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유대인이 아닌 이유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반나절의 여행이 주는 생각의 깊이는 많아야 반나절 정도입니다. 정보는 빈약하고 본 것에 대한 직관적 감정에 지배당하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선입관이 미치는 감정에 대한 지배력은 가히 위력적입니다. 내게 프랑크푸르트에서의 반나절이 그랬습니다.

한인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한 철학도의 안내를 받아 시내 관광을 시작했습니다. 유대인 묘지에 방문한 것은 그의 안내 코스의 끝자락에서였지요. 그는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 안네 프랑크의 사택도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 한데 흔적도 남지 않은 채 얘깃거리만 남은 회당터를 거쳐 당도한 꽤 큰 유대인 묘지 앞에서 급격하게 냉소적으로 돌변해버린 나의 눈치를 보던 일행은 그날 관광을 거기서 마치기로 했지요. 일행에게 미안했지만, 그 순간 치밀어 오르는 심통을 더는 감추지 못했습니다.
 
묘소라기보다는 그냥 담으로 둘러쳐 있는 큰 공터라고 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낡은 흠집투성이의 묘석들이 담 안쪽으로 옮겨져 안치된 듯한 공간이고, 별다른 기념비는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벽 바깥으로 같은 크기로 검은 대리석 비슷한 벽돌이 가로 다섯줄로 수도 없이 박혀 있었지요. 거기에는 죽임당한 이 도시 출신 유대인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외에 그가 죽임당한 곳, 죽은 날짜 등의 정보도 있었고요.

한참을 그 돌들만 쳐다보았습니다. 수많은 이름들, 날짜들, 수용소들. 수백 개쯤 읽으니 점점 기계가 됩니다. 생각은 비워졌고 그냥 알파벳 발음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저 이름들이, 그저 이름만 읽을 수 있을 뿐이 그 이름들이, 어느 시간에 어느 수용소에서 죽었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조차 없는 그 이름뿐인 것들이, 이젠 이름조차도 지워진 채 읽혀지고 있었습니다.

안네의 아버지처럼 은행가였을 수도 있고, 우리를 안내하는 철학도처럼 학생일 수도 있고, 노동자일지도 모르고, 공산주의자였을 수도 있고, 자유주의자였을 수도 있고, 나처럼 빵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키가 큰 사람일지도 모르고 뚱뚱한 사람일 수도 있는, ...., 모든 상상 앞에 열려 있는 그 이름들이, 어느 순간 내게는 아무런 상상도 허락하지 않고 오직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머리에 박혀버렸습니다.

비위가 뒤틀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마치 내가 상상하는 대로 그 묘소가 조성되었을 거라고 단정하면서 하나의 음모론을 상상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고 그날 모두의 관광을 망쳐버리고 말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나는 오늘도 여러분과 나의 생트집잡기를 두고 대화를 나누려 합니다. 그것이 누구의 음모는 아니겠지만 분명 우리를 환각에 사로잡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 ‘역사의 음모’라는 생각을 여전히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의 주인공들은 어느 날 나치에 의해 ‘유대인’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별’ 문양의 기호로 표상되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들은 독일인이었겠지요. 폴란드에서 일거리를 찾아 온 이주한 사람일지도 모르고, 남편의 나라로 이주한 이태리 여성일지도 모릅니다. 또 그이는 부르주아였을 수도 있고, 노동자였을 수도 있고, 학생일 수도 있었겠지요. 그들은 모두 각각의 모습으로 각각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은 정부에 의해 유대인이 되었고, 수용소에 구금되어 죽임당했습니다. 그리고 전쟁 후 이스라엘 정부와 세계의 유대인 협의체들에 의해 숭고한 인종주의의 희생자들로 규정되었습니다. 하여 그들은 하나의 범주, 곧 유대인이 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을 하나의 부류로 묶어놓고 그들을 숭고한 희생자들로 규정하면, 그 숭고한 자들과 동일한 범주에 엮인 산 사람들도 그 숭고함을 덧입게 됩니다. 죽임당한 자들과 산자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는 역사가 탄생하고 그 역사는 숭고함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유대 시오니즘이 그런 대표적 사례입니다. 유대인들은 이제 자신들의 희생을 특화시킵니다. 그것은 자기 역사에 대한 특권화이고 다른 역사에 대한 무시와 멸시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것이 자기들이 국가를 세운 땅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2천년의 역사를 무시하고 그들을 학살할 수 있었던 심성의 배경인 것이지요.

이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한 토론회에서 바울에 관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날 발제자의 주장에 대해 내가 시비를 걸었던 소재는 ‘바울이 유대인이라는 주장’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현대의 바울 연구사에서 중요한 발견이었지요.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 바울이 아니라 유대인 바울이라는 것, 거기에서 바울에 관한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내가 평소 주장했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교를 창시한 이라는 낡은 주장은 현대 바울 학계에서는 폐기처분되어야 하는 낡은 관점이지요. 그런 점에서 바울이 수없이 말한 ‘교회’라는 표현은 후대에 그리스도교의 모임 혹은 장소를 지칭하는 용어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교 개혁운동의 한 지도자였지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데 나는 오늘날 바울 역사학계에서 일반화된 이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울 당대에 지중해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를 유대교라고 지칭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중해 지역 도시들에서 이스라엘인들의 종교는 예루살렘 종교와 결코 동일한 범주에 묶였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들 대다수는 예루살렘 성전뿐 아니라 사마리아의 성전도 존경했고, 그 역사도 존중했습니다. 또한 지중해 지역의 회당들 각각 또한 매우 다양했습니다. 회당들은 어느 하나를 중심으로 정치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통합되어 있지 않았고, 서로 다양한 방식으로 공존했고, 단지 서로를 존중하며 야훼의 이름으로 네트워크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더욱이 엘리트가 아니라 대중의 층위로 가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대중의 벽화 같은 것을 보면, 지중해 지역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가 살던 지역의 종교와 문화에 상당히 동화되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대중들은 결코 야훼 순결주의에 물들어 있지 않았고, 다분히 혼합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었습니다.

