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람'을 이야기해야 한다.

 



양권석

(본 연구소 소장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아직도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대세다.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기에 사고는 빨리 처리하고 정상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 시대의 당위다. 진도 앞바다 동거차도의 산 언덕에서 맹골수도의 선체인양작업을 내려다 보며 부릅뜬 눈을 잠시도 닫지 못하는 유가족들. 바다 속에 잠긴 진실의 온전한 인양을 바라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는 딱딱하게 굳을 대로 굳어버린 시대의 가슴을 아직 열지 못하고 있다.  


    장사하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업과 시장에 보다 많은 자율과 자유를 주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일정한 생명의 파괴, 인격의 훼손은 모든 과정에서 언제나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가 보편적 동의하고 있는 인식이다. 그래서 국가와 정부도, 법과 학문도, 자신들이 사람과 생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과 기업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음을 전혀 숨기지 않는다. 이처럼 본말이 전도된 세상에서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죽어가는 가족들을 지켜 보아야 했던 옥시사태의 유가족들, 부모와 배우자와 자식을 잃고 거리에 나선 그들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생명과 인간의 훼손과 죽음을 방조하는 이 사회를 향하여 그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사람을 자원으로 상품으로 표현하는 것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여기는 시대다. 사람의 사람에 대한 생각이 그만큼 무섭게 변했다. 인격이나 생명이기 이전에 물건이나 상품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훨씬 지배적이다. 상품들이 시장에서 경쟁하듯, 사람들도 그렇게 경쟁한다. 상품에게 인격이나 생명과 같은 의미를 담지 않듯이, 경쟁하는 사람들도 인격이나 생명과 같은 의미들은 의도적으로 잊어야 한다. 상품이되고 물건이 된 사람들 사이의 경쟁, 여기가 바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빈부격차가 들어서는 곳이고, 조현병이라는 분열과, 묻지마 폭력과 오도된 혐오가 등장하는 자리다. 지난 5월 17일 서초동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이유도 모른 채 무참하게 살해당한 그 젊은 여성은 사람 사이의 관계가 혐오와 증오가 되고 강간이되고 폭력이되고 살인이 되어 버린 우리 시대의 희생자다. 경쟁관계가 폭력적 관계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라면, 지금 우리는 우연히 살아 있을 뿐인 것이다. 


    지난 5월 28일 구의역, 위험한 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혼자서 일을 하다가, 달려오는 전차와 스크린 도어 사이에 끼어 숨진 19살 청년 김군. 49개의 지하철 역의 모든 스크린 도어를 단 여섯 명이 그것도 신고가 들어오면 1시간 내에 달려가야 한다는 계약이었다. 그래서 2인1조 작업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물리적으로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이었다. 이는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비용으로 계산할 때만 가능한 계약이고 약속이다. 그 청년이 들고 다니던 갈색 가방과, 그 안에 필요한 작업도구들 사이에 보여지던 컵라면과 나무젓가락과 스텐수저는 우리들의 삶의 실상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듯했다. 공기업 민영화의 참혹한 실상이 거기에 있었고, 이미 가질 것 다 가진 퇴직공무원들의 전관예우를 위해, 상위 포식자들의 밥상을 위해 그 젊은 몸과 마음에 착취와 상처를 안기는 세상이 보였고, 끝내 열 아홉 젊음을 죽음으로 내 몰고 있는 폭력이 되어 버린 우리들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시편의 한 구절이 아리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날이면 날마다 나를 보고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비웃으니, 밤낮으로 흘리는 눈물이 나의 음식이 되었구나.”(시 42:3) 우리 시대가 던지는 조롱은 이보다 더하다.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는 정도가 아니다. 인간이라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인격이라는 것이 어디 있느냐며 비웃고 있지 않는가? 모든 것을 팔고 소비하는 시대에, 상품과 소비자만 있을 뿐 사람은 없다고 빈정대고 있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상품처럼 생각하고, 상품처럼 행동하고, 상품처럼 관계 맺도록 교육하고 있는 사회다. 가장 인간적인 것마저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고 시장에서 성취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회다. 시장에서 소비자로서의 삶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떤 윤리적 한계나 도덕적 절제의 요구에 의해서도 구속 받지 말아야 하며, 인격이나 생명의 신비 같은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고 가르친다. 인간 죽음의 허무가 지배하는 시대다. 소유와 소비를 통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치는 물질 신의 지배 하에 살아가고 있다. 무한 소유와 무한 소비라는 궁극의 목표를 향해, 상품선택과 경쟁의 무한 자유를 수단으로 허락하고, 그 무절제하고 무자비한 자유가 만들어내는 폭력이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더욱더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세계다. 


    이처럼 시장과 소유와 소비가 인간과 생명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 인간과 생명을 폭력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이곳에서 다시 인간을 말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구입가능하고 대체 가능한 상품으로서 인간에 대항해서 인간의 참모습을, 상품선택의 자유에 대항해서 인간 자유의 참 모습을, 상품적 가치판단과 경쟁관계에 대항해서 진정한 인간관계에 대한 비젼을 새롭게 다듬어 내야 한다. 신학과 철학의 오랜 전통은 인간의 불완전함과 부족함과 유한함이 인간의 자기파괴나 자학 그리고 경쟁적이고 폭력적인 인간관계의 이유가 아니라, 서로간에 보다 깊이 나누며 참여할 수 있는 참된 인간 관계의 이유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오랜 신념 위에 다시 서서 인간과 생명의 그 대체불가능한 신비를 다시 숙고해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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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과 남성성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지난 일주일 동안 미국은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게이 나이트 클럽, 펄스(Pulse)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현재까지 49명이 죽었고, 53명의 부상자들이 발생한 이 사건은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점들을 보여 주고 있다. 총기 규제, 동성애자들을 상대로한 증오범죄, 이슬람혐오주의, 테러와의 전쟁, 인종 차별주의, 남성 폭력 문제, 문화 충돌과 이민법 개혁과 난민을 받아들이는 문제 등등.이 대량 살상 사건으로 인해, 세계는 올해 11월에 치뤄질 미국 대선, 이슬람 국가 (ISIS)와 전쟁을 치루고 있는 유럽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정치적 이익으로 인해 후폭풍을 맞고 있다. 


          다수의 시민들과 여성, 어린이, 소수 인종,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저질러진 폭력행위는 절대로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펄스 나이트 클럽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도, 단순히 동성애자들을 혐오하는 이슬람 과격주의에 영향을 받은, 아프가니스탄 이민 2세인 오마르 마틴 (Omar Mateen)이 저지른 잔혹한 범죄로만 보기에는, 그 밑에 깔린 보이지 않는 사회 구조적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 우선 마틴이 살아온 삶 자체가 폭력으로 물들어 있다. 마틴의 삶을 파헤친 다양한 기사들을 보면,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자잘한 싸움과 폭력행위에 휘말려, 정학을 당하거나 퇴학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폭력과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고, 여성들을 무시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이런 그가 경호원이란 직업을 택하고, 경호 훈련과 총기 사용 훈련을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오히려 경찰이나 군인이 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랬다면, 그는 아마도 합법적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  


          오마르 마틴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민한 숨어있던 동성애자였다는 보고도 있다. 그의 아버지와 가족들도 마틴의 성정체성을 의심했지만, 굳이 알려고 들지도 않았고, 마틴 스스로도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인정하지 않았다는 설이다. 오마르 마틴이 동성애자라 하더라도, 명예를 목숨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프가니스탄 가족 공동체에서 커밍 아웃하는 것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강경하게 그의 게이설을 부인하고, 그가 동성애자들을 증오했다고 확언하는 것은 아프가니스탄 문화에서 보면 당연하다.  


         아프가니스탄 이민자의 아들로 자라면서, 오마르 마틴의 유년 시절도 평탄하지 않았을 것 같다. 폭력적인 성향이 어렸을 때부터 나타났고, 그의 학교 교사들이 끊임없이 마틴의 행동 장애를 가족에게 알렸지만,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그러한 보고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폭력성을 보이는 아프가니스탄계의 문제아였던 마틴의 학교생활과 교우관계가 어떠했을지는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가 왜 어렸을 때부터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는지, 왜 행동장애에 대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만약 그가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오마르 마틴의 복잡한 인생을 이해하고, 거기에서 대량 학살의 원인을 찾는 것은 나의 영역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펄스 나이트 클럽 총기 난사사건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왜 미국에서의 총기 규제가 어려운가 하는 것이다. 이 총기 사건과 관련하여 또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 폭력과 총기류와 같은 무기에 기대어 생명력을 유지하는 헤게모니적 남성성 (hegemonic masculinity)이다.  


          미국에서는 총기류의 소지를 규제하려고 할 때마다, 전미 총기 협회 (National Rifle Associations)와 같은 단체가 전방위로 규제에 대한 반대 캠페인을 펴왔다. 그들의 로비는 1977년 카터 대통령이 총기규제를 강화하려고 할 때부터, 더 조직화되었고, 강해졌다. 현재 미국에는 인구 100명당 88정의 총이 존재하지만, 총을 한정 또는 그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22%에 불과하다 (자료ProCon.org http://gun-control.procon.org/view.resource.php?resourceID=006436).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총은 남성성을 상징한다 (총이 나오기 전엔 칼과 창이 남성의 상징물이였다).남성성을 연구하는 호주의 학자, 코넬 (R. W. Connell)은 총기 소유를 방어하는 입장은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라고 주장한다 (Connell, Masculinities, 2005). 여기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이란, 진정한 남성은 ‘이러저러한 성향과 행동’을 해야한다는 사회 관습적 규범이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부합되지 않는 몸과 행동, 생각 등을 보이는 사람들은 사회적인 탄압의 대상이 된다. 서구화된 대부분의 사회에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가부장적인 남성, 강인함, 지도력, 카리스마, 폭력성 또는 가족과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용맹성, 경쟁심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총기류의 정치학에서는 남성성이나 젠더가 보이지 않는다. 주로 토론되는 주제들은 국가 안보, 군수 기업의 이익, 가족의 가치, 종교적 신념, 개인의 자유, 과학 기술의 진보와 같은 것들이다.  


          코넬은 가장 합법적으로 무기와 폭력을 사용하는 군조직이야 말로 유럽과 미국에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한다 (Connell, 2005). 군대 조직과 더불어 미디어에서 생산해 내는 전쟁 드라마, 군 영웅 이야기등을 통해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확대 재생산되고, 진정한 남성에 대한 기준이 세워진다. 남성 영웅은 군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게임에서, 만화에서 다양한 영웅들이 등장하고, 이 영웅들 사이에는 묘하게 닮은 성향들이 존재한다. 바로 영웅이든 악당이든 폭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이들의 남성성은 주로 폭력을 통해 드러난다. 마치 남자라면 당연히 폭력적이라고 믿는 듯하다. 좋은 의도에서건 아니건, 폭력과 연계된 남성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위태롭다. 여성들의 생존은 남성과 같은 수준의 폭력을 보이거나 그들의 폭력을 지지하던지, 아니면 남성의 보호를 받던지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그러나 이 선택도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가부장적인 남성상위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러한 구조 속에서 여성은 폭력의 주체가 되기도 힘들고, 생존을 위한 선택의 주체가 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즉 권위있는 남성들이 보호받을 여성들과 그렇지 않은 여성들을 구별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의해야할 것은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대한 연구가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적 구조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헤게모니는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이상 계속 유지되기 마련이다. 또한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직접적인 이슈로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들과 남성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생각을 맞추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소수의 남성 엘리트 그룹의 이익만을 지켜줄 뿐이다.  


