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살아진 나날들, 그리고 나를 살아있게 한 것들에 대하여




김의환*

 


    그 더웠던 여름이 사라질 듯 말듯 하는 걸 보니 계절엔 경계가 없는가 보다. 시월이 되면서 낮에는 반팔차림으로 남아있는 여름을 느끼고, 저녁에는 자켓을 껴입은 채 가을을 기다린다.


   1년간의 긴 칩거를 마치면서 대학원 복학을 결정하고,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한 것은 지난 7월이었다. 날이 너무 더우니 별일이 없어도 매일 아침 에어컨이 빵빵한 도서관으로 향했다. 자취방에서 오르막길을 따라 10분쯤 걸으면 온통 땀으로 흥건해졌다. 도서관에 도착해 로비에서 얼굴을 손수건에 파묻고 젖은 몸을 말리다 보니, 20년 전 일이 불쑥 떠올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체육시간을 마치고 교실에 돌아왔더니 체육복이 흠뻑 젖어 있었다. 이런 나를 본 담임선생님께서는, 내가 뚱뚱해서 그렇다고 하셨다. 뚱뚱한 사람은 땀이 많이 난다는 거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내 몸이 소위 ‘정상적’이고 ‘표준적’인 범주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점을 알고 있었으니까. ‘팩트'에 기반한 선생님의 말에 상처받아 풀 죽은 채 집에 왔고, 엄마에게 이 일을 말씀드렸다. 엄마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매사에 적극적으로, 열심히 해서 그래.” 어린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그다지 적극적이지도, 열심히 하지도 않는, 무척 소심하고 민감한 아이라는 사실을, 평생 세상과 불화하며 살아갈 것을. 그런데 엄마의 그 말이 그때도,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각할수록 고맙다. 세상이 그토록 추구하는 진실이나 사실, 논리와 객관성, 과학적 근거, 법과 제도 따위를 떠나서, 그 말이 진심으로 느껴져 나를 위로했다. 무엇보다 엄마가 나를 깊이 사랑한다고 느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라는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사랑한다. 이 구절은 인간이 죄와 결함과 허물 투성이임을 전제한다. 이때 사랑으로 ‘덮어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아니, 가능하기는 할까? 내겐 사랑이 없어서인지 이웃의 허물을 덮어주지 못한다. 오히려 허물을 보면 쉽게 지적하고 짜증내고 울분을 토하고 뜯어 고치려 한다. 그러다가 힘이 빠지면 무관심과 냉소, 환멸로 자신을 간신히 지켜낸다.


    올해 초에 <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라는 영화를 보았다. 주인공 남자는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러운 세 자녀가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는 어느 날 밤, 우연히 발생한 하나의 사건으로 소중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이 영화는 성장이나 극복, 힐링 내러티브로 나아가지 않는다. 주인공은 어쩔 수 없는, 누굴 탓 할 수도, 돌이킬 수도, 헤아릴 수도, 잊을 수도,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고통을 안은 채 그냥 살아간다. 회복이나 전환의 기미가 전혀 없으나 그냥 그렇게, 살아지니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 나타나는, 고통 가득한 우리네 삶을 향한 건조한 태도와 낯선 시선, 차가운 정서는 역설적으로 관객의 감정을 온통 뒤흔든다.


    나는 고통받는 인간에게 끌리고, 인간의 추락과 파멸, 실패에 매혹된다. 그 사람을 경유해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감수성으로 가득하던 학창시절부터 어쩌다 서른이 된 지금까지, 삶은 항상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나는 왜 자꾸 실패하고 낙심하는가’. ‘나는 왜 앓는가’. ‘내 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딱히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그냥 안고 살아가야 했다. 한때는 타인의 도움 따위 없이 주체적으로 살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혼자 지내는 연습도 해보았다. 아무도 만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허나 고립과 자기소외, 단절은 피할 길이 없어 동굴에서 긴 밤낮을 보냈다.


    그러면서 혼자서는 절대 못 산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여전히 사람 대하는 건 고단하고 지난하지만, 그럼에도 같이 부대끼며 살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지난 여름날, 땀 흘리고 돌아다니며 누구라도 만나고 얘기를 나눠보려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타인의 고통은 내 고통과 무관하지 않으며,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음을. 또한 주체적으로 힘껏 살아내는 시간보다는, 저절로 누군가에 의해 살아지는 시간이 삶에서 어쩌면 훨씬 더 길 수도 있다는 것을.


    나를 여기까지 데려와 준 것들을 하나씩 헤아려 본다.


   내가 나를 포기했을 때, 나를 돕겠다던,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던 친한 형의 말.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이 아들이라던 아버지의 편지 속 구절.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던 내게 아무 말 없이 매끼 밥상을 차려주시던 어머니. 

   이제 갓 돌을 지난 조카 진이의 옹알이와 걸음마와 표정, 젖내음. 

   매일 저녁 6-8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배철수 아저씨의 목소리와 팝송들. 

   아주 이따금씩 읽는 성경 속 피 흘리는 예수. 고통받는 자들의 예수. 

   심연까지, 삶의 나락까지 추락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목소리와 가사로 무대에 오르는 가수들 

   책장을 넘기다 우연히 발견해 한없이 머뭇거리고 서성이게 하는 문장들. 

   이 가을, 해질 무렵 옥상에 올라가면 펼쳐지는, 순간의 황홀한 풍경. 

   시월의 밤, 한강에서 자전거를 탈 때 스치는 싸늘한 바람. 

   교회에서 함께 목소리 높여 부르는 노래들, 함께 나누는 밥. 

   불안하고 위태로운 청춘을 함께 보내는 친구들과의 술자리, 그 때의 미묘한 표정과 잊을 수 말들. 


    지난 여름 내내 버스 창가에서, 도서관에서, 연구실에서, 방구석에서, 영화관에서, 공연장에서, 홍제천 산책로에서, 이 소중한 것들이 하나씩 불쑥 떠오를 때면 너무 고마워서, 다행이어서 주책없고 뜬금없이 울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 짧은 계절에, 밤이 빠르게 찾아오고 한없이 차가워지고 참을 수 없이 쓸쓸해질 때, 속절없이 허비한 청춘을 헤아리다 밤길을 비틀대며 걸을 때, 나를 살린 것들과 저절로 살아진 날들을 생각한다.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 내가 살아 있었을까 싶다. 누군가에 기대면서 간신히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죽이는 말을 해오지 않았던가. 제발, 부디 그러지 말기를. 나도 누군가를 살릴 수 있기를, 같이 살기를.


    이인성 작가의 소설 <낯선 시간 속으로>의 마지막 구절이자 나를 살려낸, 살아있게 한, 아니 살아지게 한 문장들을 남겨본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돌이킬 필요가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 

내가 이곳에서 기다리던 어느 순간? 이제, 그것은 지나간 매순간이었으며 다가올 매순간이다. 

이제,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나는 그 모든 일을 받아내겠다. 

...곧 개찰이 시작될 것이다."


*필자소개

청춘을 허비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한량. 어두운 자취방의 혁명가. 문학과 영화, 음악과 라디오에 기대 하루하루 때우고 있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중이다.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틈새
    2017.10.12 12:1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하나하나의 구절, 삶의 이야기가 위로로 다가옵니다. 멘체스터 바이 더 씨. 저도 그렇게 보았습니다. 너무나도 덤덤해서... 조용한 힘이 되었더랬지요.
  2. 살아지는 것
    2017.10.15 17:4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자기개발을 강요받으며 살아오다 보니,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시간 낭비란 생각이 들고, 무언가 남들보다 뒤쳐지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내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것들 (가정, 성격, 환경 등) 대부분은 내가 고른 것이 아닌 주어진 것인 만큼, 우리는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살아지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 글 감사합니다.
  3. 소설
    2017.10.15 21:4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일요일, 어김없이 교회에서 맥락없는 설교를 듣고 돌아오니 낮부터 몸과 마음이 피곤해진다. 저녁은 또 뭘먹어야하나 고민하다 샌드위치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아내는 아기랑 식빵을 사겠다며 마트로 갔다.

    의자에 퍼질러 앉아있는데 친구가 문자를 보냈다. 자신이 쓴 글 하나 읽어 보라한다. 링크를 눌러 한두 문장 슬쩍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글하나 쓰는데 감정을 쏟아 담은 모양이다. 무미건조한 내 감정을 한껏 끌어올려 읽어야 장단이라도 맞추겠다 싶어 나중에 읽어보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아기를 재우고 찾아온 평온한 일요일 저녁이다.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궁상떠니 '감성 돋는다'는 말이 적절한 타이밍이 온다. 냉큼 글을 찾아 읽었다.

    글을 읽기 시작하며 이 글이 친구의 이야기란 사실을 잊고 글 속 주인공에 몰입해버렸다. 소설인줄 착각할 정도로 필자의 시각에 심취했고 공감을 했다.

    몰입은 오래가지 않았다. 베드로전서? 설교를 하려하나? 영화 소개도 해주네? 몰입이 깨진 후 필자는 내가 이전에 몇 차례 보았던 익숙한 문체로 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풀어 담는다. 그런 글을 다 읽고 멋진 글을 본 기쁨과 함께 아쉬움도 마음에 남았다.

