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너머 희망의 소리를

양미강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 연구소 운영위원)

지난 주일 예배 찬송소리가 유난히 작았다. 노래가 어려워서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대충 눈치를 챘나? 교회 주보 알림난에 실린 교우소식. 그 난에 새겨진 김영승 선생의 일제고사 거부로 인한 파면소식. 나는 주보를 만들면서 어떤 표현을 써야 할지 난감했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 걸까? 이미 교인들은 매스컴을 통해서 파면소식을 전해들은 것 같다. 중징계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막상 파면통고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맥이 풀리고 화가 난다.

지난해 10월부터 불거진 일제고사 거부로 인한 전교조의 대량해직 사태. 이미 서울에 있는 공립학교 선생님 7명이 해임, 파면된 상황이고, 사립학교에서는 김영승 선생이 유일하게 파면조치를 받았다. 강원도에서도 4명에 대한 중징계가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80년대 전교조의 대량해직 이후 일제고사문제로 많은 수의 교사들이 ‘사형선고’를 받은 셈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아이들을 일렬로 세우는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갈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알려준 것이 교사가 학교현장으로부터 내몰려야 할 범법행위인가? 학생들에게 부모님과 상의해서 일제고사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알려주는 일이 해임과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받을 정도인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는가? 아니면 판단할 권리가 없는가? 아이들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고 판단할 수 있다. 그것이 정 믿기 어렵다면 부모님들이 그 판단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이 그 선택권을 아이들과 부모에게 돌려주었다고 해서 교사에게 사형선고인 파면과 해임조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9월말 미국에서 1년간의 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서울의 모습은 횡횡했다. 미국에서 먼저 들어온 후배가 귀국할 때 심호흡을 하고 들어오라고 한 말이 실감났다.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시민단체들은 빨간색 좌파로 몰리기 일쑤였고, 날마다 국회로부터 각종 감사에 시달려야만 했다. 찍히면 죽는다 했던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불순하게 규정되면 전후좌우 무시되고 오직 한가지, 솎아내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색깔은 ‘빨강과 파랑’, 그리고 방향은 ‘좌와 우’뿐인 것 같다. 그러니 세상을 표현하는 무늬는 동그라미 두 개 뿐이다. 겹쳐지지 않는 동그라미 두 개 말이다. 좌파와 우파만이 존재하는 이 세상. ‘편가름’과 ‘솎아내기’가 이 시대를 담아내는 키워드인 셈이다.

좌우 할 것 없이 입으로 되뇌던 다양성, 창의성, 민주성은 다 어디로 갔을까? 치열한 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다양성, 창의성, 민주성은 옷에 붙이는 자크처럼 편리하게도 사용된다. 일제고사를 거부해서 나름대로 인생의 최대고비를 맞고 있는 교인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왜 찍혔소? 남들처럼 적당히 살아가면 되지. 뭐하러 소신을 분명하게 말해서 ‘솎아냄’을 당했소? 수만 명의 교사가 다 그럭저럭 순응하며 사는데 당신 하나 소리지른다고 세상이 변할 것 같소? 혼자만 다친다오. 세상 더럽네 하면서 한쪽으로 듣고 한쪽으로 흘리고 살면 속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소?

그러나 차마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길이 옳은 길이라고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 당신이라면 뭐라 이야기할까?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된 병자에게 병 낫기 위해 거적을 가지고 연못가로 달려가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네 자리를 들고 가라고 말씀하셨던 태도를 보면, 그의 태도는 더욱 분명하지 않을까? 자리를 걷어차버려! 하면서 단호하게 호통칠 예수 당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래.. 이거야... 남들은 파면을 당하면 다 끝났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아니야. 다시 시작이다. 이제부터라고 다짐하는 오늘 기자회견장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희망을 떠올리고 있다. 매서운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 모여있는 아이들과 부모들, 그리고 선생님들에게서 고통 너머 희망의 소리를 듣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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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몸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그는 이스라엘의 왕들이 걸어간 길을 걸어갔고, 자기의 아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쳤다. 이것은,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민족의 역겨운 풍속을 본받은 행위였다.
―「열왕기하」 16장 3절

왕은 떨리는 목소리로 왕자를 바치라고 명합니다. 신속하게 의식이 준비됩니다. 지체할 틈이 없습니다. 온 국토를 불구덩이로 만들며 사방에서 시시각각 조여 오는 적군을 몰아내려면 더 지체할 수 없습니다. 도성 남쪽의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에, 그 성소에 불이 지펴집니다. 순식간에 불꽃이 피어오릅니다. 제단 한복판에 사지가 묶인 채 거의 혼절해 있는 왕자는 몸둥아리를 향해 질주해오는 그 기름 불꽃의 열기에 비명을 지를 힘도 없습니다. 순식간에 몸에 불이 타오릅니다. 온몸에 발라진 기름을 게걸스럽게 핥아가던 불꽃은 곧 아이를, 그 열기와 고통에 꿈틀 거릴 틈도 주지 않은 채 휘감아버립니다.

기름 타는 연기와 살갗 타는 냄새가 잔인한 돌풍을 일으키며 제단 주위를 꽉 채운 군중의 숨결을 자극합니다. 군중은 사제의 푸른 도포자락이 휘날리며 격렬하게 허공을 가르는 춤사위를 봅니다. 아니 차라리 그건 칼날이 된 옷자락이었습니다. 비명인 듯 고함인 듯, 찢어질 것 같은 소리에 사제의 목청이 사정없이 갈라집니다. 아이의 불타는 몸, 그러나 신음으로조차 백성에게 드러내지 못한 고통을 사제의 갈라진 목청이 대신합니다.

아이를 휩싸버린 불의 열기처럼 군중의 가슴에 불이 타오릅니다. 고함을 지릅니다. 발을 구릅니다. 그리고 옷을 찢습니다. 아이의 죽음이 슬프고 분해서입니다. 잿더미가 된 강도와, 주검이 된 어린 자식들이 늙은 아비 어미들이, 저 주검들이 하소연으로 격정에 불타서입니다.

이제 왕이 앞으로 나옵니다. 눈물에 콧물에 범벅이 된 얼굴로 울먹이며 소리칩니다. 적을 무찌르자고 말입니다. 한 놈도 남김없이 다 쓸어버리자고 말입니다. 신께서 아이의 주검을 아셨으니, 이 나라를 이 백성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아하스 왕이 아들을 번제물로 바쳤다는 오늘의 본문을 가상 이야기로 만들어 본 것입니다. 르신 왕의 다마스커스 제국이 시리아-팔레스티나의 패권국가로 부상한 때입니다. 강력한 경쟁국이던 북왕국 이스라엘의 베가 왕도, 페니키아의 두로 왕 히람도 르신에게 굴복하였습니다. 르신은 아시리아의 서진을 막을 계획으로 시리아-팔레스티나의 소국들에게 연합군을 만들라고 압박을 가합니다. 거의 모든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혹은 마지못해 연합군에 참여하기로 합니다.