          코넬이 주장하는 대로, 정치, 경제, 종교, 이데올로기, 성담론의 주도성을 유지하려는 (소수의) 이성애자남성들은 활발히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방어하려고 한다 (Connell, 2005). 비록 그들이 드러내 놓고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방어하거나, 이것에 대해 의식화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세계 정치가 경쟁적이고, 주도권 쟁취에 바탕을 둔 남성성에 의해 지배되는 한, 폭력과 전쟁, 자연 파괴와 같은 파괴적인 지속될 것이라고 코넬은 경고한다 (2005).  


          나는 코넬의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작게는 개인 간의 관계에서 넓게는 국가 간의 관계까지 보이지 않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이 영향력은 여성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남성들에게 까지도 악역항을 끼친다. 그렇기에 벨 훅스 (bell hooks)와 같은 흑인 여성 운동가는 남성성에 대한 바른 이해와 남성성의 변화가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흑인 여성 신학자 숀 코퍼랜드 (Shawn Copeland)는 더 나아가, 예수의 삶이 대안적인 남성성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가 보여준 사랑과 자비심, 공동체 중심적인 삶, 여성들과 남성들 그리고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모두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받아들인 삶 등이 과연 남성으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예를 제시해 줄 수 있다 (Copeland, Embodied Freedom, 2008).

  

          성소수자가 아닌 이상, 펄스 나이트 클럽 총기 난사사건을 퀴어 관점에서 이해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들이 느끼는 상실감, 공포, 절망 등등.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단순히 총기 규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동성애 혐오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이슬람교도가 아닌 이상, 9/11 테러와 펄스 학살 사건을 통해, 그들이 사회로 부터 느끼는 증오, 압박감과 공포를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들의 종교가 폭력의 종교로 규정되고, 이슬람교도 모두가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여겨지는 한, 종교간의 갈등과 폭력은 더욱더 극복하기 어려워질 것이고, 또 다른 폭력과 희생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여성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공포를 남성들이 이해하기 어렵듯, 여성인 나또한 한국 사회에서 미국에서 남성으로, 특히 한국인 남성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이제 17개월된 내 아들이 어떠한 남성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은 있다. 나는 내 아이가 타인의 삶과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폭력과 경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자신이 남자임을 알리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성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모든 인간들이 소중한 존재임을 어느 순간에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은 지금보다 더 강한 총기 규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강력한 총기 규제법 못지 않게, 사회의 폭력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폭력성을 극복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대안적인 남성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실천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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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의 Sex & Sexuality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송민원

(시카고 대학 고대근동학과 Ph.D. Candidate)


   6. 헬레니즘의 Sex & Sexuality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로마서 1:26-27 개역개정)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시작하여,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가나안에 이르는 우리의 여정은 사실 바울의 이 단 한 문장을 이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현대 기독교인들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이 문장이 실은 얼마나 이상한 문장인지, 그리고 이 한 문장 뒤에 숨겨진 세계는 얼마나 복잡한지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Hellenistic World]


       헬레니즘은 단순히 고대 그리스의 문화가 유럽과 고대근동 전역에 퍼져나간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각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이 엄청난 문화적 도전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으며,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사상을 새로운 언어-문화적 틀 안에서 이해하고 설명해내려 애썼습니다. 유럽의 서쪽 끝으로부터 인도에 이르는 드넓은 지역 어느 한 곳도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얌전히 수용한 지역은 없습니다. 따라서 헬레니즘 시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작업입니다. 이 방대한 지역의 각기 독특한 전통문화가 그리스의 문화와 서로 어떻게 얽히고 설키는지는 한 명의 학자가 평생을 바쳐도 다 연구할 수 없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살펴본 “얄팍한” 수준에서나마 전반적인 그림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보자면, 우선 그리스 성인 남자가 어린 소년과 성행위하는 것을 보며 “그리스 병”이라고 끔찍해 하는 로마인이 있습니다. 그 로마인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하층민이나 외국인들과 성행위하는 것을 보며 “야만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그리스인이 있습니다. 이런 로마인과 그리스인들의 행위를 보며 싸잡아 “가증스러운 일”이라며 그 “병”이 옮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유대인이 있습니다. 그 세 사람을 보며 별 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을 떤다며 혀를 차는 이집트인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사는 곳이 바로 헬레니즘이라는 동네입니다.

       이 중에 우리는, 구약시대로부터 내려온 오래된 전통을 가진 유대인들이 이 헬레니즘의 도전에 어떻게 응전했는지에 집중하기로 하겠습니다. 이들이 헬레니즘에 반응하여 자신의 전통을 어떻게 새롭게 이해했는지, 그리고 이것을 어떠한 언어로 표현해냈는지, 그 중 우리의 주제인 Sex & Sexuality라는 한 단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를 위한 좋은 예는 바로 창세기 19장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성적인 이미지와 연결시킨 예 1, 2]


       이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언제부터 “동성 간의 성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의 이야기로 읽히기 시작했을까요? 적어도 구약시대까지는 아닙니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에스겔 16:49)  


        에스겔은 풍족한 삶에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인색한 점에서 소돔의 죄를 찾습니다. 에스겔이 말하는 “가증한 일”(에스겔 16:47, 50, 51, 52)은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성적인 관계와는 무관합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소돔의 죄 역시 사람이 자기 민족, 자기 이웃을 학대하는 것입니다(이사야 3:5-9). 유일하게 예레미야만 소돔과 고모라를 성적인 것과 연결합니다만, 이 역시 동성 간의 관계를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의 선지자들 가운데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 (예레미야 23:14)  


       이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순전히 “손님 환대”라는 고대근동의 풍습의 관점에서만 읽어내려는 성서학자들이 있는데, 위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의 예만 보아도 고대로부터 이 소돔과 고모라는 상당히 다양한 시각으로 읽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동성 간의 성행위에 대한 징벌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것은 없습니다.

       예레미야의 이 구절은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이 벌이는 악행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도 소돔과 고모라처럼 망하고 말 것이라는 비판으로서, 하나의 도시(국가)가 멸망하는 것의 예로 소돔과 고모라를 든 것이지, 소돔과 고모라에서 행해진 악행을 묘사하고 판단하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의 “선지자”라는 표현이 “무자격 비정규직 자칭 신의 대리인”을 뜻하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아니면 제사장이라는 정규직 성직자들까지 다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만, 출산과 재생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모든 성행위를 죄악시하는, 따라서 임신시킬 능력이 없는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신명기 23:1)마저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이스라엘(= 범 가나안) 사회에서 선지자들 사이에 동성 간의 성행위가 있었다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을 그대로 지금 사회에 옮겨 오자면, 정관수술을 받은 사람은 목사는커녕 교인도 될 수 없겠습니다). 


       문화적 정체성이 뚜렷하여 사회적 금기가 아주 강하게 작용하는 곳에서는 그 금기에 대해 자주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전통적 가치관이 외부의 영향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자리에서야 그 이전에는 문제되지 않았던 지점들이 도드라지게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를 동성 간의 성행위로 보기 시작한 시점은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적 정체성이 크게 도전 받은 바로 이 헬레니즘 시대부터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스라엘은 외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는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소멸될 극도의 위기를 겪게 만들어서,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적 뿌리 (종교, 언어, 가치관 등)를 통째로 흔들었습니다만, Sex & Sexuality의 문제에 있어서만은 크게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과 메소포타미아의 성 이해가 근본적으로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대한 예언서들의 비판에서 동성행위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헬레니즘 문화의 도전을 받기 시작한 신구약 중간기 시대에 헬라화된 유대인들이 작성한 문헌들을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성 개념을 다루는 본 주제와 별 상관은 없습니다만 당시의 유대인들이 얼마나 “헬라적”인 언어로 자신들의 전통을 해석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가 있습니다. “시빌의 신탁(Oracula Sibyllina)” 3권에서 최초의 인간 아담을 묘사하면서, “네 문자로된 아담, 그 이름은 동서남북을 아우른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히브리어로 세 글자(’-d-m)로 된 아담은 그리스어로 넘어와서 a-d-a-m이라는 네 글자로 표시되고, 각 글자는 동(아나톨레), 서(두시스), 북(알크토스), 남(메셈브리아)의 두음이라는 것입니다.[각주:1]


[Sibyls by Raphael, 1514]


       “시빌의 신탁”은 헬레니즘 시대의 유대인(그리고 후에 기독교인)이 그리스와 로마의 성 풍속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대략 기원전 2세기 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시빌의 신탁 3권은 남자아이들에 대한 성적 착취나 매춘에 대해 강력히 비판합니다. 이것은 로마인들과 합세하여 그리스의 성 풍속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원후 1세기(말)에 쓰인 4권과 2세기 초에 쓰인 5권에 나타난 성 풍속에 대한 비판은 동성행위 전체로 확장됩니다. 아마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그리스만이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의 성풍속 모두에게 비판의 화살을 돌린 게 아닐까 합니다.

       중간기 문헌인 지혜서(Book of Wisdom)와 12족장의 서(Testaments of the Twelve Patriarchs)[각주:2] 등은 죄와 우상숭배를 연결짓는 구약적 전통을 동성행위에 끌어옵니다. 우상숭배는 죄이고, 동성행위도 죄이므로 동성행위는 곧 우상숭배이다라는 삼단논법입니다. 이것은 당시의 유대인에게서 볼 수 있는 아주 독특한 발상입니다. 그리스와 로마, 고대근동 전역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동성행위 금지법 어디에도 그것이 “우상숭배”이기 때문에 금지된다는 논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동성행위는 “외래 풍습”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러한 외세의 “사악한” 풍습으로부터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위경 중 하나인 Pseudo-Phocylides(기원전후)는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의미를 동성행위 금지까지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각주:3]

[Philo of Alexandria by André Thévet, 1584]


       플라톤과 모세, 그리스와 유대의 사상과 풍습을 연결지으려 했던 알렉산드리아의 필로(25 BC - 50 AD 경)가 동성행위를 어떠한 시각에서 바라보았는지 살펴보는 것은 로마서 1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후에 로마에게 전수되는 그리스의 방만한 음주문화에서 필로는 동성행위의 원인을 찾습니다.[각주:4] 절제하기 힘든 인간의 성적 욕망이 술에 의해 과도히 발현된 것이 바로 동성행위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리스의 흥청망청한 유흥문화는 필로의 머리 속에서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잠이 든 노아의 이야기(창세기 9:21)와 오버랩 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 노아 이야기 자체는 동성행위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말입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것은, 필로가 (히브리 사상에서는 상당히 낯선) “이성과 감정의 이분법”을 그리스 철학에서 가져온 뒤, 그 이분법을 이용하여 그리스 문화를 비판한다는 것입니다. 감정의 통제는 이성이 할 수 있는데, 음주는 이성의 활동을 약화시키고, 그로 인해 고삐 풀린 감정이 사람으로 하여금, 동성이든 이성이든, 성인이든 어린이든 상관없이 그 욕망을 투사한다는 주장입니다. 필로의 동시대 유대인들, 특히 헬레니즘 문화의 한가운데 있는 요제푸스나 바울 같은 사람들은 이 필로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합니다. 바울이 “비정상적” 성적 행위를 “부끄러운 욕심”, “음욕이 불일 듯”한다는 표현으로 “통제되지 못한 감정의 발산”으로 이해하는 뒷배경에는 이러한 사상사적 흐름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고삐풀린 욕망의 원인을 우상숭배에서 찾습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로마서 1:23). 바울은 필로와는 다르게 통제불능의 욕망은 음주와 향락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우상숭배자들을 정욕에 사로잡히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으로 이해합니다 (로마서 1:26). 지혜서 등에서 연결된 “죄=동성행위=우상숭배”의 등식에 바울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덧붙입니다.

