스마적 리더의 도덕적 위상의 격하 현상을 동반했다. 카리스마가 사라진 무수한 삶의 현장에서는 시민사회적 제도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이 장(fields)에서 사람들은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연줄맺기다. 한데 한국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연줄은 직계로 축소된 혈통주의다. 즉 신자유주의 시대에 새로운 혈통주의가 횡행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자원의 혈통주의적 대물림을 위한 경쟁에서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특권적 행위자들이 제도를 활용하는 능력을 더 많이 발휘했다. 그래서 특권의 혈통주의적 대물림 현상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새삼 문제로 부각된 것이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가 조사한 교회세습의 사례는 2017년 11월10일 현재 143건이다. 이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전국 교회 숫자로 계산하면 0.2%에 불과하다. 물론 이 조사들에 포착되지 않는 세습교회나 교회 총수는 더 많겠지만 그 비율은 그리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교회세습은 담임목사의 권력이 압도적인 교회들에서나 가능했다. 요컨대 교회세습이라는 개념은 위의 두 가지 시선 중 첫 번째와 깊이 관련된 현상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담임목사의 위상이 점점 격하되는 추세다. 해서 목사의 압도적인 권력을 전제로 하는 교회세습 현상은 향후 점점 줄어들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들이 너무나 퇴행적이고 추잡해 보이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화의 문제를 포착하는 데는 충분치 않다. 그런 점에서 나는 ‘교회세습’이라는 용어보다 ‘교회의 권력세습’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교회세습은 세습의 행위자를 담임목사에 국한시킨다. 위에서 보았듯이 그것은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압도적인 권력을 장악한 일부 목사들에 한정된 문제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들은, 목사든 특권적 신자든, 소수의 권력집단이 담임목사의 청빙을 결정한다. 이때 교회 대중은 거의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런 경우 신임 담임목사는 이들 특권집단에 의존하는 목회사역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즉 교회는 특권집단의 권력을 재생산하는 또 하나의 사회적 장이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 압도적인 권력을 쥐고 있던 명성교회의 담임목사는 권력을 아들에게 대물림하기 전, 일반재정과 구별되는 800억원의 비자금을 운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목사가 없는 교회에서도 소수의 특권적 엘리트들은 사회 각 영역에서 작동되는 무수한, 불공정한 사적 네트워크를 교회를 매개로 하여 만들어내고 있다. 이때 목사는 그러한 부조리한 연줄주의의 주요 행위자들의 ‘영적 세탁’을 담당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요컨대 교회의 권력세습 문제는 오늘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적폐의 핵심에 맞닿아 있다.


ⓒ 웹진 <제3시대>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1242115005&code=990100 이 글은 경향신문 칼럼 '사유와 성찰' 란에 동일한 제목으로 11. 24에 게재된 글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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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몸짓 '변방의 교회들'[각주:1]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2015년 인구센서스의 종교인구 조사결과는 많은 이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신교 인구가 감소한 2005년 인구센서스의 결과가 이번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무려 123만명 정도나 증가했고, 최대 종교였던 불교를 처음 앞질렀다. 

   문제는 사회적 신뢰도에선 개신교가 다른 두 종교보다 크게 밑돌았다는 데 있다. 불교와 가톨릭이 개신교보다 각각 3배와 4배나 더 신뢰받는 종교였다. 그리고 이 수치는 2005년과 2015년에 별반 차이가 없다. 한데 시민사회가 불신하는 종교임에도 2015년에는 신자수가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이 이상한 현상의 비밀이 개신교의 적극적인 ‘신자마케팅’에 있다고 보았다. 2000년대 이후 개신교는 일종의 대상에 대한 ‘맞춤형 프로그램들’을 적극 개발했다. 연령별, 직업별 프로그램들뿐 아니라 비혼자, 1인 가족, 입시재수생 등 집단특성을 고려한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2005년 무렵처럼 과거청산의 기조가 강한 시대에는 그다지 효력이 높지 않았던 반면, 사람들이 저마다 존재의 위기에 휩싸여 있던 2015년 무렵에는 그것들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활용한 주체는 단연 강남, 강동, 분당 등 중·상위계층이 많은 지역에서 급부상한 신흥 대형교회들이다. 이들 교회는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쏟아부으면서 빠른 성장을 이룩했다. 반면 새로운 신자마케팅 방법들을 활용할 만한 자원이 부족했던 대부분의 중·소형 교회들은 지속적인 역성장의 위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하여 2000년대 이후 개신교회의 양극화는 한결 심화되고 있다.   

   하지만 중·소형 교회뿐 아니라 대형교회에 대해서도 시민사회는 사라져야 할 적폐에 다름 아니라는 따가운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사회적 신뢰도 조사들에 따르면 이런 비판적 인식은 개신교의 자폐적 자기중심주의에 대한 시민사회의 문제의식과 관련이 있다. 세금 내지 않는 목사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탈법과 편법을 마구 써대는 교회들, 편견과 배제를 부추기는 개신교도들의 언행들 등등이 그렇다. 한마디로 자기중심주의에 빠져서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일삼는 무례한 종교라는 시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몇몇 교회들의 교세가 빠르게 팽창했다는 것은 단지 ‘그들만의 성공’일 뿐이다.

    한편 가장 위기를 적나라하게 체감하는 교회들은, 말할 것도 없이, ‘소형교회’들이다. 그들 중 많은 교회들은 예배당을 유지하기도 벅차다. 어느 곳이든 예배당다운 공간으로 치장하기도 쉽지 않다. 어떤 교회는 다른 이들과 공간을 ‘셰어’해야 하고, 또 다른 교회는 이중 기능의 공간(가령 교회이면서 어린이 공부방)으로 활용해야 한다. 목사가 스스로를 성스럽게 치장하기엔 교인들과 너무 밀착되어 있다. 심지어 교회당 문을 열면 바로 시장통이고 위층엔 술집이 있고 옆집엔 식당이 있다. 종교적 성스러움을 과시할 만큼의 이웃과의 거리가 해체되어 버렸다.   

   이런 교회당과 목사의 현실에 부합하는 교회 전통이나 신학은 전무하다. ‘거리두기’를 기반으로 하면서 발전했던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해석들은 소형교회들의 현실과는 너무나 멀리 있다. 하여 오늘 소형교회들은 ‘변방으로 떠밀린 유민들’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변방의 교회들’ 중 일부가 자신들의 현실을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목사와 신자의 거리두기가 해체된 교회는 수평적 관계를 적극적으로 해석한 예배 형식과 내용을 발전시켰다. 또 예배당을 종교적으로 변별된 공간이 아니라 삶과 뒤섞인 공간으로 채워갔다. 나아가 이웃들과 간격 없이 직면한 교회는 이웃과 ‘밥’을 나누고 ‘가치’를 나누는 생활의 동료로서 살아가려 한다.

   그런 교회들이 자신의 명칭을 ‘작은 교회’라고 불렀다. 이들 ‘작은 교회’는 자폐적 성공을 추구하고 큰 교회가 되려 하기보다는 작음 자체를 향유하고 이웃과 공공적 가치와 삶을 나누는 운동을 벌인다. 그런 신앙운동을 각각의 지역에서 벌이는 교회들이 매년 모여 박람회를 열었다. 5회째 되는 올해엔 그런 경험들을 전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로 나누고자 대회 명칭을 ‘작은 교회 한마당’이라고 바꾸었다. 여기엔 신학대학이나 교단 기구들로부터 어떠한 서포팅을 받지 못한 ‘작은 교회’들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재야단체들도 참여한다. 그리고 올해엔 작은 교회를 주제로 하는 신학자들의 책이 발간되었다.

   성장이 아닌, 이웃과 가치 있는 삶을 나누고자 하는 작은 교회들의 소박한 움직임이 이렇게 변방의 교회들로부터 꿈틀거리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개혁의 진정한 몸짓이다.


ⓒ 웹진 <제3시대>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710272102035 이 글은 경향신문 [사유와 성찰] 17. 10. 27일자로 실린 글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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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백교회 탐방기[각주:1]



박제우*

 


    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이신 박성준 교수(성공회대)와 고 박영숙 전 민주당 최고위원의 남편이신 고 안병무 교수(한신대) 등이 주축이 되어 민중신학을 목회철학의 기초로 삼고 1987년 10월에 설립한 나눔과 섬김의 예배공동체 한백교회(한라산의 한과 백두산의 백)에서 예배를 드렸다.


   지난 5월 오늘교회에 탐방을 갔을 때 멤버 중의 한 분인 최규창 대표가 강력하게 추천했던 교회인데, 마침 지난 주일에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이신 김진호 목사님께서 새길교회에서 설교하신 덕에 미리 탐방하고 싶다고 말씀 드릴 수 있었고, 오늘 11시에 시작하는 주일예배를 함께 하게 되었다.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1,2번 출구 사이에 있는 골목길로 한 50 m정도 올라가면 오른쪽엔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실이 있는 빌딩이 있고, 길 왼쪽 편엔 1층에 안병무홀이라고 쓰여 있는 건물이 마주보고 있다는 걸 지난 8월 교회개혁실천운동 회원과의 티타임 때 알았는데, 아무래도 주차가 용이하진 않을 것 같아서 경의선 전철로 공덕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왔다.


   전철 시간 계산을 잘 못해서 일찍 도착하질 못하고 정확히 11시에 예배처소인 안병무홀에 도착하니 예배 때 함께 부를 노래를 미리 불러 보고 있는 중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친절하게도 남자 성도 한 분이 바로 옆 자리로 오셔서 예배 순서 중에 어떻게 노래집과 주보의 도움을 받으면 되는 지 간단하고 빠르게 안내해 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상철 목사님이셨다는...)


    한백교회의 trade mark에 해당하는 한라산의 검은 돌(좌측)과 백두산의 검은돌(오른쪽) 그리고 한반도 어느 지점에서 주워 온 아주 흔한 흰색 조약돌 두개가 그 사이에 담겨 있는 접시가 예배 인도자 뒷쪽 벽에 놓은 탁자에 올려져 있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언젠가 부터는 노란 리본도 얹혀져 있는 것 같다.


