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영성 - 세월호 이후에도 ‘삶’은 가능한가


지은이 : 김진호 | 엄기호 | 백소영 | 김응교 | 황진미 | 자우녕 | 정경일 | 정용택 | 박정은 | 조민아 | 최형묵 | 김신식 | 이택광 | 신윤동욱

펴낸날 : 2014-11-30
페이지 : 307쪽
정  가 : 15,000원
펴낸곳 : 현암사


             * 책 소개 보러가기


 

책 소개

 

사회적 영성이란 무엇인가. 14인의 비평가와 신학자들이 지은 <사회적 영성>은 우리 사회 감성의 흐름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 책이다. 이성의 영역에서 성찰을 이해 혹은 의사소통이라고 한다면, 마음 · 감성의 영역에서 성찰을 공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이 공감 행위에 관한 신학적 · 인문학적 성찰이 바로 ‘사회적 영성’이다. 


이미 우리 주위에는 치유와 배려, 희생과 배품을 말하는 ‘윤리적’ 언설들이 가득하다. 지은이들은 그 안에서 영성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망각해온 공동체적 · 관계적 영성을 찾아내고 그 효과를 새로이 읽어내고자 한다. ‘영성’의 이름을 아직 부여받지 못한, 하지만 더 심층적이고 넓은 영적인 사건들, 가령 세월호 사건이나 밀양 송전탑 사건 등에서 ‘사회적 영성’의 흔적을 찾아내고 증언하며 기억하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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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적은 인간이 아닙니다

폭력과 비인간화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최근 미국 미주리 주의 퍼거슨 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며, 저명한 흑인 학자 코넬 웨스트 (Cornell West)가 한 말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라크에서 하고 있는 일은 미국 내에서 흑인을 대하는 것과 똑같다. (Cornel West, Democracy Matters, 2005)” 코넬 웨스트는 이라크 전쟁 중 미군이 행한 민간인 학살과 전쟁 포로의 인권유린이 미국 내에서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는 흑인 청년들에 대한 조직적인 경찰 폭력, 사회적 편견 등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웨스트의 주장은 상당히 일리가 있습니다. 

             16세기 부터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흑인 노예 제도는, 흑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당시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천부 인권론 등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서구에서, 노예 매매제도가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아이러니 입니다.  

            미국의 노예제도는 흑인을 철저히 비인간화 하며 지속되었습니다. 흑인 남성들은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폭력적이며, 성욕과 같은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산다는 이념화 과정이 그것입니다. 비록 흑인 노예제도가 1865년 남북 전쟁과 함께 종료된 것처럼 보이지만, 해방된 흑인들은 그 후로 부터 100년 동안 짐 크로우 법 (Jim Crow Laws) 밑에서 인권을 유린 당하며 살았습니다. 짐 크로우 법은 공공 장소에서의 인종 분리 정책을 합법화한 법으로써, 이 법 아래에서 흑인들은 법정 증언도 할 수 없었고, 공정한 재판도 받을 수 없었으며, 백인들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어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노예 제도나 짐 크로우 법을 주류 기독교가 오랜 동안 지지했다는 사실은 역사상 최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짐 크로우 법 시대에 흑인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나무에 매달아 죽인 사람들은 백인 기독교인들 이였습니다. 흑인 해방 신학자 제임스 콘은 린치 당하고 죽은 흑인이 매달린 나무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조직화된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이들의 상징으로 보고 있습니다 (James Cone, The Cross and the Lynching Tree, 2011). 백인들의 기독교에 의해 철저한 인권 유린과 지속적인 국가 폭력을 경험하는 흑인들이 예수 안에서 자유함과 해방을 누리기 위해서는,  흑인 여성 신학자인 숀 코플랜드(Shawn Copeland)가 이야기하듯,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 그리고 정신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Shawn Copeland, Enfleshing Freedom, 2009). 그래서 흑인 해방 신학과 흑인 여성 신학은 백인 주류 신학이 이야기하는 전지 전능한 하느님이 아닌, 약자와 함께 고통 받는 하느님, 체제의 부조리와 약자를 비인간화 하는 사회구조에 끊임없이 대항하는 하느님, 공동체와 약자를 힐링하는 하느님을 이야기 합니다.

