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저항하기, 고통에 복종하기[각주:1]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마태복음 25장 31-46절

31    "인자가 모든 천사와 더불어 영광에 둘러싸여서 올 때에, 그는 자기의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는 모든 민족을 그의 앞에 불러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갈라서, 

33    양은 그의 오른쪽에, 염소는 그의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37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38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39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40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

41    그 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서, 악마와 그 졸개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43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병들어 있을 때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지 않았다.' 

44    그 때에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45    그 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46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것이다."


1. 본문에 관하여

1) 행위구원론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성서 본문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비유―비유로 분류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학자들 사이에선 논란이 있긴 하지만―가운데 가장 급진적인 행위구원론을 보여주는 본문으로 일찍부터 해방지향적인 신학자들의 주목을 받아 왔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했던 마태복음 7장 15-27절의 본문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라고 말하는 로마서 2장 1-16절의 본문이나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고,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야고보서 2장 14-26절의 본문처럼 이 본문 역시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본문은 다른 본문들처럼 일반적인 차원의 도덕적 선행이 아니라, 구체화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대적 차원의 행동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관심을 끌어왔습니다. 그만큼 이 비유가 전달하는 신학적 메시지 안에는 사회윤리적인 함의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비유는 인자가 돌아왔을 때, 그는 모든 사람을 심판할 것인데, 그 심판의 기준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그리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각 개인들이 자비와 사랑의 태도를 보여주었는가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종말에 메시아 앞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했던 소외된 이들에게 보여준 행동에 기초하여 의인으로 인정받거나 악인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구원을 모든 종류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믿었던 신학자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신조나 의례, 예수나 기독교에 대한 지적인 이해나 고백보다,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을 위한 관심과 선행으로 드러난 사회적 연대의 실천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구원 및 영생의 최종적인 기준이 된다고 본 것입니다. 

2) 영생의 기준

오늘 본문은 양과 염소를 가르는 인자의 최후 심판의 날이 온다는 사실을 단순히 경고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최후의 심판이 내려지는가를 알리는 데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 심판의 기준은 청중의 모든 예상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나 왼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나 구별할 것 없이 모두 자신들에게 내려진 판결을 두고 충격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데서 잘 드러납니다. 

헬라어 원문으로는 “언제 우리가 당신을 보았습니까?”(37b, 38b, 39절), 그리고 “언제 우리가 당신을 보지 않았습니까?”(44b)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자가 그들을 구별하는 것은 누구에게 그들의 선한 행위가 보여졌냐는 것입니다. 첫 번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왼쪽에 서게 된, 즉 양으로 분류되어 복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 이유, 반대로 두 번째 그룹이 오른쪽에 서게 된, 즉 염소로 분류되어 저주받은 사람으로 판정받게 된 이유는 메시아가 행한 두 개의 답변에서 잘 드러납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40절) 그리고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45절). 

가장 놀라운 대목은 예수의 현존이 “굶주린 사람들, 목마른 사람들, 나그네 된 사람들, 헐벗은 사람들, 병든 사람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예수의 형제자매였던 것이 아니라, 예수 자신이었다는 것, 즉 예수는 그들과 자신을 철저하게 동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의식적인 기독교 신앙에 근거하여 행동했기 때문에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도 몰랐던 사이에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돌보았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언제 우리가 당신을 보았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보았던 바로 그때였다고 말합니다. 

3) 값싼 행위구원론

자, 그렇다면 이제 남은 과제는 이렇게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인식하고 그들을 최대한 잘 돌봐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이 비유가 복음서에 기록될 당시의 맥락에서, 이 본문이 증언하는 그 이웃 사랑의 행위가 갖는 당시의 역사적-사회적 무게를 헤아리지 않고, 우리 시대로 곧바로 가져와서 문자적으로 적용할 경우, 이 본문은 값싼 행위구원론의 전거로 소비되기에 안성맞춤이 아닐까 의심하게 됩니다. 부지불식간에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푼 것이 예수에게 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현대의 기독교인들 입장에서 이것보다 더 쉽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랑의 리퀘스트’에 전화 한 통만 해도 ARS로 소년소년가장이나 결식아동, 장애인, 재해민들과 같은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을 도울 수 있고(“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교회로 찾아온 이주노동자들이나 결혼이주여성, 탈북자와 같은 우리 시대의 나그네들을 예배 시간에 환영할 수 있으며(“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아름다운 가게’와 같은 시민단체에서 주최한 바자회에 헌옷을 내놓음으로써 가난한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할 수도 있고(“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하다못해 동네마다 있는 헌옷 수집함에 옷을 집어넣어도 결과적으로는 누군가에게 입을 것을 주는 것이 됩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 정도는 봉사활동 차원에서 병원이나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여 몇 시간 동안 환자들을 돌봐줄 수도 있고, 교우들이 가족들의 병문안을 갈 수도 있고(“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그리 흔한 경험은 아니겠지만 교도소나 구치소에 있는 지인을 면회 갈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렇게 일상생할 중에 큰 부담 없이 한 선행이나 봉사만으로도 최후의 심판 앞에서 그리스도를 섬긴 공을 인정받아 최종적인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쉬운 구원이 어디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어릴 적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본문이 그런 방식으로 교회에서 쉽게 소비되는 경우를 무수히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이 본문이 말하는 실천이 이토록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일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본문은 현재의 시점에선 전혀 다르게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값싼 행위구원론의 전거로 이 본문이 소비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그게 가능할까요? 


2. 마태공동체의 삶의 자리

1) 예수의 ‘형제자매들’

이 비유가 지시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비유가 누구의 입장에서 전달되고 기록되었는가를 파악하는 일이 요청됩니다. 이를 위해선 40절의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라는 표현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은 바로 그 ‘형제자매들’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성서에서 ‘형제자매’로 번역된 헬라어 원문의 단어는 ‘아델폰’(αδελφων)으로서 ‘형제’를 의미하는 남성 단수 명사 ‘아델포스’(αδελφος)의 복수형태입니다. 신약성서에서 ‘형제’라는 단어가 문맥상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의 혈연적 관계를 지시하지 않을 때, 그것은 전적으로 동일한 신앙공동체에 속한 동료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오늘날 교회에서 교우들끼리 서로를 ‘형제자매’로 지칭하는 것). 유대교로 개종하지 않거나,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이방인들을 ‘형제’라고 지칭하는 그런 예는 성서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단어가 복수형태로 쓰일 때는 명백히 남성과 여성을 포괄적으로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비유에서 인자가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는 그 형제자매들은 기본적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비유는 오직 마태복음에만 기록된 비유입니다. 따라서 학자들은 여기서 나타난 ‘형제자매들’을 마태복음과 연관된 ‘마태공동체’의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혹시 마태공동체라는 단어가 생소하신가요? 현대 복음서 연구는 각각의 복음서, 즉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서의 배후에는 그 복음서의 전승을 연행하며 전달하고, 또한 문서화하여 기록하고 다시 전수했던 각각의 공동체들이 존재한다는 학문적 가설 위에서 발전해왔습니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가설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성서 내적인 증거와 교회사적인 증거들을 갖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을 통해 우리는 이 책 배후에 마태공동체라고 하는 미지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이 마태공동체를 이해하는 것, 즉 이 비유를 자신들의 복음서 안에 담아냄으로써 자신들의 독자적인 신학을 드러내고 있는 마태공동체의 삶의 자리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이 비유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원래의 역사적-사회적 문맥 속에서 올바르게 파악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2) 사회적으로 배제당한 집단

마태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였을까요? 마태공동체의 자의식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위치를 여전히 유대교 안에 두고 있는지, 아니면 유대교 바깥에 두고 있는지에 대해선 학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엇갈린 해석들이 맞서고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유대교와의 관계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어떻게 규정했든지 간에, 복음서를 통해 추정할 수 있는 그들의 사회적 현실만큼은 그들이 유대교 내에서 철저히 주변부로 밀려나있는 집단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마태복음 도처에서 확인되듯이, 마태공동체가 유대교의 다른 집단들로부터 비방, 회당에서의 채찍질, 산헤드린이나 지방 법정에 고발당함, 박해와 추방, 죽임 당함 등의 처절한 폭력을 경험한 공동체였다는 사실을 통해 충분히 입증됩니다. 마태공동체가 유대교 사회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몇 개의 본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5장 11-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예언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태복음의 예수는 산상수훈을 통해 제자들에게 축복을 선언하는데 이는 그들이 ‘모욕’을 당하고 ‘모든 악한 말’을 듣기 때문입니다. ‘욕하다’라는 용어 'ονεδισωσιν’은 개인들 간의 직접적인 ‘비방’을 의미하고, ‘거짓으로 모든 악한 말을 하다’라는 어구는 공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특정한 방식의 사회적 비난을 의미합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런 부정적인 경험은 마태공동체가 다수의 유대교 집단들로부터 일방적으로 배제당하는 과정에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방과 비난이 ‘박해’(διωξωσιν)라는 단어와 동시에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던 마태공동체의 신앙적 일탈이 그러한 모욕과 비방의 결정적인 이유였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태공동체가 당한 박해와 비방, 모욕이 공식적인 유대교 회당 지도부에 의해서만 자행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다수의 광범위한 유대교 집단들로부터 마태공동체가 일종의 ‘왕따’, 즉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를 당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겠습니다. 사회적 배제라는 현대 사회과학의 개념이 뜻하는 바가 “다차원적인 불이익으로서 어떤 사회의 주류적 환경으로부터 분리된 상태를 포함하며, 이것이 상당기간 지속되는 상황”이라고 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를 마태공동체에 적용하는 것이 그리 무리한 해석은 아닐 것입니다.  