    오늘의 예배 인도를 맡은 자매님과 하늘뜻나누기(설교)를 해 주실 정나진 목사님, 그리고, 한백교회의 담임을 맡고 계신 이상철 목사님께서 자리 배치의 앞부분에 앉으셨다. 찬양인도를 해 주신 장로님과, 삶의 고백을 해 주신 분들은 목사님 맞은 편에 앉으셨다. 한백교회의 예배는 주보의 순서대로 진행이 되었는데, 평균 출석 예배자가 50명 안팎인 정도의 규모이다 보니 새길교회 처럼 매주 주보, 광고 사항, 예배 실황 등이 정기적으로 잘 update되지는 않았다. 특히 요즈음엔 창립 30주년 기념 활동들을 준비하느라 많이 분주한 것 같다. 오늘의 주보는 아래의 사진과 같고, 홈페이지에 올려진 가장 최근 주보는 9월3일자 주보였다.




    예배 중의 노래는 대부분 "한백의 노래"라는 자체 제작한 노래집에 있는 것을 불렀는데, 한백의 노래는 그동안 7차례 개정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력은 교회 홈페이지 한백과 찬송에 게재되어 있다. 이제 청년들이 많아지고, 새롭게 증보하고 싶은 노래도 많이 있어서 조만간 몇 곡을 추가하는 증보 작업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예배는 일전에 섬돌향린교회 예배 시에 보았던 울림주발(Singing Bowl)이 맑은 울림 소리를 내면서 시작되었다. 첫 순서인 묵상 후에 기도라는 노래를 기리는 노래로 함께 불렀다. 나는 (부끄럽지만) 처음 접한 노래라 함께 부르질 못하고 멜로디를 들어가며 가사를 읽었는데,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인생에 대한 사랑과 신에게 간구함과 이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함이 모두 함축되어 있는 노래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검색을 해 보니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1집에 실린 노래이다. 가사는 김소월 시인의 싯구이고, 곡은 노찾사에서 지은 것 같다. 이런 좋은 글과 멜로디의 노래가 찬송가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민중가요를 부르던 노래패가 불렀다고 찬양이 아니고, 예배 때 부르지 못한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깔뱅이 시편찬송만 불렀듯이 지금도 시편찬송만 예배 중에 부르는 교회가 있듯이, 우리의 정서에 맞게 만들어진 이런 노래를 예배 찬송으로 부르는 교회도 당연히 있을 수 있고, 각각의 교회는 각자의 신앙고백과 이웃 사랑의 마음을 담아서 노래하고 예배하면 되는 것이리라.




    일반 교회에서는 교독문을 주로 읽는 순서에 한백교회에서는 마침 오늘이 추석 연휴에 있는 주일인 까닭에 (천상병 시인이 아마 1070년 가을에 지은 시인 것 같은데...) "소릉조 - 70년 추일에"라는 시를 교독하였다. 누가 이런 참 적절한 시를 찾아 내어서 선정하는 지 모르겠는데 역시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한백교회 다운 글 선택이라는 감탄이 나온다.


<소릉조(小陵調)> - 70년 추일에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 시집 <새>(1971) -  


   이어서 삶의 고백 시간에는 최근예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시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시고, 많은 생각을 하시고 계신 형제님께서 정말 진실한 문체와 내용으로 자신의 삶을 함께 나누어 주셨다.


   일반 교회에서 설교라고 하는 "하늘뜻나누기"는 이번 주 중에 3년 간의 박사 논문 작성과 학위 취득을 목표로 다시 독일로 돌아가는 정나진 목사님이 고별 설교로 본인이 박사 학위 논문으로 준비하는 Autoethnogaphy(자아문화기술지)와 관련된 내용을 ['사건'으로서의 환대와 민중메시아]라는 제목으로 하였다. 최근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해서 미리 모든 예배자에게 주보와 함께 배포된 설교문을 중심으로 최근 6개월간 탈북자 정착도우미로 섬겼던 사건과 창세기 31장 1~2절의 말씀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이 야곱에게 들렸다. "야곱은 우리 아버지의 재산을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재산으로 저처럼 큰 부자가 되었다."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살펴보니, 자기를 대하는 라반의 태도가 이전과 같지 않았다.)을 기반으로 한 민중에 대한 기득권자들의 환대 태도, 그 과정에서 직접 체험하는 당사자들과 민중의 상호 변화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셨다. 하늘뜻나누기 시간 후반부엔 정목사님의 발표에 대해 궁금한 점과 추가적인 토론을 하고 싶은 것들을 예배 참여자들이 함께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건 정말 여느 교회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새로운 시도이다. 이런 예배 순서를 언제부터 해 왔는 지는 모르겠지만 30년 된 교회에서 이런 순서를 갖고 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설교 후에는 설교 중에 언급되었던 김민기 작곡 "주여 이제는 여기에"를 함께 불렀다. 유일하게 나도 익히 알고 불러 보았던 노래이다.


   이어서 물질을 드림(봉헌) 시간이 있었고, 예배 인도자인 자매가 드리는 기도를 했는데, 이 자매는 한백교회에서 오늘 처음 예배 섬김이로 봉사를 하게 된 것 같다. 자매님의 기도를 통해서 자매님이 새롭게 안착한 한백교회의 교회 공동체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의 일면을 알 수 있었다. 의외로 많은 청년들이 함께 예배를 하는 것 같았는데, 자매님도 이들과 함께 한백교회를 통해서 믿음과 세상 속에서의 삶 모두 하나님의 은혜 속에 나눔과 섬김의 삶을 더 활짝 펴며 살기를 기도한다.

   예배는 12시 45분이 넘어서야 한백신앙고백으로 공동체의 다짐을 하고, 마침 묵상을 한 후 마치게 되었다. 마침 묵상 후에 친교 마당 시간에 이상철 목사님께서 몇 가지 안내 말씀을 해 주시면서 나에게도 소개할 시간을 주셔서 짧게 내 소개와 교회 탐방을 하게 된 과정을 말씀 드렸고, 가능하다면 이후의 모임에도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이후엔 기존 보수교회에서 40년 넘게 섬기시다가 40대 후반(그러니까 지금의 내 나이 대에...) 한백교회로 오신 후 지금은 한백교회의 장로님으로 섬기시는 오늘 예배 전에 찬양 인도를 해 주신 장로님의 도움을 받아 점심 식사(애찬)를 함께 하였다. 4개 조로 나눠진 성도들의 모임이 매주 돌아가면서 (즉, 한 달에 한 번 씩) 애찬 준비와 배식과 설거지를 섬긴다고 한다. 애찬 전에 아래 동영상과 같이 아주 재밌는 애찬 노래를 배설된 음식을 보면서 함께 불렀다. 그리고, 이번 주에 생일을 맞으신 여성도님을 축하하는 시간도 있었다.



   점심 식사 중엔 김진호 목사님께서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주셔서 한백교회의 창립 때부터 자신이 담임목사로 섬기신 때부터 양미강 목사님과 지금의 이상철 목사님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한백교회가 이사한 얘기, 계속 향린교회를 섬기신 박영숙 최고위원께서 정말 요리를 잘 하셨고 손이 크셔서 한백교회 식구들 전체에게 맛난 요리를 자주 해 주셨다는 얘기, 박성준 교수님과 안병무 교수님 모두 목사는 아니셨다는 얘기, 최근에 이상철 목사님께서 젊은이들과 소통을 잘 하시고 잘 챙겨 주셔서 한동대 출신 청년들과, 한신대 신학생들, 그리고 이런 저런 교육과 강연을 통해 한백교회를 접한 많은 청년들이 합류하면서 교회가 많이 젊어 지고 있다는 얘기 등을 해 주셨다.


   애찬을 얼추 마친 후엔 (좀 재미있게 표현해서 1부 예배, 2부 점심 식사에 이어) 3부 순서로 수다를 떨기 위해(주보 광고에는 장년부의 대화모임이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안병무 홀에서 약 200 m 정도 길 위로 올라가면 있는 "Caffe Cammello"로 시간 여유가 있는 교인들과 함께 갔다. 이 카페의 주인이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한백교회 분들을 좋게 보아 주셔서 매주 이렇게 장소를 편하게 쓸 수 있게 배려해 주신다고 한다.


   이 카페의 안쪽 방에서는 10월28일(토) 저녁 6시에 공연할 창립 30주년 기념 연극 준비팀이 대본 강독을 하고 있고, 내가 앉은 테이블에서는 20대 초반부터 50대 중반까지의 청장년들 10여 명이 함께 앉아, 동성애, 외국인 노동자, 정나진 목사님의 설교 내용, 앞으로 펼쳐질 독일 생활, 한 자매님의 액티브한 유럽 1달 여행기, 한동대의 보수성과 개혁성 등 등 이야기 주제가 따로 정해진 것 없이 흘러가는 대로 참 다양한 얘기를 나누었다. 이상철 목사님으로부터는 주날개늘교회의 남오성 목사님을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에 서로 알고 지냈다는 반가운 얘기도 들었다. 시간은 어느새 5시가 넘어가고...


  헤어지기 전에 이상철 목사님과 찰칵!


오늘 애찬 시간부터 나를 살뜰하게 챙겨 주신 김진호 목사님과도 찰칵!



   한백교회는 10월에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몇 가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다른 모든 교회 활동과도 마찬가지로 교회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담임목사나 누구의 강력한 인도나 요청이 없는데도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여러가지 활동들을 준비하고 있고, 그 중에 가장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것은 역시 10월마지막 토요일(10/28) 저녁 6시에 안병무홀에서 공연되는 연극인 것 같다. 50명 안팎의 출석 교인들의 절반 정도가 참여한다는데, 정말 기대가 된다.