    나는 그가 그런 삶을 살았다는 건 잘 알고있다. 그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잘 알고있다. 그러나 하나의 글로 정리되어 있는것이 싫었다. 다양했던 삶의 모습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이 싫었다. 각각의 모습과 이야기를 날 것으로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블로그에 자신의 이야기를 맘 껏 써줬으면 좋겠다. 이 글을 볼때 그의 글은 작은 이야기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는게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초등학교의 삶을 성경 구절 없이 읽고, 영화 주인공의 삶을 바라본 그의 생각을 감사편지 없이 말이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그의 속 마음과 과거를 알 기회가 많이 없었다. 피곤한 밤이어도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작은 이야기 하나 더 알게 된건 그냥 좋다. 그래서 오늘도 괜찮은 날이다.


고통을 대할 때 : 헤로인보다 미메시스




강선구*

 


    멕시코 국경지대인 티후아나에 사는 리카르도(가명)의 삶은 평범했다. 몇 년 전까지 그에게는 두 아이와 아내가 있었으며, 직장을 다녔다. 하지만 현재 그는 2불짜리 헤로인에 중독되어 온 몸이 고름으로 덮여 있으며, 그로 인한 육체적 고통은 그를 매일 밤 잠들지 못하게 한다. 고름을 치료할 돈도 없고 직접 자신의 몸을 치료할 엄두를 못 낼 만큼 심각한 상황 앞에서, 그는 고통을 이겨낼 최선의 방법으로 또 다시 헤로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헤로인을 구입하기 위해 돈을 구하는 방법은 구걸이었다. 리카르도가 거주하는 멕시코 국경지대인 티후아나는 미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남미 각국에서 모여든 이주민들이 거리에서 노숙 생활을 하고 있었고,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 집권이후 미국에 진입하지 못하고 대기중인 이주민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마피아 조직들의 악랄한 움직임이다. 마피아 조직들은 거리로 내몰린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게 마약과 헤로인으로 달콤한 유혹을 건넨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처음 몇 달 동안 마약과 헤로인을 무료로 나눠주는데, 생의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유혹은 피할 수 없는 덫이다. 중독은 그렇게 시작된다. 마피아 조직은 그렇게 헤로인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마약 값의 지불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거리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돈을 모으기 위해 구걸을 시작하게 되지만 결국 겉잡을 수 없는 빚더미에 앉게 된다. 상황이 여기까지 오면 마피아 조직들은 더 이상 가망 없는 채무자들을 장기매매나 성매매 등의 방법으로 처리한다. 이는 티후아나까지 가지 않더라도, 미국 캘리포니아 도시의 노숙인 밀집지역인 스키드로우(Skid Row)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물론 멕시코의 경우는 도시경찰이 마피아들과 결탁했기에 더 심각한 상황이지만, 미국의 노숙인들 역시 소위 ‘거리환경미화’를 목적으로 자주 도시로부터 추방되곤 한다. 이러한 풍경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것 같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내가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곳 가까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리카르도를 만난건 3주전 8월 뜨거운 여름 어느 날이었다. 그는 더 이상 걸을 수조차 없는, 고름으로 가득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로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 팀은 매달 한 번씩 티후아나의 같은 지역에 지난 몇 년간 의료와 배식, 미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회의 선교사역을 하는 중이었다. 그의 행색은 무척 메말랐었다. 뜨거운 여름날씨라 더 그런지 피부도 메마르고 몸짓도 메말라있었다. 자기의 몸이 치료가 가능하겠냐고 물으면서 그는 조심스럽게 앉아 있었다. 우리 팀의 의료를 담당하시는 한 집사님은 고름이 덮인 끔찍한 몰골의 몸을 주저함 없이 만지시면서 일단 고름을 다 짜내보자고 제안하셨다. 그리고 둘의 사투는 시작되었다. 그 광경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리카르도는 고통을 못 이겨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곧 통곡으로 바뀌었다. 1시간가량 그의 다리를 가득 채운 고름들을 짜내는 동안,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어떤 말도 건넬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가브리엘라(가명)라고 본인을 소개한 한 여성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배식팀에서 밥을 받아서 지나가던 중 그의 통곡을 듣고 왔다고 했다. 가브리엘라는 조용히 리카르도에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몇 년 전 그녀는 사랑스러운 두 아들과 함께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살인청부업자 일행이 옆집에 사는 남자들을 죽이기 위해 찾아왔는데, 자기 아들들을 옆집 남자들로 착각해 한꺼번에 두 아들 모두를 살해했다. 그녀는 감당할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경찰도 그 어떤 기관들도 가난한 그녀의 일을 돕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그녀의 눈 앞에는 사랑스러웠던 두 아들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그 아련함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기에 그녀는 매일같이 죽음을 경험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맞춰 준 헤로인에 취했었을 때, 그녀는 유일하게 그 고통을 잠시 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망각상태를 지속하기 위해 헤로인에 스스로 중독되는 삶을 이어갔다. 그녀는 헤로인 없이는 잠도 잘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따금씩 기부받은 옷가지들을 팔거나 몸을 팔면서 헤로인을 구하고 있는 그녀는 헤로인에 중독되기를 선택한 자신의 결정이 원망스럽다고 담담히 말한다. 그녀의 몸 역시 썩어가는 중이었고, 자식을 잃은 고통은 헤로인이 주는 찰나의 망각을 지나면서 더욱 깊숙이 그녀의 영혼에 새겨지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통곡하며 고름을 짜내고있는 리카르도에게 말을 건넨다. 왜 우냐고. 그리고 그녀도 운다. 리카르도는 몸이 아파서도 울지만, 삶의 고통이 너무 버거워서 운다고 말한다. 홀로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운 고통 앞에 그와 그녀는 그저 운다.


   어쩌다보니 나는 미국에 2년째 거주중이다. 이 곳의 풍경은 한국과 많이 다른 듯 하면서도 닮아 있다. 이주민이 된다는 경험은 불안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일이라는 걸 터득하고 있는 시간들이다. 나는 외부인으로서 미국에 살고 있으면서, 가장 익숙한 곳이었던 한국에서도 외부인이 되어가는 중이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외부인이 되어갈수록, 정착인이 되고픈 나의 욕구도 강렬해진다. 하지만 외부의 어느 곳에서도 나의 정착을 확신할 수 없다 보니 내면적 주체에 대한 확고한 무언가를 기대하지만, 그마저도 한없이 불안하다.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불안이라는 고통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에 따르면, 불안이라는 속성은 존재에게 필연적인데 그 이유는 존재가 세상 가운데에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불안과 마주할 때, 존재는 본질적인 존재물음을 선택할 수도 있고, 비본질적인 존재물음을 택할 수도 있다. 비본질적인 존재물음은 존재불안의 본질에 직면하지않고, 세상의 기준들을 통해 해결을 도모하는 회피하는 태도이다. 과연 하이데거가 말하는 본질적인 존재에 대한 물음이 내 안의 불안을 극복하게 만들수 있을까. 또는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말하는 고통의 발생원인인 자기유지적 메커니즘을 비판하는 비동일시적 태도인 ‘미메시스’가 그 답이 될수 있을까. 아도르노는 자기유지적 태도는 동일성의 원리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며, 이는 지배와 폭력의 메커니즘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그렇기에 나와 다름을 개방하는 비동일시적 태도를 가지고, 외부의 고통을 내면화 해보는 태도를 미메시스적 태도라고 설명한다. 나의 불안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멕시코에서 만난 거대한 고통들의 실체 앞에서, 존재의 질문이나 미메시스적 태도가 과연 잠깐의 망각을 허락해주는 헤로인의 효능보다 삶에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에 짓눌린 자들에게 있어 고통을 해석하는 행위 그 자체는 삶의 다른 방향성을 가질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해석의 출발은 실존적 개인에게 우선적으로 놓여 있다. 하지만 고통이 더욱 괴로운 이유는 바로 ‘홀로있음’ 때문이다. 물론 불안과 고통은 세상에 타자들과 함께 놓여 있는 상황이기에 발생한다는 하이데거의 지적에 동의하지만, 고통이라는 실존적 상황에 직면해서부터 오롯이 홀로 담당해야 한다는 사실은 괴로움을 증폭시킨다. 홀로 해석해야 하고, 홀로 나아가야 한다. 이 때부터 고통은 개인의 고유한 일이 되며, 그래서 더 고통스럽다. 예수가 말한 복음인 ‘좋은 소식’은 나홀로의 고통이 아닌 ‘신과 함께 함’이 건네주는 치유의 소식이다. 고통은 함께할 때 치유의 가능성을 얻는다. 물론 그 함께함이 간섭이나 정죄의 형태로 흘러가면 더 끔찍한 고통이 된다. 그러나 신이 인간의 고통에 함께 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는 고통을 새롭게 해석할 가능성을 얻는다. 그 방식은 전능함을 내세우며 상대방을 자기의 틀 안으로 통제하거나 간섭하는 것이 아닌, 자기유지의 속성을 접어두고 자기와 다른 상대방의 고통에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아도르노가 말하는 동일시를 극복하는 미메시스적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리카르도에게 말을 건네는 가브리엘라에게서 나는 미메시스를 느꼈다. 그녀는 본인의 고통을 통해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함부로 조언하거나 간섭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을 자기 안에 가두지 않았고, 상대방에게 고백함으로써 상대방의 고통이 홀로 있지 않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그들은 그저 서로의 고통에 참여한 것이다. 서로를 동일시(identify)하지 않고, 그렇다고 서로를 대상화(reify)하지도 않는 관계가 고통에 대한 치유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와 그녀의 사건적 만남은 ‘나홀로 고통’과 사투하는 굴레에서 벗어나, 함께 고통을 해석할 수 있는 치유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 가능성은 나로 하여금 불안과 고통에 적응하려는 수동적 태도가 아닌, 불안과 고통을 입체적으로 해석하고자하는 추동적 태도로 나아가게 만들며 ‘함께 해석할’ 동역자들과의 만남을 희망하게 만들어주었다.