          미국 남부 미주리주 퍼거슨 시에서 백인 경찰이 비무장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에게 여섯발의 총을 쏘아서 숨지게 한 사건은, 미국 사회에 뿌리 깊은 인종 차별 주의가 어떻게 공권력에 의해서 폭력적으로 현현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서 벌리고 있는 크고 작은 전쟁과 군사 작전, 그리고 퍼거슨 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 차별, 폭력적인 공권력에 대항하는 폭력 시위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앞서서 이야기한 것 처럼, 인종 차별은 유색 인종을 비인간화 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오랜 동안 흑인들은 짐승 또는 ‘악(evil)’과 동일시 되면서 정복되어야할 백인들의 ‘적’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미국의 역사는 실제로 유색인종에 대한 끊임없는 ‘타자화’와 ‘비인간화’의 연속입니다. 미국의 원주민 학자이며 사회 운동가인 안드레아 스미스 (Andrea Smith)의 책 ‘정복 Conquest’은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어떻게 정착 초기부터 미대륙의 원주민들을 타자화 하고, 철저히 비인간화 시키면서 그들의 땅과 문화를 파괴해 갔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미국의 부와 권력은 수많은 원주민들의 죽음과 흑인 노예들의 죽음 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소리 없는 죽음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대륙의 원주민들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당시 유럽의 여성 혐오주의에 바탕을 둔 가부장제와 달리 여성의 정치적 의사 결정권을 인정한다는 이유로, 옷 차림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자화 되고 비인간화 되었습니다. 비인간화된 원주민들을 살육하는 것은 동물을 사냥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또한 공동 소유의 원칙을 실천하는 원주민들에게서 땅을 빼앗아 사유 재산화 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동식물과 약품에 관한 다양한 지식도 사유화 하는데 별다른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성폭력과 함께 여성들을 대상으로한 피임약과 같은 약물 실험도 원주민들이 감당해야 할 사회 폭력이였습니다. (Andrea Smith, Conquest, 2005)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중에도 적으로 간주된 한국인들과 베트남인들은 타자화와 비인간화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한국 전쟁 중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 (노근리 사건, 거창 학살 사건, 포항 피난민 학살 사건 등)과 베트남 전쟁 초기 부터 일어난 민간인 학살 (마이 라이 마을 학살 사건, 네이팜탄 사용 등)은 미국이 주장하는 대로 단순히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 한 데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이미 북한군들과 베트콩의 게릴라 전술은 문명화된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미개인들이 사용하는 군사 전략과 전술로 규정되었습니다. 이러한 미개인들과 똑같은 외모와 언어를 가진 남한 사람들, 월남 사람들은 적군과 비슷한 이들이거나, 또는 자기 방어 조차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 간주되었습니다. 타자화된 동양인들의 생존은 미군의 자비심에 달려 있었습니다. 한편 개개인으로써의 미국 군인들은 끊임없이 왜 자신들이 들어 본 적도 없는 이국 땅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지를 물어야 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적군을 얼마 만큼 성공적으로 타자화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적군이 나와 다른 (또는 주류 사회와 다른) 성별, 인종, 언어, 종교, 문화 등을 가지고 있다면 타자화와 비인간화는 쉬워집니다. 만약 군인들이 적군을 그들과 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보기 시작하면, 적군을 공격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게 됩니다. 성공적인 전쟁을 치루기 위해서는, 군인들로 하여금 적군을 증오하도록 만들고, 타자를 끊임없이 구별해 내며, 적군을 비인간화하는 정신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정신 훈련은 군인들이 육체와 정신을 분리해서 육체를 끊이 없이 정신에 복종시키는 작업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정신’이 ‘적’이라고 판단된 것을 보면 즉각적으로 ‘몸’이 반응하여 그것을 제거하는 ‘반사 신경’을 기르는 것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나 심각한 도덕성 장애(Moral Injury)로 일상 생활이 힘든 참전 군인들 대부분은, 군사 작전 중 전쟁과는 상관없는 민간인들의 학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거나, 적군에 대한 감정이입을 경험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처럼 감정이 있고, 고통을 느끼며, 지켜야할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민간인들과 군인들이 미국의 군사작전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들이 그 군사작전의 일부분이란 사실이 감당하기 힘든 양심의 가책 또는 정신적 혼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인간은 인종과 성별을 초월하여 다른 인간을 죽이는 것에 양심적 가책을 느끼기 때문에, 소시오 패스나 사이코 패스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군인들은 전쟁 중이였다 하더라도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미국도 그러하지만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폭력성을 보면, 한국이 전쟁터 같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어린 학생들이 폭력까지 사용하는 왕따 문제, 여성들에게 행해지는 각양 각색의 성범죄들, 외국인들 대상으로한 차별과 폭력, 장애인이나 노인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 감정 노동자들을 상대로한 무분별한 언어 폭력과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 골수 우익들과 보수주의자들의 무분별한 이념 전쟁까지…… 이 모든 종류의 폭력은 희생자를 나와 동일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타자화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타자화와 비인간화가 만연된 사회에서 물리적 전쟁이 일어나면, 비 전시 상황에서 타자화의 대상이 되었던 약자들이 가장 먼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한국 전쟁 발발 시기에 보도 연맹원 학살이나, 서북 청년당이 ‘빨갱이들’과 그 가족들을 무자비하게 살상할 수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철저한 타자화와 비인간화가 이루어졌었기 때문입니다. 