   오늘 이목사님께서 10월22일(주일)에 있을 창립30주년 기념 감사예배나 28일(토요일)에 있을 연극 공연에 또 와 보라고 초청해 주셨는데, 정말 여건이 되는대로 한백교회를 궁금해하는 지체들과 함께 다시 와 보고 싶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이날 함께 하고 싶은 분은 02-364-6355로 문의전화 해 보시면 된다. (연결이 안되면 저에게 연락 주세요. 010-7180-9492) 오후 5시가 넘에 카페에서 헤어진 나는 원래 계획대로 작년에 못다녀본 안산의 남쪽 지역(경기대학교 쪽에서 봉수대로 올라가는 길)을 산책할 목적으로 램블러 앱을 작동시킨 후 경기대 쪽에서 올라갔다가 추계예술대 쪽으로 내려오는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


    마지막으로... 인터넷에 한백교회를 검색해 보면, 기존 보수교단이나 번영신학에 물든 교회를 섬기는 분들이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한백교회의 정체성과 예배에 대해 깎아 내리는 글을 쓴 걸 많이 발견하게 된다. 참 마음이 아프다. 자신의 생각이나 신앙관과는 다르다 정로만 써도 충분할 것 같은데, 많은 악담과 저주의 말을 다분히 왜곡된 정보와 판단을 기반으로 해서 써 놓은 걸 보면 내가 그들과 같은 크리스천이라는 것이 참 부끄럽다. 부디, 한백교회의 정체성과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도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사랑을 위해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사는 한백교회 공동체를 존중하고, 폭 넓은 신앙의 모습에 대해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갖기를 바랍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요수엘(박제우)의 블로그에 실린 글 '한백교회 탐방기'를 편집하여 옮겼습니다. http://yosuel.tistory.com/7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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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7.10.12 09:3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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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서 한백교회를 검색하면 온갖 음해성 기사들로 넘쳐난다. 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 퀘이커교도인 박성준이 세운 교회, 민중신학의 괴수 안병무가 실세인 교회, 온갖 운동판의 배후들이 득실거리는 교회, 한라산의 돌과 백두산의 돌을 섬기는 교회, 심지어 지난번 박근혜 탄핵 주문을 낭독한 이정미 재판관이 다니는 교회, 작년 박근혜 탄핵 정국당시 검찰 내부 게시판에 박근혜 구속을 주장했던 이00 검사가 다니는 교회, 비전향 장기수 빨갱이들을 지원하는 교회 등...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고, 웃기기도하고 슬프기도 한 한백을 둘러싼 유령과도 같은 루머를 들을 때면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한백교회 담임목사로 3년차를 보내고 있는데 나는 아직까지 위에서 언급한 한백을 둘러싼 유령들의 실체를 접한 적이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백을 향한 정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음해성 보도들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제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교인들은 나보다 익숙하고 대범하고 내공이 세서 그런지 “목사님, 차차 적응되실 거예요”라고 하면서 내 어깨를 다독인다. 한백교회에는 거의 매주 교인이 아닌 낯선 분들이 예배에 참여해 섞여 있다. 일부러, 우연히, 지나가다, 계획하여, 소문(?)을 들어, 교수님들이 한번 탐방하라고 하여, 오늘 갈 교회가 없어서...이유도 각양각색이다. 기윤실에 계시는 박제우 선생님도 그 중 한분이셨다. 종종 한백교회가 어떤교회인지 알려달라는 주문을 받는데 그런 분들에게 이 기사를 토스해주면 되겠다 싶다. 귀한 기고 감사합니다.
  2. 최재훈
    2017.10.25 18:5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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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님 말씀처럼 저도 소문(?)을 듣고 8월의 어느 비오는날 찾아간 낯선(?) 사람입니다..^^ 감사하게 잘 예배드렸습니다. 다시 한국들어갈때 또 찾아가겠습니다



개신교 총회정치의 민낯[각주:1]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9월 하반기엔 개신교 각 교단의 정기총회가 열린다. 최상층부의 교회정치가 불꽃을 일으키는 계절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누가 총회 대의원으로 선정될지를 둘러싼 경합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그리고 총회장 등 교단을 대표하는 임원과 각 기관장 등을 차지하려는 경쟁은 거의 전쟁에 가깝다. 총회 기간이 임박해지면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금품이 살포되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퍼진다. 또 계파 간의 정쟁과 합종연횡이 펼쳐진다. 한편 교단 산하 지역별 교회회의체(노회·지방·교구 등)나 사안별 기구들(위원회)에서 안건을 총회에 상정시키고, 그것에 대한 심의와 결의를 둘러싼 안건정치가 치열하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예·결산 정치다. 물론 여기서도 공방의 강도는 상상 그 이상이다. 

   이번 각 교단의 총회들에선 교단정치가 어떤 모습으로 시민사회에 비칠까? 거의 20년 동안 사회적 신뢰도가 한국의 3대 종교 가운데 꼴찌를 면치 못해왔고 특히 온라인과 오프라인 영역에서 여론주도층의 불신이 점점 커져 급기야는 파국적 상황이 머지않았다는 재앙담론이 유포되고 있는 상황에서 심각한 불신의 벽을 넘을 작은 가능성이라도 제시할 수 있을까?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라고 하면서, ‘개혁’이라는 말을 거의 입에 달고 있다시피 한 올해 개신교 교단들은 과연 시민사회의 불신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만한 쓸모 있는 개혁의 깃발을 들어 올릴 수 있을까?

   예상한 대로 이번 총회들에서 주목할 만한 논점은 동성애 문제다. 한국에서 가장 큰 교파의 하나인 예장통합은 가장 강력한 반동성애 조치들을 결의했다. 동성애자나 동성애를 지지하는 이는 목사, 전도사, 장로, 집사, 그리고 대학 등 산하기관의 직원이 될 수 없으며, 신학대학 입학까지 금지하기로 했다.

   예장합신도 그 못지않은 강경안을 결의했는데, 동성애자는 물론이고 동성애자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포함한 일체의 옹호행위를 한 이들을 면직과 출교시킨다는 것이다. 한편 가장 진보적이라는 기장 교단에서도 또다시 ‘동성애연구위원회’ 설립 안이 부결되었다. 연구해 보자는 안건조차 거절된 것이다. 이 주제를 둘러싼 공적 토론조차 일절 안된다는 얘기다. 그나마 이런 안건은 다른 교단들에선 상정조차 꿈도 못 꾸는 형편이다.  

   최근 대법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준 정국에서 드러난 것처럼 동성애자 문제는 보수주의 정치세력들에는 더 이상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 양상이다. 그것은 산산이 부서져 있는 보수대연합을 극우주의 기조로 재구축하는 핵심 어젠다로 부상했다. 온건보수세력의 보수대연합 어젠다가 거의 무력한 상황에서, 극우주의적 어젠다가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들 하나하나에게 물으면 동성애에 대해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인권적 가치에 따라 관용은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정치적 행동을 하게 될 때는 극우주의적 혐오주의에 견인되곤 하는 것이다.

    그것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막강한 자원을 소유한 개신교 목사들의 주류세력들이 동성애 혐오동맹으로 광범위하게 결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소극적 관용조차 말할 수 없고 그것을 둘러싼 토론조차 불허되는, 거의 맹신적 합의가 그들을 일사불란하게 엮어내고 있고, 이것이 보수주의적 정치권의 행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개신교계 일각에서 회자되는 음모론적 얘기가 있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국정원 관련 인사들이 교단정치에 관여하여 요직을 차지했는데, 그들이 바로 최근 동성애 이단론의 진원지라는 것이다. 최근 속속 밝혀지고 있는 국정원의 행보들을 보면 이런 음모론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든다. 

    아무튼 국정원이 개입했든 아니든 개신교 주류권 목사들의 동성애혐오론, 토론조차 할 필요가 없다는 저 맹신적 확신에 대해 시민사회는 어떻게 볼 것인가? 보수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던 2014년에도, 동성애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보는 이들과 아니라고 보는 이들의 비율은 47.1% 대 23.1%였다. 심지어는 개신교 신자의 경우도 39.9% 대 29.6%로 크게 차이가 났다. 그런데 주류 개신교 목사들은 압도적으로 동성애혐오주의 입장을 취했다. 그리고 개신교 신자의 생각을 담지 못하는 소수 의견이 개신교를 과잉대표하면서 극우적 보수대연합의 논리로 작동하고 있다.

   미움과 공포를 퍼뜨리는 목사들, 다수의 반대 생각조차 경청하지 않으려 하는 목사들, 공존과 상호존중의 미덕을 포기하고 적대를 퍼뜨리는 그들이 과잉대표하는 교단의 총회, 그것을 시민사회, 아니 합리적 개신교 신자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총회정치로 대변되는 개신교의 재앙은 이미 도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웹진 <제3시대>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9222049015&code=990100 이 글은 경향신문 [사유와 성찰] 17. 9. 22일자로 실린 글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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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영호
    2017.09.28 03: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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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에 대한 반대 논쟁이 지금, 이 상황(진보적-비수구적- 가치관이 활개하며, 그 대표격인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70%를 오가는 사점)에서 퍼져 나가는 이유를 정치적 극우주의자들의 설자리를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상호 결탁 하에 마련하기 때문이다"라고 읽었습니다. 그들은 사실 보수주의는 언감생심 기독교 근본주의자 축에도 낄 수 없는 21세기 한국 기독교 이단입니다. 하나님과 성경을 믿으며 예수를 구주로 고백한다고 하지만 그 끝이 다른 이단. 그 끝에는 자신의 천박한 정치적 입장이 있습니다. 밑도 끝도 없는.



'제2의 종교개혁'에 대하여[각주:1]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기독교인 대상의 강연을 하면 거의 예외 없이 종교개혁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 되는 해이니 종교개혁이 적잖은 주목의 대상이 될 것임은 예상된 바다. 그래도 목사나 장로, 그밖에 열성신자들 정도나 관심을 갖지 않겠나 싶었다. 

   하지만 막상 기념일을 두 달 정도 남겨둔 상황에서 그 현상은 생각보다 세밀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독교학술단체들이 기획한 각종 포럼과 강연, 출판 등이 실행되고 있고, 교단별 혹은 연합행사로 준비된 기념행사, 교육프로그램, 연구모임, 기도회, 각종 경연대회 및 문화행사 등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기념연주회, 전시회, 기타 공연 등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순금의 기념주화, 크루즈 여행을 포함한 종교개혁투어 상품을 비롯해서 에코백, 머그잔, 텀블러, 배지 등 다양한 기념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교회별로도 전 교인 대상 프로그램과 소모임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데가 많다. 그리고 목사들은 종교개혁을 다루는 설교를 수없이 하고 있다.