       사실 좀 더 생각해보면, 바울이 이렇게 복잡하고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3장 23절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이니까요. 굳이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만 꼬집어 비판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이 구절이 동성행위를 하는 자에 국한한 비판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 근거는 이렇습니다. 1장과 3장 사이에 2장의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2:1)라는 구절이 놓여 있습니다. 바울이 아주 길게 우상숭배자들의 특징들(동성행위,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교만 등 도무지 우리 시대의 동성애자들을 묘사한다고는 볼 수 없는)을 나열하는 이유는, 이것이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그 시대의 “헬라인이나 야만인”(로마서 1:14) 전체를 언급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헬라인과 야만인들을 “판단”하는 “유대인”도 마찬가지로 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논지입니다. 이 물샐 틈 없는 그물망에서 헬라인이자 유대인인 바울 자신 역시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모두가 죄인입니다.

       사족을 하나 덧붙이고 싶습니다. 다시 맨 처음의 소돔과 고모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창세기 19장의 이야기를 어떻게 읽었을까요? 소돔과 고모라는 복음서에서 다음의 구절들에 나옵니다: 마태 10:15; 11:23-24; 누가 10:12; 17:29. 이 중 마태복음 11장과 누가복음 17장에서 소돔과 고모라는 예레미야 23장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멸망과 심판의 상징으로 나올 뿐입니다. 마태복음 10장과 그 평행본문인 누가복음 10장은 제자들이 마을에 들어가 그 곳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관한 문맥 속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언급합니다. 즉, 이사야와 에스겔과 유사하게 예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대접/영접/환대의 이야기로 읽어냅니다. 이 구절들에서 동성행위에 대한 조금의 힌트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얘기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이해에는 필로나 바울과 같은 동시대의 헬라화된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이해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에 훨씬 가깝습니다. 복음서 전체에서 당대에 “그리스 병”이라 불리던 동성행위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는 것으로 보아, 예수님은 마치 헬레니즘의 파도에도 아랑곳 않는 몇 백년된 화석을 보는 듯 합니다. 그가 시골출신이라서 그럴까요?

       왜 바울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단 한번도 인용하지 않았을까 항상 궁금했습니다. 바울 당시에 복음서가 없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왔다 갔다는 소식만 전해 듣고, 예수님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고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과 바울을 나란히 놓고 나니 한편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헬레니즘의 세례를 받고 자신의 유대전통을 헬라화된 시각으로 재구성한 뒤, 그것을 다시 헬라인들에게 설파한 바울이 듣기에, 이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촌스러운 구닥다리로 들렸을까요. 오백년 묵은 화석을 보는 듯 하지 않았을까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봅니다.


       (이것으로 총 6회에 걸쳐 고대근동의 Sex & Sexuality를 개괄하는 시리즈를 마치고자 합니다. 앞으로 계속 이 주제를 더 세분화해서 나갈 것인지, 아니면 좀 다른 주제를 건드릴 것인지는 잠시 쉬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제 거친 졸고를 시간을 들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위논문과는 거리가 있는 주제의 글을 쓰는 게 제게는 머리를 식히는 좋은 휴식이었습니다.)


ⓒ 웹진 <제3시대>



  1. 시빌의 신탁 영역본을 보시려면 http://www.sacred-texts.com/cla/sib/sib.pdf). [본문으로]
  2. 영역본을 보시려면 http://www.earlychristianwritings.com/text/patriarchs-charles.html; 혹은, http://www.sacred-texts.com/bib/fbe/fbe267.htm [본문으로]
  3. 불역본: http://remacle.org/bloodwolf/poetes/phocylide/sentences.htm [본문으로]
  4. “아브라함에 대하여” 133-14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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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작은 도시 공동체 이야기 2]


공동체의 해석적 순환



 

최규창[각주:1]


공간, 장소, 거처


       많은 사람들은 보편적 ‘공간'에 의미가 부여되면 ‘장소’, 즉 ‘관계공간’이나 ‘역사공간’으로 변화된다는 점을 인식했다. 괴테는 '들판과 숲과 바위와 정원은 언제나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대가 그곳들을 장소로 만든다.’고 노래했다. 물건이나 사물에 의미와 목적이 부여되면 ‘도구’가 되듯이, 인간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성의 좌표 속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실존'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들이 우리의 존재론을 공간적으로 모두 설명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유에 실천이 첨가되지 않으면 어떤 한계를 넘어가지 못한다. 예를 들어, ‘속도’의 관점으로 근대성을 사유한 폴 빌릴리오도 오늘날과 같은 초고속 이동수단들과 광속 인터넷, 그리고 개인의 사생활까지 가속화시키는 스마트폰의 시대는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속도 자체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정교하고 흥미로운 분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무지막지한 속도의 중독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예언하지 못했다. 원리조차도 새로운 맥락을 만나면 시효가 소멸되는데, 그 결과 그것은 원리가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정리에 불과한 것이 된다. 공간이 장소로, 물건이 도구로, 존재가 실존으로 전환되는데는 사유나 의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여기에는 경험으로 대변되는 일종의 시간성이 필요한데, 그로 인해 공간과 장소는 어떤 변증법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결국 우리에게는 인생의 의미를 담지하는 ‘중요한' 장소, 즉 ‘거처'가 필요한 것이다.  

       수 년 전, 도시의 삶에 적응하기 힘든 경제적 여건에 처한 몇 젊은 부부들이 거주할 장소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중, 울산 도심에서 떨어진 한 외진 지역에 지어진 조그마한 미분양 아파트 단지를 발견했다. 분양이 되지 않고 방치된 곳이어서 시행사에서도 그들에게 매우 저렴한 가격에 장기 임대를 해 주었고, 심지어 몇 백 만원의 보증금과 휴대폰 사용요금과 비슷한 수준의 월세만 내면 십 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계약도 체결해 주었다. 일단 거주가 해결되자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미 가지고 있던 목공기술, 도배기술, 커피 만들기, 운전면허 등을 활용해서 닥치는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생업도 안정되어 갔다. 비록 도심까지 진입하는데 다소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거처가 안정되어 있다는 것은 이 모든 불편함을 상쇄시키고도 남는 장점이었다. 현재 이 공동체에는 열 가정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 단단한 가정 교회가 형성되었고, 경제적 부담없이 부모를 모시는 집이 생겨났고, 외부 손님을 수용할 게스트하우스도 마련되어 있다. 이 공동체의 특징은 소득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버는 돈을 한 군데로 모으고 개인당 일정 금액의 용돈을 매 달 받는다. 공동으로 모인 소득으로 모두에게 의료비, 교육비, 주거비 등을 무상으로 지급하고 있다. 점점 이 공동체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고, 사람들의 일거리와 가용한 생업 아이템들도 증가하고 있어서, 요즘은 일을 줄이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어딘가에 취업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 나서자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자금을 고려하더라도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돈을 더 버는 것 보다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공동체를 더 단단하게 이루는 쪽으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일단 거처가 안정되자, 젊은 부부들은 아기를 낳기 시작했고, 아이를 입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어떤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소유가 더 늘어난 것도 아니고,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도 아닌데, 불편한 위치에 있는 저렴한 주택에 함께 모여 삶을 공유하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도심 속의 가정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삶의 요소들인 가정꾸리기, 교회 유지하기, 생업에서 살아남기 등이 자연스럽게 한꺼번에 해결되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포기한 것은 단지 번듯한 직장에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삶 뿐이었다.   


환원근대 속에 상실된 공간


      앤소니 퀸이 주연한 <산체스의 아이들>이라는 영화의 OST 메인 타이틀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희망과 긍지에 대한 꿈이 없다면 사람은 죽을 것이다. 그의 몸은 움직일지라도 그의 마음은 무덤 속에서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땅이 없다면 사람은 꿈꿀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존엄성을 가지고 살 장소가 필요하다.”  


       안식할 땅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자유로울 수 없다. 거처가 없는 인간은 노마드 상태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의미를 가지는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인생의 터를 세우는 ‘거처'를 의미한다. 아마도 1960년대 이후 압축근대 시대에, 대대로 살아오던 거처를 떠나 도시로 밀려들어와 도시 빈민이 된 이들에게 거의 유일한 ‘유사 거처’(pseudo-dwelling place)의 역할을 제공했던 곳은 바로 ‘교회’였을 것이다. 새벽마다 하늘 아버지에게 매달리고 울부짖지 않으면 하루도 견디기 힘든 시절이었다. 자연스럽게 교회당은 ‘성전’이 되었고, 집보다 더 깨끗하고 거룩하게 관리해야 할 ‘거처'가 되었다. ‘70~'80년대에 종종 들리던 뉴스처럼, 자신의 장기를 팔아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일부 교회와 신도들은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믿음이라고까지 해석했다. 1960년대 이후 50여년간 한국 사회는 ‘2년 단위 전세’와 ‘아파트 중심의 주택공급’,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 선분양제’, ‘아파트 가격 폭등’ 등에 힘입은 빈번한 주거지 이동전략을 통한 서민 재산 증식으로 나라를 유지해 왔다. 2년 단위의 잦은 이사는 우리의 의식에서 거처를 소거시켰고, 동일한 구조로 설계된 아파트의 평수를 늘려가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었다. 거처가 되어야 할 집은 중산층 진입과 국가의 복지 의무, 자녀 학자금, 교회 헌금을 모두 떠받치는 재원으로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전 국민의 59%가 아파트에 살고 있고, 85%가 동일하게 설계된 모양의 주택에서 살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는 결국 주거공간의 획일화를 통한 전체주의를 이루어냈고, 잦은 이주를 통한 상실의 정치를 구현했다. 한국의 교회 성장 역시 이 지점에서 동일한 혜택을 입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안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기반인 거처를 (늘 옮겨 다니는) 집에서 찾지 못하고 교회나 다른 동질집단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데이비드 하비가 ‘상대적 공간’ 개념을 통해 제시하듯이, 공간 속에서 생성되는 의미는 관찰자의 관점과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김덕영은 <환원근대>에서,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모든 가치와 전통을 ‘돈이 되는’ 것과 맞바꿈으로써 철저하게 자본 중심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대상/영역의 측면에서는 경제성장으로 환원되고, 주체/담지자의 측면에서는 국가와 재벌로 환원되는 이중적 과정을 거쳤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근대 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중요한 지표인 분화와 개인화는 억압되고 저지되었다’는 것이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돈으로 환원되는 세계는 결국 '공간의 획일화'와 '거처의 상실'을 수반하게 된다. 개인이 존엄성을 가지고 꿈을 꾸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존엄성과 꿈은 가치의 다양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은 다시 말해, 거처의 해체를 통한 전체주의를 도모하는 힘과 그에 저항하는 힘 간의 ‘공간충돌' 또는 ‘공간투쟁'을 상정한다. 우리는 외양으로는 끊임없이 돈을 추구하지만, 내면으로는 계속 거처를 찾는 분열증을 앓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거처 탐색의 실패는 ‘헬조선’과 ‘세계 최고의 자살율’로 나타나고 있다. 절대적 빈곤 시대에도 나타나지 않던 현상이, 모두가 밥은 먹고 살 수 있다는 현대에 와서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고통 : 가치관의 충돌


