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대안을 향해 투표하고 싶었다.

 



양권석

(본 연구소 소장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나만 그랬을까?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점점 무기력증이 더해졌다. 기적을 바라면서도, 기적을 바라는 내가 너무 싫었다. 사실은 투표장에 가서까지도 망설였다. 언제까지 어처구니 없는 이 나라 정치의 프레임에 갇혀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이 말도 안 되는 선거 프레임에 나를 가둘 것인가? 그리고는 희망이나 기대 같은 것은 일단 주머니 속에 접어두기로 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셈을 해 가면서 표를 찍었다. 이게 마지막이다. 다시는 내 표를 낭비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면서 잊어버리고 싶었다.  

    개표 방송은 보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다. 또 다시 속을 끓이며 참담함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맞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보고야 말았고, 새벽이 다 되도록 그 결과를 되새겨야 했다. 제 1당의 순서가 바뀌는 순간, 방송국 기자들이나 패널들도, 믿기지 않는 듯,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쯤은 환성을 터뜨리거나, 가슴을 쓸어 내리며, 오래 묵은 분노와 스트레스를 날려 버려도 좋았을 것인데. 마음이 그렇지가 않았다. 아니,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했지만, 감동이 물밀듯 밀려오고 그러지 않았다. 

    분명히 주어진 선거 프레임을 마음껏 즐기며 타고 놀았던 많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선거의 결과가 승리와 패배에 대한 분명한 판정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번 선거의 결과를 결정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의 표심을 대변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나는 이번 선거를 결정한 사람들, 이번 선거를 통해 진실을 말하고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간절한 마음들과 진심들을 나눌 수 있는 정치적 장을 허락 받지 못한 사람들. 분노와 절망을 공개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정치적 통로를 허락 받지 못한 사람들. 선거결과를 바라보면서 아니 선거 기간 내내, 내가 떠 올릴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유권자들로부터 세월호 진실에 대한 물음을 박탈하는 정치, 유권자들로부터 역사에 대한 판단과 반성의 능력을 빼앗는 정치, 유권자들의 도덕적 의식과 지적 판단 능력을 빼앗는 정치, 테러방지를 위해, 기본적인 권리와 존엄마저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정치, 그것이 지금의 정치다. 모든 것을 먹고 사는 문제로 환원시키면서, 정작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고 하는 정치다.

    정말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주권은 통치자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통제하고 배제하는 만큼 얻어지는 것 아닌가? 그리고 지금의 여당과 야당, 그리고 모든 정치적 계파들은 바로 이 불량한 권력을 나누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표심을 알 수 있을까? 주권을 회복하려는 국민의 요구를 정말로 알 수 있을까? 자신들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공동체의 권력을 세우기 위해,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하는 국민의 마음을, 대통령 존영 운운하는 자들이 알기나 할까? 이들이 선거 결과를 놓고 견강부회하고 공과를 평가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 유권자로서 나는 너무나 참담하다.  

   한 표 한 표에 담긴, 국민들의 분노와 절망과 냉소들을 읽어낼 수 있는 혜안은 정말 없는 것인가?국민을 섬기는 정치, 유권자를 섬기는 정치는 정말 불가능한가? 이번에 선택된 사람들에게 유권자들이 던지는 질문 혹은 간절한 소망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현재 정치의 틀을 바꾸어내고, 다시 국민에게 주권을 돌려주어, 국민의 양심과 진실과 정의를 향한 요구에 봉사하는 정치를 해 달라는 주문을 정말로 귀 기울여 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더 이상 분노와 미움으로 표를 던지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그리고 희망과 대안을 향해 유권자들이 참여하는 선거와 정치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헛된 기대였음을 확인하게 될지 모르지만 다시 희망을 걸어 본다. 이미 분노와 미움으로 던져진 수많은 냉소의 표심들을 희망과 대안을 향한 소망으로 바꾸어 내는 일 역시 이 번에 선택된 사람들에게 맡겨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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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묵시록 4 - 토크빌의 묵시록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의 사상이 종말론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곧 다가올 종말이 아니라 곧 필연적으로 다가올 민주주의의 미래를 고민했던 사람이었다. 여기서 토크빌을 논의하는 이유는 미국을 다루는 글에서 그의 이름이 빠질 수 없다는 나의 판단도 포함한다. 그러나 그의 이름과 묵시록을 함께 거론할 수 있는 일말의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토크빌의 사상적 배경은 18세기 후반 종말과 묵시록의 상상을 유발했던 불란서 혁명이었다. 19세기 초반 유럽에 혁명의 불길이 치솟을 때 혁명 이후의 영구적인 정치제도를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찾기 위해 미국을 탐방했으니, 그의 사상을 Post-Apocalyptic이라 할 수도 있겠고 또는 세속화된 묵시록이란 표현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토크빌이 그의 동료 보우만(Beaumont)과 함께 미국을 찾은 이유는 미국의 감옥을 연구하기 위함이었다. 혁명의 시대는 제도의 정비를 요구했고, 법제도를 역행한 죄인을 다루는 일도 새로운 생각을 요구했다. 18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감옥을 육체적 고통의 형벌을 가하는 심판의 공간에서 교도소(Penitentiary)라는 이름의 참회를 유도하는 곳으로 변화시키는 종교적 운동이 일어났다. 국가적 심판을 실행하는 공간에서 참회와 회심이라는 종말의 믿음을 실천하는 공간으로의 변화였다. 만약 토크빌이 유럽에서 목격한 것이 폭력과 파괴의 묵시록이었다면 그가 미국에서 찾은 것은 심판의 묵시록이라 할 수 있다. 


    나는 한때 토크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책 <미국의 민주주의>가 미국을 다룬 그 어떤 책보다 뛰어나다는 분석에 동의하기 힘들었고, 마치 그 책을 미국이라는 종교의 경전인 듯 취급하는 경향도 싫었다. 20대 중반의 불란서 귀족 청년이 미국을 9개월 돌아보고 쓴 글이 얼마나 대단하겠느냐는 반감도 없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의 분석력과 통찰력이 얼마나 뛰어난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의 미국론이 후대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제대로 인식하는 게 늦었다. 뒤늦은 깨달음에 도움을 준 건 미국사상에 대한 공부도 있었지만 다소 개인적인 동기도 작용했다. 내가 한때 토크빌이 미국여행 때 방문했던 미시건 주의 세기너(Saginaw)란 작은 도시에서 살았던 이유였다. 세기너란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게 토크빌이었고, 그 지역엔 그의 이름을 신화의 전설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살면서 알게 되었다. 토크빌이 세기너 지역을 돌아보고 남긴 기행문 [a fortnight in the wilderness]란 글을 찾아 읽으면서 그의 섬세한 관찰력과 문명사적인 인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렇다고 그가 18세기 유럽의 우월주의를 넘어선 건 아니었다. 그에게 서구문명의 확산으로 원주민들이 사라지고 미시건의 거대한 밀림지대가 파괴되고, 문명의 소음 앞에서 자연의 침묵이 깨진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운명에 가까웠다. 감옥을 연구한다는 목적으로 미국에 왔지만 토크빌의 의도는 민주주의가 일상의 삶속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관찰하는데 더 흥미가 있었다. 그러던 그가 미시건 주의 세기너를 방문하게 된 이유는 서구문명이 어디까지 왔는지 그 지리적 끝을 보기 위해서였다.  


    내 기억 속에 세기너의 야생에서 모기떼와 싸우며 서구문명의 종착점을 고민하면서 썼던 토크빌의 기행문과 중복되어 남아있는 사건이 하나 있다. 토크빌의 세기너 기행문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던 어느 날 세기너 위아래로 흐르는 티타바와시강(Tittabawassee River)에서 자동차 사고로 익사한 한 백인남자의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의 죽음이 내게 토크빌을 연상시킬 이유는 없었다. 단지 그 옛날 카누를 타고 서구문명의 최전선의 현장을 목격하기 위해 티타바와시강을 오르내리던 토크빌이 떠올랐을 뿐이다. 교회를 다니지 않았던 사람이었지만,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설교와 축도는 죽음 뒤 부활의 약속을 선언했다. 문명의 끝에 대한 토크빌의 묵상과 나와 별 다른 인연이 없었던 한 인간의 종말은 티타바와시란 특이한 이름의 강과 연결되어 정리되지 않은 채 내 속에 남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토크빌이 목격했던 미국의 민주주의와 감옥 그리고 서구문명의 팽창으로 사라질 원주민들의 삶이 어떤 식으로라도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를 만드는데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Revelation(계시)와 Revolution(혁명)는 아주 다른 단어이지만 서양의 역사에서 두 단어는 분리될 수 없는 밀접함이 있다. 즉 계시를 내세우고 이를 실현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혁명은 없다. 완전히 세속화된 혁명도 정해진 역사의 법칙을 말한다. 그리고 혁명이라는 급격한 변화는 언제나 계시나 묵시록의 언어에 의존하게 된다. 미국의 혁명이 그랬고 불란서 혁명도 마찬가지였다. 묵시록의 두 비전, 즉 세상의 종말과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은 모든 혁명적 시대의 필수적인 수사였다. 독립을 위한 전쟁이라 알려진 미국의 혁명은 무엇보다 종교적인 전쟁이었고 혁명이었다. 청교도들의 종말과 새로운 예루살렘에 대한 비전이 세속화되고 정치화된 결과였고, 그들의 후예인 장로교인들이 그 혁명을 주도했다. 불란서 혁명은 그 당시 사람들에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예언과 계시의 사건이었다. 두 혁명을 정치 역사의 일부로 이해하는 건 후대의 해석이었고, 당대의 해석은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인간에 대한 성경의 예언에 의존했다. 그 예언의 언어는 묵시록이었다. 그 언어로 불란서 혁명의 예언과 계시적인 해석을 맡았던 사람들은 William Blake와 William Wordsworth같은 시인들이었다. 그들은 혁명의 사건이라는 묵시록 속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상을 보았고, 이것이 바로 낭만주의의 시작이기도 했다. 