   그런데 종교개혁의 영향력은 개신교 내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가톨릭에서도 종교개혁을 되새기는 각종 기획들을 시작했고, 비개신교권 출판계와 여행업계도 상품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또한 정치인들도 도처에서 비교적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그 평가는 유보하고, 현상만을 보면 개신교의 저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양상이다. 권력이 분산되어 있고 기능에 있어서도 다양한 주체들이 영역들을 각기 점유하고 있으며 신자들의 주체성 또한 상당히 높은 종교여서 도처에서 독자적이고 자발적으로 추진되는 다중적 기념 프로그램들은 굉장히 다양하고 정교하다.  

   그런 효과인지, 웬만한 개신교 신자들은 종교개혁에 대해, 적절하든 그렇지 않든, 적잖은 정보를 갖고 있고 또한 관심도 많은 편이다. 아마도 내게도 이에 대한 질문이 끊이질 않는 것은 그런 현상의 일부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기념행사를 주도하는 이들은 압도적으로 보수적 개신교 세력인데, 준비 양상이 보수주의 일색은 아닌 듯이 보인다는 점이다. 진보는 말할 것도 없고 보수 성향이 강한 목사, 신학자, 평신도들도 종교개혁을 호교론적 기회로 삼기보다는 ‘오늘의 실패’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자는 의견이 적잖다. ‘제2의 종교개혁’ 운운하는 주장들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쇄신을 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현재 한국 개신교가 그 지도자들 다수의 관점인 호교론적 태도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는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여전히 사회 전반에 비해 개혁의 의지나 수위가 낮은 편이지만 말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제2의 종교개혁에 관해 의견 하나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이 내게 질문한 사람들의 요지이기도 하고, 사회 일반보다 결코 적지 않은 적폐를 가진 종교임에도 개혁의 의지나 수위에서 부족한 현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절실하다는 점에서, 개혁적 담론들이 표방하고 있는 주장들 위에 의견 하나를 더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의 문제의식은 500년 전의 종교개혁이 서양의 근대를 추동하는 계기였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후 서양 사회는 세계를 지배하는 세력이 되었으니, 서양의 근대는 세계의 근대이기도 하다. 여기서 서양의 근대가 무엇인지를 내가 충분히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국경의 탄생’이라는 특징으로 근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가령 전근대의 국가에는 국가와 국가 사이에 변경지대가 있었지만 근대국가에는 국경이 있다. 변경지대가 면(面)이라면 국경은 선(線)이다. 즉 면으로서의 변경이 이편과 저편을 가르는 경계가 명료하지 않은, 일종의 대화적 중간지대를 의미한다면, 선으로서의 국경은 그 불명료함을 최소화하는 단절의 경계를 뜻한다. 그런 맥락에서 인권이든 복지든 민주주의의 중요한 제도들이 국경 ‘안’에서 형성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종교도 국가종교로 발전했고, 종교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도 국가와 종교의 맥락에서 제기되었다. 이 변화의 출발점에 종교개혁이 있었다.

    그런데 지구화 현상은 그런 국경의 지위가 크게 약화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제 국경을 넘나드는 수많은 요소들이 사회 속에 가득하다. 그중엔 국경을 넘는 이주민, 양분화성 성(sex)의 국경을 넘는 다양한 성(동성애, 트랜스젠더 등) 등도 있다. 인권의 수많은 요소들은 이렇게 국경을 넘어서는 것과 관련된다. 그렇다면 두 번째 종교개혁은 국경의 해체 시대를 준비하는 종교적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최근 성소수자나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적대감을 강조하는 신앙은 가장 대표적인 종교적 개혁 대상일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708252025015 이 글은 경향신문 2017. 8. 25일자 오피니언란에 실린 칼럼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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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각주:1]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교육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한참 종북몰이를 하는 야당 국회의원이 나오는 TV를 시청하던 한 초로의 택시기사가 내게 말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저렇게 말하죠?” 전임 대통령과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말한 그는 평생 보수를 지지하며 살아왔는데, 이젠 저런 말에 짜증난다고 토로했다. 그는 영화 카피 같은 말 한마디를 던지며 식당 밖으로 나갔다. “저 양반(야당 국회의원)의 시계는 거꾸로 가나봐!”  

   순간 그 식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사역을 하는 한 여성 목사가 떠올랐다. 내 생각엔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목사 선배들의 계보를 이을 만한 대단한 인물이어서, 후배임에도 늘 경이롭게 올려다보는 이다. 그는 얼마 전 한 보수적 교단 산하 ‘이단피해대책 조사연구위원회’로부터 공문을 받았다. 교단 총회에 제출된 안건에 따라 이단성 여부를 조사 중이니 자기들이 요구하는 자료를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신학적 관점을 달리하는 타 교단 소속 목사에게 이런 식의 공문을 보낸 단체의 무례함의 근저에는 자신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이들은 악마의 마수에 걸려든 자라는 확신이 깔려 있다.

   예상대로 그 단체와 교단에 조롱과 비난이 폭주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 법이다. 자신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이들은 대개 무수한 대중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위용’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우선 쪽수가 밀린다고 생각했는지 동료들이 몰려왔다. 이른바 ‘한국교회 8개 교단 이단대책위원회’라는 단체가 입장 발표를 했다. 이들 8개 교단은 한국 개신교 교단들 가운데 신자 수와 교회당 수가 가장 많은 곳이다. 그 발표의 내용은 문제의 목사에 대한 이단성 조사에 공조하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퀴어성서 주석’의 번역을 주도했고 성소수자 인권 증진 운동에 앞장섰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성소수자’ 문제가 그들의 무례한 행동의 요체였다. 그들에 의하면 성서가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성서를 ‘일점일획도 어길 수 없는’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불가피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가령 남자가 남자와 동침하면 사형에 처하라는 <레위기> 20장13절을 들이대며, 성소수자 인권이라는 건 ‘극단적인’ 반성서적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이 과연 게이 간의 사랑을 문제시한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나는 이 본문을 제사장 중심의 정치체가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제사장적 순결주의를 정치적 어젠다로 활용한 흔적으로 해석하였다. 물론 그들은 내 해석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니, 그들 식으로 이 본문을 보자. 이제 그들은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의 사랑에 대해서 좀 더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 성서는 트랜스젠더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않고 있고, 레즈비언에 대해선 억지 해석이 필요한 텍스트들이 몇 개 있을 뿐이다. 더욱 문제인 건, <레위기> 20장의 16개나 되는 극형 목록에 ‘남의 아내와 성관계를 한 자는 사형에 처하라’는 구절도 등장한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목사들의 성추문 사건은 무수히 많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단들은 성추문 주역인 목사들에 대해 경미한 징계를 내리거나 아예 모른 체한다. 더구나 이것은 십계명에도 등장할 만큼, 남자 간의 성관계보다 엄중한 죄에 속한다. 그렇다면 그들 식의 해석을 따른다면 목사의 성추문을 묵과한 목사들 모두는 이단 심판의 대상이다.

    이런 게 바로 이단몰이의 특징이다. 성서를 마음대로 해석하면서 극한적인 증오를 퍼붓는 것이다. 마치 종북몰이가 그렇듯이.  

   이단몰이까지는 아니지만, 최근 위의 8개 교단들을 포함한 개신교의 무수한 교단들에선 여성혐오주의도 커다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령,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교단에 속하는 한 교파는 총회 대의원 가운데 여성이 1.6%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비판하는 안건이 제출되었는데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대의원들이 그 제안에 대해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여성 대의원이 가장 많다는 교단도 10~15%에 그치는 형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교단들에서 여성은 목사도 장로도 될 수 없다. 그러니 총회 대의원 비율은 당연히 0%다. 이런 놀라운 비율은 전 세계적으로 기록에 남을 만한 일임에도 한국 교회에선 말도 꺼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 교단 총회장의 분위기를 전한 신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거긴 여성혐오주의가 토네이도처럼 휩쓸고 지나간 현장이에요.” 

    한국 개신교는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 여성혐오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도 전 지구적으로 인권의 관점에서 가장 주목받는 범죄다. 그런 범죄가 불꽃을 일으키는 현장, 그곳에 일부 목사들이 있다. 그들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웹진 <제3시대>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706302108015 이 글은 경향신문 2017. 6. 30일자 오피니언란에 실린 칼럼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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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비


<욥기>를 통해 본 고통 마케팅에 대한 비판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눕기만 하면, 언제 깰까, 언제 날이 샐까 마음 졸이며, 새벽까지 내내 뒤척거렸구나. 내 몸은 온통 구더기와 먼지로 뒤덮였구나. 피부는 아물었다가도 터져 버리는구나. ―〈욥기〉 7,4~5 



    거실 창가에 배열해둔 딸의 사진들을 바라보며 그는 한참을 미동도 않는다. 생전 처음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에 눈길이 머문다. 촛대바위와 바다를 등지고 친구와 두 손을 입에 모아 힘껏 소리를 내지르는 포즈의 사진을 본다. 그 옆에는 가족과 함께 다녀온 미국 여행 사진이다. 콜로라도의 메이사 베르데 국립공원 입구에서 오른 손을 흔들고 있는 딸은 아직 초등학생의 모습이다. 그 옆에는 검은 사각모에 빨강, 파랑, 검정이 어우러진 가운을 입고 어설프게 카메라를 바라보는 어린 딸의 유치원 졸업사진이 있다. 벌써 14년이나 지난 일인데, 몇 달, 아니 며칠 전의 일 같기만 하다. 그리고 가운데, 커다란 눈이 예쁜 딸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다.