       이제 여기에 덧붙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거처를 이루는 것은 공간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사람들이기도 하다. 특정한 공간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이 ‘관계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처가 된다. 그것은 실재적으로는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개인이 온전한 참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이 참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과정은 ‘의식’(意識)과 ‘이성’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내면의 ‘무의식'과 영적인 에너지의 발현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그것은 반드시 어떤 형태의 고통과 불편함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반드시 앞 세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삶의 지혜와 충돌을 야기한다. 인간은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서든 불편함과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한 시대가 낳은 지혜란 그 경로를 압축적으로 구성한 일정한 구조와 패턴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우리가 건축을 통한 주거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결심했을 때, 구성원들 전부가 양가 부모님들에게서 받았던 압박과 우려는 모두 여기서 기인했다. 한국전쟁을 겪고, 모든 것이 부족했던 어려운 시절을 지나온 그 분들에게 있어 돈을 함께 투자해서 벌이는 ‘경제적 융합 행위’는 실패가 자명한 매우 위험한 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돈을 거래하면 돈도 잃고 친구도 잃게 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돈이 속이지 사람이 속이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속이는 사람은 계속 속인다.’, ‘실패한 사람은 계속 실패한다.’, ‘돈의 유혹을 이길 장사는 없다.’는 것을 삶의 지혜로 터득한 이들에게, 전재산을 걸고 공동체를 건설하기로 한 자식들의 결심은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행위로 비춰졌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심지어 토지 구매잔금을 주기 전날 우리 집에 오셔서, ‘토지 계약금을 포기하고 공사를 하지 마라’고 강하게 충고하셨다. 당신 스스로도 평생 교인들 빚보증을 서주고, 수 많은 사기를 당해 오면서도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셨지만, 자식 마저 그런 상처와 배신 속에 인생을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답답했다고 하셨다. 나는 ‘저와 우리 친구들을 믿어달라'고 부탁드렸지만, 교회 내에서도 이런 사례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평생 보지 못했던 아버지는 설득을 포기한 채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셨다. 과연 ‘한 번 실패한 사람은 계속 실패한다’는 말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맞는 것일까. 그냥 부모의 삶의 지혜가 농축된 격언들을 따라 살면 인생에 큰 문제가 없이 편안해질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하지만 ‘의식’과 ‘이성’이 지배하는 격언들이 우리에게 어떤 에너지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우리의 선택은 자명했다.   

       그러나 이후의 과정은 우리에게 기성세대의 격언들이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해 깨닫게 해 주었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였다. 먼저 건축과정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격언은 단순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경험을 넘어가는 수 많은 이해관계와 구조적인 악으로 가득하다. 애초의 계획과 설계대로 진행되는 것은 거의 없었고, 건축이라는 과정을 진행하면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낭패를 거의 모두 경험해야 했다. 목적에 맞는 땅을 찾는데도 반 년이 걸렸지만, 세 필지를 사서 병합하고자 했던 계획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땅을 중개한 부동산컨설팅사는 애초에 필지병합을 간단한 과정으로 설명했지만, 현실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복잡하고 힘든 과정이었다. 결국 구매한 토지의 일부를 포기하고 땅을 설계해야 했고, 그 때문에 막대한 재정적, 시간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토지경계가 잘못 측정되어서 공사가 몇 달 중단되기도 했고, 결국 설계사, 시공사, 감리사도 교체되었다. 제대로 시공하고 있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교대로 휴가를 내고 현장에 상주해야 했고, 구청 공무원, 시공사 소장과의 말다툼은 일상이 되었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각자의 재정압박이 심해져서 서로 돈을 융통하면서 버텨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건축이 완료되었지만, 주택 세 채를 분양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다시 큰 재정손해와 2년이 넘는 지루한 법정싸움이 이어졌다. 건축 과정에서, 모든 것을 잃고 길거리에 나가 앉을 뻔한 위기가 몇 번 있었고, 우리는 퇴근 후 밤마다 모여 기도회와 대책회의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때의 적막함이란 다시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참담했다. 이런 과정들이 반드시 수반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부모님들은 우리를 막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런 류의 프로젝트는 애초부터 시작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자기 시대의 아포리즘으로 형성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이 터널을 지나왔고, 놀랍게도 그 과정에서 한 번도 포기하거나 서로를 원망하려는 마음을 먹지 않았다. 이것이 부모님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점이고, 우리 세대에 새롭게 형성된 삶의 해석방식이었다. 그리고 이후 우리는 14년 반을 함께 거처를 이루었다. 물론 경험이 쌓이고 나서의 공정은 이와 같이 않을 것이다. 실재로 현재 진행중인 2차 공사는 마무리를 한 달 앞두고 있는 현재시점까지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경험이 전무했던 우리들은 모든 과정마다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부모님 세대의 아포리즘이 현실적이라는 깨달음을 준 두 번째 계기는 우리의 공동체 생활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갈등과 어려움이었다. 공동체는 공유된 가치(shared values)에 동의한 사람들이 형성하는 일종의 배타적 멤버쉽 개념을 포함하지만,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한편으로는 서로의 개성과 ‘임의적 특이성’이 살아 있는 충돌과 투쟁의 장(場)이기도 하다. 결혼이 개인의 결합이나, 양가 집안의 결합을 넘어, 수 십년간 따로 형성된 두 공간의 결합이듯이, 공동체 역시 교집합과 합집합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형성되어가는 하나의 지평융합의 완성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두 가지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갈등에 의해 해체되든지, 아니며 공존할 수 있는 나름의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주거 공동체는 달리 다른 곳으로 도망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후자의 방식을 취하게 된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비교의식이다. 다섯 가정이 서로에 대해 깊이 알게 될수록 각 방면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들(best practice)에 집중하게 되고 그것을 자신의 가정과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배우자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졌고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자녀들을 비교하면서 생기게 되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웃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기 자녀에 대한 주관적 낙관주의로 육아와 교육의 스트레스를 이겨 왔던 이전과는 달리, 이제 아이들의 특징과 개성, 차이는 숨길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당시까지도 다양성의 가치를 삶으로 배우지 못했던 우리들은 여전히 세속적 기준으로 아이들과 우리의 삶을 재단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우리들은 이런 어려움들이 일종의 지평융합을 통해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하비가 ‘상대적 공간’ 개념을 통해 제시하듯이, 공간 속에서 생성되는 의미는 관찰자의 관점과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김덕영은 <환원근대>에서,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모든 가치와 전통을 ‘돈이 되는’ 것과 맞바꿈으로써 철저하게 자본 중심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대상/영역의 측면에서는 경제성장으로 환원되고, 주체/담지자의 측면에서는 국가와 재벌로 환원되는 이중적 과정을 거쳤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근대 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중요한 지표인 분화와 개인화는 억압되고 저지되었다’는 것이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돈으로 환원되는 세계는 결국 '공간의 획일화'와 '거처의 상실'을 수반하게 된다. 개인이 존엄성을 가지고 꿈을 꾸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존엄성과 꿈은 가치의 다양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은 다시 말해, 거처의 해체를 통한 전체주의를 도모하는 힘과 그에 저항하는 힘 간의 ‘공간충돌' 또는 ‘공간투쟁'을 상정한다. 우리는 외양으로는 끊임없이 돈을 추구하지만, 내면으로는 계속 거처를 찾는 분열증을 앓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거처 탐색의 실패는 ‘헬조선’과 ‘세계 최고의 자살율’로 나타나고 있다. 절대적 빈곤 시대에도 나타나지 않던 현상이, 모두가 밥은 먹고 살 수 있다는 현대에 와서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끝나지 않는 순환과 융합 : 과정으로서의 공동체


       함께 하는 시간과 나눔을 통해 우리는 솔직해 지는 법을 배웠다. 그러자 서로에게 잘 보이거나, 가면을 써야 할 이유가 없어지고, 자신의 인격과 자기 가정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는데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모임 중에 부부싸움이 빈번히 일어나고, 부부간에 둘이서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전체 모임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자기를 발견하는 경험이었다. 성장은 이성과 의식만이 아닌, 무질서와 무의식에 의해서 촉발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내면이 질서정연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혼돈과 무질서가 함께 공유되어야 진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주인공 타일러 더든은 ‘남자는 싸워봐야 진정한 친구가 된다’고 주장한다. 싸움은 무질서의 본능이 올라오는 경험이자, 광기의 행위다. 예수가 우리에게 평화가 아닌 검을 주러 왔다고 하신 것처럼(마태복음10:34) 가정 내의 다툼, 공동체 내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오지만, 결국은 서로를 더욱 단단하게 결속시키는 힘이 된다. 주거 공동체는 달리 도피할 곳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든 갈등과 고통에 직면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새로운 형태의 융합과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이성적인 대화로 갈등을 설명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는 차원이 아니라, 여전히 갈등과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은 채 섭섭함과 분노가 남아 있지만, 서로의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고, 더 깊은 정과 신뢰로 서로를 대할 수 있게 되는 그런 체험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근대적 주체로 형성된 근대적, 시스템적 공동체에서 경험하기 힘든 새로운 공동체 이해일 수 있다. 우리는 그냥 그런 과정 안에 머물기로 했다. (공동체 내의 무의식의 융합에 대해서는 3편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 

       공동체는 이제 우리에게 맞는 형태로 어떤 룰과 구조를 가지게 된다. 미로슬라브 볼프가 <배제와 포용>에서 말하듯, 서로간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도 힘들고, 멀어져도 어려워지는 것이 공동체의 속성이다. 흔히 '매우 가까운 관계'에 대한 환상을 갖고 공동체에 접근하지만 그것은 상처를 불러올 수도 있다.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되면 자신과 상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사이에 타자를 수용할 공간을 갖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 타자가 바로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외부의 타자일 수도 있고, 공동체 자체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공동체에서는 항상 부분과 전체의 해석적 순환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공동체에서 생겨나는 구조와 룰은 공동체나 구조 자체의 유지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항상 구성원들이 참된 인간으로 성숙해가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가변적이고 과정중심적이다.  