    토크빌이 1831년 미국에 오게 된 이유는 미국의 형무소 제도를 연구하여 불란서에 적용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유럽은 혁명의 시대였고, 감옥에 관심을 갖는 건 불란서만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Bentham이 고안한 팬옵티콘(Panopticon)이라는 감옥 디자인으로, 철저하게 관찰 당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만들어 수감자들을 통제하는 걸 목적으로 삼았다. 유럽이 관심을 갖게 된 건 미국의 퀘이커들이 주도해 만든 교도소(Penitentiary)였다. 퀘이커들은 사형이나 고문을 금지시켰고, 죄인들을 가둬두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수감자들이 반성과 회개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그들은 침묵 속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퀘이커들에게 익숙한 방식을 도입해 죄를 뉘우치는 교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실험을 했다 (격리된 상태에서 강요된 침묵이 일으키는 정신적 문제에 대해 초기에는 알지 못했다). 토크빌은 미국의 여러 감옥시설을 돌아보고 미국의 감옥이 자신이 아는 어느 나라보다 더 관용적인 수감제도를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혁명의 시대에 감옥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현상을 이론으로 설명한 사람은 미셸 푸코였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인간상을 시대의 주인공으로 이해하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혁명은 감옥의 문을 열기도 하고 새로운 죄인을 만들기도 한다. 푸코는 유럽이 근대라는 시대를 열면서 근대적이지 못한 것들을 다루는 제도적 장치들을 연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역시도 감옥이 육체의 형벌을 가하는 곳에서 감금을 통한 교도를 목적으로 하는 공간으로의 변모에 종교적인 원인이 있음을 인정했지만, 그보다는 정의와 형벌에 대한 개념의 변화를 더 큰 원인으로 파악했다. 토크빌과 푸코는 퀘이커들이 감옥을 참회와 구원의 공간으로 변화시키려 했고, 그 노력이 퀘이커들의 종말론적인 신앙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서구역사의 혁명적인 변화나 새로움이 신학으로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는 사실도 간과한 면이 있다. 청교도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퀘이커들은 종말의 비전을 유토피아의 건설을 통해 이루려 했다. 그 유토피아는 모든 인간에게 꺼지지 않은 선한 빛이 잠재해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심판은 묵시록의 언어다. 토크빌은 19세기 초 미국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들이 수용된 감옥을 방문했고, 서구문명의 심판을 받아 사라질 위기에 처한 원주민들을 만나 그 증인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심판은 결코 토크빌의 언어가 아니었고, 미국의 민주주의가 심판이란 개념 그리고 감옥이라는 공간과 친숙한 상태로 발전하리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여기서 심판은 법의 심판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미국에선 최후의 제도이자 제일 앞선 정치제도인 민주주의 그 자체가 심판이란 암시가 무의식 속에 작용한다. 더 나아가 미국의 의미를 심판에서 찾는 경향도 있다.. 


    나는 몇 달에 한 번 자동차 엔진오일을 교체하기 위해 동네의 정비업체를 찾는다. 가는 시간대가 늘 비슷해서인지 대기실 벽에 붙은 작은 TV에선 항상 같은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다. 실제 재판처럼 민사소송을 중재하고 판결을 내리는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 중에서 흥행성이 있을 것만을 골라 TV 카메라 앞에서 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리얼리티 TV의 원조 격이다. TV출연이 결정되면 그 재판 판결에 따라야 하고, 실제 소송은 취하한다는 조건이 있다. 판사의 역할은 실제 판사 일을 했던 사람이 맡는다. 명쾌한 판결을 내려주고 근엄하게 때로는 TV에 어울리는 열정으로 훈계하고 꾸짖기도 한다. 그럴 때면 진리의 소리를 듣는 시청자의 가슴도 후련해진다. 이런 비슷한 TV 프로그램이 미국에는 많다. 시청률도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 사람들의 독특한 정서적 성향과 기질에 맞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심판을 통한 정의에 대한 신뢰다. 미국은 내가 아는 어느 나라보다 법에 대한 신뢰가 높다. 그 신뢰는 세속적인 신뢰가 아니다. 법 앞의 맹세는 성경책 위에 손을 얹고 하는 전통이 말해 주듯,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는 단순한 맹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걸고 증언을 하겠다는 곧 목숨을 걸겠다는 뜻을 포함한다. 그 상징의 무게가 더 이상 무거울 수 없다. TV법정의 재판은 심판과 판결 그리고 형벌 또 때에 따라 위로와 훈계로 이어진다. 이런 프로그램이 성행하는 이유는 현실 속의 법집행에 대한 불만이 시청자들에게 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심판과 정의 그리고 죄와 벌의 사이의 명확한 관계가 미국적인 것이고, 또 미국의 본질에 속한다는 시민적 믿음을 상업화 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법과 법의 심판에 대한 믿음은 더 많은 법을 만들어내고 결국 더 많은 심판을 요구한다. 인구를 비교 했을 때 미국에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있다. 같은 죄를 지어도 어느 나라보다 더 가혹한 심판을 받는 걸 흔히 본다. 감옥 속에서 더 심한 폭력에 시달리게 되지만, 이미 심판받은 자들에 대한 동정은 찾기 쉽지 않다. 감옥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반성은 흔치 않다. 서구 사회에서는 이미 포기한 사형 제도를 고집하는 미국의 주들이 아직도 많다. 이런 사실을 통해 미국사회가 보수적이란 평가를 내리게 되지만,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보수성만으로 이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필요한 것은 미국의 보수주의에 대한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이해이다. 죄에 대한 응징, 제사장의 의복(법복)을 입은 사람들이 내리는 심판, 그리고 가혹한 형벌의 대가를 통해 죄를 씻는 용서의 구조 등은 실정법의 제도이지만 종교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은혜가 없는 법에 의한 심판은 저주의 심판이 되기도 한다.  


    서구에서 가장 종교적인 나라인 미국은 종말론의 언어와 심판의 언어에 익숙하다. 미국은 청교도들의 시대부터 스스로를 마지막 시대와 종말의 주역이라 여겼다. 이 땅의 끝을 예비하고 이를 이루어내는 역할이 미국의 몫이란 종말론의 세계인식은 미국문화의 근원적 요소로 남아 있다. 이는 최근 세계정치의 심판자라는 인식 또는 선제 핵무기 공격을 포기하지 않는 정책 등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심판의 날’이란 개념은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의 주제만이 아니라 청교도 시대 미국역사의 첫 베스트셀러(Michael Wigglesworth의 The Day of Doom) 이후 미국문화의 기본주제라고도 할 수 있다.  


    시카고 지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은 Chicago Tribune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 판은 무료였는데, 최근에는 구독료를 요구하는 기사들이 많아 잘 안 찾게 된다. 그러나 구독료를 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게 있다. 바로 그 전날 경찰에 의해 체포된 사람들의 Mugshot이라고 하는 사진이다. 영화에서 흔히 보는 – 가슴에 이름과 생년월일, 일렬번호 등이 적혀있는 표를 들고 찍은 사진이다. 주민등록증이나 아무런 신분증이 없던 19세기 범법자를 관리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나, 21세기인 지금도 변함없이 이용되고 있다. 그 기록은 ‘공적’인 기록이기 때문에 소유나 배포가 가능하다고 한다. 예컨대 전날 밤 음주운전으로 체포된 사람의 공포에 질린 얼굴을 다음날 아침 인터넷을 통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체포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된 경우가 많다. 남의 불행을 즐기는 게 인간심리의 일부이니, ‘클릭’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재판도 받지 않은 사람에 대한 공개적이고 가혹한 심판이란 항변은 통하지 않는다. 법이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 사진을 인터넷에서 없애려면 소송을 통해 또 다른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미국엔 그 심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다.  


    토크빌은 미국 역사의 예언자 취급을 받는다. 그 이유는 그가 보고 기록한 것이 뛰어난 가치가 있기 때문이겠지만, 역으로 그가 보지 못하고 기록하지 못한 게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토크빌이 미국에 왔을 때 불란서 사절단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지만, 그를 알아보는 미국사람은 없었다. 토크빌이 미국을 돌아본지 10년이 지난 후 영국의 한 유명한 작가가 미국을 방문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쫓아다녀 귀찮고 불편하다는 불평까지 했던, 요샛말로 스타였다. 귀국한 후 그는 장문의 –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안 읽는 – 기행문 (American Notes)을 썼다. 그는 30대 초반의 찰스 디킨스였다. 이런 질문을 해 본다. 왜 디킨스가 아니고 토크빌이었을까? 미국에서 토크빌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디킨스의 몫이어야 하지 않을까?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국이 영국의 소설가로부터 미국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겠지만 실제 이유가 하나 있었다. 디킨스는 미국에 대해 별로 좋은 얘길 하지 않았다. 


    1830년에서 1837년까지의 7년은 미국 사상사에서 뜻 깊은 시기였다. 미국에서 태어난 에머슨은 목사직을 사임하고 1832년 크리스마스 날 유럽여행을 떠난다. 당대 유럽의 중요한 문인들과 교제한 후 미국에 돌아와 미국사상의 기초를 세운 <자연Nature>를 1836년에 출간한다. 그리고 1837년엔 <미국의 학자>란 유명한 강연을 통해 미국에서 학문하는 방법과 자세를 선언했다. 에머슨보다 두 살 어렸던 불란서의 토크빌은 1831년 미국을 9개월 방문하고 귀국해 미국의 사상을 유럽에 알리고 이후 미국사상의 고전이 된 <미국의 민주주의> 1권을 1935년에 출간했다. 미국의 의미를 안팎에서 모색해 그 내용을 사상사의 전통으로 남긴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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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생각하며...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부활절이 지나고,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이 “할렐루야”와 “평화”이다. 예배형식과 교회 절기, 그리고 거기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공회에서는, 사순절 기간 동안 예수의 부활을 의미하는 “할렐루야”를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40일 동안 침묵 속에 묻혀 있던 할렐루야는 부활절 새벽 (또는 부활절 직전 토요일 일몰 후)에, 말 그대로 부활한다. 부활절부터 오순절 성령 강림 주일전까지, 교회에서는 일곱번의 주일을 부활절로 기념한다. 이 기간 동안 읽혀지는 각기 다른 복음서 대부분은 부활한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예수의 죽음 후에, 일상이 파괴되고, 두려움과 절망감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현실의 상황과는 동떨어진 “평화가 너희들과 함께 하기를” 하고 기원하는 예수의 인사는 무언가 황당한 것 같으면서도, 시기적절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인간은 평화에 대한 경험을 통해 이를 알게 되고, 그 소중함을 갈망하기 보다는, 전쟁과 폭력 등 평화가 없는 상황과 반평화를 경험하면서, 평화를 상상하게 되고 지향하게 되기 때문이다. 평화에 대한 존재론적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진 베스케 엘쉬타인 (Jean Bethke Elshtain)은 전쟁과 평화에 대한 신학적 고전이 된 “여성과 전쟁 (Women and War)”이란 책에서, 평화는 전쟁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정의되고, 상상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평화 운동은 반전운동으로, 마치 전쟁이 존재하지 않으면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Elshtain, 1995).  