           타자화와 비인간화는 반 기독교적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의 근간에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거룩한 존재이며,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신 그 삶, 특히 사회가 죄인이라 낙인 찍힌 사람들과 연대한 삶을 지금의 교회들이 그리고 내가 살아 가고 있는지 묵상하는 대림절 기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에 대한 저항은 타자화와 비인간화에 대한 저항과 일맥상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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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말랄라”와 노벨평화상


조민아

(세인트캐서린 대학 조교수)

 


열 여섯살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 

파키스탄의 스와트 계곡에서 살던  말랄라는 2009년 열 한살의 나이로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 탈레반의 여성 탄압과 교육권 박탈을 비판하는 글을 BBC의 블로그에 올리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파키스탄 정부군과 탈레반의 전투 속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교육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잃지 않았다. 2012년에는 무장괴한의 습격을 받아 머리와 목에 치명상을 입었지만, 전세계인들을 향한 말랄라의 메시지는 오히려 더 힘차고 단호해졌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극단주의자들은 책과 펜을 두려워 한다. 교육은 그들을 겁먹게 한다.” 말랄라의 말이다. 이 멋진 여성이 201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나는 말랄라의 수상 소식이 불편했다. 그녀의 용기와 업적이 찬사를 받는다는 사실이 불편했던 것이 아니다. 여성교육권을 위한 그녀의 신념은 더 널리 알려져야 하고, 더 많은 이들의 비전이 되어야 한다.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은, 그녀에게 상을 수여하는 손길들이다. “그들”은 과연 말랄라에게 “평화상”을 내릴 자격이 있는가? 


노벨평화상이 “평화상”으로서의 공신력을 의심받기 시작한 것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다각적인 후보 추천과 심사과정을 거치지만, 평화상 수상자를 최종 결정하는 이들은 노르웨이 국회가 임명하는 5명의 위원들이다. 중립을 최대한 유지한다고는 해도 국제정치의 알력과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노르웨이는 미국과 정치적, 경제적 협력관계를 돈독하게 맺고 있는 대표적인 우방 국가이다.  국방 장비와 방위력에 있어서 미국에 적지 않은 의존을 하고 있는 노르웨이로서는 선정 과정과 심사에 끼치는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다. 


역대 가장 격렬한 논쟁을 야기했던 수상자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외교관 헨리 키신저이다(1973년 수상).  그는 베트남전 당시 미국, 북베트남, 남베트남, 베트콩 사이 협상을 주도하여 평화조약을 맺게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정작 협상을 주도한 미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에 공산주의가 뿌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전대미문의 학살전을 벌여 수백만명의 생명을 살상한 전쟁의 주범이다. 맹폭과 민간인 학살, 고엽제 살포 등 미국이 벌인 전쟁범죄는 키신저가 평화상을 수상했던 그 당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은 전쟁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해 키신저와 공동 수상자로 지명된 베트남의 독립운동가 레득토(黎德壽, 여덕수)는 수상을 거부했다.  


노벨 평화상 논란이 정점을 찍은 것은 버락 오바마에게 상이 수여된 2009년이었다. 오바마는 “국제외교와 다자간 대화,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의지, 또 핵무기 감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정치적 태도(공로나 업적도 아니고)”를 인정 받아 대통령직에 오른지 불과 1년이 되기도 전에 평화상을 수상했다. 수많은 평자들이 수상 선정 이면에 작용했던 미국의 영향력을 짚어 내며 노벨 위원회가 자충수를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평화를 향한 의지가 돋보였다던 오바마는 이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소말리아, 리비아, 이라크에 이어 시리아에까지 무차별 공습을 퍼부으며 무려 7번이나 전쟁을 감행했다. 특정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던 이전의 형태에서 벗어나  “이슬람주의 세력”의 주요 활동지역을 타겟 삼아 미국을 위시로 다국적 국가들이 참여하여 전격 소탕작전을 벌이는 형태의 전쟁을 제안하여 중동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열기도 했다. 


