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생각하며...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부활절이 지나고,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이 “할렐루야”와 “평화”이다. 예배형식과 교회 절기, 그리고 거기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공회에서는, 사순절 기간 동안 예수의 부활을 의미하는 “할렐루야”를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40일 동안 침묵 속에 묻혀 있던 할렐루야는 부활절 새벽 (또는 부활절 직전 토요일 일몰 후)에, 말 그대로 부활한다. 부활절부터 오순절 성령 강림 주일전까지, 교회에서는 일곱번의 주일을 부활절로 기념한다. 이 기간 동안 읽혀지는 각기 다른 복음서 대부분은 부활한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예수의 죽음 후에, 일상이 파괴되고, 두려움과 절망감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현실의 상황과는 동떨어진 “평화가 너희들과 함께 하기를” 하고 기원하는 예수의 인사는 무언가 황당한 것 같으면서도, 시기적절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인간은 평화에 대한 경험을 통해 이를 알게 되고, 그 소중함을 갈망하기 보다는, 전쟁과 폭력 등 평화가 없는 상황과 반평화를 경험하면서, 평화를 상상하게 되고 지향하게 되기 때문이다. 평화에 대한 존재론적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진 베스케 엘쉬타인 (Jean Bethke Elshtain)은 전쟁과 평화에 대한 신학적 고전이 된 “여성과 전쟁 (Women and War)”이란 책에서, 평화는 전쟁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정의되고, 상상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평화 운동은 반전운동으로, 마치 전쟁이 존재하지 않으면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Elshtain, 1995).  


          반면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폭력을 사용한 가해자가 무슬림이거나 이슬람과 연관이 있는 경우에는, 논리가 달라진다. 즉 이들의 정신 상태나 통제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분노가 문제가 아니라, 이슬람이란 제도화된 종교가 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문제이다. 이슬람이 폭력을 조장하는 비윤리적인 종교이기 때문에, 이 종교에 심취한 무슬림들은 테러리스트들이거나, 잠재적 테러리스트들이다. 더 나아가 무슬림들은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다른 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 보다 높다고 본다. 이러한 논리는 반이슬람 정서를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슬람이 테러리스트의 종교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약 이슬람이 테러리스트의 종교라면, 기독교, 불교, 유교, 힌두교, 등등 세상의 모든 종교들이 테러리스트들의 종교가 될 수 있다. 같은 논리로, 비종교인들도 충분히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테러리스트는 종교 논리 보다는, 정치, 사회, 문화 환경 때문에 생겨나는 경우가 더 많고, 인간들의 본질적인 폭력성이 해결되지 않는한, 테러는 항상 일어날 수 있다. 더구나 극단주의적 이슬람 교도들이 (또는 극단적인 기독교, 유대교, 불교 등등의 신봉자들) 테러리스트가 될 확률이 높다고 주장하기 전에, 이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 또는 정신 상태, 가족과 친구들의 관계 등등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테러리스트들을 행동화시키는 여러 가지 요인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전쟁의 역사는 항상 거대 담론으로 기록되어 왔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은 알지만, 왜 일어났는지, 누가 전쟁을 결정했는지, 병사들은 어떻게 조달되었는지, 병사들의 가족들은 어떻게 전쟁을 견디었는지, 일반 사람들은 전쟁을 어떻게 버텼는지, 전쟁이 끝난 후에 병사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와 기억들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평화 담론도 전쟁 담론과 마찬가지로 거대 담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평화 담론이 전쟁이나 전쟁 가능성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란 암묵적 전재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군사전략, 군대 재배치, 전쟁 무기와 국경 안보 등등이 평화와 안전을 위한다는 정치 담론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일 것이다. 시민 평화 운동권에서 들리는 언어들도 대부분, “전쟁없는 세상을 만들자,” “군비 감축하자,” “군대 축소하자,” “군사시설을 줄여라,” “주한미군 감축” 등등 군사화되어 있다. 평화에 대한 논의, 언어가 군사화가 되어 버리면, 평화를 위한 정치적 결정들이 일반 시민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여기서 발생하는 윤리적 딜레마는 평화를 위한다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고, 희생양이 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즉 전쟁의 피해자들도, 평화의 피해자들도 같은 그룹의 사람들이 되는 아이러니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결정할 때, 누구를 위한 전쟁이며, 누가 이익을 얻게되고, (또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전쟁이 사회 구성원들 (또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화 정책과 평화 담론 또한 비슷한 방식의 분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평화 유지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군사정책에는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은 ‘전쟁 담론에서 자유로운 평화는 어떠한 평화일까’이다. 어떻게 전쟁과 군사화에서 자유로운 평화 담론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음을 스스로 깨달으면서, 부활한 예수께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너희에게 주겠다”라고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란 단순히 개인의 믿음과 영성 차원에 머무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관상 기도와 묵상, 통성 기도 등등의 영성 훈련을 통해 얻게 되는 깨달음과 기쁨, 평안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종교체험은 중요하다. 그러나 도로테 죌레 (Dorothee Soelle)가 기독교 신비주의의 연구를 통해 주장하는 것처럼, 기독교 영성가들은 깨달음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고,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를 제대로 보고 맞서고,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화를 화로 다스리고 악을 악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다스려 평화로운 인간 관계, 사회 관계를 체화하려고 하였다 (Silent Cry, 2003). 즉 인간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라, 셀 수 없는 수많은 관계 속에 사는 존재이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관계의 회복이야 말로 우리의 영성이 향하는 방향인 것이다. 소중히 여기는 관계가 깨어질 때 겪는 상실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큼 감정적 고통이 크다. ‘나’의 고통에서 벗어나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 보이지 않는 세상의 관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영성 훈련을 통해 연마된다. 그런데, 이 관계성과 영적 훈련으로써의 자기 성찰은 ‘일상’을 배제하고는 생각할 수 없다.