한데 남부 몇 나라들이 반아시리아 동맹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아하스의 유다 왕국이 그중의 하나입니다. 르신은 동맹을 맺은 모든 나라들에게 명합니다. 유다를, 마온 족속을, 여왕 삼시가 이끄는 아라비아를 인정사정 보지 말고 한껏 짓밟으라고 말입니다.

왕국의 거의 전역이 잿더미가 됩니다. 동쪽의 블레셋이, 서쪽의 모압과 암몬이 북쪽의 이스라엘이, 그리고 르신의 다마스커스 제국이 닥치는 대로 불지르고 살육하며 도성을 향해 공격해 들어옵니다.

피난민들이 줄을 잇습니다. 갑자기 늘어난 도성 안 백성들이 먹을 식량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식량을 공출해올 시골도 이미 사라졌습니다. 굶주려 죽어가는 이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괜히 화를 내고 사소한 일로 다투는 일이 빈번해집니다. 민심이 흉흉해집니다. 누군가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때 궁중에서 쿠데타가 혹은 그러한 음모가 있었습니다. 아하스를 축출하고 ‘다브엘의 아들’이라는 이를 왕으로 삼으려는 것이었습니다(「이사」 7,6~7). 다브엘의 아들이 누군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연구자들은 두로 왕 히람의 선조인 ‘두바일’이 ‘다브엘’과 동일인이라고 합니다. 하여 ‘다브엘의 아들’이라는 이는 두로 국의 공주가 낳은 유다 왕의 아들이라는 얘깁니다. 아하스의 아들이거나 그의 부왕인 요담의 아들로, 두로 국의 공주가 낳은 이라는 얘기지요. 어쨌거나 아하스는 이 반역 사태를 진압했고, 더 이상 민심의 동요를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극약처방을 내놓았던 것 같습니다.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한 것이지요.

번제물은 대개 가축 가운데서 선별됩니다. 하지만 좀더 심각한 상황이 오면 인신제물이 쓰이기도 하는데, 주로 이방인, 노예, 천민의 자식 등이 제물로 선별됩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왕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쿠데타 음모가 있었고,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는 백성들은 왕을 향해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곧 왕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왕자를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한 때는 바로 이런 시기였습니다.


희생제물은 그것을 바치는 이들 자신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말했듯이, 희생제물은 위기가 고조될수록 제의를 드리는 이들과 점점 근접한 존재로 선정됩니다. 그리고 가장 근접한 존재가 바로 자식, 특히 아들이었습니다. 곧 아들을 바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바친다는 가장 직접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이 의례가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열왕기」와 「예레미야서」 등에서 이 인신제사가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은 그것이 효력이 있다는 대중의 믿음이 널리 퍼져있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특히 대부분의 구절들이 전쟁와 같은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언급되어 있는 것은 이것이 위기시의 극약처방임을 시사합니다. 해서 나는 아하스가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의례가 대중을 선동하는 강렬한 효력을 가졌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갈라진 국론은 통일되었고, 그 덕에 르신 동맹군의 침공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아하스는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치면서 봉신국의 예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긴급한 구호의 신호를 타전했습니다. 3년을 끌던 전쟁(주전 734~732년)은, 아시리아가 다마스커스를 침공함으로써 끝났습니다. 다마스커스 국은 완전히 멸망했고, 이스라엘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으며 항복하고 맙니다.

결국 아하스의 두 가지 방책은 다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인신제사로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고, 국제 외교전을 통해 침공했던 적성국을 완전히 혹은 더 회복할 수 없게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아하스는 의도하지 않은 횡재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의 거의 전 영토가 황폐해지는 상황에서, 수많은 유민들이 남하하여 남왕국 유다로 몰려왔던 것입니다. 아주 빠른 기간 만에 흩어진 인구가 회복되었고, 아니 몇배가 늘었습니다.(아하스의 아들인 히스기야 왕 때에 유다의 인구는 12만 명에 이르렇다고 합니다.) 폐허가 된 땅이 다시 경작되었고, 새로운 경지가 개간되었습니다. 하여 생산성이 높아졌고, 따라서 왕국의 부도 몇 배가 늘어난 것입니다. 실제로 이 시기 고고학적 발굴물을 보면 유다 왕국은 번영기에 접어든 것임이 분명합니다.

아하스는 아들을 제물 삼아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아들의 불타는 몸은 자기의 고통을 말할 수 없었으나, 사제의 대언을 통해 아하스의 고통을 발설했습니다. 즉 아들의 고통은 침묵으로 가려지고 아비의 고통으로 번안됨으로써, 아비인 아하스는 자기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나라를 번영하게 하는 밑거름으로 삼은 것입니다.

기원전 8세기의 한 후진국의 군주는 벌써 타인의 죽음을 이용해서 자기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통치 기술을 활용했습니다. 그 이전이나 이후의 수많은 권력들도 이런 방식을 활용하곤 했습니다. 위기가 심할수록 더욱 큰 자극으로 고통을 양산하고 그 고통의 소리를 봉쇄하며 대신 자신의 소리를 더빙하는 방식 말입니다. 그것은 권력에게 성공을 선사하기도 했고, 실패로 귀결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권력은 이것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믿음을 대대로 간직해왔음이 분명합니다. 하여 그런 관행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용산의 ‘불붙은 몸들’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누구는 세입자의 육체를, 또 누구는 진압경찰의 육체를 화두 삼아 정쟁에 여념이 없습니다. 특히 현 정권은 세입자의 불붙은 몸을 혐오스런 것으로 해석하며 관련자들을 모조리 체포해 버렸습니다. 심지어 시신을 느닷없이 부검한다고 훼손하기까지 합니다. 시신 훼손은 대표적인 모욕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경찰의 죽은 몸에 자기들의 소리를 더빙하여 커다란 확성기를 연결해 버렸습니다.

필경 현 정부는 지금의 위기를 대단히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독재정권이나 할 만한 행태를 도처에서 벌이고 있습니다. 특히 희생제물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도처에서 ‘오염된 존재’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인터넷 논객에서 학교 교사까지, 그리고 세입자들의 불타는 몸에 이르기까지, 심지어는 연쇄살인범까지 말입니다. 세상의 분노를 투사시킬 존재를 만들어내려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들의 목소리로 더빙해서 말입니다.

현재로선 이러한 계략은 성공을 거둘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공하든 않든, 불붙은 몸의 소리를 침묵에 빠뜨리고, 권력의 소리로 변조시키는 방식은 결코 야훼의 제사일 수 없음을 성서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야훼께서 ‘상상조차도 해본 적이 없는 죄’(「예레」 19,4~6)일 뿐입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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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08 05:2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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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스의 "역겨운 행위" (자식 희생제물) 와 현 정부의 "얄팍한 계략"을 (용산 철거민의 희생) 비교한 좋은 글이네요. 아하스의 역사적 상황과 이명박 정부의 역사적 상황이 다르지만, 정권을 유지하는 방법은 유사한 것 같습니다. 아하스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한가지 흥미로운 유사점이 있는듯 합니다. 열왕기하 16장 7절을 보면, 아하스는 앗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나는 왕의 종이며, 아들입니다" 라고 고백하면서 반 앗시리아 동맹의 (다마스크스과 북이스라엘) 위기에서 도움을 요청한 것은 지금 이명박 정부가 반 미국 (북한) 위기에서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비록 시대적 상황이 다르지만, 정치적 힘의 논리라는 맥락에서는 비슷한 점이 많네요.