그 말 많고 탈 많은 노벨 평화상을, 말랄라가 수상했다. 말랄라의 고향 파키스탄에서의 반응은 엇갈린다.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를 비롯한 정부 각료들은 말랄라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며 축사를 보냈지만, 파키스탄 언론들은 수상 소식을 전달하는데 미온적이었다. 가장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이들은 물론 탈레반 강경세력들이지만, 탈레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파키스탄인들 또한 말랄라의 수상 소식이 마냥 자랑스럽지는 않은 듯이 보인다. 대표적인 이유는 파키스탄에 넓게 퍼져 있는 서구에 대한, 특히 미국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파키스탄은 1950년대 이후부터 미국과 우방 관계를 맺고 경제적 지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 두 국가의 관계는 조지 부시 전 미대통령이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엇갈리기 시작한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의 성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두 국가가 서로 다른 의견을 갖게 된 것이다. 파키스탄 집권세력이 지속적으로 친미 성향을 유지한데 반해, 민중들은 미국 정부와 파키스탄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파키스탄을 싸움터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실제로 지난 10여년 간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과의 갈등으로 야기된 일련의 폭력 사태들로 희생된 파키스탄인은 3만명에 이른다. 그중 거의 삼분의 일이 자국 군인의 손에 죽었다. 파키스탄인들은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한 내전을 겪으며 삶을 파괴당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2011년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오점을 남겼다. 파키스탄의 주권을 무시하고 이 나라 북서부에 지상군과 무인기(드론 Drone)를 투입하여 수많은 민간인을 살상한 것이다 (“Will I be next?’ US drone strikes in Pakistan,” Amnesty International USA Report, 2013년 10월). “해당지역의 급격한 탈레반화”를 막고 “탈레반 무장세력 소탕”을 목적으로 한다는 미국의 드론 공습은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정세를 감안한다면, 이번 수상 결정에 미국의 입김, 특히 “이슬람 세력의 이미지를 악화하여 중동지역에 대한 서구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고 말한 일부 파키스탄 언론 (“The antagonism towards Malala in Pakistan,” BBC News, 2014년 10월 10일)의 지적을 그저 과장된 음모론이라 치부할 수만은 없다.  파키스탄인들이 갖고 있는 불편한 감정을 더욱 부추기는 것은 말랄라에 대한 서구의 태도이다. 알다시피, 미국과 유럽은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탈레반의 폭력을 거부해 온 이 젊은 여성에게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이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서구 언론은 “말랄라와 같은 착한 파키스탄인”들과 “이슬람주의에 경도된 나쁜 파키스탄인”들을 분리하는 수사들을 끊임없이 사용해 왔다. 그들은 말랄라가 어떻게 “악의 세력”에 맞서 싸워 왔는지를 영웅담으로 만들어 퍼뜨려왔고, “사악한 이슬람주의자들”의 습격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진 말랄라를 살리기 위해 자신들의 우월한 의학기술을 총동원했고, “무장괴한으로부터 언제 또 습격을 당할지 모를”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든든한 경호원 역할을 자처해 왔으며, “위험하고 가난한 고향”에서 이루지 못한 그녀의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마치 이런 “인재를 썩히고 방치하고 있었냐”고 핀잔이라도 주듯 각종 국제 회의의 연사로 초청해 그녀의 얼굴에 스포트라이트를 터뜨리고 있다. 


이 이야기 구도,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다. “무지와 폭력의 미개한 세상에서 고통 받는 원주민 소녀를 구해내는 백인들”의 이야기. 여러가지 모양새로 각색되어 디즈니 만화에도 자주 등장해 온 진부한 멜로 드라마.  탈식민 주의 이론가들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은 그 낡은 서사. 찬드라 모한티(Chandra T. Mohanty)의 논문 “Under Western Eyes: Feminist Scholarship and Colonial Discourse”는 이러한 이야기 구도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심층 분석한다. 


모한티는 “제 3세계”—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의 여성들을 “가부장제의 희생자들”로 일반화하여 묘사하고, 반대로 이 지역의 남성들을 “가부장적 폭력 구조를 지속, 심화시키는 주범”으로 묘사하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구를  “이미 해방된 주체들, 선진화한 조력자들”로 묘사하는 서구의 접근방식에 문제점이 많다고 비판한다. 모한티에 의하면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는 해방의 주체가 되어야 할 여성들이 속해 있는 지역의 역사적 상황과 정치사회적 갈등을 단순화할 뿐 아니라, “우리(서구)”와 “저들(제3세계 여성)”을 구분하여 차이점을 부각시키고, “저들”을 “우리”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들로 전형화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구도는 “제 3세계” 여성이 “희생자”의 위치를 벗어나는 순간 자동적으로 “억압자들과 한편”이 되거나 혹은 “서구인들과 한편”이 되는 것처럼 조장하여, 지역공동체들 내의 반목을 양산하고 연대 가능성을 차단하기도 한다. 모한티의 주장은 말랄라가 파키스탄인들에게  “서구의 꼭둑각시”로 이해되어 비난 받고 있는 까닭을 잘 설명한다. 여성교육을 향한 말랄라의 신념이 그녀의 고향 사람들에게 설득력있게 전달되기도 전에 식민주의가 만들어낸 이분법의 도식에 갇혀 버리고 만것이다. 