  
          몇 해전 경기도 평택의 햇살사회복지원을 방문해서, 우순덕 원장님께 평화에 대해 정의해 달라고 부탁드린 적이 있다. 햇살사회복지원은 평택 기지촌에서 양공주라 손가락질 받으며 일생을 보내신 할머니들이 세상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쉼터도 제공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식사도 제공하고, 힐링 프로그램도 제공하는 작은 공동체이다. 원장님이 말씀하신 평화에는 미사일도, 군대도, 한미 관계도, 국경 봉쇄도 없었다. “할머니 한분 한분이 진정한 인간으로써 존중받는 것, 따뜻한 밥 한끼를 매일 드실 수 있는 것, 죽을 때 혼자 죽지 않는 것이 평화입니다.” 십년도 더 지난 예전에 뉴욕 무지개 집을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무지개 집은 국제결혼 여성들의 쉼터로 출발한 공동체인데, 이 여성들의 대부분이 미군과 결혼하여 한국을 떠난 기지촌 출신 여성들이다. 문화적 차이, 경제적 어려움, 언어 장벽, 가정 폭력, 미군 남편의 외상 후 스테레스성 장애 등으로 인하여, 많은 여성들이 미군 출신 남편과 이혼하거나 버림을 받고, 다시 성매매를 하거나 걔 중에는 홈리스로 전락하기도 한다. 무지개 집에서 만난 한 여성은, 마약에 중독되어 살다가,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무지개 집을 찾아왔다고 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사람답게 사는 법은 “남들처럼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일하고, 저녁에 집에 와서 쉬고, 친구와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평화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지극히 일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회복하는 것인데, 폭력과 전쟁으로 파괴된 일상을 되돌리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같다. 폭력은 그것을 행한 사람과 겪은 사람들, 폭력으로 가족을 잃어 버린 사람들,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 모두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 번 무너져버린 일상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처럼 멀리 존재하는 것 같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4월 16일은 세월호가 침몰하여 304명이 수장된지 2년된 날이다. 작년 세월호 1주기때,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지인이 한국에서 보내주었다. 책에 실린 세월호 유족들의 글은 소중한 가족 구성원들을, 자본주의 탐욕과 버무려진 재앙으로 잃고 난 후에, 무너진 일상, 바뀌어진 일상 속에서 겪는 고통의 기록이였다. 이 고통 속에서 유족들은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해 질문을 하고, 교회의 역할을 묻고, 사회 지도층의 책임감에 의구심을 던지며, 무엇보다 명백한 희생자들이 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회 부조리를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고 있었다. 세월호는 유족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일상에 영향을 끼쳤다. 이제 우리의 일상은 세월호 전과는 달라졌고,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월호 이전의 세월이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이전에 일어났던 여러가지 사건들을 생각해 보면, 세월호 사건은 이미 예견된 인재였는지도 모른다. 재작년 마지막으로 방문한 강정 평화 운동지에서, 평화 운동가들이 이런 의견을 나누어 주었다. 미군 기지 건설을 위해 평택 대추리를 밀어버리고 원주민들을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기지 건설과 원주민 이주 반대시위를 강압적으로 진압한 대추리 사태 (2006), 용산 재개발 과정 중 무리한 강경 진압으로 철거 반대를 주장하는 주민들을 화재로 죽게 만든 용산 화재 사태 (2009), 강압적인 강정마을 해군 기지 건설은 모두 하나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와 결탁한 군사주의, 생명보다 개발 우위의 논리, 위로 부터의 의사결정 방식, 이념으로 분리된 사회 구성원들, 그리고 이 비극적인 세가지 사건을 깊이 분석해 보면 “주한 미군”이란 연결 고리도 찾을 수 있다. 이 사건들의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일상이 무너진 시민들, 일상이 바뀐 시민들의 얼굴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사건과 이들 사건들과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방산 비리로 인하여 싸구려 무기를 지급받고, 군생활 중 사고로 죽은 젊은 군인들과, 세월호 사건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상관관계가 반드시 있다고 본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비리 뿐만 아니라, 군사문화에 기반한 사회 전반에 퍼진 위계구조, 계층과 성별 사이의 갈등 등등. 모든 억압적인 사회 문제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강정마을 평화 운동이 세월호 기억과 진실 운동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세월호 운동이 다른 종류의 평화 운동과 다르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들은 오리무중인 한국 사회에서 평화란 무엇이며, 예수의 평화는 어떻게 상상되어질 수 있을까? 우선 나는 평화란 “일상”을 지키는 행위라고 본다. 나와 내 가족만의 일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폭력과 억압에서 벗어난 “일상”을 살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또한 폭력과 전쟁, 억압으로 인하여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이 다시 일상을 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힘들어도 폭력의 역사, 거대 담론이 아닌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3월 시카고에서 Pacific Asian North Asian American Women in Theology and Ministry모임이 있었다. 이번 모임은 특별히 시카고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시안 사회 운동가들을 초청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들 중 한 명이 시카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온 통계학자 김지인님 이였다. “만약 세월호 사건이 없었다면, 저는 사회 운동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월호 모임에 동참한 후부터는 시카고 지역의 다른 사회 운동에도 연대 차원에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김지인 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월호를 직접 겪지 않았지만, 더이상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로 살기 위해서, 나의 일상을 회복하고, 세월호 유족들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유족들이 원하는 것을 지지하고, 세월호 사건과 피해자들의 이야기들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세월호 유족들과 함께 이들의 일상도 변하였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함께 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일상 중에 존재하는 평화의 씨앗을 볼 때, 우리는 예수가 이야기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의 가능성을 보게 되고, 서로의 일상을 지켜주고, 이 일상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함께 기울이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에 참여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이 평화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기억해 주는 노력일 것이다. 마포구 정신대 대책 협의회 아래층에 위치한 전쟁과 여성 박물관, 강정마을의 평화 도서관, 세월호 기억의 숲, 제주 4.3. 평화 박물관 등등. 한국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의 노력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의식적으로 찾고, 기억하고, 일상화 시키자. 우리도 다른 일상을 살 수 있다. 노란색의 일상,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의 노란색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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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적은 인간이 아닙니다

폭력과 비인간화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최근 미국 미주리 주의 퍼거슨 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며, 저명한 흑인 학자 코넬 웨스트 (Cornell West)가 한 말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라크에서 하고 있는 일은 미국 내에서 흑인을 대하는 것과 똑같다. (Cornel West, Democracy Matters, 2005)” 코넬 웨스트는 이라크 전쟁 중 미군이 행한 민간인 학살과 전쟁 포로의 인권유린이 미국 내에서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는 흑인 청년들에 대한 조직적인 경찰 폭력, 사회적 편견 등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웨스트의 주장은 상당히 일리가 있습니다. 

             16세기 부터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흑인 노예 제도는, 흑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당시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천부 인권론 등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서구에서, 노예 매매제도가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아이러니 입니다.  