   수능시험을 치룬 다음날 딸은 오빠의 오피스텔에서 목을 매고 말았다. 지리학과에 들어가고 싶어 했고, 입학만 하면 페루 여행을 허락받았던 그녀는 두 번의 실패와 세 번째 예감된 실패를 비관하며 서둘러 삶을 마무리 지어버렸다. 삼년간 유예된 페루 여행을 육체를 벗어버리고서라도 떠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죽던 그 한 해 전에 대학생이던 아들이 군 입대를 앞두고 페루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딸의 인내력은 폭발하고 말았다. 함께 가겠다고 며칠을 밥도 안 먹고 시위를 하더니 학원에서 쓰러졌고, 몇 시간 링거주사를 맞고 퇴원한 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녀의 아비는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한두 주 빠지고 여행 좀 한다고 무슨 큰일이라도 날까봐 딸의 자존심을 그토록 헤집어 놓았을까. 링거주사를 꽂은 채 몇 시간을 침대에 구속되어 있던 딸의 속마음은 이미 그때부터 자기에게 한계시간을 부여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그는 타살자의 심정이 되어버린다.  

   딸을 잃고 자책하던 한 아비의 일이 기억에서 희미해졌을 무렵, 그러니까 그때로부터 만 2년이 조금 모자란 날, 아들의 돌연사로 망연자실해 있던 또 다른 아비가 있었다. 대학원을 다니며 유학을 준비하던 과학도인 아들이 갑자기 쓰러졌고, 가족이 달려왔을 땐 이미 소생 가능성이 없는 상태였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채 못 되어서 아들의 사망을 확인하는 서명을 했고, 슬픔도 눈물도 없이 3일간의 장례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고자 미뤄두었던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겨우 진정을 찾은 듯 앉아있는 아내가 다시 오열하며 실신할지 몰라 걱정하여 안경을 닦으며 조용히 책장을 넘기려 하는데, 자제할 수 없이 슬픔이 솟구친다. 그날 밤 그는 창자가 끊어질 듯 통곡했다.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 함께 다니기로 했다. 구원에 관한 교리가 여전히 납득되지는 않았지만, 혹여 아들이 천국에 가는 데 아비가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교인이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장례를 집전했던 목사는, 이 아이가 교회를 다니지 않았으니 ‘성도’(聖徒)란 문구를 쓸 수는 없지만, 부모가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이미 고인이 된 자녀도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다고 하며 성도임을 ‘보증’하는 의미에서 그 문구를 허락한다고 했다.

    그 논리들이 도무지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만의 하나 그게 정말이라면 어쩌나 싶어 열심히 기독교 신자가 되고자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바쁘다 해도 예배는 반드시 참여하고, 신자대학에도 등록했다. 날마다 성서를 읽었고, 관련 서적들을 탐독했다.

   신앙이라는 게, 그 교리라는 게 허술하기 그지없었지만, 하여 순간순간 회의적 물음들이 튀어나왔지만, 폐부를 찌르는 목사의 한 마디 말에 그는 모든 비판적 문제의식에서 스스로를 무장해제시켰다. “신앙이 없으면, 하느님은 나를 치거나 혹은 가족을 치십니다.”

    이 말은 수준 높은 지식의 소유자인 그가 신앙에 관한 한 자기의 지식을 유보시키고 교회의 가르침에 순순히 따르게 하는 효력을 발휘하였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그에게 이 말은 자기가 자식을 죽였다는 자책감을 낳은 것이다.

   그가 내게 물었던 첫 질문은 “어떻게 해야 신앙이 빨리 성장할 수 있나요?”였다. 대개 이런 물음은 교회의 제도 속에 순순히 편입되는 것에 자기 분열을 일으키는 이들에게서 나온다. 그런 이들은 교회의 신앙제도의 모범생이 되려는 강렬한 의지를 품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끊임없이 그의 내면에서 그 의지가 흔들리고 있다. 억제하고 있기에 그 동요가 의식으로 표출되지는 못하지만, 자기가 흔들리고 있다는 자각에 좀처럼 이르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무의식은 끊임없이 신앙제도의 모범생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동요하게 한다.

    어떤 말이든 위로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만난 이가 이런 물음을 던지면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신앙성장을 위한 비법 전수’, 이 순간 그가 위로받을 수 있는 최선의 답은 바로 이런 것이겠다. 한데 나는 그런 ‘묘수’를 알지도 못할뿐더러, 심지어 묘수라고 회자되는 것들에 야유를 퍼붓는 데 익숙한 자니 그를 위로할 길은, 내게는, 별로 없다.

    추측컨대 평소의 그라면 아마도 나와 좋은 대화를 할 수 있을 법하다. 하지만 자식의 돌연사에 직면한 이에게 신앙제도와 신앙 사이의 거리에 대해 얘기하고, 교회의 가르침이 대변하는 신앙제도, 그것의 위기를 넘어서는 것에 관한 냉철한 토론은 얼마나 무망한 것일까.

    그럼에도 서투른 카운슬러인 나는 그가 듣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닌 얘기로 대화를 이끌어갔고, 점잖고 사려 깊은 사람인 그는 나의 어법 속으로 순순히 들어와 주었다. 다행히도 그는 30년쯤 전, 대학생이던 시절에 기독교에 대한 남다른 지적 탐구의 기회를 가졌던 사람이었고, 이 대화는 오래 묵은 그 기억을 회상해내는 시간이 되었다.

    창조가 어떻고, 노아의 방주가 어떻고, 예수의 기적이 어떻고 등등, 얘기가 열띠게 오가던 중 그는 뜬금없이 자기의 숨겨진 갈등을 털어놓는다. 자식의 죽음 이후 다시 교회를 다니면서 꾸물거렸던, 하지만 잘도 숨겨져 있던 내적 흔들림의 실체가 언어를, 즉 형상을 얻게 된 것이다. 자기에게 닥친 이 고통에 대해 하느님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무슨 죄가 있기에 그의 목숨을 그렇게 앗아간다는 것일까요?” “도대체 교회에 안 다녔다고 자식을 빼앗아 가는 신이 어딨나요?”라고.

    하느님을 잘 믿으면 시련이 닥쳐와도 결국에는 몇 배로 보상해 주신다는 의미로 목사가 권한 〈욥기〉에서 그는 이미 전혀 다른 의문에 직면하게 되었다. 서론부(1~2장)와 결론부(42,7~17)에 나오는 이야기대로라면, 아들의 죽음은 결국 하느님이 사탄과 벌인 내기에 다름 아니라는 당황스런, 하지만 타당한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욥기〉에서 이런 의문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텍스트 속의 하느님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 한데, 이 글 앞에서 인용된 본문인 〈욥기〉 7,4~5 같은 내용이 절절하게 마음에 와 닿는 사람, 그 처참한 고통으로부터 잠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시간마저도 박탈당한 사람, 그렇게 매순간 지옥을 체감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은, 죽은 아들의 시선으로 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이 구절은, 그가 기도생활을 잘 못한 탓에 아들이 죽은 것이라는 목사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해석학적 문제의식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욥기〉에서 서두와 끝의 이야기를 빼면, 내내 욥의 원망과 항변으로 점철되고 있다는 것을 읽어냈다. 욥의 친구들, 나중에 그 대화에 끼어드는 젊은이, 그리고 심지어 하느님마저도 닥친 재앙과 신앙 사이에는 인과성이 있다는 통념의 수호자들이다. 하여 심문관처럼 욥을 추궁한다. ‘네 잘못으로 네가 재앙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한데, 실은 그것이 하느님의 장난이라니......

    요컨대 〈욥기〉는 당시 통념으로 작동하던 인과성의 신학에 대한 저항을 담은, 매우 지적인, 일종의 반신학적 통속적 풍자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이 대중 사이에서 회자되는 과정에서 본래의 서두와 결론이 개작되어 통속소설화된 것이 우리가 접하는 〈욥기〉인 듯하다. 그러므로 본 내용을 통속화시킨 서론부와 결론부를 빼고 본론부만 읽는다면, 네 잘못이 재앙의 원인이라는 식의 통속적 주장에 대한 욥의 반신학을 읽을 수 있다.

    딸의 자살에 직면해서 자기의 잘못을 상상했던 한 아비, 그리고 아들의 돌연사에서 자기 자신의 불신앙을 보아야 했던 다른 아비, 이 둘은 바로 그 생각으로 인해 딸이, 그리고 아들이 겪고 있던 세상의 고통에 직면할 수 없었고, 그럴수록 세상은 그 죽음들로부터 면죄부를 얻게 된다. 물론 때로 고통에 직면해서 자기를 돌아보는 것은 매우 훌륭한 성찰의 태도다. 한데 문제는, 자책이라는 고통의 표현 방식이 종교제도나 국가제도, 심지어는 자본에 의해 마케팅의 도구로 활용되곤 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욥기〉는, 통념에서 벗어나 읽는 이에게는, 바로 이러한 은폐의 신학에 대항하는 반신학적 신학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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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열네번째[각주:1]


결론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이 연재를 마감하기까지 두 번의 글이 남았다. 이제까지 내가 말하려 한 것은 웰빙우파의 문화공간으로 대형교회가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즉 ‘웰빙’이라는 문화적 현상과 ‘우파’라는 사회정치적 범주가 엮이면서 하나의 문화적 주체로 형성되어 가는 데 있어 중요한 장(場)으로 대형교회를 주목해보겠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웰빙우파의 문화공간으로서의 대형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총정리해보겠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는, 이 연재 첫 부분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하나의 상상적 논점을 제기할 것이다. 최근 대형교회를 주요 장소로 하여 형성된 문화적 주체로서의 웰빙우파가 정치적 주체로서 재구성되고 있는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어떤 것일지에 대한 것이다.  


'1990년대', 웰빙우파 형성의 시간적 범주


   ‘1990년대’라는 시간은 이 연재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에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던 한국사회의 경제성장률이 급강하했는데, 개신교도 성장률이 급락했고 심지어 1995년 이후에는 절대수가 감소하기까지 했다. 한편 이 시기는 또 다른 중요한 변화의 시기이기도 했다.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한 시기이며, 또 소비사회로의 변화도 이 때를 기점으로 하여 본격화된다.