말랄라의 메세지가 “억압받는 제 3세계의 모든 여성들에게” 닿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서구의 언론들은 정작 말랄라가 부딪히고 있는 갈등과 오해를 해소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어느 블로거가 토로한 것 처럼, 서구 언론들은 말랄라를 통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일에만 전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말랄라의 확고한 신념과 용기가 사실 그녀의 깊은 이슬람 신앙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것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의 아젠다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2006년, 말랄라의 고향에서 또래의 소녀가 다섯 명의 미군들에게 강간 살해 당했다는 사실은 가능한 빨리 잊고 싶어한다(Why I can’t celebrate Malala’s Nobel Prize: http://middleeastrevised.com/2014/10/11/why-i-cant-celebrate-malalas-nobel-peace-prize/). 영국의 평론가 조지 갤러웨이(George Galloway)는 서구 언론들의 양면성을 비꼬며 “만약 말랄라가 드론 공습에 의해 살해되었다면 영국언론들은 그녀의 이름조차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트위터를 날렸다. 냉소적이긴 해도, 갤러웨이의 지적은 옳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열여섯살 당차고 현명하고 꿈많은 여성 말랄라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녀가 가진 강고한 용기과 여성교육에 대한 열정을 우리는 오래 오래 찬사하고, 그녀의 말들을 가슴에 간직해야 한다. 그러나 말랄라의 신념과 열정을 기억하기 위해 그녀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는 사실까지 덧붙여 기억해야 할 이유는 없다. 거부하지 않고 받았으니, 그녀의 선택이었겠거니 존중하면 된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말랄라는 노벨평화상이라는 별로 돋보이지 않는 경력을 갖고 있는 말랄라가 아니다. 열한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꿈과 고향땅 친구들의 꿈을 위해 목숨을 걸고 블로그에 글을 올린 말랄라, 탈레반 뿐 아니라 서구의 위압적인 정치인들과 지식인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밝힐 줄 아는 말랄라, 수상 이후 버락 오바마를 만나 “드론 공격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파키스탄 민중을 분노하게 한다”고 말한 말랄라,  “드론 대신 책을 보내달라”고 미국인들에게 호소한 말랄라 (MSNBC Interview, http://www.msnbc.com/ronan-farrow/watch/exclusive-ronan-speaks-with-malala-yousafzai-346760259967),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학교 재건을 위해 5만달러를 기부한 말랄라. 이 벅차게 아름다운 여성 말랄라를, 나는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지도자인 그녀가 어떻게 더 깊어가는지, 어떻게 더 성숙해가는지, 고통 속에도 꿈을 잃지 않는 세상 곳곳의 말랄라들과 어떻게 연대하는지, 나는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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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말] 이 원고는 이상철 선생님께서 11월 3일 보내주신 원고이고, 편집자의 사정으로 지난 달 웹진을 발송하지 못했습니다. 글에서 언급되는 '오늘'이 이미 많이 지났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애도(哀悼)의 문법


이상철
(한신대 외래교수)
 



“세월호 얘기, 혹시 지겨우십니까? 지겹다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도 왜? 라는 질문은 넘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배가 왜 침몰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9월 24일)이 벌써 162일 째인데도 말이지요. 지겨워도 직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다시, 세월호 사고 당일로 돌아가 봅니다…” – 손석희, JTBC 뉴스 9월 24일 오프닝 멘트 中