한편 마태복음 10장 17-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이 회당이나 법정에 끌려 나가 채찍질당할 것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10장 22절에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고, 23절에서는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말하며, 급기야는 23장 34절에서 예수 자신이 보낸 예언자들 중 일부가 유대인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회당에서 채찍질당하고 가는 동네마다 박해를 당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물론 이 모든 언급들은 마태공동체가 이스라엘 땅에서 자신들의 동족들로부터 당한 박해의 경험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랐던 이들이 겪은 사회적 배제와 집단적 폭력에 대한 기억은 로마 지배 체제에 대한 유대 민중들의 반란과 그에 대한 로마의 대대적인 진압으로 일어난 유대-로마 전쟁(서기 66-70년)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마태복음은 그 전쟁으로 인한 폭력의 경험과 이후의 여파를 처절한 언어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전쟁 당시의 경험을 마치 종말에 닥쳐 올 환난을 방불케 할 정도로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때 마태공동체와 같이 예수를 추종하던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환난에 넘겨지고 죽임을 당하며, 그들이 따랐던 예수의 이름으로 인해 모든 민족, 즉 유대인과 이방인들 모두로부터 미움을 받고, 결국엔 공동체 내부에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여 서로를 적대자들에게 팔아넘기고 서로 미워하는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태공동체는 단순히 물질적 궁핍으로 인해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 있었던 약자 계층이 아니라, 그들의 종교적 정체성으로 인해 그들이 속해 있던 사회로부터 폭력적으로 배제당하면서 빈곤과 위험에 처한 사회적 소수자 집단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본문으로 다시 돌아와서, 이러한 종교적․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속한 어떤 누군가(‘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를 도와준다는 것이 과연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갖는 것일지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공동체라고 하는 집단이, 우리가 별 부담 없이 도와줄 수 있는 평범한 사회적 약자계층이 아니었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의도적으로건 비의도적으로건 하나로 뜻을 모아 함께 배제하고 박해했던 그런 저주받은 이들에게 감히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특별한 행동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러한 소수자 집단을 향해 연대를 실천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전체적으로 그들에게 부과했던 어떤 권위적이고 일반적인 판단을 정면으로 거슬렀을 때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불우이웃돕기나 약자들에 대한 자선활동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서, 매우 민감한 사회적 논란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그런 비상한 사회적 연대의 행동을 의미할 것입니다. 유대교 일반과는 다른 신앙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온갖 종류의 사회적 배제와 폭력, 그리고 억압과 박해를 자초한 그런 집단을 향하여 그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 요즘 말로 하자면, ‘외부세력’이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자신들을 향해 연대의 행동을 보여준 그 특별한 이들에게 마태공동체는 종말에 도래할 메시아 예수의 권위에 의지하여 영원한 생명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들을 대상으로 한 메시아의 최후 심판에서 주어지게 될 최종적인 구원이란, 바로 그렇게 마태공동체 자신들과 같은 이들을 향해 위험을 무릅쓴 연대를 실천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음을 마태공동체는 세상에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3. 어떤 ‘권위’에 복종할 것인가?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이라고 하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는 1960-1963년에 걸쳐 흥미로운 심리학 실험을 수행한 후, 그 실험에 대한 보고서를 책의 형태로 1974년에 발표하게 됩니다. 그 책의 제목은 『권위에 대한 복종』(Obedience to Authority)인데요. 제목 그대로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얼마나 권위와 명령에 잘 복종하는지에 대해 실험한 결과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단언컨대, 지난 20세기에 이루어진 수많은 심리학 실험들 가운데 이 실험만큼 유명하고 또한 논란이 된 실험도 없을 것입니다. 

일단 실험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밀그램은 ‘기억과 학습’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실험 참가자들을 모집합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2인 1조가 되어 매회 실험에 참여하게 됩니다. 실험을 주관한 과학자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선생’으로, 다른 사람을 ‘학생’으로 명명하고, 그들에게 이 실험은 선생이 학생에게 내리는 처벌이 학생의 학습 능력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학생들이 단어를 기억하는 데 있어 처벌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라고 설명했던 것입니다. 

과학자는 이제 학생 역할을 맡은 피험자를 방 안의 의자에 앉히고, 과도한 움직임을 제어하기 위해 양 팔을 의자에 묶은 다음, 전극봉을 그의 손목에 부착합니다. 그는 단어의 목록을 공부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틀릴 때마다 ‘선생’ 역할을 맡은 실험 참가자가 전기충격의 강도를 높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얼핏 보면 실험실 안의 ‘학생’이 실험 대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알고 보면 ‘선생’이 실험 대상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학생은 밀그램이 고용한 연기자였고, 선생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이 실험의 진짜 피험자, 즉 실험 대상자였던 것입니다. 피험자의 역할을 맡은 것처럼 보이는 학생에게는 실제로는 아무런 전기 충격도 가해지지 않았고, 그는 단지 충격으로 인해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연기를 할 뿐이었습니다. 물론 선생의 역할을 맡은 실험 참가자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이 실험의 진짜 목적은 고통을 호소하고 실험의 중단을 요구하는 희생자들에게 점점 더 심한 충격을 가하라는 권위적인 명령이 내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디까지 그 명령을 따르는가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실험이 진행되자, 놀랍게도 이 실험에 ‘선생’으로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생’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처럼 ‘연기’를 하는데도, 상당히 높은 수치에 이르기까지 전압을 높여 그들에게 충격을 가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심지어 일부의 ‘선생’들은 최고 수치로 전압을 올리라는 과학자의 명령에 전혀 토를 달지 않고 묵묵히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들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이 실험을 중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갈등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실험실의 합법적인 권위자인 과학자가 그들의 옆에 서서, 그들로 하여금 애초에 맺었던 실험 완수의 의무를 다하도록 무언의 압박을 가했습니다. 아울러 학생들이 고통을 표현할 때마다, “실험을 계속 해야 하냐?”고 묻는 참가자들에게 “전기충격이 극도로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몸의 세포 조직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히지는 않는다.”고 말하면서 실험을 계속하도록 종용했습니다. 