나를 넘어선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조익표
(예가교회 담임목사 | yega.org)

여럿의 개체가 그물망과 같은 관계 속에 하나의 독특한 질서를 생성하고 하나의 집합체를 이룰 때, 이를 유기체라고 부른다. 인간은 60조가 넘는 엄청난 수의 세포들의 집합체이다.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개체들이 하나의 독특한 질서를 유지하면서 하나의 집합체는 얼마나 복잡한 관계의 그물망을 이루겠는가? 이 관계의 복잡성과 다양성의 정도가 높은 유기체를 고등유기체라고 부른다. 정신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는 의식은 고등유기체에 이르러 생성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의 사회는 다양한 인간이 그물망과 같은 관계 속에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며 하나의 집단을 이룬다. 인간을 고등유기체라고 할 때, 인간사회는 고등유기체보다 한 차원 위의 유기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사회는 물리적인 관계도 있지만, 주로 의식을 사용하는 정신적인 관계를 사용하여 관계의 그물망을 형성한다. 그러므로 인간사회야 말로 고도의 정신현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인간의 ‘나’라는 정신은 자신의 몸보다 하나 위의 차원에 존재한다. ‘나’는 ‘세포→기관→몸→나’ 로 이어지는 차원의 정점에 놓여있고, ‘나’에 이르러서 하위의 차원 모두를 하나로 묶는 ‘정체성’이 결정된다. 그러나 ‘나’는 또한 계속해서 ‘나→지역사회→지구적 사회→우주적 피조물’의 질서로 이어지는 차원의 최하위 차원에 위치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주적 피조물의 하위 차원 모두를 하나로 묶는 ‘정체성’을 결정한다.

‘나’는 정신을 통하여 ‘지역사회→지구적 사회→우주적 피조물→하나님’ 에 이르는 길을 의식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이 의식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모든 피조물들과 자신을 하나로 통합하는 길을 깨달을 수 있고, 그 길 안에서 살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길을 가고 하나의 길에서 살아가는 것이 평화의 구현이다. 평화란 분열과 갈등을 넘어서 하나됨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교회는 ‘나’로부터 ‘하나님’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고 그 길에서 살게 한다. 그 뿐 아니라, 교회는 ‘나’ 를 넘어선 하나의 사회의 기능으로서 역할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됨’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교회의 모든 성원들은 ‘나’를 넘어서야만 한다. 교회가 교회로서 기능하려면,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은 ‘나’를 넘어서 살아갈 수 있는 정신을 획득해야 한다. 성령은 ‘나’를 넘어서는 정신이다. 교회의 하나됨은 성령을 통한 하나됨이며, 성령 안에서의 하나됨이다. 교회는 ‘한’ 성령을 호흡함으로써 하나가 되는 것이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직 ‘나’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면, 교회는 단순한 교인들의 집합이며 교인들의 교인들을 향한 분열과 갈등의 영역일 뿐이다. 평화란 ‘나’의 차원에 머물러 있던 개개의 교인들이 ‘나’ 중심의 세계로부터 벗어나서, ‘교회’의 세계로 넘어섬으로써 이루어진다.

문제는 이것이다. ‘세포’가 ‘몸’의 생각을 알지 못하듯이 ‘나’도 ‘교회’의 생각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의 정신성은 ‘세포’의 정신성보다 훨씬 더 차원이 높다는 것이다. ‘나’의 정신성은 ‘너’와 ‘우리’의 정신성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나’를 넘어서는 일이야 말로 ‘영적인 일’이며, 성령을 통하여 ‘나’를 넘어서는 것이야 말로 교회의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성령을 통하여 ‘나’를 넘어서는 일은 ‘기도’를 통하여 얻어진다. ‘기도’ 란 ‘나’를 넘어서는 행위이다. ‘기도’는 ‘나’의 존재에 영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우리가 민감하다면, 매 순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나’의 존재를 볼 수 있고,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민감하지 못하다. 그러나 분명 ‘기도’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새로운 ‘나’를 선물하시는 방식이다. ‘기도’를 통하여 나는 새로운 ‘나’로 새롭게 창조된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를 통하여 ‘현재의 나’를 모두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통하여 ‘새로운 나’를 모두 아낌없이 주시려고 하시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참된 기도는 한 인간의 ‘전부’를 바꿀 힘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 때에 ‘나’는 나를 넘어선 존재로 변화할 것이고, ‘나’ 중심성에서 벗어나서 우주적 존재로 변화되며, 참된 자유를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의 삶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사랑은 나를 넘어서는 강력한 행동이다. 하나님의 모든 진리는 사랑에서 구현된다. 나를 넘어서는 사랑이란, 나의 존재의 변화를 증거하는 유일한 표지이며, 성령의 증거이며,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표지이며,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능력이다. 뜨겁게 사랑하자.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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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인가 귀환인가?
- 임필성의 <헨젤과 그레텔>에 관한 신학적 읽기

정혁현
(한살림교회 목사 | 본 연구소 운영위원)

한 편의 영화가 시대의 예표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지난 17대 대선이 지난 며칠 후 개봉되었던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영화를 검토하면서 이러한 질문에 답을 구해볼 수 있다. 이 대선을 통해 온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로부터 1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여기저기서 87년 이전의 군사독재상황에서나 볼 수 있던 장면이 재연되고 있다. 재벌 등 가진 자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한계상황에 몰리고 있으며, 인사에서 입법에 이르기까지 공영방송과 인터넷의 비판 기능을 제거하려는 집요한 언론 통제 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가의 거의 모든 정책을 토론과 합의 과정을 최소화 한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일관된 통치 태도가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두드러지는 것은 폭력적인 국가 기구, 특히 경찰이 그 폭력적 속성을 감추지 못하고 전면에 드러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상황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거꾸로 흘러 80년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탄식한다. 이러한 탄식에는 어떤 역사철학이 있다. 시간은 미래로 흐를 때 자연스러우며, 이러한 흐름 자체가 진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관에서는 역사가 거꾸로 흐르는 것만 막을 수 있다면 만사형통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임필성 감독의 <헨젤과 그레텔>은 전혀 다른 시간 의식을 보여준다. 이 영화 역시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연관 관계를 사유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결코 흘러가버릴 수 없는 과거가 반복적으로 오늘로 ‘귀환’한다.