프롤로그


오늘은 종교개혁 497주기 되는 날이고, 위의 손석희 멘트가 있었던 날부터는 한 달이상이 지난 날이다. 내일은 세월호 침몰이 있었던 날로부터 200일째 되는 날이고..... 종교개혁일을 맞아 오늘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의 아픔에 참여하는 이 땅의 신학자들’이란 슬로건으로 신학자 177명이 호소문을 발표하면서 기자회견도 열었고, 저녁에는 신학자들이 주관하는 기도회도 열렸다. 광화문뿐 아니라, 청운동에서, 안산에서, 그리고 팽목항에서 그 날을 잊지못하는 사람들이 오늘도 모이고, 내일도 모이겠지만, 이 싸움의 끝이 어떻게 그려질지, 그리고 그 결과가 가져올 파국이 어떠할런지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서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울부짖어야 이 원한이 들려질까?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 이 노래가 들려지고, 얼마나 먼 길을 헤매야 그곳에 우리는 닿을 수 있을까?” 이런 물음들에 대해 시인은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라고 노래했지만, 진정 그것이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라면, 그 현실은 얼마나 잔혹하고 희망이 없는 현실일까? 그래서 점점 오기가 생긴다. 글을 쓰는 사람이 오기로 글을 쓰는 것은 분명 불행한 일이겠지만, 그것이 오기든, 분노든, 죄책감이든, 감수성이든, 신학적 통찰이든 그것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언제까지 바람이 불어와 답을 일러줄 그날만을 기다릴 수 있는가? 그래서, 일단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마주하는 사건들과 잡다한 단편들을 마구 기록하고, 나중에 그것들을 복기하면서 지금의 사건을 다시 기억하고 의미화하는 작업을 계속 유전시키면서 post 세월호를 준비하다보면 어느새 바람이 불어와 우리 이마에 송송히 맺힌 땀방울을 식혀주지 않을까? 그러하리라. 


데리다 사상의 변곡점


나는 지난 4월 16일 이후 웹진<제3시대>를 통해 세월호 관련 기사를 게재해왔다.[각주:1] 이번 웹진도 그 연장선에 서있고, 앞으로 ‘애도의 문법’이라는 제목으로 몇 차례에 걸쳐 데리다와 레비나스가 말하는 애도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그것이 세월호에 대한 애도의 문법을 놓고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어떤 영감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흔히 우리가 한 인물의 사상에 대해 전기사상과 후기사상으로 나누어 평가할 때가 있다. 니체 같은 경우는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전과 이후 작품의 성격이 다르다. 전기 작품인 <비극의 탄생>, <The Gay Science>에서는 근대성 일반에 대한 비판이 있고, <짜라투스투라...> 이후 등장하는 <도덕의 계보학>, <선과 악을 넘어서>, <The Anti-Christ>, <Ecce Homo> 를 통해 니체는 점점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더해간다. 프로이트 같은 경우도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를 기준으로 전기 사상은 의식-무의식의 지형도를 그렸다면, 그 이후는 Id-Ego-Superego간의 무의식의 역동, dynamic으로 옮겨가는 사상적인 전이를 보인다. 

데리다도 마찬가지다. 데리다 연구자들은 90년대 현실 사회주의가 패망한 이후의 데리다와 그 이전 데리다를 구분한다. 데리다는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에 절필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나서 1992년에 후쿠야마가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승리를 선언한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을 썼고, 그로부터 1년 후에 데리다의 가장 문제적인 저작이라 할 수 있는 <맑스의 유령들>이 출판된다.[각주:2] 이 <맑스의 유령들>을 기점으로 해서 전기 데리다와 후기 데리다를 나눈다. 전기 데리다는 주로 서구 형이상학에 대한 해체에 주력하면서 그에 대한 전략으로 언어, 기호, 텍스트에 대한 천착을 그 특징으로 한다면, 후기 데리다는 정치, 윤리, 법, 정의 등 정치철학적인 부분으로까지 자신의 관심사를 확대하여 해체론을 적용하기에 이른다. <법의 힘> <우정의 정치학> <불량배들>이 이런 연속성에서 출간된 작품들이다.  

  

‘O my friends, there is no friend.’


위에 적혀있는 ‘O my friends, there is no friend. 오! 나의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다’는 데리다가 <우정의 정치학>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사용했던 문구다. 이 문장에서 궁극적으로 데리다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친구란 없다”였다. 우정이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데리다의 본심은 ‘우정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정이란 의미론적 범주가 아닌 빈공간이라는 사실을, 친구란 내안에 들어와 있는 빈공간이다’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게다. 

데리다는 우정을 의미론적인 자질로, 친구를 우정을 입증하는 현실의 소여로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친구를 설명할 때, 혹은 그 친구와의 우정을 설명할 때, 나와 비슷한 입장과 처지와 상황과 배경을 공유하는 자를 친구라고, 그 친구와 맺는 관계를 우정이라 말한다. 여기에는 유사의 법칙과 등가의 법칙이 존재한다. 하지만, 데리다는 그런 친구는 없다고 말한다. 친구란 유사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틈이기 때문이다.  