          반면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폭력을 사용한 가해자가 무슬림이거나 이슬람과 연관이 있는 경우에는, 논리가 달라진다. 즉 이들의 정신 상태나 통제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분노가 문제가 아니라, 이슬람이란 제도화된 종교가 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문제이다. 이슬람이 폭력을 조장하는 비윤리적인 종교이기 때문에, 이 종교에 심취한 무슬림들은 테러리스트들이거나, 잠재적 테러리스트들이다. 더 나아가 무슬림들은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다른 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 보다 높다고 본다. 이러한 논리는 반이슬람 정서를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슬람이 테러리스트의 종교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약 이슬람이 테러리스트의 종교라면, 기독교, 불교, 유교, 힌두교, 등등 세상의 모든 종교들이 테러리스트들의 종교가 될 수 있다. 같은 논리로, 비종교인들도 충분히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테러리스트는 종교 논리 보다는, 정치, 사회, 문화 환경 때문에 생겨나는 경우가 더 많고, 인간들의 본질적인 폭력성이 해결되지 않는한, 테러는 항상 일어날 수 있다. 더구나 극단주의적 이슬람 교도들이 (또는 극단적인 기독교, 유대교, 불교 등등의 신봉자들) 테러리스트가 될 확률이 높다고 주장하기 전에, 이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 또는 정신 상태, 가족과 친구들의 관계 등등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테러리스트들을 행동화시키는 여러 가지 요인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전쟁의 역사는 항상 거대 담론으로 기록되어 왔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은 알지만, 왜 일어났는지, 누가 전쟁을 결정했는지, 병사들은 어떻게 조달되었는지, 병사들의 가족들은 어떻게 전쟁을 견디었는지, 일반 사람들은 전쟁을 어떻게 버텼는지, 전쟁이 끝난 후에 병사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와 기억들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평화 담론도 전쟁 담론과 마찬가지로 거대 담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평화 담론이 전쟁이나 전쟁 가능성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란 암묵적 전재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군사전략, 군대 재배치, 전쟁 무기와 국경 안보 등등이 평화와 안전을 위한다는 정치 담론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일 것이다. 시민 평화 운동권에서 들리는 언어들도 대부분, “전쟁없는 세상을 만들자,” “군비 감축하자,” “군대 축소하자,” “군사시설을 줄여라,” “주한미군 감축” 등등 군사화되어 있다. 평화에 대한 논의, 언어가 군사화가 되어 버리면, 평화를 위한 정치적 결정들이 일반 시민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여기서 발생하는 윤리적 딜레마는 평화를 위한다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고, 희생양이 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즉 전쟁의 피해자들도, 평화의 피해자들도 같은 그룹의 사람들이 되는 아이러니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결정할 때, 누구를 위한 전쟁이며, 누가 이익을 얻게되고, (또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전쟁이 사회 구성원들 (또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화 정책과 평화 담론 또한 비슷한 방식의 분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평화 유지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군사정책에는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은 ‘전쟁 담론에서 자유로운 평화는 어떠한 평화일까’이다. 어떻게 전쟁과 군사화에서 자유로운 평화 담론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음을 스스로 깨달으면서, 부활한 예수께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너희에게 주겠다”라고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란 단순히 개인의 믿음과 영성 차원에 머무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관상 기도와 묵상, 통성 기도 등등의 영성 훈련을 통해 얻게 되는 깨달음과 기쁨, 평안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종교체험은 중요하다. 그러나 도로테 죌레 (Dorothee Soelle)가 기독교 신비주의의 연구를 통해 주장하는 것처럼, 기독교 영성가들은 깨달음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고,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를 제대로 보고 맞서고,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화를 화로 다스리고 악을 악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다스려 평화로운 인간 관계, 사회 관계를 체화하려고 하였다 (Silent Cry, 2003). 즉 인간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라, 셀 수 없는 수많은 관계 속에 사는 존재이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관계의 회복이야 말로 우리의 영성이 향하는 방향인 것이다. 소중히 여기는 관계가 깨어질 때 겪는 상실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큼 감정적 고통이 크다. ‘나’의 고통에서 벗어나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 보이지 않는 세상의 관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영성 훈련을 통해 연마된다. 그런데, 이 관계성과 영적 훈련으로써의 자기 성찰은 ‘일상’을 배제하고는 생각할 수 없다.

  
          몇 해전 경기도 평택의 햇살사회복지원을 방문해서, 우순덕 원장님께 평화에 대해 정의해 달라고 부탁드린 적이 있다. 햇살사회복지원은 평택 기지촌에서 양공주라 손가락질 받으며 일생을 보내신 할머니들이 세상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쉼터도 제공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식사도 제공하고, 힐링 프로그램도 제공하는 작은 공동체이다. 원장님이 말씀하신 평화에는 미사일도, 군대도, 한미 관계도, 국경 봉쇄도 없었다. “할머니 한분 한분이 진정한 인간으로써 존중받는 것, 따뜻한 밥 한끼를 매일 드실 수 있는 것, 죽을 때 혼자 죽지 않는 것이 평화입니다.” 십년도 더 지난 예전에 뉴욕 무지개 집을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무지개 집은 국제결혼 여성들의 쉼터로 출발한 공동체인데, 이 여성들의 대부분이 미군과 결혼하여 한국을 떠난 기지촌 출신 여성들이다. 문화적 차이, 경제적 어려움, 언어 장벽, 가정 폭력, 미군 남편의 외상 후 스테레스성 장애 등으로 인하여, 많은 여성들이 미군 출신 남편과 이혼하거나 버림을 받고, 다시 성매매를 하거나 걔 중에는 홈리스로 전락하기도 한다. 무지개 집에서 만난 한 여성은, 마약에 중독되어 살다가,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무지개 집을 찾아왔다고 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사람답게 사는 법은 “남들처럼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일하고, 저녁에 집에 와서 쉬고, 친구와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평화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지극히 일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회복하는 것인데, 폭력과 전쟁으로 파괴된 일상을 되돌리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같다. 폭력은 그것을 행한 사람과 겪은 사람들, 폭력으로 가족을 잃어 버린 사람들,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 모두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 번 무너져버린 일상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처럼 멀리 존재하는 것 같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4월 16일은 세월호가 침몰하여 304명이 수장된지 2년된 날이다. 작년 세월호 1주기때,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지인이 한국에서 보내주었다. 책에 실린 세월호 유족들의 글은 소중한 가족 구성원들을, 자본주의 탐욕과 버무려진 재앙으로 잃고 난 후에, 무너진 일상, 바뀌어진 일상 속에서 겪는 고통의 기록이였다. 이 고통 속에서 유족들은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해 질문을 하고, 교회의 역할을 묻고, 사회 지도층의 책임감에 의구심을 던지며, 무엇보다 명백한 희생자들이 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회 부조리를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고 있었다. 세월호는 유족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일상에 영향을 끼쳤다. 이제 우리의 일상은 세월호 전과는 달라졌고,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월호 이전의 세월이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이전에 일어났던 여러가지 사건들을 생각해 보면, 세월호 사건은 이미 예견된 인재였는지도 모른다. 재작년 마지막으로 방문한 강정 평화 운동지에서, 평화 운동가들이 이런 의견을 나누어 주었다. 미군 기지 건설을 위해 평택 대추리를 밀어버리고 원주민들을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기지 건설과 원주민 이주 반대시위를 강압적으로 진압한 대추리 사태 (2006), 용산 재개발 과정 중 무리한 강경 진압으로 철거 반대를 주장하는 주민들을 화재로 죽게 만든 용산 화재 사태 (2009), 강압적인 강정마을 해군 기지 건설은 모두 하나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와 결탁한 군사주의, 생명보다 개발 우위의 논리, 위로 부터의 의사결정 방식, 이념으로 분리된 사회 구성원들, 그리고 이 비극적인 세가지 사건을 깊이 분석해 보면 “주한 미군”이란 연결 고리도 찾을 수 있다. 이 사건들의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일상이 무너진 시민들, 일상이 바뀐 시민들의 얼굴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사건과 이들 사건들과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방산 비리로 인하여 싸구려 무기를 지급받고, 군생활 중 사고로 죽은 젊은 군인들과, 세월호 사건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상관관계가 반드시 있다고 본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비리 뿐만 아니라, 군사문화에 기반한 사회 전반에 퍼진 위계구조, 계층과 성별 사이의 갈등 등등. 모든 억압적인 사회 문제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강정마을 평화 운동이 세월호 기억과 진실 운동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세월호 운동이 다른 종류의 평화 운동과 다르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들은 오리무중인 한국 사회에서 평화란 무엇이며, 예수의 평화는 어떻게 상상되어질 수 있을까? 우선 나는 평화란 “일상”을 지키는 행위라고 본다. 나와 내 가족만의 일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폭력과 억압에서 벗어난 “일상”을 살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또한 폭력과 전쟁, 억압으로 인하여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이 다시 일상을 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힘들어도 폭력의 역사, 거대 담론이 아닌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3월 시카고에서 Pacific Asian North Asian American Women in Theology and Ministry모임이 있었다. 이번 모임은 특별히 시카고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시안 사회 운동가들을 초청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들 중 한 명이 시카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온 통계학자 김지인님 이였다. “만약 세월호 사건이 없었다면, 저는 사회 운동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월호 모임에 동참한 후부터는 시카고 지역의 다른 사회 운동에도 연대 차원에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김지인 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월호를 직접 겪지 않았지만, 더이상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로 살기 위해서, 나의 일상을 회복하고, 세월호 유족들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유족들이 원하는 것을 지지하고, 세월호 사건과 피해자들의 이야기들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세월호 유족들과 함께 이들의 일상도 변하였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함께 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일상 중에 존재하는 평화의 씨앗을 볼 때, 우리는 예수가 이야기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의 가능성을 보게 되고, 서로의 일상을 지켜주고, 이 일상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함께 기울이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에 참여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이 평화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기억해 주는 노력일 것이다. 마포구 정신대 대책 협의회 아래층에 위치한 전쟁과 여성 박물관, 강정마을의 평화 도서관, 세월호 기억의 숲, 제주 4.3. 평화 박물관 등등. 한국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의 노력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의식적으로 찾고, 기억하고, 일상화 시키자. 우리도 다른 일상을 살 수 있다. 노란색의 일상,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의 노란색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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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의 Sex & Sexuality – "알았다, 임신했다, 낳았다"


송민원

(시카고 대학 고대근동학과 Ph.D. Candidate)


 

  5. 가나안의 Sex & Sexuality – "알았다, 임신했다, 낳았다"

  

       이제 성서의 배경이 되는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땅으로 가보겠습니다. 어릴 때 읽었던 만화로 된 성경에 사람들이 멧돼지만한 포도송이를 나무에 꿰어 들러매고 가는 장면으로 이 가나안 땅의 풍요로움이 묘사되었는데요, 그 이미지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걸 보면 현대 유전공학도 이루어내지 못한 그 비옥함의 성과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만약 이스라엘의 문화가 그러한 비옥함에 기반하여 형성되었다면,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창3:18)” 같은 표현들은 성경에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사실 이 지역을 지도에서 언뜻 보면, 이집트와 히타이트(헷),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라는 네 개의 거대한 강대국 한 가운데 있는데다 왼쪽으로는 지중해가 드넓게 펼쳐 있어서 어떻게 이런 곳에 소규모 국가들이 버텨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지도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이 이해가 됩니다. 이 넓은 지중해 해안가 중에 실제 배를 댈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남쪽으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 지대가 자리잡고 있고, 오른쪽과 위쪽은 길게 늘어진 산맥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이웃 강대국들이 이 지역에 들어올 수 있는 루트가 극히 한정적이고 그 길마저도 상당히 비좁게 되어 있습니다.