따라서 이 실험의 진짜 피험자였던 선생들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사회적 요구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과학자의 명령에 계속 복종하여 학생에게 점점 더 강한 충격을 가하거나, 희생자들의 요구를 쫓아 실험을 중단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두 가지 요구, 즉 권위적인 명령을 내리는 과학자의 목소리와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는 학생의 목소리 사이에서, 전자의 목소리에 복종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권위적인 명령의 목소리가 강하게 울려 퍼질 때, 자신들 앞에 다가온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그런 비도덕적인 성향이 강화되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요컨대, 도덕적 책임감이 사회적 권위 앞에서 무너질 수 있음을 이 실험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실험이 모두 끝나고, 이 실험의 진짜 목적을 ‘선생’의 역할을 맡았던 실험 참가자들에게 알려주었을 때, 그들의 상당수는 학생들이 계속해서 답을 틀렸기 때문에 본인들도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즉 본인들이 희생자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낼 수 있는 여러 불가피한 상황적 요인들을 각자 나름의 변명거리들로 늘어놓았습니다. 아울러 희생자와의 거리감, 즉 희생자가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익명성이 강화될수록, 이와 같은 비도덕적 행위에 더욱 쉽사리 끌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결국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권위 있는 존재에 대한 믿음,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그 죄책감을 면해줄 수 있는 기발한 변명의 논리들, 그리고 희생자와의 거리감 내지는 가해자의 익명성에 근거하여, 그들은 비윤리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사회적 권위의 목소리에 순순히 복종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밀그램의 이 실험이 왜 ‘아이히만 실험’으로 불렸는지 이제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에 실무자로 참여했으면서도, 자신은 그저 공무원으로서 국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그래서 어떠한 잘못도 없다고 말했던 ‘아이히만’(Adolf Otto Eichmann)이라는 인물처럼, 누구라도 일정한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그 상황에서 비도덕적인 행위를 쉽게 저지를 수 있음을 이 실험은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실험에 참여했다가 학생이 지르는 비명의 소리를 듣고 실험에 계속 하기를 거부했던 소수의 피험자들도 있었습니다. 밀그램은 자신의 책에서 그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대학에서 구약성서를 가르치는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사람입니다. 물론 그 신학자 역시 처음에는 학생이 답을 틀릴 때 마다 별 다른 고민 없이 전기 충격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학생이 고통을 호소하며 실험에 저항하자 이 실험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자기 옆에 있던 과학자에게 실험을 당장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는 학생의 저항을 무시하고 실험을 계속 하라는 과학자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고, 자신의 의지로 실험을 중단했으며, “왜 이 실험이 이 사람의 생명보다 우선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라며 과학자와 논쟁을 벌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아무리 전기 충격이 세포 조직에 영구적인 손상을 가하지 않는다고 과학자가 말할지라도, 학생이 겪을 정서적인 충격과 신체적 고통이 크다는 사실을 과학자에게 일깨워주려 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실험을 중단한 것을 실험실에서의 과학자의 권위에 대한 불복종이 아니라, 희생자의 요구에 복종한 것이라고 정당화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과학자의 명령과 학생의 명령이 서로 대등한 것이었고, 자신이 복종하는 대상은 과학자가 아니라 학생, 즉 희생자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 신학자의 태도에 강한 충격을 받았던, 밀그램은 그에 대해 평가하기를, “그는 모든 종류의 권위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악한 권위를 선한 권위, 즉 신성한 권위로 대체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마태공동체를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과정에 일상적으로 동참했던, 혹은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무관심 속에 외면했던 당시의 마태공동체 주변에, 수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인 이웃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그런 행동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유대교의 권위, 더 나아가 유대 사회의 지배적인 질서에 순순히 복종했습니다. 아울러 마태공동체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사회적 박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마태공동체 자신들에게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고 하는, 책임 전가의 논리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태공동체는 유대교 주류가 배척했던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었던 유대교의 이단자들이었고, 이방인들에게까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나라의 축복을 개방했던 동족의 배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런 고난을 당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책임이라고 하는, 즉 당시 사회가 일반적으로 합의하고 있었던 지배적인 가치관이나 세계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므로,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충분히 정당한 것이라고 하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마태공동체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외쳤던 고통의 비명소리보다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결정과 이스라엘 사회의 전체적인 합의가 더 권위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유대교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사회적 권위의 목소리와 마태공동체의 고통의 목소리 사이에서 대부분의 유대인들, 그리고 유대인들 주변의 많은 이방인들은 전자의 목소리에 복종하고자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대교 사회의 권위적인 목소리보다 마태공동체의 고통의 목소리에 더 복종했는가를 따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단 한 사람도 없었을 수도 있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마태공동체의 고통에 응답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권위의 목소리를 거슬러서, 고통의 목소리에 그 자체에 응답했던, 즉 사회적 권위가 아니라 고통의 권위에 복종했던 그 소수의 사람들에게 메시아는 최후의 심판의 순간에 영생을 허락한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과 마태공동체가 증언하는 구원은 그런 것입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배제당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고통을 겪고 있는 바로 그런 이들의 모습으로 그리스도가 현존한다고 했을 때, 그의 부름에 응답한다는 것은 사회적 권위의 목소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모종의 결단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주어져 있는 최후의 심판이란 그렇게 두 개의 목소리 사이에서 우리가 과연 어떤 목소리에 응답했는가, 어떤 목소리의 권위에 복종했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좌우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는 영생이란 그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기존의 지배적인 사회적 가치관과 규칙 등에 정면으로 맞서서, 사회적으로 배제당하고 있는 어떤 이들에게 용기 있게 다가갈 때, 고통당하는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고, 그들의 고통의 음성에 제대로 귀 기울이고, 그들의 필요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며 그들이 벌이고 있는 운동과 실제적으로 연대했을 때 비로소 주어질 수 있는 그런 것입니다. 이 정도 말씀드린 것만으로도 마태복음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구원이란 것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무겁고 어려운 것인지를 실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4. “연대, 그 참을 수 없는 어려움”에 관하여

지난 금요일(2월 7일) 오전에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이 2009년에 정리해고당한 쌍용자동차 노동자 153명에 대해 작년의 1심 판결을 뒤집고 2심 재판에서 해고 무효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정리해고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던 쌍용차의 경영현황에 관한 회계장부가 애초부터 조작된 것이라고 하는 노동자들의 주장이 6년 만에 비로소 진실로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그 진실이 진실로 인정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대가가 따랐는지를 떠올려본다면, 고등법원의 이번 판결은 당연하지만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다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난 2009년 5월 22일부터 8월 6일까지 약 76일간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사측의 구조조정 단행에 반발해 쌍용자동차의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일이 있었습니다. 경찰은 농성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루액은 기본이고, 테러나 폭동 진압 때나 쓰는 다목적발사기를 및 테이저건 등을 사용하여 노조원들을 무자비한 방식으로 진압했습니다. 그전에 이미 사측은 농성을 와해시키기 위해 노조원들이 점거하고 있던 공장에 단전 및 단수 조치를 시행했고, 식료품 및 의료진·약품의 반입조차 금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농성으로 인해 64명의 노조원들이 구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속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단 사측이 영업손실 100억 원, 파업 진압 당시 헬기 손상과 경찰 장비 손상, 경찰 치료비 등의 명목으로 경찰이 14억7000만원, 공장에서 발생한 원인 모를 화재의 책임을 노조에게 전가하면서 메리츠화재가 청구한 구상권 110억 원을 합계하면, 해고 노동자들에게 청구된 전체 손해배상 및 구상금액은 총 224억7000만 원에 이릅니다. 너무 커서 실감도 안 나는 금액이지요.

그러나 그것으로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쌍용차 사태의 진짜 비극은 그 다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014년 2월 현재까지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 가운데 자살과 스트레스성 사망자가 총 24명에 달합니다. 《시사IN》이 2011년 3월 쌍용차 해고 노동자 4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50.4%가 자살 충동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실제 자살 시도도 많았습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인 김정우씨는 감옥에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왜 쌍용차에서 24명이 죽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한 사업장에서 이런 이례적인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사회적·경제적인 분석이 이뤄져야 하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보십니까? 이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 투쟁을 벌일 당시에 76일 동안 식수와 전기가 끊어진 농성장에서 용역과 경찰로부터 수시로 끔찍한 폭력에 시달렸으며, 마지막 날 헬기에서 최루탄이 난무하고 전자총으로 폭행을 당하는 등 전쟁에 버금가는 야만적인 진압을 경험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자살이나 스트레스성 사망을 단순히 농성 현장에서 겪었던 폭력의 후유증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파업이 모두 끝난 후에도 천문학적인 손해 배상 청구소송에 시달렸고, 쌍용차 출신이라는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다른 회사로의 취업에도 어려움을 겪었던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 전체로부터 자신들의 선택과 저항과 고통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인정’과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이 그 죽음의 진정한 원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들의 자살과 스트레스성 사망은 경제적 어려움 탓도 크지만 파업 이후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버림 받았다는 고립감, 본인들이 무가치하다는 자존감 상실,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겪는 냉담함과 갈등 등 여러 사회심리적 요인에 의해 촉발되었습니다.

국가와 회사, 언론, 정치권, 고용시장, 지역사회와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시민사회 등으로부터 이들은 공공연한 비방과 모욕, 박해, 처벌, 무관심과 냉소, 따돌림 등을 지속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결국엔 그 ‘한’맺힌 분노와 슬픔이 유령처럼 우리 사회를 떠돌면서 연쇄적으로 또 다른 죽음을 불러온 것이 아닐까요?

결국 24명의 사람들이 죽음으로 자신들의 정당함과 그 고통의 억울함을 호소하기까지, 우리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고통과 저항의 목소리에 귀기울기 보다는 국가와 자본의 권위적인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던 것입니다. 국가와 자본의 목소리를 거스르고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 다시 말해 사회의 권위적인 목소리가 아닌 고통 받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 그 자체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우리는 잘 압니다. 

6년 만에 법원이 정리 해고 무효 판결을 내리기 전에, 이미 공개된 다양한 증거 자료들을 통해 드러난 사실들만이라도 제대로 믿었더라면, 아니 그전에 노동자들의 주장에 관해서라도 제대로 귀를 기울였더라면, 24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계의 상황에 내몰려 죽임당하는 그런 비극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끝내 그들의 죽음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저항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정당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그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그들의 고통에 있는 그대로 다가가 그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얼굴을 마주해야 할 우리 주변의 고통 받는 이웃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그리 착하거나 유순하기만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도처에서 폭력적인 결말을 담은 비유가 많이 등장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오래 시간 동안 겪은 폭력과 배제의 경험으로 인해 마태공동체의 내면은 피폐해졌고, 분노와 복수의 감정이 시시때때로 공동체 내부의 구성원들을 향해, 또는 공동체 바깥의 타자들을 향해 돌출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여러 상처 입은 저항자 집단들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저와 여러분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일단 우리 스스로가 사회적 편견이나 자기 검열의 심리기제를 깨뜨리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지만, 무조건 다가간다고 해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찾아지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어떻게 말을 건네고 어떻게 그들을 도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역시 우리에게 남겨진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의 신앙에 대한 최후의 평가가 바로 그렇게 어렵고도 힘겨운 연대의 실천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서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과연 누구의 목소리에 복종할 것이냐고. 사회의 명령과 권위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고통의 비명소리에 복종할 것인가. 누구의 얼굴을 볼 것이냐고. 국가의 얼굴, 자본의 얼굴을 볼 것인가, 아니면 고통당하는 이웃들의 얼굴을 볼 것인가. 그 목소리를 듣고, 그 얼굴을 보고도 그들을 외면할 것이냐고. 지금 그 목소리와 얼굴 속에서 예수를 보고도 그렇게 외면할 것이냐고 말입니다. 우리의 선택이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미래도 결정될 것입니다. 우리를 어느 한쪽으로 분명히 이끌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그 어느 한쪽의 사람들의 얼굴에서 바로 그분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그래서 마침내 그분의 손을 기꺼이 붙잡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2014년 2월 9일 천안살림교회 예배 설교문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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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6]