결국, 데리다에 있어 의미란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정과 사랑, 국가와 정의, 신과 믿음은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틈이다. 이것이 대체 무슨 뜻이고, 그것이 세월호를 둘러싼 애도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데리다를 평생 따라다녔던 기본 개념어라 할 수 있는 ‘차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리라 본다. 


‘차연’이란 무엇인가? 


데리다는 시종일관 ‘차연’라는 개념어를 가지고 자신의 이론적, 실천적 작업을 진행하였다. 데리다가 사용하는 differance는 우리나라에서 ‘차연’으로 번역되었는데, 어원적으로는 Differ(다르다) 와 defer(연기하다), 이 둘이 합쳐진 조합어다.[각주:3] 영어로 번역된 데리다의 저작을 보면 불어인 differance를 그냥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사실, 영어로 differance를 표현하는 단어는 없다.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는데, Differ와 defer의 의미가 다 들어간 단어를 만들어내기가 만만치 않은 까닭에 굳이 그것을 만드는 것보다는 불어인 differance를 그대로 쓰는 것일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연’이라는 말 안에 들어있는 느낌을 영어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영어 단어 중에 낱말의 뒤에 붙어 명사화시키는 접미어 중 나중에 보면 동사의 느낌이 나는 접미어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단어 뒤에 -(a)tion을 붙이는 케이스이다. 예를 들어 像을 뜻하는 image에 –ation을 붙여 ‘이미지화하기’(imagination)라는 단어가 파생되고, ‘개념’을 뜻하는 concept에 –tion을 붙이면 ‘개념화하기’(conception)라는 뜻이 생긴다. 둘 다 형태는 명사형이나 동사 feel이 나는 단어들이다.  

그렇다면, ‘차이화 하기’라는 말도 있지 않을까? 영어로 차이를 뜻하는 difference에 –ation를 부치면 differentiation이라는 말이 파생되는데, 수학용어로는 미분이다. 미분이 무엇인가? 계속 잘게 쪼개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계속 무엇인가를 쪼개어나가지만 그 쪼개짐이 끝나지 않음을 전제한다. 이렇듯 Differntiation은 사전적으로는 ‘미분화하기’ 이지만, 의미론적으로는 ‘차이화 하기’로 치환할 수 있다고 본다. 미분했다는 말은 쪼개어져서 이전 형태와 다른 차이가 발생했다는 뜻이니 말이다. ‘차이화 하기’라는 말은 차이를 계속 생성한다는 의미에서 ‘차이’와 ‘연기’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말이고, 차이를 계속 생성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틈과 여백이 계속 생겨난다는 뜻이며, 해석학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자면 해석에 대한 독점없이 해석의 준거점들이 계속 바뀌는 것이다. 그 과정 일반을 데리다는 ‘deconstruction’이라 불렀다. 이를 우리말로는 ‘해체’라는 다소 흉칙한 말로 번역했는데, 이보다는 더 부드럽고 본래 의미를 잘 살리는 번역어가 등장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각주:4]

지금까지 우리는 ‘차연’에 대한 사전적 정의로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지니는 해석학적 의미까지를 간단히 살펴보았고, 그것이 데리다의 해체주의가 시작되는 진앙이라는 사실 또한 확인하였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데리다의 논의가 현실생활과 현실정치에서 어떤 포물선을 그려왔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차연’에 대한 오해와 변명


흔히 현대 사회를 설명하면서 제일 많이 쓰이는 단어가 포스트모더니즘과 신자유주의가 아닐까 싶다. 이 둘을 지목하는 이유는 양자는 단순히 한때 몰아닥쳤던 이론의 유행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읽어내는 묵직한 화두를 우리에게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각론으로 들어가 이 두 시대정신의 부각과 함께 등장했던 개념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아닐까 싶다: 차이, 다양성, 다름, 타자, 욕망, 해체 등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고, 나와 입장과 생각이 다른 타자의 권리를 옹호하며, 신자유주의 시스템 속에서 억압된 욕망을 건강하게 승화시키는 일은 우리시대 중요한 과제다. 특별히 차이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상대방과 나와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간격을 유지한 채 나이스하게 서로의 다름을 넉넉히 바라볼 줄 아는 미덕, 이것이야 말로 바로 이 광명한 글로벌하고도 포스트모던한 사회를 살아가는 명법이라 우리는 훈육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화법은 신자유주의로 요약되는 현대사회의 정치-경제적 현실을 왜곡하고 희석시킨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식자들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별히 맑스주의 계열의 학자들로부터 이런 비판은 드세었는데, 그 중에서도 지젝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말하는 수평적 다양성이 혁명에 이르는 수직적 적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 지적하였다. 

