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그림책 시리즈 II  「소금밭」4



소금밭의 바닷물이 증발하면서 거품이 일듯이 섬의 시간은 가끔 사나운 형상이 되곤 한다.









 


자우녕 作 (미술작가)


- 작가소개

프랑스 마르세이유 조형예술대학에서 Fine Arts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Master's Fine Arts과정을 이수, Diplome를 받았다. 2016년 한국복지예술인재단에서 파견되어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였으며 경기만에코뮤지엄의 <선감이야기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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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그림책 시리즈 II  「소금밭」3





하루는 시집간 시누이가 와서 인천 댁이 딴 포도를 슬금슬금 옮기고 있다. “뭘 도와주냐, 이제껏 모른 체해놓고 이제 와서 뭘…….” 하지 말아라 하며 만류했는데도 계속하기에 그녀는 시누이의 멱살을 한 움큼 움켜쥔다. 그런 힘이 어디에서 났는지 시누이를 들었다 놨다 한다.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하며 악을 쓰다가 마침 다른 손에 포도 따는 가위가 들려 있어서 시누이 목에 댄다. “오늘 너 죽이고 내가 감방 가겠다” 하고 윽박지르는데 동네사람들이 말려 할 수 없이 놔준다. 죽을 뻔한 위기에서 풀려난 시누이는 염전에서 일하고 있는 오빠한테 가서 그대로 이른다. 그때 인천 댁의 남편은, 네 언니가 오죽했으면 그랬겠냐 하고 인천 댁을 두둔한다.



치매 3년, 중풍 10년, 모두 13년을 시부모 병수발에 바치고 시동생, 시누이 키우고 시집⋅장가보내는 동안 인천 댁의 아이들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관습이어도 상관없고 운명이어도 상관없는 삶에 순응하며 살았건만 대부도 읍내로 들어가는 길에서 장성한 둘째 아들을 잃고 만다.


교통사고가 일어난 그날, 하늘이 갈라지고 어두워진 그날, 인천 댁은 그만 정신 줄을 놓아버린다. 야윈 얼굴이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가 멍하니 천장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가 아무 신이나 신고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온갖 바람을 맞고 돌아다니다가 급기야는 어두운 방구석에서 그대로 쓰러져버린다. 그녀의 몸은 염장한 무처럼 점점 쪼그라져 오랫동안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 흐른 세월이 얼만데 제 손으로 키운 시동생, 시누이는 인천 댁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래도 나머지 자식들이 있기에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방문을 열고 나온다. 햇빛이 눈을 찌른다. 색 바랜 꽃문양의 모자를 쓰고 어지럽혀진 농기구 중에 가위를 용케 찾아 손에 들고 밥 달라고 쳐다보는 개들을 지나 염전 앞 포도밭 언덕으로 올라간다. 포도밭 사건은 이런 연유로 생긴 일이다. 그날 저녁 시누이는 오빠가 준 포도상자 한 박스를 기어코 손에 받아 들고서야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집 뒤뜰엔 여러 그루의 두릅나무와 엄나무가 자라고 있다. 엄나무에 돋아 있는 가시는 악귀를 물리친다 하여 집집마다 엄나무를 심어놓지 않은 사람이 없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가지를 꺾어 현관에 달아놓고 가족의 건강을 비는 것이 대부도의 오랜 풍습이기 때문이다. 남은 자녀들만큼은 잘 건사하고 염전 질은 절대 하지 않아야겠기에 인천 댁은 올해도 엄중하게 가지를 꺾는다. 그러나 포도밭 사건 이후로도 몇 번은 성난 본능이 치밀어 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기에 그녀의 손은 제 스스로 엄나무의 가시가 된다.


“비가 오면 쉬거든요. 염전은 비 오면 일을 못하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 부부는 집안일 하거나 밭일을 합니다. 비를 맞으면서.”




 


자우녕 作 (미술작가)


- 작가소개

프랑스 마르세이유 조형예술대학에서 Fine Arts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Master's Fine Arts과정을 이수, Diplome를 받았다. 2016년 한국복지예술인재단에서 파견되어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였으며 경기만에코뮤지엄의 <선감이야기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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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그림책 시리즈 II  「소금밭」2



인천댁네는 흔하디흔한 염전 어귀에 겨우 흙집 한 칸을 얻어 옹색한 세간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쉴 새도 없이 소금 거두는 일을 시작한다. 아무리 남편을 돕는다 해도 염전 일은 말 그대로 뼈가 빠지는 노동이다. 매일 대파 질을 하면서 엉겨 붙은 소금 알갱이를 부숴 모으고 젖은 소금을 창고까지 실어 날라도 목돈을 손에 쥐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30년 전 그때만 해도 도급제여서 여러 사람이 한 팀을 이루어 소금을 생산했다. 그러니 적은 수입을 또 나누어야만 하는데, 그렇게 돌아오는 품삯이 하도 낮아 밭농사를 하고 포도 농사도 하며 틈틈이 식당 일도 한다.