* 필자소개

현재 '목회적 삶'과 '목회자의 삶'의 경계에서 고민중에 있으며, 친구들에게는 네살 선구라 불리우고 있다. 미국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에서 종교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목사수련생 과정을 밟고있는 중이다.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역사를 기록하는 자의 책임[각주:1] 





이상헌

(녹색전환연구소장·한신대 교수/ 한백교회 교인)




  최근 영화 ‘택시운전사’가 화제가 되면서 독일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외신기자 중 가장 먼저 광주에 들어가서 취재 후 우여곡절 끝에 필름을 국외로 보냈고, 다시 목숨을 걸고 광주에 들어가서 계엄군이 물러간 평화로운 광주 시내의 모습을 담았다. 그가 남긴 영상은 광주 민주화운동이 폭도들에 의한 만행이고 광주 시내가 아비규환 상태여서 진압할 수밖에 없었다는 계엄군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로 작용하였다. 군홧발에 언론이 짓밟혀 광주 밖에서는 아무도 광주의 비극을 알 수 없었을 때, 역사의 진실을 기록하려는 그의 용기 덕분에 우리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우리 독일인이 2차 대전 때 했던 만행을 기억하는 만큼 5·18도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무거운 책임을 동반한다. 많은 언론인들이 모범으로 삼았던 리영희 선생은 한국 현대사의 모순들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이를 기록함으로써 언론인의 역사적 책임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그 결과 선생의 삶은 화려한 영광보다는 탄압과 투옥, 강제해직 등 온갖 고난으로 점철되었다.


  그러나 지난 8월 초 시사주간지 <시사인>에 보도된 기사는 언론인의 역사적 책임이 이제 헌신짝처럼 버려졌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언론사 간부들이 당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에게 보낸 청탁성 문자메시지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신문사 운영이 어려우니 광고비 지원을 더 해달라는 부탁, 사외이사 한 자리 줄 수 없겠느냐는 요청, 아들이 삼성전자 입사시험에 지원했는데 꼭 취업되게 해달라는 청탁, 삼성의 면세점 사업을 언론이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느냐고 물어보는 문자 등이었다. 읽는 사람의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의 비굴함과 몰염치였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으며, 삼성 같은 재벌이 언론을 얼마나 우습게 여길지 알 만했다. 이재용의 재판에 명백한 증거가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언론들이 왜 삼성 편에서 기사를 작성했는지 그 속내가 너무나 뻔히 들여다 보였다.


  정권의 언론 길들이기는 역사가 제법 길지만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극에 달했다. 이명박 정권의 측근이던 김재철씨가 MBC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시사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정권 옹호 방송이 증가했으며, 보복성 인사가 늘어났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기자들이 해고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더 강력한 언론 통제가 이어졌다. 청와대에서 언론의 보도방향과 기조에 대한 지침이 하달되었고, 세월호 참사처럼 정권에 불리한 내용들은 보도 통제가 이루어졌다.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에 대한 부당한 해고는 계속 이어졌으며, 언론의 비판적 기능은 거의 소멸되다시피 했다. 물론 언론 길들이기에 저항한 기자들도 소수지만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 보도로 드러난 언론사 간부들의 행태는 지난 정권의 언론 길들이기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우리 사회가 자정 능력과 윤리가 실종된 천민자본주의 사회로 완전히 고착되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언론인 후배들이 염치와 윤리를 모두 다 버리고 재벌과 정권이라는 권력 앞에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면서 리영희 선생은 어떻게 느끼실까? 힌츠페터 기자는 또 어떻게 느끼실까? 마침 두 분 모두 5·18 묘역에 가까이 누워 계신다. 역사를 기록하는 언론인의 책임감이 남달랐던 두 분의 염려와 한탄 소리가 여름날 천둥소리처럼 가까이서 들리는 듯하다.


ⓒ 웹진 <제3시대>

  1.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24&artid=201708211451291#csidx7b2f76b7009a05db511a332cfc5197a 이 글은 주간경향에 실린 글입니다.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벌써 일년.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벌써 일년. 남편은 8월 1일자로 회사에 복귀했다. 육아휴직이 끝났다.

       남편의 휴직 첫 날, 아이들을 함께 등원시키고 즐겁게 시작한지 채 한 시간도 안되어 부부가 대판 싸웠다. 다툰 이유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절대 서로 하루 종일 붙어있지 말자’는 결론을 내리고 화해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를 둘 키우는 동안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진짜 가족이 된 느낌에 조금 씁쓸하기도 했지만, 현명한 결론이었다.

        남편은 일년 동안 아이들과 해보고 싶은 일을 그때 그때 적어 내려가고, 나는 육아와 살림을 잠시 내려놓고 '엄마'가 아닌 나를 찾아보기로 했다. 모두들 ‘다신 없을 일 년’이라며 알찬 계획을 물었지만, 타고난 부부의 성격상 조급해하지 않고 그때 그때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지냈다. 아이들이 없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맛집을 찾아 다니기도 하고, 궁금했던 다른 동네를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비수기 저렴한 숙박비와 마일리지 항공권을 이용해 아이들과 장거리 여행도 다녀왔다. 

      남편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 남편 육아휴직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6개월이었다. 나는 직장으로 돌아갔다. 물론 예상보다 훨씬 적은 보수였고 계약직이었지만, 7년의 경력단절여성에게 예전에 하던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일터가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야근이 일상화 된 업종이라 일주일에 한두 번 겨우 아이들의 얼굴을 볼 때도 있었다. 집에만 오면 쓰러져 자기에 바빴다. 가끔 얼굴 보는 아이들이 이제 나를 보며 "아빠!"라고 불렀다가 "아니, 엄마"라고 고쳐 부른다. 세 남자가 지내는 집안 꼴은 한숨이 나오지만, 나보다 용감하게 다섯, 일곱 살의 남아 둘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는 남편을 보니 고맙다.

       남편의 복직 후에도, 나의 계약기간은 4개월이 더 남았다. 직장에서도 계약을 더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마음만 먹으면 친정엄마께 아이들을 맡기고 워킹맘이 될 수도 있었을 거다. 헌데, 남편의 복직과 함께 나는 집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남편 말처럼 내가 너무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7년만에 돌아간 일터는 즐겁고 신나는 일이 가득했지만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이 과중한 업무를 소화해내고 있었고, 남편이 직장으로 돌아간 빈자리까지 메울 자신이 없어 집으로 도망치기로, 아니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서로의 역할을 바꿔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 년이었다. 힘들게 밥벌이하는 남편에게 잔소리 덜 하는 아내가 될 자신이 생겼다. 꾸준히 공부하고 준비해서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다시 일터로 돌아갈 자신도 생겼다. 아이들이 이 일 년을 어떻게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부부에게 있어서는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복직이 다가온 남편에게 물었다. 

        "어때? 다시 돌아가는 심정이? 아쉽지 않아?" 

        "글쎄, 그냥 후련해. 아이들이랑 해보고 싶은 거 거의 다 해봤어." 

        복직 후 며칠이 지나 남편에게 물었다. 

        "회사생활은 어때?" "어후, 죽을 맛이야." 

        속으로 이야기했다. '여보, 아직 우리에겐 둘째(를 위한 육아휴직이)가 남아 있어. 힘내.'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다름'이 인도하게 하라


주안 워딩턴
(뉴질랜드 Ackland University of Technology Ph.D 신약학)

 


    1999년 말, 아니면 2000년 초 이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이 방글라데시에 도착한지 만 3년이 지난 때였다. 우리가 살던 나환자 병원 관사는 깊은 시골마을에 위치해서 전기공급이 아주 불규칙했다. 그런 환경에서 나는 방글라데시의 언어 <방글라>를 배워야 했고, 이를 위해 낮이면 마을사람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저녁이면 초를 너댓개씩 켜놓고 책과 사전과 씨름을 했다. 그 결과 만 3년이 지난 후에는 어디서 누구와도 방글라로 대화하는데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릭샤>를 타고 집에서 제일 가까운 시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흔한 교통수단인 릭샤는 자전거를 개조해서 만든 것이로 앞부분은 자전거같이 핸들과 운전자가 앉는 곳이 있고 그 뒤에는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조그만 의자가 부착되어 있는 것이다. 두세사람의 무게가 실리는 의자 아래에는 두개의 바퀴가 있어서, 릭샤의 바퀴는 총 세개이다. 그러한 릭샤에 올라 앉은 나는 그날 따라 편안함을 느꼈다. 눈에 들어오는 넓은 논의 녹색도, 불어오는 바람도 내 기분을 고조시키는데 한 몫을 했다. 나는 즐거워서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느낌이었다. 굴러가는 릭샤를 바라보며 이 릭샤의 바퀴 세개가 릭샤를 안전하게 굴러가게 하듯, 한국어, 영어, 방글라 이 세 언어들이 내 삶속에서 균형을 잘 맞추고 있음을 느끼고 기뻐했다. 세발 달린 솥처럼 위, 촉, 오, 삼국이 있으면서 안정을 유지했다는 중국역사 이야기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바퀴가 세개라도 물론 제일 중요한 바퀴는 앞바퀴이다, 방향을 정하기 때문이다, 라는 생각으로 넘어가면서 나는 내 삶속에 균형있게 안착된 세 문화 중에서 앞바퀴 같은 것은 한국어로 상징되는 한국문화이지, 라고 단정지었다. 그 때였다. 이러한 단정을 바로 뒤집는 소리가 있었다: “아니,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여야 한다.”