    


   이런 민주화와 소비사회화가 본격화된 시대인 1990년대를 주로 30대의 나이로 겪었던 세대가, 두 번의 베이비부머 세대(제1차: 1955~1963년생/ 제2차: 1968~1974년생) 중 첫 번째 세대다. 이들은 한국 근대사에서 보릿고개를 겪지 않은 첫 세대이고, 최소한 초등과 중등 과정까지 근대적 학교교육의 수혜를 받은 세대다. 또 빠른 경제성장의 대가로 완전취업의 행운을 누렸다. 특히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이들의 경우는 중상위층으로 안착하기에 가장 용이했던 세대다. 이 세대의 많은 이들이 이 시기에 결혼과 함께 강남과 강동, 분당 등으로 이주하였거나 독립하여 살게 되었는데, 2천 년대에 이 지역의 지대가 급상승함에 따라 자산이 크게 늘은 것이다. 즉 직업의 안정성보다 훨씬 중요하게 지대의 상승 요인이 중상위계층으로의 안착에 유효했다.

   한편 이들, 1990년대에 강남・강동・분당 지역의 30대 고학력의 중상위계층 사람들은 그 무렵 민주화와 소비사회화라는 거대한 사회문화적 제도화의 현장 한 가운데에서 그 실행주체로서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이들이었다. 이들이 2천 년대에 40대가 되었고 2010년대에는 50대가 되었다. 나는 이 세대를 기점으로 해서 ‘웰빙’우파라는 문화적 주체가 등장하게 되었다고 추정한다.(물론 이 세대에는 여전히 극우주의적 이념주의자들도 많았고, 신자유주의적 성장주의자도 많았다.) ‘웰빙’은 성장지상주의 시대를 통과하고 나서 소비사회로의 변화, 그리고 신자유주의로의 이행기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장지상주의적 주체와는 다른, 중상위계층적 고품격 문화를 가리키는데, 이 세대 이후 웰빙문화는 빠르게 확산되었고 다양하게 발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웰빙’의 다양한 발전을 단순화하여 ‘우파’와 ‘좌파’로 분류하였는데, 그중 ‘웰빙+우파’의 문화가 발전한 주요 장소로서 대형교회를 제시하였다.  


'(캐릭터)대형교회', 웰빙우파 형성의 장소적 범주


   1990년대에, 내가 분류한,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가 대거 등장했다. 이 연재를 시작하는 글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대형교회를 두 범주로 나누었는데, 첫 번째 범주는 한국사회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 대형교회로 부상한 교회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두 번째 범주는 한국사회와 교회의 성장이 정체 및 퇴조하던 시대에 빠른 성장을 이룩하여 대형화된 교회를 말한다. 즉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는 개신교에 새 신자의 유입이 현저히 줄어든 혹은 감소한 시기에 대형교회로의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것은 이들 교회들이, 새신자보다도, 교회를 떠도는 수평이동 신자들의 새로운 정박지로 선택된 결과다. 한데 유념할 것은 수평이동 신자들은 1990년대 이전에도 많았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수평이동 신자들은 대개 목사나 은사자를 따라다니는, 일종의 수동화된 팬덤(fandom)에 다름 아니었다. 반면 ‘그 이후’, 즉 1990~2010년대의 수평이동 신자들은 30~50대 연령의 교회 직분(집사, 권사, 장로 등)을 맡은 이가 많았다. 이것은 교회에 대해 꽤 많이 알고 가장 활동적인 교인들 중에 교회를 떠도는 신자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이렇게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들은 1990년대 말 이후 강남・강동・분당 등에서 집중적으로 등장했다. 이 지역들은 대단지 아파트들이 속속 세워짐으로써 단위 면적에 비해 유입 인구가 특히 많은 신시가지 혹은 신도시인데, 지대가 다른 곳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게 상승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하여 이주자들의 자산이 빠르게 증가하여 중상위계층화한 이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이다. 또한 위치상 이 지역들이 서로 인접해 있음으로 해서 중상위계층의 수가 다른 곳들에 비해 훨씬 많이 밀집된 곳이다. 바로 이런 지역에서 떠돌던 수평이동 신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크게 성공한 교회들, 내가 말한,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들 다수가 이런 교회들이다. 

   이렇게 정박할 곳을 찾은 떠돌이 신자들은 ‘그 교회’에서 현재까지 적어도 20~30년, 혹은 그 이상을 주1회 이상의 공식모임을 같이 했다. 그밖에 교회를 매개로 하는 수많은 비공식 모임을 통해 삶이 엮이었다.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서로 장기간 동안 이런 공식・비공식 관계를 통해 경험과 기억이 얽히면서 서로간의 친밀성이 깊어진다. 또한 자녀의 ‘절친’의 부모로 얽히고, 부모의 장례로 얽힌다. 해서 삶의 위기에 높일 때 교인들은 도움을 나누는 사이가 되고, 사업을 하거나 취업을 할 때에 혹은 자녀를 유학 보낼 때에도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나아가 자녀들의 혼인 관계로도 얽힌다. 요컨대 대형교회는 빠른 도시화로 인해 가족과 이웃의 친밀성이 치명적으로 해체되고 있는 시기에 다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친밀성의 공간이며 인맥공장이다.

    특히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 계층적 다양성이 사라지고, 특정 계층이 집약되어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계층적 문화가 형성되기에 용이했다. 학력도 비교적 높고 계층적으로도 안정된 이들이 많았기에 문화적 교류를 나눌 만큼의 여력이 충분했던 덕이다. 하여 바로 이곳에서, 사회의 다른 어느 영역보다도, 웰빙우파 문화가 잘 터잡을 수 있었다.


'주권교인', 웰빙우파 형성의 주체


   대형교회들은, 두 범주 모두 예외 없이, 담임목사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중요하다.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란 교회에서 작용하는 거의 모든 가용자원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능력을 특정인이 장악하고 있는 현상과 관련된다. 한데 두 번째 범주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첫 번째 범주와는 다르다. 첫째 범주의 대형교회에선 교인들이 수동적이고 충성도가 높아 담임목사의 일방주의적 전횡이 가능했다. 반면 둘째 범주에선 교인들이 과거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은 탓에 담임목사가 자신의 자원동원능력을 통해 콧대 높아진 교인들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었는지가 중요했다.

    앞에서 말한 대로 떠돌이 신자들은 교회를 알 만큼 아는 이들이었고, 민주화를 경험하면서 주권의식이 꽤 성장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소비사회를 경험하면서 종교도 상품처럼 선택할 수 있는 자의식이 발전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정보능력도 뛰어나 교회들이 내걸은 상품가치를 판별할 능력도 겸비한 이들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1990년대에 부상한 ‘주권시민’에 상응하는, ‘주권교인’이라고 불렀다.

   하여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는 ‘주권교인’의 취향에 맞는 방식으로 교회를 개혁했던 ‘개혁군주’형 지도자였다. 즉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들은 주권교인들의 교회에 대한 불만을 교회 개혁에 반영하고 그이들의 취향에 맞는 요소를 발명해냄으로써 수많은 떠돌이 주권교인들을 정박하게 하는 데 성공한 교회다.

    나는 이러한 ‘개혁적 발명’을 통해 각 교회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특성화한 것을 ‘교회의 캐릭터화’라고 불렀다. 이때 캐릭터화를 특징짓는 요소를 여러 연구자들은 ‘개인주의’라고 불렀는데, 나는 ‘웰빙’이 더 적합하다고 보았다.

    가령 1990년대 이후 가열된 자녀교육 열풍은 명문대 지상주의를 낳았고, 이런 현상은 중상위계층에서 더 치열했다. 한데 몇몇 대형교회들은 2천 년대 즈음부터 명문대 지상주의를 넘어서 기독교 지도자를 통해 사회를 계도한다는 이상 아래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겸비한 전인적 소양을 갖춘 엘리트 양성을 추구하는 대안학교들을 만들어냈다.

    또 ‘부자 되세요’가 일상어가 될 만큼 신자유주의 시대 성공지상주의적 태도가 전 사회를 휘몰아칠 무렵 자신이 누리고 있는 풍요를 축복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신이 부여한 도덕적 책임의 맥락에서 보고자 하는 ‘청부론’이 일부 대형교회를 통해 확산되었다. 이것 또한 풍요를 천민화하기보다는 귀족적 덕성으로 재해석하는 웰빙신앙의 주요 항목에 속한다. 이렇게 대형교회의 캐릭터화의 기조는 웰빙신앙화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웰빙신앙적 캐릭터화가 얼마나 잘 수행되느냐를 시금석으로 하여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를 규정할 수 있다.


웰빙우파적 문화의 헤게모니화를 우려한다


    1990년대는 권위주의를 넘어서 한국근대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의 시대였다. 하지만 그 시간은 너무 갑자기 다가왔고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내기엔 너무 짧았다. 10년도 못 가서 신자유주의의 괴물적 파괴력에 휘둘리는 시대가 도래했고, 2천 년대는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반동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여 1990년대에는 도처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하위문화적 소리들이 등장했을 뿐 지배적인 대안적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시기에 거의 지배적 문화로 부상한 것이 없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웰빙우파’적 문화로 보았다. 오늘 우리 시대에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멋지고 규범적으로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것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용어로 ‘웰빙’이 적합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웰빙을 가장 잘 구체화한 것은 우파적 요소다. 그런데 이런 웰빙우파의 문화가 형성되고 자리잡는 데 가장 중요한 공간이 바로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다. 그런데 이런 대형교회를 매개로 하는 웰빙우파적 문화의 헤게모니화는 다른 계층에 대한 타자화를 정교하게 제도화할 우려가 있다. 마지막 글은 바로 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 1199호(2016 11 01)에 실린 '웰빙우파와 대형교회' 14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_id=20161004164036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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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열세번째[각주:1]


선교의 ‘웰빙-우파화’, 가능성과 한계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공격적 해외선교’에 대한 낭만주의, 그 끝자락


    1990년대 한국교회는 해외선교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초고속으로 성장하던 한국개신교의 교세가 급작하게 꺾이기 시작한 상황에서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로 인해 우연히 발견된 ‘해외’라는 상상력은 역성장의 위기에 대한 새로운 출구로서 선택되었다. 그간 해외선교는 선교전문기관들이 교회와 불화하며 외롭게 이어가고 있었고, 교회는 거의 무관심했었다. 교단 선교국이 국제 기독교네트워크와 연대하여 극소수의 선교사를 파송한 것이 한국교회가 수행했던 해외선교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한국선교연구원의 한국개신교의 세계선교 현황 자료(2003).  이 통계에는 개별 교회의 선교사는 빠졌다한데 2천 년대에 오면 개별 교회 파송 선교사의 수가 적지 아니 늘었다


   그런데 1990년대는 사정이 달라졌다. 수많은 개별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했고, 선교전문기관 파송 선교사에게도 교회들의 후원이 답지했다. 그리고 이런 급격한 증가추세는 2천 년대까지 이어져, 2006년 세계 선교사 파송 순위가 미국 다음인 2위를 기록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2007년 이후 증가율이 현저히 줄기 시작했고, 2012년 이후 감소 추세에 있다.

