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녕 작가의 〈서울_기억_반기억〉 전시회를 관람하고


 라운드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눈 뒤 



최진영
(Colgate Rochester Crozer Divinity School 교수)

 


    역사서술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박물관, 교과서, 기념비 등은 기록된 역사를 보존한다. 기록된 역사 외에 과거를 보존하고 과거와 관계 맺는 다른 방법들로 구전과 기억 등이 있을 것이다. 역사를 쓸 수 있는 도구와 권력을 소유하지 못한 민중들은 주로 구전과 기억을 통해 과거를 그들의 현재의 삶의 일부로 만든다. 그들은 기억에 기초해서 이야기를 구성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통해 기억하기도 한다. 때로 기억된 이야기들은 일기나 메모의 형식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공식적인 역사서술은 획일적이고 그 해석도 제한되어 있는 반면, 이야기로 전해온 과거의 전승들과 기억은 다중성을 지니고 있다.

   과거에 대한 지식, 또는 과거와 관계하는 또 한 가지의 영역이 있다. 과거에 대한 기억마저도 억제될 때, 그 억압된 과거는 유령처럼 현재의 시간으로 찾아온다. 이러한 현상을 huanting이라고 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억울하게 죽음을 경험하거나 제대로 장사되지 않은 존재가 혼령으로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로마 황제 네로가 자신이 독살한 모친 아그리피나의 혼령의 출현으로 시달린 일을 전한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햄릿》,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Beloved)》, 그리고 우리 설화 《장화홍련》의 망령들에 이르기까지......


   어떤 억눌렸던 과거의 사건들, 당시 현재화되지 못하고 기억에서마저 잊혀진 억압된 그 존재와 사건들은 마치 유령이 돌아오듯 오늘 어떤 자리로 찾아오고 또는 미래의 시간으로 다가가 서성인다. 이야기와 기억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haunting에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유동성 또는 혼종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말로, 공간의 한계가 허물어지고, ‘과거-현재-미래’라는 일차원적 시간의 순서가 흐트러지며, 그리고 존재와 부재와의 경계가 뒤섞이는 현상이다.

   순전히 나의 관점에서, 자우녕 작가의 한강을 중심으로 한 서울에 대한 〈기억, 반기억〉은 바로 이렇게 과거와 현재, 장소와 비장소, 주체와 객채, 존재와 부재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서울에 위치한 한강 자락은 작가의 고향으로 잊혀진 과거의 공간인 동시에, 출퇴근 길에 늘 바라보면서도 접근하기 어려운, 부재와 다름없는 곳이다. 한강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역사적 기념비가 새겨진 곳이고 한국의 밝은 미래를 예시하는 곳이면서, 또 수많은 이들이 던진 몸들, 죽은 고기떼, 버려진 기억들이 부유하는 곳이다.

    작가는 지난 해 추운 겨울, 기억의 장소, 모래밭이 드넓었던 한강변 광나루를 찾는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걷고 또 걸어 양평까지 이르지만 한강은 그의 기억을 돌려주지 않는다. 기억은 오직, 마포대교에서의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 2〉 촬영 중 떠오른 시신 한 구의 이미지, 작가가 한강 뻘 속에서 캐낸 한 가족의 한복과 “소원성취”가 적힌 부적, 차와 인적이 드문 광진교를 휘어감는 바람과 물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통해서만 찾아온다. 그는 한강에서 ‘수행’ 중, 강변에 묻힌 이야기들을 캐어 내고, 강을 스쳐가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고통과 욕망을 목격한다. 한강, 그곳은 억눌렸던 기억들이 회귀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출몰하고 배회하는, 그리하여 예기치 않은 타자와 만나는 공간이었기에, 자우녕 작가의 〈기억-반기억〉은 단순한 노스탤지어의 재현도 아니고 도시공간에 대한 이념적 비평도 아니다.

    그는 시간과 공간, 존재와 부재,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넘어서는 한강이라는 공간을 전시장 안에 형상화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거기 있는 것들은 물화될 수 없는 형상이고, 기억에 가두어 놓을 수 없는 초시간적 역사이기에 관람자의 몫은 감상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예기치 않은 존재-비존재들과의 조우를 엿보는 것이다.

    오늘 한강은 우리에게 있는 ‘비존재’인 동시에 ‘없는’ 존재이다. 도시의 욕망이 강 저변에 똬리를 트는 순간 무의식들은 쉴 새 없이 강의 남과 북을 횡단한다. 나의 그리고 타인의 기억들은 뒤엉켜, 부유하는 바람과 물소리를 통해서만 들려온다. 이렇게 기억되고 기억에 반하여 흐르는 것이 한강뿐일까. 성수대교는 어떻고, 세월호는 또 어떠한가? 기억은 어느 시점까지 살아있다. 그러나 역사에 쓰이지 않고 박물관 안에 박제화되지 않은 어떤 기억들, 존재들, 사건들은 유령처럼 어느 순간 산 자들에게 돌아온다. 자우녕 작가의 작업은 그들을 초대하는 몸짓으로 느껴진다. 역사 속에 억울하게 매장된 망자들의 출몰을 기다리기 위해 온 겨울 끝이 보이지 않는 강변을 걷는 그 걸음은 이제 시작된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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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그림책 시리즈 II  「소금밭」4



소금밭의 바닷물이 증발하면서 거품이 일듯이 섬의 시간은 가끔 사나운 형상이 되곤 한다.