            미국의 노예제도는 흑인을 철저히 비인간화 하며 지속되었습니다. 흑인 남성들은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폭력적이며, 성욕과 같은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산다는 이념화 과정이 그것입니다. 비록 흑인 노예제도가 1865년 남북 전쟁과 함께 종료된 것처럼 보이지만, 해방된 흑인들은 그 후로 부터 100년 동안 짐 크로우 법 (Jim Crow Laws) 밑에서 인권을 유린 당하며 살았습니다. 짐 크로우 법은 공공 장소에서의 인종 분리 정책을 합법화한 법으로써, 이 법 아래에서 흑인들은 법정 증언도 할 수 없었고, 공정한 재판도 받을 수 없었으며, 백인들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어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노예 제도나 짐 크로우 법을 주류 기독교가 오랜 동안 지지했다는 사실은 역사상 최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짐 크로우 법 시대에 흑인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나무에 매달아 죽인 사람들은 백인 기독교인들 이였습니다. 흑인 해방 신학자 제임스 콘은 린치 당하고 죽은 흑인이 매달린 나무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조직화된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이들의 상징으로 보고 있습니다 (James Cone, The Cross and the Lynching Tree, 2011). 백인들의 기독교에 의해 철저한 인권 유린과 지속적인 국가 폭력을 경험하는 흑인들이 예수 안에서 자유함과 해방을 누리기 위해서는,  흑인 여성 신학자인 숀 코플랜드(Shawn Copeland)가 이야기하듯,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 그리고 정신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Shawn Copeland, Enfleshing Freedom, 2009). 그래서 흑인 해방 신학과 흑인 여성 신학은 백인 주류 신학이 이야기하는 전지 전능한 하느님이 아닌, 약자와 함께 고통 받는 하느님, 체제의 부조리와 약자를 비인간화 하는 사회구조에 끊임없이 대항하는 하느님, 공동체와 약자를 힐링하는 하느님을 이야기 합니다.

          미국 남부 미주리주 퍼거슨 시에서 백인 경찰이 비무장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에게 여섯발의 총을 쏘아서 숨지게 한 사건은, 미국 사회에 뿌리 깊은 인종 차별 주의가 어떻게 공권력에 의해서 폭력적으로 현현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서 벌리고 있는 크고 작은 전쟁과 군사 작전, 그리고 퍼거슨 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 차별, 폭력적인 공권력에 대항하는 폭력 시위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앞서서 이야기한 것 처럼, 인종 차별은 유색 인종을 비인간화 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오랜 동안 흑인들은 짐승 또는 ‘악(evil)’과 동일시 되면서 정복되어야할 백인들의 ‘적’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미국의 역사는 실제로 유색인종에 대한 끊임없는 ‘타자화’와 ‘비인간화’의 연속입니다. 미국의 원주민 학자이며 사회 운동가인 안드레아 스미스 (Andrea Smith)의 책 ‘정복 Conquest’은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어떻게 정착 초기부터 미대륙의 원주민들을 타자화 하고, 철저히 비인간화 시키면서 그들의 땅과 문화를 파괴해 갔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미국의 부와 권력은 수많은 원주민들의 죽음과 흑인 노예들의 죽음 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소리 없는 죽음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대륙의 원주민들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당시 유럽의 여성 혐오주의에 바탕을 둔 가부장제와 달리 여성의 정치적 의사 결정권을 인정한다는 이유로, 옷 차림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자화 되고 비인간화 되었습니다. 비인간화된 원주민들을 살육하는 것은 동물을 사냥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또한 공동 소유의 원칙을 실천하는 원주민들에게서 땅을 빼앗아 사유 재산화 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동식물과 약품에 관한 다양한 지식도 사유화 하는데 별다른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성폭력과 함께 여성들을 대상으로한 피임약과 같은 약물 실험도 원주민들이 감당해야 할 사회 폭력이였습니다. (Andrea Smith, Conquest, 2005)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중에도 적으로 간주된 한국인들과 베트남인들은 타자화와 비인간화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한국 전쟁 중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 (노근리 사건, 거창 학살 사건, 포항 피난민 학살 사건 등)과 베트남 전쟁 초기 부터 일어난 민간인 학살 (마이 라이 마을 학살 사건, 네이팜탄 사용 등)은 미국이 주장하는 대로 단순히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 한 데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이미 북한군들과 베트콩의 게릴라 전술은 문명화된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미개인들이 사용하는 군사 전략과 전술로 규정되었습니다. 이러한 미개인들과 똑같은 외모와 언어를 가진 남한 사람들, 월남 사람들은 적군과 비슷한 이들이거나, 또는 자기 방어 조차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 간주되었습니다. 타자화된 동양인들의 생존은 미군의 자비심에 달려 있었습니다. 한편 개개인으로써의 미국 군인들은 끊임없이 왜 자신들이 들어 본 적도 없는 이국 땅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지를 물어야 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적군을 얼마 만큼 성공적으로 타자화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적군이 나와 다른 (또는 주류 사회와 다른) 성별, 인종, 언어, 종교, 문화 등을 가지고 있다면 타자화와 비인간화는 쉬워집니다. 만약 군인들이 적군을 그들과 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보기 시작하면, 적군을 공격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게 됩니다. 성공적인 전쟁을 치루기 위해서는, 군인들로 하여금 적군을 증오하도록 만들고, 타자를 끊임없이 구별해 내며, 적군을 비인간화하는 정신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정신 훈련은 군인들이 육체와 정신을 분리해서 육체를 끊이 없이 정신에 복종시키는 작업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정신’이 ‘적’이라고 판단된 것을 보면 즉각적으로 ‘몸’이 반응하여 그것을 제거하는 ‘반사 신경’을 기르는 것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나 심각한 도덕성 장애(Moral Injury)로 일상 생활이 힘든 참전 군인들 대부분은, 군사 작전 중 전쟁과는 상관없는 민간인들의 학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거나, 적군에 대한 감정이입을 경험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처럼 감정이 있고, 고통을 느끼며, 지켜야할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민간인들과 군인들이 미국의 군사작전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들이 그 군사작전의 일부분이란 사실이 감당하기 힘든 양심의 가책 또는 정신적 혼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인간은 인종과 성별을 초월하여 다른 인간을 죽이는 것에 양심적 가책을 느끼기 때문에, 소시오 패스나 사이코 패스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군인들은 전쟁 중이였다 하더라도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미국도 그러하지만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폭력성을 보면, 한국이 전쟁터 같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어린 학생들이 폭력까지 사용하는 왕따 문제, 여성들에게 행해지는 각양 각색의 성범죄들, 외국인들 대상으로한 차별과 폭력, 장애인이나 노인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 감정 노동자들을 상대로한 무분별한 언어 폭력과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 골수 우익들과 보수주의자들의 무분별한 이념 전쟁까지…… 이 모든 종류의 폭력은 희생자를 나와 동일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타자화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타자화와 비인간화가 만연된 사회에서 물리적 전쟁이 일어나면, 비 전시 상황에서 타자화의 대상이 되었던 약자들이 가장 먼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한국 전쟁 발발 시기에 보도 연맹원 학살이나, 서북 청년당이 ‘빨갱이들’과 그 가족들을 무자비하게 살상할 수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철저한 타자화와 비인간화가 이루어졌었기 때문입니다. 