       하이데거나 가다머가 주장하듯이 인간은 자기 시대의 역사성을 벗어날 수 없고, 무전제적인 해석을 할 수 없다. 우리들 자체가 세계를 객체화할 수 없고, 세계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경적 공동체’라는 것은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우리가 스스로 포함된 공동체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완벽한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다만 자기 시대를 참인간으로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시대적 공동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역사적 예수'를 우리의 기준이자 '의미론적 동위체'(움베르토 에코)로 삼는 한계적 순환 속에서 탄생한 어떤 구조나 패턴, 룰이 공동체 안에 존재할 뿐이다. 이것 또한 구성원들에 따라 계속 변화될 것이므로 강요되어서는 안된다. 어떤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강요하는 순간 우리는 해석을 멈추게 되고, 시대적 아포리즘에 사로잡혀 버리게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울산 외곽의 공동체 역시 자기들에게 맞는 임의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 방식들은 일반화되거나 다른 공동체에 강요될 수 없다. 공동체 내의 갈등이 해결되고 무의식적 차원의 공유가 일어나는 것으로 멈춘다면 우리는 계속 진화하는 공동체의 영속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 우리가 어떤 룰과 구조를 만들지만, 그 구조들이 다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계속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해 가는 것이 공동체의 속성이다. 사람은 공동체를 만들지만, 공동체 역시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돈을 벌거나, 외부에 내세울만한 자랑거리를 만들거나, 성공을 추구하지 않으며, 오직 예수의 삶을 쫓아가는 참된 인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홀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또는 이 세상을 객체로 만드는 주객논리로는 모순이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공동체에 속해야 하고, 그러한 해석적 순환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14년의 첫번째 스테이지는 우리와 공동체가 그런 방식으로 함께 영향을 주고 받는 남다른 시간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늦어버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절박하고 필수불가결한 변화의 요청 앞에 다시 서게 되었다. 새로운 주거 공간을 설계하고 건축하면서 이제 공동체의 목적과 동력을 새롭게 점검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공동체 14년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다음 단계의 공동체를 어떻게 구상하고 세웠는지에 대한 새로운 사례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 웹진 <제3시대>

  1.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 곳에 오래 매여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 수치가 세상변혁이라는 불가능성에 대한 부담과 지나친 민감함에서 나온 혼란이었음을 깨달은 후에 나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 톱니바퀴로부터 일탈하여 나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소박한 대안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십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시작된 법인사업과 생활대안운동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해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웹진을 통해 앞으로 4차례에 걸쳐 그 가치생성의 과정을 일부 나눌 예정이다. (주) 포리토리아 대표,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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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묵시록 6 : 총의 묵시록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시카고가 속해있는 미국의 일리노이 주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총기를 공공장소에서 소지할 수 없는 유일한 주였다. 다른 주들은 총이 눈에 띄지 말아야한다는 단서가 따랐지만 누구나 쉽게 허가 받을 수 있는 총을 차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일리노이 주의 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은 이유는 총으로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공공장소에서도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최근 총기산업의 로비단체들의 소송으로 여러 주에서는 대학의 강의실에도 총을 소지하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일리노이 주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새로운 법안을 만들면서 예외조항을 포함시켰다. 학교나 도서관 같은 곳은 예외로 인정해 주었고, 다만 금연사인과 비슷한 총기금지 안내판을 출입구에 부착하도록 했다. (교회는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예배시간에 총기소지를 허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나처럼 학교 건물로 출근하는 사람은 하루에도 여러 번 총의 형상을 보게 되었다. 총기소지가 금지된 건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밖의 세상은 총이 허용된 공간이란 사실을 의미한다. 그 효과는 총에 대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고, 총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금연사인이 흡연을 막지 못하듯이 총기반입을 금하는 안내판이 총을 합법적으로 안주머니에 소지한 사람이 학교건물에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없다. 미국 대도시의 고등학교에서 총기유입을 막기 위해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서 등교하게 만들고, 총을 소지한 경비원들이 교내를 순찰하는 건 흔한 일이다. 모든 학교의 교실에 경찰서와 연결된 카메라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듣게 된다. 총이 없는 사람들에게 총기금지 안내판의 효과는 암시작용에 있다. 총을 결코 부정할 수 없다는 일차적인 암시가 있지만, 그 암시는 총에서 끝나지 않는다. 총의 목적이 생명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최후의 암시가 빠질 수 없다. 그런 암시가 통치의 수단이라면 그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람을 수동적이고 순응적으로 만드는 수단은 없을 것이다. 그 총이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지 상관없이 총은 언제나 죽음을 암시한다. 그 자체로 공포와 복종을 유발하는 힘이 된다. 이런 총의 현상은 미국적인 삶의 일상이고 역사의 일부다. 미국의 군사문화의 기초를 이루고 미국의 묵시록을 현재형으로 만드는 요소다.  




    미국 밖에 있는 사람에게 가장 설명하기 힘든 것, 그렇다고 미국 내에서도 합리적인 설명이 어려운 것이 바로 미국의 총기문화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대형 총기난사 사건은 더 강력한 총기규제를 요구하지만, 규제를 반대하는 세력도 그들의 논리를 굽히지 않는다. 실제로 이 문제만큼 미국을 갈라놓는 이슈는 없다. 총기사고로 죽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총이 흔하기 때문이고, 총기 보유율이 높은 이유는 총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미국사람들이 왜 총을 좋아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설명이 유럽의 신대륙 발견과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해온 역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에선 이론이 없다. 서구의 근대란 시기는 식민지를 통해 이루어낸 것이고 식민지 지배는 총과 무기를 통해 가능했으며, 그 시기는 또 총과 무기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한 시기였다. 결론만 얘기하자면 미국은 총으로 만들어진 나라다. 극단적인 표현으로 들리지만 그 내용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이를 미국의 입장에서 간략하게 설명해 보자. 미국은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자유의 나라이고, 예외적인 운명을 타고난 나라다. 이 자유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것이기 때문에 지키고 보존해야 할 이념이었다. 총은 자유를 상징하고 대변할 뿐만 아니라, 광야와 같은 악한 세상에서 자유를 지키는 수단이었다. 신이 인간에 부여한 자유를 지키기 위한 총이기 때문에, 총이 지켜내는 것은 인간의 자유만이 아니다. 신의 자유를 지키고 실현하는 역할까지 한다. 이런 총에 관한 이해의 변증법은 미국적 사유의 본질적 단면을 보여준다. 여기에 묵시적 세계관이 전제되어 있음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선과 악의 단순한 구분, 예외적인 선택과 사명을 부여 받았다는 자기이해, 그리고 특히 미국에서는 자유란 내용없는 개념이 총이란 종말의 무기를 위한 자유로 쉽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도 포함된다.  


    흔히 미국사람들은 주입식 교육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식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총에 대한 지식은 예외일 것이다. 미국 사람들만큼 총에 대한 아는 게 많은 사람들이 또 있을까. 가끔 총하고는 거리가 먼 대도시 출신의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총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어 나를 놀라게 하는 때가 있다. 물론 나에게만 ‘방대한 지식’이지만 그들에게는 미국의 역사와 문화의 한 부분일 뿐이다. Browning, Colt, Remington, Winchester, Smith & Wesson등의 총을 만드는 회사들은 그 브랜드 가치는 여느 일류기업 못지않다. 미국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은 그 시대의 총이나 무기와 함께 기억되는 경우도 많다(서부시대의 레밍턴 라이플과 콜트.45, 2차 대전의 카빈소총, 베트남 전쟁의 M-16 등). 그 이유는 그 순간들이 주로 전쟁의 순간들이었던 사실도 있지만, 기본적인 총에 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에 총을 중심으로 사건을 이해하게 만드는 면도 있다 (따라서 총기 사고가 나면 어떤 총이었나, 누굴 암살한 총은 어떤 총이었나 등에 높은 관심을 갖게 된다). 흔히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서부시대의 신화를 만들고 총과 폭력의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기여했다는 비판을 하지만, 이는 미국의 총기사랑에 대한 표면적인 설명밖에는 되지 않는다. 실제로 미국의 총기문화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하는 질문은 논란의 대상이다. 원주민들을 무력으로 굴복시켜야 백인들이 땅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백인들에게 총기소유는 필수적이었다는 설명이 있다. 서부로 영토를 확장시키던 시기엔 법보다 총이 앞섰기 때문에 총기보유율이 높아졌다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18세기 미국 백인들의 사망하면서 유산으로 남긴 물품의 목록을 조사한 결과 생각하는 만큼 일반인들이 총을 많이 보유하지 않았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의 총기문화가 영화산업이 흥행을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입장도 있고, 총기산업의 로비가 총을 자유와 권리의 문제라 주장하면서 이 총기문화를 지속 유지시킨다는 분석도 있다. 


    대통령 후보시절 오바마는 시골의 가난한 백인들이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 소외되고 왜곡된 세상인식을 갖게 되었고, 국가의 정책으로 생활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고 총과 근본주의 신앙에 빠진다는 말을 해 엘리트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얼마 후 미국 남부에서 활동하는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라는 록밴드는 오바마를 은연중 비판하는 “God and Guns”라는 곡을 냈다. 가사가 재밌다. God and guns/Keep us strong/That’s what this country/Was founded on/Well we might as well give up and run/If we let them take our God and guns. 




    미국의 평범한 백인들의 정서를 잘 대변한 이 곡에서 ‘신’과 ‘총’은 항상 함께 한다. 가사가 비판하는 내용의 배경에는 신을 버리고 다문화주의를 선호하며 미국을 세속사회로 만든 자유주의자들이 이젠 총까지 빼앗으려 한다는 위기의식이 담겨 있다. 가사는 미국이 ‘신’과 ‘총’의 바탕 위에 세워졌다고 고백한다. 그 고백은 평범한 백인들 사이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그 둘은 분리될 수 없다. 그들의 삶속에서 신은 위대하고 총은 선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총기문제는 자신들이 만든 문제가 아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지소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날 수밖에 없다는 협박조의 내용이다. 어디로든 떠날 때 총은 들고 떠나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미국의 역사에서 신의 존재와 총의 현실이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총의 신학사