   나는 이 말이 하느님 또는 성령님의 소리임을 알아챘다. 그 때까지 내가 들어온 ‘하느님의 음성”은 여러가지 특성이 있었다. 첫째 이 세상의 부드러운 어떤 것보다 부드럽고, 둘째 위로와 격려를 주실 뿐 아니라 종종 나를 돌이켜 반성하게 하고, 또 내가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어떤 이질적인 내용을 품기도 한다. 무엇보다, 아, 하느님의 소리구나, 라고 단번에 알아차리게 하는, 부인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적어도 내 경험에 있어서는 그랬다. “아니,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여야 한다” 라는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좀 멍해졌다. 전혀 예상치 않은 이 말의 뜻은 무엇인가… . 조금 후에 나는 물었다: “왜 영어여야 합니까? 내가 가장 오래 사용해오고 나에게 제일 편안한 이 한국어가, 한국적인 속성이, 내 삶을 인도해 온 것이 아닌가요?” 이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이 왔다: “아니다, 다름이 앞서 가게 해야 한다.”


   그 경험 이후 나는 때로 때때로 그 말을 생각하게 된다. 몇사람들과 그 경험을 나눴지만 그들의 반응에는 별 감동이 없는 듯 했다. 하지만 내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고, 내 안에서는 그 말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소망이 생기게 되었다.

    아, ‘다름’이란 얼마나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혼란케 하고 외롭게 하고 힘들게 하는가! 방글라데시에 오기 전에 이미 나는 남편의 나라인 뉴질랜드에서 8년정도를 살았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중반까지 뉴질랜드의 삶속에서 나는 의식주의 차이뿐 아니라 ‘예의’에 대한 개념과 관습의 다름 때문에 몸고생 맘고생을 적지 않개 했다. 하지만 8년여간의 삶을 통해 외국에서의 삶이 어느정도 편안하게 느껴지고 자신감도 붙기 시작하던 때에 나는 다시 또 다른 외국을 향해 떠났던 것이다.

    나무를 이식하면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이식한 후 한동안은 나무가 몸살을 겪는다. 나뭇잎들이 다 떨어져 내리고 죽어 가는 듯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살아나서 더 크게 자란다. 시들고 말라 죽지 않는 한… . 방글라데시의 한 시골마을에서 어린 나무들을 옮겨심으면서 심겨진 나무가 시들어가는 것을 볼 때 나를 보는 듯 했다. 죽은 듯 하다가 다시 새 가지와 잎을 피워내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고 내게 용기를 줬다.

    제 3의 나라인 방글라데시에서 8년간을 살아내고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온 후에 나는 신학공부를 시작하였다. 2006년도에 시작한 신학공부는 2016년도 말에 신학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지속되었는데 이 기간동안 나는 본격적으로 ‘다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다름이란 신학이나 성경해석의 내용뿐 아니라 진리추구의 방식과 표현, 더 나아가서 세계관의 다름이었고, 그에 대한 인식은 한 신학교수와의 갈등에서 시작된다.

    내가 공부하던 Laidlaw College의 Christchurch시 학장으로 계시던 Bob 교수님에게 나는 Hermeneutics (해석학), Soteriology (구원론), The Gospel of John (요한복음), Theological Method (신학방법론)등을 배웠다. 나는 Bob 교수의 강의시간에 제일 많이 질문을 던지는 학생중 하나였다. 교수님이 소개하고 제시하는 내용과 다른 생각들이 내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느꼈는데, 처음 부딪친 사건은 그가 우리들에게 부여한 과제와 관련되었다. 그 과제는 <해석학>과목의 에세이로서 주제는 ‘How to Read the Apocalyptic Literature’ (묵시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였다. 그 때 나는 ‘Christo-centric’ 즉 ‘그리스도 중심’을 성경전반 뿐 아니라 묵시문학을 읽어내는 주요한 ‘렌즈’라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에세이를 마쳤다:


Jesus, who is the Beginning and the End, summarizes the message of the apocalyptic literature in three short sentences: “In this world you will have trouble. But take heart! I have overcome the world” (John 16:33).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예수는 묵시문학의 중심메시지를 다름과 같은 짧은 세 문장으로 요약하셨다: “이 세상에서 너희는 환란을 당한다. 하지만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큰 환란과 고통에 직면한 사람들 가운데 발생한 묵시문학에 필수적인 주제는 ‘핍박’ ‘용기’ ‘마지막 승리에 대한 소망’이었고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말 중에 그것이 분명히 표출되었다고 본 것이다. 이 에세이는 “It missed Christology,” 즉, 기독론이 결여되었다는 Bob교수의 비판이 적혀서 되돌아 왔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게 가장 중요한 해석학적 렌즈를 내가 적지 않을리가 없었다. 그것이 내 에세이의 마지막 문장에서 보이지 않는가! 나는 교수님에게 내 에세이를 다시 한번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렸고 그분은 다시 읽으신 후에 자신의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 하셨다.

    나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나는 그에게 일정한 금액의 돈을 그의 통장에 보냈는데, 그는 통장에 도착하지 않았다, 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였다. 그 답답함을 나는 내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Presence and Absence 


He calls ‘presence’ ‘absence.’ 

I’ve given it; he says it hasn’t come to him. 

Did I not give or he did not get it? 


I see ‘presence’; he sees ‘absence.’ 

My ‘presence’ is his ‘absence,’ 

My ‘absence’ is his ‘presence.’ 


Yes, his ‘presence’ is my ‘absence.’ 

But I do not know of his ‘absence,’ 

For he is neither aware nor says of the absence. 


‘있음’과 ‘없음’ 


그는 ‘있음’을 ‘없음’이라 한다. 

나는 주었는데 그는 받지 않았단다. 

내가 주지 않은 것인가 그가 받지 않은 것인가. 


나는 ‘있음’을 보는데 그는 ‘없음’을 본다. 

나의 ‘있음’은 그의 ‘없음’이요. 

나의 ‘없음’은 그의 ‘있음’이다. 


그의 ‘있음’은 나의 ‘없음’이 맞다. 

단지 나는 그의 ‘없음’을 모른다. 

그가 자신의 ‘없음’을 알지도 말하지도 않기에.


    끊임없이 서양의 신학과 해석학에 맞춰나가기를 강요받는 듯한 느낌, ‘부족함’이나 ‘없음’은 나 자신 뿐이고, 상대 (서양신학)는 자신의 ‘없음’을 알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않고 있는 듯한 느낌을 적은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특별히 <명시성>과 <암시성>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내가 제출한 에세이에 사실상 ‘Christo-centric’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그 단어를 몰라서도 아니요, 예수중심적 성경읽기를 반대해서도 아니었다. ‘그리스도 예수 중심’을 표현한 나의 표현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내게 익숙한 암시적인 표현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주리라 생각한 것이 실수였고,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한 절대 읽어내지 못하는 서양학자들의 특성을 모른 것이 잘못이었다.

   그 당시에는 나의 다른 생각과 방법론을 표현할 ‘언어’와 논리성을 찾아내기가 힘들었다. 어느날인가Bob 교수와 도서관에서 만나 나의 입장을 이야기하려 하다가 내게서 예기치 않은 언어가 돌출되었다. 답답함이 극에 달하자 터져나온 <눈물>이라는 언어였다. Bob 교수앞에서 정말 싫었지만, 피하고 싶었지만, 내가 눈물을 보이고 만 것이다. 그는 어색하고 어쩔 줄을 몰랐던 것 같다. 그 ‘사건’ 직후에 내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젠가 박사논문을 쓰게 된다면 Bob교수님이 내 수퍼바이저가 되면 좋겠다는. 스스로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나와의 ‘다름’이 크고 분명한 분과 계속 함께 가야한다는, ‘다름’이 나를 인도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마음한켠에 있어서 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훗날 그는 내 논문의 수퍼바이저가 되었다.)