바울신학과 탈식민주의I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왜 탈식민주의(포스트콜로니얼리즘)인가? 그것도 바울에 대해 말하는 와중에 뜬금없이 탈식민주의라는 생경한 이야기를 꺼내들어야 할까? 오늘의 웹진에서 필자는 바울을 말하기 위해서, 또는 성서를 현실사회에서 의미있는 말씀으로 끌어오기 위해서 탈식민주의적 관점이 필요함을 역설해 볼 것이다. 탈식민주의가 아니라 탈식민주의적 관점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웹진의 전체를 걸쳐 필자가 말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성서를 현실의 삶 안에서 구체적 메세지로 읽어낼 것인가, 즉 바울신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다시 또한 기억해 주길 바란다.
   해체주의라는 표현을 기억할 것이다. 영어로 Deconstructuralism이라고 번역하는데, 언뜻 해체주의라는 표현이 와닿는 표현이긴 하지만 데리다가 말했던 단어의 의미와는 조금 거리가 느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데리다가 말했던 것은 해체중심의 어떤 것이 아니라 구축주의(Constructuralism)를 벗어나자는 의지가 더 강했던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필자의 은사님이셨던 이경재의 독법을 따라 해체주의를 ‘탈구축주의’로 이해한다. 왜 ‘탈’이라는 표현에 대해 고민할까?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는 표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떻게 해석할까? 포스트라는 표현이 ‘이후’라는 뜻이 있으니 ‘근대이후주의’라고 번역하면 알맞을 것 같다. 근대이후주의라고 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은 근대시대이후에 나타난 모든 ~주의를 망라한 것이라는 표현이 된다. 그러나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 때의 의미가 이러한 것이었을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표현 안에 이미 모더니즘에 반하는 또는 모더니즘을 극복하려는 어떤 것이 있다는 표현이 아닐까? 만약 그렇게 이해한다면 ‘탈근대주의’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이러한 ‘포스트’에 대한 해석의 다의성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라는 표현에 오면 더욱 심각해진다. 왜 ‘식민이후주의’라고 해석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식민주의가 끝이 났는가? 일본의 식민통치가 종언을 고했고, 이제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으니 식민주의의 시대는 끝이 났는가? 아니면 우리는 아직도 온갖 종류의 식민주의의 잔재들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가? 아니 전세계가 근대주의를 뒤덮었던 식민주의의 그늘아래 있지 않은가? 아니 구세대의 식민주의는 군사력과 땅의 정복을 필두로 하였다면 현대의 식민주의는 금융, 산업, 그리고 정보의 힘을 앞세우고 있지 않은가? 만약에 이러한 끝나지 않은 식민주의의 그늘아래서 현실을 바라보고 이에 대한 메세지를 고민하고 있다면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탈식민주의’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여기서 ‘탈’이라는 표현은 1960년대 이후, 유럽의 식민주의가 각지의 독립운동에 의해 종언을 고했다는 시각에 대한, 또는 식민이후주의라는 번역에 대한 저항이며 여전히 남아있는 식민시대의 효과적인 대안담론을 모색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언제나 식민주의라는 통치체제의 위에는 제국주의라는 정치이념이 자리잡고 있다. 제국주의와 식민통치의 가장 고전적이고 효과적인 예를 든다면 알렉산더가 이루었던 마케도니아 제국을 들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Alexander the Great) 타국이나 타지역의 부족들을 약탈하는 대신에 그리스문명을 소개하고 언어와 문화를 통일하여 그리스문명의 가치에 찬성하는 나라와 부족들을 흡수함으로 효과적으로 또한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팽창을 이루었다. 이를 전격적으로 받아들인 곳이 바로 로마였고 이후 로마가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공화정 중심의 국가에서 황제중심의 제국으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제국주의의 역사를 거꾸로 읽어본다면 제국주의는 민중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 일어났을 때 이에 대한 지배계급의 방어기제로 형성된 정치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각주:1] 과연 대표적으로는 마케도니아, 좀 더 과거로 가면 앗시리아와 바빌론제국, 로마 이후에는 대영제국 등으로 이어온 제국주의의 시대는 끝이났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의 시대를 Post-imperialism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로버트 영은 그런 의미에서 제국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식민주의 시대로부터 시작된 압제에 대한 저항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각주:2] 하지만 제국은 변했으며 세계 또한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저항의 담론은 현실에 대한 바른 통찰이 없으면 공허함에 그치게 된다. 탈식민주의는 변화된 제국과 식민의 시대에서 구체적 저항의 방법과 실천을 모색한다.

   탈식민주의, 바울과 다리놓기

   이와같이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에 대해 살펴보다 보면 이들이 성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된다. 먼저 이스라엘 신앙의 뿌리 자체가 이집트 종살이의 해방의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해방의 경험은 곧 야웨신앙의 중심이 되었고, ‘우르’라는 고대의 도시제국에을 떠나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아브라함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많은 학자들이 구약성서의 근간에 오경의 편집연대가 바빌론 포로기라는 것은 바빌론 제국의 종교와 문화적 식민으로서 신앙을 지키기 위한 저항이 바로 구약과 유대교 생성의 근원이라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구약은 바빌론이라는 제국하에서 신약은 로마제국 아래에서 편집되고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성서, 또는 기독교의 근본 뿌리가 바로 제국에 대한 저항임을 말하는 것이다. 제국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면 성서의 저항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화하며 저항의 담론을 뒤집어 지배의 담론으로 만들었고 이는 이른바 제국이라 일컬어지는 대영제국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므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코드는 성서를 읽는 여러 관점 중 하나라기보다는 수천년전의 성서와 현대의 우리의 해석을 역사적, 정치적으로 연결시켜주는 ‘마스터 코드’(Master Code)가 된다. 이 이야기가 새롭게 들리는가? 독재하에 한국을 뒤흔들었던 민중신학이 이야기한 민중의 시각에서 성서읽기가 바로 이것 아니었던가? 예수와 로마제국이라는 표현이 바로 이러한 시각이 아닌가? 여성신학, 해방신학, 흑인신학이 지칭하는 ‘압제자’에 대한 비판과 ‘억눌린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시아신학이 말하듯 서구로부터 이식된 서구적 신학의 카테고리로부터 자체의 문화적 코드로 신앙을 읽어내려 했던 ‘토착화 신학’이 하던 이야기가 아니던가? 결국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서구의 인문학계는 ‘탈식민주의’라는 이름으로 아시아가, 여성이, 그리고 민중이 외치던 방법으로 텍스트를 읽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론적 틀을 ‘탈식민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성서학’ (Biblical Studies)이라는 학문은 근대의 산물이다. 하나의 거대한 교회, 카톨릭시즘이 지배하던 중세의 교황권이 신학과 성서의 표준이 되던 시대가 종교개혁의 물결에 와해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성서를 읽고 이해하는 기준을 다시 찾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와중에 등장한 것이 바로 ‘해석학’이라는 학문인데, 과연 “어떻게 성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학문으로 시작된 해석학은 근대적 주체로서의 인간관과 함께, 성서의 해석의 단초를 인간에게 놓게 된다. 물론 교권의 권위와 교리주의의 힘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성서해석은 이성의 토대 위에서 이해될 수 있는, 또는 이해되어야만 하는 것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에 넓은 의미에서 ‘역사비평학’(Historical Criticism)의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이를 쉽게 말하면 바로 성서와 동시대의 다리를 놓는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서가 쓰여질 당시의 상황이나 문화, 언어에 대한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성서 텍스트에 접근하여 그 메세지(Message)를 이해함을 통하여 현대에 성서가 말해질 수 있는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역사비평학’의 목적이라 할 것이다. 쉴라이에르마허에 따르면 이러한 비평적 읽기는 두가지 지평의 가능성으로서 가능해지는데, 하나는 인간의 정신적(Psycological) 지평과 문법적, 또는 언어적(Grammatical) 지평에 의해서이다. 즉, 인간은 텍스트를 통하여 시대와 시간을 뛰어넘어 정신적인 공감대를 저자와 형성하고 언어적 읽기 (문법적, 문학적)를 통하여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믿음은 신비평(New Criticism)- 역사적, 사회적 배경 이해를 전적으로 배재하고 텍스트 자체가 함의하는 뜻을 읽어보려는 다양한 시도-에 와서 와해되기도 하고, 그 이후 새롭게 재구성되기도 하면서 발전 또는 지양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성서학에는 남아있다. 적어도 ‘어떻게’ 성서를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답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왜’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쉬운 듯하면서 힘든 이 질문. ‘왜’ 성서를 읽어야 할까? ‘왜’ 성서에서 무엇인가를 찾아야만 할까? 성서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른바 ‘진리’라는 것을 담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소위 넓은 의미에서 ‘축자영감설,’ 즉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므로 신자는 그 안에서 삶의 표준과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라고 현대인들에게 주장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성서가 도스토에프스키의 ‘죄와벌’ 또는 현대의 인간의 삶의 군상과 현실을 반영하고 또한 승화시킨 아름다운 예술작품들보다 더 심오한 삶의 진리를, 의미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보통 진보진영에서 이에 대한 질문으로 흔히들 성서는 이미 성스러운 텍스트(Sacred text)로써 때로는 해방의 단초로서, 반대로 억압의 증거로서 사용되기 때문에 성서비평학의 책임은 무한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필자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서를 현대에서 강력한 진리의 계시로써 읽을 수 있을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으려면 종교적 믿음과는 다른, 시간의 넓디 넓은 틈을 연결시킬 수 있는 주제(Theme)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민중신학이 민중의 역사를 구약의 출애굽에서 찾아서 읽은 것처럼, 갈레아의 예수를 현시대의 민중 안에서 재발견한 것처럼 역사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강한 고리가 성서학에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민중의 관점, 여성의 관점, 흑인의 관점, 노예의 관점, 아시아인의 관점이 성서를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주제로 근대와 그 이후의 시대에 새롭게 대두되었고 그들을 통해 성서가 새롭게 읽혀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세상은 짧은 시간에 참으로 많이 변해버렸다. 지배와 압제는 스스로를 은폐하고 변화시켜 과연 누가 지배자이고 누가 압제자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버렸다. 전태일 열사를 장렬한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처참한 환경의 방직공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는 저개발국의 어느 곳으로 숨어버렸고, 우리는 값싸고 질좋은 옷을 발견했을 때 횡재한 듯 기뻐하며, 그 옷에 누구의 피가, 아픔이, 그리고 죽음이 숨어있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삼성공화국을 욕하면서도 삼성의 신형 핸드폰을 조금이라도 값싸게 사기 위해 밤을 세워 인터넷을 누빈다. 현재에도 우리는 과거에 미국의 누군가에게 당했던 어떤 짓을 필리핀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행하고 있다. 언뜻 보면 나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종교, 정치, 경제들이 거대한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개인들을 수많은 연결고리들 안에 밀어넣고 있으며 우리는 수많은 다른 이름들과 관계들로 규정되고 파편화되고 있다. 결국 세계는 너무나 복잡하여 하나의 관점으로만 해석되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그러한 세계에서 아직 식민주의는 끝나지 않았다는 탈식민주의의 사자후는 꽤나 설득력있다. 복잡한 세계를 단순하게 보기보다는 복잡한 관계속에서 간명한 구조를 가지고 세계를 보기 위한 탈식민주의 이론은 더욱 다양해지고 복합해져왔으며, 결국 탈식민주의는 지역적인 담론이기보다는 전지구적 담론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 그리하여 탈식민주의는 끊임없이 초국가적 사회정의를 지향하면서도 지나치게 이상화된 정의를 지양하는 학문으로 발전되게 되었다.[각주:3] 지금의 세상이 복잡하다면 성서의 시대는 단순했을까? 그 복잡성의 정도를 따진다면 현대를 따라가기 힘들겠지만 성서의 세계 또한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다. 예수가 논쟁을 벌이던 바리새인이 누구이던가? 로마제국의 앞잡이였던가? 아니 오히려 종교적 담론을 통해 소박하게나마 혁명을 꿈꾸던 세력이 아니었던가?(톰 라이트에 대한 웹진 참조) 예수의 제자들은 가장 낮은 민중의 정체성을 나누었다고들 하지만 복음서의 여러 여성들이나 군중들에게 군림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훗날 예수의 우편과 좌편을 차지하려고 싸움을 하지 않았던가? 사두개인들은 친일파와 같은 기회주의자들었던가? 아님 유대종교라도 로마로부터 지키려 했던 현실주의자였던가? 과연 그러한 상황에 예수는 어떤 형식의 복음을 말했던가? 그것이 ‘복음’이 되었다면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도 분명 뜻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이러한 여러가지 질문에 답하려 하는 것이 탈식민주의와 신약성서, 또는 바울신학이라 할 것이다.