    미국에서 총은 신학적인 역사를 갖고 있다. 그 신학은 묵시적인 것이고, 미국의 묵시록은 총을 제외하고 설명될 수 없다. 미국에서 그 신학의 역사는 청교도들로부터 시작한다. 메이플라워란 배에서 육지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이 총을 들고 내렸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미국정신의 뿌리가 되는 ‘메이플라워 서약’으로 유명한 그 배엔 상당한 양의 총과 무기가 실려 있었다. 그들에게 마귀가 들끓는 광야에서 믿을 건 총과 하나님밖에 없었다. 광야에서 에덴을 개척해야 할 선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땅이었고, 땅을 마련하기 위해 총은 필수였다. 17세기 청교도들에게 주일은 총을 드는 날이었다. 늑대와 원주민들의 공격을 퇴치시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교회에 올 때 총은 의무적으로 소지해야만 했다. 예배를 드리는 마을회관에는 전망대가 있었고, 교회는 무장한 보초가 지키던 요새였다. 예배 중에도 총을 옆에 두고 유사시에 발사할 수 있어야 했다. 말 그대로 Ecclesia Militans(군사적 교회)였다. 죄와 마귀와 상징적인 싸움을 하는 교회가 아니라, 총을 든 군사적 조직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였다. 그런 군사적인 장치가 필요할 정도로 원주민들의 공격이 빈번했는지 묻을 필요는 없다. 그런 보안조치 때문에 원주민 공격을 사전에 예방했다는 주장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인들이 영토를 확장시키면서 원주민들과의 마찰은 필연적이었다. 청교도들은 이 분쟁을 신에게 부여받은 사명을 실행하려는 선택받은 백인들과 이를 막으려는 불신의 원주민들 사이의 분쟁으로 이해했고, 총과 무기로 원주민들을 복종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었다. 청교도 교회 내에서는 총기 사용과 훈련이 강조되었고, 총의 선함과 정당성은 설교를 통해 재확인되기도 했다. 청교도들이 총과 무기에 집착한 이유로 원주민들과의 분쟁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원주민들에 대한 이미지와 스스로를 사악한 세상에서 공격당하는 약자이고 피해자라는 인식도 무시할 수 없다. 원주민들을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혔다는 아말렉 족속으로 보는 시각은 오랜 역사가 있는 청교도들의 수사였다. 그들이 건설하려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원주민들에 의해 포위되어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계시의 완성이었다. 청교도들이 생각한 원주민은 신학적 상상의 산물이었다. 미국의 종말론적 사명의 드라마에서 조역을 맡아 광야에서 실체 없이 떠도는 이스라엘의 적, 그리고 최종적으로 총에 굴복하여 땅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청교도들에게 총은 신의 사명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였고, 그 사명은 최후의 국가가 되는 것이었다. 이후의 역사에서도 미국의 예외적인 정체성은 총과 무기를 매개로 유지되었다. 미국역사의 무의식에서 총은 신의 편에 서있는 미국이 신의 정의를 집행하도록 내려 받은 선물이었고 축복의 상징이었다. 그 선물의 현재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가장 앞선 무기를 보유해야만 했다. 그 관점에서 냉전시대는 선택받은 미국과 무신론자들의 싸움이었고, 냉전에서 이긴 건 신의 승리였고 무기의 승리였다. 신과 무기는 분리될 수 없는 미국정신의 양대 근원이었다. 군사적 우위를 다른 나라에게 내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의 군사정책의 기초가 바로 거기 있다고 할 수 있다. 군사적 우위를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신의 축복, 미국의 예외성, 미국이 받은 사명의 근거가 없어짐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자유의 개념은 평등하지 않고, 언제나 예외적이다. 총은 그 자유를 가능케 하고 지키는 도구였다. 청교주의의 논리에 의하면 자유는 미국에 부여한 신의 선물이었고, 자유는 신의 속성에 속한다. 그렇다면 총은 인간의 자유만이 아니라 신의 자유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 ‘God and Guns’가 담고 있는 미국적인 정서의 깊이 있는 차원의 논리다. 미국의 군사주의와 근본주의는 언제나 같은 목표를 지향해 왔다. 미국의 예외주의는 군사적이고도 신학적인 자기이해다. 군사문화를 정당화 하고 완성시키는 역할을 수행한 것은 근본주의 신학이었다. 십자가 군병이란 표현 같이 복음전파를 군사적 용어로 설명해 온 19-20세기의 역사가 이를 증거한다. 미국의 군사주의와 근본주의가 함께 공유하는 또 다른 것은 최후의 국가가 되기 위한 종말론적 세상이해다. 마지막 전투까지 이겨야 한다는 각오는 미국의 군사주의만이 아니라 미국의 종말론적 종교집단들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대량의 총을 확보해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면서 종말의 주역이 되고자 하는 예를 1970년대 짐 존스가 이끄는 인민사원이나 1990년대 FBI와 혈전을 벌인 데이빗 코레쉬의 다윗파 등에서 볼 수 있다. 미국의 주류 기독교가 폭력과 전쟁을 자유의 이름으로 용납해 온 역사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미국의 군사주의와 청교주의가 만들어 낸 것은 전례 없는 총의 문화만이 아니라 그와 연결된 폭력의 문화다. 총을 수용하는 만큼 폭력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또 총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폭력적인 강압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내가 옳다는 생각과 정의가 내 편이라는 생각으로 정당화 된 폭력은 가혹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총기규제의 논란에서 늘 제기되는 질문은 총이 문제인가 아니면 사람이 문제인가 하는 것이다. 한쪽에선 총기소유를 제한해야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선 총이란 기계적 물체가 아니라 총을 이용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반박한다. 오히려 총을 공개적으로 소지하고 다닌다면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한쪽에선 폭력과 살생의 문제로 보고, 다른 쪽에선 자유와 권리의 문제로 본다. 그러나 문제는 총을 가진 사람, 즉 총과 사람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다. 내가 총을 드는 순간 나와 세상의 관계는 바뀐다. 총은 생명을 해치는 목적이 있고, 그 총을 든 사람은 그 목적을 가능성으로 부여받는다. 생명을 순간적으로 끝낼 수 있는 총의 힘은 인간을 새로운 존재로 만든다. 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생명의 세계는 궁극적인 객관화의 대상, 즉 총기를 겨눌 타깃이 된다. 이분법적인 발상의 극치라 할 수 있겠다. 총을 통해 나는 생명을 결정짓는 초월적이고 종말적인 자아를 이루고, 그 자아는 기계적인 것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던 서구인간의 오랜 욕망이 극적으로 실현된 형태라 할 수 있다. 총은 생명을 해치는 기능밖에는 없고 총을 갖는 것은 생명을 순간적으로 끝낼 힘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신의 존재를 추구했던 서구적 인간의 이상이 바로 그 힘의 초월적이고 종말적인 차원에 의해 실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도 할 수 있다. 18-19세기 미국을 관찰한 사람들은 미국사람들을 이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인간’이라 규정하는 예가 많았다. 그 새로운 인간을 통해 세상이 바뀔 것이란 예언도 흔했다. (그 미국인에게 총이 중요했다는 관찰은 많았어도, 그 총으로 미국인이 만들어졌다는 분석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나온다). 광야로 여기던 땅에서 살아남은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총은 어느 순간 수단이 아니라 (많은 미국인들의) 존재의 중심이 되었다. 어쩌면 이 총의 존재론이 타인과 담을 쌓고 이루어내는 서구적 개인주의의 종착점인지도 모른다. 총의 정의와 총의 폭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서부시대의 유산으로 풍자되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깊은 미국의 종말론적 사상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부영화 High Noon(정오)에서 최후의 결투가 일어나기 전 마을의 교회에서는 “영광, 영광, 할렐루야~”가 퍼져 나온다. 신의 정의가 승리할 것이란 암시와 곧 모든 게 끝난다는 암시를 동시에 전해준다. 총의 묵시록을 가장 잘 드러내는 건 서부영화다. 서부시대와 총에 대한 환상적인 신화가 서부영화를 통해 사람들의 의식 속에 심어졌다는 주장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미국에 총과 폭력, 정의와 신에 대한 정서적 기초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부영화는 20세기 미국영화를 대표하는 장르가 될 수 있었다. 청교도들의 선악관과 총기에 대한 신뢰와 묵시적 세계관이 19세기 중반의 서부개척 시대에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질서가 무너지고 악이 판치는 절망의 상황 속에서 총잡이 영웅이 나타나 최후의 총싸움을 벌이는 묵시적 드라마의 구도는 서부영화의 전형적인 서사다. 총으로 죽고 총으로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폭력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사막에서 총에 맞아 죽는 악인들에게 죽음이란 부활이나 구원이 없는 묵시적인 죽음이다. 서부시대의 신화가 미국의 신화가 된 이유는 그 묵시록의 신화를 관객들이 이미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화면 속에서 재현되는 드라마를 적극 수용할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총기소유자들에게 왜 총이 필요한지 물으면 자주 듣게 되는 응답이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부당한 국가권력에 대해 군사적으로 저항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에 의해 불의의 공격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법에서 보장된 권리를 행사하고 싶어서, 종국에는 총밖에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에 등의 총을 위한 변명을 구체적으로 듣게 된다. 모두 현실적이지 못한 환상적인 발상이지만 그 피해는 너무 크다. 총으로 최후를 준비하는 사람들이지만, 총은 그 최후를 앞당긴다. 묵시록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 웹진 <제3시대>



    (참고) 


    청교도들이 주일을 어떻게 지켰는가에 대한 내용은 Alice Morse Earle의 The Sabbath in Puritan New England (NY: Charles Scribner's Sons, 1896)라는 책을 참고 했다. 총을 들고 교회에 가는 그림은 George Henry Boughton의 ‘Early Puritnas of New England Going to Worship’(1872)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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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기회론'이라는 망상



 

백승덕*


 

   20세기 초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탈리아의 극작가 루이지 피란델로는 생전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메리카니즘(Americanism)이 우리를 온통 휩쓸고 있다. 나는 바로 여기서 새로운 문명의 횃불이 타오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미국은 근대성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때가 1930년대였으니 미국은 100년 가까이 근대성과 동일시되어왔다. 미소 간에 체제경쟁을 하던 냉전 중에도 미국은 군사력이나 생산력 등 어느 부분에서도 소련에 대해 항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근대화가 곧 미국화를 의미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대학 신입생끼리 모여서 자기 고향에 햄버거 가게가 있는지 없는지를 가지고 도시수준을 따지던 때가 있었다. 미국식 생활은 근대성의 지표였고, 조국 근대화를 위해서 계속 나아가야 할 목표였다. 아이들이 미군 지프차 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기브 미 초코렛’을 외치던 땅에서 보기에 미국은 꿈의 나라였다.  


아메리카니즘의 위기


   그랬던 아메리카니즘이 추락하고 있다. 냉전이 끝나고 미국의 세기가 지속될 거란 기대가 금방 무색해졌다. 2008년 금융위기는 결정적이었다. 미국이 그간 누려온 풍요가 사실은 가계부채 위에 쌓은 빚잔치였다는 사실이 준 충격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미국의 대응은 굼떴다. 세계 온갖 군데에 손을 뻗쳤던 터라 발이 묶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에 미군은 중동에서 계속 죽어나갔고, 이어서 IS처럼 이슬람 극단주의가 세력화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미국은 어디에서건 손을 대면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 ‘마이너스 손’이 돼버렸다.  

   여태껏 미국이 근대성의 상징으로 자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래도 ‘자유’와 ‘민주’라는 가치 때문이었다. 나치독일을 비롯한 파시즘 세력에 대항해서 싸웠던 역사가 부여해준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트럼프 돌풍’으로 내부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공화당 유력 대선후보가 마치 히틀러를 떠올리게 할 만큼 자극적인 표현으로 이민자들과 무슬림 추방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라 반파시즘은 더 이상 미국의 상징이 되기 어려울 지경이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거대한 장벽을 설치해서 이민자들을 막겠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는 인물을 개그맨이 아니라 대선후보라니.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인물이 유력 대선후보로 떠올랐단 사실은 미국을 세계에서 근대성의 상징으로 유지하기 위해 치루는 비용을 미국인들이 얼마나 버거워하는지 보여준다. 트럼프는 구체적인 정책을 이야기할 땐 오락가락하지만 한 가지는 일관되게 이야기한다. 미국 국내 문제, 정확히 말하면 돈 버는 것 말고 다른 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IS가 중동에서 뭔 짓을 하든, 북한이 자기 땅에서 핵실험을 하든 개의치 않겠다고 말한다. 동맹국들 역시 방위비를 더 내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거듭 선언하고 있다. 무서울 정도로 철저하게 경제중심적인 관점으로 일관하는 것인데, 이런 트럼프를 미국인들 중 절반가량이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한국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이런 사정을 ‘축복’으로 환영하는 모양이다. 한국발 트럼프 기회론에는 인터넷 진보언론 <프레시안>이 앞장서고 있다. <프레시안>은 참여정부에서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문정인의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당선이 한국의 자주국방에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트럼프가 주한 미군 급료까지 한국에 부담하게 만들면 한국 여론이 주한미군 철수와 전시작전권 회수에 동의할 거란 이야기다.