       이 지역의 “풍요” 역시 상대적인 풍요일 뿐입니다. 사막과 고산지대를 제외하고 사람이 그나마 살 수 있는 곳은 페니키아 도시국가들이 자리잡은 지중해 연안의 저지대와 이스라엘이 위치한 구릉지대 정도입니다. 이 두 지역에서나 어느 정도 강수량이 있고, 내린 비가 땅 밑으로 가라앉거나 산기슭을 따라 흘러내려가지 않아 겨우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가나안 지도]

       (이 지도에서 푸른색으로 되어 있는 곳이 사람이 살만한 곳입니다. 가나안 지역은 양옆으로 좁고 위아래로 길게 되어 있는 아주 좁은 지역에서만 생존이 가능함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경제적 비효용성과 군사지리적 어려움으로 인해 이 지역은 강대국들 틈바구니 속에서, 때로는 이집트에, 때로는 히타이트에, 때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들에 정치-군사-문화적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아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지역의 문화를 자세히 살펴보는 게 중요한 이유는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가 이 가나안 땅의 문화와 연장선 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속하지 않은 “외부자”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주장하고 있음에도, 많은 면에서 주변의 강대국들과는 다른, 가나안 문화권의 하나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증거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특히 고고학적 증거자료에 기반해 재구성한 이스라엘의 문화는 근본적으로 가나안문화입니다. 이 글의 주제인 Sexuality의 문제 역시 “범-가나안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고대 이스라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혹자는 주장할 수 있습니다, 고고학적으로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문헌적으로는, 즉 성경은 주변의 어느 문화하고도 다르다고. 기독교 변증가들의 간절한 믿음과 소망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가나안 문화의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인 우가릿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시리아 북부의 라-샴라(Ras-Shamra) 지역에서 발견된 고대 우가릿의 문헌들은 성서연구와 고대 이스라엘 문화를 재구성하는 데 있어 필수적입니다. 사실 우가릿은 청동기시대가 막을 내린 기원전 1200년 경 멸망한 국가라, 고대 이스라엘이 국가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 철기시대 초기(기원전 1000년 경)와는 200년 가량 차이가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문학, 언어적 형태에 있어서 성서와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을 보입니다.



    


[우가릿 1, 2 + 우가릿 아크로폴리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그동안 이 “범-가나안 문화”를 정의해온 단어는 “풍요(fertility)”입니다. 풍요는 곧 “다산(多産)”입니다. 농작물이나 사람이나 할 것 없이 풍성한 재생산을 기원하는 것이 이들의 종교심의 핵심이자 발로입니다. 고고학 발굴에서도 이 지역 전체에 고루 다산과 풍요의 상징들이 발견됩니다. 주로 아나트, 아쉬타르테, 아쉐라 등의 여신상으로 추정되는 이 상징물들은, 그러나 놀랍게도 고대근동의 다른 문화권과 비교해볼 때 성적인 상상력을 거의 자극하지 않습니다. 다른 지역, 다른 시대의 문화권 속에서 많이 발견되는 남근숭배사상 역시 제가 아는 한 이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여신상 1, 2]


       앞의 글에서 살펴보았지만, 20세기까지의 학자들은 이 풍요와 다산을 성전 매춘(Temple Prostitution)이나 성혼(Sacred Marriage)과 연결시켰습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대부분 고대근동문헌 자체 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헤로도투스 같은 고전문헌들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경건한” 학자들의 상상력을 지나치게 자극하여 탄생한 것입니다. 제가 볼 때 기껏해야 15금 정도 되는 메소포타미아 문화도, “정숙함”에 있어서 이 가나안 문화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여신들과 비교해봐도, 가나안의 여신들은 거의 성모 마리아 수준입니다.


[메소포타미아 여신상]

       어떻게 “풍요”와 “다산”의 문화가 이 정도 수준의 정숙함을 동시에 가질 수 있을까요? 한 문화권 속에 존재하는 이질적 개념들의 공존, 논리적 불일치는 고대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들의 풍요와 다산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가나안 문화의 핵심이 풍요와 다산인 이유는, 오히려 이 지역 사람들이 단 한번도 가난과 후세에 대한 걱정을 그쳐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번도 풍요롭지 않았던 지역, 한번도 인구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던 지역, 그 곳이 바로 가나안입니다.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이야기인 아트라하시스는 홍수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밤마다 인간들이 너무 시끄러워 신들이 잠을 잘 수 없었다고. 즉, 신들이 홍수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인구과잉 때문으로 보입니다. 문화유물론적으로 이 구절을 해석한다면, 어느 지역나 시대든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위해 어느 정도 인구증가를 억제하는 장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정착문화-도시체제는 꾸준한 인구증가를 양산했고, 어느 순간 더이상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는 순간에 다다랐습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천재지변에 의한 인간청소라는 것이죠.


[아트라하시스]


       성서가 그리는 홍수이야기는 이것과 전혀 다릅니다. 인간의 “악함”(창 6:5) 때문이죠. 이 “악함”의 내용이 무엇인지 성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주지 않습니다만 인구과잉 때문은 아닌 듯 보입니다.[각주:1] 오히려 성서는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끊임없이 가르칩니다. 사라 이야기, 한나 이야기, 다말과 룻 등, 다른 고대근동문헌에 비해 성경은 놀랍게도 여성들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넘쳐나는데요, 그 대부분이 아이 낳기의 어려움에 대한 것들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역시 자손에 대한 것이었죠.

       우가릿에서 발견된 문헌들 중 3대 서사시로 불리는 것이 바로 “바알신화(Baal Cycle)”, “아카트(Aqhat) 이야기”, 그리고 “키르투/키르타(Kirtu/Kirta) 이야기”입니다. “우가릿의 욥”이라고도 불리는 키르투는 이야기 초반에 일곱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잃고서 신 일루(’ilu = 성서의 “엘”)에게 후손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아카트 이야기”의 주인공은 “단일(Dan’il = 성서의 다니엘)”인데, 그 역시 자식이 없음을 한탄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렇듯 이 가나안 지역은 힘들게 땀흘려 일을 하지 않고는 삶을 버텨내기가 힘든 지역이었고, 대를 잇기 위해서는 시동생이든 시아버지든 가릴 처지가 못 되는 곳이었습니다. 후처를 들여서든 이방인 며느리를 친척에게 재가시키든, 자손을 낳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게 용서되는 것이 “성서적 윤리관”입니다. 이런 윤리관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 땅의 척박함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가나안 문화의 풍요와 다산에 대한 집착은 바로 그것이 결여되어 있는 현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척박한 문화권 속에서 “성”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습니다. 자손번식의 수단이라는 한 가지 기능만을 수행합니다. 따라서 자손번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모든 성행위는 “죄악”이 됩니다.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피임은 수간이나 동성관계와 마찬가지로 죄악입니다. 생리기간의 여성에게 성서가 “불결”이라는 라벨을 붙인 이유 역시, 가임기간이 아닌 여성과의 성행위로 자손을 번식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풍요와 다산과 금욕이 서로 연결됩니다. 성경을 비롯한 가나안지역 문헌들은 성행위나 사랑의 감정을 묘사하는 데 극도의 자제력을 보여줍니다. 성서의 “알았다-임신했다-낳았다”, 혹은 “누웠다-임신했다-낳았다”는 극히 간결한 삼단논법 이상을 가나안 문헌에서 발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읽은 문헌들 중 그나마 가장 “야한” 장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두 여자는 일루(엘)의 아내가 된다 / 일루의 아내, 영원히 그의 것(이 된다) 

그는 몸을 숙여 그들의 입술에 입맞춤한다 / 그들의 달콤한 입술, 석류 같이 달콤한 

그가 키스했을 때 그들은 임신했다(직역: 임신이 발생했다) / 그가 안았을 때 정열(뜨거움)이 있었다 

그들은 쭈그려 앉아 샤하르(새벽)와 샬림(황혼)을 낳았다 

(KTU 1.23, rear 47-55)



[KTU 1.23] 


       이 장면도 사실 우가릿 원문으로 보면 “키스했다-임신했다-낳았다”에서 단어만 몇 개 더 추가한 수준에 불과합니다.


       오늘 살펴본 가나안은 거대한 남근상들과 다양한 체위의 묘사들이 특징이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와는 전혀 다릅니다. 다른 지역과 비슷하게 “풍요와 다산”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정숙과 금욕”의 문화가 탄생한 것은 “젖과 꿀이 흐르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나안 땅의 척박함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수성 하에서만 성서의 성윤리가 이해될 수 있습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인구가 한 곳에 밀집하는 것의 위험함에 대한 이야기는 홍수사건(창 6-9장)이 아니라 바벨탑사건(창 11장)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성서가 이 사건이 일어난 지역을 예루살렘 근처로 보지 않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그려낸 것은 상당히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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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신학(社會神學) 탐구 2]



사회적 고통 이론의 지형(1)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총체성 : 신에서 사회로


    지난 글의 서두에서 ‘총체성’(totality)의 개념을 매개로 하여 신과 사회를 개념적으로 동일시하는 뒤르케임의 논의를 소개한 바 있다. 특히 사회가 “우리의 주관적 의지나 인식으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적 차원의 발현적 속성”, 즉 ‘외재성’을 갖고 있으며, 또한 “우리의 개별 행위를 제약하는 규범적 차원”, 즉 ‘강제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사실상 뒤르케임은 사회를 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과거 신이 누렸던 총체성의 지위가 이제 사회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신성한 실재는 사회라 불리는 바로 그것이라고 하는 뒤르케임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사회는 사회학의 탐구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신학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사회신학’의 기본 전제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총체성에 관한 사유는 구체적 사건이나 사물들을 존재하게 만드는 궁극적 원인에 대한 관심, 또는 ‘부분의 합 이상’으로서 개별자를 포괄하는 동시에 우선하는 전체에 대한 관심을 반영해왔다. 다만, 근대 이전에는 그러한 총체성에 관한 사유가 신을 중심에 놓고 이루어졌다면, 근대 이후에는 사회나 사회적 체계를 그 중심에 놓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변화이다. 물론 앞선 글에서도 밝혔듯이, ‘사회신학’의 기획은 신의 자리를 대체하고 등장한 새로운 총체성으로서의 ‘사회’를 존재론이나 인식론의 차원에서 곧바로 신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관통하는 핵심적 주제인 ‘고통’의 문제와 연관시켜 그 신학적 함의를 탐구하는 방식을 지향한다.

    신학적 사유체계 안에서 신정론은 신론이나 구원론에 선행하는 보다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문제의식, 즉 “왜 죄 없는 이들이 이토록 지독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러한 질문은 필연적으로 “전능한 존재인 신이 정말로 선하고 정의로운 존재라면, 어째서 그는 이런 참혹한 고통의 발생을 허용한 것인가?” 그리고 “왜 그는 그러한 고통 속에서 구원을 부르짖는 인간의 외침에 응답하지 않는가?”라는 신의 능력과 그 성격, 더 나아가 신의 존재와 그 정당성에 관한 물음으로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고통의 원인과 이유, 그 의미 등을 본격적으로 구명하는 과정에서 신정론적 문제의식은 결국 신학의 울타리를 넘어가 버리게 되는데, ‘사회정론’(sociodicy)이라 불리는 해석틀이 그러한 신정론의 세속적 판본으로 새롭게 출현했다. 사회정론이란 말 그대로 사회학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신정론이다. 브라이언 터너와 같은 사회학자는 아예 사회적 신정론을 사회문제에 관한 사회학적 탐구의 중심에 위치시킨다.