야훼신앙은 이렇게 다층적이었습니다. 바울이 접한 지중해 지역의 이스라엘인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가 골방에서 세상을 말하는 사변가가 아니라 사람들가 몸과 마음을 마주하며 활동한 목회자이자 예언자였다면, 그는 이런 다양한 이스라엘 인들의 경험과 신앙과 무관하게 말하고 활동하였다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물론 바울은 유대화된 이스라엘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그는 늘 예루살렘과 자신의 연결고리를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대중의 눈높이와 함께 한 실천가였습니다. 더욱이 그의 대중은 주로 회당의 엘리트가 아니라 무지렁이 대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 바울 역사학계가 주장하는 ‘바울은 유대인이다’라는 명제가 알려주는 정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 말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바울을 유대인이라는 범주로 묶어서 생각하는 것은, 내 생각에는, 현대 서양의 주류 학계가 빠져 있는 유대주의적 편견의 산물입니다. 나치의 범죄에 대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그렇게 생각한 것이겠지요. 더구나 유대인 협의체들의 발명된 역사관과 이데올로기적 공모자의 자리에서 신학을 한 결과이기도 할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바울 자신의 말에 주목해봅니다. 그에게서 예수는 무엇일까요. 그는 분명 예수를 만나기 이전에는 철저한 유대 순수주의자였습니다. 한데 예수를 알게 된 이후 자신의 순수주의를 포기합니다. 이때 그가 강조한 것은 ‘십자가’입니다. 알다시피 당시 십자가는 로마제국과 연관된 구체적인 표식입니다. 제국에 의해 처형당한 자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필경 지중해의 이스라엘인들의 회당에서 십자가에 달린 자, 저 제국의 반대편에 서서 죽임당한 의인을 설파하는 이들이 있었고, 바울도 그런 이들로부터 예수에 관해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분을 받아들였고, 십자가를 자기 신앙의 중심적 가치로 이해했습니다. 한데 그의 생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본문은 바로 그러한 바울의 성찰을 보여줍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그분에 관한 표식이 아니라 내면으로 들어온 그분의 표식이라는 것입니다.

내면에서 그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이 말은 유대인이라는 자의식, 유대인이라는 범주의식을 그가 버렸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을 유대인이라는 범주로 묶어서 사고하는 것, 그 범주에서 어떤 삶과 역사를 특권화시키는 것을 포기했다는 애깁니다. 하여 그는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제국만이 아니라, 제국에 의해 희생된, 멸망당한 식민 백성인 유대인을 특권화시키는 유대주의적 역사관과도 싸움을 벌입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을 가르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고, 남자와 여자를 가르고, 주인과 종을 가르는 일체의 분리주의, 그 분리주의를 정당화하는 범주적 유대주의인 것입니다. 해서 그는 결코 유대인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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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난주
    2011.07.27 00:4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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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과 안네의 일기는 공통점이 있잖아요. 세계에 가장 많이 번역되고 전파된 책이라는 점. 시오니즘의 욕구가 이미 들통났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책은 여전히 출판되고 있어서 이스라엘의 합리화는 당분간 지속되겠지요. 제 안에서 시도중인 합리화부터 성찰하고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제일철학으로서의 윤리학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간략한 윤리학史, 그리고 레비나스의 위치

레비나스의 ‘제일철학으로서의 윤리학’을 살펴보기 이전에 서양윤리사상에서 발생했던 굵직한 윤리적 원칙인 목적론적 윤리, 의무론적 윤리, 그리고 책임윤리에 대한 이해를 먼저 살펴본다. 좋음과 기쁨, 그리고 행복을 추구하는 목적론적 윤리의 계보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하여 에피쿠르스학파, 영국의 경험론, 공리주의로 이어지면서 행위의 결과에 주안점을 두는 윤리학설이다. 이런 까닭에 좋은 결과를 위한 개인의 혹은 공동체의 목적, 이상, 목표 등이 윤리적 이슈로 등장한다. 비록 중세 기독교 문명과 근대의 이성주의를 거치는 동안 그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이는 니체 이후 다시 복권되어 푸코와 들뢰즈 등으로 이어지면서 억압되고 압제되었던 노예의 도덕이 아닌, 명랑하고 유쾌한 주인의 도덕을 꿈꾸며 21세기 사상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의무론적 윤리는 행위의 결과보다는 행위의 동기에 무게를 둔다. 칸트가 대표적 인물이고, 목표와 이상에 따라 행위가 달라지는 목적론적 윤리와는 달리 조건에 관계없이 내가 따라야 할 최고법칙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들에 의하면 선이란 행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선이란 바른 행위를 가능케하는 동력이다.