           타자화와 비인간화는 반 기독교적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의 근간에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거룩한 존재이며,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신 그 삶, 특히 사회가 죄인이라 낙인 찍힌 사람들과 연대한 삶을 지금의 교회들이 그리고 내가 살아 가고 있는지 묵상하는 대림절 기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에 대한 저항은 타자화와 비인간화에 대한 저항과 일맥상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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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지키기 위한 반전 운동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전쟁이 살아 남은 자들에게 가져다 주는 가장 큰 비극 중의 하나는 아마도 ‘일상 생활의 파괴’일 것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낮 동안 일을 하고, 저녁에 휴식을 취하는 일상. 이웃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직장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하는 일상은 소소하고, 때론 무의미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일상이 파괴되는 경험을 한 사람들은 인간의 삶이란 결국 소소한 일상의 연속이란 것을 고백하곤 합니다.
         지난 2011년 미국의 PBS (Public Broadcasting System) 방송국에서는 ‘여성, 전쟁, 그리고 평화 (Women, War and Peace)’라는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만들었습니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라이베리아, 콜럼비아 등지에서 전쟁을 경험한 여성들은 하나같이 전쟁으로 인해 깨어진 일상이 가져다 준 고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한 때 서로의 아이들을 돌보아 주고, 마을의 대소사를 나누던 주민들은 보스니아 내전으로 적군과 아군, 강간 군인들과 피해자들로 나뉘어져 버렸습니다. 한 번 나누어진 마을 주민들은 전쟁 후에도 일상으로 돌아올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탈레반과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무력 항쟁을 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성들이 극히 제한된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집 안팎에서 끊임 없이 감시를 받고, 길거리에서 매를 맞고 폭력에 노출됩니다. 한 마디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폭력이 일상이 되어버린 삶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합니다.
          일상의 파괴가 전쟁이 인간에게 가져다 준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담론은 인간의 일상생활(everyday life) 자체를 쉽게 무시합니다. 전쟁 담론에서 주로 다루는 문제는 국제 관계, 핵무기 사용, 군축 협상, 테러 조직 파괴, 국제 협약 등등, 소위 말하는 거대 담론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거대 담론들이 활발히 토론되는 국제 정치 무대에서, 여성이나 일반인들은 소외되어 왔습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의 정치담론을 지배해 온 “정치적 사실주의 (political realism)”는 강대국들 간의 힘의 균형 문제에 집중하면서, 은연 중에 군사적 힘이나 전쟁, 핵폭격 등의 ‘힘든 (?)’ 결정을 하기엔 감정적이라 여겨지는 여성들을 배재해 왔습니다.
           20세기 후반들어 국제 관계를 다루는 여성학자들은 ‘정치적 사실주의’가 경제, 종교, 이민, 환경 문제 등을 동반하는 복잡다단한 국제 사회 관계를 다루기엔 역부족이라고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적 사실주의는 주권 국가를 국제 관계의 기본 단위로 보기 때문에, 국가와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실제 인간 관계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일쑤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21세기에 들어 많은 여성학자들과 국제 NGO 관계자들은 평화와 안보의 주체를 국가가 아니라 ‘사람’으로 보아야 하며, 국가의 주권과 영토를 지키는 것이 평화와 안보의 핵심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과 사회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평화와 안보 정책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인간 안보 (human security)’ 개념을 발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인간 안보를 위해서는 일상 생활에서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 안전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깨끗한 물과 영양가 있는 음식, 양질의 교육, 마을 공동체, 종교의 자유, 의미있는 인간 관계, 정의로운 경제 구조 등을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마련해야 합니다.
            인간 안보가 추구하는 사회 경제 구조는 다양한 기독교 해방신학이 추구해 온 ‘하느님의 나라’와 비슷합니다. 미국의 남미 여성 신학자 아다 마리아 이사시 디아즈(Ada Maria Isasi-Diaz)는 남미 여성 해방 신학의 핵심은 소소한 일상생활 자체가 폭력의 구조에 저항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세계화된 자본주의와 군사주의가 인간과 자연 공동체를 파괴하고, 인간을 관계 속에 사는 존재가 아닌 원자화(atomization)된 존재로 살도록 강요하는 현실 속에서, 여성들이 일상 생활에서 얻은 생존의 경험은 공동체를 살리는 커다란 힘이 됩니다. 생존의 경험 속에서 얻어진 지혜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하느님의 가족 (la familia de Dios) 구성원이며, 이 가족 공동체는 가장 약한 구성원을 위해 폭력의 구조에 저항해야 합니다.
          도로테 죌레는 기독교 신비주의 전통은 일상에 살아 숨쉬는 하느님의 신비함을 경험하는데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 영성은 일상을 가벼운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공간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과 정의의 하느님은 인간 공동체와 자연 공동체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와 함께하는 일상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들의 고통을 돌아 보게 하고, 그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삶입니다. 결국 폭력에서 자유로운 삶이란 공동체 속에서 다른 살아있는 이들과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일상은 점점 더 전쟁과 폭력에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국가 안보가 인간 안보에 우선한다는 생각. 군사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강한 군사력만이 안보와 평화를 가져온다는 생각. 군대를 가야 남자가 된다는 생각. 살인, 테러, 방화, 폭격이 실제 상황처럼 펼쳐지는 영화와 컴퓨터 게임. 군대에서 강조하는 전우애와 국가에 대한 충성, 위계 질서가 중요한 사회 가치가 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공동체를 회복하고, 하느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반전운동, 평화운동은 일상을 지키기 위한 운동입니다. 나의 일상이 폭력과 전쟁을 정당화 시키는 문화에 젖어들지 않도록 하는 삶, 타인을 소외시키는 일상이 아닌, 함께 사는 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교통하는 삶, 그리고 인간 안보를 위한 사회 정의 실현에 참여하는 삶 말입니다. 반전 운동은 일상에서 시작해서 결국 그 일상을 지키는 운동으로 귀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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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ateral Damage: 부수적 피해