   사회적 삶에서의 고통과 죽음, 사고와 불운, 불평등과 부정의에 직면하는 모든 사회학은 필연적으로 신정론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 인간 가운데 불평등의 기원과 원인에 관해 질문을 제기하고자 시도하는 모든 사회학 안에 사회적 신정론의 문제가 현존한다.[각주:1]


   사회정론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현대의 사회적 고통 이론은 개인들이 경험하는 고통의 사례들이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언어적으로 매개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우발적인 개인의 성향이나 인격적 결함, 또는 불운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오히려 사회적 고통 이론에서는 인간의 고통이 발생하는 원인을 일반적인 사회적 관계들 및 사회적 구조에서부터 찾는다. 사회적 고통 이론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고통은 사회적 삶의 주변부에서 나타나는 사소한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잘 작동하던 사회적 체계가 어쩌다 가끔 잘못 기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수적 피해나 역기능의 효과도 아니다. 차라리 수많은 사회적 고통의 사례들은 사회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배제시킬 수밖에 없는 사회의 외부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자기동일성 구축에 필수적인 존재조건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고통은 사회에 대하여 일종의 ‘구성적 외부’(constitutive outside)의 위상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고통의 경험을 삶의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의 총체적 과정 전반과 연관시켜 다루는 것이 사회적 고통 이론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따라서 사회적 고통 이론이 다루는 구체적인 쟁점들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이론적으로 사회의 구성 원리와 고통의 발생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사회 개념 그 자체를 중심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는 아도르노의 사회학은 사회를 부정적 총체성의 관점에서 다룸으로써 사회의 구성원들이 교환관계의 폭력 속에서 겪는 고통의 문제를 ‘사회의 객관적 운동 법칙’과 연관시켜 탐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에 사회신학에서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총체적으로 사회화된 사회


    뒤르케임을 좇아 사회를 총체성의 관점에서 접근한 대표적인 현대의 사회학자가 바로 아도르노(Theodor W. Adorno)이다. 아도르노는 일반적으로 철학자, 미학자, 음악이론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프랑크푸르트학파(또는 ‘비판이론’) 1세대를 대표하는 사회학자, 정확히는 비판적 사회 이론의 주창자이기도 했다.[각주:2] 우리의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학 비판자’ 아도르노에게 모든 현상은 전체적 연관을 위한 자신의 기능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회는 총체성으로서 분석될 수 있는 하나의 체계로 파악되었다는 사실이다.[각주:3] 그에 따르면, 사회에 대한 비판이론의 구상은 “총체성으로서의 사회에 관한 개념과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각주:4] 아도르노는 자신의 사회 개념을 본격적으로 설명하기 전에 반복해서 사회의 총체적 성격을 역설한다.


    “인간의 지력, 인간의 사고에 의해, 또한 이와 동시에 사회에 의해 매개되어 있지 않은 것은 태양 아래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인간의 지력이 항상 개별적인 인간 존재에 함께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지력, 인간의 사회에 인간이라는 종(種)의 전체적인 역사가 들어 있고 더 나아가 말해도 된다면 사회 전체가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각주:5]


    “하늘과 땅 사이에, 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중에서 사회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사회와 겉으로 보기에 극단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는 것인 자연과 자연 개념도 자연지배의 필요성과 이와 결합된 사회적 필요성과 본질적으로 매개되어 있습니다. 사회에 의한 이러한 매개는, 사회학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회학적 관점들에서 다루게 하는 것을 포괄하게 됩니다.”[각주:6]


    요컨대, 사회는 그것이 없이는 사회학이 아무 것도 탐구할 수 없다는 그런 의미에서 사회학의 중심 개념이다. 사회 개념은 단순히 분류상의 개념이 아니며, 모든 하위의 사회적 형식들이 그 아래에 정렬될 수 있는 사회학의 최상위 등급도 아니다. 아도르노가 “하늘과 땅 사이에, 사회적으로 매개되지 않은 것이 없다”고 주장할 때, 이는 총체성으로서의 사회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사회적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아도르노는 어떤 이유에서 사회가 하나의 총체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그에게 총체성으로서의 사회, 또는 사회적 총체성은 각각의 고유한 욕구를 갖는 개별자들이 형성하는 기능적 연관관계를 통해서 파악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아도르노는 사회를 개별 인간의 총합, 또는 사회의 각 부분들의 합을 기술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를 과정으로서 파악하며 기능의 연관관계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도르노가 말하는 사회란 그 사회 안에서 각각의 기능을 떠맡은 모든 사람이 서로 의존되어 있는 동시에 그 각각의 기능들에 의해 모든 구성원들이 총체적으로 매개되어 이루어진 전체(das Ganze)에 다름 아니며[각주:7], 바로 이와 같이 사회를 기능적 연관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사회를 총체성으로 파악하는 출발점이 된다.


    “사회는 지난날 자유주의가 생각했던 바와 마찬가지로 총체적 기능연관으로 되었다. 말하자면 존재하는 것은 타자(Anderes)에 대해 상대적인 것이며, 즉자로서는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또는 주체가 실체성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의식 때문에, 사람들은 그 실체성과 아무 구분 없이 동일시되는 ‘존재’가 틀림없이 기능연관보다 더 오래 남으리라는 단언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각주:8]

  

   “사회 개념에 의해 의도된 대상 그 자체는 합리적으로 지속적이진 않다. 사회 개념에 의해 의도된 대상은 또한 보편 대 특수로서 사회 대 그 구성요소도 아니다. 그것은 역동적인 범주일 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범주이다. 그리고 여전히 꽤 추상적인 근사치인 이 처음 것에, 모든 개별자들이 그들을 형성한 그 총체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좀 더 나아간 조건을 붙여보자. 그러한 총체성에서 또한 모든 이들이 다른 모든 이들을 의존한다. 전체는 그 구성원들에 의해 충족된 기능들의 통일성을 통해서만 유지된다. 각 개인이 그 실존을 지속하기 위해선 모두 예외 없이 어떤 기능을 하나씩 떠맡아야만 하며, 실제로 그 기능을 지속하는 동안 이에 대해 감사를 표하도록 교육받는다.”[각주:9]  


    아도르노가 이렇게 사회 개념을 기능적 연관관계의 관점에서 제시하자 즉각적으로 그의 사회 개념이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평범한 주장의 반복일 뿐이라는 비난이 제기되었다.[각주:10] 이에 아도르노는 자신이 견지하는 사회적 총체성의 형식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사회를 기능의 연관관계로 보는 결정적 근거로 아도르노는 ‘교환원리’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를 기능적 연관관계로 만드는 핵심적인 메커니즘이 바로 자본주의적 교환원리(Tauschprinzip) 또는 교환관계(Tauschverhältnis)이다. 쉽게 말해서, 교환원리/교환관계는 각기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즉 서로 동일하지 않은 모든 것을 교환이 가능한 대체물로 만들면서 결국엔 동일한 것으로 관리해나가는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아도르노의 사회 개념은 단순히 사회 일반이 아니라 현대의 ‘자본주의적 교환사회’를 지시한다는 점이 다시 한 번 명확히 드러난다. 


    “사회, 조직화된 사회는 사회적으로 조직된 인간 사이의 기능적 연관관계일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의 존재로서, 교환에 의해 규정되는 연관관계입니다. 사회를 원래부터 사회적으로 만드는 것은 교환관계입니다. 교환관계를 통해서 사회는 사회에 특별한 의미에서 개념적으로 기초가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실재적으로도 기초가 만들어집니다. 교환관계는 사회의 개념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을 잠재적으로 결합시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조금은 조심스럽게 표현한다면, 교환관계는 확실한 의미에서 자본주의적 사회들에 뒤이어 나타날 사회들의 전제조건까지도 표현합니다. 더 이상 교환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논의는 자본주의적 사회들에 뒤이어 나타날 사회들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임이 확실합니다.”[각주:11] 


    “사회적 분화의 모든 특수한 형태들 이상으로, 시장 체계에 함축된 교환원리의 추상화는 특수한 것에 대한 일반적인 것의 지배, 그것에 포획된 구성원들에 대한 사회의 지배를 재현한다. 환원의 실행계획, 노동 시간의 획일성의 실행 계획으로 제시될 수 있는 교환관계는 사회적으로 중립적인 현상이 결코 아니다. 인간을 교환가치의 대리자, 담지자로 환원시키는 그 배후에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숨겨져 있다. 때때로 수많은 정치경제학 비판의 범주들이 직면했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여전히 기본적인 사실로 남아 있다. 총체적 연관관계의 형식은, 만일 그들이 파괴되고 싶지 않다면, ‘이윤추구’가 그들의 주관적인 동기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교환법칙을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각주:12]  


    사회적 총체성에 관한 사유는 “그 어떤 주어진 대상의 영역들 내부에 들어 있는 사회적인 모멘트들에 관한 성찰”, 즉 교환사회가 개별적 현상들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관한 성찰을 기반으로 한다. 교환원리의 철학적 전제는 동일성 원칙이다. 바꿔 말하면, 모든 교환관계는 곧 동일성 원칙을 구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교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우선 교환에 참여하고 있는 서로 다른 사물들이 어떻게든 동질적이거나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적 교환관계에 동일성 원칙이 적용됨으로써, 동일하지 않은 모든 것들이 동일한 것으로, 즉 교환이 가능한 ‘상품’으로 변화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러한 동일시는 다양한 실재의 대상을 가리키는 ‘사용가치’를 억압하고, 모든 종류의 다양한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를 하나의 동일한 개념에 포섭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동일성의 교환원리를 통해서 모든 사회적 관계가 교환관계로 구성되어 있는 자본주의적 상품교환 사회는 비동일한 대상인 사용가치를 동일한 관념, 즉 가치로서의 상품의 동일성이라는 교환가치 아래로 포섭하고 있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아도르노의 말대로, “인간의 노동을 평균 노동시간이란 추상적 보편개념으로 환원시키는 교환원칙은 동일시의 원칙과 근본적으로 유사하다. 동일시의 원칙은 교환이라는 사회적 모델을 가지고 있으며, 또 동일시의 원칙 없이는 교환도 있을 수 없다. 교환을 통해서 비동일적 개별 존재나 업적들이 통분될 수 있고 동일해진다. 이러한 원칙이 확장되면 전 세계가 동일자로, 총체성으로 된다.”[각주:13]  

    따라서 개별 인간도 교환관계에 의해 총체적으로 관리되면서 전체로서 작동하는 사회에서 하나의 기능을―개별 인간 자신이 자신과 동일하지 않은 것과 교환되면서―떠맡게 된다는 것이 교환원리에 의해 작동되는 기능적 연관관계의 기본 형식이자 사회적 총체성의 본질적인 형식이라 할 수 있다.[각주:14] 단적으로 말해서, 자본주의적 교환원리/교환관계가 사회적 총체성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매개함으로써, 다시 말해 모든 개인을 타인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교환원리를 통해 어떤 개인이나 대상도 교환관계의 외부에 거할 수 없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총체적으로 통합된 사회로 작동한다. 