   오리엔탈리즘 또는 유대주의라는 허상

   이전의 웹진의 원고들이 이른바 NPP(New Perspectives on Paul), 바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중심으로 쓰여져왔고, 톰 라이트 또한 이와 먼거리에 있는 학자는 아님을 설명하였다. 필자는 이 새로운 관점들과 탈식민주의 관점이 그 줄기를 함께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새관점주의의 시작으로 일컬어지는 E. P. 샌더스가 말하고자 했던 근대초기의 유대주의에 대한 연구가 유대인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반유대주의(Anti-Semitism)와 기독교적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결국 샌더스는 유대주의에 대한 이러한 여러가지 오해들이 유대주의를 기독교 경전의 뿌리이면서도 기독교교리와는 완전히 다른 종교로 만들었음을 밝혔다. 물론 중요한 논쟁은 ‘이신칭의’나 ‘언약적 율법주의’등에서 불붙었지만, 샌더스의 업적중의 하나는 완전히 객관적인 학문으로 보였던 성서학이 어떻게 지배자의 논리를 정당화 시키고 보호하는지를 밝힌것에 있다. 샌더스의 책이 나온 1970년대말은 시오니즘으로 무장한 일련의 유대인들이 이미 이스라엘이라는 독립국을 손에 넣었고, 자본의 힘을 등에 엎은 유대인들과 우수한 유대계 학자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던 시대이므로, 이러한 샌더스의 업적인 나올 정치, 경제적 배경이 무르익었던 때였던것으로 보인다.[각주:4] 이른바 허상으로 만들어진 유대교에서 벗어서 (샌더스에 따르면) 바울을 바라보는 것이 새관점주의라는 엄청난 여파를 낳았다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또는 지배자의 논리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허상들은 없을까? 그것을 벗으려할때 가지게 되는 또다른 바울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은 없을까? 바로 이러한 통찰이 바울에 대한 새관점과 함께 탈식민주의를 통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진리에 대한 탐구의 가능성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제임슨 던과 톰 라이트의 글들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시대에서 바울의 복음이 어떤 의미로 나타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임스 던에게는 민족우월주의를 넘어서려는 바울의 노력을, 톰 라이트에게서는 제국의 시대에서 새로운 신앙 공동체의 도래에 대한 바울의 목회적 노력이 핵심이었다고 한다면 바야흐로 탈식민주의에서는 제국과 자본주의, 신식민주의 아래서의 신앙공동체에 대한 바울의 메시지가 주안점이 될 것이다. 먼저 탈식민주의는 에드워드 사이드, 가야트리 스피박, 호미 바바라는 탁월한 이론가를 만나게 되면서 샌더스로부터 시작된 지배층의 논리에 대한 더욱 깊은 연구와 이른바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재발견하게 되는데 이를 간단히 살펴보면서 바울과의 관계를 고찰해보자. 
   1970년대가 저물어갈 무렵, 팔레스타인 출신의 사이드라는 학자가 출판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책이 인문학계를 뒤흔들게 된다. 사이드는 미쉘 푸코의 담론(discourse)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근대까지의 ‘오리엔트’(Orient)에 대한 서구의 연구가 객관적 연구의 결과라기보다는 서구의 중동과 아시아에 대한 일종의 허상에 지나지 않음을 역설했다. 푸코는 그의 유명한 담론에 대한 연구에서 당시까지 일종의 사적 또는 공적인 말하기나 여러 종류의 텍스트를 뜻하던 담론(discourse)라는 표현을 지식(Knowledge)이라는 영역으로 사용한다. 이른바 우리가 당연한 것이라고 알고 있는 ‘지식’이 유통되는 담론이라는 장은 자유롭게 지식들이 생산, 유통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곧 어떠한 것이 지식으로 인정되고 인정되지 않는지 결정한다. 근대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교육기관의 등장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던 인간이 발전시켜 온 기술과 학문들을 대학이라는 기관이 모으고, 분과학문별로 나누어 독립시키면서 근대적 스콜라쉽(Scholarship)을 발전시키기에 이른다. 언뜻 보면 지식과 학문이 전근대적인 종교와 왕권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적 개체로 성장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을 보면 근대의 다양한 힘과 권력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거대한 하나의 지식산업을 형성하여 힘의 논리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의학’(Medicine)을 들 수 있다. 보통 우리는 의학이 하나의 순수한 지식이고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전문분야라고 생각을 하지만 푸코식으로 보면 의학이라는 것은 치료(Healing)라는 것이 무엇이고, 질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관장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세계와 어떻게 관련맺어야 할지를 규정한다.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피해야 하며, 어떻게 먹고 생활할지를 조정한다. 놀라운 것이 이러한 엄청난 힘이 규제와 억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설득의 방법을 토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한의학이 대학을 통해 전파되고, 하나의 정치적 힘을 가진 단체로 성장하기 전에는 의학은 한의학을 하나의 미신으로 규정하고 의학의 분야에서 밀어냈었다. 수천년의 역사와 철학을 내포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담지한 학문이 단순한 미신과 질낮은 기술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단계가 순전히 자연스럽게 근대의 시대에 이루어졌다. 사이드는 이러한 담론이론을 가지고 와서 중동과 아시아에 대한 서구인의 지식이라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상에서 이루어져왔음을 고발하고,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서구인들은 오리엔트를 지식의 영역에서 지배하고 자신들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반명제로서 사용해 왔음을 보았다.
   푸코의 이론을 이용한 사이드의 중동과 아시아를 향한 지식담론에 대한 비판은 거의 최초로 서구의 학문이 피지배 국가와 문화에 대한 연구에 대해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으며 일견 서구사회에서 주변담론으로 치부되던 중동과 동아시아에 대한 학문들이 다시금 탈구축되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것이 신약성서학에 끼친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는데, 첫째, 서구성서학이 자신들의 논리와 성서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피식민지인들의 신앙과 문화에 영향을 끼쳤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 제국의 그늘아래에 피식민인으로 살아가던 유대인들이 남긴 성서의 전통이 제국과 식민주의의 영향을 감안하여 읽혀져야 한다는 인식을 낳았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웹진에서 설명할 호미 바바(Homi Bhabha)의 이론이 중요한데, 기독교문화를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보는 시각에서 유대문화와 제국의 문화 사이에서(in-betweeness) 생성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셋째,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문화에서 성서가 어떻게 응답하는지, 복음은 그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읽는 시도가 더욱 힘차게 개진되었다. 넷째, 근대의 제국주의가 낳은 산물인 인종차별, 여성차별, 계급차별에 대해 열린 눈으로 성서를 다시금 들여다보는 시도가 행해지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웹진에서 다룰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J. C Young, Post-colonialism: An Introduction (Oxford: Blackwell Publishers, 1999), 28. [본문으로]
  2. Ibid., 27. [본문으로]
  3. Ibid., 58. [본문으로]
  4. 유대인이라고 묶어서 부를 수 없음을 유의하자. 시오니즘을 주창하는 유대인들이 있는 반면 그에 대해 엄청난 비난을 퍼붓는 유대인들도 있다. 한국인이 그렇듯이 유대인들또한 무한한 다의성 -Multiplicity-을 가지고 있음을 유의하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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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은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지 않는가?