‘부수적 피해’가 ‘부수적’이지 않은 이유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Collateral Damage는 군사용어입니다. 보통 한국어로는 ‘부수적 피해’라고 번역이 됩니다. 한국어로 쓴 ‘부수적 피해’는 Collateral Damage의 아이러니를 너무나도 잘 표현해 줍니다. 왜냐하면 ‘부수적’이라는 용어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쟁 중 일어나는 민간인의 죽음과 사회 기관 시설 파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군사용어로써 Collateral Damage는 전쟁 중 일어나는 ‘의도’하지 않은 피해로써, 주로 적군의 주요 군사 시설을 파괴하거나 적군을 공격할 때 일어난 민간인 피해를 일컫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 중 일어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남성) 군인을 상대하는 전시 매춘업, 또는 강요된 매춘 등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Collateral Damage는 그 범위가 넓고, 피해 양상 또한 다양합니다. 또한 ‘의도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군사 작전의 목표물이 아니었다는 것이지, 실제적으로 민간인들 시설에 대해 공격 ‘의도’가 있었느냐를 판단하기는 힘듭니다.  

            Collateral Damage의 아이러니는 현대전에서 민간인의 피해가 전쟁 피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전쟁 중 사망하는 민간인의 수가 군인 전사자의 수를 넘기 일쑤이고, 1990년대 이 후 일어난 대부분의 전쟁에서 수많은 민간인 여성들이 성폭력을 경험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보면서, 다시 한 번 Collateral Damage란 표현이 얼마나 비도덕적이고 반기독교적이며, 심지어 무책임한가를 생각해 봅니다. 

            CNN에 의하면2014년 8월 6일 현재,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800명을 넘어섰으며, 부상자들 또한 10,000여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이 국제 사회에서 지탄을 받는 이유는, 사상자들의 대부분이 민간인들이고, 이 민간인들의 대부분이 집 안이나 학교에 있던 여성들과 어린이들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테러집단으로 규정된 하마스(Hamas)의 주요 군사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서 군사 공격을 한 것이며, 이 군사 시설들이 민간인 집단 거주 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민간인 피해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고 항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 가지 윤리적 질문에 맞닿게 됩니다. 하마스의 군사 시설과 땅굴을 공격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민간인 사살을 정당화하는 이스라엘과 민간인 거주 지역에 군사 시설을 설치한 하마스. 둘 중 어느 집단이 윤리적으로 더 지탄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이 민간인들을 공격을 할 때마다, 어린이들의 시체를 언론에 공개하는 하마스의 행동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봉쇄 정책과 팔레스타인 점령이 하마스와 같은 무력 저항 단체를 만든 원인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로켓 공격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요? 군인들의 죽음과 부상은 민간인들의 피해와 비교해 볼 때, 윤리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이를 정당화할 수 있다면 그 윤리적 근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이러한 질문들 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전쟁의 장기화를 피하기 위해서 대량 살상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대량 살상 무기는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사용한 원자 폭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필연적으로 ‘부수적 피해’를 야기합니다. 원자 폭탄 투하로 미국은 일본의 항복에 마르지 않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지만, 사상자들의 대부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시민들이였고, 원자 폭탄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를 이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전쟁을 단기 간에 끝내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일어난 파괴 행위는 모두 ‘부수적인 피해’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스라엘 또한 아이언 돔의 사용을 정당화 하였으며, 최근 미국에서 탄력을 받고 있는 드론으로 알려진 무인 폭격기와 정찰기 사용 또한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피해를 ‘부수적 피해’로 용인할 수 있는가에 대한 윤리적 가이드 라인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네바 협정이나 현대화된 ‘정의로운 전쟁’이론,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 입장은 전쟁 중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의 살상을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전은 안타깝게도 무장 군인과 민간인의 구별조차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더구나 게릴라전과 민간인을 동원한 폭탄 테러는 적국의 민간인을 모두 불시에 공격가능한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모든 민간인 피해를 ‘부수적 피해’로 규정하거나, 비윤리적 행위로 지탄하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Collateral Damage를 최선을 다해서 줄여야 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당연한 과제입니다. 결국 전쟁은 ‘죽임’의 행위입니다.  승전은 살육을 정당화하는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합니다. 적국에 속한 군인 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명제가 암암리에 전쟁 논리에 숨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이야기할 때, ‘죽음’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을 보도하는 대다수의 미디어에서도 민간인의 피해를 이야기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습니다. 전쟁 중 죽고 다치는 사람들과 어린이들의 사진을 보기는 하지만 죽음의 잔인성과 고통, 전쟁의 실제를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혹자는 아무리 잔인한 전쟁 영화도 전쟁의 맨 얼굴을 보여줄 수 없다고 합니다. 시체 썩는 냄새, 조각나서 여기저기 흩어진 몸. 불에 탄 시체의 냄새는 어떠한 영화나 사진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수적 피해’는 타인의 (고통스러운) 죽음과 남은 자들이 평생 짊어져야 할 고통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죽음은 결코 ‘부수적’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부수적’인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전쟁 윤리 중 가장 오랜 전통의 하나인 비폭력 평화주의 (pacifism)은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라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모든 인간들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은 그 근본이 거룩합니다. 우리 안에 내재한 거룩함은 다른 생명을 사랑하는 힘, 고통받는 생명을 자비로 끌어 안을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도로테 죌레는 기독교 영성 전통 중에 하나로 ‘타생명이 겪는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죌레에 의하면 예수의 고통을 신격화하고 우상화하여 인간의 고통과 분리시키고, 고통에 대하여 생각하지 못 하도록 하는 기독교는 오히려 폭력을 묵인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신격화된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몸이 폭력에 의해 야기되는 고통을 인간의 역사에서 분리시킴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 형벌을 가능케 한 조직적인 폭력을 보지 못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고통, 특히 전쟁 중 겪는 고통을 끌어 안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전쟁을 조장하고, 약자의 고통을 묵인하는 사회 구조에 대해 ‘NO’라고 저항할 수 있는 용기, Collateral Damage를 간과하지 않는 용기 말입니다. 수도원 전통에 기초한 영성 운동은, 고통에 감상적으로 접근하여 벗어나려는 행위가 아니라, 고통의 근원에 직면하고, 사회 부조리에 저항하기 위한 용기를 내재화 하는 행위입니다. ‘부수적 피해’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독교 영성 운동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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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상처를 치유하기