 


자우녕 作 (미술작가)


- 작가소개

프랑스 마르세이유 조형예술대학에서 Fine Arts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Master's Fine Arts과정을 이수, Diplome를 받았다. 2016년 한국복지예술인재단에서 파견되어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였으며 경기만에코뮤지엄의 <선감이야기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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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그림책 시리즈 II  「소금밭」3





하루는 시집간 시누이가 와서 인천 댁이 딴 포도를 슬금슬금 옮기고 있다. “뭘 도와주냐, 이제껏 모른 체해놓고 이제 와서 뭘…….” 하지 말아라 하며 만류했는데도 계속하기에 그녀는 시누이의 멱살을 한 움큼 움켜쥔다. 그런 힘이 어디에서 났는지 시누이를 들었다 놨다 한다.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하며 악을 쓰다가 마침 다른 손에 포도 따는 가위가 들려 있어서 시누이 목에 댄다. “오늘 너 죽이고 내가 감방 가겠다” 하고 윽박지르는데 동네사람들이 말려 할 수 없이 놔준다. 죽을 뻔한 위기에서 풀려난 시누이는 염전에서 일하고 있는 오빠한테 가서 그대로 이른다. 그때 인천 댁의 남편은, 네 언니가 오죽했으면 그랬겠냐 하고 인천 댁을 두둔한다.



치매 3년, 중풍 10년, 모두 13년을 시부모 병수발에 바치고 시동생, 시누이 키우고 시집⋅장가보내는 동안 인천 댁의 아이들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관습이어도 상관없고 운명이어도 상관없는 삶에 순응하며 살았건만 대부도 읍내로 들어가는 길에서 장성한 둘째 아들을 잃고 만다.


교통사고가 일어난 그날, 하늘이 갈라지고 어두워진 그날, 인천 댁은 그만 정신 줄을 놓아버린다. 야윈 얼굴이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가 멍하니 천장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가 아무 신이나 신고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온갖 바람을 맞고 돌아다니다가 급기야는 어두운 방구석에서 그대로 쓰러져버린다. 그녀의 몸은 염장한 무처럼 점점 쪼그라져 오랫동안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 흐른 세월이 얼만데 제 손으로 키운 시동생, 시누이는 인천 댁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래도 나머지 자식들이 있기에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방문을 열고 나온다. 햇빛이 눈을 찌른다. 색 바랜 꽃문양의 모자를 쓰고 어지럽혀진 농기구 중에 가위를 용케 찾아 손에 들고 밥 달라고 쳐다보는 개들을 지나 염전 앞 포도밭 언덕으로 올라간다. 포도밭 사건은 이런 연유로 생긴 일이다. 그날 저녁 시누이는 오빠가 준 포도상자 한 박스를 기어코 손에 받아 들고서야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집 뒤뜰엔 여러 그루의 두릅나무와 엄나무가 자라고 있다. 엄나무에 돋아 있는 가시는 악귀를 물리친다 하여 집집마다 엄나무를 심어놓지 않은 사람이 없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가지를 꺾어 현관에 달아놓고 가족의 건강을 비는 것이 대부도의 오랜 풍습이기 때문이다. 남은 자녀들만큼은 잘 건사하고 염전 질은 절대 하지 않아야겠기에 인천 댁은 올해도 엄중하게 가지를 꺾는다. 그러나 포도밭 사건 이후로도 몇 번은 성난 본능이 치밀어 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기에 그녀의 손은 제 스스로 엄나무의 가시가 된다.


“비가 오면 쉬거든요. 염전은 비 오면 일을 못하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 부부는 집안일 하거나 밭일을 합니다. 비를 맞으면서.”




 


자우녕 作 (미술작가)


- 작가소개

프랑스 마르세이유 조형예술대학에서 Fine Arts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Master's Fine Arts과정을 이수, Diplome를 받았다. 2016년 한국복지예술인재단에서 파견되어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였으며 경기만에코뮤지엄의 <선감이야기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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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그림책 시리즈 II  「소금밭」2



인천댁네는 흔하디흔한 염전 어귀에 겨우 흙집 한 칸을 얻어 옹색한 세간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쉴 새도 없이 소금 거두는 일을 시작한다. 아무리 남편을 돕는다 해도 염전 일은 말 그대로 뼈가 빠지는 노동이다. 매일 대파 질을 하면서 엉겨 붙은 소금 알갱이를 부숴 모으고 젖은 소금을 창고까지 실어 날라도 목돈을 손에 쥐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30년 전 그때만 해도 도급제여서 여러 사람이 한 팀을 이루어 소금을 생산했다. 그러니 적은 수입을 또 나누어야만 하는데, 그렇게 돌아오는 품삯이 하도 낮아 밭농사를 하고 포도 농사도 하며 틈틈이 식당 일도 한다.