한국 진보진영에서 부는 트럼프 기회론


   이러한 주장은 문정인만의 것이 아니다. 이 매체에 실린 다른 칼럼이나 기사에서도 비슷한 관점을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역사학자 이병한 역시 고정 칼럼을 통해 트럼프 당선을 핑크빛으로 그려냈다. 트럼프가 억만장자이기 때문에 군산복합체 등의 눈치를 보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호전적 정책에서 벗어날 거란 이야기였다. 이병한은 심지어 트럼프가 서구의 근대 민주주의가 지닌 신화를 무너뜨려 유라시아의 옛 문명들을 회생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가 염두에 둔 유라시아의 옛 문명들 속에는 한국의 지분도 들어있을 것이다.

   분수령은 지난 5월 17일이었다. 이날 트럼프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김정은과 대화할 것이며 그와 대화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말한 것이 알려지자 그에 대한 장밋빛 기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김정은과 대화에 나설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남한이 언제까지 미국에 의존해서 남북대화를 미루고만 있을 거냐는 이야기였다. 요컨대 이 기회를 빌어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주체성을 키우자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이 일리가 있을 만큼 한국은 안보와 관련해 미국의 힘에 의존해왔다. 주한미국대사가 피습 당하자 한복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서 부채춤을 추면서 쾌유를 기원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최근 <미디어오늘>을 통해 보도된 사실은 충격적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제주해군기지로 보내는 철근 400톤이 배 안에 실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 중 상당수가 선박 복원력을 약화시키는 위치에 실려 있었다고 한다. 과적은 세월호가 침몰하게 된 주요원인으로 꼽혀왔는데, 배에 무리해서 실은 것이 바로 제주해군기지 건설자재였던 것이다. 일부 선원들이 승선을 기피할 정도로 안전에 문제가 있었지만 무리하게 출항한 이유 역시 기지건설 공사기일을 맞추기 위해서였단 이야기도 나온다. 제주해군기지 공사일정은 미국과 약속한 것이기에 시민들의 안전에 우선해서 고려된 것이다.

   조금 더 넓게 보더라도, 그간 미국이 주도한 국제법 질서는 국가 간 계약에 기반을 둔 권력을 해당국가의 사회에 각인시키는 과정이었다. 동아시아에서는 한-미, 미-일 상호방위조약 등의 계약을 가장 상위에 둔 채로 사회질서가 자리 잡았다. 2005년에 평택으로 미군기지가 이전될 당시에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한국군까지 출동시켰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에 UN 안보리 결의도 없었지만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을 이유로 파병했다. 

   그러니 미국은 그간 사실상 계약을 매개로 한 패권을 휘둘러온 셈이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이 지역에 해군기지를 원했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공공연한 비밀이다. 


중국화하는 동아시아라는 문제


   일각에서는 중화질서를 새로운 대안으로서 호출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동아시아 근대성,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중국화한 동아시아가 미국이 주도한 국제법 질서를 대체할 대안이라는 것이다. 다시 <프레시안>으로 가보자. 이 매체는 오랫동안 칼럼을 써온 역사학자 김기협을 초청하여 기획강연을 열었는데, 김기협은 이 자리에서 중국의 군사력이 서구와 달리 “주변에 있던 지역들을 안정시키는 방어적 성격”이라고 구분 지었다. 게다가 중국의 조공체제가 “약한 국가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서로 다른 위치에서 하나의 질서를 위해 공헌하자는 식의 유인책”이라고 긍정했다. 이처럼 중국화한 동아시아를 긍정하는 그의 입장은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와 '대안으로서 동아시아 전통의 가치'에 관한 책을 소개하는 연재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으로 표상된 근대성이 몰락하는 이 시점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핑크빛 기대는 두 가지로 수렴된다. 하나는 주체성 회복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화한 동아시아의 부상이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 현실을 돌아보면 핑크빛 기대는 어김없이 깨진다. 최근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보이고 있는 행태를 보면 그렇다.

   최근 중국은 남중국해 남사군도에 있는 암초들을 매립하여 인공섬을 만들고 있다.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려는 무리수다. 이 지역은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이 오래 전부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서 갈등이 이어져온 곳이다. 중국은 인공섬에 활주로 등 군사시설을 배치하여 이 지역에 대한 지배를 확실하게 하려고 나선 모양새다. 중국의 군사력이 “주변에 있던 지역들을 안정시키는 방어적 성격”이라던 김기협의 설명이 무색해지는 상황인 것이다.

   여기서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논리는 더욱 기가 막힌다. <주간동아>(2015.11.16)의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작년 11월 한 연설에서 “남중국해 도서들은 오래전부터 중국의 영토였다”며 “남중국해에서 영토 주권과 해상에서의 정당한 권익을 수호하는 것은 중국 정부가 짊어진 책무”라고 말했다. 명나라 영락제 때 해양원정에 나선 정화의 항해 때부터 이 바다가 중국의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이 기사는 “영해나 EEZ 같은 국제법 용어 대신 ‘정당한 권익’ 같은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섬과 암초의 구분이나 육지로부터의 거리처럼 국제법상의 구체적인 논의를 모두 뛰어넘은 채로 바다에 U자형 선을 긋고 영유권을 주장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이 중국화한 동아시아가 보여주는 천하위공(天下爲公)이란 말인가? 김기협이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조공체제라는 것도 사실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예식을 반복함으로써 유지하는 ‘소극적 평화’에 지나지 않는다. 유교적 천하질서에서 ‘평정(平定)’이란 말은 작은 것이 감히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억눌러서 유지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했다. 높은 것은 높은 자리에, 낮은 것은 낮은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바로 유교적 평화질서였다. 그러니 지금의 중국이 보이는 행태가 왜곡되었다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계약에 기반을 둔 권력과 전통을 등에 업은 패권 사이에서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메리카니즘 몰락 이후에 현실을 핑크빛으로만 보기가 어렵다. 한국이 더 많은 분담금을 내고 주한미군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하던 방식으로 서해에서 영유권 주장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받아들여야만 한다. 중국화한 동아시아에서 조공체제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 선택지는 북한의 길이다. 지난 1월 제4차 핵실험 직후 조선중앙TV는 특별 중대 발표를 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의 엄혹한 현실은 자기 운명은 오직 자기 힘으로 지켜야 한다는 철의 진리를 다시금 명백히 실증해주고 있다. 사납게 달려드는 승냥이 무리 앞에서 사냥총을 내려놓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은 없을 것이다.” 한국이 주한미군을 떠나보낸 뒤에 오로지 자국의 힘으로만 중국과 상대하려면 이러한 자세까지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러한 자세를 취한 사회가 지금의 북한처럼 경직되지 않을 수 있단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주체성을 위한 고난의 행군 중에는 자국의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 시민들의 안전을 볼모로 삼는 행태 또한 비일비재했다는 점을 북한의 역사가 보여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메리카니즘의 몰락을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다. 한국 진보진영 일각에서 불고 있는 트럼프 기회론 역시 위험한 망상이다. 우리는 지금 계약에 기반을 둔 권력이 몰락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을 등에 업은 패권이 발흥하는 걸 상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 사이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모색해야만 하는 때다.



* 필자소개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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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불당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며칠 전에 딸내미가 말 한대로 정말 아파트 현관 근처 화단에 

 불당이 차려져 있었다. 



    화단이라 하기엔 관심간 흔적, 손간 흔적 없는, 

그나마 평소엔 주차한 차량에 가려 눈에 띄지도 않는 

초라한 장소에 ‘떠어억!’  


    우리 식구 셋이 집에 들어가는 길에 짧은 토론이 시작됐다. 

“누가 갔다 놨을까?” “버린 거야? 차린 거야?” “노인이겠지?” 



    그러자 남편이 시니컬하게 정리한다. 

“집에 두자니 궁상맞고 버리자니 찜찜하고 그래서 택한 곳이 화단이지!”  


    자세히 보니 손바닥만 한 크기에 재질도 저렴이 수준이고 

 여기저기 깨져 있는 것이 바로 옆 역시 버려진 작은 화분과 정확히 닮은꼴이다. 

추측하자면 버리는 죄책감에 대한 면피용이 저 불상의 실존이다. 

버린 것도 아니고 안 버린 것도 아닌 어디쯤에 

 중생의 평온이 걸쳐있도록 하는 위치. 


    단지 옆에 있는 화분보다 불상이 화두가 되는 이유는 

종교적 아이콘이라는 형상이 

버리는 자에게도 지나가다 보는 자에게도 재질 너머의 무엇으로 보이게 하고 

자꾸만 의미를 생산하고 평온을 생산하고 불안을 생산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것이 어디 종교적 아이콘만의 것이랴! 

사람이 허구로 만드는 모든 것이, 아니 사람이 만드는 모든 것이 

이름 없던 욕망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아닐까! 

종교가 덧붙일 게 많은 것일 뿐. 



    어찌됐든 아파트 화단 미니 불상의 미소는 ... 

석굴암 본존불보다 쎄다! 

입고리가 셔어언 하게 올라갔다! 

미소 질듯 말듯이 아니라 확실한 미소다! 

그게 바로 고급 엘리트 예술과 다른 키치의 전형이라 해도 

확대해서 보니 아우라 있네! 

게다가 부처님 어깨너머 솟아오른 봉오리여! 

여름 한나절 만에 키 크는 힘이라니 

이거 우담바라보다 신비한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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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카데믹하지 않아서 더욱 아카데믹한 단상

넷. <외로움과 머리카락>




 김정원*



    다시 또 사랑 이야기이다. 아득함이거나 외로움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머리카락에 관한 이야기임은 분명하겠다.


    나는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는 것을 즐겨 하는데,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그 중 하나다. 이만교의 소설이 원작인데, 보통의 경우와 다르게 내겐 소설보다 영화가 더 나았다. ‘연희’역의 엄정화가 예뻤던 탓이다. 영화에서의 연희는 ‘도리에서 벗어나는 삶’을 사는데 망설임이 없는 여자다. 소설의 연희와는 달랐다. 그러니 예쁠 수밖에. 연희는 결혼한 여자지만, 준영의 ‘집’을 드나든다. 준영의 직업은 시간강사다. 연희는 넉넉잖은 준영의 사정을 알고는 그가 ‘집’을 구할 때 자신의 퇴직금을 꿔준다. 그 돈으로 연희와 준영만을 위한 공간이 마련된다. 연희가 불륜의 주체가 된 셈이다. 준영은 학생운동을 했던, 그러니까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면서도 비판적인, 말하자면 ‘의식 있는’ 남자다(지난 글에도 밝혔듯, 진보적이라 일컬어지는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준영 역시 리버럴한 엘리트-독신주의자이자 제도적 관계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즉 내게 그리 새로울 것 없는 인물이다).