- 기억의 정치학, 기억의 신학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잊혀진 전쟁 (Forgotten War).’ 미국에서 한국 전쟁을 지칭할 때 많이 쓰이는 관용구입니다. 왜 한국인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전쟁이 미국에서는 마치 아무 일도 아니였던 것처럼 여겨지는 것일까요? 한국 전쟁은 한국인들만의 전쟁이 아니라, 수많은 젊은 미국인들을 목숨 또한 앗아간 전쟁인데도 말입니다. 2010년 6월 한국 전쟁 발발 6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의 공영 방송 PBS에서는 ‘잊을 수 없는 한국 전쟁 (Unforgettable Korean War)’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이 80분 짜리 다큐멘터리는 참전군인들이 미국에 돌아 온 이후, 일생 동안 겪었던 또 다른 전쟁을 들려줍니다. 장진호에서 중공군과의 치열했던 전투에서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 동료들을 지키지 못 했다는 죄책감과 살인에 대한 죄책감.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전쟁에서 돌아 왔을 때, 일상으로 돌아 가라는 가족과 친구들. 그 잊혀짐 속에 홀로 남은 기억하는 자들의 이야기. 한 참전군인들은 이렇게 그의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기차 역에 내리니, 마중 나온 가족들이 하나도 없더군요. 모두 일을 하러 갔어요. 저 혼자 택시를 타고 동네 입구에서 내려서 집으로 걸어 가다 친구 녀석을 만나죠. ‘지미, 자네 어디 갔나 오나?’ 친구가 묻더군요. ‘한국 전쟁에 갔다 왔어.’ ‘그래? 얼른 쉬고 내일부터는 일 좀 해야지?’”
          한국 전쟁과 달리 베트남 전쟁은 미국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전쟁입니다. 미국은 전쟁 발발 직전, 케네디 대통령을 잃었고, UN의 동의안을 얻지 못한 채 나간 전쟁에서 10년을 싸웠고, 나라 안팎으로 반대 여론에 고전하다 결국 패전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 전쟁과 비슷한 방법으로 밀어 붙였는데, 실패했으니,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전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베트남 전쟁 중 반전 시위에 동참한 저널리스트, 사진 기자들,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미군이 베트남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권유린의 증거들을 열심히 퍼 날랐습니다. 그 중 하나가 ‘마이 라이 마을 학살’입니다. 한국 전쟁 중 일어난 거창 양민 학살 사건, 노근리 학살 사건과 유사한 사건으로, 1968년 미군은 월남에 위치한 어린아이, 노인, 여성 할 것없이 마이 라이 부락민 347—547명을 학살하고, 여성을 집단 강간하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마이 라이 학살 사건이 알려진 1969년, 베트남 반전 운동은 더욱더 거세어졌습니다.
         그러나 마이 라이를 기억하는 미국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재미 베트남 기독교 윤리학자인 조나단 트랜 (Jonathan Tran)은 그의 책, ‘베트남 전쟁과 기억의 신학 (The Vietnam War and Theologies of Memory)’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마이 라이를 비롯한 양민 학살 사건과 베트남 전쟁 자체가 조작된 전쟁이란 것을 기억 속에 묻어 버린 채, 미국이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만을 기억한다. 미군들이 겪었던 정글에서의 고통, 그들의 희생과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 전쟁 고아 탈출 작전 등, 미국이 기억하는 베트남 전쟁은 여전히 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위한 미국의 숭고한 희생정신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함께 베트남 전에 참전한 한국은 이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한국 군인들이 베트남 전쟁에서 어떠한 일을 겪었는지, 베트남인들에게 어떠한 일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도 않고, 알려져 있지도 않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베트남 전쟁이 한국 전쟁 후 여전히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 있던 한국을 일으켜 세웠다는 것입니다. 월남을 남한과 동일시 하면서 국내적으로 반공의 기치를 강화하고, 박정희 군사 독재를 정당화할 수 있었고, 월남 파병을 통하여 고질적인 실업 문제와 외화 부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우수한 신무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 또한 큰 수확입니다. 하지만 고엽제로 고통 받는 월남 파병 군인들의 이야기가 한국 사회에 겨우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전쟁이 끝난 지 20년이 지난 1990년대에 들어서입니다. 그나마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도 소수에 불과합니다. 한국군들이 저지른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과, 베트남 여성 강간 사건, 베트남 종전 후 남겨진 라이 따이한들. 이 모든 것들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 노근리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한국인들은 분개했습니다. 반미 사상, IMF와 맞물려, 한국인들은 눌린 자로써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 고분분투했습니다. 이 즈음에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 사건을 알리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 노력은 안타깝게도 한국인들에겐 잊혀진 전쟁이 된 베트남 전쟁을 재조명하고, 반성하려는 기회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야만적인 미군을 한국군과 동일시한다는 비판만 받았습니다. 한국은 잊었을지라도, 베트남 사람들은 여전히 한국군의 양민 학살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잊은 한국 전쟁을 한국이 기억하는 것 처럼, 우리가 의도적으로 잊은 베트남 전쟁을 베트남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언제,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우리에게 돌아와 우리의 잘못을 물을 것입니다. 이 기억의 형벌에서 구원받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조나단 트랜은 기독교의 성찬식을 전쟁의 세계관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성찬식은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억, 그리고 예수의 평화를 살아가겠다는 다짐과 희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쟁은 결국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공산주의와 같은 위험 요소를 제거하면, 우리의 삶이 안정되고 영원하리라는 착각에서 나오는 조직적인 망상에 기인합니다. 성찬식은 전쟁이 주는 이러한 세계관에 대해,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영원성을 일깨워 줍니다. 즉 인간이 아닌 하느님이 영원한 삶과, 평안의 주체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역사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전쟁과 폭력으로 죽어간 수많은 이름없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있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예수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 그와 함께 살고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죽음을 파괴하신 부활의 예수와 함께, 우리는 죽음의 전쟁을 거부하고, 이 세상을 삶의 공간으로 바꾸는 누룩과 같은 존재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성찬식은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시러 오신 예수가 아닌,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화해하고, 삶을 즐기는 자리입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역사의 억울한 희생자들이 살아있는 이들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이 끊임없이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함으로써, 그들과 함께 화해하고, 삶의 축복을 만들어 가는 하느님의 정의로운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제 다른 방식으로 전쟁을 기억하고, 역사의 억울한 희생자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진정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은 우리를 끊임없이 전쟁으로 몰아 넣는 국가 권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가 권력이 우리의 기억을 두려워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국가와 종교 권력이 우리의 기억을 조작하기 위해서 예수의 희생과 전쟁의 희생을 동일시 할 때, 역사 속에 켜켜히 쌓인 희생자들을 지워 버리려고 할 때, 우리는 반드시 깨어있어야 합니다. 기억의 정치학은 저항의 정치학입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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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2.17 05:0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뭔 제목이 이래? 한국 정부와 개인적으로 베트남에 많은 학교를 지어주고, 기자재를 보내주고 있다.... 뭔 소리 랑가요~~~

왜, 한신대는 ‘해석학과 윤리’를 개설했을까? (하)
: 이 냉소의 시대에 신학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과정)

 

‘유학하던 10년간 대한민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지난 웹진 58호 원고는 마감되었다. 바로 그 잃어버린 10년을 추적해 들어가면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해석의 틀을 전반적으로 검토해보고, 지난 10년간 이루어졌던 윤리적 지형의 변화를 회고하면서 어떻게 신학은 반응할 수 있을지를 예단하는 것은 이번 봄 학기,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개설되는 <해석학과 윤리>의 몇 가지 주된 강의 목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너무나, 너무나도 윤리적인 Korean!