영화의 원작인 그림형제의 동화는 전 세계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작품이지만, 사실 상당히 어둡고 엽기적이다. 아이들은 부모에 의해 깊은 숲 속에 유기된다. 뜻밖에도 숲 속에서 과자로 만든 집을 발견하여 버려진 슬픔을 잊는가 싶지만 과자의 집은 식량을 구하는 마녀의 미끼였다. 아이들은 마녀와 먹느냐 먹히느냐는 처절한 생존의 쟁투를 벌여야 한다. 살벌하고 가혹한 세계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이 동화를 읽어주며 아이들이 과자의 집이라는 환상에 빠질 것을 예상하며 흐뭇해 하지만, 아이들의 내면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


임필성 감독은 원작의 기괴한 상상력에 기대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를 펼쳐낸다. 영화 <헨젤과 그레텔>의 시공간적 배경은 오늘의 한국이다. 은수(천정명)는 깊은 산에서 차를 몰다가 부주의로 사고를 당한다. 골짜기에 떨어져 정신을 잃었던 그가 깨어났을 때. 그 앞에 동화 속의 소녀 같은 아이 영희(심은경)가 서있다. 은수는 몸도 불편하고 밤도 깊어 우선 아이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져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따라 도착한 곳은 ‘즐거운 아이들의 집’. 간판 그대로 집은 꿈과 환상의 공간처럼 지어졌다. 그러나 이 과도하게 환상적인 외양은 그 공간이 겪고 있는 비극을 감추는 가면일 뿐이다.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모범적인 엄마 아빠와 세 아이가 사는 집. 너무나 완벽해서 어딘지 부자연스럽고 의심스러운 이 공간은 은수가 이곳으로 떨어지기 전에 존재했던 세계와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다. 분명한 것은 두 세계가 공간물리학적으로 연속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이튿날 아침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그리고 그 다음날의 다음날에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즐거운 아이들의 집’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 세계의 공간은 중심에서 멀어지는 방식으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중심으로, 다시 말해 공간의 진실 속으로 파고들어가야 한다. 교과서 같은 표정을 하고 있던 아이들의 부모는 친부모가 아니었다. 물론 양부모도 아니었다. 그들 역시 은수처럼 자신들도 모르게 이곳으로 끌려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이곳으로 끌려 들어온 어른들은 그들뿐이 아니었다. 이미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홀려 들어와 아이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 사연이 좀 상투적이기는 하다. ‘즐거운 아이들의 집’은 원래 고아원이었다. 부모에 의해 버려진 아이들이 기거하는 곳. 그만큼 더 많은 사랑을 받아야 했으나 원장 변집사(박희순)는 불쌍한 아이들을 이용해 치부를 하는 더러운 인간이었을 뿐 아니라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갖가지 폭력을 행사하면서 변태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사악한 악마였다. 악마에 맞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그랬던 것일까? 함께 생활하던 아이들이 원장의 폭력과 착취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보던 세 아이에게 파괴적인 능력이 생긴다. 마침내 원장을 죽인 아이들은 ‘즐거운 아이들의 집’을 그들이 꿈꾸던 동화의 세계와 같은 세상으로 꾸미고는 이 세계와 단절된 공간으로 폐쇄한다. 아이들은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다.

아이들은 공간과 함께 응결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죽었으나 죽지 못하는 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것이 모든 귀신들의 운명이다. 귀신들은 단순한 혼령이 아니다. 귀신들은 물리적 힘을 행사하는 육체적인 존재,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물질적인 존재들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죽었지만 상징적인 차원에서는 결코 죽을 수 없는 삶, 지젝은 이러한 상태의 존재를 ‘산 죽음’(living dead)이라고 지칭한다. 그들은 상징계와 실재계 사이에서 존재하면서 두 세계를 매개한다. 상징계가 인간의 언어를 통해 구성된 세계라고 한다면, 실재계는 언어의 불완전성이 드러나는 장소이다. 인간의 언어로 포섭하지 못한 세계, 혹은 인간의 의미체계가 흘리거나 잊어버리거나 무의식적으로 억압하는 세계가 그것이다. 구태여 돌아갈 것 없이 노골적이며 분명한 예를 들어보자. 지난 1월 20일의 ‘용산참사’는 이명박 정부가 구축한 상징계, 즉 “경제 선진화를 통한 고품격 일류국가”의 실패와 불가능성이 뚜렷이 가시화된 ‘실재의 침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 자체가 하나의 실재일 수 있다. 1987년의 민주화 투쟁이 비록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한국 사회 민주주의에 돌이킬 수 없는 성과를 낳았다는 지난 20여 년간의 진보담화를 하나의 상징계로 본다면 말이다. 실재의 침입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든 사회적인 차원에서든 언제나 섬뜩하고 끔찍한 사건이다. 그것은 언제나 개인이나 사회가 터하고 있는 상징체계 자체를 붕괴시키면서 출현하기 때문이다. 실재는 우리를 순식간에 암흑, 무의미, 혼돈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그렇다면 실재는 왜 나타나는 것일까? 과거는 왜 귀환하는 것이며, 영화 속의 아이들은 왜 다른 공간의 존재들을 자신들의 세계로 불러들이는 것일까? 그것은 아이들 역시 실패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원장을 죽이고 폭력을 중지시켰지만 그들이 끊어버린 폭력의 흐름을 자신들이 소망했던 새로운 흐름으로 전개시키지 못하고, 중지 그 자체에서 멈춘 채 환상의 세계 속으로 스스로를 폐쇄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폭력을 중지시켰던 아이들의 능력은 창조적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역설적으로 자신들이 끊었던 원장의 폭력을 스스로 대행하는 반복강박의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복수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의 소망 속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가족을 구성하려는 시도를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아이들이 자신들을 폐쇄시킨 비현실과 소망의 구체적인 무대여야 할 구체적인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메울 수 없는 심연으로 인해 실패로 귀결될 뿐이다.