- 회복적 정의와 인간 안보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지난 2012년 미국 인디애나주의 노트르담 대학교에서 신학과 평화학을 가르치는 다니엘 필폿(Daniel Philpott) 교수는 “정의로운 평화와 부정의한 평화(Just and Unjust Peace: An Ethic of Political Reconciliat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12)”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전통에서 발견되는 평화와 상생의 윤리를 재발견한 이 책은, 물리적 전쟁이나 무력 충돌이 끝난 후, 어떻게 살아남은 자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방향성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쟁의 끝은 정전 선언이 아니라, 포스트 전쟁 국가(post-war country)가 ‘정의’에 기반하여 평화와 사회 통합을 이루어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의로운 평화, 용서와 화해에 기반한 사회 통합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무력 충돌로 야기된 ‘정치적 상처(political wounds)’를 이해하고 치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해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그들이 경험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 가족의 죽음, 인권 탄압과 가해자를 향한 증오감을 치유하지 않는 한 사회 통합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필폿이 말하는 정의는 징벌이나 보복적 개념으로써의 정의가 아니라, 회복적 개념의 정의(restorative justice)입니다. 회복은 사회 구성원 간의 관계, 국가와 국민과의 관계,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남성과 여성 구성원 간의 올바른 관계(right relationship)를 말합니다. 이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정의의 개념인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올바른 관계, 이웃간의 올바른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올바른 관계 회복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힘을 가진 집단이 사회 통합이란 미명하에 피해자 집단에게 용서를 강요하거나, 과거를 무조건 덮으려고 하는 행위만큼  올바른 관계를 위협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필폿이 이야기하는 부정의한 평화입니다. 부정의한 평화로 어정쩡하게 통합된 사회는 언제든 사회 집단 사이의 무력 충돌이나, 국가의 무자비한 인권 탄압이 발생할 수 있는 시한 폭탄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대다수의 국민이 정치적 상처를 안고 지금까지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종교 집단과 사회 집단, 정치 집단들이 이 상처를 조직적으로 무시하고, 사회 통합과 용서 또는 금전적 피해 보상만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 사회는 위기 관리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었고, 사회 구성원들 간의 불신은 커져만 간 것 같습니다. 
           21세기에 들어, 정의로운 평화를 강조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학자들은 국가 안보가 아니라, ‘인간 안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국제 정치학에서는 국가의 존립에 초점을 맞추어 평화와 안보를 이야기하면서, 국가를 구성하는 인간을 하위에 두었습니다. 국가가 존재하지 않으면 국민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에 반해 인간 안보 패러다임은 진정한 평화와 안보의 의미를 모든 인간들이 육체적, 정신적 자유와 보호가 보장되는 삶을 살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 구조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권 탄압을 일삼는 국가 권력이나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는, 그러므로 ‘안보’에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평화와 안보는 사회 집단 간에 대화를 바탕으로 한 서로에 대한 이해, 역사의 잘못에 대한 진실된 고백과 용서를 구하는 행위, 적절한 처벌과 피해자 보상, 잘못에 대한 용서 등을 기반으로 한 정의로운 사회 구조를 만들어 갈 때 가능합니다.
           인간 안보에 초점을 둔 정의로운 평화를 세월호 참사에 비추어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일주일 전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물리적 전쟁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마치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단지 그 시간에 그 배에 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장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참사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깊은 정치적 상처를 남겼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실패했고, 개개인의 삶과 죽음은 전적으로 ‘운(luck)’에 달렸다는 운명론적 생각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몇몇의 기독교 신학자들은 예수가 세월호에서 운명을 달리한 이들과 함께 수장되었다고도 이야기합니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죽음은 항상 부활 사건과 함께 기억되는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월호 사건에서 부활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안병무 선생과 타이완 출신의 신학자 C.S. Song은 예수가 하나의 개인 인격체가 아니라, 고통받는 민중의 집단적 정체성이라고 보았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고통 받는 민중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끊임없이 현재 우리의 삶으로 불러 들여서, 함께 살아나갈 방법을 찾는 것을 말합니다. 이 과정은 굉장한 용기와 영성을 필요로 합니다. 역사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것 자체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부유하는 유령들과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필폿이 제안하는 ‘회복적 정의’를 실천해 볼 수 있습니다. 유일신 전통에 근거하여 ‘화해’를 ‘정의, 자비, 평화, 용서’의 개념에서 설명한 필폿은, 화해를 위한 여섯 가지 단계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필폿, 174): (1)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조직 건설(building socially just institutions), (2) 과거의 잘못에 대한 인정(acknowledgement of past wrongdoings), (3) 희생자들에 대한 적절한 피해 보상(reparations for victims), (4) 공식적 사과(public apology) (5) 가해자에 대한 처벌(punishment for perpetrators or wrongdoers), (6) 용서(forgiveness). 이 여섯 가지 단계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몇 세대에 필요하다 하더라도, 진정한 화해를 바탕으로 한 회복적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할 사회적, 역사적 과제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방관자가 아니라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끊임없이 기억하는 역사의 주체가 되기를 제안합니다. 정의로운 국가 조직, 경찰 조직, 시민 조직을 건설하여 사회 위기 관리 능력을 길렀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매해 성금요일엔 세월호를 기억하는 묵념의 시간을 교회들이 가져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현충일과 6월 25일엔 국군 희생자들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없이 죽어간 민간인 희생자들을 기억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역사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한, ‘회복적 정의’를 향한 희망의 불꽃은 항상 살아 있습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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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ace
    2017.09.09 18:3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선언문(DPCW)’에 대하여 전 세계 여성그룹, 청년그룹에서 지지서명을 하고 있으며

    각국 대통령,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들이 참여하여 서명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같이 동참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문포함] HWPL, 북핵 도발 규탄 및 한반도·세계 평화 촉구 성명(천지일보)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448346

왜 한국은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지 않는가?