    신학공부가 계속되면서 내 언어를 찾는 노력도 계속되었다. 구차하다, 라는 느낌이 들어도 설명에 설명을 거듭해야 했다. 그리고 그 설명은 ‘논리적’이어야만 했다. 나는 어떤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는가, 그 이해는 어떤 근거에서 인가, 그 근거는 어디서 왔는가, 어떤 학파와 비슷하고 어떤 학파와 그 입장을 달리하는가, 등의 내용을 유명한 학자들의 주장을 앞세워서, “—한 관점에서 볼 때,” “그러므로,” “하지만,” “이와 아울러”등의 접속사를 사용해서, 비교하고, 대조하고, 비판하고, 제안하고, 주장하고, 또 제한적으로 결론짓는 방식을 익혀 나갔다. 그리고 과학적, 분석적, 명시적, 논리적 성격이 두드러진 서양의 사고및 표현방식에 대조되는, 시적, 통괄적, 암시적, 직관적 성격의 한국적/동양적 사고내용과 표현의 강점을 소개하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언어도단’의 세계를 지향하고, 소중한 내용을 이야기 할 수록 말을 아끼는, 동양의 정신문화의 한 중요한 흐름을, 아이러니칼 하게도 수많은 말들을 사용하여 자세히 설명해내야 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논리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논리 정연함’을 기대하게 되었다. 2013년에서 2015년까지 3년간 나와 남편은 다시 방글라데시로 돌아가서 남편이 병원장으로 있는 시골병원 컴파운드 안에서 살았다. 컴파운드 안에는 교회가 있었고 일요일이면 우리는 방글라데시 목사님이 인도하는 예배에 참석하곤 했다. 설교시간에 나는 종종 목사님의 설교가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속으로 투덜댔다. 목사님의 설교가 어떤 한 주제로 시작하다가 너무나 많이 옆가지로 흘러서 나중에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끝나곤 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처구니 없게도) 내가 쓰는 논문처럼, 설교가 화살을 쏘듯 한 방향을 향해 가서 결론을 맺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이웃들이 그러한 설교에 은혜를 받고 있음을 보고 듣게 되면서 내 마음이 돌이켜졌다. 진리를 추구하고 설명하는데 있어서 쏜 화살을 쫒아가듯 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보슬비가 내리듯 온 곳에 두루 펼쳐지는 방식도 있음을, 아울러 두 방식에는 다름이 있을 뿐, 우열은 있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Bob교수는 내가 박사논문을 쓰는 4년 반동안 든든한 조언자요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도 나도 서로 다름을 알지만 존중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 감사하다. 서양인 남편의 다름때문에 내가 많이 변했다. 남편도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안으로 들어와 많이 변했다. 얼마전에 내 막내 아들과 대화를 하다가 그에게 “설명해봐라”고 주문을 하였다. 그의 망설임 없는 응답은 “설명하지 않겠어. 내가 느끼는 것은 직관이야. 설명하면 그 가치가 엷어져” 였다. 그의 말에 나는 바로 마음을 돌이켰다. 그렇다, 그가 내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며, 내가 들을 수 없는 그만의 어떤 진리의 세계가 있음을 나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름이 나를 인도하게 하는 일, 여전히 어렵다. 종종 잊고 산다. 그리고 내가 앞서간다. 내가 앞서면 ‘다름’은 잊혀지기가 쉽다. 하지만 내가 뒷서면 그 다름이 보인다. 그 다름때문에 내가 멈추게 되는 불편함이 있지만, 멈춤으로 인해 배우는 것이 많다. 또 하나의 이득은 그 다름은 ‘거울’과 같아서 그를 통해 나 자신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보여지는 나 자신 역시 아름답고 귀하고 가치있는 존재이다.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보험[각주:1] 





이상헌

(녹색전환연구소장·한신대 교수/ 한백교회 교인)




  일자리 정책과 소득주도 경제성장은 새 정부의 핵심 경제 의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최저임금 1만원을 2020년까지 달성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지자체나 자영업자 모두 걱정이 태산같다. 단기적으로는 이들의 염려가 수긍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대기업 독점이 아니라 공정한 거래와 합리적인 경쟁이 이뤄지는 시장을 만든다면, 정규직 전환이나 최저임금 1만원도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헨리 포드 2세가 미국 자동차노조위원장 월터 루터와 함께 자동화된 공장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헨리 포드 2세가 월터 루터에게 “앞으로 이 로봇들에게도 노조회비를 걷을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사장님은 앞으로 저 로봇들에게도 차를 팔거냐”고 되받아쳤다. 노동자들의 소득이 올라 구매력이 늘어나면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 최저임금 1만원 정책과 기본소득 정책이 함께 동반된다면 사장님들의 염려는 좀 더 빨리 사라질 수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창의적인 발상이 나올 가능성도 커진다. 그 이유는 빈곤층의 정신적 처리량(mental bandwidth)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책에 소개된 내용이다. 엘다 샤퍼 교수와 센딜 멀레이너선 교수는 독특한 실험을 했다. 쇼핑몰에서 고객들에게 설문을 했다. 만일 당신 차가 고장 나서 정비소에 갔는데, 수리공이 다 고치는 데 150달러가 들겠다고 하면 차를 지금 고치겠는가, 아니면 다음에 고치겠는가? 이번에는 수리비용을 1500달러로 늘렸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사람들의 소득수준도 확인했다. 그리고 응답자들이 고민하는 동안 간단한 인지능력 테스트를 시행했다. 테스트 결과를 종합해봤더니 차 수리비로 150달러가 드는 상황에서는 응답자가 고소득자건 저소득자건 테스트 점수에 차이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1500달러가 드는 상황에서는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테스트 점수가 낮았다. 저소득층은 수리비가 커지자 생각이 복잡해져 테스트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소득층에게는 150달러나 1500달러나 상대적으로 큰 차이가 없어서 여유있게 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도 컴퓨터처럼 너무 많은 정보를 처리하게 되면 과부하가 걸려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된다. 이게 정신적 처리량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근시안적 해결책에 매달리거나 현명하지 못한 결정을 하는 이유는 우둔하거나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다. 열악한 환경이 너무 많은 일상적 고민을 안겨주기 때문에 그들의 정신적 처리량이 한계에 부딪힌다. 가난한 사람들의 정신척 처리량은 언제나 한계치에 달해 있다. 샤퍼와 멀레이너선은 이것을 정신적 처리량에 매겨진 세금이라고 하였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이 세금을 많이 낸다. 인내심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하기가 무척 힘든 피곤한 상태에 늘 놓이게 된다. 따라서 실제로 빈곤을 없애려면 사람들의 성격이 아닌 그들의 결핍상태를 해결해야 한다. 최저임금 1만원과 기본소득은 바로 이러한 결핍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시급하게 삶을 짓누르는 부담에서 벗어나게 되면 정신적 처리량의 부하도 줄어들고 창의적인 생각도 가능하게 된다. 특히 청년층에게는 이러한 마음의 여유와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여유와 시간을 제공하는 것은 사회적 투자다. 이들의 창의력과 열정은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보험이기 때문이다.



ⓒ 웹진 <제3시대>

  1.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24&artid=201706191531591 이 글은 주간경향에 실린 글입니다.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4차 산업혁명 시대 '우울한 노동자'[각주:1]


조영관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ㄱ은 프로그래머다. 스마트폰 게임을 만드는 일을 한다. 어제도 새벽에 퇴근했는데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새벽에 회사로 출근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가 이번주는 징검다리 휴일이 많아 하루 15시간 이상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 이른바 ‘전투모드’. 그러다 보면 집이 회사인지, 회사가 집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빨갛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달력에 빨갛게 표시된 오늘 날짜를 본다. 근로자의날. 막내디자이너가 근로자의날에 회사가 쉬는지 팀장에게 물었다. 팀장은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그런 거 없어.”

   ㄴ은 베트남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휴대폰 부품을 만드는 작은 공장에서 일한다. 한 달에도 여러 새로운 제품이 나오기 때문에 부품의 종류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여러 하청업체를 거쳐 일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물량이 늘 들쭉날쭉하다. 일이 없는 날은 회사 옆 컨테이너에서 일주일 넘게 쉴 때도 있고, 일이 몰리면 주말까지 잔업과 특근을 해야 한다. 베트남에서 5월1일 노동절은 국가에서 정한 중요한 공휴일이다. 그날은 일하러 가지 않고 동료나 가족들과 함께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10년 가까이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ㄴ은 노동절에 회사를 쉬어본 적이 없다. 다른 공장 이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노동자의 날에 왜 회사가 쉬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사장이 말했다. “이놈 빨갱이네.”

   ㄷ은 오토바이 퀵서비스로 물건을 배달하는 일을 한다. 오토바이는 10년이 넘은 골동품을 타고 다니는데, 스마트폰은 화면이 큰 최신 기종으로 4개를 사용한다. 주문을 뿌려주는 중개업체마다 각각 다른 프로그램을 쓰는 데다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빨리 좋은 주문을 받으려면 프로그램을 항상 켜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물건을 싣고 이동하는 중간에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물건을 전해주고 배달비를 받지만 수수료, 휴대폰 비용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얼마 없다. “당신은 노동자입니까?”라는 질문에 ㄷ은 스스로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하루 10시간 열심히 일하지만 회사에서 정해준 일이 아닌 매일 콜을 받아 일하니 노동자는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고 자영업자 대우받는 것도 억울하다 했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 (둘) 사이 어디쯤 있지 않을까요?”