예를 들어, 현상금 1000만원이 붙은 국가보안법을 어긴 시국사범이 경찰에 쫓기다가 우리집으로 들어왔다. 경찰이 문을 두드리면서 지금 누가 들어오지 않았냐고 묻는다. 이때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목적론적 윤리에 따른 행위를 하는 사람은 행복의 기준이 문제가 될 것이다. 1000만원이 주는 물질적 기쁨이 신고를 하는 불쾌보다 큰 사람은 신고를 할 것이고 (양적공리주의), 물질적 기쁨보다 정신의 평온을 중시하는 사람(질적공리주의)은 그 도망자를 숨겨줄 확률이 높다. 의무론적 윤리를 중시하는 사람은 칸트의 표현대로라면 보편 타당한 입법에 맞게 행위하는 사람이므로 거짓말을 하지마라, 현실의 국가보안법이 보편입법이기에 신고하는 것이 본인의 신념에 맞는 행위이다.

목적론적 윤리와 의무론적 윤리 이외에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책임윤리를 들 수 있다. 목적론적 윤리와 의무론적 윤리가 윤리적 판단기준의 문제에 집중하면서 외삽적 논리싸움으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에 대한 문제제기가 발생한다. 이는 윤리 본연의 쟁점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 다시 숙고케한다. 책임윤리는 개별적 인간들이 자아내는 관계들에 주목하면서, 결국 윤리적 행위란 관계속에서 발생하는 물음들과 아픔과 상처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행복과 우리의 입법이 과연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중시하는 책임윤리 안에서는 윤리적 주체와 윤리적 대상간의 관계가 주된 행위의 기준으로 등장한다.

이렇듯 위에서 살펴본 윤리방법론에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윤리적 행위는 목적론과 의무론, 책임의 원칙이 어우러진 종합적인 행위이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윤리적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 So What?, 즉 ‘네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 앞으로 우리를 내몬다. 레비나스의 윤리학을 굳이 이 세가지 범주에서 분류하자면 책임윤리라 부를 수 있겠지만, ‘제일철학으로서의 윤리학’이라는 레비나스의 발언 속에는 이러한 기계적 분류보다는 더 복잡한 함의가 깔려있다.

레비나스의 사상속에는 서양철학에 대한 안티테제가 깊게 드리워져 있다. 칸트, 헤겔 또는 후설과 하이데거의 사상에 공통으로 깔려있는 존재중심의 사고, 주체 중심의 자율성은 ‘나는 타자를 나의 동일성안으로 환원시켜야 한다’는 근대의 도그마를 전제한다. 그들에게 있어 타자는 또 하나의 자아이다. 남을 자아로 바라본다는 것은 어느 면에서는 기특한 것이다. 내가 나를 생각하고 배려하듯 타자를 그렇게 대한다는 논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성적 사고와 교양으로 채색된 근대인들이 지니는 자기교만이다. 내가 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듯이 남에 대해서도 주체는 나를 알듯이 속속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의 도그마는 근대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모든 야만의 근거가 되었다.[각주:1] 레비나스는 이를 비판하면서 전통적인 서구의 도덕과 책임은 파르메니데스 이래로 서구철학을 지배했던 유령, 즉 개인(타자)을 전체(동일성)로 환원시키려했던 돌림병 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였고, 이를 ‘힘의 철학’[각주:2], ‘전쟁의 존재론’[각주:3]이라 비난한다. 홀로코스트는 이런 서구형이상학의 실재가 돌출하여 인류전체를 베었던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는 이러한 전체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되었고, 그에 대한 반론을 펴는 첫 번째 단계에서 동일성으로 포획되지 않는 타자를 설정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런 의미에서 ‘타자의 얼굴’은 동일성의 폭력에 반대하면서 윤리학에 기초한 새로운 사상으로의 전환을 도모하려는 레비나스에게 중요한 사유의 거점이 된다. 전통적으로 레비나스를 공부할 때 ‘타자의 얼굴’을 설명하는 대목에 이르면 후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 개념, 그리고 양자를 극복해나가는 레비나스 현상학의 독특함을 거론한 후 ‘타자의 얼굴’에 이르는 순서를 밟는다. 필자는 이런 도식보다는 복음서에 나타난 타자에 대한 환대가 드러난 기사(예수의 비유에 나타난)와 레비나스의 ‘타자의 얼굴’을 상관시킴으로써 이 문제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서고자 한다.

타자의 얼굴_ 예수의 비유를 중심으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비유들은 ‘하나님 나라’를 민중들에게 설명할 때 사용하는 그릇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그릇이 사용되어지는가에 따라 음식의 종류와 맛을 상상할 수 있듯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도 몇 가지 종류의 그릇에 담겨 전달되어져 우리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맛과 향을 달리 느끼게한다. 예수가 민중들에게 들려주는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 종류의 그릇에 담겨 배달된다. 하나는 ‘언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가?’, 즉 하나님 나라의 때(시간)와 관련된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나라와 현실세계와의 차이점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은 누구인가?’라는 주제이다. 지금부터 언급하려고 하는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비유는 대표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은 누구인가?’를 언급하는 본문임과 동시에 레비나스의 ‘타자의 얼굴’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예수는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라는 율법교사의 질문을 받고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준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서로 만날 수 없는 타자이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사마리아인에게는 더러운 이방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유대사회는 사마리아산 포도주나 기름의 사용을 금지하였고, ‘사마리아인의 빵을 먹는 자는 돼지고기를 먹는 자와 같다’라는 속설이 유대사회 전체에 퍼져있었다.[각주:4] 이렇듯, 유대인에게 있어 사마리아인은 자신들의 율법안으로 포섭되지 않는, 우리 인식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타자다. 그런데, 그토록 격멸했던 타자 사마리아인이 강도만나 초죽음이 된 유대인을 받아들인 것이다. 본문이 처음 읽혀지고 유포될 당시 유대인 독자들은 모두 의아했을 것이다. 유대사회의 지도층을 대변하는 제사장과 레위인 모두 피해갔는데 왜 하필 사마리아인가? 이 비유 안에 나타난 타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내가 알 수 없는 존재, 내가 모르는 존재에 대한 응답을 의미한다. 타자란 나의 앎과 계산에 의해, 나의 율법과 관습에 의해 선택되고 받아들여지는 존재가 아니라, 내게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내가 즉각적으로 응답을 해야 할 대상인 셈이다.