- 기억의 정치학, 기억의 신학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잊혀진 전쟁 (Forgotten War).’ 미국에서 한국 전쟁을 지칭할 때 많이 쓰이는 관용구입니다. 왜 한국인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전쟁이 미국에서는 마치 아무 일도 아니였던 것처럼 여겨지는 것일까요? 한국 전쟁은 한국인들만의 전쟁이 아니라, 수많은 젊은 미국인들을 목숨 또한 앗아간 전쟁인데도 말입니다. 2010년 6월 한국 전쟁 발발 6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의 공영 방송 PBS에서는 ‘잊을 수 없는 한국 전쟁 (Unforgettable Korean War)’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이 80분 짜리 다큐멘터리는 참전군인들이 미국에 돌아 온 이후, 일생 동안 겪었던 또 다른 전쟁을 들려줍니다. 장진호에서 중공군과의 치열했던 전투에서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 동료들을 지키지 못 했다는 죄책감과 살인에 대한 죄책감.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전쟁에서 돌아 왔을 때, 일상으로 돌아 가라는 가족과 친구들. 그 잊혀짐 속에 홀로 남은 기억하는 자들의 이야기. 한 참전군인들은 이렇게 그의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기차 역에 내리니, 마중 나온 가족들이 하나도 없더군요. 모두 일을 하러 갔어요. 저 혼자 택시를 타고 동네 입구에서 내려서 집으로 걸어 가다 친구 녀석을 만나죠. ‘지미, 자네 어디 갔나 오나?’ 친구가 묻더군요. ‘한국 전쟁에 갔다 왔어.’ ‘그래? 얼른 쉬고 내일부터는 일 좀 해야지?’”
          한국 전쟁과 달리 베트남 전쟁은 미국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전쟁입니다. 미국은 전쟁 발발 직전, 케네디 대통령을 잃었고, UN의 동의안을 얻지 못한 채 나간 전쟁에서 10년을 싸웠고, 나라 안팎으로 반대 여론에 고전하다 결국 패전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 전쟁과 비슷한 방법으로 밀어 붙였는데, 실패했으니,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전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베트남 전쟁 중 반전 시위에 동참한 저널리스트, 사진 기자들,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미군이 베트남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권유린의 증거들을 열심히 퍼 날랐습니다. 그 중 하나가 ‘마이 라이 마을 학살’입니다. 한국 전쟁 중 일어난 거창 양민 학살 사건, 노근리 학살 사건과 유사한 사건으로, 1968년 미군은 월남에 위치한 어린아이, 노인, 여성 할 것없이 마이 라이 부락민 347—547명을 학살하고, 여성을 집단 강간하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마이 라이 학살 사건이 알려진 1969년, 베트남 반전 운동은 더욱더 거세어졌습니다.
         그러나 마이 라이를 기억하는 미국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재미 베트남 기독교 윤리학자인 조나단 트랜 (Jonathan Tran)은 그의 책, ‘베트남 전쟁과 기억의 신학 (The Vietnam War and Theologies of Memory)’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마이 라이를 비롯한 양민 학살 사건과 베트남 전쟁 자체가 조작된 전쟁이란 것을 기억 속에 묻어 버린 채, 미국이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만을 기억한다. 미군들이 겪었던 정글에서의 고통, 그들의 희생과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 전쟁 고아 탈출 작전 등, 미국이 기억하는 베트남 전쟁은 여전히 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위한 미국의 숭고한 희생정신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함께 베트남 전에 참전한 한국은 이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한국 군인들이 베트남 전쟁에서 어떠한 일을 겪었는지, 베트남인들에게 어떠한 일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도 않고, 알려져 있지도 않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베트남 전쟁이 한국 전쟁 후 여전히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 있던 한국을 일으켜 세웠다는 것입니다. 월남을 남한과 동일시 하면서 국내적으로 반공의 기치를 강화하고, 박정희 군사 독재를 정당화할 수 있었고, 월남 파병을 통하여 고질적인 실업 문제와 외화 부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우수한 신무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 또한 큰 수확입니다. 하지만 고엽제로 고통 받는 월남 파병 군인들의 이야기가 한국 사회에 겨우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전쟁이 끝난 지 20년이 지난 1990년대에 들어서입니다. 그나마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도 소수에 불과합니다. 한국군들이 저지른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과, 베트남 여성 강간 사건, 베트남 종전 후 남겨진 라이 따이한들. 이 모든 것들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 노근리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한국인들은 분개했습니다. 반미 사상, IMF와 맞물려, 한국인들은 눌린 자로써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 고분분투했습니다. 이 즈음에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 사건을 알리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 노력은 안타깝게도 한국인들에겐 잊혀진 전쟁이 된 베트남 전쟁을 재조명하고, 반성하려는 기회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야만적인 미군을 한국군과 동일시한다는 비판만 받았습니다. 한국은 잊었을지라도, 베트남 사람들은 여전히 한국군의 양민 학살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잊은 한국 전쟁을 한국이 기억하는 것 처럼, 우리가 의도적으로 잊은 베트남 전쟁을 베트남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언제,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우리에게 돌아와 우리의 잘못을 물을 것입니다. 이 기억의 형벌에서 구원받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조나단 트랜은 기독교의 성찬식을 전쟁의 세계관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성찬식은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억, 그리고 예수의 평화를 살아가겠다는 다짐과 희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쟁은 결국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공산주의와 같은 위험 요소를 제거하면, 우리의 삶이 안정되고 영원하리라는 착각에서 나오는 조직적인 망상에 기인합니다. 성찬식은 전쟁이 주는 이러한 세계관에 대해,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영원성을 일깨워 줍니다. 즉 인간이 아닌 하느님이 영원한 삶과, 평안의 주체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역사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전쟁과 폭력으로 죽어간 수많은 이름없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있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예수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 그와 함께 살고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죽음을 파괴하신 부활의 예수와 함께, 우리는 죽음의 전쟁을 거부하고, 이 세상을 삶의 공간으로 바꾸는 누룩과 같은 존재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성찬식은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시러 오신 예수가 아닌,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화해하고, 삶을 즐기는 자리입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역사의 억울한 희생자들이 살아있는 이들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이 끊임없이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함으로써, 그들과 함께 화해하고, 삶의 축복을 만들어 가는 하느님의 정의로운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제 다른 방식으로 전쟁을 기억하고, 역사의 억울한 희생자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진정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은 우리를 끊임없이 전쟁으로 몰아 넣는 국가 권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가 권력이 우리의 기억을 두려워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국가와 종교 권력이 우리의 기억을 조작하기 위해서 예수의 희생과 전쟁의 희생을 동일시 할 때, 역사 속에 켜켜히 쌓인 희생자들을 지워 버리려고 할 때, 우리는 반드시 깨어있어야 합니다. 기억의 정치학은 저항의 정치학입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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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2.17 05: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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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 제목이 이래? 한국 정부와 개인적으로 베트남에 많은 학교를 지어주고, 기자재를 보내주고 있다.... 뭔 소리 랑가요~~~