   ㄹ은 음식을 배달하는 일을 한다. 학교를 다니며 학자금 대출을 갚으려고 시작했던 치킨배달이 벌써 3년이 넘었다. 똑같은 치킨매장에서 일하는데 올해부터 월급을 다른 곳에서 받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월급이 아닌 ‘배달수당’을 받는다. 배달직원을 직접 쓰지 않고 배달대행업체로 위탁을 주었기 때문이다. 휴대폰 터치 한 번이면 주문이 가능하고, 배달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다. ㄹ은 ‘알바’가 아닌 유니폼을 입은 ‘라이더’가 되었으나 학자금 대출금은 줄어들지 않았다. 자영업자가 되면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기 어렵고, 다쳐도 산재로 치료받기 어렵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ㄹ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원래도 그랬어요.”

    오늘은 127주년 노동절이다. 1년에 단 하루, 일하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유급휴일이다. 그러나 하루 8시간만 일하며 “햇빛을 보고 싶고, 꽃 냄새도 맡아보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스마트폰 게임을 만드는 프로그래머들은 오늘도 하루에 15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고 있고, 스마트폰의 부품을 만드는 이주노동자들은 고된 일이 끝나고 공장 옆 작은 컨테이너로 돌아가야 한다. 스마트폰을 4개씩이나 오토바이에 달고 다니며 하루종일 물건을 실어 나르는 이들과 배달 애플리케이션의 등장으로 늘어나고 있는 라이더들은 스스로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이 발명한 가장 최첨단 기술이라는 정보기술(IT)이 발달할수록 노동권은 후퇴하고 노동자의 얼굴은 사라지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704302049035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2015년 가을의 사진일기



신윤주*



9월 9일: 사치 

습도가 낮아지고 하늘이 높아지고 바람이 가벼워지고 볕은 더욱 맑아지는 계절이 책상 앞에 드리운 옅은 그림자 끝에 걸려있다. 그리고 나는 문득, 기쁜 마음으로 고요를 발견한다. 가을볕이 드는 창가를 고요히 누리는 것. 살아있음의 특권이다.


9월 25일: 자녀 

언젠가 너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염려하고 보고 만지고 생각하는 것은 눈을 뜨면 맞이하는 아침처럼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일상이라는 교묘한 함정조차 망각한 채 나는 네가 없었던 시간도 없을 시간도 상상하지 못하겠지. 지금 내가 그를 사랑하는 모양처럼 꼭 그렇게. 망각할 숙명이 싫었다. 두려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망각 이후의 애도를 요청 받을 순간까지 꽤나 긴 찰나를 살게 될 거라고, 뜻밖에도 쉽게 끝나지는 않을 거라고, 그러니 그때까진 모른 체 하고 살아볼까 보라고, 한번 그래볼까 보라고 말을 건넨다. 성급히 붉어진 단풍에게, 커다랗게 지는 붉은 해에게, 흙빛 심장이 시샘하는 순간의 흔적이 거기 있음으로 인하여.



9월 29일: 할머니 혹은 거짓부렁 

행복감의, 살아있음의 휘발되지 않은 잔여물이 일으키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있다. 죽음은 그보다 더 거짓말 같은 것이다. 비존재는 언제나 농담처럼 건네진다. 그녀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말했다. 나는 일이 년 있으면 죽을 거야. 실존의 측면에서 그녀는 나의 과거로부터 존재하나 생활의 측면에서 그녀는 다만 과거에 있다. 그럼에도, 만일, 그녀의 죽음이 도래한다면 그것은 불가피하게 도적 같고 거짓말 같을 것이다. 내 인생의 두 번째 여자. 저무는 인생의 모습이 아름답기를 원하는 나의 욕망은 그녀와 나의 관계만큼이나 오래 묵은 것이다.



10월 14일: 수치 

빛은 지는 빛이었으나 색을 압도했다. 푸른 나뭇잎이 주홍빛 석양을 등에 지고 실루엣으로 변하였다. 존재는 한낱 그림자가 되었다. 가까이 다가가 잎을 만나고 석양의 속임수로부터 존재를 확인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노래 한 소절을 불러보았다. 노래는 하루의 수고를 위로하였다. 숨을 고르고 말해주었다. 나역 때로 나의 존재를 구원하기 위하여 다른 존재의 진실로 다가가지 않는다.



11월 2일: 반성문 

연극 공연이 영화 상영과 다른 점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아마 그것의 재생 불가능성일 것이다. 일단 조명이 들어오고 무대가 시작되면 의도된 연출이 아닌 이상 준비한 공연이 마칠 때까지 무조건 'go'다. 요리도 그렇다. 예정된 시간에 맞춰 준비하기 시작한 요리는 신호탄과 함께 출발한 단거리 주자처럼 그렇게 앞만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요리는, 상연을 마친 공연처럼, 재생될 수 없다. 요리가 완성된 직후 그것의 온도가 아직 최적의 맛을 선사하는 동안 식사를 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준비한 무대를 보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특히 어떤 분야의 요리는 더더욱, 데워먹는 경우 방금 만든 음식과 본질적으로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음식 만든 사람은 안다.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몹쓸 '이것만 끝내고 가야지' 때문에 집에 도착한다고 한 시간이 다 되어 출발하게 되었다. 남편이 요리를 준비하고 있을 거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대체 내가 얼마나 잘못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반성문을 작성하였다. 여보 미안합니다.



11월 10일: 사치 II 

오늘 아침, 세 번째 마주침. 나는 그간 나무가 잎을 떨구는 거라고 대단히 착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가벼운 바람결에도 우수수 지는 잎을 보며 애초에 나무에게는 잎을 떨구고 말고 할 힘이 없었음을 듣게 된다. 가능한 것이 있다면, 놓치는 것뿐이다. 흩어지도록 내버려두는 일뿐이다. 우아한 흩음조차 나무의 몫은 아니다. 앙상해져가는 동안 풍성했던 시절을 추억하는 것쯤은 가능한 옵션일지 모르겠다. 또, 아주 앙상해질 날들을 준비하는 것도. 떨구는 행위인줄 알았던 것이 실은 그저 놓치는 일이었던 거라고 해도 내 손에 쥐어진 아주 작은 몫의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노래하고 싶은 아침.



    * 필자소개  

메모광. 학부에서 국제어문학을, 석사과정으로 비교문학을 공부했으며, 향후 프로이트 라깡주의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연구를 지속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기



심범섭*



   스물 두 해 전 군대 시절 어느날 한 동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죽음을 탐구하는 철학자가 되겠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그 무렵 자신에게 “검은 옷을 입은 철학자”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젊고도 젊은 그 시절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그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나는 이 결심을 금방 잊어먹고 오랫동안 죽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죽음이 나에게 사색과 배움의 가장 큰 주제가 되었다. 직접적인 이유는 가까운 분이 작고하신 일이지만 아마 그 동안 살아오면서 죽음을 더 많이 보고 들으면서, 또 내 몸의 노화를 느끼면서 나도 모르게 관심이 점차 자라왔으리라고도 생각한다.

   몇 달 전 강릉시 포남동에 있는 대지서점에 갔을 때 사장님한테 죽음에 대한 책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사장님은 그렇다고 하시면서 몇 년 전부터 죽음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온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 말에 이어 “100세 시대니까!”라고 덧붙이셨다. 사장님의 이 말씀은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의학발전으로 수명이 연장되는 것이 죽음의 경험을 이전과는 다르게 하고, 이 때문에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새로운 관심으로, 더 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장님이 말한 이유가 우리나라 같은 곳에서는 ‘고령화 사회이므로’라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한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죽음을 더 생각하게 된다면, 한 사회도 평균 연령이 높아질수록 죽음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오늘의 시대가 이전보다 감정과 종교 및 전인적이고 인문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시대라는 것도 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죽음은 강렬한 슬픔과 두려움과 연관되고 종교에서도 가장 중요한 주제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태양과 죽음은 오래 바라볼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죽음은 생각을 시작하기에도 생각을 지속하기에도 쉬운 주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계기로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거의 언제나 제기되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이다. 이 질문 자체에 대답하는 방법은 ‘죽는다’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간다, 그러므로 사는 것이 죽는 것이다’라고, 조금 철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럴 때 잘 죽는 것은 당연히 잘 사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하지만 더 일상적인 용법에서 ‘죽는다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경우에 따라 며칠 또는 몇 달 또는 몇 년이 되는) 인생의 마지막 단계를 사는 것을 뜻한다. 이 기간을 잘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 ‘만약 당신이 한달 후에 죽는다면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같은 질문이다.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드러내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를 실천하면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나에게 잘 죽는 것이 의미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사는 것은 죽음을 앞두고 삶을 정리하는 기간에만 아니라 언제라도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다. 또 늘 이렇게 산다면 죽음에 임박해 삶을 돌아볼 때 가장 후회가 없을 것이다. 또한 죽음이란 언제든지 우리에게 닥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다시금 잘 죽는 것은 잘 사는 것이라는 결론이 가능하다. 죽는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든 잘 살면 잘 죽는 것이라는 견해는 설득력이 크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이 물음은 인생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 가운데 하나이며, 수 많은 짧고 긴 대답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읽은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서 만난 한 구절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가 한 좋은 대답으로 내 마음에 감명을 주었다. 이 표현에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를 소박하게 생각해 보았다.