부정적 총체성에서 사회적 고통으로


    이렇게 하여 아도르노가 말하는 총체성으로서의 사회란 모든 사회적 관계가 교환법칙에 따라 매개되고 작동하는 사회를 지시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아도르노에게 후기 자본주의사회는 교환원리가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사회, 즉 교환관계가 “총체적으로 사회화된 사회”[각주:15]에 다름 아닌 것이다. 요컨대, 총체성에 위치하지 않는 사회적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던 아도르노에게 총체성이란 당연히 신이 아니라 기능과 생성의 과정으로서 파악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현존하는 사회적 총체성의 본질은 교환원리를 전면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객관적 운동 법칙’에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아도르노에게 총체성이란 곧 사회의 총체성이다. 그런데 이때 다시 총체성으로서의 사회는 사회적 관계에 동일성 원칙을 폭력적으로 강제하는 교환원리/교환관계에 바탕을 둔 기능적 연관관계로 설명된다. 

   나아가 이렇게 교환원리에 의해 동일성의 폭력이 관철될 때 나타나는 결과를 아도르노는 ‘물화’(物化, Verdinglichung)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마르크스의 소외 및 물신숭배 개념에 그 연원을 두고 있는 아도르노의 물화 개념에 관해선 다음 글에서 보다 상세히 살펴볼 것인데, 일단 그 개념을 통해 아도르노에게 있어 총체성이란 철저하게 부정적이고 비판적 의미에서의 사회적 총체성임이 드러나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도르노에게 물화는 역사에 의해 정립된, 하나의 사회적 산물로서, 반드시 사회적 총체성의 기초 위에서 설명되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아도르노는 사회의 총체성이 더 이상 연대적으로 유지되지 않고 인간의 대립주의적 이해관계들에 의해서, 인간의 철저한 대립에 의해서 유지된다는 점을 명확히 지적한다. 사회는 총체성이되 계급에 의한 적대적 사회관계가 그 중심을 관통하고 있는 모순적인 총체성이라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총체성 개념의 재규정은 사회 개념의 재규정을 수반한다. 그리하여 이제 사회 역시 “모순들로 충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 가능한 것이며, 합리적인 동시에 비합리적인 것, 체계인 동시에 파편화된 것, 맹목적인 자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에 의해 매개된 것”[각주:16]으로 다시 설명된다. 아도르노는 사회를 단순히 어떤 구조 내지는 제도로 실체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는 그 내부로부터 인식될 수 있는 것이자, 인식될 수 없는 것 둘 다라고 주장한다.[각주:17] 사회의 모순적 속성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사회’를 중의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만일 사회가 담론의 유효한 대상으로 실체화될 수 없다면, 사회에 대한 비판은 어떻게 가능할까? 실체화될 수 없는 대상인 사회를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비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관한, 아도르노의 답변은 바로 무력한 개인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통합적 사회 또는 총체화된 사회에 관한 비판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각주:18]  

    아도르노에 따르면, 고통은 어떤 집단적 규범이 이해관계들 및 개인들의 요구와 충돌한다는 사회적 사실을 표현한다. 그러한 경험들은 육체적이고 개별적이지만, 신체적인 것(the somatic)의 계기를 통해 사회에 관한 인식을 추동할 수 있다.[각주:19] 말하자면, 아도르노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행위자들로서 존재하는 인간들과 그 본질이 객관적 운동 법칙으로서만 파악되는 총체성으로서의 사회, 그 둘을 고통이라 불리는 특수한 사회적인 사실을 통해 매개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고통(Leiden)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모든 진리의 조건이다. 왜냐하면 고통이란 주체를 짓누르는 객관성이기 때문이다. 주체의 가장 주관적인 경험, 즉 주체의 표현이 객관적으로 전달된다.”[각주:20]라고 아도르노가 썼을 때, 그는 이론이 우리의 사회적 경험을 만족시키는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이론이 또한 고통에 관한 적절한 지식을 구축하도록 시도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다음에는 사회를 부정적이고 모순적인 총체성으로 파악하는 아도르노의 사회학에서 신체적 고통의 주제가 갖는 중요성을 살펴보고, 그의 고통에 관한 사유가 어떻게 현실의 모든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고통들을 ‘사회적 고통’ 또는 ‘고통의 총체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도록 사회신학의 이론적 실마리를 제공하는지 검토할 것이다. 나아가 호네트(Axel Honneth), 번스타인(J. M. Bernstein), 르노(Emmanuel Renault)와 같이 사회철학 및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고통에 관한 아도르노의 논의를 주목해온 학자들의 작업을 살펴보면서 동시대 사회적 고통 이론의 주요 쟁점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 웹진 <제3시대>

  1. Bryan S. Turner, For Weber: Essays on the Sociology of Fate. London: Sage, 1996, pp.170~71. [본문으로]
  2. 본펠트는 독일 학계의 ‘마르크스에 대한 새로운 독해’(Neue Marx-Lektüre)의 맥락에서 아도르노의 사회학 비판 내지는 비판적 사회 이론의 기획을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비판이론적 계승으로 해석한다. Werner Bonefeld, Critical Theory and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On Subversion and Negative Reason, London: Bloomsbury, 2014; 한편, 아도르노의 사회학 저술 전반에 관한 체계적인 분석으로는, Matthias Benzer, The Sociology of Theodor Adorno, Cambridge,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을 참조할 수 있다. [본문으로]
  3. 하르트무트 로사 외, 『사회학 이론』, 최영돈 외 공역, 한울, 2016, 149쪽. [본문으로]
  4. 테오도르 W. 아도르노, 『사회학 강의』, 세창출판사, 2014, 74쪽. 삶의 모든 영역이 자본주의적 교환원리에 의해 조건지어진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부정적 총체성으로 파악하는 관점은 마르크스주의 전통 가운데서도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에 관해서는, Martin Jay, Marxism and Totality,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4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5. 아도르노, 『사회학 강의』, 36~7쪽. [본문으로]
  6. 같은 책, 143~44쪽. [본문으로]
  7. 문병호, 「옮긴이 후기」, 아도르노, 『사회학 강의』, 363쪽. [본문으로]
  8. 아도르노, 『부정변증법』, 홍승용 옮김, 한길사, 2003, 128쪽. [본문으로]
  9. Theodor W. Adorno, “Society,” trans. F. Jameson, Salmagundi, no.10-11(Fall 1969-70), pp.144~45. [본문으로]
  10. 아도르노, 『사회학 강의』, 71쪽. [본문으로]
  11. 같은 책, 71쪽. [본문으로]
  12. Adorno, “Society,” pp.148~49. [본문으로]
  13. 아도르노, 『부정변증법』, 222쪽. [본문으로]
  14. 문병호, 「옮긴이 후기」, 363쪽. [본문으로]
  15. 아도르노, 『부정변증법』, 413쪽. [본문으로]
  16. Adorno, “On the Logic of the Social Sciences,” in The Positivist Dispute in German Sociology, ed. T. W. Adorno et al. London: Heinemann, 1976, p.106. [본문으로]
  17. Adorno, “Society,” p.146. [본문으로]
  18. Ibid., p.153. [본문으로]
  19. “육체적 계기는 인식을 향해 고통이 없어져야 하고 상황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픔은 ‘사라지라’는 말을 한다. 그래서 특유의 유물론적 요인은 비판적 요소 내지는 사회적인 변혁적 실천으로 수렴된다. 불행을 제거하거나 완화하는 일은, 이론적으로 선취될 수도 없고 어떤 한계를 명할 수도 없는 일정한 정도까지, 그 불행을 느끼는 개인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이 주관적으로는 인류와 분리되고 객관적으로는 무기력한 객체의 절대적 고독 속으로 밀려나게 되는 경우에도 인류의 몫일뿐이다.” 아도르노, 『부정변증법』, 286~87쪽. [본문으로]
  20. 같은 책, 73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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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을 지지하는 '현실감각'



 

백승덕*


 

         이번 총선 출구조사 발표가 났을 때 ‘기타 정당’이 비례대표 2석 정도를 받을 수 있을 거란 기사를 보고 반가웠다. 녹색당이 드디어 원내진입을 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기타 정당’이 기독자유당이란 소식을 접하면서 기대가 경악으로 바뀌었다. 별다른 공약도 없이 ‘반동성애, 반이슬람, 간통죄 부활’을 내세우는 정당에 투표한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을 줄 몰랐다.  

          총선개표를 하는 동안 기독자유당 당사에서 당원들이 통성기도를 하던 장면은 두고두고 잊혀 지지 않을 것 같다. 정당득표율이 원내 진입을 위한 3%에 조금 못 미치는 2.7%에 머무르자 0.3%를 더 달라는 듯이 목소리 높여서 기도하는 정당을 보게 되다니. 2008년 총선 때도 통일교에서 당시 한나라당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전국 선거구에 빠짐없이 후보를 냈던 정당을 내놓았던 적이 있긴 했다. 기독자유당도 선거에 나왔다가 사라지는, 그렇고 그런 정당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아깝게(?) 원내진입에 실패했다. 기독자유당 세력과 교단이 달랐던 기독당이 표를 갈라서 망정이지, 자칫하면 한국판 도널드 트럼프들이 국회에 들어갈 뻔했다.  

         비례대표 2석을 챙길 뻔했던 ‘기타 정당’이 다름 아닌 기독자유당이었단 사실이 알려지자 주위에선 진보정당들에게 반성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타났다. 특히 녹색당이나 노동당처럼 1% 득표도 하지 못한 정당 지지자들의 ‘현실감각’이 공격 대상이었다. 과학적이지 않다는 지적부터 더불어민주당에 들어가서 블록을 만드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라는 주문까지 비판은 다양했다.

         녹색당 지지자로서, 이러한 비판은 곧 나의 ‘현실감각’을 돌아보라는 경고로 느껴진다. 비례대표 정당 득표율이 0.7%인 정당을 지지한 정치인식이니 100점 만점에 0.7점짜리인 셈인가? 그러나 나는 다시 찍는대도 녹색당이다. 거기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힘! 힘! 힘!’만 이야기했던 총선


         사실, 이번 총선에서 기독자유당이 국회의원을 내지는 못했지만 총선 기간 중에 ‘기독자유당스러운’ 분위기는 이미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공식 선거기간이 시작도 되기 전부터 이런 경향이 보였다. 지난 2월 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이 개신교 기도회에 나가서 ‘동성애와 이슬람에 대한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라고 입을 모았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 자리에서 박영선 의원은 “동성애는 하나님의 섭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말하며 성소수자들을 공개적으로 모욕했다. 그 정도로 노골적이진 않았지만 같은 당의 표창원, 진선미 후보 역시 개신교 극우세력이 공격을 해오자 “동성애 확산엔 반대한다”거나 “동성애를 권장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대응을 했다. 동성애를 전염병처럼 취급했다는 점에서, 개신교 극우세력의 거센 비난공세에 맞춰서 정치력을 발휘했다고 보기가 곤란할 만큼 모욕적인 발언들이었다.