우리는 오늘의 한국사회에 80년대가 귀환하는 이유를 같은 방식으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의 이행기적 성찰성을 라캉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김소연의 연구1)는 핵심을 찌른다. 그녀는 일반적으로 영화의 시대성을 회복한 80년대적 비판적 성찰성과 미학적 실험성의 성과이자 90년대 한국영화의 부흥을 이끈 동력으로 평가받던 이 영화들을 단호하게 “이중의 실패”로 규정한다. “일차적으로는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들이 80년대성과 90년대성의 이접을 거쳐 결국은 80년대성의 폐기 혹은 순화로 나아감으로써, 영구히 반복되어야 할 생생한 80년대적인 혁명성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80년대의 히스테리적 혁명성 자체도 구조적으로 대타자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내속적인 위반이나 주변적 전치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즉 아직은 온전한 여성적 윤리의 추구에 이르지 못한 것이었다는 점이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의 일차적 실패에 가중치를 부여한다.”2)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에서 예표적으로 드러난 1990년대의 정신성은 80년대로부터의 도피, 나아가 80년대의 성과를 즐기기 위해 ‘미완을 완료로 규정하기’였다고 할 수 있다. 패배자의 내러티브를 성급하게 승자의 내러티브로 변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90년대는 <헨젤과 그레텔>의 아이들처럼 자신을 87년에 폐쇄시키고 환상 속에 유토피아를 건설해 안주해버린 시대가 아닐까? 그리하여 80년대성은 죽었으나 죽지 못하고 산죽음의 상태에서 끊임없이 오늘날의 세계 속으로 그 끔찍한 얼굴을 시도 때도 없이 들이미는 것이다. ‘완료’ 상태로 방부처리된 80년대가 박물관 혹은 ‘민주화 운동의 성지’를 탈출하여 돌아다님으로써 ‘민주화, 선진화’ 담화의 실패와 불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다시 섬세하게 영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은수는 어떻게 하다가 실재와 대면한 것일까? 물론 자동차 사고 때문이다. 그리고 사고는 운전 중 통화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여자 친구 혜영과 통화하고 있었다. 영화는 명료한 상황을 보여주지 않지만 그녀는 아마도 임신중절을 결심한 것으로 보였으며, 은수는 이를 “무책임한 일”로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궁지에 빠진 여자 친구의 상황이 보여주듯 은수는 그 “무책임한 일”에 공모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도입 장면을 근거로 우리는 <헨젤과 그레텔>이 어린이 착취 유기라는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가 동일하게 만나는 지점을 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라캉의 실재라는 개념은 단적으로 말해 프로이트의 ‘증상’ 개념과 통한다. 증상을 구성하는 것은 과거에 상징화되지 못하고 억압된 트라우마 사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거의 사건이 언제나 현재로 귀환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관점에서 그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사건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징화 흐름이 잠시 어긋나는 어떤 지점에서, 예를 들어 영화 속의 은수처럼 여자 친구를 “무책임하다”며 과잉규정함으로써 자신의 공모를 감추려하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트라우마의 과거는 현재로 귀환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비극적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아니 이러한 악순환을 낳는 에너지를 어떻게 억압하지 않는 방식으로 승화할 수 있을까? <헨젤과 그레텔>이 예표적이라는 의미는 단순히 이 영화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시점에서 이명박 시대를 앞서 보여준다는 것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트라우마를 성급하게 규정하고 응결시켜버리는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나 트라우마 앞에서 상대주의적 절망으로 도피하는 포스트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3)와 달리 비억압적 승화를 향한 어떤 길을 모색하고 있다. 영화의 어느 시점에서 은수는 ‘밖으로’ 나가려는 움직임을 중단하고 ‘안으로’ 파고 들어가 ‘즐거운 아이들의 집’이라는 공간과 세 아이의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하며, 성취되지 못하고 동결된 공간과 아이들의 소망을 ‘구원’하기 시작한다. 이는 동시에 은수 자신의 무의식적 내면을 향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비난했던 “무책임”과 폐쇄된 공간과 아이들의 진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로마서의 유명한 구절을 기억해야 한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서 8: 19). 모든 피조물 속에서 들리는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바로 이 신음소리로부터 세계를 보는 것. 이는 발터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시도했던 것이다. “과거에 불완전한 운명으로 고통을 당했던 영혼의 행복과 완성을 증진하지 않는 것은 진보일 수 없다.”4) 벤야민은 이러한 구원을 위해서 “근대성에 본래적으로 포함된 유토피아적 잠재력과 근대성이 보여주는 파국적·야만적인 작금의 현실을 병치하는 역사 이미지를 구성하려”하였다. 이렇게 병치된 이미지가 “혁명적 각성을 추동할 것”5)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명박 시대에 80년대가 귀환하는 것은 여전히 오늘의 세계가 80년대의 트라우마의 자장권 안에서 구성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우리는 이 시대를 다시 성찰하는 데 다양하고 섬세한 지각과 재사유의 촉수를 뻗어야 한다. ⓒ 웹진 <제3시대>

* 이 글은 <세계와 선교> 198호(2009.3.1)에 수록될 글입니다. 필자의 동의와 <세계와 선교> 측 양해를 얻고 웹진 <제3시대>에 싣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1)김소연, 『실재의 죽음: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의 이행기적 성찰성에 관하여』, 2008. 도서출판b. 김소연은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라는 범주를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의 범주로 나눈다. 넓은 의미의 범주는 ‘현실에 대한 성찰성’을 공유하는 1980년 대 말에서 1990년 대 중반까지의 한국영화라고 포괄적으로 말할 수 있으며, 좁은 의미의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들을 소재에 따라 다시 네 개의 하위 범주로 분류된다. 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당대 한국사회의 모순들을 폭로하는 영화들로서 <성공시대>, <칠수와 만수>. <구로 아리랑>, <그들도 우리처럼>, <베를린 리포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며, 둘째는 충분히 공론화 되지 못했던 한국 현대사의 트라우마적 사건들을 되짚어보는 영화들로서, <남부군>, <부활의 노래>, <은마는 오지 않는다>, <개벽>, <하얀 전쟁>, <그 섬에 가고 싶다>, <태백산맥>, <꽃잎>이고, 셋째는 삶의 본질에 관한 다분히 종교적인 성찰을 담은 영화들로서 <아제아제바라아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화엄경>이며, 넷째는 연애담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는 <우묵배미의 사랑>, <경마장 가는 길>, <너에게 나를 보낸다>이다. 151쪽 참조. (본문으로)

2)김소연, 같은 책, 246. 여기에서 80년대의 ‘히스테리적 혁명성’이라는 개념은 80년대 진보운동이 지배 그 자체를 의문에 부치지 않고, 지배의 성격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뜻이며, 여성적 윤리라 함은 법 외부에서 자유롭게 향유하는 예외자에 대한 환상을 바탕으로 법의 보편성을 유지하는 남성적 윤리와 달리, 예외에 대한 환상 없이, 법이라는 보편성에 기대지 않고 삶을 주체적으로 재정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최근에 번역 소개된 세 권의 책, 즉 알랭 바디우의 『사도 바울』(2008, 새물결), 슬라보예 지젝의 『죽은 신을 위하여』(2007, 길), 조르조 아감벤의 『남겨진 시간』(2008, 코나투스)는 바울의 메시지를 라캉의 여성적 윤리의 관점에서 검토하고 있다. (본문으로)

3)포스트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란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나타난 신경향의 영화들을 지칭한다. 대중성을 가진 범주인 장르의 미학을 수용하면서 가급적 매개된 방식으로 현실의 문제를 성찰한다. <파이란>, <박하사탕>, <초록물고기>, <아름다운 시절>,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동감>, <시월애>, <번지 점프를 하다> 등의 영화를 예로 들 수 있다. (본문으로)

4)발터벤야민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Lotze, Microkosmos(1858)를 인용하고 있다. 수잔 벅 모스,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김정아 옮김, 문학동네, 2004, 325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5)수잔 벅 모스, 위의 책, 326(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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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들은 '워낭 소리', 우리가 외면한 '워낭 소리'
-영화 <워낭 소리>의 흥행에 붙여 띄우는 몇 가지 단상

정용택
(본 연구소 회원)


참을 수 없는 눈물의 가벼움

2009년1월 15일에 개봉한 이충렬 감독의 저예산 독립영화 <워낭 소리>가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관객 수 60만을 돌파했다. <워낭 소리>의 예기치 못한 흥행을 두고, 어느 진보적 인터넷신문에서는 한국 사회의 두 가지 희망을 발견했다고 한다. 첫째는 우리나라에서도 <원스>나 <워낭 소리>같은 작품성 있는 저예산 독립 영화라면 언제든지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 둘째는 우리가 그간 잊고 지낸 목가적인 전원의 삶, 즉 오염되지 않은 고향산천과 문명의 이기를 거스르며 사시는 아버지와 사람보다 더 의리 있는 소를 기억하며 눈물 흘릴 줄 '아는' 따뜻한 심성이 한국인들에게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것, 바로 그런 사실들을 영화가 확인시켜 주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시사IN, 2009년 02월 10일).