1. 사랑과 생명


    우선 사랑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겠다. 사람마다 다르게 정의하겠지만 그래도 사랑에 서로 다른 개체들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의미가 있음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널리 알려진 책 <사랑의 기술 (The Art of Loving)>에서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사랑을 인간이 혼자있는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이루는 연합”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20세기의 큰 신학자 파울 틸리히(Paul Tillich)도 “사랑은 분리된 것을 연합시키려는 추동이다”라고 말한다.

    두 학자의 또 다른 공통점은 사랑과 생명을 연관시킨다는 것이다. 틸리히는 이렇게 말한다. “생명은 실재하는 존재이고 사랑은 생명을 움직이는 힘이다.” 프롬은 사랑의 구성요소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사랑을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의 생명과 성장을 위한 적극적인 관심”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달리 말해 사랑은 생명을 더 증진시키는 활동으로 이해되며, 이는 사실 프롬이나 틸리히 같은 대학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직관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결론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생명의 부재를 뜻하는 죽음에 저항하거나 죽음과 조화하기 위해 사랑을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반응인 듯 하다.  

    윤동주 시인이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다짐할 때에도 사랑을 죽음과 대비되는 생명의 힘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에는 사랑이 죽음에 저항하거나 죽음을 극복하거나 죽음과 조화하는 “가장 강력하고 심오한” 힘이라는 이해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달리 말해 우리는 이 싯구에 숨어 있는 최상급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사랑


    앞에서 죽는다는 것의 의미를 두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했는데, 윤동주 시에서 “죽어가는”의 의미는 이 가운데 어느 것일까? 태어나는 순간에 시작되는 과정 전체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본다. 그것이 “서시”라는 시에 담긴 고양된 도덕적 정서 및 완벽주의와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기”를 바라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기를 바라는 시인에게서 인지되는 완벽주의와 이상주의에 이런 넓은 의미가 더 잘 어울린다고 본다.

    살아가는 과정, 곧 죽어가는 과정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이 과정에 고통이 많다는 것이 아닐까? 인생은 결국 죽음이라는 한계를 맞아야하므로 서글프지만 그 과정에서 이러저런 괴로움이 많아서 또 슬픈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신경쓰는 것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필연보다는 당장 닥쳐온 구체적인 고민거리이다. 흔히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가 태어났다고 하지만 세상을 둘러보면 사람들이 종교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삶의 구체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때문인 듯 하다. 그래서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것의 의미 가운데에서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사랑이라는 의미가 큰 비중을 차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고통스러울 때 우리의 생명은 위축되며, 그러므로 고통은 죽음에 더 다가선 상태이다. 우리는 생명을 더 많이 누리길 바라므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이럴 때 누군가 고통을 이해해 주면 우리는 하나되는 느낌을 받고 위로를 받는다. 달리 말해 위로 받는다는 것은 생명의 확장을 느끼는 것, 내 안에서 생명력이 더 증가하는 사건이다. 이렇게 생명력이 부족할 때 새로이 공급받는 것이 이미 생명력이 넉넉할 때 더 받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경험인 듯 하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는 이미 아쉬울 것 없는데 더 풍요로워지는 것보다 결여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럴까? 이 물음에 대한 가장 적합한 대답은 이것인 것 같다. 곧, 부족한 생명력을 더해주는 것은 그 대상이 육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생명을 아예 잃어버리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먹을 것이 넉넉할 때 누가 나한테 밥 한 그릇을 주는 것보다 당장 굶어죽을 지경에 밥 한 그릇을 주는 것이 훨씬 더 고맙고 또 의미있을 것이다. 생명에서 죽음으로 경계를 넘어가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 경계에 가까이 간 존재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공포와 불안을 덜어주거나 없애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다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라는 영어 속담도 생겨난 것 같다. 히브리 성서 <시편> 1편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도 개인과 공동체가 좋은 삶을 추구할 때, 결여와 고통이 없는 것이 풍족하고 즐거움이 많은 것보다 더 중요함을 암시한다고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고통받는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전혀 쉽지 않다. 히브리 성서 <이사야>서에 이런 말이 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50:4). 이 말을 하는 이사야도 위로하는 말하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위로의 말을 어떻게 할 지를 하나님이 알려준다고 굳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좋은 일이 있어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축하의 말을 해야할 지 하나님이 도와준다는 말은 성경에 없다는 사실도 위로하기의 어려움을 암시해주는 것 같다. 물론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방법에는 말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들도 있다. 말보다는 적절한 행동적 조처나 물질제공이 더 시급한 경우도 있고,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주는 것, 그냥 같이 있어주는 것 등이 더 나을 때도 있다. 그러나 최선의 방안이 말이든 다른 것이든 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사야의 말에 암시된, 말로 위로하기의 어려움은 사실 모든 위로하기의 어려움을 대변할지도 모른다. 이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학자들의 혀”를 얻었다고 하는데, 위로를 잘 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동시에 “위로학”을 하는 노력을 경주해야할지도 모른다.

    이 위로학은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마태복음 10:16)과 폭넓은 공부와 면밀한 분석 등을 요구할 것이다. 이 위로학에서 놓칠 수 없는 진실 가운데 하나는, 위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많은 경우 위로자로서 가장 적합한 사람은 같은 고통을 겪었던 사람이라는 것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상처받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된다. 시몬느 베이유(Simone Weil)가 말하듯 “인생의 폭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엄연한 진실로부터 우리는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상처받은 치유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싯구에 그 영혼이 공명하는 사람들이 진지한 위로학의 길을 가고 훌륭한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었으면 하고 소망해 본다.


3. 보편적 사랑


    이어서 주어진 구절에서 우리의 생각이 머물러야 할 표현은 “모든”이 아닐까 한다. 이 표현에서 우리는 한 비범한 의식, 일상적 의식에서 벗어난 확장되고 고양된 의식을 본다. 일상적 의식에서 사랑은 우리에게 가깝고 우리가 좋아하는 대상에 국한되기 쉽다. 마태복음 5:46-47에서 예수가 하는 말도 바로 이러한 현실에 바탕하고 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예수가 강조하는 포괄적인 사랑을 결심하는 비범한 의식은 “서시”에서는 생명있는 존재들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짐작한다.

    그런데 시인의 의식을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간 깨달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나 또한 죽는다!’라는 인식일 것이다. 생명있는 존재는 ‘나를 비롯하여’ 모두 죽는다라는 필연을 직시하는 데에서 나를 비롯하여 모든 생명있는 존재를 사랑해야겠다는 의지가 태어났다고 이해한다. 그러므로 이런 인식과 다짐에는 깊은 공감과 유대의식이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유대의식을 힘있게 잘 표현한 문장으로서 17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사제였던 존 돈(John Donne 1572 ~ 1631)이 쓴 구절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위축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하여 조종이 울리나 알아보려 절대로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 조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린다.”

    이러한 유대의식에서 비롯되는 사랑은 ‘어떤 대상과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이라는 정의에 온전히 맞아들어가지 않는 느낌이 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랑은 이미 하나임을 상기할 때 우러나오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틸리히가 (앞에서 소개했듯이) 사랑을 “분리된 것을 연합시키려는 추동”으로 정의한 다음, 이 연합이 “본질적으로 함께 속하는 것[이] 분리”된 다음 “재연합(reunion)”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매우 도움이 되는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달리 말해 이 통찰은 존 돈과 윤동주 두 시인이 말하는 넓은 사랑을 더 충실하게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런 넓은 사랑을 “모든”이라는 양적으로 포괄적인 표현과 어울리는 “보편적”이라는 또 다른 양적인 개념을 사용해 “보편적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러한 양적인 표현은 이런 사랑의 요건이 되는 한 가지 중요한 질적인 특성을 간과하게 할 위험이 있다. 이 질적인 특성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동기에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의도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진정한 보편적 사랑은 기독교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해 마틴 루터가 말했듯이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누가 흠 없는 통로일까? 누구도 완벽한 통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완벽이라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을 향하여, 닿을 수 없는 지평선을 향하여 걸어가듯 계속 달려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엔 보편적인 듯한 사랑의 동기에 이기적인 추구가 우려할 만큼 도사리고 있을 때 이런 사랑은 가짜 보편적 사랑이 될 것이다. 마태복음 6:1-4에서 예수가 하는 말은 이런 가짜 사랑을 경계하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보편적 사랑을 이야기할 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한데 힘을 합쳐 이 사랑을 실천하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능력과 자원은 심하게 제한되어 있어 아무리 그 의지의 지향에서 “모든” 생명있는 존재(또는 모든 사람)를 사랑하고자 하더라도 이를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한계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주막으로 데리고 가 돌보다가 이튿날 길을 떠나기 전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주며 . . .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으리라”(10:35)라고 말한다. 이때 사마리아인은 주막 주인에게 함께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자고 초대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주막 주인에게 이 초대는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점도 있다. 왜냐하면 환자를 돌보는 비용이 두 데나리온 넘게 들어 자기 돈을 썼는데 사마리아인이 약속을 어기고 다시는 안 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의 이런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가 보편적 사랑을 실천할 때 많은 경우 현실적인 손해를 각오하거나 감수해야 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실천이 한계에 부딪치는 지점에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초대를 우리는 손해 볼 각오를 하고 용기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맺는 말


    영국이 낳은 천재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1872 ~ 1970)은 대단한 바람둥이였다. 어느날 밤 내연녀와 함께 호텔방에 있는데 갑자기 바깥 세상이 지옥이 된 듯 했다. 당시는 2차대전 중이었는데 그날 밤 독일군이 런던을 공습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때 러셀은 겁에 질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온전한 두려움은 사랑을 내쫓는다.” 이 말은 요한1서 4:18절에 나오는 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느니”를 뒤집은 것이다. 비록 러셀이 이 말을 한 상황은 격조가 없지만 이 말 자체는 요한1서의 진술처럼 사랑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다.