어영부영 터를 잡고 살게 되니 우선 오갈 데 없이 되어버린 시부모님을 불러들이고 시동생, 시누이들도 건사하게 된다. 줄줄이 아들 넷을 키우고 그 중 하나는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도 한참을 지난 어느 날, 황망함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섬의 윤곽이 뚜렷이 드러난 날, 그녀는 알게 된다. 자신의 얼굴에 주름살이 깊고 눈은 삼각형으로 찌그러져 있으며 검은 장화엔 소금물이 희끗하게 얼룩져 있다는 것을.


그래도 인천 댁은 여전하다. 어디서 굴러 들어온 시베리안 허스키 개와 일본산 개가 돌아가며 털갈이로 마당을 어지럽혀도, 실개천에 활짝 핀 개복숭아꽃이 그녀가 눌러 쓴 햇빛가리개 모자의 꽃문양을 닮았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이면 염전이 보이는 벌판으로 내달리는 것이다.


“시집와서 엄청 고생했네요. 시동생들 학교 보내고 장가보내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우리 자식들이 자라고 장가를 가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또 뭔가 계속 해줘야 하구요. 지들, 집 산다고 하면 또 조금 보태줘야 하고…… 보세요, 지금도 김치 담고 있잖아요. 며느리 손에 들려 보내주려고.”


“예전엔 여기 비행기 소리가 굉장했어요. 그 소리가 얼마나 무서웠던지 집에 들어가 있다가 지나가면 다시 나오곤 했는데 지금은 무서운 게 없어요. 오히려 사람들이 나를 무서워하지요. 사람들은 섬이기 때문에 엄청 드센데 나도 그렇게 된 거지요. 그렇게 안 하면 못 살겠더라구요. 인천에서는 고무신에 치마만 입고 살았었는데 여기서는 고무신 내다 버리고 운동화 사서 신었어요.”


“비가 오면 쉬거든요. 염전은 비 오면 일을 못하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 부부는 집안일 하거나 밭일을 합니다. 비를 맞으면서.”





 



 


자우녕 作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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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마르세이유 조형예술대학에서 Fine Arts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Master's Fine Arts과정을 이수, Diplome를 받았다. 2016년 한국복지예술인재단에서 파견되어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였으며 경기만에코뮤지엄의 <선감이야기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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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그림책 시리즈 II  「소금밭」1


 

  1990년대 후반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시화호 방조제는 대부도를 육지와 연결하면서 어촌민에게 교통의 편리함을 제공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지락의 보고였던 갯벌이 말할 수 없이 훼손되었고 식생들도 변하였습니다. 섬 아이들은 사라졌고 노인들만 남았습니다. 이제 80이 넘은 노인들의 여생도 그리 많이 남아있진 않지요. 바야흐로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의 환경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섬의 기억을 간직한 연장자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섬 노인의 인생사는 오롯이 대부도의 역사이며 한국 근대사의 축소판이기 때문입니다. 환경을 기반으로 기획된 「환경그림책 시리즈」는 시간에 대한 사유와 상상력을 함께 전달하고자 합니다.

 

기획 자우녕

2013년 경기창작센터 기획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활동하면서 공공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대부도 오래된 집 프로젝트와 아시아 글로벌 커뮤니티_캄보디아, 황금산 프로젝트, 선감이야기길_선감역사박물관, 내가 이웃이 될 때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글: 자우녕 

사진: 최영주, 자우녕 

디자인: Damien Manuel 

인쇄 : 2016년 9월, 인간의 기쁨

 




* 이 글은 경기도 안산시 대부동동에 있는 염전에서 일하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를 기초로 지어졌습니다. 염전이라는 하나의 공간은 두 염부의 기억으로 중첩되며 재구성됩니다. 나는 이를 두고 기억의 지리학이라 부르고자 합니다. 


여우살이


섬이 다가온다.

세 살배기 큰아이와 쌍둥이 아기들을 품에 안은 채, 곱디고운 인천 댁이 해무에 가린 섬을 바라다본다. 가는 비가 흩뿌리듯 밀려오는 안개는 남편의 처진 어깨를 넘어 아기엄마 얼굴에 와 닿았다. 다가오는 듯 멀어지는 듯 여전히 흐릿한 섬의 풍경이지만 저곳에서는 먹고살 수 있으리라. 막연한 희망을 물안개 속에 풀어놓고는 출렁거리며 열리는 하얀 바닷길에 몸을 맡긴다. 한 가족을 실은 작은 배가 인천항을 떠나 대부도 방아머리에 도착하는 섬의 풍경은 그대로 사라질 것만 같다. 이때를 두고 말하는 것인가? ‘간절함’이 어떤 서사를 만들어도 그것은 섬이라는 자체 안에서 소멸된다는 어느 문학비평가의 말을 떠올린다. 


 섬은 상징이 되고 상징은 섬이 된다.



 



 


자우녕 作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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