         선거가 진행되면서 이렇듯 혐오발언이 켜켜이 쌓여가니 기독자유당이 굳이 국회의원을 내지 않아도 될 법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국회에 나오기도 전에 사망선고부터 받은 셈이다. 이 정도 수준의 차별과 혐오가 우리 사회의 평균값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현실 감각’이라면 그런 감각은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현실을 상수처럼 마냥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다.

         나는 병역거부자이다보니 성소수자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겪은 고립감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남북한이 그 어느 때보다 날이 서서 대치하고 있던 와중에 열렸던 선거였던 만큼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의 거대 정당들이 ‘안보는 보수’라는 입장에선 매한가지였다. 야당들의 경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그 전제는 굳건한 한미동맹이나 자주국방처럼 강력한 힘이었다. 힘에 기초해서 강력한 대북제재를 밀어붙이겠다는 점에선 3당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모양새다. 2007년 말 노무현 정부가 발표했던 대체복무제와 같은 계획은 아예 설 자리를 잃었다.

         이처럼 선거가 온통 ‘힘! 힘! 힘!’으로 돌아가다 보니 성소수자나 병역거부자처럼 ‘약한 자’들은 모욕당하고 배제당하더라도 조용히 있기를 요구받았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원외 진보정당 지지자들에게 현실감각이 없다고 비판하던 목소리가 바로 그러한 요구의 민낯이다.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든지, 어떤 말들이 오가든지 간에, 그들의 관점에선 힘없는 약한 것들이 대세를 조용히 따랐어야 했다. 마치 전투 중엔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허락되지 않듯이 말이다.


전 지구적으로 움직이는 권력, 일국에 갇힌 대의제 정치


          이번 선거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약함에 대한 혐오가 두드러졌다. 김종인 대표의 컷오프나 안철수의 독자행보가 강단 있는 결단으로 주목 받을수록 정치에서 힘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더욱 커졌다. 역설적이게도 그 힘의 방향은 너무도 모호했다. 4년 전 선거 때는 그래도 경제민주화 같은 정책철학이 공감을 얻었지만 이번 선거에는 뚜렷한 공약도 없이 너나없이 자신이 배신을 당했다며 상대를 심판하겠다고 나섰을 뿐이다. 야권연대 같은 것 고려하지 않고 잘라낼 것은 확실히 잘라내면서 어떻게든 이긴다는 식의 생존주의가 이번 선거의 유일한 대의였다. 무엇을 잘라내겠다는 것인지 어떤 가치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이 천하삼분지계 같은 잔꾀만 넘쳐났다. 

         이처럼 공허하게 세력 과시만 했던 까닭은 역설적으로 대의제가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국회에서 원내 다수당을 차지한다고 해도 국민국가 단위 안에서 할 수 있을 일에는 한계가 커서 그저 자신들끼리 밥그릇 싸움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다수당이 되었다고 하자.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얼마나 밀어붙일 수 있었을까? 법인세를 올려서 복지 예산을 늘리겠다고 하면 이미 초국적기업이 된 삼성과 현대 같은 재벌들은 회사를 해외로 이전하겠다며 협박하기 시작할 것이다. 당장 한진중공업만 해도 부산의 영도조선소를 대신해서 노동력이 훨씬 싼 필리핀의 수빅조선소로 일감을 몰아주려고 하지 않았나. 자본의 활동반경은 전지구적인데 비해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해 만들 수 있는 법안의 영향력은 국가 단위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가 역력하다.

         자본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힘은 또한 어떠한가? 한쪽에는 미국이 전세계적인 패권전략의 일환으로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를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한쪽에는 G2로 급부상한 중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자리를 잡고 있는 형국이다.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싸드(THAAD) 배치와 관련해서 박근혜 정부가 미중 간의 외교전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던 사건이나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던 사건처럼 일국 단위를 넘어선 패권적 권력의 결정 앞에 정부뿐만 아니라 국회 역시도 속수무책인 경우가 허다하다.

         경제적‧군사적 권력이 초국적인 범위로 움직이는 동안 대의제 정치는 아직도 일국 단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한국 국회가 보이는 무기력함은 여기에서 나온다. 자기들끼리 밥그릇 싸움을 하느라 정치를 책임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책임질 수 있을 정치에 한계가 있으니 밥그릇 싸움에만 더욱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국민들 역시 이러한 현실을 직감하고 있다. 그러니 성소수자나 병역거부자와 같은 약한 자들을 위한 정치는 차례를 기다려도 결코 오지 않는다. 일국 단위의 대의제 정치 안에서 정치는 너무도 무력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세력 과시에만 끝없이 몰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록 1%도 안 되는 득표를 얻는 데 그친 녹색당을 계속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녹색당이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을 두고 고대 아테네 같은 소국에나 어울리는 소리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일국 단위에 갇혀서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 탓에 하는 소리다. 녹색당이 염두에 두고 있는 정치의 범위는 국민국가를 넘어서 최소한 동아시아 시민사회를 아우른다. 예컨대 정의당의 경우도 동북아 외교국방경제 협의체를 상설화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 간의 외교를 정례화하겠다는 구상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녹색당의 경우는 ‘동아시아 지속가능전환 포럼’을 대표공약으로 내놓았는데, 정부 간의 외교가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시민사회 간의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초국적 권력을 견제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다른 정당들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 이러한 구상대로라면 녹색당이 정권을 잡기 전에도 동아시아 지역의 시민사회가 단단한 기반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을 방법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약한 자들이 지역적 연대를 통해서 전지구적인 권력을 견제할 수 있을 실질적인 힘을 얻을 길이 열리는 것이다.

         1%도 안 되는 득표를 얻은 정당의 구상이니만큼 현실이라는 장벽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직은 선언적인 구상들을 구현해나가기 위해선 전문가들도 많이 필요하고 세력도 어느 정도는 더 모아야 할 것이다. 얼마나 걸릴지 모를 일들이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녹색당에 대한 지지를 거둘 수가 없다. 비록 힘이 약하지만 약한 자로서 살면서 전지구적인 권력을 견제할 수 있을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내놓은 정당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의 ‘현실 감각’ 안에선 그렇다.



* 필자소개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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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카데믹하지 않아서 더욱 아카데믹한 단상

셋. <내 모든 구멍을 채워줘>




 김정원*



         아주 오랜만에 만난 영국 친구 W와의 수다가 한참이었다. 히피 부모 아래서 자란 덕분인지 W는 내가 만난 영국 사람들- 보수적이고, 지루하고, 미들 클라스에 속해있으며 sorry를 연발하는- 과는 달랐기에, 그와의 대화는 늘 즐거웠다. 우리 수다의 주제는 ‘관계’ 였는데, 그는 내게 보여줄 것이 있다 하였다. 바로 ‘관계 아나키를 위한 선언’, 원어로는 ‘The short instructional manifesto for relationship anarchy’ 였다.


Love is abundant, and every relationship is unique 

Love and respect instead of entitlement 

Find your core set of relationship values 

Heterosexism is rampant and out there, but don’t let fear lead you 

Build for the lovely unexpected 

Fake it til’ you make it 

Trust is better 

Change through communication 

Customize your commitments[각주:1]


         나는 찬찬히 읽어 내려갔고, 이 후 그와의 대화는 그 어떤 영국친구들과의 대화보다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이른바 ‘진보적인’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보면, 결혼 제도와 일부일처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새롭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LGBT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소리만큼이나 아주 지극히 ‘옳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조금은 다른 이야기들이 듣고 싶어질 때가 있다. 특히 사랑, 혹은 관계에 관해서는 말이다. 말하자면, ‘나는 사실은 진짜 사랑을 찾고 싶다’ 라던지, ‘한 사람에게 미쳐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라던지. 이런 상투적인 이야기들이 보다 새롭게 들리는 이유는 ‘왜 꼭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하는 걸까?’ ‘반드시 사랑이 동반되어야만 섹스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혹은 ‘관계 속에 있는 위계 질서를 나는 거부해’ 와 같은 이야기들을 나를 비롯 나와 직간접적으로 관계 맺고 있는 이들에게서 – 친구, 교수, 작가, 활동가, 예술가, 책 등등- 너무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거나 다행스럽거나 인데, 여하튼 목사님들은 이 진보영역에 속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날 W 역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가 말하는 것이 원나잇스탠드에 대한 것도 아니었고, 자유연애를 향한 열망은 더욱 아니었다. 그가 말한 ‘관계 아나키’는 파트너의 동의 하에 다자간의 사랑과 로맨스를 추구하는 폴리아모리(polyamory)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특히, 로맨틱한 섹스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위계와 (the Romantic Sex-Based Relationship Hierarchy )와 감정적 위계 (emotional hierarchies of relationships)에 대한 거부를 강조했다. 관계에 관한 기존의 규칙과 규범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섹스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인지라, 동성애는 물론 무성애, 종교적 이유로 섹스를 참아내는? 이들까지 거의 전 범위의 관계적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었다. 관계 아나키스트들은 규범적 관계 제도에 저항하며 관계적 자유와 평등을 매우 강조하고 있었다. 그것은 철저하게 로맨스와 로맨스가 빚어낸 많은 관계들을 부정하고 있었기에, 되레 여러 명의 파트너를 사랑하며 사는 것을 꿈꾸는 폴리아모리가 속 편하게 들렸다.