전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윤리적 화두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미국의 작은 사립 대학에서 기독교 사회 윤리학과 여성 윤리학을 가르치면서, 종종 학생들과 힘들게 씨름하는 주제가 ‘전쟁’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폭력과 전쟁으로 시작되어서, 지금까지도 그 폭력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에서 신학적 머리로 접근하기 힘든 화두가 ‘전쟁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인가, 아니면 죄에 빠진 인간들의 권력 투쟁인가, 만약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전쟁이 있다면 그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것들입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 왕국들의 흥망 성쇠가 이어졌던 유럽에서는 교회가 거룩한 전쟁을 결정하는 주체가 되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현대인들에게는 비열한 권력욕의 실체로 판단될 수 있는 십자군 전쟁, 백년전쟁, 제3세계의 식민지 전쟁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까지 유럽의 모든 전쟁들은 교회의 적극적인 지지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전세계의 수많은 기독교 윤리학자들이 전쟁 윤리에 매달리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전쟁이 인간 존재를 위협하는 가장 파괴적인 수단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폭력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공포의 실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쟁을 겪을 때마다 인간은 상상을 초월한 잔혹성을 경험하게 되고, 그러한 경험들은 다시 부메랑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떠한 존재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느님은 이 전쟁의 불길 속에서 어디에 계셨던 것인가’ 등등의 실존적 질문들을 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전쟁이야말로 인간 정체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역사적, 물리적 힘이 아닐까요?
           미국의 기독교 윤리학자 스탠리 하우어와스 (Stanley Hauerwas)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미국인이라는 시민 정체성이 전쟁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지구상에 생겨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전쟁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습니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끊임없이 전쟁에서 희생당한 참전 용사들을 기억하며 애국심을 다지고, 이들의 피로 지켜낸 미국을 영원히 지키자는 다짐을 해왔습니다. 기독교인들 또한 군인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데 적극적이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전쟁 영웅들의 희생과 초대 기독교 순교자들의 피를 동일시하면서, 끊임없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미군들과 전장에서 죽은 거룩한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의 ‘선’을 수호하는 하느님의 거룩한 군사들로 자신들을 이해해왔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하우어와스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평화를 위해 기도하면서도, 전쟁은 인류 사회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뿌리 깊은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성서적 바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의로운 전쟁’이론이 기독교 전쟁 윤리의 지배적인 담론이 되는 이유는,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인간 사회의 실체라는 생각을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의로운 전쟁 이론은 전쟁을 거부하는 담론이 아니라, 전쟁을 실체화하는 담론인 것입니다. 전쟁이 인간 사회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란 생각이 팽배한 세계는 비폭력 평화주의자들을 희생을 거부하는 이기주의자들로 낙인찍어 버립니다. (Stanley Hauerwas, War and American Difference [Baker Academy, 2011])
            하우어와스의 주장은 신선하게 들립니다. 지금까지 주류 기독교 윤리 담론이 소위 말하는 ‘정치 현실론 (Real Politik)’ 또는 ‘기독교 현실주의 (Christian Realism)’에 기초하여, 전쟁의 필연성을 가정한 데서 출발하였다면, 하우어와스는 전쟁의 필연성 자체, 즉 ‘전쟁은 계속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란 생각이 ‘과연 증명이 필요없는 합리적인 가정인가’라고 질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그는 ‘전쟁이 기독교 정체성에 부합하는 것인가’ 하고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존 요더 (John Yoder)의 비폭력 평화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은 하우어와스에게 있어서, 전쟁은 기독교 정체성에 반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전쟁이 굳이 피할 수 없는 인류 사회의 현실이 될 합리적 이유도 없습니다.
            여성신학자 로즈마리 류터 또한 하우어와스와 비슷한 주장을 합니다. 비록 힘의 대결로 일어난 전쟁과 폭력이 인간 역사를 지배해 오기는 했지만, 인류는 사랑과 정의, 화합에 바탕을 둔 신뢰와 공존의 관계를 유지해 오기도 했습니다. 예수가 그러했고, 성 프란치스코의 수도원 운동, 간디의 비폭력 평화 운동,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흑인 인권운동 등이 그러한 예입니다. 이들이 보여 준 사랑과 정의, 화합에 기반한 공존의 관계는 역사적 현실이 아닌 걸까요? 류터는 폭력의 역사 만큼이나 사랑의 역사 또한 현실이라고 주장합니다. (Rosemary Ruether, Christianity and Social Systems [Rowman and Littlefield, 2008])  
           하우어와스와 류터의 신학적 질문들은 한국 사회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방 후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한국 전쟁을 통해 만들어져 왔습니다. 한국인이 된다는 것은 일제 식민지와 한국 전쟁을 기억하고, 분단의 현실에 마음 아파하며,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흘린 이들을 기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뼈아픈 전쟁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국의 교회들도 공산주의와 싸우면서, 대한 민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물질적 영적 힘을 보태었습니다. 이제 한국 기독교의 정체성은 전쟁과 분단, 반공주의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생각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멈추고 예수의 평화를 묵상해 봅시다.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만이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는 길일까요? 한국의 교회는 전쟁에 대해 어떤 신학적 생각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저는 성공회 신부입니다. 매주 미사에 성찬식을 시작하며 신자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눕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우리가 이야기하는 “주님의 평화”는 무엇일까요? 이 평화는 현실에선 얻을 수 없는 희망일까요? ‘한국 기독교인들은 끝나지 않은 전쟁의 현실과, 얻을 수 없는 주님의 평화 사이에서 끊임없이 길 잃은 어린 양들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라는 화두를 던지며 이 글을 마칩니다. 길을 찾기 위해선 앞으로 전쟁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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