어영부영 터를 잡고 살게 되니 우선 오갈 데 없이 되어버린 시부모님을 불러들이고 시동생, 시누이들도 건사하게 된다. 줄줄이 아들 넷을 키우고 그 중 하나는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도 한참을 지난 어느 날, 황망함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섬의 윤곽이 뚜렷이 드러난 날, 그녀는 알게 된다. 자신의 얼굴에 주름살이 깊고 눈은 삼각형으로 찌그러져 있으며 검은 장화엔 소금물이 희끗하게 얼룩져 있다는 것을.


그래도 인천 댁은 여전하다. 어디서 굴러 들어온 시베리안 허스키 개와 일본산 개가 돌아가며 털갈이로 마당을 어지럽혀도, 실개천에 활짝 핀 개복숭아꽃이 그녀가 눌러 쓴 햇빛가리개 모자의 꽃문양을 닮았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이면 염전이 보이는 벌판으로 내달리는 것이다.


“시집와서 엄청 고생했네요. 시동생들 학교 보내고 장가보내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우리 자식들이 자라고 장가를 가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또 뭔가 계속 해줘야 하구요. 지들, 집 산다고 하면 또 조금 보태줘야 하고…… 보세요, 지금도 김치 담고 있잖아요. 며느리 손에 들려 보내주려고.”


“예전엔 여기 비행기 소리가 굉장했어요. 그 소리가 얼마나 무서웠던지 집에 들어가 있다가 지나가면 다시 나오곤 했는데 지금은 무서운 게 없어요. 오히려 사람들이 나를 무서워하지요. 사람들은 섬이기 때문에 엄청 드센데 나도 그렇게 된 거지요. 그렇게 안 하면 못 살겠더라구요. 인천에서는 고무신에 치마만 입고 살았었는데 여기서는 고무신 내다 버리고 운동화 사서 신었어요.”


“비가 오면 쉬거든요. 염전은 비 오면 일을 못하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 부부는 집안일 하거나 밭일을 합니다. 비를 맞으면서.”





 



 


자우녕 作 (미술작가)


- 작가소개

프랑스 마르세이유 조형예술대학에서 Fine Arts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Master's Fine Arts과정을 이수, Diplome를 받았다. 2016년 한국복지예술인재단에서 파견되어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였으며 경기만에코뮤지엄의 <선감이야기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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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그림책 시리즈 II  「소금밭」1


 

  1990년대 후반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시화호 방조제는 대부도를 육지와 연결하면서 어촌민에게 교통의 편리함을 제공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지락의 보고였던 갯벌이 말할 수 없이 훼손되었고 식생들도 변하였습니다. 섬 아이들은 사라졌고 노인들만 남았습니다. 이제 80이 넘은 노인들의 여생도 그리 많이 남아있진 않지요. 바야흐로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의 환경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섬의 기억을 간직한 연장자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섬 노인의 인생사는 오롯이 대부도의 역사이며 한국 근대사의 축소판이기 때문입니다. 환경을 기반으로 기획된 「환경그림책 시리즈」는 시간에 대한 사유와 상상력을 함께 전달하고자 합니다.

 

기획 자우녕

2013년 경기창작센터 기획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활동하면서 공공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대부도 오래된 집 프로젝트와 아시아 글로벌 커뮤니티_캄보디아, 황금산 프로젝트, 선감이야기길_선감역사박물관, 내가 이웃이 될 때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글: 자우녕 

사진: 최영주, 자우녕 

디자인: Damien Manuel 

인쇄 : 2016년 9월, 인간의 기쁨

 




* 이 글은 경기도 안산시 대부동동에 있는 염전에서 일하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를 기초로 지어졌습니다. 염전이라는 하나의 공간은 두 염부의 기억으로 중첩되며 재구성됩니다. 나는 이를 두고 기억의 지리학이라 부르고자 합니다. 


여우살이


섬이 다가온다.

세 살배기 큰아이와 쌍둥이 아기들을 품에 안은 채, 곱디고운 인천 댁이 해무에 가린 섬을 바라다본다. 가는 비가 흩뿌리듯 밀려오는 안개는 남편의 처진 어깨를 넘어 아기엄마 얼굴에 와 닿았다. 다가오는 듯 멀어지는 듯 여전히 흐릿한 섬의 풍경이지만 저곳에서는 먹고살 수 있으리라. 막연한 희망을 물안개 속에 풀어놓고는 출렁거리며 열리는 하얀 바닷길에 몸을 맡긴다. 한 가족을 실은 작은 배가 인천항을 떠나 대부도 방아머리에 도착하는 섬의 풍경은 그대로 사라질 것만 같다. 이때를 두고 말하는 것인가? ‘간절함’이 어떤 서사를 만들어도 그것은 섬이라는 자체 안에서 소멸된다는 어느 문학비평가의 말을 떠올린다. 


 섬은 상징이 되고 상징은 섬이 된다.



 



 


자우녕 作 (미술작가)


- 작가소개

프랑스 마르세이유 조형예술대학에서 Fine Arts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Master's Fine Arts과정을 이수, Diplome를 받았다. 2016년 한국복지예술인재단에서 파견되어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였으며 경기만에코뮤지엄의 <선감이야기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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