         관계에 대해 꽤 오랫동안 읽고 들으며 고민해왔던 나로서도 ‘알다가도 모르겠는’ 아이디어이지만, 여하튼 쿨하기가 그지 없다. 그런데, 이토록 ‘쿨내’나는 대화가 몹시도 지루했다. 지독하게 반사회적 이야기에 지루함을 느끼는 내 자신이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로, 너무도 지루했다. 일종의 ‘관계 혁명’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부분에 동의를 하고 있기도 했고, ‘진정한 사랑’을 겁내는 이들의 비겁한 변명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님포매니악’의 주인공 ‘조’는 제목 그대로 ‘여자 색정광’이다. 그녀의 오르가즘을 향한 변태적 집착과 사도마조히즘 등은 그녀를 사회 ‘밖에’ 머무르게 한다. 그러니까, 남편의 바깥에서, 자식새끼의 바깥에서, 일터의 바깥에서 그리고 사회화된 사랑의 바깥에서 살게 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그녀를 섹스 중독자라 칭하며, 그녀에게 치료를 요구하지만, 그녀는 ‘내 추잡한 욕정마저도 사랑한다’고 외치며 치료를 중단한다. 수백의 사람과의 섹스를 하며 그녀가 배제했던 것은 ‘사랑’ 혹은 ‘로맨스’ 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남편에게 반복해서 했던 이야기가 있다. 이 영화의 유명하고도 센슈얼한 대사인 Fill all my holes, 번역하면 내 모든 구멍을 채워줘, 되겠다.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우울증을 달고 사는 감독과, 또 님포매니악이 우울증 3부작 중 마지막 편이라 일컬어진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녀가 메우고자 했던 것은 텅 비어있던 ‘사랑 구멍’이지 않을까 한다. 이런 맥락에서 ‘에로스는 우울증을 제압한다’[각주:2]라는 한병철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뭐 이렇게 단순하고 지독히 친사회적인 비평이 있겠냐 싶겠지만, ‘조’가 찾아 헤맸던 것이 사랑 (혹은 사랑 가득한 섹스거나)이라고 밖에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 지금의 내 상태겠다. 그리고 W의 반사회적인 이야기가 지루했던 이유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조’의 섹스에 대한 집착을 육체적 쾌락을 넘어서는 무엇인가로 과장하거나 축소시킬 생각일랑은 아예 없다. 그녀의 섹스 경험담은 계속해서 사회적 제도와 개념들을 곱씹게 만들지만, 그녀가 색 자체를 열망한 것이 아닌, 어떤 영적이고 초월적, 추상적인 사랑을 추구했다고 말하며 그녀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관계 아나키’와 같은 개념들이 그녀와 같은 성소수자들 혹은 반사회적 인물(로 간주되는 사람들)에게도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을 주창하며 생긴 이념이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녀는 지독히도 사회 바깥에서 서성거렸고, 수백의 사람과의 섹스를 하며 자아(오르가즘)를 찾고자 했지만, 그녀가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던 남편을 맞닥뜨린 후 느낀 감정은 다름 아닌 ‘질투’였다. 뿐만 아니라, 남편에게 호되게 두들겨 맞은 후에도 그녀는 ‘내 모든 구멍을 채워줘’라고 말하고 만다. 결국, 질투를 느끼고 더 ‘많은 양의 관계’를 요구하는 ‘조’는 관계 아나키스트가 될 자격을 얻지 못한다. ‘조’같은 성소수자도 함께하고자 만든 혁명적인 개념일 테지만, 실은 ‘조’는 관계아나키스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W의 이야기를 그저 비아냥거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은연중에 로맨스나 사랑에 집착하는 것은 ‘진보적’이지 않은 이야기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 싫었다. 내심 진득한 관계를 맺어가는 사람들과 또는 탄탄한 사랑을 기반으로 섹스를 즐기는 사람들을 변론하고 싶었나 보다. 그가 그런 사람들을 비판했던 것이 아닌 것은 물론, 내가 그러한 관계를 족히 동의하는 바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조’같은 여자도 결국엔 질투를 느끼고, 상대로 인해 심연의 빈 구석이 채워지기를 바라고 있으며, 평행하고도 평등한 관계를 맺는 것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부족한 영어는 그저 경청을 불러왔을 뿐이다.)

         진보적인 것이 꼭 결혼 제도를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게다. 진보적인 것이 집착도 없고, 억압도 없는 관계만을 지향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 명과의 연애에 흔쾌히 동의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도리어 ‘꼭 그래야만 해’와 같은 당위가 없는 것이 진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연인에게 집착하고, 울고 매달리고, 사랑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도 진보적인 관계가 될 수 있고, 평생 한 사람하고만 죽자고 살려고 하는 것도, 결혼을 한 후에만 섹스를 한다는 의견도 다 진보적인 ‘관계맺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술에 취해 몇 시간을 울어가며 자기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는 이와 함께 있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나, 이제는 그러한 이들의 술주정이 진보적(이라 일컬어지는)인 ‘관계 아나키’와 같은 이야기 보다는 새롭고 재미있다. ‘관계 아나키 선언’에 꽤나 많은 부분을 동의하고 있지만, 질투도 해보고, 가슴 아리게 사랑 좀 해봤던 나로서는, 술주정에 손을 들어주는 바이다.. 

         글을 쓰다 보니, 토끼 같은 눈으로 ‘나는 오직 로맨스를 기다려~!’를 외치던 그 언니가 보고 싶어진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내 진보적인 친구들보다 곱절은 솔직해 보였다. 오랫동안 ‘관계’ 혹은 ‘진정한 사랑’에 냉소적이던 내 마음을 ‘호~’하고 녹여주던 외침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로맨스, 사랑, 에로스’와 같은 이야기들은 내게는 유토피아적인 것이다. 다른 이가 완전히 나를 점거해버리는 사건, 자신의 지양이자 비움[각주:3]같은 축복이 과연 나 같은 여자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지는 의아하기만 하다. 다만 희망적인 것은, ‘내 모든 구멍을 채워져’라는 대사가 사랑에 대한 찢어지는듯한 갈증으로 느껴진다는 점과, 나아가 그녀가 어서 빨리 눈이 번쩍 뜨이는 오르가즘과 사랑하는 이를 동시에 찾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유시진 대위’가 절대로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말이다. 바꿔 말하면, 쓰리섬이나 혼외정사 같은 이야기보다는 진부하기 그지 없는 사랑 혹은 관계집착적인 이야기에 다시 흥미를 가졌다는 것이다. 새 관점과 관심은 어떤 식으로든 진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지 않나 싶다. 그것이 관계 아나키스트든, 현모양처든 그 무엇이든지 간에 말이다. 부디 진보한 그곳이 오직 현모양처로만 귀결되는 곳은 아니길 바랄 뿐. 못다한 이야기를 다음 호로 미뤄두며 이상, ‘진짜 진보적인 관계’에 대한 단상을 마친다.



* 필자소개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공부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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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ttp://theanarchistlibrary.org/library/andie-nordgren-the-short-instructional-manifesto-for-relationship-anarchy#toc4 [본문으로]
  2.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p22. [본문으로]
  3. 위의 책 p2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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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시뮬라크르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동물


    동물권 (animal rights)을 지지하고 녹색당을 지지하며 동물원의 폐지를 주장하고 반려견의 엄마이자 육식을 서슴없이 일삼는 내가 카메라를 챙겨 동물원으로 향했던 그 날 하늘은 말하기도 힘들 만큼 파랬다. 

    이제는 클리셰가 되어버린 “디즈니랜드는 실제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거기 있다.”라는 보드리야르의 문장이 내 동물원 행의 최종결론이 아니길 바라면서도 표현하기조차 힘든 파란 하늘이 버스타고 가는 내내 불길했었다.  

    사회에 존재하는 일종의 이형 공간을 찍고 싶어 일주일 먼저 다녀온 과천 동물원에 비해 어린이 대공원은 규모가 작은 만큼 팬시 제품을 모아 놓은 상점처럼 예쁘장하기만 해서 원하는 이미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동물은... 동물원 동물을 어찌 쉽게 찍을 수 있을까. 육식하는 동물 애호가가 동물원에 사진 찍으러 갔으니 죄책감과 연민과 분노가 뒤섞여 허우적대기에 바빴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녀가 어렸을 적하는 관례인 ‘행복한 가족 나들이’의 짐을 벗고 혼자 하는 동물원 관람이기에 ‘가족’이라는 행복해야 만하는 코드도 떼고 ‘행복’이라는 가족의 이상도 뗀, 그 순간 불행해도 그만이고 이상을 상실해도 그만인 내 맘대로의 동물원 관람이었으니 말이다.  

    평일 이른 시간인데도 제법 유모차 부대들이 많았다. 꽃피는 계절 사람 없는 동물원을 기대한 내가 바보지, 예의 행복한 유모차 부대들 틈에서 나는 마치 시커먼 저승사자가 된 느낌이었다.  

    데려갈 날짜를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지전능하고 시크한 검은 저승사자처럼 아주 최소의 움직임과 시선으로 인간계와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저 덩치가 동물도감에서 보았던 그 코끼리라고, 저 큰 고양이가 TV에서 보았던 표범이라고 소리 지른다.  

    우리 벽 쪽 끝에서 하염없이 잠만 자는 오리지날 동물들은 ‘동물도감’처럼 실감나지 않는다. 우리 안에서 움직이더라도 일정 거리를 병리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동물들은 ‘TV 동물의 세계’에서처럼 용맹스럽지 않다.  

    당황한 부모들은 ‘보이니?’ ‘기억나니?’ ‘그게 저기 있네!’ 하면서 자꾸만, 집에서 손가락 꼭꼭 집어 가르쳐 주던 미디어 속의 동물 이미지를 상기 시키려 애를 쓴다.  

    동물원 학습은 아이들이 ‘안 보여!’ 하면 실패고 ‘어, 보여!’하면 성공이고 ‘야! 표범이다!’ 하면 대 성공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미디어’이다.   


벚꽃


    과천 대공원에서와는 달리 일주일 차이로 어린이 대공원엔 벚꽃이 난리도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뮬라크르 세상인 동물원에 새하얀 벚꽃과 연녹색 나뭇잎들이 더해지니 그냥 완벽한 무대 장치였다.  

    너무 예뻐서, 너무 고와서 쳐다보기 민망했다.   

    그리고 일찍부터 나를 불길하게 했던 그 파란 하늘이 동물원 풍경을 아예 그림으로 만들어 놓았다.  

    색종이처럼 파란 하늘에 팝콘처럼 하얀 벚꽃, 이런 비유가 저렴하다면 그냥 파란 하늘에 하얀 벚꽃이 너무나 예쁜데 왜 민망해야 했을까. 왜 즐기질 못했을까.  

    파란 하늘에 벚꽃이 겹쳐지는 혼이 빠지도록 예쁜 모습에 왜 나는 다시 저승사자가 되어 인간계와 더불어 천상계와도 거리를 두고 말았던 걸까.  

    나 역시 그 기준은 ‘미디어’다.  

    카메라로 찍어 사진이란 결과물로 보면 누구나 예뻐하는 모습은 진부한 이미지로 남는다. 그러니 한 번 더 꼬인 개념을 첨가 하던지 최소한 진부함을 상쇄할 무언가로 대중적 안목 이상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파란 하늘에 하얀 벚꽃은 내공 없는 찍사에겐 민망한 것이 된다. 



무대



    맨 눈으로 보면 황홀한 것이 카메라를 통하면 진부한 것이 되는 반전에 겁을 내어 일 년에 단 며칠 보여주는 벚꽃의 요기로움을 외면했나보다.  

    며칠 사이 꽃이 졌다. 미세먼지로 하늘도 뿌옇다. 

    하지만 내겐 민망함을 무릅쓰고 겨우 찍었던 벚꽃 사진이 두 장 남아있다. 

    다행인건가.   


    그런데 그렇게나 크고 아름다운 동물원 동물들은 어디에 있던 애들일까. 

    아이들이 본 대로 동물도감에 있던 애들일까. 

    그럼 동물도감이 오리지날인가.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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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 동안 쉼 없이 물어 날랐다. 

인공의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 

인간과 더불어. 여기가 내 집이다. 

진흙으로 바람을 막고 서까래를 올려 

허허둥실 우리집이로다.  


    


눈바람 깃을 여미고 털들도 모았다. 

새로운 생명을 부화해야 한다. 

높다란 도심 인큐베이터. 우리 집이다. 

생존과 번식의 업보 속으로 

만물은 허허로이 순환한다.  


      


그런데 사라졌다.

인간의 전망을 위해서

베이고 상처입고 무너졌다.


     


연둣빛 희망은 주저리 주저리

땅을 헤매고 있다. 


 

 


 

 

 

도홍찬 作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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