데리다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을 상징하는 대표적 학자로 지목되었고, 그리하여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로부터 집중 포화의 대상이 되었다. <맑스의 유령들> 출판이후에 이런 오해들이 다소나마 풀리기는 했지만, 데리다를 향한 이런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데리다에 대한 세인들의 평가에는 다소 곡해가 있다. 데리다의 차연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차이 자체에는 방점이 없다. 차연은 엄격히 말해 ‘차이가 생성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리다의 본심


그렇다면, 자본에 의한 전 지구적 재편이 완성되고, 그 자본의 법칙만이 유일한 정언명법이 되어버린 이 세계속에서 ‘차이가 생성된다’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일까? 신자유주의로 상징되는 이 견고한 텍스트에 균열을 내고, 주름을 만들고, 틈을 내고, 그래서 이 시스템이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불안정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데리다의 차연, 즉 ‘차이가 생성된다’는 말 속에 담긴 정치적 함의가 아닐까? 그리하여 체제로 하여금 뭔가 불순한 세력과 음모가 이 사회를 감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하고, 뭔가 상스럽지 못한 기운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환상이 보이고, 거리에선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다!’는 주문이 환청이 되어 들리면서, 이 사회가 결코 안정적이지 않음을 유포시키는 것! 그것이 데리다 말하는 차연, 즉 ‘차이생성’이라는 말 속에 들어있는 데리다식 정치적 음모라 한다면? 나는 그렇게 데리다를 읽고 싶은데...... 


에필로그: 이런 시각으로 세월호에 대한 애도를 바라보면 어떨까? 이제야 비로소 워밍업을 끝내고 세월호에 대한 ‘애도의 문법(文法)’으로 들어가는 문(門) 앞에 당도했다. (다음 웹진에 계속)


ⓒ 웹진 <제3시대>



  1. “The Day Before The Sewol”(웹진64호); “다시, 우리의 삶-정치를 묻다”(62호); “애도(Mourning), 그 불가능한 가능성에 관하여”(61호); “이것이 국가인가?: 세월호 침몰사건을 바라보는 지젝의 시선과 산자의 독백”(60호) [본문으로]
  2. [맑스의 유령들]출판은 소련 패망 이후 움츠려들었던 좌파논객들을 하나로 모아 다시 한번 좌파의 미래와 대안을 모색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의 논의들을 편집해 출판된 책이 Ghostly Demarcation: A Symposium on Jacques Derrida’s Specters of Marx (Versro, 1999)이다. 이 책에는 안토니오 네그리의 The Specter’s Smile, 프레드릭 제임슨의 Marx’s Purloined Letter, 데리 이글튼의 Marxism without Marxism, 아이자드 아마드의 Reconciling Derrida: ‘Specters of Marx’ and Deconstructive Politics 등 내로라하는 논객들의 문제적 데리다 읽기 아홉 편이 실려있다. 이에 질세라 데리다도 꼼꼼히 그들의 지적과 비판에 맞서 대응을 하는데, 데리다의 반박은 Marx & Sons 이라는 제목으로 이 책 후반부에 실렸다. 한국에서는 2009년 도서출판 길에서 Ghostly Demarcation에 실려있는 3편의 논문과 데리다의 Marx & Sons를 묶어 [마르크스주의와 해체-불가능한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본문으로]
  3. 데리다는 크리스테바와의 인터뷰를 통해 본인 사상 초기에 거세게 일었던 ‘차연’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고자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기사가 “Semiology and Grammatology”라는 제목으로 『Positions』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1)에 실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이 포스트모던 광풍이 일었던 1992년 『입장들』이라는 제목으로 솔 출판사에서 번역된바 있다. 거기에서 데리다는 자연 안에 내포된 두 가지 의미(difer와 defer)에 대해 다시 한번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차연은) 현전/부재의 대립을 토대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다. 차연은 차이들의 유기적인 놀이이고,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흔적들의 유기적 놀이이며, 타자와의 관계맺기를 통해 발생한 요소들의 공간화를 통해 발생하는 유기적 놀이다”(27) 데리다는 이것이 텍스트의 특징이라고 결론짓는다: “This interweaving is the text produced only in the transformation of another text. 이러한 섞임이 텍스트인데, 그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와의 소통의 결과물이다.”(26) [본문으로]
  4. 철학자 진태원은 ‘해체’보다는 ‘탈구축’이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해체가 단지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의미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 (서울: 동녘, 2013) 중 “해체, 차이, 유령론으로 읽는 자크 데리다”(p.309-339)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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