우리가 얼마나 윤리에 정통한 국민인가? 우리는 초등학교 6년 (바른 생활)-중학교 3년(도덕)-고등학교 3년(국민윤리), 총 12년의 공교육 기간 동안 국가주도하에 체계적이고도 주도 면밀한 윤리교육을 받은 백성들이다. 필자가 지금 윤리학 Ph.D 7년 차인걸 감안하면, 12년 동안 윤리교육을 받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가히 모두 윤리학 분야 박사들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있어 ‘바른 생활’과 ‘도덕’과 ‘국민윤리’는 학창시절 각종 시험 때 마다 평균점수를 올리는 전략과목으로써 달달 외워 빈칸을 메우거나, 선생님의 구미에 맞는 적당한 말을 해주면 점수를 얻는 그런 하찮은 과목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로 시작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워 쓰면 되었고, 중학교때는 국민교육헌장을 통째로 암기했으며, 고등학교때는 7.4 남북공동성명부터 전두환 정권의 통일 정책이라 할 수 있는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에 이르기까지 남한의 평화적 통일 정책이 지닌 장점을 북한의 적화통일 정책과 비교하며 남한의 손을 들어주면 그만이었다. 재수할때는 노태우의 6.29 선언의 의미를 쓰라던 문제도 윤리 모의고사 문제에 등장했었다.

이론적으로도 꽤 충실하여 ‘서양윤리사상의 흐름’과 ‘동양윤리 사상의 흐름’이 고등학교 국민윤리 교과서 Chapter 3장, 4장쯤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특별히 ‘서양윤리사상의 흐름’편을 보면 20-30페이지 남짓한 분량에 소크라테스부터 미국의 프래그머티즘까지 100명쯤 되는 철학자들의 이름이 현란하게 파워포인트 넘기듯 스쳐 지나갔었다.

당시에 있었던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자면, 지금도 외우고 있는 칸트의 유명한 정언명법인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보편 타당한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위하라!’는 고2 어느 기말고사 주관식 3번 마지막 문제의 답이었는데, ‘네 의지의 준칙’을 ‘내 의지의 준칙’이라 썼다고 틀렸던 뼈아픈 기억이 있다. 윤리시험이 아니라 받아쓰기 시험이었던 게지.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초, 중, 고 12년 동안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해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윤리전문가가 되어 사회로 진출하는데…

대한민국 사회에서 윤리가 지닌 출생의 비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세계에서도 드물게 철저한 윤리교육을 받은 시민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사회는 너무나도 윤리적이지 못한 음란한 사회라는 점이다. 이유가 어디 있을까? 왜 우리는 윤리를 그토록 오래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가히 뼛속까지 윤리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윤리적이지 않을까? 혹여, 대한민국 사회에서 윤리란 어떤 말하지 못할, 말해서는 안 될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혹은 대학입학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풀렸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윤리란 체제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수호하는 도구로, 체제에 반하는 주의나 주장을 자행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구별 짓는 잣대로, 아울러 그들을 단죄하는 형벌의 근거로 작동해 왔다.
 
현 대통령의 아버지가 이 땅을 지배하던 시절, 그녀의 아버지는 유신헌법을 선포하면서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쓰며 백성들을 헷갈리게 했었다. 언뜻 보면 보편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는 듯한데, 실상은 정반대다. ‘한국적’라는 개별성으로 ‘민주주의’라는 보편성을 포획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분단, 반공, 개발, 경제…등과 같은 당시 한국 상황의 특수성을 위해 민주주의를 제단에 헌납하겠다라는 선언이 유신헙법이었고 유신체제라고 한다면 내가 너무 유신체제를 편협하게 바라보는 것일까? 

이렇듯 민주주의가 ‘한국적’이라는 재단에 열납되듯이, 우리에게 있어 윤리란 ‘국민의 윤리’였다. ‘한국적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종개념이고, ‘윤리’는 매개념에 불과하다. 그 대한민국의 국민이란 분단체제 아래서 반공을 국시로 삼아야 하는 국민이고, 그 국민이란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거대담론 아래 질서정연하게 줄 맞춰 삽질해야 하는 국민이며, 그 국민은 이제 자본의 재단에 몸과 마음을 기꺼이 맡겨야 하는 국민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윤리란 이런 국가적 이데올로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던 정말 하찮았던 과목이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윤리가 갖고 있는 출생의 비밀이고, 슬픔이다.

해석학과 윤리

그렇다면, 해석학과 윤리는 어떤 상관성이 있는 것일까? 해석학은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본문의 이해와 관련이 깊다. 저자와 독자(해석자)의 관점에서 text를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지평에서 해석은 발생하는지? 신학은 이러한 해석학적 통찰로부터 무엇을 가지고 올 수 있는지? 이상은 해석학과 연관되어 전통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대표적인 질문들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이 질문들은 해석학의 역사에 대한 통시적 접근을 불가피하게 요구한다. (이번에 개설되는 ‘해석학과 윤리’는 역시 슐라이이마허부터 레비나스까지의 해석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으로 진행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는 본문의 저자와 해석의 주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해석학적 긴장을 유발시킨 최초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해석학의 아버지라 불릴 만하다. 그는 해석자의 위상을 저자의 위치로까지 격상시켰다. 그리하여 해석학을 Text 이해의 문제, 즉 본문에 대한 해석의 차원을 넘어서, 이해(Verstehen)란 무엇인가? 라는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해석함’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팽팽한 긴장으로 인도한다. 
진리는 이성의, 이성에 의한 인식론적 개념 혹은 인식론적 과정이 아니고, 주체의, 주체에 의한 존재론적인 개념일 수 있다는 점, 이런 이유로 해석이란 진리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해석학적 경험이라는 점을 슐라이어마허는 말하고자 했고, 그의 시도는 이후 전개되는 다양한 해석학적 작업의 시금석이 되었다. 

이러한 해석학전 전환은 실천 철학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해석자로부터 타자적 위치에 있어왔던 Text가 우리에게 시비를 걸어와, 평온했던 우리의 삶에 균열을 조장하고, 확고했던 우리의 믿음에 혼동과 긴장을 유발시켜, 우리를 불온한 신자, 불온한 시민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해석학과 윤리가 만나는 경계이고, 바로 이런 이유로 윤리는 문제적이다. 
본디 윤리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지켜야 할 도리 혹은 규범을 찾는 학문이었다. 하지만 그 규범은 우리가 경험한 바로는 positive한 내용보다는 negative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 부정적 강제적 규범으로 말미암아 그나마 사회가 이정도 유지되고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아마도 이런 금지규범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십계명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윤리를 규범적 차원으로만 한정시키려는 시도는 윤리의 차원 중에서 가장 낮은 등급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윤리란 규범의 차원을 넘어 선택의 차원으로, 그리고 그 선택은 필연적으로 어떠한 대상과 사건에 대한 판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 윤리의 어려움이 있고, 바로 그 곳에서 윤리는 해석학과 대화한다.

갖추린 Syllabus

규범이 집단주체의 것이라면, 윤리는 개별주체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전근대와 근대를 가르는 봉합선이었다. 근대적 주체란 자기들이 만들어 가야 할 세계의 빛나는 모습을 자신의 경험과 언어와 전통과 신화와 역사를 동원해 그려내고자 했던 주체였고, 근대적 윤리란 그런 개인의 확고부동한 서사를 뒷바침할 만한 주체의 행동강령을 모색하는 윤리였다. 이러한 근대적 주체에 대한 반성과 근대성의 윤리에 대한 회고를 하는 과정에서, 슐라이에르마허에서부터 리꾀르까지, 이른바 근대적 해석학이 걸어왔던 길과 겹치면서, 양자간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이번에 개설되는 <해석학과 윤리>의 전반부 과제다. 

하지만, 21세기, 오직 자본의 욕망만이 이 땅에 존재하는 세상에서 근대적 주체, 근대적 해석학이 만들어 놓은 tool은 자본이라는 유령을 해석하기에 뭔가 석연치 않는 부분이 많다. 이런 이유로 나는 현대의 윤리란 일차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투철하게 응시하는 시선의 산물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고, 그리하여 강의 후반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푸코와 데리다, 라깡과 지젝을 소환하고자 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 본 강좌가 노리는 것은, 결국 타자의 해석학과 타자의 윤리학을 수강생들 스스로가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레비나스를 강의 맨 마지막에 배치하여 전체 강의를 마무리 하려고 하는데, 과연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에필로그

강좌를 진행하면서 수업시간에 논의되었던 이야기, 획득된 소득들, 남겨진 문제들에 대해서 웹진을 통해 소개할 것을 약속하면서 어설픈, 그리고 위태한 강의개요를 일단 접는다. 글을 쓰면서 내가 아직 얼마나 강의하기에 턱없이 준비가 안되어 있는 강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수강신청 한 학생들 앞에서 최소한 面이 팔리지는 않아야 할 텐데…..요즘 매일 악몽을 꾼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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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_ Walk Through, See Beyond

작가노트_ 빛과 어둠의 대비를 만들어내는 프레이밍을 통해서 풍경을 바라본다.