특별히 두 번째의 이유가 몹시 흥미롭다. 이 영화 한 편의 갑작스러운 흥행 현상을 통해, 한국 대중들에게서 모종의 새로운 인권적 감수성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권에 대한 전통적인 문법에 따르자면 인권은 소위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이성적 인식의 문제였는데, 이 영화는 주인공 할아버지를 통해 소와 같은 동물을 인간 자신과 같은 도덕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보는 새로운 인권적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로티가 말한 바, 인권이란 소위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이성적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타자를 자신과 같은 도덕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감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인권, 이성, 감성, 현대사상과 인권, 사람생각, 2000).


40년이 넘게 자기 곁에 남아 있는 단 한 사람, 그리고 자기가 곁에 남아 있어주어야 할 단 한 마리와 함께 걸어온 80년 촌로의 인생 위로 눈부신 황혼이 덮쳐오는 라스트신,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혔음은 자명하다. 사람들의 눈물을 보면서, 그 눈물이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도 그것은 동물로 상징되는 타자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환대,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종(種)의 한계마저 뛰어넘은 존재 대 존재의 우정 혹은 교감 같은 것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 혹은 향수가 아닐까. 우리는 그것을 위에서 인용한 로티적인 의미의 '인권적 감수성'에 대한 대중들의 열정의 징후로 해석해보려 한다.

<워낭 소리>와 같은 좋은 영화가 여전히 제작되고 있는 것, 그리고 그런 영화가 흥행하게 된 것, 그래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감동을 받은 것, 그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다 만족스럽다. 그런데, 아니 그래서 갑자기 슬퍼진다. 한국 사회의 대중들이 이런 영화를 좋아할 만큼 아직 감성이 살아있다, 라는 인터넷신문의 분석을 사실로 받아들일 때 갑자기 슬픔이 밀려온다. 더욱이 평소 TV 모니터로 얼굴만 봐도 토할 것 같았던 대통령께서도 나처럼 이 영화에 적잖이 감동을 받았다, 라고 전해주는 기사를 읽을 때 그 슬픔은 배가된다.

소의 목에 걸린 방울 소리를 통해 소의 아픔을 듣는 노인의 감성에 깊이 매료되거나, 두 존재 간의 아름다운 우정에 감동하는 이들이 60만 명이 넘었고, 더구나 그 60만 가운데 대통령을 포함한 이 사회의 권력자들이 상당수라고 하는데, 어째서 용산의 희생자들을 향해 대통령과 권력자들은, 나아가 시민사회는 한 줌의 동정 섞인 눈물조차 보이지 않는가? 나는 그들이 이 영화를 보며 흘린 눈물이 나의 눈물과 같다는 단순한 사실로 인해 지금 절망한다. 우리가 정말 같은 종(種)의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란 말인가? <워낭 소리>의 소를 향해 드러내는 도덕의 감성이 어째서 용산의 희생자들을 향해서는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다시 로티의 말을 인용하자면,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인종청소를 자행한 세르비아인들의 만행은 그들이 보스니아인을 동물처럼 즉 도덕의식을 작동시키지 않아도 무방한 곧 '인간 범주' 밖의 존재로 여겼던 집단적인 편견, 그러한 왜곡된 감성(sentimentality)의 산물이지, 저들을 제거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합리적 판단에 따른 인권 유보의 상황은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용산 철거민들의 경우, 그들은 자신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데 집단적으로 공모한 국가권력과 시장질서와 시민사회가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우리'라는 자기 귀속 공동체에 대한 도덕적 의식의 범위 밖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용산 철거민들은 한국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국가적 질서와 시장적 질서, 그리고 시민사회적 질서 그 모두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된, 말하자면 삼중으로 배제된 비국민/비시민/비인간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먼저 국가적 질서로부터 배제되었기 때문에 '생떼나 쓰는' 사람들이 되다 못해 결국 망루에까지 올랐고, 공안(公安)적 논리에 따라 대(對) 테러 진압작전에 의해 주검이 되었다가, 죽어서도 검찰 발표대로 폭력과 방화를 일삼은 범죄자가 된다. 동시에 시장적 질서로부터도 배제되었기 때문에, 40층 이상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이었던 용산4구역, 이전에 비해 땅값이 10배 이상 오른 덕분에 돈이 없는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부자들에게 그대로 내주는 신세가 되고 만다. 게다가 작게는 용산 구민, 크게는 서울 시민 다수가 동의하고 있는 서울시 재개발 프로젝트에 사적인 동기로 이의를 제기하여 프로젝트 진행에 차질을 초래했고, 나아가 주변 이웃들에게 불편을 주고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는 폭력 시위도 서슴지 않았으니, 인권이니 생존권이니 하는 차원의 알량한 인정(人情) 따위를 시민사회로부터 기대하는 것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자. 87년 6월 두 명의 대학생이 고문과 최루탄에 의해 차례로 사망했을 때, 그리고 그러한 죽음에 대해 국가권력이 책임을 회피하려 들었을 때, 시민사회는 민주주의적 인권의 이름으로 궐기하였다. 마찬가지로 2002년 6월 두 소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미군 장갑차 운전병이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시민사회는 민족주의적 인권의 이름으로 궐기하였다. 지난 2008년 촛불항쟁 때는 급기야 참여민주주의와 국민주권에 기초한 아주 구체적인 인권 즉 건강권, 생명권, 행복추구권 등의 이름으로 거대하게 궐기하였다. 그렇게 한국시민사회는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남다르지 않았던가? 인권에 대한 존중을 정치적 권리의 쟁취로 연결시키면서, 한국의 시민운동은 성장하고 발전해 왔는데, 왜 가장 인권이 존중되어야 할 상황 앞에서 시민사회는 침묵하고 있을까?

영화의 '워낭 소리', 현실의 '워낭 소리'