마태복음 25장 ‘최후의 심판’ 비유에서 인자는 심판 날에 양을 자기 오른쪽에 염소를 자기 왼편에 세운다. 양과 염소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상징한다. 이 심판을 지켜보는 청중이나 오른쪽에 있는 양, 왼쪽에 있는 염소 모두에게 인자의 판정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유는 그 판정기준 때문이었다. 김창락 교수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놀라운 것은 멸망을 선고받은 사람들도 비신자가 아니라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무슨 악행을 저질렀거나 의식적으로 범죄를 하였기 때문에 멸망을 선고 받은 것이 아니라 이름없는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을 선고 받았다는 것입니다.”[각주:5]

판정의 기준 못지않게 논란이 되는 대목은 인자의 자기인식이다: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 23:35-36). 김창락은 이 구절에 기대어 인자가 당대의 타자였음을 분명히 한다: “인자는 자신을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와 완전히 동일시 하였다.”[각주:6] 인자가 타자라는 사실, 즉 내가 모르고 있었고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이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각주:7] 결국, 위의 예수의 비유를 통해 확인된, 인자가 나의 인식과 나의 결단과 신앙의 도그마 안으로 포섭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얼굴을 통해 어느 순간 내게 확 다가와 응답을 요구하는 존재라는 사실은[각주:8] 레비나스가 주장하는 ‘제일철학으로서의 윤리학’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제일철학으로서의 윤리학


레비나스의 ‘제일철학으로서의 윤리학’[각주:9]은 한마디로 타자의 얼굴에 반응하는 것이다. 요즘 같이 아름다운 것이 선한 것이 되고, 신체와 몸과 얼굴이 자본화 권력화 되어가는 시점에서 시대착오적발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레비나스의 얼굴은 단순히 눈, 코, 입이 조합된 성형외과에서 개조의 대상이 되는 즉물적 개별적 얼굴이 아님은 당연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레비나스가 ‘타자의 얼굴’에서 강조하는 점은 타자의 얼굴로부터 호명되어진 무엇으로 인해 우리 마음에 생채기가 생겨 ‘내가 여기 있나이다’[각주:10]라는 답변을 지닌 채 타자의 얼굴과 대면하는 것이다(face to face).[각주:11]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윤리는 새롭게 태어난다고 레비나스는 말한다: “동일자에 대한 의심, 즉 동일자의 자기중심적 자발성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이 일이 타자(타자의 얼굴과 대면하는 것)를 통해 일어난다. 타자의 현존으로 인해 나의 자발성에 문제제기가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윤리라 부른다.”[각주:12]

위의 문장은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주체, 즉 동일자의 자기의식 안에 갇혀있는 그 주체로는 우리가 타자를 인지할 수 없다는 것, 이 말은 또한 주체이전에 타자가 먼저 상정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타자를 먼저 인식하고, 그런 타자의 얼굴에 반응(응답)하는 윤리적 주체로 자기를 정립하게 되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무한의 미래, 가능성이 펼쳐진다. 이것이 바로 레비나스가 말하는 존재론에 우선하는 윤리학, ‘제일철학으로서의 윤리학’이다.