   그 이유는 국내에서의 성장 정체를 세계로 향한 팽창주의로 만회하려는 성장지상주의가 점점 교회에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겠다. 피선교국이던 한국이 세계적인 선교사 파송국이 되었다는 자긍심은, 한국 내에서 지탄을 받았던 공격적이고 배타주의적인 선교방식이 피선교지역 주민들을 포함해서 전 세계의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까지만 유지될 수 있었다. 2004년 김선일 사건이나 2007년 단기선교팀의 아프간 피랍사건을 계기로 해외선교라는 낭만적 자부심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후 언어능력과 독서능력이 뛰어난, 게다가 비판적이기까지 한 주권교인들은 이러한 공격적 해외선교에 얽힌 문제점들을 인지하게 되었다. 여전히 선교전문기구들과 여러 목사들은 세계 복음화의 사명을 열렬히 부르짖었고, ‘미전도종족 입양’이라는 좀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공격적 선교의 새로운 아젠다를 내걸었지만, 이제 해외선교라는 의제 자체만으로 교회 신자들을 동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구호/개발 선교


   해외여행 자유화 시대 배낭여행 붐을 일으켰던 한비야 씨가 기독교계의 세계 최대 구호・개발 NGO인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공격적 해외선교의 로망이 무너진 자리에 한비야 씨를 통해 전해진 새로운 해외선교의 가능성이 쑤욱 끼어들어왔다. 1950년 전쟁 이후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원조의 대상이었던 한국이 이제 원조의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더구나 정부의 해외원조업무의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여러 지역에서 구호・개발 NGO로 활동하는 한국 단체 가운데 기독교계 단체가 40% 이상이나 되고, 활동력이나 영향력 등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의 구호・개발 NGO들의 예산 총액은 국내 최대의 모금・배분기구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예산총액의 4.3배에 달하는데, 이는 기독교계 구호・개발 NGO들의 예산 총액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2~3배쯤 될 것임을 시사한다. 나아가 이 규모는 전 세계 기독교계 구호・개발 NGO 가운데서도 최대 수준이었다. 선교사 파송 순위야 개신교 신자들 사이에서나 장한 일로 통할 것이겠지만, 해외원조 분야에서 최고라는 건 한국사회 전체를 향해 우쭐해도 될 것이었다.

    이 구호・개발 차원의 선교는 공격적 선교를 대체하는 새로운 선교 항목으로 떠올랐다. 종교의 교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가르침에 기반을 둔 나눔을 실천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나눔의 대상에 대해서도 그들의 신념에 상처를 주지 않고 나아가 그들 자신의 자생력을 북돋고 그 인프라를 구축해주는 방식의 선교다. 확실히 구호・개발적 선교는 공격적 선교보다 진화한 것이었다. 적어도 주권교인들은 그렇게 보았다. 그들은 더 이상 교회의 자기 충족적 비용을 위해 자신들의 기부가 다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러 가치 있는 영역들로 나누어 기부를 실행했다. 

   하여 떠돌던 주권교인들을 정착시킴으로써 대형교회가 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구호・개발 차원의 선교를 교회 활동의 하나로 수용하는 데 있었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개별 교회가 모든 걸 주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 곳곳에서 원조가 필요한 사회를 찾아내고 그 사회에서 책임 있는 파트너를 찾아 그들에게 전달하며 그 과정과 결과를 수집・분석하여 지속적으로 새로운 구호・개발 전략을 기획할 수 있는 단체여야 한다. 또한 이런 활동은 개별 교회의 기부금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많은 기부자들로부터 굉장히 큰 원조금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여 개별 교회는 전문적인 구호・개발 NGO와 연합하여 다양한 프로그램과 캠페인을 통해서 주권교인들을 교회 활동에 동원하려 했다.

    동시에 이런 프로그램과 기획들을 통해 교회는 자교회 청년들에게 구호・개발 분야의 취업 기회(기독교계 구호・개발 NGO의 직원수가 1만 명이 넘는다)를, 그리고 해외유학을 원하는 청소년에게 대학입시를 위한 봉사활동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구호・개발 선교 프로젝트는 공공적 가치와 사적 이해가 ‘잘 결합된’, 가치 소비 시대에 걸맞는 종교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행의 전 지구적 시스템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도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과시적 성과주의보다는 그 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에 대한 소비가 주권교인들의 신앙태도로 형성되는 데 구호・개발형 선교는 한몫했다. 그것은 전형적인 ‘웰빙우파스러운’ 선교였다.


아동결연 선교


    이러한 구호・개발 선교 프로젝트 중 가장 많은 대중의 참여를 불러일으킨 것은 아동결연 사업이다. 가난한 제3세계 아동 1인에게 매월 3만 원 정도를 후원한다는 것인데, 차인표・신애라 부부의 활동으로 유명해진 한국컨패션(Compassion Korea)을 포함하여 240여 개 단체에 무려 600만 명에 달하는 기부자가 참여하여 전 세계에서 67만 명의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이중 개신교 단체와 기부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여기에는 무려 30명의 제3세계 아동과 결연을 맺었다는 차인표・신애라 부부뿐 아니라, 105명과 결연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정애리, 무려 2백여 명이나 된다는 션・정혜영 부부 등, 공격적 선교를 지양하고자 하는 많은 유명 개신교 신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대형교회들이 아동결연 캠패인을 벌이고 있는데, 분당우리교회는 3000명의 제3세계 아동과 1:1 결연을 맺기로 한국컴패션과 약정을 맺었다.

    이러한 아동결연을 매칭하는 NGO들은 주기적으로 후원아동의 성장을 체크하여 후원자에게 공지해주고, 때로는 서신교환 및 만남을 주선하며, 나아가 후원아동 주변의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 해당 지역사회의 개발에도 관여하고 이를 후원자에게 알려 준다.


한국컨패션이 후원하는 필리핀 아동들과 이 단체의 홍보대사 신애라


분당우리교회(이찬수 목사)는 제3세계 아동 3000명과 1:1 결연 계약을 한국컨패션과 맺었다.



    이러한 사업은 후원의 일회성과 익명성을 지양하고, 개인후원과 사회개발의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다른 것들보다 한층 진일보한 선교다. 또한 적은 기부금액으로도 기부효과가 작지 않다는 상각에 이르게 함으로써 대중성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이 프로젝트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은 강남과 분당 지역의 대형교회들이다. 주권교인들의 기호에 대한 맞춤형 선교의 압박이 더 컸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공적 가치를 소비하게 한다는 점에서 웰빙적 선교라고 할 수 있다.


'진공포장'된 선교


    그러나 이러한 구호・개발형 선교는 너무 ‘진공포장’되었다. 현지의 고통에서 철저히 차단된 사치스런 선교다. 그럼에도 구호・개발 선교기구들과 교회는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기부자에게 최고의 립서비스를 제공한다. 아동결연자에게 ‘입양자’라는 칭호를 주고, 후원자의 현지방문을 ‘단기선교’로 명명하곤 했다. 가벼운 참여를 ‘부모 되기’ 혹은 ‘선교사 되기’와 연결시키는 과장된 자의식과 결합된 주체는, 현지에서 벌어지는 난감하고 불편한 진실로부터 그들이 차단되었을 때만 그 ‘자뻑’형 착시를 유지할 수 있다.

    실제로 구호・개발 사업을 벌이는 NGO들은 현지에서 종교성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정부로부터 재정의 15% 가까운 지원을 받았다. 이 정부지원금이 이들 단체들의 운영기금으로 활용됨으로써 참여자들의 기부금 거의 전액이 현지에 전달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실에선 점점 기독교계 구호・개발 NGO들의 종교색이 노골화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한국교회들의 후원금이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권교인들의 바람을 수용하여 구호・개발 선교에 끼어든 교회들은 구호・개발 선교에 대한 신학적 고민을 치열하게 하지 않았다. 단지 교인들의 바람을 교회에서 흡수하기 위한 전략에만 몰두했다. 이것은 동시에 주권교인들의 ‘자뻑형 착시’가 일으키는 주체 효과와 상응관계에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권교인들은 ‘먼 곳’의 수혜자를 타자화함으로써 현장의 복잡한 고민에서 거리를 둔 ‘깨끗한 선교’의 일원이 될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진리의 수행자로서의 자의식이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은 현지의 복잡한 정보를 단절시킨 ‘진공포장된 선교’를 만드는 구조적 요인의 하나였다.