억지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워낭 소리>의 소를 향해 작동하던 인권적 감수성이 용산의 희생자들을 향해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면, 대중들에게 용산의 이웃들은 인간 밖의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소와 희생자들의 위치가 뒤바뀌어, 소는 대중들에게 동물이 아닌 인권적 존중과 친밀한 소통의 대상이 되고, 희생자들은 인간이 아닌 동물이 되어 전혀 인권의 보호나 존중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이해하는 바, 영화 관람의 윤리라고 하는 것은 영화를 통해 체득한 감각을 일상의 윤리적 행위로 반복하는 것이다. 이 반복은 단지 영화적 현실, 디제시스적 공간(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장소) 내로 한정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영화들을 통해서 계속 반복되어야 하고, 극장 밖 우리의 현실 속에서 반복되어야 하며, 결국 우리 모두를 통해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 영화의 흥행을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된 한국 대중들의 인권적 감수성의 진정성도 입증될 수 있다. 만일 <워낭 소리> 관람에서 보여준 인권적 감수성의 뜨거운 눈물이 현실에서 반복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대중들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며 흘리는 눈물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차마 조우하지 못하였던 소와 인간의 평등한 우정이라고 하는 전원적인 삶 속의 느낌이나 사건을 때늦게 후회하며 그리워하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은 자신이 어떠한 경우에도 지금 여기 도시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소와 인간이 교감할 수 있는 그런 실재적인 공간은 언제나 영화 관람의 자리에서만 보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실재적인 것으로서 이러한 인권적 감수성에 대한 향수와 열망의 조건은 언제나 그 실재적인 것이 현실에서는 부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심문관은 예수의 역사적 실재와 신성을 독실하게 믿고 있지만, 그의 신앙은 예수가 지상에 절대 강림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의존하고 있었다. 만약 예수가 세상에 다시 내려온다면 대심문관은 현실의 교회를 지키기 위해 다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할 것이다. 실재적인 것의 귀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관객은 영화관에서 실재적인 것에 마음껏 탐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넘어 소와 같은 타자에게까지 개방된 인권적 감수성의 발휘가 작금의 한국사회 현실에서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혹은 그런 것이 무의미하다고 믿기 때문에, 대중들은 다만 영화 <워낭 소리> 안에서 그 감수성의 풍경을 거리 둔 채 자유로이 만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소를 향해 인간이 자기의 도덕과 감수성을 뛰어넘은 신뢰와 환대를 보내고, 소와 인간이 종(種)의 차이를 넘어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아름답고 이상적인 공간이 현실로 귀환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중들은 영화를 관람하면서 편안하고 느긋하게 타자에 대한 인권적 감수성의 귀환을 반갑게 맞이할 수 있다. 그 반가움의 최종점에 물론 뜨거운 박수와 눈물이 있다. 영화에 보내는 박수와 눈물은 영화에서 본 실재적인 것을 다시 영화 안으로 돌려보내고, 우리는 다시 그러한 실재적인 것을 그리워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움을 참을 수 없을 때 물론 영화관으로 다시 가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이 영화는 40년을 함께 살아온 늙은 농부와 소의 관계를 통해 땅과 노동, 나이 듦과 죽음 그리고 특히 인간과 동물의 우정과 교감의 실재성을 시종일관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는 다큐멘터리이다. 감독에 따르면, '워낭'이란 마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 또는 마소의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를 뜻하는 말이다. 영화에서 워낭 소리는 소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주인 할아버지를 소통시키거나 교감하게 하는 '매개음'이며 그들이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상징'이자 '메타포'로 일종의 '맥박'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워낭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소와 노인을 교감시키는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결국 이것은 그들의 관계가 다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고통 공감의 구조, 혹은 사회적 연대의 구조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들려오고 있는 현실의 워낭 소리를 외면하며, 그 워낭 소리에 응답하는 인권적 감수성의 이상적 풍경을 지금 여기에서의 현실이 아닌 영화 속 판타지의 공간에서 관람하며, '실재'가 아닌 '실재의 효과'를 체험하는 데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실재 효과'를 즐기며, 오늘 어쩌면 나에게도 닥칠지 모르는 국가/시장/사회로부터의 고립이나 배제에 대한 불안을 종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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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학교

도홍찬
(중학교 교사)


나에게 교회와 학교는 중요한 삶의 거점이다. 나는 고등학교 이후 군대기간을 빼곤 줄곧 교회를 다녔다. 그리고 의무교육기간을 포함해서 학사, 석사, 박사까지 소위 가방끈을 최대한 늘렸다. 나는 지금도 큰일 없으면 일요일 교회를 나가며, 평일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으로 생업을 삼고 있다. 20년 이상 지속적으로 교회와 학교에 관계를 맺어 온 것은 분명 나의 ‘선택’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 문화에 소원한 가정에서 개신교를 선택하였고, 의무교육기간이 지나고서도 계속적인 진학을 선택하였다. 물론 이러한 선택은 순전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이것을 추동한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 교회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교회가 제공하는 문화, 관계망 같은 것 때문이다. 계속적인 진학 역시 그것에 부여하는 사회의 인습적 가치가 크다. 순전한 신앙심과 배움의 열정만으로는 한 사람의 지속적 행위를 설명하기 역부족이다. 나의 행위는 사회적 행위이며, 제도를 통해서 영속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번쯤 뒤집어 생각해본다. 나의 신앙은 교회가 없다면 정말 지속될 수 없는 것인가. 배움이 학교 바깥에서 일어날 수는 없었던가. 신앙과 배움이 꼭 제도를 통해서 보증받아야 하는가. 제도와 인습을 넘어선 신앙과 배움이란 낭만에 불과한 것인가. 일찍이 이반 일리히(Ivan Illich)가 비판한 것과 같이 근대 사회에서 모든 인간적 가치들이 제도화되면서, 나의 의식과 행위를 제도를 통해서 검증받고, 그것에 의존하는 것은 아닌가. 곧 나는 자발적으로 무엇을 찾고, 관계 맺고, 판단하고 행위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나는 진보적 교회에 다니지만 예배를 빼먹으면 여전히 찜찜하다. 하느님한테 기복적으로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한테 학교는 꼭 나오라고 명령한다. 내 아이가 학교가 싫어서 그만두겠다고 하면 쉽게 허락할지 의문이다.

제도를 넘어선 신앙과 배움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징벌의 두려움, 사회적 배제의 공포감. 그리고 스스로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불안감. 이러한 두려움은 반대 감정인 즐거움을 통해서 상쇄될 수 있을 것이다. 받기보다 주었을 때의 기쁨, 욕망하였들 때보다 비웠을 때의 충만함, 많이 아는 것보다 간결하게 사는 것의 행복감...이런 것들을 어떻게 훈련하고 배울 수 있을까. 이것들은 체험하지 못하면 공염불인데, 이것의 실천 역시 또 다른 제도를 통해서나 가능한 것일까.

한국 교육 개혁 담론의 주류는 제도 개선의 담론이었다. 입시 제도, 고교 평준화, 학교 체제의 다양화, 교원 평가 등등 제도의 개선을 통한 교육의 정상화를 꿈꾸었다. 정부와 자본이 수월성과 경쟁의 논리로 제도 개선에 접근했다면, 진보 진영은 교육의 공공성과 평등주의를 지향하였다. 교육담론이 제도의 문제와 집요하게 대결하고 있는 동안, 학부모, 교사, 학생들은 오히려 제도를 심각하게 사고하지 않았다. 빈번한 제도의 부침 속에서는 공정한 사고가 들어서기 보다는 자기보존의 욕망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어떤 제도가 되든지, 나의 안정, 나의 상승이 보장되면 된다. 안되면 무리수를 사용해서도 되게 만들어라. 잠정적으로 타협된 제도가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모두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제도는 다시 개선을 요청받는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제도 개선 담론의 현실이다.