사실, 기존의 윤리는 타자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말한다고 하지만 주체중심의 인식론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타자에 대한 윤리는 실상은 나의 의지, 판단, 결정의 소산이고, 주체의 그것을 돋는 기저에는 항상 권력관계가 작동한다고 푸코는 비판한 바 있다. 레비나스 역시 푸코가 같은 문제의식을 지녔으나 양자가 취했던 방법은 다르다. 푸코는 주체 대신 자기를 발견하면서 내면으로의 수렴을 강화한 반면, 레비나스는 주체를 향한 수렴대신 초월을 향한 발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결론적으로 레비나스가 지녔던 서구윤리학에 대한 문제제기는 다음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서구철학 깊숙히 문신처럼 베어있는 주체중심의 인식론 바깥에 새로이 윤리학을 위치시킬 수는 없을까?” 이러한 전환은 헤겔식의 근대적 주체, 그리고 그 주체가 지녔던 무한한 자유에 대한 반성이자 폐기선언이라 할 만하다.[각주:13] 인간은 근대가 이룩한 정신의 성취가 아니라, 그 외부에 있는 무엇인가로부터 비로소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가 확보되는 존재이다. 그것을 레비나스는 존재론 혹은 주체중심의 인식론에 선행하는 인간이라 표현하였고, 그 결과 윤리학은 레비나스에 와서 제일철학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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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mmanuel Levinas, Totality and Infinity: An Essay on Exteriority. Trans. Alphonso Lingis,( Pittsburgh, PA: Duquesne University Press, 1969), 87-88. [본문으로]
  2. Ibid., 44. [본문으로]
  3. Ibid., 22 [본문으로]
  4. 조태연 외. 『뒤집어 읽는 신약성서』.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 84. [본문으로]
  5. 김창락. 『귀로 보는 비유의 세계』 (천안:한국신학연구소,1997), 392. [본문으로]
  6. Ibid., [본문으로]
  7. “Messianism is that apogee in Being-a reversal of being persevering in his being”- Emmanuel Levinas, Entre Nous: On Thinking-of-the-Other. Trans. Michael B. Smith & Barbare Harshav.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8), 60. [본문으로]
  8. Emmanuel Levinas, Totality and Infinity: An Essay on Exteriority. Trans. Alphonso Lingis,( Pittsburgh, PA: Duquesne University Press, 1969), 199-200. [본문으로]
  9. Levinas, Emmanuel. Levinas Reader. Edited by Sean Hand, (MA: Balckwell, 1989), 75-87. [본문으로]
  10. 임마누엘 레비나스, 『윤리와 무한』,양명수 옮김 (서울: 다산글방,2000), 136. [본문으로]
  11. Ibid., 99. [본문으로]
  12. “A calling into question of the same-which cannot occur within the egoist spontaneity of the same- is brought about by the other. We name this calling into question of my spontaneity by the presence of the Other ethics.”- Emmanuel Levinas, Totality and Infinity: An Essay on Exteriority. Trans. Alphonso Lingis,( Pittsburgh, PA: Duquesne University Press, 1969), 43. [본문으로]
  13. Ibid., 196-19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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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가을을 떠올리며, 할머니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장운양
(한백교회 교인)


1. 저에게 1979년은 너무나 많은 사연들이 차고도 넘쳤던 해입니다. 국민학교 3학년 시절이었습니다.

2. 1,2학년 시절 우등상장을 타지 못했다고 아버님은 봄방학이 접어드는 그 시절에 어린이들에게 가장 큰 고문인 잠을 재우지 않았습니다. 그 때의 아버지의 눈빛은 너무 무서웠고 지금도 진저리칠 만큼의 악몽이 종종 꿈자리에서 나타납니다. 당시 아버님은 중학교 서무과 직원이셨는데, 결국은 그 1979년 제헌절날 장로에 임직하셨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서무과 직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던져 버리셨고.... 그 이후 어머니는 온갖 일들을 하면서 아버지가 감당하지 못하는 경제력을 매꾸기 위해서 헌신하셨습니다.

3. 시간을 헤아릴 길이 없이 제대로 공부 못해서 우등상장을 타지 못했다고 규정하시면서 새벽기도 전까지 초등학교 1학년 2학년을 꾸짖는 분을 지금 생각해 보아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난감합니다.

4. 1979년 3학년에 오르고서, 저는 3학년 1반이 되자마자 담임선생님에게 여쭙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우등상을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당시 선생님의 이름이 정확하게 떠오릅니다. 최진행 선생님이셨습니다. 전라북도 전주가 고향이었고, 한문이 매우 중요하므로 국어시간마다 3자씩 한문을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할아버님 덕분에 한자를 꽤 알고 있었고(천자문 정도) 선생님은 저를 꽤 기특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제 아버님은 중학교 서무과 직원으로서 하셨던 일들이 가리방으로 각 과목 선생님들의 시험지를 대신 필사해서, 제공해 주시는 역할을 맡은 분이셨습니다. 당연히 필체가 상당히 좋으셨습니다. 그래서 장로 임직 전 이후로 거의 20여년의 시절동안 모교회의 주보를 가리방을 긁어서 감당하셨지요.

5. 1979년 국민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제가 우등상을 타려면, 문제를 많이 풀어 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당시는 표준수련장과 동아수련장이 압도적인 상황이었는데, 이를 구입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결국은 친구들 수련장을 곁눈질하면서 시험을 치렀습니다. 먼저 말씀드리면, 국민학교 3학년을 마쳤을 때도 저는 우등상장을 타고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아버님은 또 밤을 새우다시피 저를 잠재우지 않으셨습니다. 매우 분노하신 얼굴로 이번에도 우등상장을 타지 못했다고, 너 그렇게 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하셨습니다.  그래도 자식이 공부를 제대로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희망을 감지하고 싶었던 냉혹하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심정으로 받아들입니다.

6. 저는 지금도 두 딸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소리를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공부가 재미있고 할 만하면 하는 것이고 내키지 않으면 그뿐이지요.... 물론 수학처럼 감당하기 좀 어려운 과목들에 대해서 애비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려고는 합니다.  국민학교 1, 2, 3학년을 마칠 때까지 제 유년기에 남아있던 공부에 대한 기억은 솔직히 지금도 지옥 그 자체입니다. 누가 성적을 제대로 높게 평가받기를 거부할 학생이 있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제 아버님은 너무도 어린나이에 저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초래하셨던 듯싶습니다.