    사랑과 두려움이 인간의 모든 동기의 두 가지 근원이라는 이해와 더불어 사랑과 두려움이 양립할 수 없다는 요한1서와 러셀의 이해는 인간을 설명하는 가장 의미있는 통찰에 속하지 않을까 한다. 윤동주 시인의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의지는 두려움과 죽음의 어둠을 사랑과 생명의 빛으로 쫓아내려는 의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서시”는 조용한 독백처럼 씌여졌지만 이 시를 읽는 사람에게 이 빛을 확장하는 길에 동참하려는 의지를 일깨울 수도 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사랑을 낳는 힘”이라고 말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함으로써 더 많은 사랑이 태어나고 성장하여 이 세상에서 두려움과 죽음의 영역을 더 축소시키기를 소망한다.

    이 글은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 나오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죽는 길로서 잘 사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좋은 대답이 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주어진 싯구를 다루는 방식에는 적어도 한 가지 눈에 띄게 부자연스러운 점이 있다. 그것은 이 구절이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문장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라는 수식어구를 논의에서 제외함으로써 내 해석 방식에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편의주의적인 느낌이 더해지게 되지 않았나 한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음 번 글에서 이 수식어구, 그리고 (해당 문장과 함께 “서시”에서 시인의 미래에 대한 다짐을 나타내는) 바로 다음 문장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를 다루겠다고 계획한다.


    * 필자소개  

영어강사. Rice Univ 언어학 박사(Ph.D) 후에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과 시카고 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우리는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다[각주:1] 





이상헌

(녹색전환연구소장·한신대 교수/ 한백교회 교인)



풀뿌리에서부터 의견을 모아서 미세먼지 대책을 수립해 가게 되면 화석연료 카르텔을 해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19대 대선에서는 유력 후보들 대부분이 미세먼지 대책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미세먼지 문제는 대단히 구조적이고 복잡하며 어려운 문제이다. 그 이유는 첫째, 미세먼지 문제는 우리가 지금까지 추구했던 화석연료 중심의 경제발전 방식에 따른 필연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둘째, 강고한 이해관계 카르텔이 화석연료 중심의 경제발전 체제를 재생산하고 있는데, 이들의 영향력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셋째, 미세먼지에 대해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첫째, 우리나라 미세먼지의 주요 발생 원인을 살펴보면 2013년 기준으로 제조업 연소(미세먼지 66.6%, 초미세먼지 54.2%), 비도로 이동 오염원(미세먼지 12.5%, 초미세먼지 18.2%), 도로 이동 오염원(미세먼지 10.0%, 초미세먼지 14.5%), 에너지산업 연소(미세먼지 3.7%, 초미세먼지 4.7%) 등이다. 한편, 디젤 배기가스는 미세먼지 농도에 기여하는 정도는 적긴 하지만, 인체 건강에 대한 위해성은 매우 크다. 그래서 국제암연구소에서는 디젤 배기가스를 1군 발암물질로 지정하였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서는 화석연료 의존적인 우리나라 산업 및 에너지 소비구조와 생산방식, 토건중심적 개발 행태, 에너지 다소비적 생활양식 등을 전면적으로 재편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작업이 필요하다. 관료들과 경제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저항이 있을 것이고,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도 필요한 일이라서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며, 단시일 내에 실질적인 결과를 얻기도 어려울 것이다.


  둘째, 화석연료 중심의 카르텔은 지대추구적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기반을 다져가는 매우 강고한 집단이어서 해체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예를 들어보자. 서해안의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로 인해 수도권 인구 2000만여명 중 연간 1144명이 조기 사망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도 앞으로 20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2030년까지 더 지어지게 계획되어 있다. 전기가 모자라는 것도 아니다. 이미 2013년 이후 전력소비량 증가는 경제성장률 아래로 떨어졌다. 전력설비 예비율은 30%를 넘었으며, 신생 LNG발전소들의 가동률이 저조해서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더군다나 기후변화에 대비하여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온 힘을 다해도 모자라는 판국에, 온실가스 배출의 주원인인 석탄화력발전소를 왜 이렇게 많이 늘리는 것일까? 정부 스스로가 공언한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게 되자 급조해서 만들어낸 방안이 해외의 배출권을 사오겠다는 것이었다. 그 돈은 누가 내는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생기는 이득은 사업자가 가져가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감축 비용은 세금으로 부담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 또 있다. 국민연금은 신규 석탄화력발전 건설 관련 회사채 약 2조원어치를 인수했고, 민자 석탄화력발전에 프로젝트 금융 대출을 제공했다.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미세먼지를 발생시키고 온실가스를 다량으로 배출함으로써 세금을 축내는 석탄화력발전소에 왜 국민연금이 투자를 하는가? 누가 이런 투자를 결정한 것일까? 이것은 공공성을 도외시한 화석연료 카르텔의 지대추구적 행위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셋째, 우리는 아직 미세먼지 특히 초미세먼지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다. 제조업 공장 굴뚝이나 자동차 배기가스와 같은 1차 발생원에서 나오는 것을 1차 생성먼지라고 하며, 질소산화물 등이 수증기·오존·암모니아 등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미세먼지가 발생하는 것을 2차 생성먼지라고 한다. 수도권의 경우는 2차 생성먼지가 전체 초미세먼지 발생량의 3분의 2나 된다. 그런데 이 2차 생성먼지가 발생하는 과정이 너무나 다양해서 제대로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초미세먼지와 오존은 2015년부터 시행된 2차 수도권 대기환경관리 기본계획에서야 비로소 관리대상물질이 되었다. 축적된 관리 경험이 너무 적다. 기본적인 데이터를 생산하는 미세먼지 측정소의 위치도 문제다. 서울녹색당 정책위원회가 정보 공개를 청구한 자료에 따르면 25개 도시 대기측정소 중 17개 측정소가 10m를 초과하는 위치에 있으며, 마포는 23m로 너무 높은 곳에, 성동과 송파는 각각 0.5m, 0.8m로 너무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우리가 실제로 숨쉬는 공기의 질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역간 차별도 있다. 2016년 8월 기준 한국의 총 262개소의 미세먼지 측정소 중 1000㎢당 서울은 41.3개소, 부산은 24.7개소, 인천은 14.3개소가 있는 반면, 강원도는 0.4개소, 경상북도는 0.7개소, 충청남도는 0.9개소로 나타난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미세먼지를 마셔도 끄떡없는 체질인가? 뿐만 아니라 중국 등 외국발 미세먼지의 영향에 대해서도 아직 신빙성 있는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이다. 결국 미세먼지 대책을 위한 기본적인 데이터의 신뢰성조차도 매우 낮은 셈이다.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2차 생성먼지 발생과정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기간에 신규 화력발전소 건설 중단, 낡은 발전소 가동 중단, 한·중·일 환경협약 체결 및 공조 강화, WHO 권고수준까지 기준 강화, 초미세먼지 기준 신설, 학교에 미세먼지 알리미 제도 도입,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 등을 미세먼지 대책으로 내어놓았다. 대체로 방향은 잘 잡았다고 본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구조적인 문제들이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다. 첫 번째 장애물은 우리나라 산업구조 개편과 에너지 믹스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것으로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 매우 광범위하면서도 장기적인 사회적 논의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본다. 두 번째 장애물이 가장 골치 아프다. 화석연료 카르텔들이 엄청나게 저항할 것이다. 하지만 화석연료 카르텔들이 공익이 아니라 오로지 사익을 위해 시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시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들의 지대추구적 행태를 중단시켜야만 한다. 서울시는 5월 말쯤 광화문 광장에서 3000여명이 모여서 대기질 개선대책을 모색하는 대규모 원탁회의를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시민들의 집단지성을 활용하여 ‘서울형 대기질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새 정부에서는 이러한 시도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과학적이면서 외교적인 역량이 최대한 필요한 일이다. 미세먼지와 관련한 기초연구에 투자를 해야 하고, 외교적인 수완을 발휘해서 지역간 환경 협력이 다른 분야의 협력을 유도할 수 있는 마중물의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정부에서는 우리 모두 마음 편히 숨쉬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 2017. 5. 15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http://m.weekly.khan.co.kr/view.html?med_id=weekly&artid=201705151818231&code=115)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by 제3시대

공지사항

카테고리

웹진 <제3시대> (831)
특집 (8)
시평 (94)
목회 마당 (60)
신학 정보 (136)
사진에세이 (39)
비평의 눈 (72)
페미&퀴어 (25)
시선의 힘 (135)
소식 (153)
영화 읽기 (32)
신앙과 과학 (14)
팟캐스트 제삼시대 (12)
연구소의 책 (13)
새책 소개 (38)
Total : 353,173
Today : 87 Yesterday : 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