졸업시즌이다. 이제 빛나는 졸업장은 없다. 성적 좋은 아이 몇 명이 상을 타고, 사진 몇 장 찍고,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간다. 학교에서 배움이 큰 축복이 될 때 졸업은 감개무량할 텐데, 다음 단계를 향한 의례적 요식 절차에 불과하니 졸업의 아쉬움과 기쁨은 사라졌다. 우리 시대에 과연 진정한 졸업이 있었던가. 한 단계 지나면, 또 다른 경쟁의 단계에 진입하지 않는가. 우리학교에 유일하게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는(못하는) 아이가 있다. 지병으로 진학을 포기하였다고 한다. 신체 활동이 점점 퇴화하는 병이란다. 1학년 때에는 꽤 밝은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훨씬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이 아이가 엄마와 함께 유일하게 식당에 와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갔다. 내가 이 아이만 진정한 졸업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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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는 아이들

정세환
(강릉대학교 치과대학 교수)

강원도 강릉의 북단에 위치한 주문진에는 아이들의 웃음이 늘 넘쳐나는 네 곳의 생활공간이 있습니다. 강릉의 시민사회·종교단체들이 IMF경제한파를 거치면서 지역의 실업과 빈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고자 창립한 (사)함께사는세상이 강릉에서 가장 열악한 주문진에 지역민들과 함께 만들어낸 소중한 공간들입니다. 2001년에 개소한 ‘꿈나무’ 지역아동센터(방과후공부방)를 필두로, 지역의 요구에 따라 하나씩 늘려 가다보니 어느덧 ‘해나비’, ‘파란바다’ 그리고 작년에 만들어진 ‘소돌’까지 150명가량의 아이들이 방과 후에 함께하는 주문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곳이 되었습니다. 이름들도 하나같이 참 예쁘게 지었지요?

제가 이들 공부방을 알게 된 것은 함께사는세상의 일원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지난 2004년부터였고,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이들을 총괄하는 비상근 소장직을 맡았던 작년이었습니다. 제게는 그 어떤 경험보다도 소중했습니다. 많을 것을 생각할 수 있었고, 얼마간의 보람과 아쉬움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보다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방과후공부방에 관심과 협력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큽니다. 제 글이 방과후공부방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이제 간략하나마 주문진공부방에 대한 소개를 좀 더 드려보겠습니다.

꿈나무 공부방이 처음 개소되었던 2001년만 해도, 정부의 지원이 거의 없어 민간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서 운영되었다고 하더군요. 종사자 한 명의 추가 인건비를 마련하기도 힘들었던 때라, 한 두 명의 종사자가 40~50명씩 되는 어린이들에게 급식을 제공하기에도 힘이 부쳤다고 하고요. 급식조차도 지역에서의 다양한 협력을 이끌어내서 겨우 가능할 수 있었답니다. 공부방을 이용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훨씬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자원의 한계로 인해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웠었다고 지금도 애기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2004년부터 정부지원과 지역자원의 공유가 보다 본격화되면서, 두 번째 공부방인 해나비가 개소되었고, 2007년에는 중고등학교 청소년 전용 공부방인 파란바다까지 개소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단순 보호와 급식제공을 넘어서서, 아이들의 자존감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 학습지도 프로그램, 미술과 체육을 포함한 각종 문화취미활동 프로그램, 치아건강과 정신건강 등을 위한 보건프로그램, 여름 겨울 캠프운영 등 다양한 활동들이 이루어지는 생활공간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나마 현재와 같은 프로그램이 가능해진 것은 전적으로 지역사회의 연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역사회가 함께했던 예로써, 제가 직접 경험했던 치아건강 프로그램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잘 아시듯이, 대부분의 아이들은 충치로 인해 많은 고생을 합니다. 가난한 집의 아이일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하고요. 이들 아이들에서 더 큰 문제는 충치가 생겨서 아픈데도 불구하고, 보호자가 제때에 치과에 데려가서 치료를 받게 해 주지 못한다는 겁니다. 주문진공부방의 많은 아이들도 충치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여러 활동가들이 모여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해 머리를 맞대었습니다. 우선 치료를 담당해줄 치과를 섭외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강릉대치과병원을 섭외 일순위로 생각하고, 병원 집행진과 구성원들에게 여러 차례의 설명회를 가졌고, 결국 공공의료의 일환으로 본인부담금 전혀 없이 아이들의 충치 치료와 예방을 맡아주겠다는 승낙을 얻었습니다. 이 문제가 풀리자 더 큰 난관이 있었는데, 아이들을 차로 20분 거리의 치과로 데려가는 일이 그것이었습니다. 한 부모 가정, 조손 가정인 경우가 많고, 부모가 있더라도 상당수 가정이 맞벌이를 하고 있어, 대부분의 가정이 낮 시간에 아이를 치과에 데려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어렵더라도 공부방에서 책임지고 아이들을 치과에 데려가는 방식을 택하는 것으로 결정했었습니다. 본격적인 시작을 앞두고는 주문진뿐만이 아니라, 강릉시내 전역에 있는 방과후공부방들이 모두 참여하기로 논의가 되었고, 그 과정에 보건소와 강릉시의 참여와 지원까지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보건소에서는 아이들에게 칫솔질 교육과 1년에 두 차례 칫솔을 제공했고, 강릉시에서는 12인승 차량을 제공해주어 아이들의 이동이 보다 원활할 수 있었습니다. 강릉대치과병원 이외에도 한 곳의 치과가 추가로 참여해주셨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으나,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이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문진의 네 개 공부방을 넘어서 강릉시 전역의 20개 공부방이 모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치과 치료와 예방에 소요된 금액으로만 해도 6천만 원 이상의 이득이 있었고, 공부방에서 급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고, 먹고 난 후에 칫솔질하는 아이들이 부쩍 늘어난 것은 당장의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더 큰 성과였습니다. 작년의 성과를 정리하면서 올해에는 시력저하로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안경을 제공해주는 사업을 추가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역시도 잘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10년 전 IMF경제한파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요즘같이 어려운 경제상황에는 더 많은 아이들이 방과 후에 거리에서 방치될 것이라 추측됩니다. 작년 말에 지역아동센터별 운영비 지원액을 월 230만원에서 460만원으로 올리고자 했던 예산안이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삭감되었기에, 올해에도 방과후공부방의 열악한 상황은 정부지원으로는 쉽게 개선될 수 없어 보입니다. 민간에서의 자발적인 관심과 참여만이 유일하게 남은 희망이라 여겨집니다. 이 글의 제목인 ‘꿈을 꾸는 아이들’은 네 곳의 주문진공부방에서 연합으로 연 1회 발간하는 소식지의 제목입니다. 정말이지 많은 아이들이 방과후공부방에서 자신의 장래에 대한 새로운 꿈을 꾸고 있습니다. 가난으로 인해 꿈을 꾸는 것조차 잊고 있는 아이들에게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방과후공부방에서는 금전적 혹은 물품 후원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몸 혹은 지식을 이용한 각종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여러분에게 상상 그 이상의 기쁨을 선사할 것입니다.

※ 주문진 방과후공부방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으시다면, 홈페이지(www.ggnet.or.kr)를 방문하시거나 전화(033-642-1813)주십시오. 후원금을 보내주실 분은 ‘농협. 172996-55-004261. 함께사는세상’의 계좌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 웹진 <제3시대>

<이제 급식 전 손씻기, 급식 후 칫솔질은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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