7. 1979년은 또 다른 의미에서 제게 매우 중요했던 시기였습니다. 모 교회에서 만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형~ 누나들이 자전거를 타고서 교회에 오는 모습이 너무 부러워서, 저도 자전거를 갖고 싶었습니다. 1979년 경기도 이천의 면단위의 지역들은 거의 7,80%가 가난했던 시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8. 계속해서 중학교 서무과에 근무하는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사달라고, 사주면 더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기저기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곳에 돈을 때로는 왕창 쓰시기도 했지만, 절대로 저에게 자전거를 사주실 생각이 없던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9. 매달 종종 걸어서 한 시간 걸리는 할아버지댁 큰할아버지댁을 들렀습니다. 사실, 저의 할머니는 친할머니는 아니셨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항상 제가 오면, 우리 큰손자하시면서 순식간에 맛난 것들을 내주셨습니다. 그 중에 압권은 콩엿이었지요. 할머니는 제가 한 시간 걸어서 할아버지댁에 들리면, 그 콩엿이나, 너무나 제가 좋아하는 감주를 항상 내주셨습니다. 할머니가 자물쇠를 관리하셨던 그 할아버지댁 대문 옆에 있는 광은 지금 기억해도 저에게는 너무나 엄청난 공간이었습니다.

10. 할머니는 항상 광을 들어가시면 뭔가를 제게 건내셨습니다. 우리 장손주 하시면, 공부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이지요.

11. 할머님은 글을 읽지 못하셨습니다. 제가 가끔 금요일에 할아버지 댁에 들리면, 할머니는 성경을 드시고서 저에게 어떻게 읽어야 하냐고 도와 달라고 하셨습니다. 아주 띄엄띄엄 성경을 읽어내려고 무진장 노력하셨습니다.

12. 당근, 저는 할머니를 최대한 도와드렸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해 추석에 사단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13.아버지는 장로가 되시고서 지금 뒤돌아 봐도 교만해지셨습니다. 자신의 고향에 기도처를 넘어선 교회가 들어서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을 너무 인정받고 싶어 하셨고, 결국은 자신의 기준에서 받아들이실 수 없다고 할머니가 사시는 지역에 담임하신 목사님을 반대하시고서 그분이 그 개교회를 떠나가시게 만드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는 막내삼촌의 눈물을 지켜보는 것도, 할머니의 괴로움을 지켜보는 것도, 그리고 떠나가시는 그 목사님 내외분을 지켜보는 것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국민학교 3학년 나이에 감당해야 했던 힘겨움이었습니다.

14. 제일 힘들었던 것은 어머니를 지켜보는 입장이었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가 해서는 안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끈해서 당위성으로 마을에 목사사모가 소문이 무성하게 휘말리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아버지는 강경하셨고, 결국은 그 젊은 목회자 부부는 할머니가 소중하게 섬기셨던 교회를 떠나셨습니다.

15. 그리고,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는 극도로 뒤틀려졌습니다. 추석날을 기억합니다. 어머니는 음식을 가장 빠른 시간내에 잘 준비하실 수 있는 탁월한 감각이 있었습니다. 물론, 할머님도 음식을 잘하셨지만, 어머니보다 그렇게 후딱 빠른 시간내에 맛있는 음식을 내지는 못하셨습니다. 1979년 추석날~ 할머니는 어머니를 쳐다도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 냉랭한 긴장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장손자의 입장의 저는 매우 괴로웠습니다. 아버지가 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느낌과 그렇다고 뭘 어쩌지도 못하는 우등상장도 타지 못하는 저의 처지에서 말이지요...

16. 그리고, 흉년이 닥쳤습니다. 당시에는 통일벼를 심으면 수확이 더 나온다고, 농촌 여기저기서 통일벼를 파종했던 시기였습니다. 어머니가 음식을 잘하셨다고 당시 모교회 오천교회나 주위분들에게 인정받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김치 때문이었습니다.

17. 제가 어머니가 담그신 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엄마 김치는 항상 왜 이렇게 맛있어?"  제 어머니는 "김치는 온도란다" 사람이 체온을 잘 유지해야 건강하듯이 말이란다.

18. 어머니는 최대한 빨리 김장을 담그시면, 그것을 바로 광밑에 공구리된 지하창고에 보관하셨습니다. 그럼 약 한 달이 되기 전에 싱싱한 김치가 씹는 아삭아삭한 맛과 숙성된 감칠맛이 느껴지게 처음으로 김장김치가 익게 됩니다.

19. 그러나, 할머니는 김치를 최대한 짜게 담그셔서, 배추를 비롯한 재료를 아끼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막내삼촌이 할머니를 향해서, 형수 김치는 그렇게 맛있는 데, 엄마김치는 맨날 짜다고 불평이 자자했습니다. 참고로 막내삼촌과 조카인 저와는 8살 차이입니다.

20. 그러나, 할머님은 엿이나 감자떡, 절편 등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특히~ 감주는 압권이었는데, 약간 시간을 걸리는 음식들은 기가 막힐 정도로 잘하셨습니다. 항상 제게 콩엿을 구워주셨던 것도, 그렇게 엿질금을 다룰 수 있으신 노하우가 있으셨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봅니다.

21. 이런 사태가 일어나고, 1979년 박정희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실장의 권총에 의해서 생몰하기 몇주전, 어머니가 저에게 자전거를 타고서 할아버지 댁에 가서, 할머니에게 쌀을 좀 얻어 오라고 시키셨습니다. 아버지는 결국은 자전거를 사주지 않으셨지만 제가 큰할머니 댁에 들려서 집 뒷편에 고장난 채로 앞바퀴가 없는 자전거를 발견하고, 큰 할머니에게 허락을 받고서 끌고 오고나서는 어쩔 수 없이 수리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앞바퀴 브레이크만 작동되었었다는 것이지요.