    그런 준영이 이제 연희를 기다린다. 그녀의 결혼 생활의 틈새 속에 준영이 놓여 있다. ‘그 집’에서 둘은 먹기도 하고 자기도 하지만, 연희의 ‘틈’이 다하면 준영은 혼자 남는다. ‘리버럴 엘리트-독신주의자’스러운 강의를 한 뒤에도 그는 연희를 기다린다. 이내 연희가 오면 함께 먹기도 하고, 자기도 하지만 밤이 되면 혼자가 된다. 이러한 반복된 생활에 준영은 차차 화가 나기 시작한다. 사실 그가 화가 난 연유는 연희를 기다리는 자기 자신에게로부터 온 것일 게다. ‘관계에서 자유로운’ 강사로서의 시간을 막 마친 뒤, 이제 ‘그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길에서 연희와의 관계를 묻고 또 묻는 그 마음이 텁지근했을 것이다. ‘결혼한 여자의 삶’으로 내처 돌아가 버리는 연희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닌, 그런 연희를 욕하는 자신에게, 말하자면- 연희와의 결혼을 상상하고 있는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잔뜩 화가 났을 것이다. 결국 수틀린 준영, ‘그 집’에 다시 들어선 연희에게 열을 내다 속을 들키고 만다.


    “넌 그냥 가면 그만이지만, 난 아주 기분 엿같애. 니 쓰레빠 굴러다니지, 베개에 니 머리카락 붙어있지……”


    바로 저 머리카락. 나는 저 머리카락이 참 슬펐다. 연희를 욕망하는 그의 실상이 벌컥하고 쏟아져버려 슬펐고, 소루하게 드러나버린 준영의 진심이 슬펐다. 그러나 베게에 붙어있던 머리카락만치는 아녔다.


    머리카락은 별안간에, 그리고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보통의 순간에 말이다. 지금처럼 글을 쓰다가 커피 한 모금 들이킬라 할 때, 머그잔을 타고 주욱-하고 딸려오는 그 사람의 머리카락은 쓰던 행위를 멈추게 하기에 충분하다. 욕실 거울에서 발견한 그 사람의 머리카락은 이를 닦는 것을 멈추게 하고 그 앞에 가만 서게 만든다. 방바닥을 훔치다가도 드러나는 ‘그 사람’의 머리카락은 하던 걸레질을 멈추게 하고,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있게 한다. 그런데 그런 머리카락을 베개에서 발견하다니, 잠은 다 잤다. 손에 잡히고, 만져지던, 그러니까 아주 내 옆에 있던 ‘그 사람’과의 지난 시간이, 곧 ‘그 사람’의 부재가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인 것이다. 왔다가 돌아갈 것이면 흔적일랑은 남기지도 말 것이지, 영역 표시하듯 많이도 자기 존재를 알리고 가셨다. 분명 외롭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베갯잇에 붙은 그것 때문에 다 틀려버린 것이다. 나는 혼자서도 잠만 잘 자는 여자였는데, 그놈의 머리카락이 굴러다니는 통에 한참을 뒤척이게 된다.


    길다란 내 것과는 생김이 달라, 더욱 눈에 띄는 그것들을 탈탈 털어내려다, 한 가닥을 슬며시 (붙)잡아본다. 몽땅 다 털어내 버리는 게 아쉬워진 것이다. 그런 내가 구차스럽게 느껴져 얼마 못 가 스카치테이프로 말끔히 정리해버린다. 집 밖에 잘 나가지 않는 나에게 커피, 이닦기, 방바닥, 침대… 이런 것들이야말로 내 일상의 본질과도 같은 것들인데, 그 속에 초연하게 자리잡고 있는 그것들을 해치울 필요가 있었다. 역시나 스카치테이프는 제격이었다. 어떤 것들은 고운 결의 생머리였고, 어떤 것은 반곱슬의 얇은 것이었다. 생각을 더듬어 보니 또 다른 ‘그 사람’의 것은 새치였다. 


    이처럼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머리카락은 강력하다. 애절한 가락의 사랑노래는 비견될 바가 아니다. 왜냐하면 머리카락은 실로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잡담도 사라지고 나니, ‘그 사람’ 머리카락에 대한- 나아가서는 ‘그 사람’에 대한, 결국에는 ‘나’에 관한 - 올바른 이해만이 남게 된다. 다시 말해, 내 일상에 머물렀던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나, 혼자인 나, 사랑을 나눴던 나, 남겨진 나, 그래도 밥만 잘 먹는 나 등등 결국에는 ‘나’에 대한 ‘이해가 밝아지는 시간’ 속으로 침잠하게 되는 것이다. ‘침묵하는 머리카락’과 – 그 머리카락의 ‘침묵을 듣는 내가’ 일상에서 실존론적으로 개방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하찮기 그지 없는 ‘그 사람’의 머리카락에서 나왔다. ‘그 사람’의 머리카락은 진실로 침묵하고 있지만, 실은 아주 다른 양태로 나에게 말을 걸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 가로되, “침묵은 말의 한 존재양식으로서 어떤 것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자기를 밖으로 말함이다” 라고 하였는데, 그 역시 아렌트의 머리카락을 보고 정리한 구절이려니 한다.


    귀신같이 글 잘 쓰는 남자, 김훈 역시 머리카락에 조예가 깊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의 속옷에 가끔씩 여자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다. 여름 속옷에도 붙어 있었고 겨울 속옷에도 붙어 있었다. 여름의 머리카락과 겨울의 머리카락이 같은 모질이었다. 어깨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다. 염색기가 없는 통통하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었다. … 겨울 속옷의 섬유 올 틈에 파묻힌 머리카락을 손톱으로 떼어내자 더운 방바닥 위에서 머리카락은 탄력을 받고 꿈틀거렸다. 젊고 건강한 여자의 나신이 환영으로 떠올랐다. 환영 속의 여자는 이름을 가진 어떤 여자라기보다는 여자라는 종족의 먼 조상이거나, 내가 알지 못하는 모든 익명의 여자들이 다 합쳐진, 여자의 군집체처럼 느껴졌다. 화석 속의 여자가 세상으로 뛰쳐나와 내 앞에서 한 올의 머리카락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환영은 이내 지워졌다. 환영이 사그라진 자리에는 분노도 슬픔도 없었고 휑하니 빠져나간 세월의 빈 자리가 허허로웠다. – ‘언니의 폐경’ 중 

         

    ‘남편’이 만난 ‘그 사람’이 탄력 있게 꿈틀거리는 젊은 육체를 가졌을 수도 있고, 통통하고 윤기가 흐르는 여자일 수도 있겠다. 그런 여자들의 전부가 ‘남편’의 여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기에 폐경기의 자신에게는 없는 촉촉하고도 축축한 젊음에 대고 지청구를 읊조렸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러한 여자의 머리카락에 관한 주시가 추상적이든 구체적이든, 상상이든 현실이든, 몸이든 마음이든 간에 이는 남편의 외입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머리카락을 통한 여자의 헛헛함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차라리 맞을 것이다. 남편 속옷서 발견 된 머리카락은 남편 외도의 단서가 되고, 나아가 남편의 전날의 밤을 말해주고 있지만, 결국에는 분조차 일지 않는 그녀의 깡마른 정신을 들여다 본 일상의 통찰 또는 여자의 존재론적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머리카락의 강력한 영향력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내가 ‘그 사람’의 집에 드나들 적에는 말끔하게 머리카락을 치워놓고 나오곤 했다. 말 없는 나의 그것이 행여나 그 사람에게 다른 양태로 말을 걸어올 것을 염려해서였다. 더 없는 배려다. 그런데 무념한 ‘그 사람’이 ‘머리카락의 말 걸어옴’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작자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퍽이나 그랬을까 싶다. ‘그 사람’들이 나만큼 예민하지도, 나만큼 경청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는 뒤처리를 달리했던 것 같다. 흩뿌리는 것까지는 아녔어도, 방바닥이건 침대건 간에 그 긴 것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나온 적이 꽤나 있었던 것 같다. 내 몸의 일부인 나의 머리칼을 ‘그 사람’의 일상에서 발견하고서는 곰곰이 되새김질 해보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즉, 나의 존재부터 나의 부재까지를 자못 느꼈으면 했던 것이다. 준영과 같이 관계에 대해 자유롭기를 원했던 사람일수록 더욱 그리했던 것 같다. 나의 머리칼이 ‘그 사람’의 신념을 파고들어 좀먹어 주길 바라는 마음에 말이다. 나의 자극이 없는 곳에서도 나를 경험하기를 소망하며 약간의 너저분함을 자처했던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그 사람’ 역시도 나를 향한 자신의 마음의 꼴을 살펴보기를, 그리하여 그리움일수도 헛헛함일 수도, 아님 또 다른 것일 수도 있는 자기 자신의 ‘뫔’을 이해할 수 있는 형편이 되길 갈망했던 것이다. 출발은 나의 욕망이었지만, 끝은 ‘그 사람’이 존재물음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일타 쌍피 전략였던 것이다.


    “은폐” 되어 있는 ‘나’를 고요하고 은밀하게 만나는 시간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된 사랑도 연애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인데, ‘머리카락’은 이에 따른 가장 영향력 있는 증거이자 그것의 질료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것이 됐든 좋으니, 나의 머리칼을 통해 특정 “기분”- “권태”, “불안”, 과장, 허위, 고독, 등등- 을 ‘그 사람’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쓰고 보니 죄다 부정적인 기분들만 늘어놨다. 분명 누군가는 충만, 행복, 기쁨 같은 기분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아직까지 저 단어들과 친밀하지 못 하다). 뭐가 됐든지 간에 갑자기 들이닥친 그 “기분”을 묻고, 음미하며 ‘본래적 자기’를 발견 할 수 있는 남자, 나는 그런 남자를 찾고 있었나 보다. 그러니까, 내가 나의 머리칼을 ‘그 집’에 그대로 두었던 더 깊은 이유는, 그가 헛헛함이나 공허함 속으로 가라 앉을 수 있는, 바로 ‘고독한(또는 고독 할 수 있는)남자’가 되길 바라는 주술적 행위였던 것이다. 나의 길다란 ‘머리카락의 말 걸어옴’을 들을 수 있고, 불현듯 만나게 되는 머리카락의 “순간” 혹은 “시간” 안에서 충실하게 외로울 수 있는 그런 남자를 향한 욕망이 그것의 바탕이었다.


    떨궈진 ‘머리카락’에게 가만히 귀 기울이고, 고유한 자기, 즉 존재의 깊은 곳으로 자작자작 걸어 들어가는 ‘그 사람’을 소망하는 이야기 즉, 내 이상형에 대한 비망록 하나를 정리한 듯 하다. 사랑은 듣는 것이라더니, 미상불 그 말이 참말로 맞다. 지금 ‘그 집’에서 ‘그 사람’의 머리칼 하나 눈에 들어 왔다면, 이제 그것의 이야기를 들어 주기를, 그리고 한 번쯤은 그것으로 인해 많이 외로워하다가 고독해지기를 간소하게나마 요청하는 바이다.


* 필자소개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공부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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