    아동결연 사업도 그 사회의 성장 인프라 구축이라는 사회구조적 요소를 포함한 선교기획이지만, 사회구조의 문제는 개별 구호・개발 NGO가 담당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축적된 연구와 활동의 기반을 갖고 있는 기독교계 국제네트워크들을 포함한 여러 국제기구들과 협의하고 연대하며, 현지 시민사회 및 정치 단체와도 공조하며 진행해야 할 것이었다. 이런 거시적인 협의와 연대 없이 진행되는 사회 인프라 구축 기획은 성공하기 쉽지 않으며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아동결연 사업 참여자는 그 아동이 겪을 혼란과 갈등에 얽히지 않은 채 자신의 안전한 기부가 성과로 돌아오길 바랐다. 그들이 원한 것은 시시콜콜한 현지 사정이 아니라 자신이 후원하는 아이들이 잘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하여 웰빙-우파적 주권교인들의 ‘깨끗한 선교’ 욕구는 선교 현지의 사회적 복잡함에 대한 외면과 은폐를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공격적 선교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타자화’에 다름 아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 1199호(2016 11 01)에 실린 '웰빙우파와 대형교회' 13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_id=20161004164036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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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열두번째[각주:1]


교회청년에게 세습되는 웰빙 보수주의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대형교회 대학부와 인맥공장


    거의 모든 교회는 잘 짜인 연령별 조직을 갖고 있다. 대략 유년, 소년, 청년, 장년, 노년 등으로 구성된다. 신자들은 3~4세부터 시작해서 거동 가능한 시기까지 이 연령별 조직들의 일원이 된다. 그러니까 비슷한 연령대의 교인들은 그 교회에 속해 있는 한, 평생 관계가 이어진다. 이렇게 연령별 네트워크가 평생 이어지는 곳은 교회 외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1981년 이후 대학생 수가 크게 늘면서 연령별 조직의 순차적인 흐름에 약간의 변수가 생겼다. 몇몇 교회에서나 가능했던 대학생부가 독자적인 조직으로 탄생하는 일이 현저히 늘었다. 그러나 고등부와 청년부 사이에 대학부가 마치 연령별 조직으로 상례화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그때 대학생 수는 급격히 늘었고, 고교졸업자는 감소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대형교회, 특히 강남, 강동, 분당 지역의 대형교회로 갈수록 심화되었다. 이 지역들에선 대학입학에 실패하면 교회를 떠나는 일이 흔했다. 심지어 서울 지역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도 대학부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더 극단적으로 명문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이들조차 대학부 참여를 꺼려하는 분위기의 교회들도 있다. 해서 몇몇 교회들은 고등부 졸업자들 중 재수생을 위한 별도의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영락교회의 베드로부, 지구촌교회의 꿈사모 등).

   이쯤 되면 강남, 강동, 분당 지역의 대형교회들에서 대학부는 중요한 인맥 만들기의 장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에 진입하지 못하거나 탈퇴하는 것은 삶의 중대한 기회를 상실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대학부에 진입하는 건 단지 시작일 뿐이다. 졸업과 함께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청년부에 순조롭게 진입하지 못한다. 물론 대형교회에서 대학부의 일원으로 있다는 것만으로도 취업은 훨씬 유리하다.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정보와 특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정보와 특혜를 대학부원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그곳 나름의 평가기준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이들에게 그런 기회가 훨씬 많이 주어진다. ‘교회오빠’니 ‘교회누나’하는 말들 속에 함축된 외모, 옷차림새, 행동거지로 규율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연애도 포함된다. 이를 테면, 명문대학에 다니는 한 여성은 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녀는 엄마의 반대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은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엄마는 그녀가 연애하고 있었던 사실조차 몰랐다. 진짜 이유는 엄마가 반대할 것이라고 ‘그녀가 생각’했던 데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엄마’는 집합명사였다는 점이다. 그녀가 상상한 ‘엄마’는 그 교회 대학부 남자들의 ‘엄마들’이다. 그이들은 이 여성의 상상속의 ‘잠재적 시어머니’였던 것이다. 요컨대 그녀는 이들 상상속의 시어머니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의 연애 행위를 규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나눠줄 자원이 넘치는 몇몇 대형교회들에서 많은 대학생들이 어떻게 어른 세대의 시선을 내면화하면서 전략적 행위를 수행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은 그 교회들의 어른 세대의 보수주의가 대학생들에게 전수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편 수가 아주 적었던 시절부터 대학생들은 교회에서 많은 활동을 도맡아야 했다. 다른 종교 기관들에 비해 개신교 교회는 매우 많은 발런티어를 필요로 한다. 그중 많은 부분은 대학생들의 몫이다. 대학생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어도 사정은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제 많은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이와 그렇지 못한 이가 나뉘고, 그것은 대학부원으로서의 훌륭한 신앙인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척도가 되었다.

    교회학교 교사, 교회 청소, 성가대, 각종 봉사부서, 각종 선교프로그램들에서 대학생은 없어서는 안 될 발런티어다. 여기에는 단기선교도 포함된다. 단기선교란 대개 방학기간에 3주 정도 진행되는 해외봉사활동을 의미하는데, 그 비용도 적지 않을 뿐 아니라(남아시아의 경우 70~80만원 정도, 중앙아시아・중동의 경우 100~150만원 정도), 그 기간 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더욱이 사전교육이 2개월 안팎으로 진행된다. 그러니 신앙심이 투철하더라도, 학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몇 탕씩 뛰며 좀더 나은 일자리를 위해 항시 스마트폰의 연락망 안에 있어야 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이 프로그램에 의해 걸러진다. 요컨대 단기선교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이타적 신앙심은 중상위계층 친화적 성격을 지닌다.

   한편 청년부는 엄청난 결혼시장이다. 특히 몇몇 대형교회들의 청년부에는 우리사회 어느 곳보다도 ‘물 좋은’ 결혼 적령기 여자와 남자들이 넘쳐난다. 명문대 출신들만 들어간다는 대형교회 대학부라는 관문을 통과해서 들어온 교회청년부에는 가문 좋고 유능하며 좋은 직장에 다니는 스팩 넘치는 이들로 가득하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사회의 30대 비혼률은 2010년 기준으로 20.4%나 된다. 이는 1980년대에 비해 무려 11배나 상승한 수치다. 여기에 40대까지 포함하면(이혼자나 사별자를 제외하더라도) 그 수치는 훨씬 높아진다. 삼포세대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30~40대 비혼자들의 상당수는 어려운 경제 여건을 감안하여 자발적으로 비혼을 선택한 이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정은 교회에선 좀 다르다. 특히, 앞서 말한 것처럼 강남, 강동, 분당의 많은 대형교회들의 경우 대학부를 거치면서 중하위계층의 20대 청년들이 교회를 속속 이탈했다. 즉 이들 대형교회의 청년부는 경제적 위기를 덜 겪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게다가 교회에서 결혼은 신앙의 성장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목처럼 이해되었다. 가톨릭처럼 독신이 장려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 간의 관계를 삶 속에서 체험하는 신이 준 기회로 해석되었다. 즉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유비적이다. 요컨대 여자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남자에게 복종하고 남자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처럼 여자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결혼관으로 남자와 여자 신자를 규율한다. 하여 이런 결혼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신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신의 계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교회 제도의 관행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으면 대개 장년부에 속할 수 없다. 장년부는,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면, 거의 기혼자들의 모임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장년부에 속해야 집사, 안수집사, 권사, 장로로 이어지는, 일종의 신앙제도상의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 그래야 신자는 교회라는 인맥 공장의 중심부에 다가갈 기회를 얻는다. 해서 교회는 비혼자 중 ‘미’혼자 수가 훨씬 더 많다. 즉 결혼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결혼을 아무리 강조해도 미혼률을 줄이기는 쉽지 않다. 30대가 되면 사랑의 열정만으로 결혼을 감수할 수 없을 만큼 현실적 조건들이 까다로워지기도 하거니와, 교회의 성비 불균형이 너무 심하다는 것도 문제였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6:4의 비율, 혹은 그 이상으로 많다. 이것은 미혼여자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여 여러 대형교회들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청년부와 장년부 사이에 또 하나의 예외적 연령조직(30~40대 미혼자들)인 싱글공동체를 만들곤 했다.

    이 모임을 중심으로 연애특강이 열리고 남녀 간의 스킨십을 늘리는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다. 나아가 성비 불균형으로 인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타교회 청년들과의 만남도 주선된다. 이것은 개신교 대상의 결혼 매칭 기업들과 결혼 매칭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회사들을 탄생시키게도 했다.


    기독교의 비합리성과 비과학성에 상처받고 목사들의 무식함과 나쁜 행실에 실망한 많은 청년들이 개신교 교회를 떠나가고 있고, 또 새로 개신교로 유입되는 이들도 현저히 줄었다. 한국 개신교 가운데 두 번째로 큰 교파이고 가장 부유한 교파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파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교인 대비 5.8%만이 청년층이다. 이것을 전체 개신교로 확장해서 보아도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2015년의 한 종교인구 조사에 의하면 연령별 개신교인의 구성에서 20대는 유・소년과 청소년을 빼고는 가장 적은 연령층이고 현재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을 차지하는 것이 30대다.


    그럼에도 일부 대형교회들에서 대학부와 청년부는 별로 줄지 않았고 심지어 늘기까지 한 교회들이 있다. 청년층을 유인할 여러 장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데 그중 중상위계층의 청년을 견고히 유지하는 교회들에는 대개 인맥 만들기에 효과적인 장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리고 이런 교회들의 대학부와 청년부원들은 그들의 부모세대와 비교적 관계가 원만하다. 그것은 부모세대의 많은 이들이 이른바 교양 있고 합리적인 성향을 보인 탓이기도 하다. 이른바 웰빙 신앙이 잘 정착된 교회에서 청년들은 더 잘 적응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교회들이 청년층에게 줄 수 있는 자원이 많아서 청년층 스스로가 교회 어른들인 부모세대의 시선에 스스로를 규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다른 글에서 이런 현상을 ‘사회적인 착함’과 후발대형교회의 연관성으로 이야기한 바 있다. 오늘날 교양 있고 합리적이고 배려 있는 성향과 물적 자원의 풍요 간에는 서로 상응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또 빠르게 신자유주의의 야만성에 깊게 노출된 한국사회에서 청년층이 독자적 능력만으로 생존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도 몇몇 대형교회 청년들의 자기규율 현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하여 이런 대형교회들에서 웰빙보수주의는 청년층에게 세습되고 있다. 유복한 중상위계층의 청년들이 교회에 남아 있는 한, 그들의 웰빙 성향은 좌파보다는 우파적 성향을 지닐 가능성이 큰 이유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다섯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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