22. 걸어서는 10리길 한 시간 거리를 자전거를 타니 20분만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제 입장에서는 엄마이야기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님께 집에 쌀이 떨어졌는데, 할머니 쌀 좀 주세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시켜서 왔다는 이야기는 일절하지 않았습니다.

23. 할머니는 저에게는 항상 보물창고와 같았던 광으로 가시고서 콩엿은 물론이고 좁쌀과 수수와 옥수수와 우리 식구가 한 달을 먹을 만한 양식을 챙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 떠 오릅니다. "운양아~ 네가 할미가 성경을 읽도록 한글을 가르쳐 줘서 너무 고맙구나~ 더 열심히 공부해서 우등상장도 타고, 나중에 훌륭한 선생님이 되거라"

24. 저는 할머니가 챙겨주신 그 푸짐한 양식들과 입에는 콩엿을 물고 자전거 폐달을 밟았습니다.

25. 그런데, 할아버지댁인 이평리를 벗어나려면, 반드시 덕평리-현재 영동고속도로 도중의 덕평인터체인지라고 알려진- 그 고갯길을 넘어서야 합니다. 할머니가 챙겨주신 양식과 콩엿을 입에 물고 너무 신나 있던 저는, 자전거의 브레이크가 앞바퀴만 작동된다는 것을, 따라서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몰아야 한다는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저는 그 덕평리 고갯길에서 신나게 달렸으며, 결국은 돌멩이를 피한다는 것이 앞바퀴 브레이크를 너무 심하게 잡아서, 바로 옆에 있는 논두렁에 처박히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할머님이 챙겨주셨던 양식들은
포대가 찢어져서 아스팔트 위에 산산이 흩어졌습니다.

26. 무릎과 팔뚝은 찢겨져서 피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고, 저는 가까스로 상황을 수습하고 찢어진 푸대에 좁쌀과 수수와 옥수수를 담았습니다. 결국은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습니다. 어머니는 쩔뚝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오는 저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셨습니다. 그냥~ 엄마 품에 안겨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아버지도 지켜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27. 저는 그 이후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자전거를 타지 않았습니다.

28.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차지철에 휘둘렸던-부연하자면, 차지철 씨는 저와 고향이 같습니다. 그래서 1974년 광복절 육영수 여사가 소천하시고서 차지철이 판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다양한 적지 않은 이야기들을 듣고서 자랐습니다. 결국은 1979년 10월 26일,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에게 이등박문이 저격된 후, 적확하게 70년이 지난 바로 그날 김재규에게 박정희 대통령도 저격됩니다. 당시 분위기는 평생 나라님으로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가, 갑자기 그것도 심복중의 심복의 권총저격으로 생몰 당했기 때문에, 30년 후 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이상으로 충격이 컸습니다.

29. 아직도 두 딸 2, 3학년 중딩을 키워내야 한다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 가난이라는 것~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중딩3학년 딸아이가 "아빠~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행복은 창문으로 나가버린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 종종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느끼는 가난은 더 큰 파장으로 다가가는 듯합니다.

30. 그래서 힘겨운 시절들을 현명하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매일매일의 일상을 소중하게 살아내셨던 할머니와 어머니가 더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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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 위기의 지구화 시대 청소년이 사는 법

▷ 지은이 : 백소영ㆍ엄기호 외 지음
▷ 펴낸곳 : 도서출판 이파르
▷ 기   획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우리신학연구소, 한신대 평화와 공공성 센터
▷ 2011년 6월 30일 발행 | 값 12,000원 | 304쪽
▷ 분   류 : 사회>사회비평/비판>한국사회비판

             * 책 소개 보러가기

책 소개

지구화 시대 공공성의 위기와 청(소)년의 삶
지구화, 세계화의 폭력적인 확산으로 근대적 민주주의의 제도들이 도처에서 위협을 받고 있다. 그것은 근대적인 공공성의 위기를 의미한다.
최근 공공성 논의가 부각되는 것은 이런 맥락을 갖고 있다. 이 책은 지구화라는 길고 복잡한 터널에 진입하여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한국사회의 공공성의 문제를 다룬다. 특히 지구화로 인한 공공성의 위기를 가장 격렬하게 몸으로 체현하는 연령적 계층인 청(소)년에 집중하는, 한국적 공공성의 인문학을 모색한다.     

잉여와 잉여짓, 청(소)년의 고통과 저항은?
지구화 시대 공공성의 위기로 청(소)년은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불안한 미래에 인생을 저당 잡힌 채 고통과 혼란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는 가운데 많은 청(소)년은 쓸모없는 존재로 낙인찍힌 자, 곧 잉여가 되고 있다. 또한 잉여로 전락하지 않은 청(소)년들도 그들의 많은 행동들이 잉여짓으로 분류되는 고강도 규율 아래 놓여 있다. 
자원화될 수 없는, 쓸데없는 짓으로 낙인찍힌 행동들을 해서는 안 되는, 오직 스펙 쌓기 머신이 되어야 하는 청(소)년, 그들의 고통과 저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제1부는 이러한 청(소)년의 고통을 다룬다. 청(소)년의 자기 진술을 듣고, 그 배후를 추론하여, 지구화 시대의 공공성의 위기의 맥락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 이것이 제1부의 목적이다.
제2부와 3부는 청(소)년의 저항을 다룬다. 제2부에서 다루고자 하는 저항은 잉여짓을 적극적으로 재전유하는 청(소)년의 창조적인 행위들에 관한 것이다. 쓸모없는 것을 쓸모 있는 것으로, 무의미한 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재전유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체제의 질서로부터 탈주를 감행한다. 제2부는 그러한 탈주, 탈주체화의 기록들이다.
제3부는 그러한 저항을 제도화하는 시도들을 다룬다. 즉 재주체화의 기록들이다. 그 과정은 때로는 기성의 제도를 개혁하는 실천의 동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기성 제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제3부는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 저항의 양면을 점검해보는 글들을 모았다. 