                어둠으로 둘러싸인 풍경의 빛은 불안감을 자아내고 어둠은 안정감을 준다.

 

 

 

 

 


 

 

 

이준직 作 (갈릴리교회 교인, '눈숨' 회원)

 

 

 

* [사진에세이]는 한백교회 사진동아리 '눈숨' 회원들의 작품을 연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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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연구마당 탈향,동행(/,同行)”

2014년 상반기 강독모임 개강 안내

 


1. 취지:

 (1) 공부와 수행(영성훈련)을 함께 할 실질적인 에큐메니컬한 신뢰 서클 구성.

 (2) '하느님의 편들기'라는 공통적인 신학 주제와 각자의 관심사나 연구 과제를 함께 공부하는 모임.

 (3) 이를 위해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아카데미 프로그램인 ‘탈/향’과 신학공부모임 ‘동행’이 공동으로 ‘연구마당’을 열어 장기적이고 단계적으로 운영.


2. 진행:

 (1) 3월 13일(목)부터 격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약 20분간의 기도(켈틱 매일 기도서 또는 다양한 기도 방법 안내)를 드린 후, 발제 및 토론마당 진행.

 (2) 장소는 안병무홀 한백교회당(http://hanbaik.synology.me:8080/xe/hanbaikway)

  - 5호선 서대문역 1번 출구로 나오신 후, 신한은행과 우체국 사이 길로 50m 들어오셔서 왼편 건물 1층.

 (3) 3월 13일(목) 저녁 7시 첫 모임에서 오리엔테이션 및 브레인스토밍으로 세부 일정과 계획 확정.

 (4) 책임도우미: 

  - 유승태(한국기독교장로회 한백교회 전도사,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상임연구원)

  - 민김종훈(자캐오, 대한성공회 사제, 길찾는교회 공동기획자)


3. 방식: (core 모임에서 최종 조정)

 (1) 1단계. 독서 토론 모임: 기초 체력 쌓기를 통해, 문제의식과 호흡 맞추기.

  - 입장이 분명한 신학자의 저서를 중심으로 ‘연대기적 읽기’를 통해 기초 다지기.

 (2) 2단계. 문제의식과 맥락 만들기: 공시적인 연구를 위한 배경 공부하기.

  - 멤버 간 ‘신뢰서클’이 형성되면 ‘각자의 관심 분야와 연구하고픈 주제’를 공유.

  - 각자의 문제의식과 관심분야를 공시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배경에 관한 공부.

 (3) 3단계. 퀼트식 공부하기: 서로 돕기.

  - 공동의 자료 조사 및 각자의 관심과 연구 주제를 심화하기 위한 공동 연구 진행.


4. 모임 참여 자격: 작게, 의미 있게, 연결하며

 (1) ‘교회를 위한 교회'가 아닌 ‘세상을 위한 교회’를 지향하는 사람.

 (2) 그러나 교회와 신학이 모든 것의 해답일 수도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는데 동의하는 사람.

 (3) 교회와 신학이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를 하기 위해서는, 더욱 철저한 ‘자기 공부’가 선행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4) 그래서 ‘제대로 된 문제의식과 맥락 읽기’에 기반한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5) ‘~척’하기보다는 ‘경청을 위한 독서’와 ‘삶에 근거한 치열한 토론’을 통해 ‘진검 승부’ 공부를 하고픈 사람.

 (6) 그렇기에 더욱 교회와 신학이 잃어버린 이야기와 전통을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하는 사람.

 (7) 다양한 교회와 신학적 이야기와 전통을 통해 풍성한 하느님의 속삭임을 듣고픈 사람.


5. 책임도우미들이 제안하는 공부 범주와 함께 읽을 저서

 (1) 신학하기의 다양한 유형들: 우리 시대의 주목받는 신학자들의 대표적인 저서. 역사적 예수 연구, 민중 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퀴어 신학, 영성 신학(사회적 영성) 등, core 멤버들이 분야별로 함께 선정. 

  - 예) 매튜 폭스, N.T.라이트와 마커스 보그 비교 읽기, 케네스 리치, 윌터 윙크 3부작, 안병무, 그 외 토착화, 상황화 신학자들의 주요 저서 등.

 (2) 그리스도교를 보는 눈: 그리스도교에 대한, 또는 자신만의 독특한 그리스도교 해석을 내놓는 종교학자, 인문학자들의 저서. 

  - 예) 에리히 프롬의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 등.

 (3) 그리스도교 신학의 전통적 주제들 다시 보기: 구원론, 성령론, 유일신론, 종말론 등,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전통적으로 다뤄지는 주제 가운데 몇 가지를 선정하여, 그 주제에 관한 다양한 관점의 저서를 비교하여 읽고 나누기.

 (4) 신학현장의 (재)발견: 동시대의 다양한 '문제설정'들과 대화하기. 이 부분에서 다양한 사회학 이론/분석 서적이나 한국 현장에 대한 스케치를 할 수 있는 저서와 글들을 읽고 나누기. 

* 구체적인 책 목록과 공부 일정은 첫 모임 후 확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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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신학아카데미 /향』 2014년 겨울-봄 강좌 강의


    성서를 발굴하다

    성경고고학인가 전설인가》 강독 모임

     

    • 강좌 취지_    

    고고학자 이스라엘 핑컬스타인과 고고학 저널리스트 닐 애셔 실버먼이 함께 쓴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The Bible Unearthed: Archeology's New Vision of Ancient Israel and the Origin of its Sacred Texts)는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과 형성에 관하여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책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가장 도전적인 논지를 담고 있는 문제작이다.

    1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문서들의 저작 시기가 기원전 7세기 유다국의 요시아 왕 때였다는 것, 다윗-솔로몬이 유다 산간지역의 일개 군벌집단의 우두머리에 불과했다는 것, 그리고 이스라엘국이 시리아-팔레스티나의 소제국으로 군림했던 반면, 유다국은 상당기간 이스라엘에 예속상태에 있던 약소국이라는 것 등은 제1성서 학계의 수정가설을 접하지 못한 한국의 대다수 독자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이 이 책에서 독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신선한 주장은 아니다. 세밀한 서술 하나하나에서 독자들은 고대이스라엘의 신앙을 새롭게 살피고 우리의 신앙을 재점검할 많은 중요한 기회들을 맞닥뜨릴 것이다.

    특히 독자들은 이 책에서 기독교 변증학으로 기울지 않는 성서 해석을 볼 수 있다.또한 이 책의 논지를 이끌고 있는 핵심 저자인 핑컬스타인이 유대인으로 텔아비브 대학 교수임에도 그의 주장이 이스라엘국의 지배적인 역사관에 치우치지 않고 많은 부분에서 도리어 비판적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학문적으로 철저하다.

    한데 수정가설을 주장하는 최근의 연구자들 가운데 핑컬스타인이 가장 충격적인 논지를 펴는 이는 아니다. 오히려 그의 주장은 수정가설 가운데 중립적인 편이다. 하여 독자들은 이 책에서 받은 도전이 신앙적 모험의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지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지난 여름 강좌에서 함께 읽었던 로버트 쿠트의 초기 이스라엘 이해의 새로운 지평에 이어 수정가설의 최소주의 주장을 볼 수 있는 이 책을 추천하고자 한다.


    • 함께 읽을 책: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이스라엘 핑컬스타인, 닐 애셔 실버먼 지음, 오성환 옮김; 까치, 2002)

     책임도우미: 김진호(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참가비 : 1회당 5,000

     일정: 2014 02 18 ~ 04 08, 매주 화 pm. 7:30~10:00

     문의 및 신청 : 010-3078-8208 / 3era@daum.net


    • 강의일정


     

    날짜

    내용

    쪽수

    1

    02. 18

    프롤로그요시아 왕의 시대

    서론고고학과 성경

    01_ 족장들을 찾아서

    부록A_ 족장시대의 역사적 사실성에 관한 여러 이론

    11~64

     

    &

    371~377

    2

    02. 25

    02_ 출애굽은 실제 사건이었는가

    03_ 가나안 정복

    부록C_ 이스라엘 정복의 또 다른 이론들

    65~121

    &

    381~391

    3

    03. 04

    04_ 이스라엘인들은 누구였을까?

    05_ 황금시대의 기억일까?

    부록D_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관한 전통적인 고고학 연구결과가 틀린 이유

    133~178

    &

    392~396

    4

    03. 11

    06_ 하나의 국가하나의 민족하나의 국민(기원전 930~720)

    07_ 이스라엘의 잊혀진 최초의 왕국(기원전 884~842)

    181~234

    5

    03. 18

    08_ 제국의 그늘 속에서(기원전 842~720)

    235~267

    6

    03. 25

    09_ 유다의 변화(기원전 930~705)

    10_ 전쟁과 생존의 사이(기원전 705~639)

    부록E_ 고고학적인 기록상의 므낫세 시대 확인

    271~320

    &

    397~398

    7

    04. 01

    11_ 위대한 개혁(기원전 639~586)

    부록F_ 요시아 왕국의 영토는 얼마나 넓었는가?

    321~344 &

    399~406

    8

    04. 08

    12_ 추방과 귀환(기원전 586~440)

    에필로그성경시대 이스라엘의 미래

    부록G_ 예후드 주의 경계선

    345~369

    &

    407~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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