기획 과정
이 책은 한신대 평화와공공성센터가 주최하고,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와 우리신학연구소가 주관하여 2010년 11월에 3회에 걸쳐 진행한 평화와공공성 콜로키움을 발전시켜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백소영 이화여자대학교 HK 연구교수와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이 기획주관을 맡아, 콜로키움에서 발표된 4편의 글을 수정 보완하고, 추가로 8편의 글을 청탁하였다.
백소영 외에, 인류학자 엄기호, 신학자 구미정, 문화기호학자 김수환 외 10명의 필자가 참여해 12편의 글을 기고했다.
그리고 출간일에 맞추어 필진의 일부가 다시 모여 비공개 집담회를 열어 향후 작업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책의 외연. 공공성의 인문학이라는 기획에 대하여
공공성에 관한 논의가 학계의 여러 분야에서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이 책의 기획진과 주관 단체인 두 연구소(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우리신학연구소)는 공공성에 관한 여러 논의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이 책의 방향과 향후 공공성 담론의 방향에 대해 잠정적인 논점을 제기한 바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한국적인 공공성의 인문학이라고 이름 붙였다.
기존의 공공성 담론은 지구화 시대의 위기를 공공성의 위기의 관점에서 다룬다.
하지만 우리는 공공성의 위기라는 말은 부정적이면서 긍정적임에 주목한다. 즉 공공성의 위기는 근대 민주주의의적 기획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위기에 빠뜨린다. 그런 점에서 공공성의 위기를 다루는 공공성의 인문학은 근대 민주주의적 기획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공성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탈근대적인 인문학적 시도이다.
한편 공공성 담론은 국가와 종교, 국가와 시민사회 등과 같은 거시적 주제를 중심으로 공공성의 위기와 대안을 물었는데, 우리의 공공성의 인문학은 구체적인 위기의 현상 읽기에서부터 물음을 시작하고자 했다.
이 책이 청(소)년을 말하고, 그들로부터 잉여짓에 관해 청취한 것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 기인한다. 이것은 인류학적 연구나 문화연구 등에서 이미 시도해온 것이다. 하지만 이 논의들은 공공성에 관해 묻지 않았다. 반면 공공성 논의는 미시현장의 소리를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지 않았다. 반면 이 책은 이 두 별개의 논의를 공공성의 인문학적 시각에서 연결시키고자 하였고, 그런 점에서 우리의 공공성의 인문학은 중범위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장의 구체적인 문제에서 한국 사회의 공공성의 위기를 살피는 작업은 우리의 공공성의 인문학이 한국의 지역학적 문제의식과 맞물려 있음을 뜻한다.  
한국적 공공성의 인문학의 문제의식을 우리는 이 책에 한정하지 않고 더 발전시켜 다룰 예정이다. 곧 이 책은 그 첫 번째 모색이다.
향후 계획에 관해 이 책의 기획진은 생각을 다듬고 있는 중이다. 
 
저자 소개(가나다 순)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 상임연구원
구미정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외래교수
김강기명  연구집단 CAIROS 연구원
김수환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백소영  이화여자대학교 HK 연구교수
유승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상임연구원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인권연구소 '창'의 연구활동가
연규홍  한신대 교수. 한신대 평화와공공성센터 소장
이규원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객원연구원
정용택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상임연구원

차 례

머리말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제1부   고통

         잠재성을 잉여라 부르는 세상__백소영

         이것은 우리 잘못이 아냐!
                   ―세 청년의 이야기__엄기호


제2부   저항 하나
        제도에 흠집 내기 

         청(소)년의 패러디 문화, 잉여짓 또는 잠재적 혁명성?__백소영

         너희가 병맛을 아느냐?
                  ―웰 컴 투 더 <이말년 월드>__김수환 

         학생들과 무슨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백에서 증언으로의 전환__엄기호 

         김예슬 선언에 나타난 엑소시즘
                   ―지구화 시대의 시장 귀신 내몰기__ 구미정  

         도시, 청(소)년, 그리고 정치의 한 방식
                   --홍대 앞 두리반과 청(소)년의 집합행동__김강기명

제3부  저항 둘
       제도를 창안하기 또는 포섭하기 

         촛불과 팬덤
                  --팬덤의 정치화 또는 정치의 팬덤화__이규원
        
         단기 선교와 자발적 섬김
                  --지구화 시대 개신교적 주체 형식__유승태
        
         카리스마 운동이 추구하는 신앙과 공공성
                  --지구화 시대 천주교적 주체 형식__경동현

         자기를 이야기하는 청(소)년, 세계와 적대하는 인간__정용택


맺음글   잉여의 시선으로 공공성의 인문학을 꿈꾸다__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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